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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자본 발전사전 - 자본주의의 세계화 흐름을 뒤집는 19가지 개념
볼프강 작스 외 지음, 이희재 옮김 / 아카이브 / 2010년 12월
평점 :
절판
어린 왕이 만난 두 명의 백성
아일랜드의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의 단편소설 <어린 왕>을 보게 되면 화려한 세상의 이면 뒤에 숨겨진 비참한 현실을 깨닫게 되는 어린 왕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있다. 국가 안에서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권력자로 상징되는 존재가 바로 ' 왕 ' 이지만 오스카 와일드의 소설 속에 등장하고 있는 이 어린 왕은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는 왕이라는 인식과 상반되고 있다.
어린 왕은 이상한 꿈들을 꾸게 되는데 그 증 첫번째 꿈에서 초라한 환경 속에서 일하고 있는 직공을 만나게 된다. 어린 왕은 직공에게 말을 걸게 되는데 직공은 자신이 처한 불우한 상황을 탄식조로 늘어 놓기 시작한다.
" 전쟁터에서는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노예로 삼고, 전쟁이 없는 곳에서는 부유한 자가 가난한 자를 노예로 만들지. 우리는 먹고살기 위해서 일을 해야만 하오. 부자들은 우리에게 굶어 죽지 않을 정도로만 돈을 주지. 우리는 하루 종일 그들을 위해 일하고, 그들은 금고에 금을 쌓아 올리고 있소. [.....]
포도를 밟아 으깨는 것은 우리인데 정작 그 즙을 포도주로 마시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고, 옥수수를 심고 거두는 것은 우리인데 정작 우리 식탁은 텅 비어 있소.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쇠사슬에 묶여 있다오. 사람들은 우리를 자유롭다 하지만 우리는 노예나 다름없소. "
- 오스카 와일드 [어린 왕] 중에서, p 108, <별에서 온 아이들>, 펭귄클래식코리아 -
꿈 속에서 만난 직공의 말을 들은 왕은 자신이 지금까지 꿨던 꿈 속의 내용들이 자신이 다스리는 나라에 사는 노동자들의 비참한 현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기이한 내용의 꿈을 꾸고 나서부터 왕은 파격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
자신의 몸에 두루고 있는 화려한 의상을 벗어 던지고 과거에 왕이 되기 전에 염소지기 시절에 입었던 남루한 옷을 입기 시작하였으며 자신의 머리 위에 씌어 있던 황금 왕관 대신에 들장미가지로 만든 왕관을 씌웠던 것이다. 가난한 백성들의 말 못하는 고통을 공감하기 위한 과감한 시도였다.
이러한 왕의 파격적인 복장을 본 신하와 귀족들은 처음에는 자신이 섬기는 왕인줄 몰랐거나 혹은 일부는 왕의 행동에 대해서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다. 거지나 다름없는 서민의 옷에다가 장미가지 왕관을 씌우고 있는 왕의 모습에 몇 몇 신화들은 수치감을 느끼기도 한다. 국가의 권력을 상징했던 왕이 돌연 가난한 거지 행세를 하는 모습에 못마땅한 것이다. 그러나 신화들의 곱지 않은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어린 왕은 의상은 변했어도 자신이야말로 이 나라를 다스리는 위대한 왕이라는 위엄이 어린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러자 왕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었던 수많은 군중 속의 한 남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 전하, 전하께서는 가난한 자들이 부유한 자들의 호사스러움 덕에 살 수 있다는 것을 정녕 모르시옵니까? 전하의 허영 때문에 우리가 먹고 살 수 있으며, 전하의 부도덕함 때문에 우리가 빵을 얻을 수 있는 것이옵니다. 가혹한 주인에게 봉사하는 것도 힘들지만, 봉사할 주인이 없는 것은 훨씬 더 힘든 일이옵니다. "
- 오스카 와일드 [어린 왕] 중에서, p 118, <별에서 온 아이>, 펭귄클래식코리아 -
남자가 어린 왕에게 한 말을 읽어보면 알 수 있듯이 백성들에게 어린 왕이라는 존재는 강력한 힘을을 가진 권력자라는 의미를 넘어서 화려한 부(副)의 상징이다. 부유한 자들 덕분에 가난한 자신들의 삶을 지탱할 수 있는 유일한 버팀목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반대로는 자신들이 가난한 삶을 살고 있는 이유가 ' 강한 자 ' 들의 존재 때문이라는 원망을 가지고 있는 동시에 자신들과 같은 ' 약한 자 ' 들은 그들을 위해서 죽을 때까지 노예로 살아가야 한다는 정신적 무력감을 가지고 있는 부유한 자들에 대한 모순적인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부유한 자를 향한 가난한 자들의 이중적인 시선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올리버 트위스트> (2005년 작)
오스카 와일드는 어린 왕이 다스리고 있는 나라의 백성들의 모습을 통해서 영국 전역에서 불어닥쳤던 산업 혁명의 여파가 여전히 감돌고 있었던 19세기 말 빅토리아 시대의 사회상을 풍자하고 있다.
기계의 등장으로 공업화 사회로 이행되면서 자본의 위력이 본격적으로 발현되기 시작하였다. 자본을 어느 정도 소유하느냐에 따라서 부유한 자(부르주아)와 그렇지 못한 자(프롤레타리아)로 계급이라는 경계선으로 나눠지게 되었으며 이들 간의 대립과 격차는 날로 심해져만 갔다. 특히 프롤레타리아로 대표되는 노동자들은 궁핍한 환경 속에서 불만족스러운 처우를 받으면서까지 일을 해야만했으며 그렇게 일을 해도 빈곤의 삶을 벗어나지 못했다. 하루 세 끼를 먹을 수 있을 정도의 안락한 삶을 누리는 것이 가난한 서민들이 바라는 꿈이였지만 자신들 앞에서 떵떵거리며 다니는 부유한 자들의 삶을 내심 동경하고 있었다.
19세기 중반 영국에서 대중적인 인가를 한 몸에 받았던 찰스 디킨스의 <올리버 트위스트>에 나오는 동명 주인공처럼 서민들은 선량한 부자가 내민 도움의 손길을 은근히 바랬을지도 모른다. (가난한 사람들이 생각하는 신데델라가 되려는 꿈은 실제 영국 사회에서는 절대로 이루어지기에는 힘들었지만) 그리고 와일드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군중 속의 남자처럼 부유한 자들이 세상을 지배하는 힘을 무시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오스카 와일드가 빅토리아 시대 사회상에서 볼 수 있는 양면성을 포착했다는 점에서 사회의 이면을 날카롭게 볼 줄 아는 남다른 혜안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오히려 오스카 와일드의 단편소설을 읽으면서 독자가 느끼게 되는 더 놀라운 사실은 와일드가 바라 본 영국 사회의 어두운 이면이 수백년이 지난 지금도 전 세계적으로 볼 수 있는 흔한 현상이며 고질적인 문제라는 점이다.
가난한 삶을 살고 있는 이들은 부유한 자들끼리 누리는 부당한 삶에 대해서 불만을 토로하면서도 나름 부유한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기 위해서 명품을 고집하며 언젠가 자신도 올리버 트위스트처럼 될 수 있다는 헛된 꿈 때문에 가능성 없는 희망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부유한 상류층들이 보여주는 사회적 능력을 쉽게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강대국이 되는 방법
자본주의의 꽃이 만발했던 유럽의 산업혁명 시기에 부르주아 기득권 지배층들은 자신들의 자본적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산업 육성의 발전을 강조할 수 밖에 없었다. 계층 간의 극심한 빈부 격차 같은 자본주의의 병폐가 드러나기 시작하자 부르주아 지배층들은 산업 발전이 가져다주는 장밋빛 희망을 내세우면서 자신들을 향한 프롤레타리아의 불만을 쉽게 잠재우려고 했다. 지금보다 더 경제가 좋아지며 빈곤층들은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식으로. 그리고 산업 발전이야말로 곧 강대국이라는 단순화된 도식도 등장하게 된 것도 이 무렵이었다.
강대국으로 갈 수 있는 대열에 합류하기 위해서 제국 열강들은 이 때부터 본격적으로 식민지 획득을 통해서 자원의 수탈이나 착취를 노골적으로 행하였다. 이들에게는 어떤 온갖 수단을 동원해서든지간에 ' 발전과 개발 ' 만이 더 나은 미래를 위한 길이었던 것이다. 나라를 지탱할 수 있는 부도 축적했겠다 식민지 개발을 통해서 얻은 부를 통해서 ' 강한 나라 ' 로서의 면모를 보이기 시작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 불어닥친 대공황으로 인해 주춤했었지만 미국과 유럽 국가들은 자본주의의 황금기를 누리게 되었으며 강대국으로써 보이지 않는 힘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특히 미국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 덕분에 경제적인 호황을 누리는 동시에 세계 패권의 지휘봉마저 잡게 되었다.
식민지주의가 빛바랜 1949년 1월 20일에도 미국의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이 날부터 본격적으로 발전의 시대로 들어섰음을 선포하기에 이르게 되며 그의 선포문에는 미국의 세계적 위상을 전 세계적으로 알리는 동시에 자신들 스스로 강대국이 되었다는마냥 자만심을 보여주었다.
우리는 우리가 누리는 과학 진보와 산업 발달의 수혜가 저발전 지역의 향상과 성장에 기여할 수 있도록 새롭고 과감한 사업에 착수해야 합니다. 해외에서 이익을 수탈하는 낡은 제국주의는 우리 계획 안에서 설 자리가 없습니다. 우리가 구상하는 것은 공정한 민주적 거래에 토대를 둔 발전 사업입니다.
- <반자본 발전사전> p 36 -
오늘날에는 중국의 등장으로 예전과 같은 영향력을 누리고 있지 못하지만 신자유주의가 만들어낸 세계화의 유행 속에서도 세계를 향한 미국의 패권은 여전하다. 거기에다가 중국은 세계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패권을 가진 나라로 성장하게 되었고 그 뒤를 위어 인도, 일본 등의 약진도 두드러지고 있는 추세이다. 중국, 인도, 일본 등과 같은 나라들도 세계화로 이어지는 경제 발전과 개발을 강조하고 있으며 작년 G20 정상회의 개최국인 한국도 강대국으로 가는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발전 비관론자들이 보는 ' 발전과 개발 '
그러나 발전 비관론자들은 이러한 세계적인 추세가 더 좋은 세상으로 한 걸음 더 도약하기보다는 오히려 더 세계의 빈곤만 더 부추긴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수백년동안 지속된 ' 공업 문명 = 강대국 ' 이라는 자본주의적 도식 때문에다 다원적이었던 세계의 가치관이 점점 획일화되어 가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개발 도상국들은 자신의 수준에 걸맞기 않게 강대국이 만들어낸 자본주의적 도식을 억지로 도입하다보니 도리어 빈곤 문제를 가속화하게 만든 역효과만 불러 일으켰으며 개발 도상국과 선진국 간의 경제적 수준의 격차는 더 이상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 발전과 개발 ' 을 부르짖었던 강대국식 자본주의의 탄생 배경과 그 문제점을 총 19명의 발전 비관론자들이 모여 총 19개의 항목으로 분석하고 있다. 발전 비관론자들의 주장과 분석을 엮은 볼프강 작스에서부터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사회의 제도화를 비판했던 故 이반 일리히, 세계적인 환경 운동가 반다나 시바까지 <반 자본 발전사전> 은 세계적으로 명망 있는 ' 안티(Anti) ' 발전론자들의 향연인 것이다.
그러나 일상 속에서 발전과 개발을 긍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는 독자들에게는 낱낱이 자본주의의 허물을 벗겨내고 있는 19명의 석학들의 날카로운 주장이 썩 달갑지 않게 여길지도 모르겠다.
글이 시작되기 전에 명시한 일러두기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읽기 전에 일러두기를 먼저 봐야한다. 19명의 석학들이 말하고 있는 ' 개발 ' 은 긍정적 의미가 퇴색된 것이다. 자연으로 대표되는 천연자원을 이용함으로써 인간의 생활을 유용하게 만든다는 건전한 의미가 아니라는 것이다.
' 발전 ' 이라 쓰고 ' 빈곤 ' 이라 부른다
<반 자본 발전사전>이라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 사전 ' 답게 적지 않은 분량이며 자본주의라는 집합의 원소들로 구성된 개념들을 반 자본주의적 시각으로 분석하고 있다. 발전에서부터 기술까지 총 19가지의 개념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처음부터 순차적으로 읽어도 좋다.
평소에 가보지 않은 길을 가게 되면 그동안 보지 못했던 새롭고 아름다운 풍경의 장면을 마주치게 되는 것처럼 <반자본 발전사전>도 평소와 다른 독서를 하게 되면 발전과 개발을 강조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이면을 의외로 발견할 수 있다.
볼프강 작스가 쓴 [서문]은 발전 비관론자들이 말하고 있는 사상적 맥락을 간략히 이해할 수 있는 독서의 준비운동이다. 역시 볼프강 작스가 쓴 제1장 [발전] 챕터는 우리가 생활하면서 자주 사용하고 듣게 되는 단어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는 제일 중요한 핵심내용이다.
나 같은 경우에는 1장부터 시작해서 제4장 [도움], 11장 [빈곤], 15장 [과학], 2장 [환경] 순으로 읽어나갔는데 서로 다른 주제를 다루고 있는만큼 서로 관련이 없어보이는 발전 비관론자들의 주장들이 결국에는 하나의 결론으로 도출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트루먼의 1949년 선포 이후로 ' 발전 ' 이라는 기준으로 강대국, 개발 도상국으로 본격적으로 구분짓기 시작하였으며 (1장 ' 발전 ')
미국과 같은 강대국은 개발 도상국의 발전을 위한 의도의 개발 원조라는 이름 아래에 본격적으로 자신의 권력 영역을 확장하기 시작한다. 개발 도상국은 강대국이 만들어낸 진리를 철석같이 받아들이면서 자신들의 경제적 자립을 위한 ' 도움 ' 으로 이해하게 된다. (4장 ' 도움 ' )
그러나 강대국이 제시한 도움에 지나치게 맹신하는 개발 도상국은 자신이 처한 빈곤의 상황에 대해서 무력감 또는 상대적 박탈감에 빠지기 쉬우며 자신의 처한 현실을 바라보는 타자의 시선에 대해서 민감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부유한 나라라는 기준에 대해서 항상 강대국의 시선과 그들이 만들어낸 기준을 잣대로 바라보는 빈곤에 대환 획일화된 관점을 가지게 된다. (11장 ' 빈곤 ')
그리고 강대국은 과학이야말로 산업 위주의 발전을 더욱 가속화시키고 더 좋은 삶을 위한 풍요를 누릴 수 있는 중요한 요소로 바라보고 있으며 (15장 ' 과학 ' )
자본주의가 만들어 낸 새로운 문제점으로 등장한 환경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과학으로 탄생된 것이 생태학이다. 생태학을 통해서 ' 지속 가능한 발전 ' 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포장하여 빈곤의 불평등과 극심한 환경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강조하고 있다. (2장 ' 환경 ')
이런 순서의 독서를 통해서 자본주의에서 강조하고 있는 발전의 장점은 강대국이 만들어낸 허상에 불과한 용어였으며 새로운 개념들과의 결합을 통해서 새로운 이름으로 포장되고 있는 ' 발전 ' 의 위력은 지금도 맹위를 떨치고 있으며 그 힘은 세계적인 빈곤 문제를 더욱 더 심화시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11년판 MB 정부의 자본 발전사전
이명박 대통령의 2011년 신년연설 키워드 그래프 (출처: 연합뉴스)
올해 이명박 대통령 신년사에 관련된 재미있는 기사가 있다. 이명박 대통령을 포함해서 역대 대통령의 신년사를 분석하여 키워드로 분류한 것인데 지금까지 대통령들이 국민들에게 강조했던 정치적 키워드를 한 눈에 알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키워드 분석 결과 이명박 대통령의 신년사에서 가장 강조되었던 말은 경제, 성장, 복지, 일자리 등이었다. 그 수많은 키워드 중에는 유독 경제, 성장이 눈에 띈다. 작년에 서울 G20 정상회의를 성공적으로 개최함으로써 기세등등한 것일까 ? 국운융성의 기회를 놓치지 말고, 선진국의 문턱을 단숨에 넘어가자는 대통령의 당찬 포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올해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 운영의 화두는 경제 성장인 것이다. 경제 성장과 관련해서 눈여겨 봐야할 키워드는 개발, 기업, FTA, 녹색이다. FTA는 굳이 말할 것도 없듯이 지금까지도 국정 운영에서의 뜨거운 감자로 지금도 논란의 열기가 여전하다. 그리고 개발(Development)이라는 단어는 경제 성장에서 절대로 땔래야 땔 수 없는 단어이다. 한국형 뉴딜 사업으로 표방하고 있는 4대강 사업이 MB 정부가 추진하려고 하는 대표적인 개발 정책이다.
만약에 볼프강 작스, 이반 일리히 등과 같은 세계의 저명한 발전 비관론자들이 MB 신년사 키워드 그래프를 보았다면 무슨 말을 했을지 궁금하다. 19명의 ' 안티(Anti) ' 발전론자들이 만들어 낸 <반자본 발전사전>을 빗대어 표현하자면 MB 정부가 강조하고 있는 올해 국정운영 키워드 그래프는 ' 자본 발전사전 ' 이라고 불러도 전혀 어색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구제역보다 무시무시한 자본주의의 돌림병
MB 정부의 신년사 키워드 그래프를 통해서 한국 역시 발전과 개발만을 강조하고 있는 자본주의의 흐름에 이미 관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국도 전 세계적으로 불고 있는 ' 발전 ' 자본주의의 환상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당시 영국의 지배를 받았던 인도가 앞으로 마주해야 할 현실에 대한 마하트마 간디(모한다스 간디) 의 경고는 발전 비관론자들의 공통적인 생각을 제대로 표현하고 있다.
작은 섬나라 하나(잉글랜드)의 경제 제국주의가 지금 세계에 족쇄를 채우고 있다. 인구가 3억인 나라가 하나같이 그런 경제 수탈에 나선다면 메뚜기 떼처럼 세계를 깡그리 벗겨먹을 것이다.
- <반자본 발전사전> 개정판 서문중에서, p 21 -
간디의 경고에서 말하고 있는 주요 단어들을 살짝 바꿔서 표현하자면 미국의 ' 발전 '자본주의가 지금 세계에 족쇄를 채우고 있으며 현재 13억이라는 육박한 인구 기록을 가진 중국까지 그런 경제의 대열에 나선다면 모든 국가들도 일제히 따라 나서게 되고 세계는 또 다른 불화와 사회적 질병들이 생겨날 것이다.
여기서 말하고 있는 ' 사회적 질병 ' 은 단순히 해결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 빈곤 문제만이 아닌 모든 나라가 ' 발전 ' 자본주의의 환상에 집단적으로 시달리는 것이다. '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면 다리가 찢어진다 ' 라는 속담이 있듯이 개발 도상국이 ' 발전 ' 자본주의의 환상에 지나치게 맹신하는 나머지 빈곤과 저성장 문제는 더 심화되는 동시에 자신들이 빈곤 국가라는 불명예스러운 자죄감에 빠지기 쉽다. 그들은 그런 자괴감 속에서도 언제나 강대국이 내세우는 ' 발전 ' 이라는 명목의 원조와 도움만이 자신들의 상황을 구제할 수 있는 실낱같은 희망은 여전히 버리지 안않는다. 그리고 그런 문제들은 여러 사람들에게 잇따라 퍼지는 돌림병처럼 제2, 제3의 개발 도상국으로 전염되어 악순환이 반복, 유지된다는 것이다.
특히 일본 통치 하의 식민지 지배와 세계 유일의 분단 국가라는 뼈아픈 역사의 상처가 치유되지 않았으며 초고속 경제 성장이 준 달콤한 맛에 들인 대한민국 같은 경우에는 여전히 환상의 돌림병의 증상이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다.
자본주의의 돌림병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이미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어 있으며 선진국들이 먼저 발 벗고 나서지 않는 이상 돌림병을 치유하기에는 불가능해 보인다. 그마나 돌림병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최선의 방법은 그동안 긍정적으로 여겨져왔던 자본주의의 또 다른 이면을 살펴보아야 하며 근본적인 이해를 통해서 강대국이 만들어낸 ' 발전 ' 에 대한 환상과 신화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