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 그게 뭔데, 문장 - 우리 시대 작가 44인의 아름다운 산문과 '가족 문단사' - 앤솔로지
이태준 외 지음, 윤작가 엮음 / 우시모북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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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들면서 산문이 좋아진다. 산문은 보통 사춘기 시절부터 읽게 되는 것 같은데 아무리 책 읽는 것을 좋아해도 산문을 좋아하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 그 시절 산문을 읽는다는 건 밍밍한 평양냉면을 처음 먹는 맛이라고나 할까. 알지 않는가 처음 먹는 평양냉면이 어떤 맛인지. 기대에 차서 먹다가 뭔가 속은 느낌이다. 하지만 자꾸 먹으면 어느새 중독된다. 나는 그렇게 알게 모르게 산문을 읽고 나이를 먹었는지도 모르겠다. 

 

생각해 보면 산문은 시나 소설에 가려 홀대받아 왔는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면 내가 산문을 밍밍하게 느꼈으니 나도 그 홀대에 공범자 인지도 모르겠다. 산문을 읽을 그 시간에 다른 책을 읽지 했다. 독서 모임이나 아는 누구와 얘기를 해도 시나 소설 또는 인문서 가지고 얘기해도 누구의 산문집 가지고 얘기하는 경우는 별로 없지 않나. 사람은 생각만큼 남의 생각에 관심이 없어서 살아가면서 느끼는 여러 가지의 것들을 산문으로 써도 잘 안 읽게 되는 것 같다. 그런 내가 산문을 좋아하게 된 것은 간결하고도 정감 넘치는 문장 때문이기도 하지만 진짜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단편 소설은 몰라도 장편 소설은 워낙에 길어 앞뒤 맥락을 잘 파악하고 있지 않으면 오독하기가 쉽다. 그래서 읽다 보면 내가 지금 제대로 읽고 있는 거 맞나 자신이 없어지고 자꾸 확인하고 싶어 진다. 그 번거로움이 싫어 자꾸 산문에 눈길이 가는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요즘엔 주제도 다양하고 확실히 전과 같지 않다. 

 

편견 같지만 요즘 작가와 옛날 작가가 좀 다른 것 같다. 요즘 작가는 스마트하고 재치가 넘치기도 하지만 옛날 작가들은 깊이가 있고 정감이 넘친다. 하지만 아쉽게도 옛날 작가들의 산문은 소설만큼 쉽게 접할 수 없는 것 같다. 정말 작심하고 작가의 선집 중 산문집을 따로 분류해 놓은 책이 아니면 대중서로는 안 나와 있는 것 같다. 그 점은 좀 아쉽다. 우리 옛 시나 소설은 그리도 잘 다루고 분류해 놓으면서 왜 산문은 그렇게 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있다면 중고등학교 교과서나 참고서 정도.)

 

물론 그런 작업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전에 <소리 내어 읽고 싶은 우리 문장>이란 책을 읽었는데 특별히 기대하지 않고 읽었는데 의외로 정말 좋았다. 그건 옛 작가의 산문 모음집으로 잘된 문장은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기 위한 예문집 같은 거였다. 산문이 단순히 문장 훈련을 위해 존재하는 건지에 대해선 의문의 여지는 남는다(산문은 산문 그대로 봐줘야 하는 것 아닌가). 그렇긴 해도 난 한동안 옛 작가들의 문장의 정취에 젖어 있었다.        

 

이 책은 위의 책과 비슷하다. 한 작가의 산문이 아니라 여러 작가의 산문을 읽을 수 있으니 산문의 진수성찬이다. 물론 생각하기에 따라선 취향이 달라 잡탕이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난 이런 시도는 나쁘지 않다고 본다. 우린 보통 좋은 문장을 위해 산문을 읽기도 하고 써 보기도 하지만 이렇게 모아 놓고 보면 작가들의 표현이 참 다양하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6개의 큰 주제로 분류하고 각 주제에 맞는 여러 작가의 글을 정리해 놓으니 이걸 다 어떻게 했을까 엮은이의 수고가 느껴진다. 

 

그런데 지금은 책을 읽은 지가 꽤 됐는데도 뭔가의 아쉬움이랄까 불만이 쉬 떨쳐지지 않고 있다. 그렇게 분류만 해 놨다 뿐이지 좀 불친절해 보여서다. 본명은 차치하고라도(요즘은 본명을 안 쓰는 경우도 있으니까) 그렇게 남의 글은 열렬하게 수록해 놓고 해제는 고사하고 본인의 느낌도 없다. 본인의 글 하나쯤 실을 만도 할 텐데 그 흔한 여는 글조차 쓰질 않았다. 그런 것에서 산문은 산문으로만 얘기하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느껴지기도 하지만 뭔가 독자를 배려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적절한 예가 될지 모르겠는데, 집에서 가까운 약국에 새로운 약사가 왔는데 분명 약사일 텐데도 가운을 입지 않고 손님을 받고 있다. 나는 처음에 그가 점원인 줄 알았다. 그렇다고 물어보기도 뭐하고. 그런데 생각해 보니 점원은 아닌 것 같다. 단골은 아니지만 오래전부터 그 약국은 점원 같은 건 두지 않았다. 그런 것으로 보아 그 약사는 가운을 별로 좋아하지 않거나 편하게 손님을 대하고 싶은 마음에 그러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고객인 나로선 별로 좋아 보이진 않았다. 마치 고객을 쉽게 생각하거나 약사로서의 권위와 책임을 다하려 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작가가 책을 낸다는 것도 똑같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자신의 글은 싣지 않는다고 해도 처녀가 애를 낳아도 할 말은 있다고 작가가 왜 이런 작업을 했는지 밝혀야 독자도 산문에 대한 애정이 얼마만 한 건지 알지 않겠는가. 그건 독자와 각각의 글을 실은 작가들에게 예의를 다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더 나아가 각 글에 대한 해제나 본인의 느낌을 간략하게 실으면 더 좋고. 그런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지도 않고 책을 내겠다는 건 별로 바람직해 보이지는 않는다. 팻캐스트 방송은 얼마나 잘하는지는 모르겠으나 그 정성으로 책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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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북사랑 2021-04-24 20: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최소한의 예의˝ 아주 가끔이지만, 그걸 요청해보고 싶은 책도 있는데 점잖게 말씀해주셨네요^^

stella.K 2021-04-24 20:20   좋아요 2 | URL
ㅎㅎ 그런가요? 책을 오랜 세월동안 읽어 와서 그런지
만듦새를 따지게 되는 책도 있더군요.
이 책이 그래요. 의도는 좋을지 모르지만
디테일에서 결국 판정패한 책이라고나 할까요?ㅠ

바람돌이 2021-04-24 22: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른 이의 글을 엮은 것이라 해도 책으로 내놓았다면 그에 대한 자기 나름의 이야기를 하는게 책임감 맞다고 생각해요. 책을 만든 이의 말이 단 한구절도 없는 책이라니 최소한의 예의가 없다는데 공감합니다. ^^

stella.K 2021-04-25 19:01   좋아요 0 | URL
이 사람 팟캐스트는 어떻게 진행하는지 모르겠어요.
모르긴 해도 팟캐스트는 이렇게 건조하게 하지는 않겠죠.
고작 써 놓은 게 각 작가의 약력을 써 놓은 정돈데
그것 조차도 안 써 놨다면 어땠을까요?ㅠ
그래도 그런 거 접고 순수하게 산문을 읽겠다면
좋지 않을까 싶어요. 그래서 별 세 개로 했어요.ㅋ

페크(pek0501) 2021-04-25 12: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 말씀을 해 주셨네요. 예의에 관한...

예전에 돌베개에서 열 권인가 시리즈로 나온 수필집이 있었어요. 이태준 작가의 것은 (청소년이 읽는 우리 수필 4)로 되어 있어요. 이걸 좋게 읽어서 나머지 책도 사서 읽으려고 했던 기억이 있어요. 이태준 작가의 것은 지금 찾아 보니 품절이네요. 글이 참 좋았어요. 신영복 선생 것은 있네요.
청소년용이지만 어른이 읽어도 괜찮을 것 같아요.

알려지지 않은 책을 잘 선택해 소개해 주셨네요. 여러 작가의 작품이 실려 다양하게 읽을 수 있는 장점이 있겠어요.

stella.K 2021-04-25 19:01   좋아요 0 | URL
돌베게에서 그런 시리즈가 있었나요?
하긴 저도 찾아보니까 청소년용으론 나온 게 몇있더군요.
와, 근데 언니가 안 읽은 책은 뭐예요? ㅎ
이 책은 언니가 굳이 안 읽어도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그냥 수필에 관심있는 사람이 가볍게 읽으면 좋지 않을까 싶네요.

scott 2021-04-25 21: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 작가의 선집 중 산문집을 따로 분류해 놓은 책이 아니면 대중서로는 안 나와 있는 것 같다]
맞습니다 작가들의 산문 한권으로 분류가 안되어 있고 청소년용 논술 수능용으로 묶음 나오니

stella.K 2021-04-26 19:19   좋아요 1 | URL
그니까요. 전 문장 훈련으로 산문을 읽는다는 거
좀 못 마땅합니다. 산문은 산문 자체로 즐기고 알아가야죠!
 
톨스토이의 생애 범우문고 262
로맹 롤랑 지음, 이정림 옮김 / 범우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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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만에 잡아 본 범우사 책인가? 성인이 된 이후론 읽지 않았던 것 같다.

 

처음엔 괜찮게 잘 읽혔는데 중반 넘어서부턴 뭔 말인지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  

로맹 롤랑이 전기 작가로 유명하기도한데 이 책은 전기라기 보단 톨스토이 문학론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톨스토이는 작가이기도 하지만 사상가이기도 하지 않나 싶다. 자신의 하고 많은 지식을 단순히 글 쓰는데만 쓰지 않고 자신과 세상을 변화시키는데 썼다. 그러므로 단순히 작가로만 보기엔 그는 너무 큰 사람이다. 

 

그런 의미에서 톨스토이의 삶을 담아내기엔 책이 너무 얇다는 느낌도 든다. 톨스토이의 저작들을 생각하면 과연 로맹 롤랑이 이렇게 밖에 안 썼을까 의문스럽기도 하고. 문득 내가 지금까지 그의 작품을 얼마나 읽었나 생각해 보니 몇 작품되지도 않는다. <부활>은 전에 두번쯤 읽은 것 같은데 지금 다시 읽으면 어떤 느낌일지 모르겠다. 누군가의 말에 의하면 그의 톨스토이는 <전쟁과 평화>나 <안나 카레에니나>에 비해 스스로 저평가했다고도 하던데 이 책에선 나름 비중있게 다루기도 했다. 

 

문고본은 가성비가 좋긴하지만 뭔가 축약된 느낌이 들어 손이 잘 가지 않는다. 시간이 없거나 독서에 길들이기엔 문고본이 좋긴 하지만. 아무튼 이 한 권으로 톨스토이를 알려고 한다는 건 무리가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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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1-04-11 12: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출판사는 다른데 이 책을 오래전에 읽었어요. 그때 처음 로맹 롤랑을 알았죠.
작년인가 팽귄 클래식의 <무도회가 끝난 뒤>와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읽었어요. 단편집인데 역쉬~ 톨스토이이구나 싶더군요.
그리고 이번 해에 또 톨스토이 단편집을 샀어요. 두 권짜리로. 이건 아직 못 읽음.
<전쟁과 평화>가 가장 대작이라고 하는데 이건 너무 길어서 엄두를 못 내겠어요. ㅋ

stella.K 2021-04-11 18:24   좋아요 2 | URL
역시 이런 허접한 글에도 무플을 방지해 주시는 분은 언니뿐이십니다. 흑~
이 책은 번역이 문제인 건지 아니면 롤랑의 글이 어려운 건지
아무튼 좀 아쉽더군요.
저는 톨스토이는 꼴랑 <부활>하고 단편 몇 편이 다 인 것 같습니다.
그의 장편 소설은 자신이 없기는한데 그래도 죽기 전에 한 번은 읽어 봐야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ㅠ

2021-04-20 20: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21-04-21 19:50   좋아요 1 | URL
아, 별거 아니구요, 작년에 저의 서재가 사라질 뻔했어요.
알라딘으 실수로. 근데 자기네도 왜 그런지 모른다고 하더군요.
한참 옥신각신하다 예전에 다른 사이트에 알라딘 페이지 주소를
적어 놓은 게 있어 알려줬더니 겨우 경로를 찾아 복구해 놓더군요.
그게 죽다 살아난 거죠.ㅋ
점점 알라딘에 글 쓰는 일이 줄어들고 있는데 그래도 관심 가져주셔서 고마워요.
뭐라도 써야지 하는데 그게 잘 안 되네요.ㅠ
근데 서재 이미지 바꾸셨네요.
강아지는 잘 있나요? 우리 집 다롱이는 완전 노견이 되서
울엄니랑 나랑 완전 애기 돌보듯하고 있습니다.ㅠ

scott 2021-05-02 00: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스텔라 케이님 바뀐 프로필 사진 좋네요
이전에 오드리도 멋졌지만,
이런 문고본 좋아하는데 (가성비도 좋고 가볍고 얇은)
한국 책들 하드커버만 줄창 출간하면서 가격은 야금씩 올리는 !


stella.K 2021-05-02 18:03   좋아요 1 | URL
ㅎㅎ 고맙습니다. 제가 서재에 잘 걸어놓는
이미지중 하나죠.
다소 장난꾸러기 같은 저 소녀가 꼭 저 같아서 좋아합니다.ㅋㅋ
근데 누가 그린 그림인지를 모르겠어요.
알면 알려주세요.

우리나라 책값이 아직은 그렇게 비싼 것이 아니라는데
전 그 말에 동의 못하겠더라구요.
2010년 이전에 나온 책은 싸 것 같은데
그 이후부터 서서히 비싸지지 않았나 싶어요.
그저 중고샵 망하지 않고 번성하길 바랄뿐입니다.
그렇잖아도 예스24 강남역이 없어져서 가슴이 쓰릴뿐입니다.ㅠ

stella.K 2021-05-02 18:04   좋아요 1 | URL
헉, 깜짝이야.ㅎㅎㅎ
이 시간 서재에 계시는가 보군요.
제가 수정하는 사이 좋아요를 날려주시다닛!ㅋㅋㅋ

scott 2021-05-04 16:18   좋아요 1 | URL
스텔라 케이님 프로필 그림
화가 바르톨로메 에스테반 무리요!
미쿡워싱턴 DC내셔널 갤러리 오브 아트에 이작품 걸려있어요
창문에 있는 두여자 라고 불리는데 스페인 바로크 시대에 그려졌다고 합니다. ^.^

stella.K 2021-05-04 18:43   좋아요 1 | URL
와~ 이걸 어떻게 찾으셨습니까?
조금의 근거가 있어야 찾을텐데
스콧님 대단하십니다!!
그림이 바로크풍이긴 하죠?
그래도 그것만 가지고는 찾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요. 존경합니당~!
그래서 바로 네이버로 갔죠.
‘바르톨로메 에스테반 무리요‘ 여기까지 이름이군요.
저는 -요는 그냥 말을 높여 쓰시느라 그런 줄 알았어요.ㅋ
그런데 그림 제목이 ‘창문에 있는 두 여자‘가 아니라
‘소녀와 가정교사‘라는데요? 어디는 ‘창가의 소녀‘라고도 하고.
조금씩 제목이 다르네요.
딱 봐선 소녀와 유모 또는 하인 뭐 그렇게 보이는데 말입니다.
오늘부터 이름과 제목을 프로필에 써 놔야겠어요.
정말 고맙습니다.^^
 

 나도 생각이 난다.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하던 날을. 그 일이 있기 전날까지만해도 일상은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갈 것만 같았다. 그런데 하룻밤 사이에 박 대통령이 돌아갔다는 것이다. 이 사실을 믿어야 하는 건지 말아야 하는 건지 얼떨떨했다. 한 나라의 대통령 아니 우리나라엔 대통령은 오직 한 사람 밖에 없는 줄 알았다. 바로 그 분이 돌아가셨는데 아무 일도 없이 학교를 가야한다는 게 좀 이상했다.   

 

 날씨가 어땠는지 정확히 기억하진 못하지만 몹시도 흐리고 을씨년스러웠다고 생각한다. 교실은 거의 초주검 상태였다. 반 아이들 거의 대부분은 훌쩍거리거나 침통한 표정이었다. 난 눈물은 나오지 않았지만 기분이 몹시 침울했다. 그러던 중 나와는 그다지 친하지 않았던 같은 반 아이 하나가 밑도 끝도 없이 "너도 안 우네."하는 것이다. 침통했던 건 사실이지만 울어야 하는 것인지 의아스럽긴 했지만 얼떨결에 쏘듯이, "안 울긴 왜 안 울어?" 했다. 그리곤 내 자리에 가 앉았는데 그렇게 말하고 보니 좀 미안하긴 했다. 아무리 친한 친구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쏠 필요는 없었던 건데 다시 돌아가 사과할 수도 없고. 때가 때인만큼  그 친구도 이해할 거라고 믿고 넘어갔다.

 

그때 울어야 하는 것이 맞는 것일까? 울어야 한다면 그건 박통이기 때문이라기 보단 사춘기 소녀적 감성이거나 그 보다 4년 전 영부인을 잃어 본 연장선 때문인지도 모른다. 우리나라 국민은 참 박복도 하지. 어떻게 대통령 부부가 노환으로 인한 자연사나 병사가 아닌 비명황사를 봐야만 한단 말인가. 이건 정말 누구의 책임을 논하기 전에 한 나라의 비극이 아닐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가 죽기 1년 전인가, 2년 전에 대통령 대의원 선거가 있었다. 그게 어떤 의민지 알지 못했던 초등학생인 나는 박통이 무난히 대통령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고 그 예감은 적중했다. 그런데 얼마 있지 않아 이런 끔찍한 일을 보다니. 그 직후 계엄령이 내려지고 한동안 밤 10시 이후 통행금지가 내려졌던 것으로 안다. 그리고 그 이후로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물론 그때 무슨 일이 왜, 어떻게 있었는지는 단편적으로는 알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렇게 전체를 조망하는 것을 보기는 이 영화가 처음은 아닌가 한다. 또 이 영화는 김충식의 <남산의 부장들>에 힘 입은 바 클 것이다. 워낙에 원작이 탄탄해서일까 영화 역시 탄탄한 구성과 사실적 연출이 인상적이다. 하지만 영화는 책의 내용을 다 다루지는 못한 듯 하다. 그저 박통이 왜 암살 당했는가에 대한 전후 사정에만 집중했다. 그에 비해 책은 훨씬 광범위하게 다뤘다.

 

역사적 사실에 근거했지만 영화의 등장인물은 실명을 쓰지 않는다. 하지만 누가 누구를 의미하는지는 충분히 짐작이 가게끔 각 등장인물의 싱크로율이 꽤 높다. 김규평(실제론 김재규겠지만) 역의 이병헌의 연기도 인상 깊지만 나는 웬지 박통을 연기한 이성민 배우의 연기가 더 인상적이다.

 

 

 

그의 연기에서 정말 살아있는 고뇌에 찬 박정희를 보는 것만 같았다. 외모는 물론이고, 특히 당나귀 귀처럼 일부러 쫑긋 세운 귀는 탄성을 자아낼 정도다. 그뿐인가, 말투와 걸음걸이 역시도 박통을 빼닮았다. 그런 것을 보면 이성민이란 배우는 박정희 대통령에 대해 정말 연구를 많이했던 것 같다. 무엇보다 실제로 박정희 대통령이 저렇게 조그맣고 단단한 체구였나 새삼 의문스럽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때 나는 아직 다 성장하지 않았기 때문에 세상의 모든 어른들은 다 나보다 컸다. 그러니 당연히 그도 컸을 거라는 것에 추호의 의심도 갖지 않았다. 더구나 한 나라의 최고 지도자가 아닌가. 키 작은 최고 지도자는 상상할 수도 없다. 

 

하지만 40여년만에 영화속에 송환되어 나온 박통은 정말로 작고 단단해 보였다. 게다가 권력에 찌들었다. 대통령을 세번을 연임했으니 그럴만도 할 것이다. 그쯤하면 자신도 언제까지나 대통령을 할 수 없을 거라는 걸 알고 있을 것이다. 더구나 몇해 전엔 아내가 비명횡사를 했다. 권력과는 멀리 떨어져 있고 자신을 미워하는 사람은 있어도 아내는 모든 사람으로부터 추앙을 받는 존재다. 물론 그 총탄은 애초에 자신을 겨냥하고 있었다. 그게 빚나가면서 자신은 살 수 있었지만 대신 아내가 총알받이가 되어야 했다는 건 평생의 트라우마로 남았을 것이다. 권력과 먼 선량한 아내도 비명에 간 마당에 권력의 피를 한껏 빨아 먹고 그 자리를 차지한 그는 언제 죽을지 모르니 얼마나 불안하고 초조했을까. 아니 어쩌면 그것을 넘어 우울했을지도 모른다. 죽으면 그만인 걸 뭐 그리 권력에 눈이 멀어 한 세상을 살아왔을까 후회스럽기도 했겠지. 그것은 그의 십팔번이었던 당대 유명한 노래 <황성 옛터>에 고이 실어 불러보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권력을 쉽게 놓지도 못한다. 그건 당연하다. 그는 권력의 피를 마시며 자란 한마리 외로운 늑대다. 그런 그가 권력 외에 무엇을 더 추구할 수 있겠는가. 원래 드라마고 영화고 흡연 장면은 생략하거나 간접적으로만 나오도록 되어있는데 이 영화는 이례적으로 직접 표현되기도 했다. 그런데 감독은 오래도록 털지 않은 담뱃대의 재도 계산에 넣은 듯 하다. 그것은 곧 박통의 오랜 고뇌와 신음을 표현해 주는 것만 같다.     

 

그는 아무도 믿지 않았다. 그것은 권력자의 생리 그대로를 보여준다. 그래서 그는 항상 그렇게 말하지 않는가. "임자하고 싶은대로 해. 임자에겐 내가 있잖아." 말 자체로야 얼마나 신뢰를 주는 말인가. 남편이 사랑하는 아내에게 또는 아버지가 자식에게 그런 식으로 말한다면 최고의 남편이고, 아버지일 것이다. 하지만 권력 관계에서 그 말은 제법 살벌한 말임에 틀림없다. '네 뜻대로 해 봐. 그것이 내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군.'의 또 다른 말 아닌가.

 

하지만 특이하게도(?) 독재자에겐 대신 짖어주고, 아부하는 개가 항상 있다. 독재자는 그 개에 의해 눈이 점점 멀어간다. 영화에선 곽상천이 바로 그 개다. (실제론 차지철 아니었나?). 박통은 그렇게 자신을 대신하여 충실히 짖어주고 아부하는 개가 좋지 김규평 같이 입바른 소리하는 사람은 싫어한다. 그건 어느 독재자든 그의 말로를 보여주는 첫번째 징조이기도 하다. 측근 부하의 충언은 독재자에겐 그 자체로 들리기 보단 자신에게 도전하거나 반하는 것으로 들린다. 그렇게 지쳐있다가도 김규평이 무슨 말을 하면 금방 표정이 바뀌고 독기를 드러낸다. 그런 것을 통해 그는 자신은 죽지 않았음을 나타내기도 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박통은 권력의 최정점에 올라설 줄만 알았지 어떻게 내려와야 하는지는 조금도 알지 못했던 사람이다.

 

그렇다면 박통을 살해한 김규평은 어떤 사람일까. 실제로 그때 난 박정희 대통령을 죽게 만든 김재규를 결코 용서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그는 김일성만큼이나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국가 원수를 죽이지 않았는가. 그를 어떻게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영화에서 그는 제법 똑똑하고 명민한 인물로 그려진다. 하지만 이미 박통의 신망을 잃은 관계로 그는 매번 그의 의견은 묵살 당하곤 한다. 신망을 잃은 자의식이 강한 인물의 선택지는 그렇게 많지 않아 보인다. 독재자가 그리 강하게 나온다면 둘 중 하나가 아닐까. 조용히 독재자의 시야에서 사라지던가 아니면 하극상을 보이던가.

 

박통은 김규평을 무시하고 냉정히 대하는 중에도 그를 품으므로 자신이 그의 상관임을 다시 한 번 인식시켜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술자리에 초대하기도 했는데 그건 확실히 박통의 늦은 제스처임에 틀림없다. 바로 그 자리는 김규평이 박통에게 하극상을 보이기 좋은 자리였다. 그러고 보면 박통은 때로 자신의 심복에게 관대함을 보이는데 있어 인색하거나 타이밍을 못 맞추는 사람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김규평의 입장에선 친구이기도 한 박용각을 박통이 죽도록 내버려뒀다는 것도 화가났을 것이다. 그것도 부족해 부산 시민이 들끓고 일어나자 곽상천이 탱크로 밀어버리면 그만이란 말에 아무런 제지도 안함으로 그 생각에 동조한다.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했다고 언제나 그 방법이 통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 얼마나 위험한 생각인가. 그런 것을 보면 지금도 정치 윗선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이 국민의 생명을 놓고 무슨 말을 하고 있을지 알 수가 없다. 바로 그런 점에서 시민을 개 돼지로 표현했던 어느 정치인의 말이 전혀 틀린 말도 아니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왜 권력자들은 하나 같이 나라란 거대한 판을 놓고 도박을 하려고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정치는 나라를 위해 일하라고 있는 거지 도박을 하라고 있는 것이 아닌데 권력을 얻으면 왜 하나같이 도박꾼으로 변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실제로 김제규는 똑똑한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박통을 더 이상 살려뒀다간 이 나라가 어찌될지 모르니 제거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글쎄, 만일 그때 박통이 암살 당하지 않고 조용히 하야하거나 독재의 이미지를 벗어버리고 임기를 채우고 권좌에서 내려왔다면 우리나라는 어떻게 되었을까.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그런데 김규평은 좀 미스터리한 인물이긴 하다. 그런 거사를 그의 부하들과 함께 공모하면서 그 다음엔 어떻게 할까요란 질문에 이렇다할 대답을 못했으니. 자신은 그렇다고 쳐도 그 공모에 끌어 들였던 부하들은 살 길은 열어줬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래도 양심은 살아있었을까 박통을 죽이고 그를 실은 차가 남산을 향해 가려던 것을 돌려 육군본부로 돌린다. 육본으로 간다는 건 자수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는 그렇게 사형을 언도 받은지 47일만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하지만 역시 우린 참 박복한 국민이란 생각이 든다. 이왕 그렇게 돼버린 거야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그 이후에도 독재의 그림자를 거둬내지 못하고 도탄에 빠져 허우적 대야했으니 말이다. 영화에서 반대머리에 제복을 입은 전두혁이 빈 대통령 집무실의 책상을 곁눈질 하는 장면은 짧지만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만들지 않는가.

 

또 우리나라는 그 험한 세월을 지나쳐왔다지만 오늘도 계속되고 있는 미얀마의 군사 구데타를 보면서 남의 일 갖지 않아 가슴을 쓸어내린다. 언제까지 이것을 지켜만 봐야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어느 나라든 지도자를 잘 세우는 건 너무나 중요하다. 역사를 통해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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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07 21: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4-08 18: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언제 러시아가 도스토예프스키 전기 영화를 만들었나 보다. 그것도 8부작 TV 시리즈로. 무려 방연연도가 2012년이다. 우연히 올레 TV를 뒤지는데 이게 딱 걸렸다. 우리가 외국 배우를 안다면 미국이나 영국, 프랑스와 일본 배우 정도나 집중적으로 알지 러시아 배우의 이름을 알기란 쉽지 않다. 예브게니 미로노프란 배우가 도스토예프스키 역을 맡았다. 이 배우는 <더 레볼루션>, <스페이스 워커> 등에 나왔다고 한다.  

 

이 배우의 도스토예프스키의 싱크로율은 거의 90% 정도? 참고로 이 배우는 1966년생이란다. 하지만 영화의 내용과 실제 도스토예프시키의 전기는 또 얼마나 일치하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다른 이의 전기 영화가 그렇듯 나름 충실하게 만들었다고 믿어야겠지? 지금 우리나라엔 도스토예프스키의 평전은 절판된 걸로 알고 있다. 

 

솔직히 도스토예프스키를 깊이 연구하지 않으면 우리가 알고 있는 건 극히 단편적이다. 뭐 사형 직진에 집행정지를 받은 거나, 간질이 있다는 것과 노름꾼이란 정도가 전부 아닐까? 그런데 영화는 여성 편력도 좀 있고, 신앙이 깊은 줄 알았는데 그건 표피적이고 명성에 비해 쉽지 않은 삶을 살아왔다는 걸 영화는 나름 잘 보여주고 있다. 적어도 도박만하지 않았어도 경제적으로는 어렵지 않게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노름빚이 아니었다면 우리가 그의 빛나는 작품을 읽을 수 있었을까를 생각할 때 글쎄, 작가는 등 따숩고 배 부르면 안 되는 직업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뭐 그렇지 않더라도 그의 작품이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시리즈의 평점은 5점 만점에 2.9점인데 물론 다 믿을 건 아니지만 처음 점수가 낮아 보기를 좀 망설였는데 그래도 보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하긴 원래 전기 영화에 대한 평점은 대체로 짠 편인데 그 정도라면 양호하다고 봐야겠지. 참고로 내 개인 점수는 3.5다. 어쨌든 이 시리즈를 보니 도스토예프스키가 부쩍 읽고 싶어졌다.

 

이 영화는 영화라기 보단 뮤지컬 프로듀서 카메론 매킨토시가 지금까지 프로듀싱한 작품들을 한 자리에 모아놓은 갈라쇼다. 우리가 알만한 유명한 작품들은 그의 손을 거쳐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를테면 <레 미제라블>, <미스 사이공>, <캐츠>, <올리버> 등등의 작품들.

 

한마디로 그는 기념비적 인물임엔 틀림없다. 지난 2008년도에 영국 여왕 부부를 모시고 이런 공연을 한 것이다.

 

성격상 한 작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감상하는 걸 좋아하지 갈라쇼는 별로라고 생각해서 조금 보다가 말려고 했다. 그런데 거의 세 시간하는 작품을 결국 끝까지 보고 말았다.

 

보면서 새삼 놀라운 건 등장하는 배우들이 정말 다양하다는 거였다. 인종도 다양하지만 무엇보다 살찌고 늙은 노배우들 정말로 많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그런 무대가 벅찰 법도한데 무대에 워낙 잘 적응이 되어서인지 지치지도 않고 자연스럽다. 그것만 보더라도 우리나라와 굉장한 차이를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젊은 사람에게 노인 역을 맡길 망정 노배우를 뮤지컬에 직접 쓰는 경우는 거의 없지 않나? 

 

아직도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는 우리나라 뮤지컬 1세대들이 있다. 전수경이나 남경주, 최정원 등. 그들은 어느 새 중년이 되었고 앞으로 10년 안에 일선에서 물러나 있겠지만 난 이들이 10년 후, 20년 후에도 무대를 지켜줬으면 한다. 암튼 늙었든 살이 쪘든, 어떤 인종이든 다양하게 인물을 쓰는 그들의 시스템이 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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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3-23 20: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도키 선생의 가장 큰 반전은 엄청 다정다감한 남편에 아이들을 넘 ㅎ 사랑했다는거!러시아 저시절 남자들은 술-도박-폭력이런 나쁜 버릇을 일삼았는데,,,,나보코프 외삼촌이 도키선생 시베리아 유형지에 있을때 감찰관으로 가서 심문 한적 있는데 그렇게 예의 바르고 교양이 넘쳤던 젊은이였다고 하더군요. 뮤지컬 한국은 거의 아이돌들에게 점령 당해버려서 ,,,,

stella.K 2021-03-24 16:56   좋아요 1 | URL
그러니까요. 그런 인간적인 면들이 좀 더 들어나야 하는데
뭐 감독이 없는 말 지어내지는 않았겠지만 너무 그런 측면을
배제하고 있는 것 같아 아쉽더군요.
그래도 러시아의 풍광이나 사람들과의 갈등 뭐 그런 부분들은
나름 충실하게 그렸더군요. 괜찮았습니다.

맞아요. 아이돌에 의해 점령 당해버렸죠.
그 아이돌이 뮤지컬에서 잘 자라준다면 봐줄만도 한데
이거했다 저거했다 철새처럼 떠다니는 것도 좀 그렇고.
옥주현은 뮤지컬 2세대로 잘 자라고 있잖아요.ㅋ

cyrus 2021-03-24 10: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에서 인지도가 높은 성우 대부분은 오래 활동한 분들이에요. 대표적인 예가 <짱구는 못말려>의 짱구 목소리가 박영남 씨인데, 이분 연세가 칠순 넘었을 거예요. 지금도 활동하고 계세요. 젊은 축에 속하는 성우들도 있긴 한데, 이분들의 연세가 40~50대에요... ㅎㅎㅎ 요즘에는 성우 대신에 연예인이 더빙을 맡는데, 이런 상황을 좋다고 볼 수 없어요.

stella.K 2021-03-24 16:59   좋아요 0 | URL
그렇구나. 양지운이나 배한성도 그 또래쯤 됐을텐데 말야.
난 옛날 시절이 그라워.
주말의 명화 시절엔 다 더빙이었잖아.
지금은 연예인 아니면 자막이니 성우들이 설 자리가 더 좁아졌지.ㅠ

레삭매냐 2021-03-30 20: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도끼 샘 탄신 200주년이라 왠지
도끼샘의 책을 읽어야지 하면서도
선뜻 손이 가질 않네요.

물론 언제나 도끼샘의 책들은 주변
에서 대기 중입니다.

stella.K 2021-03-31 19:51   좋아요 1 | URL
두께가 좀 부담스럽긴 하죠?
남의 나라라 그런지 쉽게 읽히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 영화에선 당대 베스트셀러처럼 묘사되더라구요.
아마도 그 시대엔 tv나 볼 것이 그리 많지 않으니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철학적 주제를 좋아하는 것도 있을 것도 같고.ㅋ
 
그래봤자 책, 그래도 책
박균호 지음 / 소명출판 / 2021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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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반가운 새 책이다. 어찌어찌하다 보니 저자의 책을 세권째 읽었다. 저자가 지금까지 10권의 책을 낸 걸 생각하면 반도못 읽은 셈이지만 그래도 한 저자의 책을 그쯤 읽었다면 나름인연이 깊다면 깊다. 특히 이번 책은 오래전 <오래된 새책>을 읽은 후 정말 흥미롭게 읽었다. 저자의 책은 일반 서평집과는 조금은 다른 양상을 띠기도 하는데, 이를테면 인간의 독서행위에 대한 고찰하기도 했다는 점이 아닐까 한다. 읽으면서 공감도 되면서 난 아직 이 정도는 아니지 하는 안도와 자존심의 스크래치 나는 소리를 번갈아 가며 들어야 했다고나 할까. (물론 그 스크래치는 오래전 인터넷 서점에 블로그 활동을 하면서 이미 나긴 했다. 독서 고수들이 어쩌면 그리도 많은지. 그전까지는 내가 독서 꽤나 하는 줄 알고 살았던 것을 깊이 회개하고 반성하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독서는 실존적 행위다. 누구와 비교하고 열등감을 느끼는 건 그다지 좋은 태도는 아닌 것 같다.) 문득 책을 좋아하면 생길  있는 일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먼저 저자가 지적했던 대로 샀던 책을 또 사는 것이다. 읽으면서 나도 혹시 그런 적이 있었나 생각을 더듬어 봤는데 딱히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러고 보면 없는 것이다. 대신 어머, 내가 이런 책도 샀어? 하는 책은 있었다. 그건 강영계 교수의 <사랑학 강의>다. 이걸 언제 왜 샀는지 모르겠다. 오래전에 절판된 것으로 아는데 모르긴 해도 중고샵에 절판본으로 싸게 나와 샀던 것 같다. 뭐 그게 아니어도 강영계 교수의 책은 사놓고 후회할 일은 없겠다 싶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까맣게 정신 줄 놓고 살다니 다소 어이가 없다.   


또 그래서 말인데 책을 좋아하면 절판본에 대한 욕심이 생긴다. 절판돼 없는  보다 현재 있고 앞으로 나올 책들이 무궁무진한대도 굳이 절판된 책에 목을 맨다. 물론 희귀본이 될 가능성 때문이기도 하고 구할  있을  구해야지 나중에 후회할지 몰라 사게 된다. 더구나 그게 우리가 알아줄 만한  문인에 관한 책이라면 어쩔 것인가. 절판본에 대한 욕심은 중고샵이 생기고부터인데 이것이 활성화되기 전엔 절판본은 헌책방이나 나가야 사는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중고샵에서 쉽게 살 수 있으니 이것에 대한 유혹이 새책에 대한 유혹보다  강한  같다. 지금은 필요한 책만 사자는 주의여서 절판본도 가급적  사려고 하고 있는데  책을 읽으니 자꾸 눌러놨던 욕망이 자극을 받는다.       


희귀본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지금은 구간 절판으로 나오지만 전에 엔인 랜드의 <아틀라스> 4권짜리가 중고샵에서 비싼 몸값을 자랑한 적이 있었다. 오래전 난 그 책이 궁금해서 두 권을 먼저 사 둔적이 있었는데 나름 뿌듯했다. 그러나 그도 잠시. 얼마 안 있다 이 책이 새로운 판본이 나왔다는 걸 알았다. 그다음은 어떻게 되는지는 말하지 않아도 잘 알 것이다. 아쉽다기 보단 그럼 그렇지 내 주재에 무슨 희귀본인가 했다. 


하지만 희귀본 좋아하는 사람은  있다. 솔직히 나도 능력만 있으면 산 넘고, 물 건너, 바다 건너서 헤매고 싶은 마음이 없지는 않다. 저자는 실제로 이 책에서 그런 자신의 마음을 토로하기도 했다. 어느 날 동료가 무슨 책을 찾아 달라고 부탁을 하다 그것을 철회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슨 자존심인지 굳이 찾으러 나섰다고. 그 부분 읽는데 웃음이 났다. 이걸 두고 점잖은 용어로 '젠틀 매드니스' 즉 애서광이라고 하지 않나. 책을 진짜로 좋아한다면 그 정도의 모험은 해야 한다. 그러고 보면 나의  사랑은 아직도 어설프다 싶다.       


그런데 애서광은 꼭 책을 찾아 멀리 떠나는 사람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애서광은 좀 더 다양하게 나타난다. 일단 책을 좋아한다면 애서광의 잠재적 요인이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건 또 장서가들에게 있을 것이다. 물론 책을 사서 모을 땐 자신이 애서광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애서가라고 생각하지. 그러다 어느 날 어떤 계기로 모았던 책들을 처분해야 하는 때를 맞이해 보라. 그때 드는 정신적 반응이나 생각들이 있을 것이다. 


나는 재작년 가을 큰 맘먹고 2, 30년간 모았던 책을 박스째 처분한 적이 있는데 책도 영혼의 산물일까, 그것들이 집을 나가는데 왜 자기를 파냐고 책들의 아우성을 듣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 밤  비워진   책이 있던 자리에서 머리 푼 책 귀신을 볼 만 같고, 내가 책들한테 무슨 짓을 한 거지 싶다. 책의 입장에선 한때는 왕의 총애를 받고 궁에 들어왔다 어느새 잊힌 궁녀가 된 처지가 되는 것인데 그것도 부족해 한 순간에 버려지게 되니 왜 그런 상상이 들지 않겠는가.  


요즘 책은  어쩌면 그리도 예쁘고 미끈하게  빠졌는지 모르겠다.  생기면 버리기도 쉬울 텐데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렇지 않으면 사람의 선택을 받기 쉽지 않으니 각 출판사마다 그야말로 오지게 신경 쓰겠지. 그런 책을 또 몇 년 후에 통째로 드러낸다고 생각하면 차라리 내가 그것들에 깔려 죽는 편이 낫지 않을까 싶다. 물론 중고샵에 팔 수도 있다지만 그것도 한계는 있으니. 그래서 책 좋아하는 사람은  하나를 서재도 꾸미는 것도 부족해 아예 집 한 채를 사서 서고  서재로 꾸미기도 한다던데 이해가 갈 것도 같다.  


지금은 그런 일이 없지만 오래전 나도 엄마랑 책 가지고 대립한 적이 있었다(모녀가 사이가 다정하고 좋기란 글쎄...). 나는 책을 좋아하고 엄마는 옷을 좋아한다. 서로 좋아하는 취향이 다른 건데 엄마는 그놈의 책을 어디다 쌓아두겠다고 자꾸 사냐고 구박을 한다. 쌓아놔 봤자 방안을 넘지도 않는데 말이다. 그래서 나도 그럼 엄마는 왜 옷을 자꾸 사는 건데 하며 맞섰다. 그러자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저자도 아내의 분의 눈치 꽤나 보고 사시나 보다. 그래서 책을 사면 그 책을 받는 경로가 세 군데나 있다고 해서 놀랐다. 그만큼 책을 둘 장소가 세 군데나 있다는 말인데 왠지 부러운 생각이 든다.     


또 책을 좋아하면 있을 수 있는 일 중 하나는 그 책이 문학과 관련이 있다면 여러 개의 번역본을 구입하게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도스토옙스키의 주요 작품만 해도 번역자가 많고 그에 따른 판본 역시 많다. 이젠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하나 달랑 읽었다고 자랑하면 우스워진다. 어느 출판사의 누구 번역을 먼저 대고 말해야 하는 시대가 왔는지도 모른다. 나는 저자 덕분에 채수동이란 우리나라 러시아 번역 1 세대에 속하는 번역자를 알게 되었는데 과연 그가 어떻게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을 번역했을지 궁금해진다. 조만간  봐야 할 것 같다.


이 책 덕분에 지금까지 책을 좋아하면 생길 수 있는 일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았지만 그래도 이 책의 미덕은 각각의 책에 대한 이면과 사연을 친절하게 알려주는 것에 있지 않나 한다. 특히 '잃어버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64번의 행방은?'은 한 편의 단편 미스터리 소설을 보는 것만 같았다. 이 책이 아니면 그 미스터리를 어떻게 풀겠는가. 더구나 앞서도 채수동 번역가 얘기를 했지만, 저자가 그토록 그에 대해 온정을 담아 쓰지 않았다면 우리는 채수동 번역가에 대해 알지 못했을 것이다. 또한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쓴 바둑 소설 <명인>을 번역했던 민병산 선생의 이야기와  <성문 종합 영어>의 저자 송성문 선생에 관한 이야기 역시 감동적이었다. 솔직히 나는 성문 영어 책이지금도 계속 나오고 있는지도 몰랐다. 나도 학창 시절  시리즈    정도는 가지고 있었는데 그게 그렇게 대단한 건지도 몰랐다. 그냥 남이 사니까 나도 산다는 정도였을 뿐. 알고 나니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그렇게 오랜 세월 책을 읽어 왔지만 책은 역시 관심 있는 사람에게 자신을 열어 보이나 보다 싶다. 읽으면서 이 많은 사연들을 어떻게 끌어 모았을까 저자의 돈키호테적인 노력과 수고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내가 오탈자에 예민해진 건지 아니면 원래 이 책이 많은 건지 암튼 오탈자가 생각보다 많이 발견됐다. 오지랖 일지 모르겠는데 31p의 <경선지련>은 <경성지련>이다. 혹시 책에 대해 알고 싶다면 제목을 바로 입력해야   같아서 알린다. 또한 243p의 '닐스의 모험'에서 작가를 소개하는 과정에서 '여류' 작가라는 표현을 썼는데 이건 올바른 표현이 아니다. 이제 여류라는 말은 사용하지 않으며 '여성'이라고 해야 한다. 아직도  말을 간혹 사용하는 예가 발견되기도  한 번 더 각성하는 의미에서 여기 밝혀둔다. 저자의 양해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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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균호 2021-02-25 20: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부족한 책인데 이토록 자세한 서평을 남겨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 말씀하신 부분은 2쇄때 꼭 반영하겠습니다 ^^ 편안한 밤 되셔요...

stella.K 2021-02-25 20:12   좋아요 1 | URL
오, 아닙니다. 읽으면서 정말 좋았고 뿌듯했습니다.
2쇄 곧 들어가나 봅니다.
다음 책도 기대하겠습니다. 좋은 책 내주셔서 고맙습니다.^^

박균호 2021-02-25 2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에요. 곧 들어가는 것은 아니고 저의 희망사항이었습니다 ^^ 거듭 고맙습니다 !!

stella.K 2021-02-25 20:17   좋아요 1 | URL
ㅎㅎㅎ 곧 들어가게 될 겁니다.
이렇게 좋은 책이 쇄를 거듭하지 않으면 어떤 책이...ㅋㅋㅋ

희선 2021-02-25 2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다른 사람보다 책을 많이 좋아하지 않는가 봐요 꼭 가져야 할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해서... 꼭 읽고 싶은 책은 어떻게든 찾아서 보는 사람도 있던데, 저는 없으면 없구나 해요 두권 산 책은 없어요 책이 있지만, 다른 데서 예쁘게 나온 걸 산 적은 있어요 그것도 겨우 한권이네요 다른 것도 잘 못 버리지만 책 잘 못 버려요 아주 많은 사람보다 많지 않지만 정리를 해야 할 텐데...


희선

stella.K 2021-02-26 13:11   좋아요 1 | URL
저도 희선님과 비슷했어요. 없으면 말지하는데
이상하게 언제부턴가 없으면 기분이 안 좋더라구요.
실제로 읽지도 않을 거면서...ㅎㅎ
책 욕심은 없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전 항상 피천득 선생을 생각해요. 그분은 평생 2백권의 책만
가지고 사셨다잖아요.^^

cyrus 2021-02-26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년에 제 방을 새로 도배했을 때 저와 어머니가 방에 있는 모든 책과 (무거운) 책장을 옮겼어요. 이때 자괴감이 많이 들었어요. 어머니는 책을 많이 샀다고 구박했는데, 저는 화가 나서 “그러면 책 팔아 치우자”라고 했어요. 그래도 어머니는 아까운 걸 왜 파냐고 하시더라고요.. ㅎㅎㅎ 저 때문에 어머니 많이 고생했어요. 도배 이후로 책을 사면 안 되겠다고 결심했는데, 요즘 들어 다시 그 병이 도지기 시작했어요. ^^;;

stella.K 2021-02-26 13:18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와, 그래도 어머니가 좋은 분이시다.
그렇게 말씀하시고.
울엄마 같으면 옳다구나 팔자고 했을텐데.
그런 어머니한테 왜 맘에도 없는 소릴하고 그러니?
업어드려도 부족할 판에.
근데 네가 꽤 힘들긴 힘들었던 모양이다.
빨리 돈 모아서 책만을 위한 집을 하나 장만하도록 해.
그게 널 위해서나 여러 사람을 위해 좋지 않을까?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