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 교수는 개론에 어울리도록 여러 철학자들이 정의한 짤막짤막한 인생론들을 소개하고 있었어. 그게 성인의 삶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대학 1학년생들에게는 아주 유익하고 흥미로운 일이잖아. ‘인생은 원인의 철학도 아니고 결과의 철학도 아니고 경과의 철학이다.’ 칸트. ‘인연을 맺지 말라. 원수는 만나서 괴롭고, 그리운 사람은 만나지 못해서 괴로우니라.’ 석가모니. ‘가장 행복한 것은 태어나지 않는 것이고, 그다음은 빨리 죽는 것이다.’ 쇼펜하우어. ‘절망의 반대편에서 삶은 시작된다.’ 사르트르.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일절 구속하지 않을 때 나는 비로소 참 나가 될 수 있다.’ 노자. ‘살아야 할 이유가 분명한 사람은 그 어떤 고난도 이겨낼 수 있다.’ 니체. ‘명성을 남기려고 급급하지 말라. 그대가 앞선 사람들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듯이 뒤따라오는 사람들도 그대의 이름을 기억하지 않으리니.’ 아우렐리우스.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자기 자신을 알아내는 일이다.’ 탈레스. 이렇게 열댓 가지 적어 나가면서 부연 설명을 끝냈는데 한 학생이 불쑥 손을 들었어. ‘질문이 한 가지 있습니다. 교수님 강의와 직접 관련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는 질문입니다. 인생에 있어서 돈이란 무엇입니까?’ 이 질문은 아주 돌발적이었고, 신선했어. 학생들의 시선이 그 학생에게로 쏠리면서 강의실은 조용해졌어. 그런데 교수님이 멈칫 당황하는 것도 같고 긴장하는 것도 같은 기색으로 아무 말이 없었어. 그러니 학생들의 시선이 일제히 교수에게로 쏠렸어. 교수가 대답을 할 수 있을 것이냐, 없을 것이냐. 대답을 한다면 아주 멋들어질 것이냐, 아니면 보잘것없이 시시할 것이냐, 학생들은 침묵하고 있는 교수를 향해 이런 평가 함정을 설정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어. 그 나이 때 으레껏 갖는 짓궂음 있잖아. 그런데 교수는 분필 든 손등을 입에 댄 채 고개를 숙이고는 교단을 끝에서 끝으로 뚜벅뚜벅 걸었어. 그 발걸음이 옮겨질 때마다 구두가 교단을 울리는 소리만 조용한 강의실에 퍼지고 있었어. 그런데 교수는 또 교단의 끝에서 끝까지 걸어갔어. 그러자 학생들은 서로서로를 쳐다보며 눈짓들을 하기 시작했어. 그 눈짓들이 하는 말이 뭐였겠어. ‘저 교수 나리 실력 꽝이잖아.’ ‘머리 텅 빈 엉터리잖아.’ 이런 평가를 내리기 바빴지. 그런데 교수는 또 교단의 끝에서 끝까지 걸어갔어. 그러자 학생들은 서로서로를 쳐다보며 눈짓들을 하기 시작했어. 그 눈짓들이 하는 말이 뭐였겠어. ‘저 교수 나리 실력 꽝이잖아.’ ‘머리 텅 빈 엉터리잖아.’ 이런 평가를 내리기 바빴지. 그런데 교단 끝에서 휙 돌아선 교수가 칠판 빈 데다 쓰기 시작했어. ‘돈은 인간에게 실존인 동시에 부조리다.’ 이렇게 쓴 교수가 돌아서더니 ‘오늘 강의는 끝!’ 하고는 강의실을 나갔어. 다른 것들과 달리 아무 부연 설명도 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