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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 여자들의 특별한 친구 - 문학적 우정을 찾아서
장영은 지음 / 민음사 / 2023년 11월
평점 :
평점
4점 ★★★★ A-
그대 없이는 못 살아 나 혼자서는 못 살아.
헤어져서는 못 살아 떠나가면 못 살아.
- 패티 김 『그대 없이는 못 살아』(1974년) 노랫말 -
금속이 단단해지려면 단련 작업을 거쳐야 한다. 불에 달구고 나서 세게 두드리면 된다. 엄청 뜨거운 색을 띤 금속을 차가운 물에 담근다. 이 과정을 담금질이라고 한다. 한 편의 글이 제대로 완성되려면 글의 구성 재료인 글쓴이의 생각이 단련되어야 한다. 생각을 단련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내 머릿속에 오랫동안 박힌 편견이나 거짓 정보를 세게 두드리면서 빼야 하기 때문이다. 이걸 빼지 못하면 좋은 글이 나올 수 없다. 글이 완성되었다고 해서 다 끝난 건 아니다. 글을 담금질해야 한다. 글쓴이의 주관적 감정이 너무 많이 들어간 글은 매우 뜨겁다. 글이 지나치게 뜨거우면 문장이 녹아내려서 엉성한 비문(非文)으로 변질되거나 논리적 구멍이 생긴다. 이런 글은 물렁물렁하다. 매우 연약해서 잊히기 쉽다. 반면에 완성도가 단단한 글은 독자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정확하고 냉철한 지성을 가진 독자는 글 속의 열기를 식혀줄 뿐만 아니라 비문과 논리적 구멍을 잘 찾는다.
《글 쓰는 여자들의 특별한 친구》는 글을 쓰면 뜨거워지는 여자와 뜨거운 글을 담금질하는 친구들의 우정을 주목한 책이다. 이 책에서는 쓰기와 읽기가 교직 되면서 한 편의 글을 완성하는 여성들의 우정을 ‘문학적 우정’이라고 부른다.
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olf)의 뜨거운 글은 자신보다 여섯 살 어린 캐서린 맨스필드(Katherine Mansfield)가 담금질했다. 울프는 맨스필드의 세심한 논평에 감탄하면서도 그녀가 글을 발표하면 자신은 더 뛰어난 글을 쓰려고 노력했다. 인류학자 마거릿 미드(Margaret Mead)와 루스 베네딕트(Ruth Benedict)도 상대방이 쓴 글을 담금질하는 관계를 이어왔다. 울프와 맨스필드, 미드와 베네딕트, 이 네 사람은 글 쓰는 뜨거운 친구를 위해 ‘믿을 만한 독자’가 되어주었다. 잘 썼으면 칭찬해 주었고, 물렁물렁해진 글을 두드리는 비판도 아끼지 않았다.
살아있는 인간끼리 만나야만 우정이 맺어지는 건 아니다. 이미 글을 뜨겁게 쓰면서 살다 간 사람도 친구가 될 수 있다. 오직 기록으로만 남은 친구를 직접 만나면서 말을 걸 수 없다. 하지만 살아 있지 않은 사람을 깊이 알아가면서 느끼는 친밀감은 어느 한쪽만 치우치는 일방적인 관계로 변하지 않는다. 또한 이런 형태의 우정은 금방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는 대면하는 경험이 있어야 우정과 친밀감이 생긴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익숙한 생각을 뒤집는다. 아렌트는 자신보다 몇 세대 먼저 태어나고 살다 간 라헬 파른하겐(Rahel Varnhagen)을 절친한 친구라고 소개한다. 아렌트는 자신처럼 ‘유대인 여성’으로 살아온 라헬에 친밀감을 느꼈다. 라헬을 만나면서 뜨거워진 아렌트는 친구를 위한 전기(傳記)를 썼다. 이때부터 그녀는 유대인으로서의 자의식을 발견했고, 유대인 문제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쏟는다.
사랑이든 우정이든 관계가 포근하면 두 사람이 함께 덮은 공감대 이불은 점점 두꺼워진다. 하지만 둘 다 만족할 수 있는 관계의 적당한 온기를 계속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관계의 절대 온도는 없다. 상대방의 단점과 한계가 보이기 시작하면 공감대 이불은 얇아지고 관계의 온도는 차가워진다. 자신과 반대되는 온도를 가진 사람을 만나면 마음이 시리거나 얼얼할 수 있다. 그렇지만 자신을 진정으로 믿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서 생기는 정신적 아픔은 성장통이 될 수 있다. 진실한 우정은 나보다 더 잘 되길 바라는 상대방의 단점이 멋진 장점이 될 수 있도록 계속 두드린다. 이런 좋은 친구를 곁에 두지 못하면 창작의 고통이 더 크게 느껴진다. 그러면 글을 쓸 수 없다. 담금질을 거친 문학적 우정은 두 사람의 능력을 더욱 빛나게 해 준다. 끈끈하게 엮인 우정을 먹고 자란 글은 튼튼하다.
※ cyrus의 주석
* 130쪽
호메로스의 『오뒷세이아』와 프랑스아 드 페늘롱의 『텔레마코스의 모험』에 등장하는 멘토르는 남성이다. 오뒷세우스는 트로이 전쟁에 나가며 자신의 아들 텔레마코스를 친구 멘토르에게 부탁했고, 멘토르는 기꺼이 텔레마코스의 스승이자 친구가 되었다.
『오뒷세이아』의 멘토르가 성숙하고 덕망 높은 남성을 상징하는 데 반해, 『텔레마코스의 모험』에서 멘토르는 다른 존재로 등장한다.[주] 전쟁에서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를 찾아 모험을 떠나는 텔레마코스를 돕기 위해 지혜의 여신 미네르바가 멘토르로 변신해 텔레마코스와 함께했다는 프랑수아 드 페늘롱의 설정은 흥미롭다. 자연스럽게 스승과 친구의 자리를 왜 그토록 오랫동안 남성들이 차지했는지에 대해 의구심이 든다.
가까이에서 아테네가 다가왔는데, 체격과 음성이 멘토르와 흡사한 여신은 그에게 날개 돋친 말을 쏘았다.
- 김기영 옮김, 《오뒷세이아》 (민음사, 2022년),
2권 267~269행, 44쪽 -
[주] 『오뒷세이아』에 묘사된 멘토르도 미네르바(그리스 신화의 ‘아테네’)가 변신한 인물이다.
* 245쪽
제임스 조임스 →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