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지스탕스
이우 지음 / 몽상가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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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저자의 이름에서 조선의 왕자를 생각했다. 본명일까?

좀 놀라운 건 이 책이 이번에 처음 나온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난 2018년에 초판이 나왔고, 지금까지 3쇄가 나왔다. 조금 더 놀라운 건, 그렇게 쇄를 거듭할 때마다 다듬고 살을 붙여 개정판을 냈다는 것. 물론 쇄를 거듭하는 책들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리커버로는 나와도 여간해서 개정판을 내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미 작가의 손을 떠난 책에 애정이 남아 있을까? 책을 쓸 때 별의별 고생을 다해 썼다면 다시 쳐다보고 싶지 않을 것 같다. 설혹 어느 날 문득 자신의 책을 보고 대대적으로 손을 보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힐 수도 있겠지만, 예전에 개고생했던 것을 생각하면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을 것 같다. 개정판을 냈다고 책이 잘 팔릴 거란 보장도 못 하고. 그러니 애써 외면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쇄를 거듭할 때마다 그 수고로움을 기꺼이 감수하고, 지금까지 세 번의 작가의 말을 썼다. (모르긴 해도 근성 있는 작가인 것 같다.)


그런데 정말 놀라운 건, 이 작품이 지난 초판이 나온 이래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어느 누구의 문학 권력자 내지는 유수한 문학상을 주관하는 어느 출판사나 기관으로부터 아무런 주목도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아니 이렇게 빼어나고 훌륭한 작품이 어떻게 그들의 눈에 띄지 않을 수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나라는 신인문학상을 비롯한 여타의 문학상은 출판된 지 1년 안의 작품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줄로 안다. 그것도 장편이 아닌 단편에. 그것이 맞는다면 이 작품이 무슨 무슨 문학상을 받을 일은 과거에도 없지만 앞으로도 없을 것 같다. 나는 이 사실을 알았을 때 안타까운 마음이 컸다. 하지만 반면 뭔가 모를 쾌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이 작품은 소위 말하는 제도권을 벗어나 성공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 이 얼마나 레지스탕스적 아닌가?


세상의 모든 작가들 대부분은 문청의 시절을 지난다. 그도 그럴 것이 문학에 대한 관심과 열망은 보통은 그 시기 전후로 갖게 되니까. 그러므로 대부분의 작가들은 이름하여 성장 문학 한 둘은 쓰기 마련이다. 이 작품의 저자도 예외는 아니다.


그런데 젊은 날에 젊음을 모른다고 노래했던 지금은 중년이 되어버린 어느 가수의 노래처럼, 젊었을 때 나는 막상 이런 장르의 작품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동의할지 모르지만, 이런 작품은 하나같이 우울한 방황과 허무, 섹스, 일탈 뭐 이런 것들로 대표되기도 하니까. 내 삶 자체가 꿀꿀하고 허무한데 굳이 이런 책을 읽어 더 꿀꿀하게 만들 필요가 있겠는가. 성장 문학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데미안'도 나는 지금까지 두 번쯤 읽었지만 왜 이 작품에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머리를 조아리는 것인지 잘 이해하지 못했다. 물론 수긍은 할 수 있지만 강한 이펙트 같은 건 없지 않나.


이 작품 역시 '데미안'의 그림자가 짙다. 실제로 '데미안'을 다시 한번 읽어보고 싶기도 했다. 좁은 소견이지만 이문열의 일련의 작품도 생각이 났다. (이를테면 '젊은 날의 초상'이나 '사람의 아들' 같은.) 하긴 이쪽 장르의 작품들은 데미안의 사생아들 아닌가. 그러니 이 작품을 젊었을 때 읽었다면 비웃었을지 모른다. 왜 그 시절엔 조금만 뭐가 보여도 모방이니, 아류니 하면서 아는 척 조소하기 좋아하지 않는가. 문학의 'ㅁ'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머리만 커져 모든 게 시큰둥하고 만만하게 보였던 게지. 마치 이 작품의 화자 기윤처럼.


그런데 이 나이 되어 이 작품을 읽으니 오히려 좋았다. 작가가 철학과 역사와 문학을 기반으로 얼마나 심혈을 기울여 작품을 썼을지 알 것 같다. 이 작품의 밑 작업만 4년이 걸렸다니 알만하지 않은가. 그런 의미에서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난 이 작품을 다 읽었을 때 뭔가 모를 허전함과 숙연함마저 느꼈다. 왜 가끔 좋은 작품을 읽으면 이 작품 이후에 무슨 책을 읽을지 막막함이 느껴질 때가 있지 않은가. 그건 여간해서 잘 체험되지 않는데 아주 오랜만에 그런 느낌을 갖기도 했다. 바꿔 말하면, 난 어쩌면 이 작품 이후에 다른 책들이 나의 의식에 틈입해 오는 것을 쉽게 허락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단 생각도 든다.


문장이 좋다. 그렇다고 뼈를 때리고, 가슴을 후비는 뭐 그런 문장이어서 좋았다는 게 아니다. 그런 문장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뭔가 쉽게 잊히면 안 될 것 같은 문장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밑줄이라도 거야 할 것 같은데 그러면 어디서 멈춰야 할지 모르겠다. 한마디로 따라 해 보고 싶은 문장이었다. 그리고 인물이다. 공감이 간다.


사춘기가 되면 부모나 형제보단 친구가 더 중요해진다. 특히 상급학교 진학을 두고 부모와 갈등을 겪으면 더 그렇다. 부모는 가급적 자식이 배경이 되어줄 만한 학교를 진학해 주길 바라지만 기윤은 그런 것에 관심이 없다. 철이 없어서 이 세상이 학연, 지연 등으로 엮여져 있다는 걸 모르거나 알려고 하지 않는다. 더구나 대입도 아니고 고입을 재수한다고? 그건 기윤에겐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지방의 이류쯤 되는 학교에 지원해 다니게 된다. 어떤 학교가 되든 어차피 한 시절 대충 때우다 가는 곳이다.


하지만 학교가 그렇게 만만한 곳이 아니라는 걸 곧 알게 된다. 흔히 일진이란 불리는 불량서클에 발을 들여놓은 건 새로운 경험이었다. 거기서 일진의 수장인 상민와 친해진 건 따분한 학교생활에 활력이 되고 권력에 눈을 뜨는 계기가 된다. 하지만 이를 경계하게 만드는 건 이인자인 관석이다. 그는 알게 모르게 기윤이 상민과 친해지는 것을 방해한다. 상민은 이런 권력의 역학을 적절히 활용할 줄 아는 영리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러다 결국 기윤이 일진에서 떨려 나가는 사건을 맞이하는데, 그건 어처구니없게도 상민이 보다 좋은 신발을 신었다는 것에서 발생한다. 한마디로 기윤은 거기에도 엄연한 질서와 조직이 있다는 걸 인식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즈음 <데미안>에서 화자인 싱클레어가 데미안을 소개를 하듯, 기윤은 민재를 소개한다. 민재는 기윤이 다니는 고등학교에 전학생으로 오면서 이들의 만남은 시작된다. 하지만 기윤에게 민재는 처음부터 그다지 좋은 인상은 아니었다. 부잣집 도련님에, 공부도 잘하고, 모범생인 한마디로 재수 없는 타입이었다. (사춘기는 열등감을 이런 식으로 표출할 줄 아는 탁월한 시기이도 하다.)


그런데 그렇게 잘나가는 아이가 왜 이런 지방 소도시 그것도 일류도 아닌 이류 학교에 전학을 왔을까? 특이한 건, 민재는 특별히 친구를 사귀려고도 하지 않는다는 것. 늘 책을 가까이하며 홀로의 자유를 고독과 맞바꾼 아이였다. 민재와 가까워지게 된 건, 기윤이 상민이 패거리에서 쫓겨나자 점심시간이면 급식실에서 만나는 것이 불편해서다. 상민을 피해 도서실에 가면 늘 민재는 혼자 책을 읽고 있다.


그렇게 가까워진 민재는 알면 알수록 새로웠고 여느 아이와 달랐다. 이미 그 나이에 깊은 사랑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있었고, 독서 편력을 쌓기도 했다. 덕분에 기윤은 덩달아 책을 읽고 민재와 가까워지게 된다.


사실 민재를 가장 적확하게 보여준 사건이 몇 개가 있는데, 하나는 학교에 학생과 교사 간의 어떤 소요 사태가 일어났을 때 그가 보여준 행동이었다. 그럴 경우 일반 아이들이라면 세를 결집해서 데모를 하거나 업무를 마비시키고, 고작 기물을 파손하는 정도겠지만 그것이 자신에게 결코 유리하지 않다는 건 그들 자신이 잘 알고 있다. 그때 민재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방법으로 학생들 편에 서는데 이른바 프랑스 대혁명 때를 모방하여 학교 측에 몇 개의 반박문을 써서 대자보를 붙이는 대담함을 보인다. 그것이 레지스탕스를 연상케 해 한동안 회자가 되기도 한다.


또 하나는, 그는 문학을 사랑해 시인이 되기를 바랐지만 좌절하고 부모가 바라는 대로 의대에 어렵지 않게 합격한다. 하지만 부모가 바라는 자신은 거기 까지라며 등록을 하지 않은 채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 몸을 실을 계획을 세운다. 그는 떠나기 전 기윤에게 선물처럼 자신이 타던 오토바이와 쓴 많은 시중 100편을 추려 기윤에게 맡긴다. 너무 큰 선물을 받은 것 같아 어리둥절하고 있는데 시에 큰 제목이 없다. 나중에 혹시 시집을 낸다면 제목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없는 것이다.


그렇게 기윤이 민재가 잘 떠나려니 했는데 뜻밖에도 여행을 떠나기로 한 날 민재는 불의의 교통사고로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만다. 슬펐지만 기윤은 민재의 장례가 끝난 후 그를 위해 시집을 출판하기로 한다. 결국 이 책의 제목 레지스탕스는 민재의 시집의 제목인 동시에 그 자신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 책을 다 읽었을 때 나는 한동안 기운이 빠지는 느낌을 받았다. 기윤에게 그토록 울림을 줬던 민재가 이렇게 허무하게 죽는 것으로 끝이 난다고? 아무리 소설이라지만 충격적이면서 동시에 허망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난 이내 그를 인정하기로 했다. 민재는 민재로서 민재답게 살다 갔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 스무 살도 채 살지 않은 민재에게 함부로 연민을 갖는 건 오히려 그를 욕되게 하는 거란 생각이 들었다. 삶이란 얼마나 오래 살았는가보단 얼마나 자기답게 값지게 살았냐가 아닌가. 그는 짧은 생애를 사는 동안 자신이 해 볼 수 있는 것은 다 해 봤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희곡도 써서 자신의 작품이 무대에 올려지는 과정을 지켜보기도 했다.) 그래서 신은 그렇게 민재를 일찍 데려갔나 보다. 결국 신도 인정한 삶 아닌가.


그런데 이 책은 기윤이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10년이 지나 동창회에 참석했다 우연히 잊고 있었던 민재를 회상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다. 물론 작가의 그런 설정에 이의를 제기하지는 않겠지만, 나라면 민재 같은 친구는 결코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나보다 몇 보는 앞서 가 삶이란 이런 것이라고 말해 주는 친구를 어떻게 잊을 수 있단 말인가. 무엇보다 외톨이가 될 위기에서 자신의 빈자리를 채워준 친구다. 그런데 기윤은 지난 10년 동안 민재를 잊고 남과 다르지 않는 삶을 살았다는 걸 그때야 비로소 자각했던 것이다. 왜 그런 설정이 필요했을까?


우리의 삶은 기윤과 얼마나 다른가? 나이 들수록 몇 살에 죽더라도 사는 동안 아프지 말고 살았으면 좋겠다는 게 대부분의 바람 아닌가? 우리도 기윤이 같이 느끼고 생각하며 나이 들지 않았나? 상민이의 세계를 누구는 동경하기도 하고 누구는 비판하기도 하지만, 우린 어느덧 남들만큼 살자는 게 삶의 모토가 되어 살아오지 않았는가? 그렇게 살지 않으면 이상한 사람이 되고, 뒤처지고 소외당하는 걸 못 견뎌하지 않았는가? 우린 그런 삶에 마땅히 저항할 필요가 있는데도 오히려 끌어안고 살고 있다. 기윤이 민재를 떠올리는 순간 가슴을 쥐어짜듯 괴로워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하는 건 어쩌면 독자에게도 기윤이처럼 깨어날 시간이라고 말해주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더불어 소설은 어때야 하는가를 생각해 본다. 여러 의견이 많을 수 있겠지. 그것은 옳고 그름으로 얘기되어 지지 않는다. 이런 소설이 있는가 하면, 저런 소설이 있다. 한동안 치유와 위로를 주는 소설이 유행이었고, 지금도 여전히 강세다. 하지만 역시 궁극의 소설은 이렇게 잠자고 있는 영혼을 흔들어 깨우고, 당신은 지금 잘 살고 있느냐고 물어봐 주는 소설이 정말 좋은 소설 아닐까?


이우 작가는 이 책에서 그런 말을 한다. 소설가는 발표한 작품과 무관하게, 처음 문학도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을 때의 순수함으로 사유하고, 탐구하고, 집필하는 존재라고. 작품을 출간해서 소설가가 아니라, 문학에 헌신하여 살아가고 있기에 소설가라고 했다.


올해도 어느덧 한 달여 밖에 남지 않았다. 올해가 마감될 때까지 몇 권의 책을 더 읽을 수 있을까? 작년엔 천명관의 발견이 좋았는데, 올해는 이 책이다 싶다. 나중에 다시 읽어보고 싶은 책이 될 것 같다. 또한 작가의 다른 작품도 읽어봐야겠다.

남은 한 달도 잘 마무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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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4-11-23 13: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우 작가 youtube에 자기 채널도 운영하고 있어요. 흥미로운 작가이지요.

stella.K 2024-11-23 18:15   좋아요 0 | URL
아, 그런가요? 한번 들어가 봐야하겠네요. 흥미로운 작가 맞는 것 같습니다. 똑똑한 거 같고요. ㅋ

니르바나 2024-11-23 16: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이 나중에 다시 읽어보고 싶은 책이라니까 급땡기네요.ㅎㅎ
한달밖에 남지 않은 2024년도 잘 지내시길 바랍니다.^^

stella.K 2024-11-23 18:20   좋아요 1 | URL
니르바나님은 안 읽으셔도 되지않을까요? 더 좋은 책 읽으시잖아요.ㅎㅎ 그래도 뭐 젊은 작가들 응원 차원에서 읽으시겠다면 말리지 않겠습니다. ㅎ
세월 참 빠르죠? 니르바나님도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물감 2024-11-26 21: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데미안>을 포함해 이런 장르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건 비교적 건강하시다는 증거라고 생각해요. 전에 누군가에게도 그랬었는데, 방황하는 사람만이 헤세를 찾고 읽는다고 생각하거든요. 저 또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어서 이런 장르들에 많은 위로를 얻었어요. 하지만 반대로 건강한 사람들처럼 나도 시큰둥했으면 좋겠다고 누누히 생각했고요. 그래도 별다섯 주신걸보니 정말 잘쓴 책인가봅니다 ㅎㅎ

stella.K 2024-11-27 13:39   좋아요 2 | URL
앗, 그런가요? 사실 이런 장르 답을 주진 안 잖아요. 니가 답을 찾아라는 식이죠. 어찌보면 겸손한 것 같고 어찌보면 무책임한 것 같고. 이 작가에 대한 평이 좋더군요. 이 책 독일에도 팔려 나가고 나름 잘 나가는 작가더군요. 자기는 매년 장편 한 권씩 낼거라는데 그 패기도 맘에 들고. 당분간 지켜보고 싶은 작가예요. 기회되면 함 읽어 보시길! (사실 민재 죽는데 눈물이 찔끔.. 나이 드니까 눈물이 없을 줄 알았는데 일단 안구건조증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듯요. 😆 )

고양이라디오 2024-11-27 15: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먼가 흥미로운 작가와 흥미로운 책이로군요! 찜해놓고 갑니다ㅎ

페크pek0501 2024-11-29 20: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 작가를 발견하는 것이 우리 같은 사람에겐 큰 기쁨이지요. 저도 맘에 드는 작가를 만나면 그의 모든 작품을 읽고 싶어지곤 해요. 전작 읽기를 하고 싶지만 우리의 인생이 짧은지라 시작하게 되진 않더라고요. 그래도 몇몇 작품을 읽으려고는 합니다. 확실히 각자 독서 취향이 있어요.

stella.K 2024-11-29 21:14   좋아요 0 | URL
그렇죠. 그맛에 책 보는 거 아니겠습니까?
저도 이 작가 다 보게 될지는 모르겠는데 일단 주요작은 좀 보려고요.
마침 중고샵에도 있더라구요.^^

2024-11-30 12: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11-30 18: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12-03 13: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레첸을 멀리하라 - 불가능한 사랑
수잔네 아벨 지음, 김동언 옮김 / 뒤란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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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단순히 2차 대전을 배경으로 한 소설인 줄 알았다. 그건 그렇긴 하지만 전쟁 직후의 인간 군상과 이루어질 수 없는 인종 간의 사랑을 그린 작품이다. 생각해 보면 전쟁을 배경으로 한 소설은 많지만 이렇게 전쟁 이후를 보여주는 소설이 있었나 싶기도 하다. (물론 찾아보면 없지는 않을 것이다.)

제목이 독특하다. 그레첸을 멀리하라니. 무슨 말인가 했더니, 2차 대전 직후 독일은 아직 자국으로 돌아가지 않은 외국인 병사들과 흥청망청 술렁거리는 문화가 팽배했다. 그래서 그 외국 병사들에게 성병에 걸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일종의 그들만이 통하는 은어 같은 지침을 하달한 것으로 한마디로 독일 여자를 조심하라는 뜻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내일이 없는 것처럼 마음껏 자유를 누렸다. 아마도 그레첸은 독일 여성을 지칭하는 일종의 대명사 같은 이름인듯하다. 우리나라에 순희나 영희가 여자 이름의 대명사인 것처럼.

그렇다고 전후의 모든 독일 여성이 다 성적으로 문란했던 것은 아니다. 이 책의 주인공 그레타는 순결했다. 전쟁 중 여성들이 어떻게 착취 당하고 소모되는지 아는 가족들은 아직 어린 그레타를 보호하기 위해 일찌감치 남자아이처럼 머리를 짧게 해 사람들의 의심을 피했다. 그런 그레타가 미국의 흑인 병사 밥 쿠퍼를 만난 건 우연 마는 아니었을 것이다. 아버지를 전장에 보내고 너무 오랜 나날 그리워하던 그레타가 밥 쿠퍼를 의지했던 건 당연했을 것이다. 처음엔 그저 인간적인 호기심과 연민 뭐 그런 이끌림으로 가까워지고, 결국 자연스럽게 살을 섞고 딸 마리까지 낳았다. 하지만 가족들에게 마리는 애초부터 환영받을 수 없었다. 그래도 아버지가 돌아오기 전까지는 적어도 외면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죽은 줄만 알았던 아버지가 살아 돌아오고 상황은 역전된다.

그렇게 그리워했던 다정한 아버지가 돌아왔지만 전쟁 후유증을 겪는지 전같지가 않다. 가족들에게 까칠하게 대하고, 그렇게 사랑했던 딸 그레타가 미국 양놈 그것도 깜둥이와 놀아나더니 급기야 족보에도 없는 딸까지 낳았다고 대놓고 혐오한다. 결국 집에서 마리를 안전하게 키울 수 없다고 판단한 그레타는 마리를 어느 가톨릭 아동보호단체에 맡기게 되지만 자식을 버린 죄책감과 사라진 밥에 대한 그리움과 원망으로 정신병원과 교도소를 번갈아 드나드는 신세가 된다.

그래도 다행스럽게도 그레타가 병원에 있을 때 알게 된 몬테라스란 의사와 정식으로 결혼도 하고 아들 톰을 낳고 그럭저럭 안정적인 삶을 살지만 마음속엔 늘 잃어버린 딸과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하는 밥에 대한 그리움과 원망과 죄책감으로 살아간다. 그리고 나이 들어 80대 중반의 노인이 된다. 하지만 편안히 죽을 일만 남을 줄 알았던 그녀에게 치매가 왔다. 하지만 그때까지 아들 톰은 엄마가 그런 어려운 삶을 살았을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평소 그다지 좋은 모자관계는 아니었으니 당연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엄마의 과거를 안 이상 톰은 엄마가 기억을 더 잃기 전에 물음표로 남아 있는 엄마의 연인과 이제까지 한 번도 만나 보지 못한 엄마의 딸이자 피부색이 다른 누나를 찾기로 결심한다. 이 소설은 그런 톰의 여정을 그레타의 과거와 톰의 현재를 번갈아 가며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새삼 제일 먼저 깨달은 건, 전쟁 후의 상황은 어느 나라나 크게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저 나라만 다르다 뿐 등장인물을 우리 식 이름으로 바꿔도 이상할 것이 하나도 없어 보인다. 전쟁이 끝나면 곧 안정을 찾을 것 같지만 그때부터 새로운 문제와 고통이 시작된다. 그런데 소설은 소설인가 보다. 흑인 병사와 독일 소녀의 지고지순한 사랑을 그리고 있으니. 물론 그런 사랑이 없으란 법은 없겠지만 현실은 그보다 몇 배는 더 혹독하고 참혹하지 않을까.

전쟁 직후 흥청망청 댔다는 건, 단순히 전쟁이 끝난 것을 안도하고 축하하기 위한 것마는 아니라는 것쯤 독자는 알 것이다. 그것은 집단 스트레스를 광적이면서도 극단적인 방법으로 풀어 내는 방식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서로 다른 인종끼리 피와 살을 섞어 태어난 제3의 인종을 보통 혼혈아라고 하지만 그들이 또 어떻게 자신의 부모와 나라로부터 버림을 당했을지 알 수가 없다. 아마 그래서도 그레첸을 멀리하라는 뜻이었을 텐데도 말이다.

이 책이 쓰인 건, TV 다큐멘터리 제작자로 일했던 저자가 우연한 기회에 입양의 문제를 다루다가, 전쟁이 끝난 직후 10년 동안 브라운 베이비 즉 그레타와 밥처럼 서로 다른 인종에게서 태어난 혼혈 아이를 해외 입양시켰던 사례를 처음 접하고 충격을 받아쓴 것이라고 한다. 책에선 이것을 '브라운 베이비 플랜'이라 하여 국가적 프로젝트로 실시한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해외 입양이라면 그 비슷한 일은 우리나라도 있었다. 전쟁 직후와 산아제한이 없던 시절 가난해 아이를 키울 수 없어 해외입양을 보내야 했던 시절이 있지 않은가. 두 나라 다 아이의 행복을 위한다는 명분이 있었지만 과연 그들이 행복했을까? (거기에 우리나라는 인종의 문제는 빠져 있다.)

또 읽는 내내 드는 생각은 지금 전쟁을 하고 있는 나라들이었다. (이렇게 말하면 당장 떠오르는 나라들이 있을 것이다.) 지금은 전쟁에서 이기느냐 지느냐에 그야말로 모든 사활을 걸겠지만 어떤 식으로든 전쟁이 끝나면 그 나라 국민들이 감당해야 할 상처와 트라우마는 실로 재앙적 수준이 될 것이다. 또한 그건 승전국이나 패전국이나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그러니 승리했다고 좋아하고, 패했다고 슬퍼한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다. 나라의 지도자는 샴페인을 터뜨릴지 몰라도 전쟁의 상처를 떠안는 건 국민의 몫이다. 그런 가운데 제2, 제3의 그레타와 마리는 또 얼마나 많이 쏟아져 나올지 상상할 수가 없다.

모르긴 해도 독일에서는 혼혈 아이를 해외로 입양 보낸 사례는 있지만 '브라운 베이비 플랜'이란 공식 명칭을 달고 시행했던 것 같지는 않다. 그건 소설의 사실적 묘사를 위해 저자가 자의적으로 지어낸 명칭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또 그런 만큼 이 책은 소설임에도 너무나 사실적이어서 실화를 보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물론 소설이 순수 허구만을 다루는 장르는 아닌지라 사실을 각색해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는데, 가히 가슴을 울리는 문제작이란 생각이 든다. 특히 그레타가 마리를 잃고 생일 때마다 썼던 편지 부분을 읽는데,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간혹 우는 적은 있어도 책 보고는 여간해서 울지 않는 내가 이 책을 보고는 눈물이 났다.

답장이 오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딸에게 보내는 편지를 쓰는 어미의 마음이 어떨까. 우리 역시 아이를 해외로 입양 보내고 그 생모들은 얼마나 많은 편지를 썼을까 상상해 본 적이 없다. 그래도 세상이 좋아져 그 나라나 이 나라나 그렇게 헤어진 부모와 자식이 만나는 일도 있으니 불행 중 다행이란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아직도 만나는 것이 못 만나는 것에 턱없이 낮을 것이다. 도대체 이 아픈 인간의 역사는 언제 누구에게 보상받을 수 있을까. 그래도 소설이 해피 엔딩으로 마무리되는 걸 보면 그건 모르긴 해도 저자가 대중을 의식한 결과는 아닐까 싶기도 하다. (솔직히 약간은 동화적인 느낌도 들어 나 개인적으론 그게 왠지 약간의 아쉬움으로 남는다.) 참고로 톰은 저자의 페르소나다.

이 책을 번역한 김동언 번역가는 이런 말을 '옮긴이의 말'에서 남겼다. 무릇 소설이란 현실과 맞서는 장르이며, 현실을 넘어서고자 하는 장르임은 여전히 유효하다. 더욱이 시대와 현실에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야말로 우리 소설의 전통이며 미덕이라고 했다. 저자는 이 미덕을 자신의 작품 속에서 잘 구현해 냈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저자는 이 작품을 통해 전쟁 후를 생각하라고 지금의 전쟁국에 촉구하는 것도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세기 때 전쟁의 후유증은 오늘날에도 지문처럼 남아 아직도 인간을 괴롭히고 있다. 모르긴 해도 그 후유증은 다음 세기에도 계속 이어질 것 같다. 그렇지 않더라도 역사가 기억하겠지. 또 오늘날의 전쟁은 훗날 어떻게 사람을 괴롭힐지 상상하는 것조차 끔찍하다. 지금 전쟁을 벌이고 있는 나라들은 부디 지금이라도 전쟁을 중단해 주길 이 지면을 통해 촉구한다. (알 리없겠지만.ㅜ)


#뒤란 #그레첸을 멀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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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르바나 2024-10-31 17: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모든 전쟁은 악입니다.
성전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졌던 전쟁
이를테면 십자군 전쟁 포함해서 모두 악한 행위일 뿐입니다.
역사이래 남의 것을 무력으로 빼앗는 살인 강도짓을
이념으로 포장하여 전쟁이라고 할 뿐이니까요.
전쟁은 별의 별 사건의 총집합이니 이야기 거리가 많아 문학, 예술의 소재가 되어
작품으로 남아 사람들에게 회자되지만
총,칼을 맞는 것이 나, 또는 가족에게 해당되는 사건이라면
다만 끔찍한 행위로 몸과 마음에 절대적인 흉터로 남을테니까요.
같잖은 이유를 대고 국방의 의무를 피해 군대도 가지 않은 인간이
쉽게 내뱉는 전쟁이야기는 너무나 한심합니다.
전쟁은 아이들의 장난감 전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글 마지막에 써주신 글,
지금 전쟁을 벌이고 있는 나라들은 부디 지금이라도 전쟁을 중단해 주길 이 지면을 통해 촉구한다는 말씀에 니르바나도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stella.K 2024-11-01 11:17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 분명 이 지구 어디에선가는 반전운동을 하는 곳도 있을텐데 그런 소리는 안 들리고 온통 전쟁의 소리만 들리네요. 러시아에 북한군을 파병했다는데 같이 싸우지 말고 이참에 자기 살 길이나 찾아가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는 다소 황당한 생각도 해 봅니다. 싸우는 것도 기운이 있어야 싸우지 않겠습니까? ㅋ
이책은 전후에 여성이 어떠한 삶을 살게되는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일종의 페미니즘 문학으로도 읽힐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잘 지내시죠? 제가 글을 넘 뜸하게 올리니 니르바나님 안부도 잘 못 듣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종종 올려보도록 노력하겠습니다.ㅎ 오늘은 잘 지내시는 걸로..!^^

레삭매냐 2024-11-01 20: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레첸을 멀리하라>

리뷰를 카피해서 정독하고 나니
더 읽어 보고 싶어지네요.

2차 세계대전 후의 독일 상황
그리고 오랜 세월이 지나 과거
의 상처들을 보듬는 이야기 -

근데 분량이 어마무시하네요.
기억해 두겠습니다.

stella.K 2024-11-01 21:07   좋아요 1 | URL
그래도 가독성은 좋은 편입니다.
매냐님이라면 일주일이면 충분히 다 읽을 수 있을 겁니다.^^

그레이스 2024-11-01 21: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파우스트에 나오는데,,, 그가 사랑했던 어린 여성이고 나중에 사랑때문에 모친과 오빠가 죽고 영아살해죄로 사형당하잖아요?!
혹시 그 그레첸일까요?

stella.K 2024-11-01 22:32   좋아요 1 | URL
아, 그런가요? 그런지도 모르겠군요.
파우스트 읽긴 했는데 워낙 오래 전에 읽은데다가
뭔 내용인지도 모르고 꾸역꾸역 읽어서 누가 나오는지도 몰랐습니다.
아, 이거 아는 척하고 쓰는 게 아니었는데 어쩌죠? ㅎㅎ
암튼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근데 그거 말고도 약간 석연치 않은 부분도 있었습니다.
등장인물의 이름이 그레타니, 톰, 밥, 제인 등 미국식 이름인 것 같더라구요.
그레첸은 독일식 이름인 것 같긴한데. 작가가 왜 이름을 하나 같이
그렇게 썼을까? 뭐 그런 생각을 잠시하며 읽었습니다.
게다가 한 가지 덧붙이자면, 전 말미에 이를 때까지 그레타를 그레첸으로
읽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거의 다 읽을 때쯤 왜 그레첸을 그레타로 부르지?
했더니 제가 착각을 했더군요. 아놔~;;

그레이스 2024-11-01 22:34   좋아요 1 | URL
ㅎㅎ
그레트헨이라고 하기도 하고 그레첸이라고도 하던데,,, 어쨌든 제 짐작이예요.
파우스트의 그레첸이 제일 의미에 가깝지 않을까 해서요 ^^

yamoo 2024-11-02 10: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거 전에 스텔라 님 리뷰 보고 좋아요 눌렀다가. 글이 길어서 지금 다시 정독했어요. 이거 재밌을 거 같아요. 전쟁 영화나 소설 좋아하는데, 쓰신 내용 보니 재밌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새로운 얘기는 아니지만 구매 버튼을 누르기 직전 이 소설의 분량을 보고 취소했어요...ㅋㅋ 이거 벽돌책 부류네요..^^;;

stella.K 2024-11-02 10:19   좋아요 0 | URL
아, 이런ᆢ 야무님답지 않으십니다. 전쟁 얘기 좋아하시면 당연 사셔야죠. ㅎㅎ 벽돌책이어도 가독성이 좋습니다. 잘 읽힐 겁니다. 나중에 중고샵에 넘어오면 그때 한 번 사 보세요.^^

페크pek0501 2024-11-12 12: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리뷰를 보니 제가 최근에 읽었던 커트 보니것의 <제5도살장>이란 책이 떠오릅니다. 그 책 역시 제2차세계대전을 다루었으니 전쟁 소설이라 할 수 있어요. 그때를 회상하며 쓴 글인데, 작가가 마치 감정 개입 없이 태연하게? 쓴 글로 읽힙니다. 그래도 독자는 끔찍하고 참혹함을 느끼게 됩니다.
전쟁은 승자가 없다고 하죠. 양 국가가 손실을 발생시킬 뿐인, 어리석은 짓이죠.

stella.K 2024-11-13 20:47   좋아요 0 | URL
그래서 나라든, 단체든 지도자를 잘 만나야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푸틴도 그렇고 트럼프도 그렇고 나라를 위한 나라가 아니라
전쟁은 정말 백해무익한건데 언제까지 하려고 드는지 모르겠어요.
<제5도살장>은 좀 독특한 작품인가 봅니다. 함 읽어보면 좋을텐데
언제 읽을런지 모르겠습니다. ㅠ
 
점퍼
고정욱 지음 / 생각학교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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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다 살다 이 나이에 청소년 도서를 다 읽어 본다. 청소년 시절을 보낸 지가 언젠데. 물론 나도 그 시절 책을 안 읽은 건 아니다. 하지만 주로 고전을 청소년 눈높이에 맞춘 것이나 아니면 일반 책을 기웃거렸을 뿐 청소년 문학이라고 하는 장르는 읽은 기억은 없다. 그러므로 어쩌면 이 책이 나에겐 처음으로 읽는 청소년 문학인지도 모른다. 사실 나 때는 청소년 문학이 지금처럼 다양하지도 않았고 장르로도 인정받지도 못했다. (어쩌면 성장 문학을 청소년 문학과 혼용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둘은 좀 다르지 않나?) 게다가 내가 쓸데없이 고차원이어서 있어도 유치하다고 안 읽을 가능성도 있다.

그런데 이제 와 있는 이 책은 완전 내 스타일이다. 글씨도 크고, 200 페이지가 조금 넘는 것이 읽는데 부담도 없다. 스토리도 흥미로울 뿐만 아니라 교훈적이기도 하다. 그런데 지금껏 난 뭐 때문에 이마에 내 천(川) 자를 그리며 힘들게 ㅜ책을 읽어왔는지 모르겠단 생각마저 든다. (이렇게 말하지만 가끔은 어렵고 힘든 책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쉽고 편한 책만 읽으면 독서에 힘이 붙지 않는다.) 무엇보다 이 책은 역사와 교육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다고나 할까.

이 책의 주인공 박창식은 정말로 행운의 아이란 생각이 든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시간 여행을 했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창식이 행운의 아이가 될 만큼 똑똑하고 착하고 심성 바른 아이냐면 그렇지도 않다. 사춘기 아이답게 뭔가의 불만과 반항기가 가득하다. 한창 친구가 좋을 나이인데도 별로 또래와 어울리려고도 하지 않는다. 게다가 결정적인 건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다. 아버지가 회사에서 내부 고발자가 되어 사람들로부터 외면을 당하고 그것을 술로 풀고 엄마와도 이혼한 상태다. 그러니 그 영향이 고스란히 창식에게로 간다. 그나마 할머니가 유일한 위로가 되어주지만 그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할머니께 심술을 부리기도 한다.

그날도 아버지와 싸우고 잠이 들었는데 깨어보니 1928년에 와 있다. 그것도 북한의 평안도 정주다. 얼마나 황당할까.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자신의 신분이 오산중학교 학생이라는 정도. 하지만 그는 현재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그런데 정주이라니! 물론 원래 학교가 정주라는 정도는 알고 있다.

북한은 싫지만 그렇게 되고 보니 김소월과 백석 그리고 이중섭이 창식과 동기가 되어있다. 와, 이건 웬 행운인가? (아무리 허구하고는 하지만) 우리나라 역사에 길이 남을만한 사람을 무려 세 사람이나 친구로 만나다니! 놀라웠던 건, 나는 위의 세 분이 같은 학교 동기동창이란 걸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게다가 이승훈 선생이 교장이고, 김억 선생이 문학 동아리 지도교사다. 이 정도면 그 학교가 어떤 학교인지 가히 상상이 갈 만도 하다. 그 학교를 졸업했거나 현재 다니고 있는 학생은 어깨에 힘을 줘도 무방하겠구나 싶다.

그때는 3.1 만세운동이 일어난 지 거의 10년을 바라보는 시점이기도 하다. 재밌는 건 창식이 친구들과 함께 이웃 여학교 학생들과 미팅을 하기도 하는데 그 험악한 시절에도 낭만은 있었구나 싶다. 그래도 험한 시절은 험한 시절이다. 말순이 창식과 짝이 되고 좋은 만남을 이어가고 있는데 갑자기 말순이 언니로부터 전보를 받는다. 아버지가 (독립운동을 하다) 다쳐서 위독한 상태니 급히 오라는 것이다. 즉 말순의 아버지는 독립운동을 하다 다친 것이다. 창식은 얼떨결에 말순이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길에 동행하고 거기서 민족 독립의 열망과 긴급함을 목도하게 된다.

그런데 저자는 주인공 박창식을 어떻게 창조해낸 것일까. 사실 박창식은 실제로 존재했던 인물이다. 저자는 이야기 말미에 <오산학교 백 년사>란 책에 박창식을 짧게 언급해 놓았다. 그러니까 거기서 힌트를 얻어 이 이야기를 구상했을 것이다. 이야기의 구성이며, 인물 캐릭터까지 정말 이야기를 다루는 솜씨가 탁월하다. (사실 '오산학교 백 년사'는 일반 서점에선 없는 걸로 나온다. 하지만 국립 중앙도서관이나 일부 대학 도서관엔 있다고 한다. 이런 책은 일반에도 많이 알려지면 좋지 않을까?)

영어에 '세렌디피티(serendipity)'란 단어가 있다. (같은 제목의 영화로 유명해진 단어다.) 완전한 우연으로부터 중대한 발견이나 발명이 이루어지는 순간을 의미 한한다. 이 단어는 창식에게도 독자인 나에게도 둘 다 적용되는 단어는 아닐까 싶다. 창식은 분명 1928년을 경험해 본 이상 그때를 기점으로 이전과 이후가 확연히 달라졌을 거다. 무엇보다 그림에 관심 있는 창식으로선 당대 유명한 화가 이중섭을 만났다는 건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또한 나라를 되찾고자 하는 열망에서 나라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았을 것이다. 나라가 중요하다고 100번을 외치면 뭐 하겠는가? 한 번의 경험이 확실하지. 물론 어느 누구도 시간 여행은 할 수 없겠지만 책을 통해 우리는 간접 경험을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창식은 그 뾰족하고 반항기 가득한 성격이 다듬어지고 한층 어른스러워진다. 그런데 이런 경험은 창식이만 하는 건 아니다. 물론 우리도 창식이처럼 시간 여행을 하면 얼마나 좋을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가능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설혹 가능하다고 해도 권할만한 일은 아닐 것 같다. 어쩌면 그 경험은 해로울 수도 있을 것 같다. 현재와 과거를 인지하는 능력이 붕괴되면서 미쳐버리게 되지 않을까. 그러니 타임 슬립은 타임 슬립이고, 오히려 현실을 열심히 살면 그런 세렌디피티의 기적은 우연을 가장해서 오지 않을까.

이 책은 아귀가 딱딱 맞아떨어지는 구성을 통해 (보통은 시나리오는 과학이라고 해서 이 점이 강조되기도 하는데 소설도 역시 그렇다.) 읽는 맛이 좋다. 독자가 이럴진대 저자도 소위 쓰는 손맛을 느끼지 않았을까. 저자는 유명한 '까칠한 재석이 시리즈'의 작가로도 유명한데 급관심이 간다. 기회 있는 대로 한번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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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감 2024-10-11 16: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스텔라님도 곧바로 청소년문학을 읽으셨군요. 이 리뷰 읽다보니까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가 생각이 나는 건 왜일까요. 과거 유명인들과 조우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겹쳤나봐요 ㅋㅋ

stella.K 2024-10-11 20:17   좋아요 1 | URL
ㅎㅎ 아무래도 그런 느낌이 나긴하죠?
그래도 우리나라고 오산학교 3인방의 청소년 시절을
다뤘다는 점에서 저는 이 작품에 별 반 개는 더 주고 싶습니다. ㅋㅋ
한마디로 구성이 좋은 작품이란 생각이 들어요.
간간히 아이다운 유머러스한 문장도 좋고.^^

푸른기침 2024-10-11 19: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살다 살다 이 나이에 <청소년 도서를 읽고 쓴 생각 글>을 읽게 되는군요.

좋은 영어 단어와 그와 얽힌 영화도 얻어 가고, 제가 살짝 쿵 좋아하는 백석, 이중섭 이름도 발음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계절이 오는 어귀 쯤이라 생각했는데, 잠시 정신을 차려보니 계절의 한 복판에 와 있네요.

아침 저녁, 쌀쌀하지만, 이쁜 하늘이 보이는 요즘입니다.
늘 건강하시고, 맘껏 시간을 즐기시기를...
이만, 꾸벅~~~~~

stella.K 2024-10-11 20:20   좋아요 0 | URL
저 3인방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겠죠?
영어 단어 좋으셨습니까? 저도 이 단어 생각하고 좋았습니다. ㅋ

정말 날씨가 점점 쌀쌀해지고 있죠?
푸른기침도 감기걸려 기침하시마시고 늘 건강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또 뵙게되길!^^

니르바나 2024-10-11 20: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점퍼 재미있게 읽으셨군요.
그런데 오산학교는 평양이 아니라 평안북도 정주에 있었고,
이승훈은 오산학교 교장이 아니고 설립자입니다.
검색해보면 우리가 잘 아는 조만식, 유영모, 홍명희 선생이 교장을 지내셨고,
함석헌이 오산 학교에서 유영모 선생을 만났습니다.
오산학교는 우리가 잘 아는 인물들이 교사와 학생으로 있었던 민족의 학교 였습니다.

stella.K 2024-10-11 21:17   좋아요 1 | URL
ㅎㅎ맞아요! 정주! 이번에도 니르바나님의 예리함을 피해가지 못했네요.
북한하면 평양 아니면 함경도를 떠올리는지라 무의식적으로 이러네요 ㅠㅠ
근데 이 책에선 이승훈을 교장이라고 했던 것 같아요.
알고하는 소리는 아니지만 그땐 설립자가 교장도하지 않았을까요?
암튼 검색이라도 하고 쓸 걸 스스로 무식이 탄로나게 만들고 큰 일 났습니다.ㅠ ㅎㅎ

니르바나 2024-10-12 02:20   좋아요 1 | URL
스텔라님, 제가 알면 얼마나 알겠습니까.(정말입니다)
다만 제 서재에 있는 마이페이퍼 첫째 카테고리에 있는 私淑(사숙)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유영모 선생님을 나의 스승으로 생각하고 지내다보니 남강 이승훈-다석 유영모-함석헌 선생에 대한 관심이 지대한 편이라 이 분들에 대해 여러권의 책을 읽다보니 알게 된 사실입니다.
민족지사들이 모이는 학교라 일제의 탄압으로 결국 폐교된 오산학교다 보니 남강 이승훈 선생이 사이사이 교장 역할을 했는지도 모르죠.
니르바나가 짧은 안목으로 검열한다고 생각마시고 그냥 스텔라님 글에 댓글을 재미있게 단다고 귀엽게 봐주세요.ㅎㅎ

stella.K 2024-10-12 09:51   좋아요 1 | URL
아이고, 감히 제가 어떻게 니르바나님을 귀엽게...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오히려 제가 부탁드릴 일이죠. 실수하더라도 그냥 넘어가지 마시고 꼭 말씀해 주세요. 그래야 조금이라도 나은 사람이될 것 아니겠습니까. 고맙습니다.^^

페크pek0501 2024-10-15 13: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정욱 작가의 동화를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아주 특별한 우리 형‘, 같은...
저도 동화책이나 청소년 책을 많이 읽지 못해서 기회가 닿는 대로 읽어 볼 생각을 합니다.
청소년 책이 괜찮은 책이 많더라고요. 정채봉 작가의 책도 읽었던 기억이 있어요. 두루두루 읽어 보고 싶은데 한정된 시간만 남다 보니 마음만 앞서고 있네요. 그래도 알라딘에 들어와 제가 읽지 못한 책에 대한 리뷰를 볼 수 있어 좋습니다.^^

stella.K 2024-10-15 19:39   좋아요 0 | URL
고정욱 작가의 ‘아주 특별한 우리 형‘이 있었나요?
저는 워낙 ‘까칠한 재석이‘ 시리즈가 워낙 유명해서 다른 건 대충봤어요.
그러게요. 저는 전에 청소년 문학 문제 많다는 말을 들어서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그도 읽어보니까 재밌더라구요.
인물 설정할 때 도움이될 것 같기도해요.
고정욱 작가 노련하고 영리한 작가라는 생각이들었어요.
전 이날까지 정채봉 작가의 책은 유명하다는 것만 알지 읽어 볼 생각도
안하고 있었어요.ㅠ 유명하면 그만한 이유가 있을텐데 말이죠.
TV는 딱 중2의 IQ에 맞춰있다잖아요. 그래야 모든 연령계층의
사람을 커버할 수 있다고 하던데 책도 그래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하더라구요.
특별히 어려운 책을 읽을 양이 아니라면요. 저도 점점 그쪽으로 흘러가지
않을까 싶기도해요. ㅎ

레삭매냐 2024-10-30 07: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한 번의 경험이 매우 중요하다 -
매우 격하게 공감하는 바입니다.

청소년들을 위한 책이었군요.
잘 쓰인 책이라고 하니 호기심
만발이네요.

쓰는 손맛, 작가에 대한 찬사네요.

stella.K 2024-10-30 15:01   좋아요 1 | URL
혹시 읽게된다면 그냥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읽어주세요. 어른의 눈높이라면 약간 실망하실 수도 있어요. ㅎ 그래도 작가가 소월과 백석과 중섭의 청소년 시절을 그렸다는 건 높이 살만하다고 생각합니다.^^

yamoo 2024-11-02 10: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정욱 작가에게 실제로 작문 수업인가 들은 적이 있어요. 학부때요. 키가 무척 작은데, 목발을 짚고 다녀서(두 다리가 없는 듯) 정말 충격적인 만남이었던 걸로 기억해요. 당시 학부 2학년 때였는데...이 분을 몰랐을 때였고, 동화작가로만 자기를 소개하시더라구요. 깐깐하기 이를 데 없었고, 자신감에 찬 수업...목소리도 카랑카랑 했던 기억이 있는데....아직도 건재하시군요!

stella.K 2024-11-02 10:26   좋아요 0 | URL
아, 만나 보신 적이 있으시군요. 소아마비를 앓으셔서 다리가 안 좋으시다고 들었습니다. 근데 지금까지 책 내신 거 보면 무척 열심히 사시는 분 같더군요. 어떠실지 감히 상상이...!^^
 
글쓰기의 감각 - 21세기 지성인들을 위한 영어 글쓰기의 정석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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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 처음으로 읽어보는 스티븐 핑커의 책이다.

그가 우리나라에 알려지기는 20년쯤 되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동안 그의 책들은 특유의 벽돌감 때문에 감히 읽어 볼 엄두를 못 내고 있었다. 이 책 역시 선뜻 읽을 자신은 없었지만 글쓰기에 관한 책이라 용기를 냈다. 사실 글쓰기에 관한 책은 여러 많은 사람들이 쓰긴 한다. 그건 주로 자기 계발 내지는 작가들 그중에서도 소설가들이 많이 써 왔다. 이 책도 얼핏 부제를 보면 어느 영문학 내지는 영미권의 언어학자가 쓴 책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이 책은 독특하게도 심리학자가 썼다. 또 그래서 그런지 접근이 기존의 그것과는 좀 다른 느낌이 들기도 한다. (앞으로 또 어느 분야의 전문가들이 글을 쓰겠다고 나올지 궁금하다.)

저자는 단순히 글쓰기에 관한 책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감각에 관해 다루고 있다. 특별히 저자는 글을 쓰는 사람과 그것을 읽는 사람과의 차이를 지적한다. 나도 평소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느끼는 것인데 그것을 단순히 오독도 독서의 한 형태라며 방관해도 좋을까에 대해 이 책은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저자는 유독 예문을 많이 들어 설명하고 있다. 예를 들면 이렇게 쓸 수도 있는 글을 '감각'을 살려 이렇게 쓰면 더 좋지 않냐고 독자를 설득하고 있다. 글을 쓰는 입장이라면 반박을 할 수가 없다(무엇보다 저자가 누구인가?). 그러면서 난 지금까지 글쓰기를 어떻게 쓰고 생각해 왔나 너무 쉽게 생각해 온 것은 아닌가 반성하게 된다.

지금까지 글쓰기 강사들은 하나같이 쉽게 쓰라고 강조하다 못해 거의 강요하다시피 한다. 물론 그들의 그런 강조는 틀린 것은 아니다. 글을 써 본 사람은 알겠지만 차라리 어렵게 쓰는 게 낫지 쉽게 쓰기는 오리려 어렵다. 하지만 그래서 그런지 어떤 글은 새털같이 너무 가볍다. 즉 글쓴이의 개성이나 강조점이 드러나지 않는 후유증을 겪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어쨌든 그렇게 가르쳐 온 사람들이 이 책을 읽으면 과연 뭐라고 할지 모르겠다.

저자는 특별히 글을 쓰는 사람들은 은연중 자신이 쓰는 글을 독자도 이해할 거라고 생각한단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수 있다. 그러므로 작가는 좀 더 자기가 쓰는 글에 친절해질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쉬운 것과 친절한 건 같은 것 같지만 다르다. 같은 말이라도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읽고 있으면 내가 그동안 얼마나 내 글에 책임을 지며 글을 써 왔을까 반성하게 된다. 나도 이런 리뷰를 비롯해 이런저런 글을 자의든 타의든 쓰게 되는데 적어도 독자를 외롭게 하는 작가는 되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이 책은 번역가들에게 많이 추천이 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과연 그럴 만도 하겠다 싶다. 물론 언어는 다양하지만 아직도 영어를 쓰는 작가들의 작품이 압도적으로 많이 번역되는 것도 있지만, 특별히 번역가들에겐 남다른 언어 감각이 요구되기도 하니 말이다. 무엇보다 가끔 어떤 책에 대해 리뷰를 써 놓은 걸 보면 거의 질타에 가까울 정도로 번역에 대한 불만을 토로한 글을 읽기도 한다. 사실 너무 오래된 번역본인 경우 예전엔 이렇게 번역을 했구나 할 수도 있겠지만 솔직히 언어 감각이 너무 떨어지는 책을 보면 읽기가 싫어지는 건 사실이다. 물론 번역가는 번역가대로 고민이 있겠지만, 과부 사정 과부가 안다고 같은 동종업계의 사람끼리는 몰라도 독자에게 이해받기를 바라선 안 될 것이다.

이 책은 다소 호불호가 있을 것 같긴 하다. 단순히 좋다 나쁘다의 기준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에겐 더없이 좋은 책이 될 수도 있지만 솔직히 나는 좀 버거운 책이었다. (역시 스티븐 핑거는 나에겐 쉬운 사람은 아니다.) 책이 이렇게 어려운데 기분이 꿀꿀한 건지 글쓰기에 대해 만만하게 생각했던 나 자신이 좀 부끄럽게도 느껴진다. 하다못해 글쓰기에 관심이 많다는 것도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우리 말도 제대로 구사하지도 못하면서 하물며 영어를...? 하지만 그러다가도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말하기와 글쓰기는 평생 가는 것. 우리는 학교만 졸업하면 '읽기와 쓰기'도 졸업하는 사람이 많은데 사실은 그때부터가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때가 아닐까. 그것을 포기한다는 건 인간이길 포기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요즘은 SNS의 발달로 누구든지 또 언제든지 글을 쓸 수 있다. 하지만 홍수 중 마실 물이 없다고 과연 제대로 된 소통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 책을 통해서도 도전받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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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르바나 2024-10-01 01: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글쓰기 감각에 대한 어렵고 두꺼운 책을 읽으셨네요.
글쓰기가 작가들만의 전유물이던 시대에서
블로그, SNS의 개인 글쓰기 시대로 변화하면서
확실히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는 세상으로 바뀌었지만
아무나 잘 쓸 수 있는가 하는 관점에서 보면
아직도 글이 쓴다는 것에 어려움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스티븐 핑커라는 작가 이름을 스티븐 핑거라고 반복해서 쓰셨는데
영어 이름이 Steven Pinker면 스티븐 핑커가 맞지 않나요.
영어 발음이라 저도 자신이 없지만...

stella.K 2024-10-01 15:01   좋아요 1 | URL
ㅎㅎ 아니 언제 스티븐 핑거가 핑커로 개명을 했을까요?
저는 핑거가 더 좋은데. 성을 고치는 일은 없겠죠?ㅋㅋ
니르바나님 말씀 안하셨으면 큰 일 날뻔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솔직히 이 책 좀 어렵더군요. 전 점점 머리가 굳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가끔은 어렵고 힘든 책에도 도전하고 그래야할 것 같은데 역시 쉽지는 않네요.

니르바나 2024-10-01 16:15   좋아요 2 | URL
고치시는 김에 태그도 고치시죠. ㅎㅎ

희선 2024-10-01 03: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스티븐 핑커 잘 모르지만, 찾아보니 제목 아는 거 있군요 책 제목만 기억하고 작가 이름은 기억하지 못했네요 그 사람이 글쓰기 책을 썼군요 글을 쓰다 보면 자기만 알게 쓰기도 하죠 그런 건 아무도 모를 텐데... 어떤 건 일부러 그러기도 하고, 어떤 건 저도 모르게 하는 거겠지요

글은 누구나 써도 잘 쓰는 건 쉽지 않은 듯합니다


희선

stella.K 2024-10-01 15:00   좋아요 2 | URL
오래 전에 심리학에 관심이 있었는데 지금도 관심있으면
그동안 한 권쯤은 읽었을지 모르겠어요. 근데 역시 저는
심리학은 이제 좀 별로더군요. 저는 글쓰기는 작가들이 쓴 게
관심이 가요. 그거나 기회있는대로 읽야겠어요.
글쓰기는 평생가는 거죠.

cyrus 2024-10-01 21: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가 좋아하는 번역가 김명남 님의 책은 사서 보는 편인데, 제가 영어로 글을 쓸 일이 없어서 안 샀어요.. ㅎㅎㅎㅎ

stella.K 2024-10-02 10:10   좋아요 0 | URL
ㅎㅎㅎ 이거 농담 맞지? 근데 김명남 씨가 알아주는 번역간가 보다. 네가 좋아할 정도면...!

서곡 2024-10-03 12: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월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지금 날씨 참 좋습니다!

stella.K 2024-10-03 14:37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날씨 참 좋죠? 10월이 없었으면 어쩔뻔했나 싶을 정도에요. 서곡님도 시월 잘 보내십시오. 고맙습니다.^^

yamoo 2024-10-06 12: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핑커의 책이네요! 음...핑커가 글쓰기 책도 냈군요! 핑커 첫 책으로 글쓰기 책이라니...ㅎㅎ 뭐, 입문으로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stella.K 2024-10-06 21:34   좋아요 0 | URL
ㅎㅎ 아마도 핑커의 이 책은 저에겐 첫 책이자 마지막 책이 될 것 같아요.
물론 그의 저서들이 흥미롭긴하지만 넘 두껍고 읽기가 쉽지 않아서...ㅠㅠ

페크pek0501 2024-10-06 13: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많이 들어본 저자 이름이라 제가 읽은 책이 있는 것 같아서 ‘나의 계정‘에서 검색해 보니 스티븐 핑커의 <마음의 과학>이란 책을 읽었더군요. 글쓰기 책을 저도 (읽지 않은 것) 몇 권 가지고 있는데 좀처럼 손이 가질 않네요. 천천히 음미하며 읽으면 좋을 텐데 급히 읽어야 할 책이 많은지라 차례가 오지 않아요. 언제나 부족한 건 시간...^^

stella.K 2024-10-06 21:39   좋아요 0 | URL
그렇죠? 언제부턴가 글쓰기 책이 읽긴 읽어야겠는데 잘 안 읽게되요.
최근 우연찮게 청소년 소설을 하나 읽었는데 이게 딱 내 수준이었구나
새롭게 깨닫게 되었죠. 아, 이제 어려운 책은 정말 못 읽겠어요.ㅠ

2024-10-09 12: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10-09 15: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10-11 10: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10-11 20: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희선 2024-10-11 02: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stella.K 님 축하합니다 이달 당선작... 어제 노벨문학상 한강 작가가 받았는데, 그런 역사에 남을 날과 같은 날 됐네요 지금은 좀 괜찮은데 아까는 좀 느리더군요 그게 다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아서였나 봅니다 노벨문학상 발표됐을 때는 더했다고 하더군요


희선

stella.K 2024-10-11 20:41   좋아요 1 | URL
아, 고맙습니다. 어제 마비가 됐었군요.
저는 어제 인터넷 안 들어가고 잠깐 스마트폰 잠깐 들어갔나 해서
잘 몰랐어요. 같진 않지만 음악계 임윤찬, 문학에 한강까지 우리나라에
겹경사입니다. 그죠?^^

니르바나 2024-10-12 17: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싸! 이달의 당선작 패치가 붙어있네요.
이게 언제 붙었나 니르바나는 지금 보았습니다.
스텔라님, 축하드립니다.^^

stella.K 2024-10-12 18:11   좋아요 1 | URL
ㅎㅎ 고맙습니다. 사실 전 이글로 될 줄 몰랐습니다. 오히려 된다면 이거 전에 쓴 나의 두번째 이름은 연아입니다가 될 줄 알았거든요. ㅎ
주말 잘 보내십시오.^^

젤소민아 2024-10-16 20: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직, 축하드립니다. 저도 이 책 주문해서 오고 있습니다. 기대만땅~~

stella.K 2024-10-17 10:59   좋아요 0 | URL
아고, 고맙습니다. 잘 지내시죠? 즐독하시기 바랍니다. ^^

thkang1001 2024-10-18 09: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stella.K님! 이달의 당선작 선정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stella.K 2024-10-18 21:54   좋아요 0 | URL
오, 고맙습니다. 어느새 밤이네요. 편히 쉬시기 바랍니다.^^

thkang1001 2024-10-20 13: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Stella. K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고양이라디오 2024-10-25 10: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쓰기에 관한 책을 한 권 읽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스티븐 핑커가 쓴 글쓰기 책이 있었군요! 근데 이 책도 600페이지나 되네요. 스티븐 핑커는 왜케 벽돌책을 좋아하는지...

stella.K 2024-10-25 16:02   좋아요 1 | URL
ㅎㅎ 그러게요. 벽돌책이어서 나와는 인연이 없겠구나 아예 쳐다보지도 않고 살았는데 일케 글쓰기에 관한 책을 낼 줄은 몰랐습니다. 저는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습니다만 고라님은 이책 좋아하실 것 같아요. 언제고 기회시면 한 번 읽어보세요.^^

고양이라디오 2024-10-25 17:44   좋아요 1 | URL
스티븐 핑커 책 한 번도 안봤는데 이 책으로 시작해야겠군요!

Stella.k 님 믿고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ㅎ

2024-11-08 18: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11-08 20: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의 두 번째 이름은 연아입니다 - 가난하거나, 아프거나, 술 취했거나, 미치지 않으면 나를 만날 수 없다
신아현 지음 / 데이원 / 2024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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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이 책을 읽을 생각이 별로 없었다. 관심 밖 분야고 언제나 그렇듯 세상은 넓고 읽을 책은 많은데 굳이 이 책까지...?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니 내가 우리 사회에 대해 알면 얼마나 알까 싶은 생각이 든 것이다. 내가 안고,이고 있는 세상이 전부인 것 같지만 실상 내가 아는 세상은 손바닥 하나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이 책을 읽지 않는다고 해서 세상 살아가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겠지만 내가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가급적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다.

우선 저자의 이력이 특이하다. 저자는 원래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했다고 한다. 그런데 막상 학교를 다니고 보니 화학이 자신의 적성과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휴학을 했고 넘쳐나는 시간 뭘 하며 지내야 하나 하던 차에 우연히 어느 복지센터에서 자원봉사자를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고 무턱대고 지원을 했다고 한다. 그 일은 취약계층의 아이들을 돌보는 일. 결국 그것이 계기가 되어 나중에 사회복지학을 공부해 사회 복지사가 되고, 훗날 사회복지 공무원까지 하게 되면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일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고스란히 담았다.

책을 읽게 되면 몇 가지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우선 사회복지사와 사회복지 공무원이 다르다는 것이다. 물론 그게 놀라울 정도는 아니지만 나는 지금까지 이게 따로 존재할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하지만 둘 다는 그야말로 3D 업종 중 하나다. 가끔은 이해가 안 될 때가 있다. 아무리 이기주의니 개인주의니 해도 어떤 사람은 기꺼이 이타적인 일에 자신을 희생하거니 그것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소방사나 경찰, 산악 구조대같이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일하는 사람들. 좀 더 편하고 안전한 직업을 구할 수도 있을 텐데 왜 그것을 마다하고 기꺼이 그런 일을 택하는지 알 수가 없다. 사회복지 공무원도 그렇다. 물론 위에서 말한 직업보다는 안전할지 모르지만 이름 없고 빛도 없이 국민의 욕받이를 자처한다.

그렇지 않아도 책에서 저자는 김구도 호가 있고, 안창호와 김홍도도 호가 있는데 자신도 호가 있단다. '연아'란다. 딱 들으면 피겨스케이팅 김연아 선수가 생각이 나지만 사실은 그렇게 고상한 건 아니다. 연아는 '년아'의 다른 발음일 뿐이다. 이 책을 읽기 전 제목에서 살짝 그런 의심은 해 봤는데 막상 예상을 적중하고 보니 김연아 선수가 알면 울고 가겠다 싶다.

정말로 놀라운 건, (물론 모든 사람들이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사람들이 참 무례하다는 거다. 그리고 그 무례함은 가난하다고 해서 예외가 아니고 어찌 보면 악마적이란 느낌도 든다. 가난이 무슨 벼슬이 아닐 텐데 왜 나라 일을 하는 사람에게 이토록 무례한지 알 수가 없다. 어떤 사람은 스토커처럼 집요하게 괴롭히고, 어떤 사람은 문신한 몸을 일부러 드러내고 소동을 피우기도 하며, 어떤 사람은 너무 진상이어서 안 마주치려고 동료 직원과 휴대폰 문자 교신을 하며 피해 다니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정말 내가 이러려고 공무원이 된 걸까 자괴감이 들기도 하겠다 싶다. 솔직히 내가 내 공부 해서 시험 보고 공무원 됐는데 거기에 보태준 것도 없으면서 너는 나랏밥 먹지 않냐며 지원금 좀 더 도(줘) 하는데 기가 차다.

어쨌든 그렇게 별짓을 다해 돈을 챙긴다고 치자. 과연 그 사람이 자기를 구제하는데 그 돈을 쓸까? 짐작하겠지만 그렇지 않다. 술 먹고 도박하는데 아낌없이 투자한다. 그러다 돈 떨어지면 또 무례하게 협박하고. 과연 그런 사람을 도와준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읽는 나도 화가 나고 내가 낸 피 같은 세금 그런 사람 쓰라고 내는 거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다. 읽다 보면 그들에게 뭔가의 열패감 내지는 알 수 없는 분노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건 여담이지만, 정부가 마음에 안 들면 이렇게 나라 일을 하는 공무원들에게 더 화를 내는 것 같다. 정부에 직접 할 수 없으니 그런 식으로 애매한 사람들에게 화풀이를 하는 것 아닌가 싶은 것이다. 아무튼 거의 매일 이런 일을 당한다면 나라면 뒷목 잡고 쓰러져도 여러 번 쓰러졌을 것 같다.

하지만 읽다 보면 사람에 대한 예의 보다 먼저 요구되는 건 사람에 대한 이해는 아닐까 싶기도 하다. 또한 그들이 그렇게 할 수 있는 것도 나라가 있기 때문은 아닐까 싶기도 하고. 물론 그들을 옹호할 생각은 없지만 나라가 국민을 포기하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옛말에 가난은 나라도 구제하지 못한다는 말이 있는데 지금은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최소한 굶어죽는 사람은 없지 않은가. 어쩌면 그들이 그러는 건 정말 가난해서 그럴까 싶기도 하다. 어찌어찌하다 불행한 삶을 살고 나락으로 떨어져 어떻게 해야 나를 구할 수 있는 건지 알지 못해서 그런 방법으로 표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은 것이다.

어쨌든 밥을 먹는 건 중요한 일이다. 그들의 허기를 채워줘야 그다음도 기대해 볼 수가 있다. 저자의 주된 업무는 차상위계층의 사람들에게 예산을 분배하고 집행하는 일이다. 그 일이 가난한 이들의 욕받이가 되는 일임을 저자는 알았을까? 알았다면 결코 못했을 것이다. 도대체 인간이 하는 일중 그 끝을 알고 하는 일이 얼마나 있겠는가. 역설적이게도 모르니까 갈 수 있는 게 인생이고 직업인 것 같다. 어떤 역술인이 저자에게 그랬다지. 재물, 관운, 남편, 자식 다 X라고. X라니 받아들이는 입장에선 다 없다는 말로 들릴 수도 있겠다. 그런데 그런 게 아니라 그런 것에 다 관심이 없고, 혼자 살아도 10인분의 밥을 해 놓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불러 모아 먹이는 것을 더 좋아하는 사주란다. 좀 희한한 사주다. 어쨌든 그런 사주라면 무료 급식소를 차릴 팔자인 것 같은데 지금 저자가 하는 일도 어찌 보면 얼추 맞는다 싶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공무원이 옛날 같지 않게 비인기 직종이 되어가고 있다고 한다. 어려운 시험 통과하고 막상 공무원이 되어 보니 일은 일대로 많고 사람들에게 욕은 욕대로 먹고, 나도 알고 보면 어느 집 귀한 자식인데 이런 대접받아 가면서 일할 필요가 있나 싶어 떠난단다. 맞다. 세상에 어떤 직업도 자신보다 중하지 않다. 세상에 어떤 직업이 나를 귀하게 여겨주지 않는다면 그만둬야 한다. 하지만 그러기 전에 자신이 그 직업을 쉽게 본 것은 아닌지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어떤 직업이든 자신이 그 직업을 중하게 여기면 그 일이 나를 가치있게 만든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 일 역시 그를 가치 없게 만들 것이다.

우리나라도 1인 가구가 부쩍 많이 들었다. 그에 따라 고독사의 비율도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아무도 돌보지 않는 죽음.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또한 은둔형 외톨이도 늘어나고 있다. 그런 사람들을 양지로 나오도록 하는 게 저자가 하는 일이기도 하다. 앞으로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이 점점 더 필요한 세상이 올 것이다. 아무리 1인 가구가 늘어나고 은둔형 외톨이가 많아진다고 해도 사람은 절대로 혼자 살 수 없다. 언젠간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안 될 때가 올지 모른다. 아니할 말로 내가 죽었을 때 나의 죽음을 처리해 줄 사람이 이들 일 수도 있다. 그런 걸 생각하면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된다.

읽다 보면 같이 분노하기 보다 저자는 정말 자신의 직업을 좋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사람은 절대로 쉽게 직업을 바꾸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꼭 돈 많이 버는 직업에 목숨을 걸기도 하는데 세상엔 이런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아줬으며 좋겠다. 모르긴 해도 저자는 지금의 일을 정말 좋아하는 것 같다. 그런데 그런 저자에게 이름을 불러주지 못할망정 연(년)아라니.

저자가 글을 정말 잘 쓴다. 그렇지 않아도 직장 선배가 글을 써 보라고 해서 쓰는 거란다. 웬만치 쓰는 걸 가지고 그렇게 권했겠나 싶다. 읽기를 잘했다 싶다. 저자가 힘들 것을 생각하면 나도 그만두라고 말하고 싶었다. 앞서도 썼지만 아무리 훌륭한 직업이라도 자신보다 귀하지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더 수고해 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아, 그리고 생각난 김에 연에 대한 괜찮은 한자가 뭐가 있을까를 찾아봤다. 대충 잇닿을 聯, 연결할 連, 사모할 戀, 인연 緣 등이 나온다. 이왕 연 자 들어가는 호라면 권할만하지 않을까. 부디 저자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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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르바나 2024-09-20 14: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추석 연휴에도 열심히 리뷰를 작성해서 서재에 올리는 스텔라님,
안녕하세요.^^
추석 명절 잘 지내셨죠. 송편도 맛있게 드셨구요.
우리가 아는 사회복지 공무원은 행정복지센터에 근무하는 9급 일반직 공무원으로
관내 수급자 포함 어렵게 사는 주민들의 돌봄, 관리를 맡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인간에 대한 예의가 없는 인간들이 이 세상에는 너무나 많다는 것입니다.
살림살이가 어렵다고 다 그런 것도 아니겠지만 이런 경우가 흔합니다.
과중한 업무에 과로사나 자살하는 사회복지 공무원들을 보면 정말로 안타깝습니다.
어렵게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서 뜻있는 일을 수행하는 결과가 참혹하니까요.
다 같이 잘 살기란 참 어려운가봐요.

stella.K 2024-09-20 20:27   좋아요 1 | URL
진작에 올렸어야 했는데 이것도 좀 늦은 거랍니다.
(협찬 받았거든요. ㅎㅎ)
맞아요. 이런 세계도 있구나 다시 한 번 깨달았습니다.

사실 송편은 언제 먹었는지 이젠 기억에도 없네요.
손으로 만든 송편이 맞있는데 집에서 만들어 먹기는 어렵고
마트에서 파는 건 맛이없고. 그래도 편안히 잘 보낸 것 같습니다.
니르바니님도 추석 잘 지내셨죠?
챙겨주셔서 고맙습니다.^^

페크pek0501 2024-09-20 16: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회복지 일을 하는 저자의 책이라면 풍성한 이야기가 담겼겠군요. 제가 참석하는 영화 모임에 그런 일을 하는 분이 있는데 그분이 실제 경험한 것을 듣고 깜짝 놀란 적이 있어요. 인간이 그렇게까지 양심이 없고 염치가 없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약자를 위한 사회제도를 교묘하게 이용하는 이들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돈 앞에서 인간의 도리를 기대해선 안 된다는 것이 씁쓸합니다.^^

stella.K 2024-09-20 20:34   좋아요 1 | URL
그래서 가끔 사회파 드라마들 이런데서 아이디어와 소재를 얻겠구나
싶더군요. 문신한 남자가 깽판치는 거 어느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잖아요.
그게 아주 근거없는 얘기는 아니겠더라구요.
저도 읽으면서 놀랍기도하고 찡하기도하고 그랬습니다.
리뷰에 미쳐 다 못 썼는데 도움이 때로 독이 되는 케이스도 있더라구요.
저자가 초기 때 의지가 너무 앞서서.
세상엔 정말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일이 너무 많은 것 같아요.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