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석 신부의 평전이 나왔다고 해서 산 책이다.  

작년 <울지마 톤즈>를 뒤늦게 챙겨보고, 보면서 많이 울었다. 지금도 그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뭉클하다.  언젠가 그에 관한 책이 나오면 꼭 한번 읽어보리라고 마음 먹어었다.  생각 보다 조금은 일찍 나왔다는 느낌이 든다.  책이 생각 보다 그다지 많은 분량도 아니다. 과연 평전으로서의 가치를 충분히 발휘할 수 있을런지 모르겠지만, 이무튼 이태석 신부의 평전이란 것만으로 충분히 읽어보고 싶게 만든다.  정진석 추기경이나 최인호 작가의 추천글도 이 책을 더욱 빛나게 만드는 것 같다.   

무엇보다 네잎 클로버 책갈피가 마음에 든다. 이 책갈피가 다른 책에 끼어왔다면 어떤 느낌이었을까? 하필 이 책에 함께 오니 이태석 신부가 천국에서 나의 행운을 빌어주는 것 같다고 하면 오버하는 걸까?ㅋ 

 

 오래 전부터 읽고 싶었던 책이다. 마침 알라딘에서 반값에 판다고 해서 샀다. 반값에 팔고 있는 책중 사고 싶은 책이 어디 이 책 뿐이랴? 참고 참았다, 고르고 고른 책이다. 나온지도 오래됐지만 구판이 아닌 신판으로 반값에 파니 정말 안 사고는 못 베겼다. 

 

 

 

 

 

은희경 작가가 이제야 첫 산문집을 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꼭 언제가 한 번은 썼을 것 같은데...!  

그런데 이 책은 정말 사지 않고서는(아직 정식으로 발매되진 않았다. 예판중이다) 못 견디게 만드는 구석이 있는데, 그것은 은희경 작가의 습작강의 노트가 별책 부록으로 끼어있기 때문이다. 난 또 왜 그런 게 궁금한지 모르겠다. 읽을 책도 많아 가급적 책을 사는 건 자제하고 있는데, 출판사에서 이렇게 나와주시면 사지 않고서는 못 베기긴다. 표지 장정도 마음에 들고. 한마디로 출판사의 마케팅에 손들었다. 

은희경 작가의 책을 주문할 때 같이 주문한 책이다. 얇은 책이 뭐 그리 대단할까 싶기도 하고, 더구나 인문학쪽이라 그다지 구미가 당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갖는 아우라는 대단한가 보다. 88페이지. 차 한 잔 값. 이 정도면 부담이 없어 보인다. 한번쯤 읽어줘도 되겠다 너그러운 마음을 갖게 한다.  이 책에 대한 리뷰어들의 리뷰가 화려짱짱 하다. 나는 워낙  우물안의 개구리꽈라 이들만큼 분노할게 있을까 싶기도하지만 궁금하긴 하다. 

 

한 달 전인가? 많은 사람들이 개 미워하는 조선일보 주말판을 오랜만에 산 적이 있다. 몇년 전부터 우린 신문을 구독하지 않았지만, 그 몇년 전까지 본게 조선일보다. 조선일보가 다른 건 몰라도 주말판은 워낙에 잘 만들어서 그중 내가 좋아했던 건 당연 책을 소개하는 면이었다. 그런데 그때 비해 축소가 된 건지, 지면도 줄어든 느낌이고, 워낙에 인터넷 매체의 발달 때문인지 생각보다 별로란 느낌이었다. 확실히 이젠 전문가가 소개하는 책 보단 익명의 리뷰어들의 리뷰가 더 많이 구매력을 좌우한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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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18 12: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7-18 14: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립간 2011-07-18 14:39   좋아요 0 | URL
무안하게, 댓글이나 먼댓글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stella.K 2011-07-18 14:52   좋아요 0 | URL
ㅎㅎ 설마요...^^

cyrus 2011-07-18 21: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고등학생 때 중앙일보 북섹션을 즐겨 봤어요, 지금도 모아놓은 것도 있어요.
그걸로 통해서 책 정보도 얻고 정말 읽을거리가 많았는데,,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판형에 변화를 주더니 아예 내용이 축소되더라고요, 지금은 모르겠는데
두 세장 정도,, 나머진 대형광고 끼워놓고,,-_-;;
하필 그때가 수능 공부하느라 책을 멀리하는 동시에 안 보게 되었어요,
그래서 지금도 일간지 북센션을 잘 안 보는 편이에요. 저도 북섹션보다는
알라딘 리뷰어의 글을 통해서 책 정보를 얻어요. ^^

stella.K 2011-07-19 10:31   좋아요 0 | URL
조선일보만 그런 게 아니었군요.
저도 좋아서 어떤 건 모아두고 그랬었어요.
물론 블로그 이전 이야기지만.^^

2019-10-22 22: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카스피 2011-07-18 2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책들 많이 사셨네요^^

stella.K 2011-07-19 10:32   좋아요 0 | URL
네. 근데 언제 읽을지는 몰라요.ㅋㅋ
 

요즘 밤이면 EBS2에서 하는 강연 프로를 계속 듣고 있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강연>, <마스터>, <클래식>을 연이어 방송하고 있는데 유명 강사진의 강연을 들을 수 있어 좋다.

 

나는 한동안 이것을 보느라 다른 방송은 거의 못 볼 지경이었는데 그렇다고 매번 귀를 쫑긋 세우고 듣는 건 아니다. 보다가 깜빡 잠이 드는 경우도 많다. 밤에 불 끄고 누워서 들으니 그럴 수 밖에. 또 꼭 그런 것이 아니더라도 원래 강의든 강연이든 한 마디도 놓치지 않고 듣는다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난 학교 때 공부를 못 했는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예나 지금이나 관심 있는 건 책으로 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니 강연을 듣는다는 건 역시 내 스타일은 아니다. 그래도 밤마다 강연을 들을 수 있다는 건 불꽃이 팡팡 터지는 느낌이다. 한밤의 향연이라고나 할까.

 

암튼 지금까지 가장 오래 편성을 한 건 강신주의 강연이다. 매일 25분씩 한 주에 네 번, 4주를 강연했으니.  

 

첫날 강신주 교수를 봤을 때 그가 아닌 줄 알았다. 일부런지 아니면 이유가 있는 건지 모르겠는데 살이 엄청 빠졌다. 그러다 보니 얼굴에 굵은 주름도 보인다. 특히 이마. 한 10년 전쯤 그의 독자와의 만남에서 봤을 땐 거의 깍두기 머리에 약간은 촌티가 느껴지기도 했는데 살이 빠지니 세련된 것도 같고. 늙은 것도 같고, 암튼 묘한 조화다.

 

그는 이번 강연에서 아낌의 인문학을 강연했는데 사랑한다고 말하지 말고 아껴달라고 한다. 들으면서 과연 그렇다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우린 사랑 포화 상태에 있지 않나? 그것도 말로만. 사랑과 아낌이 같은 것 같기도 하지만 다른 것 같기도 하다. 사랑은 뭔가 그득히 채움이지만 아낌은 오히려 빼고 깎는 느낌이다. 

 

아무튼 그 문제의 강연집이 최근 책으로 나왔다. 읽어보고 싶긴한데 오래 전 <감정수업>을 사 놓고 읽지도 않았다. 읽으려면 그것부터 읽어야겠지.

 

어제 알라딘 TV에서 그가 나온 걸 봤다. 난 그가 그렇게 웃기는 줄은 몰랐다. 이렇게 웃기는 사람이라면 K 본부에 나올 땐 꽤 근엄하게 하고 나오는 거다. 입담이 장난이 아니다. 

 

요즘 어찌어찌하다 보니 웃기는 책을 많이 읽게 됐다. 요즘 대세는 잘 생긴 것 보다 웃기는 거라고 하던데. 책도 문장이 좋은 것 보다 웃기는 게 대세는 아닌가 싶다. 작가도 웃길 줄 알아야 살아남을 수 있다니. 웃기지 못하는 작가는 작가하지 말아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박상영 작가 알라딘 TV 고정이 되길 간절히 바라고 있던데 뭐 어디 가면 굶겠냐마는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 준다는데 산 사람 소원 못 들어주나? 본인이 그렇게 바라는데 고정시켜 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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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0-07-30 0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그거 라디오 방송으로 조금 들은 적 있어요 아침 11시부터 12시까지 텔레비전 방송으로 한 걸 라디오 방송으로 해주는 거예요 텔레비전 방송보다 좀 늦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게 텔레비전 방송이어서 목소리만 들으면 누군지 몰라요 처음에 이름을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말하지 않을 때도 있더군요 그렇게 잘 듣지도 않으면서 이렇게 말했네요 예전에는 그 말 안 한다고 그러더니 지금은 넘쳐나죠 그래도 진심이겠지요 저는 거의 안 하지만...


희선

stella.K 2020-07-30 14:39   좋아요 1 | URL
아, 그게 라디오에서도 하는군요.
저는 라디오는 잘 안 듣는지라......
이런 프로 좋긴한데 새삼 드는 생각은 모든 강연자가
다 강연을 잘하는 건 아니구나 싶어요.
어떤 사람은 좀 헤멘다 싶기도 하거든요.
그래도 강연 잘하고 그걸로 돈 버는 사람 좀 부럽긴 하더군요.
강신주도 어떤 땐 좀 헤멘다 싶은데 그래도 이 사람 강연 들으면서
철학을 좀 알아야겠구나 싶더군요.

syo 2020-07-30 0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잠깐 봤는데, 진짜 상영님 말 겁나 잘하던데요?? 부러웠다.....

stella.K 2020-07-30 14:44   좋아요 0 | URL
스요님도 만만치 않을 것 같은데...ㅎㅎ
입담 좋은 사람 보면 부럽긴하죠.
알라딘 TV 보는 사람이 많은 것 같긴한데
의외로 등잔 밑이 어둡다고 안 보는 사람도 있긴한가 봐요.
박상영 작가 웃기니까 급관심이 가더군요.
공중파에선 어쩌면 그리도 점잖던지 깜빡 속고 있었습니다.
알라딘 TV 끝까지 봐요. 웃겨요.팧하하하하~

페크(pek0501) 2020-07-30 2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강신주 님의 책을 사 놓고 훑어보기만 하고 정독을 못한 1인입니다.
저는 밤에 일찍 누으면 오디오북을 듣거나 유튜브로 강의 들어요. 눈을 감고요.
눈을 쉬게 해 줘야 할 것 같아서요.ㅋ

stella.K 2020-07-30 21:27   좋아요 1 | URL
앗, 저도 방금 언니 서재에 다녀왔는데...ㅎㅎ

진짜 그 프로 정말 좋은 게 눈감고 듣기만 해도 된다는 거예요.
그러다 잠 들면 땡이지만...ㅋ
물론 어떤 강연은 재방송도 해서 나중에 챙겨보기도 하죠.
그건 아직 올레 TV에서 다시보기 서비스를 안 해 주더라구요.ㅠ

후애(厚愛) 2020-08-01 0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8월이에요^^
이제 무더위 시작인 것 같습니다.
대구는 비가 그리 많이 내렸는데도 시원하지가 않았어요.
습도가 있어서 불쾌지수에요.
건강 챙기시고요, 시원한 주말 보내시길 바랍니다.^^

stella.K 2020-08-01 14:57   좋아요 0 | URL
네. 고맙습니다.
8월이 가장 덥다고는 하지만 입추가 있고,
말복이 있고, 여름의 끝이 보이는 달이기도 하죠.
조금만 견디면 될 것 같습니다.
모쪼록 수술 잘 받으시고 건강히 여름 나십시오.^^

Zara Kim 2020-08-16 23: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디서든 자주 보고 싶은 박상영 작가님🤍
 

 

 

사람의 마음이 간사하긴 하다. 사실 지난봄 나는 무슨 생각에선지 문제의 <젊은 작가상 수상집>을 샀다. 그전부터 가격이 유난히 싸다는 것 외엔 별 관심이 없었는데 우연히 이게 한 시적으로 특가로 팔고 기간이 지나고 나면 정가에 판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정가로 바뀌기 전에 서둘러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난 또 평소 버릇대로 앞부분만 읽고 다른 책에 한 눈을 팔고 있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게 김봉곤 작가의 수록작이 문제가 되자 갑자기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고, 읽고 나니 마음이 좀 착잡해졌다. 


 

 

 

 

사실 작가의 작품은 이 책이 처음은 아니다. 먼저 <소설 보다:봄-여름 2018>에서 처음 읽었다. 읽으면서 재미없다고 생각했다. 사람이 첫인상이 중요하다고 처음 읽는 작가의 작품이 별로면 다음에 또 읽게 될 확률은 매우 낮다. 그래서 김봉곤 작가는 나와는 인연이 없다고 생각했다. 더구나 비판할 생각은 없지만 성적 취향이 같지 않다는 것도 작용했을 것이다. 나는 보수적인데 비해 어쨌든 그는 진보적이니. 그런데 이번에 작품을 읽으면서 의외로 그가 좀 달리 보이기도 했다. 전작도 그렇고 이번 작품도 그렇고 그는 아마도 계속 이쪽으로 글을 쓰지 않을까 싶다. 보통 작가들의 그런 태도를 나쁘게 말하면 우려먹는다고 하고, 좋게 말하면 천착이라고 할 것이다. 내가 볼 때 그의 주제는 나와는 맞지 않지만 그런 태도나 사유는 충분히 인정할만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런지 먼저 읽었던 작품보다 훨씬 잘 읽혔고, 작가의 성격이 보여서 좋았다. 


그의 작품을 두고 사소설이니 오토 픽션이니 하는데 그건 이제 새삼스럽지 않다. 그런 소설을 쓰는 일련의 작가들이 있다는 걸 나는 적어도 5, 6년쯤부터 알고 있었다. 처음 이 장르를 접했을 때 이것을 소설이라고 봐야 하는 건지 산문이라고 봐야 하는 건지 대충 난감해하기도 했다. 이전에는 주로 자전 소설 또는 자전 에세이로 불리기를 좋아했고, 그것은 일정 정도의 형식미와 시대정신을 반영하기도 했다. 그것이 2000년대 들어오면서 개인의 삶, 취향, 경험이 중요시되면서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오토 픽션도 부각되기 시작한 것 같다. 또 그런 만큼 이전 세대는 사소설은 일본에서 유행했던 만큼 우리나라에서 선 터부시 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건 또 요즘 그런 글을 쓰는 작가들조차 그렇게 불리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2015년에 나온 이석원 작가의 <언제 들어도 좋은 말>란 책은 사소설이라고 볼 수 있는데 출판사의 결정인지 어쩐지는 모르겠지만 소설이라 하지 않고 이야기 산문집이라고 했다. 사실 자전 소설이나 자전 에세이라면 인생의 어느 한 시절을 다루거나 인생 전반을 관통하는 그런 것이어야 하는데, 그런 형식은 없고 마치 일주일이나 한 달치 일기 또는 삶의 한 정경을 소설로 자유롭게 쓴 듯한 느낌이다. 그때 난 뭔가 모를 신선한 충격을 받았고 모르긴 해도 이런 식의 글을 쓰는 작가가 많이 나오겠구나 싶었다. 무엇보다 이런 책은 독자의 관음을 충족시켜주지 않는가.       


그렇게 사소설이 주류를 이루다 보니 작가들마다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실제 인물의 사생활 침해가 우려가 되기도 한다. 이건 또 오토 픽션에서만 나타나는 건 아닐 것이다. 작가가 어떤 소설을 쓰든 인물을 가공하기란 쉽지 않다. 하물며 오토 픽션은 일상의 시시콜콜한 일면을 그리니 더하지 않을까. 문득 오래전에 성석제 작가의 독자와의 만남에 간 기억이 생각난다. 질의응답 시간에 주변 인물을 쓰다 보면 그들로부터 소위 민원이 들어오지 않느냐고 질문한 적이 있다. 그럴 때 어떻게 하시냐고 묻자 그는 빙그레 웃으며 본인인 줄 잘 모르거나 알아도 대충 웃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고, 드물게 멱살을 잡혀 본 적도 있는데 그럴 땐 출판사가 나서서 대신 해결해 준다며 알듯 모를듯한 대답을 했다. 하긴 그렇게 사람 좋은 모습을 하고 있는 작가가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 소설에서조차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을 나쁜 사람으로 그리겠는가. 그래도 그런 일이 아주 없지는 않은가 보다.


난 김봉곤 작가의 문제의 소설을 읽기 전에는 침소봉대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도 그럴 것이 작가에 대해선 별로 관심이 없으니 피해자에게 마음이 기우는 건 당연했다. 그런데 읽고 나니 솔직히 무엇이 문제라는 건지 잘 모르겠다. 물론 이런 일이 있을 줄 알았다면 작가가 좀 더 신중하지 못한 걸 탓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C누나는 작가만 알고 독자는 모른다. 그냥 짐작하기로 작가와 친한 사이인가 보다. 그러니까 그렇게 연애 상담도 하지. 그 정도다. 전후 맥락을 봐도 작가는 C 누나의 말을 잠깐 인용한 수준에서 끝난다. 그런데 소설을 있는 동안 그 일은 일파만파가 됐다.


처음 출판사는 문제가 된 부분을 삭제하면서 다시 책을 발행하겠다 했다. 그러더니 다음엔 아예 작가의 작품을 빼고 발행할 거라고 했다. 또 그러더니 이번엔 작가가 아예 상을 반납했다고도 했다. 이쯤 되면 과연 이럴 사안인가 싶어 소설의 문제의 부분을 다시 한번 읽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다시 읽어보니 아, 그럴 수도 있겠구나 공감이 가긴 했다. 내가 작가의 변호인도 아니니 이건 작가가 어떤 의도가 있었던 것 같진 않다고 해명하고 싶지는 않다. 그런 말은 이미 작가 자신이 충분히 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같은 여자면서 참 형광등이라고 할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용서하시라. 하도 음담패설이 난무한 세상에 살고 있어서 일까 그들의 대화는 음담패설 수준에 끼지도 못 한다고 생각했다. 그냥 둘만의 사적인 대화라고만 생각했다. 굳이 그렇게 보자면 오히려 작가는 C 누나 보단 그의 어머니를 희생양으로 삼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자신의 입장을 옹호하기 위해 어머니를 부조리한 인물로 묘사하지 않았는가.)  


만일 그게 문제가 된다면 앞서 얘기한 이석원의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을 또 얘기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읽은 지 좀 돼서 조심스럽긴 하지만, 책에서 작가는 어느 이혼녀를 소개팅으로 만나 가까워지기까지의 과정을 비교적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읽다 보면 얼굴이 붉혀지는 장면도 없지 않은데 작가야 이렇게 쓴다곤 해도 상대는 과연 자신의 이야기가 그렇게 까발려지는데 괜찮을까 아무리 익명이라도 하지만 말이다. 그것에 대해 작가는 생각하고 썼을까 뭐 그런 생각들을 잠시 해 봤다. 지금까지 말이 없는 걸 보면 어떤 식으로든 잘 넘어갔나 보다. 하지만 난 정작 영화 <롤리타>를 보고 충격을 금치 못했다. 알다시피 나보코프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 한 작품으로 어느 소아성애자의 비극적이고도 파괴적 사랑을 그리고 있다. 난 그걸 보면서 새삼 내가 지금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 건지 잠시 현깃증이 났다. 아무리 세상의 모든 이야기가 수컷에 의한, 수컷을 위한, 수컷의 이야기라지만 그 화법에 질리고 말았다. 하긴 본격적으로 여성이 화자가 되거나 주인공으로 나온 소설은 2세기가 채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는 사이 수컷의 화법은 그런 것과 상관없이 기하급수적으로 드러났다. 아무리 현대 남성 작가가 최대한 자신을 낮추고 글을 쓴다고 해도 여성의 감성과 화법을 이해하고, 어느 부분에서 상처를 받는지를 채 헤아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또 그런 식으로 따진다면 세상에 어떤 작품도 이 문제에서 자유로울 작품은 없다.


고의든 아니든 자신으로 인해 누군가 상처를 받았다면 용서를 구하는 건 마땅한 일이다. 무엇보다 작가가 수상을 자진 반납했다니 과연 그답다 싶기도 하다. 모르긴 해도 그는 웬만해서 밀면 밀리는 대로 흔들면 흔들리는 대로 순응하지 저항하는 법이 없는 그런 캐릭터 같다는 느낌이 든다. 그렇다면 작가 편에 손을 들어주고 싶은 독자나 앞으로도 계속 글을 써야 하는 동료 작가들의 입장에선 쓸 자유 표현의 자유가 침해받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의 볼멘소리를 듣는 것 같다. 원래 작가는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지만 연대할 때는 또 연대하지 않는가. 모르긴 해도 이런 일은 앞으로 더욱 빈번해질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작가의 설자리는 좁아지고, 이렇게 패가 나눠져서 서로를 비난하고(물론 건전한 토론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작가는 상을 반납하고, 책을 다시 찍고 그럴 건가? 또 어찌 보면 이건 편집자의 책임도 없지 않다고 본다. 아무리 오토 픽션이고, 솔직하게 써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는 작가라고는 하나 편집자가 제 기능을 발휘해 줬다면 문제가 되지 않거나 축소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말에 의하면 김봉곤 작가도 출판사에서 편집 일도 한다던데 설마 자기 작품을 편집하지는 않을 것 아닌가.


어쨌든 이번 계기를 통해 문학 종사자들의 고민이 더 깊어질 듯하다. 나는 이쯤에서 작가란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 한번 물어보지 않을 수가 없다. 이 문제에 대해 한 예를 들어 보겠다. 그것은 <나의 투쟁>이란 두꺼운 4권짜리 자전소설을 쓴 그 이름도 어려운,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다. 그는 원고를 쓰고 출판하기 전 책에 등장하는 사람을 일일이 찾아가 허락을 받고, 그 과정에서 절교가 선언된 지인도 있었다고 했다. 과연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과연 존경스럽기도 하지만 나라면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이 세상을 작가인 사람과 작가가 아닌 사람으로 나눈다면 그 근거를 무엇에 두겠는가. 작가는 끝까지 써서 마침표를 찍는 사람이고, 작가가 아닌 사람은 그렇게 하지 못하거나 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 마침표에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의 저 수고를 포함시켜야 한다면 당연 그것을 해 낸 사람이 작가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니 작가가 된다는 건 얼마나 어렵고 고달픈 일인가.  


어떤 작가도 자신의 이야기에 등장인물을 나쁜 사람으로 묘사하고 싶은 작가는 없을 것이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그 인물의 부조리한 일면을 드러내 줘야 할 때가 있다. 그 과정에서 의식을 했든 못했든 실제 하는 인물이 상처를 받았다면 더 이상 할 말은 없다. 나는 지금 김봉곤 작가를 옹호하기 위해 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그런 일은 작가라면 누구에게나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져 두서없이 써 봤다. 더불어 작가를 보는 일반인에 대해 한마디 하고 싶다. 


작가라는 직업이 매력적이기는 하다. 존경도 많이 받고. 하지만 매력적이라고 해서 인품도 훌륭하고 도덕적으로나 윤리적으로도 완벽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물론 그러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지. 그런데 간혹 그렇게 착각하는 것 같다. 그건 아마도 작가가 유일하게 전지적 시점을 구사해서 그런 건 아닌가 싶다. 이건 또 신의 시점이기도 하다는 소리다. 넓은 의미에서 신은 공평하긴 하지만 가끔은 신 조차도 전지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은총을 베풀지는 않는다. 그런 것처럼 작가는 완벽할 거란 기대 같은 건 안 했으면 한다. 그냥 웃자고 하는 소리다. 언젠가 누구라면 알 만한 작가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그것도 자조적으로. 작가는 언제든 나쁜 사람이 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 말을 하는데 작가는 정말 그냥 되는 건 아니겠구나 싶다. 작가란 그런 것이다. 나는 김봉곤 작가의 필치에서 그가 심지가 굳건한 사람이란 인상을 받았다. 모쪼록 미안한 일은 미안한 일이고 작가로서 계속 정진해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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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20-07-24 09: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너무 어렵고 미묘한 사안이에요. 스텔라님과 동의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편집과 검열의 과정의 전문화도 필요한 것 같아요. 작가의 쓰고자 하는 욕구와 타인의 사생활 침해 부분의 균형은 사실 스스로가 엄격하게 찾으면 제일 좋지만 외부의 좀더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시선이 필요하지요. 작가로 무언가를 쓴다는 행위는 참으로 무거운 것 같아요. 스텔라님의 열린 시선이 참 좋아요.

stella.K 2020-07-24 16:15   좋아요 1 | URL
전 어쩌면 김봉곤 작가가 편집자를 따로 두지 않았거나
편집자의 말을 듣지 않았거나,
편집자가 미처 그 문제를 잡아내지 못했거나 그랬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즉 우리나라는 과연 편집자를 얼마나 신뢰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것이죠.
그런데 웬지 전 이 책이 갑자기 좋아지더라구요.
예전에 젊은 작가들 재미었다고 했는데 그건 저 또한 젊어서인 것 같고
지금은 좀 아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물론 생각뿐이지 막상 이들의 책은 못 읽을 거면서...후후

읽느라 고생이었을텐데 끝까지 읽고 댓글 달아줘서 고마워요.
솔직히 꼴은 저래도 저거 쓰느라 한 3일 아무 것도 못했습니다.
물론 김봉곤 작가의 그런 결단을 두고 같은 작가로부터
어떤 말을 들었을지 모르겠지만 작가의 방식도 존중해 줄 필요는 있다고 봐요.
꼭 저항하는 것만이 세상을 견디는 방법은 아니거든요.
심지가 있는 사람 같았어요. 잘 추스르고 또 좋은 글 썼으면 좋겠어요.
작가. 참 쉽지 않은 직업이예요.^^

희선 2020-07-26 0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해 젊은작가상에 실린 소설인가 보네요 그 책 사두고 아직 안 읽었는데... 그런 일이 있었군요 그런 일 이번이 처음은 아닌 듯해요 예전에도 자기 얘기 썼다면서 작가 고소한 사람 있겠지요 글을 쓰려면 그걸 쓰겠다고 허락을 받고 쓰는 게 좋을 듯합니다 아주 다르게 쓴다면 모를까 그 소설을 보는 사람은 잘 모를 테지만, 당사자는 그걸 보면 기분이 안 좋겠지요 글과 그 사람이 똑같은 사람도 있지만 아주 다른 사람도 있겠습니다 그것도 잊지 않아야 할 텐데... 어떤 소설가는 아는 사람이 그 소설에 나오는 거 나 맞지 묻기도 했답니다 그건 아니었다고 하는데...


희선

stella.K 2020-07-26 11:52   좋아요 1 | URL
실제로 그런 일이 있긴 있군요.
사실 그 과정을 거쳐야하는 것이 맞는 것 같긴한데
나쁜 의도가 아니고 맥락을 이해한다면 그냥 좀 넘어가 주면 안 될까
싶기도 해요. 물론 먼저는 작가가 슬기롭게 쓰긴해야겠지만
일일이 그걸 챙긴다는 게 쉽지 않거든요.
그래서도 편집자가 더 필요한 것 같기도 하고.
암튼 점점 작가들 글 쓰기가 쉽지 않겠다 싶어요.
돈 많은 작가라면 변호사라도 산다지만...
 

 

국문학자이자 민속학자인 고 김열규 교수는 이 책에서, 자신의 독서의 시작은 할머니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아직 한글도 깨지지 않았을 어린 시절 할머니께 이야기를 들려 달라고 떼를 쓰면 할머니는 늘 "이바구 떼바구 강떼바구, 옛날 옛날, 그 옛날에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에..." 하면서 이야기를 들려주셨다고 한다. 여기서 '이바구'는 이야기를 일컫는 경상도 말이지만, 떼바구, 강떼바구는 별 뜻이 없는 말이다. 모르긴 해도 이야기를 시작할 때 갑자기 시작하기가 뭐하니 시간을 끌기 위한 일종의 시동을 거는 그런 건 아닐까. 문득 이렇게 손자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시는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계시다는 건 얼마나 큰 축복인가 싶다. 잘 기억은 안 나지만 나도 어렸을 때 할머니께 옛날이야기를 들려 달라고 했던 것 같다. 그러면 할머니는 조근조근 짧고 굵게 몇 편의 이야기를 들려주셨는데 내용은 기억에 없다. 한글을 아직 깨치기 전이고, 재미 보단 이 세상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고 싶어 자꾸 이야기를 들려 달라고 했던 건 아닐까. 


나는 보통 독서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때를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라고 말하곤 하는데, 내가 그렇게 말하는 근거는 내가 한글을 깨친 후 책에 관심이 생겨서 돈 주고 사서 보기 시작한 때가 대략 그때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독서는 자신의 의지로 하는 것이라 남에게 의지하여 건 독서 행위라고 보지 않았다. 하지만 김열규 교수는 할머니께 이야기를 들려 달라고 했던 때를 독서의 시작으로 보고 있는데 반박의 여지는 없어 보인다. 요즘 귀로 듣는 오디오북도 있지 않은가. 오디오북이나 조부모에게서 옛날 얘기를 듣나 무엇이 다르겠는가. 단지 오디오북은 좀 더 조직적이고 기계적이라는 정도가 될까. 


그렇게 시작한 김열규 교수의 독서는 청장년 시절에 한창 맹위를 떨치다 노년에 이르러서는 느슨해진다. 노년의 책 읽기는 산책하듯 하는 것이라고 했다. 가다 말다 어슬렁대는 것이 산책인 것처럼 책 역시 읽다 말다 하는 것이다. 


...... 읽기와 걷기가 절로 겹쳐진다. 가령 한참을 어슬렁대다가 갈림길에 왔다 치자. 어디로 갈까? 망설일 것이 전혀 없다. 왼쪽 손바닥에 침을 뱉고는 오른쪽 손바닥으로 탁! 친다. 침방울이 튀는 쪽으로 자동적으로 발길이 향한다. 들고 온 책을 어디쯤 펼칠까 하는 것도 비슷하게 결판이 난다. 바람이 책장을 넘겨주면 거기서부터 읽으면 된다.

그런가 하면 가던 걸음을 멈추고 풀썩 풀밭에 주저앉아 더없이 멍해 있는 것도 산책의 재미다. 마찬가지로 책을 읽다가 내려놓고 멍하니 눈을 감고 고개를 숙이는 것도 산책하듯 읽기의 바른 자세다.(159p)


요즘 같이 공기도 믿을 수 없는 때에 얼마나 그림 같은 풍경인지. 언젠가, 무슨 책을 읽다 독서도 노후를 대비해야 한다는 말을 읽고 약간 뜨악한 적이 있었다. 난 그때까지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그건 여러 이유가 있는데, 좋아하는 책을 그냥 평생 읽을 수 있는 데까지 읽는 거지 무슨 노후를 생각한단 말인가. 더구나 난 책을 좋아하지만 많이 읽지는 못한다. 그러므로 계획을 짠다는 건 내 사전에 없다. 닥치는 대로 읽는다는주의다. 또 이건 좀 모순 같은 말인지도 모르겠는데, 독서는 취미 같은 것이 아닌가. 취미는 여건이 허락되고 마음이 허락될 때까지 계속하는 것이다. 싫으면 언제든 접고 원하면 죽을 때까지 하는 것이다. 물론 난 이 취미를 죽을 때까지 할 것 같으니 노후의 독서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요즘처럼 영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의 한 장면이 자주 떠오르는 때도 없다. 거기 보면 남자 주인공이 꼭 책을 읽으면 첫 장부터 읽지 않고  끝장을 읽은 후 첫 장을 읽기 시작한다. 왜 그런가 했더니, 만일 천재지변 같은 게 있어 끝을 못 읽게 되면 안 되니까 그런 것이란다. 처음엔 그게 참 엉뚱하다고 생각했는데 나도 언젠가 읽겠다고 모아 둔 책을 다 읽지도 못하고 죽을지 모른다. 아니 그럴 가능성은 백퍼다. 사다 놓은 책의 마지막 장이 어떤지, 완독은 고사하고 손때라도 묻혀둬야 하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영화<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의 한 장면


느림보 같긴 해도 나도 한때는 치열하게 책을 읽었던 때가 있다. 그때 난 어렵거나 지루한 책은 영락없이 읽기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때가 오면 난 저자나 역자를 차마 비난하지 못하겠다. 왜 책을 이렇게 썼냐고. 다 내가 소양이 부족해서 못 읽는 걸 누굴 비난하겠는가. 그게 언제부턴가 바뀌기 시작했다. 이 세상엔 나에게 맞지 않는 책이 있고 읽지 못할 책이 있다. 그럴 땐 빨리 다른 책을 읽기로 한다. 세상은 넓고 읽어야 할 책들은 많은데 그런 걸 가지고 자책하는 건 시간 낭비다. 그러다 보니 완독에 대한 강박도 좀 버리게 됐다. 


바람이 펼쳐준 페이지부터 읽는다. 왠지 낭만적이면서도 숨이 쉬어지는 독서다. 이걸 풍독이라고 해야 하는 걸까? 사람들은 흔히 연말에 또는 월별로 자신이 몇 권의 책을 읽었는가를 세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노년엔 아무래도 눈도 안 좋아지고 집중력도 떨어질 테니 어느 순간 그렇게 세는 것이 의미 없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는 그런 말을 했다. 책을 완독에만 매달리지 말고, 마음 가는 대로 읽되 내가 오늘 얼마의 독서를 했는지에 초점을 맞추라고. 그것이 권 수를 세는 것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오늘이란 하루가 점점 더 중요해지는 것 같다. 엄밀한 의미에서 내일은 아직 내게 허락되지 않았다. 그냥 허락될 거라고 믿을 뿐이다. 그러므로 지상에서의 독서는 오늘 하루만 할 수 있다. 실존적인 독서를 하는 것이다. 


요즘엔 책을 대신 읽어주는 사람이 있다. 요점 정리의 요정 설민석 같은 사람 말이다. 그것도 일종의 독서 행위라면 그가 나오는 TV 프로를 보면서 "그 프로를 보느라 책을 못 읽었어." 이런 말이 필요할까 싶기도 하다. 물론 그것의 단점은 원작자의 문체의 맛을 느낄 수 없다는 정도가 될 텐데, 독서의 주요 행위는 작가의 문체를 아는 것보다 그 내용을 얼마나 내 것으로 이해했느냐 또는 다른 사람과 얼마나 토론이 가능한가 가 아닐까? 누구는 그런 데서 주워듣고 아는 척하는 거 얌생이 같다고 할지 모르겠는데, 원래 독서 토론이란 아는 척하는 것이고, 얌생이 독서법도 독서는 독서라고 인정해 주자. 요는 독서 행위를 한 두 가지에 국한시키지 말고 넓은 시각으로 보자는 말이다. 뭐 꼭 그게 아니더라도 그런 프로를 시청하면 어느 땐가 한 번은 꼭 그 책을 사서 읽게 되지 않는가.


김열규 교수가 젊은 시절 그렇게 맹렬하게 독서를 했던 건 그땐 여가 시간에 할 수 있는 게 별로 많지 않았기 때문은 아닐까. 그는 1932년 생으로 그 시대가 그렇듯 책 읽는 것조차도 사치였던 시절이었다. 영화 <동주>에서도 보면, 시인 윤동주 역시 독서만 줄곧 해 대는 인물로 나오기도 한다. 만일 이들이 이 시대를 살았다면 과연 책만 읽었을까? 이 시대는 어쩌면 사람으로 하여금 온전히 독서만 하기 힘든 시대라고 생각한다. 영화도 봐야 하고, 동아리나 모임에도 나가야 하고 다른 일을 해야 한다. 요즘에도 독서가가 없는 건 아니지만 옛날의 기준을 가지고 독서가를 생각하면 안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나는 어느 때부턴가 에세이류를 많이 읽게 됐다. 왜 그런가를 생각해 보면 장편소설을 읽을 경우 구조나 얼개를 잘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비해 에세이는 그런 파악을 할 필요 없이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금방 공감하게 된다. 게다가 요즘 에세이는 인문학적 소양까지 갖추고 있는 경우도 많다. 그 좋은 에세이를  읽지 않는다면 얼마나 손해인가 싶을 정도다. 그래도 내 마음은 늘 소설에 가 있다. 그것도 고전 소설. 앞으로 내가 얼마를 더 살지 모르겠지만 어느덧 나도 살아갈 날들이 살아온 날들 보다 조금 짧아진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전에 생각해 보지 않은 것들을 생각하게 된다. 그중 하나가 이 책을 읽지 않고 생을 마감한다면 평생 후회할 책이 뭐가 있을까 생각한다. 지금이라도 그 책에 대한 목록을 만들고 한 권, 한 권 읽어나가야 할 것 같다. 그렇게 목록을 만들어도 나는 3분의 1도 다 읽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만큼 내가 생각보다 빨리 세상을 떠날 수도 있고, 아니면 평소 게으르고 어영부영하는 성격이라 그것을 망칠 수도 있다. 그래도 세워 보고 싶다. 아예 계획 없이 살다 죽음을 맞이하는 것보다 완주는 못할지라도 계획을 실천하다 죽는 게 훨씬 낫지 않을까.


김열규 교수는 그렇게 노년의 독서를 산책하듯 한다고 했지만 그 독서는 조금도 느슨해지거나 틈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더 노련해졌고 웅숭깊어졌다. 그는 토마스 만이나 릴케에 대한 존경을 굳이 숨기지 않았지만, 마지막에 선택한 작가는 츠바이크였다. 특히 츠바이크가 쓴 <에라스뮈스 평전>를 좋아했는데, 알다시피 에라스뮈스는 루터와 함께 종교개혁에 참여했던 인문학자다. 그는 츠바이크가 그 책에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므로 에라스뮈스가 되고자 했다고 말한다. 또한 그런 츠바이크를 김열규 교수는 숭배했다.  

'제1의 에라스뮈스와 제2의 에라스뮈스, 츠바이크! 제1의 츠바이크와 제2의 츠바이크, 김 아무개! 우리 셋은 그렇게 피가 통하는 한 동아리가 되기를 나는 축원했다. 그것이 현실이 될지 아니면 꿈으로 끝날지는 나중 문제였고 우선 마음은 그렇게 조급했다(311p).'


누구는 방에 책을 쌓아 놓는 건 정신적으로 나무에서 피톤치드를 마시는 것과 같은 효과를 얻는다고도 했다. 언젠가 저 책을 읽어야지 하는 기대가 나를 건강하게 만든다나. 일 일이 많고, 하고 싶은 일이 많은 사람은 죽지 않는다는 말처럼 어쩌면 내가 저 책을 읽어야지 하는 생각이 나의 생명을 연장시키는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아직 읽지 않은 책에 대한 약간의 미안한 마음이 있지만 앞으로 읽을 것을 생각하면 기대감으로 충만할 때가 더 많다. 읽다가 누구 한 사람에게 꽂혀 그를 알고 싶고, 사상적으로 그와 같은 사람이 되고 싶은 갈망이 생긴다면 그건 성공한 독서고 훌륭한 독서라고 봐도 좋을 것 같다. 김열규 교수의 저 말에 빛 댄다면 말이다.    


지금까지 서평집은 많이 봤지만, 독서 가지고 이렇게 할 말이 많은 줄은 몰랐다. 김열규 교수는 진정한 독서 고수다. 문장이 쉽고 깊이가 있는 것이 본받고 싶은 문체다. 도대체 얼마나 오랫동안 책을 읽고 글을 쓰면 이런 문장을 구사할 수 있는 건지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읽는 동안 마음이 든든히 채워지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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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20-03-19 21: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이나 책장에 쌓인 먼지가 건강에 좋지 않아요. 집에도 미세 먼지가 많이 있다고 하던데, 아마도 미세 먼지가 가장 많은 곳은 서재일 거예요. ^^;;

stella.K 2020-03-20 11:31   좋아요 0 | URL
ㅎㅎㅎ 넌 꼭 이 공들인 글에 초를 쳐야겠냐?
기껏 애써서 써 놨구만.
너와 같은 말에 울엄니가 하시는 말씀이 있지.
그래도 7, 80년 건강하게 살아왔다고.
너도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체질은 아니라고 보는데.ㅋㅋ

니르바나 2020-03-20 0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알고 있는 김지안 작가님의 <네 멋대로 읽어라>이후 최고의 서평집인가 봅니다.^^
김열규 교수님이 서울 생활을 끝내고 낙향하여 고향 가까운 대학으로 자리를 옮기고
편안한 모습으로 인터뷰 하던 모습이 떠오르네요.
2층으로 오르던 목재 계단에 발 옮기기 어렵게 책이 쌓여 있고
서재 문 밖까지 온통 점령한 책들이 참 인상적이었죠.
연구를 위해 관련도서를 읽는 다른 학자들의 서재 풍경과 달리
저명한 국문학, 민속학자이면서도
다양한 책읽기를 진정 사랑한 애서가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2020-03-20 11: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3-20 15: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후애(厚愛) 2020-03-21 0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정말 많이 봤던 영화압니다.^^
몇 번을 봣는지 기억도 없네요.
정말 좋았던 영화지요.

좋은 꿈 꾸시고, 행복한 주말 되세요.^^

stella.K 2020-03-21 15:36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저는 오래 전 멕 라이언 리즈 시절에 한번 보고
여태 다시 못 보고 있는 영홥니다.
그런 사람이 아는 채를 하고 있네요.ㅋㅋ
근데 맞죠? 해리가 책 맨 뒷장부터 읽다가 다시 첫장부터 읽는 이유.
후애님 같으신 분이 계셔서 팩트 체크부터 하고
글을 써야 하는데 말입니다.ㅠ
좋은 주말입니다.^^

페크(pek0501) 2020-03-22 2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에세이를 읽을 때가 제일 편한 독서가 되는 것 같아요. 목차를 보고 글 제목이 끌리는 걸로 골라 몇 개씩 읽고 나서 읽었다는 표시를 목차에다 해 둡니다. 여러 에세이책을 같은 날에 읽을 수 있는 장점도 있고요.

오디오북을 애용하는 편입니다. 하루에 30분~50분 정도는 듣는 것 같아요. 같은 내용을 여러 번 들을 수 있는 건 장점이에요. 종이책을 여러 번 읽는 건 어려운데 비해 오디오북은 편하죠. 그런데 오디오북으로 들어서 좋은 건 꼭 종이책으로 사게 되더군요. 이중으로 책값이 드는 건 단점. ㅋ

stella.K 2020-03-23 12:21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요. 나이들면 에세이가 편해요.
어렸을 때 에세이도 글이냐? 했던 때가 있었는데 정말 무식하면 용감한 거죠.

오디오북은 전 아직 생각 안해 봤는데 조만간 써야할지도 모르겠어요.
 

먼저 자기 자신을 용서하라

곡선으로 직선을 그려라 

십자가를 등에 지고 가지 말고 품에 안고 가라

나의 가장 약한 부분을 사랑하라

왜 가장 원하지 않는 일에 인생을 낭비하는가

오늘이 지나면 다시 못 볼 사람처럼 가족을 대하라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목표를 세우면 목표가 나를 이끈다

죽음을 두려워하면 매일 죽으나, 두려워하지 않으면 단 한 번 밖에 죽지 않는다.

마지막이라고 느꼈을 때 30분만 더 버텨라

 

어제 미세먼지가 자욱한데도 불구하고 옆동네에서 강연회가 있어 모처럼 다녀왔다. 그동안은 병원엘 다니느라 웬만큼 필요한 일이 아니면 외출을 자제하고 있었다. 이렇게 안 다니던 강연회도 다니는 걸 보면 그만도 많이 낫다 싶다. 더구나 강연회 장소가 강남역인데, 한강을 넘어가는 것도 아닌데 그 정도는 슬슬 다녀주는 것도 좋지 싶어었다. 더구나 중고샵 안에서 하는건데 강연회 전후로 책도 구경할 수 있으니 괜찮은 코스 같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고, 강연회가 생각 보다 일찍 끝나서 책 구경 조금만하고 가려다 그만 정호승의 저 책에 꽂혀 결국 업어가지고 왔다.

 

정호승은 알다시피 시인이며 수필가이기도 한데 그래서 그런지 그의 에세이는 상당히 감성적이기도 하다. 나는 대체로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문장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 매번 정호승의 문체에 무릎을 꿇고 만다. 

 

아, 어찌할꼬, 읽겠다고 조금씩 건드려 놓은 책도 많은데 저 책을 건드려 놓았으니...

 

그러고 보니 오빠가 세상 떠나던 해에 오빠 방에서 발견하고 조금 조금씩 읽다 이내 푹 빠져버린 <항아리>가 다시 읽어보고 싶어졌다. 읽었을 당시도 누렇게 바래진 책이었는데 두어달 전 오래된 책을 처분했을 때 저 책도 보내리라 다짐했던 걸 끝내 버리지 못했다. 

 

문득 십여년 전쯤, 나의 글 선생님을 10년 넘어 다시 뵈었을 때 좋아하는 작가가 있냐고 기습적으로 질문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때 난 너무도 당당하게 좋아하는 작가가 없다고 했었다. 김훈 정도는 좋아한다고 말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런데도 워낙 급작스러 준비도 안 됐거니와, 난 작가가 될 사람은 자기 글 외에 남의 글은 좋아하면 안 되지 않을까란 생각이 스치기도 했다. 역시 덜여문 자의 덜떨어진 대답이다. 그때 정호승을 알았더라면 난 냉큼 "정호승이요." 했을 것이다.

 

감히 김훈과 정호승을 비교한다는 게 가능하진 않겠지만(워낙 그 결이 달라서) 정호승을 알게되면 감성적이면서도 위로적인 문체에 무릎꿇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세상에 나를 무조건 위로하고 격려하는 글을 읽기는 또 얼마나 어려운가. 더구나 누가 좋다더라 해서 읽고 이내 빠지는 책도 나쁘진 않지만 이렇게 우연찮게 발견하고 빠져버리는 건 더 좋지 않을까.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이 그 가운데 정말 생각지도 못하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연애를하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는 아닐까. 내가 원하던 사람과 연애를 하는 것도 좋겠지만, 생각지도 않은 사람에게서 매력을 발견하고 사랑에 빠지는 것이 더 좋지 않겠는가 말이다. 내겐 정호승의 책이 그런 책 같다. 매번 읽을 때마다 나를 꼼짝 못하게 만들고 나를 무릎꿇게 만드는 책. 그런 한 권쯤 가슴에 품고 사는 독자가 되어보는 것도 독자가 누리는 권리이자 행운 아닐까.  

 

위의 책 맨 마지막 문장을 보며 최근에 젊은 나이에 유명을 달리한 가수가 생각이 났다. 누군가 죽을 결심을 했던 그들에게 30분만 버텨보라고 했더라면 그들은 어떻게 됐을까? 혹시 모르니 우린 서로가 서로에게 입버릇처럼 저런 말을 해 줘야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우리의 삶은 달라질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지금은 아픈 곳이 많이 나았지만 대신 이번엔 팔목이 아프다. 여기가 낫는 것 같으면 저기가 안 좋고, 저기가 낫는가 싶으면 또 새로운 곳이 아프다. 어제 약국에도 들렸는데 필요한 약만 사고 팔목 감아 줄 밴드 하나 사 볼 생각도 못했다. 약도 그렇고 다른 물건도 그렇고 꼭 사던 것만 사게 된다. 나이들면 문제해결을 위해 조금도 나아가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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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9-12-19 15: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화이팅하세욧! 아프지마시공

stella.K 2019-12-19 15:40   좋아요 0 | URL
ㅎㅎ 고맙습니다.^^

페크(pek0501) 2019-12-22 2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기저기 아픈 데가 생기면서 나이 들어가는 것이죠. 동병상련.
저는 좋아하는 작가를 물으면 말할 작가가 많습니다.
스텔라 님과 다르게 저는 글쟁이들은 작가를 흠모하는 경향이 있지 않나 생각했어요.

잘 지내고 계시죠?

stella.K 2019-12-23 16:21   좋아요 0 | URL
작가들끼리는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다는 글을 본적이 있어요.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확실히 좋아하는 것 같아요.
저도 먼발치에선 좋아합니다. 개인적으로 알면 실망하게 될까 봐.ㅋㅋ
근데 근래 들어 서재로의 발걸음이 뜸하신 것 같습니다.
별고 없으시죠?
어느덧 갱년기다 보니 남 아픈 게 남의 일 같지 않네요.
올해도 얼마 안 남았어요. 해 놓은 것도 없이.ㅠ

모쪼록 뜻 깊은 성탄되시고,
한 해 마무리 잘하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후애(厚愛) 2019-12-24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tella.K님, 메리 크리스마스!!!^^
즐거운 크리스마스 되세요~

크리스마스날 대구에 첫눈이 내리면 좋겠는데 그럴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ㅎ
감기 조심하세요.^^

stella.K 2019-12-24 18:58   좋아요 0 | URL
아, 네. 고맙습니다.^^

프레이야 2019-12-28 1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책꽂이에 오래전부터 있는 저 책 표지 반갑네요.
한 해가 또 기울고 있어요.
우리는 알라딘묵은지 ㅎㅎ
스텔라님 새해에도 여전하게 뵈어요. 복 많이 받으세요^^

stella.K 2019-12-28 14:17   좋아요 1 | URL
ㅎㅎ 알라딘 묵은지...! 맞네요.
바쁘신 중에도 저의 서재에 들러주시고
인사 남겨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책 요즘도 조금씩 읽고 있는데
좋더라구요. 기회되면 정호승 전작하면 좋겠다 싶어요.
프레이야님도 가지고 계시다니 반갑네요.

이제 2019년도 얼마 안 남았다고 생각하니
괜히 미안한 생각이 들더라구요.
이렇게 가는 줄 알았으면 좀 더 아껴주고 사랑해 줄 걸.
이제 가면 다시 못 오는데 말입니다.ㅠ
가는 건 아는 거고, 오는 건 또 올테니 내년엔 더 사랑해 주고
아껴줘야겠습니다.
프레이야님도 새해 바라는 소망 다 이루시고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