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주의 글을 좋아한다. 그의 글은 시유적이면서도 꽉 찬 느낌을 받는다. 이 책은 벼르고 별러서 읽은 책이다(좋아하는데 언제 한 번 중고샵에 떨어지지 않을까 내심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떨어지자 나꿔채듯 샀다. 그러기까지 얼마나 손이 안 움직이던지.ㅋ)

 

그는 한 때 출판인의 길을 걸었다. 책이 좋아 출판사의 편집일을 했고 나중에는 출판사를 직접 경영하기도 했는데 하는 일이 너무 많아 정작 좋아하는 책은 못 읽었다고 한다. 그래서 출판사를 접고 지금은 인문학자로 저술에 힘 쓰고 있다고 한다.

 

나도 철 모를 때 책이 너무 좋으니 나중에 서점이나 해 볼까 그런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그런데 그 생각을 철들고부터 접었다.

바로 장석주와 같은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서점만 해도 바빠서 책 읽을 새가 없다고 하는데 출판사는 꿈도 못 꿀 일이다.

 

하지만 요즘은 눈도 많이 안 좋아졌고 무엇보다 진득하니 앉아서 책 읽을 수가 없다. 차라리 다시 서점 주인의 꿈이라도 꿀 걸 그랬나 싶다. 그런데 요즘 서점은 옛날의 그것과 달라 창의적 운영해야 살아남을 것 같다. 그러니 내가 서점을 한다면 금방 도태될 것 같다. 그래서 난 여전히 그꿈을 접기로 했다.

 

장석주야 말로 옛날 선비처럼 글을 읽다. 자신이 읽은 책을 꼼꼼 리뷰하면서 사계절의 이미지를 담았다. 탁월하다. 무엇보다 글 속에 그의 책 읽는 모습이 실루엣처럼 나타나기도 하는데 한 폭의 동양화 그림을 보는 것도 같고 그 모습이 아련했다. 모름지기 책을 읽는다면 이런 모습이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언제부턴가 나의 책 읽는 자세는 할 것 다하고, 놀 것 다 놀고 나머지 자투리 시간에 독서를 하는 것으로 바뀌어 있는 모습이었다. 물론 바쁜 생활인이 그렇게 자투리 시간을 쪼개 읽는 거라면 좋은 일이긴 하지만 난 그런 게 아니었다. 그나마 예전엔 누워서 책을 보기도 했는데 지금은 정자세로 앉아서 읽는다. 다른 뜻은 없고 누워서는 이제 읽을 수 없기 때문이다.

 

언젠가 내 서재에 이미지로 사용했던 사진이다.

인상적여서 좋긴 하지만 저런 자세로 매일 한 시간씩 읽으면

류마치스 신경통에 딱 걸리기 좋은 자세다.

 

요즘엔 아침 여섯 시면 일어나 두 시간 남짓 녹차를 마시며 책을 읽는다. 남는 시간에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책부터 읽고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다. 그렇게 한지는 두어 달쯤 되오는 것 같다. 그러기 위해 잠도 11시 정도면 잔다(내가 보는 드라마는 보고 자야겠기에). 그전까지는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는 굳이 말하지 않겠다. 적어도 난 아침에 책을 읽지 않았다. 앞으로 이게 습관화가 되면 내 머리에 얼마만한 지식이 쌓일런지 모르겠다. 그건 고사하고 그래야 내 방 곳곳에 쌓인 책들을 어느 정도 읽어나갈 수 있지 않을까? 그나마 요즘엔 연말이라 그런지 조금 흐트러졌다. 새해부터 다시 고삐를 트러쥐어야겠다.

 

아무튼 장석주의 책 읽는 모습을 보면 가히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한문으로 이름을 지은 그의 서재가 따로 있다고 하던데 얼마나 책을 읽으면 그런 서재를 가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 책은 사실 읽은지가 꽤 된다. 올해 내가 몇 권이나 책을 읽었나 새어 봤더니 역시 형편없는 수준이었다. 물론 책을 무조건 많이 읽어야 한다는 강박은 가질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이건 좀 너무 저조하다 싶을 정도다. 그래도 이 책들이 있었기에 올 한 해도 버틸 수 있지 않았을까? 내 책 읽는 삶은 앞으로 계속될 것이다. 죽을 때까지 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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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프리쿠키 2016-12-31 2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텔라님 2016년이 영원히 과거속으로
기억될 시간이 한시간 남짓 남았네요.
한살 더 먹고 늙어가고, 쇠퇴해져가지만
마음속에 감성..은 꼭 간직하고 살자구요.
올해는 장석주..이 작가도 꼭 만나보고 싶네요. 건강하시고 항상 화이팅하십시오^^;

2017-01-01 13: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16-12-31 2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tella.k님 새해인사 드립니다.
올해 좋은 시간을 함께 해주셔서 감사해요.
내년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좋은 연말 희망가득한 새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새해복많이 받으세요.^^

stella.K 2017-01-01 15:13   좋아요 1 | URL
아유, 부탁은 제가 드려야죠.
말없이 오셔서 좋아요 눌러주셨는데
그런데 비해 전 좀 격조했죠?
저도 이제 자주 들릴게요.
올해도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새해 복 많이 받아요.^^

moonnight 2017-01-01 0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죽을 때까지 쭉 책과 함께 하겠다 생각합니다. 지치지 않고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stella.K 2017-01-01 15:14   좋아요 0 | URL
네. 올해도 좋은 책 많이 읽으시고 행복하십시오. 꼭이요!
새해 복 많이 받아요.^^

transient-guest 2017-01-03 07: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침을 책으로 시작하는 건 참 좋은 습관 같아요. 저도 조금만 더 따뜻해지면 오전 4시에 일어나서 5시까지 책을 보고 아침운동을 시작해볼까 하는 맘이 드네요.ㅎ

stella.K 2017-01-03 12:55   좋아요 1 | URL
와, 그러면 좋긴 하시겠지만 먼저는 일찍 주무셔야할 것 같은데요?
잠 다음이 독서 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맑은 정신으로 독서를 할 수 없으니...ㅋ
 

'월간 채널 예스'(인터넷 서점 예스24에서 만드는 무가지 잡지) 9월호는 요즘 한창 핫한 장강명 작가를 특집으로 다뤘다. 거기에 최근 나온 <5년만의 신혼여행>이 언급되기도 했는데, 나는 아직 읽어보지 않아 잘 모르겠지만 '이렇게까지 솔직해도 되나' 싶은 내용들도 많이 나온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구미가 당기기도 한다.

암튼 그것을 읽으니 지난번 나의 책을 낼 때 나는 과연 얼마나 솔직했는가를 돌아보게 되고, 이 '솔직해 진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란 생각이 든다. 물론 나는 매번 글을 쓸 때 솔직하게 쓰려고 했고, 결국 그 글들이 모여 한 권의 책이 나온 것이긴 하지만, 특별히 나는 '작가를 꿈꾸는 이들을 위한 독서 에세이'란 부제가 좀 부담스러웠다(이것은 내가 정한 부제는 아니다).   

나는 아직 작가라 불리기에도 부족하고, 그렇다고 꿈만 꾸기엔 어딘가 모르게 나의 정체가 모호하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내 책의 글은 그저 나의 고백을 담으려 했을 뿐인데, 부제를 그렇게 부쳐버리니 마치 작가 지망생들을 겨냥한 것이 되어버렸고, 과연 나도 같은 꿈을 꾸면서 그들에게 알려줄 말이라도 있었던 걸까 반문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난 작가라면 작가 일수도 있다. 오래도록 대본을 써 왔고, 그에 대한 합당한 원고료도 받아 왔으며, 오랜 인고의 세월 끝에 책도 냈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어디서 원고료 줄게 글 써 달라는 곳도 없고, 후속작을 계획 중인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이런 공백기에도 나는 작가라고 할 수 있는 것인가? 뭐 우기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10년 전 또는 20년 전에 책을 한 번 내고 작가라고 하는 사람도 많을 테니. 하지만 과연 그런 사람에게도 작가라고 할 수 있는 것인지. 작가였었었대. 과거형으로 쓸 수는 있을 것이다. 하다못해 그 책이 몇 년 만에 한 권씩이라도 팔린다면 작가의 명망은 유지될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독자들조차 그런 책이 있었냐고 묻는다면 작가라 불리는 건 고려해 봐야 하는 것은 아닐지. 하지만 알 사람은 안다. 작가는 현업보단 명예에 가깝다는걸.      

무엇보다 한 권의 책이 아니 그전에 한 편의 글(그것이 단편이든, 장편이든, 소설이든, 에세이든 기타 등등의 글)이 누군가의 눈에 띄어서(뭐 주로 출판 쪽에 관계된 사람들이겠지) 한 권의 책으로 나온다는 건 로또나 벼락 맞을 확률에 비견된다는 걸 지난날 우리가 아는 명작들이 증명해 주지 있지 않는가. 물론 그나마 늦게라도 빛을 봐 대박신화를 썼으니 좋은 일이긴 하지만, 오히려 그 사실 때문에 더 자괴감을 느끼고 절망의 늪에서 허우적거릴 영혼도 있을 것이다그러니 자비 출판을 하기 전에 내가 지금 쓰는 글이 활자화될 거라고 누가 장담하겠는가? 지금은 세월이 많이 좋아져 자비출판도 한다지만, 소소하게 지인들과 나눌 목적이 아니면 그것도 그렇게 의미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장강명 작가는 채널예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어디는 지면이 없다고 하고, 어디는 작가가 없다고 한다고 했다. 이럴 때 나올 수 있는 말이 홍수 중 가뭄이란 말이던가? 어쨌거나 불균형이다.

내 책에서도 인용했지만, 천명관 작가는 평론가와 각종 문학상 심사위원의 작가에 대한 지도편달을 금하고, 먹고 살 수 있는 판을 새로 짜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 글을 읽는 순간 아마도 많은 독자들이 그것에 공감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린 공감만 할 뿐 판은 어떻게 바꾸어야 할지, 어떻게 바뀔 수 있는지에 대해선 감히 상상할 수가 없다. 그건 역시 문학인의 몫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데 이것에 변화를 주도하는 작가가 있으니 바로 장강명 작가라는 것이다.

그는 인터뷰에서 자신이 책을 낼 때는 기획서를 만들어 출판사에 보내기도 한다. 그렇게 평론가와 심사위원의 지도편달이 가능한 체제라는 건, 작가가 그것을 적극적으로든 소극적으로든 원했기 때문에 가능한 체제이기도 하다는 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평론가나 심사위원 눈에 들기는 또 얼마나 어려운가? 그런 가운데 장강명의 행보는 평론가를 의식하지 않고 출판사와 직접 협약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확실히 신선한 발상이고, 긍정적이기까지 하다. 기획서를 출판사에 보내 본다니.

그런데 사실은 난 이런 장강명 작가의 행보가 그리 놀라운 것은 아니다. 내 책

을 출간한 출판사가 그랬으니까. 출판을 제안받고 2년 만이 이것을 수락했을 때 출판사로부터 가장 먼저 받은 미션은 바로 그 기획서였다. 그러니까 무엇을 독자에게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에 대한, 영화로 치면 일종의 시놉시스? 아니 일종의 피팅 같은 거였다.

피팅이 뭐냐고? 수년 전 내가 시나리오 학원을 다녔을 때 안 것인데, 말하자면 자신이 시나리오 작가라고 생각하고, 영화 관계자들에게 5분 이내에 자기 작품을 설명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때 실제로 그것을 실습해 보기도 했는데, 그건 미국같이 시스템이 잘 된 나라나 가능한 것이고, 우리나라에선 별로 해당 사항이 없다고 해서 허탈했었다. 물론 난 그런 건 하지도 않았다. 수강 일수나 채우러 나간 내가 무슨 피팅이겠는가. 더구나 무대 울렁증이 있는데. 일찌감치 시나리오 작가의 꿈을 접을 것을 그때만큼 잘했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감히 있을 수도 없는 일을 그때 선생님은 왜 시켰던 걸까?

 

비록 영화가 아닌 문학이고, 실제가 아닌 서면이긴 하지만. 그때 난 처음엔 좀 당황하긴 했다. 작가가 이런 것도 해야 하나? 시키는 것이니 해서 출판사에 보냈다. 그러면서 이 일은 꼭 출판사가 먼저 하라고 해서 할 것은 아니지 않을까? 작가가 먼저 작성해서 출판사에 보내 볼 수도 있지 않을까를 생각했고, 바로 장강명 작가가 그렇게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젠 작가도 평론가나 심사위원 뒤에 숨어서 그들이 깔아주는 판에서만 놀지 말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작품 계획서를 출판사에 들이미는 일이 흔해져야겠다. 물론 이것을 에이전시가 해 주면 좋겠지만 우리나라에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 있던가? 그러니 작가가 그렇게 직접 뛰어 보는 것이다. 

장강명은 말한다. 그 원고 청탁 꼭 받아야만 하는 것이냐고. 자신은 어쨌든 열심히 써서 여기저기 보낸다고 한다. 물론 그럴 경우 대부분은 생각해 보고 연락을 주겠다던가 아니면 그도 없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글쎄, 그게 작가가 등단 초기에 있었던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최근에도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인지 확실히는 알 수가 없다. 이제 어느 출판사에서 감히 장강명 작가의 글을 생각해 보겠다고 말하겠는가.

그 글을 읽으면서 우리나라에 알려진 원로 작가들을 생각해 봤다. 이를테면 김홍신이나, 박범신 또는 김훈이나 황석영 같은 작가들 말이다. 그들이 처음부터 그런 대작가의 반열에 들을 것을 알고 첫 작품을 냈을까? 그건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첫 작품으로부터 오늘날과 같은 명성을 얻었음은 분명하다. 글 써서 밥은 벌어먹겠냐 이런 의문과 푸념 섞인 말은 하지 말자. 그런 말을 하는 순간 지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작가들 말도 참 잘 지어낸다. 정지돈이 '후장사실주의'를 얘기하더니 장강명은 '월급사실주의'를 말한다. 단어가 의미하는 바가 뭔지 충분히 유추가 가능할 것 같아 장 작가의 말을 따로 인용하지는 않겠다. 뭐 작가들도 정자세로 앉아 글만 쓰라는 법은 없을 것이다. 어차피 말을 문자화해서 벌어먹고 사는 직업이니 그런 말의 유희도 즐길 줄 알아야 할 것도 같다. 누가 알겠는가 이것이 앞으로 한 세대가 지나면 실제로 하나의 문예사조로 남을지. 하지만 정지돈의 '후장사실주의'는 솔직히 박민규 식 표현을 하자면 '조까라 마이싱'이다. 글 써서 밥 벌어먹겠다는 사람 쪽박을 찰 생각은 없지만, 그런 말장난이나 하면서 소설도 아니고, 서평도 아닌 이상한 글 쓰면서 작가 행세하는 작가에게 어떤 글을 쓰는 작가이고 싶은지 묻고 싶다. 내가 볼 때 정지돈은 소설을 쓸 사람은 아닌 것 같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을 쓰겠다고 한다면 난 여전히  독자로서 가차없어지고 싶은 것도 사실이다.

난 그런 작가에게 캐롤 오츠가 <작가의 신념>에서 했다던 유명한 말을 해 주고 싶다.  "문학에 예술만 있고 기술이 없다면 개인적인 일일뿐이다. 반면에 기술과 예술이 없다면 그것은 밥벌이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글 쓰는 작가가 어려운지도 모르겠다. 둘 중 어느 것 하나도 소홀히 할 수 없는데 이것을 다 갖추고 글을 쓰기란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 그런데 이 둘을 갖추려면 돌아가신 이윤기 님 말씀 말마따나, 거울이 어떠네, 저떠네 잔말하지 말고 쓰라고 하셨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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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16 22: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6-10-17 13:31   좋아요 1 | URL
그렇죠. 근데 기왕이면 도리를 다하는 작가였으면 좋겠다는 거죠.ㅎ

hnine 2016-10-17 07: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런 고민을 하시니 stella님 작가 맞으시네요 ^^
저는 장강명 작가의 책을 단 한권도 안 읽은 사람으로서 잘은 모르겠지만 저런 배짱은 최소한 그는 생계를 온전히 책임지고 있는 생계형 작가는 아니지 않을까? 추측만 해볼 뿐입니다. 글써서 밥 벌어먹고 살아야 한다는 상황이 작가에게 어떤 때는 독으로도 작용하지만 또 어떤 때는 그것만큼 절실한게 없으니 약으로도 작용하는 것 같아요.

stella.K 2016-10-17 13:36   좋아요 0 | URL
생계형 작가가 나중에 크게 되잖아요.
예를 들면, 도스토옙스키나 발자크 같은 사람. 빚 갚으려고.
등 따숩고, 배 부르면 글 안 쓰게 되는 것 같아요.
저만해도 욕심없이 끼니 안 굶고 살만하니까 안 쓰잖아요.
적어도 내 안에 늙지 않은 괴물이 있어 그것에 잡혀 먹히지 않기 위해
글을 쓴다는 박범신 작가의 이유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말입니다.ㅎㅎ

페크pek0501 2016-10-17 14: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가 아는 바로는 글쓰기로 성공하려면 재능 이외에 필요한 게 바로 절실함과 두꺼운 얼굴이 아닐까 해요.
글쓰기가 아니면 다른 건 어떤 것도 할 수 없다는 절실함. 오로지 글만으로 승부를 보겠다는 절심함. 글밖에 할 게 없다는 절실함.
그리고 얼굴이 두꺼워야 해요. 창피함을 감내할 수 있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두꺼운 얼굴.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고도 뻔뻔할 수 있는 것.

글쓰기가 아니어도 살만 하다면, 창피함을 감내하는 게 싫다면 아무리 재능이 있어도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한다는 것. 제 생각이에요.

이런 댓글 쓰면서 저를 돌아보게 되네요...

stella.K 2016-10-17 14:16   좋아요 0 | URL
맞아요. 근데 전 이게 아직 부족한 것 같더라구요.
글을 쓰고 싶긴한데 절실할 정도는 아닌가 봐요.
이렇게 댓글 놀이가 좋고, 서재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는 게 좋을 걸 보면...ㅠㅠ
 

 http://news.kyobobook.co.kr/comma/openColumnView.ink?sntn_id=12437

 

워낙에 유명하신 분이라 언급하기도 조심스러운데, 개인적으로 알라딘 초기 때 이 분으로부터 신세를 많이 졌던지라 얼마 전 내 책을 보내 드렸다. 

 

내 책에 대해선 다소간 호불호가 있는 것 같고, 그건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라 그저 받아만 주시는 것으로도 만족한다 했다. 그런데 이틀 전 밤, 이 분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밤 늦게 죄송하다며, 이날 여수 강의가 있었는데 그곳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 내 책을 읽었다며, 안 읽었으면 큰 일 날뻔했다고 보내 주셨다(참고로 이 분은 내 책이 나온 줄도 모르고 계셨다). 그 문자에 나름 다행이다 안도하고 있었다.

 

그런데 다음 날 내 책의 한 부분을 인용하면서 멋진 칼럼을 쓰셨다. 클릭해 감상해 보시길 바란다.

 

내가 이것을 밝히는 건, 내 책 자랑이 아니라(솔직히 뿌듯한 건 있지만 만족은 못하겠다) 책으로 맺어진 인연이 새삼 귀하단 생각이 들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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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06 14: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6-10-06 14:14   좋아요 1 | URL
멋지죠? 저도 놀랐답니다!^^

북프리쿠키 2016-10-06 14: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팬이기도 하고
곧 스텔라님의 팬이 될 듯해서
이런 말씀 드리는 건 아닙니다~만

꼭 읽어보고
잔잔한 리뷰 남기고 싶어요^^;





stella.K 2016-10-06 15:05   좋아요 0 | URL
ㅎㅎ 그러다 실망하시면 어쩌시려고...
저의 책 호불호가 있습니다.ㅋ
관심 가져주시는 것만으로도 고맙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10-06 14: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다 뿌듯하네요..

stella.K 2016-10-06 15:08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역시 곰발님은 저의 서재 벗입니다.^^

시이소오 2016-10-06 15: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호, 스텔라님도 마태우스님과 친하시군요. 저도 뿌듯하네요 ^^

stella.K 2016-10-06 15:40   좋아요 0 | URL
ㅎㅎ 아닙니다. 마태우스님은 워낙에 바쁘셔서...
바쁘신 중에도 제 책 읽어 달라고 숙제 내드린 꼴이 됐으니.ㅠ
뿌듯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cyrus 2016-10-06 16: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생각하지 못한 분이 리뷰를 남겨주실 때 정말 기쁘고, 고맙죠. ^^

stella.K 2016-10-06 18:01   좋아요 0 | URL
맞아!^^
 

언젠가 중고샵에서 건진 책이다.

시이소오님 요즘 송로버섯 얘기 심신치 않게 하시던데, 마침 읽다 보니 송로버섯에 관한 얘기가 나와서 옮겨본다.

 

이 송로버섯이 요물이긴 한가 보다. 승승장구하던 로시니가 1830년 <빌헬름 텔>을 끝으로 돌연 은퇴를 선언한다. 그때 그의 나이 38세. 76세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단 한 곡도 작곡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게 잘 나가던 로시니 은퇴를 하니 당연 소문이 무성할 밖에. 그중엔 '로시니는 송로버섯을 찾아내는 암퇘지를 기르려고 오페라를 접었다'는 소문까지 돌았다고 한다. 돼지를 키우기 위해 절필했다는 것도 이해가 안 갈 판인데 송로버섯을 찾아내는 암퇘지라니?

 

여기서 중요한 것은 돼지가 아니라 송로버섯이라고 한다. 송로버섯은 푸아그라, 캐비어와 함께 유럽 3대 진미다. 몇 년 전 우리나라의 한 와인 마스터가 9백 그램짜리 송로버섯 한 송이를 1억 6천만원에 구입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고 한다. 얼마나 귀하고 비싼지 '땅속의 다이아몬드'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라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보통 버섯은 지상에서 자라지만 지하 10~30 센티미터 지점에서 자라기 때문에 사람의 눈으로 채취할 방법이 없다고 한다. 톡 쏘는 향을 가지고 있어서 이걸 찾아내는데 암퇘지가 제격. 암퇘지는 후각이 뛰어난 데다, 송로버섯의 향을 맡으면 극도로 흥분해서 주둥이와 발굽으로 땅을 헤집고 기어코 송로버섯을 찾아낸다는 것. 게다가 송로버섯을 좋아하는 로시니는 평소 "진미와 요리를 즐기면서 송로버섯을 찾는 암퇘지를 키우며 지내고 싶다."고 말하곤 했다고 한다.

 

물론 그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알 길은 없으나 로시니가 송로버섯을 좋아했던 것은 사실이고, 그것을 이용한 요리를 개발하기도 했다. 만약 프랑스 고급 식당에 가서 메뉴판에 '로시니'가 붙은 요리를 발견하게 된다면 로시니가 개발한 송로버섯 요리라고 생각하면 된단다. 예를 들면, '루르느도 로시니' 하면 거위 간에 송로버섯을 곁들인 스테이크고, '필레 드 뵈프 로시니' 하면  푸아그라와 송로버섯을 곁들인 쇠고기 안심스테이크란다. 

 

우리네 서민들이야 평생 먹을 일 없겠지만, 파란색 지붕 밑 우리의 그네님이 드셨다던 송로버섯 요리는 뭘지 상상이 가려나? 그런데 송로버섯을 평생 좋아했다는 로시니이고 보면 그도 굉장한 부자였나 보다. 또한 누군지는 모르겠으나 웬만한 전세값에 해당하는 버섯을 샀다는 와인 마스터 양반은 그걸 가지고 무슨 요리를 만들어 먹었을까? 우리네처럼 볶거나 국 끊여 먹지는 않았을 것 아닌가?  아무튼 귀한 몸인 건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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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6-08-21 16: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고 이런 것도 모르고 송로 버섯 안 먹은 사람 어디 있나, 이런 말을 했던 저입니다. 봤어야 알지.....

stella.K 2016-08-21 16:28   좋아요 0 | URL
ㅎㅎㅎ 우리네 잘 먹는 팽이버섯이나 표고버섯하고는 끕이 다르죠.
저도 이번에 알고 식겁했다능...ㅠ

곰곰생각하는발 2016-08-21 1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송이를 송로로 착각.... ㅎㅎㅎㅎㅎㅎ 진짜 빈티나는 착각이었네요..

stella.K 2016-08-21 16:33   좋아요 0 | URL
아, 맞아요. 그래서 웃었잖아요.
그때 곰발님을 라임대마왕으로 등극시켜 드리고...ㅎㅎㅎㅎ

hnine 2016-08-22 04: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트러플이라고 흔히 말하는 그 버섯 아닌가요? 돌덩이처럼 생긴...
로시니가 은근히 송로버섯 핑계를 댔군요 ㅋㅋ
트러플은 생소하지만 버섯은 아니라도 우리에겐 ˝산삼˝ 이 있으니까요 뭐~~

stella.K 2016-08-21 18:07   좋아요 0 | URL
맞아요. Truffle.
별로 맛있어 보이진 않는데. 좀 악마적으로 생기지 않았나요?ㅋ
그에 비하면 산심은 도사님 수염 같구요.
산삼도 아무나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아니죠. 그래도 송로버섯 보다는...^^

시이소오 2016-08-21 2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송로버섯 이런거군요. ㅋ 감사합니다. 배우고 갑니다 ^^

stella.K 2016-08-21 20:09   좋아요 0 | URL
아이, 뭘요?^^

yamoo 2016-08-22 12: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헐~ 이 책 문득 묻다...이거 헌책방에서 구해서 몇 꼭지 읽어 봤는데, 괜찮겠다 시퍼 지난 주에 데려왔어요....권수가 더 있어 도서관에서 빌렸지요..ㅋㅋ 3권까지 있더이다...

근데, 전 왜 그 버섯 야그는 못봤을까요...스텔라 님때분에 이 책 다 읽을 듯해요^^
이런 우연이!!

stella.K 2016-08-22 13:56   좋아요 1 | URL
오, 정말요. 야무님과 제가 같이 좋다고 하는 책이 있다니!
기분 좋은데요?ㅋ
이 책 괜찮은 거 같아요. 제가 몰랐던, 모르면 모르는데로
크게 신경 쓰지 않았던 부분을 건드려줘요.
그러고 보면 라디오 방송작가들 참 대단한 것 같아요.
짧은 분량의 글속에 어떻게 그렇게 폐부를 찌르는 글을 담아낼 수 있을까
놀랄 때가 많거든요.^^
 

정지돈의 <내가 싸우듯이>를 읽으면서, 새삼 내가 우리나라 작가 특히 젊은 작가의 소설을 거의 읽지 않다는 것과 그러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 생경함 다시 한 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그 생경함을 다소나마 완충하기 위해서라도 읽어줘야 하는 것일까를 또한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난 이런 결심을 섣불리 할 수 없다. 지키지 못할 약속은 나 자신하고라도 하지 않는 것이 나의 방침이다. 결심한 바를 지키지 못해 나 자신을 자책하고 싶지는 않으니까. 책이란 모름지기 좋아서 읽고, 호기심으로 읽는 것이어야 하지 않는가. 충격을 줄이기 위해 책을 읽는다는 게 말이 되는가. 그런데 정지돈을 좋아하는 독자도 있다. 당연한 거다. 내가 싫다고 남도 싫어하리란 법은 없다. 내가 좋다고 남도 좋으란 법도 없고. 다 취향의 문제이긴 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 책을 읽고 내가 느끼는 건 세대 차이에서 오는 문화 충격 뭐 그런 것으로 받아들이면 되는 걸까?

 

그런데 그렇게만 얘기할 수 없는 건, 누구의 분류인지는 모르겠지만 정지돈의 작품을 소설로 분류했기 때문이다. 에세이나 그가 작가의 말에서 그리도 강조해마지 않았던 것처럼 비소설로 분류했더라면 이 책은 독자들로부터 비판을 피해갔거나 덜 비판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왜 굳이 소설에 분류시켜 문제를 야기했던 것일까? 그리고 그는 왜 작가의 말에서, 소설을 썼다 비소설로 전향한 외국 작가의 예를 굳이 들었던 것일까? 그냥 그렇게 쓰고 싶다면 쓸 일이지 자신을 이해시켜야만 할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걸까? 게다가 작가의 말이 왜 그리도 어려운 건지 한 편의 논문을 연상시킬 정도다. 이는 추측컨대 둘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자신의 소설이 들 끊을 것을 예견했거나, 이러한 장르도 있다며 무지한 독자를 일깨워야겠다고 생각했던가. 왜 그런 거 있지 않은가, 시대가 외면한 불운한 소설들. 당대엔 이게 무슨 소설이냐고 질타를 받았지만 결국 시대를 뛰어넘은 작품들. 이를테면, 자신의 작품이 그렇게 되길 또는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건 아닐까? 어쨌든 소설의 지경이 넓어져야 한다는 것에 방점을 찍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평론가들은 어땠을까? 어쨌든 정지돈의 이번 작품은 평론가들에게도 새로웠을 것이다. 젊은 소설가들이 새로워봤자 얼마나 새로울 수 있을까? 그 밥에 그 나물이건 평론가들이 더 잘 알 것이다. 젊은 소설가들에게 기대하는 건 실험적이라는 건데 내가 얼마 전 그의 작품을 읽고 제목에도 썼지만 정지돈의 작품은 명백히 소설이 아니다. 그런데 평론가들은 자신이 특별하다는 의식에 사로잡혀 굳이 소설이 아닌 작품에 실험적이라는 이유로 소설임을 자처했던 것은 아닐까? 비소설도 소설이라 우기면서. 그러면서 우리 평론가들도 소설을 보는 눈이 이만큼 넒어지고 달라졌다고 자랑하고 싶었던 아닐까? 만의 하나 그렇게 생각하는 평론가들이 있다면 그는 지진아거나 벌거벗은 임금님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평론가가 자기 보고 싶은 것만을 보고, 말하고 싶은 것만을 말한다면 그게 어디 평론가란 말인가.

 

그래서 말인데 이제 우리나라 문단계도 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랬다고, 소설의 안경을 쓰고 비소설을 논하고자 한다면 그것처럼 소모적인 것도 없을 것이다. 소설은 소설이고, 비소설은 비소설이다. 그것은 소설이 문학의 왕좌의 자리라도 꿰찬 양 여간해서 비소설을 허락하고 싶어 하지 않거나, 비소설을 소설 보다 못한 것으로 보는 시각이 있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소설은 무엇이고, 비소설은 무엇이며, 에세이는 또 뭐란 말인가? 소설이 아니면 에세이로 보는 것도 좀 그렇지 않은가? (리뷰에도 썼지만) 이석원의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은 현재 에세이로 분류되어 있다. 그것도 엄밀히 말하면 에세이가 아닌 비소설 같은데, 왜 정지돈은 소설로 분류하면서 비소설이라고 하고, 왜 이석원의 작품은 그렇지 않은가? 이석원의 작품도 어느 정도 일정 수준의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기는 한데 에세이라고 보기엔 덜 정제된 느낌이다. 내가 알기론 에세이는 꽤 고급한 문학 형태라고 알고 있는데 그렇게 불러주기엔 그건 또 아니라는 거다. 그렇다면 비소설이어야 맞는 거 아닌가. 그러기엔 또 이 나라 문학계가 비소설을 서자 취급해 온 것이 아닌가. 우리나라 문학은 정리가 안 된다. 문학에 서자가 어디고, 적자가 어디 있는가?

 

그런데 차별은 존재하는 것 같긴 하다.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서로 형태는 달라도 비소설을 쓰기는 이석원이나 정지돈이나 같다. 그러나 그것을 보는 시선이 다르다. 이석원을 알다시피 언니네 이발관의 리더. 그러니까 예능인이고, 정지돈은 문학 그것도 창작을 전공하고 영화까지 전공한 재원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석원은 딴따라고, 정지돈은 귀공자라는 것이지. 그리고 평론가들은 당연 이석원에겐 눈길도 주지 않고 라이선스를 가진 정지돈만을 주목하는 것이다. 이런 식의 작가에 대한 편 가르기도 그들의 세계에선 있을 거라는 걸 나는 지금까지 생각해 보지 못했다. 내가 비소설을 허하라는 건, 평론가들이 비소설을 논하지 말고 비소설가과 독자들이 비소설을 논하도록 하라는 것이고, 비소설 작가들을 차별하지 말라는 것이며, 비소설에게도 문학의 자리를 내주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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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집 2016-07-18 1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옳소!

기억의집 2016-07-18 1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제가 이십대초반에 밀란 쿤데라 소설 읽는데 너무 신선한 거에요. 아마 쿤데라가 에세이형식의 소설인가 그런 스탈로 소설을 썼던 것 같아요. 프라하의 봄이나 불멸. 저는 불멸 읽고 신선한 충격울 받아.... 제가 천주교를 다니며 아네수란 세례명을 수여했울 정도로요, 한동안 쿤데라 소설 좋아했어요. 소설의 형식은 가보지 못한 길, 이라 해도 좋을 듯 싶어요. 여러 형식을 만나고 다양한 형식이 인정 되어야 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혹 메탈리카라는 구룹 아세요. 제가 한때 좋아했던 메탈 구룹인데 거기 리더인 보컬 제임스 핫필드가 이번에 물리학 박사 학위를 땃다고 하더라구요. 전문이 양자역학인지 어느 분야인지 모르겠지만 메탈 구룹이라고 딴다라라고 배척하지 않고 박사 학위 딸 정도로 밀어준 물리학계 사람들이 대단하더라구요. 참고로 메탈리카 한 해 수입이 왠만한 중소기업 저리 가라입니다. 수백억 할 겁니다. 그런 사람이 다른 분야에 도전해서 학위 딸 정도면, 우리도 이석원이든 딴다라든 그 누구라도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요. 저는 모든 경계를 무너뜨리고 장르의 벽을 넘어 고급/ 저급의 가치를 없애야 많은 이야기들이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stella.K 2016-07-19 12:57   좋아요 0 | URL
와우, 기억님은 참 젊게 사시네요.
메탈리카는 들어보긴 했는데 팝송을 안 들은지가 하도 오래돼나서
가물가물하네요. 그런데 리더가 물리학 박사를 땃다니 대단하네요.
사실 이석원이 대중적이기도 하고, 글 역시 대중적이기도 해요.
싫어하는 사람은 싫어하겠지만 공감의 글은 정지돈 보다 훨씬 잘
쓸 수 있다고 보고봐요.
정지돈은 문학판 꼰대들이나 좋아하겠죠.
우리나라는 아직도 시야가 넓지가 못해요.ㅠ

yureka01 2016-07-18 2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옳소..!~~
소설이면 어떻고 비소설이면 어떻습니까.

젊은 친구들이 시쳇말로 그러더군요.
취존하십니다.이렇게 ^^.

stella.K 2016-07-19 12:58   좋아요 1 | URL
헉, 취존이 뭐죠?ㅠ

yureka01 2016-07-19 14: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취향 존중이라고 하더군요..~ㅋ

stella.K 2016-07-19 14:39   좋아요 1 | URL
아하!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알 것을...ㅎㅎㅎ

전 이번에 정지돈의 작품을 보면서
우리나라 문학계의 쓸데없는 권위의식에 배가 꼴리더군요.
대중과 소통하고 더 존중받는 문학판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ㅋ

수이 2016-07-20 1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완전 공감 3000퍼_입니다.

stella.K 2016-07-20 13:58   좋아요 1 | URL
와우, 300도 아니고 3000퍼요?
고맙습니다.^^

syo 2016-07-26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같은 책 읽고 쓴 제 글이 부끄러웁네요;;
전 이 책속의 글들이 당연히 소설임을 전제로 깔고 생각하고서는 스스로 나는 참 소설장르를 수용하는 폭이 넓구만, 그러고 오만하는 중이었는데, 오히려 제가 좁게 보고 있었네요ㅎㅎ

stella.K 2016-07-26 16:16   좋아요 0 | URL
아유, 그 무슨 말씀을...
생각하는 바는 얼마든지 다를 수 있습니다.
자책하지 마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