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르마니아 : 유럽의 뿌리 현대지성 클래식 75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타키투스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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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뭔가 잘못 가고 있어!"

스스로의 결점과 결핍의 상기는 건강하지만 다소 위험이 따르는 행위다. 더군다나 그것이 경쟁 대상 또는 자신보다 못한 존재들과의 비교를 통해 끄집어낸 견해일 때 매우 불편한 진실이 된다.

국경을 맞댄 이민족을 거울삼아 조국 로마 사회의 변질과 부패함을 용기 있게 고백한 쇠락한 영혼의 탁월한 저작 <게르마니아: 유럽의 뿌리 / 타키투스 지음 / 현대지성 펴냄>이 바로 불편한 진실의 보고서다.

로마 제국 북방 유럽 본토와 흑해, 북해 너머 스칸디나비아반도에까지 광범위하게 흩어져 자신들만의 고유한 민족적 특성을 간직한 채 살아가던 게르마니아족은 당시 문명화 된 로마 제국의 눈에는 그야말로 짐승과 다름없는 야만족이다.

날것 그대로의 태곳적 원시성을 담지한 게르마니아의 존재가 로마인들에게는 정복과 경계의 대상인 동시에 혐오와 차별의 출구가 아니었을까!

민족적 자부심이 하늘을 찌를듯했던 로마 제국의 오만과 허영은 방종과 광기로 이어지며 제국의 급속한 사회적 변질과 부패를 가속화했다. 이러한 상황 속 로마의 지성 타키투스는 로마가 그토록 경멸했던 야만의 세계, 게르마니아족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관습의 일면을 수면 밖으로 끄집어낸다.

그는 의도성 짙은 저작 <게르마니아>를 통해 스러져가는 로마와 비교할 때 야만이라 지칭한 게르마니아 사회가 가진 도덕적 고결함과 순수함을 드러내어 조국 로마에 일침을 가하는 동시에 로마 사회가 나아가야 할 올바른 방향의 이정표를 제시한다.



게르마니아의 만장일치 부족 민회의 민주적 의사 결정 장면을 통해 '도미티아누스'라는 미치광이 황제 치하에서 권력의 부패와 변질을 경험하며 로마 사회의 남용된 권력의 현장을 고발했다.

또한 일부일처제를 강력하게 고수하고, 남편과 아내가 혈맹으로 맺어지며 아이들은 유모가 아닌 어머니가 직접 양육하는 게르마니아의 가정 형태에 관한 기사는 '팍스 로마나'가 가져다준 기형적 사회 구조물로서의 로마 사회의 향락과 오락적 현상에 대한 일갈이다.

용맹함과 신의, 끈끈한 공동체성이 강조된 게르마니아인의 단일적 특성은 편안함과 안일함 속 균열이 드러나기 시작한 당시 로마 제국의 유약함과 비견되어 읽는 내내 지적 즐거움을 선사한다.

더불어 재미있는 사실은 <게르마니아>를 저자의 집필 의도와는 전혀 다른 엉뚱한 방향으로 읽고 해석해 낸 이들이 있었다는 것! 다름 아닌 순수 혈통 게르만족의 우수성과 단일성을 강조하며 인종 우월주의를 표방했던 나치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와 그의 추종자들이다.

고전 텍스트의 해석이 원독자가 아닌 이상 자신의 시대적 컨텍스트를 일정 부분 반영할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지만 <게르마니아>를 자신들의 이념과 주관적 사상의 틀에 집어넣고 가공한 나치의 이해는 동일한 책을 어느 각도와 관점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어떤 결과가 펼쳐지는지에 관한 명징한 예다.



타키투스는 로마 제정의 명암을 직시한 역사가다. 한 해에만 황제가 네 번이나 바뀌는 미친 형국 속 청소년 시절을 보내야 했고,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폭정과 새로운 황제 가문이 시작되는 역사적 사건을 경험했다. 그렇기에 어쩔 수 없는 뼛속까지 로마인이었음과 동시에 로마의 녹을 먹는 공직자로서 조국 로마를 향한 애틋함과 안타까움이 <게르마니아>라는 탁월한 저작을 탄생시킨 것이 아닐까!

로마 사회 전반에 누룩처럼 번져갔던 향락과 쾌락에의 탐닉, 부에 기인한 인간 내면의 타락은 로마를 둘러싼 국제 정세에 대한 안목을 안이하게 만들었다. 그들이 그토록 경멸하며 하대했던 야만족 게르마니아는 로마의 부패상을 비추는 거울임과 동시에 미처 정복하지 못한 미완의 과제이며 끊임없이 로마의 정수리를 겨눈 칼끝이었다.

<게르마니아>가 2000년 시간의 간극을 넘어 지금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인간 본성이 견지하며 고수해야 할 덕목은 자기자랑과 근거 없는 자신감이 아니다. 끊임없이 자신을 성찰하며 고행에 가까운 노예적 겸손함이 수반되지 않을 때 교만한 인간 본성은 고개를 쳐든다.

로마 사회는 끝없는 물질적 풍요와 함께 타락한 인간 본성의 출몰을 제어하지 못한 채 자신을 잃어간 반면 거친 수풀 속 북방의 짐승 같은 이들은 그들만의 엄격한 규례와 관습의 힘으로 민족정신과 사회문화적 순수성을 지켜냈다.

로마의 지성, 타키투스는 본성이 어디에 가치를 두느냐에 따라 운명이 바뀜을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는 고전의 성소로 현대의 독자를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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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교역자 베이직
이정현 지음 / 생명의말씀사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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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교회의 부교역자는 담임목사가 되기 전 잠시 거쳐가는 징검다리와 같은 포지션이라는 분위기가 팽배한 요즘 부교역자에 관한 생각을 환기시키는 매우 시의적절한 책 한 권이 출간되었다.

<부교역자 베이직 / 이정현 지음 / 생명의말씀사 펴냄>은 22년간의 부교역자 경험을 가진 청암교회 이정현 담임목사님이 후배 부교역자들에게 전하는 애정 어린 조언으로 가득한 저작이다.

단순히 부교역자이기에 어떻게 하라는 일방적 훈계가 아닌 저자 자신이 22년간의 부교역자 시절 수많은 시행착오와 깨달음 속에서 건져올린 보석 같은 체험의 열매를 가독성 높은 문체와 형님 같은 따스한 필치로 전하고 있기에 책이 주는 메시지는 편안하면서도 품격이 있다.



본서를 통해 저자가 전하는 메시지의 가장 큰 키포인트는 제목에서부터 묻어난다. 기본을 갖출 때 부교역자의 앞길은 밝다. 반면 기본이 없을 때 부교역자의 행보는 어둡다. 사실 기본기의 강조가 교회 공동체에만 국한되는 문제는 아니다. 알다시피 사회 각 분야에서 기본이 없는 사람은 거절되고, 도태되지 않는가!

그러나 저자는 영혼을 맡은 목회자로서 부교역자의 기본은 세상이 말하는 그것보다 더 진중한 의미를 가지고 있음을 강조한다.

저자가 책을 통해 말하는 부교역자의 기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태도다. 자기 계발 분야의 전문가 '데일 카네기' 또한 인생의 성공은 실력 15%와 태도 85%에 달렸다고 말한다.

부족한 실력은 배우면 해결되지만 근본적인 태도의 문제는 고민스러울 뿐이다. 하나님을 예배하고, 성도들을 목양하고 섬기는 이 모든 문제의 핵심은 목회자의 경건과 더불어 정돈된 인격을 요한다.

그렇기에 저자는 사역은 실력이 아니라 태도에 달렸음을 역설한다. 부교역자의 태도는 인사, 겸손, 성실함, 커뮤니케이션 스킬, 근무 태도와 같은 세부적 요소를 포함한다.

너무나 기본적인 것이기에 경시되지만 이 기본을 못해서 수많은 어려움에 봉착한 목회자들이 사뭇 많다.

그 밖에도 부교역자에게 요구되는 기본은 관계, 목양, 설교의 영역이다.

특별히 관계에 있어 내가 섬기는 교회의 담임목사, 동료 부교역자, 장로 등의 중직자, 일반 성도들을 아우르는 모든 교회 내 관계의 단추를 어떻게 끼워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답변이 책의 전면에 가득하다.

그런데 결국 관계의 밑바탕에 깔리는 것은 겸손이라는 태도다. 오해 없는 투명함, 함께 밥을 먹는 교제, 말하기보다 들어주는 경청... 이 모든 것의 저변에는 부교역자의 겸손이라는 태도의 키워드가 자리한다.

내 것을 주장하고, 권위를 내세우며 이해함이 없고, 오해를 키우는 불투명한 사역의 모습이 관계를 망치는 주범이다. 저자가 이 부분을 강조한 이유를 알 수 있다.



안타깝게도 여전히 많은 교회에서 부교역자는 영원한 을이며 상대적 약자로 비친다. 담임목사나 중직자가 수족처럼 부리는 사람들, 교회의 급여를 받는 직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이들로 여겨지는 부교역자 현실의 민낯은 마음 아프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지금도 이 땅의 대다수 부교역자들은 하나님을 예배함과 동시에 이름도 빛도 없이 자신에게 맡겨진 어린 영혼들과 다양한 연령대의 성도들을 주어진 역량 안에서 최선을 다해 섬긴다.

좌충우돌의 경험이 상처의 씨앗이 될 수도 있고, 성장의 밑거름이 될 수도 있다. 주어진 소명을 확인하며 이 길에 들어섰고, 누군가는 해야 할 거룩한 제단의 임무를 위해 오늘도 묵묵히 십자가 앞으로 나아간다.

<부교역자 베이직>은 안개와 같이 희미한 목회 미래에 대한 고민과 사역 현장에서 맞닥뜨리는 상처가 생살을 찢는 아픔으로 다가올 때 목회의 본질과 소명을 일깨우기에 있어 최적의 가이드북이다.

동시에 22년간 부교역자의 삶을 직접 살아낸 현직 담임목사가 부교역자의 입장과 담임목사의 입장 모두에서 목회의 본질을 균형감 있게 담아내려고 노력한 흔적이 짙기에 치우침이 없다.

걸어가 본 자만이 뒤따라오는 이들에게 명확한 방향을 제시할 수 있다고 하지 않는가! 저자 이정현 목사님 스스로가 걸었고, 여전히 걷고 있는 목회 현장의 실제가 가득한 <부교역자 베이직>이 구체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부교역자가 가지고 있어야 할 인격적인 자질, 태도의 문제와 더불어 경건한 목회자의 신앙적이고 실력적인 영역에서의 준비 그리고 지혜롭게 사역할 수 있는 실제적이고 방법적인 조언이 매우 균형감 있게 기술되었기에 부교역자의 길을 걷는 이들에게 명확한 이정표가 되리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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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 카네기 긍정태도론 데일 카네기 원전 완역본 시리즈
데일 카네기 지음, 박선령 옮김 / 현대지성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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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단에 참여하여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실력은 업계 최고인데 성격은 매우 까칠하고 무례해서 동료들에게 기피의 대상이 되는 사람이 있다. 반면 능력은 다소 부족하지만 항상 예의 바른 모습으로 상대방을 편안하게 해주는 사람이 있다.

당신이 고용주라면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

자타가 공인하는 자기계발서 분야의 권위자 '데일 카네기'는 "성공은 실력 15%, 나머지 85%는 태도에 달렸다"라고 말한다. 온전히 동의할 수 없지만 적지 않은 사회생활을 해본 결과 확실히 성품과 성격의 중요함을 부인할 수 없다.

<데일 카네기 긍정태도론 / 데일 카네기 지음 / 현대지성 펴냄>은 100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카네기의 미발표 원고다. 제목에서 풍기듯 카네기는 성공적 인생을 살아가기 위한 가장 중요한 삶의 원칙이 긍정적인 태도에 달렸음을 역설한다.

자기의 삶을 스스로가 긍정할 때 부와 행운이 뒤따른다는 긍정 심리적 요소가 강한 1부는 멘탈 태도를 강조한다.

꾸준함, 건강, 자신감, 결단력, 기회 창출, 시간관리의 중요성을 말하는 2부는 행동 태도를 기술하며 마지막 3부에서는 미소, 예의, 경청, 배려, 관심, 믿음과 같은 관계를 발전시키는 태도를 이야기한다.



카네기 전집은 펼칠 때마다 평범한 자기계발서의 느낌보다는 오랜 인생의 지혜가 농축된 고전의 향기가 짙다. 우리보다 먼저 살다간 현인이 남긴 삶의 금 같은 조언이 책장마다 빼곡하여 카네기의 책은 밑줄과 필기의 흔적이 많은데 그만큼 귀한 통찰이 넘친다는 증거다.

단순히 성공을 위해서 당신의 인생을 이렇게 살라는 일방적 가르침이 아닌 실제로 그렇게 살았던 사람들의 성공적인 삶의 경험담이 카네기의 주장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하게 뒷받침해 주고 있기에 독자로 하여금 저자가 권하는 행동에 관한 교훈에 깊은 믿음과 신뢰를 부여한다.

카네기의 다른 저작들과 같이 본서 또한 여전히 힘이 있다.

"성장의 여지가 없다면 과감히 떠나라! 안주할 때와 다음 단계로 도약해야 할 때를 정확히 짚어내는 감각이 필요하다."라는 저자의 말은 현실이 주는 안락함에 고사되어가는 현대인의 무기력함에 경종을 울린다.

또한 저자는 근면하면 잘 산다는 70년대 새마을운동을 연상케하는 발언에 대해 강력한 일침을 놓는다. "근면함은 성공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끝까지 해내고야 말겠다는 불굴의 의지다."

성공적 인생을 꿈꾸는 이들에게 근면함은 기본이다. 부지런함의 부재를 그 누가 보충해 줄 수 있으랴! 게으르지만 부유하게 살고 싶다면 금수저로 태어났어야 한다. 근면함은 성공을 위해 기본으로 깔고 들어가는 유아적인 기초이기에 거론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대신 저자는 끝까지 해내고야 말겠다는 불굴의 의지와 태도에 주목했다. 끈기와 인내의 결핍이 만성화된 사회 속에 살아가는 이들에게 독종의 DNA를 강조하는 저자의 펜 끝이 매섭다.



그렇다면 긍정 태도의 끝판왕은 무엇일까? 저자가 말한 모든 것이 긍정 태도를 이루는 핵심이지만 그래도 꼽으라면 책의 후반부에 기술된 친절과 예의, 경청이다.

오랜 전 <인사만 잘해도 먹고는 산다>라는 책을 읽었다. 동탄의 어느 교회가 인사 하나로 지역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친 이야기다. 친절과 예의의 중요성은 카네기의 그때나 지금이나 동일하다. 모든 사람은 친절과 예의를 갖춘 이를 환영한다.

"웃지 않는 사람은 가게를 운영할 자격이 없다"라는 중국 속담이 있단다. 친절한 미소, 작은 예의가 없다면 어느 손님이 그 가게를 찾겠는가? 두고두고 가슴에 새겨야 할 금언이다.

더불어 다른 이의 말에 진심으로 귀 기울일 줄 아는 경청의 능력은 성공적 인간관계, 나아가서는 업무의 영역에서도 빛을 발하는 긍정 태도의 핵심이다. 이 시대는 자신의 이야기를 좀 들어달라고 아우성치는 사람들, 말하고 싶어서 열병 난 사람들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경청이라는 무기를 탑재했다면 그 사람의 인간관계는 탄탄대로다. 사람들은 그 사람만을 찾을 것이고, 그런 사람은 항상 관계의 중심에 서 있을 것이다. 어딜 가나 환영받는 소위 '인싸'는 경청하는 사람이다.

책 한 권이 전하는 가르침의 농도가 사뭇 짙다. 그만큼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모르는 것이 많다는 반증이다. 실력도 중요하지만 빈약한 실력의 부족함을 채우며 단점을 상쇄시킬 비장의 무기는 긍정적 태도다. 진리가 빠진 긍정의 힘은 싫지만 삶의 궤적을 따르는 긍정의 태도는 좋다!

성공적 삶을 지향하는 이들에게 <데일 카네기 긍정태도론>은 선물과 같은 저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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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 부의 본질 현대지성 클래식 73
크세노폰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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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 무엇인가 가치 있는 것도 잘 다듬어서 실제 값어치 있는 물건을 만들어야 진짜 귀한 것이 된다.

돈이 아무리 많다 한들 그것을 적절히 사용할 줄 모르면 부자가 아니다. 많은 돈을 적재적소에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 진짜 부자다. 그렇기에 부자의 개념은 가진 것의 정량에 비례하여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 가진 재물을 사용할 수 있는 무형의 능력에 의해 새겨진다.

이처럼 돈이 많은 부자들이 읽으면 없는 자들이 만들어 낸 개똥철학처럼 들리는 이야기를 2400년 전 그리스의 한 현자가 말했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소크라테스 부의 본질 / 크세노폰 지음 / 현대지성 펴냄>은 불의에 순응하기보다는 죽음을 택하며 독배를 받아든 철학자 '소크라테스'의 부와 경영에 관한 철학적 담론이다.

그의 제자였던 '크세노폰'은 스승인 소크라테스가 각기 2명의 대화 상대와 함께 부와 경영이라는 주제를 갖고 토론을 벌인 대목을 '오이코노미코스'라는 제목의 책으로 엮었다. 집을 뜻하는 오이코스와 법과 규칙을 의미하는 노모스의 합성어 오이코노미코스는 가정경영의 원칙을 말한다.



책은 총 3부로 구성되는데 1부에서는 자신의 친구 크리톤의 아들 크리토불로스와 함께 대화하며 가정경영, 부와 재산에 대한 정의를 새롭게 한다.

이어지는 2부와 3부에서는 당시 아테네에서 시민들의 존경과 추앙을 한몸에 받았던 이스코마코스를 찾아간 소크라테스가 그에게 가정경영과 농장경영이라는 실생활적인 문제를 묻고 답을 얻는 내용으로 구성되었다.

인류 최초의 경영학 수업이라는 별명이 붙은 저작답게 부에 대한 정의, 재산을 증식하는 방법과 같은 실제적인 깨알 조언이 가득한 본서를 읽고 있노라면 이야기를 끌고 가는 이가 다름 아닌 현자 중의 현자 소크라테스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본서가 주는 신선함은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었던 독배를 든 채 운명에 순응하며 죽음을 맞이한 다소 유약한 소크라테스는 잊으라는 것이다. 이스코마코스와 대화하며 가정경영과 농장경영에 관한 땅의 질서를 묻는 소크라테스는 영락없는 사업가이며 농부다.

철학이라는 사변적 이상에만 갇혀 있었던 것이 아닌 흙을 먹고 살아가는 인간의 근원적 필요와 욕구에 누구보다도 밝았던 철학자의 모습은 이채롭다. 이것은 모두 본서의 저자인 크세노폰 자신이 스승의 또 다른 제자 플라톤과는 달리 이 땅에 뿌리박은 철저한 현실주의자의 면모를 가진 인물이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1만 용병대의 대장으로서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있었던 저자 크세노폰에게 하늘을 가리키는 이상주의는 사치였다. 그에게 먹고 마시는 원초적 행위만큼 숭고한 것은 없다.



많은 이야기 중에서 가장 큰 인사이트는 사소한 물건을 제자리에 두는 정리의 기술이 부를 일구는 첫걸음이라는 사실이다. 콧방귀를 뀔만한 내용 아닌가? 정리 잘한다고 돈이 들어오는가?

물건이 제 자리를 찾아 정리된 모습은 일상이 정리된 사람의 내면을 드러내는 거울이다. 환경의 무질서함은 그 사람의 내면과 사고의 번잡함을 보여주며 그러한 사람은 결코 부를 끌어올 정도로 매사에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할 수 없는 사람이다. 즉 저자는 정리의 화두를 통해 효율성의 문제를 꼬집은 것이니 놀랍지 않은가! 삶을 가볍게 하자고 외치는 심플 라이프의 기원을 고전에서 찾다니 흥미롭다.

더불어 소크라테스가 철학자이며 군인이었다는 사실을 아는가? 그는 3번의 전장에서 살아돌아온 중장보병 출신의 백전노장이다. 살점이 튀는 전장을 경험한 냉혹함을 지닌 이가 지금껏 알던 소크라테스라는 사실이 생소하다.

뭐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역시 용병대장 출신인 크세노폰의 눈은 소크라테스의 철학적 이상이 아닌 진흙밭에 발을 딛고 살아가는 현실주의자 소크라테스를 간파한 것이다.

소유를 부의 완전한 기준으로 여기며 부동산을 몇 채씩 갖고, 주식 투자에 열광하는 세대에게 크세노폰은 스승의 입을 빌려 말한다. 현재 얼마나 가졌느냐보다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는가와 어떻게 다스려 나갈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외에도 근면함과 실행력,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따르도록 만드는 인격의 힘 등 부를 일구기 위한 다양한 실제적 제언이 가득하기에 시장경제 치하에서 살아가는 현대의 독자에게는 매우 유익하고 흥미로운 저작이다.


한편으로 철저한 실용주의자 소크라테스의 새로운 모습을 만나볼 수 있기에 저작이 갖는 재미와 가치는 기대 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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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로폰네소스 전쟁사 (명화 수록 원전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72
투퀴디데스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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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단에 참여하여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역사 기술은 언제나 객관적이며 사실적이어야 한다. 신화가 개입된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는 그런 면에서 어딘가 모르게 2% 부족한 느낌이다.

실패한 장군, 그러나 성공한 역사가 '투키디데스'는 역사 서술에 있어 그동안 그리스 헬라 문학이 견지한 신화적 요소를 걷어내고, 오직 사실에 입각한 역사 편찬의 새 장을 열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 투키디데스 지음 / 현대지성 펴냄>는 BC431년 경에 발발한 라케다이몬과 아테나이의 27년간의 전쟁을 그린 역사 대작이다. 800여 페이지에 달하는 벽돌책이 말하는 고대 그리스 세계의 전쟁은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싸웠고, 어느 지역을 복속시켰다는 정도의 단순한 전투와 전쟁 양상만을 다루지 않는다.

우리가 흔히 아는 스파르타(라케다이몬)와 아테네(아테나이), 그리고 그들의 주변 동맹국이 어우러져 대규모의 전쟁으로 치닫게 된 원인과 과정, 결과를 당시의 국제 정세와 정치 역학 구조 속에서 매우 치밀하게 엮어낸 작품이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다.

고대 그리스 세계의 맹주를 자처했던 라케다이몬과 아테나이의 갈등과 분열, 다툼은 헬라 지역의 지역적 특성으로 보아 언젠가는 터질 수밖에 없는 시한폭탄과 같은 필연성에 의한 역사적 귀결이다. 지중해 연안 펠로폰네소스반도에는 수많은 크고 작은 도시 국가가 산개해 있었고, 저마다의 정치 체제와 민족적 특성을 유지한 채 고유한 삶을 영위하고 있었다.

하지만 국제 정세는 인간 본성의 악함과 탐욕이라는 기폭제에 의해 힘의 균형을 잃기 시작했고, 마침내 서로를 죽고 죽이는 전쟁 양상으로 빠르게 전환되어갔다.

전술했듯 본작은 전쟁의 한 단면만을 서술한 책이 아니라 전쟁이 일어나게 된 원인 속에 숨겨진 인간 내면의 근원적 욕망에 기인한 명예에 대한 탐욕, 오욕에 대한 염려와 공포가 어떻게 국제적인 힘의 질서를 한순간에 무너뜨릴 수 있는지에 대한 거시적 안목을 선사한다.



저자 투키디데스는 책의 전반부에 자신이 그동안의 역사서를 집필했던 이들과 확연한 차이를 갖는 부분은 확실한 증거를 토대로 했다는 점을 꼽았다. 그러면서 그는 사람들 안에 존재하는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선택적 취합의 그릇된 행위를 꼬집는다. 그동안의 역사 집필은 출처와 증거의 정확성을 배제한 소위 '카더라' 식의 기사와 전해 들은 이야기가 진실인지를 살피지 않고 무작정 수용하려는 청취자의 나태함과 게으름이 빚어낸 오류로 가득했음을 지적한다.

당시 라케다이몬과 아테나이는 고대 그리스 세계의 맹주로서 힘의 균형을 유지한 채 팽팽한 연실과 같은 긴장 상태에 있었다. 하지만 힘의 역치 값을 벗어날 때 변화가 불가피하듯 물 끓는듯한 헬라 정세는 각 정치 진영의 오만에 기인한 자신감과 상황을 오판하는 어리석음으로 인해 전면전이라는 살육의 골짜기로 곤두박질쳤다.

수많은 각주를 참고하며 차근차근 긴 호흡을 유지한 채 읽어나가다 보면 어렴풋이 역사의 물줄기 속 맥이 잡히는 순간이 찾아온다. 단순히 나라가 나라를 대적한 다툼의 이야기를 벗어나 한 발자국 뒤에서 조금 더 거시적인 관점으로 책을 보라!

뺏고 빼앗는 행위의 결과 이전에 왜 전쟁이 발발했는가에 관한 원인과 이유를 찾아가는 여정 속에서 발견하는 것은 결국 인간 본성의 민낯이다. 힘의 이동과 거기에 상응하는 주변 도시 국가들의 운명의 향방은 여전히 인간 본성이 발휘하는 불완전한 판단에 근거한다. 그렇기에 대다수의 전쟁은 부조리하며 불의하다.



본서에 자주 등장하는 도시국가들의 사절단이 외치는 장엄한 연설은 사뭇 웅장하다. 자신들의 주장을 논리정연하게 선포하는 이들의 연설은 수려하고 지적이지만 결국 탐욕과 두려움, 명예와 오욕이라는 가장 원초적인 욕구에 의한 것임을 알게 될 때 인간사의 모든 것이 신선하지 않음을 발견한다.

빼앗기지 않으려고 전쟁하고, 더 움켜쥐기 위해 싸운다. 불명예가 죽음보다 무섭고 두렵기에 알량한 자존심과 명분을 위해 칼을 든다.

고대 헬라의 전쟁사가 지금의 우리에게 던지는 교훈은 매우 현실적이며 명확하다. 신화를 배제한 역사서답게 저자가 지금의 독자에게 던지는 메시지의 핵심은 명분의 무의미다. 냉혹한 힘의 역학 속 아름다운 정당성은 없다. 힘이 있으면 잡아먹는 것이며 힘이 없으면 잡아먹히는 것 그뿐이다.

국가와 민족이 서로의 이익과 안보를 위해 이빨을 드러내는 작금의 국제 정세 속 2500년 전 헬라의 지성이 가진 예지력이 시대적 적실성으로 다가오는 저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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