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문제연구소는 <친일인명사전>에  박정희朴正熙 1917-1979 전대통령에  대해 "문경공립보통학교에 근무할 때 일제의 괴뢰국인 만주국군관으로 지원했으나 1차에 탈락하고 재차 응모했다"면서 "당시의 정황을 <만주신문>은 "혈서 군관 지원, 반도의 젊은 훈도로부터"라는 제목의 기사로 1939년 3월 31일자에 보도했다"라고 밝혔다. 훈도란일제강점기 초등학교 교사를 일컫는 말이다. - P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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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항일과 친일의 역사 따라 현충원 한 바퀴》는 현충원 셀프 여행을 위해 만들어진 가이드북‘이다. 이 책을 쓰는 내내 그 점을 염두에두고 기록해나갔다. 그래서 바람이 하나 있다. 우리 일상과 가까운 곳에 있지만 쉽게 찾지 못했던 여러 국립묘지를, 이 책 한 권 들고 가족·친구·연인과 함께 떠나보았으면 하는 것이다. 장소 한 곳당 반나절이면 충분하다. 단언컨대 국립묘지에 어떤 역사가 숨어 있고, 누가 잠들었는지 알고 현장을 찾는다면 우리가 느끼게 될 보람은 투자한 시간보다 몇 배는 더 클 것이다. - P4

2009년 국가기구인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에 의해 국가공인 친일파로 규정된 7인(김백일, 신응균, 신태영, 이응준, 이종찬, 백낙준, 김홍준)을비롯해 평생 독립운동을 했지만 결국 이들 발밑에 잠들게 된 대한민국임시정부 및 의열단, 광복군 출신 애국지사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감정을 최대한 배제한 채 친일파와 지사들의 공식적인 행적에만 집중해 서술했다. 이유는 하나, 이 책을 살핀 뒤 현장에서 직접 눈으로 확인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기 때문이다. 국가공인 친일파의 묘역에서 독립운동가의 묘역을 바라보자. 그 감정을 잊지 않기를 희망한다. - P5

이외에도 우리 정부가 친일파로 공인하지 않았지만 <친일인명사전>에 오른,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되는 비공인 친일파 5인에 대해서도 기술했다. 국립서울현충원 최중심부에 잠든 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롯해 애국가의 주인공 안익태, 한국전쟁 때 한강철교를 폭파한 채병덕 육군참모총장 등이 있다. - P5

제2부는 국립대전현충원이다. 국립서울현충원의 거의 두 배에 달하는 100만 평에 육박하는 거대한 땅에 마련된 국립묘지다. 충남의 자랑인 계룡산 줄기 따라 국가를 위해 목숨 바친 ‘영웅들이 잠들어 있다. - P5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곳 국립대전현충원 역시 국립서울현충원과마찬가지로 일제강점기 친일과 항일의 갈림길에서 다른 길을 선택한친일파와 독립운동가가 함께 잠들어 있다. 이들 중에는 국가에서 공인한 친일파인 신현준, 김석범, 송석하, 백홍석이 있다. 2020년 7월 10일백수를 누리고 사망한 국가공인 친일파 백선엽 역시 논란 끝에 장군제2묘역에 영면했다. - P5

제3부는 수유리 4.19국립묘지와 서울 효창공원을 다뤘다. 서울시강북구 북한산 초입에 자리한 민주열사와 애국지사의 무덤, 그 안에 기생하는 친일파와 군부독재의 흔적에 관한 이야기다. 제3부는 앞선 1부와 2부에 비해 덜 무겁다. 우리 일상 속에 스며든 휴식 공간인 수유리4.19국립묘지를 가볍게 산책하는 마음으로 펼쳐놨다. 지금 우리가 향유하는 대한민국이 어떠한 과정과 희생을 거쳐 탄생하게 됐는지 수유리 4.19 국립묘지 곳곳에 잠든 지사들의 이야기를 통해 확인했으면 하는 마음을 담았다. - P6

한눈에 보는국립서울현충원추천 답사
•서울현충원 만남의광장→• 현충탑→・부부위패묘(김홍준)→• 이승만대통령묘소→• 유공자제1묘역(백낙준)→•장군제1묘역(김백일, 채병덕, 신응균)→•박정희대통령묘소→•장군제3묘역(이종찬, 정일권)→•약수터 →•장군제2묘역(신태영, 이응준, 임충식)→•대한독립군무명용사위령탑→•유공자제2묘역(안익태 등)→●임시정부요인묘역(이상룡, 박은식, 신규식, 지청천, 김성숙 등)→•김익상, 이재명, 박열 등→•충열대→•애국지사묘역(박재혁, 김상옥, 조명하, 이종암, 남자현 등)→•만남의집 ‘갈비탕으로 마무리 - P14

국립서울현충원은 1950년 6월 한국전쟁이 일어난 뒤 사망한 국군장병을 위해 처음 만들어졌다. 이승만 대통령은 서울특별시 동작동 일대에 국립묘지를 조성할 것을 결정했고, 1954년 삼일절을 기념해 공사가 시작됐다. 2년이 지난 1956년 4월 대통령령으로 첫 번째 안장이 이루어졌다. 한국전쟁 중 이름 없이 죽어간 무명용사의 묘였다. 이듬해인1957년 4월부터 신분이 확인된 군인들을 중심으로 국립묘지에 안장했다. - P16

국가공인 친일파‘도 일곱 명이 있다. 바로

김백일 신응균 신태영 이응준 이종찬 
김홍준 백낙준

특히 국립서울현충원 장군묘역에 잠든 신태영과 이응준의 묘소 위치가 문제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요인묘역과 애국지사묘역 머리맡에 있다. 지사들의 묘소를 바라보고 참배를 하면 어쩔 수 없이 국가공인 친일파에게도 인사를 드리는 상황이 빚어지는 것이다. 그렇게 수십 년이흘렀다. - P17

대통령묘소
박정희1명

장군제1묘역14명
강태민(6번)김용기 (140번)김정호(39번)김백일(국가공인/19번)문용채(72번)박범집(1번)박춘식(92번)신학진(275번)채병덕(12번)안병범(232번)최창언(126번)양국진(118번)신응균(국가공인/288번)윤태일(134번)

장군제2묘역3명
신태영(국가공인/3번)이응준(국가공인/6번) 임충식(2번)

장군제3묘역6명
김용국(20번)이종태(42번)김응조(52번)정일권(4번)김일병(40번)이종찬(국가공인/1번)

유공자제1묘역3명
김정렬(33번)백낙준(국가공인/26번)엄민영(3번)

유공자제2묘역2명
안익태(7번)조진만(8번)

위패2명
김호량(부부위패 02-70)김홍준(국가공인/부부위패05-197)

기타
김준원(충혼당2-212-143)박성도(충혼당2-213-127)안광수(7묘역-5-08)최복수(54묘역-4-2195)4명 - P19

임시정부요인묘역
임시정부요인묘역은 1993년 중국 상하이 만국공묘에 안치되어 있던 임시정부 요인 다섯 명을 모셔오면서 조성됐다. 매우 잘한 일이었으나 안타깝게도 국가공인 친일파 두 명이 잠든 장군제2묘역 하단에 묘역을 조성했다.
- P20

김영삼 대통령이 묘역 하단에 ‘민족정기民族正氣라는 글까지 새겨 넣은 제단을 조성하며 독립 의지를 고취했으나, 결과적으로 친일파의 무덤 아래 지사들을 모신 것은 씻을 수 없는 과오가 됐다. - P20

2020년 4월 기준, 임시정부요인묘역에 잠들어 있는 분들이다.
박은식 대한민국임시정부 2대 대통령이상룡 초대국무령, 한국판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대명사신규식 국무총리 대리 및 외무총장 역임김동삼 만주 호랑이라 불렸던 서로군정서 참모장지청천 군무총장 및 광복군 총사령을 역임 - P20

오영선 법무총장. 홍진 국무령
박찬익 외무총장. 이유필 내무총장
양기탁 국무령. 황학수 생계부장
노백린 국무총리. 조경한 비서장
김인전, 손정도, 이강 의정원 의장
윤세용 국무위원 - P21

유관순 3·1운동의 불꽃
이상설과 이위종 헤이그 특사
홍범도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를 승리로 이끌어냄
오동진 정의부 총사령
김익상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에 폭탄 의거를 유일하게 성공시킴

등 독립운동을 한 의사와 열사 115위와 한국전쟁 중 납북된 조소앙, 엄항섭, 박열 등 15위도 함께 모셔져 있다.
박정희 대통령의 조카사위이자 5.16군사혁명의 주역인 김종필 전총리가 무후선열제단 헌시비를 작성했다. - P22

국립서울현충원 무후선열제단 아래쪽으로 조성된 묘역이 독립유공자들이 잠든 곳이다.
국립서울현충원이 직접 작성한 소개 글이다.
애국지사 및 임시정부 요인, 무후순국선열을 통틀어 추모하는 충열대가 있다. 1906년 을사5적 처단을 시도하고 군자금을 모집하여 임시정부를 지원한 기산도, 상해의열단 소속으로 1923년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한 김상옥, 독립협회를 조직하여 민중계몽운동을 벌인 서재필, 친일 외교 고문인 미국인 더럼 화이트 스티븐스를 미국에서 척살한 장인환과 전명운, 3·1운동에 참여한 이종일, 권병덕,
라인협 등 민족대표 14위와 임시정부에서 활약한 애국지사 23위가안장되어 있다. - P24

간도특설대 중대장에서 여순사건 계엄사령관으로1946년 육군 중위로 임관한 김백일은 불과 4년 뒤인 1950년에 대한민국 육군 소장에 오른다. 1948년 10월에 발생한 여순사건 진압이결정적 계기가 됐다.
여순사건은 1948년 10월 19일부터 10월 27일까지 전라남도 여수시에 주둔하고 있던 14연대 군인 2000여 명이 중위 김지회 등을 중심으로 제주 4.3사건 진압 명령을 거부하자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사건이다. 여수와 순천 지역에 거주했던 무수한 민간인까지 살해됐다. - P29

김백일의 조부 김영학은 만주 지역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후만세시위를 전개해 간도지역 3·1운동의 기폭제 역할을 했다"는 이유로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됐다.
손주인 김백일의 길은 달랐다. 김백일은 열아홉 살 때인 1936년 일제가 세운 괴뢰정부 만주국의 펑톈군관학교에 입학했다. 그곳에서 향후 간도특설대의 핵심이 되는 신현준, 김석범, 김홍준, 송석하 등을 만났다. 펑톈군관학교를 나온 김백일은 1938년 항일무장세력을 탄압하기 위해 창설된 간도특설대에 설립부터 기여했다. 해방 때까지 김백일은 간도특설대에서 중위를 거쳐 1944년 대위에 진급한 뒤 중대장에 임명됐다. 김백일의 간도특설대 활동을 높이 평가한 일본 만주국 정부는1943년 김백일에게 훈5위에 해당하는 ‘경운장‘을 수여했다.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는 이러한 활동을 근거로김백일을 국가공인 친일파로 규정했다. - P31

간도특설대가 집행했다는 삼광정책이란 "모두 죽이고, 모두 태우며, 모두 빼앗는다"는 뜻으로, 위원회는 "특설대 설립부터 해산까지108 차에 달하는 토벌 활동을 전개했고 강간, 강탈, 고문, 구타, 방화 등죄악은 부지기수"라고 설명했다. - P33

국가공인 친일파 신응균은 1921년 일본 나고야에서 태어났다. 일본 육군사관학교 출신이자 30년 넘게 일본 군인으로 복무한 친일파 신태영의 장남이다. 신응균이 태어날 때 신태영은 일본 나고야 3사단에서 복무 중이었다. - P37

신응균은 아버지 신태영을 따라 일본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한 후 20세가 되는 1940년 2월에 53기로 졸업했다. 이후 일본 육군과학학교 포병과, 육군중포병학교에서 신식 군사기술을 습득한다. 1943년 12월에대위로 진급한 신웅균은 1945년 오키나와 전투가 발발하자 일본군 장교로 참전했다. 이 점이 신응균을 국가공인 친일파로 선정하는 주된 이유가 됐다. - P37

2020년 1월 2일 국립서울현충원에서 광복회 시무식을 진행한 김원웅 광복회장은 "천황폐하 만세를 외쳤던 친일파들이 대한민국에서 가장명당자리인 이곳에 잠들어 있다"면서 "이런 이들을 두고 (극우 언론에서) 국민화합과 단결을 외치는데 이게 일제강점기 내선일체와 뭐가 다른가"라고 일갈했다. - P46

그러나 장군제2묘역 입구에 2020년을 맞아 새롭게 세워진 현판에는 "한국전쟁 중인 1952년 국방부 장관을 역임한 신태영 중장 등 6위가 모셔져 있다"면서 "조국과 민족을 위해 헌신하신 장군들의 숭고한얼을 기리면서 경건한 마음으로 추모해주시기를 바란다"라고만 기록됐다. 친일 행적과 관련된 내용은 어디에도 없다. - P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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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 산속으로 들어가야 비로소 여름이 시원해진다

* 복용산과 박산을 이어 걸은 동네 뒷동산 산행

게실염을 앓고 난 뒤라 아직 예전처럼 긴 종주산행에 나설 때는 아니었다. 몸이 얼마나 회복됐는지 살펴볼 겸, 집 뒤의 복용산과 박산을 천천히 이어 걷기로 했다. 오늘의 목표는 정상 정복도 기록 갱신도 아니었다. 무리하지 않고 살방살방 걸으며 산바람이나 쐬고 오는 것이었다.

장비도 동네 뒷산에 맞게 간단히 챙겼다. 반바지에 면티를 입고 햇볕을 가릴 모자를 썼다. 땀을 닦을 수건 한 장과 이탈리아제 ASOLO 경량 등산화를 준비했다. 가볍고 발을 잘 잡아 주는 신발이라 이런 뒷산 산행에 그만이다. 물은 따로 챙기지 않고 룰루레몬 물병에 얼음을 가득 넣은 디카페인 아이스 아메리카노 그란데 한 잔을 담았다. 말 그대로 동네 뒷동산 차림이었다.

아파트에서 출발해 스타벅스에 들러 커피를 받은 뒤 복용산으로 향했다. 산 입구까지 이어지는 아스팔트길은 햇볕을 그대로 받아 뜨거웠다. 몇 걸음 걷지도 않았는데 벌써 더위가 몸에 달라붙었다.

그런데 복용산 숲으로 들어가자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나무들이 햇볕을 가려 주고 숲 사이로 바람이 불었다. 조금 전까지 뜨거운 도로 위를 걷던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시원했다. 복용산은 높지도 않고 램블러 인증 배지도 없는 말 그대로의 동네 뒷산이다. 그래도 흙길과 솔잎이 깔린 숲길을 걷다 보니 유명한 산이 부럽지 않았다. 여름에는 산의 높이보다 그늘과 바람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복용산을 내려와 박산으로 향하려면 다시 한동안 아스팔트길을 걸어야 했다. 숲을 벗어나자마자 뜨거운 열기가 다시 몸을 감쌌다. 산속에서는 그렇게 시원했는데 도로 위는 숨이 턱 막혔다.

“아, 덥다. 역시 산이 훨씬 시원하네.”

박산으로 들어서자 다시 살 것 같았다. 박산은 박씨들의 산이라 해서 붙은 이름이다. 그 내력을 살펴보면 정상 부근에 암행어사로 유명한 박문수의 아버지 박항한의 묘가 자리하고 있다. 묘 옆의 비석을 살펴보니 고령 박씨 박항한의 묘임을 알리는 글과 함께 그가 받은 품계와 벼슬이 새겨져 있었다. 박문수 집안의 묘역이 자리한 고령 박씨의 산이어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박산’이라 불러온 것이다. 낮은 동네 산인 줄만 알았는데, 산 이름 속에는 조선시대 한 집안의 내력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 박문수는 1728년 이인좌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분무공신 2등에 책록되고 영성군에 봉해졌다. 공신의 아버지에 대한 예우로 그의 아버지 박항한은 숭정대부 의정부 좌찬성(종1품에)에 추증되고 영은군에 봉해졌다.

박산은 복용산보다 조금 높고 경사도도 제법 있었다. 그래도 나무 사이로 부는 바람이 시원해 힘든 줄 모르고 걸었다. 정상에는 램블러 인증 배지도 있어 복용산보다는 어엿한 산 대접을 받는 곳이기도 하다.

박산 정상에서는 유아숲체험원까지 고도를 쭉 낮추며 내려갔다. 높은 소나무 아래 통나무 놀이시설과 쉼터가 펼쳐진 모습이 제법 좋았다. 잠시 둘러본 뒤 내려온 만큼을 그대로 다시 올라 박산 정상으로 돌아왔다. 오늘 기록의 고도 그래프에 두 개의 봉우리가 생긴 이유다.

박산을 내려온 뒤 또다시 아스팔트길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는 오르막보다 도로가 더 힘들었다. 나무 한 그루 없는 길에서는 햇볕이 머리 위로 그대로 쏟아졌다.

“야, 이거 더워 죽겄다.”

뜨거운 길을 지나 다시 복용산 숲으로 들어갔다. 하루에 같은 산을 두 번째 만났지만 반가웠다. 숲의 그늘과 바람이 또 한 번 열기를 식혀 주었다. 복용산을 넘어 마지막 아스팔트길을 걸은 뒤 집으로 돌아왔다.

총 8.9km, 3시간, 누적고도 465m. 살방살방 걷자고 나선 것치고는 제법 걸었다. 그래도 몸에 이상이 생길 만큼 속도를 내거나 무리하지는 않았다. 게실염 뒤 다시 산을 걷기 시작했다는 데 의미가 있는 하루였다.

높은 산도 아니고 대단한 풍경이 있는 코스도 아니다. 그러나 뜨거운 아스팔트와 시원한 숲길을 몇 번씩 오가고 나니 확실히 알겠다. 한여름에는 산이 최고다. 그늘 아래로 바람 한 줄기만 불어도, 산에 들어온 이유는 그것으로 충분하다.

ㅁ 비석 전면에 새겨진 한자는 우측부터 세로로

純忠積德輔祚功臣贈 (순충적덕보조공신증)
崇政大夫議政府左贊成 (숭정대부의정부좌찬성)
高靈朴公諱恒漢之墓 (고령박공휘항한지묘)

[해석]
˝순충적덕보조공신으로 추증된 숭정대부 의정부 좌찬성, 고령 박씨 항한의 묘˝
* 순충적덕보조공신(純忠積德輔祚功臣): 충성을 다하고 덕을 쌓아 나라를 도운 공신이라는 뜻의 공신호
* 증(贈): 생전에 지낸 벼슬이 아니라 사후에 추증했다는 뜻
* 숭정대부(崇政大夫): 조선시대 종1품 문관 품계
* 의정부 좌찬성(議政府左贊成): 의정부의 종1품 관직
* 고령 박공(高靈朴公): 고령 박씨 박공
* 휘 항한(諱恒漢): 이름은 항한, ‘휘‘는 돌아가신 분의 이름을 높여 부르는 말로, 성함이 ‘항한‘이시라는 뜻
* 지묘(之墓): 그의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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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철 - 2집 Myself [재발매]
신해철 노래 / 대영에이브이 / 199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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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고흐의 불꽃같은 삶을 다시 생각하며

「나에게 쓰는 편지」
• 노래 : 신해철
• 작사 : 신해철
• 작곡 : 신해철
• 편곡 : 신해철
• 수록앨범 : 『Myself』(정규 2집)
• 발매 : 1991년 3월 20일

────────────────────────────

난 잃어버린 나를 만나고 싶어
모두 잠든 후에 나에게 편지를 쓰네
내 마음 깊이 초라한 모습으로
힘없이 서 있는 나를 안아주고 싶어

난 약해질 때마다 나에게 말을 하지
넌 아직도 너의 길을 두려워하고 있니
나의 대답은 이젠 아냐

언제부턴가 세상은 점점 빨리 변해만 가네
나의 마음도 조급해지지만
우리가 찾는 소중함들은 항상 변하지 않아
가까운 곳에서 우릴 기다릴 뿐 (오)

이제 나의 친구들은 더 이상 우리가 사랑했던
동화 속의 주인공들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고흐의 불꽃같은 삶도, 니체의 상처 입은 분노도
스스로의 현실엔 더 이상 도움될 것이 없다 말한다
전망 좋은 직장과 가족 안에서의 안정과
은행 구좌의 잔고 액수가 모든 가치의 척도인가

돈, 큰 집, 빠른 차, 여자, 명성, 사회적 지위
그런 것들에 과연 우리의 행복이 있을까

나만 혼자 뒤떨어져 다른 곳으로 가는 걸까
가끔씩은 불안한 맘도 없진 않지만
걱정스런 눈빛으로 날 바라보는 친구여,
우린 결국 같은 곳으로 가고 있는데

때로는 내 마음을 남에겐 감춰왔지
난 슬플 땐 그냥 맘껏 소리 내 울고 싶어
나는 조금도 강하지 않아

언제부턴가 세상은 점점 빨리 변해만 가네
나의 마음도 조급해지지만
우리가 찾는 소중함들은 항상 변하지 않아
가까운 곳에서 우릴 기다릴 뿐 (오)

언제부턴가 세상은 점점 빨리 변해만 가네
나의 마음도 조급해지지만
우리가 찾는 소중함들은 항상 변하지 않아
가까운 곳에서 우릴 기다릴 뿐 (오)

────────────────────────────

신해철의 「나에게 쓰는 편지」에서 ‘고흐의 불꽃같은 삶도, 니체의 상처 입은 분노도’라는 구절은 오랫동안 내게 세상의 기준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끝까지 걸어간 사람들을 상징하는 말로 남아 있었다. 그러나 유경희의 『반 고흐』를 읽고 독서보고와 분석보고를 작성하면서, 나는 이 노랫말을 이전과는 전혀 다르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책 속의 반 고흐는 흔히 알려진 ‘불꽃같은 삶’만으로 설명되는 인물이 아니었다. 그는 여성들의 거절을 자신의 방식대로 해석했고, 공동체를 꿈꾸면서도 타인과 조화를 이루는 데에는 서툴렀다. 동생 테오의 희생에 크게 의지했고, 가족사와 유년기의 상처, 정신질환과 가난 속에서 평생 흔들렸다. 그림을 향한 집착은 위대한 예술이 되었지만, 인간관계에서는 수많은 갈등과 실패를 남겼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고흐의 불꽃같은 삶’이라는 표현을 조금 다르게 이해한다. 그것은 낭만적인 천재의 삶을 뜻하는 말이 아니라, 상처와 불안, 고통 속에서도 끝내 붓을 놓지 않았던 한 인간의 치열한 생애를 상징하는 표현으로 다가온다. 고흐는 불꽃처럼 자유롭게 산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평생 불길 속에 있으면서도 그림만은 포기하지 않았던 사람에 가까웠다.

신해철의 노래는 세상이 점점 빨라지고, 직장과 가족의 안정, 은행 잔고와 사회적 지위가 모든 가치의 척도처럼 여겨지는 현실을 묻는다. 그 질문 앞에서 고흐의 삶은 단순한 찬양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아가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만드는 사례가 된다. 돈과 안정이 삶에 필요하지 않다는 뜻이 아니라, 그것만으로 인간의 행복과 삶의 가치를 모두 재단할 수 있느냐는 물음이다.

결국 이번 독서를 통해 나는 위대한 예술은 천재성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보게 되었다. 그 뒤에는 인간의 결함과 상처, 주변 사람들의 희생과 사랑, 현실의 제약과 고통이 함께 놓여 있었다. 그래서 이제 ‘고흐의 불꽃같은 삶’이라는 가사는 멋진 수사로만 들리지 않는다. 인간이 자신을 잃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 무엇을 끝까지 붙들어야 하는지를 묻는 오래된 질문처럼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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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 덥다. 집에 있으니 더 덮다. 에어콘 틀면 시원하다,
나가자, 뒷동산으로

마님은 아파트 커뮤니티 수영장으로 시원하게 물질허러 가셨다.

등산 다녀올 때는 요새 날이 워낙 더우니께 몇 가지만 조심허자

* 💧 물은 평소보다 조금 더 넉넉하게 챙기자, No, 아메리카노 그란데 사이즈면 된다.

* 🧂 땀 많이 흘리면 이온음료나 염분 보충도 조금 허자, No 뒷동산이니 문제없다.

* 🌳 능선보다는 그늘 있는 숲길에서 산바람 쐬는 게 좋겄다, Yes 살살하자.

* 🦶 게실염도 있었던 만큼 무리해서 기록 세우려고 허지는 말자, ㅠㅠ Yes 살살허자

산에서 바람 한 번 맞고 내려오면서 머릿속도 정리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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