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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 - 오베르쉬르우아즈 들판에서 만난 지상의 유배자 ㅣ 클래식 클라우드 30
유경희 지음 / arte(아르테) / 2022년 11월
평점 :
예전 회사에서, 주최하는 아주 긴 이름의 강의 하나를 듣게 되었다.
졸다가 들킨 건지 강사가 갑자기 좋아하는 화가가 누구냐는 질문을 던졌다..
고흐란 대답에 강사의 입가가 삐뚜룸하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하...고흐...지겹다 그죠?”
네? 아닌데, 볼 때마다 새롭고 짜릿한데?
덕지덕지 임파스토 기법으로 발린 두꺼운 그의 색들을 보고 있노라면 색이 색만 가지는 것이 아니라 부피와 질감을 가지고, 먼 곳에 서 있는 사람들까지 흔드는 감정이라는 걸 만들 수 있구나 란 생각했다. 이차원의 캔버스에 삼차원의 형체를 쌓아올리고 마음을 가둔다.
그 마음은 유난히 노란 빛이다.
그 이유로 누군가는 앱상트로 인한 황시증이라고도 하고 누군가는 뇌전증의 증상이라고도 한다. 누군가는 외로움이라고, 누군가는 고흐와 같은 이름을 가진 형의 비석 위에서 흔들리던 해바라기라고도 한다.
고흐 하면 떠오르는 단어들.
소외와 고립, 실패한 선교사, 괴짜, 노마드, 자포니슴, 독서가, 창작가, 사랑의 실패자, 우키요에....
#해바라기
죽은 형의 생일과 같은 날에 태어나, 물려받은 이름으로 산다.
태교대신 아이를 잃은 엄마의 눈물을 먹고 태어나, 새까만 상복을 입은 엄마가 상실의 눈으로 바라보는 첫 세상. 엄마 손에 이끌려 형의 무덤이자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비석앞에 서게 된 아이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 아이는 커서, 형의 비석옆에 피어있던 해바라기를 그린다.
#아웃사이더
가난하고 힘든 이들에 대한 과한 동일시의 투사로, 오히려 그들에게조차 배척당한다. 상복을 입은 가난한 과부들에게 연민을 느꼈고, 그들에게 애정을 품었다. 가난과 죽음, 상복과 연민은 이상형이었지만 그에겐 벅찬 상대들일뿐이었다.
#초상화
그는 사람들에게서 숭고함과 신성을 보았다. 그런 이들에게 광배를 달아주고자 노란 해바라기를 그렸고, 그 해바라기는 농부를 닮아 휘어지고 떨어져 씨앗을 뿌렸다.
#모사
많은 그림들을 모사했지만 특히나 그가 모사한 밀레의 그림들이 좋다.
은은하고 부드러운 밀레의 그림이 고흐의 색을 만나면 쨍하고 따뜻해진다. 봄이 지나 여름이 온다.
(아래는 밀레의 낮잠, 고흐의 낮잠. 그리고 밀레의 첫걸음마를 모사한 고흐의 첫걸음마이다.)
#죽음
자살인걸까.
불량스런 소년 르네의 짓일까.
“죽음은 힘겹죠. 그러나 사는 것은 더 힘겹지 않소.” 고흐의 말 중에서.
#책
엄청난 편지양, 그리고 독서가로 유명하다.
그가 좋아한 책은 에밀졸라의 (삶의 기쁨)
<협죽도가 있는 정물>과 아버지의 죽음 후 그린 <성서가 있는 정물> 둘 다에 등장한다.
그리고 지누 부인의 초상화엔 (크리스마스 캐롤)과 (엉클톰스 캐빈)
#고흐와 닮은 화가, 최북.
북이란 이름보다는 북을 파자하여 칠칠이란 이름으로 불린 사내.
주막 뒷방에서 그림을 그려서 판 돈으로 바로 말술을 사서 마시던 사내.
권력과 돈 앞에서 자기 눈을 스스로 찔러 버린 사내.
피아노 치는 손가락만큼 환쟁이의 눈 또한 절실한 것을, 그 사내 최북은 비록 저잣거리에서 주린 배로 막걸리 한 사발에 그림을 그렸을망정, 권력과 세도 앞에서너 제 눈을 바치고 그림을 내어주지 않은 사내.
자신을 향한 멸시와 비난 속에 한 쪽 귀를 잘라 제물처럼 바친 고흐와 잘난체 하는 양반들 앞에서 눈을 찔러 버린 최북, 닮은 듯 닮지 않은 두 화가다.
세상을 향한 배고픔이 닮았다. 예술을 향한 배고픔이 닮았다.
그러나 고흐에겐 테오가 있었고, 최북에겐 거친 바람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