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스트, 이번호는...  

 

악스트의 장점이라면 가격이 파격적으로 싸다는 것과 그렇다고 해서 그 내용이나 질이 결코 나쁘지 않다는 것이다. 식당에서 밥 한끼 먹으려면 보통 7,8천원 줘야하는데 그런 와중에도 천원, 이천원하는 밥집이 있다고 한다. 그럼 눈물나게 고맙고 정감이 가는데 이를테면 악스트도 그런 것 같다.

 

보통 문학잡지가 권당 만원이 넘는데 이렇게 정이 가는 가격의 잡지가 있다니. 내가 만일 훗날 작가로 등단한다면 작가가 되는데 적지 않은 영향력을 받은 책 목록을 묻는다면 거기에 악스트를 포함시키겠다.ㅋ 

 

물론 두께에선 다소 차이를 보이긴 하지만 잡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보는 사람 별로 없지 않나? 그렇게 생각하면 슬림하다고 할 수 있다(하긴 난 이 슬림한 잡지도 처음부터 끝까지 보지 않지만). 

 

그런데 여전히 단점은 글씨가 너무 작다는 것. 그나마 창간호는 전체적으로 깨알 같은 것에 비해 이번호는 어떤 지면은 크기가 컸던 것도 같다. 하지만 그냥 큰게 아니라 어떤 지면에 상대적으로 크다는 것뿐 전체적으로는 여전히 작다는 느낌이다.  눈 나쁜 사람도 악스트를 읽을 권리가 있는데 그 점은 악스트가 시급히 해결해야할 점이 아닌가 한다.

 

아직 읽고 있는 중이긴 하지만 제일 먼저 눈에 띈 건 요즘 핫한 작가 중 한 사람인 장강명의 기사였다. 그도 전업작간데 전업작가가 그렇듯 그 역시 시간을 허투로 쓰지 않는 사람이었다. 꼭 만날 사람이 아니면 한가하게 사람을 만나는 경우는 별로 없다. 물론 전업으로 글을 쓰느니만큼 그가 선택한 삶이니 각오한 일이겠지만 새삼 대한민국에서 작가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또 한 번 스산함이 느껴졌다. 그래도 요즘엔 부지런히 쓴 덕에 예전만큼 각종 문학상에 연연해 하지 않는다고도 하는데 그 말에서 괜히 착한 흥부의 이미지가 느껴진다.        

 

또 하나 눈에 들어오는 건 배수아가 번역을 맡은 한 장 짜리 소설 두 편이다. 난 한 장짜리 소설은 쓸 엄두도 안 날 것 같은데 상당히 인상적으로 잘 썼다. 앞으로 계속 실릴 모양인가 본데 기대가 된다. 

 

그런데 역시 악스트에서 가장 하이라이트는 작가와 나눈 인터뷰가 아닐까 한다. 창간호에선 천명관이 독자의 눈을 사로잡았는데 이번에는 박민규다.  독자인 나로선 나름 적절한 대상이란 생각이 들고, 벌써부터 다음 호 인터뷰 대상자는 누가될지 궁금하다(개인적으로 김경욱이 됐으면 좋겠다. 요즘 내가 이 작가에 꽂혀 있는 관계로 ).  

 

 

역시 민규 형님은...

 

천명관 때도 그렇게 느꼈지만 박민규 역시 후배 작가들은 생각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과부가 과부의 심정을 안다고, 작가의 길이 그리 쉽지 않으니 선배로서 후배를 챙기는 마음이야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실 박민규의 별스러움이야 그의 작품 보다 더 잘 알려진 사실이고(어느 핸가 동인문학상 수상식 때 타이거 마스크 쓰고 찍은 사진은 아직도 뇌리에 남아 있다), 인터뷰 기사를 보니 나름 포복절도할 내용도 나온다. 그것은 언젠가 이곳 알라딘이 내 인생의 책을 선정해 달라고 했단다(이런 건 또 언제했나?). 그런데 그의 답이 걸작이다. 자신의 인생의 책이 <허슬러>란다. 허슬러가 무엇인가? 도색잡지 아니던가? 처음엔 웃었지만 역시 박민규란 생각이 들었다.

 

그는 그때 부연 설명에서, 어렸을 때 자신은 책만 펴면 잠부터 밀려오곤 했단다. 그런데 처음으로 허슬러를 통해 책을 골똘히, 끝까지 보는 습관을 기를 수 있었다고 한다. 그 책 덕분에 자신이 작가가 될 수 있었다고. "또 뭐,, 지금도 비스마르크를 읽고, 노자, 장자를 읽고... 그러고 나서도 갑자기 <허슬러>를 보면 우와, 엉덩이다! 하는... 그러니까 말도 안 되는 나라는 인간의 모순을 늘 깨우쳐주기 때문에 내 인생의 책이라고 생각한다... (134p) 고. 뭐 끝까지 본거야 이해할 수는 있다고 쳐도 그게 뭐라고 골똘히 보기까지 했을까?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뭐 형이상학과 형이하학의 이상적인 조화를 추구했을까?

 

그런데 이런 별스러움은 박민규 한 사람으로 족했으면 한다. 혹시라도 작가 꿈나무 중 박민규 코스프레 하겠다고 할까 봐. 물론 그렇게 해서라도 문학 대들보가 나온다면야 말릴 건 아니겠지만 그러다 삼천포로 빠진다면 그 안타까운 인생을 어찌할 것인가.

 

참고로 난 초등학교 5학년 여름 처음으로 말로만 듣던 도색잡지를 보았다. 이제 막 중학교에 들어갔던 오빠가 가방에 넣고 다니던 걸 엄마의 눈에 띄어 보게 되었는데, 놀랍고 야릇하기도 했지만 나 보다 2살 많았던 오빠가 갑자기 훌쩍 커 보인 느낌이었다. 중학교에 들어가니 노는 차원이 달라졌구나 싶은 것이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이제 겨우 1학년이다. 1학년 짜리가 벌써 그런 거나 밝히고. 엄마로선 이놈의 자식이 이담에 커서 뭐가 되려고 할까 한심했을 것이다. 지금은 도색잡지가 어떻게 나오는지 모르겠지만 그때보고 느낀 건 왜 도색잡자는 여인만 나오는지 모르겠다는 거다. 남자도 나와야 하는 거 아닌가?

 

 

박민규, 그가 말하는 한국문학

 

올해 한국문학계를 뜨겁게 달군건 역시 표절이다. 그도 얼마 전 표절의 도마위에 올랐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아무래도 그것에 대해 할 말이 없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인터뷰 기회가 왔으니 한마디 안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표절에 대체로 온건한 입장이란 느낌을 받았다. 지금까지의 양상을 보면 표절에 대해서는 작가들 보단 독자들이 더 공분했고 강경한 인상이다. 마치 뭐에 사기 당한 양. 하지만 독자도 표절에 대한 다양한 입장과 반응을 들어봐야 할 것 같다. 그것에 대해 박민규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문학에 대해서 '순수'의 감옥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표절에 대한 규정 내지는 가이드라인조차 마련되 있지 않다고 한다. 도작, 위작, 모방, 인용, 차용, 도용...어느 하나도 세부 협의된 기준이나 범위가 없다는 것이다. 그저 막연한 '표절'한 단어에 의지한 채 지금까지 왔다는 얘기지. 이는 곧 교육을 할 수 없었다는 얘기기도 하다. 나도 문창과를 다녔지만 그런 교육을 받아 본적이 없다. 더 놀라운 것은 지금도 여전히 이에 대한 교뉵이 없다는 사실이다. 글을 잘 쓰고, 등단을 하고 작가가 될 훈련만 받을 뿐 이에 따르는 위험 내지는 안전수칙에 대해서 어떤 준비도 대책도 없다. ...... 표절이란 명사엔 '남의 문장을 훔쳐 쓴 것' 외에는 다른 뜻이 없다. 예컨대 천 매가 넘는 소설에서 한 문장만 같아도 표절은 표절인 것이다. 나는 이것이 18세기에나 적용될 판단기준이라고 생각한다. 저작물의 수가 현저하게 적고 '3434/3444/3543 詩歌가 문학의 기준일 때를 말하는 것이다. 한 문장이 전체 작품의 3분의 1을 차지하던 시대니까.(141~142p)

 

정말 어느 것을 가지고 표절이라고 해야할지 모르겠다. 저작물이 워낙에 많은 세대에 살고 있으니 내가 누구의 것을 나도 모르게 표절했는지도 모르고, 아니면 그 반대로 표절 당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스캔들이라고, 적용의 문제에 감정의 문제가 끼어들 수도 있고, 이젠 여기저기서 하도 표절, 표절하니 또 그런가 보다고 무뎌질 것도 같다. 하지만 의도성이 있느냐 없느냐 또는 표절을 그렇게 한 단어로만 하지 않고 여러 동의어로 적용할 수 있다면 표절은 그것을 한 사람의 양심의 문제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표절을 했느냐 안 했느냐를 가려내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이 표절 작가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바라 볼 것이냐도 중요하지 않을까? 얼마 전 작가 신경숙 씨가 미국에서 작가 활동을 재개하겠다고 했다. 우린 신경숙 씨가 표절의 도마위에 올랐을 때 이 사람 작가 인생 끝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 문제가 수그러들자 그녀의 그런 보도를 접하게 됐다. 하긴, 그녀가 도덕적으로 잘못한 건 사실이지만 작가 인생을 정리할만큼인가를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평생 그것으로 밥 먹고 살았을 텐데 그 일을 접는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인가? 그렇다고 또 한쪽으로 생각하면 자성을 촉구하는 정도로는 부족한 것 같기도 하다. 물론 그녀를 옹호하는 사람이야 그녀의 작가활동 재개를 환영하겠지만 너무 성급한 결정은 아닌가 하는 우려의 시각도 없지 않을 것이다. 작가도 어차피 매문가다. 글을 써서 팔아야 먹고 사는 존재. 상인에게 상도가 있듯 매문가에게도 매문의 도가 있지는 않을까? 만일 그게 있다면 표절에 대한 교육과 함께 이것도 교육을 해야하는 것은 아닐까? 저작이 많은 세상에 살면 살수록. 

 

 

문학은 섹스 같은 것이라구?

 

앞서 박민규는 문학에 대해 순수의 감옥에서 벗어날 것을 주문했다. 굉장히 의미심장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표절의 문제와 문학계의 카르텔을 지켜보면서 대중은 문학 너 마저 ...?하며 통탄했다는 말을 들었다. 문학 청정의 이미지가 손싱된 것마는 틀림없다. 우리나라가 예로부터 무 보다 문을 숭상해왔던 민족성과 관련이 없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엄밀히 생각해 보면 문학은 그렇게 성스럽지마는 않을 것이다. 문학이 뭐라고 그렇게 성스러워야 하는 것인가? 

 

하지만 이런 이미지를 강요해 왔던 건 작가들 자신이 이니었을까? 문은 천한 것일 수가 없으니까. 자기가 자기 발등을 찍은 꼴은 아닌지. 각종 문학상이 그 권위를 얼마나 뽐내려고 발버둥치고 있는가? 그래서 문학상을 못 받은 작가는 작가라고 명함도 못 내민다. 이에 대해 박민규는, 이제라도 '순수'의 감옥을 벗어나야 한다.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자칫 순수라는 창살에 '순결'이라는 창살마저 덧씌워질까 우려가 들어서다. 작가에게 문학은 숭배의 대상이 아니라 섹스의 대상이어야 한다(144p)고 말했다. 

 

이 말이 의미하는 바가 크긴 하다. 문학 스스로가 지고 있는 권위의 갑옷을 벗을 필요가 있다. 그리고 속되고 B 급 언어로 가득 채워진 문학은 문학이 아닌 양 바라보는 시각도 좀 덜어낼 필요도 있어 보인다. 그런데 우리의 민규 형님 뭔가 좀 어버하는 느낌도 든다. 문학이 숭배의 대상이 아니라 섹스의 대상이라니. 뭐 그 나름대로 이해 못할 건 아니지만 왜 하필 비유를 그렇게 했을까?

 

그가 섹스라고 말할 때 섹스는 오늘 날 배설, 쾌락, 카타르시스의 의미와 동의어가 되어버렸다. 문학이 관연 그런 건가? 하지만 섹스도 알고 보면 상당히 복잡한 철학과 윤리학, 생리학을 왔다갔다 하는 문제다. 고전적 기독교 진영에서는 섹스는 오늘 날 그렇게 타락했지만 알고 보면 섹스는 원래 거룩한 거라고 말하기도 한다. 어쨌든 그렇게까지도 말하기도 하는데 그렇게 단순하게 말할 차원은 아니지 않을까? 아무래도 허슬러의 영향이었을까?

 

이밖에도 우리의 민규 형님은 여러 많은 대화를 나눴지만 여기서 줄인다. 창간호 천명관 때도 그랬지만 읽으면서 우리 문학과 그 나갈 바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는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의 민규 형님은 사진에서도 결코 기죽지 않는 카리스마를 작렬하고 있다. 꼭 홍콩 배우 같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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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5-10-08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폰트 작으면 일단 눈이 아파서 못봅니다.(블로그 폰트조차 키웠거든요..)

stella.K 2015-10-08 17:50   좋아요 0 | URL
그러게 말입니다. 지금이야 좋아서 무릅쓰고 보겠지만
독자의 마음도 갈대 같은지라 언제 안 보게될지 모라요.ㅠㅋ

아이리시스 2015-10-08 1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응, 저도 이거 살래요. 두권. 이건 기간 지나도 품절같은건 안될까요? 덜팔려서 여전히 지난호도 있는거겠죠?

stella.K 2015-10-08 17:54   좋아요 1 | URL
아이리스님, 오랜만이여요. 잘 지내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벌써 중고샵에도 있던 걸요?
전 이 책으로 우리나라 문학의 현주로를 알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제가 지금까지는 우리 문학에 대해 그다지 아는 바가 없었거든요.ㅋ

스윗듀 2015-10-08 1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K님과 마찬가지로 악스트를 통해 한국문학에 대해 많이 알게 됐어요. 재밌다는 사실도요. 잘 읽고 갑니다😊

stella.K 2015-10-09 10:45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이 잡지는 기대가 많이 되요.
우리 열심히 읽어 보아요.^^

cyrus 2015-10-08 2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싼 가격으로 매겨진 책의 운명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글자 크기가 너무 작아요. 올재 클래식스 시리즈도 그래요.

stella.K 2015-10-10 20:16   좋아요 0 | URL
그래? 글씨만 빼면 솔직히 나름 고급진데.
종이 질도 싸구려가 아냐. 하지만 솔직히 난 종이가 반사가 되서 그것도
조금 부담스럽더라구. 그냥 일반 종이를 써도 좋을 것 같은데
그럼 단가가 좀 싸지 않나?
올재 클래식도 그러는구나. 그렇다면 그 시리즈는 나와는
인연없다고 봐야겠네. 난 이제 글씨 작으면 못 읽어주겠더라.ㅠ

페크pek0501 2015-10-10 16: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씨는 크고 볼 일입니다. 이젠 눈 피로해서 작은 글씨가 싫더라고요.
가격에 비해 내용이 좋은데 글씨가... 참 아쉬운 일입니다.

stella.K 2015-10-10 18:34   좋아요 0 | URL
저도 조만간 안경을 하나 맞춰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전에 루테인이란 눈 영영제가 있다는데 먹어 본 사람은 효과가
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걸 먹어 볼 생각입니다.
지금까지 평생 써 온 눈인데 제가 제 눈을 위해 해 준게 아무 것도 없더라구요.
그래서 제 눈을 좀 위로해줬야겠다 싶어서요.ㅠㅋ
 

이응준이란 소설가로부터 촉발된  신경숙 소설의 표절 문제는 그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우리 문단에 고착화된 문제가 무엇인가를 더불어 알게하는 개기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어찌보면 이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내가 아는 것만 해도 작년에 읽었던 이명서의 소설 <당신들의 감동은 위험하다>를 통해 우리나라 문단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여실히 드러내주었다. 하지만 이 책은 작년에 처음 나왔던 책이 아니고 오래 전에 나왔다 최근 개정판이으로 다시나왔다. 그러니까 오래 전부터 젊은 작가를 중심으로 우리 문단을 성토했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것에 귀를 기울였던 사람이 얼마나 될까?

 

솔직히 나도 그 책을 처음 읽었을 때 판도라의 상자을 연것처럼 혼란스러워 오히려 이 책을 비판적으로 봤던 것도 사실이다. 이 같은 나의 태도는 우리나라 문단을 잘 몰라서가 아니라 오히려 너무 성스럽게 본 나의 무지의 소치였는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그 세계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무조건 그 세계를 동경만 하면 그런 오류를 범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나 같은 무지의 속박을 깬 도끼 같은 책이기도 한 셈이다. 또한 그 책을 통해 문단계도 예외없이 권위주의적 카르텔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사실 난 신경숙의 표절 논란이 제가 됐을 때 신경숙도 신경숙이었지만 이 이응준이란 작가가 새삼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세계도 층층시야일 텐데 그 무림고수의 세계에서 그런 목소리를 내기란 얼마만한 용기가 필요했을까? 그는 요즘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하다.    

 

격월간지 <악스트>를 읽다가 난 또 이와 비슷한 작가를 한 명 더 발견하게 됐다. 그는 다름아닌 커버에 나온 천명관이다. 그는 이 잡지를 통해 우리 문단계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요즘 신인들의 글을 보면 다들 너무 똑똑하다. 이미 등단에 나올 때부터 준비가 되어 있는 느낌이다. 이렇게 써야 등단을 하고 어떻게 써야 문학상을 받는지 영악하게 알고 있다. 나는 작가들의 상상력과 취향이 공장에서 생산된 것처럼 다 비슷비슷하다는 걸 믿을 수가 없다. 그리고 한 주머니에 다 담아도 빠져나오는 송곳하나 없다는 게 이상할 정도다. 결국 선생님들의 시선이 절대적인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는 뜻이다. 그 시스템이 반백년 넘게 문단을 지배하고 있다. 바깥에서 보면 믿기 어려울 정도로 권위적이고 전근대적이다.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봐도 나쁜 짓이다.(95p) 

 

이런 글을 읽으면 적어도 이 범주안에 속하는 작가들은 대입을 위해 논술학원을 비롯해 인성학원까지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비판하거나 비난할 자격이 없어 보인다. 왜냐하면 그들도 그다지 나을 것이 없으니까. 그리고 천명관의 말이 사실이라면 어디선가 이런 작가를 키우는 집단과 그 집단의 우두머리가 있다는 말일 것이다. 이미 각 일간지의 신춘문예는 입신을 위한 신 과거제도가 된지 오래다. 어떤 문단계 문인이 작가지망생을 모아 도제식으로 가르쳐 가장 많은 신춘문예 입상자를 냈다는 말이 공공연한 말이 아니다.   

 

어쨌든 꼭 천명관의 말이 아니더라도 어쩌다 지인들과 만나 얘기를 해 보면 요즘 작가들의 작품을 선택하기가 주저하게 된다는 얘기를 심심치않게 하게되곤 한다. 재미도 없는데다 뭔가의 자의식에 빠진 듯해서 선뜻 선택하기가 꺼려지는 것이다. 그래도 계란으로도 과연 바위가 깨어지는지 요즘엔 그나마 한 두 작가는 애정이 가기도 한다.  

 

더구나 요즘 책 값이 만만치가 않고 물가가 오르면 가장 먼저 줄이는 것이 문화비고 그중 도서구입비를 지출목록에서 아예 제외시키는 형편이고 보면 그 작가가 아무리 빼어난 문체를 자랑한다고 해도 일반독자에게 선택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러니 그렇게 똑똑한 글을 쓴 신인작가들에 대해 뭐라고 하기가 미안한 것도 사실이다. 어쨌거나 한 주머니에 들어가건 안 들어가건 얼마나 힘들게 여기까지 왔겠는가? 그리고 일반독자들의 이런 밑도 끝도 없는 동정론이 문학계의 고질적인 문제를 부추겨 왔는지도 모른다.

 

게다가 작가들 스스로가 갖는 묘한 사고들이 문제를 크게 만들을 것이다. 이를테면 천명관은 말하는 문학을 종교로 보는 숭고한 신념 같은 것들. 근대 시대만 해도 이런 생각이 먹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본주의 시대에서 이런 생각을 고수하기란 얼마나 전근대적인가? 그는 말한다. 문학에 숭고한 신념은 필요치 않으며 오히려 기술이 필요한 일이라고. 그는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캐롤 오츠의 <작가의 신념>이란 책을 인용하기를 좋아한다. "문학에 예술만 있고 기술이 없다면 개인적인 일일뿐이다. 반면에 기술과 예술이 없다면 그것은 밥벌이에 지나지 않는다."고.    

 

그의 말을 더 들어 보자. 그는 이런 분위기에 일조하는 건 문학상 제도에 있다고 했다.

"대부분 단편에 주는 상인데 상은 여러 개이지만 문학상을 평가하는 기준은 획일화 되어 있다. ...... 매 시즌 문학상을 놓고 겨루는 이 리그에선 장편 보단 단편이, 스토리 보단 문장이, 서사 보단 묘사가 더 중요하기 때문에 당연히 대중의 취향과는 괴리가 있다."

      

 

사실 우리나라 문학상에 대한 비판은 천명관이 처음은 아니다. 이미 소설가 방현석도 <명작의 탄생>이란 책에서 같은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요즘 신춘문예나 문예지 신인들을 뽑는 기준이 아예 다 똑같아요. 특징도 없어요. 저는 그게 걱정이고 문학 발전의 저해요인이라고 봐요. 우리나라 등단제도는 세계에서 몇 안 되는 아주 독특한 제도이죠. 글 쓰는데 무슨 라이선스가 필요해요? 무슨 영업허가서도 아니고.(225쪽)" 

어찌보면 이 문학상에 대한 권위의식은 우리나라 문단사회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천명관은 말한다. 

"처음 문단에 나왔을 때 누군가 나에게 조언을 한적이 있다. 벙어리 삼 년에 귀머거리 삼 년, 시집살이 한다고 생각해라. 그리고 덕을 쌓으라 처신을 잘하고 인맥관리를 잘하라는 말이다. 한국사회가 대체로 그런 분위기라는 건 알고 있지만 문단조차 그럴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하지만 실제로 경험을 하고 보니 문단엔 절대로 무너지지 않는 권력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그것을 문단마피아라고 부른다. 출판사와 언론사, 그리고 대학이 카르텔을 형성해 시스템을 만들고 작가들을 지배하고 있다. 작가는 더 이상 문단의 주인이 아니다. 선생님들이 주인이다. 이런 의견에 대해 다들 펄쩍 뛰며 노발대발할 것이다. 하지만 권력은 언제나 그 권력 자체를 부정해왔다. 십수 년 전에 문단에도 권력논쟁이 있었다. 그때도 문단의 권력논쟁은 대표적인 가짜 논쟁이라며 권력자체를 부정하는 이들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모든 심사 자리에 앉아 있는 선생님들의 명단을 확인할 때마다 그 실체를 경험한다. 

지금의 문단 시스템은 독자와 상관없이 점점 더 대학에 종속되어가고 있다. 문창과가 없으면 문학도 사라질거라고 얘기들을 한다. 선생님들은 모두 대학을 근거지로 삼아 물밑에서 문단에 보이지 않는 영향력을 행사한다. 다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  

 

이것은 확실히 수위가 느껴지는 발언이다. 지금까지는 정치 개혁, 경재 개혁이런 것에 묻혀 문단은 성역화하고 개혁의 필요성엔 둔감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이것에 대한 대안은 있는 것인가? 천명관은 말한다.

"우선 작가들이 먹고 살 수 있는 판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선생님들이 먼저 숟가락을 거둬가야 한다. 편집위원이니 심사위원이니 하며 문학에 영향력을 행사하게 내버려둬선 안 된다. 그것은 마치 하나님과 신도들 사이에 끼어 권력을 누리던 중세의 성직자들과 같은 것이다. 작가와 독자 사이에 왜 선생님들의 지도편달이 필요한지 알 수 없다. 필요하다면 유능하고 영민한 편집자가 필요할 뿐이다. ...... 문학은 문학주의의 성채에 가둘 수 없는 역동성이 있다. 지금도 독자들은 재미있는 작품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보라.  영화판은 대학의 권위를 빌리지 않아도 잘 돌아가고 있지 않은가. 문단도 당연히 작가가 주인이 되어야 한다. 등단제도니 청탁제도니 문학상이니 다 때려치우고 문을 활짝 열어젖어야 한다. 대중 위에 군림하는 대신 대중과 소통해야 한다. 모든 걸 시장에 맡겨야 한다. 그리고 평가는 당연히 독자의 몫이어야 한다." 

이것에 대해 문학의 질적저하를 우려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그는 단호히 말한다.

"누군가 문학의 질적 저하를 우려하는 말을 한다면 장담컨대 그자는 틀림없이 나쁜 새끼다. 패거리를 짓고 조직을 만들어 권력자로 군림하려는 새끼가 틀림없다."  

그렇다면 누가 마피아나 선생님이냐고 묻자 그는,

"누군가 이 글을 읽고 불편함을 느꼈다면 그가 바로 마피아의 일원이거나 패밀리와 커넥션을 갖고 있는 작자일 것이다.(웃음)" 

읽는 나도 웃음이 났다. 하지만 난 이렇게까지 솔직하게 까발려 얘기하는 천명관의 말을 지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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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5-08-08 1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거 모르셨군요. 요즘은 문창과과 국문과 교수는 자기 파워를 위해 스파르타 식으로 문청에게 집중 교육을 시킵니다. 시 등단 몇 명, 소설 등단 몇 명 배출하느냐에 따라 교수 위상이 달라지죠. 그러다 보니 당연히 등단을 하는 사람들은 이들 심사 위원 구미에 맞는 스타일대로 따를 수밖에 없죠. 그래서 다 그게그거가되는 겁니다.

stella.K 2015-08-09 18:25   좋아요 0 | URL
조금은 알고 있었죠. 하지만 이렇게까지...? 하는 거죠.
제가 이 세계를 워낙에 동경했던지라 뭔가 성역 의식이 있었던 거 같습니다.

cyrus 2015-08-08 2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일부 독자들이 우리나라 문단의 현실을 잘 모르니까 성스럽게 보는 것 같아요. 책을 잘 안 읽는 독자가 한국소설을 읽게 되면 베스트셀러만 찾는 성향이 강해요. 제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제 주변에 책을 즐겨 읽지 않는 사람이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를 칭찬하는 모습을 봤을 땐 어색했어요. 그 친구가 신경숙의 소설을 강력 추천해도 읽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았고요. 저는 그 친구의 태도가 한국 문단을 너무 맹신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믿는 작가가 표절 문제 때문에 독자의 발등을 찍으면 독자 입장에서는 그 허무함과 배신감이 더욱 크게 느껴요.

stella.K 2015-08-09 18:30   좋아요 0 | URL
그런 생각이 들더라. 정치나 경제는 사범이 있잖아.
그런데 비해 문단계는 도덕적으로 잘못 됐다는 정도지
특별히 사범으로까지 몰아가진 않잖아.
그리고 문학은 일반 독자들에게 어쨌든 동경과 동정을 오가고 있으니
더 그런 것 같아. 지금이라도 자정 노력을 해야겠지.

2015-08-09 00: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5-08-09 18:35   좋아요 0 | URL
본문이 너무 길어서 다 옮기지는 못했는데
천명관도 정말 작가가 되고자 원한다면 문단 안에서
길을 찾으려 하지말고 바깥에서 찾으라는 말을 하더군요.
문단에 발을 들여 놓으면 그 시스템에 매여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하더군요.
확실히 새겨 볼 말입니다.

에밀 시오랑 같은 작가가 드물게는 있긴 하죠.
저도 이 작가의 책을 한 번 읽어 봐야할 것 같은데
도무지 짬이 안 나는군요.ㅠ

깜장고양이 2015-10-16 1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적어도 저는 천명관에게 `나쁜 새끼`는 아닌 것 같아 안도했다는. ㅎㅎㅎ


근데요, 쓰신 글 읽는 데 오타가 걸렸습니다. 수정 부탁드립니다~

~개기가 되기도 했다.
층층시야
빠져나오는 공곳하나 없다는 게

stella.K 2015-10-16 15:50   좋아요 0 | URL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제 글이 원래 오타가 좀 많습니다. 이 글 말고도...
그냥 그러려니 하시길.
고치느라 고치는데도 나중에 또 발견되더군요.
오타는 짬짬이 고치겠습니다. 그냥 이해하시길...ㅠ
 

 이런 잡지, 아무리 싸게 팔아도 8, 9천원 아니 만원에도 팔지 않을까? 모처에서 비슷한 시기에 장르문학 잡지가 나와 창간호 기념으로 사 봤는데 악스트 보다 약간 두꺼운 정돈데 만원이 훌쩍 넘었다.

 

뭐는 싼가 싶어 가격대비 내용이 나쁘지 않은 것 같아 그러려니 한단다만, 그후 이 잡지 발견하고 비명을 지를 뻔했다. 이렇게  착한 가격이라닛!

 

원래는 무가지로 배포하려고 했는데 서점에 들어갈 수 있는 가장 낮은 가격으로 판매를 한단다. 무가지였으면 오히려 마음 아플 뻔했다. 어떻게 이런 잡자를 무가지로...흐흑. 어쨌든 발견하는 순간  기쁜 소식이라고 했다. 할렐루야! 물론 내 처지에 문학잡지 하나 정도는 정기구독 해 줘야 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그러질 못했다. 물론 게으름이 문제겠지만, 그만큼 잡지에 대한 독자의 진입 장벽이 낮지는 않다고 본다. 그것을 악스트가 과감하게 낮춰 줬다고 생각한다.   

 

 바라기는 이 잡지와 쌍벽을 이룰만한 또 다른 잡지가 나와줬으면 좋겠다. 그러면 나 같은 독자는 행복에 겨워 매일 하루에 한 번씩 비명을 지를 것 같다. 물론 지금도 충분히 행복하지만. 별로 즐거울 일 없는 이 여름 날 이런 것에서 소소한 행복을 누리면 그도 살만하겠다 싶다. 내용도 그만하면 훌륭한 것 같고

 

 

그런데 아쉬운 게 하나 있다. 글씨가 작다는 것!  그래서 읽는데 애 좀 먹을 것 같다. 시력이 안 좋은 사람을 위해 다음 호엔 폰트 좀 키워주면 안 될까? 그럼 정말 좋을 텐데...!

 

아무튼 어제 천명관 인터뷰 기사를 조금 봤는데(눈이 나쁜 관계로 다 보진 못했다.ㅠ), 난 아직 천명관과 인연을 맺지 못했다. 그런데 조만간 인연을 맺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잡지와 그다지 친하지 않은 나는 여느 잡지 같았으면 안 보고 그냥 넘어갔을 것이다. 그래서 천명관도 그냥 요즘 그렇고 그런 작가라고만 생각했을 것이다. 모든 게 악스트 덕분이다. 

 

모쪼록 다음 호도 더 좋은 내용으로 우리를 찾아 와 줬으면 좋겠다.

악스트여, 영원하라!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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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애거사 크리스티의 <사랑을 배운다>를 조금씩 읽고 있다. 

어제는 주인공 어린 로사가 나이 많은 역사학자며 다소 괴팍한 존과 친구 아닌 친구가 되면서 이런 대화를 나누는 걸 읽었다.

 

... 존이 말했다. "넌 책을 어떻게 읽지? 처음부터 쭉 읽니?"

"네. 교수님은 안 그러세요?"

"안 그래." 존이 대답했다. "나는 앞부분을 보고 요지를 파악한다음 끝부분으로 가서 결말이 어떤지, 작가가 뭘 증명하려고 했는지 보지. 그리고 그후에야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 그가 어떻게 그런 결론에 도달했는지, 무엇이 작가를 그렇게 이끌었는지 살펴 봐. 그편이 훨씬 더 흥미진진하거든."

로라는 관심은 있지만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작가는 자기 책이 그런 식으로 읽히는 걸 바라지 않을 거예요."

"당연하지."

"저는 작가의 의도대로 읽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 존이 내뱉었다. "하지만 넌 빌어먹을 법률가들이 말하는 제2의 당사자를 잊고 있어. 독자 말이다. ...... 작가는 자기가 원하는 대로 책을 쓰지. 작가 멋대로. ...... 하지만 독자에게도 자기가 읽고 싶은 대로 읽을 권리가 있고, 그건 작가도 막을 수 없어."

"마치 싸우는 것 같은데요." ......

"난 그런 싸움을 좋아해." 존이 말했다. "사실 우리 인간들은 노예처럼 시간에 얽매어 살지. 시간의 순서 같은 건 아무 의미도 없는 건데 말이야. 영원을 생각한다면. 우린 얼마든지 시간 속을 내키는 대로 건너다닐 수 있어. 하지만 아무도 영원을 성찰하지 않지." (71~72쪽)

 

 이 부분을 읽으니 문득 오래 전에 보았던 영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의 한 장면이 생각이 났다. 정말 해리(빌리 크리스탈 분)은 그 비슷하게 읽었다. 잘 기억은 안 나지만 그는 목차를 읽은 후 바로 책의 맨 끝장을 읽는다. 결론이 끝에 나와 있는데 뭐 때문에 힘들게 처음부터 읽을 필요가 있느냐며 샐리와 옥신각신 하지 않던가?

 

꼭 그렇지 않더라도 우린 끝부분부터 읽으면 김이 빠진다고 해서 바득바득 처음부터 중간을 거쳐 끝장에 도달하려 한다. 하지만 또 생각해 보면 요즘 붙들고 있는 책중에 용케 이런 순서대로 완독이 이르는 책이 얼마나 될까? 한 권을 온전히 읽기가 갈수록 어려워 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반드시 그런 순서대로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작가가 그것을 원해서라기 보다 소극적이고 (여태까지 한 번도 그 룰이 깨진 적이 없는)객관화된 방식으로 읽기 때문은 아닐까?  난 일단 이 존 교수의 방법이 마음에 들었고 끝에 그렇게 말하는 것도 마음에 든다.

 

책에서 존은 매우 까탈스럽고 고집불통에 문제적 사람으로 그려지고 있는데 우린 또 그런 사람을 얼마나 싫어하는가? 생긴대로 사는 사람은 대체로 무난하지만 지루할 수도 있다. 그런 것처럼 책도 작가가 정해 준 방식대로 읽으면 지는 것이다.    

 독자여, 작가를 거슬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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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5-28 2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소설을 읽다가 줄거리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으면 책 뒷쪽 해설을 봐요. 그 소설을 쓴 작가가 카프카에요.

stella.K 2015-05-29 15:58   좋아요 0 | URL
프루스트는 안 보고?ㅎㅎ
아무튼 역시 카프카는 어려운 작가야.
난 읽는다고 하면 둘 다 봐야할 것 같아.ㅠ

페크pek0501 2015-06-03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라마 볼 때 뒷부분을 본 건데 어느 날 재방송으로 그 앞부분을 볼 때가 있어요.
이럴 때 참 흥미롭더라고요. 예를 들면 두 부부가 이혼한 것까지 봤는데
앞 부분에서 그들이 사랑하는 관계로 나오면 말이죠.
아, 이혼을 하긴 했지만 한때는 저렇게 뜨겁게 사랑을 나눈 사이구나, 이러면서
이혼하기까지의 과정을 흥미롭게 보게 되는 것이죠.

이런 재미를 알아서일까요? 극장에서 영화 볼 때 중간에 들어가 끝까지 보고
다시 처음부터 중간까지 보는 게 재밌다고 말하는 사람을 봤어요. 그럴 듯하지 않나요?

stella.K 2015-06-03 13:18   좋아요 0 | URL
저는 영화 전문채널을 볼 때 그럴 때가 있어요.
거긴 했던 영화를 한동안 또 틀어주고 또 틀어주고 하잖아요.
어쩌다 괜찮은 영화를 처음부터 못 볼 때가 있는데
어쩌다 저런 장면이 나올 수 있을까?
아무래도 상상을 하게 되죠.
이야기의 인과 관계를 이해하려면 처음부터 보는 것이 아니라
중간부터 보거나 아니면 아예 끝부분에서부터 보는 것도 괜찮은 방법인 것
같아요. 그래서 전 드라마도 그렇게 보면 좋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아직 시도해 보지는 못했네요. 확실한 공부가 될 것 같은데 말이죠.ㅠㅠ
 

 이책 나왔을 때 어쩌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그대로 썼을까 좀 놀라웠다.

 

이책은 우선 소개 글에서 '맨스플레인'이란 신조어를 소개하고 있는데, 일명 남자들이 무턱대고 여자들에게 아는 척 설명하려 드는 현상을 가리키는 말로, 미국에서는 2010년 < 뉴욕타임스> 선정 올해의 단어로 꼽혔고, 2014년에는 <옥스퍼드 온라인 영어사전>에 실리기도 했다. 이 정도라면 남자들은 한 번쯤 자신도 그러지 않는가 뒤돌아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또 그렇게 말하니 나도 일생 살면서 이런 남자 솔찮이 만나 봤다. 아니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남자들 거의 대부분 이런 기저가 있지 않을까? 가까이는 울아버지가 그랬다. 아버지와 친하게 지내는 방법을 몰랐던 어렸을 적 나는 아버지가 술을 자시고 늦게 들어오시는 날은 숨기 바빴다. 아버지가 술 드시는 날은 어김없이 우리를 붙들고 뭐라고 뭐라고 횡설수설 하는 날이 바빴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것도 나름 자식들과 어울리고 싶어하는 아버지 나름의 방식은 아니었을까? 그런데 그걸 맨정신으로 못하고 꼭 술을 드셔야 했던 것인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건, 한 20 몇년 전 스팸 전화 한 통을 받은 적이 있다. 그땐 핸드폰이 상용화되기 전이었으니 그런 전화를 걸러낼 수도 없는 일이고, 난 늘상 그런 전화가 오면 쌀쌀맞게 관심없다고 하곤 일방적으로 끊는다. 그래야 차후에라도 그런 전화를 안 받지 않겠는가? 그런데 누군지 모르겠는데 내가 쉽게 전화를 끊지 못하도록 계속 아양을 떨고 깐족거리는 것이었다. 뭐 이런 인간이 있나 싶어 조금 심하게 해서 전화를 끊었던 것 같다. 그렇다고 내가 무슨 쌍욕을 하고 끊었던 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쌀쌀맞기론 둘째가라면 서러운 성격이고 보면 그쪽도 기분은 어지간히 상했나 보다. 잠시 후 전화가 왔는데 이 인간 말하는 게 좀 웃겼다. 다짜고짜로, "야, 너 이빨에 무좀 났냐?" 그러는 것이 아닌가? 순간 하도 말 같잖아 역시 그대로 전화를 끊어버렸는데 약간 겁이 더럭났다. 이거 사이코 겸 스토커면 어쩌지?   

지금 같았으면 어떻게 했을까? "넌 어지간히 재수 무좀 난 사람인가 보구나. 그러니까 알지도 못한 사람한테 성질난다고 이러고 있지?" 그랬으면 날 죽이려 들었을까?

 

나의 20대의 마지막 시기를 교회 청년부에서 잠시 보낸 적이 있었다. 그때 나의 성경공부 조장이 나 보다 한 살 많은 소위 말하는 교회 오빠였다. 물론 난 나 보다 나이 많다고 아무나 오빠라고 하진 않는다. 그런데 이 형제님이야 말로 맨스플레인의 전형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땐 그를 함부로 맨스플레인으로 분류할 수는 없었고 조원의 이야기를 들어 준답시고 어느 정도 듣고 있다가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고 딱딱 정의를 내려주고 문제해결 방법을 제시해 주는데 그게 왜 교회 오빠처럼 느껴지지 않고 앞서 말한 미스터 스팸의 이빨에 무좀 난 것처럼 느껴졌는지. 그가 잘 쓰는 언어 패턴이 있는데, "뭐 뭐하면 참 좋겠어."란 말인데, 그래서 '형제님은 마음 먹은대로 그렇게 잘 사나요?'라고 묻고 싶었다. 하긴, 별로 못 사는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그래도 그 형제님은 훗날 청년부 회장까지 했으며, 자신이 원하는 여자와 결혼했으니까. 그것도 나랑 동갑내기 같은 성경공부 조원과. 그 친구가 당시 청년부 형제들에겐 나름 인기가 있었으니  그 형제님 입장에선 챙취한거나 다름없다. 하지만 어쨌든 나하고는 잘 안 맞았다.

 

또 하나의 맨스플레인의 전형은 애석하게도 내가 여기에 가끔 소개해 왔던 나의 글 공부 선생님이다. 난 이분을 일생 두 번 만나 공부를 했었는데, 뭐든 한 번이면 족하다고 내가 이 선생님을 다시 찾아가 공부한 건 정말 나의 실수이긴 했다. 이 선생님을 다시 뵙기 전엔 좋은 점만을 기억했던 것 같다. 이를테면 내 글을 보고 잘 쓴다고 칭찬했던 거라던지, 쫀득쫀득 찰진 언어를 구사하는 거라던지, 수강생과 이물없이 지내는 것에서 오빠 같은 느낌까지. 다시 뵈면 이런 추억들이 새록새록 피어나지 않을까 그런 기대도 없지 않았던 것 같다. 물론 다시 뵀을 때 분명 그런 면들이 여전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내가 기억하지 못한 것들과 마주했을 때 나는 조금은 당황했다. 그건 그 선생님에게 실망했다기 보다 사람의 좋은 면만을 기억하고 있는 내 자신이 바보 같달까? 

 

선생님은 산의 정기를 받고 사셔서 그런지 기가 세셨고, 무엇보다 좌중을 압도하는 언변은 사실 알고 보면 맨스플레인의 또 다른 이름이었을 뿐이다. 남이 말할 틈을 주지 않고 나를 포함한 수강생 전부는 거의 정자세로 듣고 있어야만 한다. 난 이 선생님이 이렇게 살다가 돌아가시겠구나 했다.

 

또 한 사람은 나의 한창 시절 나와 함께 연극을 같이 했던 N이다. 난 거기서 글만 썼지만 그는 스텝부터 시작해서 늦게 서울 예전을 들어가 팀장과 연출까지 담당했고 학교에선 회장도 했으니 나름 입지전적의 인물이다. 내가 정이 많아 그런지 아니면 녀석이 복이 있었던 건지 그래도 팀이 해체되고도 가장 늦게까지 연락하고 지내기도 했다.  

 

올해 봄이 막 시작될 무렵, 난 또 무슨 신기라도 들린 것처럼 갑자기 다시 연극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무렵 뭔가 연극을 다시 시작하게 될지도 모르는 길을 보았던 것 같았다. 그래서 몇 명 되지도 않지만 내가 아는 인맥을 최대한 동원해서 연락을 하고 거기에 당연 N이 빠질 리가 없었다. 그동안도 그는 나만 만나면 누나가 글만 쓰면 나머진 걱정하지 말라고 한마디씩 하는 고마운 존재였다. 하지만 그동안은 글 쓸 꺼리도 의욕도 없었으니 그런 말을 하면 그냥 고맙다고만 하고 넘기곤 했다. 그런데 녀석의 말을 지키게 해 줄 기회가 비로소 왔으니 내가 어찌 연락을 안하겠는가?

 

만나서 내 계획과 의도를 설명했더니 처음엔 흔쾌히 나를 도와주겠다고 했다. 나중엔 이런 말도 했다. "누나가 내가 싫다고 팀에서 나를 잘라버리기 전까지 저는 절대로 나 스스로 마음을 바꾸는 일은 없을 거예요." 이 얼마나 신의에 찬 피도 안 섞인 누나를 생각하는 마음인가? 그 말을 그동안 두 번쯤 했던 것 같은데 솔직히 나도 감동 먹었었다. 그래 너 밖엔 없어. 너 믿고 한다. 이 정도면 세상에 둘도 없는 오누이지간 같아 보였을 것이다.   

 

그런데 아뿔싸! 그는 가면갈수록 뭔가 처음과는 다른 느낌을 갖게 했다. 어느새 눈빛이 달라져 있었고 나를 도와주겠다는 본말과 달리 점점 꼬장을 부리는 것이심상치가 않았다. 물론 처음엔 자기 의견을 말하는 것처럼 하더니 나중엔 자기가 하려는 것이 정석인 양 거기서 한 발도 물러나지 않을 기세다. 

 

물론 그 일은 나중에 없었던 일이 되어버리긴 했지만 설혹 그렇게 되지 않았어도 녀석과는 같이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을 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도와주겠다는 사람의 자세가 아니며, 그것을 본인이 인지하고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또한 나를 위하는 척 하면서 결정적일 때 사람들 앞에서 함부로 말하는 그것을 보면서 내가 얘를 그동안 잊고 있었구나 생각했다. 

 

그렇지 않아도 그 시절 나는 그가 뭔 일만 앞두고 신경이 날카로와져 사고칠 것만 같아 윗선에 계신 분께 도움을 요청한 일이 있었다. 얘 좀 말려 달라고. 마침 그때가 생각이나 그 얘기를 들려줬더니 녀석은 실실 얼굴을 쪼개며, "그래서 그때 제가 그 말을 들었던가요?"한다. 그래서 잘은 기억은 안 나는데 좀 순해졌던 것 같았다고 얘기해 줬다. 그랬더니 "내가 누구 말을 그렇게 듣고 하는 스타일이 아닌데..."하며 말끝을 흐리는 것이 아닌가?

 

결국 난 일을 시작도 하기 전에 녀석을 잘라버려야 했다. 물론 녀석도 기분이 나빴을 것이다. 그렇게 의리와 신의로 똘똘뭉친 사람처럼 잘난 척 하더니 시쳇말로 개쪽 당하고 말았으니. 연출이 작가 보다 높다고 누가 말하던가? 연출이라고 시작도 하기 전에 갑질부터 하는 것도 꼴 사나웠고, 평소 때와 일할 때가 한결 같아야 하는데 N은 그것이 일치하지 않았다.

 

문득 그를 보면서 내가 걱정할 일은 아니지만 지금 그의 슬하에서 딸이 자라고 있는데 안 그래도 보수 꼴통 성향이 다분한 녀석이 앞으로 딸과 좋은 부녀지간으로 지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물론 세상엔 대화가 잘 통하는 남자들도 많을 것이다. 전에 없었던 단어로 일반화시키는 것도 위험할 수도 있고. 하지만 한번쯤 맨스플레인까지는 아니어도 자신이 남의 말을 잘 듣는 사람인지 아닌지 돌아 볼 필요는 있을 것 같고, 맨스플레인은 꼭 남자들에게만 있을 수 있는 건 아닐 것이라고 본다. 여자도 있을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을 어떤 프레임으로 볼 것이냔데 저 책의 저자는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본 것 같다.

 

남자들이여, 제발 듣는 귀를 가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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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돼지 2015-05-23 2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 남자라고 다 그런건 아닐거에요..
아시겠지만 남자 인간들도 여자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종류가 가지가지입니다
잘 골라서 사용하세요 ㅋㅋ

stella.K 2015-05-24 18:10   좋아요 0 | URL
ㅎㅎ 그런데 써 놓고 보니까 좀 거칠 게 쓴 것 같군요.
그러게요. 남자들도 가지가지일텐데 너무 여성적 편향으로
쓴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해요.
아무튼 말씀 새겨 듣도록 하겠습니다.^^

cyrus 2015-05-23 2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자의 절반은 여자의 말을 귀 기울이지 않아요. 우리 아버지가 그래요. 어머니가 무얼 하라고 제안을 하면, 아버지는 어머니의 말을 듣지 않고 본인 생각대로 행동을 해요.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하는 제안은 거의 다 좋은 쪽이었는데 아버지가 그걸 가볍게 넘기는 바람에 손해를 본 적이 많았어요.

stella.K 2015-05-24 18:11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 부인 말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단 말이
그냥 있는 말이 아니라니까.
넌 이 담에 결혼하거든 부인 말 잘 들어라.^^

cyrus 2015-05-24 21:10   좋아요 0 | URL
누님 말씀하시는 거 우리 엄마 같았어요. 엄마가 아빠랑 부부싸움 하고 나면 항상 하는 얘기거든요.. ㅎㅎㅎ

hnine 2015-05-24 04: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공부 선생님이란 S 선생님을 말씀하시나요??
저는 성질이 더 못돼서 그런지 남자뿐 아니라 가르치려는 말투로 말하는 모든 사람을 별로 안 좋아해요.

stella.K 2015-05-24 18:13   좋아요 0 | URL
네.ㅋ
저도 그래요. 거의 경멸하죠.
저 글 쓴 거 좀 보세요. 갈수록 과격해지고 있는데
그것을 반증하고 있지 않습니까?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