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한국어문회에서 발간하는 <어문생활>이라는 곳에 박노자 교수의 글이 있어 옮겨온다. 한국어문회는 전국한자능력시험을 주관하고 한자교육을 강조하는 곳인 만큼 여기에 실린 박노자 교수의 글도 자연 한자교육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그러나 여타의 사람들과는 달리 박노자의 글은 언제나 설득력이 있다. 좋은 읽기 자료가 될 듯 싶다.

우선 원문 그대로를 옮기고, 읽기가 어려운 분들을 위해 아래 한자에 우리말 음을 달아 다시 옮겼다. 먼저 원문을 읽어보시고, 뒤에 우리말 음을 따라 다시 한 번 읽어보시면서 자신의 한자실력을 가늠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語文隨想

'斷絶(단절)의 世紀(세기)'를 넘으려면

                                         朴露子 오슬로대학교 인문학부 동유럽 및 동양학과 副敎授

  지금 나는 韓國 旅券을 가지고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敎授 生活을 하고 있지만 초 · 중 · 고등학교 敎育을 1970년대 말~1980년대에 蘇聯에서 받았다. 학교에서 國文學(러시아 문학) 수업을 들었을 때에 12~13세기로 추정되는 러시아 文學의 初期 作品부터 同時代 文學까지 몇 년에 걸쳐 배웠다. 러시아어의 原語民인 나에게 古代 敎會 言語의 흔적이 강했던 17세기 말까지의 文學 作品의 言語는 다소 어려웠지만, 대체로 18세기 중반 이후의 작품을 별도의 國譯 없이 그냥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예컨대 푸시킨(1799~1837)의 詩 같으면 文學的 言語의 標準으로 삼아 많이 외우기도 했다. 푸시킨의 言語가 약간 '옛날 투'라는 것을 感知할 수 있었지만 그 言語와의 이렇다 할 만한 '斷絶'을 느끼지 않았다.

  이 이야기를 왜 꺼내는가? 나와 같은 20세기 후반의 러시아 出身에게는 18세기 중반 이후의 러시아 文學 作品부터는 거의 '母語'의 범위에 포함돼 있다. 平均的 敎養을 갖춘 英語圈 出身에게는 셰익스피어(1564~1616) 作品의 原文 읽기는 별로 어렵지 않을 것이다. 스페인에서는 세르반테스(1547~1616)의 『돈키호테』를 原文으로 읽지 못하는 사람을 '敎養人'으로 보지 않을 것이다. 즉 유럽의 다수 近代 國民들은 飜譯이라는 매개 없이 근대 초기 내지 18~19세기 부르주아 문화 전성기의 古典들을 쉽게 접할 수 있으며, 또 敎育을 통해 접하게 돼 있기도 하다. 한국은 어떤가? 金萬重(1637~1692)은 셰익스피어나 세르반테스보다 약간 '後輩'지만, 영국, 스페인 학생들이 셰익스피어나 세르반테스의 原本들을 學習하듯이 韓國 學生에게는 『九雲夢』을 學習하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漢文本은 어림도 없을 것이고, 國文本도 현대어 國譯이나 최소한 아주 상세한 註釋을 붙이지 않고는 학생들에게 읽히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國譯이 없을 경우에 英語 狂風에 휩쓸린 요즘 세상에서는 어떤 학생들에게 國文本보다 차라리 'The Cloud Dream of the Nine' 題下의 게일 목사의 英譯이 더 편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가끔가다 韓國에 대해서 "대단히 民族主義的"이라고 이야기하지 않는가? 어떤 이들은 이를 肯定視하고 어떤 이들은 否定視하는데, 거의 다들 旣定 事實로 여긴다. 그런데 民族主義가 그렇게도 강하다는 이 나라에서 平均的 敎養人에게는 金萬重의 原本 읽기보다 셰익스피어의 原文 읽기가 훨씬 손쉬울 것이다. 金萬重이야 그렇다 치고 漢字가 많이 들어 있는 廉想涉(1897~1963)의 『萬歲前』(1924)의 原文도 상당수 大卒者들에게까지도 크게 부담스러울 것이다. 外勢 侵略이 계기가 된 부자연스러운 近代化 旅程, 삼국시대 이래의 公用語였던 漢文의 使用 廢棄와 조급한 民族主義的 '國文運動', 日本에서의 '支那 글 漢字 廢止 運動'을 본뜬 '純 한글主義'……, 國粹主義者들을 抑制하여 漢字를 살린 일본과 달리 南北韓은 극단적 주장을 따라 '純 한글'을 '民族語'로 정했다. 그러기에 近代에 접어들 때에 불가피하게 되는 현상인 '傳統文化와의 斷絶'은 韓國의 경우에 불필요할 만큼 극도로 심해져 金萬重은 우리에게 셰익스피어 以上의 '他者'가 됐다. 언어적 民族主義의 逆說이라 할까? 日本의 국수주의적 '國文主義'를 모방하여 "조선의 글로 쓰여진 것만은 조선 문학이다."라고 외친 李光洙, 한글만을 '조선 글'로 인정한 崔鉉培 등 渡日 留學生 출신의 漢字 廢棄論은, 결국 '民族'의 가장 중요한 遺産인 傳統文化와의 연결고리를 끊어 버리고 말았다.

  우리는 父母를 의식적으로 택해 태어나는 것은 아니다. 運命대로 이 세상으로 오게 된다. 우리 文化 遺産의 대부분이 동아시아 공동 언어였던 漢文으로 돼 있다는 것도, 우리가 쓰는 언어 자체는 漢字語 없이 존재할 수 없다는 것도 選擇 事項이 아닌 運命이다. 20세기에 접어들어 '民族主義者'가 된 우리가 그걸 싫어한다고 해서 달라질 일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가 "風塵에 얽매여 떨치고 못 갈지라도 江湖一夢을 꾼 지 오래더니 聖恩을 다 갚은 후에는 浩然長歸하리라."와 같은 名文에서 '風塵'과 '浩然長歸'가 뭔지 몰라 감상을 제대로 못한다면 그것은 우리의 문화적 貧困함을 의미할 뿐이다. 물론 國譯 사업은 절실히 필요하지만 傳統文化와의 斷絶 문제의 根本的 解決策이 될 수 없다. 위의 時調를 아무리 國譯을 잘해도 '江湖一夢'을 모르는 사람에게 어렵고 부담스러울 것이고, 『九雲夢』을 아무리 현대어로 잘 풀이해도 "鬼卒이 대문을 열자, 力士가 성진을 데리고 森羅殿에 들어가 염라대왕께 뵈니 대왕이 말하였다."와 같은 문장에서의 '鬼卒'이나 '森羅'는 漢文과 전통 사상에 대한 基礎 知識이 없는 사람에게는 보기가 거북스러울 것이다.

  根本的 解決策은 무엇인가? 언어적 民族主義와의 訣別, 그리고 漢文 교육의 필수화와 內實化 이외에는 없다. 한문을 학교에서 제대로 익힌 사람이라면 다 무조건 金萬重의 애독자가 될 일이 없으며 그럴 필요도 없다. 그러나 '漢文'이라는 이름의 자물쇠로 꽉 잠근 상태에 있는 古典 文化라는 보물상자를 열어 둘 만한 '열쇠'를 일단 萬人에게 平等하게 주는 것은 社會의 義務다.

<語文生活> 2007.9 통권 제118호 4~5쪽.

   
  金萬重은 우리에게 셰익스피어 以上의 '他者'가 됐다. 언어적 民族主義의 逆說이라 할까? 日本의 국수주의적 '國文主義'를 모방하여 "조선의 글로 쓰여진 것만은 조선 문학이다."라고 외친 李光洙, 한글만을 '조선 글'로 인정한 崔鉉培 등 渡日 留學生 출신의 漢字 廢棄論은, 결국 '民族'의 가장 중요한 遺産인 傳統文化와의 연결고리를 끊어 버리고 말았다.  
   



  지금 나는 韓國(한국) 旅券(여권)을 가지고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敎授(교수) 生活(생활)을 하고 있지만 초 · 중 · 고등학교 敎育(교육)을 1970년대 말~1980년대에 蘇聯(소련)에서 받았다. 학교에서 國文學(국문학; 러시아 문학) 수업을 들었을 때에 12~13세기로 추정되는 러시아 文學(문학)의 初期(초기) 作品(작품)부터 同時代(동시대) 文學(문학)까지 몇 년에 걸쳐 배웠다. 러시아어의 原語民(원어민)인 나에게 古代(고대) 敎會(사회) 言語(언어)의 흔적이 강했던 17세기 말까지의 文學(문학) 作品(작품)의 言語(언어)는 다소 어려웠지만, 대체로 18세기 중반 이후의 작품을 별도의 國譯(국역) 없이 그냥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예컨대 푸시킨(1799~1837)의 詩(시) 같으면 文學的(문학적) 言語(언어)의 標準(표준)으로 삼아 많이 외우기도 했다. 푸시킨의 言語(언어)가 약간 '옛날 투'라는 것을 感知(감지)할 수 있었지만 그 言語(언어)와의 이렇다 할 만한 '斷絶(단절)'을 느끼지 않았다.

  이 이야기를 왜 꺼내는가? 나와 같은 20세기 후반의 러시아 出身(출신)에게는 18세기 중반 이후의 러시아 文學(문학) 作品(작품)부터는 거의 '母語(모어)'의 범위에 포함돼 있다. 平均的(평균적) 敎養(교양)을 갖춘 英語圈(영어권) 出身(출신)에게는 셰익스피어(1564~1616) 作品(작품)의 原文(원문) 읽기는 별로 어렵지 않을 것이다. 스페인에서는 세르반테스(1547~1616)의 『돈키호테』를 原文(원문)으로 읽지 못하는 사람을 '敎養人(교양인)'으로 보지 않을 것이다. 즉 유럽의 다수 近代(근대) 國民(국민)들은 飜譯(번역)이라는 매개 없이 근대 초기 내지 18~19세기 부르주아 문화 전성기의 古典(고전)들을 쉽게 접할 수 있으며, 또 敎育(교육)을 통해 접하게 돼 있기도 하다. 한국은 어떤가? 金萬重(김만중; 1637~1692)은 셰익스피어나 세르반테스보다 약간 '後輩(후배)'지만, 영국, 스페인 학생들이 셰익스피어나 세르반테스의 原本(원본)들을 學習(학습)하듯이 韓國(한국) 學生(학생)에게는 『九雲夢(구운몽)』을 學習(학습)하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漢文本(한문본)은 어림도 없을 것이고, 國文本(국문본)도 현대어 國譯(국역)이나 최소한 아주 상세한 註釋(주석)을 붙이지 않고는 학생들에게 읽히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國譯(국역)이 없을 경우에 英語(영어) 狂風(광풍)에 휩쓸린 요즘 세상에서는 어떤 학생들에게 國文本(국문본)보다 차라리 'The Cloud Dream of the Nine' 題下(제하)의 게일 목사의 英譯(영역)이 더 편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가끔가다 韓國(한국)에 대해서 "대단히 民族主義的(민족주의적)"이라고 이야기하지 않는가? 어떤 이들은 이를 肯定視(긍정시)하고 어떤 이들은 否定視(부정시)하는데, 거의 다들 旣定(기정) 事實(사실)로 여긴다. 그런데 民族主義(민족주의)가 그렇게도 강하다는 이 나라에서 平均的(평균적) 敎養人(교양인)에게는 金萬重(김만중)의 原本(원본) 읽기보다 셰익스피어의 原文(원문) 읽기가 훨씬 손쉬울 것이다. 金萬重(김만중)이야 그렇다 치고 漢字(한자)가 많이 들어 있는 廉想涉(염상섭; 1897~1963)의 『萬歲前(만세전)』(1924)의 原文(원문)도 상당수 大卒者(대졸자)들에게까지도 크게 부담스러울 것이다. 外勢(외세) 侵略(침략)이 계기가 된 부자연스러운 近代化(근대화) 旅程(여정), 삼국시대 이래의 公用語(공용어)였던 漢文(한문)의 使用(사용) 廢棄(폐기)와 조급한 民族主義的(민족주의적) '國文運動(국문운동)', 日本(일본)에서의 '支那(지나) 글 漢字(한자) 廢止(폐지) 運動(운동)'을 본뜬 '純순 한글(主義)주의'……, 國粹主義者(국수주의자)들을 抑制(억제)하여 漢字(한자)를 살린 일본과 달리 南北韓(남북한)은 극단적 주장을 따라 '純(순) 한글'을 '民族語(민족어)'로 정했다. 그러기에 近代(근대)에 접어들 때에 불가피하게 되는 현상인 '傳統文化(전통문화)와의 斷絶(단절)'은 韓國(한국)의 경우에 불필요할 만큼 극도로 심해져 金萬重(김만중)은 우리에게 셰익스피어 以上(이상)의 '他者(타자)'가 됐다. 언어적 民族主義(민족주의)의 逆說(역설)이라 할까? 日本(일본)의 국수주의적 '國文主義(국문주의)'를 모방하여 "조선의 글로 쓰여진 것만은 조선 문학이다."라고 외친 李光洙(이광수), 한글만을 '조선 글'로 인정한 崔鉉培(최현배) 등 渡日(도일)留學生(유학생) 출신의 漢字(한자) 廢棄論(폐기론)은, 결국 '民族(민족)'의 가장 중요한 遺産(유산)인 傳統文化(전통문화)와의 연결고리를 끊어 버리고 말았다.

  우리는 父母(부모)를 의식적으로 택해 태어나는 것은 아니다. 運命(운명)대로 이 세상으로 오게 된다. 우리 文化(문화) 遺産(유산)의 대부분이 동아시아 공동 언어였던 漢文(한문)으로 돼 있다는 것도, 우리가 쓰는 언어 자체는 漢字語(한자어) 없이 존재할 수 없다는 것도 選擇(선택) 事項(사항)이 아닌 運命(운명)이다. 20세기에 접어들어 '民族主義者(민족주의자)'가 된 우리가 그걸 싫어한다고 해서 달라질 일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가 "風塵(풍진)에 얽매여 떨치고 못 갈지라도 江湖一夢(강호일몽)을 꾼 지 오래더니 聖恩(성은)을 다 갚은 후에는 浩然長歸(호연장귀)하리라."와 같은 名文명문에서 '風塵(풍진)'과 '浩然長歸(호연장귀)'가 뭔지 몰라 감상을 제대로 못한다면 그것은 우리의 문화적 貧困(빈곤함)을 의미할 뿐이다. 물론 國譯(국역) 사업은 절실히 필요하지만 傳統文化(전통문화)와의 斷絶(단절) 문제의 根本的(근본적) 解決策(해결책)이 될 수 없다. 위의 時調(시조)를 아무리 國譯(국역)을 잘해도 '江湖一夢(강호일몽)'을 모르는 사람에게 어렵고 부담스러울 것이고, 『九雲夢(구운몽)』을 아무리 현대어로 잘 풀이해도 "鬼卒(귀졸)이 대문을 열자, 力士(역사)가 성진을 데리고 森羅殿(삼라전)에 들어가 염라대왕께 뵈니 대왕이 말하였다."와 같은 문장에서의 '鬼卒(귀졸)'이나 '森羅(삼라)'는 漢文(한문)과 전통 사상에 대한 基礎(기초) 知識(지식이) 없는 사람게는 보기가 거북스러울 것이다.

  根本的(근본적) 解決策(해결책)은 무엇인가? 언어적 民族主義(민족주의)와의 訣別(결별), 그리고 漢文(한문) 교육의 필수화와 內實化(내실화) 이외에는 없다. 한문을 학교에서 제대로 익힌 사람이라면 다 무조건 金萬重(김만중)의 애독자가 될 일이 없으며 그럴 필요도 없다. 그러나 '漢文(한문)'이라는 이름의 자물쇠로 꽉 잠근 상태에 있는 古典(고전) 文化(문화)라는 보물상자를 열어 둘 만한 '열쇠'를 일단 萬人(만인)에게 平等(평등)하게 주는 것은 社會(사회)의 義務(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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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꿀라 2007-09-11 1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멜기세덱님, 잘 읽고 갑니다. 근데 한자가 너무 많아요. 읽기 너무 힘들다앙~~^^
역시 박노자 교수의 글은 깊이있고, 시원시원해서 좋습니다.

멜기세덱 2007-09-12 00:46   좋아요 0 | URL
이거 옮기느라 저도 힘들었어요. ㅎㅎ
그렇게 어려운 한자들은 없는데요, 아마도 글씨가 작아서 그러실 거에요.ㅎㅎ
김만중이 셰익스피어 이상으로 타자가 됐다는 지적에 뜨끔하네요.

심술 2007-09-12 2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77년 뱀들이랑 같이 공부한 78년 말인데 꽤 어렵군요.

멜기세덱 2007-09-12 23:24   좋아요 0 | URL
이 정도가 어려우시면 좀 곤란한데...ㅋㅋㅋ 농담입니다.
아무래도 한자가 섞여 있으면 익숙치 않아서 그럴 거에요.ㅎㅎ
 

정확히는 뒷머리 좌측 하단 귀 옆 부분이 어젯밤부터 계속 주기적으로 땡긴다. 한 5초에 한 번씩 삽으로 후벼 파는 것 같다. 그럴 때마다 찌릿찌릿 하다. 잠이 안 와서 책을 펼쳤다가도 몇 장을 넘기지 못하고 덮어버렸다. 새벽 4시에 잠들어서 아침 7시 15분에 깼다. 머리가 아파서 깬 것 같지는 않은데, 깨고 나서도 머리가 계속 땡긴다. 지금은 더 심해진 것 같다. 아이고, 뒷골 땡겨!

누가 그러는데, 흰머리가 부쩍 는 것 같단다. 아직까지는 흰머리라기보단 새치라고 해야 한다고 난 우긴다. 그래 새치가 늘었을 법도 하다. 근데, 왜 그럴 법 한 건지 정확히는 모르겠다.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어중이 떠중이 지낼 따름인데 말이다.

얼마전 자신의 이름을 넣으면 뇌 속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 있다는 걸 전해듯고는 나도 한 번 해봤다. 그런데, 이 두 글자가 내 뇌 속에 있단다. 惱와 休. 惱는 고민이 많다는 얘기일까? 난 무슨 고민이 그리 많다는 걸까? 그래서 흰머리가 부쩍 는 걸까? 그래서 오늘 이렇게 뒷골이 땡기는 걸까? 休. 공부는 안하고 너무 논다는 걸까? 아니면 좀 쉬어야 한다는 걸까? 지금으로써는 좀 쉬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그렇다고 내가 쉬지도 못하면서 바쁘게 사는 건 아니다.

예전에 간단한 검진을 받은 적이 있다. 검진을 받기까지 많이 망설였다. 그간 별 잔병 없이 살았는데, 검진 받고 이상한 병이 있다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 같은 것이었다. 그래도 검진을 받긴 했지만, 별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 후로부터 나는 간혹 오늘처럼 머리가 아프거나 다른 곳에 통증을 느낄 때면 왠지 모를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이거 무슨 큰 병 아닐까하고.

커피를 자주 마시고, 담배를 핀다는 것은 이 두려움을 현실로 만들어주기에 충분할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괜한 두려움일지도 모르겠다. 괜히 어디 좀 아프면 으레 하는 그런 생각들에 지나지 않을 터, 아직까지 병원엘 찾아갈 만큼이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이쯤이면 "그래도 건강은 미리미리 챙겨둬야 하는 거에요." 하실 분들이 계시는데 나도 여기에는 적극 동감한다.

그러나 나의 뇌 속에는 惱가 많다. 부쩍 는 새치만큼이나 많다. 하다못해 뒷골 땡기는 걸 가지고 죽음을 고민하니 말이다. 이것이 어떤 죽음의 신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잠시 두렵기도 하다. 이내 웃기도 하지만 말이다.

사는 건, 살아지는 건, 사라지는 거다. 29년의 내 인생이 사라졌다. 앞으로 얼마나 더 사라질 날이 남았는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새치가 얼마나 더 늘어날지 모르지만, 뒷골로도 모자라 옆골 앞골이 다 땡길런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惱 없이 살았으면 싶다. 그런데, 지금은 뒷골이 땡기는 게 멈춰 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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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7-09-11 1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병원가보셔야 하는거 아닌가요?

멜기세덱 2007-09-12 00:46   좋아요 0 | URL
병원 가기 무서워요.ㅎㅎ

웽스북스 2007-09-11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저만 그런 게 아니었군요- ㅋ 저도 가슴이 답답할 때마다 이거 혹시 죽을병 아니야? 막 이런답니다 ㅠㅠ 하지만 한의사 선생님이 현대인들의 대부분이 갖고 있는 스트레스성 질병이라고 그러시더라고요 ;; (의사선생님들은 만만한게 스트레스인것 같아요)

멜기세덱 2007-09-12 00:47   좋아요 0 | URL
뭐 모든 병이 죽을병이죠.ㅎㅎ 살병은 없잖아요?

비로그인 2007-09-11 1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제가 페이퍼에 적은 대로 전형적인 욕구불만성 스트레스형 편두통으로 사료됩니다
@@을 하세요 :b(돌팔이 의사 체셔냥 백)

멜기세덱 2007-09-12 00:47   좋아요 0 | URL
"욕구불만성 스트레스형 편두통"이라? 음, 그럴수도 있겠네요. 근데, 그게 정확히 뭐에요?

Jade 2007-09-11 1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경직된 자세로 공부하셔서 후두 근육이 뭉쳐서 아픈걸수도 있어요~ 엄지손가락으로 아픈부위 중심으로 뒷머리와 목이 연결되는 부분 문질러주세요~

멜기세덱 2007-09-12 00:48   좋아요 0 | URL
알겠습니다. 후배놈한테 시켜야지...ㅋㅋㅋ
 

구월의 단풍나무

 

푸르른 잎사귀를 달고 선 단풍나무야
구월엔
외투를 입지 않고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는다

여름내 울고간 매미도 없는
가을의 초입엔

뜨거워지지 않고 그리워하는
인내를 가졌구나, 너는

 

-이신영, 「구월의 단풍나무」, 『獨守空房 208호』, 동문,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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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11 08: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9-11 09: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멜기세덱 2007-09-12 00:50   좋아요 0 | URL
잘 읽겠습니다.ㅎㅎ
정이현은 <달콤한 나의 도시>와 <낭만적 사랑과 사회>를 읽었는데요, <낭만적 사랑과 사회>를 읽고 반했더랍니다.ㅎㅎ
저도 <달콤한 나의 도시>에서는 좀 밋밋했다 싶었어요.ㅎㅎ
 

<인하대학신문> 제1079호 2007년 9월 10일자 신문에 시사IN 관련 기사가 나왔네요. 반가운 마음에 옮겨 옵니다.

다시 잡은 펜, 시사 IN 창간
시사 저널 기자들, 그 1년 여의 기록…

김상우 기자

지난 해 6월, 시사저널의 금창태 사장은 편집국 몰래 인쇄소에서 시사저널 870호(2006년 6월 27일 발간 예정)의 기사 3페이지를 잘랐다. 삼성 이학수 부회장의 인사권 남용을 비판하는 기사였다. 이른바 시사저널 사태의 시작이다. 사실 그날 오후 금창태 사장은 삼성과의 친분을 언급하며 기사를 쓴 이철현 기자와 이윤삼 편집국장에게 기사를 빼자고 권유했다. 그러나 그들은 제의에 응하지 않았고 결국 금 사장은 편집인 직권으로 기사를 삭제했다. 빈 공간은 광고로 채워졌고 이 국장은 사표를 냈다.


그 후 시사저널 기자들은 1년여의 긴 시간동안 시사저널 사주들과 싸워야 했다. 17년 동안 시사저널의 노동조합 역할을 해왔던 기자협의회가 노동조합으로 정식 설립됐고, 그들의 길다면 긴 시간의 투쟁이 시작됐다. 이들이 사측에 원한 것은 ‘기사 무단 삭제가 재발하지 않는, 자본의 힘에 휘둘리지 않는 시사저널'이었다.


기자들은 올해 1월 11일부터 전면 파업을 시작했다. 회사는 1월 22일 시사저널 노조에 전화로 직장 폐쇄를 통보했다. 하지만 기자들의 직장패쇄 이후에도 시사저널은 계속 나왔다. 이른바 짝퉁 시사저널로 불리는 잡지의 발행이었다. 시사저널은 그렇게 자유 기고가의 외고, 외신 그리고 JES(중앙 엔터테인먼트&스포츠) 제휴 기사들로 채워졌다.


반년 간 파업을 하던 기자들은 결국 시사저널에 결별 선언을 한다. 지난 6월 26일, 사태가 발생한지 꼭 1년여가 지난 시간에서 기자들은 시사저널사앞 길에서 기자회견을 했다. 시사저널 노조 김은남 사무국장은 “회사 경영진이 시사저널을 정상화할 의지는 물론 기자들과의 대화에도 뜻이 없다"며 시사저널을 떠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새로운 주간지를 창간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기자들은 ‘참언론실천시사기자단(이하 시사기자단)'을 결성했고 목동 방송회관 9층에 임시 사무실을 꾸렸다.


지난 1년 동안 지속됐던 시사저널 사태, 하지만, 이를 제대로 다룬 언론의 보도는 찾기 힘들다. 제도언론(종이매체)들의 외면 속에 시사저널 사태는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못했다. 시사저널 기자단의 글을 실어주고 사태를 보도한 것은 오마이뉴스, 미디어오늘 등의 인터넷 매체였다. 이 같은 문제는 제도언론이 사측이라는 자본에 종속돼 있기 때문이다. 시사저널의 노순동 기자는 언론의 무관심을 어느 정도 이해한다고 한다. “시사저널 사정을 알아도 쓰기는 힘들 겁니다. 어느 기자가 이 문제에 대해 기사를 쓴다고 해도 바깥(광고주나 언론사주)과 얽히는 사안이 많으니까요." 그의 말에서 현 언론의 문제를 확인할 수 있었다.

 
‘기자로 산다는 것'은 기자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나 스스로도 내 기사를 규정하기 쉽지 않은데, 하물며 독자들이 여러 가지 궁금증을 갖는 것이야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고 고백하는 한반도 전문기자 남문희 기자는 “국제부 초년 기자로부터 기획특집부와 사회부 현장 기자를 거쳐 오늘날까지 오는 동안 '모든 이론은 회색일 뿐'이며, 결국 기자는 현장에 무한대로 가까이 다가가야 한다는 나의 신념에는 변함이 없다."며 자신의 기자관에 대해 말한다.

 
기자는 현장만이 삶의 원동력인 것이다. “한 쪽짜리 작은 기사라도 최소한 다섯 명의 취재원이 등장하는 기사가 좋은 기사"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는 한 편집장의 말은, 단순한 입버릇이 아니라 현장을 신봉하는 <시사저널> 모든 기자들의 입버릇이자, 실천적인 행동이었다.


‘정특종'이라는 별명답게 쿤사 마약왕국 잠입 취재, 이완용 등 친일파 재산 상속 최초 보도 등 15건의 특종을 날린 정희상 기자는, 특종과 함께 13건의 민·형사소송에 시달려 마음고생이 끊일 날이 없었다.


<시사저널> 사태 발생 당시 취재총괄팀장을 맡았던 책임 하나로 무기 정직 및 출근 금지 징계를 받았던 경제통 장영희 기자는 ‘삼성만 후벼 파는, 비난만 일삼는 기자' ‘반기업적 기자'라는 비난에도 굴하지 않고 “삼성은 막강한 경제력을 원천으로 한국 사회를 좌지우지하려 하고 있다. 삼성은 선출되지도, 견제 받지도 않는 권력이 되었다"는 문제의식을 놓치지 않는다. 어쩌면, 그들에게 기자로 산다는 것은 숙명과도 같은 일인 듯싶다.


손석희(성신여대 교수)가 진행하는 <시선집중>을 즐겨 듣는 사람이라면 정치 소식을 전하는 이숙이 기자를 모를 리 없다. 대선 2번, 총선 3번, 지방선거 3번을 치러낸 베테랑인 그녀는 스스로의 표현처럼 “정치판을 오래 전전한 여기자가 흔치 않다는 이유로, 방송에서 가끔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리고‘현장 중심'과 ‘팩트 중심'에서 발현된 날카로운 비평과 예견을 날리고 그 예견은 틀림없는 팩트로 다시 <시사저널> 지면을 장식하곤 했다.


이러 기자들의 정신으로 시사저널을 사랑하던 독자들은 사태가 불거지자 자발적으로 ‘시사저널을 사랑하는 모임’을 결성해 기자들의 외침을 응원했다. 독자로서 그들이 쓴 기사를 보길 원했던 그들은 시사저널 기자들이 아닌 자유기고가의 기사와 JES를 통한 기사제휴로 채워진 짝퉁 시사저널을 보이콧하며 시사저널 기자들에게 힘을 보탰다. 이들 뿐만 아니다.


가수 겸 방송인 서유석은 시사저널 관계자를 만나 이번 ‘시사저널' 사태에 대해 듣고 홍보대사 역할을 맡게 됐다. 권해효는 11일 오후 3시 서울 명동성당에서 진행될 ‘시사IN' 창간 선포식 행사의 진행을 부탁하기 위해 ‘시사IN' 측이 연락을 취했다가 아예 홍보대사로 활동하기로 결정한 경우로 평소 사회적인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참여해 온 연기자로 잘 알려져 있다.

 
개그맨 황현희는 방송인 최광기와 함께 EBS 라디오에서 ‘최광기, 황현희의 시사난타'를 진행하며 최광기로부터 이번 사태에 대한 얘기를 듣고 동참하게 됐다.


이들 연예인들은 ‘시사IN' 선포식에도 참석해 노래를 부르고 공연을 펼치는 등 홍보행사를 할 예정이다. KBS 2TV ‘개그콘서트'에서 ‘집중토론' 코너를 진행하는 황현희는 이 날 행사에서 ‘집중토론'을 패러디한 콩트를 선보여 기자들과 참석자들에게 많은 갈채를 받았다.


오는 17일(월), 이들이 다시 한번 펜을 들어 세상을 말하려한다. 독자들이 정해준 ‘시사IN’이라는 제호와 그들의 성금으로 자본에 종속되지 않은 언론을 만든다. 독자들에게 좀 더 나은 뉴스를 전하기 위해 그들의 준비는 시작되고 있다.

"뉴스가치에 중점 둔 매체 만들 것"
인터뷰 / 문정우 시사IN 편집국장

김상우 기자

◇ 앞으로 발행될 시사인은 어떤 잡지인가?
  그동안 많은 고생을 했다. 그동안 시사저널은 정칟이념이 아닌 순수한 언론으로서 발행돼 왔다. 어떠한 가치보다도 뉴스에 초점을 맞췄던 것이다. 앞으로 발행될 시사IN 역시 뉴스 가치에 중점을 둘 것이며, 모든 취재 사안은 내부적으로 합리적인 토론과정을 통해 안건을 정할 것이다. 또한, 현 언론계가 뉴스성이라는 기본이 많이 무너져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시사IN은 그 기본을 독자들에게 내세울 수 있는 훌륭한 상품이라 생각하고 발행될 예정으로 인쇄매체의 강점인 깊이 있는 진실을 드러내도록 할 것이다.
  주간지의 특성은 깊이 있는 취재라고 할 수 있다. 속보성 매체(일간지)와는 달리 훨씬 많은 시간과 인력이 장기간 투입돼 깊이 있는 취재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지금 당장은 힘들겠지만, 노력해 나갈 부분이다. 또한, 편제를 뉴스·탐사 팀으로 이분화해 이전의 정칟사회·경제 등으로 나눠졌던 체제를 벗어나 보다 기획적인 뉴스를 다룰 예정이다. 
  또한, 세계의 여러 독립언론(자본에 종속되지 않은 언론)들과 연대해 국내 주류 언론에서는 볼 수 없는 시각과 사건을 다룰 예정이다.


◇<시사저널> 사태에 대한 그동안의 언론 보도를 어떻게 평가하나.
  한국 언론이 언론자유의 위기에 대해 이토록 둔감한 상황에 이르렀다는 것을 실감나게 겪었다. 이번 사태는 경영과 편집의 이해가 상충될 여지가 많다는 것, 따라서 일정한 방어막 없이는 진정한 편집권을 제대로 행사할 수 없다는 것을 동시에 보여줬다. 그런 점에서 상당수 언론이 이번 사태로 불거지게 된 편집권 문제에 대해 침묵했다. 미안한 이야기지만, 한겨레나 경향도 이 사태의 본질에 대해선 언급하진 않았다. 사실관계를 충실히 밝히는 보도는 했지만, 자본권력의 언론통제의 현실 등 기획성 이슈로 더 파고들 여지가 있었는데, 그런 기사를 찾아볼 수는 없었다.

◇진보적이지 않던 시사저널 기자들이 이번 시사저널 사태를 통해 진보적인 기자들로 보여진다는 의견이 있다. 이에 대한 생각은?
  기자들의 성향은 본래 진보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많은 것을 배웠을 것이다. 아까도 말했듯이 진보냐 보수냐의 논쟁이 아니라 뉴스 가치를 중심으로 기사를 쓰는 것이다. 파업을 하면서, 제도언론들로부터 철저한 외면을 받았고, 사회적 약자들이 알게 모르게 겪는 핍박과 자본의 무서움을 알게 됐다. 물론 기자들이 과거와는 많이 변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진보적이라는 것보다는 변한 모습의 기자들이 지면에 어떻게 반영하는 지를 지켜봐줬으면 한다. 

◇시사저널 사태 1년여의 시간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고, 힘든 점이 많았을 것 같다. 이를 버티게한 원동력이 있다면?
  독자들이다. 이전에는 독자들을 직접 만날 기회가 없었는 데, 이번 사태를 통해 직접 독자들을 만나면서 독자들이 우리 기자들이 쓴 기사를 기억하고 있다는 것에 기자로서의 보람을 느꼈다. 또한, 다들 생업이 있으신 분들임에도 불구하고 자발적으로 ‘시사저널을 사랑하는 모임’(시사모)를 만들어 정말 헌신적인 도움을 주셨다. 독자들을 만나면서 기자 생활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됐다.
  마지막으로 사측이 너무도 무도하 대처가 이자리까지 오게한 원동력이다. 금창태 사장은 자신을 비난하는 언론과 독자들에게 소송을 진행해 5전 5패를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자신의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이전에는 이런 일이 있어도 기자들이 뭉치면 되겠지 했지만, 겪어보니 그게 아니었다. 현재의 제왕적 재벌체제에서는 노동자라는 신분이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때부터 지배구조가 건전한 회사를 만들어 언론 본래의 공적인 목적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결심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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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뜻밖의 사실을 하나 알았다. 내가 일하는 직장에서 7월부터 교직원 복지비조로 50000만원씩을 지급하고 있었단다. 다만 포인트로. 알아봤더니 복지향상을 위해 각종 문화생활에 쓸 수 있게끔 50000원 상당의 금액을 포인트로 지급하는 거란다. 이를테면, 영화나 연극을 관람한다던지, 놀이공원엘 간다던지, 또는 나처럼 책을 사본다던지 하면 그 포인트를 사용할 수 있다. 이 뜻밖의 사실을 오늘 알았기에 냉큼 알아봤더니 글쎄 지금까지 15만원이나 적립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급방긋이었다. 고민할 것도 없이 이 돈으로 무슨 책을 사볼까 행복해졌다.

밤늦게 집에 왔더니 새삼스레 방 안이 지저분해 보인다. 하루이틀 일도 아닌데 말이다. 책상위로 눈길이 돌아가고, 이내 수북하게 쌓이 책들이 안스러워졌다. 책 정리를 해야했다. 왜냐? 곧 15만원어치의 책들이 오실테니까. 그런데 이 책들이 정리될 공간이 매우 부족하다. 방 안의 책장들에다가 겹겹이 꽂고 쌓고 해도 모자란다. 이제 책장을 들여놓아야 한다. 뜻밖의 고민이 생긴 것이다. 이 넓지 않은 방안에 책장을 더 들어오면 어떻게 배치를 해야할까? 나는 꿈꿔왔다. 사방 벽면이 책으로 가득한 꿈을. 조금씩 실현해 가는 길이다. 내 방안에 천권이 넘는 책이 있다. 기쁜 일이지만, 아직 부족하다. 4천 권이 목표니까. 그리고 또 부족하다. 책장이 필요하다.

뜻밖에 책(을 살 돈)이 왔지만, 책장은 뜻밖에 오지 않을 것이다. '뜻밖'이라는 것은 어떤 것일까? 이 글을 보고 누군가 나에게 책장을 선뜻 보내주어도 그걸 '뜻밖'이라고 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아직 살 날이 (담배을 끊으면) 많이 남았다. 뜻밖에 오는 것들도 그만큼 많을 것이다. 그 많고 많은 것중에 책장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사랑도 이렇게 뜻밖에 올까? 난 지금 책장이 필요하고 책장을 구할 것이다.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사면 되니까. 그런데 사랑은 살 수 없다.

뜻밖에 오는 것이 사랑이라면 좋겠다. 그런데 이러면 그건 '뜻밖'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지금 책장만 생각할 것이다. 가을은 그렇게 책장과 함께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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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9-08 0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15만원으로 책 살 생각하지 말고, 데이트를 짜요. 뮤지컬도 보고, 연극도 보고, 영화도 보고, 콘서트도 가고. 좋겠다아. 좋은 일(아프한테 책 보내기) 하니깐 좋은 일이 찾아오는거에요. :)

멜기세덱 2007-09-09 01:08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아프간에 책 보내기 하면 더 좋은 일이 찾아올라나? ㅋㅋㅋ
15만원이 아니라, 몇 십만원을 들이더라고 데이트를 짤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ㅎㅎ

시비돌이 2007-09-09 13:43   좋아요 0 | URL
아프간에 책보낼때 기독교 관련 책은 보내지 마세요. ㅋㅋ

멜기세덱 2007-09-09 15:51   좋아요 0 | URL
하하하;;^^;;

Mephistopheles 2007-09-08 0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영엄마님 페이퍼에 자극을 받았다고 혼자 추측 중...

멜기세덱 2007-09-09 01:09   좋아요 0 | URL
그런건 아닌데요. 책 정리를 하다보니 놓을 데가 없어서요..ㅎㅎ아영엄마님 페이퍼를 다시보니 자극이 되긴 하네요...ㅎㅎ

비로그인 2007-09-08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미 곁에 와 있는 사랑을 몰라보고 계신건...

아닐까요? :)


멜기세덱 2007-09-09 01:10   좋아요 0 | URL
제가 모르는 게 참 많아요.ㅎㅎ 아는 게 힘인데 말이에요.ㅎㅎ
간혹, 이런 생각해요. 와 있다면 절반 말 좀 해줬으면 하구요...ㅋㅋㅋ

Jade 2007-09-08 14: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멜기님 책 사시는데 들이는 정성의 1/10만 사람에게 쏟으셔도 깨가 쏟아질거 같다는....^^;;

멜기세덱 2007-09-09 01:11   좋아요 0 | URL
그렇다고 해도, 누구와 깨를 쏟을 거냐가 관건이겠죠? ㅎㅎㅎ

Jade 2007-09-09 01:22   좋아요 0 | URL
어머머 멜기님 그러고보니 "깨를 쏟고 싶은" 사람이 있으신가봐요~ ㅎㅎ 좋겠다 +.+

비로그인 2007-09-09 09:49   좋아요 0 | URL
멜기님 셤 끝나고 대쉬할랬더만 ㅠㅠ

다 틀렸네, 크흑-!

멜기세덱 2007-09-09 15:52   좋아요 0 | URL
'깨를 쏟고 싶은' 사람은 있죠. 누군지를 모를 뿐이지만...ㅋㅋㅋ
셤이 끝나면 저는 자폭할지도 모른답니다...ㅋㅋㅋ

무스탕 2007-09-08 15: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장이나 책을 들고 올지도 모를 여인을 잘 살펴 보세요 ^^

멜기세덱 2007-09-09 01:12   좋아요 0 | URL
그 여인은 힘이 꽤 좋아야 겠네요. 책장들고 오는 여인이라면 '잘 살펴' 보지 않아도 눈에 확 튀지 않을까요? ^^;;

웽스북스 2007-09-08 2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멜기세덱님의 가을을 어쩐지 응원해 드리고 싶은 날입니다 ^^

멜기세덱 2007-09-09 01:14   좋아요 0 | URL
ㅎㅎ, 가을은 외로운 남자의 계절아니겠습니까? 가을은 외로워야 남자입니다.ㅎㅎ 응원을 하시겠다는건, 더 외로우라고?

프레이야 2007-09-09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당돌한 멜기에서 고독한 멜기로 변신중이신거에요?
거의 대부분의 일은 뜻밖에 오더군요. 혹시 알아요?
가을을 보내고 겨울이 올 때쯤이면 짜잔 하고 뜻밖의 일이 생길지요..
즐거운 일요일 보내세요~~

멜기세덱 2007-09-09 15:53   좋아요 0 | URL
고독한 멜기....겨울은 너무 추운데....ㅋㅋㅋ

2007-09-09 20: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멜기세덱 2007-09-12 00:50   좋아요 0 | URL
아하 이런 시가 있었군요.ㅎㅎ

순오기 2007-09-10 0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선생님들은 참 좋겠다~ 여러가지 혜택이 많아서... 부러와용!
뜻밖에 오는 사랑... 이런 기대를 갖는 것만으로도 행복하실 듯...
님이 갖고 있는 책 천권 + 그녀가 갖고 올 책 ( )? + a = 4000권 목표달성
이런 날이 빨리 오기를 빌어드립니다! ^*^

멜기세덱 2007-09-12 00:51   좋아요 0 | URL
여기는 대학교에요. 글고 전 선생님은 아니구요...
근데, 학교 선생님들께는 반드시 이런 제도가 있어야 한다구 봐요.ㅎㅎ
특히 책사보는거...ㅋㅋ

leeza 2007-09-10 0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 멋진 정책이~~ 완전 부럽다는^^ 좋은 책도 실컷 사구... 나머지 돈으론 선물도 하고~~ 정말 행복한 고민이네요. 나도 얼렁 그런 혜택을 받고 싶다는ㅡㅡ;;

멜기세덱 2007-09-12 00:52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이자님...첨이신거 같다는...ㅎㅎ
이런 제도가 확대 실시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실 5만원으로 무슨 문화생활을 제대로 하겠습니까?
그래도 한달에 한 20만원은 줘야지...ㅋㅋ(배부른 소리...ㅋㅋ)

마노아 2007-09-10 14: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멜기님 글에 가을이 물씬 느껴집니다. 책장보다 사랑이 먼저 찾아왔으면 좋겠군요^^

멜기세덱 2007-09-12 00:53   좋아요 0 | URL
그렇담, 책장은 안 와도 좋아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