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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잡지의 두 라이벌이라고 하면 <창작과 비평>과 <문학과 지성>이라는 건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그 배경에 대해선 잘 알지 못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을 때야 비로소 좀 알 것 같아 여기에 정리해 본다.


먼저, <창작과 비평>은 1966년 1월에 창간되었다고 한다. 발간 형식과 이름이 한국 문화풍토에서는 꽤 이채롭다고 임헌영 문학평론가는 말한다. 창간호는 132쪽에 정가는 문우출판사에서 출간했다고 한다. 


일본의 이와나미(우리나라엔 '이와나미 문고' 번역본 시리즈가 있다)의 <세카이(세계)>, <시소(사상)>, <분카쿠(문학)> 세 잡지를 합친 격인 중국 근대사의 <신청년> 한국 근대사의 <개벽>이나 <조선지광> 등을 합친 격이라고 한다. 


            (창작과 비평 창간호)


여기서 잠깐 <개벽>과 <조선지광>에 대해 살펴보면,


                       


먼저, 개벽은 1920년6월 25일에 창간한 우리나리 최초의 잡지다.

A4판. 160쪽 내외. 천도교단()에서 민족문화실현운동으로 세운 개벽사()에서 1920년 6월 25일 창간호를 발간하였다. 천도교는 항일운동과 신문화운동을 활발히 전개하던 중, 민족문학 수립과 민족전통 문화유산 확립을 기본으로 언론·학술·종교·문예를 게재하는 종합월간지를 발간하기로 하고, ‘후천개벽사상’에서 이름을 따 ‘개벽사’를 창업하고 『개벽』을 발간하게 되었다고 한다.


창간 당시 사장은 최종정(), 편집인은 이돈화(), 발행인은 이두성(), 인쇄인은 민영순() 등이었다. 창간 이유는 “세계사상을 소개함으로써 민족자결주의를 고취하며, 천도교사상과 민족사상의 앙양, 사회개조와 과학문명 소개와 함께 정신적·경제적 개벽을 꾀하고자 함”이라고 밝히고 있다. 전체 지면의 약 3분의 1을 문학과 예술면으로 할애하여 소설·시조·희곡·수필·소설이론·그림 등을 게재하였고, 문체는 국한문혼용체를 썼다고 한다.

하지만 일제의 감시와 압제로 인해 결국 1926년 8월 1일 통권 제72호(8월호)를 끝으로 일제에 의하여 강제로 폐간되었다. 폐간될 때까지 발매금지(압수) 40회 이상, 정간 1회, 벌금 1회 등 많은 압력과 박해를 받았으며, 그로 인한 경영난도 심각하였다.

1934년 11월 속간하여 제1호부터 제4호까지 내었으나, 1935년 3월 1일 다시 폐간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이전의 『개벽』과 성격을 같이 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러다 광복 후 1946년 1월 김기전()이 발행인 겸 편집인으로 복간하여, 1926년에 폐간된 『개벽』의 홋수를 이어 제73호부터 시작하여 1949년 3월 25일(통권 제81호)까지 모두 9호를 발행하고 자진 휴간하였다고 한다. (이상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잡지가 이렇게 부침이 많았다니. 그러다 이 잡지는 <다시 개벽>이란 제목으로 최근 다시 나오고 있다.  






                   


<조선지광>은 <개벽>보다 2년 뒤인 1922년 11월에 창간되었던 종합잡지다. 조선지광사에서 발행하였다. 통권 100호로 1930년 11월 종간되었다.「신문지법」에 의하여 발간된 사회주의적 종합잡지로 초기에는 민족사상을 고취, 일제에 항거하였으나, 점차 사회주의 색채를 띠게 되었다.

문학에 공헌도 커서 소설로는 유진오, 이효석이 동반작가로 등장하였고, 시에 정지용도 이 잡지를 통하여 등장하였으며, 임화의 경향적 작품 「오빠와 화로」 등이 발표되기도 하였다고 한다. 나중에『신계단()』이 나왔는데 <조선지광>의 후신으로 알려지고 있다. 

임헌영 님의 말에 의하면 <창작과 비평>은 전적으로 백낙청의 개성이 창출한 잡지라고 할 수 있다고 한다. 특히 그는 1969년 백낙청의 <시민문학론>이 제기한 만해와 이상에 대한 재평가를 보고 감동했다고 한다. 한국 근대문학사에 대한 렌즈 자체를 바꿔 끼우는 놀라움이라고. 박정희 정권에 휘청거리기 시작하면서 발동한 유신독재(1972년)와 긴급조치(1974~79) 기간에 창작과비평사는 일대 비약도 이루었지만 한편 판금조치로 큰 피해를 입기도 했다.


<문학과 지성>은 '창비'에 4년 늦은 1970년에 창간한다. 

                             (문학과 지성 창간호)

김현, 김병익, 김주연, 김치수의 헌신적인 기여로 탄생했다. 그후 홍정선, 정과리 등이 이를 계승했다. 자랑스러운 것은 세계 어느 나라에 뒤지지 않게 한국은 여전히 문학의 여러 유파가 치열하게 대립 공존하면서 독자층이 비교적 단단하다. 문학에 대한 열기 또한 뜨거운 것도 고무적이라고.


역시 어느 분야나 라이벌은 있기 마련이고 또 있어야 그 분야가 선의의 경쟁을하며 발전할 수 있는 것 같다. 지금은 워낙 많은 잡지들이 다양하게 나와 무엇을 선택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누구는 문학잡지 하면 <문학동네>를 떠올릴 사람도 있겠지만 저 두 잡지가 더 많이 생각나지 않을까 싶다. 참고로 임헌영님은 이도저도 끼지 못하고 비정기간행물 동인지 <상황>을 만들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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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 80년대를 조금 더 얘기한다면 1984년을 말하고 싶다.

그때는 80년대 초반을 지나 중반으로 넘어가는 시기로 국가적으로 봤을 때 LA올림픽이 있었던 해였고, 4년 뒤 88 서울 올림픽이 있을 거란 기대감 때문이었을까, 그 대회에서 처음으로 세계 10위 안에 드는 쾌거를 이루고 올림픽기를 넘겨받기도 했으니 뜻 깊은 한 해이긴 하였을 것이다.

출판계에선 때에 맞춰 조지 오웰의 <1984>란 책을 내고 그를 띄우는 작업이 있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특별히 1984년에 TV를 통해 방영된 두 드라마를 얘기하고 싶다. 하나는 <야망의 계절>이란 미국 드라마고, 하나는 <보통 사람들>이란 한국 드라마다. 

                       

 

그렇다고 이 두 드라마의 시작 년도가 1984년란 말은 아니다. <야망의 계절> 같은 경우 1976년 처음 우리나라에 방영됐다고 한다(예전에 TBC란 방송이 있었는데 거기서 처음으로 방영됐고, 이후 TBC80년에 KBS와 통합되었다).

그런데 나는 그때는 방영된 줄도 몰랐고 알았어도 그땐 너무 어려 볼 생각도 못 했을 것이다.

또한 우리 드라마 <보통 사람들> 같은 경우는 1982년에 시작해서 종영했던 해가 1984년이다. 일일 드라마 치고 200회를 훨씬 넘기고 종영했으니 장수 드라마고 그래서 기네스에 올랐다는 말도 얼핏 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야망의 계절> 같은 경우 이 작품은 어윈 쇼라는 작가가 쓴 동명의 소설을 영화화 한 것으로, 원제는 <가난한 자와 부유한 자>라고 한다. 나는 영화가 너무 재미있어 나중에 책으로 사서 읽기도 했는데 막상 책은 영화만큼 재미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전화번호부만한 두께의 책을 거의 한 달쯤 걸려 완독했던 것으로 기억한다(처음에 나왔을 때는 단행본으로 나왔는데 세월을 거치는 동안 세 권으로 나왔고 그나마 지금은 절판된 상태다). 재미없으면 읽다가 포기했을 텐데 그래도 완독을 했던 것을 보면 포기할 만큼 재미없었던 건 또 아니었다.

이 작품은 독일에서 미국으로 이민 온 조르다슈 가문의 이야기로 이민 사회에 적응하는 과정을 밀도 있게 그려 큰 호응을 얻었다.

무엇보다 나는 보는 내내 이 훌륭한 드라마를 있게 해 준 어윈 쇼란 작가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었다. 어쩌면 그렇게도 재미있게 이야기를 엮을 수 있을까?

하지만 그것 아는가? 이 드라마가 우리나라 당대 작가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줬다는 것을. 특히 드라마 좀 본다는 사람들이라면 그 이름 석자를 모를 리 없는 김수현 작가가 그 영화를 모티프로 <사랑과 야망>이나 <사랑과 진실> 같은 연속 히트작을 내놨다.

이 두 드라마가 얼마나 유명했는지 이것이 방송되는 시간엔 수돗물의 사용이 급격히 줄었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사실 <야망의 계절>을 모티프로 한 이야기는 김수현뿐만 아니라 나라도 능력만 있다면 이렇게 써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을 정도다.

특히 이 작품은 조르다쉬 가문의 두 형제가 이야기를 이끌어 가고 있는데 그것은 카인과 아벨의 신화의 변형으로도 보여 진다. 특히 난 형 루디로 나온 피터 스트라우스를 이 영화를 통해 처음 보았는데 누구라도 그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마성의 매력을 가지고 있다.

특히 그가 성공한 후 수트를 입고 나오는 장면이 있었는데 얼마나 멋있던지 남자는 역시 수트빨이란 말은 이때 이 배우한테서부터 나온 말은 아닐까?

<보통 사람들>은 말했다시피 나연숙이란 작가가 쓴 일일 연속극인데, 사실 이 드라마의 제목은 로버트 레드포드가 감독한 동명의 영화를 제목만 그대로 사용했다. 이처럼 나연숙 작가는 가끔 본인이 직접 지은 제목이 아닌 기존에 있는 제목을 그대로 차용하는 경우가 있는데 나는 그게 약간은 특이하다고 생각했다(물론 기억하기엔 좋긴 하지만 자신의 작품을 기억해 달라고 애원하는 것처럼도 보여 묘한 느낌을 갖게 한다).

특히 제목을 <보통 사람들>이라고 해서 정말 보통 사람들이 나오느냐면 그렇지도 않다. 하지만 또 새삼 보통 사람의 기준은 뭘까를 생각해 본다. 보통은 중산층을 그렇게 부르지 않을까? 아니면 적어도 3대가 오순도순 살아가는 걸 보통 사람이라고 해야 하는 건가?

어쨌거나 이 드라마에 나오는 사람들은 그리 보통스럽지는 않다. 가장 역을 맡았던 배우 이순재는 당시 언론 쪽에 종사 했던가 그랬던 것 같고, 그의 동생은 송재호가 맡았는데 나름 성공한 소설가이고, 그의 아내는 연극배우며, 이순재의 아들은 고시 준비생 등 아무튼 그의 몇 대손 할아버지는 벼슬을 크게 했을 것만 같은 뼈대 있는 가문처럼 보인다. 그러니 뭘 보고 보통 사람들이라는 건지 제목이 오히려 생소할 정도였다.

하지만 또 생각해 보면 이 드라마는 지극히 보통스럽기도 하다. 그렇게 사회적 지위가 보통스럽지 않을 뿐이지 사는 모양새는 보통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이 드라마는 요즘 말하는 막장 드라마는 아니었다. 오히려 바른 생활 드라마라 하리만큼 등장인물이 극단적인 성격인 사람이 없다. 그러고도 시청률에서 수위를 차지하고, 일일극으로 2년을 하고 막을 내렸다면 가히 대단하다는 말밖엔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이순재 씨의 부인으로 나온 김민자 씨다.

김민자 씨는 정말 누가 봐도 현모양처의 이미지다. 그런 그녀가 드라마에서 늦깎이 작가지망생으로 나온다. 어떻게 그게 가능할 수 있을까? 물론 그런 그녀를 무시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현모양처는 뭐 작가되지 말라는 법이라도 있는가? 그리고 어찌 보면 현모양처가 직업을 갖는다면 작가만큼 어울리는 직업도 없을 것이다. 더구나 그녀의 시동생이 작가가 아니던가? 평소 좋은 형수와 시동생 사이였으니 시너지 효과는 백 배였을 것이다.

기억이 나는 건, 그녀가 등단을 목표로 시장을 봐 오는 길에 헌책방에서 책 몇 권을 싸게 샀다고 자랑하는 장면이었다. 그게 또 어쩌면 그리도 알뜰해 보이던지.

그런데 이 장면의 잔상이 세월이 가면 갈수록 오래도록 남는 건 왜일까? 비록 드라마라고 하지만 왠지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만든다.

지금은 헌책도 어떤 책은 새 책 못지않게 깨끗하다. 그래서 누구는 헌책이라 부르지 말고 중고 책이라 부르라고도 한다. 하지만 이 시대의 헌책은 말 그대로 헌책이다. 물론 우리에게 헌책은 그 나름의 향수를 선사하기도 한다.

하지만 현모양처에 살림만 했을 그녀 자신에게 책은 자신만을 위한 호사였을 것이다. 장을 봐 가지고 온 장바구니에 어디 자신만을 위한 물건이 하나라도 있었을까? 온통 가족을 위한 식재료들이 한 바구니었을 것이다. 때로는 자신이 자신에게 상을 줄 줄도 알아야 한다고 하지 않던가? 그렇다면 책이 유일하게 그녀 자신이 자신에게 줄 수 있는 상이요 호사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마저도 헌책이었다니. 새 책이어도 좋지 않았을까? 그 헌책을 사 가지고 돌아 온 이 현모양처를 우리는 그저 좋아만 해도 될지 판단이 서질 않는다.

게다가 엄밀히 따지고 보면 그녀는 원천적으로 작가가 될 수 없는 환경에 처해있다.

물론 그녀가 글을 쓰기 위해서 가족들에게 이해와 협조를 구하긴 했을 것이다. 하지만 기왕 가족이 그녀의 꿈을 지지했다면 오히려 그녀를 몇 달 시골이나 사찰 같은 곳으로 보내 글만 쓰라고 했어야 했던 건 아닐까? 그게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적어도 가사도우미 정도는 쓸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냉철하게 말해 작가란 그렇게 할 일 다하고 남는 시간에 글을 쓸 수 있는 꿈의 직업이 아니다.

또한 그녀가 살고 있는 집의 구조를 보면 대가족에 맏며느리로 본채도 부족해 별채까지 두고 있다(그런 것으로 봐서 그 집은 누가 봐도 꼭 옛날 아흔 아홉 칸 양반 집을 연상케 한다). 물론 생각하기에 따라선 꽤 낭만 있어 보이긴 한다. 하지만 평생 넓은 집에서 다리를 종종거리며 살아왔던 엄마를 보고 자라서 그럴까 난 그 집의 구조가 김민자 씨에 연민을 갖도록 만들었다. 얼마나 힘들까? 자기 방은 각자가 알아서 청소한다고 해도 그 나머지 공간은 그녀의 차지였을 것이다. 더구나 가족이 매일 먹는 음식과 특히 시어머니를 모시고 있는 만큼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시동생은 뭐 때문인지 자기 집 놔두고 별채의 서재를 점령하고 나오지 않는다. 시동생이 사람 좋은 사람으로 나와서 그렇지 형수의 입장에서 보통 신경 쓰이는 사람이 아닐 것이다. 시동생은 말로만 형수를 위하는 척하지 얹혀사는 주제에 서재는 독차지 하고 여간 해서 서재를 형수에게 양보하는 법이 없다.

아직 등단하지 않은 작가지망생이라면 선배 작가고 같은 아군으로 도움을 주는 입장이지 그녀가 정식 작가가 되면 언제 라이벌이 될지 모른다.

이렇게 김민자 씨는 극중에서 낮에는 집안 주변을 돌보고 짬짬이 책을 읽으며 밤에는 글을 쓰는 그야말로 주경야독의 삶을 사는데 잠자는 것도 아까워 시동생이 없는 밤 시간에 서재에서 쪽잠을 자며 글을 써 신춘문예에 등단에 성공한다는 스토리는 재투성이 아가씨의 또 다른 버전을 보는 것도 같다.

얼마 전 읽은 책에서 '제대로 사는 인간의 정의를 정말 중요한 것에 힘을 몰아주고 나머지는 대충 살아야 제대로 사는 것이라고 했다. 난 그 말에 동의한다.

그에 비해 그녀의 손아랫동서는 연극배우고 살림은 못하지만 당차고 소위 말하는 현대 여성을 대표한다. 물론 드라마는 당연 이를 통해 김민자를 더 조명한다. 왜 그랬을까? 그때나 지금이나 여성의 덕목 특별히 맏며느리에 대한 덕목이 가족 화목을 위해 더 많이 노력하고 거기에 작가의 꿈을 이루는 슈퍼우먼이어야 하는 환상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땐 그 드라마가 그렇게 했어도 성공했을지 모르지만 요즘의 잣대로 보면 드라마에서의 김민자는 자신의 일을 위해 더 많은 것을 포기하고 투쟁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아니 어쩌면 그 때 그 드라마에서 맡은 김민자 씨의 캐릭터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여자였는지도 모른다. 그래 놓고 보통 사람들이라니! 그저 뭔가 모를 연민이 느껴질 뿐이다.

유명한 페미니즘 작가 버지니아 울프는 자기만의 방란 책에서 여자가 작가로 성공하기 위해선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리고 보통 사람들은 작가에 대한 환상이 있다. 그것은 대부분의 동화의 끝이 남자와 여자가 결혼해서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것으로 끝나듯 한 번 작가는 영원한 작가인 양 하는데 물론 작가의 명예를 생각하면 그게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작가하면 일부 성공한 전업 작가를 생각하는데 첫 작품을 내고 두 번째 또는 세 번째 작품을 못 내고 잊혀지는 작가가 얼마나 많은지 생각하지 못한다.

그렇듯 드라마는 김민자 씨가 신춘문예에 당선 됐다는 기쁨에 겨워하는 장면만을 담았을 뿐 그 이후에 그녀가 어떻게 살았는지는 다루지 않고 있다. 모르긴 해도 둘 중 하나지 않았을까? 두 번째 작품을 써 내기 위해 그야말로 고군분투 했거나 가정의 화목을 위해 다시 예전의 현모양처로 돌아갔거나.

어떤 경우든 전적으로 그녀의 선택이고 두 번째의 경우는 잘 모르겠는데 그녀가 만일 첫 번째의 선택을 했다면 이번엔 가족이 전적으로 그녀를 이해하고, 양보해야 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그 무렵 나도 신춘문예 응모하겠다고 뭔가를 끄적거렸던 기억이 난다. 그것이 <야망의 계절><보통 사람들>의 영향 때문임을 부인하지 못하겠다. 물론 쉽지 않아 일찌감치 포기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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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5-12-11 15: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반가워 죽을 뻔했어요. 저 남자, 루디로 나온 피터 스트라우스가 그 시대에 저의
남자 이상형이었어요. 긴 팔의 흰 와이셔츠를 걷어 입길 좋아했는데 멋졌죠. 잊지 않고 봤던
드라마였죠.
<보통 사람들>도 생각나요. 말이 안 된다고 봤죠. 맏며느리가 그저 한 번에 소설을 썼더니 신춘문예에 당선됐다는 것. 천재인 모양이에요. 게다가 식모로 나오는 금보라는 대학에 붙더니 대학생이 되고 그 집 손자와 결혼해 살고... 한마디로 <특이한 사람들>이었죠. 작가가 꿈꾼 이상적인 가정을 보여 주고 싶었던 모양이에요.

아, 이런 걸 기억해 내고 쓰시다니... 덕분에 추억의 드라마, 잘 감상했어요.

stella.K 2015-12-11 15:24   좋아요 0 | URL
ㅎㅎ 언니 와락~!
이 글 올려놓고 무플이어서 내가 뭔가 잘못하고 있나 보다고
손들고 있으려고 했는데 이런 댓글을 써 주시니니...! ㅠㅠㅠ

언니도 기억하시는군요. 정말 지금 생각하면 보통 사람들 말도 안 되는데
그땐 왜 그렇게 꼬박꼬박 봤는지 모르겠어요.

피터 스트라우스는 그 영화에 나오고 어디 안 나왔나 봐요.
정말 좋아 했는데... 지금 보면 많이 늙어 있겠죠?ㅠ

2015-12-11 17: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2-11 17: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한동안 문학에 그렇게도 구애를 퍼부었던 나도 어느 순간 시들해짐을 넘어 아예 냉담해지기까지 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렇게 된 원인엔 적어도 나에게 3 가지 악재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건 그토록 좋아했던 국어 선생님의 결혼과 교지에 내 글이 실리지 않은 것, 그리고 박정희 대통령을 겨냥한 한 발의 총성과 함께 시작된 민주화 항쟁이 그것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별 이유 같지 않은 이유다. 국어 선생님 같은 경우 그 분의 결혼에 미련 같은 게 남아 있을 리 없다. 물론 잠시 아쉽긴 했지만 곧 선생님에 대한 생각을 떨쳐버렸고 오히려 이런 내가 대견하기까지 했다. 솔직히 실연 당한 사람들 마음 아프다고 질질거리고 추태 부리고 하던데 솔직히 나도 그렇게 되면 어쩌나 했는데 의외로 덤덤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1]

또한 내 글이 교지에 실리지 않은 건 좀 아쉽고, 충격적이긴 했지만 어차피 작가가 되는 건 장기전이고 결국 나이 먹어야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미리부터 낙담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2] 하지만 그 시대가 나의 작가의 꿈을 앗아갔다는 건 부인할 수 업을 것 같았다 

TV나 신문은 연일 시위와 군부독재를 타도하는 소식으로 들끓었고 나는 그게 남의 일인 양 바라보고 있을 때가 많았다. 그 시절 나의 아버지 같은 기성 세대는 요즘 젊은이들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시위한다고 못 마땅해 했다. 정치는 정치인이 하고, 군인은 나라 잘 지키면 되는 것이고, 장사꾼은 장사나 잘하면 되는 것처럼 학생은 그저 공부나 잘하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시대의 기성세대들은 결코 범상치 않은 시대를 거치며 살아왔다. 나라가 하나되지 못하고 갈라진 것은 유감이긴 하지만 그렇게라도 해서 좀 전쟁의 불안에서 벗어나 안정되게 살 수만 있다면 그도 다행이겠다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박정희 대통령 같은 힘 있는 사람이 이 불안한 휴전의 시대를 버텨줄 수만 있다면 그도 나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가 이루어 놓은 게 좀 많은가? 무엇보다도 잿더미 같았던 남한의 땅을 이만큼 발전시켜 놓은 건 그의 힘이었음을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기성 세대들은 잘 몰랐을 것이다. 진정한 자유가 무엇이고 다양성이 공존한다는 것이 뭔지를. 워낙 수직적이고 전통적 가치관에 길들여져 왔을 뿐만 아니라 못 먹고 못 살던 시절이었으니 따숩게 밥 먹고 잠자는 것 외에 그것 너머의 자유가 허락될 거라고 누가 감히 상상하겠는가? 때문에 그 시절 대학생들이 거리로 나와 시위하는 건 기성 세대에 대한 도전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들의 옷과 먹을 것 등록금이 어디서 나온 건데, 다 땅 팔고, 소 팔고, 기계 기름칠해 돌려 가며 번 돈 아니겠는가? 그런 피 같은 돈과 정력을 학교에 바치지 못하고 시위현장에 바치고 있으니 통탄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지금도 기억이 나는 건 집 앞에서 교회로 가는 버스를 타야 하는데 하필 시위가 일어났다. 이상한 일이었다. 보통 대학생 시위는 대학가 같은 번화한 곳에서 할 텐데 그런 곳과 한참 떨어진 시장 앞 도로변에서 시위를 하다니.

그 때문일까? 나는 한참 만에 목적지까지 가는 버스를 탔지만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마침 버스 안에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어떤 아저씨 둘이 서로 초면에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었다. 물론 그들은 버스 안에서 창문을 통해 바깥의 상황을 보고 같은 마음이 되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시사 논평에 밝은 사람들 아닌가?

그런데 그 광경이 나에게 너무나 극명해 지금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누가 더 자유로운 사람이었을까? 버스라는 우리 안에 갇혀 바깥의 풍경을 바라보며 한담을 나눴던 그들이었을까? 아니면 대학이란 상아탑 안에 갇혀 있는다는 것이 위선이라고 생각해 저렇게 거리에 쏟아져 나와 행진을 했던 것이 자유였을까?    

어쨌든 그들은 어쩌면 그리도 이야기가 잘 통하는 사이가 되어버렸는지 나도 보면서 신기할 정도였다. 저 나이쯤 되면 저렇게 이물 없이 낯선 사람과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인가? 그들의 호방함에 나의 소심한 성격이 유난히 쪼그라드는 느낌도 들었다.

다행히도 길은 얼마 만에 뚫렸고, 그들은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다 한쪽이 먼저 목적지에 이르자 그 동안 말 벗이 되어준 것이 고마웠던지 상대 남자에게 어디까지 가시는지 모르겠지만 안녕히 가시라고 먼저 인사를 했고, 상대 역시 답례 인사를 하고 헤어지는 것이었다.  

그렇게 80년 대는 서로 모르는 사이도 금방 공감대를 형성하고 친해질 수 있는 사이로 만드는 처절한 세대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 문학은 어디로 갔던 것일까? 그렇게 민주화로 인해 촉발된 문학은 온통 참여문학 일색아니었던가? 그래서 문학이 그런 것이어야 한다면 나는 문학을 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나에게 있어 문학은 마르지 않는 샘물 같은 것이고, 천일야화 같은 상상력의 본체 같은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그 옛날 선생님으로부터 요셉 이야기를 듣고 이 세상 어디엔가 요셉은 존재하지 않을까란 희망을 가지고 살았던 것처럼 말이다.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문학은 그렇게 상상력과 별을 쫓는 모험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별이 손에 닿지 않는다고 별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는 것 처럼 문학을 하는 작가는 그렇게 불가능한 것이 가능한 것인 양 독자에게 끊임없이 상상력을 불어 넣어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렇게 척박한 세상이 되어버린 현실에 기름이라도 붓겠다는 것인가?

그렇게 끊임없이 상상력을 퍼 올려야 하는 문학이 고작 현실과 야합(?)해서 참여문학이란 그때까지 듣도 보도 못한 이름으로 나온 것에 나는 적잖이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어쩌자고 그 시대의 작가들은 하나 같이 현실을 비판하는 글만 써 댔던 것일까? 이렇게 척박한 세상일수록 누군가는 계속 상상력 가득한 글을 써야 하는 것 아닌가? 이대로 한 세대만 지나면 문학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내가 문학을 멀리했던 이유가 정말 이런 이유에서일까에 확신이 없었다. 문학에 대한 내 관심 자체가 시들했던 건 아닐까? 그것을 그렇게 참여문학에 덮어 씌웠던 것은 아닌지. 무엇보다 우리가 왜 소설을 읽어야 하는지 도무지 모르겠는 것이다. 이것은 지난 사춘기 시절, 인간은 어차피 죽을 건데 왜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나의 염세주의적 사고방식과 맥락을 같이 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무엇보다 소설의 일회성이 나의 이런 생각을 더 부추겼다. 한 번 읽고 마는 소설에 기꺼이 돈을 지불할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더구나 그 시대의 문학은 돈 내고 사 볼만한 가치가 있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나 역시 이 돈 안 되는 일에 나 자신을 투신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조용히 혼자 문학을 떠났던 것이다.

 그런데 그로부터 세월이 한참 흐른 요즘에 와 드는 생각은 그 시절이 척박했다고 과연 문학이 문학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본다.   

그것을 어디서 알 수 있느냐면, 나는 1982년부터 내가 완독한 책을 기록하는 손바닥만한 노트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을 지금도 아주 가끔 들여다 보는 때가 있다(사실 내가 이 노트를 아직까지도 가지고 있을 거라곤 나 자신도 몰랐다. 잃어버리려면 충분히 잃어버릴 수도 있었던 건데 말이다). 그것을 보고 있노라면 내가 이런 책을 읽었던가?’ 조금 놀라기도 하고, 그 책을 읽은 건 확실히 기억이 나는데 내용이 뭔지 하나도 생각이 나지 않는 책도 있다. 그렇다면 그런 책들은 언제고 날 잡아서 다시 읽어봐야 하지 않을까?

또한 문학은 항상 보면 그 시대를 풍미하거나 대표하는 작가와 작품이 있기 마련이다. 그것이 참여문학이던 아니든 간에 말이다. 나는 또 문학에 애도를 표한다고 해 놓고 그 작가들의 작품을 야금야금 읽고 있었던 것이다.     

예를 들면, 당시 문학계는 수필이 강세를 보였는데, 여류 수필가로 신달자와 유안진이, 남자로는 철학자 김형석과 안병욱이 쌍벽을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이들의 작품 한 두 권쯤은 다 읽었다독보적 지성으로는 이어령 교수가 있었고, 소설로는 박경리 선생과 박완서 선생이 있었다. 이들의 책 역시 난 몇 년간에 걸쳐 서너 권 이상은 읽었다.  

또한 외국 작가로는 <빙점>으로 유명한 미우라 아야꼬 씨의 책들을 좋아했는데, 그녀가 구사하는 작품의 정서가 우리나라의 그것과 흡사해 좋아했다. 무엇보다 나는 그녀가 쓰는 작품마다 기독교 작가로서 그 특유의 영성이 돋보여 좋아했다.

서양 작가로는 가톨릭 작가로 유명한 A. J 크로닌의 작품을 좋아했다.

의 작품을 알게 된 계기는 사실 난 교회를 다니기 전 성당엘 잠시 다닌 적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영세(세례)를 받을 때 나의 대모[3]에게 그의 책 <인생의 도상에서>란 책을 다른 책과 함께 축하 선물로 받았었다. 그런데 아무리 뚝배기 보다 장맛이라고 하지만 판형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활자가 작은 편이어서 당장 읽을 맛이 나질 않았다. 그렇게 몇 년간 내 방 책장에 꽂혀 있었는데 우연히 어떤가 싶어 뽑아서 한 두 장 읽기 시작했는데 그게 또 의외로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 후 그의 책을 생각 외로 많이 읽었다.

그때 이미 나의 신앙은 가톨릭에서 기독교로 옮긴 상태였는데, 좀 웃긴 것은 그렇게 미우라 아야꼬와 크로닌의 작품들을 읽어서일까? 내친김에 아예 종교 문학에 발을 디뎌 볼 생각으로 집에서 한 정거장 정도 떨어진 곳 신사역 가는 길에 기독교 서점이 하나 있었는데 거기에 가면 기독교 문학에 관한 책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어느 날 마음 먹고  갔다.

처음으로 가 본 그곳은 내가 찾던 기독교 문학 책은 그다지 있어 보이진 않았고, 주로 신학이나 신앙 서적을 팔고 있었다. 조금 실망은 했지만 이대로 나오기가 뭐해 용기를 내 그곳 주인에게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이 있냐고 물어 보았다.

그 무렵 이문열의 책들이 문학계를 주름잡고 있었다. 내가 알기론 그가 이전에도 책을 내긴 했지만 이 책에서야 비로소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내가 그 책을 찾았을 싯점은 그나마 그 인기가 한풀 꺾인 때였다. 그렇게 조금 늦은 감이 없지 않았지만 그 서점에 들어 온 이상 그 책이라도 사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말하는 순간 내가 뭔가를 잘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왜 그 책을 이런 기독교 서점에서 찾고 있는 건지 순간 아찔한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나는 그때까지 그 책이 기독교 문학인 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쳐던 것이다. 그동안 그렇게 서점을 기웃거리고 다녔으면서 하필 여기 와 그런 실수를 하다니? 그래도 이미 엎질러진 물이나 주워 담을 수도 없고 그냥 모른 척 주인이 어떻게 나오나 지켜 보는 수 밖에.

그런데 의외로 나를 대하는 주인과 그 친구의 태도가 참 마음에 들었다. 보통은 왜 그런 책을 여기서 찾나 의아해 할 수도 었을 텐데 다소 얼떨떨한 표정 지으며 그들은 내가 찾는 책에 대해 진지하게 의견을 나누는 것이었다. 이마에 내천 자까지 그리면서. 그리고는 그거 소설책 아니냐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것이었다. 그제야 그들은 어떠한 결론에 도달한 듯 주인이 그건 여기엔 없으며 일반 서점에 가보라고 말해주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들도 그 유명한 책을 읽지 않은 것이다. 아무리 베스트셀러여도 그렇게 안 읽은 사람도 못지 않게 많다는 얘기다. 

나는 그런 그들의 진지함이 왠지 착해 보여 좋았다. 자칫 무안해질 수도 있는 상황을 그들은 직감했는지 안 했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이런 손님을 진지하게 대해주니 오히려 고마울 정도였다.[4]

그리고 나는 그 후 그들의 말대로 그 책을 단골 서점에서 사 읽었고, 그 책이 문학으로는 잘 쓴 작품이긴 하지만 기독교 문학과는 전혀 상관 없는 책이라는 걸 확실히 알았다.

그 밖에도 80년대엔 이은성의 <소설 동의보감>이나 황인경의 <소설 목민심서> 같은 역사 소설이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르면서 나 역시 역사소설에 눈을 뜨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바로 이런 책들이 시대의 질곡과 상관없이 80년 대를 대표하는 책들이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나는 무슨 근거로 80년 대는 문학적 상상력이 부재한 시대라고 단언하고 조용히 안녕을 고하려고 했던 걸까?

그런데도 80년 대를 생각하면 그 시절 내가 읽어 온 책들 보다는<해방 전후사의 인식>의 인식이나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등과 함께 이념 서적들을 떠올리게 되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누구는 문학을 함에 있어서 그 시대의 사회성과 참여정신을 닮지 못해 괴로워했는지 모르겠다. 문학의 길은 의외로 넓고 깊다. 

시대에 저항하는 문학을 하는 것이 문학하는 자의 자세인지 아니면 그것과 상관없이 문학 그 자체의 길을 도도하게 가는 것이 옳은 건지 잘 모르겠다. 물론 그건 선택의 문제일 것이다.  하지만 나 개인적인 생각은 시대를 초월해서 좀 더 예언자적인 자세를 갖는 것이 문학하는 자세에 좀 더 가까운 것이 아닐까?

언젠가 조선일보의 북세션을 담당했던(지금도 담당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김광일 기자가 이런 말을 했단다.

“(뜨거운 시대를 살아야 했던 작가들은 너무 뜨겁다고 전제하고)독자들은 이미 다 잊어버리고 가볍게 걸어가고 있는데 작가들은 아직 그 짐을 어깨에서 내려놓지 못하고 헐떡이고 있습니다. 짐을 올려놓기도 어렵지만 내려놓기는 더 어려운 법이지요. 그 역사의 짐을 내려놔야 새 시대 독자들과 소통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라고.

나는 기자의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시대를 정확하게 읽는 것도 작가의 몫이긴 하겠지만 시대를 관통할 줄도 알아야 하는데 그게 우리나라 작가는 조금 늦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그래도 나는 위에 열거한 작가들의 작품을 읽을 수 있어서 그 시절 나름 나쁘지 않게 보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1]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실연 당해보지 않은 인생을 인생이라 논할 수 있을까?

[2] 하지만 이런 생각은 살면서 생각해 보니 그다지 옳은 생각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때 쓸 수 없는 글은 나이 먹었다고 써지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글이란 축적의 산물이기 때문에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날에 할 수만 있으면 조금씩이라도 쓰고 쌓아 두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3] 가톨릭엔 대모, 대부 제도가 있다. 말하자면 영적인 어머니, 아버지를 일컫는 말로 내가 신앙인임을 보증해 주고, 영적으로 이끌어 주는 사람을 뜻한다. 이들이 있어야 영세를 받을 수가 있고, 여자나 남자나 같은 성으로만 이루어진다.

당시 나의 대모는 나 보다는 대여섯 살 위로 보이는 어느 여대생 언니였는데, 참해 보이긴 했지만 의외로 내가 그녀의 대녀인데도 잘 챙겨주지는 않았다. 아무리 그것이 형식적이라고는 하지만 이렇게 나 몰라라 할 수 있나 싶을 정도로 나는 그녀를 성당을 다니는 동안 두 번인가 세 번 밖에 보지 못했다. 하지만 그런 제도는 정말 좋은 제도 같긴 하다고 생각했다.       

[4] 요즘은 책을 거의 인터넷에서 사는 형편이고 보면 이렇게 서점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에 관해 할 말이 없는 것 같다.설혹 오프라인에서 책을 산다고 해도 직원들이 사무적인 친절로만 대할 뿐이니 그런 광경을 묘사할 일이 없어졌다. 아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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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르바나 2015-08-13 1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참 잘 쓰셨어요.
이달의 마이페이퍼에 강력추천합니다.^^

stella.K 2015-08-13 16:27   좋아요 0 | URL
ㅎㅎ안녕하세요? 잘 지내시죠?
이전에 썼던 페이퍼가 거시기 해서 가림막용으로 올린 건데
뜻밖에 그리 말씀해 주시니 고맙습니다.^^

페크pek0501 2015-08-13 17: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위의 댓글 보니 웃음이 나와요. 가림막용이라니요...
그런데 저도 사실은 그럴 때가 많아요. 마지막 글 때문에 민망해라, 빨리 다른 걸 올려야겠다...
지금도 그러고 있어요. 꼭 나의 발가벗은 몸을 높은 곳에 꽂아 둔 기분이거든요. ㅋ
하지만 우리 극복해야 해요. 뻔뻔해져야 한다니까요.

참여 문학, 생각납니다. 그때 소설들은 한결같이 데모하는 장면 같은 거나 나라에 대해 고뇌하는 장면이 들어가지 않는 소설이 없었어요. 꼭 그래야만 하는 줄 알았던 시대였어요. 지금 생각하면
시대를 초월한 소설이 명작인 경우도 있는 건데...

미우라 아야꼬와 크로닌의 소설, 저도 읽었어요. 여기서 보니 반갑네요.

(비밀 댓글 : 이런 말씀 드리기 실례가 안 된다면... 님이 최근에 쓰신 글 중에서 저는 이 글이 제일 좋은 것 같아요.)
괄호 안의 글은 비밀 댓글임. ㅋㅋ

[그장소] 2015-08-13 19:21   좋아요 0 | URL
(저도 이거 비밀인데요,와...Stella.k 님 80년대를 현역으로 보내셨단 글인것..이죠? pek0501 님?? ㅋㅎ ~안뵈실까나.... )

아,그럼 세례명...스텔라...?
저도 대모님이 계셔요. 카타리나죠..제 세례명..

stella.K 2015-08-13 18:06   좋아요 0 | URL
ㅎㅎ 니르바나님 댓글에 쓴 저의 답글이 너무 노골적인 것 같아
냉큼 들어 와 비밀글로 돌려 놓으려고 했는데 결국 언니한테도
들키고 말았네요. 왜 이렇게 가면 갈수록 소극적이 되는지 모르겠어요.
그래도 언니 칭찬 들으니 기분은 좋네요. 고맙습니다.^^

[그장소]님,
그러니까요. 이러면 제가 엄청 나이가 많은 것 같아 안 쓰려고 했는데
결국 누구나 나이는 드는 거잖아요. 사람이 나이가 들면 꼭 한번쯤
갈음하고 싶어하잖아요. 이글도 작년부터 써 온 글의 연장인데
그동안 게을러서 이제야 또 한편 올리네요.
또 언제 올리게 될지 모르겠어요.
제가 이 비슷한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김봉석의 <나의 대중문화 표류기>
한번 읽어 보세요. 저와 같은 세대구요 저 보다 훨씬 글을 잘 썼어요.^^

페크pek0501 2015-08-13 18:09   좋아요 0 | URL
저, 다 봤어요, 그장소 님. 하하~~

저도 동의보감 상중하를 읽었고 사람의 아들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시대에 궁금한 마음에 읽었던 1인이에요. 이렇게 옛날 사람이랍니다. 스텔라 님보다 제가 더 옛날이어요.

제 입장에서 보면 sns의 좋은 점은 젊은이들과 친구처럼 소통할 수 있다는 점이죠.
늙어서 안 끼어 줘, 하는 사람들이 없다는 점이에요. 오프라인이라면 분명 안 끼어 줬을 텐데, 하는 생각이...

나이가 많아도 글이 젊으면 오케이, 라는 거죠. 글이 늙었다면 늙은 대로 괜찮아 하는 공간이라는 거죠.

그장소 님, 반가웠습니다. ^^

[그장소] 2015-08-13 19:15   좋아요 0 | URL
Stella.k 님..엄청은 무슨요.제가 놀란건요..너무 동기간 같다고 하나, 격차를 못느끼니, 신기해 그랬어요.저 윗 글 처럼 작정하고 밝힌 글이 아니면 전혀 못느끼겠단..거죠..저와 같은 세댄줄 알고..그랬어요..(그치만, 전 윗 분들이 솔직히 더 편하고 좋습니다. 같은세대나 아래에는 제가 더 잘해야한단 노력이 따르잖아요..) 무리하기 싫고 ,,그저 흐르듯 가장 자연스러운 형태면 싶거든요.따라가듯이..흘러가듯이..(저,,여우같은 거죠?! 재수없게!^^)ㅋㅋ
아..소개해 주신 책은 메모하고 꼭 읽어볼게요..고맙습니다..!!

[그장소] 2015-08-13 19:14   좋아요 0 | URL
알아서 기겠습니다 .언니님들, 그리고 pek0501 님 ,Stella.K님 왕 재수 하고 욕한번 하셔도 저, 진짜 할말 없네요..^^ 어쩔까요? 이 글들을 비밀글로 전환해요? 지우긴 우리들 흔적이 아깝고..(단 제 글방의 글은 꼭 처리하겠습니다) 원하는 분부를 내려주셔요. 대놓고 메너가없는 경우였네요. (본의아니게) 그치만..그게 뭐? 합니다..저는 ..부럽거든요..사실..그 모든, 나이도..세월도 ,지금의 위치도..

stella.K 2015-08-13 19:21   좋아요 0 | URL
아유, 왜 그러십니까?
전혀 그런 생각하실 필요 없으세요.
이리 어려워 하시면 제가 님을 어찌 대하겠습니까?
그냥 예전처럼 편하게 대해 주세요.
그래야 저도 편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08-13 1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조심스럽게 이달의페이퍼 당선 예측해 봅니다. 박정희에 대한 평가는 저와는 상극이지만 ㅋㅋㅋㅋ 그래도 어떤 진실성이 엿보여서 좋습니다. 허세 가득한, 이해도 못하면서 철학자나 나열하는 것보다는 이런 글이 백 번 낫죠...

stella.K 2015-08-13 18:07   좋아요 0 | URL
곰발님이 당선이라면 당선입니다. 고맙습니다.ㅋㅋㅋㅋㅋ

페크pek0501 2015-08-13 18:21   좋아요 0 | URL
그런데 곰곰 님은 왜 새 글을 안 올리시는 건가요?
기다리고 있사와요... ^^

[그장소] 2015-08-13 1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암튼, 그러거나 말거나, 빙점이나..사람의 아들이나,소설 동의보감,목민심서,등 저는 90년대초중반에 걸쳐 읽었거든요..(그리 따지면 별 차이가 없는겐가..?) 아니지.. 82년부터 완독한 독서노트라 하셨으니, 88 올림픽 때 내가 국민학교를 다니고 있었다는...흠,
아,, 어쨌든 sns는 좋은 것이 세대를 막론하고 (버릇없이) 친구를 (감히...끄응..)만들어도 준다는
겁니다... 고마운 노릇입니다.. 그런의미로 꼭 이달의 페이퍼에 올라가셔야 겠어요! ^^

stella.K 2015-08-14 14:35   좋아요 0 | URL
ㅎㅎ 그럼요. 그장소님과 저는 친구입니다.
오앤만에 기대해 보죠. 이달의 페이퍼.ㅋㅋ


[그장소] 2015-08-13 19:14   좋아요 0 | URL
아, 너그럽게 양해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앞으로 조심할게요.
(이..괄호 비밀 글이 귀염 터져서 너무 막 나갔어요)..지키는 선은 지키겠습니다.
꼭.페이퍼 이~~얍..에너지 관리공단 째...힘 퐉~~드리고 갑니다..(제 방 글 수습하러..)에고 괜찮으신지..몰겠어서..확인하고 풀어야겠어서요.. 저는 상관없지만.. 두분이 걸린 문제잖아요..ㅎㅎㅎ 괜찮으신건가요?
그냥 두어도? 그럼..오픈?

stella.K 2015-08-13 19:00   좋아요 0 | URL
네. 상관 없습니다.^^

[그장소] 2015-08-13 19:19   좋아요 0 | URL
아, 제가 젤루 많이 떠든 아이 였군요! 칠판에 이름쓰고 당번 시켜야 할 !!
아,하핫..저 개인적으로 비밀글을 좋아라하지 않아서 가급적 여럿의 글에선
걍 다 놓고 쓰는 주의 라..저도 이게 좋긴합니다..덕분에 저는 속 씨원하였습니다.
앞으로 잘하겠습니다~대인배셔요!

cyrus 2015-08-13 2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의 부제를 ‘응답하라, 80년대 문학’이라고 붙여도 좋겠어요. 제가 헌책방에 책 구경하는 것을 좋아해서 그런지 과거에 독자들의 독서 취향이 궁금할 때가 있어요.

stella.K 2015-08-14 14:40   좋아요 0 | URL
그렇게 해도 좋긴하지.
그런데 나는 그 시대가 나같은 소시민에게도 미친 영향이
결코 작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어.
그 시대는 왜 꼭 정치인들과 몇몇 지성인들 그리고 그를 추종하는
젊은이들의 것인 것처럼 보여지잖아.
그 시대야 말로 문학이 죽어 있는 세대라고 생각해서
한쪽으론 마음이 쓰리기도 했다.ㅋ

yamoo 2015-08-13 2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미리 축하드려야 겠습니다. 8월의 이달의 당선작을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ㅎ

2015-08-15 11: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8-20 07: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8-20 14: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8-20 14: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붉은돼지 2015-08-21 2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언급하신 목록을 쭉 보니 제가 80년대 읽었던 도서목록과
거의 88%정도 일치하는 것 같습니다요 ^^
종교적인 문제에도 나름 관심이 많아서 사람의 아들외에도
라하트 하헤렙(맞나??)같은 조성기의 소설도 열심히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잠시 추억에 잠겼습니다....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stella.K 2015-08-22 11:14   좋아요 0 | URL
아, 맞아요. 조성기 작가의 책 저도 재밌게 읽은 기억이 나요.
오늘 우연히 TV에서 DJ 김기덕 게스트로 나와 토크쇼하는
프로를 봤는데 그것도 참 새롭더군요.
이종환, 김광한과 함께 트로이카였는데 지금은 다 가고 혼자
저렇게 남았으니 그도 참...
옛날이 새삼 그리워지더군요.ㅠ
 

내가 초등학교 때 <들장미 소녀 캔디>란 순정 만화를 TV에서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 만화가 한창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을 때 나는 안타깝게도 그걸 볼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동시간 대에 타 방송에서 모험 가득한 만화를 하고 있었고, 오빠와 동생은 늘 그것을 보았기 때문에 볼 수가 없었다. 그 시절만해도 TV가 한 대뿐인 우리집은 가정의 평화를 위해 결국 내가 그 만화를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동생만 보는 것 같으면 싸우던지 구워 삶던지 어떻게든 해 보겠는데 오빠까지 보고 있으니 어찌해 볼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그때만 해도 오빠는 중학교 2학년에 다니고 있었다. 보통 초등학교만 졸업해도 만화영화는 어린이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해서 잘 안 보는 것 같던데, 남자들이 좀 늦되는 줄은 알았지만 오빠는 늦돼도 한참 늦돼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걸 차마 뭐라고 할 수는 없었고, 난 그저 속으로 오빠가 얼른 커서 만화를 졸업해 주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하지만 나의 정서적 성장이 오빠의 그것을 앞질렀던 걸까? 정말 중학교에 올라가니 만화가 시큰둥해졌고, 오빠는 여전히 만화를 떠날 줄 몰랐다.[1] 그래도 캔디에 대한 미련은 남아서 어느 날 <들장미 소녀 캔디>가 만화책으로 나온다고 했을 때 솔직히 마음이 설레었다. 캔디가 책으로 나오다니, 유후~!

 

그런데 솔직히 말해 캔디가 좋아서겠는가? 캔디에 나오는 테리우스와 안소니가 좋아서는 아니겠는가? 거기에 이웃집 키다리 아저씨 같은 길버트도 빠지면 섭섭할 테니 덤으로 좋아해 주고.

 

이렇게 거기에 나오는 남자들은 누구 하나 버릴 사람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안소니와 테리우스의 성격은 극명하게 갈려서, 안소니는 자상하고 조용한 것이 여성취향적인 반면, 테리우스는 반항적이면서도 야성적이었다. 그래서 누구를 더 좋아하느냐 의견이 분분했고, 그에 따라 물론 단편적이긴 했지만 그 시절 여학생들의 이성에 대한 취향을 알아보기도 했던 것이다[2]. 그리고 내가 알기론 테리우스가 안소니 보다 인기가 더 많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게다가 이 작품의 인기 요인이 한 가지가 더 있는 것 같은데, 당시엔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이야기의 배경과 작풍이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는 것이다. 그때까지의 만화가 익살스럽거나 다소 튀는 느낌이었다면 이 작품은 다분히 부드러운 여성의 곡선을 살리고, 풍부한 감성적 요소를 최대한 살려 누구라도 보면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매력이 있었다. 특히 꽃미남의 역사는 이때부터는 아니었을까 한다.[3] 물론 지금은 세련된 작품이 워낙 많이 나와 이것을 새삼 논한다는 게 의미가 없는 일인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그때 난 그토록 보길 원했던 만화를 또 뭐 때문인지 사서 보지 않고 빌려 볼까도 생각했었다. 여간 해서 책을 빌려 볼 줄 몰랐던 내가 그런 생각을 했다는 건 앞서 말했지만 난 더 이상 어린이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을까? 하지만 난 애써 정신을 가다듬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들장미 소녀 캔디라구. 내가 그토록 보고 싶어하던. 그게 만화책으로 나왔다는데 지금 돈 생각하며 튕기겠다는 거야? 그건 캔디에 대한 배신이야, 배신.

그랬다. 만화책은 책이 아닌가? 그런 차별을 두다니. 이건 내가 아니었다.   

 

게다가 나의 이런 생각은, 만화가 인기가 있긴 있었는지 빌려달라는 사람마다 돌아오는 답변은 지금은 빌려줄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더 이상 구차하게 물어보고 다니는 것도 그렇고, 내가 언제부터 책을 빌려봤단 말인가 하는 자각 때문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좋은 책은 사놓고 혼자 몰래 봐야 한다. 그런데 그때 나는 무슨 생각으로 그 책을 학교까지 들고 다니면서 누가 보거나 말거나 버젓이 꺼내놓고 봤는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그 옛날처럼 유혹하고 싶었던 아이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빌려달라고 할 땐 빌려 줄 사람이 그렇게 없더니 어느 날, 평소 친하지도 않던 옆 반의 아이가 눈꼬리를 살살 치며 빌려달라고 하는 것이었다. 성격상 어떤 책이든 친한 사이가 아니면 별로 빌려주고 싶지 않은데, 그 아이는 그 만화를 보고 싶어하는 페로몬을 나에게 너무 많이 분사시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또 나는 나도 그 책을 그 아이에게 빌려주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순순히 빌려 줄 나도 아니었다. 거기엔 한 가지 조건을 붙였다. 그것은 수업 시간에 절대로 읽지 말 것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수업시간에 몰래 보다 선생님께 압수당해 그 자리에서 찢겼다는 소문을 들어 온 터라 혹시 나도 혹시 그렇게 될까 봐 그 아이에게 다짐받았던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대해 그 아이도 그러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왠걸, 그렇게도 당부를 했건만 그 아이는 내 말을 어기고 수업시간에 그 만화책을 보다 선생님께 걸려 똑 같은 신세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것도 깐깐하기로 유명한 지리 선생님한테.

 

그 말을 듣는 순간 내가 참 순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아인지도 모르는 아이에게 스스로 조건을 걸면서까지 그 아이를 믿고 싶었던 걸까? 빌려 주고 싶어하지 않았던 아이에게 만화책을 빌려줘야 했던 나로선 그것이 최선이었을까? 그 아이도 그렇다. 남의 책을 빌려 보는 것에 대해 최소한의 약속도 지켜줄 수 없는 그 아이는 책을 빌려 볼 자격이 있는 걸까?

 

그 소식을 들으니 기분은 안 좋았지만 그래도 처음부터 화를 낼 생각은 없었다. 어쨌거나 그 아이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을 하고 성의 있는 태도를 보이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일이 참 묘하게 꼬이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아도 이 아이에 대해 그다지 끌리는 바는 없었는데 그 생각에 방점이라도 찍듯 같은 반의 다른 아이가 내게 와, 그 아이에게서 책을 돌려 받기는 쉽지 않을 거라고 했다. 그러니까 돌려 받으려면 독한 마음 먹고 끝까지 받아내던가, 그럴 마음이 아니라면 일찌감치 포기하라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들으니 정신이 번쩍 낫다. 내가 무엇이 아쉬워 그 아이에게 그 만화책을 돌려받지 못한단 말인가? 빌려줄 땐 못 이기는 척 하고 빌려줬지만 나도 못지 않게 강하다는 걸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처음엔 역시 말대로라고 생각했다. 역시 예의 그 눈꼬리를 살살 치며 어물쩍 넘어가려는 태도가 역력했다. 그래서 나는 최대한 마음을 강하게 먹고 낮고도 강한 어조로 책을 변상해 내라고 종용했다.

 

그러자 그 아인 이런 나의 태도에 압도 당했던 걸까? 의외로 순순히 내 책을 변상해 주는 것이었다. 난 순간 좀 당황했다. 성난 복어처럼 잔뜩 무게를 잡았건만 이러면 김 빠지는 건 아닌가? 하지만 뭐 별로 힘들이지 않고 책을 변상 받았으니 다행이다 싶었다.

 

그런데 그 다음이 좀 우스웠다. 그 아이가 나를 유령대하듯 하는 것이었다. 어쩌다 우리 반에 오거나 복도에서 마주쳐도 도무지 알은 체를 하지 않는 것이었다. 나는 좀 어이가 없었다. 물론 그런 일련의 일들이 있었다고 해서 그 아이와 내가 이후로도 역일 생각은 없었지만 그래도 그렇게 노골적으로 나를 모른 척 한다는 건 나로서도 좀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도대체 내가 무엇을 잘못했단 말인가? 빌려 달래서 빌려줬고, 응당 변상을 요구해 그것을 돌려 받았으니 나도 더 이상 이 아이에 대해 감정 같은 건 없었다. 그런데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누구를 유령취급 한단 말인가? 정말 이것 밖에 안 되는 아이였나 싶은 게 입맛이 썼다.

 

솔직히 변상 문제는 내가 요구하기 전에 먼저하고 사과를 해야 원칙이다. 그렇다고 책을 변상 받을 때 재대로 된 사과를 받은 것도 아니었다. 마치 안 해 줘도 되는 일을 해준다는 태도로 무례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도 모른 척 하고 손을 털려고 했다. 과연 사람은 겪어보니 알겠다 싶었다. 

 

요즘 같이 책이 흔한 시대에 뭐 그런 일이 있나 싶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책이란(그것이 아무리 만화책이라도) 함께 나누고 공감하자고 빌려주고 빌려보는 건데 그 시절 그 아이나 나나 좀 미숙했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에도 책을 빌려주는 사람이 있을까? 돌려 받을 목적으로 말이다. 돌려 받겠다고 빌려 주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이것에 대해 빌려주는 사람이나 빌려가는 사람이나 서로를 얼마나 신뢰하고 그렇게 하는 것일까? 책이 흔해진 세상에서 없으면 또 사지 하거나, 알아서 돌려주면 모를까 어떻게 야박하게 돌려달라고 그러냐고 해서 돌려 받지 못하는 책이 있지는 않은가?

 

옛날부터 책도둑은 도둑도 아니라고 해서 서로 채무의식이 없는 것처럼 가볍게 생각하는 것이 지배적이었다. 과연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맞는 걸까?      

 

책도둑은 도둑도 아니란 말을 합리화 해서 공공도서관 같은 곳에서 반납 받지 못하거나 훼손 당한 책만 해도 엄청나다고 한다. 한때 좋은 마음으로 지하철에 무인도서관을 운영했지만 회수율이 저조해 아예 문을 닫기도 했다는 말을 듣는다. 조용히 도로 갖다 놓으면 더 많은 사람이 그 책을 읽을 수가 있는데 말이다. 이렇게 된 데에는 책 도둑은 도둑도 아니라는 생각에 책임의식이 희박해서가 아니겠는가? 

 

하지만 내 책 귀하면 남의 책도 귀한 법이다. 책도둑은 도둑도 아니란 말은 언제 왜 생겨났는지 모르겠다. 더구나 만화책은 책이 아니란 말인가? 그때나 지금이나 만화 좋아하는 사람이 알면 섭섭해 할 일이다. 

 

요즘 같이 책이 흔해진 세상에 누구는 책 보다 사람이 더 중요한 것 아니냐고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난 오히려 거기서 그 사람의 인격이 보인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만화책이라도 말이다.

 

어느 때, 누구에게든 지키고 싶은 책이 있다. 그게 남 보기엔 아무리 하찮은 책일지라도 말이다. 그것을 서로 존중해 줬더라면 적어도 그 친구가 나를 대하는 태도가 좀 달라지지 않았을까? 책 도둑은 도둑도 아니란 말은 그것으로 인해 한번쯤 상처 받아본 사람에겐 확실히 염장 지르는 말임에 틀림없다.

 

그나저나 그때 지리 선생님은 어쩌자고 그 귀하디 귀한 만화책을 그렇게 가차없이 찢어버리셨는지 모르겠다. 물론 그 시절 만화가 대접 받지 못했던 건 사실이지만 그 후 내가 대학 들어갈 즈음엔 만화는 제 8의 예술이라고 해서 그 위상이 몰라보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럴 줄 알았다면 선생님은 그냥 가지고 계셨다가 주위를 주는 선에서 마무리했어도 그 아이는 알아 듣지 않았을까? 어쩌자고 선생님은 그런 엄청난 일을 아무렇지도 않은 듯 했는지 모르겠다.


 

[1] 오빠는 고등학교를 들어가서야 비로소 만화를 안 보기 시작했다.

[2]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시절은 남학교와 여학교가 엄격히 구분되었던 때라 그런 것으로 이성에 대한 호기심을 그런 식으로 투사하고 풀었던 것. 그래서 캔디가 더 인기였고. 

[3] 아마도 그러한 작풍은 이후 나왔던 프랑스 대혁명을 배경으로 루이 14세와 마리 앙트와네트를 그렸던 만화 <베르사이유의 장미>에서 완성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재미있었던 건, 거기에 보면 오스칼이란 인물이 나오는데 작품에선 그다지 많이 다룬 것 같지않지만 사실 이 인물이 여잔데 마리 앙트와네트와는 내연의 관계라고 해 동성애를 조장했다 아니다로 의견이 분분했었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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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4-07-07 17: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는 만화책을 '쓰레기'에다 '나쁜 것'으로만 여겼고
아직도 이 흐름은 다 가시지 않았어요.

잘 살펴보면, '만화비평'이란 아예 없다시피 합니다.
신문이고 잡지이고
만화 신간 소개를 하는 기자는 찾아볼 수도 없으니까요 ^^

이제 와 돌이켜보면
이렇게 '오늘 새롭게 이야기를 쓰도'록
그때 그러한 일이 우리한테 찾아왔을는지 몰라요.

교사들도 그만 한 만화책은 스스로 읽어 보면
푹 빠져들었을 텐데... 아무튼......

stella.K 2014-07-07 18:04   좋아요 0 | URL
아, 정말 그렇네요.
만화비평이 없어요. 가장 대중적인 매체 중 하난데 말입니다.
만화에 대한 위상이 예전보다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많이 미흡하죠?
잘 지적하셨네요.

솔직히 지금도 그런 선생님이 계신지 모르겠지만
아이들 보는 앞에서 책 찢고 그런 몰상식한 일은 좀 삼가했으면
좋겠습니다.
압수했다 돌려주면 되는 것을.
선생님이 가르치는 것만이 중요한 건 아니잖습니까?
물론 1차적 책임은 수업시간에 딴짓하는 학생이 잘못이긴 하지만요.;;

2014-07-07 21: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7-08 17: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사춘기 시절 나는 꼭 한 번 선생님을 사랑한 적이 있다. 그것은 중학교 1학년 때 국어 선생님이었다.

 

아마 중학교도 초등학교처럼 남녀공학이었다면 내가 국어 선생님을 좋아하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것도 모를 일이다. 그때 나의 몸은 14살이었어도 생각은 그 보다 훨씬 앞섰으니 남녀공학을 다녔어도 또래 남자 아이들이 너무 어리다고 쳐다보지도 않았을지도.

 

어쨌거나 여학교였으니 이성의 선생님을 좋아했던 건 자연스러운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여간 해서 첫 눈에 반하는 스타일이 아닌데 국어 선생님은 거의 첫눈에 반하다시피 했다.

 

그렇다고 선생님이 아주 멋지고 잘 생겼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았다. 한마디로 저 이탈리아의 미켈란젤로가 완성했다던 다비드 상을 닮았다고나 할까? 그러면 잘 생긴 것 아니냐고 할지 모르지만, 글쎄 내가 동양 사람이어서 그런지 서양인의 기준에선 다비드 상이 아름답다고 할지 모르지만 난 한 번도 그게 감동하리만치 아름답다고 생각해 본적이 없다. 그냥 아름답다고 얘기하니까 그런가 보다 할 뿐.

 

특히 파마를 했다고 보기엔 너무 천연덕스러운 고수머리가 다비드의 머리를 연상케 했고, 갸름한 턱 선도 어딘가 모르게 닮아 보였다. 단지 다른 것이 있다면 검은 뿔 테 안경을 쓴 것이 지적으로 보이기도 했지만 다소 엉성해 보이기도 했는데 나는 그게 상당히 매력적이면서도 순수해 보였던 것이다[1]  

 

국어 선생님을 좋아했으니 국어 성적이 나쁘지 않았던 건 당연했다. 하긴 뭐, 초등학교 1학년 때 를 맞은 것만 제외하면 나는 어느 때고 국어 성적은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국어 선생님이 좋았던 건, 공부하다가 모르는 것이 있으면 언제라도 내가 눈에 띄면 달려와 물어보라고 했다. 그 말이 어찌 그리도 내 마음에 들어와 박혔는지 나는 선생님의 그런 순수한 면이 좋았고 마치 성당의 신부님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난 선생님 눈에 띄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고 지금 생각하면 질문 같지도 않은 질문을 수업 중에는 불쑥불쑥하곤 했다. 지금도 생각나는 건 점심시간을 공약했던 게 기억이 난다.

 

선생님께 무엇을 질문할 것인지는 며칠 아니 몇 주전부터 준비를 했고, 선생님을 어떻게 만나 질문을 할 건지 머리 속으로 시뮬이레션을 그려보곤 했다. 그리고 어느 날, 점심을 빨리 먹고 국어 선생님이 어디 계신지 찾았다. 마침 이층 복도 창문에서 아래를 살피고 있으려니 선생님은 학교 건물 현관에 계신 것이 발견이 됐다.

 

나는 혹시 입에서 반찬 냄새가 날까 봐 동그란 빨아 먹는 비타민 씨를 우물우물 급히 삼키고(그래도 입에서 반찬 냄새는 낫을 것이다. 그럴 땐 양치를 했던가 적어도 박하사탕 정도는 물어 줘야하는 건데), 선생님께 다가가 준비한 질문들을 쏟아 놓기 시작했다. 그것도 의자가 없어 계단 난간에 걸터앉아.

 

나는 무엇보다 질문을 핑계 삼아 선생님을 가까이서 느껴보고 싶었다. 국어 시간 먼 발치서 선생님을 보는 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나 보다.

 

솔직히 그때 난 질문이 마치고 교실로 돌아가는데 약간 휘청거릴 뻔했다. 내가 지금 뭘 한 건가? 정말 국어에 대해 알고 싶어서 이러는 건가? 내가 아무리 국어 선생님을 좋아한다고 어떻게 이러기까지 할 수 있을까? 솔직히 내가 좀 놀라긴 했지만 그 느낌은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난 얼마 안 있어서 국어 시험에서 내 생애 최고의 점수를 받았다. 그것도 선생님이 고읜지 아니면 하다 보니 그렇게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제까지 시험 중 가장 까다롭고 난해해서 한 반에 90점 넘는 아이가 한 손에 꼽을 정도였는데 내가 바로 그 손에 꼽을 아이들 중의 하나가 된 것이다. 그것도 문제 하나를 고치지만 않았어도 더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었을 텐데 무슨 부화뇌동이었는지 마지막에 답을 고쳐 쓰는 바람에 아쉽게도 하나를 더 틀리긴 했지만 어쨌든 기분은 좋았다. 그러자 선생님은 자랑스러운 얼굴들을 보고 싶어했다. 하지만 난 정작 부끄러워 얼굴도 들지 못했다.

 

 

그 무렵 나는 우연히 서점에 갔다 세계의 여러 유명 시인들의 시를 모아 놓은 책을 사서 읽기 시작했다. 그 중 영국의 시인 예이츠[2]를 좋아했는데 그의 시 하늘의 융단이란 시를 읽고 있노라면 어쩌면 시어가 그처럼 영롱하고 아름다울 수 있을까 외워버릴 정도였다.

                    

                                          하늘의 융단

                                     

                                             금빛 은빛

                                    하늘을 수 놓은 융단이

                               밤과 낮 어스름의 검푸른 융단이     

                                            내게 있다면     

                                   그대 발 밑에 갈아 드리련만

                                   나 가난하여 꿈만 가졌기에

                                    그대 발 밑에 깔았으니

                                    사뿐히 밟으소서

                                    내꿈 밟고 가시는 이여

 

하늘

그대그렇게 읽기 시작한 시집이 몇 권 된다. 그리고 나도 이런 시를 써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습작 삼아 몇 편 써 보기도 했다그런데 2학기에 접어드니 국어 선생님은 교지(校紙)에 실을 글을 모집한다는 광고하고 다니셨다. 그러면서 원고를 반장에게 내든가 나에게 직접 내도 된 다고.

 

마침 써놓은 시도 있겠다 난 나의 시들을 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난 그 원고를 반장에게 낼 수도 있었지만 교무실로 들어가는 국어 선생님 뒤를 밟아 직접 드렸다. 원고는 가을 어느 날 냈던 것 같은데 교지는 2월 종업식에 맞춰 나눠준다고 하니 그 안에 내가 원고를 냈다는 사실 조차 잊어버릴 것 같았다.

 

그리고 실제로 거의 생각을 안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후에 일어났던 일들이 그것을 생각 못할 만큼 급박했으니까. 그도 그럴 것이 언제나 불패의 화신 같았던 박정희 대통령이 가장 믿을만한 최 측근에게 권총을 맞았단다. 그건 정말 충격적이었다. 그 전날만해도 그런 징후는 전혀 없었던 것으로 아는데 그야말로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란 말은 이를 두고 하는 말 같았다. 정말 울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그저 멍한 느낌이었다.

 

다음 날 학교에 가니 분위기가 먹구름이 낀 듯 침통했다. 몇몇 아이는 훌쩍훌쩍 울기도 했다. 이런 아이들 틈으로 꼭 그런 아이가 있다. 슬픔은 둘째치고 누가 울고 누가 울지 않는가 세고 있는 아이 말이다.

 

나는 침통은 한데 아직 눈물은 나오지 않고 있었다. 도무지 뭐가 뭔지 믿을 수가 없었다. 날씨는 왜 또 그리 우중충한 건지. 반에 들어서자마자 그 아이는 너도 안 우는구나.”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 말고도 울지 않는 아이가 있다는 말인데 난 그것을 헤아려 볼 사이도 없이 신경질적으로 안 울긴 누가 안 울어!”했다.

 

그렇게 말하고나니 약간 미안한 생각이 들긴 했다. 그렇게 화 낼 생각이 아니었는데.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니 주워 남을 수도 없고, 일부러 심각한 척 고개를 푹 숙이고 내 자리에 가 앉았다. 그리고 이후에 우리나라에 어떠한 일이 벌어졌는지는 지면상 말하지 않겠다.

 

그런데 얼마 안 있어 국어 선생님의 결혼 소식이 나에겐 박정희 대통령의 서거 소식 보다 더 충격적이었던 건 어쩔 수가 없었다. 내가 그토록 사모했던 선생님인데 대통령이야 또 뽑으면 되는 것이지만, 국어 선생님은 누구와 바꿀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선생님은 내가 당신을 좋아한 것을 알았을까?

 

갑자기 선생님을 가까이서 느껴보겠다고 했던 나의 지난 날의 노력이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창피하게 느껴졌고, 꽤 오랫동안 내가 그 선생님을 좋아했다는 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또 의외로 충격에 강한 뭔가가 있었던 것 같다. 순간 침착하게 현실을 파악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분명 선생님의 결혼 소식은 슬프긴 했지만 생각해 보면 내가 선생님을 좋아해서 뭘 할 수 있단 말인가? 좋아하면 좋아한다고 고백을 해 보겠는가? 설혹 그런다고 해서 선생님과 데이트를 해 보겠는가? 나이가 어려 결혼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좋아하면 뭘 꼭 바래야 하는 것인가? 내 마음 아주 잠깐이지만 선생님을 좋아했던 그것 자체만으로도 좋은 것 아니겠는가? 그거면 됐다고 나는 어느새 나 자신을 다독이고 있었다.      

 

선생님은 자상하고 좋은 분이셨다. 어느 비 오는 날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데 우산도 쓰지 못하고 가는 나를 불러 버스 정류장까지만이라도 같이 쓰고 가자고 나를 부르셨었다. 하지만 나는 한사코 괜찮다며 거절했다. 그러자 결국 선생님도 나를 포기하고 다른 아이와 함께 우산을 쓰고 빗속으로 유유히 사라졌다.

 

그때 마음 한 켠에 후회가 이는 건 또 뭐란 말인가? 못 이기는 척 하고 선생님 우산 안으로 들어설 걸 그랬나? 하지만 그때 그러지 않기를 역시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날 선생님은 퇴근 시간도 아니었는데 비교적 일찍 교문을 나섰었다. 그런 걸 보면 결혼할 여자와 함께 살 집을 보러 갔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렇게 남의 남자가 될 걸 욕심 내 뭐 하겠는가?

난 그때 이후로 다시는 그 어떠한 선생님도 좋아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어느덧 긴 겨울 방학도 끝나고 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1학년의 마지막 날이 왔다. 그 동안 거의 잊고 지내다시피 한 교지가 드디어 나왔다. 상급 학교엘 진학하니 이런 것도 받아보고 어지간히 감격스럽기도 했다. 무엇보다 내 글이 실렸을까? 기대 반, 설렘 반으로 교지를 펼쳐 보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앞으로 봐도 뒤로 봐도 내 글은 단 한 글자도 보이지 않았다. 난 그제서야 그 가을 날 교지에 대한 국어 선생님의 세부 공지사항이 생각났다. 즉 선생님은 원고를 낸다고 해서 다 실리는 것이 아니라고 했었다. 그런데 나는 선생님께 원고를 드리는 순간 그 말은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설마 아버지도 감동해 눈물을 흘리셨다는 필력의 소유자의 글이 교지에 실리지 않을 거라곤 생각도 못했던 것이다.

 

좀 씁쓸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실망하지는 않았다. 나는 장점인지 단점인지는 몰라도 포기가 빠르고 금방 잘 잊어버린다. 단 학교 교지의 수준이 생각 보다 높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그때 교무실로 들어가시던 국어 선생님의 뒤를 밟아 일부러 직접 전달한 나의 모습이 새삼 창피해 죽을 건만 같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반장한테 낼 걸 무슨 근거 없는 자신감이라고 국어 선생님 손에 직접 쥐어드릴 생각을 했던 걸까?

 

그나마 다행인 건 선생님은 이제 결혼을 했고, 2학년 땐 다른 선생님이 국어를 가르칠 것이니 마주칠 일이 없었다. 그리고 이제 교지 역시 다시는 건 응모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1] 나는 그 무렵 안경에 관심이 많았는데 지적이면서도 선해 보인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난 아직도 안경을 쓰지 못하고 있고, 그런 생각도 크면서 점차 바뀌었다.  

[2] 윌리엄 예이츠 [William Butler Yeats] 아일랜드 시인 겸 극작가. 환상적이며 시적인《캐서린 백작부인》을 비롯하여 몇 편의 뛰어난 극작품을 발표했으며 1923년에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였다. 독자적 신화로써 자연(자아)의 세계와 자연 부정(예술)의 세계의 상극을 극복하려 노력했다.(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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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기침 2014-06-26 0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오랜만에 예이츠의 시를 보게 되네요. 좋은 밤요. 꾸벅^^

stella.K 2014-06-26 11:56   좋아요 0 | URL
푸른기침님, 반갑습니다.
예이츠를 아시는군요. 그러니까 더 반갑네요.
우리나라에선 그다지 많이 알려지지 않아 모를 수도 있는데 말입니다.
저 시를 중학교 때 외우고 잊고 있었는데
최근 이 글을 쓰려고 하다보니 얼추 생각이 나더라구요.
신기했습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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