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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릿 (무선)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40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이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4월
평점 :
오디오북을 듣고, 종이책을 읽고 해설을 모조리 읽어도 모르겠다. 햄릿은 정말 우유부단했을까?
문학동네의 햄릿은 햄릿이 226페이지이고 해설이 96페이지이다! 해설은 여러 종류의 인쇄원고도 이야기해주는데 자필 원고가 포함된 원고와 지방 공연을 하며 대본을 챙기지 못해 기억을 더듬어 사용한 악사 절판 (bad Quarto)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준다. 또한, 햄릿의 줄거리가 12세기에 쓰이고 1514년에 출판된 덴마크 사학자 삭소 그라마티쿠스 (Saxo Grammaticus)의 "덴마크 역사책 Historiae Damiae)라는 것도 알려준다. 그래서 주인공의 이름도 암렛 (Amleth)이 햄릿 (Hamlet)으로 게루다 (Gerutha)가 거트루드 (Gertrude)로 바뀌었다고 한다. 또한 그 시절의 병든 사회를 비판하는 주제를 원제 "덴마크 왕자 햄릿의 비극적 이야기 (The Tragicall Hiftorie of HAMLET. Prince of Denmarke)"를 언급해서 다룬다. 햄릿부터 아버지 혼령, 어머니 거트루드 왕비, 형을 죽이고 형수와 결혼한 삼촌 클로디어스 왕, 간신이며 공신인 폴로니어스, 안타까운 아름다운 오필리어, 불을 뿜는 레이티즈, 그리고 올바른 호레이쇼, 어리석은 로즌크랜츠와 길던스턴, 햄릿과 대비되는 포틴브래스, 무려 무덤 일꾼과 그의 동료에 대한 상세한 심리와 행동 분석에 많은 페이지를 할애한다. 특히 햄릿 부분에는 왕이 "우리 조카 햄릿은 어찌 지내고 있는가? (How fares our cousin Hamlet?) 이라고 물으면 햄릿이 "아주 잘 지냅니다. 카멜레온의 음식으로. 저는 약속으로 꽉 찬 공기를 먹고 사니까요. 식용 수탉이라도 이렇듯 잘 먹여 키울 수는 없을 겁니다 (Excellent, i'faith, of the chameleon's dish. I eat the air, promise-crammed. You cannot feed apons so"라고 답하는 식의 언중유골에 대해서도 자세히 다루고 있다. 왕이 fares를 does의 뜻으로 말한 것에 대해 햄릿은 다른 뜻인 먹다 eat으로 답하고, 여기서 카멜레온은 공기만 먹고 산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는데, 자신이 약속으로 가득 찬 공기를 먹고 산다는 뜻은, 왕위계승자로 삼겠다는 말과 달리 그럴 의지를 보이지 않은 왕의 약속을 빗댄 표현으로 'air'는 발음이 동일한 'heir (후계자)'와 짝을 이루는 언어유희다. 이런 설명을 볼 때마다 원문을 읽지 않으면 이런 언어유희나 언중유골을 알 수 없음이 아쉽다. 해설도 모든 것을 다 다룰 수는 없을 것이니.
그리고 해석 후반부의 한 장은 내가 궁금한 것을 담고 있다.
5. 햄릿 왕자의 복수 지연
햄릿은 왕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기도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 죽이면 왕이 천국을 갈 수 있다고 해서 죽이지 않는다. 그리고 복수를 미루면서 결국 왕과 왕비, 자신, 오필리어 그의 오빠 등 많은 사람이 마지막에 죽는다. 비극이다. 그래서 이것을 복수 지연으로 보고 햄릿이 우유부단의 대명사가 된다고도 한다. 이 책의 해설 또한 서두에
"햄릿의 복수 지연은 비극 '햄릿'의 주제다' p306
라고 못 박듯이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런 비극 속 결함이 있는 주인공은 멀리 아리스토텔레스까지 올라간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그의 비극론에서 말한 '하마르티아 hamartia (비극의 주인공이 악의가 아닌 탁월한 재능과 고귀한 성품 탓에 파국을 맞는 것을 말하며 tragic flaw 라고도 불린다) 때문이다" p307
극에서도 셰익스피어는 의도적으로 햄릿과 대비되는 아버지 복수를 위해 전쟁을 준비하는 포틴브래스 왕자와 동생 오필리어의 죽음에 반란까지 일으키려는 레어티즈를 강하게 대비시킴으로써 햄릿의 우유부단함을 더 드러내려고 한 것 같다.
'살 것이냐 아니면 죽을 것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 도 자살에 대한 것인지 왕의 생존을 말하는 것인지 의견이 분분하고, 이 햄릿의 복수 지연에 대해 수 세기 동안 수 많은 학자들이 다른 해석을 내놓고 있다고 한다.
나는
- 천당에 보내는 것이 싫어서 왕을 죽일 기회를 미룬 것에 동의하고
- 포틴브래스는 권력이 안정적인 왕자의 자리에 있었으니 안정적으로 군사를 일으키려 할 수 있었고
- 동생 죽음에 격분한 레어티즈는 무모하고
- 무엇보다도 복수로 살인을 하는 것 자체가 잘 못 되었고, 왕실의 삼엄한 경비에서 어떻게 살인을 저지를 수 있겠는가
라고 햄릿을 변호하며 그는 '옥쇄'를 가지고 다닐 만큼 치밀하고 준비를 잘하고 미친 척하며 자신의 약점을 오히려 강점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해설이 나와 변론을 주고받기라도 한 듯이, 5장의 후반부에 나와 비슷한 의견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특히 레어티즈도 쉽게 왕과 왕비가 있는 곳까지 폭도들과 함께 침입할 수 있을 만큼 왕실의 경비가 삼엄하지 않았고, 욱하는 성격의 햄릿이 왕비와의 이야기 중 누군가 커튼 뒤에 숨어 있는 것을 알아차리고 고의로 칼을 찌르며 왕이 인줄 알았다며 오필리어의 아버지를 쉽게 죽이는 대목은 나의 의견을 굉장히 강하게 반박한다.
그래서 이 책은 결국
"햄릿에게 외적 어려움이 없었다는 것은 그의 복수 지연이 내적 어려움 (internal difficulty) 설, 곧 자신에게 기인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
이중에서 작품으로부터 가장 견고한 뒷받침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우울증이다" p315
로 결론한다.
그래서 나와 해설은 햄릿의 '우울증'으로 합의했다. 일방적으로 나만의 합의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