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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철학사
한스 요아힘 슈퇴리히 지음, 박민수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08년 9월
평점 :
제 4부 르네상스와 바로크의 시대
언제나 궁금했던 것이 있다. 르네상스는 정확히 언제를 말하는 걸까? 언제부터 근대라고 부르는 걸까? 근대와 현대의 구분은 언제를 기준으로 하는 걸까? 문제는, ‘언제’ 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단지 역사가 구분한 것일 뿐, 그 시대를 산 사람들에게는 무의미할 것이다. 시대 구분에 (유럽과 아시아를 가르는) 보스포루스 해협의 다리는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책마다 사람마다 조금씩 다른 그 기준에 짜증이 났더랬다. 아니면 너무 복잡해서 짜증이 난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오늘부터 이 책을 기준으로 기억하기로 했다. 4부는 1장과 2장으로 나뉘어 있는데, 1장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의 시대는 15세기와 16세기이다. 이 시기가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이행기다. 2장은 바로크 시대, 17세기다.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근대가 시작된다. 강유원은 어느 책에서 17세기는 과학혁명의 시대, 18세기는 계몽주의 시대(또한 산업혁명의 시대), 19세기는 부르주아의 시대라고 불렀다. 근대는 과학혁명과 더불어 시작된 셈이다.
제 1장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시대의 철학 : 15~16 세기
Ⅰ. 중세에서 근세로의 정신적 전환
아래의 소제목들만 봐도 이 시대의 특성을 일목요연하게 확인할 수 있다.
1. 발명과 발견
나침반, 화약, 인쇄술의 발명은 유럽의 면모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콜럼부스도 대포를 싣고 나침반이 가리키는 대로 서쪽을 향하다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을 것이다. 그것이 1492년이다. 인쇄술은 새로운 정신 운동이 광범위하게 전개될 수 있는 전제조건이 되었다.
2. 새로운 자연지식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이의 시대다. 갈릴레이는 셰익스피어와 같은 해에 태어났다.
3. 인본주의와 르네상스
르네상스란 “고대 인간의 부활을 통한 인간의 부활” 이란 의미를 내포하는데, 고대 인간은 희랍인을 말한다. 신에서 인간으로 중심이 이동했으며,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기반으로 한 스콜라철학이 붕괴되었다. 이 시대 철학의 공적은 본질적으로 다음과 같다. “이 사상들은 스콜라철학의 색안경을 벗은 채 최초로 아무 편견 없이 그리스․로마 철학을 고찰했으며 이를 세속적 관점에서 이해하고 당대와 후속 세대에게 보여 주어 그로부터 새로운 창조의 자극을 받을 수 있게 해 주었다.p432”
철학자는 아니지만, 이 시대의 사상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은 몽테뉴다. 몽테뉴의 에세이와 여행기에는 그가 전형적인 시대의 아들임이 드러나고 있는데, 그는 철저히 현세적인 정신의 소유자였고 비판적이며 회의적이고 일체의 편견에서 자유로운 인물이었다. 그는 인간이란 무엇인가? 우리의 삶이란 무엇인가? 란 수수게끼에 몰두했다. 그의 사상의 중심에는 인간이 있다.
물론 르네상스하면 예술을 빼 놓을 수 없고, 라파엘로,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로 대표된다. 또한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가 있다. 이 시대는 메디치가와 엘리자베스 1세, 스페인의 필립 2세가 통치하고 있었다.
4. 종교개혁
루터의 종교개혁과 동로마 제국의 멸망이 어떤 관련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냥 1453년 동로마 제국의 멸망을 기점으로 중세 기독교 사상이 쇠퇴했다고 알기 쉽게 기억한다. 1453년은 영국과 프랑스의 백년전쟁이 끝난 해이기도 하다. 전쟁이 끝나면서 프랑스는 바로 중앙집권제가 실시되고, 영국은 다시 30년간의 장미전쟁을 치룬 이후 중앙집권 체제가 이루어지며, 에스파냐는 콜럼부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1492년에 중앙집권제를 실현했다고, 『살아있는 세계사 교과서』의 연보에 실려 있다. 절대왕정은 근대 국민국가로 가는 초석이 아니었던가 싶다.
루터는 정신생활의 모든 영역을 아울렀던 교회의 전횡을 타파하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지만, 실제로는 성서에 관련해서만 연구의 자유를 요구했다. 코페르니쿠스에 대해서는 “바보의 아주 영리한 발상” 이라 말했다.
“결국 프로테스탄티즘에서는 철학이 다시 신학의 시녀로 전락했으며, 교의 체제도 급속히 경직되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중세의 선례 못지않게 불관용의 태도를 보이는 프로테스탄트적 스콜라 철학이 탄생한 것이다. p439”
5. 근세 여명기의 사회․정치적 변혁 - 새로운 법사상과 국가사상
이런 정신적 변혁의 토대를 이룬 것은 유럽 사회의 심대한 구조적 변화였다. 기사 계급이 몰락했고 도시에 거주하는 시민계급이 부상했다. 이들은 신대륙 발견이 가져온 활발한 무역으로 새로운 경제 질서를 구축했으며, 세속 문화의 중심 역할을 했다. 그리고 종교개혁과 맞물려 농민전쟁이 발생했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중앙집권화, 절대군주제이다.
이런 근본적 변화는 전적으로 새로운 법사상과 국가사상을 필요로 했는데, 가장 유명한 인물로는 마키아벨리와 홉스, 모어가 있다.
마키아벨리의 다음 말은 신이 아니라 인간이 만든 법과 자연 법칙인 폭력이 통치의 근간임을 명백히 한다.
“분쟁을 끝내는 데는 오직 두 가지 길밖에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즉 법으로 정해진 방식을 따르거나 폭력의 방식을 취하는 길밖에 없다. 첫 번째 방식은 인간이 취하고 두 번째 방식은 동물이 사용한다. 그러나 첫 번째 방식이 언제나 해결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므로 때로는 두 번째 방식도 취해야 한다. p445”
『리바이어던』으로 유명한 홉스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자연 상태로 보았다. 그러나 마키아벨리와는 다르게(?) 폭력은 안전에 대한 인간의 소망을 충족시켜 줄 수 없다고 보았다. 그는 “법적 보호와 안전, 실제적 도덕행위의 가능성은 인간들이 국가 내에서 합의에 의해 상위의 권력을 창출하고 모두가 이 권력의 의지에 복종할 때만 가능하다.p447” 고 생각했다. 이것이 홉스가 말하는 국가의 기원이다. 그에 의하면 “무엇이 정의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국가이다. 국가가 허용하는 것은 정의이며, 국가가 금지하는 것은 불의이다. p447”
“홉스의 사상에 반영되어 있는 것은, 개인과 국가 모두를 신의 구원 질서에 편입시켰던 중세적 세계관이 파괴되고 그로부터 ‘해방된’ 개인과 세속 국가가 탄생하는 당대의 변화과정이다. 양자 즉 개인과 세속 국가의 요구를 조화시키는 것은 이후의 정치 역사와 근세 사상 전체가 해결해야 할 과제로 대두한다. 이때 홉스는 완전히 국가편에 선다. p448”
모어의 『유토피아』는 가장 선구적인 자본주의 비판이다. 그는 “영국에서는 양이 사람을 잡아먹는다.”고 하며, 인클로저 운동에 의한 농민계급의 몰락을 고발했다. 유토피아는 판타지가 아니라 당대 국가와 사회상에 대한 전면적인 비판이며, 유토피아는 그 대안으로 그려진 사회주의 공동체의 모습이다.
Ⅱ. 과도기의 주요 사상가
이 책이 ‘철학사’ 임을 감안한다면, 이 시대의 주요 사상가가 가장 중요하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별 흥미가 없어 이름만 거론하고 넘어간다. “이 시대는 많은 것이 실험되고 다시 많은 것이 폐기되는 거대한 작업장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p474” ‘실험과 폐기’ 된 것 말고도 알아야 할 것이 너무 많아서 그렇다. 죄송하다.
1. 니콜라스 쿠사누스 (1401~1464) : 처음 듣는 이름이다.
2. 조르다노 브루노 (1548~1600) : 우주의 무한성을 탐구하다 화형 된 불운한 수도사다. 갈릴레이와 동시대인데, 갈릴레이는 훨씬 오래 살았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 를 혼잣말로 중얼거린 덕택이다.
3. 프랜시스 베이컨 (1561~1626) : 우상론으로 유명하다. 셰익스피어 작품의 원작자로 꾸준히 거론되고 있지만, 베이컨 연구자들은 동조하지 않는다.
4. 야코프 뵈메 (1575~1642) : 처음 들어보는데, 그의 사상은 유럽 전역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뉴턴, 라이프니츠, 헤겔, 셀링이 그의 정신적 유산에 깊은 존경심을 표했다고 한다.
제 2장 바로크 시대의 3대 체계 : 17 세기
이 시대는 이미 르네상스에서 성숙한 것으로 천명된 이성이 승승장구의 길로 들어섰고, 이 시대의 철학은 수학과 분리될 수 없었다. 그 특성이란 명석하고 일목요연한 형태와 조화로운 구조 및 전체를 이루는 모든 부분의 균형에 대한 당대인들의 추구를 말한다.
Ⅰ. 데카르트 : 1596~1650
그 유명한 방법서설의 원제목은 길다. 『이성을 옳게 인도하고 여러 학문에서 진리를 구하기 위한 방법서설』이다. 1637년에 출간되었다. 근대의 대표 아이콘 ‘이성’ 이 등장한다.
1637년은 30년 전쟁의 와중이다. 유럽 핵심 강국이 모두 참가한 30년 전쟁은 프로테스탄트 연합과 가톨릭 동맹 사이의 대립으로, 1618년에 시작되어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을 체결하며 끝났다. 흔히 베스트팔렌 이후를 근대국가의 출발로 삼는다.
강유원의 『역사 고전 강의』는 30년 전쟁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전쟁은 종파의 대립을 명분으로 하여 시작되었으나 그 뒷면에는 정치적 쟁투가 도사리고 있었고, 전쟁이 진행됨에 따라서 이 전쟁을 겪으면서 사람들은 종교에 대해 말하는 것을 꺼리게 되었을 뿐 아니라, 종교를 둘러싼 싸움은 무의미한 일이라고까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종파가 다르다는 이유로 무자비한 살육을 일삼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30면 전쟁이 가져다 준 가장 역설적인 효과라 할 수 있습니다. p268~269”
한마디로 종교에 넌더리를 내게 되었다는 것인데, 문제는 신이 사라진 자리에 무엇이 삶의 기준이 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신에 대한 회의는 곧 세계에 대한 회의이고 인간에 대한 회의이다. 여기서 등장하는 것이 데카르트의 사상이다. 데카르트는 어떻게 우리가 확실한 인식에 도달할 수 있는지?, 어떤 진술이나 판단이 확고한 타당성을 갖는지에 대한 물음을 제기한다. 중세라면 답은 명백히, 신이다. 그러나 17세기의 신은 이미 죽어가고 있었다.
“만약 인식되는 모든 것이 가장 단순한 원리들로부터 도출되어야 한다면, 나는 제일 먼저 내 출발점의 확실성을 따져보아야 한다. 그러나 과연 무엇이 확실한가? 만전을 기하기 위해 일단 나는 그 무엇도 확실하지 않다고 가정하겠다. 나는 모든 것을 의심해 보고 그런 철저한 의심을 견뎌 내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겠다. 나는 학습과 독서를 통해, 그리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과정에서 습득한 모든 것뿐 아니라 나를 둘러싼 세계가 정말로 존재하는 것인지 아니면 한낱 상상에 불과한 것인지, 달리 말해 내가 지각하는 그대로 세계가 존재하는 것인지 아닌지 의심해 볼 것이다. 그럴 것이 인간의 감관이 다양한 착각을 유발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서 나는 모든 것 중 가장 확실하다고 여겨지는 수학의 원리들도 의심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의 지성은 진리 인식에 부적합하여 끊임없이 오류를 낳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모든 것을 철저히 의심하는 데서 철학을 시작한다 할지라도 끝내는 내가 의심하지 못할 뿐 아니라 내가 의심하면 의심할수록 더욱 확실해질 수밖에 없는 무엇이 남게 된다. 그것은 바로 내가 지금 이 순간 의심하고 있다는 사실, 다시 말해 생각하고 있다는 단순한 사실이다. 내가 외계로부터 지각하는 모든 것은 착각일 수도 있고, 내가 생각하는 모든 것은 오류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이런 의심 과정 속에서 사유하는 존재로서의 나 자신만은 확신한다. p480~1”
이것이 우리가 그 이름만은 매우 익숙한, ‘코기토’가 탄생한 배경이다. Cogito ergo sum. 영화 <메트릭스>의 세계에 대한 의심이 이미 17세기 데카르트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영화와는 달리 데카르는, 의심하는 자기 존재를 확신했다.
“합리주의 시대의 다른 철학자들과 마찬가지로 데카르트는 감성적 경험이란 너무 불명료한지라 가치가 없는 것으로 평가한다. 오로지 사유하는 지성에 의해 아주 명백하고 합리적이며 ‘수학적인’ 개념에서 표현될 수 있는 것만이 전적인 타당성을 갖는 인식으로 간주된다. 물체 세계와 관련해 그처럼 전적인 타당성을 갖는 인식은 연장의 속성, 즉 공간을 차지한다는 속성이다. 따라서 공간적 연장은 물체 세계의 본질이다. 물체는 공간이며, 공간은 물체로 구성된다. 비어 있는 공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p.484”
사유와 연장. res cogitans와 res extensa. 일반인에게 연장이란 단어는 참 ‘에고~ 의미 없다.’ 데카르트가 인용되는 문장을 여러 책에서 읽었지만, 이 책을 읽을 때까지 나는 연장의 의미를 사실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 보니 연장은 공간이다. 아인슈타인이 정의한 중력이 물체에 의한 공간의 휨을 말한다더니, 여기에 데카르트를 대입한다면, 연장이란 공간의 휨을 유발하는 것, 혹은 휘어진 공간이라 해도 되겠다.
여하튼 이 사유와 연장의 구분은 두고두고 ‘근대 철학의 아버지’인 데카르트의 발목을 잡는다. 이분법, 기계론적 사고, 자연의 대상화가 인간을 황폐하게 만들고, 결국 근현대를 두 차례의 세계대전으로 이끌게 했다는 원망이다. “데카르트는 정신의 개념을 사유에 국한 시켰고 동물은 이런 의미에서 사유할 수 없으므로 결국 동물은 정신세계에 관여하지 못한다. 동물은 순전한 메커니즘이며 기계와 전혀 다를 바가 없다.p484” 심지어 데카르트는 인간의 육체 또한 연장에 포함시키며, 동물 및 기계와 동급에 놓았다.
“정신 내지 사유와 인간의 육체를 포함한 물체 세계를 철저히 분리하는 데카르트의 입장은 서양 사상의 발전에 다대한 (그러나 긍정적이지만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입장은 물체 세계에만 현실성을 부여하는 대중적 ‘유물론’과 (마찬가지로 일면적인) 대중적 ‘관념론’이 형성되는 출발점이 되기도 했다. P490”
Ⅱ. 스피노자 : 1632~1677
스피노자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노자? 장자?, 왠지 그런 생각이 드는 이유는 아마도 주워들은 몇몇 개념 때문일 것이다. 보통 <윤리학>으로 알고 있는 그의 주저서는 『기하학적 방식으로 서술된 윤리학』이다. 우리의 상식으로는 기하학과 윤리학이 굉장히 생뚱맞은 조합이지만, 17세기는 수학과 철학이 하나이던 시대였다.
“이 책의 출발점을 이루는 것은 ‘실체substantia’라는 개념이다. 이 개념은 오늘날의 언어 사용에서와 달리 물질을 뜻하지 않는다. ‘substantia’ 라는 라틴어 단어가 원래는 ‘그 아래 놓여 있는 것’ 이란 뜻임을 상기한다면, 우리는 이 개념이 지시하는 의미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스피노자가 이 개념으로 지시하는 것은, 모든 사물의 근저나 배후에 자리 잡고 있으면서 모든 존재를 자체 내로 통합하고 포괄하는 일자 내지 무한자이다. 실체는 영원하고 무한하며 자기 자신에게서 비롯되어 존재한다. 그리고 실체 바깥에는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렇게 이해된 실체 개념은 결국 신의 개념과 일치하며, 모든 존재자의 총괄이라는 점에서 동시에 자연 개념과도 일치하게 된다. 따라서 스피노자의 사상은 다음과 같은 등식에서 출발한다.
실체 = 신 =자연
실체와 대립하는 개념은 ‘양태modus’이다. 실체가 자기를 원인으로 하여 자유로운 동시에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왜냐하면 자기를 원인으로 한다면 필연과 자유가 합치하므로) 것을 뜻한다면, 양태란 이런 것이 아닌 모든 것, 즉 다른 것에 의해 제약되어 있는 모든 것을 뜻한다. 달리 말하면, 가장 넓은 의미에서 세계, 즉 (유한한) 현상들의 세계가 바로 양태라고 할 수 있다. p496”
스피노자는 실체가 한없이 커다란 평면 예를 들어 커다란 종이라고 생각한다면, 모든 양태 즉 개별 사물은 거기에 그려지는 도형이라고 설명한다. 나는 이 설명을 보며 아이작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에 나오는 가이아 혹은 갤럭시아가 생각났다. 우리 인간으로 양태는 하나하나의 세포이며, 실체는 전체로서의 인간이라 할 수 있을까?
“무한한 실체 내지 신은 (어쨌거나 우리 인간이 지각할 수 있는 한에서는) 두 가지 속성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사유와 연장이다. 신은 한편으로 무한한 연장이며 (즉 신은 유한성을 갖는 물체가 아니다), 다른 한편으로 무한한 사유이다 (즉 신은 특정한 사유, 제약된 사유가 아니다). 그런데 모든 것은 신 안에 존재하므로, 모든 개별 존재 역시 이러한 두 가지 관점에서 고찰될 수 있다. 즉 모든 개별 존재는 사유의 관점에서 관념으로 나타나며 연장의 관점에서는 물체로 나타난다. 고로 (데카르트가 주장했던 것과는 달리) 두 개의 상이한 실체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두 가지 관점에서 고찰될 수 있는 단 하나의 실체가 존재하는 것이며, 개별 존재 -특히 인간- 역시 두 개의 분리된 실체인 육체와 영혼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고, 두 가지가 동일한 존재의 두 측면을 이루는 것이다. 이러한 견해는 현대 인간학에서도 널리 인정되고 있다. p498”
스피노자는 사유와 연장이라는 데카르트의 개념을 받아서, 데카르트와는 정반대로 그것을 하나로 합쳐 버렸다. 두 개의 실체가 아니라 하나의 실체를 바라보는, 사유와 연장이라는 두 개의 관점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실체를 신 혹은 자연이라고 보면 개별 존재인 인간은 양태 아닌가? 그러므로 인간에게는 자유가 없다. 스피노자에 따르면 자유의지, 결단의 자유는 없다. 그러나 자유의지가 없다고 해서 인간이 자신의 행동에 책임질 필요가 없다는 말은 아니라고 한다. 그렇다면 의무만 있고 권리는 없는 거네?;; 그런데 그게 아니라 인간의 이성을 통해 점점 더 높은 수준의 자유에 도달할 수 있으며, 이때의 자유는 필연성을 긍정하는 자유, 신에 대한 지적 사랑, 운명애 등등이라고 스피노자가 역설하는 모양이다. 그래서 제목이 윤리학인가?
그런데 이런 그의 철학은 “숙명론적 달관의 성격을 분명하게 지니고 있다. 이런 성격이 반드시 방관적 무위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무위로 귀결되기 쉬운 것은 사실이다. p507” 고 한다. 그래서 노자가 생각났던 걸까..
Ⅲ. 라이프니츠 : 1646~1716
뉴턴과 미적분의 창시자 자리를 놓고 싸우신 분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철학자로서, 특히 들뢰즈에 의해 우리들에게 유명해진 개념은 모나드이다.
“그렇다면 모나드는 무엇인가? 스피노자가 말하는 무한한 하나의 실체를 우리가 무수히 많은 점처럼 존재하는 개별적 실체들로 분할한다면 우리는 이 개념이 지시하는 내용에 가까이 근접하게 된다.
실제로 라이프니츠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모나드의 문제만 배제하고 생각한다면 스피노자의 견해는 옳았다.” 라이프니츠가 말하는 모나드의 특성은 네 가지 관점에서 고찰될 수 있다. p515”
모나드의 네 가지 특성은 점, 힘, 영혼, 개체이다. 설명은 생략한다. 들어도 안 들은 것과 비슷하다. ;; 스피노자의 실체들이 무수히 많은 점들로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더 빠르게 이해된다. 그런데 ‘창문이 없다’는 이 무수한 모나드들은 어떻게 조화로운 세계를 구성하는가? 라이프니츠는 간단히 신을 데리고 왔다. “신은 각각의 실체가 자신의 현존과 더불어 주어진 고유한 법칙만을 준수해도 서로 조화를 이룰 수 있게끔 두 실체의 속성을 정해 놓았다.” 이것이 라이프니츠의 예정조화설이다. 신은 철학자들의 막다른 골목에 등장하기를 즐기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