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트는 분명히 말한다. 모든 억압은 성적 억압에서 비롯되며 성과 연관된다. 왜 모든 억압은 성으로부터 시작되는가? … 프로이트가 말한 억압은 상식적이거나 보편적인 욕망의 억압이 아니라, 영유아의 성욕에서 출발해 인류를 근본적인 진화 과정으로 이끄는 억압, 리비도를 잠재의식 속에 욱여넣는 특정한 억압이다. 상식적이거나 보편적인 욕망은 근원적인 것이 아니며 스스로 포기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성욕은 다르다. 성욕은 번식의 기초이며 인간에게는 시도 때도 없이 일어나는 욕구이기 때문이다. 이는 인간의 가장 특수한 지점이지 보편적인 생물 종의 욕망이 아니다. (107쪽)
중화권의 대표적인 인문학자(출판사 소개)인 양자오의 안내를 따라 프로이트를 읽는다. 프로이트가 말하는 성욕은 번식의 기초로서 인간의 보편적인 욕망 가운데 가장 근원적인 것이다. 스스로 포기할 수 없는 욕망이며, 인간을 가장 강력하게 규정하는 욕망이다.
필립 로스는 『죽어가는 짐승』에서 말한다.
꼭 필요한 매혹은 섹스뿐이야. 섹스를 제하고도 남자가 여자를 그렇게 매혹적이라고 생각할까? 섹스라는 용건이 없다면 어떤 사람이 어떤 다른 사람을 어떻게 그렇게 매혹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그런 용건 없이 누구에게 그렇게 매혹될까? 불가능하지. (28쪽)
프로이트는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는 인간이 성욕에만 집중하지 않도록 통제하는 세밀한 기제가 존재한다고 말한다. 억압을 통해 인간이 거대한 생식 기관으로 변하는 것을 막고, 가능한 한 생식기를 지연시킴으로써 문명과 사회를 만들어간다고 주장한다.(103쪽)
질문 : 만약 인간의 성욕이 어떤 방식으로든 제한 받지 않는다면 억압은 발생하지 않는가? 성적으로 완벽하게 자유로운 상황에 처한다면 성욕의 발산에 제한 받지 않는 인간은 행복하다고 느낄 것인가?
여기 한 남자가 있다. 이 남자는 자신이 원하는 외면적 요소와 내면적 요소를 갖춘 여성들과 언제든지 접촉할 수 있다. 언제 어디서든 원하는 여성과 원하는 만큼 섹스할 수 있다. 장소, 시간의 제한을 받지 않는다. 남자의 욕망을 거부하거나 반대할 사람이 없다. 이 남자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다. 원하는 대로 섹스할 수 있다.
여기 한 여자가 있다. 이 여자는 자신이 원하는 스타일의 남성, 자신이 선호하는 성향의 남성들과 언제든지 접촉이 가능하다. 3시 방향 현빈, 9시 방향 조인성, 1시 방향 김수현, 11시 방향 박형식. 손짓만 하면 부를 수 있다. 장소, 시간의 제한을 받지 않고, 원할 때마다 원하는 사람과 원하는 만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자신의 성욕이 일체의 제한을 받지 않는 상태의 이 남자와 여자에게는 어떠한 억압도 존재하지 않는가. 원하는 사람과 원할 때마다 원하는 만큼 섹스할 수 있을 때, 이 남자는, 이 여자는 만족하는가. 행복하다고 느끼는가. 첫 눈에 반한 남녀는 이 상황에 해당되지 않는다. 서로를 알아본 두 사람은 전기가 통했기에,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서로를 원하고,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말이다.
요는, 인생에 가장 중차대한 용무인 섹스를 위해 돌진하는 인간의 욕망이 어떠한 제한도 받지 않고 모두 다 해소되었을 때, 행복하냐는 것이다. 3시 방향 현빈, 9시 방향 조인성, 1시 방향 김수현, 11시 방향 박형식.
섹스라는 최종적 목표에 도달하고자 할 때, 쾌락을 실현시켜 주는 대상은 내 앞의 어떤 사람이다. 그는 나의 쾌락을 위해 존재한다. 나는 그를 이용해 나의 쾌락을 최대화한다. 이 때, 나는 행복한가. 그가 나의 쾌락의 도구가 되어줄 때 나는 행복한가. 자신의 기쁨이 아닌, 나의 기쁨을 위해 그 자신을 내어줄 때 나는 행복한가. 강요된 웃음, 억지 미소로 나를 대할 때, 나는 행복한가. 그가 나를 사랑하는 척 연기할 때, 나는 행복한가.
성적 욕망에 제한이 가해졌을 때 억압이 발생한다. 하지만, 끝없이 섹스라는 욕망을 발산하는 것은 해결책이 되지 못 한다. 가장 내밀하고 개인적인 경험인 동시에 상호활동이 요구되는 섹스라는 행동이 이루어질 때, 섹스의 대상인 인간 역시 그 행위에 동의하는가. 그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결국에는 자발성, 자유의 문제다. 그 역시 나처럼 원하는가. 그도 지금 원하는가.
나의 사랑이 타자의 사랑을 강제하지 못하는 비극이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타자 또한 나와 마찬가지로 자유를 가지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사랑의 비극이 우리로 ‘자유’의 문제에 대해 숙고하도록 만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누군가를 사랑할 때, 상대방도 나를 사랑하도록 강제할 수는 없다. 이것은 그가 나와 마찬가지로 자유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304/770)
다윈은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변화시켰고, 마르크스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변화시켰으며, 프로이트는 인간과 인간 자신의 관계를 변화시켰다(30쪽)는 식의 정리는 지나친 단순화에도 불구하고, 한번에 이해하기 쉬운 딱 떨어지는 설명인 건 사실이다. 『꿈의 해석』이 19세기의 주류 서술의 패권을 부쉈다는 평가(262쪽)나 작가와 독자 사이에 새로운 관계를 제시했다는 설명 또한 흥미진진했다. (270쪽)
인간 존재의 가장 중요한 임무인 성이 억압이 아닌 해방으로서 존재하는 경우는 언제일까,를 생각한다. 『꿈의 해석』에서 답을 찾을 수가 있겠다,는 기대는 금방 허물어져 버리겠지만, 일단 오늘의 기대는 오늘의 기대로 족하다.
이때야말로 syo님의 프로이트 리스트를 시작할 때인가. 도서관 홈페이지를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