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법 제90조, 공서양속.(우리나라 민법 제103조 ‘반사회질서의 법률행위‘에 해당 옮긴이 주)
민법상 원칙적으로 개인과 개인 간에 맺을 수 없는 약속이나계약은 없다. 그것이 바로 법은 개인 간의 행위에 개입할 수 없다는 사적자치라는 원칙이다.
그러나 원칙이 있으면 예외도 있기 마련이었다. 개인 간의 계약이 너무 악질적이라면 법률로 이를 무효화시킬 수 있었다. 그법이 바로 공서양속 위반에 따른 무효이다. 흔한 예로는 첩 계약이나 살인 청부 계약이 있었다.
"이 유언은 무효가 될 수도 있어." 나는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살인범에게 대가를 주는 게 말이 되겠어? 이건 공서양속 위반으로 무효화 될 가능성이 커. 어쩌면 이 유언으로 범인이 자수하게 만든 다음, 막상 범인이 자백을 하면 유언을 무효화해서 유산을 주지 않으려는 주도면밀한 계획일 수도 있어."
이것은 범인에 대한 나의 복수다. 주는 것은 곧 빼앗는 것. 범인은 내가 준 재산으로 일생을 살게 될 것이다. 즉 내 지배하에서, 내 망령에 휘둘리면서 살게 될 것이다. 범인을 꼭 잡아달라는 취지에서, 범인이 잡히지 않으면 내 재산을 국고에 귀속시키기로 했다.
나는 지난 일주일 동안 변호사협회 도서관에 틀어박혀 유언의유효성에 관한 판례와 학설을 찾아봤다. 그중에는 소설 《이누가미 일족》 (재벌인 이누가미 사헤가 젊은 시절 자신을 도와준은인의 손녀와 결혼하는 손자에게 모든 유산을 주겠다고 유언을남기는 내용의 소설- 옮긴이 주)에 나오는 이누가미 사헤의 유언마저 유효라고 보는 법학서도 있었다.
"셀로판테이프랑 논리는 어디에나 갖다 붙일 수 있거든." 내 입에서 무심코 나온 그 말은 로펌 상사인 츠츠이 변호사가자주 쓰는 말이었다. 나는 츠츠이 변호사의 온화한 미소가 떠올라 열이 올랐다. 화를 억누르며 얼른 에이지의 유언으로 다시 생각을 돌렸다.
남자들은 왜 이렇게 자신의 눈부신 과거이야기를 늘어놓고 싶어하는 것일까. 그것도 자기가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남이 하도조르니까 어쩔 수 없이 해준다는 태도로 말이다. 남자들의 그런 태도는 항상 귀찮았다.
이웃한 두 부족의 예시를 들어 간단히 설명해 볼게요. 두 부족이 선물을 주고받는데규칙을 하나 지켜야 해요. 규칙은 아주 간단해요. ‘받은 것보다 좋은 것으로 보답할것!‘이라는 거죠. 그 규칙대로 선물을 주고받다 보면 점점 선물 규모가 커져서 어느한쪽이 더는 보답할 수 없게 되고, 결국 보답하지 못한 부족은 망하게 되죠.
"아마 레이코 씨는 자기 자신에게 자신감이 있어서 본인이 타인에게 선물을 받을자격이 있다고 믿는 성격일 거예요." 토미하루가 너무 진지하게 말해서 나도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부모님은 미국으로 건너가서 그 신기술로 아기를 만들었고, 그렇게 태어난 게 제동생 에이지예요. 에이지가 태어나자마자탯줄에서 혈액을 만드는 세포를 추출해서제 골수에 이식했어요. 제가 일곱 살 때 있었던 일이에요."
"쓸데없는 걱정 말게!" 츠츠이가 갑자기 큰 목소리로 외치더니, 삶은 문어처럼 벌건얼굴로 나를 노려보았다.
나는 츠츠이가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처음 목격했다. 평소에풍기는 온화한 분위기와 사뭇 달라 주눅이 들 뻔했다. 하지만 내가 먼저 건 싸움이었다. 밀릴 수는 없었다. 나도 따라서 츠츠이를 노려보았다.
"레이코 씨, 이렇게 대담한 수에 능한 걸 보면 얌전한 대형 로펌 변호사보다 의외로 동네 개업 변호사가 적성에 맞을 것 같은데요?"
유키노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나는 테이블 위에 놓인 휴지를내 것인 양 한 장 뽑아 유키노에게 건넸다. 유키노가 휴지로 눈가를 닦으며 웃었다. "왠지 레이코 씨네 집 같네요."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성립되는 거예요. 상대에게 갚을 수없는 큰 은혜를 베풀어 죄책감과 부채의식을 갖게 하고, 그걸 이용해 상대의 정신을 갉아먹는 것이 포틀래치의 본질이니까요."
돈은 없지만 행복한 삶 따위는 자기합리화일 뿐이다. 돈은 당연히 많을수록 좋다. 왜 다들 기짓말을 하는 것일까? 나는 이해할 수도 없었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나랑 그 친구, 변호사. 그 친구 몫까지 오래 살아줘요.‘ 임종 순간에 무라야마는 그렇게 말했다.
결국 또 돈인가. 나 자신이 너무 비루해서 슬퍼졌다.
그렇다. 법 앞에서는 나쁜 사람이든 좋은 사람이든, 강한 사람이든 약한 사람이든 모두 평등하고, 고쳐 쓸 수도 없는 악랄한쓰레기조차도 고귀한 선인과 똑같은 권리를 가진다. 나는 그것이 좋았다.
돈이 아닌 것을 추구하는 의뢰인에게 나는 멋대로 열등감을느꼈고 돕기를 거부했다. 그래서는 악인도 인간임을 이해하지못하는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딱히 의뢰인의 감정에 공감할 필요는 없다. 그저 그들이 추구하는 것을 새겨듣고 프로로서 그 기대에 부응하면 되는 것이었다. 내 도움을 원하는 의뢰인이 있는 한...
긴지가 말하길, 히라이 부사장의 얼굴은 젊은 시절의 미요와붕어빵이라고 했다. 나는 긴지의 기억력이 정말 감탄스러웠다.게다가 모리카와 가문 사람들은 모두 잊어버렸겠지만, 미요의성은 ‘히라이‘였다고 했다.
긴지는 반드시 확인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히라이가 사용한젓가락을 훔쳤다. 그리고 젓가락에 묻은 성분을 토대로 자신과친자 검사를 했고, 예상대로 친자라는 결과가 나왔다.
무라야마의 ‘법무법인 삶은 망했지만, 무라야마가 변호사로서 담당하던 사건은 내가 전부 이어받았다.
선량한 동네 사람들의 자질구레한 사건들뿐이라 돈이 되는 사건은 전혀 없었다. 나는 원래 독하게 돈을 끌어모을 계획을 꾸미는 의뢰인들과 함께 뛰고 싶었다. 하지만 시노다의 말이 내 가슴에 박혀 오히려 동기부여가 되었기에 이제 돈이 되지 않는 사건을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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