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 그들(살인자들) "너무나 강렬한, 거의 동물적인" 살해 욕구를 느꼈는데, 아라우호의 "성적 기만, 속임, 배신"이 그런 욕구를 촉발했다고 했다. 이러한 주장들에는 이 남성들에게 옷차림 너머의 성기 형태에 대해 알아낼 권리는 물론 "미친 듯이 분노할" 권리, 심지어는 (그들의 성적 특권 의식에 도전한 아라우호를 살해할 권리가 있었다는 의식이 반영되어 있다. (<남성 특권>, 175)

 



17세의 트랜스 여성 아라우호를 살해한 남성들에게 가장 강력한 범죄 동기는 그 트랜스 여성이 여성처럼보였다는 데 있다. 여성처럼 보였기 때문에 그에게 성적 매력을 느꼈는데, 알고 보니 그는 남성의 성기를 가진 사람이었고, 자신들을 속인그에게 느낀 미칠 듯한 분노를 폭행의 형식으로 표현했다는 것이, 그들 살인자들의 주장이었다.

 


남성과 여성을 다른 계급으로 구분하기로 했을 때, 제일 중요한 지점은 두 계급 간에 구별이 가능해야 한다는 것이다.

 


계급의 형성은 다른 계급에 속한 사람들을 구분할 시각적 수단을 요구한다의복, 장신구 착용 혹은 장신구 없음그리고 노예들의 경우 그들의 지위를 나타내는 시각적 표시들 등은 그런 구분을 중요하게 만든 모든 사회에서 나타난다. (『가부장제의 창조), 247)

 


이것이 구체적으로 나타나는 건 당연히 외적인 표식, 특별히 미용 관습을 통해서다. 적절한 화장과 단정한 옷차림이 여성에게만 요구될 때, 이는 분명 두 계급 간에 차이를 나타낼 뿐만 아니라, ‘차이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코르셋>, 71) 여성에게 요구되는 꾸밈노동성 구별의 가장 확실한 방책이 되기 때문이다. (최근에 화장하는 남자가 늘어나고 있는데, 이는 좀 다른 측면의 이야기라서, 이번에는 다루지 않기로 한다.)

 


<6장 통제되는 몸>. 남성에게, 사회적 시선을 통해, 그리고 스스로에 의해 통제되는 몸은 누구의 몸인가. 남성의 몸인가 아니면 여성의 몸인가.




이러한 분석에 따르면, 여성들의 말은 그들이 타인을 위해 돌봄을 요청할 때나 사회가 용인하는 중대한 사유(예를 들어 여성이 사회적으로 훨씬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이들에게 더 나은 돌봄노동자가 되도록 조력할 때)가 있을 때만 예외적으로 수용된다. 바로 여기서 여성을 위한 의료 제도의 빛과 그림자가 드러난다. 다수의 백인 특권층 여성들에게 미국의 산전 관리prenatalcare 제도는 비교적 양호한 수준이다. 비록 산모의 필요보다 태아의 필요를 우위에 두지만 말이다. 그러나 《페미니스트, 엄마가 되다Like A Mother》의 저자 앤절라 가브스Angela Garbes가 기록한 것처럼, 유색인 여성을 위한 산전 관리 제도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가브스와 같은 유색인 여성들을 위한 산전 관리제도는 엉망이다. 많은 레즈비언, 퀴어, 논바이너리의 상황 또한 마찬가지다. - P137

백인우월주의가 지배하는 환경에서 임신 중인 백인 여성, 그러니까 (짐작컨대 혹은 많은 경우 실제로) 백인 아이를 임신하고 있는 여성은 자궁 안에 천국으로 가는 열쇠를 쥐고 있는 셈이다. 그와 대조적으로 임신한 유색인 여성은체 가능하며 쓰고 버릴 수 있는 존재, 심지어 백인우월주의를위협하는 존재로 간주된다. - P138

심장 질환에서 여성들을 누락시키는 것은 딱히 이례적이지 않다. 심장 질환은 지난 30년간 미국에서 가장 흔한 여성사망 원인으로 밝혀졌다. 여성은 심근경색에 이어 심장 질환으로 사망에 이를 확률이 남성보다 높았다. 그 한 가지 이유를 의료진이 여성들이 겪는 증상(복통, 호흡 곤란, 구토, 피로)을 자주 놓쳤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여성에게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증상들임에도 대개 "이례적"인 것으로 여긴 것이다. 스웨덴의 경우, 심근경색을 겪은 여성들은 동일 증상을 보인 남성에비해 평균적으로 앰뷸런스 우선순위에서 밀렸고, 병원에서 치료를 받기까지 20분 더 기다려야 했다. 영국에서는 여성들이 심근경색 이후 오진을 받을 확률이 50퍼센트나 더 높게 나타났다. - P141

소비자 안전의 측면에서 접근하더라도 특권의 세례를 받는 남성 신체를 기본값으로 설정하는 일이 훨씬 더 지대한 부정적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동차가 충돌할 때여성들은 안전벨트를 하고 있더라도 사망하거나 중상을 입을확률이 동일 조건의 남성보다 73퍼센트 더 높게 나타났다. 이것은 최근까지도 모든 자동차 충돌 실험에 쓰이는 마네킹이 시스젠더 남성을 중심으로 제작되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지방 분포도, 골격 구조 등에서 나타나는 시스젠더 남성과여성의 상당한 차이를 무시하고 남성의 신체를 기준으로 제작된 마네킹을 활용한 것이다. 결국 자동차 충돌 테스트용 "여성" 마네킹이 도입되었는데, 대부분 실제 여성보다 더 가볍고 신장이 작았다. - P143

출산후 여성은 자기 자신을 지워내는 방식으로 아이를 보살펴야한다. (자신의 남성 파트너에게 기대되는 것보다 압도적으로 높은 강도로 말이다.) 그러나 여성이 자신의 인간 됨됨이를 의심받지않을 때조차 그것은 타인의 덕택으로 여겨진다. 여성은 인간존재가 아니라 인간 증여자의 위치를 배정받는다. 즉 감정노동, 물질적 지원, 성적 만족뿐 아니라 재생산노동까지 제공하는 존재 말이다. 그리고 남성은 태어날 때부터 여성이 제공하는 이런 재화들을 받고 누릴 권리 뿐 아니라 포기할 권리 또한갖는다고 여겨진다. 권력을 가진 수많은 남성 공화당 의원들이 낙태 금지를 외칠 때, 가장 중요한 예외 대상은 상대 남성이 원치 않는 아이를 임신한 소위 정부(남성의 외도 상대)일 것이다. - P164

또한 한 번 엄마가 되면 영원히 엄마여야 한다. 아이를 돌보는 일로 혹사당하는 차원을 넘어 주변 사람들의 감정적, 물질적, 도덕적 필요를 책임지는 존재 말이다. 말하자면 여성은[아이 외에] 다른 이들에게까지 엄마가 되어 원조와 위로, 양육과 사랑과 관심을 제공해야 한다. 앞 장에서 살폈듯 여성이 자기 자신을 위해 〔타인에게] 그런 도덕적 재화를 요청하는 일은 상대적으로 드물다. - P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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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티나무 2023-03-17 2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밑줄로 다 올리지는 않았지만 책에 그은 밑줄이랑 모두 같아요.^^

단발머리 2023-03-19 16:49   좋아요 0 | URL
앗! 너무 기쁩니다! 난티나무님과 밑줄 동기네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아침에 RM의 인터뷰 내용을 담은 카드 뉴스를 보며 독어 선생님이 떠올랐다.


 

고등학교 때 내가 선택한 제2외국어는 독일어였다. 작은 키에 단정한 단발머리셨던 독어 선생님께 배웠던 독일어는 당연히 1도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나는 건, 한국의 낙후성을 한탄하시던 선생님의 목소리와 톤. 거의 매시간 선생님은 한국과 한국 사람들을 비난하셨는데, 한국 사람들은 게으르고, 무식하고, 공중도덕을 안 지킨다는 내용이었다. 울분에 가까운 감정이 담긴 언설이었기에 나는 종종, 저렇게 한국이 싫은데 왜 한국에 사시는 걸까, 라고 생각했다. 전해 들은 바로는 선생님은 짧게 외국 생활을 하셨다고 하는데, 그래서 더욱 선명한 비교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선생님은 한국을 미워하셨다. 또박또박 전해지는 한국말. 바로 그 말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시면서, 한국을, 한국이라는 나라를, 한국 사람들을 한결같이 멸시하셨다.

 


딱 한 번, 선생님이 한국과 한국인을 변호하신 일이 있었다. 선생님의 표현을 그대로 옮기면 이렇다. 유럽을 위시한 선진국 사람들은 이미 커다란 원(쳇바퀴)을 만들어놓고 그 안을 천천히 산책하듯이 걸으면 그 원이 앞으로 나아가는데, 우리가 만든 건 작은 원이어서 선진국 사람들이 큰 원을 한 번 돌릴 때, 우리는 두 번, 세 번 돌려야 겨우 그들 비슷하게나마 따라갈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들은 걸어도 되고 우리는 뛰어야 한다고. 내 기억엔 그때가 유일하다. 선생님이 한국을 옹호하신 경우는.


 

선생님의 대한민국 변호와 RM의 인터뷰 사이의 가장 큰 차이점은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가에 대한 판단 유무다. 선생님은 판단하지 않으셨고, 순진하게 현재의 상황에 짜증을 내셨다. 한국 사람들은 무식하다. 한국 사람들은 예의범절을 모른다. 힘들게 살았던 사람들에게 예의를 요구하셨다. 고생한 사람이 우아하게 말하기를 기대하셨다. RM은 다르게 말한다.



 


서양 사람들은 이해 못 합니다.

한국은 침략당하고 파괴되었고,

둘로 갈라진 나라입니다.

 

70년 전만 해도

아무 것도 없던 나라

 

지금은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이제 서른이 안 된 사람이 이걸 알고 있다는 것, 이런 인식. 자신의 자리가 어디인지를 알고 있다는 게 내게는 놀라우면서도 감격스러웠다. <탐욕의 시대>에서 장 지글러는 이렇게 말했다.  

 















출생의 우연이라는 수수께끼는 죽음만큼이나 신비롭다. 나는 왜 유럽에서 태어났는가? 어째서 잘 먹고, 가진 권리도 많고, 자유롭게 살 수 있으며, 고문으로부터도 비교적 자유로운 백인으로 태어났는가? (330)



시간이라는 요소를 무시할 수 없겠지만, 유럽에서 태어났다는 것, 백인으로 태어났다는 것, 남성으로 태어났다는 것은 특권이다. 3개의 특권이 결합한 형태. 여기에 영어가 모국어라면 완성형이다. 우리는, 태어난 조건에 지배당하고, 어떤 사람의 조건은 어떤 사람의 것보다 명백하게 유리하다.

 


우리는 명백하게 불리한 조건 속에서 현재를 만들어냈다. 엄청난 변화가 빠른 속도로 이루어졌다. RM은 이 점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세상에, 내가 RM의 말에 해설을 달고 있다니… RM, 짱이야!)

 




그래요. 우린 그렇게 목표를 달성해 왔거든요.

그리고 이 방식이 K팝을 그토록 매력적으로 만드는 점의 일부이기도 합니다.

 

물론 그 이면에는 부작용도 있겠죠.

빠르고 급박하게 진행되는 모든 일이 그렇듯이요.

 


교육전문가 이범은 그의 책에서 사회의 변화 속도가 너무 빠르다. 서구에서 2~300년 동안 이룩한 일들을 우리는 5~60년 만에 해냈다. 두 세대가 지나야 가능한 일들이 한 세대 안에 일어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자식들을 자식으로봐서는 안 된다. 손자 세대라고 봐야 한다. 그 정도의 세대 차이를 인정해야만 세대 간의 갈등에 올바로 대처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중요한 건은 자기 인식이고, 주제 파악이다. 너희는 과하다, 과하게 열심이다, 라고 말하는 서구의 기자에게 ‘(너희 나라들의) 제국주의 침략으로 인해 우리는 파괴되었다. 개인의 삶을 희생하고, 극한의 스트레스와 압박을 이겨냄으로써, 우리는 이러한 성과를 이루어냈다라고 대답하는 젊은이. RM을 평범한 사람으로 볼 수는 없겠지만, 이 정도다. 이 정도가 한국 20대의 인식이다.

 


RM에게 미안하다. 여기에 윤대통령을 엮어야 하다니. 윤대통령의 자기 인식을 고려해볼 때, 그러니까 이런 기사를 읽게 되었을 때.

 


윤 대통령은 한-일 관계가 꼬인 것이 역사문제에 대한 일본의 태도가 아닌 2018년 대법원 판결 때문이라는 인식을 보였다. 그는 “강제징용과 관련해 1965년 협정이나 양국 정부의 조치를 문제 삼아 한-일 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았다. 하지만 2018년 대법원 판결로 한-일 관계가 매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게 됐다”고 진단했다 (https://www.hani.co.kr/arti/international/japan/1083682.html)

 


윤대통령은 한국의 대통령이라기보다는 일본의 총리가 되었어야 맞다, 고 생각한다. 독도를 지키지 않으면, 돈까스 한 접시와 오무라이스 한 그릇에 독도까지 팔고 올 거라 예상되어. 나는 심히 불편하고, 걱정스러우며. ㅆㅂ. (생각하시는 그거 맞습니다. ㅆ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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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수하 2023-03-15 20:3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 같아 심히 걱정됩니다….

RM은 예전에 UN 연설문도 심상치 않았는데.. 목소리를 내는 멋진 청년이네요.

단발머리 2023-03-15 21:43   좋아요 2 | URL
수하님도 그렇게 보시죠... 휴우....

RM은 영어할 때 매력 터집니다. 물론 한국말 할 때도 매력 철철 ㅎㅎㅎㅎㅎ 이 무슨 댓글입니까. 굿나잇^^

책먼지 2023-03-15 23:2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전에 BTS의 인문학적 소양은 다 알엠에게서 나온다는 댓글 보고 물개 박수쳤던 적이 있는데.. 단발님의 이 페이퍼에서는 주해 다는 사람의 품위마저 느껴집니다..💕

저는 저 자가 아무 것도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ㅠㅠ 가슴이 너무 답답합니다 진짜

단발머리 2023-03-16 19:22   좋아요 1 | URL
BTS의 인문학적 소양은 다 알엠에게서 나온다는 댓글에 저도 박수를 칩니다.

아무것도 안 하고 오무라이스만 먹고 오면 좋겠는데요. 그러지 않을 거 같아요, 그죠? ㅠㅠㅠ

책먼지 2023-03-17 08:42   좋아요 0 | URL
구상권 행사 안한다고 그사이 촘촘히 일 저질렀더라고요..??? 화딱지 나서 자세히 안 읽었는데 들여다봐야겠죠..? ㅠㅠ

은하수 2023-03-15 23: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래요. 가만히 있다 가면 참 즣겠어요 가슴이 답답!

단발머리 2023-03-16 19:23   좋아요 0 | URL
전 어제는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차라리 술 먹고 뻗었으면 ㅠㅠㅠ 다른 일 안 하고 먹고 놀고 왔으면.....

독서괭 2023-03-16 04: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우 bts 잘 모르는 저도 rm 은 많이 들어봤는데, 자세히 몰랐어요. 존경스럽네요. 아들 키우는 데 롤모델로 삼아야겠습니다 ㅎㅎ
누구랑 넘 비교되네요 ㅠㅠ

단발머리 2023-03-16 19:24   좋아요 1 | URL
좋은 롤모델이 될 것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 물론 인생에는 ‘반면교사‘라는 게 존재하니까요.
그 쪽을 반면교사로 삼아... 아, 슬프네요.

책읽는나무 2023-03-16 14: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RM은 참....♡
알쓸인잡을 보면서 RM은 어쩌면 내가 모르게 더 훌륭해질 수 있겠구나! 그런 생각을 종종 했었거든요. 고 부분을 단발님이 똭!!!!
얘기해 주시네요^^
RM 짱이에요ㅋㅋㅋ

단발머리 2023-03-16 19:25   좋아요 1 | URL
전, 일단 알엠이 머리가 좋다고 생각해요. 근데 노래 만드는 일/랩에 재능이 있다고 했을 때 부모님이 믿어준 거니까요. 그런 면에서 부모님도 큰 일 하셨다~~ 생각합니다. 결론은, 알엠 짱!!

책읽는나무 2023-03-16 19:52   좋아요 0 | URL
근데.....단발님 화가 많이 나셨군요? 욕도 하시공~ㅋㅋㅋ

단발머리 2023-03-16 20:42   좋아요 1 | URL
저 요즘에 욕해요, 책나무님.... 뉴스 보다가 불현듯 확!! 빠바바바바바바박!

공쟝쟝 2023-03-17 06:3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제가 알엠씨가 하는 유엔 연설문 듣고 감격해서 한동안 bts 열심히 이름외웠던 기억이납니다. 잊고 있던 국뽕을 차오르게 만든 알엠 너란 남자....못생겼지만 내가 좋아해. 하지만 얼굴은 뷔가 제일 좋앙... 응? ㅋㅋㅋㅋ
좋았어! 이 글을 읽고 오늘 저는 스피박 갑니다. (마감 하루 앞당겨 한 자의 여유) 후훗!!!

DYDADDY 2023-03-17 08:12   좋아요 3 | URL
드디어 프로젝트를 끝내셨군요. 무사히 끝내신 것을 축하드려요. 그동안 못 읽으신 책도 보시고 홉스와도 놀아주시고 무엇보다 지친 몸과 마음을 잘 추스르시기를 바라요. ^^

단발머리 2023-03-17 18:49   좋아요 0 | URL
쟝쟝님 / 비티에스 얼굴 보고 이름 맞추기, 담에 만나면 해봅시다요 ㅎㅎㅎㅎㅎ 난 완벽합니다.
저도 알엠 좋아하고 얼굴은 뷔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스피박 말고 마리 쪽으로 간거 맞죠?

DYDADDY님 / 저도 축하해 주세요ㅋㅋㅋㅋㅋㅋ 저도 이번 일주일 무사히 잘 마쳤습니다^^ DYDADDY님도 축하드리구요!!

공쟝쟝 2023-03-17 18:56   좋아요 1 | URL
네 마리루티 69페이지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사랑해요 단발머리 ㅠㅠㅠㅠㅜ 난 내 영혼의 지문의 일부가 같은 것으로 구성된 듯한 루티를 루티를 루티를 선물해준 단발머리 감사합니다 ㅠㅜ 피박온니 미안 ㅠㅠㅠ 루티랑 같아요 난 ㅜㅜㅜㅜㅠㅠㅠㅠㅠㅠ

단발머리 2023-03-17 18:59   좋아요 2 | URL
나도 이 책 넘나 은혜로워서 리뷰를 못 썼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선물해 준 내 안목을 나도 칭찬합니다 ㅋㅋㅋㅋㅋㅋ
나가 나를 칭찬하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3-03-17 19:01   좋아요 1 | URL
은혜다 ㅠㅠ 은혜 ㅠㅠㅠ 아니ㅜ이 시점에서 이거 읽어버리면 이건 세상이 나를 사랑한다는 근거없는 확신에 휩싸이게 되고 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3-03-17 19:04   좋아요 1 | URL
한량없는 은혜와 끝없는 감탄은 감사와 기쁨으로 마무리되어 겁나게 긴 페이퍼를 탄생시키며,
새 생명 새 인생 새로운 나로, 나를 이끌어가는데....

DYDADDY 2023-03-17 19:29   좋아요 1 | URL
단발머리님 // 이번주 무사히 보내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고생 많으셨어요. ^^
저는 축하받을 일이.. 단발머리님과의 첫 대화인 것 같아 축하 받고 싶어요. 전부터 같은 정치 성향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서 내적 친밀감은 있었지만 제가 수줍음을 타다보니 그동안 답글을 못달았어요. 처음으로 직접 인사드려요. ^^

단발머리 2023-03-19 20:15   좋아요 0 | URL
DYDADDY님 / 에고!! 첫 대화 당연히 축하드려야죠. 저도 축하받고 싶고요 ㅎㅎ 내적 친밀감 숨기지 마시고 앞으로도 자주 뵈어요^^
저도 인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남들 꺼 다 빼앗아 놓고, 너희 너무 열심히 하는 거 아니야? 라고 빈정대는 서구 열강의 기자에게 너희는 몰라. 우리 역사의 비참함을…’이라고 말하는, 말할 줄 아는, 대중 가수를 보게 될 줄이야. , 대단하다. 멋지고 자랑스럽다.

 

 


윤대통령은 일본 과거사 다 털어준 답례로 128년 된 오무라이스집 간다고 대통령실이 자랑하던데. 69시간 노동 관련해 여론이 나빠지자 보완을 지시했다고도 하고. 후보 시절에 주120시간을 말하던 사람 아닌가. 대통령을 탓하지 말자. 우리는 저 사람이 저럴 줄 모두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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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 2023-03-15 11: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 그냥 RM만 볼래요
굥은 보기도 듣기도 싫네요
69시간 가서 근무 좀 해보라지요
그게 사람이 할 짓인가
아직도 노동자를 기계부품인줄 알아요

단발머리 2023-03-16 19:28   좋아요 0 | URL
알엠만 보기로 하신 것도 좋은 선택이라 여겨집니다.
69시간 노동은 꼭 용산 대통령실에서 지켜줬으면 하고요. 특히 대통령이 지켜야 한다고!!! 이 연사 강력 주장합니다!!

다락방 2023-03-15 13: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제 SNS 통해서 이 인터뷰 보았는데요, 알엠은 윤대통령 보다도 낫지만 저보다도 훨씬 낫네요. 어제 이 인터뷰 내용 보면서 나였으면 뭐라 답했을까 싶더라고요.

아무튼 윤대통령 싫어하는 1인 씁니다.

단발머리 2023-03-16 19:27   좋아요 0 | URL
네, 저도 그 생각했어요. 와, 이렇게 대답할 수 있는 20대라니.... 질문지 미리 준다지만 진짜 대단하지 않나요. 알엠 ‘좋아요‘ 한 개 주기로 하구요.

윤대통령 싫어하는 사람들은 너무 많아서 번호 붙여야 돼요. 제가 1번, 락방님 2번............... (구름떼)

난티나무 2023-03-15 20: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오오!!!!!!

단발머리 2023-03-16 19:26   좋아요 0 | URL
오옷!!! 알엠 멋지죠? ㅋㅋㅋㅋㅋㅋㅋㅋ
 




 














39쪽의 이 문장을 읽으니 마리 루티가 떠오른다.

 


사람은 누구나 외로움을 느낀다. 그러나 여성의 성적, 물질적, 재생산적, 감정적 노동을 그저 남성이라는 이유로 마땅히 받고 누려야 한다는 왜곡된 믿음은 연애 관계가 시작되기 전이라면 인셀의 기질로 이어질 것이고, 관계가 시작된 이후라면 친밀한 파트너에 대한 폭력으로 이어질 것이다. 즉 자신이 좌절감을 느끼거나 앙심을 품거나 질투를 하게 될 때 상대방에게 폭력을 휘두를 것이다. 다시 말해 인셀은 잠재적으로 파트너에게 폭력을 가할 수 있는 존재다. (39)

 





사람은 누구나 외로움을 느낀다. 외로움을 느낄 때, 사람은 반응은 각각이다. 더 많은 모임과 만남으로 외로움을 희석시키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외로움을 호소하는 사람도 있다. 정희진 선생님의 매거진 3월호 <어떻게 우아하게 싸울 것인가>에서 몸의 개별성에 대한 설명이 이것과 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내 마음속, 이 설명 불가한 허전함을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이것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감각된다. 돈이 많아도, 돈이 적어도, 건강해도 혹은 몸이 아파도, 몸을 가진 모든 사람은 인생의 어느 시점에는 내면의 빈 공간을 인지할 수밖에 없다. 다른 어떤 것에 기대는 것보다 타인에게 기대는 게 가장 부적절하고 위험한 일이다.  

 

















타인은 결코 우리를 실존적 불안에서 구원해 줄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타인은 우리의 상처를 치유해 줄 수 없으며, 우리를 온전한 존재로 만들어 줄 수도, 마법처럼 고통을 가시게 하거나 어떤 최종적인 상태에 이르게 할 수도 없다. 타인이 자아실현의 순간이라는 기회를 제공해 줄 수는 있겠으나, 우리를 구원해 줄 수는 없다. (<가치 있는 삶>, 101)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외로움을 느낀 인셀들. 모든 사람에게 기본값인 외로움이 자신의 부족함과 타인의 멸시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들은 폭발한다. 기본값을 모르는 이들의 반란. 그 처절한 인정 욕구. 헛된 결심 그리고 완벽한 파멸.




그래서 나는 여성혐오를 여성들이 직면하는 사회적 환경의 특징으로 이해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주장한다. 그런 사회환경에서 여성들은 혐오로 가득하거나 적대적인 대우를 받게될 가능성이 크다.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그리고 여러 사례들에서 동시에 드러나듯 여성으로서 하면 안 될 "나쁜" 행동을 했다는 이유로 말이다. - P24

그러나 인셀이 대체로 섹스와 사랑을 갈구하는 것은 자기 자신의 성적 욕망을 최우선으로 충족시키기 위해서나 섹스와 사랑 그 자체를 원해서가 아니다. 인셀의 수사법은 인셀이 섹스와 사랑을 재화로 여기며, 도구적 이유로 추구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여성들의 애정 혹은 그들과의 섹스를 ‘채드‘에 상응하는 남성적 위계에서 지위를 구매하기 위한 현찰쯤으로 여기는 것이다. - P35

합리적 의심 그 이상의 증거가 있다고 믿지만 그게 상당한 근거 probable cause로 작용하지 않는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범죄 입증 증거로서 전자의 기준은 후자의 그것보다 훨씬 높다. - P73

‘상당한 근거‘의 사전적 정의는 "합리적 수준의 의심"으로, 이는 "조심스럽고 신중한 주체가 충분한 정황적 증거를 가지고 특정 사실이 참일 수도 있다고 판단할 수 있을때 내릴 수 있는 판단이다. 반면 ‘합리적 의심을 넘어서는 증거란 기소 과정에서 제시된 명제가 참임을 합리적 개인이 보기에 의심할 여지가 전혀 없을 때까지 증명해야 하는 것을 뜻한다. 관련하여 다음 내용을 보라. https://www.lawfirms.com/resources/criminal-defense/defendants-rights/defining-probable-cause.htm. (22 : 73쪽의 주) - P288

강간 키트의 결과가 분석되지 않은 강간 피해자의 86퍼센트가 유색인 여성이라는 통계는 정신이 번쩍 들게 한다. 워시 검사는 이렇게 말했다. "(분석되지 않은 강간 키트 중)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백인 여성의 것을 찾기는 어려울 겁니다. 이들의 검사 결과는 다른 대접을 받거든요. 이들이 겪은 강간사건은 해결됩니다. 불행히도 강간 사건에서 인종은 여러면에서 유색인 여성들의 검사 결과가 방치되는 주요한 이유로 작용합니다. 형사 정의 실현을 내거는 시스템 내부에 이런사례가 정말 흔하게 널려 있습니다. - P78

권력을 쥔 남성 중에서도 가장 막강한 권력을 쥔 남성은 별다른 대가를 치르지 않고 세상 모든 사람을 성적으로 "소유할" 권리를 인정받는다. - P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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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3-03-14 09: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시작하셨군요! 저도 얼른 시작해야겠어요. 일단 비비언 고닉 좀 끝내고요 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3-03-16 19:29   좋아요 0 | URL
비비언 고딕 끝내신 거 축하드리고요 ㅋㅋㅋㅋㅋ 이 책 생각보다 잘 읽히지요? (여성주의 책은 좀 어려운 책이라고 예상하는 사람) 저도 진도 쭉쭉 나가고 있습니다^^

거리의화가 2023-03-14 09: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작하셨네요!^^ 저도 이 챕터 인상깊었어요. 외로움을 어떻게 발산하는가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됐습니다.

단발머리 2023-03-16 19:30   좋아요 0 | URL
네 저도 이제 막 시속 40키로로 달리고 있습니다. 거리의화가님도 화이팅 하시고요 ㅋㅋㅋㅋ 우리 결승선에서 만나요!

바람돌이 2023-03-14 18: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모든 인간은 외로움을 느끼는데 우리는 왜 아이들에게 그 외로움을 겪고 통과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지 않는것일까요? 사실 방법은 너무 많잖아요. 친구들과의 수다, 혼자 여행으로 외로움에 아예 절어버리는것, 운동, 섹스 등등 뭐 끝도 없을 수 있는데.... 단발님 이 페이퍼 읽으면서 너무 공감이 되어서 갑자기 좀 울컥해졌어요. 너무 외로운데 소통하는 방법을 몰라서 그걸 타인의 탓으로 돌리는 것 밖에 모르게 되는 사람들. 아니면 내탓이야를 외면서 자기를 파괴하는 사람들... 점점 많아질거라고 생각하니 또 울컥하네요.

단발머리 2023-03-16 19:33   좋아요 1 | URL
전 그 생각도 많이 했어요. 그걸 모르고 나이가 들어버렸을 때요. 사회적 활동이 줄고 자식들은 자주 안 오고. 그럴 때의 열패감?
그 외로움, 허전함, 쓸쓸함은 사실 인생의 기본 조건인데, 그걸 모르는 경우에는 주위 사람들을 탓하기도 하구요. 자식이죠, 주로.
남편이 있어도 자식이 있어도 손자가 있어도, ˝사람은 누구나 외로움을 느끼잖아요.˝ 암튼 고민되는 부분입니다. 초고령화 사회를 예견하면서 더 그런 생각이 많이 들고요. 바람돌이님의 제안들을 젊었을 때 시행해보고 실험해 봐야 하는데 말입니다. 쩝.

공쟝쟝 2023-03-17 06:4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 응?아닌가... 스피박이 아니라 역시 <가치 있는 삶>인가? ㅋㅋㅋㅋㅋㅋ
뭐읽지... 끵ㅋㅋㅋ

단발머리 2023-03-17 18:57   좋아요 1 | URL
스피박 어려워서 난 엘렌 식수 읽고 있어요. 해러웨이 스피박 식수 중에서 식수가 젤 쉬움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마리 읽겠다고 했죠? ㅋ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3-03-17 18:57   좋아요 1 | URL
식수 너무 좋아 🥹 저 선물하기로 했어요 오늘 나한테 마감기념 선물 곧 땡투갈겁니다 ㅋㅋㅋ
 




 














169쪽까지 읽고 쓴다.

 


고등학교 때부터 절친인 친구가 말하길, 나는 관계의 갈등 상항에 맞서기보다는 회피하는 스타일, 이라고 했다. 맞는 것 같다. 나는 그런 편이다. 인간관계에서만 그런 게 아니라, 다른 상황에서도 비슷하게 행동한다. 해야만 하는 일을 후딱 해놓은 뒤, 편안히 쉬는 스타일이 아니고, 미루고, 미루고, 미룰 수 있는 데까지 미루다가 정말 어쩔 수 없을 때, 후다닥 해치우는 스타일이다. 갈등이든 혹은 부담이든, 뭐든 미루는 스타일이다. 해야 하는 일을 미뤄두고 이 책을 읽었다.

 


제목에서 미루어 짐작하기는 박테리아에서 시작된 진화의 역사가 인간에게까지 이르고, 인간 정신의 극한 바흐까지 이르는 과정을 설명할 듯하지만(책소개는 그러함), 앞부분에서 저자가 주목하는 제일 중요한 생각은 이해력 없는 능력competence without comprehension’이다.

 


인간 반응의 중심 특성이자 우리 종에게만 고유한 특성 중 하나는, 상대에게 스스로를 설명할 것을, 그리고 선택과 행동을 정당화할 것을 요구하며, 그렇게 얻은 설명과 정당화를 바탕으로 상대를 판단하고 보증하고 반박하는 활동을 한다는 것이다. 이 활동은 순환적인 "" 게임 안에서 이루어진다. 아이들은 자기 역할을 일찍 깨치고, 종종 그 역할을 과도하게 수행하면서 부모의 인내심을 시험하기도 한다. "널빤지를 왜 잘라요?" "문짝이 망가져서 새 문짝을 만드는 거란다." "새 문짝은 왜 만드는데요?" "그래야 우리가 외출할 때 잠그고 나갈 수 있으니까." "왜 외출할 때 잠그고 나가야 하는데요?" "모르는 사람이 우리 물건을 가져가면 왜 안 돼요?" …………… "우리한테 물건이 왜 있어요?" 이 상호 이유 점검 reason-checking에는 우리 모두 참여하며, 또 모두 능수능란하게 이것을 해낸다. 이 사실은 상호 이유 점검이 우리 삶을 영위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는 증거가 된다. 이 이유 점검 활동에서 적절히 대응하는 우리의 능력은 책임의 뿌리다. (91)

 


저자는 인간 반응의 중심 특성이자 우리 종의 고유한 특성이 이유설명을 찾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비생물 세계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차등 존속persistence이 차등 재생산reproduction으로 점진적으로 변하는 과정(99)을 설명하면서, 이유를 찾는 인간의 특성을 다시 한번 지적한다. 그의 결론은 명확하다. (진화에는) 전혀 이유가 없다. 무엇을 위해? 라는 질문은 무용하다.

 









그가 제시하는 예 중의 하나는 흰개미 성과 안토니 가우디의 사그라다파 밀리아성당의 놀랍도록 비슷한 구조다. 흰개미 성의 구조와 형태에는 이유들이 있지만, 성을 건축한 그 어떤 흰개미도 그 이유를 표상하지 않는다. 그 구조를 계획한 흰개미도 없고, 왜 그러한 방식으로 성을 지었는지 눈치챈/이해한 흰개미는 없다. 이것이 바로 이해력 없는 능력competence without comprehension’이다.

 


그들(다윈과 튜링)에 의하면, 이 세상의 모든 탁월함과 이해력은 궁극적으로는 이해력 없는 능력으로부터 발생하고, 이 이해력 없는 능력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한층 더 능력 있는 ㅡ 따라서 이해력을 갖춘 ㅡ 체계로 합성된다. 이는 실로 기묘한 뒤집기로서, 전 다원주의적인 창조론의 '마음 먼저 mind-first' 관점을 전복시켜, 지성적 설계자는 가장 나중에 나온다고 말하는 우리의 궁극적 진화 이론인 '마음 나중mind-last' 관점으로 바꾸어버린 것이다. (113)

 


이를 논증하기 위해 저자는 이 책의 첫 문단을 다시 한번 반복한다. 박테리아는 자신들이 박테리아라는 것을 모르지만, 분명히 그들에게 적합한 방식으로 생존하며, 자신의 환경세계 내에서 그들이 식별하는 것들을 피하거나 추적하거나 끌고 갈 능력을 지닌다.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 필요가 없으면서 말이다. (145) 대자연에게 같은 질문을 던져보자. 그들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을까. 아무 생각 없었다. (149) 저자는 이러한 이해력 없는 능력이 지구 생물의 압도적 다수가 살아가는 방식이기에 이것이 기본 전제(154)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구상 생물 대다수의 생존법, 이해력 없는 능력. 그것이 인간에게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을까. 공통 조상에게서 시작해 지난한 진화의 과정을 거쳐온 진화의 최종 산물, 언어와 도구를 사용하고, 독자적인 문명을 이룩한 인간에게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는 전제일까?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하면서, 아무 생각 없이 존재하는 것? 그것으로 인간 존재는 만족할 수 있을까.

 


나는 이미 결론을 예상하고 이 책을 읽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뇌는 우리 몸의 다른 부분과 마찬가지로 단백질 덩어리이고, 자아와 정신, 영혼은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으며, 뇌는 곧 마음. 내 마음이란 곧 내 뇌의 신경세포 사이 전기신호의 변화를 뜻하며, 종교란 인간 세계의 결속을 위해 지어낸 가장 세련된 거짓말로, 죽으면 모든 게 끝이다. 죽으면 끝이다. 하지만 이게 정말 다일까?

 

 


진화를 설명하는 과학에 대항하는 가장 큰 방해 요인, 인간 중심주의와 목적에 대한 집착은 여전히 미지수로 남아있다. 목적 없이, 목표 없이, 방향 없이, 어떠한 기대 없이 이루어진 진화의 과정에 동의 (동의라는 표현이 정확하지는 않다)한다고 하더라도, 나는 인간 삶의 무의미함에 대해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모든 것의 종국이 소멸이라면, 그것이 결과로써 삶의 궁극이라면, 우리는 왜 살아야 하는가. 왜 지금, 나는 살아있는가.

 


 

의미에 대한 강박, 목적에 대한 집착을 여전히 벗어나지 못한 나. 원자들의 합으로서만 존재하고 싶지 않은 나. 느끼는, 생각하는, 현재의 가 다시 책을 펼친다. 결투하며 읽겠다. 피 튀기는 소리가 멀리멀리 울려 퍼지고, 목적을 찾아 헤매는 나의 발걸음은 더욱 무거워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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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3-03-13 07: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도서관에 가면 늘 마주치는 책이 이 책이었어요. 책이 넘 두꺼워 빌려 읽을 엄두는 안나는데, 왠지 재밌어 보여 호기심은 생기는데...단발님의 리뷰도 자꾸 호기심이 생기게 만드십니다ㅋㅋㅋ
월요일인데 말이죠?^^

단발머리 2023-03-16 19:34   좋아요 0 | URL
저 이 책 마저 읽다가 자꾸 잠들어서 ㅋㅋㅋㅋㅋㅋㅋ 지금 멈춤 상태입니다. 큰일이네요. 책나무님의 호기심 더 충족시켜 드려야 하는데 말이지요.

다락방 2023-03-13 09:0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죽으면 끝인데, 정말로 인간은 왜 태어나서 왜 살고 있는걸까요? 게다가 그 삶이 때론 힘겹기까지 하잖아요?

결투하며 읽기를 계속해주시고 목적을 찾아 헤매는 여정도 계속해주세요. 그리고 무언가 찾아내실 때마다 열심히 써주시길 바랍니다. 저도 자주 생각하거든요. 왜 태어났고 왜 사는걸까, 어차피 죽을건데... 하고 말이지요. 답을 찾는다면 공유합시다, 단발머리 님.

단발머리 2023-03-16 20:11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의 질문이 저의 질문이고, 그 질문이 제가 이런 책들을 찾아 읽는 이유이며.......
오늘 아침에 라디오에 장강명이 나오는 거에요. <악령>의 한 문장을 읽어주더라구요. 인간은 자살하지 않기 위해 신을 만들어냈다. 정확한 워딩은 아니지만, 이런 의미였어요.

제가 오래오래 고민하고 연구하고 또 고민해서 깨닫게 된 작은 것들을 주워와 보겠습니다. 공유경제 같이 이뤄가요, 다락방님!

유수 2023-03-13 15: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흥미롭네요. 저자들이 인간 종에게 ’이해력 없이 능력‘이 가능하다고 보는 건지도 궁금하고요. 건투를 빕니다 단발머리님🧡

난티나무 2023-03-13 15:59   좋아요 2 | URL
같은 시간에 단발머리님 글 읽고 있다는!!!!! 저도 동감입니다~

단발머리 2023-03-16 20:22   좋아요 0 | URL
유수님 / 이해력 없는 능력, 에 대해서 많이 나오더라구요. 건투는 감사한데 ㅋㅋㅋㅋㅋ 이 책 어렵네요. 호호.

난티나무님 / 두 분 하이파이브라도 하셔야 되는 거 아니세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