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책은 최근에 많이 번역되어 나왔지만 나는 이 책으로 첫 인연을 맺었다. 

늘 소설을 많이 읽기를 바라지만, 난 항상 에세이에 마음이 간다. 그러는 것을 보면 나도 나이가 들긴 들었나 보다고 생각한다. 언제나 그렇듯 에세이는 삶을 생각하게 만들고, 성찰하게 만드니까. 나이가 들면 들수록 어떻게 살아야 할까에 대해 수시로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이 책은 그래서 읽을만 하다. 에세이를 이렇게도 쓸 수 있구나 새로운 시각에 눈을 뜨게 해 준 책이기도 하다. 그도 그럴 것이, 각 글마다 제목이 '...하다'식의 동사형으로 되어있다. 우리가 어느 때 한 번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있어서 의미를 부여해 본 일이 있는가? 바로 그것을 붙잡아 글을 썼고, 그 속 깊은 맛이 대단하다 싶다.

 게다가 또 한 번 놀라게 되는 건, 에세이집 치고는 그 두께가 만만치 않은데 이런 에세이집은 근래에 보지 못한 것 같다. 물론 난 이렇게 도톰한 책을 좋아해 이 책은 이래저래 내 마음을 흡족하게 해 주었다.   

특이하게도, 저자는 한국에 잠깐 산 이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 경계인으로써의 삶이 작가로써의 정체성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을 하게 만든 것 같다. 특히 난 이 책을 읽으면서, 알게 모르게 일본인에 대해 편견이 있었다는 걸 알았다. 이를테면 일본인들은 늘 침략자, 가해자란 의식 말이다. 그런데 알고 보면 그들도 전쟁의 피해자였고 그로인해 어려움을 겪고 살았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저자의 진지한 글쓰기가 난 마음에 든다. 나중에라도 꼭 다시 한 번 읽어보고 싶은 책이다.        

 

올해는 오빠가 암으로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힘든 한 해였다. 아무래도 집안에 누가 아프면 건강서적을 안 볼 수가 없는 것 같다. 그렇게도 건강했던 오빠가 갑자기 암에 걸리고 보니 새삼 이 암이란 녀석이 뭔지 알고 싶어졌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전까지는 암은 걸릴만한 이유가 있는 사람이나 걸리는 거지 우리 가족에겐 해당도 안 되는(적어도 아직은) 거라고 치부해 버렸기 때문이다. 더구나 오래 전, 아버지를 암으로 잃고도 여전히 그런 생각을 하고 살았다는 게 왠지 나 자신 스스로에게 속은 것 같아 한심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렇다고 그런 책들이 오빠를 간병하는데 그렇게 많은 도움이 됐던 것도 아니었다. 내가 읽었던 암에 대한 책들 거의 대부분은 병원 치료에 대해 회의적이었는데, 오빠는 알고도 또 모르고도 병원 치료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다. 그저 오빠가 그렇게 됐으니 나도 그러지 말라는 법이 없다 싶어, 난 어떻게 대처해야할까에 참고가 될만 하다고 할까?

무엇보다 이 책이 마음에 드는 건, 저자가 나이가 적지 않은 사람들이라 그런지 암도 인생에서 만나질 수 있는 한 과정이려니 하는 긍정적인 태도다. 젊은 의사가 암에 관해 글을 썼다면 처방 위주의 글을 썼을지도 모르지.

사실 오빠가 암이라고 했을 때 우리 집은 거의 초상집 분위기였는데, 이 책을 읽고 그때 우린 좀 오버했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동양인들은 죽음에 대해 긍정적이지 못한데다가, 오빠의 나이가 죽기엔 아직 젊은 나이었으니 그럴만도 했다. 

책 표지가 아주 마음에 드는 건 아니지만, 제목도 그렇고 암에 대한 새로운 사고를 가질 수 있게돼서 나름 좋게 읽었다.

더불어 <의사의 90%는 암을 오해하고 있다>도 좋았다고 생각하는데, 무엇보다 일본 의사들만 해도 그들도 의사임에도 무조건 병원 치료만을 권하지 않는 자세가 마음에 든다. 물론 다 그런 건 아니고 일부 몇몇에 불과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우리나라는 마치 병원 의사만이 병을 치료할 수 있는 것처럼 비쳐질 때가 많아 씁쓸할 때가 있다.

 

바로 소개한 위의 책도 그렇고, 이 책도 그렇고 나온지 좀 된 책이다. 내가 그다지 책을 계획적으로 읽는 편은 아니지만, 이 책은 정말 우연치 않게 읽게된 책인데 상당히 좋다. 출판된 당시에는 나름 지명도가 있던 책으로 알고 있는데, 다른 책 읽느라 읽어 볼 엄두도 내지 못했던 책이다. 이렇게 생각지도 않게 읽고 감동을 먹으면 횡재한 느낌이든다.

하지만 내가 진짜 말하려 하는 것은 이제부터다.

어제였나? 뉴스에 서점 귀퉁이에도 진열되 보지도 못하고 바로 패기되는 책이 어마어마 하단다. 나올 때는 꽤 비싼 고가였어도 패기될 땐 한 권에 100원 받고 가루가 된단다. 그도 그럴 것이, 한 해 문을 닫는 동네 서점이 너무 많고, 상승세에 있던 인터넷 서점도 최근 판매율이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불황이면 제일 먼저 줄이는 것이 문화비일테고, 또 그만큼 영세 출판사는 점점 설자리를 잃어가니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이에 대해 곧 해결방안을 제시할 거라고 하긴 하는데, 과연 실효성이 있을 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볼 때 또 하나 문제점이 있다면, 서점이나 출판사들이 너무 신간 위주로만 마케팅을 하는 것도 문제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것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신간이 나왔을 때 반짝 긴장하고 팔지 않으면 언제 묻혀질지 알 수가 없다.

나만해도, 몇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신간에 구애받지 않고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읽었던 것 같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새로 나온 책에 부쩍 관심이 많아졌고, 그것을 읽어주지 않으면 뭔가 뒤쳐지는 것만 같다. 그리고 예전에는 매체가 한정되어 있고, 꼭 발품 팔아 서점에 가지 않으면 살 수 없기 때문에 신간에 대한 생명력이 제법 길었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같은 년도에 나왔다고 해도 몇 개월 차이도 없는데도 벌써 구간 취급을 받는다.

이것은 아무래도 인터넷의 영향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을 것 같은데, 과연 앞으로도 스테디셀러가 가능할 수 있을지, 가능해도 얼마나 가능할 수 있을지 새삼 의문스러워졌다. 신간만 가지고는 출판사나 서점이나 살아남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각 인터넷 서점마다 잘 쓴 리뷰어들에게 시상하는 제도가 있지만, 거진 대부분이 보면 신간 위주인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간혹 출판된지 좀 지난 책에도 당선의 영예를 주기도 하는데 그건 어쩌다 가물에 콩나듯 하는 것 같다. 신간도 물론 많이 알려져야겠지만, 그 때문에 잘 만든 책 한 권이 스테디셀러로 가지 못한다면 좀 안타까운 일이 아닐까?

출판된지 좀 오래 되었어도 한번씩 눈길을 주고, 무엇보다 자발적인 북클럽이 활성화 되어서 좋은 책이 꾸준히 사랑 받을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야 할 것 같다. 비근한 예로 외국에선 출판 당시는 별로 빛을 못 봤는데 북클럽에서 찾아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그래서 늦게 빛을 보는 책들이 있는데, 그런 것처럼 이때야말로 '독자의 힘'이 필요한 때가 아닐까?    

 

사실 불행했던 예술가의 삶을 읽는다는 것은 그다지 유쾌한 일은 아니다. 언젠가 에밀졸라의 <작품>이란 책을 읽고 기분이 너무 우울해져 읽다가 덮어버린 적이 있다. 이 책도 우울한 것으로 따지자면 에밀졸라의 책 못지 않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책 자체가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은 상당히 잘 쓴 책이다. 특히 작가의 문체는 타의추종을 불허하리만큼 매혹적이고, 깊이가 있다.

무엇보다 작가가 중견을 넘어 노장인데 필력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이들어서도 지치지 않는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는 것이 부럽기도 하고, 존경스럽기도 하다. 나이 먹었다고 절필하는 작가들을 가끔 보곤 하는데, 물론 평생 잘 다닌 직장 은퇴도 하는데 못할 것도 없겠지만, 그래도 왠지 작가는 죽는 그 순간까지도 펜을 놓지 말아야 진정한 작가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작가의 입장에서 세상에 쓰고 싶은 글이 얼마나 많은데 절필을 한단 말인가? 

 

올한 해, 영화 때문에 유명해진 소설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영화를 소설로 만든 책엔 눈길도 안 주지만, 소설을 영화로 만든 책은 일단 관심을 갖고 보는 타입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나는 아직 이 작품을 영화로는 보지 못했다. 

그런데 책을 읽어 본 나는, 일단 작가에게 박수를 쳐주고 싶다. 관상에 관한 거의 모든 자료를 작품속에 잘도 녹여냈다. 작가에게 정말 관상을 볼 줄 아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고 했는데, 과연 그럴만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정말 작가는 관상가는 아닐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런 것이 너무 만연해 안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없지 않았다. 물론 좋게 보자면 관상도 쉬운 것은 아니라는 걸 알게도 되었지만. 읽고 있으면 정말 운명은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닐까 착각이 들 정도고, 사람을 그냥 지나치게 되질 않는 것 같다. 

 

얼마 전,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 공화국 대통령이 서거했다. 나는 또 짬짬히 그 나라 국민의 추모 장면을 뉴스를 통해 보곤했는데, 다소 놀라운 장면을 보았다. 그 나라 국민들은 그다지 슬퍼하는 기색없이 오히려 축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던 것이다.

또 오빠 얘기를 해서 그렇긴 하지만, 가까운 누군가의 죽음을 보면 그게 꼭 슬퍼할 일인가에 대해 다소간의 의문을 갖곤 한다.

물론 두 번 맺어질 수 없는 인연을 죽음으로, 이제 다시는 살아서는 만날 수 없다는 것이 슬프다 못해 서늘하기도 하지만 누군가의 죽음을 축제로 만드는 나라가 있다는 게 자못 부럽기까지 하다.

이 책은 임종에 관한 책이다. 더 정확히는 살아 있는 사람이 임종을 맞이한 사람에게 어떻게 해야하는가? 그 사람의 죽음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올해 역시도 적잖이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에 안녕을 고하고 떠나갔다. 내년엔 또 어떤 사람들이 우리 곁을 떠나갈까? 죽음을 점점 더 가까이서 느낀다. 축하 할 일에만 너무 좋아하지 말고, 슬퍼하는 사람에게 위로가 되어줄 수 있었으면 한다.

여담이지만, 축하 받을 일에만 축하해 주는 사람은 오래가지 않는다. 슬플 때 말 한마디라도 따뜻히 남겨주는 사람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나의 서재에 오빠의 부고를 알렸을 때, 네 분 정도의 서재인이 위로의 말을 남겨 주셨다. 그분들껜 아직도 감사한 마음이 남아 있다. 하지만 내가 한동안 서재 활동을 거의 안한 여파가 좀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앞으로도 종종 서재에 글을 남기긴 하겠지만, 역시 아쉬워 할 일도 아니란 생각이 든다. 잊혀지면 잊혀지는대로 한 세상을 살아가는 게 인생이 아니던가?

그대 때문에 또 한 해를 살 수 있어서 고마웠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그래도 있다는 것에 감사와 위로를 삼아 본다.

한 해 사시느라 수고 많았다고 내가 알지 못하는 미지의 서재인들에게도 미리 인사를 남겨 본다. 남은 한 해 잘 마무리 하고, 부디 행복한 새해를 맞이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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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12-26 1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저 스스로 좋아하는 책 이야기만 쓰지만,
'새로 나온 책' 이야기가 아니면
그닥 눈길을 못 받는다고 느끼곤 해요.

그래도, 이렇게 쓰는 글을
누군가 언젠가 읽으면서
도서관 마실을 하며 챙겨 살피시는 분이 있으리라 믿고,
즐겁게 책 하나 마음에 담으면 될 노릇이라고 생각해요.

올해 마무리 즐거이 하시면서
새해에 또 새롭게 하루하루 누리셔요~

stella.K 2013-12-30 14:34   좋아요 0 | URL
올한 해 함께살기님 덕분에 무사히 잘 넘긴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저의 서재에 관심 가져주시고, 댓글 달아주셔서 고마웠습니다.
함께살기님도 얼마남지 않은 한해 마무리 잘하시고,
또 힘차게 새해 맞으시기 바랍니다.
님의 서재도 더 풍성하고 좋은 일들 가득 넘쳐나길 빌어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4943218#8994943218_MyReview

 

이 책의 출판일이 올해 10월 22일인데 벌써 절판이 되었다.

이유가 뭘까? 평점도 높은데...

그래24에서도 절판이고,

다행히도 옆동네는 판매가 되는 모양이다.

왜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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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때 미치도록 책을 모았던 적이 있다. 내가 좋아서도 사고, 서재 활동을 하니 여기 저기서 책을 선물 받기도 하고, 물론 또 받은만큼 간간히 개인으로 또는 이벤트로 선물하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에는 가급적이면 책을 안 모르려고 하고 있다. 이렇게 저렇게 해서 모은 책이 방 한 가득이니 더 늘어 놓을 때도 없고 그래서 몇 년 전부터 사이판에 사는 친구에게 1년에 한 번 많으면 두 번쯤 보내고 있다. 한 번 보내면 적게는 40여권에서 많게는 60권 가까이 보내고 있다. 

예전에는 줄을 치지 않으면 책 읽는 맛이 안나 줄을 치고, 이건 간직할 책이니까 마음껏 쳐야지 하는 책도 어느 새 사이판 행 책 박스에 들어가 있다. 한때는 나도 밑줄그은 책을 남 주는 것에 대한 묘한 강박이 있었다. 누군가 그 책을 읽으면 괜히 관음증을 자극할 것은 아닌지. 또는 새 책을 주지 못하는 것에 대한 미안함 뭐 그런 것이 뒤섞여 있었다.

그러나 이것을 역으로 생각해 보면, 나도 가끔 누군가 밑줄그은 책을 받곤 하는데 그것에 대한 거부감이 그리 많은 것은 아니다. 물론 처음엔 이 책 주인은 왜 하필 여기다 줄을 쳤을까? 살짝 궁금해지긴 하지만 만날 일도 없고, 설혹 만난다 해도 왜 그 부분에 밑줄을 쳤냐고 물어 보지도 못한다. 그러니 관음증의 자극은 잠깐 있다마는 정도다. 새 책을 주지 못하는 것에 대한 미안함도 잠시다. 요즘 책값이 좀 비싼가? 현금 들여 사지 않을 거라면 그렇게 받는 것도 어찌보면 횡재다. 더구나 새 책이 아니니 밑줄을 맘놓고 칠 수 있어 나쁘지 않다.

나의 돌아가신 아버지는 살아생전에 물건을 웬만해서 버리는 법이 없으셨다. 그에 비해 나의 엄마는 필요없는 것은 뭐든 버리는 걸 좋아했다. 그 점은 지금 생각해도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아마도 엄마도 아버지와 같은 성격이었다면 우리집은 온갖 잠동사니로 넘쳐났을 것이다.

예전에 책을 모으기만했을 땐 내가 아버지 성격을 많이 닮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요즘은 쌓아두는 것이 싫어 뭐든지 가급적 안 모으려고 노력하는데 이 또한 쉽지가 않다. 예전엔 그렇게 사이판에 책을 보내놓으면 약간은 공간이 생겨 마음도 후련해지고, 저 빈 공간을 뭘로 채울까 여유로운 마음도 생겼는데, 어떻게 된 게 요즘엔 그렇게 책을 보내도 별로 비워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그렇다고 책을 추리는 일도 크게 마음 먹지 않으면 안되는 일이라 자주 보낼 수도 없다.    

예전에 나는, 책을 사면 언젠가 읽게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지내보니 그렇지가 않다. 그때 당시엔 왜 그리도 그 책이 탐이 나던지? 무조건 질러야 한다고 생각했다. 언제 읽을지도 모르면서 지르기부터 하는 것이다. 그렇게 지른 책 중 물론 기필코 읽은 책도 있지만, 대부분의 책은 언젠가는 읽지 않게 된다. 책에도 유통기한이 있는 것인지, 언제 읽겠다는 기한이 보장되지 않는 책은 시간 지나면 다시 읽기가 쉽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당장 인터넷 서점 검색만해도 따끈따끈한 신간이 그때까지 보지도 못한 표지로 독자를 유혹하고 있는데, 눈이 보배라고 그때 당시엔 좋다고 산 책이 지금 보면 구닥다리가 되어 있는 경우도 많다.

뭐 또 그게 아니어도 책이 진화하는 것처럼, 그 책을 낸 저자들도 진화하기 마련이다. 지식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어느 저자가 무슨 책을 내놨다하면 꼭 사게 만드는 책이 있다. 그러나 그 좋다는 책도 얼른 읽어주지 않으면 공염불일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어떤 사람은 내가 꽤 겉멋이나 들고, 속은 게으른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물론 그것에 대해 굳이 아니라고는 말하지 않겠다. 엄밀히 말하면, 책도 약간의 지적 허영이 있어야 모을 수 있는 물건이라고 생각한다. 출판 기술이 발달하기 전엔 책도 소위 '있는 집 자식들'이나 가질 수 있는 물건이었을테니. 물론 또 거기서도 층위가 나눠질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이런 책을 읽고 있는데, 너는 이런 책도 읽는구나 하는데서 오는 열등감과 우월감을 나눠갖지 않았을까? 

책 역시 취향에 따라 사람을 구분하기도 한다. 예전엔 어려운 철학책을 척척 읽는 사람이 있으면 무작정 우러러보고 부러워도 했지만, 지금은 그런 사람을 보면 웬지 범접하기가 쉽지 않을거란 편견부터 갖게도 한다.    

 

어쩌다 내가 이런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음, 그래. 허영과 게으름을 얘기했었다. 난 책을 좋아하긴 하지만 읽는데 게으른 것 같기는 하다. 그러니 언젠가 읽을 책을 쌓아만 두고 읽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누가 들으면 핑계라고 할지 모르지만, 난 좀 책을 읽는데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그건 책은 좋아하는데, 빨리 읽을 수 가 없는 것이다. 딱히 재본 건 아니지만, 한 번 책을 펼치면 얼마까지 집중해서 책을 읽을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본다. 책마다 다르겠지만, 좀 재밌고 사로잡는 뭔가가 있다고 하는 책은 대략 1시간 반 내외인 것 같다. 그 이상을 넘어가면 좀 지치고 눈의 피로도 오고, 어쩔 수 없이 다른 일을 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치명적인 약점이 아니어도 책 정보가 예전에 비해 엄청 빨라졌고, 많아졌다는 것을 간과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예전엔 꼭 발품 팔아 서점을 나가 보던가, 신문을 보지 않으면 무슨 책이 새롭게 나왔는지, 어떤 책이 주목을 받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지금은 인터넷 검색만으로도 그 일은 손쉽게 이루어지고 있다. 각 매채에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책을 소개하고 있고, 각종 이벤트를 통해 현금을 들이지 않고도 책을 구입해 보는 방법도 많아졌으니 이 게으름이라는 것도 상대적인 것이지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적어도 난 그런 치명적인 약점에도 불구하고, 정확히 밝힐 수는 없지만 한 달이면 책을 소화하는(그것이 완독을 했건 이러저러한 이유로 완독을 하지 못하건간에, 소화불량이라고 말하는 것도 소화의 한 과정으로 본다면) 권 수가 예전에 비해 월등히 많아진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러저러한 매체에서 쏟아내는 양에 비하면 여전히 나는 개미걸음인 것이다.       

 

2.

언제가 읽을 책을 그 언젠가 되어도 읽지 않기에 요즘에 나는 사이판 친구에게 책을 보내주는 것 외에도 중고 서점에 내다 팔기까지 하고 있다. 물론 좀 아깝긴 하지만, 더 쌓아두는 것도 뭐하고, 앞서 말한 것처럼 나도 언제부턴가 뭔가를 쌓아두는 것을 짐으로 여기기 시작하면서 우선은 내가 왜 이런 책을 읽는다고 했지? 하는

책부터 팔기로 했다. 지금까지 두 번 실행을 했는데, 비교적 집 가까운 곳에 강남 알라딘 중고서점이 있어 그곳에 갔다 팔았다. 팔아야 할 책이 많은 것을 생각하면, 이것도 어느 날 박스 하나를 잡아 한꺼번에 파는 것이 나을 것도 같은데 당분간은 그렇게 하지 않기로 했다. 그냥 운동삼아 직접 나가 팔아 보기로 한다. 

내가 들린 중고서점은 내가 알기론 같은 이름의 중고서점 중 가장 초창기에 문을 연 곳인 줄 알고 있는데 이제야 들려 볼 생각을 한 걸 보면 나도 어지간히 게으른가 보다. 꼭 팔 목적이 아니어도 오다가다 한번씩 들려 볼 수도 있는데 그것을 하지 못했다. 이 또한 핑계는 여러 가지다. 꼭 중고서점을 들리지 않더라도 읽을 거리는 넘쳐나고, 예전엔 서점에서 한 시간 정도는 서성이며 책 구경을 해도 끄덕없었지만, 지금은 30분 서 있는 것도 힘들 때가 있다. 물론 운동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한 원인도 있겠지만, 노화에 따른 것도 일부 인정은 해야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고서점을 들려야한다면 이유는 한 가지일 것이다. 저렴한 가격. 하지만 이 '저렴하다'는 것도 책을 처음 팔아 본 나로선 엄청난 상대성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우선, 들어서는 순간 참 세련되고, 모던하다는 느낌이 든다. 이름도 '중고서점'이 아닌가? 요즘에 화장실을 변소라고 부르면 눈총을 받듯, 이런 곳에서 '헌책방'이라고 하면 큰 일 날 것도 같다. 정말 점잖게 '중고서점'이라고 해야만 할 것 같다. '헌책방'은 확실히 아날로그적 용어인 것 같다. 지금도 그런 서점이 어딘가 남아 있을 것 같긴한데, 먼지 켜켜이 쌓인 책더미속에서 손님이 찾는 책을 찾아주는 주인의 목장갑 낀 손길. 조금은 바래고, 훝어보면 책의 원주인이 거 놓았을 법한 밑줄들 또는 메모의 흔적. 이런 것이 '헌책'의 의미에 더 가까워 보이는데, 어제 책 네 권의 책을 들고 두 번째로 간 중고서점에선 시쳇말로 쪽팔리는 실수를 연출하고 말았다. 네 권 중 한 권이 증정본이었던 것이다. 책을 파는 것인만큼 흠없고 깨끗한 책으로 선별해서 가져간다고 생각했는데, 그곳 직원의 예리한 눈에 딱걸리고 말았다. "증정본은 안 되시거든요."

작년인가, 재작년에 누구라고 하면 알만한 경제학자가 쓴 베스트셀러 책이었다. 이 책이 언제 어떻게 내 손에 들어 왔는지 기억에 없다. 아무리 베스트셀러여도 경제학에 관해선 아는 바도 없고, 관심도 없으니 이런 책이야 말로 그 언제가 되어도 읽지 않을 책이니 어떤 식으로든 진작에 해결했어야 했다. 그렇다고 내가 그런 '증정본'을 우격다짐으로 팔려고 가져왔겠는가? 그건 정말 실수였다. 좀 더 꼼꼼히 살펴보지 않은 나의 실수. 하긴 내 성격이 어디 가겠는가? 

하지만 묻고 싶었다. 아날로그가 종말을 고하고, 디지털 시대에 헌책은 가능한가를. 내가 정말로 먼지 켜켜이 쌓인 헌책방에 그 증정본을 가져갔더라면 과연 그 주인은 받아줬을까? 모르긴 해도 받아주지 않았을까? 아주 싼 헐값에 받아줬을지 모를 일이다(물론 그건 그 중고서점도 마찬가지였을지 모르지. 아니면 말고). 그러나 난 설혹 그렇다해도 팔지 않았을 것이다. 몇 푼을 받겠다고 그 책을 팔겠는가? 그냥 가지고 있다가 또 어느 때가 되면 사이판의 내 친구에게 보내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생각한다. 과연 아날로그 헌책방과 디지털 시대의 중고서점의 차이는 뭘까를. 

마침 그 서점엔 고맙게도 고객을 위해 앉을 수 있는 곳을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입구 가까이 몇몇의 직원들의 하나 같은 인사 소리를 듣는다. "ㅇㅇㅇ번 고객님, 계산 도와드리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알라딘 회원이십니까?" "안녕히 가십시오." 등등의 소리를. 친절해서 좋긴 하지만 뭔가 기계적이고, 저런 소리도 하루종일 해야하는 입장에선 얼마나 피곤할까를 생각해 본다.

아날로그 시대의 서점은 그렇지 않았다. 손님이 오거나 말거나, 계산해서 나갈 때까지 주인과 손님 간에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냥 무뚝뚝하게 돈만 계산하고 나가도 기분 나빠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또 오면 그때야 비로소 서로의 경계를 풀기도 한다. 내가 학창시절 어느 날 단골 서점의 주인 아저씨는 한쪽에서 낮술을 하는 것이 멋쩍었는지 책을 사러 온 나에게 "어이, 한 잔 하지."라며 농담처럼 권하기도 했다. 나는 그때 아버지로부터 주도를 배우고 있는터라 유혹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사양을 했다. 지금 같으면 감히 꿈도 꾸지 못했을 광경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뭔가의 인간다움이 느껴지기도 하지 않는가?    

 

3.

앞에서도 저렴한 가격의 상대성을 말했는데, 그렇게 깨끗한 놈으로 팔떨리에 책을 들고 와도 세 권을 팔아도 만원을 채 받을 수가 없다. 요즘 책 한 권에 만원이 넘지 않는 책이 얼마나 될까? 아무리 인터넷에서 사도 세 권의 책 값은 2만원을 훌쩍 넘을 것이다. 그것을 만원도 못 받고 팔아버렸으니 책들의 아우성을 듣는 것만 같다. 관심을 못 받아도 좋으니 그저 주인님 곁에만 있게만 해 달라고. 하지만 원주인으로부터 관심을 못 받느니 차라리 싼값이라도 새 주인을 찾아가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이다. 이렇게 유래없이 책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빛도 제대로 받아 보지 못하고 휴지조각처럼 버려지는 책이 얼마나 많은데.

중고책을 팔 때는 헐값이란 느낌이지만, 살 때는 또 이처럼 기분 좋은 일이 없다. 특히 안 사고는 못 베기는 책을 발견했을 때는 말이다. 얼마 전, 처음으로 그곳을 들렸을 때 정말 팔기만 하고 사진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오랜만에 서점이라는 곳을 들어왔으니 무슨 책이 있나 구경은 해야할 것 같았다. 내가 안 읽는 책은 남도 안 읽는 걸까? 같은 책이 몇 권씩 진열된 것도 꽤 있었다. 그중에서 유난히 나의 발을 잡아 끄는 책이 있었다. 바로 강원용 목사가 쓴 <역사의 언덕에서>다. 

 

오래 전, 그분이 <빈들에서>란 책을 쓴 줄은 알았는데 이 책은 그 책을 다시 손 본 거라고 한다.

가끔 그런 책이 있다. 도저히 못 지나가겠는 책. 안 사려고 다른 곳을 코너를 빙빙 돌다 결국 어느 틈엔가 그곳을 서성이게 만들고 결국은 사게 만드는 책. 그런 책은 독자가 그 책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책이 독자를 선택했다고 말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지금 읽고 있는 책, 앞으로 읽기를 기다리고 있는 책이 내 책상위에 그득한데 이 책을 사면 언제 또 읽게 될지 모른다. 여타의 많은 책처럼 결국 가지고 있다가 사이판 행 비행기를 타던가, 아니면 다시 중고서점에 파양되지 않을까? 처음에 나는 이 책이 두 권으로 되어 있는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총 다섯 권이고, 그나마 이 책은 알라딘에서는 품절도서로 나온다. 어쨌든 나는 아주 조금씩 읽고 있다.

 

강원용 목사는 우리나라 초기 기독교 1대 신앙인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현대사를 관통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런 분의 회고록을 읽는다는 건 확실히 남다르긴 하다. 회고록이나 평전 또는 자서전을 읽는 것이야 말로 공인된 관음증을 충족시키는 일은 아닐까?

나도 언젠가 나만의 자서전 또는 회고록을 써 볼 생각이 있는데, 그러려면 지금보다 더 치열하게 살아야겠지만, 이런 분의 회고록을 읽으면 나는 얼마나 하찮고 무모한 일을 하려고 하는 것인지 한없이 작아지는 느낌이다. 특히 글쓰기가 얼마간은 치유의 효과도 있겠지만, 잠자고 있는 기억을 끄집어 내어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도 있으니 이 책을 쓰면서 얼마나 힘들었을까를 생각해 본다. 

특히, 풍수나 명리를 따라 살았던 목사님의 아버지가 장차 이 나라에 전쟁이 있을 것을 예감하고(한국전쟁) 이남으로 가려고 하는 것을 자신의 신앙을 내세워 그런 일은 없을 거라며 북에 남도록 설득하고 자신만 남한으로 내려왔던 부분을 읽고 있노라면 나도 가슴 저려온다. 오죽 마음이 아팠을까. 오죽 자신을 원망했을까? 하지만 세상엔 그런 일이 의외로 많다. 그래서 사람은 한치 않을 모르고 사는 존재인가 보다.

그런데 이 책을 살 때, 이런 책은 누가 팔았을까를 생각해 본다. 나라면 팔지 않고 가지고 있었을 것 같다. 더구나 세월 탓인지 약간 바라기는 했지만 밑줄도 없고 비교적 상태가 좋았다. 물론 덕분에 나 같은 사람은 횡재한 느낌이었지만. 중고서점은 바로 이런 맛에 가는 것일게다. 그나저나 강원용 목사의 저 책의 나머지를 구입해야 할까? 고민된다. 하나가 좋으면 하나가 문제니 인생이란 게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4.

아, 잊은 게 있는데 첫 번째로 들렀을 때 나는 회원등급 플래티넘을 회복한 것을 알았다. 어찌된 일인지 모르겠지만, 중고서점 거래 한 번했다고 플래티넘 회원도 되고 꽤 나쁘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제 또 중고서점에 들렀다. 어제는 그냥 팔기만 하고 책은 사지는 않았다. 물론 두어 권 정도가 나의 발목을 잡았지만 나는 애써 그것들을 피해 나왔고, 그래 잘 했어라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첫날 거기 직원이 물어 봤었다. 현금으로 받겠느냐, 아니면 마일리지로 받겠느냐고. 나는 마치 당연하다는 듯 현금으로 받겠다고 했다. 얼마 되지도 않는 현금을 마일리지로 너놓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생각했지만 역시 현금으로 받았던 것이 잘했다 싶다.

어제는 거길 나오면서 몇년 전 아는 사람에게 신세를 지고 갚지 않은 일이 생각이났다. 물론 그쪽은 갚지 않아도 된다고 해서 한동안 잊고지내기도 했는데, 아무래신경이 쓰인다. 책이라도 팔아 신세 갚는 일에 보태야할 것 같다. 옛날엔 책 팔아 학비에 보태쓰곤 했는데, 책을 판다고 얼마나 보탬이 되겠느냐만 그래도 내가 신세진 일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에 의의를 둘 생각이다. 그러다 생각지도 않게 신세를 갚게되면 붕어빵 사 먹지 뭐.

 

그렇게 털어내도 별로 비워냈다는 느낌은 안 든다. 하긴 이제 시작인데 비워내면 얼마나 비워냈겠는가? 별로 표도 나질 않는다. 평생 100권의 책만 지니고 살았다는 수필가 피천득 선생이나, 최근 안 일이지만 김영하 작가도 생각하는 것 보다 적은 책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나도 최종 목표는 정말 가지고 있어야할 책 외엔 갖지 않는 것이다. 갖고 있어야겠다고 하던 책도 세월이 흐르면 별로란 생각이 드는 책도 있다. 그렇게 속아내서 내가 죽을 때까지 남아 있는 책은 몇 권이고, 어떤 책이 될까? 집에 돌아오자 난 또 생각해 본다. 다음엔 어떤 책을 내다 팔까? 이제 나에게 책은 그런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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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3-11-18 0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으로 들어온 책을
차근차근 아끼고 사랑하면
그 책이 누구 손으로 돌아가든
아름답게 읽힐 수 있으리라 느껴요.

언제나 즐거운 눈길로
책과 사람과 삶 마주하셔요~

stella.K 2013-11-18 15:49   좋아요 0 | URL
책도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애착이 가니까 그렇겠죠.
그래서 제대로 읽어 주지도 못하고 입양 기관에
맞기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어 미안하죠.
그래도 나 보다 꼭 읽어 줄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한테 가는 게 맞다고 봐요.
제가 강용원 목사님의 책을 입양해 온 것처럼.^^

페크pek0501 2013-11-21 0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는 책을 팔지 못할 것 같아요. 아까워서요.
읽지 않은 책들이 많고 어쩌면 끝까지 읽지 못할 책이 있더라도 언젠가는 읽고 말겠다는 일념으로 하나도 없애지 않을 거예요.
이 책도 좋고 저 책도 좋고... 하다 보니까 한꺼번에 병행해서 서너 권을 읽게 되어요.
아직도 읽고 싶으나 읽지 못한 책들이 제 손을 기다리고 있어요.
시간이 많아지면 하나씩 읽어 나가서 리뷰 한 편씩 써서 올리는 걸로 마무리하고 싶어요.
언젠가는 지금보다 시간이 많아지는 날이 오겠지요?

그 대신 책이 많아지는 게 부담스러워 앞으론 아주 신중하게 골라서 책을 구입할 생각입니다. ^^



stella.K 2013-11-21 12:43   좋아요 0 | URL
언니는 욕심쟁이어요!ㅎㅎ
저도 언니 같은 생각이었는데 언젠가는 하다가 안 읽고 방치한 책이
10년 가까이 된 책도 읽더라구요.
이런 책은 아끼고 사랑해 줄 새 주인을 만나는 것이 낫겠다 싶더군요.
요즘엔 글을 가볍게 쓰는 사람들이 많이 생긴 것 같더라구요.
그래서 정말 책 고르는데 신중해져요.
저는 고전을 많이 못 읽었는데 그런 책은 정말 한번 사면
쉽게 못 처분할테니 그렇게 되면 저도 예전처럼 책 함부로 못 파는
독자가 될 거예요.ㅋ

비로그인 2014-05-21 0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좋은 글이 많네요. 책에 관한 이야기, 의료 이야기 등등. 책. 약간의 지적 허영이 있어야 모을 수 있는 물건이라는 글에 공감합니다...

stella.K 2014-05-21 12:29   좋아요 0 | URL
와우, 저의 오래된 글에 댓글을 달아 주시다니...
제가 그런 말을 썼네요. ㅎㅎ
다시 생각나게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푸른기침 2014-06-27 0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격하게 공감합니다. ^^ 뜬금없지만 제 꿈은 모든 책을 버리고 딱 한권만 남기는 겁니다.
저도 모르지만 그 책이 무엇이 될지는 참 궁금합니다.

stella.K 2014-06-27 12:14   좋아요 0 | URL
와우, 이런 오래된 글을 보시다닛!
저는 뭐 성경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좋아서라기 보다(성경은 항상 어렵더군요)
버리면 왠지 불경스러워지는 것 같아서...ㅠ
 

 

 오전에 외출 준비를 하면서 짬짬히 K1 TV에서 하는 <TV 책을 보다>에 강신주 씨가 그 이름도 유명한 마르셀 푸르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보는 법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TV, 책을 보다>는 K TV가 지난 주 가을 개편을 하면서 새롭게 선보인 프론데, 이제 2주차라 뭐라고 평할 수는 없지만 나름 나쁘지 않은 프로 같다(하긴 나쁠 리가 뭐 있나). 단지 좀 아쉬운 것이 있다면 40분 정도 밖엔 하지 않는데 좀 짧지 않나 싶다.

이 프로는, 어떤 명사가 어떤 책을 자기 생의 책으로 소개하고 있나가 관심 포인트 같은데, 난 그저 강신주란 그 이름이 좋아 봤을 뿐인데 역시 그는 사람을 실망시키지 않는다. 그런데 지난 주와 달리 이 짧은 프로를 온전히 앉아 볼 수 없는 없었다. 왜냐하면 화장실을 다녀와야 했고, 음소거를 하고 오늘 같이 만나기로 한 지인과 전화 통화도 해야했으니까. 그렇게 짬짬히 보긴 했어도 강신주는 이 책에 대한 나의 관심을 이끌기에 충분했던 것 같다.    

무엇보다 그는 이 책을 액면 그대로 시간으로만 보지 말고 '사랑'을 대입시켜 보라고 한다. 그러면 이 책을 훨씬 다르게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사랑을 뒤돌아 보게 되는데, 이제까지의 책들이 사랑에 대해 말은 하지만 이렇게 사랑을 뒤돌아 보는 글을 쓰는데는 실패했다나? 

특히 이 책은 어려운 책으로 유명한데, 그도 그럴 것이 그동안 소설은 몇 번의 위기를 거쳤다고 했다. 영화만 나오면 소설은 보지 않을 것이라고 했고 실제로 많은 사람이 소설 보다 영화를 많이 보긴 했다. 하지만 영화는 표피적이지만 소설은 끊임없이 상상력을 자극하며 다층적으로 보여준다. 그처럼 프루스트의 이 책은 영화와 다른 소설이 아니면 보여줄 수 없는 오만함(이건 내 표현이긴 하다)을 지녔다는 것이다.

이 책이 어렵긴 하지만, 어느만큼 인내하고 읽다보면 이 책이 지니고 있는 리듬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며, 이 책을 쉽게 읽을 수 있는 방법은 현재로서는 없다고 강신주는 단언한다. 대신 책을 필사를 해 보란다. 다하진 말고(할 수도 없겠지만) 다섯 장 정도 필사를 해 보면 이 책이 어떤 책인지 알 수 있다고 한다. 

과연 그런 방법이 있었다니 나도 당장 해 보고 싶어졌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현재 나는 이 책을 가지고 있지 않다. 도전이 두려워 아예 사지 않은 것이다. 무엇보다 강신주는 이 책을 알게되면 다른 소설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 거라고 했다. 

어쨌거나 역시 책 읽는 것은 즐겁지마는 않다. 어느만큼의 수고로움이 있어야 한다.   

같이 나온 어느 패널은 프루스트를 일컬어 천재성을 지닌 오타쿠 같다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9살 때 얻은 천식으로 말을 하면 기침으로 힘들어 했을 테니 그럴 것이라나? 과연 그럴 듯한 해석이다.

 

이런 책이 나온 줄도 몰랐다. 지금으로부터 딱 100년 전 유럽의 문화사를 관통하고 있다. 알았으면 읽었을지도 모르겠다. 2013년을 두 달 남여놓고 과연 이 해가 가기 전에 읽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래도 보관함에 담아 놓았다. 언제고 읽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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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기침 2014-06-28 1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제가 모르는 사이 출판사가 민음사로 바뀌었군요. 아니면 다른 분의 번역인지도..
예전 국일미디어에서 나온 11권짜리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의 장정이 더 제 스타일이라 민음사판 장정이 조금 거시기해 보입니다. 프랑스 문학 엔솔러지 2권의 표지가 프루스트였건걸로 기억합니다. 프랑스에선 무진장 존경하는 작가구요.
훌러덩 훌러덩 시간 여행중입니다. 어디선가 마들렌 내음이...

그나저나 열화당에서 발간하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만화는 완간이 되었는지 궁금하네요..

stella.K 2014-06-28 16:33   좋아요 0 | URL
잃어버린 시간은 자신이 없어 아직 못 읽고 있습니다.
근데 저 책표지도 맘에 들긴 하더라구요.
마들렌을 지난 봄에 먹어 봤어요. 맛있더군요.
그건 홍차랑 먹어야 한다는데 홍차는 못 마셨구요.ㅋㅋ
 

 말하자면 나에겐 이 책이 그런 책이다.

이 책은 소생의학에 관한 책이다. 

어차피 의학이란 게  사람의 병을 치료하고, 어떻게 하면 건강하게 오래 살까를 연구하며, 더불어 생명을 연장시키는 것에 그 의미를 두고 있는만큼 소생의학은 나름 중요한 의학의 한 분야인 것만큼은 사실일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소생술이라면 심폐소생술 이 대표적인 정도가 아닐까? 하지만 이 책을 읽어보면, 사람을 살리는 기술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많이 발달되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재밌는 건, 지금까지 죽음을 정의할 때 심장이 멎으면 사망 선언을 하곤 하는데, 사실은 심장이 멎고도 사람은 얼마간을 더 산다고 한다(솔직히 난 이 부분에서 조금은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그렇게 빨리 내려진 사망선언 때문에 혹시 육체로 돌아오고 싶은 영혼이 못 돌아오고 결국 정말 구천을 떠도는 것은 아닐까? 또한 그렇다면 사망선언을 한 의사는 본의 아니게 간접 살인을 하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상상을 해 보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그런 일은 아직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머지않아 실제로 사망한 지 여러 시간이 지난 뒤에도 죽음의 마수에서 구해낼 때가 올지도 모른다고 농담 반, 진담 반(적어도 나에겐 그렇게 받아들여 진다)하는 말을 한다. 그러면 정말 영화 같은 일이 실제로 일어날지도 모를 일이다.

실제로 난 얼마 전, 암으로  세상을 떠난 오빠를 생각하면서, 그를 화장했던 것이 잘못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물론 그런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혹시 오빠는 죽어가는 마지막 순간까지 아니 그의 육체가 화장할 때까지도 세상으로 돌아오고 싶어하지는 않았을까? 그런 걸 단순히 의학적으로 사망했다는 이유만으로 사후처리를 너무 빨리 해 다시 삶으로 귀환하고 싶어도 할 수 없게 만든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곤 했다. 

물론 이 생각은 오빠가 돌아간 지 얼마 되지 않고, 아직도 그 삶의 흔적이 기시감처럼 남아 있어 그런 상상도 해 보게 되는 것일테지만, 저자의 저 말은 이제 곧 나의 이런 생각이 전혀 근거없는 생각마는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 줄 것만 같다. 그렇다면 정말 오빠에게 미안해 해야하는 때가 오는 줄도 모르겠다.     

 

사실 고백하는 것은, 적지않은 세월 책을 읽었으니, 그 책이 객관적으로 좋고 나쁘고를 떠나, 적어도 내가 읽을만한 책인가 아닌가를 하늠하는데 나름 선수가 되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읽으면서, 이 책은 나의 기대를 조금은 빗나갔던 책란 걸 알았다. 

나는 이 책이 말 그대도 '죽음' 즉 임사체험(저자는 이 용어도 그렇게 적절한 용어는 아니라고 하지만)에 관한 책인 줄 알았다(그리고 이 책에서 실제로 이 부분을 다루기는 했다. 하지만 극히 일부고 그것도 내가 알고 있는 임사체험에 관한 이야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아니 더 정확히는 내가 갑자기 죽음에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요즘 하도 웰빙, 웰빙 하길래 웰빙 보다  중요한 건 '웰다잉'이라 생각해 이 책이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대를 잇는 뭐 그런 책은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왜 사람들은 생명은 그렇게 중요하거나 또는 그 반대로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생각하면서, '죽음'에 대해선 어쩌면 그리도 무지하거나, 무조건 두려워 하는 것인지? 난 이것에 대한 정의가 어느 때 보다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무조건 남의 죽음에 대해 연민하며, 나의 죽음에 대해선 두려워 하는 그런 태도를 벗어나 좀 더 성숙하게 죽음을 생각하고 맞는 것 이것이 결국 진정한 삶이요, 죽음은 아닐까?

 저자도 '죽음의 마수'란 표현을 썼지만 흔히 죽음을 일컬어 '마수'란 표현도 '임사체험'만큼이나 적절한 표현일까? 우리는 언제까지 죽음을 그런 식으로 이해하고, 방치할 것인가? 그렇다면 누구도 죽음을 피해가는 사람은 없고, 나도 언젠가 죽을 텐데 너무 무지하고 무책임한 것은 아닐까? 그래서 이 책이 그런 나의 생각에 좀 더 도전을 주는 그런 책인 줄만 알았다.     

 

그렇다면 누가 잘못했을까? 멋 모르고 제목에서 '죽음'이란 단어 하나를보고 읽기를 선택한 나의 성급함이 문제였을까? 제목에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으니 다소 생소하고 또 어찌보면 고루하더라도 '소생의학의 현주소를 가다' 뭐 그런 제목이었다면 헷갈리지 않았을까(하긴, 그렇게 전문적인 제목을 달았다면 대중의 외면을 받았을 것이다. 아, 제목 짓는 것은 역시 어렵다.ㅠ)?

아, 물론 그렇다고 이 책이 전혀 가치 없는 책이라는 말은 아니다. 소생의학이란 다소 생소한 분야를 나름 평이한 문체를 써서 일반인도 이해하기 쉽게 쓴 공로는 높이 인정할만 하다.

그런데 소생에 대해 과연 일반인도 알아야 할 필요가 있을까? 물론 생각하기에 따라선 흥미로운 주제고, 분야인 것만큼은 사실이다. 하지만, 누가 걱정한다고 한 키나 크게 할 수 없다는 성경 말씀처럼, 나는 소생의학이 발달했다고 해서 그 사람의 생명이 더 연장됐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주어진 날 수를 사는 것뿐이라는 다소 운명론자적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저 현대의 소생술에 의해 살아났다면 그건 그가 그것이 발달되지 않은 시대에 태어나지 않은 것뿐이다.

진시황이 죽지 않으려고 불로초를 구했지만 결국 그는 생각 보다 그리 오래 살지도 못하지 않는가? 그건 김일성도 그랬고, 김정일도 그랬다. 

소생술이 발달이 됐다고 어떤 사람은 좋아라 하지만, 한쪽에서는 일부러 존엄하게 죽을 것을 생각해서 일부러 치료를 거부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사실 이 책은 소생의학이라고 해서 꼭 의학에 관한 분야만을 소개하려고 하지 않았다. 철학적이고, 윤리적인 접근까지도 포함하고 있어 (난 좀 버겁긴 했지만) 나름 생명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 인상적여 보인다. 한번쯤 읽어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아, 그나저나 어떻게 하면 책 선택에 대한 실패율을 줄여보나?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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