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의 감각 - 21세기 지성인들을 위한 영어 글쓰기의 정석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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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 처음으로 읽어보는 스티븐 핑커의 책이다.

그가 우리나라에 알려지기는 20년쯤 되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동안 그의 책들은 특유의 벽돌감 때문에 감히 읽어 볼 엄두를 못 내고 있었다. 이 책 역시 선뜻 읽을 자신은 없었지만 글쓰기에 관한 책이라 용기를 냈다. 사실 글쓰기에 관한 책은 여러 많은 사람들이 쓰긴 한다. 그건 주로 자기 계발 내지는 작가들 그중에서도 소설가들이 많이 써 왔다. 이 책도 얼핏 부제를 보면 어느 영문학 내지는 영미권의 언어학자가 쓴 책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이 책은 독특하게도 심리학자가 썼다. 또 그래서 그런지 접근이 기존의 그것과는 좀 다른 느낌이 들기도 한다. (앞으로 또 어느 분야의 전문가들이 글을 쓰겠다고 나올지 궁금하다.)

저자는 단순히 글쓰기에 관한 책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감각에 관해 다루고 있다. 특별히 저자는 글을 쓰는 사람과 그것을 읽는 사람과의 차이를 지적한다. 나도 평소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느끼는 것인데 그것을 단순히 오독도 독서의 한 형태라며 방관해도 좋을까에 대해 이 책은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저자는 유독 예문을 많이 들어 설명하고 있다. 예를 들면 이렇게 쓸 수도 있는 글을 '감각'을 살려 이렇게 쓰면 더 좋지 않냐고 독자를 설득하고 있다. 글을 쓰는 입장이라면 반박을 할 수가 없다(무엇보다 저자가 누구인가?). 그러면서 난 지금까지 글쓰기를 어떻게 쓰고 생각해 왔나 너무 쉽게 생각해 온 것은 아닌가 반성하게 된다.

지금까지 글쓰기 강사들은 하나같이 쉽게 쓰라고 강조하다 못해 거의 강요하다시피 한다. 물론 그들의 그런 강조는 틀린 것은 아니다. 글을 써 본 사람은 알겠지만 차라리 어렵게 쓰는 게 낫지 쉽게 쓰기는 오리려 어렵다. 하지만 그래서 그런지 어떤 글은 새털같이 너무 가볍다. 즉 글쓴이의 개성이나 강조점이 드러나지 않는 후유증을 겪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어쨌든 그렇게 가르쳐 온 사람들이 이 책을 읽으면 과연 뭐라고 할지 모르겠다.

저자는 특별히 글을 쓰는 사람들은 은연중 자신이 쓰는 글을 독자도 이해할 거라고 생각한단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수 있다. 그러므로 작가는 좀 더 자기가 쓰는 글에 친절해질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쉬운 것과 친절한 건 같은 것 같지만 다르다. 같은 말이라도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읽고 있으면 내가 그동안 얼마나 내 글에 책임을 지며 글을 써 왔을까 반성하게 된다. 나도 이런 리뷰를 비롯해 이런저런 글을 자의든 타의든 쓰게 되는데 적어도 독자를 외롭게 하는 작가는 되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이 책은 번역가들에게 많이 추천이 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과연 그럴 만도 하겠다 싶다. 물론 언어는 다양하지만 아직도 영어를 쓰는 작가들의 작품이 압도적으로 많이 번역되는 것도 있지만, 특별히 번역가들에겐 남다른 언어 감각이 요구되기도 하니 말이다. 무엇보다 가끔 어떤 책에 대해 리뷰를 써 놓은 걸 보면 거의 질타에 가까울 정도로 번역에 대한 불만을 토로한 글을 읽기도 한다. 사실 너무 오래된 번역본인 경우 예전엔 이렇게 번역을 했구나 할 수도 있겠지만 솔직히 언어 감각이 너무 떨어지는 책을 보면 읽기가 싫어지는 건 사실이다. 물론 번역가는 번역가대로 고민이 있겠지만, 과부 사정 과부가 안다고 같은 동종업계의 사람끼리는 몰라도 독자에게 이해받기를 바라선 안 될 것이다.

이 책은 다소 호불호가 있을 것 같긴 하다. 단순히 좋다 나쁘다의 기준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에겐 더없이 좋은 책이 될 수도 있지만 솔직히 나는 좀 버거운 책이었다. (역시 스티븐 핑거는 나에겐 쉬운 사람은 아니다.) 책이 이렇게 어려운데 기분이 꿀꿀한 건지 글쓰기에 대해 만만하게 생각했던 나 자신이 좀 부끄럽게도 느껴진다. 하다못해 글쓰기에 관심이 많다는 것도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우리 말도 제대로 구사하지도 못하면서 하물며 영어를...? 하지만 그러다가도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말하기와 글쓰기는 평생 가는 것. 우리는 학교만 졸업하면 '읽기와 쓰기'도 졸업하는 사람이 많은데 사실은 그때부터가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때가 아닐까. 그것을 포기한다는 건 인간이길 포기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요즘은 SNS의 발달로 누구든지 또 언제든지 글을 쓸 수 있다. 하지만 홍수 중 마실 물이 없다고 과연 제대로 된 소통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 책을 통해서도 도전받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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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르바나 2024-10-01 01: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글쓰기 감각에 대한 어렵고 두꺼운 책을 읽으셨네요.
글쓰기가 작가들만의 전유물이던 시대에서
블로그, SNS의 개인 글쓰기 시대로 변화하면서
확실히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는 세상으로 바뀌었지만
아무나 잘 쓸 수 있는가 하는 관점에서 보면
아직도 글이 쓴다는 것에 어려움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스티븐 핑커라는 작가 이름을 스티븐 핑거라고 반복해서 쓰셨는데
영어 이름이 Steven Pinker면 스티븐 핑커가 맞지 않나요.
영어 발음이라 저도 자신이 없지만...

stella.K 2024-10-01 15:01   좋아요 1 | URL
ㅎㅎ 아니 언제 스티븐 핑거가 핑커로 개명을 했을까요?
저는 핑거가 더 좋은데. 성을 고치는 일은 없겠죠?ㅋㅋ
니르바나님 말씀 안하셨으면 큰 일 날뻔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솔직히 이 책 좀 어렵더군요. 전 점점 머리가 굳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가끔은 어렵고 힘든 책에도 도전하고 그래야할 것 같은데 역시 쉽지는 않네요.

니르바나 2024-10-01 16:15   좋아요 2 | URL
고치시는 김에 태그도 고치시죠. ㅎㅎ

희선 2024-10-01 03: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스티븐 핑커 잘 모르지만, 찾아보니 제목 아는 거 있군요 책 제목만 기억하고 작가 이름은 기억하지 못했네요 그 사람이 글쓰기 책을 썼군요 글을 쓰다 보면 자기만 알게 쓰기도 하죠 그런 건 아무도 모를 텐데... 어떤 건 일부러 그러기도 하고, 어떤 건 저도 모르게 하는 거겠지요

글은 누구나 써도 잘 쓰는 건 쉽지 않은 듯합니다


희선

stella.K 2024-10-01 15:00   좋아요 2 | URL
오래 전에 심리학에 관심이 있었는데 지금도 관심있으면
그동안 한 권쯤은 읽었을지 모르겠어요. 근데 역시 저는
심리학은 이제 좀 별로더군요. 저는 글쓰기는 작가들이 쓴 게
관심이 가요. 그거나 기회있는대로 읽야겠어요.
글쓰기는 평생가는 거죠.

cyrus 2024-10-01 21: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가 좋아하는 번역가 김명남 님의 책은 사서 보는 편인데, 제가 영어로 글을 쓸 일이 없어서 안 샀어요.. ㅎㅎㅎㅎ

stella.K 2024-10-02 10:10   좋아요 0 | URL
ㅎㅎㅎ 이거 농담 맞지? 근데 김명남 씨가 알아주는 번역간가 보다. 네가 좋아할 정도면...!

서곡 2024-10-03 12: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월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지금 날씨 참 좋습니다!

stella.K 2024-10-03 14:37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날씨 참 좋죠? 10월이 없었으면 어쩔뻔했나 싶을 정도에요. 서곡님도 시월 잘 보내십시오. 고맙습니다.^^

yamoo 2024-10-06 12: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핑커의 책이네요! 음...핑커가 글쓰기 책도 냈군요! 핑커 첫 책으로 글쓰기 책이라니...ㅎㅎ 뭐, 입문으로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stella.K 2024-10-06 21:34   좋아요 0 | URL
ㅎㅎ 아마도 핑커의 이 책은 저에겐 첫 책이자 마지막 책이 될 것 같아요.
물론 그의 저서들이 흥미롭긴하지만 넘 두껍고 읽기가 쉽지 않아서...ㅠㅠ

페크pek0501 2024-10-06 13: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많이 들어본 저자 이름이라 제가 읽은 책이 있는 것 같아서 ‘나의 계정‘에서 검색해 보니 스티븐 핑커의 <마음의 과학>이란 책을 읽었더군요. 글쓰기 책을 저도 (읽지 않은 것) 몇 권 가지고 있는데 좀처럼 손이 가질 않네요. 천천히 음미하며 읽으면 좋을 텐데 급히 읽어야 할 책이 많은지라 차례가 오지 않아요. 언제나 부족한 건 시간...^^

stella.K 2024-10-06 21:39   좋아요 0 | URL
그렇죠? 언제부턴가 글쓰기 책이 읽긴 읽어야겠는데 잘 안 읽게되요.
최근 우연찮게 청소년 소설을 하나 읽었는데 이게 딱 내 수준이었구나
새롭게 깨닫게 되었죠. 아, 이제 어려운 책은 정말 못 읽겠어요.ㅠ

2024-10-09 12: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10-09 15: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10-11 10: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10-11 20: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희선 2024-10-11 02: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stella.K 님 축하합니다 이달 당선작... 어제 노벨문학상 한강 작가가 받았는데, 그런 역사에 남을 날과 같은 날 됐네요 지금은 좀 괜찮은데 아까는 좀 느리더군요 그게 다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아서였나 봅니다 노벨문학상 발표됐을 때는 더했다고 하더군요


희선

stella.K 2024-10-11 20:41   좋아요 1 | URL
아, 고맙습니다. 어제 마비가 됐었군요.
저는 어제 인터넷 안 들어가고 잠깐 스마트폰 잠깐 들어갔나 해서
잘 몰랐어요. 같진 않지만 음악계 임윤찬, 문학에 한강까지 우리나라에
겹경사입니다. 그죠?^^

니르바나 2024-10-12 17: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싸! 이달의 당선작 패치가 붙어있네요.
이게 언제 붙었나 니르바나는 지금 보았습니다.
스텔라님, 축하드립니다.^^

stella.K 2024-10-12 18:11   좋아요 1 | URL
ㅎㅎ 고맙습니다. 사실 전 이글로 될 줄 몰랐습니다. 오히려 된다면 이거 전에 쓴 나의 두번째 이름은 연아입니다가 될 줄 알았거든요. ㅎ
주말 잘 보내십시오.^^

젤소민아 2024-10-16 20: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직, 축하드립니다. 저도 이 책 주문해서 오고 있습니다. 기대만땅~~

stella.K 2024-10-17 10:59   좋아요 0 | URL
아고, 고맙습니다. 잘 지내시죠? 즐독하시기 바랍니다. ^^

thkang1001 2024-10-18 09: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stella.K님! 이달의 당선작 선정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stella.K 2024-10-18 21:54   좋아요 0 | URL
오, 고맙습니다. 어느새 밤이네요. 편히 쉬시기 바랍니다.^^

thkang1001 2024-10-20 13: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Stella. K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고양이라디오 2024-10-25 10: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쓰기에 관한 책을 한 권 읽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스티븐 핑커가 쓴 글쓰기 책이 있었군요! 근데 이 책도 600페이지나 되네요. 스티븐 핑커는 왜케 벽돌책을 좋아하는지...

stella.K 2024-10-25 16:02   좋아요 1 | URL
ㅎㅎ 그러게요. 벽돌책이어서 나와는 인연이 없겠구나 아예 쳐다보지도 않고 살았는데 일케 글쓰기에 관한 책을 낼 줄은 몰랐습니다. 저는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습니다만 고라님은 이책 좋아하실 것 같아요. 언제고 기회시면 한 번 읽어보세요.^^

고양이라디오 2024-10-25 17:44   좋아요 1 | URL
스티븐 핑커 책 한 번도 안봤는데 이 책으로 시작해야겠군요!

Stella.k 님 믿고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ㅎ

2024-11-08 18: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11-08 20: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의 두 번째 이름은 연아입니다 - 가난하거나, 아프거나, 술 취했거나, 미치지 않으면 나를 만날 수 없다
신아현 지음 / 데이원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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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이 책을 읽을 생각이 별로 없었다. 관심 밖 분야고 언제나 그렇듯 세상은 넓고 읽을 책은 많은데 굳이 이 책까지...?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니 내가 우리 사회에 대해 알면 얼마나 알까 싶은 생각이 든 것이다. 내가 안고,이고 있는 세상이 전부인 것 같지만 실상 내가 아는 세상은 손바닥 하나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이 책을 읽지 않는다고 해서 세상 살아가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겠지만 내가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가급적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다.

우선 저자의 이력이 특이하다. 저자는 원래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했다고 한다. 그런데 막상 학교를 다니고 보니 화학이 자신의 적성과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휴학을 했고 넘쳐나는 시간 뭘 하며 지내야 하나 하던 차에 우연히 어느 복지센터에서 자원봉사자를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고 무턱대고 지원을 했다고 한다. 그 일은 취약계층의 아이들을 돌보는 일. 결국 그것이 계기가 되어 나중에 사회복지학을 공부해 사회 복지사가 되고, 훗날 사회복지 공무원까지 하게 되면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일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고스란히 담았다.

책을 읽게 되면 몇 가지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우선 사회복지사와 사회복지 공무원이 다르다는 것이다. 물론 그게 놀라울 정도는 아니지만 나는 지금까지 이게 따로 존재할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하지만 둘 다는 그야말로 3D 업종 중 하나다. 가끔은 이해가 안 될 때가 있다. 아무리 이기주의니 개인주의니 해도 어떤 사람은 기꺼이 이타적인 일에 자신을 희생하거니 그것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소방사나 경찰, 산악 구조대같이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일하는 사람들. 좀 더 편하고 안전한 직업을 구할 수도 있을 텐데 왜 그것을 마다하고 기꺼이 그런 일을 택하는지 알 수가 없다. 사회복지 공무원도 그렇다. 물론 위에서 말한 직업보다는 안전할지 모르지만 이름 없고 빛도 없이 국민의 욕받이를 자처한다.

그렇지 않아도 책에서 저자는 김구도 호가 있고, 안창호와 김홍도도 호가 있는데 자신도 호가 있단다. '연아'란다. 딱 들으면 피겨스케이팅 김연아 선수가 생각이 나지만 사실은 그렇게 고상한 건 아니다. 연아는 '년아'의 다른 발음일 뿐이다. 이 책을 읽기 전 제목에서 살짝 그런 의심은 해 봤는데 막상 예상을 적중하고 보니 김연아 선수가 알면 울고 가겠다 싶다.

정말로 놀라운 건, (물론 모든 사람들이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사람들이 참 무례하다는 거다. 그리고 그 무례함은 가난하다고 해서 예외가 아니고 어찌 보면 악마적이란 느낌도 든다. 가난이 무슨 벼슬이 아닐 텐데 왜 나라 일을 하는 사람에게 이토록 무례한지 알 수가 없다. 어떤 사람은 스토커처럼 집요하게 괴롭히고, 어떤 사람은 문신한 몸을 일부러 드러내고 소동을 피우기도 하며, 어떤 사람은 너무 진상이어서 안 마주치려고 동료 직원과 휴대폰 문자 교신을 하며 피해 다니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정말 내가 이러려고 공무원이 된 걸까 자괴감이 들기도 하겠다 싶다. 솔직히 내가 내 공부 해서 시험 보고 공무원 됐는데 거기에 보태준 것도 없으면서 너는 나랏밥 먹지 않냐며 지원금 좀 더 도(줘) 하는데 기가 차다.

어쨌든 그렇게 별짓을 다해 돈을 챙긴다고 치자. 과연 그 사람이 자기를 구제하는데 그 돈을 쓸까? 짐작하겠지만 그렇지 않다. 술 먹고 도박하는데 아낌없이 투자한다. 그러다 돈 떨어지면 또 무례하게 협박하고. 과연 그런 사람을 도와준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읽는 나도 화가 나고 내가 낸 피 같은 세금 그런 사람 쓰라고 내는 거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다. 읽다 보면 그들에게 뭔가의 열패감 내지는 알 수 없는 분노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건 여담이지만, 정부가 마음에 안 들면 이렇게 나라 일을 하는 공무원들에게 더 화를 내는 것 같다. 정부에 직접 할 수 없으니 그런 식으로 애매한 사람들에게 화풀이를 하는 것 아닌가 싶은 것이다. 아무튼 거의 매일 이런 일을 당한다면 나라면 뒷목 잡고 쓰러져도 여러 번 쓰러졌을 것 같다.

하지만 읽다 보면 사람에 대한 예의 보다 먼저 요구되는 건 사람에 대한 이해는 아닐까 싶기도 하다. 또한 그들이 그렇게 할 수 있는 것도 나라가 있기 때문은 아닐까 싶기도 하고. 물론 그들을 옹호할 생각은 없지만 나라가 국민을 포기하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옛말에 가난은 나라도 구제하지 못한다는 말이 있는데 지금은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최소한 굶어죽는 사람은 없지 않은가. 어쩌면 그들이 그러는 건 정말 가난해서 그럴까 싶기도 하다. 어찌어찌하다 불행한 삶을 살고 나락으로 떨어져 어떻게 해야 나를 구할 수 있는 건지 알지 못해서 그런 방법으로 표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은 것이다.

어쨌든 밥을 먹는 건 중요한 일이다. 그들의 허기를 채워줘야 그다음도 기대해 볼 수가 있다. 저자의 주된 업무는 차상위계층의 사람들에게 예산을 분배하고 집행하는 일이다. 그 일이 가난한 이들의 욕받이가 되는 일임을 저자는 알았을까? 알았다면 결코 못했을 것이다. 도대체 인간이 하는 일중 그 끝을 알고 하는 일이 얼마나 있겠는가. 역설적이게도 모르니까 갈 수 있는 게 인생이고 직업인 것 같다. 어떤 역술인이 저자에게 그랬다지. 재물, 관운, 남편, 자식 다 X라고. X라니 받아들이는 입장에선 다 없다는 말로 들릴 수도 있겠다. 그런데 그런 게 아니라 그런 것에 다 관심이 없고, 혼자 살아도 10인분의 밥을 해 놓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불러 모아 먹이는 것을 더 좋아하는 사주란다. 좀 희한한 사주다. 어쨌든 그런 사주라면 무료 급식소를 차릴 팔자인 것 같은데 지금 저자가 하는 일도 어찌 보면 얼추 맞는다 싶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공무원이 옛날 같지 않게 비인기 직종이 되어가고 있다고 한다. 어려운 시험 통과하고 막상 공무원이 되어 보니 일은 일대로 많고 사람들에게 욕은 욕대로 먹고, 나도 알고 보면 어느 집 귀한 자식인데 이런 대접받아 가면서 일할 필요가 있나 싶어 떠난단다. 맞다. 세상에 어떤 직업도 자신보다 중하지 않다. 세상에 어떤 직업이 나를 귀하게 여겨주지 않는다면 그만둬야 한다. 하지만 그러기 전에 자신이 그 직업을 쉽게 본 것은 아닌지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어떤 직업이든 자신이 그 직업을 중하게 여기면 그 일이 나를 가치있게 만든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 일 역시 그를 가치 없게 만들 것이다.

우리나라도 1인 가구가 부쩍 많이 들었다. 그에 따라 고독사의 비율도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아무도 돌보지 않는 죽음.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또한 은둔형 외톨이도 늘어나고 있다. 그런 사람들을 양지로 나오도록 하는 게 저자가 하는 일이기도 하다. 앞으로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이 점점 더 필요한 세상이 올 것이다. 아무리 1인 가구가 늘어나고 은둔형 외톨이가 많아진다고 해도 사람은 절대로 혼자 살 수 없다. 언젠간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안 될 때가 올지 모른다. 아니할 말로 내가 죽었을 때 나의 죽음을 처리해 줄 사람이 이들 일 수도 있다. 그런 걸 생각하면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된다.

읽다 보면 같이 분노하기 보다 저자는 정말 자신의 직업을 좋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사람은 절대로 쉽게 직업을 바꾸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꼭 돈 많이 버는 직업에 목숨을 걸기도 하는데 세상엔 이런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아줬으며 좋겠다. 모르긴 해도 저자는 지금의 일을 정말 좋아하는 것 같다. 그런데 그런 저자에게 이름을 불러주지 못할망정 연(년)아라니.

저자가 글을 정말 잘 쓴다. 그렇지 않아도 직장 선배가 글을 써 보라고 해서 쓰는 거란다. 웬만치 쓰는 걸 가지고 그렇게 권했겠나 싶다. 읽기를 잘했다 싶다. 저자가 힘들 것을 생각하면 나도 그만두라고 말하고 싶었다. 앞서도 썼지만 아무리 훌륭한 직업이라도 자신보다 귀하지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더 수고해 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아, 그리고 생각난 김에 연에 대한 괜찮은 한자가 뭐가 있을까를 찾아봤다. 대충 잇닿을 聯, 연결할 連, 사모할 戀, 인연 緣 등이 나온다. 이왕 연 자 들어가는 호라면 권할만하지 않을까. 부디 저자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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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르바나 2024-09-20 14: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추석 연휴에도 열심히 리뷰를 작성해서 서재에 올리는 스텔라님,
안녕하세요.^^
추석 명절 잘 지내셨죠. 송편도 맛있게 드셨구요.
우리가 아는 사회복지 공무원은 행정복지센터에 근무하는 9급 일반직 공무원으로
관내 수급자 포함 어렵게 사는 주민들의 돌봄, 관리를 맡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인간에 대한 예의가 없는 인간들이 이 세상에는 너무나 많다는 것입니다.
살림살이가 어렵다고 다 그런 것도 아니겠지만 이런 경우가 흔합니다.
과중한 업무에 과로사나 자살하는 사회복지 공무원들을 보면 정말로 안타깝습니다.
어렵게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서 뜻있는 일을 수행하는 결과가 참혹하니까요.
다 같이 잘 살기란 참 어려운가봐요.

stella.K 2024-09-20 20:27   좋아요 1 | URL
진작에 올렸어야 했는데 이것도 좀 늦은 거랍니다.
(협찬 받았거든요. ㅎㅎ)
맞아요. 이런 세계도 있구나 다시 한 번 깨달았습니다.

사실 송편은 언제 먹었는지 이젠 기억에도 없네요.
손으로 만든 송편이 맞있는데 집에서 만들어 먹기는 어렵고
마트에서 파는 건 맛이없고. 그래도 편안히 잘 보낸 것 같습니다.
니르바니님도 추석 잘 지내셨죠?
챙겨주셔서 고맙습니다.^^

페크pek0501 2024-09-20 16: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회복지 일을 하는 저자의 책이라면 풍성한 이야기가 담겼겠군요. 제가 참석하는 영화 모임에 그런 일을 하는 분이 있는데 그분이 실제 경험한 것을 듣고 깜짝 놀란 적이 있어요. 인간이 그렇게까지 양심이 없고 염치가 없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약자를 위한 사회제도를 교묘하게 이용하는 이들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돈 앞에서 인간의 도리를 기대해선 안 된다는 것이 씁쓸합니다.^^

stella.K 2024-09-20 20:34   좋아요 1 | URL
그래서 가끔 사회파 드라마들 이런데서 아이디어와 소재를 얻겠구나
싶더군요. 문신한 남자가 깽판치는 거 어느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잖아요.
그게 아주 근거없는 얘기는 아니겠더라구요.
저도 읽으면서 놀랍기도하고 찡하기도하고 그랬습니다.
리뷰에 미쳐 다 못 썼는데 도움이 때로 독이 되는 케이스도 있더라구요.
저자가 초기 때 의지가 너무 앞서서.
세상엔 정말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일이 너무 많은 것 같아요. ㅠ
 
그 작가, 그 공간 - 창작의 비밀을 간직한 장소 28
최재봉 지음 / 한겨레출판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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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신문사 문학부 기자들이 책을 내는 일은 드물지 않게 됐다. 또 그들이 내는 책들은 글쓰기나 독서 에세이인 경우가 많은데 나는 그들의 건조한 문체를 좋아한다. 저자 역시 문학부 기자인데 모르긴 해도 기자들 중 가장 많은 책을 내고 주로 문학의 중심부라 할 수 있는 작가를 많이 다룬다. 그는 작가를 찾아 나선다. 작가에 관한 책들이나 기존의 문서들, 한 간에 떠도는 잡설 등을 짜깁기할 수도 있겠지만 그는 그러지 않는다. 그래서 저자의 글은 팔딱팔딱 살아있다.


관건은 취재력 일 것이다. 그러려면 사전 준비가 만만치 않을 것이다. 게다가 작가가 어디 서울 한복판에만 모여 사는 것도 아니고 여기저기 흩어져 있으니 찾아가는 길도 쉽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처음엔 기사를 위해 그렇게 하고 기념 삼아 한두 권의 책으로 엮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일을 꽤 오랫동안 해 왔던 것으로 알고 있다. 게다가 번역서도 있다. 나는 언젠가 앙드레 버나드의 <악평>이란 책을 산 적이 있는데 최근 그 책의 번역자가 저자인 줄 알고 좀 놀랐다. 상당히 부지런하고 어찌 보면 기자보단 문학인이 더 잘 어울리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이 책은 지난 2013년도에 나온 책으로 특별히 작가의 작업실이나 집 즉 공간에 주목한다. 그건 실제로 사무실일 수도 있고, 아니면 그런 용도로 사용하는 어떤 공간일 수도 있다. 그렇게 저자와 작가가 나눈 이야기가 제법 진지하고 인간적이다. 모르는 사람은 작가에게 작업실이 뭐 필요하냐고 할지 모르겠다. 자유로운 영혼인데 종이와 펜을 가지고 어디든 자리만 깔고 앉아 있으면 거기가 작업실 아니냐며.


하지만 작가를 마냥 한량으로 보면 안 된다. 누구보다도 치열해지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그런 공간이 필요하다. 오죽하면 어떤 작가는 작업실 정도 가지고는 안 되고 감옥이 필요하다고까지 했을까. 그렇다고 진짜 감옥을 들어갈 수는 없고 자칫 흐트러질 수 있는 자신을 잡아 가둘 공간이 필요하긴 하다. 그에 가장 가까운 공간을 사용했던 사람은 소설가 김태용은 아닐까 싶다. 그곳은 다름 아닌 고시원이었다. 그것도 창문도 없는. 얘기만 들어도 폐소공포증에 걸릴 것만 같다. 실제로 김태용 작가는 처음에 적응하느라 애를 먹었다고 한다.


가장 흔한 방법은 집안에 방 하나를 서재로 꾸며 놓는 것이 아닐까. 전에 얘기를 들으니 어떤 작가는 집이라도 공간을 분리해서 쓴다고 한다. 즉 글쓰기 작업을 할 때 아예 옷까지 사무복으로 갈아있고 회사원처럼 정시에 서재로 출근해서 똑같이 퇴근 시간에 맞춰 나온다고 한다. 모르는 사람은 뭘 그렇게까지 할지 모르지만 그 마음 알 것 같다.


요즘엔 카페나 도서관을 이용하는 것도 흔해졌다. 우리나라는 유럽과 달리 카페를 차 마시며 수다 떠는 공간으로만 인식하는데 최근엔 그 풍경도 많이 바뀌긴 했다. 요즘엔 노트북 하나면 어디서든지 업무가 가능하니 카페를 사무실 삼아 쓰는 사람도 많아졌다. 그러니 글이라고 못 쓰겠는가. 문학촌이나 레지던스를 이용하기도 하는데 이게 글 쓰는 작가들에겐 최고의 공간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미국의 어떤 작가는 평생(?) 호텔에 머물면서 글을 썼다지 않은가. 얼마나 돈이 많으면 호텔에 살았는지 모르겠지만 하루 삼시 세끼 밥 차려 먹을 신경 안 쓰고 글만 쓸 수 있으니 얼마나 좋겠는가. 비록 호텔은 아니지만 그것을 일반 작가도 문학촌에서 누릴 수 있으니 세상 좋아졌다.


이도 저도 할 수 없으면 자기 쓰는 책상이나 하다못해 식탁을 자기 공간으로 만들기도 한다. 알지 않는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작가로 데뷔하기 전 재즈 바를 운영했고 매일 문을 닫으면 거기서 글을 썼고, <해리 포터>의 작가 롤링도 매일 밤 아이를 재워 놓고 식탁에서 몇 시간씩 글을 썼다고. 그러고 보면 이 공간 확보에 대한 인간의 노력은 치열하면서도 진화적이란 생각도 든다.


하긴 우리도 어렸을 때 혼자만의 공간을 얼마나 원하며 자라왔던가. 책상 밑이나 장롱은 기본이고 누구는 세탁기 통에도 들어갔다던데 그맘땐 왜 그렇게 구석진 곳을 좋아했는지 알 수가 없다. 아무래도 엄마의 자궁에서 나온 존재들이기 때문에 그런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래도 역시 공간은 핑계다. 저자는 작가가 머무는 공간보단 역시 본 업무인 문학 얘기를 더 많이 한다. 이를 통해 우리 문학의 현주소를 짚어보는 건 상당히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 책을 꽤 오래전에 구입하고 한 번 읽기를 시도하다 실패하고 요 근래야 비로소 완독했다. 또 그러길 다행이다 싶기도 하다. 이 책에 나온 작가들 두 세명을 제외하고 다들 한 번씩은 책을 읽거나 귀동냥으로 들어 알게 되었는데 아는 만큼 보인다고 모르고 읽으면 그런가 보다 했을 텐데 조금이라도 알고 읽으니 읽는 맛이 난다.


또한 그동안 저자가 다룬 작가 중 유명을 달리한 작가들 있다는 걸 볼 때 만감이 교차했다. 김윤식 교수는 그렇다고 해도 (좋아하는 작가는 아니지만) 이외수 작가가 고인이 되었다는 게 실감이 나질 않는다. 몇 년 전만 해도 그도 문학촌을 운영하고 TV에 나와 싱거운 농담에 서투른 살림 솜씨를 보여주곤 했는데 말이다. 아무튼 그중 김윤식 교수의 대담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그는 저자가 취재했을 때만 해도 신인 작가였던 백수린 작가를 많이 칭찬했고, (우리나라 소설은) 장편보단 단편을 더 많이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나에겐 둘 다 뜬금없긴 했다. 내가 기억하는 작가는 성석제나 김영하 정도까지만이다. 나에게 백수린 작가는 아직도 젊은 작가인 줄만 안다. 그런데 돌아간 김윤식 교수가 입에 올렸다면 그도 더 이상 신인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동안 내가 참 무심하고 맹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장편보단 단편이라니. 내내 들어왔던 건 우리나라 작가들은 단편만 쓰려고 하지 장편은 잘 안 쓰려고 한다는 거였다. 그러면서 작가의 안일함과 게으름을 꼬집고 나아가서는 인문정신이 없음을 비판했다. 장편도 뭔가 인문학적 지식이 있어야 쓸 수 있는 거니까. 하지만 단편 가지고 뭐라고 할 수 없는 것이 점점 소설을 읽지 않은 세상이 되어버렸다. 그런 세상에서 정말 장편이 의미가 있는 건가 회의스럽기도 하다. 게다가 알지 않은가. 단편이 장편 보다 쓰기 어렵다는 것을. 그렇게 생각하면 김윤식 교수의 말을 허투루 들을 수도 없다. 앞으로 소설은 어디로 갈 건지 알 수가 없다.


그래도 난 이 책의 백미는 맨 마지막 챕터인 저자 자신의 공간이 아닌가 싶다. 처음에 나는 저자 후기가 왜 이렇게 길지 했다. 그런데 자신의 사무 공간을 조근조근 설명하는데 빠져들었다. 기대하지 않은 관음증을 만족시켜 준다. 내가 애초에 이런 책을 좋아하는 것도 작품 보다 사람에 대한 관심이라고 돌려 말할 수도 있지만 사실은 관음증 때문임을 부정할 수 없다. 어느 때부턴가 아주 훌륭한 인테리어 감각을 자랑할 목적이 아니면 자신의 공간을 있는 모습 그대로 보여주는 사람은 이제 없는 줄 알았다. 그런데 사진으로까지 찍어 보여주기까지 한다. 그러니까 저자가 더 친근하고 뭔가 초대받은 느낌이다.


기자가 작가 얘기하면 폼 나 보이긴 한다. 이 책을 펴낼 때만 해도 저자의 자제가 군 복무 중이라고 했다. 그로부터 10년이 훨씬 지났으니 지금은 어엿한 사회인이 되었을 것이고, 저자도 은퇴를 했거나 준비 중 아닐까. 그렇다면 앞으로 본격 작가로의 저자의 활약상을 기대해 봐도 되지 않을까. 이런 기자가 있어 한국문학은 외롭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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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쓰고 다시 쓰고 끝까지 씁니다 - 시나리오에서 소설까지 생계형 작가의 글쓰기
김호연 지음 / 행성B(행성비)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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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김호연 작가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어느 날 자고 일어났더니 유명해졌다고, 그는 <망원동 브라더스>로 시작해서 (이 작품은 무려 문학상 수상작이다. 대상은 아니지만.) <불편한 편의점> 시리즈로 입지를 굳히더니 지금은 내놓는 작품마다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 책은 그렇게 되기까지 작가의 녹록지 않은 과정을 쓴 책이다. 뭐랄까, 그 일에 자신의 영혼을 갈아 넣어 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짠 내 나는 이야기가 가득하다. 그러면서도 "글쓰기 어디까지 해 봤니? 난 여기까지 해 봤다.~"라고 자랑하는 것 같기도 한데 그게 싫지 않다. 왜? 그맘 아니까~! 읽다 보면 나의 지난했던 삶과도 일부 오버랩도 돼 절로 배시시 웃게 된다. 내가 글쓰기에 관한 책을 조심스러워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 수도 있는데 이런 책 읽고 자꾸 추억만 떠올리면 뭐 하겠는가? 글을 써야지, 글을.

이 책의 시작은 작가가 2001년 압구정동의 모 영화사에 면접을 보러 간 것으로 시작된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작가의 시작은 시나리오부터다.) 나는 속으로 '이 작가 21세기를 나름 화사하게 열었군.' 했다. (원래 21세기는 2000년이 아니라 2001년이라 하지 않던가) 나는 그보다 조금 앞선 20세기가 서서히 저물어 가던 무렵 교회에서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 A4 2장 반 분량의 짧은 대본을 쓰는 것이다. 그렇다고 평소 내가 대본 쓰는 일에 관심이 있었냐면 그건 전혀 아니다. 작가가 꿈이긴 했지만 그 시절 작가를 지망하는 사람들 거의 대부분은 시 아니면 소설이지 희곡은 비인기 종목이었다. 그런 내가 이 해 보지도 못한 일에 차출(?)된 건 김호연 작가도 책 말미에 그런 글을 썼지만 작가의 마감 때문이다.

나 같이 의지가 박약한 사람은 아무리 작가를 꿈꾸더라도 쓰기기는 하지만 항상 중간도 못 되어 중단하곤 한다. 나중엔 그런 내가 꼴 보기 싫어서 작가고 뭐고 꿈도 꾸지 않겠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그 일이 내게 주어진 것이다. 물론 싫으면 안 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이것처럼 좋은 기회가 없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마감을 몸에 익힐 수가 있지 않은가. 작가와 작가가 아닌 것의 차이는 마감과 원고료 아니겠는가. 이 일을 수락만 하면 난 이 두 가지를 다 가질 수가 있다. 채찍과 당근 모두를. 막상 해 보면 현기증 난다. 내가 이걸 언제까지 완성하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 걸까? 생각하기도 싫다. 꼭 외줄 타는 느낌이다. 발 하나만 삐끗 잘못 내디디면 나락으로 떨어질 것만 같은. 그래서 초기 땐 쓰다가 안 풀리면 컴퓨터 모니터를 창밖으로 던져버리고 싶은 충동을 여러 번 느끼곤 했다. 어쨌든 그렇게 난 마감을 몸에 익혀 갔다. 글 쓰는데 요령도 생기고. 하지만 그건 탄탄대로가 아니라 고난의 행군의 시작에 지나지 않았다.

그때 난 주일학교 교사이기도 했다. 교사 첫해에 알았던 제자 녀석 하나가 나의 일을 도와주겠다고 했다. 사실 작가라고는 하지만 주일학교 교사의 업무의 연장이라 글만 쓰지는 않는다. 쓴 글이 연극이 되도록 해야 한다. 그러니 도와주면 나야 고맙지. (그 아이를 처음 봤을 때 누구와 닮았다 했는데 영화 '길버트 그레이프'에서 아직 소년티를 벗지 못한 '어니'역을 맡은 디카프리오를 연상시킨다.) 그해는 어니가 고3이 되던 해라 처음에만 도와주고 수능 보고 다시 오겠다며 떠나갔다. 난 녀석이 없어도 그럭저럭 잘 해 나갔다. 그러다 정말 대학생이 되어 짠하고 다시 나타났다. 근데 웬걸, 머리 좀 커졌다고 오자마자 하극상을 부리는데 코미디도 그런 코미디가 없었다. 물론 구체적으로 말은 하지 않겠지만 상황이 또 그렇게 굴러갔던 것도 있었다. 결국 나와 어니는 조직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말이 좋아 떠난 거지 사실은 쫓겨났다.

난 그저 그곳에서 그 일을 하면서 마감을 몸에 익히고 싶었을 뿐인데 그게 그렇게 조직에서 경질될 일인가? 나락은 그렇게 오는 거구나 했다. 쪽팔리기도 하고. 많이 울었다. 이후 뭘 해야 하나 막막했는데 어느 날 신문에 아기 주먹만 하게 조그만 광고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모처에서 수강생을 모집한다는데 그곳이 창작을 가르치는 곳이다. 내가 웬만해서 뭘 배우러 다니는 스타일이 아닌데 그땐 왠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등록부터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더니 그곳은 내가 있어 온 곳하곤 사뭇 다른 곳이었다. 80년 대 한창 뜨거웠던 시절 광장에서 젊음을 보내고 지금은 한산한 중노년을 보내고 있는 마치 신선이 사는 곳 같았다. 내가 그분들을 이제야 만나다니. 그분들을 사부로 모시고 나는 생애 처음으로 짧지만 공부다운 공부를 했다. 돌이켜보면 이게 다 어니 녀석 덕분이다.

그 후 난 1년 반 만에 조직에 복귀했다. 그럴 경우 보통은 그곳을 피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러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글을 썼다. 그런 걸 보면 내가 거기서 아직 할 일이 남았나 보다. 그렇다고 그때부터 내가 꽃길만 걸었냐면 그렇지도 않다. 지면상 역시 다 밝힐 순 없지만 난 그때부터 최근까지 이런저런 글을 쓰면서 황당하고 기가 막힌 일들을 보고 당해왔다. 뭐 그렇다고 나쁜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좋고 즐거운 일도 있었다. 무슨 일이든 영욕은 항상 붙어 다니는 것 같다. 과부 사정 과부가 안다고 책을 읽으니 어찌나 공감되는 부분이 많던지 작가 인생 다 그렇구나 싶다. 노는 물이 크든 작든. 오히려 지금은 그 황당하고 기가 막힌 일들을 글로 쓰지 못해 근질근질할 뿐이다.

누가 그랬다잖는가, 앞으로 부자의 개념이 바뀔 거라고. 가진 것이 많은 게 부자가 아니라 자기 서사가 많은 사람이 부자가 될 거라고. 작가 역시도 자기 서사를 갖고 있을 때야 비로소 진짜 작가가 되는 것 같다. 그런데 그건 작가 생활 한두 해에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물론 일반인들은 잘 모르니까 작품이나 상으로 작가를 알아보는 것이고 그래서 작가들은 공모 당선 하나에 울고 웃는 거겠지. 또한 서사란 늘 승리만을 다루지 않는다. 그러면 독자들은 오히려 식상해 한다. 쓰라린 패배도 보여줘야 그제야 비로소 그들도 우리처럼 하며 동질성을 느끼고 끄덕한다. 그러니 작가의 서사는 버릴 것이 하나도 없다. 말하자면 이 책이 그런 책이다.


책을 읽으면서 이런저런 옛 추억을 폴폴 떠올리는 건 좋지만 한 프로젝트를 끝날 때마다 짐을 쌌다 풀기를 반복하는 걸 보면서 말이 좋아 작가고 프리랜서지 보따리 장사가 따로 없다 싶다. 누가 작가를 자유로운 영혼이라고 하는가. 사람들은 대체로 작가라고 하면 되게 멋있게 생각하는데 어느 작가의 말처럼 작가는 그냥 집필노동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또 그런 의미에서 솔직히 누가 이 일로 벌어먹고 살겠다고 하면 도시락 싸 들고 말리겠다.

그래도 그나마 글 쓰는 환경은 조금 나아졌나 보다. 옛날에 글 쓴다면 무조건 짐 싸서 절로 갔는데 지금은 심사만 잘 통과하면 문학촌이나 레지던스를 이용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게 좀 부럽긴 하다. 중국은 나라에서 작가한테 월급 준다던데(정말?) 우리나라 작가들은 나라에서 월급 받는 것과 레지던스를 이용하는 것 어느 것을 더 선호할지 궁금하다. 둘 다면 좋겠지만 그 둘엔 장단점이 있지 않을까. 아무튼 이것도 글을 쓰니까 노려 볼 수 있는 거지 일반인은 꿈도 못 꿀 일이다. 그래서 이것 역시 글쓰기 어디까지 해 봤니에 포함시킬 수 있을 것 같다.

아, 그리고 책을 읽다 생각나서 하는 말인데, 서점 매대에 자신의 책이 깔리고 안 깔리고는 그 작품의 인기의 척도와는 상관없는 마케팅의 영역이다. 즉 출판사 측에서 일정 기간 매대 이용료를 내고 자기네 책을 진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또한 이건 내 생각이지만 정말 작가로 인정받으려면 적어도 다섯 작품 정도는 내봐야 하지 않을까. 겨우 한 두 작품 낸 걸 가지고 뭐라고 말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닌 것 같다. 그렇게 다섯 작품이 시중에 돌다 보면 어느 땐가 누군가에 의해 입소문이 나게 되어 있다. 한 작품이 조명을 받으면 초기작이 다시 재조명 받기도 하고.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닌 건 작가의 세계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책에서 작가는 '연적'이 망했다고 죽상을 하던데 물론 다소의 시차는 있겠지만 이 작품에 대해 내가 알아 본 바에 의하면 작품이 독특하고 재미있다는 반응이 더 많았다. 그래서 나도 작가의 작품을 읽는다면 '연적'부터 읽으려고 했는데 어찌하다 보니 이 책부터 읽게 되었다. 어쨌거나 옛 추억과 더불어 읽는 즐거움을 선사해 준 작가에게 감사를 전한다. 전작은 모르겠고 기회 있는 대로 주요 작은 읽어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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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24-06-21 09: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겪은 글쓰기 역정을 죄송하지만 너무 재미있게 읽었어요. 특히 어니와의 서사에는 소리내어 웃었어요. 참 재미있게 잘 쓰시는 재능이 있어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stella.K 2024-06-21 10:08   좋아요 1 | URL
ㅎㅎ 그런가요? 사실 그거 서사가 좀 디테일한데 여기에 주저리 밝히기는 뭐해서 그 정도 썼어요. 재미있으셨다니 제가 오히려 고맙죠. 원래 현실은 비극이고 과거되면 희극이고 그런거 아닌가요? ㅎㅎ 고맙습니다. 무플이어서 좀 뚱했는데. ㅋ 오늘도 덥네요. 브랑카님도 좋은 하루 보내십시오.^^

물감 2024-06-21 20: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번 글은 책 리뷰라기보다 스텔라님 에세이 같은데요 ㅋㅋㅋ 어떤 분야든지 마감과의 싸움을 하는 분들은 존경스럽습니다. 물론 거의 대다수 직장인들이 월말에 시달리긴 하지만요 ㅋㅋㅋㅋ
작가란 직업은 집필노동자! 너무 확 와닿습니다. 그럼에도 써야만 한다는 걸 스스로 알아서 기꺼이 몸과 영혼을 내어주고... 언젠가 스텔라님의 늦깎이 데뷔소식이 들려오면 좋겠어요 ^^ 요 알라딘 마을에서 제가 좋아하는 몇없는 문체의 소유자 십니다 ㅎㅎㅎ

stella.K 2024-06-21 20:58   좋아요 1 | URL
ㅎㅎㅎㅎ 아니 제 문체가 어떤데요?
이거이거 두근거려 오늘 밤 잠이나 잘 수 있으려나 모르겠습니다. ㅋㅋㅋ
그렇지 않아도 문체가 매끄럽지 않아서 고치고 있는 사이 물감님 오신겁니다.
물론 다시 읽으셔도 뭘 고쳤다는 거야? 하실 거 같아서 감히 다시 읽어 달란 말은 할 수는 없구요.

글치 않아도 물감님 리뷰도 살짝 봤는데 공감이 넘사벽이더군요.
거기다 이달의 당선작도 되시고.ㅎㅎ
사실 리뷰를 가급적 쓰려고 하는 것도 마감이 있는 느낌이 있어서죠.
그 느낌 뭔지 알죠? ㅎㅎ
아, 그리고 잘 모르시겠지만 저 9년전쯤에 이미 책 냈답니다. 독서에세이로.
자랑하는 건 아니고, 서점 매대 이야기도 그때 첨 알았죠.
저도 몰랐을 땐 김호연 작가와 같은 생각을 했더랬죠.
그때 자본주의는 어쩔 수 없는 거구나 했습니다.
암튼 꿀꿀했는데 고맙습니다. 좋은 주말 보내십시오!^^


희선 2024-06-22 03: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주일 학교 교사도 하셨군요 지금은 어떠신지... 그때 아이들 만나서 즐거웠을 것 같기도 합니다 처음에 이름이 잘 알려지는 사람도 있지만, 시간이 흐르고 이름이 알려지는 사람도 있는 듯합니다 그만두지 않고 썼기에 그랬겠네요 김호연 작가도 다르지 않겠습니다


희선

stella.K 2024-06-22 11:38   좋아요 1 | URL
제가 그 시절 그다지 좋은 교사는 아니었죠. 그래서 그만두려고 했는데 그 일에 붙들려서 그래도 꽤 했던 것 같습니다. 그때 션찮음에도 제법 아이들이 절 많이 따랐습니다. 그건 지금 생각해도 감사한 일이죠. 그래도 만약 그때로 다시 돌아가면 교사를 잘 할 수 있을까 그건 여전히 의문이예요. ㅋㅋ

페크pek0501 2024-06-24 11: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불편한 편의점>을 오디오북으로 완독했어요. 재밌더라고요. 끝까지 듣게 될 만큼.
그런데 불편한 편의점2는 포기했어요. 투까지 완독하고 싶을 만큼의 매력은 없었서요. 딱 그냥 베스트셀러 같았어요.

stella.K 2024-06-25 12:36   좋아요 0 | URL
ㅎㅎ 그럴 것 같기도 해요. 저는 좀 청개구리과인지
베스트셀러라고 하면 잘 안 읽게되더라구요.
왜 베스트셀러인가 알아 볼 필요도 있을텐데.
암튼 저도 언니처럼 일단 1권을 읽어보고 더 읽을지 말지를
결정하겠습니다. ㅋ
 
뇌를 훔친 소설가 - 문학이 공감을 주는 과학적 이유
석영중 지음 / 예담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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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책 제목에 '작가' 또는 '소설가'란 단어가 들어가 있으면 덮어놓고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이 책도 앞의 글자 보다 '소설가'란 글자 때문에 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저자의 명성도 한몫했다. 그런 걸 생각하면 사자마자 읽어야 했는데 머뭇거렸던 건 게을러서가 주된 이유이기도 하지만 저 '뇌를 훔친'이란 글자 때문이기도 하다. 실은 내가 과포자라서. 더구나 뇌과학이다. 무슨 소설을 읽는데 뇌과학이 필요하단 말인가.


석영중 교수에 대해선 명성만 들어오다 작년인가 재작년에 운 좋게 EBS에서 연속 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작은 체구에 조근조근 러시아 문학에 대해 들려주는데 참 좋았다. 그런데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면서 알았는데 저자는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유명했다. 우리나라의 유수한 출판번역상을 받은 건 차치하고라도 지난 2000년 러시아 정부로부터 푸시킨 메달을 받았다고 한다. 대단하지 않은가.


그런 저자가 이런 시도를 할 땐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하지만 나더러 이런 연구를 하라고 한다면 멀리 도망갈 것 같다. 나이 들수록 새로운 것에 대한 관심과 도전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데 난 자꾸만 익숙한 것에 안주하려고만 한다. (얼마 전만 해도 키오스크는 선택이었는데 지금 웬만한 식당이나 카페에선 필수가 되었다. 이제 기계치란 말은 더 이상 통할 수 없게 되었다.ㅠ) 이게 뇌의 측면에서 보면 활동성이 둔화되고 작아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니 뇌를 생각하면 싫어도 자꾸 새로운 것에 도전해서 그것을 막아야 한다.


과거에 뇌는 주로 정신과나 신경과에서 다뤘던 것으로 안다. 하지만 오늘날은 인지심리학이나 신경생리학 등 광범위하게 다뤄지고 있는 것으로 안다. 심리학이란 말이 나와서 말인데 나도 한때는 심리학에 미처 있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결국 돌아섰던 건 앞서 말한 대로 과학 포기자여서인지도 모른다. (심리학은 문과지만 이과적 학문이기도 하다).


처음엔 인간의 마음이나 정신을 과학적으로 측정하고 예측한다는 게 신기하고 좋았다. 하지만 지나치게(?) 세분화하고 분석한다는 게 점점 거부감이 느껴졌다. 물론 어떤 이는 인간을 더 깊이 알아가겠지만 나는 좀 그렇지 않았다. 뭐 그런 게 아니더라도 그 알량한 지식 가지고 감히 인간을 분석하려고 하는 게 왠지 주제넘게 느껴졌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하지 않는가. 그런 내가 이 책을 읽었을 때의 느낌은 어땠을까.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신세계를 보는 듯했다. 내가 심리학이란 학문을 처음 접했을 때의 느낌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그렇다면 난 과포자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니 적어도 저자가 뇌과학을 통해 문학을 좀 더 다른 관점에서 볼 수 있게 해준 건 정말 경의를 표할만하다고 생각했다.


책 초반에 나오는 푸시킨의 <에브게니 오네긴>에 나오는 주인공 오네긴과 그를 사랑한 타티아나의 이야기를 빗대어 저자는 뇌과학의 '거울 뉴런'을 설명한다. 특히 타티아나는 소설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자신을 소설 속 인물과 동일시했다. 그걸 흔히 아는 말로 모방성이라고도 하는데 이것이 바로 거울 뉴런이다.


요즘 같은 시대에 소설 좀 읽었다고 무슨 거울 뉴런이고 모방이냐고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실제로 괴테의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고 자살이 유행처럼 번졌다고 하지 않는가. 놀라운 건 실연 당한 사람만이 아니라 실연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솔로도 자살을 했다고 하니 책이 주는 위력이 실로 대단하다 싶다. 지금은 책 보다 영상으로 옮겨간듯하지만. 오래전에 '600만 불의 사나이'가 방영됐을 때 높은 곳에서 어린아이들이 떨어져 죽는 일이 있었다. 주인공처럼 자신에게도 초능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바람에. 그게 아니더라도 영화를 보고 모방 범죄나 폭력이 늘어났다고 하니 보는 것 거울 뉴런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재론의 여지가 없다.


또한 이 책엔 톨스토이에 대한 일화도 나온다. (그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는 상당한 도덕 주의자며 나이 들어서도 열심히 공부한 학구파이기도 하다. 특히 인생 후기엔 종교에 심취해 신앙 서적을 많이 보았고 설교도 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나중엔 신학에 관한 책도 썼다.) 그 덕분에 그는 80 넘어서까지 비교적 건강하게 장수하며 살았다. 물론 그의 최후는 객사이긴 했지만 그건 가출로 인해 체력이 고갈되었기 때문이지 어떤 질병이 그를 잠식한 건 아니다. 그러면서 저자는 오래 장수하고 싶으면 공부하기를 멈추지 말고, 특히 외국어 공부를 하라고 조언하기도 한다.


그런데 내가 정작 이 책에서 인상 깊게 본 건 따로 있다. 그건 프루스트다. 이 책은 주로 러시아 문학을 다루긴 했지만 이 책이 의도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안다면 프루스트의 불멸의 저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빠지면 안 될 것이다. (알다시피 프루스트는 프랑스 작가다.) 뇌과학에서 '기억'을 서사로 푸는데 이만한 작품이 또 있을까. 그래서 그 유명한 '프루스트 효과'란 이론도 나오지 않았는가.


프루스트는 병약했고 일생 기억하고 쓰는 일에만 몰두했다고 한다. 꼭 그가 아니더라도 세상의 거의 모든 작가들이 자신의 경험을 녹여 작품을 쓴다는 말은 이제 더 이상 낯선 말이 아니다.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자전을 쓴다. 경험을 말한다는 건 기억하는 작업이다. 그런 점에서 작가는 어찌 보면 세상 편한 직업이면서 (펜과 종이 또는 노트북만 있으면 되니까) 동시에 불가사의한 존재들이다. 세상에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자신의 기억을 더듬어 글로 쓰는가 말이다.


그런데 그렇게 힘들여 글을 쓰지만 한쪽에선 기억이란 정확한 것이 아니란다. 사람이 불완전한 존재인 만큼 기억도 불완전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이는 자서전은 다 가짜라고 비판한다. 그 말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 말만이 유일한 진실인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프루스트의 책은 한낱 개고생의 끝판을 보여주는 것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자는 독자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발견하게 되는 건 기억이 아니라 현실과 환상을 떠도는 오기억 혹은 인출 뒤 다시금 변형되어 새로운 고착을 기다리는 '기억의 재고착'을 발견하는 거라고 했다(184p). 말이 좀 어렵다. 즉 하나의 서사로 재구성될 수 있는 상상력을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실제로 우리가 프루스트의 작품을 대할 때 그가 얼마나 진실을 말하고 있는가를 보려고 읽는 것이 아닐 것이다. 우리는 그가 불멸의 작품을 썼다는 것에 경의를 표할 뿐이다. 오기억일지 모르지만 (뇌과학에 의한다면 이제 기억이나 추억을 말할 때 꼭 이 말을 붙여야 하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살아온 기억을 전부 글로 쓴다면 그 양은 책 몇백 권 분량이란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즉 평생을 써도 다 못 쓴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프루스트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쓴 건 여전히 그의 기억의 일부를 쓴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단지 우리가 그에게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는 건 그는 썼고 우리는 쓰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바로 이것이 작가와 독자가 나뉘는 지점이기도 하다.


누군가는 그랬다. 작가는 남이 보지 못한 것을 본 죄로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써야 하는 형벌을 받는 거라고. 그렇다면 작가는 관찰과 기억을 과다하게 쓰는 사람들임에 틀림없다. 또 그런 걸 생각하면 작가를 마냥 동경해도 좋을지 알 수가 없다.


기억이 작가의 것이라면 망각은 독자의 것이다. 저자는 알렉산드르 루리야란 러시아 심리학자의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란 책을 소개하고 있는데 (아쉽게도 이 책은 번역된 적은 있지만 절판됐다.) 그가 단순히 기억력이 좋은 사람일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는 그 기억이란 것 때문에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피폐한 삶을 살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망각은 확실히 축복이다. 그런 의미에서 독자가 작가의 작품을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기억하고 있다는 건 좋은 것이 아닐 수 있다. 빨리 잊어줘야 다른 작품을 읽을 수 있지 않을까. 만일 잊지 못한다면 자신도 괴롭지만 작가는 다음 작품을 쓸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작가는 독자가 자신의 작품을 잊었다고 서운해하거나 분노하지 말아야 한다. 독자는 그런 사람들이다. 그 작품이 좋았다면 다음 작품을 기다릴 것이고, 만약 나쁘다면 한 달 뒤 자신이 무슨 책을 가지고 이를 갈았는지 기억도 못 할 것이다. 그러니 망각은 작가에게나 독자에게나 다 좋은 것이다.


어쨌든 이렇게 흥미로운 책을 나는 왜 지금껏 읽지 않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읽으면서 저자가 소개한 책들을 검색해 보느라 좀 바빴다. (사실 이건 언제부턴가 나의 습관으로 고착되어버렸다.) 특히 조나 레러의 '프루스트는 신경과 학자였다'란 책이 눈에 띄었다. (이 책 역시 아쉽게도 절판됐다. ㅠ) 하지만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의 찾아서'만큼 읽고 싶은 생각은 아직 없다. 후회할지도 모르지만 조만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새로운 시야를 열어준 저자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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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4-05-04 12: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뇌‘라는 글자가 들어간 책엔 무조건 흥미가 생겨요. 유튜브 볼 때도 그런 걸 선호합니다.
최근에 <운동화 신은 뇌>라는 책을 읽었는데 운동을 하면 뇌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알 수 있는 책이에요. 어느 학교에서 0교시에 체육 수업을 시켰더니 학생들의 성적이 올랐다는 건 유명화 사례죠. 우울증은 뇌와 깊은 관련이 있어 운동이 우울증 예방도 되고 치료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 많은 연구와 사례가 담겨 있어요. 뇌과학은 앞으로도 공부하고 싶은 분야예요.^^

stella.K 2024-05-04 12:38   좋아요 1 | URL
와~ 그러고 보면 언니가 읽지않은 분야가 뭐가 있을까 싶어요. 뇌과학 분야는 대중적으로도 활발하게 알려져서 알아두면 좋을 것 같아요.
첫 댓글 고맙습니다.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