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그녀는 존이 어떤 친구에게 할 말이 있다며 카드놀이방으로 가 버린 상태에서 사랑하는 친구 캐서린의 짝을 맞출 수 없으므로 절대로 춤추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당신의 소중한 여동생과 함께하지 못한다면 싫어요"라고 말이다.

이자벨라는 캐서린과 붙어 있지 않은 반대쪽으로 제임스와 계속 속삭이더니 결국 캐서린 쪽을 돌아보며 말했다. "친구야, 네 오빠가 하도 안달하니까 춤추러 들어가야겠어. 내가 없어도 괜찮을 거고, 존이 곧 돌아오면 그때 또 보면 되니까." 캐서린은 약간 실망했지만 마음이 착해서 그저 가만 있자 두 사람은 춤추러 일어났고 이자벨라는 캐서린의 손을 잡고 "안녕, 사랑하는 친구"라는 인사를 남기고 서둘러 사라져 버렸다.

마음은 순수하고 행동은 잘못이 없는데 다른 사람의 잘못으로 망신당하고 세상 사람들에게 우스운 꼴을 보이고 불명예스러워지는 것이야말로 여주인공의 삶이며, 그런 상황에서 발휘하는 용기야말로 여주인공에게 위엄을 주는 법. 캐서린도 용기를 내 버텼다. 괴로웠지만, 한마디도 투덜거리지 않았다.

이런 정황을 고려하여 옆에 있는 아가씨가 여동생이라고 단박에 결론을 내렸다. 그렇게, 캐서린은 죽은 사람처럼 창백한 얼굴로 앨런 부인의 품에 쓰러지는 대신* 완벽하게 이성을 발휘하면서 뺨만 평소보다 약간 붉어진 채 꼿꼿하게 앉아 있었다.

속상한 일을 연달아 겪다 보니 하나의 교훈, 즉 젊은 아가씨가 무도회에서 춤추기로 약속했다고 해서 반드시 위엄이나 즐거움이 증가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떻게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요? 남자들은 원하는 게 있으면 물불 안 가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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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를 말하다. 조지 오웰, George Orwell

장르에 상관없이 언제나 확고한 정치적 신념을 바탕으로 글을 쓴 영국 작가 조지 오웰 (1903~1950)은 인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인도에 파견된 영국 관리였다. 본명은 에릭 아서 블레어(Eric Arthur Blair)이다.
어린 시절 영국으로 간 오웰은 이튼 칼리지를 졸업한뒤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인도 제국 경찰에 지원해 1922년 미얀마로 떠났다. 경찰관으로 근무하면서 제국주의의 모순을 경험한 그는 1928년 경찰직을 그만 두고 작가로 살 것을 결심한다.
런던과 파리에서 하층민의 생활을 경험한 그는 르포 작품인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작가로서의 삶을 시작한다. 이때부터 조지 오웰이라는 이름을 필명으로 썼다.
사회적인 모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오웰은 식민지 백인 관리의 악행을 고발한 소설 『버마의 나날』, 가난한 영국 노동자의 삶을 그린 『위건 부두로 가는 길』 등을 발표하면서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1945년 스탈린 치하 소련을 비판한 『동물 농장』을 펴내 화제가 된다.
오웰은 〈나는 왜 쓰는가〉라는 글에서 전체주의에 반대하고, 민주적 사회주의를 지지하기 위해서 글을 쓴다고 밝히고 있으며, 자신의 글 중에서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쓴 글만이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오웰은 폐결핵 치료차 복잡한 런던을 떠나 스코틀랜드 주라 섬으로 이주해 『1984』를 집필한다. 『1984』가 서점에 나온 지 2개월 뒤 숨을 거두었다.

1984 : 세계문학그림책 | 조지 오웰 원작 · 허연 저자(글) · 김희경 그림/만화

작가를 말하다
조지 오웰
George Orwell
장르에 상관없이 언제나 확고한 정치적 신념을 바탕으로 글을 쓴 영국 작가 조지 오웰 (1903~1950)은 인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인도에 파견된 영국 관리였다. 본명은 에릭 아서 블레어(Eric Arthur Blair)이다.
어린 시절 영국으로 간 오웰은 이튼 칼리지를 졸업한뒤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인도 제국 경찰에 지원해 1922년 미얀마로 떠났다. 경찰관으로 근무하면서 제국주의의 모순을 경험한 그는 1928년 경찰직을 그만 두고 작가로 살 것을 결심한다.
런던과 파리에서 하층민의 생활을 경험한 그는 르포 작품인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작가로서의 삶을 시작한다. 이때부터 조지 오웰이라는 이름을 필명으로 썼다.
사회적인 모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오웰은 식민지 백인 관리의 악행을 고발한 소설 『버마의 나날』, 가난한 영국 노동자의 삶을 그린 『위건 부두로 가는 길』 등을 발표하면서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1945년 스탈린 치하 소련을 비판한 『동물 농장』을 펴내 화제가 된다.
오웰은 〈나는 왜 쓰는가〉라는 글에서 전체주의에 반대하고, 민주적 사회주의를 지지하기 위해서 글을 쓴다고 밝히고 있으며, 자신의 글 중에서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쓴 글만이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오웰은 폐결핵 치료차 복잡한 런던을 떠나 스코틀랜드 주라 섬으로 이주해 『1984』를 집필한다. 『1984』가 서점에 나온 지 2개월 뒤 숨을 거두었다.

세계를 말하다
빅 브라더라는 용어
‘빅 브라더’라는 개념은 현대 사회의 부정적인 이면을 상징하는 단어로 쓰이고 있다. 21세기 들어서면서 정보를 독점하며 사회를 통제하는 권력, 혹은 그러한 사회 체제를 일컫는 말로 쓰인다.
특히 곳곳에 설치된 CCTV(폐쇄형 감시 카메라)가 가득한 현대 사회를 지칭할 때 많이 쓰인다.

스페인 내전과 조지 오웰
1936년 스페인 내전이 발발하자 오웰은 파시즘에 맞서기 위해 국제 의용군에 자원 입대한다. 스페인 민병대 소속으로 싸우던 오웰은 1937년 1월 바르셀로나 전선에서 목에 총상을 입고 죽을 고비를 넘긴다.
오웰은 내전 현장에서 목격한 이념 갈등에 환멸을 느끼고 스페인을 떠난다. 아내와 함께 프랑스로 건너간 오웰은 이때 느꼈던 이데올로기에 대한 환멸의 기록을 『카탈로니아 찬가』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간한다.

『1984』는 상징성이 뛰어난 작품이라 다양한 예술 장르에 영향을 미쳤다.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 준은 1984년 『굿모닝 미스터 오웰』이라는 작품을 발표했다. 이 작품은 세계 최초로 인공위성 다원 생중 계로 전 세계에 송출되었다. 텔레비전을 유토피아로, 텔레스크린을 디스토피아로 대비시켜 풍자한 무대는큰 화제가 되었다.
미국의 음악가인 로린 마젤은 『1984』를 바탕으로 오페라를 작곡해, 직접 지휘를 맡아 발표했다.
2009년 출간된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1Q84』는 『1984』에서 9를 Q로 바꾼 것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리틀 피플이라는 존재는 빅 브라더와 대척점에 있는 상징적인 인물이다.

『1984』의 영향력

작품을 말하다
Nineteen Eighty-Four
『1984』는 전체주의라는 거대한 지배 시스템 앞에 놓인 한개인이 어떻게 저항하다가 파멸해 가는지 그 과정과 배후를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작품이다.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예브게니 자마찐의 『우리들』과 더불어 디스토피아 소설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1984』는 오웰이 투병 중 집필 하여 생애 마지막으로 발표한 소설이다.
소련과 스탈린주의를 풍자한 『동물 농장』으로 명성을 얻은 오웰은 『1984』를 통해 또 한 번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전체 주의에 의해 파괴되어 가는 한 남자의 삶은 큰 파문을 던졌다.
작품의 무대인 오세아니아는 전체주의의 극한 양상을 띠고 있는 나라이다. 오세아니아의 통제 기구인 당은 가상 인물인 빅 브라더를 내세워 독재 권력을 유지한다. 정치 체제를 지키기 위해 텔레스크린, 사상경찰, 마이크로폰, 헬리콥터 등을 동원해 당원의 사생활을 감시한다. 사실을 날조하 고, 새로운 언어로 생각과 행동을 구속하며, 인간의 욕구까지 통제한다. 조지 오웰의 경고가 틀렸다고 감히 누가 말할수 있을까? 이 소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인류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
『1984』는 출간 즉시 영국과 미국에서 40만 부 이상 판매되었고, 지금까지 전 세계 65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 출간되어 꾸준히 소개되고 있다. 오웰이 한 세대 앞서 예언한 텔레 스크린에 의해 감시당하는 세계는 이제 현실이 됐다. 이 소설은 권력 남용에 대한 경고를 넘어 역사와 정치, 인간 심리를 통찰한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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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로 가는 길
천혜의 자연을 품은 섬 대마도는 어쩌면 아시아에서 가장 선진화한 일본에 남겨진 마지막 청정 지역일지도 모른다. 본토에비하여 무척 제한적으로 개발이 되었기 때문에 일본 어느 지역을 가더라도 이렇게 수려한 자연 경관을 직접 몸으로 느끼고 체험할 수 있는 곳은 많지 않다. 대마도는 일본 현지에서도 내국인들이 즐겨 찾는 관광지로 각광받고 있으며, 최근 들어서는 한국인에게도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여행지이다. THEME 01에서는 대마도가 어떤 곳인지부터 찾아가는 방법. 대마도여행에 필요한 체크 리스트, 대마도에서의 교통수단과 화폐 등 대마도 여행에 필요한 기본 사항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자.

한국에서 가장 가까운 외국,
대마도를 소개합니다
대마도는 일본 나가사키현에 속한 섬으로 섬 전체를 국가에서 지정하여 관리하는 국립공원이다. 섬 면적의 89% 이상이 가파르고 울창한 산림 지형이며, 이러한 지형이 해안까지 뻗어있어 곳곳에서 신비로운 절경을 만들어낸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현재까지 잘 보존하고 있기 때문에 일본 내에서도 드물게 태고적 원시 자연의 모습을 잘 담고 있는 지역으로 손꼽힌다. - P14

대마도는 한국과 일본의 사이, 현해탄 정중앙부에 자리하고 있다. 대마도에서 후쿠오카(福▪)까지 138km인 반면,
부산까지는 49km밖에안 될 정도로 한국과무척 가까워 맑은 날에는 대마도 북측 해안에서 육안으로 한국 남해안의 산과 건물의 윤관을 확인할수 있다. - P14

면적 : 708.66㎢
대마도는 일본에서 3번째로 큰 섬이며, 나가사키현 전체 면적의 17.3%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울릉도의 약 10배, 거제도의 약 2배에 해당하는 적지 않은 크기이다. -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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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누구의 흥미도 끌지 못하는 내용, 즉 있을 수 없는 상황과 부자연스런 인물과 대화의 주제로 이루어진 책이니 말이다. 언어 역시 너무 거칠어서 그런 언어를 용납하는 시대를 결코 좋게 생각할 수 없게 만드는 책이다.

"맙소사! 이 구석을 빠져나가자. 재수  없는 남자 두 명이 삼십 분 동안나를 쳐다보고 있잖아. 진짜 표정 관리못 하게 만드네. 그만 나가서 새로 온사람이 누가 있나 보자. 거기까지 우릴따라오진 않겠지."

그는 반가움과 부끄러움이 섞인 태도로 얼른 쏘오프 양에게도 인사했는데, 만약 캐서린이 사람의 감정이 어떻게 발전하는지 더 잘 알고 또 자신의 감정에 덜 몰두했다면 오빠가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이자벨라의미모에 반했음을 눈치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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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에 돌아와 보니 10촉 등이 희미한 옆방에서는 저 통통한 나방이 검은 옷걸이에 알을 낳고 있었다. 추녀 끝의 나방도 장식등에 탁탁 부딪치고 있었다.
벌레는 대낮부터 자지러지게 울고 있었다.

"당신, 뭣하러 왔어요? 이런 곳에 뭣하러 왔어요?"
"당신 만나러 왔지."
"맘에도 없는 소리. 도쿄 사람은 거짓말쟁이라서 싫어요."

"그 사람은 어떻게 됐지?"
"물론 죽었어요."
"당신이 내 배웅을 나온 사이에?"
"하지만 그것과는 관계가 없어요. 배웅이란 것이 그토록 괴로운 것인 줄은 몰랐어요."

고마코의 입술은 아름다운 거머리의 또아리처럼 매끄러웠다.

고마코는 손을 살짝 가슴에 얹고,
"한 쪽이 더 커졌어요."
"바보. 그 사람의 버릇이야. 한 쪽만……."
"어머, 싫어요. 거짓말. 얄미운 사람."
하고 고마코는 갑자기 변했다. 이것이었다고, 시마무라는 생각했다.
"양쪽이 똑같게, 이제부터 이렇게 말해요."
"똑같게, 똑같게라고."
하고 고마코는 살짝 얼굴을 가져 왔다.

내탕에서 올라오니, 고마코는 안심한 듯한 조용한 목소리로 다시 신상 얘길 시작했다. 여기서 첫 검사 때에 풋내기 기생일 때와 같은 줄만 알고 가슴만 벗었더니 모두가 웃어서 울어버렸다는 얘기까지 했다. 시마무라가 묻는 대로,
"나는 정말 정확해요. 꼭 이틀씩 빨라져 가요."
"하지만 연회에 나가는 데 지장은 없겠지?"

산의 안내서에는 등산로, 일정, 숙박소, 비용 등이 간단하게 쓰여 있을 뿐, 오히려 공상을 자유롭게 했다. 시마무라가 처음 고마코를 안 것도 전설의 살결에 신록이 싹트는 산을 돌아 이 온천 마을로 내려왔을 때의 일이었으므로, 자신의 발자국도 남아 있을 산을 이렇게 바라보고 있자니 지금은 가을 등산철이므로 산에 마음이 끌리는 것이었다. 무위도식하는 그로서는, 일도 없는데 괜히 힘들게 산을 쏘다니는 헛수고의 표본처럼 생각되었지만 그런 대로 또 비현실적인 매력도 있었다.

"저길 가볼까? 당신 약혼자의 무덤이 보이는군."
고마코는 허리를 쭉 펴고 시마무라를 똑바로 쳐다보다가, 한 움큼의 밤을 갑자기 그의 얼굴에 집어던지고,
"당신, 나를 놀리고 있군요."
시마무라는 피할 틈도 없었다. 이마에서 소리가 나고 통증이 왔다.
"무슨 인연이 있다고 당신이 무덤을 보러 가요?"

밤톨로 얻어맞고도 화를 내는 기색이 없자 고마코는 잠시 동안 의아한 표정이다가 문득 엎어질 듯이 매달리며,
"당신, 착한 분이군요. 뭔가 슬픈 거죠?"
"나무 위에서 아이들이 보고 있어요."
"모르겠어요. 도쿄 사람은 복잡해요. 주위가 시끄러우니까 정신이 흩어지는가 보죠?"
"모든 것이 흩어졌어."
"이제 목숨까지 흩어질 거예요. 무덤을 보러 갈까요?"

고요가 차가운 물방울이 되어 떨어질 것만 같은 삼나무 숲을 빠져 스키장 가의 선로를 따라가니 곧 무덤이었다. 밭두렁의 조금 높은 한 모퉁이에 오래된 비석이 여남은 개와 돌로 된, 지장보살이 서 있을 뿐이었다. 빈약한 벌거숭이였다. 꽃은 없었다.

그리고 뒤에는 차바퀴 소리보다도 요코의 목소리의 여운이 남아 있는 듯했다. 순결한 애정의 메아리가 울려 올 것만 같았다.

그러나 요코가 이 집에 있다고 생각하니 시마무라는 고마코를 부르는 것도 어쩐지 어색하게 느껴졌다. 고마코의 애정은 그를 향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아름다운 헛수고인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그 자신의 허무감이 있어서였다.

하지만 반대로 그럼으로써 고마코의 살려고 몸부림치는 적나라한 생명과 접촉할 수도 있었다. 그는 고마코를 가엾게 생각하면서 스스로를 가엾게 생각했다. 그와 같은 양상을 무심히 꿰뚫는 빛과 같은 눈이 요코에게 있을 것 같아 시마무라는 이 여자에게도 끌리는 것이었다.

오늘날의 일본 무용계에 아무런 효용도 없을 책이라는 점이 오히려 그를 안심케 한다면 할 수도 있었다. 자기 직업을 통해 자기를 냉소하는 것은 사치스런 즐거움일 것이다. 이런데서 그의 가엾은 몽환의 세계가 생겨나는지도 몰랐다. 여행 중에 그걸 서둘러야 할 필요는 조금도 없다.

러나 어쩐 일인지 오히려 고마코에 대한 애정이 활활 타오르는 것만 같았다. 정체 모를 처녀와 도망치듯이 돌아가 버리는 것은 고마코를 향한 격한 사죄의 방법인 듯이 생각되기도 했다. 또 뭔가 형벌 같기도 했다.

부엌문으로 들어서니 눈앞에 그 집 사람들의 잠든 모습이 어지러웠다. 이 지방 사람들이 애용하는 헐렁한 바지와 같은 무명의 그것도 퇴색한 딱딱한 이불을 나란히 하고 주인 내외와 17, 8세의 처녀를 비롯 5, 6명의 아이들이 그을린 등불 아래 제멋대로 얼굴을 돌리고 자고 있는 것은 쓸쓸해 보이면서도 벅찬 힘이 잠겨 있었다.

고마코는 뭔가 어색한 듯이, 예를 들면 아기를 낳은 적이 없는 처녀가 남의 아기를 안은 듯한 동작이 되어 왔다. 머리를 들고 아기가 잠드는 것을 지켜보는 식이었다.

"당신은 좋은 여자야."
"어떻게 좋아요?"
"그저 좋은 여자야."
"우스운 양반."

이 고장에서는 나뭇잎이 떨어지고 바람이 차가워질 무렵 싸늘하게 흐린 날씨가 계속된다. 눈을 재촉하는 것이다. 원근의 높은 산이 하얗게 된다. 이것을 산돌림 28) 嶽廻 이라고 한다. 또 바다가 있는 곳에서는 바다가 울고, 깊은 산에서는 산이 운다. 먼 뇌성 같다. 이것을 몸통울림 29) 胴鳴 이라고 한다. 산돌림 보고 몸통울림을 들으면 눈이 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옛 책에 이렇게 쓰여 있었던 것을 시마무라는
생각했다.

28) 산돌림 :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한 줄기씩 내리는 소나기.
29) 몸통울림 : 산기슭으로 내리는 소나기.

갑자기 화재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두 사람이 돌아보자,
"불, 불이야!"
"불이야!"
불꽃이 아랫 마을의 한가운데서 치솟고 있었다.

밝은 은하수가 시마무라를 빨아들일 듯이 가까웠다. 바쇼 30) 芭蕉가 여행하면서 거친 바다 위에서 본 것은 이처럼 선명하고 넓은 은하수였을까. 발가벗은 은하수는 밤의 대지를 맨살로 감싸려고 가까이 내려와 있다. 무섭게 요염했다. 시마무라는 자신의 조그만 그림자가 지상에서, 반대로 은하수에 비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은하수에 가득한 별이 하나하나 보일 뿐 아니라 곳곳에 광운 光雲 의 은모래도 한 알 한 알 보일 만큼 맑았고 더구나 은하수의 한없는 깊이가 시선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어이, 어어이."
시마무라는 고마코를 불렀다.
 
30) 바쇼 : 일본 에도시대 전기 작가로 각지를 여행하며 맑은 시와 기행문을 남겼다.

"울었어요. 집에 가서도 울었어요. 당신과 헤어지는 게 두려워요. 하지만 이제 빨리 돌아가 버려요. 그런 말 듣고 운 것, 잊지 않을 테니까."
고마코의 착각으로 해서 오히려 여자의 속 깊이까지 파고든 말을 생각하자, 시마무라는 미련에 몸이 오무라지는 듯했으나 갑자기 불 난 곳에서 떠들썩한 소리가 들려 왔다. 새로운 불길이 불똥을 뿜어 올렸다.

불탄 자리에 다시 타는 불을 향해 펌프 한 대가 비스듬히 활모양으로 물을 뿜고 있었는데, 그 앞에 문득 여자의 몸이 떠올랐다.
떠오른 것처럼 그녀는 떨어진 것이었다. 여자의 몸은 공중에서 수평이었다. 시마무라는 가슴이 철렁했으나 순간, 위험도 공포도 느끼지 못했다. 비현실적인 세계의 환영 같았다. 경직한 몸이 허공에떨어져서 유연해졌다. 그러나 인형 같은 무저항, 생명이 없는 자유로움으로 삶도 죽음도 정지한 듯한 모습이었다. 시마무라에게 번뜩인 불안이 있었다고 한다면 수평으로 뻗은 여자의 몸이 머리가아래로 되지 않을까, 허리나 무릎이 굽어지지나 않을까, 하는 점이었다. 그렇게 될 것 같기도 했으나 수평인 채로 떨어졌다.
"아악!"
고마코가 날카롭게 부르짖고 두 눈을 감쌌다.

떨어진 여자가 요코란 것을 시마무라가 안 것은 언제였을까. 사람들이 앗! 하고 숨을 들이킨 것도, 고마코가 아악 하고 소리친 것도, 실은 같은 순간이었다. 요코의 종아리가 지상에서 경련한 것도같은 순간인 듯했다. 고마코의 절규는 시마무라의 몸 속을 관류貫流 했다. 요코의 종아리가 경련함과 동시에 시마무라의 발끝까지 차가운 경련이 스쳐갔다. 뭔가 절박한 고통과 비애 때문에 가슴이 몹시 뛰었다.

요코의 경련은 눈에 띄지도 않을 만큼 미미한 것으로 곧 그쳤다.

요코가 떨어진 2층 객석에서 나뭇가지 두세 개가 기울어져 와서 요코의 얼굴 위에서 타기 시작했다. 요코는 그 쏘는 듯이 아름다운 눈을 감고 있었다. 턱은 내밀어졌고 목은 길었다. 불빛이 창백한 얼굴 위로 아른거렸다.

몇 해 전, 시마무라가 이 온천장으로 고마코를 만나러 오는 기차 안에서 요코의 얼굴 가운데로 야산의 모닥불이 피어올랐을 때의 모습이 문득 생각나자 시마무라는 다시 가슴이 떨렸다. 순간 고마코와의 세월이 비쳐지는 듯했다. 뭔가 절박한 고통과 비애도 여기에 있었다. 고마코가 시마무라의 곁에서 뛰쳐나갔다. 고마코가소리치고 눈을 감싼 것과 거의 같은 순간인 듯했다. 사람들이 앗!
하고 숨을 들이킨 바로 그 순간이었다.

사람들이 저마다 외치며 술렁이고 순간적으로 두 사람을 둘러쌌다.
"비켜요. 비켜 줘요."
고마코의 부르짖음이 시마무라에게 들렸다.
"얘가 미쳐요 미쳐요."
그렇게 미치광이 같은 목소리의 고마코에게로 다가가려던 시마무라는 요코를 고마코로부터 받아 안으려는 남자들에게 밀려 비틀거렸다. 몸을 가누고 시선을 든 순간, 쏴아 하는 은하수가 시마무라의 가슴 속으로 쏟아져 내리는 듯했다.

이즈伊豆의 무희 舞姬
길은 꼬불꼬불했다. 마침내 아마기 天城 고개가 가까워졌을 무렵, 빗발이 삼나무 밀림을 하얗게 물들이면서 굉장한 속도로 기슭쪽에서부터 나를 쫓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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