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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으로서의 책읽기, 글쓰기
<책 읽기 고수 '파란여우'의 종횡무진 독서기-깐깐한 독서본능>의 저자 파란여우님을 만나기 하루 전 서울에 올라왔다. 지난 주 토요일. 그러니까 2009년 12월 12일. 이날만큼은 아무 일정도 잡아두지 않았건만 갑자기 목요일 오후에 출장이 잡혀 마음이 무거웠다. 출장으로 인해 참석하지는 못하는 것 아닌가 내심 불안했지만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출장을 가는 것이라 참석을 할 수 있겠다는 마음에 한시름 놓게 되었다. 그런데 금요일 올라오면서 출장 내용을 알아보니 구지 내가 참석하지 않아도 되는 출장길이었다. 그래서 나와 같이 동행한 김○○학예사에게 일 전부를 맡기고 나는 서둘러 국립중앙박물관을 빠져 나왔다. 급히 나오는 바람에 시간이 많이 남아 서울 광화문 쪽으로 이동해 책 냄새도 맡을 겸 교보문고를 들러서 덕수궁, 청계천을 돌아 세종대왕, 이순신 장군을 만나고 서울신문사에 기자로 근무하고 있는 친구를 만나 몇 마디 수다를 떤 후 파란여우님의 강연시간에 맞춰 신촌에 도착 했다. 이날은 한마디로 주객이 전도된 날이었다. 땡땡이치는 날이었다고 할까?
20분 빨리 강연 장소에 도착했다. 본래 나는 강연 장소에 가면 거의 뒷자리에 자리를 잡는 버릇이 있는 터라 그날도 어김없이 뒷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음료수가 마련돼 있다는 사회자의 말에 음료수를 담아 자리에 앉아 강연이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오후 5시. 마침내 파란여우님과 만날 시간에 다다랐다. 사회자는 간단한 강연순서와 파란여우님의 약력 소개 후 파란여우님의 강연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 강연은 파란여우님의 존안을 처음 뵙는 자리이자 만남인지라 설레는 마음으로 강연을 들었다. 여우님의 목소리는 전화 통화를 많이 해서 그런지 익숙해져 낯설지 않았는데 존안은 처음 뵙는지라 약간 서먹서먹한 기분이 들었던 것 또한 사실이다(맨 처음 내가 상상한 모습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하고 계셔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강연의 내용은 역시 예상하던 데로 알차고 유익한 시간이었다.
강연내용을 잠시 살펴보면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글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어떤 이유로 책을 출판하게 됐는지, 왜 귀농을 하게 되었는지, 철밥통으로 여겨지는 공무원을 왜 그만 두셨는지, 결혼은 하지 않는 사적인 이유 등등. 내가 이 강연에서 가장 집중적으로 들었던 것은 책 읽는 방법이었다. 파란여우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하나의 분야를 선택해서 집중적으로 읽으라고(파란여우님의 분야는 환경과 한국고전이었다고 말했다). 이탁오의 저작인 <분서Ⅰ>, <분서Ⅱ>, <속분서>, <이탁오 평전>를 예로 들어 설명했다. 또한 책 읽기는 지식을 습득하는 하나의 도구로 활용하라고. 쉽게 표현하자면 공부다. 다들 공부라는 말만 들어도 지겹다고 아우성일 텐데 책읽기도 공부의 연장선이라니...... 그래서 놀이로서의 책읽기를 강조하셨다. 여우님의 트렌드가 되어버린 ‘뻥’도 같은 맥락이 아닐까. <미쳐야 미친다>에 소개되는 박지원, 박제가, 정약용, 허균, 이덕무 등 18세기 조선의 지식인도 유희로 여기지 않았다면 책읽기는 그저 지루한 일상에 불과 했을 것이다. 한 가지 더 추가하자면 현장성. 즉 체험을 말함이다. 직접 몸으로 체험하지 못하면 ‘반쪽짜리’ 책읽기가 된다. 몸으로서의 책읽기가 추가되어야만 온전한 책읽기라 생각했다. 의식과 펙트의 결합(파란여우님의 표현을 빌려왔다). 너무 멋진 표현이다. 글쓰기도 이와 유사하다고 보면 될 것 같다. 독자들의 질문도 다양했고 답변도 성실히 답해주셨다. 너무 졸려 이만 잡문을 마쳐야 할 것 같다. 재주 없는 글솜씨를 가졌기 때문에 파란여우님의 강연 현장을 생생히 전해 드리지 못했다. 너무 송구스럽게 여긴다.
2009. 12. 17 늦은 밤 춘천에서
덧붙임
A4 한 장 분량을 채우기가 어찌나 어려운지!!!
글쓰기 작업은 나에게 에베레스트 산을 정복하는 일보다 더 어렵다.
에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