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교는 오하쓰와 우쿄노스케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며 말했다. "두 사람 다 배가 고프지는 않은가? 뜨거운 물에 밥이라도 말아오게 하지. 벌써 밤도 깊었는데."

"진정하세요, 마쓰키치 씨." 오요시는 달래듯이 말했다. "우리 남편과 다쓰조 대장님은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고, 좋은 일도 나쁜 일도 함께해 온 사이잖아요. 그러니 널빤지가 입에 처넣어진 것처럼 우물거리지 않아도 돼요. 제대로 말해 보세요."

"너무하십니다. 아무리 저라도 널빤지를 입에 물 수는 없어요."

마쓰키치는 입이 큰 것으로 유명하다. 두꺼비 입 마쓰라는 별명도 얻었을 정도다. 의외로 신경을 쓰나 보다.

숨소리다. 스케고로의, 코를 고는 것 같은 숨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오하쓰는 펄쩍 뛰다시피 돌아보았다.

리에에 대한 마음과 마찬가지로 강하게, 나이토 야스노스케의 영혼은 시대의 권력에 선명한 저항을 보여 준 아코 무사들이나 깨끗하게 운명에 승복해 인내의 길을 선택하며 흩어져 간 기라 가 사람들에게 지우기 어려운 증오를 품고 떠돌고 있다. 아코 무사 중 한 명의 손에 의해 이 세상에서 쫓겨난 것도, 그들이 같은 입장에 있으면서도 자신과는 너무나도 행동방식이 달랐던 것에서 생겨난 얄궂은 운명이었다.

"우쿄노스케는 이런 말도 하더구나. 오하쓰 씨는 타고난 힘을 살리며 살아가고 있다고. 두려워하지 않고 그렇게 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기쁜 일인지 네게 배웠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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겐로쿠는 그런 시대였습니다. 긴 전국 시대를 지나 평화와 부가 세상에 찾아 온 첫 번째 시대였던 셈입니다.

오하쓰는 쇼군의 행동 때문에 세상에 평지풍파가 일어난다고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을 해 봐도 딱 와 닿지 않았다. 있을 수 없는 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쇼군이 화가 나거나 정신 이상인 것보다는 쌀 시장의 쌀 도매상이 다 함께 쌀값을 올리거나, 교토에서 물건을 운반해 오는 배가 에도 항에 들어오지 못하게 되는 쪽이 훨씬 더 큰일일 듯한 기분도 든다…….

공무와 관련된 일을 하다 보면 때로는 이 세상에 신도 부처님도 없다는 생각이 드는 사건과 부딪히게 되는데 이번만은 신이나 부처님이 오하쓰와 우쿄노스케의 편을 들어 주신 모양이다..

리에는 한동안 말없이 눈물만 흘렸다. 세월도 치유하지 못하는 고통─떠도는 영혼의 고독을 생각하니 오하쓰도 할 말이 없었다.

‘나이토의 얼굴만 보고도 저는 주군을 모실 수 있다는 희망이 사라졌음을 알았어요. 그때 처음으로 남편의 마음이 부서져 있는 게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 눈. 세상의 사악한 것을 전부 모아 썩혀서 만든 시커먼 기름이 남편의 눈 속에 고여 있는 것 같았어요. 시커먼 기름이 불꽃을 피우며 타올라 남편의 눈을 번들거리게 하는 것 같기도 했고요.’

"세력을 늘려서 저택의 방비를 단단히 하기 위해 아무리 서두르고 있었다 해도, 기라 님 역시 미친개는 필요 없었고 미친개를 파수견으로 삼을 만큼 어리석은 집안은 아니었다는 뜻일 테지, 오하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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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어봐도 소용없는 일이다. 말이란 얼마나 공허한 것인가. 오하쓰는 그렇게 생각했다.

이나리
곡식의 신. 이나리 신사에는 이나리 신의 사자인 여우상이 있음

유젠 염색
손으로 그려 색칠한 다채로운 그림을 물들인 일본 고유의 염색

번藩
에도 시대 다이묘의 지배 영역 및 지배 기구의 총칭

도코노마
다다미방 정면 상좌에 바닥을 한 층 높게 만들어 족자나 꽃병 등을 장식하는 자리

나가노리는 그날 바로 할복, 아사노 가는 멸족되었다. 그에 비해 기라에게는 전혀 아무런 문책도 없었는데, 이 처분이 소위 말하는 ‘싸움을 한 자는 양쪽 모두 똑같이 벌한다’는 가마쿠라 막부 이후의 대원칙에 위배된다고 해서 두고두고 화근을 남기게 되었다.

조루리
인형 조루리. 이야기를 음곡에 맞춰 부르며 인형을 놀리는 전통 인형극

성안의 칼부림과 이듬해의 기라 저택 습격을 한 덩어리로 해서 ‘주신구라’라는 호칭으로 부르게 된 것도 이 연극에서 유래하였다.

요닌
주군 가까이에 있으면서 실무를 담당하는 문관

나무와 석등의 그림자가 흐릿하게 보일 뿐이다. 어디선가 바람이 운다. 꽤 넓은 정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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