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는 정말 암흑시대였을까
< 중세를 오해하는 현대인들에게>
중세사람들에게 흑사병은 너무나 큰 재앙이었다. 그들은 흑사병을 하늘에서 비처럼 쏟아지는 화살이라고 생각했다. 최근 본 드라마 <지옥>에선 자경단 역할을 하는 (화살촉)이란 단체가 나온다. 왜 화살촉일까 했는데, 하늘에서 비처럼 쏟아지는 화살을 죄인의 과녁에 맞추는 것이 자신들의 역할이라고 생각한 것일까.
무슨 근거와 무슨 자격으로란 생각이 들지만, 생각해보면 이런 일들은 언제나 있었다. 마녀와 마녀 사냥.
작디 작은 존재로서의 인간에게 세상은 아직도 이해할 수 없는 것 투성이다. 과거의 사람들은 더 모르는 것들 투성이니 두려움도 더 컸을 것이다. 그들은 이런 알 수 없는 일들이 왜 일어나는지 고민하고 관찰했다. 혹은 그저 받아들이라는 이들도 있었다. 신의 뜻이니 그저 받아들이라. 그 중엔 세상의 비밀을 들었다는 이들도 나타났다. 재해와 고난의 이유는 “너 때문이다.”라고 외치는 자들. 그 “너”란 손가락이 가리키는 이들은 주로 약자들이었고, 그들은 제물이 되었다.
그렇게 산 채로 바쳐지고, 처형당했고 사라지고, 혹은 고문당했다. 가난한 자, 불쾌한 자, 가난해서 불편한 자, 거기다 일종의 금전적 보상까지 따르는 마녀사냥은, 언제나 준비되어있는 참혹한 고문으로 거의 백발백중이었다. 지금도 다르지 않은 시대, 그래서 <지옥>의 그 이상한 자경단 비슷한 단체의 이름이 화살촉인가 싶기도 하다.
마녀뿐만 아니라 늑대인간도 많았다고 한다. 스트레스와 두려움과 굶주림으로 스스로 전해내려오는 민담 속 늑대인간이라 주장하는 이들이 있었다고 한다. 게르만 풍습 중의 하나로, 죄인의 인권을 박탈해서 숲으로 추방당한 이들이 민가를 습격한 일에서 늑대인간이란 이야기가 생겨났다는 설도 있다.
저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중세가 어둡지만은 않았고, 르레상스를 준비하는 여명의 빛이 있었다고 한다.
실제 중세는 신학이외의 모든 학문은 악이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인문학이나 유명고전책들은 수도원에 의해 보존되었다. 수도사들의 중요 임무가 독서와 필사였기에 이런 책들이 보존되었고, 14세기 이탈리아 출신의 인문학자 페트라르카는 키케로등의 저작을 발견해서 보급하였다고 한다. 이처럼 책사냥꾼이라 불리는 이들이 인문학과 고전들을 꾸준히 발견, 보급했으니 완전히 암흑시대는 아닌 것이다.
몽골과 제노바의 공성전에서, 몽골이 전염병환자의 옷과 시체를 성 안으로 던져넣어 흑사병이 번졌다는 설은 증거도 없으며, 유럽의 책임전가식 주장이라고 한다. 흑사병이 번지는 상황에서 도망 간 클레멘스 6세 교황도 있지만, 남아서 끝까지 환자를 치료한 클레멘스의 주치의 기 드 숄리아크도 있다.
성유골의 인기로 돼지뼈를 속여 팔기도 했고, 십자군 원정을 갔다 사망한 루이 9세가 성인의 반열에 오르자, 유골쟁탈전으로 인해 동생은 살을, 아들은 뼈와 심장을 챙긴 일도 있다고 한다.
중세에서 금기시 된 것은 성행위, 아우구스티누스는 성행위를 통해 원죄가 전달된다는 말도 했다고, 또한 불임은 마녀의 짓이거나 원죄, 악마의 소행이라고 믿었다. 그렇지만 불임부부에 대한 기록을 보면, 원죄나 마녀의 소행으로 보고 포기하기보다는, 다양한 민간요법과 의사들의 시도, 기도와 주술로 이겨내려 한 내용이 있다.
중세 최고의 발명품인 “연옥”은 산 자의 기도와 봉헌과 면벌부로 죽은 자를 인도할 수 있다는 내용에 힘입어 성당에 엄청난 부를 가져다 주었다.
또한 성경 속 아시아 동쪽 끝에 있다는 낙원에 대한 믿음이 대항해 시대를 여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중세의 아이돌인 설교자들, 중세의 가짜 뉴스나 위조 (특히 ‘콘스탄티느스 기진장’으로 로마황제가 교황이 자신의 나병을 고쳐주자, 교황에게 로마 서부의 통치권을 양도한다는 증서로, 8세기에 만들어진 가짜문서이다. 가짜인줄 알지만, 진실을 말하면 이단으로 몰리는 상황이다.)
중세 왕들이 손으로 치유한다는 연주창(주로 고름이 흐른다. 시간이 흐르면 주로 자연치유가 됨), 만약 치료가 되면 왕 덕분인 것이고, 환자가 치료가 되지 않는다면 그건 신앙심이 부족하기 때문인 것이다. 정말 무적의 논리다.
그렇지만 서서히 이런 일들에 대해 비난의 목소리가 나왔으며, 12세기 다양한 분야의 아랍책들이 번역되면서 서유럽은 “12세기의 르네상스”란 문예부흥을 이루어 르네상스의 시작을 준비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중세 유럽의 문화>는 어떠했을까.
중세에도 죄인들을 잠시 보호해 줄 수 있는 소도같은 구역이 있었다고 한다. 주로 교회였지만 일반 집도 있었고, 최대 6주 정도의 기간을 보호해 주어, 변론이나 증거 등을 찾고 마음을 추스르는 시간을 벌어주었다고 한다.
또한 그들의 가치관은 하늘에 가까울수록 존귀하다고 믿었기에, 음식 또한 먹는 계급에 따라 재료가 달라야 한다고 믿었다. 계급에 맞지 않는 음식은 건강에 좋지 않다고 의사들도 주장했다. 그러니 신분이 높은 이들은, 매나 독수리 그 외 조류들, 나무는 열매로 그러니 주로 과일, 그리고 밀을 먹기를 권장했다. 농부들은 당연히 최하위의 재료들, 뿌리 채소등이 권장되었다.
중세 시대에는 방앗간 지기가 꽤나 큰 힘을 가졌다. 영주에게 고용된 기술자로 자체적인 재판권을 가지며 어업권과 선술집 경영권리 또한 가질 수 있다고 한다. 약탈을 막기 위해 견고하게 건물을 짓고, 농지와 과수원 그리고 교수대까지 설치되어 있었다. 선술집 이나 여관 또한 영주에게 허가를 받았고, 운영자는 그 대신 농부들의 동향을 영주에게 알려주는 스파이 역할을 했다고한다.
또한 중세에도 목욕탕이 많았다고 한다. 주로 빵 굽는 가마 위에 목욕탕이 있었다고, 위생시설이자 오락과 교류의 장이었고, 빈민들은 부자들의 기부 통해 이용이 가능했다고 한다. 그러나 중세 후기로 들면서 매독과 매춘굴화로 쇠퇴하게 되었다.
길드마다 도시에 대한 의무를 가지는데, 대중목욕탕 길드는 화재 진압이란 의무를 가졌다고 한다.
중세에는 길드의 기술자를 키우기 위한 해외연수제도가 있었다고 한다. 길드 내 장인들이 숫자를 조절하기 위한 방법이기도 했고, 두루 여행하며 새로운 기술도 배우고 연마하라는 의미가 담긴 제도다. 주로 떠돌면서 각 지역이나 나라마다 동종의 기술자 단체인 형제단(지금의 노조)을 찾아가면 기술을 연마할수 있는 일자리를 제공하거나, 일자리가 없을시는 노자를 주고 다른 도시로 갈 수 있도록 도왔다고 한다.
이 외에도 엄청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몇 가지를 적어봤다.
시간여행과 관련된 영화나 이야기들이 많다. 만약 중세로 가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일단 바지를 입은 죄로 마녀로 바로 화형당하지 않을까.
중세인들하면, 꾀죄죄한 옷 한 벌에 겨울이면 가축과 함께 잠자리에 들고, 목욕은 건강에 좋지 않다고 믿으며, 빨래 또한 옷감을 상하게 한다며 이에 쥐어뜯기며 사는 이들?(실제로 그들은 둥근 속이 빈 나무통에 피 묻은 수건을 넣은 후, 목걸이처럼 목에 걸고 잤다고 한다. 아침이면 그 통 안에 수북이 이가 담겨 있었다고, 그럼 희열을 느끼며 불에 태웠다고 한다.)
열이라도 나면, 설사약으로 아래를, 위로는 피를 콸콸 뽑는 사혈요법으로 결국 죽어가지 않을까. 이라도 아프면 마취없이 몽창 뽑아야 하는, 혹은 잇몸이 안 좋으면 입천장에 구멍을 뻥 내야 하는.....일단 아프면 이발사에게 가야 하는 것부터가 두려움의 시작이다.(그래서 이발사의 상징이 빨 파 흰, 동맥과 정맥과 붕대란 설도 있다. 혹은 빨강과 하양과 둥근 공과 그릇~ 빨강 하양은 피와 붕대. 공은 거머리를 놓는 곳. 그릇은 피를 받는 곳을 의미하는데, 미국 이발사들이 성조기의 파란색을 넣었다는 설도 있음. )
그럼에도 중세에도 교황의 권위에 반대한 이들과 고전과 인문을 찬양한 이들이 있었다. 신보다는 개개인의 행복과 권리에 관심을 가진 이들, 그런 용기와 반골정신이 중세에도 빛이 있었음을 알게해준다. 신이 있다면, 신이 창조한 피조물들에게 그렇게 잔인할 리가 없다. 잔인한 것은 언제나 권력을 쥔 사람들이다.
(두 권 다 재미있게 읽었다. <중세유럽의 문화>는 정리가 쉽게 되어 있어서 아이들과 같이 보기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