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전태일의 생일이다. 그는 1948년 8월 26일 대구 중구 남산동에서 태어났다. 청계천 7가 평화시장에서 근로기준법과 함께 분신한 그의 최후 때문인지 그를 서울 출신으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다. 1954년 대구를 떠나 서울로 올라왔으나 극심한 가난 때문에 제대로 학교에 다닐 수 없었다. 지금은 폐교되어 사라진 남대문 초등공민학교(후에 남대문초등학교로 변경, 폐교되었음)에 편입하여 처음으로 학교생활을 시작했다. 학교생활은 전태일에게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던 시간이었지만, 학업을 중단하고 생계를 위한 노동 현장에 투신해야 했다. 1963년 대구의 청옥 고등공민학교(현재 명덕초등학교) 야간반에 잠시 다녔으나 이 또한 오래 지속하지 못했다.
전태일이 남긴 메모 중에 ‘존경하시는 대통령 각하’로 시작되는 글이 있다.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내려다 불발에 그친 탄원서다. 그래도 이 메모는 아주 중요하다. 대통령의 장기 독재집권과 인권탄압보다도 경제성장을 공적으로 더 앞세우는 사람들이 있다. 전태일의 메모는 여공과 미성년자들까지 흘린 피땀 위에 이뤄진 ‘한강의 기적’을 알 수 있는 생생한 증언이다.
근로기준법의 혜택을 조금도 못 받으며 더구나 2만 여명을 넘는 종업원의 90% 이상이 평균 연령 18세의 여성입니다. 기준법이 없다고 하더라도 인간으로써 어떻게 여자에게 하루 15시간의 작업을 강요합니까? 또한 2만 여 명 중 40%를 차지하는 시다공들은 평균연령 15세의 어린이들로써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성장기에 있는 이들은 회복할 수 없는 결정적이고 치명적인 타격인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저 착하디 착하고 깨끗한 동심들을 좀 더 상하기 전에 보호하십시오. 근로기준법에선 동심들의 보호를 성문화하였지만 왜 지키지를 못합니까?
전태일의 분신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장시간노동에 시달리던 평화시장 여공들의 실상을 지식인과 정치권에 알리는 계기가 됐다. 노동자들의 죽음은 전태일로 그치지 않았다.
1979년 신민당사에서 농성 중이던 YH무역 김경숙을 거쳐 박노해 시인이 ‘손무덤’이라는 시의 소재로 삼을 정도로 저임금과 장시간의 노동으로 시달리던 경동산업 노동자들의 89년 집단분신으로 이어진다. 이들은 노동자로서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 죽음을 택해야만 했다.
전태일의 희생이 근로자들의 근로조건 개선과 함께 민주화에 기여한 것으로 뒤늦게나마 인정됐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전태일 기념관을 세우자는 얘기가 나오면 그 사람들은 뭐라고 할까. 여기서 말하는 ‘그 사람들’은 뉴라이트를 의미한다. 뉴라이트는 역사 교과서가 경제성장기의 노동운동을 조명하는 점을 불편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전태일의 분신을 박정희 시대의 폐해로 짚지 않는다. 전태일이 자신의 불우한 처지를 비관해서 자살했다고 주장한다. 전태일의 분신에 ‘숭고’가 붙고, 역사적 의미를 찾으려는 현재의 평가를 부정하고 나선다.
워마드는 전태일을 비하했다. 그들은 전태일의 분신을 모욕적으로 비하한 ‘태일하라’는 혐오 발언까지 서슴지 않았다.[참고] 전태일을 모욕한 워마드의 행위는 전태일을 ‘좌빨’로 규정하여 무시한 일베의 행위와 다름없다. 1960년대 여공들은 낮은 연령과 여성, 가난이라는 세 가지 요소에 의해 생활환경이 극히 열악했다. 전태일은 불평등한 노동구조 속에서 크게 고통받는 여공들의 모습에 가슴 아파했던 사람이다. 만약 전태일이 지금까지 살아 있었다면, 여성 노동운동에 앞장섰을 것이다. 그의 여동생 전순옥은 오빠가 이루지 못한 꿈을 이어받아 평화시장 노동자 자녀들을 돌보는 탁아소와 여성노동자들을 위한 공동체를 운영했다. 전태일은 당연하고 정당한 주장을 알리기 위해 극단적인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도 말하지 못했고, 누구도 듣지 않았던 근로자들의 절망과 분노를 대변했다. 지금도 노동권은 노동자들에겐 그림의 떡이다. 전태일이 꿈꾸었던 ‘사람이 일할 만한’ 노동현장은 아직 생기지 않았다. 여전히 죽음의 무게마저도 차별하는 땅에서 전태일의 업적을 외면하는 것은 마땅히 누려야 할 인간다운 자유를 갈구한 그의 정신을 무시하는 일이다. 전태일 정신을 깎아내리는 자들에게 묻고 싶다. 편하게 물려받은 자유를 누릴 자격이 있는지를.
[참고] <넘지 말아야 선을 넘은 그녀들에게 인간의 도리가 있는가?>
(만화애니비평님의 글, 2016년 8월 23일 작성,
http://blog.aladin.co.kr/775792147/87154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