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반도를 수놓은 베개를 만들어주었으니 내가 더도 말고 꼭 3천 년만 살겠도다. 선녀처럼 고운 그대들의섬섬옥수를어이 잊으리."

침공들은 황공하여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 반도란 3천 년에 한 번씩 열매가 열린다는 선도인데, 속설에 따르면 동방삭이도 서왕모의복숭아를 훔쳐 먹고 삼천갑자가 될 만큼 장수했다고 했다. 복숭아를 먹고 흰 머리카락이 다시 검어지기를 삼천 번이나 반복할 만큼장수했다니, 장수무변을기원하는 수 중에 어찌 이보다 더 귀한 것이 있겠는가.

옥새란 황제와 나라를 으뜸으로 상징하는 것이어서 추호라도 부정 타거나, 정성이부족하거나, 날이 흐리거나, 남이 싸우는걸보았거나, 짐승이 슬피 우는 소리를 들었거나, 몸이 아프거나, 몸에 부스럼이 났거나, 부처님께 기도하는데 분심이 들었거나,
꿈자리가 사나울 때면 일체 손을 대지 않았사옵니다

투구 장식에 얽힌 숨은 뜻은 독수리 같은 기상에, 사슴 같은 지혜와, 호랑이 같은용맹을 가지라는 뜻이옵니다. 또한 송골매처럼날쌔고 주과 같은 정열에, 말처럼 빠르게 전장을 내달리며, 혁혁한 공을 이루라는 염원을 갑옷 장식 하나하나에 담았사옵니다.

조족등은 아무렇게나 들어도 등 안에있는 초가 똑바로 서게 만들었으니, 뭇 진신들은 항시 바쁜 처신을 하란 뜻이다.

동북지역은 발해 도성에서 멀리 떨어진데다 산세가 험하고 겨울 추위가 매서웠다. 그럼에도 토평하여 복속시키지 않으면 사해를다스릴 수 없으니 동방정복을 선언한것이다. 또한 남쪽 신라의 머리를 두들겨,함부로 당나라와 결탁하거나 준동하지 못하게 하려는의도였다.

드디어 황제는 중경으로 천도한 깊은 뜻을 천하에 알렸다. 중경에서는 동방 진출이훨씬 수월했다. 동쪽으로 흐르는 통문하를이용해동해로 나갈 수 있으며, 육로를 따라 동북방으로 진격하여 한없이 넓은 동양대해를 다스릴 수 있었다

대무예의 병이 깊어진 것은 장문휴가 이끄는 정병이 가는 곳마다 연전연승을 거듭하며 기쁜 소식을 전해오던 병자(736)년이었다.
황제가 병상에 들자 태자 대흠무가 정사를 맡게 되었다. 대흠무는 근엄하고 위엄에 차있던 선제 대조영, 대무예와 달리,
자유분방하면서 화통한 기질로 좌우를 편케 하는 성정을 가졌다.

황제 대무예의 병은 호전의 기미가 없었다. 신승은 백방으로 약초를 구하고 의생들을 풀어 영약을 찾았지만, 세월을 이길만한 약이없으니 안타까웠다. 근자에는 깊이잠들지도 못하는 것 같았다."꿈에 선제께서 나타나시고, 당나라로 도망간 대문예가 보이고,
어머니도 소복을입고 걸어다니시니...... 대도리행은 짐의 소매를 잡고 대성통곡했도다

공사량은 대흠무의 손길을 끝내 거역하지 못했다. 섬세한 손길이 여인의 옷을 하나씩 벗겨갔다. 사내의 몸은 열정에 들떴다. 섧게 울던 여인도 차츰 뜨거워지는 몸을어쩌지 못했다. 여인은 진흙 속에 빠진 듯 사내의 손길을 따라 움직일 뿐이었다

"기품을 지키셔야 하니, 오늘부터는 사냥과 격구와 가무를 금하시고 대전에서 정진하는 모습을 보여주옵소서. 곡기도 줄이시고기도로써 영원한 세상으로 가시는 황상을 배송해야 하옵니다. 그러면 절로 소문도 사라지고 전하를 숭경하게 되옵니다."대흠무는고개를 숙이고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 신승이 황송해서 대흠무의 손을 잡아 일으켰다.

정축(737)년 진월(3월) 발해 황제 대무예가 기어이 붕어했다. 대전 아래에 부복한 문무백관들은 통곡했다.

대흠무는 선제 대무예의 시호를 무황제로 하고 제를 올렸다. 대무예와 영고를 나누었던 황친과 진신, 장수들의 울음소리는 금세라도 먹구름을 불러들일 듯했다. 무황제의 성수가 예순이요, 기미(719)년에 황위에 올랐으니 18년간의 재위였다.

"예부터 황제는 세상 범부들의 인륜을 따르지 않아도 그만이라 했나이다. 그러나 그럴수록 법도를 따르고, 도량을 키우고,순리를 중시해야 하나이다. 폐하께서는 강건하시어 무병장수를 할 것이므로 반드시 물이 흘러가듯 걸림이 없어야 하나이다. 개기창업도 어려우나 수성이 더 어렵다 했으니, 폐하의 어깨에 나라와 백성의 안녕이지워져 있음을 잊지 마옵소서.""칙계로 알고 새겨 두겠소."

손재는 이튿날 새벽녘에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무정한 것이 세월이요, 빠른 것도세월이라 했다. 발해의 개국 공신 가운데 이제는 살아있는 자가 없었다. 새로운 인재들로 부국강병의 새 나라를 펼쳐야 할 때였다.

흑수를 제압하기 위해 영자성에 나가 있던 복정군 통수 대일하가 병사하자 대흠무는 적임자를 물색했다. 거칠고 흉맹한 흑수의 무리를 제압하려면 기개늠름하고 식견과 도량이 넓어야 했다.그동안 흑수가 기를 펴지 못한 것은, 발해가 당나라를 급습하여 세상을 놀라게 하자 두려움을 품어서이기도 하지만, 흑수군을 거침없이 정벌했던 대일하가 영자성에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흑수는 영자성 너머에 병마를 주둔시키고 발해 눈치만 보고 있었다.

양소화는 일찍이 장문휴의 청혼도 거절했으며, 천하 장부들의 간청도 듣지 않았나이다. 평생 홀몸으로 살면서 오직 일념으로 충절을 지켰나이다. 양소화를 여인으로 보지 마시고 장수로만 보옵소서. 능히 흑수를 정복할 수 있나이다. 고구려 명장 양만춘의 피가 양소화의 몸속에 들끓음을 보실 수 있사옵니다."

"고기를 잡으려면 미끼가 필요하옵니다.소신을 미끼로 쓰시면 흑수를 토평할 수 있사옵니다. 신이 복정군 통수가 되면 여자라얕보고반드시 준동할 테니 그때 낚아 올리겠사옵니다. 통촉하옵소서."대흠무가 그 말에 소리 내어 웃었다."미끼로 쓰기에는 너무어여쁘도다."신하들도 그 말에는 모두 웃음보를 터뜨렸다.

"폐하, 이 세상에서 부드럽기로 물보다더한 것이 없으나, 강한 것을 공격함에 물보다 더한 것이 없나이다. 여자를 중용하시면 폐하의덕치가 크게 비칠 것이나이다."대흠무는 결국 신승의 말을 따르기로 하고 반대하는 신하들을 물린 뒤 양소화에게인수와 부월을 주어북정길에 오르게 했다.

발해 사상 최초로 여인이 2만 군사를 거느리고 북정군 통수가 되었으니 백성들이 진기하게 여겼다. 30대 중반의 여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앳돼 보였다. 아직도 젊은장수들 가운데 그녀를 연모하는 자가 많다고 했다.

미움이란 독 묻은 화살촉과 같아서 화살은 날아가 미운 자의 가슴에 박히지 않고꼭 살을 쏜 자의 가슴에 박힌다.

"다리를 다치면 지팡이를 짚고 다녀야 하지만 다리가 다 나으면 어찌해야하느냐?" "지팡이를 버려야 합니다." "지팡이가 제법 맘에드는 것이라도 버리겠느냐? 아니면 좋은 지팡이니까 평생짚고 다니겠느냐?"".. "장문휴는 역시 대답할 수 없었다."너는 지팡이가있건 없건 절룩거리고 있구나."

"쓰레기를 버리지 않고 안방에 모아두는자가 있느냐?" "없습니다.""너는 혼의 쓰레기와 생각의 쓰레기를 가슴에 모아두고 있으니 네게서 악취가 진동하는구나. 누가 네 곁에 있고 싶겠느냐."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듣거라. 여기 뜨거운 물잔이 있는데, 잡고 놓지 않으면 어찌 되겠느냐? 놓으면 그만인 걸 왜 계속 쥐고 있느냐?"장문휴는 뜨거운 눈물이 솟구쳤다

"흑수 지경으로 가라. 용맹하고 의분에찬 사람들을 초모하여 의병을 일으켜 흑수를 핍박해라. 일세를 풍미한 대장군 장문휴는 마땅히 의병장으로 장렬하게 전사해야한다. 위로는 선조들이 지켜볼 것이고 아래로는 백성들이 흠숭할 것이다."

머지않아 죽을 것을 알고 생전에 명복을빌기 위해 부처님께 공양을 드리겠다는 뜻이었다.

이는 나라를 위해 기꺼이 적진에서 전사하라는 스승의 가르침이었다. 심산벽곡에서 정진만 하는 승려도 세상사를 저리꿰뚫고 있는데 무슨 명분으로 그 가르침을 거역하겠는가. 장문휴는 흔쾌히 살신성인의 도를 받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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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신의 대발해 5 - 등주와 장성을 정벌하다 김홍신의 대발해 5
김홍신 지음 / 아리샘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독서보고] 김홍신의 『대발해』 5권 – 등주와 장성을 정벌하다, 대당 공세와 정치적 봉합, 그리고 계승 체제의 확립

1. 대발해 5권 전체 개요
가. 목적
ㅇ (핵심요약) 대발해 5권 전체에 나타난 무왕(대무예)의 대당 공세, 대문예 반란의 정치적 활용, 외교 지형(당, 신라, 일본)의 변화, 그리고 대무예 붕어 이후 대흠무 중심의 계승 체제 재편 과정을 총체적으로 분석함.
나. 시대적 및 공간적 배경
ㅇ (시대적배경) 732년 발해의 대당 선제공격으로 대외 전쟁이 국가 위신을 시험하는 국면으로 전환되고, 반란과 내통 변수가 교차한 뒤 737년 무황 붕어 이후 3대 황제 대흠무 즉위로 새로운 계승 국면이 열리는 시기임.
ㅇ (공간적배경) 동모산 황도, 서남 전진기지인 비사성·박작구, 수륙 양면 타격의 요충지인 등주와 영주, 북방 흑수말갈 전선, 그리고 對日 사신의 대외 해양 항로인 우산도 일대와 일본 열도임.
다. 핵심요지
ㅇ (대외공세와 분열 봉합) 명분을 축적한 뒤 요충지를 타격하여 당과 대등한 대국으로 자리매김하는 한편, 내부 반란은 대규모 숙청 대신 정치적 봉합으로 관리하는 등 통치 딜레마를 돌파하는 정치적 기술을 보여줌.
ㅇ (중경천도와 내치정비) 대당 공세의 성과를 중경 천도 추진과 내치·군수 체계 정비로 연결하여, 전시 동원 체제에서 평시 통치 체제로 전환할 기반을 마련함.
ㅇ (권력의 양면성) 국운을 건 전쟁을 승리로 이끈 무황이 붕어하고 대흠무 시대로 진입하며 통치 윤리가 강조되나, 그 이면에는 황권을 향한 비정한 투쟁과 충신의 정치적 은둔이 교차함.

2. 주요 내용 전개
가. 반란 후처리와 대문예 반란의 관리
ㅇ (처단과 유예) 대문예를 즉각 처단할 경우 황궁과 가솔까지 연루되는 골육상잔의 참화가 우려되므로, 훗날 대당 공세의 명분으로 활용하기 위해 징벌을 유예하는 계산이 병존함.
ㅇ (신중한 추격) 급히 쫓기보다 병력 손실을 줄이며 천천히 압박하고, 반란군 내부를 흔드는 신중한 지휘가 전개됨.
나. 대당 공세의 설계와 요충 중심 타격
ㅇ (수륙양면 기습) 대무예가 중병 연막전술과 세작을 활용하여 당을 교란하고, 비사성과 박작구를 전진기지로 삼아 수군과 별동대를 결합하는 치밀한 작전을 구사함.
ㅇ (급소타격) 고구려 시절부터 침공로였던 물류 및 군사 요충지 등주를 장문휴 수군이 함락하고, 대무예의 황제 친정군이 영주를 수복하여 장안 압박의 가능성을 열어두며, 정면전을 피하면서 급소를 타격하는 전략의 정수를 보여줌
다. 주변국 연동 변수와 대외 외교
ㅇ (신라군 격퇴) 발해의 공세에 연동하여 당의 사주를 받아 북상한 신라군을 북방의 한파와 눈보라를 이용하는 지략으로 궤멸시킴.
ㅇ (결사적 해양외교) 우산도(독도)를 거치는 험난한 바닷길에서 사신들이 목숨을 잃는 막대한 희생을 치르면서도, 끝내 일본과의 외교를 성사시킴.
ㅇ (대외견제구도) 이를 통해 신라와 당나라를 견제할 외교적 후방을 확보함.
라. 내치 강화와 계승의 가시화
ㅇ (국토순람) 대흠무는 백성들의 삶을 직접 살피고 민심을 다독이기 위해 넓은 국토를 순람하며, 제왕으로서의 기틀을 다짐.
ㅇ (애민과 부국) 대흠무는 지화륜(온돌)을 보급하여 백성의 겨울을 살피고 약전과 책방을 설치하며, 철기와 유기 무기 제작을 독려하여 내실을 다짐.
ㅇ (동방진출) 장문휴에게 명하여 동방을 정벌하게 하고, 동양대해를 다스리며 신라의 준동을 막기 위해 통문하가 흐르는 중경으로 수도를 천도하겠다는 뜻을 천하에 알림.
마. 무황 붕어와 장문휴의 정치적 은둔
ㅇ (수성기의 도래) 737년 2대 무황 대무예가 붕어하고 대흠무가 즉위하여, 남쪽의 당과 북쪽의 흑수말갈이라는 이중 전선을 재편하는 과제를 안게 됨.
ㅇ (충신의 결단) 대흠무에게 정혼자를 빼앗긴 장문휴는 황도 귀환을 스스로 거부하고, 미련을 버린 채 의병장으로 나서 양소화의 정규군을 돕는 것이 진정 나라를 위하는 길이라는 스승의 뜻에 따라 충절을 실천함.

3. 대흠무의 역사적 평가에 대한 소고
가. 문치와 포용 이면에 감춰진 냉혹함
ㅇ (권력의 비정함) 온돌 보급과 눈물 짓는 성군의 면모를 보이나, 일등 공신인 장문휴의 정혼자 공사량을 취하는 등 황권을 위해서는 도의마저 저버리는 냉혹한 이면을 지님.
나. 장문휴의 고의적 항명과 명분 조작
ㅇ (생존전략) 장문휴의 귀환 거부는 여인을 빼앗긴 위기 속에서 토사구팽을 피하기 위한 스스로의 판단이었음.
ㅇ (스승의 가르침) 은둔을 결심하고 태백산의 스승 법연 스님을 뵙자, 스승은 쓰레기와 지팡이의 비유를 들어 마음속 원망과 미련을 모두 버릴 것을 일갈함.
ㅇ (진정한 충절) 비록 항명으로 정규군 통수권은 잃었으나, 흑수 지경으로 가 의병을 이끌며 양소화의 흑수 정벌군을 돕기로 결단함.
ㅇ (명분조작) 대흠무는 이를 알면서도 자신의 허물을 덮기 위해 충신의 은둔과 헌신을 묵인하고 이용하는 정치적 술수를 부림.
다. 통치 윤리의 전면화와 권력의 속성
ㅇ (명암의 공존) 겉으로는 질서와 절제로 강공 노선을 재조정하는 듯하나, 속으로는 자신의 안위를 위해 신하의 희생을 강요하는 가장 현실적이고 교활한 권력자의 속성을 여실히 보여줌.

4. 거시적 고찰 및 역사적 함의
가. 대외 주도권 강화와 군사 행동
ㅇ (대국위상강화) 당과 대등한 대국이라는 외교적 선언에 그치지 않고, 요충 공략과 기습이라는 실질적 군사 성과로 이를 입증하며, 발해의 위상은 생존을 넘어 동북아 질서의 주도권을 겨냥하는 단계로 상승함.
나. 내부 통합의 비용과 정치의 기술
ㅇ (통치딜레마) 반란의 완전 청산은 내부를 찢고, 봉합은 위험을 남기는 딜레마 속에서 무황은 이를 명분 축적과 정치적 봉합으로 수습하는 고도의 정치적 결단을 보여줌.
다. 살신성인의 충절과 계승의 언어 변화
ㅇ (언어의확장) 무황기의 거친 전투 언어가 대흠무 즉위 후 도덕과 수양의 언어로 재편되나, 그 이면에는 사도 난일의 자결과 장문휴의 헌신 같은 핏빛 희생이 자리하고 있음.
라. 개국공신 세대의 퇴장과 시대 전환
ㅇ (개국세대의 종언) 대일하와 손재의 죽음으로 개국공신들이 역사 전면에서 사라지며, 무황기의 개국공신 정치가 약화되고 대흠무 시기의 새 신료와 새 질서로 권력 지형이 재편되는 전환점이 형성됨.

5. 종합 결론
가. 공세적 체제 공고화와 구조적 모순
ㅇ (국가관완성) 대발해 5권은 대외 공세로 위신과 정통성을 강화하고 내부 균열을 봉합하여 체제를 확장하는 과정을 보여주나, 동시에 황권 유지를 위한 도의적 타락이 공존하는 구조적 모순을 드러냄.
나. 새로운 수성 시대의 그림자
ㅇ (권력전환) 무력으로 대국을 굴복시킨 무황 시대가 저물고, 윤리와 도덕을 내세우면서도 냉혹한 권력 암투가 교차하는 3대 황제 체제로의 구조 전환이 이루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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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날 만고역적 난일이 대문예를 쫓아당나라로 망명하자 그의 아우 난이와 난삼은 죽음을 각오했다. 그러나 대무예는 난이와 난삼의충절을 알고 오히려 품계를 높여주었다. 뿐만 아니라 대무예는 친정하면서신라의 공격을 걱정하여 난이와 난삼을 방어군 통수로명했다.난이를 태령남위 대장군으로 삼고, 난삼에게는 보령남위 대장군을 제수하여 남쪽지경을 맡겼다.

머지않아 남쪽에서 당나라의 사주를 받은 신라군이 쳐들어올 것이다. 결코 창검궁시로 싸우려 하지 말고 꾀로써 싸우되, 하늘과 땅의기운을 이용해라. 산하가 얼어붙고, 교통할 수 없을 만큼 눈이 쌓일 것이다. 그러니 지금부터 설마와 설피를 마련하고, 양식과 땔감도넉넉히 마련하여, 얼어 죽거나 동상 걸리는 군사가 없게 하라

따뜻한 남쪽에 살던 사람은 북풍한설과강추위를 견디지 못한다. 천기가 우리 편이거늘 어찌 백만 대군을 두려워하겠는가. 우리가도망가는 척 적을 깊은 산으로 끌고가면, 창검을 쓰지 않고 눈보라와 모진 바람만으로 적을 섬멸할 수 있다."대장군의 훈유는 금세장수들의 머리를 조아리게 했다.

우리가 적의 교병계에 말려든 것이 아니냐? "김윤중은 아우 김윤문에게 물었다. 교병계란 적을 교만하게 만드는 계책을 말한다

김윤문은 목청을 높였지만 낯빛은 밝지않았다. 그 또한 천하를 호령하는 장수였으니 어찌 천문을 모르겠는가. 일관 최관문도그믐무렵에 위성, 실성, 벽성 앞에 많은 별이 벽을 쌓고, 그 속에 붉은 기운이 있으니만사를 근심해야 한다고 일렀다. "태백성의 장군성을떠밀어 물러나게 한것도 흉조입니다. 이는 눈과 바람과 함께뒹구는 형상이어서 조심해야 합니다."

신라 군사들은 얼어죽은 전우의 옷을 벗겨 입고, 죽은 군마의 고기를 저몄으며, 털 그슬린 억센 말가죽까지 씹어 삼켰다. 살아남기위한 몸부림은 처절했다

몇날 며칠을 무작정 남쪽으로 내려와 진을 쳤는데, 돌연 발해군이 기습 공격을 감행했다. 예상 못한 공격이었다. 군영은 힘없이무너지고, 군사들은 오금도 못 펴고도망갔다. 천지를 호령하던 신라 제일 명장이요, 사해에 이름 떨친 김유신 손자인 김윤중과김윤문은 목숨을 건지려고 경황없이 도주했다.

정신을 차려 남은 군사를 점고한 김윤중은 절망에 찬 소리로 울부짖었다. "아! 하늘도 무심하고 땅도 저주했구나!

이제 발해는 북방의 강자가 아니라 드넓은 당나라와 당당히 맞서는 대국이 되었습니다." 동상에 걸려 한 쪽 다리를 절룩거리는장수취생복이 김윤중 에게 자탄의 소리를 했다.

왕모중은 대문예가 마지막으로 조국에게 진 빚을 갚는 방법도 일러주었었다.당나라 군사를 이끌고 나가되 발해군과은밀히 내통하여참패당한 후 장렬하게 전사하라고 했다. 그때는 설마 발해가 강성대국인 당나라를 공격할 리 없다고 생각했다.대문예는 심사가 편치않았다. 마음도 뒤숭숭하고 동족 앞에 창궁검시를 내밀어야 하는 자신의 처지가 너무나 안타까웠다.

전하, 예부터 이기면 제왕이요, 지면 역적이라고 했나이다. 그러나 이번 전쟁은 이기면 제왕이요, 져도 역적이 되지 않나이다.
발해군을 무찌르고 승세를 몰아 아예 도성까지 깨뜨려야 하옵니다. 그런 연후에 무도한 황제를 문죄하여 황위에 오르셔야 하옵니다. 이미 병들어 죽은 임아의 자식이요, 천하역신이 된 임청은 이번 전쟁을 통해 재기를꿈꾸고 있었다

결코 발해군을 이길 수 없나이다. 대세가 기울었나이다. 평로선봉 오승자는 황명을 받아 마도산(산해관 부근) 일대에 급히돌을 쌓고있사옵니다. 그 길이가 얼마나되는지 아시옵니까?

무려 남북으로 4백 리를 돌방책을 쌓는것은 방어만 하겠다는 뜻이옵니다. 당나라는 결코 발해의 내지를 침범하지 못하옵니다.
하물며 어찌 천통성까지 달려가겠사옵니까?

전하, 낚시꾼은 고기를 낚기 위해 미끼를 꿰옵니다. 전하는 미끼일 뿐이옵니다.

처음에 당제의 명을 받아 군사를 거느리고 출병할 때만 해도 대문예는 잔뜩 꿈에 부풀었다. 발해군을 무찌르고 추격하여 발해 도성을함락한 뒤에 황위에 오를 생각이었다. 그러나 평로선봉 오승자가 마도산 일대에 장벽을 쌓고, 흑수와 실위의 군사들을충원하여방어전을 서두르고 있다는 걸 안순간, 그 꿈이 무참히 깨졌다. 물론 북방에거란이 준동하고 돌궐도 기회만 엿보고 있지만, 당나라는끝까지 발해 땅을 짓밟고징치할 뜻은 없는 듯했다

쓰러진 적장의 투구가 저만치 나뒹굴었다. 적장의 얼굴을 확인한 덕숭은 비명을지를 뻔했다. 낯익은 얼굴이었다. 바로 몇년 전까지만해도 발해의 삼사삼공의 반열에 올라 있던 사도 난일이었다. 그의 앞가슴에 비단으로 싼 서찰이 비죽이 나와 있었다.

서찰을 받아 읽은 대일하는 난일의 시신을 후방으로 보내 정중히 예를 갖추어 장례를 치르게 했다. 난일은 당나라 군사들의수효와배치는 물론, 장수들의 관등과 특징, 병장기의 성능과 치중대의 군물, 유주의원군과 마도산 일대에 진을 친 군사들을 무찌를 계책을세세하게 적어 보냈다.

또 한 통은 황제에게 보내는 사죄문이었다. 눈물겨운 것은, 반역의 무리임에도가솔을 징벌하지 않고 오히려 사급을 내려, 죽을 때까지편히 살게 해 준 은덕에 대한보답으로 목숨을 바친다는 글이었다.

"역적 대문예를 잡아라!"군사들 또한 목청껏 소리 높였다. 발해군사들은 대문예가 당나라 군사를 이끌고발해군과 대적하는 것에분노했다. 분노처럼 훌륭한 무기가 또 어디 있겠는가.

"천만 군사가 모두 천자의 것임을 어찌모르시오? 천자의 어의를 어지럽혔으니 어찌 문죄하지 않을 수 있겠소이까. 근신하시오."
대문예는 가슴을 쳐야 했다. 분한 생각같아서는 오승자와 공주필을 단칼에 베고군사를 이끌고 나가 싸우고 싶었다.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역적 대문예가 당나라로 망명하자 장군으로 제수하고 징치하지 못한 것이 첫 번째 잘못이요, 무진년에는장안에 유학중인 황자께서 병사했으나 진상을 세세히 알리지 아니했음이 두 번째 잘못이옵니다. 흑수의 무리가 당나라에서 말을 팔아무기를 사게 한 것이 세 번째잘못이며, 흑수 도독부를 설치하고 발해의배후를 압박했으니, 이 또한 네 번째 잘못이옵니다."

사신을 돌려보낸 대무예는 즉시 회군할것을 명하니, 때는 계유(733)년 정월 그믐이 다 되었고, 몸소 친정하여 군사를 이끈지 어언다섯 달이나 되었다. 이 다섯 달은황제에게 무려 50년이나 된 듯했다. 국운을 건 승부수였다.

대무예는 당나라를 굴복시키기 위해 수륙양면으로 공격했다. 수군이 먼저 등주를함락한 뒤 서북쪽으로 진격하고, 뒤이어 친정군이서쪽을 차례로 함락하자, 당나라는양로군의 목표가 낙양과 장안이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발해의 셈속이 잘 맞아떨어졌다.

이번 전쟁을 통해 발해는 고구려의 전성기에 견줄 만한 군사 강국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당나라의 간담을 서늘케 한 것은당나라 조정에서 징발한 군사의 규모가말해주었다.

"전장이 수습되기도 전에 북방에서 돌궐이 준동하고 내지에서 거란이 공격하면, 당나라는 우리를 겨눌 여유가 없사옵니다.
개국황제께옵서, 천문령 대첩을 이루시고 동모산에서 개기창업을 하실 때도, 돌궐과 거란이 요서에 준동하여 울타리가되었사옵니다."

"믿음직스러운가?" "마진풍은 민첩하고 의기가 있어서 중임을 맡기기 적절하며, 임자기는 풍류가무에뛰어나고 칼부림에 능하며,
진채무는 재주가 많고 임기응변이 뛰어나며 지세에 밝습니다.

세상에 살아 있는 것 가운데 존귀하지않은 것이 어디 있소이까? 이곳에는 예부터 독사가 많아 아까운 생령들이 많이 죽었소. 이사람은 살 길을 찾았소.

이것은 독기를 빨아내는 흡독석으로 크기가 비록 대추만 하고 보잘것없어 보여도독을 빨아내는 데에는 신효하오

촌장은 신석정 손에 흡독석 두 개를 쥐여주며 훗날 요긴하게 쓸 일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일행이 발해 사람들이라는 것을알면서도기꺼이 보살펴주는 당나라 촌장과 마을 사람들의 정성에 대흠무는 많은 생각을 했다. 원한 맺힌 나라일지언정 여염백성들끼리는 무슨원한이 쌓였겠는가.

우리는 부모 죽인 원수라도 독사에 물렸으면 일단 살리는 게 사람의 도리라고 배웠소. 옥 귀한 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으리오만,
귀하기로서니 어찌 사람 목숨과 바꾸겠소. 보석이 없어서 당장 죽는 자가 있거든 그 사람에게나 주시오

"눈빛으로 정을 통해 이미 내 것인데 급할 게 무엇이겠는고." "데려가겠다는 뜻이옵니까?" "저만한 미인을 얻기도 어렵겠지만흑수변방의 수령 하나 얻는 것은 수만 군사를얻는 것과 같지 않겠는가?" "전하, 천하가 엎드리겠사옵니다.""흑수 수령 아사리를밀정으로 삼고, 옥소지를 훌륭한 세작으로 삼겠다."

"전하, 천하를 다스리려면 통곡할 줄도, 눈물 흘릴 줄도 아셔야 하옵니다. 백성이굶주리면 같이 통곡하고, 백성이 아프면 같이 눈물흘릴 수 있는 군주가 정녕 군주이옵니다."신석정이 애써 눈물을 감추려는 대흠무를 이렇게 위로했다.

여인은 숨 가쁜 소리로 응대했다. 사내의손길은 꽃잎을 한 잎씩 따내어 입에 물듯했고, 여인의 손길은 단단한 박달나무로 제몸을아프게 때리듯 했다. 삼라만상의 변화가 음양의 조화에서 비롯된다고 했으니, 양은 음을 얻음으로써 화육을 이루고 음은 양을얻음으로써 비로소 생성하며, 이렇게 화합하고 상통하면 천하를 얻은 듯 기쁨을 누린다고 하지 않았던가. 꽃잎이 우수수 떨어지듯여인은 몸을 떨며 비명을 질렀다. 가쁜 숨소리도 메아리처럼 흩어졌다

이에 대무예는 기꺼이 대흠무를 태자로 책립했으니 때는 을해(735)년 여름이었다

"추운 겨울을 이겨내려면 온돌방만 한게 없사옵니다. 지화룡(방고래)을 팔 때부터 아래 윗목이 고루 따듯하게 구들을앉혀야 하옵니다."

대흠무는 손재간 좋은 장수 양상소에게는 활과 쇠뇌와 화살을 만들게 하고, 그의동생 양경소에게는 창과 방패, 북과 징 같은 전구를만들게 했다. 양경소는 철기와유기로 농구나 가구를 만드는 대장간 책임도 맡았다.

약재를 팔거나 진맥하고 침놓는 의자가상주하는 약전과, 선비들의 책상을 만들어파는 곳을 궁 가까이 둔 것은 뜻이 깊었다.

사족과 벼슬아치들이 아픈 백성들을 눈여겨 보게 조처한 것이다. 난이가 의술을 관장하고 말의 병을 다스리는 마의는난삼이관장하기로 했다.

"매일 누워 자는 궁궐 지붕에 저리 무서운 걸 두고 어찌 잠이 오겠는고?"대흠무는 지붕의 마루 끝에 얹는 망와를가리키며 물었다. "그옛날 중원의 황제와 싸웠던 우리 민족의 거한이었던 치우의 얼굴인데, 상 귀신처럼 무서운 모습을 하고 있으며, 천하 용맹하기에악독한 귀신도 범접하지 못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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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렵 발해 도성에는 기이한 소문이나돌았다. 황제 대무예가 중병이 들어 태사 신승이 황제를 모시고 약수가 좋은 태백산으로떠났다는 소문이었다. 그리하여 황자 대의신이 황궁을 지키고 조정 대소사를 대내상 손재가 맡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임신(732)년 9월 초닷새, 발해군은 백암성과 비사성에서 동시에 군사를 일으켰다

발해 황제 대무예가 직접 이끄는 육로군은 백암성에서 진발하여 요하를 건너 영주들이치고, 수군대장군 장문휴가 이끄는 해로군은비사성과 박작구에서 출병하여 등주로 짓쳐들기로 했다

선봉장을 자청한 양소화의 지휘선에는 얼마 전 위준의 비장이었던공이거를 비롯 고장숙, 임명필, 두충호, 기세진, 주나견이 군선을 지휘했다.

본대를 이끄는 장문휴 대장군은 군사 고징우를 상석에 모시고, 크기는 작지만 가장빠른 군선에 올라 형형색색의 깃발을 흔들어군선의 속도를 조절했다.

봉상루는 여염사람들이 출입할 수 없는 기방이었다. 오래전부터 소문난 집이었지만 지난해에 발해 여인 전수랑이 맡으면서부터명성이 더욱 자자했다. 미색이 뛰어난 기녀들이 어찌나 요염한지 뭇 사족과 장수들이 줄을 섰다.

전수랑은 가끔 대소 관료와 장졸들에게연석을 베풀고 푼돈을 챙겨주어 후덕한 주인으로 평판이 높았다. 명절이나 생일이 되면고객에게 물선을 꼭 챙겨주었고, 먼 길을 간다면 노자도 아끼지 않았다. 그 덕에전수랑의 일이라면 등주에서 통하지 않거나 풀리지않는 게 없었다. 소문에는 이풍장이 뒷돈을 댄다고 하였다.

발해군의 기습이었다. 관문을 통과한 군선에서 쏟아져 나온 군사들은 불화살을 쏘아 지휘 장수 없는 수성군의 기선을 제압했다.
뒤따라 밀어닥친 군선에서도 군사와군마들이 마치 용이 불을 토하듯 쏟아져 나왔다.

적의 기세로 보아 전투가 시작되면 당나라 군사들은 오합지졸이나 다름없을 게 뻔했다. 무방비 상태에서 기습공격을 받아 얼이빠진데다 미처 병장기를 갖추지 못한 병사가 태반이었다. 사방에는 아직도 기세 좋게 불길이 치솟고 있었다. 그러나 당군은불을 끌만한 여유도 없었다.

한나절 만에 등주성을 평정한 장문휴는군마와 병장기를 챙기고 관고를 열어 발해군사들을 푸짐하게 호궤했다. 선봉에 서서적을놀라게 한 양소화에게는 귀덕장군이제수되었다.

"황상께서 영주를 치고 장성을 넘어 장안으로 진공할 것 같소?" "그렇지 않고서야 폐하께서 친정하실 리만무지요." "이번에 친정하는것은 언제든지 발해가당나라를 쳐 장안을 수중에 넣을 수 있다는걸 보여주려는 것이오."

123/29우리의 국력과 군사력은 아직 당나라를깨뜨리고 복속시키기에 부족하오. 그럼에도 우리가 정복전에 나선 것은 당나라를 놀라게 하여다시는 우리 지경을 넘보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오. 또한 흑수의 무리가 기신을 못 하게 하고, 돌궐과 거란에도 경고해두려는 것이오. 수하 장졸들에게는 계속장안까지 진격하는 것으로 하시오

언젠가는 신라가 발해를 공격할 것이오. 그때 당나라가 신라와 연합하여 우리를공격하면 누란의 위기가 되지 않겠소? 우리가늦가을에 당나라를 침공한 것은 의도가 있었소. 다급한 나머지 신라에 원군을청할 텐데, 이미 겨울이 깊어질 것이오. 설사 신라가당나라의 요청을 받아들여도 남쪽 사람들은 북방의 모진 추위를 견딜 수없소

백제가 뱃길을 막아 당나라에 조공할길이 끊겼으니, 하루속히 백제를 쳐서 당나라에 조공할 길을 열어 달라는 김춘추의 간청은 천추만대에 비웃음을 살 것이오. 당나라의 음험한 뜻을 신라가 미처 깨닫지 못했으니 자손만대의 비극이 아니고 무엇이란말이오?

자고로 천리란 소소해서 응보가 분명하니 신라 또한 경천동지할 것이오. 발해가당나라를 침공했다는 소리에 신라의 군신들이 감히발해를 넘볼 생각이나 하겠소이까?

친정길에 오른 황제 대무예는 피를 나눈 아우 대문예를 생각했다. 외숙 임아와육촌지간인 대정곤과 대사달의 모습도 선명히떠올랐다. 스승 신재용은 그들이 반액지구의 상이니 유념하라고 이른 적이 있었다. 반액지구란 겨드랑이 밑에서 모반하는 적을가리키는 것으로, 기르던 짐승이은혜를 잊고 주인을 물어뜯는 형상이었다.그 말을 들을 때만 해도 실감나지 않았는데, 친정하는길에는 만감이 교차했다.

그들의 배반은 황제에게 견디기 어려운고통과 치욕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있었기에 당나라를 침공할 명분을 얻은 터라, 어찌 보면전화위복이었는지 모른다. 그들이당나라로 도망간 걸 빌미로 대무예는 중원을 공격할 명분을 쌓았다. 그런 참에 장자대도리행이급사하여 시신으로 돌아왔으니, 대무예는 비탄을 안으로 삼키며 하늘이 기회를 만들어 준 것이라 생각했었다.

천고만난 끝에 장성 계선까지 진출해도 한순간 역공을 당해 오히려 천리장성을 잃을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반드시 이겨야 하는전쟁이었다. 대무예가 몸소 친정을 하는 까닭이 거기에 있었다.

전군은 크게 다섯으로 나누어전, 후, 좌, 우, 중군으로 편성하여 대일하를 당토격군대총관으로 삼고, 양호를 부총관에 명했다. 전위주장에 고공두, 부장에문수겸, 후위 주장에 홍청국, 부장에 다극조를 임명했다. 박연표와 모경본이 좌군을맡고, 대도진과 진적채가우군을 거느렸다.중군은 대일하가 직접 이끌되, 황제 대무예는 따로 친위대를 거느리고 발해 군사를 통할했다.

황제를 호위하는 대장군 여시말과 흔적진, 알윤금, 연검토, 김시몽, 감신극은 발해의 칠성이라는 별호가 붙은 장수들로 고황제때부터 출중한 무술로 총애받던 무장들이었다. 황제를 보위하기 위해 목숨을 초개처럼 버릴 수 있는 장수들이었다.

친위대 외에 별동대를 두었으니 황자 대흠무가 직접 이끄는 부대였다. 열여섯 살밖에 안 되었지만, 그 늠름한 자태와 헌걸찬기상은널리 알려져 있었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도량이 넉넉하여 품평이 좋았다. 대도리행이 죽자 대무예는 둘째 황자 대의신보다 셋째인대흠무를 더 총애하였다. 이번당나라 정복전에 대흠무를 대동한 것도 마음속에 숨겨 놓은 생각이 있기 때문이다.

"보라! 동명성왕께서 강에 이르러 말채찍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소리치자 물고기와 자라들이 나타나 다리를 놓아주었듯, 어둠 속에서하늘이 번개로 갈 길을 밝혀주시지 않느냐? 강을 건너면 천하가 모두 너희들 것이다. 가자! 발해의 혼이여, 일어서라!힘을 내어전진하라."

한이 서린 영주성이었다. 고구려가 멸망한 뒤 20만 명이나 되는 고구려 유민들을압송하여 당나라 내지에 흩어놓을 때, 가장많은고구려인들을 묶어 두었던 곳이다. 고구려인들은 노비가 아니면 황무지를 개간하는 노역으로 기근을 넘겼고, 온갖 학대와수모를견뎠으며, 무수한 여인들이 노리개로 전락했다

일세의 영걸 대중상과 대조영, 분기탱천한 고구려 유민들이 봉기한 곳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영주는 중원 세력이고구려를 침공하는전진기지였다. 수나라때부터 수많은 침략으로 고구려인들을 무수히 죽인 악독한 전쟁의 발원지가 아니던가. 그 처절한 비명이아직도 어디선가들릴 듯했다.

대무예는 어렵지 않게 영주성을 점령하자 도주하는 적을 추격했다. 적의 도주로는평주 쪽일 수밖에 없었다. 평주로 도망치던당군은급히 달려온 원군과 함께 강과 산을끼고 진을 쳤다. 함부로 공격할 수 없을 만큼 군사의 수효가 많았으며, 그 중에는 병법에 능한장수와 책사들도 있었다

산등성이에 오른 대무예는 적진을 두루살피며 태사 신승의 선견지명을 다시 한번떠올렸다. 이번 정복전에는 장성 계선까지만공격하는 게 현명하다 했다. 더 서진하기에는 군사의 수효나 보급해야 할 양초,각종 병장기와 수레가 부족하다는 것이다.요하를건너면서부터 수차 적을 깨뜨렸건만, 어디서 불러 모았는지 적군의 수효는줄지 않았다.

당군은 고구려를 깨뜨릴 때도, 돌궐과 거란을 굴복시킬 때도 인해전술이었다. 장성을 넘어 장안으로 진격하면 당나라는 대군을동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당나라 사직의 운명이 걸렸으니 사력을 다할 것이었다.

당나라 군사들은 여지없이 죽임을 당하거나, 항복하거나 강물로 뛰어 들었다. 처참한 패배였다. 천문령 대첩 이후 실로 34년 만에당나라 군사들을 무참히 쳐부순 쾌거였다. 당나라의 요충지를 거침없이 공격하여 성을 빼앗고, 무섭게 진격하는 통쾌함은 천문령전투와 비견되었다

나라 잃은지 30년 만에 영주에서 분연히 일어나 나라를 세웠도다. 그리고 다시 34년 만에 선조들을 능멸했던 땅 영주를 토평했노라.
이제 천기를 받아 조상들을 짓밟았던 당나라를 정복하겠다. 아직도 영주에고구려 후손들이 있으니 관고를 열어 널리베풀도록 하라. 원하는 자들은 발해 땅으로데려가되 넉넉히 농사지을 땅을 나누어 주어라.

장안에 머물고 있는 신라왕의 시자 김사란에게 명하여 신라가 군사를 일으켜 발해를 공격하게 하옵소서. 신라 군사가 발해의 남쪽을치면 대무예가 황망히 퇴각할 것이옵니다

이융기는 임자(712) 년에 신라왕 김융기의 이름이 제 이름과 같다 하여 흥광으로개명하게 했다. 이융기는 이를 떠올리며 신라왕에게국서를 보냈다.

신라왕 김흥광은 고심 끝에 이융기의 청을 받아들여 김윤중과 김윤문에게 군사를이끌고 발해의 남쪽 경계를 공격하게 했다. 대총관김윤중은 서둘러 군사를 일으켜북쪽으로 진병했다. 벌써 옷을 뚫고 품속으로 파고드는 한파가 만만치 않았다.

양지쪽에 진을 치고 하룻밤을 자고나면얼어 죽은 군사가 여기저기서 버려졌다. 단단히 껴입고 충분히 불을 지폈지만, 어찌수많은군사들을 모두 살필 수 있으랴. 아무리 더운 밥을 먹이고 싶어도 밥은 솥에서푸자마자 잠깐 사이에 살얼음이 앉았다. 햇볕을쪼이면서도 부들부들 떨고 있는 군사들에게 김윤중이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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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에는 두 가지가 있다. 추서는 스스로가다듬어 자기의 선을 실행하는 것이고, 용서는 남을 다스리는 것이기에 남의잘못에관대해지는 것이다. 이를 어찌 같은 것이라할 수 있겠느냐? 결국 용서는 상대를 받아들이는 것이고, 추서는 나를 받아들이는것이다. 너는 용서와 추서를 함께 해야 하니아침저녁으로 부처님께 빌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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