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의 변명 정암고전총서 플라톤 전집
플라톤 지음, 강철웅 옮김 / 아카넷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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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여러분, 저는 모르는 것이 많습니다. 지금 제 머릿속에 텅텅 비어 있는 상자들로 가득하답니다. 그 상자의 정체는 ‘무지()’이에요. 이 무지함에 무얼 채워 넣어야 할까요? 저는 책을 삽니다. 제가 책을 읽으면 눈동자는 바삐 움직여요. 무지함에 담을 만한 지식을 찾는 거죠. 그 순간 뇌도 분주해요. 눈동자를 통과한 지식을 무지함에 담을 수 있게 깎고, 자르고, 다듬어요.


책 한 권을 다 읽으면 비어 있는 무지함이 한 개도 남아 있지 않아요. 아무것도 없어서 새까맸던 무지함은 잘 정돈된 지식을 품은 똑똑함()’으로 변하거든요.똑똑함은 빛이 나요. 똑똑함이 많은 사람의 생각은 눈이 부실 정도로 밝아요. 그들이 주로 하는 일은 무지함이 많은 사람을 만나는 거예요.


똑똑한 사람이 타인을 만나면 제일 먼저 말을 걸어와요. 타인과 대화할 때 똑똑함의 빛으로 상대방의 말을 두드려 봅니다. 똑똑, 가벼운 말 속에 아무것도 없어요. 똑똑, 계속 두드리면 이상한 소리가 나요. 개가 짖는 소리가 아닌데도 사람들은 그 소리를 개소리라고 불러요. 개소리는 무지한 사람의 귀에 잘 들리지 않아요똑똑한 사람은 무지한 사람이 보이면 자신의 빛을 쏘아 대요. 국어사전은 이런 행위를 계몽(enlightenment)’이라고 알려주네요. 우리는 책을 많이 읽으면 똑똑해질 수 있다고 믿어요. 누구나 선망하는 똑똑한 빛은 책을 많이 읽은 기업가의 빛일 거예요. 그들의 빛은 재물(財物)이 되니까요.


, 여러분. 여러분에게 질문할게요. 똑똑한 빛의 강도가 세면 좋은 걸까요? 책을 많이 읽으면 우리의 똑똑한 빛은 영원히 화려할까요? 책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찬찬히 검토해 봅시다.


똑똑한 사람은 무지를 경멸해요. 계몽주의자는 무지로 어두운 세상을 원하지 않아요. 본인은 똑똑하다는 자신감은 계몽을 위해 쓰이는 빛의 강도를 높여줘요. 그런데 똑똑하다고 자부했던 사람들이 왜 어리석은 짓을 하는 것일까요? 앞서 제가 개소리하는 사람들은 본인의 말에서 이상한 소리를 듣지 못한다고 했어요. 본인의 무지함을 잘 모르는 거죠. 여러분, 똑똑함을 100개든 1,000개든 엄청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도 무지해요. 똑똑하다고 자신만만한 사람은 정작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 알지 못하거든요. 이를 심리학 용어로 더닝 크루거 효과(Dunning-Kruger effect)’라고 해요. 모른다는 사실을 모르면 자신이 알고 있는 것만 크게 부풀려서 상대방에게 보여 주려고 해요. 똑똑함의 빛이 과장되면 그 빛나던 상자는 오만함()’으로 변해요오만함을 가진 사람은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지 않아요. 오히려 오만한 빛으로 자신의 생각과 다른 타인을 공격하며 제압하려고 해요. 오만한 사람들이 많아지면 세상은 밝아지기는커녕 빛 좋은 개소리가 더 많아집니다. 겉은 화려해도 속은 칙칙한 빛이죠.


여러분, 저는 똑똑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책을 읽을 때도 항상 무지함 한두 개는 따로 챙겨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Socrates)의 머릿속에는 똑똑한 상자뿐만 아니라 무지한 상자도 여러 개 있었을 거예요. 소크라테스는 본인은 무지하다고 생각하면서 살아왔거든요. 그는 자신이 똑똑한지, 아니면 상대방이 똑똑한지 검토하기 위해 상대방에게 말을 걸었어요. 질문이 계속 쏟아져 나오는 소크라테스가 익숙하지 않은 아테네인들은 불만이 많았어요. 결국 멜레토스(Meletus)라는 사람이 소크라테스를 고발했습니다. 아테네 법정에 선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행동이 정당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면서 검토 없이 사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소크라테스의 변명38a, 101)’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저는 항상 책을 검토하듯이 읽어요. 한 개의 단어가 눈동자를 지나가다가 걸리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거든요. 이때 저는 생각해요. 책에 적힌 단어의 정의가 과연 사실일까? 아니면 내가 지금까지 단어의 정의를 잘못 알고 있었나? 제일 먼저 의심합니다. 책 읽기를 멈추고 단어를 검토해 봅니다. 단어의 정의를 뒷받침해 주는 타당한 근거나 단어의 정의를 다르게 보는 견해를 찾기 위해 책을 또 사고, 또 읽습니다. 여러 권의 책을 요리조리 보면서 검토하면 내가 무지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만약 검토 없이 책을 읽는 삶을 살았더라면 나의 무지함을 제대로 보지 못했을 거예요.

 

똑똑함에 보관된 싱싱한 지식은 시간이 지나면 시들어요. 삭은 지식은 버려야 해요. 똑똑함 속에 담긴 지식을 검토해야 해요. 그러려면 제일 먼저 내가 똑똑하다는 자신감을 덜어내야 해요. 똑똑함의 빛이 과하면 나의 무지함이 보이지 않아요. 그러면 더닝 크루거 효과와 같은 편견에 빠지게 돼요. 똑똑한 사람이 무조건 지혜로운 건 아니에요. 소크라테스는 무지한 자신이야말로 지혜롭다고 믿었어요. 만약에 자신이 방면되면 숨 쉬고 있고 할 수 있는 한 지혜를 사랑하는 일(29d, 74)’을 절대로 멈추지 않을 거라고 포부를 밝혔어요. 자신의 존재를 의심하지 않은 데카르트(Descartes)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Cōgitō ergo sum, 코기토 에르고 숨)’라고 말했어요. 소크라테스가 법정에서 발언할 수 있는 시간이 더 많았더라면 이렇게 말했을 겁니다. 나는 모릅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여러분. 내 삶을 검토하기 위해서 책을 많이 사고, 글 쓰는 일이 좋은 일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나를 잘 이해하지 못할 겁니다. 그래도 저는 제 일이 즐거워요. 그래요, 저는 내년에도 지혜를 사랑할 예정입니다.[주] 저는 모르는 것이 많거든요.





* 函(지닐 함): 옷이나 물건 따위를 넣을 수 있도록 네모지게 만든 통



[] 어제 12월 31일에 서평을 썼다서평 제목은 변윤제의 시 내일의 신년, 오늘의 베스트 마지막 문장 ‘그래요, 저는 내년에도 사랑스러울 예정입니다 패러디했다. 이 시가 실린 시집 제목은 저는 내년에도 사랑스러울 예정입니다(문학동네,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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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4-01-01 15: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지혜를 사랑하고.
즐겁기때문에 책을 읽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매번 저의 무지함 상자는 1000개가 넘습니다.
더 읽어야겠어요^^

cyrus 2024-01-05 07:41   좋아요 1 | URL
올해는 읽고 쓰는 일에 좀 더 시간을 투자해야겠어요. 작년에 책도 많이 읽고, 공연도 보고, 재미난 경험을 많이 했는데 글로 쓰지 못한 게 아쉬웠어요. 저는 무지함도 많고, ‘나태함’도 많아요 ㅎㅎㅎ

서니데이 2024-01-01 18: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cyrus님 오늘부터 2024년입니다.
새해에도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새해복많이받으세요.^^

cyrus 2024-01-05 07:41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페크pek0501 2024-01-01 18: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예전에 읽었던 책이라 반갑네요.
새해에도 건강과 건필, 기원합니다.

cyrus 2024-01-05 07:42   좋아요 1 | URL
페크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필하세요. ^^

은오 2024-01-01 2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이러스님의 읽기 너무 멋지고 존경스럽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단어의 정의를 의심하고 검토하고 또 읽고.... 이렇게 해야 사이러스님처럼 서평을 쓸 수 있는 거군요?! 🥹

cyrus 2024-01-05 07:46   좋아요 0 | URL
틀리더라도 책을 비판적으로 읽어보려고 해요.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일이지만, 해보면 재미있어요. 내가 몰랐거나 잘못 알고 있었던 사실을 알고, 책의 저자 또한 실수하고 착각할 수 있다는 것도 알 수 있거든요. ^^

새파랑 2024-01-02 0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올해는 좀 지혜로워 졌으면 ㅡㅡ 사이러스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지혜 사랑이 계속되길 바라겠습니다~!!

cyrus 2024-01-05 07:47   좋아요 1 | URL
새파랑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꼬마요정 2024-01-02 12: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멋있어요!! 저는 cyrus 님 글을 보며 제 무지를 깨닫습니다. 게을러서 무지함을 알지만 개선 못하는 저를 또 반성합니다. 존경해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cyrus 2024-01-05 07:48   좋아요 1 | URL
저도 게으른 편이라 무지함 다음으로 많은 게 ‘나태함’이에요 ㅎㅎㅎㅎ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얄라알라 2024-01-02 2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새로운 형식의 리뷰 멋져요! 완전 독창적이고 지성미 뿜뿜! 2024 리뷰 문화를 선도하실 듯한 이 예감!

cyrus 2024-01-05 07:49   좋아요 0 | URL
다양한 형식으로 글을 써보려고 해요. 철학과 과학 같은 독자들이 어려워하는 주제의 책을 좀 더 쉽고 재미있게 소개하기 위해서 고민하고 있답니다.. ^^;;

transient-guest 2024-01-03 02: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뭔가를 남기는 독서가 너무 어려워서 그냥 읽는 행위에서 즐거움을 찾는 것에서 만족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cyrus 2024-01-05 07:50   좋아요 1 | URL
t-guest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stella.K 2024-01-05 11: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귀엽고 야무지게 썼구만. ㅋ 정말 글을 자꾸 쓰다보면 단어에 집착이 생겨. 내가 지금 이 단어를 잘 쓰고 있는지 단어가 뜻하는 바를 정확히 알고 쓰는지. 하지만 난 너처럼 꼬리에 꼬리를 물고 책을 사지는 않지. 그럼 머리가 아파질 거 같아서. 그냥 무지함에 넣기로하는 거지 뭐. ㅋㅋ

cyrus 2024-01-08 06:39   좋아요 0 | URL
올해는 도서관에 책을 빌려 보기로 했어요. 해를 거듭할수록 도서 지출비가 늘어나고 있어서 이제는 줄일 필요가 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