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하대학신문> 제1079호 2007년 9월 10일자 신문에 시사IN 관련 기사가 나왔네요. 반가운 마음에 옮겨 옵니다.

다시 잡은 펜, 시사 IN 창간
시사 저널 기자들, 그 1년 여의 기록…

김상우 기자

지난 해 6월, 시사저널의 금창태 사장은 편집국 몰래 인쇄소에서 시사저널 870호(2006년 6월 27일 발간 예정)의 기사 3페이지를 잘랐다. 삼성 이학수 부회장의 인사권 남용을 비판하는 기사였다. 이른바 시사저널 사태의 시작이다. 사실 그날 오후 금창태 사장은 삼성과의 친분을 언급하며 기사를 쓴 이철현 기자와 이윤삼 편집국장에게 기사를 빼자고 권유했다. 그러나 그들은 제의에 응하지 않았고 결국 금 사장은 편집인 직권으로 기사를 삭제했다. 빈 공간은 광고로 채워졌고 이 국장은 사표를 냈다.


그 후 시사저널 기자들은 1년여의 긴 시간동안 시사저널 사주들과 싸워야 했다. 17년 동안 시사저널의 노동조합 역할을 해왔던 기자협의회가 노동조합으로 정식 설립됐고, 그들의 길다면 긴 시간의 투쟁이 시작됐다. 이들이 사측에 원한 것은 ‘기사 무단 삭제가 재발하지 않는, 자본의 힘에 휘둘리지 않는 시사저널'이었다.


기자들은 올해 1월 11일부터 전면 파업을 시작했다. 회사는 1월 22일 시사저널 노조에 전화로 직장 폐쇄를 통보했다. 하지만 기자들의 직장패쇄 이후에도 시사저널은 계속 나왔다. 이른바 짝퉁 시사저널로 불리는 잡지의 발행이었다. 시사저널은 그렇게 자유 기고가의 외고, 외신 그리고 JES(중앙 엔터테인먼트&스포츠) 제휴 기사들로 채워졌다.


반년 간 파업을 하던 기자들은 결국 시사저널에 결별 선언을 한다. 지난 6월 26일, 사태가 발생한지 꼭 1년여가 지난 시간에서 기자들은 시사저널사앞 길에서 기자회견을 했다. 시사저널 노조 김은남 사무국장은 “회사 경영진이 시사저널을 정상화할 의지는 물론 기자들과의 대화에도 뜻이 없다"며 시사저널을 떠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새로운 주간지를 창간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기자들은 ‘참언론실천시사기자단(이하 시사기자단)'을 결성했고 목동 방송회관 9층에 임시 사무실을 꾸렸다.


지난 1년 동안 지속됐던 시사저널 사태, 하지만, 이를 제대로 다룬 언론의 보도는 찾기 힘들다. 제도언론(종이매체)들의 외면 속에 시사저널 사태는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못했다. 시사저널 기자단의 글을 실어주고 사태를 보도한 것은 오마이뉴스, 미디어오늘 등의 인터넷 매체였다. 이 같은 문제는 제도언론이 사측이라는 자본에 종속돼 있기 때문이다. 시사저널의 노순동 기자는 언론의 무관심을 어느 정도 이해한다고 한다. “시사저널 사정을 알아도 쓰기는 힘들 겁니다. 어느 기자가 이 문제에 대해 기사를 쓴다고 해도 바깥(광고주나 언론사주)과 얽히는 사안이 많으니까요." 그의 말에서 현 언론의 문제를 확인할 수 있었다.

 
‘기자로 산다는 것'은 기자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나 스스로도 내 기사를 규정하기 쉽지 않은데, 하물며 독자들이 여러 가지 궁금증을 갖는 것이야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고 고백하는 한반도 전문기자 남문희 기자는 “국제부 초년 기자로부터 기획특집부와 사회부 현장 기자를 거쳐 오늘날까지 오는 동안 '모든 이론은 회색일 뿐'이며, 결국 기자는 현장에 무한대로 가까이 다가가야 한다는 나의 신념에는 변함이 없다."며 자신의 기자관에 대해 말한다.

 
기자는 현장만이 삶의 원동력인 것이다. “한 쪽짜리 작은 기사라도 최소한 다섯 명의 취재원이 등장하는 기사가 좋은 기사"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는 한 편집장의 말은, 단순한 입버릇이 아니라 현장을 신봉하는 <시사저널> 모든 기자들의 입버릇이자, 실천적인 행동이었다.


‘정특종'이라는 별명답게 쿤사 마약왕국 잠입 취재, 이완용 등 친일파 재산 상속 최초 보도 등 15건의 특종을 날린 정희상 기자는, 특종과 함께 13건의 민·형사소송에 시달려 마음고생이 끊일 날이 없었다.


<시사저널> 사태 발생 당시 취재총괄팀장을 맡았던 책임 하나로 무기 정직 및 출근 금지 징계를 받았던 경제통 장영희 기자는 ‘삼성만 후벼 파는, 비난만 일삼는 기자' ‘반기업적 기자'라는 비난에도 굴하지 않고 “삼성은 막강한 경제력을 원천으로 한국 사회를 좌지우지하려 하고 있다. 삼성은 선출되지도, 견제 받지도 않는 권력이 되었다"는 문제의식을 놓치지 않는다. 어쩌면, 그들에게 기자로 산다는 것은 숙명과도 같은 일인 듯싶다.


손석희(성신여대 교수)가 진행하는 <시선집중>을 즐겨 듣는 사람이라면 정치 소식을 전하는 이숙이 기자를 모를 리 없다. 대선 2번, 총선 3번, 지방선거 3번을 치러낸 베테랑인 그녀는 스스로의 표현처럼 “정치판을 오래 전전한 여기자가 흔치 않다는 이유로, 방송에서 가끔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리고‘현장 중심'과 ‘팩트 중심'에서 발현된 날카로운 비평과 예견을 날리고 그 예견은 틀림없는 팩트로 다시 <시사저널> 지면을 장식하곤 했다.


이러 기자들의 정신으로 시사저널을 사랑하던 독자들은 사태가 불거지자 자발적으로 ‘시사저널을 사랑하는 모임’을 결성해 기자들의 외침을 응원했다. 독자로서 그들이 쓴 기사를 보길 원했던 그들은 시사저널 기자들이 아닌 자유기고가의 기사와 JES를 통한 기사제휴로 채워진 짝퉁 시사저널을 보이콧하며 시사저널 기자들에게 힘을 보탰다. 이들 뿐만 아니다.


가수 겸 방송인 서유석은 시사저널 관계자를 만나 이번 ‘시사저널' 사태에 대해 듣고 홍보대사 역할을 맡게 됐다. 권해효는 11일 오후 3시 서울 명동성당에서 진행될 ‘시사IN' 창간 선포식 행사의 진행을 부탁하기 위해 ‘시사IN' 측이 연락을 취했다가 아예 홍보대사로 활동하기로 결정한 경우로 평소 사회적인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참여해 온 연기자로 잘 알려져 있다.

 
개그맨 황현희는 방송인 최광기와 함께 EBS 라디오에서 ‘최광기, 황현희의 시사난타'를 진행하며 최광기로부터 이번 사태에 대한 얘기를 듣고 동참하게 됐다.


이들 연예인들은 ‘시사IN' 선포식에도 참석해 노래를 부르고 공연을 펼치는 등 홍보행사를 할 예정이다. KBS 2TV ‘개그콘서트'에서 ‘집중토론' 코너를 진행하는 황현희는 이 날 행사에서 ‘집중토론'을 패러디한 콩트를 선보여 기자들과 참석자들에게 많은 갈채를 받았다.


오는 17일(월), 이들이 다시 한번 펜을 들어 세상을 말하려한다. 독자들이 정해준 ‘시사IN’이라는 제호와 그들의 성금으로 자본에 종속되지 않은 언론을 만든다. 독자들에게 좀 더 나은 뉴스를 전하기 위해 그들의 준비는 시작되고 있다.

"뉴스가치에 중점 둔 매체 만들 것"
인터뷰 / 문정우 시사IN 편집국장

김상우 기자

◇ 앞으로 발행될 시사인은 어떤 잡지인가?
  그동안 많은 고생을 했다. 그동안 시사저널은 정칟이념이 아닌 순수한 언론으로서 발행돼 왔다. 어떠한 가치보다도 뉴스에 초점을 맞췄던 것이다. 앞으로 발행될 시사IN 역시 뉴스 가치에 중점을 둘 것이며, 모든 취재 사안은 내부적으로 합리적인 토론과정을 통해 안건을 정할 것이다. 또한, 현 언론계가 뉴스성이라는 기본이 많이 무너져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시사IN은 그 기본을 독자들에게 내세울 수 있는 훌륭한 상품이라 생각하고 발행될 예정으로 인쇄매체의 강점인 깊이 있는 진실을 드러내도록 할 것이다.
  주간지의 특성은 깊이 있는 취재라고 할 수 있다. 속보성 매체(일간지)와는 달리 훨씬 많은 시간과 인력이 장기간 투입돼 깊이 있는 취재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지금 당장은 힘들겠지만, 노력해 나갈 부분이다. 또한, 편제를 뉴스·탐사 팀으로 이분화해 이전의 정칟사회·경제 등으로 나눠졌던 체제를 벗어나 보다 기획적인 뉴스를 다룰 예정이다. 
  또한, 세계의 여러 독립언론(자본에 종속되지 않은 언론)들과 연대해 국내 주류 언론에서는 볼 수 없는 시각과 사건을 다룰 예정이다.


◇<시사저널> 사태에 대한 그동안의 언론 보도를 어떻게 평가하나.
  한국 언론이 언론자유의 위기에 대해 이토록 둔감한 상황에 이르렀다는 것을 실감나게 겪었다. 이번 사태는 경영과 편집의 이해가 상충될 여지가 많다는 것, 따라서 일정한 방어막 없이는 진정한 편집권을 제대로 행사할 수 없다는 것을 동시에 보여줬다. 그런 점에서 상당수 언론이 이번 사태로 불거지게 된 편집권 문제에 대해 침묵했다. 미안한 이야기지만, 한겨레나 경향도 이 사태의 본질에 대해선 언급하진 않았다. 사실관계를 충실히 밝히는 보도는 했지만, 자본권력의 언론통제의 현실 등 기획성 이슈로 더 파고들 여지가 있었는데, 그런 기사를 찾아볼 수는 없었다.

◇진보적이지 않던 시사저널 기자들이 이번 시사저널 사태를 통해 진보적인 기자들로 보여진다는 의견이 있다. 이에 대한 생각은?
  기자들의 성향은 본래 진보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많은 것을 배웠을 것이다. 아까도 말했듯이 진보냐 보수냐의 논쟁이 아니라 뉴스 가치를 중심으로 기사를 쓰는 것이다. 파업을 하면서, 제도언론들로부터 철저한 외면을 받았고, 사회적 약자들이 알게 모르게 겪는 핍박과 자본의 무서움을 알게 됐다. 물론 기자들이 과거와는 많이 변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진보적이라는 것보다는 변한 모습의 기자들이 지면에 어떻게 반영하는 지를 지켜봐줬으면 한다. 

◇시사저널 사태 1년여의 시간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고, 힘든 점이 많았을 것 같다. 이를 버티게한 원동력이 있다면?
  독자들이다. 이전에는 독자들을 직접 만날 기회가 없었는 데, 이번 사태를 통해 직접 독자들을 만나면서 독자들이 우리 기자들이 쓴 기사를 기억하고 있다는 것에 기자로서의 보람을 느꼈다. 또한, 다들 생업이 있으신 분들임에도 불구하고 자발적으로 ‘시사저널을 사랑하는 모임’(시사모)를 만들어 정말 헌신적인 도움을 주셨다. 독자들을 만나면서 기자 생활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됐다.
  마지막으로 사측이 너무도 무도하 대처가 이자리까지 오게한 원동력이다. 금창태 사장은 자신을 비난하는 언론과 독자들에게 소송을 진행해 5전 5패를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자신의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이전에는 이런 일이 있어도 기자들이 뭉치면 되겠지 했지만, 겪어보니 그게 아니었다. 현재의 제왕적 재벌체제에서는 노동자라는 신분이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때부터 지배구조가 건전한 회사를 만들어 언론 본래의 공적인 목적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결심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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