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금요일’은 황혼부터 새벽까지 실컷 먹고, 마시는 밤을 뜻하는 은어입니다. 우리나라 사람 대부분은 ‘즐길 수 있을 때 즐기자’라고 생각합니다. 먹고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을 ‘먹방 거인’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Gargantua and Pantagruel)의 후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 거인들은 현세에서 행복을 누리는 것을 최고의 선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읽는 인간’이 생각하는 ‘불타는 금요일’은 현세의 쾌락을 추구하는 것과 다른 의미입니다. ‘읽는 인간’은 책을 연료로 삼아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활용하는 지식 에너지를 만들어 냅니다. 뜨거운 지적 열정은 졸린 몸과 마음을 깨워 줍니다. 황혼부터 새벽까지 한 권의 책에 푹 빠져 종이 위를 달립니다. ‘읽는 인간’들이 한자리에 모여 대화를 나누는 것도 ‘불타는 금요일’을 즐기는 방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모임에서 절대로 빠지면 안 되는 안주는 ‘책’입니다. 책을 안주 삼아 수다를 펼치면서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어제 제가 ‘읽는 인간’들과 함께 조용하면서도 뜨거운 ‘불타는 금요일’을 보냈습니다. 장소는 ‘서재를 탐하다’입니다. ‘서재를 탐하다’는 대구 북구 침산동의 한 골목에 숨어있는 작은 서점입니다. 정말로 숨어 있습니다. 이 서점을 찾으려면 약도를 반드시 확인해야 합니다.
강연 시작 한 시간 전에 서점에 도착했습니다. 추운 날씨를 뚫고 서점을 찾아서 그런지 서점 내부가 포근하게 느껴졌습니다. 양쪽 벽면에 진열된 책들을 보면 마음이 편해집니다.
어제 ‘로쟈’ 이현우 선생님을 뵙고자 서점에 왔습니다. 알라딘 서재나 북플을 접속할 때마다 로쟈님의 글을 많이 봤지만, 실제로 그분의 강연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어제가 처음이었습니다. 그분을 가까이서 뵐 기회라고 생각해서 강연 참석 신청을 했습니다.
* 이현우 《너의 운명으로 달아나라》(마음산책, 2017)
*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민음사, 2004)
강연날 일주일 전에 예습-더 정확히 표현하면 ‘예독’에 가깝습니다-을 했습니다. 로쟈님의 《너의 운명으로 달아나라》(마음산책, 2017)뿐만 아니라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민음사, 2004)을 읽었습니다. 니체 위주로 독서를 했습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약칭 ‘차라투스트라’)는 며칠 만에 다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닙니다. 그래서 완독에 대한 부담을 가지지 않고 속독했습니다.
*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펭귄클래식코리아, 2009)
*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펭귄클래식코리아, 2015)
* 로제 폴 드루아 《처음 시작하는 철학》(시공사, 2013)
* 동경대 교양학부 《교양이란 무엇인가》(지식의날개, 2008)
니체의 철학을 전반적으로 소개한 책들을 많이 참고했습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펭귄클래식코리아, 2009)는 번역은 둘째 치고, 서문은 일독할 가치가 있습니다. 서문을 쓴 사람이 영국에서 니체 권위자로 알려진 레지널드 홀링데일(Regenald J. Hollingdale)입니다. 펭귄클래식 판본이 책세상 판본(‘니체 전집’에 속한 번역본)과 민음사 판본의 인지도에 가려서 그렇지 ‘니체를 처음 읽는 독자’에게 추천할 수 있는 책입니다. 홀링데일은 서문 첫 문장부터 《차라투스트라》를 까기 시작합니다. 그는 이 책의 단점이 ‘과도함’이라고 지적합니다. 아주 정확한 지적입니다. 이 ‘과도함’이 니체의 사상을 어렵게 만들었고, 독자들이 니체를 오독하게 만든 원인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차라투스트라》는 니체 초보자가 읽기 힘든 책입니다. 로쟈님은 《차라투스트라》를 니체 초보자 입장에서 보면 ‘거대한 암벽’이라고 비유했습니다. 그러니까 국내 독자들은 지금까지 ‘니체’라는 명성에 휩쓸려 그의 대표작인 《차라투스트라》를 아무런 준비도 없이 힘겹게 읽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면 《차라투스트라》를 오독하게 되고, 니체를 오해합니다. 그래서 니체 전공자는 니체 초보자에게 《차라투스트라》를 읽으라고 권하지 않습니다. 로제 폴 드루아는 니체의 성격을 확인할 수 있는 자서전격인 《우상의 황혼》을 권했고, 로쟈님은 《이 사람을 보라》, 《도덕의 계보》 등을 추천했습니다. 심지어 일본 동경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펴낸 《교양이란 무엇인가》(지식의날개, 2008)에서는 《차라투스트라》를 ‘읽어서는 안 되는 책’이라고 소개했습니다.
니체는 ‘망치를 든 철학자’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이성, 기독교 등 전통적 가치를 부수려고 망치를 들었고, 자신만의 철학을 정리했습니다. 그 책이 바로 《차라투스트라》입니다. 로쟈님은 자신이 망치를 들고 무언가를 깰 그것이 없다면 니체를 읽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뚜렷한 목적 없이 니체를 읽는 것은 무의미한 일입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니체를 대하는 각국 나라들의 반응입니다. 영미 철학자들은 니체에 시큰둥한 편입니다. 그들은 니체가 ‘철학자’라고 보는 평가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니체가 태어난 독일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독일은 니체와 ‘나치’의 연관성을 불편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니체 철학에 적극적으로 접근하지 않는 편입니다. 반유대주의자인 니체의 누이가 사후 니체의 유고를 나치가 좋아할 만한 책으로 제멋대로 편집한 바람에 니체는 오랫동안 ‘만악의 근원’으로 오해를 받았습니다. 사실 니체는 반유대주의자를 싫어했어요. 반면 프랑스는 니체를 엄청 좋아합니다. 포스트모던 철학자들이 많이 활동한 나라답게 프랑스 철학자들은 니체를 포스트모던 사상 발전에 큰 영향을 준 중요 인물로 평가합니다.
어제 강연은 ‘로쟈와 함께하는 알쓸신잡’이었습니다. 총 2시간 동안 강연이 진행되었습니다. 처음에 강연은 니체로 시작해서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 기독교, 괴테의 《파우스트》,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 밀란 쿤데라로 이어졌습니다. 보너스로 질의응답 시간에 가즈오 이시구로(Kazuo Ishiguro)에 대한 로쟈님의 평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두 시간짜리 ‘로쟈와 함께 하는 알쓸신잡’을 가까이서 보고 난 후에 집에 돌아와서 <알쓸신잡 2>를 시청했습니다.
* 알베르토 망구엘 《은유가 된 독자》(행성B, 2017)
로쟈님의 목소리를 가까이서 들으니까 확실히 독서 내공이 느껴졌습니다. 평소 그분의 글을 읽었을 때와의 느낌과 달랐습니다. 로쟈님은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철학을 이해하기 쉬운 비유로 써가면서 설명했습니다. 책이 ‘나무’라고 한다면, 수많은 책이 모여서 형성된 지식의 세계는 ‘숲’입니다. 로쟈님은 니체의 철학을 설명하면서 ‘나무가 아닌 숲’을 보는 방식으로 독서하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예전에 저는 무턱대고 《차라투스트라》를 읽었습니다. 니체를 알고 싶어서 그 책 한 권을 읽은 것인데, 저는 《차라투스트라》라는 ‘나무’를 봤던 것이죠. 초보 독자들이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책의 핵심을 소개하는 것, 그리고 책이라는 ‘나무’만 보는 것이 아니라 ‘숲’이 된 지식의 세계를 조망하는 독서. 이 두 개의 능력은 깊은 독서로 다져진 내공이 아니면 가질 수 없습니다. 저는 어제 강연을 들으면서 독서와 글쓰기에 대해 다시 생각해봤습니다. 《은유가 된 독자》(행성B, 2017)에서 알베르토 망구엘(Alberto Manguel)이 강조한 ‘천천히, 깊게, 철저히 읽는 방법’의 중요성을 새삼 강하게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어제 시간이 금방 지나가는 것을 모를 정도로 재미있고 유익한 강연이었습니다. 12월 8일 로쟈님과 함께하는 ‘불타는 금요일’에도 합류할 예정입니다. 서점에 온 김에 기념(?)으로 책 한 권을 샀습니다. 니체에 관한 책입니다. 어제 강연의 감동을 니체와 함께 더 오래 간직하고 싶습니다.
드디어 로쟈님의 친필 사인을 받았습니다. 특별히 로쟈님 앞에서 저의 정체를 밝혔고, 사인할 때 제 이름 대신에 알라딘 서재 닉네임을 써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설마 했었는데, 로쟈님은 알라딘 서재에서 활동하는 제가 누군지 알고 있었습니다. 매우 부끄러웠지만, 로쟈님이 제 닉네임을 듣자마자 기억해주셔서 좋았습니다. 앞으로 책을 읽다가 모르는 것이 있으면 로쟈님의 서재 방명록에 질문을 해야겠습니다. 벌써 두 번째 ‘불타는 금요일’이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