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가 아닌, 그제 아침의 일이다. 한밤에 꿈이 너무나 또렷해 안방에서 걸어나와 거실 책장 앞에 섰다. 없었다. ‘엘렌 식수는 없었다.

꿈 속에서 나는 똑같은 자리에 서 있었는데, 책장의 맨 왼쪽, 위에서 두번째 칸 앞이었다. 그 자리는 필립 로스 구역이다. 나는 그곳에 필립 로스의 책을 모아두었다. 그런데, 꿈 속에서 나는 필립 로스 구역에서 『엘렌 식수』라는 제목의 책을 뽑아 들었다. 꿈 속에서도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 엘렌 식수는 사람 이름인데, 제목이 '엘렌 식수'네? 나한테 이런 책이 있었나. 그럴 리가. 책을 뽑아 들고는 꿈에서 깼다. 일년에 한 두 번밖에 꿈꾸지 않는 나는, 아침에 다시 책장 앞에 섰다. 그럴 리가. 그럼 그렇지. ‘엘렌 식수라는 책은 없었다.

알라딘에 엘렌 식수라고 검색해 보니, 이 책이 제일 먼저 검색된다. 제목에서부터 카리스마를 뿜뿜하는 이 책, 『메두사의 웃음/출구』. 책표지의 제목은 『메두사의 웃음/출구』이고 알라딘 제목은 『매두사의 웃음 출구』로 표시된다. 나는 이 책을 아직 읽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이 책의 존재조차 알지 못 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엘렌 식수를 꿈꿨는가.











어렴픗 떠오르는 책은 『부엌 청소로 오르가즘을 느끼는 여자는 없다』. 이 페이지를 찍었던 기억이 그제야 난다.













여성은 자기 자신을 써야 합니다.

여자들에 대해 써야 합니다.

여자들은 글 쓰는 자리로 이끌어야 합니다.

여자들은 그들의 신체와 마찬가지로 난폭하게

그 자리를 박탈당해 왔습니다.

여성은 자기 자신의 해방 운동을 통해

세상 속으로, 역사 속으로 들어가듯, 글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엘렌 식수


여자들의 글쓰기에 대한 엘렌 식수의 글을 읽고 나니 여성적 글쓰기가 떠오른다. 나의 서재-서재 태그를 통해 여성적 글쓰기와 연결된 글을 찾는다. 그렇게 나는, 작년에 내가 썼던 글을 어렵사리 기억해낸다.




엘렌 식수Helene Cixous는 여성을 억압하고 침묵에 빠뜨리는 가부장제의 이항대립적 사고의 기반을 약화시키거나 무너뜨리는 언어로 여성적 언어를 말한다. 또한 이런 종류의 언어가 이른바 여성적 글쓰기ecriture feminine를 통해 가장 잘 드러날 수 있다고 믿는다. 여성적 글쓰기는 자유로운 연상에 따라 유동적으로 구성된다. 여성적 글쓰기는 미리 정해진 올바른구성법, 합리적인 논리 규칙(경험 인지에 관한 협소한 정의에 근거하여 다양한 종류의 감정적, 직관적 경험을 불신하는, ‘머릿속에서만 머무르는 논리), 선형추론 linear reasoning(x 다음에는y, y다음에는 z가 온다는 식의 추론)등을 요구하기 마련인 가부장적 사고방식과 글쓰기 양식에 저항한다. (『비평이론의 모든 것』, 228)





신체와 마찬가지로 쓰는 자리, 말하는 자리를 박탈당한 여자의 위치에서, 쓴다. 페미니즘 현몽은 이렇게 내게 왔는데, 시작은 엘렌 식수이다. 알게 모르게 지나쳐 왔던 '엘렌 식수'를 이제 다시 읽게 될 것이고, 그리고는 쓰게 될 것이다. 그 다음, 그리고 그 다음, 그 다음 다음의 현몽에서 또 다른 인물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꿈꾸고, 책을 뽑아 들고, 책을 찾아 보고, 읽고 그리고 또 쓰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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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8-05-08 1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발님이 공부하시고 이제는 꿈도 꾸시면서!! 페미니즘에 대한 글을 적어주시는 게 너무 좋습니다. 응원하고 지켜보고 있어요. 이 글을 보니 저 역시 짤막한(실제로 짧게 쓸지 어떨지 모르지만)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쓰러 가야겠어요. 슝-

단발머리 2018-05-13 19:39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의 응원에 제가 항상 파이팅하고 있다는 거.... 꼭.... 기억해 주세요.
같이 공부하는, 서로 응원하는 다정한 친구가 다락방님이라서, 참 좋아요~~ ^^
 





















8 2, 집을 나섰다. 어제 반납해야 하는 책을 반납기에 넣기 위해서다. 아침에 책을 꺼내는 시간은 8 30. 이전에 책을 반납하면 이전날 반납으로 처리되고, 그러면 연체가 아니다. 자주 있는 일이기는 한데, 이번에는 이유가 있다. 무더기를 대출해왔을 , 책도 같이 왔는데, 제목부터공부가 본업 학생들에게 적합할 같아본업이 공부 사람에게 권했더니, 흔쾌히 책을 받아 들었다. 금방 시험기간이 됐고, 시험이 끝나고는 라이어던 신간이 나왔다. 그래서, 책은 그렇게 쓸쓸히 반납일을 맞이한다. 



도서관까지 가는 길에 책을 펴서 읽는다. 1 공부는 만한 가치가 있다, 2 있다는 자신감을 갖는다, 3 공부하는 시간을 정하고 시간이 되면 몰입한다,까지 읽었다. ,하게 만드는 공부열정을 지닌 엘리휴 버릿의 일기를 찍고. 








집으로 향한다. 이른 휴일 아침, 아파트는 조용하다. 아이들이 없는 어린이 놀이터. 다시 집으로. 




집에 들어서니 아이들은 아직 꿈나라이고, 익숙한 분들 어김없이 나를 맞아준다. 사랑의 , 맞잡은 놓지 말고 우리 사람 오래오래 행복했으면 좋겠다. 








이렇게 어린이날 식전행사를 마쳤고, 이제 행사가 남았다. 서둘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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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8-05-05 1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지런하신 단발머리님^^ 본 행사도 궁금해요~~

단발머리 2018-05-05 14:33   좋아요 0 | URL
제가 책을 많이 빌리는만큼 ㅎㅎㅎㅎ 연체도 잦아서요.
올해는 연체 안 하자 했더니 이렇게 일찍 도서관행을 하게 됐어요^^
세실님~ 즐건 연휴 되시길요~~~

psyche 2018-05-05 1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도서관 문 열기 바로 전에 종종 책 반납하는데 ㅎㅎ 저 액자는 결혼사진인가봐요. 위에는 단발머리님이 밑에는 문대통령님이 손을 꼭 잡고 계시네요. 단발머리님 말씀대로 오래오래 행복하시길.

단발머리 2018-05-05 14:37   좋아요 0 | URL
이 글 올리고 생각해보니 오늘 휴일이라서 밤까지 여유가 있었네요 ㅋㅋㅋ
저번 판문점 선언 때 남북 정상 두 분이 손 잡고 월북 월남했을 때의 감격을
전 한겨레의 특별판으로 기억하고 있어요. 그래서 떡하니 붙여놓았습니다.
떨어져있던 시간만큼 어느 정도의 간극이야 아쩔수 없겠지만,
오래오래 사이좋게 행복하기를, 저도 바래봅니다.

라로 2018-05-06 0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연체 잦아요. 흑
근데 본행사도 궁금해요~~2 ㅎㅎㅎㅎ

단발머리 2018-05-13 19:42   좋아요 0 | URL
전 올해부터 (앗! 실패!!) 오늘부터 연체 안 하는 사람이 되려고 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본행사는 인도네팔 카레 음식점에 갔구요. 그리고는 교보문고에 갔고,
아이들은 핸폰 하면서 쉴 때 엄마 아빠는 쇼핑을 했다는.... 어린이날 맞나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보슬비 2018-05-08 0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엔 되도록 연체안하고 되도록 재대출했는데, 재대출해도 읽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서 이제는 연체를 하더라도 다 읽고 반납하는 방향으로 바꾸었어요. 그래서인지 연체반납하면 그 기간동안 대출불가 패널티를 받아서 되도록 빨리 읽고 반납하게 되네요.ㅎㅎ 대신 요즘 저도 단발머리님처럼 도서관 오픈전 반납으로 아슬아슬하게 반납기간을 맞춰요.

단발머리 2018-05-13 19:44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요. 그래도 전 대출불가 패널티에도 반납비가 없으니까 (예전에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졌거든요.)
연체를 너무 가볍게 보기는 했어요. 반성합니다. ㅠㅠ
도서관 오픈 전 반납은 뭐, 저의 특기로서.... 이제 미리미리 반납하는 새생활을 시작하려 합니다~~~~~~ 빠샤!!
 




군사 분계선 앞에서 

이런 투샷을, 이렇게 빨리 보게 될줄이야. 



설렌다. 

조금, 조금 많이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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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8-04-28 0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간 순간 뭉클하더라고요. 이게 다가 아닐지라도 정말 의미 있고 감격적인 순간을 만끽하고 싶어요.

단발머리 2018-04-28 08:28   좋아요 0 | URL
이게 나랑 무슨 상관이냐, 아니면 이게 뭐냐,라고 평가절하하는 사람들이 불평해도 상관없더라구요. 이제 이 커다란 역사적 흐름을 방해할 수 없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맞아요, 어제는 순간순간 너무 감격스러웠습니다...
 





프로이트는 분명히 말한다. 모든 억압은 성적 억압에서 비롯되며 성과 연관된다. 모든 억압은 성으로부터 시작되는가? … 프로이트가 말한 억압은 상식적이거나 보편적인 욕망의 억압이 아니라, 영유아의 성욕에서 출발해 인류를 근본적인 진화 과정으로 이끄는 억압, 리비도를 잠재의식 속에 욱여넣는 특정한 억압이다. 상식적이거나 보편적인 욕망은 근원적인 것이 아니며 스스로 포기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성욕은 다르다. 성욕은 번식의 기초이며 인간에게는 시도 때도 없이 일어나는 욕구이기 때문이다. 이는 인간의 가장 특수한 지점이지 보편적인 생물 종의 욕망이 아니다. (107) 





중화권의 대표적인 인문학자(출판사 소개) 양자오의 안내를 따라 프로이트를 읽는다. 프로이트가 말하는 성욕은 번식의 기초로서 인간의 보편적인 욕망 가운데 가장 근원적인 것이다. 스스로 포기할 없는 욕망이며, 인간을 가장 강력하게 규정하는 욕망이다. 



필립 로스는죽어가는 짐승』에서 말한다. 




필요한 매혹은 섹스뿐이야. 섹스를 제하고도 남자가 여자를 그렇게 매혹적이라고 생각할까? 섹스라는 용건이 없다면 어떤 사람이 어떤 다른 사람을 어떻게 그렇게 매혹적이라고 생각할 있을까? 그런 용건 없이 누구에게 그렇게 매혹될까? 불가능하지. (28)









프로이트는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는 인간이 성욕에만 집중하지 않도록 통제하는 세밀한 기제가 존재한다고 말한다. 억압을 통해 인간이 거대한 생식 기관으로 변하는 것을 막고, 가능한  생식기를 지연시킴으로써 문명과 사회를 만들어간다고 주장한다.(103)



질문 : 만약 인간의 성욕이 어떤 방식으로든 제한 받지 않는다면 억압은 발생하지 않는가? 성적으로 완벽하게 자유로운 상황에 처한다면 성욕의 발산에 제한 받지 않는 인간은 행복하다고 느낄 것인가? 



여기 남자가 있다. 남자는 자신이 원하는 외면적 요소와 내면적 요소를 갖춘 여성들과 언제든지 접촉할 있다. 언제 어디서든 원하는 여성과 원하는 만큼 섹스할 있다. 장소, 시간의 제한을 받지 않는다. 남자의 욕망을 거부하거나 반대할 사람이 없다. 남자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있다. 원하는 대로 섹스할 있다. 


여기 여자가 있다. 여자는 자신이 원하는 스타일의 남성, 자신이 선호하는 성향의 남성들과 언제든지 접촉이 가능하다. 3 방향 현빈, 9 방향 조인성, 1 방향 김수현, 11 방향 박형식. 손짓만 하면 부를 있다. 장소, 시간의 제한을 받지 않고, 원할 때마다 원하는 사람과 원하는 만큼 있다. 



그렇다면, 자신의 성욕이 일체의 제한을 받지 않는 상태의 남자와 여자에게는 어떠한 억압도 존재하지 않는가. 원하는 사람과 원할 때마다 원하는 만큼 섹스할 있을 , 남자는, 여자는 만족하는가. 행복하다고 느끼는가.  눈에 반한 남녀는 상황에 해당되지 않는다. 서로를 알아본 사람은 전기가 통했기에, 적어도 순간만큼은 서로를 원하고,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말이다. 


요는, 인생에 가장 중차대한 용무인 섹스를 위해 돌진하는 인간의 욕망이 어떠한 제한도 받지 않고 모두 해소되었을 , 행복하냐는 것이다. 3 방향 현빈, 9 방향 조인성, 1 방향 김수현, 11 방향 박형식. 



섹스라는 최종적 목표에 도달하고자 , 쾌락을 실현시켜 주는 대상은 앞의 어떤 사람이다. 그는 나의 쾌락을 위해 존재한다. 나는 그를 이용해 나의 쾌락을 최대화한다. , 나는 행복한가. 그가 나의 쾌락의 도구가 되어줄 나는 행복한가. 자신의 기쁨이 아닌, 나의 기쁨을 위해 자신을 내어줄 나는 행복한가. 강요된 웃음, 억지 미소로 나를 대할 , 나는 행복한가. 그가 나를 사랑하는 연기할 , 나는 행복한가.  


성적 욕망에 제한이 가해졌을 억압이 발생한다. 하지만, 끝없이 섹스라는 욕망을 발산하는 것은 해결책이 되지 한다. 가장 내밀하고 개인적인 경험인 동시에 상호활동이 요구되는 섹스라는 행동이 이루어질 , 섹스의 대상인 인간 역시 행위에 동의하는가. 그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결국에는 자발성, 자유의 문제다. 역시 나처럼 원하는가. 그도 지금 원하는가. 




 

나의 사랑이 타자의 사랑을 강제하지 못하는 비극이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타자 또한 나와 마찬가지로 자유를 가지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점에서 사랑의 비극이 우리로자유 문제에 대해 숙고하도록 만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고 있다. 누군가를 사랑할 , 상대방도 나를 사랑하도록 강제할 수는 없다. 이것은 그가 나와 마찬가지로 자유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304/770)







다윈은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변화시켰고, 마르크스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변화시켰으며, 프로이트는 인간과 인간 자신의 관계를 변화시켰다(30) 식의 정리는 지나친 단순화에도 불구하고, 한번에 이해하기 쉬운 떨어지는 설명인 사실이다. 『꿈의 해석』 19세기의 주류 서술의 패권을 부쉈다는 평가(262) 작가와 독자 사이에 새로운 관계를 제시했다는 설명 또한 흥미진진했다. (270) 



인간 존재의 가장 중요한 임무인 성이 억압이 아닌 해방으로서 존재하는 경우는 언제일까, 생각한다. 『꿈의 해석』에서 답을 찾을 수가 있겠다, 기대는 금방 허물어져 버리겠지만, 일단 오늘의 기대는 오늘의 기대로 족하다. 



이때야말로 syo님의 프로이트 리스트를 시작할 때인가. 도서관 홈페이지를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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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8-04-23 1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 대단한 거 알려드렸다고.... syo 리스트 이러니까 위대해 보인다^-^

단발머리 2018-04-23 19:27   좋아요 0 | URL
암요~~ 대단한 리스트예요~~
믿고 따라가는 syo님 리스트!!!
syo님 리스트 다른 것도 있어요. 마르크스라던가... ㅋㅋㅋㅋㅋㅋ 잘 정리해 놓아야 담에 필요할 때 똭! 찾을수 있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syo님은 앞으로도 좋은 책을 계속 소개해주시고요~~~^^
 



















레누는 어린 시절 같은 초등학교를 다녔던 니노를, 중학교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던 니노를, 다른 사람의 시선에 개의치 않는 자유로운 옷차림의 니노를, 키에 마른 몸의 니노를, 헝클어진 머리카락의 니노를, 가느다란 손가락의 니노를 사랑했다. 니노를 사랑했다. 


여자친구가 있는데도, 입술에 키스하고, 손깍지를 끼며 호감을 표시하는 니노 때문에 레누는 여름 내내 설레이는데, 니노는 레누가 아닌 릴라와 사랑에 빠진다. 뜨거운 여름, 한껏 불붙은 사랑은 한치 앞도 예상할 없는 최악의 위험 속으로 사람을 밀어 넣고, 릴라는 현재의 안락함을 버리고 태양처럼 뜨거운 열정을 선택한다. 니노를 선택한다. 



They had been living together for twenty-three days, a cloud in which the gods had hidden them so that they could enjoy each other without being disturbed. (360)



23일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다. 23일이라면, 3 보다 이틀이 많고, 달에서는 일주일이 부족하다. 과거와 미래를 모두 뒤로 하고, 현재만을 추구하고자 선택한 금지된 사랑은 각자의 여자친구와 남편을 떠나는 것으로 결실을 맺은 했지만, 사랑은, 뜨겁고 행복한 사랑은 겨우 23일만에 그렇게 끝난다. 


릴라가 사랑한 것이 니노의 젊음 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릴라는 니노와 니노의 지성을 사랑했다. 니노만큼 니노의 글을 원했고, 니노에게 열망한 것처럼 그가 읽는 책들을 열망했다. 읽고 말하고 쓰고, 다시 읽고 말하고 쓰는 삶을 원했다. 니노와 일을 함께하길 원했고, 니노를 통해 일을 계속하길 원했다. 불쌍한 릴라가 몰랐던 니노는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니노가 그들의 초라한 거처를 떠나던 밤의 말다툼에서도 니노의 그런 생각이 드러난다. 니노는 릴라가 자신의 생각을 망쳤다고 생각한다. 그녀 때문에, 그녀의 조언 때문에, 다시 보라는 그녀의 제안 때문에 자신의 작업이 방해 받았다고 생각한다. 



관심은 니노가 아니다. 니노는 정말 릴라를 사랑했을까. 사랑한다 말했으면서 그녀를 떠났을까. 싸우고 떠나서는 돌아오지 않았을까. 니노는 그랬을까. 이런 질문은 질문이 아니다. 이런 니노를 레누는 사랑하는가. 니노가 이런 사람이라는 알면서도 레누는 , 그를 사랑하는가. 질문은 이것 뿐이다. 


니노의 외모에 대한 레누의 언급을 기억하면서, 이런 가능성을 생각해 보았다. 





아름답다는 것은 성공하는 자식을 낳을 확률이 높다 뜻이다. 어떤 여성이 남성을 보고! 정말 잘생겼다!’라고 생각할 , 그리고 암컷 공작이 수컷 공작을 보고어머! 꼬리가 너무 멋져!’라고 생각할 , 여성과 암컷 공작은 자판기와 비슷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남성 또는 수컷 공작의 몸에서 반사된 빛이 여성 또는 암컷 공작의 망막에 가닿을 수백만 년의 진화를 통해 연마된 초강력 알고리즘이 작동하기 시작한다. … ‘십중팔구 수컷은 건강하고 생식력 있는 수컷이고 우수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수컷과 짝짓기를 한다면 자식도 우수한 유전자를 지닐 것이고 건강할 것이다.’ 물론 이러한 결론은 언어나 숫자로 표현되지 않고, 강한 성적 끌림으로 표현된다. 암컷 공작들 그리고 대부분의 여성들은 펜과 종이를 놓고 이런 확률을 계산하지 않는다. 단지 느낄 뿐이다. (126) 




실비아가 낳은 니노의 아이를 품에 안았을 , 니노의 아이들을 만났을 , 레누는 니노의 아이, 니노의 자식에 대해 묘한 감정을 느낀다. 어쩌면 레누는 정말 니노의 아이를 원했는지도 모른다. 말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어쩌면 이성적으로 설명할 없는 바로 이유 너머로, 레누는 니노의 아이, 니노를 닮은 아이를 자신이 낳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레누는 니노의 지성을 사랑한 것인지도 모른다. 출판기념회에서 곤란에 빠진 자신을 도와준 니노를, 레누는 사랑한 것인지도 모른다. 크고, 위대한, 중요한 일들을, 그렇게 믿겨지는 일들을 말하는 니노. 논리 정연하게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니노. 레누는 니노의 그런 면에 반했는지도 모른다. 레누를 빼앗기 위해 아이들 앞에서 레누의 남편을 놀리고, 골리고, 심지어 냉담한 언사를 퍼붓는 니노를 보며, 레누는 나폴리 시골 마을에서 자신과 함께 자란 니노가 이탈리아 명문가의 아들에게서 거두는 승리를 통쾌하게 생각한다. 레누는 똑똑한 니노, 명석한 니노를 사랑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궁금한 것은,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됐음에도 니노를 계속 원하는 레누의 마음이다. 니노는 금방 식어버리는 열정적인 사랑을 하는 사람이고, 모든 것을 버리고 자신을 선택한 여자에게 무책임한 사람이고, 사랑하는 여자와의 관계에서 잉태된 아이에 대해 무관심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를 사랑하는 레누의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 사람의 마음은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가끔 감정은 판단을 넘어선다. 레누는 마음이 원하는 , 진심이 원하는 것을 선택한다. 그녀는 니노를 사랑한다. 


나는, 레누가 자신과 니노와의 사랑은 릴라와 니노와의 사랑과는 다르다고 생각했을 거라 추측한다. 니노와 릴라의 사랑이 서로의 육체적 아름다움에 이끌린 열정에 근거한 사랑이었다면, 니노와 자신의 사랑은 서로의 지적 매력에 고무된 전혀 다른 차원의 사랑이라고 믿었을거라 생각한다. 자신의 사랑은 세상의 것과는 전혀 다른 , 완전하고 진실한 사랑이라고 믿었을거라 예상한다. 



레누는 니노를 사랑하는가. 


열정적인 구애를 했던 마르첼로, 남편 스테파노, 애인 니노, 집착남 미켈레를 뒤로 하고 순박한 엔초와 정착한 릴라는 오히려 사랑에 초연한 자세를 취한다. 세상 어떤 남자도 믿지 못하게 되었고, 세상 어떤 남자와도 사랑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이제는 어느 누구도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게 되었다. 


레누는 달랐다. 레누는 남자친구 안토니오, 애인 프랑코, 남편 피에트로,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남자들과 연인으로 지냈다. 하지만, 그녀는 한결같이 니노를 사랑했다. 니노를 원했고, 니노를 원했다. 자신에게 관심이 없는, 릴라와 사랑에 빠진, 다른 여자를 임신시키는 니노를, 레누는 변함없이 사랑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를 얻었다. 





서글픈 사랑에는 업그레이드가 없었다. 사건사고가 없었다. 사랑에는 과거, 과거 진행, 대과거, 과거 완료 진행만 존재했다. 기억만으로 만들어진 사랑이었다. 만남 없는 연애였고, 연애 없는 사랑이었다. 아무 일이 없는데도사랑에 빠진나에게는사랑의 사건 존재했고, 그건 한결같이 사랑의 여정에 중요한 일정이었다. 나는 아주 오랫동안, 내가 사랑하는 것은 남자가 아니라, 사랑하고 있는 자신 혹은 사랑의 감정 자체가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그럴 수도 있었다. 하지만, 사랑이 현실화된 대상은 사람이었다. 나는 한결같이 그를 사랑했고 그를 원했다. 


밀어내고 도려내도 매일 새롭게 돋아나는 사랑의 때문에 나는 자주, 절망에 빠졌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오히려 매일 아침, 내게 새로운 사랑을 만들어갈 힘을 공급해 주었다. 사랑은 그렇게 안에서 싹트고 자라나 새로운 모습으로 만들어져 갔다. 사랑은 나를 압도했다. 그의 존재가 사랑의 시작이었고, 사랑을 이어갈 힘이 되었고, 그리고 사랑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무거운 그물이 되었다. 나는 그를 사랑했는데, 사랑의 이유를 나는 가지도 찾을 수가 없었다. 레누가 그러했던 것처럼. 



나는 , 너를 사랑하는가. 

나는 , 너를 

너, 니노를 사랑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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