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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혹하는 글쓰기 (25주년 기념 라이터스 에디션) - 스티븐 킹의 창작론
스티븐 킹 지음, 김진준 옮김 / 김영사 / 2026년 3월
평점 :
기록을 보니 내가 이 책을 2006년에 처음 읽었다.
그때는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용기를 주는 그런 책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읽어보니 여전히 저자의 작법서이기도 하지만 일종의 회고록으로도 느껴졌다. 저자가 어떻게 작가의 꿈을 가졌으며 무슨 책을 썼는지, 어떻게 책을 내게 되었는지, 또한 간략하지만 어떻게 결혼하고 가정을 이루게 되었는지가 다 나와있다. 그럼 회고록이지 뭐야. 이 책이 그렇게 보이는 건 시간의 퇴적의 결과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모르긴 해도 그는 이번 생은 따로 회고록은 쓰지 않을 모양인가 보다. 썼다면 벌써 썼겠지. 나중에 평전이나 기대해 봐야 할 것 같다.)
될성부른 나무 떡닢부터 남다르다고, 그는 유년 시절 이미 트럭 6대 분량의 만화책을 봤다고 한다. 과연 만화책만 봐도 소설가가 되는구나 싶다. 물론 설마 그렇기야 하겠어? 다른 책도 봤겠지.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는 일 년에 7,80권의 책을 읽는다고 한다. 여느 작가들의 독서량에 비하면 작다고 겸손해 하지만, 작가고 아니고를 떠나 1년에 그 정도 읽으면 결코 적은 양은 아니다. 아무튼 그는 훗날 영화 시나리오 작업도 했다고 하던데, 모르긴 해도 이때 봤던 엄청난 만화책이 도움이 되었을 거란 건 쉽게 짐작해 볼 수가 있다.
또한 그는 중학시절에 얇은 페이퍼백 소설을 직접 쓰고 제작해서 학교 친구들에게 팔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나중에 담임 선생님에 의해 받은 돈은 모두 돌려주기도 했다고 한다. 그 이유에 대해선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았는데(맞나?), 아마도 두 가지 이유에서 그러지 않았을까 싶다. 하나는 그가 썼다는 소설은 당시 인기 있었던 영화를 소설로 각색한 거라고 하는데, 그 시절 저작권법이 어떻게 되는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남의 작품을 가지고 허락도 없이 2차 작업을 하면 법에 저촉이 될 것이다. 게다가 그때는 학생이 교내의 학생을 상대로 상(商)행위를 하면 안 될지도 모른다. 미성년자라.
그래도 어쨌든 그 어린 나이에 그런 발칙하고도 깜찍한 경험을 했다는 건 나중에 작가 활동을 하는데 작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왠지 그는 편집자나 출판사를 했어도 잘 했을 거란 생각이 든다. 그렇지 않아도 그 이후 그는 자신의 글을 출판사에 파는 방법을 터득했고 그 액수는 가면 갈수록 상승일로였다. 나중에 그는 책을 내는 방법들에 대해서도 소개를 했는데 어렸을 적 이 모습이 오버랩 되면서, 물론 그의 말대로 돈을 위해 글을 쓰면 안 되겠지만, 자신의 글을 어떻게 팔 수 있을까에 대해 좋은 경험을 했다고 본다. 그의 말마따나 독자는 언제나 재미있는 스토리를 원하고 돈을 쓰기를 아까워하지 않는다.
읽다보면 작가는 엉덩이로 글을 쓴다고 하는 말이 과연 맞는 말일까 의문스럽기도 하다. 그는 원고를 완성시키고, 여기저기 알만한 사람들에게 읽어보라고 권하기도 하고, 출판사에도 보내고, 출판 대리인도 구하고(우리나라에 과연 이런 직업이 있나?), 자신에게 맞는 문학잡지사에 계속 투고해 보라고 조언한다. 또는 자비 출판도 생각해 보고. 그런데 왠지 자비 출판은 뉘앙스는 좋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이 책이 처음 출판되고 20년이 흘렀다. 출판 인식이나 환경도 그때보단 바뀌었을 것이다. 1인 출판사도 많고, 인터넷 플랫폼도 생겼다. 무엇보다 그 유명한 프루스트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자비 출판하지 않았는가. 어쨌든 그만큼 하기도 바쁠 것 같다. 그런 것으로 보면 킹 아저씨는 엉덩이에 힘주고 글만 써 대는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 누가 작가를 게으른 직업이라 했는가. 한마디로 나 같이 게으르고 소극적인 사람에겐 작두 위에서 칼춤을 추라는 소리로 들린다. 그나마 이 책은 좀 순화되고 완곡어법을 쓰는 것 같다.
킹 아저씨는그렇게 유명한 작가인데도 왜 글을 이렇게 쓰나요, 저렇게 쓰나요 독자들로부터 온갖 지적질로 가득한 메일을 받는다고 한다. 수많은 거절 끝에 출판에 성공해도 이번엔 그런 문제에 봉착하는구나. 얼마 전,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는 길고도 묘한 제목의 드라마를 봤다(이 작품은 작가에게나 연출에게나 모험이었을 거라고 본다. 우선 소재가 일반적이지가 않고, 어느 특정한 창작 집단의 이면을 보여주는 거라 이 세계에 관심이 많은 사람은 좋겠지만 다수가 좋아하기는 좀 어렵지 싶다), 거기서 보면 업계에 대한 온갖 살벌한 말들이 오간다. 누가 무한 경쟁 사회 아니랄까 남 잘 되는 꼴은 절대로 못 봐주고, 사람들은 하나같이 열등감에 쩔어 깎아 내리기는 기본이고, 겉으론 축하해 주는 척해도 언제든지 진흙탕 싸움을 할 준비를 마친 상태다. 그 중심에 이제까지 주변을 배회하던 주인공을 중심부로 끌어와 그가 어떻게 자신의 길을 찾는가를 보여주는 드라마다(킹 아저씨께서 이 책에 중요한 건 플롯이 아니라 상황이라고 했던 바로 그 상황이다. 난 이 부분을 읽었을 때 얼마나 시원했던지). 그처럼 세상은 내가 성공하는 걸 원하지 않는다. 그걸 나도 좀 일찍 알았으면 좋았을 걸 그 드라마를 보고, 이 책을 읽을 때야 비로소 깨닫다니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작가는 역시 자신만의 표현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보통 그걸 소설에선 '문체'라고 하고 이는 작가의 지문 같은 거다. 이건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킹 아저씨 말씀하셨는데 그래서 그런지 표현력 하나는 끝내준다.
뮤즈는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가(......)여러분의 집필실에 너울너울 날아들어 여러분의 타자기나 컴퓨터에 창작을 돕는 마법의 가루를 뿌려주는 법은 절대로 없다. 뮤즈는 땅속에서 지낸다. 지하실에 산다. 그러므로 오히려 여러분이 뮤즈가 있는 곳으로 내려가야 한다. 내려간 김에 그의 거쳐를 잘 마련해 줘야 한다. 다시 말해 낑낑거리는 힘겨운 노동은 모두 여러분의 몫이다. 한편 뮤즈는 편안히 앉아 시가를 피우고 자신의 볼링 트로피를 흐뭇하게 감상하며 여러분을 싹 무시하는 척한다. 이런 상황이 공평하다고 생각하는가? 나는 그렇다고 본다. 물론 이 뮤즈라는 작자는 겉으로 보기에도 별 볼 일 없고 대화 상대로서는 빵점이다(내 뮤즈는 근무 중이 아닐 때는 대개 툴툴거리는 소리로 대답하는 정도가 고작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영감을 주는 능력이 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밤을 꼴딱꼴딱 새워가며 모든 노고를 도맡더라도 기꺼이 감수해야 한다. 작은 날개를 달고 시가를 입에 문 그 작자가 마법이 가득한 자루를 가졌기 때문이다. 그 속에 든 것이 여러분의 인생을 바꿔놓을 수도 있다. 내 말을 믿으시라. (173p)
이런 식의 다소 동화적이면서도 마법 같은 문장을 곧잘 쓴다. 이렇듯 전반적으로 글 잘 쓰기 방법을 가르쳐 주는 책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옛날에 깐깐하면서도 삼촌 같은 과외 선생님의 잔소리를 듣는 것 같기도 하다. 옛날엔 사춘기라서 그런지 잔소리가 제일 듣기 싫던데 지금은 그런 잔소리해 주는 사람이 없다. 물론 누군가 그러면 발끈하겠지만 이렇게 자기 경험으로 가득 찬 잔소리는 솔직히 그립기도 하다. 이를테면 많이 읽어라, 많이 써라. 부사는 빼라, 돈을 위해 글을 쓰지 마라. 기타 등등. 뉘라서 그런 집사 같은 잔소리를 하겠는가? 그건 잔소리가 아니라 친절이다. (제목은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의 패러디다. 알 사람만 알 것이다. ㅋ) 게다가 그 잔소리는 저자가 미쿡 사람이라서 그런지 전형적인 아메리칸 스타일이다. 뭐랄까, 자유로우면서도 거침이 없고, 유머와 현실을 자유롭게 오간다.
글쓰기에 관해선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고 생각한다. 오로지 글쓰기만을 전문으로 하는 강사 스타일과 이렇게 킹 아저씨처럼 작가들이 쓰는 문학적 향취가 그윽이 벤 이런 글. 나는 당연 후자 쪽을 더 선호한다. 그런 책을 돌아 돌아 이번에 다시 한번 읽으니 참 좋다는 느낌이다. 노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간간히 글을 내고 있는 것 같아 좋다. 난 요즘 90에서 2천 년대 문단을 호령했던 우리나라 작가들이 지금은 어디 갔을까 싶을 때가 있다. 독자야 그들이 어떻게 살든 그들의 작품을 읽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렇지가 않다. 독자는 그들의 작품을 읽든 말든 그들이 시퍼렇게 살아 있길 바라고 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나는 킹 아저씨 원작 영화는 몇 편 봤지만 정작 책은 한 편도 읽지 못했다. 개인적으로 공포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은 데다 미국 문학은 편차가 있어서 늘 순위에서 밀리곤 했다. 아무래도 아저씨에 대한 예의는 아닌 듯싶다. 조만간 공포물 치고도 좀 순한 것으로 한 권 읽어줘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