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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또예프스끼 평전
에드워드 H. 카 지음, 김병익.권영빈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1월
평점 :
품절


  

  

  ' 도박꾼 ' 도스또예프스끼   

<죄와 벌><까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책 제목만 들어도 금방 떠올리게 되는 세계적인 작가, '도스또예프스끼' .  톨스또이와 함께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문호로 칭송된다.

그는 독자적인 방법으로 인간의 내면을 추구하여 근대소설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고 평가된다. 사회의 부조리와 모순에 고민하는 자신의 모습을 작품세계에 투영한 그의 작품들은 현대에 와서도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고전으로 추앙받고 있다.   

하지만 ' 세계적인 대문호 ' 라는 위대한 칭호의 수식어와는 반대로 항상 따라오는 또 다른 수식어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 도박꾼 ' 이라는 것이다.  그는 틈만 나면 러시안 룰렛이 있는 도박장으로 찾아가 헤어나지 못할 정도로 병적인 도박꾼으로 알려져 있다.   

도스또예프스끼는 도박에서 손을 떼겠다고 아내에게 수없이 다짐했지만 그 약속은 한 번도 지켜지지 않았다. 며칠이 지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또다시 집 안의 돈을 싹 쓸어 담고 도박판으로 달려갔을 정도이다.  도박자금 마련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는데 결혼반지, 아내 귀걸이, 옷, 신발은 물론 낡은 모자까지 전당포에 맡기는 일은 도스또예프스끼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다.  이렇다보니 도박으로 전 재산을 날리고 빚쟁이를 피해 4년 동안 해외 도피 생활을 하기도 했다.   

   

 

이런 자신의 도박벽과 관련된 경험을 바탕으로 <노름꾼>(Igrok)이라는 소설이 탄생될 수 있었다.   그래서 도스또예프스끼라고 하면 쉽게 도박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도스또예프스끼 복권    

 

 


중후하고 엄격한 이미지의 도스또예프스끼가  

복권 속에 그려져 있는 것이 이채롭다.  

자신의 얼굴이 들어간 복권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는 러시아 땅을 

하늘 위에서 바라 본 도스또예프스끼는 과연 무슨 생각을 했을까? 

 

' 죽은 자는 말이 없다 ' 라는 말이 있듯이 도스또예프스끼가 후세에도 자신의 도박벽이 회자되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알 길은 없지만 반대로 그와 관련된 살아있는 자들은 말을 한다. 특히 ' 도박꾼 ' 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 때문에 한순간에 천덕꾸러기 조상을 두게 된 도스또예프스끼의 후손들에게는 말이다. 

몇 년 전에 러시아에서는 도스또예프스끼의 초상화가 들어간 복권이 발행되자 도스또예프스끼의 후손들이 복권 발행에 대해서 강력한 반발을 일으켰던 해프닝이 있었다.  도스또예프스끼의 후손들은 자신들의 위대한 조상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 복권 발행을 중지할 것임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복권을 발행하는 재단 측에서는 후손의 소송에도 눈 하나 까딱도 하지 않았다.  러시아에서는 도스도예프스끼뿐만 아니라 유명한 황제나 역사적 인물들의 초상화가 들어간 복권을 발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후손들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자신의 조상의 얼굴이 복권을 장식하고 있다는 점에서 탐탁치 않게 여겨질 수 밖에 없다.  아무리 복권이 국가가 공인한 ' 사행성 오락 ' 이라고 하지만 한꺼풀 벗겨보면 복권 역시 ' 도박 ' 그 자체인 것이다.  게다가 복권의 홍보 수단 때문에 ' 대문호 ' 가 아닌 ' 도박꾼 ' 이라는 이미지가 다시 한 번 부각될 우려가 있다.  

하긴, 생물 발생의 기원을 밝혀냈고 백신의 발견 등으로 과학사에서는 위대한 미생물학자로 알려진 파스퇴르와 유산균의 정체를 증명하였고 노벨상을 수상한 이력도 있는 메치니코프가 우리나라에서는 유유, 요구르트 제품 이름으로  알려져 있는 상황만 봐도 후손들의 심정은 이해가 간다.   

아무 것도 모르는 순진무구한 아이들이 어른들의 손에 항상 쥐어져 있는 복권 속의 도스또예프스끼를 보게 된다면 복권을 장식하고 있는 그저 그런 수염 난 아저씨로 생각할지도 모를 일이다.  러시아의 위대한 대문호에서 한순간에 ' 복권 아저씨 ' 로 전락되는 것이다.  

 

 

  ' 도박꾼 ' vs ' 대문호 ' : 도스또예프스끼에 대한 양면적인 평가 

그러나 후손들이 아무리 복권 회사에 소송을 걸어 승소를 한다하더라도 도박으로 인해 퇴색해버린 대문호로서의 명예를 다시 회복하기에는 불가능한 일로 보인다.  ' 대문호 ' 라는 명예는 계속 유지될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해서 러시아 자국 내의 소송 승소 하나만으로 대중들의 머리 속에 인식된 ' 도박꾼 ' 이라는 불명예를 완전히 지울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국내에 한 때 인기 연예인의 도박 사건 때문에 수많은 여론들이 도박의 심각성에 대해 거론되었을 때에도 항상 먼저 회자되는 인물이 바로 도스또예프스끼다.  도박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병적 심리 상태를 가진 도박 중독자를 빗대어 표현할 때도 제일 먼저 도스또예프스끼가 등장한다. 그만큼 도스또예프스끼는 ' 도박 중독의 심각성 ' 의 대명사가 되었다는 것이다.       

만약에 도스또예프스끼가 대중의 인기를 한 몸에 받는 소설가로 알려지면서 지금까지도 살고 있었더라면 그의 도박 스캔들은 여론과 대중의 눈을 쉽사리 피해 갈 수 있었을까?   그 역시 ' 소설가 ' 라는 사회적 공인으로서 대중들의 지탄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며 추악한 스캔들은 소설 판매 부수량에 악영향을 주게 된다.  어쩌면 실제보다 더 궁핍한 삶을 살았을지도 모른다.  ' 글은 무척 잘 쓰는데 인간성은 글러먹었고 도박에 미쳤대. ' 라고 대중들은 그를 손가락질하며 수군거렸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도스또예프스끼는 이미 수 백년 전에 살았던 사람이라서 오늘날에는 ' 도박꾼 ' 혹은 ' 도박 중독자 ' 라고만 하는 것도 다행인 것이다.  지금도 우리는 ' 러시아 도박꾼 ' 의 소설을 읽고 있으며 그가 쓴 소설들을 불후의 고전으로 추앙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이상하지 않은가?  사회적으로 매장당할 수 있을 정도로 심각한 도박 중독에 빠졌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도 전세계의 독자들의 심장을 파고드게 만드는 그의 장엄한 문학은 다 무엇이란 말인가.   단어와 문장을 통해 하나의 예술 작품을 만들어내는 소설가의 본질과 그가 탄생시킨 문학은 이토록 다른 것일까?   어떤 이들은 ' 도박꾼 ' 이 쓴 소설 - 특히 <노름꾼> - 을 굳이 ' 고전 ' 이라고 부르면서 읽을 필요가 있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 도박 중독자 ' 도스또예프스끼를 위한 E.H. 카의 실증적 변명    

 

 


E.H. 카 (1892~1982)
 

 

그러나 영국의 역사학자 E.H. 카는 자칫 속물적으로 비춰질 수도 있는 도스또예프스끼의 도박 중독을 자신의 처녀작인 <도스또예프스끼 평전>을 통해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고 있다.   E.H. 카는 도스또예프스끼가 쓴 소설뿐만 아니라 그가 쓴 편지들, 일기 그리고 그의 아내 안나 그리고리예브나가 쓴 회상록 등 다양한 문헌 자료를 통해서 작가의 도박 증세를 보다 입체적이면서도 실증적으로 분석하였다. 

E.H. 카는 도스또예프스끼가 이토록 도박의 늪에서 벗어날 수 없었떤 이유를 단순히 도박을 통해서 얻게 되는 경제적 이익만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  태어날 때부터 비롯된 순간적으로 나오게 되는 비정상적인 흥분 그리고 보통 사람들과는 다르게 자기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강렬한 열정의 기질이 자기 자신을 극단적인 룰렛 중독으로 몰아넣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내 신경은 산란하고 한자리에 계속 앉아 있었지만 피곤하다오.  그러나 동시에 원기는 왕성하오.  나는 초조하고 흥분한 상태요.  그리고 내 성질에 이것은 때대로 필요하다오.  

- 아내에게 보낸 편지 중 일부, E.H. 카 <도스또예프스끼 평전> p 197 재인용 -

  

도스또예프스끼는 자신만의 방법을 통해서 언젠가는 룰렛에서 이길 수 있다는 자기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하루하루 돈을 허무하게 잃어감에도 불구하고 그는 패배의 절망 속에서도 승리라는 선물을 선사해 줄 승리의 여신이 자신에게 손짓할 것이라고 생각, 아니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표도르가 자신의 방법에 따르면 룰렛에서 이길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한 것은 완벽하게 정확한 것이었고 완전한 승리를 얻어 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냉혈적인 영국인이나 독일인이 그렇게 한다는 조건에서이지 나의 남편처럼 신경질적이고 쉽게 포기하며 모든 것을 극단으로 밀고 가는 사람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것이다.  

- 안나 그리고리예브나 <회상록> 중에서, E.H. 카 <도스또예프스끼 평전> p 195 재인용 - 

 

아내의 표현대로 순전히 ' 운 ' 으로 승패가 결정되는 게임의 진리를 충동적인 성격이 다분히 강한 도스또예프스끼에게는 룰렛은 사실상 적성이 맞지 않았다.   그가 룰렛에 집착한 원인을 오늘날 심리적인 측면에서 보게 된다면 ' 도박자의 오류 ' 에 빠진 것과 유사하다.  ' 도박자의 오류 ' 란  실패를 거듭할수록 드디어 성공할 때가 왔다고 확신하는 도박 중독자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게 되는 이상심리를 뜻한다. 슬롯머신을 계속 당기면서 이번에야말로 잭팟이 터질 때라고 지나친 기대심리를 갖는 것이다.   

그러나 E.H. 카는 도스또예프스끼의 도박 중독을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냉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도스또예프스끼의 소설 <노름꾼>에는 돈을 잃든 말든 도박 자체를 즐기는 사람을 경멸하는 인물이 등장하는데 소설을 읽는 독자들 - 특히 도스또예프스끼가 지나치게 도박 중독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 에게는 작가 자신의 도박벽 증세를 스스로 자기비판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카는 단순히 도스또예프스끼를 바라보는 단편적인 진실에 불과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도스또예프스끼의 도박 중독은 단순히 돈을 얼마 많이 따느냐에 따른 일반적인 도박 중독자의 증세라고는 볼 수 없다. E.H. 카의 표현대로 도스또예프스끼에게 룰렛은 ' 깊은 도덕적 타락에 빠지고 싶은 욕망의 추구 ' 였던 것이다.  

 

 

 

  여전히 ' 도스또예프스끼 ' 가 지독한 도박 중독자라고 생각하는 당신에게 ,,, 

객관적이고 치밀한 자료 분석으로 일가견이 있는 E.H. 카가 대문호의 일대기를 균형 있게 조명했음에도 도스또예프스끼의 도박 증세에 대한 카의 온화한 관점에 대해서 불편함을 느낀 독자도 있을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80년 전, (<도스또예프스끼 평전>은 1931년에 정식으로 출판되었다) 대문호의 도박벽을 바라본 카의 시선은 도박의 늪에 헤어나지 못하는 도박 중독자를 사회악으로 규정되는 일탈의 문제로 바라보는 오늘날의 시선과 불일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E.H. 카는 자신의 조국에서 태어난 사람도 아닌, 그것도 러시아의 소설가인 도스또예프스끼라는 한 사람의 일생을 조명하기 위해서 최대한 객관적으로 설명하려고 하였다.  오늘날에는 '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 ' 라는 문장이 자주 인용되는 <역사란 무엇인가>가 그의 대표작으로 알려져 있지만 무엇보다도 카가 객관적이면서도 균형적인 냉철한 시각으로 역사를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을 본격적으로 습득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자신의 처녀작인 <도스또예프스끼 평전>이 있었기에 가능하였다.  그의 도스또예프스끼 연구는 훗날 러시아 혁명과 소련의 소비에트 사회를 객관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엄정성과 객관성이 강조되는 그의 역사학에도 단점은 있다. 역사의 진보가 있다고 판단되면 지도자의 악행이나 인권 유린을 눈감아주는 맹점이 있다는 것이다. 도스또예프스끼의 도박 증세를 평범하지 않는 성격에서 기인한 자신만의 욕망 추구라는 결론을 내린 카의 분석은 옳다 나쁘다는 식의 도덕적 판단의 배제에 따른 결과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카가 도박 중독자인 대문호를 절대적으로 옹호하기 위해서 평전을 쓴 것이 아니며 또 우리는 이미 수백 년에 살다가 죽은 대문호를 단순히 도박 중독자라고 해서 굳이 그의 명성을 흠을 낼 필요도 없다.   도스또예프스끼 이외에도 문학가, 미술가라고 가리키는 수많은 예술가들도 평범한 사람들과는 다른 많은 일탈행위들이 있었다.   

이탈리아의 화가 카라바조는 빛과 그림자의 대비를 이용한 아름다운 그림과는 반대로 성격은 그야말로 통제불능이었다. 그는 항상 시비 걸기를 좋아했으며 결국에는 싸움 끝에 화를 이기지 못해 상대방을 살해한 적이 있는 전과자이기도 하다.   예술가의 행동에 대해서 선과 악의 구별이라는 기준을 내릴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해서 예술가가 만들어낸 예술을 가지고 옳다 나쁘다고 구별하는 것은 무의미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 도박꾼 ' 도스또예프스끼를 용서해야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우여곡절 끝에 도박 중독에서 스스로 벗어났다는 것이다. 그 후로 본격적으로 위대한 작품의 창작을 위한 불꽃을 피울 수 있었다.  오늘날에는 도박 중독을 치료하는데 전문의가 필요하는 마당에 도스또예프스끼는 아내의 내조 덕분에 도박의 늪에서 빠져나왔다.  그야말로 인간 승리라고 볼 수 있다.  

무엇보다도 도스또예프스끼는 도박 중독에서 벗어난 것 그 이상으로 인간 승리를 맛보게 되었다. 그것은 세상을 떠난지 1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세계적인 대문호로 그의 이름이 여전히 빛나고 있다는 것이다.   생전에 문단으로부터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했지만 도스또예프스끼는 언젠가는 뿌쉬낀과 맞먹을 대작가가 될 것이라는 자부심은 끝까지 버리지 않았으며 기나긴 시베리아 유형 생활과 지독한 룰렛 중독으로 인해 몸과 정신이 피폐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창작 활동은 멈추지 않았다.     

도스또예프스끼는 수백번이 넘는 도박장 인에서의 룰렛 게임을 수차례 패배한 인생의 낙오자였지만 소설 창작이라는 자신의 인생 전체를 올인(all-in)한 인생의 룰렛 게임에서는 끝끝내 승리할 수 있었다.   

  

 

* 사진 출처 및 인용 관련기사   

[‘ 도스토예프스키 로또복권 ’…후손들 발끈] 동아일보, 2005년 2월 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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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잘라 2011-03-27 2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yrus님 서재에 오면 뭔가 늘 새로운 사실을 하나씩 알게 되네요. (제가 워낙 무식해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cyrus님이 그만큼 남들과 다른 무엇으로 글을 쓰시려고 신경쓰신다는 뜻도 되겠지요? 감사드려요. ^ ^)

도스또예프스끼, 궁극적으로는 글쟁이네요. 도박에 빠진 도스또예프스끼는 안보이고(저는 그의 아내가 아니니까요.) '노름꾼'이라는 소설을 써낸 작가만 보입니다. '위대한' 이라는 수식어는 도스또예프스끼의 아내에게 붙이고 싶네요. ^ ^

cyrus 2011-03-28 08:02   좋아요 0 | URL
아니에요. 저도 포핀스님 서재에 가면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는데요.
특히 실용 분야에 대한 책의 서평이나 글은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그러고보니 천덕꾸러기 남편을 죽을 때까지 내조한 안나라는 아내도
참으로 대단한거 같아요, 요즘 같으면 그냥 이혼도장 쾅 찍을텐데 말이죠 ^^;;

반딧불이 2011-03-28 0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박에 주목해서 읽으셨군요. 도스토예프스키 복권이 있다는걸 처음 알았어요. 새로운 정보 고맙습니다.

cyrus 2011-03-28 08:03   좋아요 0 | URL
평전을 읽기 전에는 도스또예프스끼라고 하면 항상 도박이 떠올려서
도박 중독에 대한 내용에 대해서 흥미롭게 읽었어요.

마녀고양이 2011-03-28 1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굉장히 흥미롭네요.
도스또예프스키가 도박벽이 있었다니, 아하......
하기사 그런 글을 써내는 사람이라면, 얼마나 예민했겠어요. 그리고
풍족함에서 천재성이 나오기는 힘들겠죠. 도박이란 중독이고, 중독이란 결핍이고.

화가든, 작가든, 다른 무엇이든 천재는 참 힘들었겠어요.
아니.... 인간은 다 힘든걸까요?

사이러스님, 요즘 학교에서 무지하게 바쁘시담서요? 건강 챙기시고~ ^^

cyrus 2011-03-29 00:44   좋아요 0 | URL
ㅎㅎ ' 무지하게 ' 정도는 아니구요,, 중간고사도 이제 한 달 남짓
남아서 거의 공부하는데 시간을 쓰는거 같아요,, 물론 중간에
책도 읽게 되지만요. 마고님도 건강 조심하시구요,, 열심히 하시는만큼
학업에도 좋은 결과 있으시길 바라요 ^^

비로그인 2011-03-28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근 [거장처럼 써라] 에서 도스토예프스키를 다시 보게 되었는데, 이렇게 또 다른 방식으로 그를 보게 되네요.

ㅎㅎ.. 여전히 좀 시간이 들 것 같은, 이런 페이퍼를 쓰시는 걸 보면 아직 연애는 안하고 있으신 것 같네요.

cyrus 2011-03-29 00:47   좋아요 0 | URL
<거장처럼 써라>에서 바라보는 도스또예프스끼가 어떤 내용일지
궁금한데요,, 요새 갑자기 도스또예프스끼와 관련된 책이 나오는거 같아요.

요즘은 학업에 집중하고 있어요,, 연애는 아직,, 아무래도 연애는
저의 적성과는 맞지 않는거 같아요,,^^;;

굿바이 2011-03-29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잘 읽었습니다. 자신의 얼굴이 나오는 복권도 있고 도스또예프스끼는 참으로 복이 많은 분이십니다. 평전을 읽으면서도 느낀 점이지만, 도스또예프스키가 강조한 인간의 자유의지만큼은 높이 평가해야 할 것 같습니다. 물론, 도박장에서 부인에게 돈을 보내달라고 편지를 쓰는 작가의 모습은 뭐랄까 자유의지를 스스로 반납한 것 같지만 말입니다 :)

cyrus 2011-03-29 14:16   좋아요 0 | URL
맞아요. 도박 중독에서 벗어나서 작품 창작에 몰입한다는건 정말
대단한거 같습니다. ^^

꽃도둑 2011-03-29 1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포커스를 확실히 맞추고 쓰신 좋은 글입니다. 카는 도스토예프스키의 도박중독에 대해 좀 유연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 건 사실인 거 같아요. 저는 카가 그 도박증에 대해 일견 연민을 갖고 있지 않나 할 생각이 들 정도인데요....생활고를 탈피하고자 시작한 도박이었잖아요. 처음엔 그랬지요...하지만 중독성이 강한 도박에서 그는 헤어날 줄을 몰랐지요...
어쨌든 그의 인생은 비난과 찬탄과 연민을 한 몸에 받는 작가임에는 틀림없어 보입니다.

cyrus 2011-03-30 13:31   좋아요 0 | URL
재미있는 점은 카 역시 도스또예프쓰끼 못지 않게 인생이 순탄치 않았답니다.
카 역시 결혼과 이혼을 반복해서 결혼을 세 번이나 했다고 하네요.
어쩌면 카는 위인에 대해서 조사하면서 자신처럼 순탄치 못한 위인에게 인생의 연민을 느끼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맥거핀 2011-03-29 2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한편으로는 도스또예프스끼는 자신의 도박벽의 양상과 원인을 누구보다도 잘 분석하고 있었으니까요. 그것을 냉철하게 분석하고 묘사하는 자신과 그것으로 달려가는 자신으로 분열되어 있던 것일까요. 그래서 한편으로는 <노름꾼>과 같은 소설이 나왔을지도 모르지요.
자신이 왜 도박하는지 전혀 알지 못하는 많은 도박꾼보다 나은 것인가요, 아니면 더 불행한 것인가요. 자신의 치부(?)를 이야기하는 <노름꾼>과 같은 소설을 쓰는 그의 심정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리뷰를 읽고나니 여러 생각이 드네요.^^;

cyrus 2011-03-30 13:34   좋아요 0 | URL
평전을 읽을 때 <노름꾼>이랑 같이 읽어보면 도박 중독에 대해서
더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을거 같아요, 저는 아직 이 소설을
읽지 못했거든요,, ^^;;

제 생각이지만 자신이 왜 도박하는지
알지 못하는 상태에 빠져 도박에 집착하는 사람보다는 덜 불행한거 같아요.
빠져나가기 힘들다는 도박 중독에서 벗어났고 그 이후로 유명한 작품들이
탄생하는 걸 봐서는요,, 거기에다가 자신의 부끄러운 체험을
소설을 만들어서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것을 보면 자신의 이름을 드높이는데
나름 성공적이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