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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9년 10월
평점 :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웨이 런민 푸우, 위인민복무.
사단장의 집, 그 문을 열고 나와서도 그 사랑은 유효할까.
(미미님 추천으로 읽게 된 책이다. 누군가가 야설이라고 해서 기대도 좀 했지만 뭐 이게 야설인가 그저 살색이 좀 많이 나오는 위대한 사회혁명과 인민을 위한 소설인것을. ㅋㅋㅋ)
제목인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1944년 마오쩌둥의 정치 슬로건이라고 한다.
개인의 행복은 중요하지 않으며, 정부와 대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라는 의미다.
마오의 은혜로 태어난 그들은, 마오를 위해 일어나고 마오를 위해 사랑하며 마오를 위해 산다.
한 부대의 사단장이, 간호병인 젊은 류롄을 두 번재 아내로 맞이한다. 그 사단장의 관사에서 취사병으로 성실하게 일하는 우다왕.
사단장이 두 달간 출장을 떠나자, 류롄이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고 쓰여진 나무팻말로 우다왕을 유혹하게 되고 처음에 우다왕은 그 유혹을 거부한다.
인민을 위해 복무하지 않는 취사병은 필요없다는 류롄의 협박에 결국 승진과 도시로의 이사를 조건으로 둘의 불륜이 시작된다.
류롄도 인민이니, 류롄을 위해 봉사하는 것도 마오주석의 정치 슬로건에 맞는 것, 우다왕은 그렇게 류롄을 위해 복무하게 된다.
그러면서 우다왕은 성과 사랑에 눈 뜨게 되며, 인민이란 대의가 아니라 개개인이 가지는 가치와 본성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개인이란 그저 혁명을 위한 희생과 재료일뿐이란 우다왕의 머리 속에 류롄과 사랑이란 감정이 들어 온 것.
그들은 마오의 두상을 파괴하고, 마오의 책과 어록들을 훼손하며 금기를 넘어선 그리고 죽음을 넘어선 사랑을 확인한다. 이제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사랑과 둘 뿐이다. 중국이란 나라가 견고하다 믿었던 체계들과 금기는 개인들의 사랑앞에 극단적으로 무너지고 가치를 잃는다.
문을 걸어잠그고 둘만의 낙원에서 그들은 이브와 아담이 되지만, 그 사랑과 금기의 위험은 문을 열고 나서는 순간에도 이어질 수 있을까.
부부관계에도 조건을 거는 아내와, 개인이란 혁명의 불쏘시개일때나 가치가 있다고 믿었던 우다왕이 금기를 깨고 위험을 감수하며 깨달은 사랑이었다. 닫힌 문 속에서 인민을 넘어선 사랑을 알게 됐지만, 다시 문 밖으로 나오는 순간 그들은 그저 인민을 위해 복무하는 혁명과 국가의 부속품일 뿐이다.
잠시나마 우다왕은 달빛 아래, 마오와 국가와 인민보다 자신의 사랑이 더 중요함을 자신이 더욱 가치있음을, 그 모든 것을 위해 목숨을 내놓을 수 있음을 깨닫는다. 그 잠시나마의 순간은 되풀이될 수 없다. 결국은 여전히 닫혀있는 사회 속에서 묻어두고 살아야 한다. 우직하고 아무것도 몰랐던 우다왕으로 돌아갈 수 없지만, 세상은 여전히 예전의 우다왕이 살던 그때와 다를바 없다.
(소설에 대한 설명 부분을 읽어보니, 이 책은 중국에서 회수 폐기 및 출판 홍보 게재 비평 각색이란 5금 조치를 당했다고 한다. 책을 읽어보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사랑과 성 앞에서 훼손되는 마오쩌둥의 책과 어록, 국가와 인민을 위해 살던 우다왕이 사랑과 성을 통해 본성을 깨닫고 자신의 틀을 깨버리는 것은 어느 사회의 기득권들도 원하는 내용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중국에서 이런 소설이 나오다니......)
2019년 대산문화재단의 초청으로 한국에 온 옌렌커의 인터뷰 기사 중 한 부분.
“현 상황의 중국에서 태어난 것은 작가로서는 큰 행운입니다. 소설을 쓰는 데 특별한 영감이나 상상력이 필요 없기 때문입니다. 중국에서 일어나는 온갖 사건·사고가 작가의 상상보다 훨씬 복잡하거든요. 글쓰기의 자원으로만 보자면 중국 작가들이 한국 작가들보다 훨씬 큰 행운을 누린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글쓰기의 자유 측면에서는 한국 작가들이 더 행운아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