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철학사
한스 요아힘 슈퇴리히 지음, 박민수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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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부 계몽주의 철학과 이마누엘 칸트의 저작

 

18세기는 계몽주의 시대라고 불린다. (혹자는 산업혁명의 시대라고도 한다.) 계몽에 관한 가장 인상적인 정의는 바이저의 『헤겔』에서 본, “이성의 권위에 대한 계몽의 신앙” 이다. 바이저는 “계몽은 이성의 시대였는데, 왜냐하면 계몽은 이성을 모든 지적 물음들에서 최고의 권위, 최종적인 상고 법정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그것의 중심적이고 특징적인 원리는 우리가 이성의 주권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다. p45” 고 했다.

 

5부를 이루는 두 개의 장은 계몽주의 시대와 이마누엘 칸트다. 저자가 칸트주의자인지 모르겠지만, 계몽의 완성자인 칸트를 따로 떼어내 80쪽 정도를 할애했다. 오늘은 1장 계몽주의 시대를 이끈, 영국과 프랑스, 독일의 대표 철학자들에 대해서 정리하려 한다. 아직 칸트는 읽지 않았다. 한꺼번에 하기에는 너무 분량이 많아질 것 같아 먼저 요약한다.

  

 

 

제 1장 계몽주의 시대

 

Ⅰ. 영국

 

1. 영국 경험론의 선구자

 

‘대륙의 합리론과 영국의 경험론’을 묶어 외우던 기억이 난다. 그때 내용을 모르면서도 경험주의 철학은 왠지 따분할 것 같았다. 지금도 그렇다. 영국인들에 대한 사회적 선입견이 더 그런 인상을 주는지도 모르겠다. 냉철하고 엄격하고 완고한.

 

13세기에서 17세기에 이르는 기간 동안 영국인들은 유럽에서 최초로 일정한 정치적 자유를 쟁취했다. 영국의 명예혁명이 1688년에 일어났으니, 프랑스 혁명보다 100년 먼저 근대적 자유를 획득했다. 이 시기를 통해 영국 민족은 점점 더 냉철하고 실천적인 현실적 인간의 이상으로 접근해 갔다. 이들은 사변을 거부하고 모든 학문과 철학의 토대로 경험을 철저히 고수했다. “모든 인식을 경험에서 도출하고 모든 학문을 오직 경험에 근거해 수립하려는 이러한 철학적 방향을 ‘경험주의’라 한다. p528”

 

경험론의 선구자로는 베이컨, 홉스, 뉴턴 등이 있다. 영국 철학은 18세기에 전성기를 맞았는데 그 발전 도상에서 주요 이정표가 된 사상가가 셋 있는데, 로크, 버클리, 흄이다.

 

2. 존 로크 : 1632 ~ 1704

 

이 책에서는 『인간 지성론』을 중심으로 철학자로서의 로크를 다루는데, 별 재미는 없다. 본유관념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으니, 의식의 모든 내용은 외적 경험에서 파생한다고 본다. 로크의 『통치론』을 다루는 강유원의 고전강의가 더 재미있다. 명예혁명 이후의 영국의 법과 그것에 큰 영향을 받은 미국의 독립사상과 프랑스 법의 기초가 로크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런데 로크 통치의 핵심은 사유재산을 보호하는 국가의 기능과 법이다. 국가의 임무는 사적 소유권을 지켜주는 것이다.

 

3. 버클리 :1684 ~ 1753

 

버클리는 우리가 지각하고 인식하는 모든 것은 오직 우리 의식의 현상으로서, 우리 정신의 상태로서 주어진다고 한다. 사물의 존재란 단지 그것이 지각되기에 성립한다. 그렇다면 당장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실제 눈으로 보는 경우에 태양의 표상이 모든 사람의 정신에 동일하게 지속적으로 현존하는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눈앞의 세계가 나의 지각에 의해서 존재하는 것이라면, 어떻게 모든 사람이 동일한 표상을 볼 수 있느냐는 질문이다.

 

버클리는 신에게서 그 답을 찾는다. 태양은 신이 그 표상을 내게 심어 놓았기 때문에, 내가 눈을 감고 있어도 태양의 표상은 존재한다. 그리고 신이 나에게 한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표상을 부여하기 때문에, 우리는 같은 태양을 볼 수 있다. 이것도 대답인가 싶지만, 당대 사람들에게는 믿을 만 했던가 보다. 지금도 주요 철학자로 꼽는 것을 보면, 더 심오한 사상이 있는지 모르겠는데, 하여튼 대강 이런 내용인 것 같다. 그런데 신이 실제 사물을 창조하는 것과 사물의 표상을 심어주는 것이 다른가? 슈뢰딩거의 고양이도 생각나는데, 양자물리학은 사물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관찰될 때까지 사물은 확률의 방식으로 존재한다고 말하니까, 버클리랑은 다르다.

 

4. 흄 :1711 ~ 1776

 

흄은 더 멀리 나간다. 존재하는 것은 오로지 의식 내 현상들의 변화 과정뿐이며, 이때 의식은 이런 현상들과 분리된 독자적 현실성을 갖지 못한다. 그리고 표상들에는 아무런 인관관계가 없다. 지각작용이 보여주는 것은 인과관계가 아니라 계기관계가 있을 뿐이다.

 

5. 영국 종교철학과 계몽주의 시대의 윤리학

 

흄에게 흥미로운 것은 종교철학이다. 그의 본질적 사상은 다음과 같다.

 

“독립적 사유능력이 있는 사람은 도덕적으로 올바른 행동을 하기 위해 별도의 종교적 동기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은 도덕적으로 올바른 행동의 동인을 이성에서 획득할 수 있다. 하지만 독립적 사유능력이 없는 다수 대중은 도덕적 행동의 동인을 자극받기 위해 종교를 필요로 할 수도 있다. 다만 유감스럽게도 이들은 순수한 종교적 생각이나 이성적 근거에 둔감한 사람들이다. 따라서 가능성은 두 가지뿐이다. 먼저 순수한 이성종교의 지배가 가능하다. 이런 경우 다른 것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여기서는 종교의 실천적-윤리적 측면이 이성에 근거를 둔 도덕성과 조화를 이루기 때문이다. 다음은 종교가 광신이나 미신과 섞이는 가능성으로, 이런 현상은 다수 대중에게서 불가피하게 나타난다. 이런 경우 윤리적 효과는 아주 불명확해진다. 보잘 것 없는 공덕이나 위선적 경건함, 피상적 허례허식, 종교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이교도 박해와 기타 온갖 부조리한 일이 주요 관심사가 되고, 결국 종교한 것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경우보다 더 못한 상황이 도래한다. 영국이 경험한 가공할 종교적 폐혜는 흄의 이런 사상에 영향을 주었다. p549”

 

또한 흄은 인간의 공감능력을 도덕의 원천으로 삼았다. “그리고 모든 도덕적 판단은, 타인과 동감할 수 있는 인간 특유의 능력, 즉 '공감능력‘ 덕분에 우리가 판단을 내리는 타인들의 입장이 되어 볼 수 있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p552”

 

 

Ⅱ. 프랑스

 

1. 영국 계몽주의 이념의 프랑스 전파

 

정신적 자족감에 충만해 있던 프랑스인들은 루이14세가 죽고 나자(1715), 영국에서 건너 온 것들에 열렬한 관심을 갖게 되었다. 영국의 헌법과 사회제도, 영국의 자연과학과 철학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영국에서 발전한 사상과 이념이 홍수처럼 프랑스로 밀려들었고, 이는 다시 전체 서유럽으로 퍼져 나갔다.

 

“계몽주의는 전체 유럽의 정신운동으로 발전했다. 프랑스인에 의한 영국의 발견은 18세기 초 유럽 정신사에서 결정적 사건이라 불릴 만하다. p553~4”

 

그러나 냉철하고 현실적인 영국인들과는 달리 열정적인 프랑스인들은 훨씬 과격하게 과거와 단절했다. 몽테스키외와 볼테르는 영국적 관념을 프랑스 정신에 매개시킨 대표적 사상가이다.

 

2. 몽테스키외 (1689 ~ 1755)

 

샤를루이 드 세콩다 몽테스키외 남작은 프랑스 혁명을 사상적으로 준비한 인물 중 하나이지만 혁명가와는 거리가 멀었다.

 

몽테스키외는 헌법에 의해 보장받는 정치적 자유를 강조하며, 영국인들의 국가이론과 헌법운용을 본보기로 삼는다. 몽테스키외는 삼권분립으로 유명한데, 권력분립의 이론적 구상은 근본적으로 존 로크의 사상에서 빌려 온 것이다. 로크는 국가 행정권과 입법권의 엄격한 분립을 요구했는데, 몽테스키외가 여기에 제3의 권력으로 사법권을 추가한다. 그는 이런 제도가 확립되지 않으면 독재가 발호하고 자유가 말살되는 결과를 피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3. 볼테르 (1694 ~ 1778)

 

부유한 공증인의 아들인 볼테르는 열정과 끈기 무엇보다 달변으로 99권의 저작을 남긴 사상가다. 고전으로 유명한『깡디드』에서는 ‘모든 세계 중 최상의 세계’를 주장하는 라이프니츠를 신랄하게 야유하기도 했다.

 

볼테르는 근대적 학문정신에 입각한 최초의 역사철학가로서, 별다른 의미 없이 무수한 사실을 나열하는 식의 역사를 거부했다.

 

“그는 큰 맥락에서 사물들을 고찰하고 통일적인 하나의 원리를 찾고자 했다. 그런 원리만이 전체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볼테르는 군주나 크고 작은 전쟁 대신 사회 운동과 동력, 문화와 정신의 진보를 중심에 놓아야 한다는 견해에 이르렀다. p561”

 

그런데 300년 가까이 지난 요즘에도 우리는 왕의 이름과 전쟁 따위의 연대기에 집착하고 있다.

 

종교에 대한 그의 언급도 매우 흥미롭다. 그는 이성종교를 주장했다. “복음서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사소한 일들이 기독교 역사에 출현한 모든 피비린내 나는 싸움의 원인이다.” “인간은 자유롭게 창조되었는데, 누군가 다른 인간에게 자신과 똑같이 생각하라고 강요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인가?” “만약 신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신을 발명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다행히 전체 자연은 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고 있다.”

 

그는 무신론을 반대했지만 , ‘예수천국 불신지옥’ 또한 반대했을 것이다. 볼테르의 사상은 프랑스 혁명에 불을 지폈지만, 그는 급진적 혁명을 희망하지는 않았다. 혁명을 바라기에, 그는 너무 보수적이었고 대중의 자발적 통치 능력에 대해서도 의심을 품고 있었다.

 

4. 백과전서파와 유물론자들

 

“종교와 철학의 시대는 과학의 세기에 자리를 내주었다! 자부심에 찬 이 말은 1751년부터 1789년까지 전28권으로 발간된 《학문과 예술 및 산업의 백과전서》서문에 나오는 것이다. 이 문장은 학문과 이성을 무기로 해서 과거의 권력으로부터 세상을 해방시키고 더욱 자유롭고 복된 시대를 열려했던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반영하고 있다. 《백과전서》는 당대의 지식 전체를 총괄하고 정리하려는 의도로 집필되었다. p566”

 

이 책의 전체 제작에는 많은 협력자들이 있었지만, 디드로와 달랑베르가 가장 대표적 인물이다.

 

프랑스의 유물론자들은 데카르트의 이원론 대신 유물론적 일원론을 주장했다. 존재하는 것은 물질뿐이며 물질에 대한 지식만으로 모든 것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모든 형이상학과 종교를 망상, 착각, 기만으로 매도했다. “최초의 바보가 만난 최초의 악당이 바로 최초의 승려였다.”고 할 정도다. 그들은 계몽을 통해 모든 착각과 기만을 타파하고, 이성의 통제 아래 모두가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지극히 낙관주의적인 신념을 갖고 있었다.

 

5. 루소 (1712 ~ 1778)

 

루소는 언뜻 보기에 계몽의 반대편에 서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학문․ 예술론』에서, 학문과 예술은 진보가 아닌 퇴보의 기념비라 비판한다. “전능하신 하나님, 우리를 선조들의 계몽에서 해방시켜 주시고, 행복을 증진할 유일한 자산인 소박함과 무구함과 가난으로 되돌려 주소서.”라고 외쳤다. 루소는 우리가 익히 들어온 것처럼, 자연으로 돌아갈 것을 외쳤다. 그에게 자연은 홉스의 만인 대 만인의 투쟁이 아니라, 참된 낙원의 상태이다.

 

루소를 대표하는 저서는 『인간불평등 기원론』이다. 그는 불평등의 기원을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이탈한 것에 있다고 보는데, 그렇다면 인간이 인간이 된 것 자체가 불평등의 원인이란 말인가?

 

“누군가 어느 땅에 울타리를 두고 ‘이것은 내 땅’이라 주장해 볼 생각을 했으며 또 그 말을 믿을 만큼 단순한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런 생각을 한 최초의 인간이 바로 시민사회의 실질적 창시자이다. 만약 이때 말뚝을 뽑아버리고 토지 둘레의 도랑을 다시 메우고는 이웃들에게 ‘저 사기꾼의 말을 믿지 마시오! 과실은 모두의 것이고 땅은 누구의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잊는다면 당신들은 파멸할 것이오!’ 라고 외치는 사람이 있었더라면, 인류는 무수한 범죄와 전쟁, 살인, 비참함과 잔혹함을 겪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P573” 고, 루소는 쓰고 있다. 그런데 더 재미있는 것은 다음 설명이다.

 

“그러나 전쟁과 살인을 일삼는 상태를 오래 지속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부자’는 한 가지 생각을 떠올렸다. “그는 이웃에게 이렇게 말했다. ‘약자를 억압에서 보호하고 야심가들을 제지하고 각자의 소유물을 보장받으려면 단결해야 합니다. 우리의 힘을 서로에게 행사할 게 아니라 최고 권력체로 통합시킵시다. 그리하여 현명한 법률에 따라 이 조직 속의 모든 구성원을 보호하고 공동의 적을 막아 내고 영원히 화목한 생활을 영위합시다.’” 천진한 사람들이 이 제의를 받아들임으로써 국가와 법률이 발생했다. 국가와 법률은 약자에게 새로운 올가미를 씌웠고 부자에게는 불평등을 영구화할 가능성을 주었다. 부자들의 지배는 처음에 법적으로 타당한 근거를 지니고 출발했지만 곧 자의적 횡포로 변질되었다. P573~4”

 

지금 읽으면 현대 자본주의 체제를 비판하는 것으로 착각할 수도 있겠다. 언뜻 홉스나 로크를 비판하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는데, 그것은 아닌 것 같다. 루소는

사회계약에서 이 문제의 해답을 찾기 때문이다. 사회계약이란 오직 합의, 자발적 동의인데, 이것만이 적법한 지배의 기초가 될 수 있다. 개개 구성원은 자신의 인격과 소유권을 내어 놓고 최상위의 지시체인 일반의지에 종속된다. 이렇게 해서 공적 인격이자 정신적 총합체인 국민이 발생한다. 국민은 주권의 유일한 담지자이다.

 

시민은 모든 법에 동의해야 하며, 자신의 의지에 반한 법에도 동의해야 한다. 그들이 시민이고 자유로운 것은 일반의지를 근거로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일반의지는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투표와 그 결과를 통해 일반의지를 확인할 수 있다. 만약 내 의견이 아니라 반대 의견이 압도적일 경우 그것은 내가 잘못했다는 사실, 내가 일반의지로 생각했던 것이 일반의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루소에 대한 볼테르의 반응이 매우 재미있다. 볼테르는 『인간불평등 기원론』을 읽고 루소에게 편지를 보냈다. “반인류적 성격을 갖는 당신의 저작을 잘 받았습니다. ... 당신만큼 기지를 발휘해 인간을 동물로 만들려한 사람은 일찍이 없었습니다. 당신의 책을 읽다보면 네 발로 기어 다니고 싶은 욕구가 불끈 일곤 합니다. 하지만 나는 그 습관을 이미 60년 전에 버렸기 때문에 그 습관을 되찾기란 불가능할 듯합니다. P577” 『깡디드』의 작가답게 신랄하다. 나도 조금 그런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루소가 말하는 자연은 사실 상당히 인공적인, 잘 가꾸어진 공원같은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루소는 교육을 강조했다.

 

루소는 흄이나 칸트와 마찬가지로 계몽주의의 마지막 수호신인 동시에 이 운동의 초극을 원했던 지극히 신랄한 비판자였다.

 

 

Ⅲ. 독일

 

여기서 이 책은 독일의 계몽주의를 간단히 개요만 살피고 넘어간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계몽주의의 정점이자 종결을 뜻하는’ 칸트를 5부 2장에서 따로 떼어 특별히 논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라이프니츠는 이미 바로크의 대표 사상가로 다루었다.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대왕은 독일과 외국의 학자들을 궁정으로 초빙하여 독일 계몽주의 운동에 간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의 궁정은 박해받는 사상가들의 도피처이기도 했다. 그는 종교에 대해서도 관대하여, 모든 종교가 허용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구원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Ⅳ. 계몽주의에 대한 평가

 

“우리 역사의 어느 시대에도 계몽주의 시대만큼 철학이 여론과 사회발전에 강한 영향을 미친 적은 없었다. 이성을 사용하라는 철학자들의 요구(이때의 표현은 ‘비판’이었다) 그리고 자유와 관용, 인간성의 이상을 실현하라는 이들의 요구는 - 계몽주의의 이상이 처음에는 프랑스혁명의 유혈 사태에서 망각된 듯 보였지만 - 장기적으로는 광범위한 영역에서 관철되었다. 현재까지 우리가 이룬 근본적 성과 중 많은 것은 계몽주의의 이상에 빚지고 있다. P5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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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부 르네상스와 바로크의 시대

 

언제나 궁금했던 것이 있다. 르네상스는 정확히 언제를 말하는 걸까? 언제부터 근대라고 부르는 걸까? 근대와 현대의 구분은 언제를 기준으로 하는 걸까? 문제는, ‘언제’ 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단지 역사가 구분한 것일 뿐, 그 시대를 산 사람들에게는 무의미할 것이다. 시대 구분에 (유럽과 아시아를 가르는) 보스포루스 해협의 다리는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책마다 사람마다 조금씩 다른 그 기준에 짜증이 났더랬다. 아니면 너무 복잡해서 짜증이 난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오늘부터 이 책을 기준으로 기억하기로 했다. 4부는 1장과 2장으로 나뉘어 있는데, 1장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의 시대는 15세기와 16세기이다. 이 시기가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이행기다. 2장은 바로크 시대, 17세기다.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근대가 시작된다. 강유원은 어느 책에서 17세기는 과학혁명의 시대, 18세기는 계몽주의 시대(또한 산업혁명의 시대), 19세기는 부르주아의 시대라고 불렀다. 근대는 과학혁명과 더불어 시작된 셈이다.

 

  

 

 

 

 

 

제 1장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시대의 철학 : 15~16 세기

 

 

Ⅰ. 중세에서 근세로의 정신적 전환

 

아래의 소제목들만 봐도 이 시대의 특성을 일목요연하게 확인할 수 있다.

 

1. 발명과 발견

 

나침반, 화약, 인쇄술의 발명은 유럽의 면모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콜럼부스도 대포를 싣고 나침반이 가리키는 대로 서쪽을 향하다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을 것이다. 그것이 1492년이다. 인쇄술은 새로운 정신 운동이 광범위하게 전개될 수 있는 전제조건이 되었다.

 

2. 새로운 자연지식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이의 시대다. 갈릴레이는 셰익스피어와 같은 해에 태어났다.

 

3. 인본주의와 르네상스

 

르네상스란 “고대 인간의 부활을 통한 인간의 부활” 이란 의미를 내포하는데, 고대 인간은 희랍인을 말한다. 신에서 인간으로 중심이 이동했으며,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기반으로 한 스콜라철학이 붕괴되었다. 이 시대 철학의 공적은 본질적으로 다음과 같다. “이 사상들은 스콜라철학의 색안경을 벗은 채 최초로 아무 편견 없이 그리스․로마 철학을 고찰했으며 이를 세속적 관점에서 이해하고 당대와 후속 세대에게 보여 주어 그로부터 새로운 창조의 자극을 받을 수 있게 해 주었다.p432”

 

철학자는 아니지만, 이 시대의 사상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은 몽테뉴다. 몽테뉴의 에세이와 여행기에는 그가 전형적인 시대의 아들임이 드러나고 있는데, 그는 철저히 현세적인 정신의 소유자였고 비판적이며 회의적이고 일체의 편견에서 자유로운 인물이었다. 그는 인간이란 무엇인가? 우리의 삶이란 무엇인가? 란 수수게끼에 몰두했다. 그의 사상의 중심에는 인간이 있다.

 

물론 르네상스하면 예술을 빼 놓을 수 없고, 라파엘로,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로 대표된다. 또한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가 있다. 이 시대는 메디치가와 엘리자베스 1세, 스페인의 필립 2세가 통치하고 있었다.

 

4. 종교개혁

 

루터의 종교개혁과 동로마 제국의 멸망이 어떤 관련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냥 1453년 동로마 제국의 멸망을 기점으로 중세 기독교 사상이 쇠퇴했다고 알기 쉽게 기억한다. 1453년은 영국과 프랑스의 백년전쟁이 끝난 해이기도 하다. 전쟁이 끝나면서 프랑스는 바로 중앙집권제가 실시되고, 영국은 다시 30년간의 장미전쟁을 치룬 이후 중앙집권 체제가 이루어지며, 에스파냐는 콜럼부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1492년에 중앙집권제를 실현했다고, 『살아있는 세계사 교과서』의 연보에 실려 있다. 절대왕정은 근대 국민국가로 가는 초석이 아니었던가 싶다.

 

루터는 정신생활의 모든 영역을 아울렀던 교회의 전횡을 타파하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지만, 실제로는 성서에 관련해서만 연구의 자유를 요구했다. 코페르니쿠스에 대해서는 “바보의 아주 영리한 발상” 이라 말했다.

 

“결국 프로테스탄티즘에서는 철학이 다시 신학의 시녀로 전락했으며, 교의 체제도 급속히 경직되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중세의 선례 못지않게 불관용의 태도를 보이는 프로테스탄트적 스콜라 철학이 탄생한 것이다. p439”

 

5. 근세 여명기의 사회․정치적 변혁 - 새로운 법사상과 국가사상

 

이런 정신적 변혁의 토대를 이룬 것은 유럽 사회의 심대한 구조적 변화였다. 기사 계급이 몰락했고 도시에 거주하는 시민계급이 부상했다. 이들은 신대륙 발견이 가져온 활발한 무역으로 새로운 경제 질서를 구축했으며, 세속 문화의 중심 역할을 했다. 그리고 종교개혁과 맞물려 농민전쟁이 발생했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중앙집권화, 절대군주제이다.

 

이런 근본적 변화는 전적으로 새로운 법사상과 국가사상을 필요로 했는데, 가장 유명한 인물로는 마키아벨리와 홉스, 모어가 있다.

 

마키아벨리의 다음 말은 신이 아니라 인간이 만든 법과 자연 법칙인 폭력이 통치의 근간임을 명백히 한다.

“분쟁을 끝내는 데는 오직 두 가지 길밖에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즉 법으로 정해진 방식을 따르거나 폭력의 방식을 취하는 길밖에 없다. 첫 번째 방식은 인간이 취하고 두 번째 방식은 동물이 사용한다. 그러나 첫 번째 방식이 언제나 해결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므로 때로는 두 번째 방식도 취해야 한다. p445”

 

『리바이어던』으로 유명한 홉스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자연 상태로 보았다. 그러나 마키아벨리와는 다르게(?) 폭력은 안전에 대한 인간의 소망을 충족시켜 줄 수 없다고 보았다. 그는 “법적 보호와 안전, 실제적 도덕행위의 가능성은 인간들이 국가 내에서 합의에 의해 상위의 권력을 창출하고 모두가 이 권력의 의지에 복종할 때만 가능하다.p447” 고 생각했다. 이것이 홉스가 말하는 국가의 기원이다. 그에 의하면 “무엇이 정의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국가이다. 국가가 허용하는 것은 정의이며, 국가가 금지하는 것은 불의이다. p447”

 

“홉스의 사상에 반영되어 있는 것은, 개인과 국가 모두를 신의 구원 질서에 편입시켰던 중세적 세계관이 파괴되고 그로부터 ‘해방된’ 개인과 세속 국가가 탄생하는 당대의 변화과정이다. 양자 즉 개인과 세속 국가의 요구를 조화시키는 것은 이후의 정치 역사와 근세 사상 전체가 해결해야 할 과제로 대두한다. 이때 홉스는 완전히 국가편에 선다. p448”

 

모어의 『유토피아』는 가장 선구적인 자본주의 비판이다. 그는 “영국에서는 양이 사람을 잡아먹는다.”고 하며, 인클로저 운동에 의한 농민계급의 몰락을 고발했다. 유토피아는 판타지가 아니라 당대 국가와 사회상에 대한 전면적인 비판이며, 유토피아는 그 대안으로 그려진 사회주의 공동체의 모습이다.

 

 

Ⅱ. 과도기의 주요 사상가

 

이 책이 ‘철학사’ 임을 감안한다면, 이 시대의 주요 사상가가 가장 중요하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별 흥미가 없어 이름만 거론하고 넘어간다. “이 시대는 많은 것이 실험되고 다시 많은 것이 폐기되는 거대한 작업장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p474” ‘실험과 폐기’ 된 것 말고도 알아야 할 것이 너무 많아서 그렇다. 죄송하다.

 

1. 니콜라스 쿠사누스 (1401~1464) : 처음 듣는 이름이다.

 

2. 조르다노 브루노 (1548~1600) : 우주의 무한성을 탐구하다 화형 된 불운한 수도사다. 갈릴레이와 동시대인데, 갈릴레이는 훨씬 오래 살았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 를 혼잣말로 중얼거린 덕택이다.

 

3. 프랜시스 베이컨 (1561~1626) : 우상론으로 유명하다. 셰익스피어 작품의 원작자로 꾸준히 거론되고 있지만, 베이컨 연구자들은 동조하지 않는다.

 

4. 야코프 뵈메 (1575~1642) : 처음 들어보는데, 그의 사상은 유럽 전역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뉴턴, 라이프니츠, 헤겔, 셀링이 그의 정신적 유산에 깊은 존경심을 표했다고 한다.

 

 

 

제 2장 바로크 시대의 3대 체계 : 17 세기

 

이 시대는 이미 르네상스에서 성숙한 것으로 천명된 이성이 승승장구의 길로 들어섰고, 이 시대의 철학은 수학과 분리될 수 없었다. 그 특성이란 명석하고 일목요연한 형태와 조화로운 구조 및 전체를 이루는 모든 부분의 균형에 대한 당대인들의 추구를 말한다.

 

 

Ⅰ. 데카르트 : 1596~1650

 

그 유명한 방법서설의 원제목은 길다. 『이성을 옳게 인도하고 여러 학문에서 진리를 구하기 위한 방법서설』이다. 1637년에 출간되었다. 근대의 대표 아이콘 ‘이성’ 이 등장한다.

 

1637년은 30년 전쟁의 와중이다. 유럽 핵심 강국이 모두 참가한 30년 전쟁은 프로테스탄트 연합과 가톨릭 동맹 사이의 대립으로, 1618년에 시작되어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을 체결하며 끝났다. 흔히 베스트팔렌 이후를 근대국가의 출발로 삼는다.

 

강유원의 『역사 고전 강의』는 30년 전쟁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전쟁은 종파의 대립을 명분으로 하여 시작되었으나 그 뒷면에는 정치적 쟁투가 도사리고 있었고, 전쟁이 진행됨에 따라서 이 전쟁을 겪으면서 사람들은 종교에 대해 말하는 것을 꺼리게 되었을 뿐 아니라, 종교를 둘러싼 싸움은 무의미한 일이라고까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종파가 다르다는 이유로 무자비한 살육을 일삼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30면 전쟁이 가져다 준 가장 역설적인 효과라 할 수 있습니다. p268~269”

 

한마디로 종교에 넌더리를 내게 되었다는 것인데, 문제는 신이 사라진 자리에 무엇이 삶의 기준이 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신에 대한 회의는 곧 세계에 대한 회의이고 인간에 대한 회의이다. 여기서 등장하는 것이 데카르트의 사상이다. 데카르트는 어떻게 우리가 확실한 인식에 도달할 수 있는지?, 어떤 진술이나 판단이 확고한 타당성을 갖는지에 대한 물음을 제기한다. 중세라면 답은 명백히, 신이다. 그러나 17세기의 신은 이미 죽어가고 있었다.

 

“만약 인식되는 모든 것이 가장 단순한 원리들로부터 도출되어야 한다면, 나는 제일 먼저 내 출발점의 확실성을 따져보아야 한다. 그러나 과연 무엇이 확실한가? 만전을 기하기 위해 일단 나는 그 무엇도 확실하지 않다고 가정하겠다. 나는 모든 것을 의심해 보고 그런 철저한 의심을 견뎌 내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겠다. 나는 학습과 독서를 통해, 그리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과정에서 습득한 모든 것뿐 아니라 나를 둘러싼 세계가 정말로 존재하는 것인지 아니면 한낱 상상에 불과한 것인지, 달리 말해 내가 지각하는 그대로 세계가 존재하는 것인지 아닌지 의심해 볼 것이다. 그럴 것이 인간의 감관이 다양한 착각을 유발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서 나는 모든 것 중 가장 확실하다고 여겨지는 수학의 원리들도 의심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의 지성은 진리 인식에 부적합하여 끊임없이 오류를 낳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모든 것을 철저히 의심하는 데서 철학을 시작한다 할지라도 끝내는 내가 의심하지 못할 뿐 아니라 내가 의심하면 의심할수록 더욱 확실해질 수밖에 없는 무엇이 남게 된다. 그것은 바로 내가 지금 이 순간 의심하고 있다는 사실, 다시 말해 생각하고 있다는 단순한 사실이다. 내가 외계로부터 지각하는 모든 것은 착각일 수도 있고, 내가 생각하는 모든 것은 오류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이런 의심 과정 속에서 사유하는 존재로서의 나 자신만은 확신한다. p480~1”

 

이것이 우리가 그 이름만은 매우 익숙한, ‘코기토’가 탄생한 배경이다. Cogito ergo sum. 영화 <메트릭스>의 세계에 대한 의심이 이미 17세기 데카르트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영화와는 달리 데카르는, 의심하는 자기 존재를 확신했다.

 

“합리주의 시대의 다른 철학자들과 마찬가지로 데카르트는 감성적 경험이란 너무 불명료한지라 가치가 없는 것으로 평가한다. 오로지 사유하는 지성에 의해 아주 명백하고 합리적이며 ‘수학적인’ 개념에서 표현될 수 있는 것만이 전적인 타당성을 갖는 인식으로 간주된다. 물체 세계와 관련해 그처럼 전적인 타당성을 갖는 인식은 연장의 속성, 즉 공간을 차지한다는 속성이다. 따라서 공간적 연장은 물체 세계의 본질이다. 물체는 공간이며, 공간은 물체로 구성된다. 비어 있는 공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p.484”

 

사유와 연장. res cogitans와 res extensa. 일반인에게 연장이란 단어는 참 ‘에고~ 의미 없다.’ 데카르트가 인용되는 문장을 여러 책에서 읽었지만, 이 책을 읽을 때까지 나는 연장의 의미를 사실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 보니 연장은 공간이다. 아인슈타인이 정의한 중력이 물체에 의한 공간의 휨을 말한다더니, 여기에 데카르트를 대입한다면, 연장이란 공간의 휨을 유발하는 것, 혹은 휘어진 공간이라 해도 되겠다.

 

여하튼 이 사유와 연장의 구분은 두고두고 ‘근대 철학의 아버지’인 데카르트의 발목을 잡는다. 이분법, 기계론적 사고, 자연의 대상화가 인간을 황폐하게 만들고, 결국 근현대를 두 차례의 세계대전으로 이끌게 했다는 원망이다. “데카르트는 정신의 개념을 사유에 국한 시켰고 동물은 이런 의미에서 사유할 수 없으므로 결국 동물은 정신세계에 관여하지 못한다. 동물은 순전한 메커니즘이며 기계와 전혀 다를 바가 없다.p484” 심지어 데카르트는 인간의 육체 또한 연장에 포함시키며, 동물 및 기계와 동급에 놓았다.

 

“정신 내지 사유와 인간의 육체를 포함한 물체 세계를 철저히 분리하는 데카르트의 입장은 서양 사상의 발전에 다대한 (그러나 긍정적이지만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입장은 물체 세계에만 현실성을 부여하는 대중적 ‘유물론’과 (마찬가지로 일면적인) 대중적 ‘관념론’이 형성되는 출발점이 되기도 했다. P490”

 

 

Ⅱ. 스피노자 : 1632~1677

 

스피노자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노자? 장자?, 왠지 그런 생각이 드는 이유는 아마도 주워들은 몇몇 개념 때문일 것이다. 보통 <윤리학>으로 알고 있는 그의 주저서는 『기하학적 방식으로 서술된 윤리학』이다. 우리의 상식으로는 기하학과 윤리학이 굉장히 생뚱맞은 조합이지만, 17세기는 수학과 철학이 하나이던 시대였다.

 

“이 책의 출발점을 이루는 것은 ‘실체substantia’라는 개념이다. 이 개념은 오늘날의 언어 사용에서와 달리 물질을 뜻하지 않는다. ‘substantia’ 라는 라틴어 단어가 원래는 ‘그 아래 놓여 있는 것’ 이란 뜻임을 상기한다면, 우리는 이 개념이 지시하는 의미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스피노자가 이 개념으로 지시하는 것은, 모든 사물의 근저나 배후에 자리 잡고 있으면서 모든 존재를 자체 내로 통합하고 포괄하는 일자 내지 무한자이다. 실체는 영원하고 무한하며 자기 자신에게서 비롯되어 존재한다. 그리고 실체 바깥에는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렇게 이해된 실체 개념은 결국 신의 개념과 일치하며, 모든 존재자의 총괄이라는 점에서 동시에 자연 개념과도 일치하게 된다. 따라서 스피노자의 사상은 다음과 같은 등식에서 출발한다.

실체 = 신 =자연

 

실체와 대립하는 개념은 ‘양태modus’이다. 실체가 자기를 원인으로 하여 자유로운 동시에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왜냐하면 자기를 원인으로 한다면 필연과 자유가 합치하므로) 것을 뜻한다면, 양태란 이런 것이 아닌 모든 것, 즉 다른 것에 의해 제약되어 있는 모든 것을 뜻한다. 달리 말하면, 가장 넓은 의미에서 세계, 즉 (유한한) 현상들의 세계가 바로 양태라고 할 수 있다. p496”

 

스피노자는 실체가 한없이 커다란 평면 예를 들어 커다란 종이라고 생각한다면, 모든 양태 즉 개별 사물은 거기에 그려지는 도형이라고 설명한다. 나는 이 설명을 보며 아이작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에 나오는 가이아 혹은 갤럭시아가 생각났다. 우리 인간으로 양태는 하나하나의 세포이며, 실체는 전체로서의 인간이라 할 수 있을까?

 

“무한한 실체 내지 신은 (어쨌거나 우리 인간이 지각할 수 있는 한에서는) 두 가지 속성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사유와 연장이다. 신은 한편으로 무한한 연장이며 (즉 신은 유한성을 갖는 물체가 아니다), 다른 한편으로 무한한 사유이다 (즉 신은 특정한 사유, 제약된 사유가 아니다). 그런데 모든 것은 신 안에 존재하므로, 모든 개별 존재 역시 이러한 두 가지 관점에서 고찰될 수 있다. 즉 모든 개별 존재는 사유의 관점에서 관념으로 나타나며 연장의 관점에서는 물체로 나타난다. 고로 (데카르트가 주장했던 것과는 달리) 두 개의 상이한 실체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두 가지 관점에서 고찰될 수 있는 단 하나의 실체가 존재하는 것이며, 개별 존재 -특히 인간- 역시 두 개의 분리된 실체인 육체와 영혼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고, 두 가지가 동일한 존재의 두 측면을 이루는 것이다. 이러한 견해는 현대 인간학에서도 널리 인정되고 있다. p498”

 

스피노자는 사유와 연장이라는 데카르트의 개념을 받아서, 데카르트와는 정반대로 그것을 하나로 합쳐 버렸다. 두 개의 실체가 아니라 하나의 실체를 바라보는, 사유와 연장이라는 두 개의 관점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실체를 신 혹은 자연이라고 보면 개별 존재인 인간은 양태 아닌가? 그러므로 인간에게는 자유가 없다. 스피노자에 따르면 자유의지, 결단의 자유는 없다. 그러나 자유의지가 없다고 해서 인간이 자신의 행동에 책임질 필요가 없다는 말은 아니라고 한다. 그렇다면 의무만 있고 권리는 없는 거네?;; 그런데 그게 아니라 인간의 이성을 통해 점점 더 높은 수준의 자유에 도달할 수 있으며, 이때의 자유는 필연성을 긍정하는 자유, 신에 대한 지적 사랑, 운명애 등등이라고 스피노자가 역설하는 모양이다. 그래서 제목이 윤리학인가?

 

그런데 이런 그의 철학은 “숙명론적 달관의 성격을 분명하게 지니고 있다. 이런 성격이 반드시 방관적 무위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무위로 귀결되기 쉬운 것은 사실이다. p507” 고 한다. 그래서 노자가 생각났던 걸까..

 

 

Ⅲ. 라이프니츠 : 1646~1716

 

뉴턴과 미적분의 창시자 자리를 놓고 싸우신 분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철학자로서, 특히 들뢰즈에 의해 우리들에게 유명해진 개념은 모나드이다.

 

“그렇다면 모나드는 무엇인가? 스피노자가 말하는 무한한 하나의 실체를 우리가 무수히 많은 점처럼 존재하는 개별적 실체들로 분할한다면 우리는 이 개념이 지시하는 내용에 가까이 근접하게 된다.

실제로 라이프니츠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모나드의 문제만 배제하고 생각한다면 스피노자의 견해는 옳았다.” 라이프니츠가 말하는 모나드의 특성은 네 가지 관점에서 고찰될 수 있다. p515”

 

모나드의 네 가지 특성은 점, 힘, 영혼, 개체이다. 설명은 생략한다. 들어도 안 들은 것과 비슷하다. ;; 스피노자의 실체들이 무수히 많은 점들로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더 빠르게 이해된다. 그런데 ‘창문이 없다’는 이 무수한 모나드들은 어떻게 조화로운 세계를 구성하는가? 라이프니츠는 간단히 신을 데리고 왔다. “신은 각각의 실체가 자신의 현존과 더불어 주어진 고유한 법칙만을 준수해도 서로 조화를 이룰 수 있게끔 두 실체의 속성을 정해 놓았다.” 이것이 라이프니츠의 예정조화설이다. 신은 철학자들의 막다른 골목에 등장하기를 즐기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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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ld26kr 2018-06-29 2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감사 합니다 찾아 헤메던 좋은글 퍼감니다. 진심 감사합니다
 

혹시 놓친 책이 있을까, 몇 날을 훑어보다 산 책이다. 도서정가제 기념 덤핑(?) 시즌에 -.-;

 

 

 

 처음 알라딘에서 봤을 때, 책이 너무 두꺼워 놀랐다. 조금 무서웠다. 그리고는 싼 가격에 또 놀랐다. 50% 할인이기도 했지만, 정가 자체가 책 두께에 비해 싸다. 39,900원. 나는 19,950원에 샀다.   

 

 

철학을 계통을 밟아 배워 본 적이 없어서, 철학책을 읽을 때 나는 항상 불안하다.  공자의 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를 경구로 새기는 것도 이  때문이다.  學은 스승의 가르침일 뿐 아니라, 동학들 사이의 토론을 포함한다. 함께 읽고 배우고 논쟁하여야 비로소 學이 된다. 그래서 혼자 읽는 책은 思에 더 가까울 것 같다. 그것은 殆, 위태롭다. 그냥 좋아서 읽는데, 기회가 되면 강유원의 아카데미 같은 곳을 찾아볼 생각이다. 

 

몇 권의 철학사를 읽어보기도 했다. 그런데 별반 도움이 되지 않았다. 얇팍한데 지루하고, 어려운데 깊이는 없고, 체계적 지식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또 샀다. 조금 달라 보였기 때문이다.

 

 

 

 

『세계 철학사』는 제목으로 일단 사람의 기를 죽인다. 이래도 읽을래?  그런데 목차가 마음에 들었다. 특히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르네상스 이후부터 계몽주의, 칸트, 그리고 헤겔로 이어질 19세기 철학 부분이 마음에 들었다. 두툼한 분량의 칸트, 어느새 칸트가 내 손안에 들어온 듯 했다.

 

철학사든 세계사든, 나는 보통 15~16세기 르네상스 시대부터 시작한다. 우리의 현대를 이루는 토대가 이 시기부터 시작된 서양의 근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근대는 자본주의, 합리주의, 국민국가라는 특성을 갖는다고, 강유원의 책에서 읽었다. 우리의 행동과 사고의 기준은 합리성이다. 합리성의 기준은 실용성이고, 실용성이란 한마디로 이익이 되는것, 돈이 되는 것이다. 그 외의 일은 모두 쓸데없는 짓, 비합리적인 행동이 된다. 

 

어릴 때 엄마에게 자주 듣던 말, "책 읽으면 돈이 나오냐? 떡이 나오냐?"  당시, 가난한 환경에서는 그랬다. 이야기책은 아무 쓸모없는 것이었다. 지금 이야기책은 다양한 쓸모를 가지고 있지만, 하다못해 '서재지수'라도 올라간다, '쓸모' 라는 기준만은 변하지 않았다.

 

그런데 우리가 언제부터 쓸모, 실용을 삶의 기준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을까? 제국주의에 의해 강제적인 근대화가 이루어지면서 부터이다. 우리의 근대는 일본을 경유한 서양의 근대에 바탕한 것이다. 우리는 仁보다 資本을, 禮 보다 자유와 평등을 더 사랑한다. 조선 500년이 가르쳐 왔던 것 보다, 유럽이란 먼 땅의 혁명이 만든 사상에 더 깊이 공감하고, 그 토대 위에 삶을 바꾸어 왔다. 오늘, 우리의 모습을, 우리 사는 꼬라지를 되돌아 보기 위해, 고려와 조선 보다 먼저 서양의 근대에 눈을 돌리는 것은 이 때문이다.

 

 

 

지난 주 알라딘의 메일이 도착했다. 『세계 철학사』리뷰를 올려달라는, 통상적인 광고 메일인데도,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도착한 지 보름도 되지 않은 이 두꺼운 책을 벌써 어떻게 읽고 어떻게 리뷰를 쓰냐? 이 바보야, 소리가 절로 나왔다. 게다가 이번 달은 소소한 일들이 많아서, 마음먹고 책상 머리에 앉거나 카페를 찾을 시간도 없었다.   

 

지난주에 겨우 읽기 시작해서 <4부 르네상스와 바로크의 시대>를 읽었다. 예상보다 훨씬 좋았다. 어떤 점이 그랬냐고 묻는다면... 그냥 정리겸 리뷰를 쓸 생각이다. 총 7부라 적어도 7개 이상의 리뷰가 될 것 같다. 분류상으로 그렇지만 아마도 10개가 넘을 것 같고, 두세달은 족히 걸리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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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01 17: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말리 2014-12-13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문고전강의 혹은 역사고전강의 둘 중 하나일 겁니다. 게시글 성격이 아니고 혼자 노트 정리하는 수준의 글이 많습니다. 읽어주시고 격려해주시니 너무 고맙습니다.

세실 2014-12-07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표지랑 크기 맘에 드네요. 두께는 부담스럽지만요^^
우리 독서회 선정도서로는 다소 부담스럽겠죠?

말리 2014-12-07 16: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약간 그럴것 같아요. 혹시 안하셨다면 강유원의 <역사고전강의>나 <인문고전강의> 추천합니다. 지난 겨울 같은동네 지인 셋이서 했는데 다들 좋아했습니다. 한권을 한 4회 정도 나누어 읽으니 부담없이 깊이있게 이야기할만 했습니다.

수양 2014-12-13 1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리님
혹시 저 위에 비밀댓글
말리님이 달아주신 댓글인가요?

에고.. 제가 읽어볼 수가 없네요..ㅜ_ㅜ

말리 2014-12-13 11:36   좋아요 0 | URL
헥;; 제가 서재에 서툴러서 ;;
 
HOW TO READ 프로이트 How To Read 시리즈
조시 코언 지음, 최창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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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 인간의 자부심에 충격을 안긴 세 가지 사건’ 에 관한 이야기는 프로이트가 한 말이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다윈의 진화론, 프로이트의 무의식이 그 세 가지 사건이다. 프로이트는 “이번 현대 정신분석학 연구의 발견으로 인간은 자신의 정신조차 제대로 조절하지 못하는 존재로 알려지면서 세 번째이자 가장 충격적인 사실을 접하게 되었다. 이것은 마치 에고에게 ‘네가 사는 집의 주인은 네가 아니라고’ 선언하고 마음 깊숙한 곳에 사는 무의식이라는 존재에 대해 약간이라도 아는 것에 만족하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지동설은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것, 진화론은 인간이 신의 특별한 창조물이 아니라는 것, 무의식은 내가Ich 나의 주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 아무것도 아님이 역설적이게도 인간을 인간이게 한다.

 

프로이트 스스로 인간을 강타한 세 번째 충격이라고 한만큼,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의 핵심은 무의식일 것이다. 그러나 무의식이 무엇인지 우리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없다. “무의식적 현상은 의식 세계의 언어로는 정확히 설명할 수 없다.” 접신이라도 한다면 모를까, 말똥한 의식에게 무의식은 애당초 이해 불가능한 세계다. 그렇다면 프로이트는 무의식의 존재를 어떻게 알았던 걸까?

 

허먼 멜빌의 『사기꾼』이란 책이 있다고 한다. 미시시피 증기선에 올라탄 한 인물이 매번 변장을 하고 나타나 사람들을 속이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 사기꾼의 정체는 끝까지 밝혀지지 않는다. 다만 그의 가면 뒤에 숨어 있는 인물에 대한 추측만 난무할 따름이다. 사기꾼은 결코 그의 가면 없이 나타나는 법이 없다. 무의식도 그렇다. 무의식은 언제나 가면을 쓰고 나타난다. 무의식의 위장술은 전위displacement와 압축condensation이다. 우리는 무의식 그 자체에는 결코 도달하지 못한다.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가면, 전위와 압축이 만들어낸 마스크일 뿐이다. 가면을 벗기려하면, 눈앞의 현실이 사라진다. 진실은 가면 뒤가 아니라 가면 자체에 있다.

 

무의식은 위장을 한 채, 우리의 의식에 교묘히 끼어든다. 그것이 바로 꿈, 농담, 실수 등이다. 무의식이 가면을 쓸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의식의 검열 때문이다. 이 검열관은 밤이 되면 조금 느슨해진다. 너무 꽁꽁 틀어막으면 의식이든 무의식이든 터지기 쉽다. 밤에 살짝 풀어주면, 낮에 큰 사고 없이 지낼 수 있다. 그러므로 꿈이야말로 무의식에서 방출하는 모든 자극을 처리하는 처리장이다.

 

프로이트는 꿈을 독재정권하의 언론처럼 무의식이라는 기자와 마음의 검열관이 타협한 결과라고 했다. 독재하의 기자들은 검열관의 눈을 속여 행간에 그 의미를 은밀하게 드러낸다. 기자들이 머리를 쥐어짜 행간에 의미를 숨기듯, 꿈은 ‘꿈 작업’을 통해 애매모호한 단어와 괴상한 이미지를 창출하여 본래 의미를 변형시킨다. 보통 꿈의 해석을, 드러난 꿈의 내용을 통해 잠재된 꿈 사고를 밝혀내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꿈의 핵심은 꿈 사고에 있는 것이 아니라 ‘꿈 작업’에 있다. 꿈에는 아무리 해석해도 해석할 수 없는 것이 남는다. 꿈 사고는 대단히 복잡하게 얽혀 있는데, 이 불가능한 해석에 매달린다고 해서 무의식이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무의식은 별 의미 없이 지나친 하나의 단어 속에 그 정체를 숨기고 있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어떤 남자가 꿈을 꾸며 우연히 말한 ‘tutelrein' 이라는 단어에는 꿈이 공들여 세공한 모든 것이 들어있다. 휘황찬란한 꿈의 파노라마는 오히려 이 하나의 단어를 위한 거창한 배경이라 할 수 있다.

 

<How To Read> 시리즈는 좋은 입문서다. 내가 읽은 몇몇 책들은 그랬다. 프로이트 편도 재미있다. 프로이트하면 자동으로 연상되는 리비도, 무의식, 꿈, 죽음충동을 비롯해 나르시시즘, 쾌락원리, 오이디푸스콤플렉스, 사도마조히즘 등 기본적인 개념을 쉽게 설명해 주고 있다. 여기서 요약하기에는 모두 다 중요한 개념이라, 무의식과 꿈에 대해서는 간단히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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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물리학 - EBS 다큐프라임
EBS 다큐프라임 [빛의 물리학] 제작팀 지음, 홍성욱 감수, EBS MEDIA 기획 / 해나무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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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머리가 좋다면 꼭 해보고 싶은 공부가 천체물리학이다. 138억 년 전의 우주, 그 찰나의 빛이 세상을 만들고, 아직도 우주는 그 흔적과 기억을 품은 채 질주하고 있다. 그런데 물리의 세계는 진짜 천재들의 세계다. “나는 그 누구도 양자역학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마음 놓고 말할 수 있다.” 리처드 파인만이 이렇게 말했다니, 그리고 아인슈타인조차 죽을 때까지 코펜하겐학파의 양자해석을 믿지 않았다니, 나로서는 감히 넘볼 수 없는 세계다. 그런데도 나는 거대한 우주와 미시의 양자 세계가 결국 동일하다는 생각만으로도, 들뜬다. EBS 다큐프라임의 <빛의 물리학>이 방송되었을 때도, 거의 이해할 수 없었지만 정신없이 화면에 빨려 들었다. 빛을 따라 갈릴레이, 뉴턴을 거쳐 아인슈타인이 밝혀준 우주 공간을 보았고, 그 빛의 엑스터시 속에 인간의 눈으로는 결코 볼 수 없을 아주 아주 작고 캄캄한 양자들의 세계로 들어섰다. 아무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그 어둠의 세계에는 우주 탄생의 비밀과 모든 생명의 원리가 들어 있다. 그 다큐 <빛의 물리학>이 책 『빛의 물리학』으로 출간되어 도서관 신간코너에 딱하니 꽂혀 있었다.

 

 

소설 『야만적인 앨리스씨』의 앨리스는 끝없이 낙하하고 있다. 토끼 굴속에 떨어졌는데, 땅에 닿지를 못하고 계속 떨어지고만 있다. 왜? 작가의 은유와는 관계없이 『빛의 물리학』은 이런 답을 할 수 있다. 앨리스가 땅에 닿지 못하는 것은 땅이 계속 꺼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운동하고 있는 물체는 방해를 받지 않으면 계속 직진한다. 관성의 법칙이다. 우주에서는 한 번 힘을 받은 물체는 영원히 움직인다.

   

  관성의 법칙에 따른다면 달도, 공도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런데 달은 지구 주위를 돌고 있으며, 지구상에서 하늘로 던진 공은 아래로 떨어진다. 그러면 이 공이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는 방법이 있다면 무엇일까? 그중 하나의 방법은 공이 닿기 전에 땅을 내리는 것이다. 땅을 계속 내리다 보면, 공이 지나간 궤적은 둥그런 모양이 되고, 공은 계속 지구 주위를 돌게 된다. p82 」

 

뉴턴의 이 생각이 그대로 적용된 것이 인공위성이다. 자연위성인 달도 인공위성처럼 떨어지면서 지구를 돈다. 뉴턴은 여기서 공이든 사과든 달이든 왜 떨어지는 가에 의문을 품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했다. 질량을 가진 모든 물체는 서로를 잡아당긴다. 달은 앞으로 계속 나아가려는 관성과 지구와 달이 서로 잡아당기는 만유인력 때문에 끊임없이 돌고 있다.

 

 

 

 

 

『야만적인 앨리스씨』의 앨리스는 떨어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끝없이 삶의 수레바퀴를 돌고 있는 것이다. 삶의 중력을 떨쳐 내고 비상할 힘이 소년 앨리스에게는 없다.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는 것이 쉽지 않은 것처럼, 추락하지 않고 궤도에 오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일단 초속 7.9킬로미터의 속도를 낼 수 있어야 만유인력과 관성이 균형을 이루어 지구의 궤도에 오를 수 있다. 7.9km/s 조차 없다면 소년 앨리스의 동생처럼 삶의 궤도를 올라보지도 못하고 추락한다.

 

그런데 아인슈타인이 나타났다. 뉴턴의 말처럼 모든 떨어지는 것은 그것과 지구 사이의 잡아당기는 힘 때문일까? 서로 당기는 이 힘은 왜 발생하는 것일까? 뉴턴에 의하면 만유인력은 질량과 거리에 따라 달라진다. 그런데 특수상대성이론을 만든 아인슈타인은 질량과 거리가 관찰자에 따라 달라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만유인력과 특수상대성이론 둘 중 하나는 틀렸다. 젊은 아인슈타인은 자신이 옳다고 확신했다. 그리고 중력과 가속도는 같은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떨어진다는 것은 중력의 잡아당기는 힘 때문이 아니었다. 물체에 의해 공간이 휘기 때문에 그렇게 보일 뿐이었다. 낙하란 휜 공간을 자연스럽게 진행하는 것이다.

   

「가속도의 힘이 존재하는 공간, 즉 중력이 존재하는 공간은 모든 물체를 휘게 한다. 다른 말로 하자면, 질량이 있는 곳에서 공간은 휘어진다. 태양 주변도 마찬가지다. 태양 뒤에서 오는 별빛은 직진하고 있지만 휘어진 공간을 따라 오게 된다. 에딩턴이 지구에서 볼 수 없었던 별 사진을 찍은 것도 별빛이 휘어졌기 때문이었다. 중력은 잡아당기는 힘이 아니라 공간이 휘어지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답이었다. p110」

 

다시 뉴턴의 질문으로 돌아가자. 사과는 왜 떨어질까? 지구가 만든 휜 공간이 사과를 가장 자연스러운 길로 인도하기 때문이다. 일식 때 태양 뒤의 별빛을 볼 수 있는 것도, 별이 태양이 만든 휜 공간을 따라 오기 때문이다. 질량을 가진 모든 물체는 공간을 휘게 만든다. 당신이 나에게 오는 것은 우리가 서로 당기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만든 휜 공간을 당신이 따라 걷기 때문이다. 질량이 클수록 공간은 더욱 크게 휘어진다. 아인슈타인에 따르면 질량과 거리는 상대적이다. 나를 더욱 무겁게 느낄수록 당신이 나에게 이르는 길은 더욱 가파르게 기운다.

 

 

 

뉴턴을 과거로 돌려보낸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은 세상을 지배했다. 그러나 영원한 독재는 없다. 세계의 저 너머에 무엇인가가 나타났다. 양자역학! 양자역학은 곧바로 상대성이론과 함께 세계를 양분했다. 이 두 개의 물리법칙에는 하나의 영감이 작용했다. 그것은 빛이다. 가장 큰 세계와 가장 작은 세계는 하나였다. 오래된 금언이 맞다. 우리 몸 안에 우주가 있다. 그러나 이 우주는 완전하지도 질서 정연히 아름답지도 않다. 양자역학이 추정하는 코스모스는 카오스다.

   

 

 양자역학의 산실 닐스보어연구소다. 보어는 1916년 코펜하겐 대학의 이론물리학 교수가 된 이후, 이 연구소를 양자물리학의 메카로 만들며 코펜하겐학파를 이끌었다.

 

세상은 무엇으로 이루어졌을까? 이것은 아주 오래된 질문이다. 벌써 원자는 희랍에서부터 탐구되었다. 세상이 더 이상 쪼개지지 않는 알갱이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 쪼개지지 않을 것 같은 알갱이 속에는 여러 가지 더 작은 알갱이들, 입자들이 있었다.

 

「1920년대엔 가장 작은 물질이 양성자, 중성자, 그리고 전자라고 생각했다. 1970년대에 이르자 쿼크라는 더 작은 물질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쿼크에 여섯 종류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후 전자와 성질이 비슷하면서 질량이 훨씬 큰 입자인 뮤온과 타우, 3종류의 뉴트리노까지, 12종류의 입자들이 발견됐다. 또 힘을 매개하는 입자인 글루온, 포톤, W± 게이지 보존, Z0게이지 보존과 입자에 질량을 부여하는 힉스 입자가 있다.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만물들은 이 입자들의 조합으로 이뤄져 있다는 게 현재 물리학의 답변이다.p298」

 

처음 발견된 것은 전자였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의 J.J. 톰슨이 원자 안에 음극을 나타내는 작은 입자가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런데 원자는 중성이니 원자 안에는 전자에 반대되는 양의 전기를 가지는 무엇이 있어야 했다. 원자핵을 실험으로 증명한 사람은 러더퍼드였다. 러더퍼드는 전자가 원자핵 주위를 돌고 있는 원자 모델을 만들었지만, 어떻게 양전하를 띤 원자핵과 음전하를 띤 전자가 달라붙지 않는지 밝혀내지 못했다. 이 문제를 풀어낸 사람이 바로 러더퍼드의 제자 닐스 보어이다.

   

보어의 원자모델에서는 가운데에 원자핵이 있고, 전자는 정해진 궤도를 따라 돈다. 내가 고등학교 화학시간에 배운 것도 이것이다. 그러나 보어 자신도 왜 전자가 궤도를 따라서 도는지 그 이유를 설명하지 못했다. 다음 타자로 나선 것이 닐스보어연구소의 차세대 주자 하이젠베르크였다. 하이젠베르크는 과감히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잘라버렸다. 보어의 전자 궤도를 없애버린 것이다. 아무도 본 사람이 없는 궤도를 반드시 존재한다고 믿어야 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슈뢰딩거가 다시 궤도를 들고 나타났다.

 

 

 

 

보이지 않는 세계를 두고 일어난 이 논쟁의 승자는 누구였을까? 보어는 슈뢰딩거에 크게 기대를 걸었지만, 슈뢰딩거 역시 전자를 볼 수 없다는 하이젠베르크와 동일한 결론에 도달했다. 슈뢰딩거의 방정식은 오늘날까지도 양자역학의 핵심에 있지만, 그 자신도 그의 공식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공식을 먼저 만들고 나중에 가서야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이 양자역학이었다.

 

도대체 전자는 어디에 있는 걸까? 전자는 왜 연속적으로 움직이지 않고 양자도약을 하는 걸까? 왜 원자는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걸까? 하이젠베르크는 다시 생각의 방향을 과감히 틀었다. 원자는 단순히 작아서 볼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말하자면 인식의 불가능성이 아니라 존재의 불가능성이다. 여기서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가 탄생한다.

   

「위치를 정확히 재려고 하면 전자의 운동량이 불확실해 지고, 전자의 운동량을 보려고 하면 어디에 있는지 위치가 정확히 파악되지 않는다. 즉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정확하게 잴 수가 없다. 결국 우리는 전자가 어디에 있는지 제대로 알 수가 없다. 코펜하겐학파가 최종적으로 생각한 원자 모델은 다음과 같다. 전자는 안개처럼 뿌옇다. 이전 세상은 모든 것이 예측 가능했지만, 이제 세상은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는 불확정성으로 가득 찬 모호한 세계가 되고 말았다. p271」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코펜하겐 해석을 믿으려 들지 않았다. 미래는 알 수 없다는 세계관과 인간이 불완전해서 관측하지 못하는 것이라는 세계관이 격렬히 부딪혔다. 아인슈타인의 신은 주사위 게임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양자역학은 전자의 위치를 확률적으로만 알 수 있다고 주장한다. 확률이론에 의하면 전자는 발견되기 전까지 다양한 위치에 공존한다. 이 이해하기 어려운 이론을 대표하는 것이 바로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고양이 중의 한 마리인 ‘슈뢰딩거의 고양이’ 다.

   

「고양이가 갇힌 상자에는 독가스가 나오는 장치가 있다. 원자핵이 붕괴되어 방사선이 검출되면 망치가 유리병을 깨고, 그러면 유리병에서 독가스가 나온다. 고양이의 생사를 확인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 고양이는 과연 죽었을까, 살았을까? 보지 않을 땐 알 수 없다. 지금 이 순간엔 확률적으로 죽은 상태와 살아 있는 상태가 공존할 뿐이다. 슈뢰딩거는 궁금했다. 과연 반은 죽어 있고 반은 살아 있는 고양이가 말이 되는가? 구멍을 열어서 확인해보기 전까지 상자 안의 고양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 없다면, 고양이는 죽은 걸까, 산걸까? 물론 이 질문은 아직도 그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p266」

 

표현을 정확히 하자면, 확인할 때까지 고양이의 생사를 알 수 없는 것이 아니라, 확인할 때까지 고양이의 생사는 정해지지 않았다고 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이 말의 정확한 의미를 알지 못한다. 확률적으로 죽음과 삶이 공존한 상태는 도대체 무엇인가? 그렇다면 밤하늘의 달도 보고 있을 때만 존재하는 것인가? 보고 있지 있지 않을 때 달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는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와 같이 철학적 세계관에도 영향을 주었다. 세계는 not-all 이며, Whole은 hole 이다. 세계는 완전한데 단지 인간의 능력으로 인식할 수 없다는 세계관은 칸트의 것이라 할 수 있다. 지젝의 헤겔 해석에 따르면, 헤겔은 인식 불가능성을 존재의 불가능성으로 전환했다. 인간이 세계를 완전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세계 자체가 완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공리적인 방법으로 구성해내어 산술적으로 참인 명제를 증명할 수 있는 임의의 무모순인 이론에 대해, 참이지만 이론 내에서 증명할 수 없는 산술적 명제를 구성할 수 있다. 즉, 산술을 표현할 수 있는 이론은 무모순인 동시에 완전할 수 없다.

 

산술적인 참인 명제를 증명할 수 있는, 공리로부터 구성된 산술체계에 대하여 이 산술체계가 무모순이라면 이 산술체계는 스스로의 무모순성에 대한 진술을 포함할 수 없고 그 역도 성립한다.”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는 내가 이해하는 대로 말하자면, 이발사의 역설에 대한 답과 같은 것이다. (수학적으로는 엉터리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냥 쉽게 이렇게 이해한다.) 스스로 면도를 하지 않는 모든 사람을 면도해 주는 이발사는 스스로 면도를 하는가? 하지 않는가? 이 이발사는 스스로 면도를 하는 사람의 집합에도 하지 않는 사람의 집합에도 속할 수가 없다. 모든 사람은 두 집합 중 하나에 포함된다. 그러나 이 집합을 만든 바로 그 이발사 자신만은 어느 집합에도 속할 수가 없다. 즉 '스스로의 무모순성에 대한 진술을 포함할 수 없다.'  체계를 구성한 이발사 자신이 체계의 완전성을 방해하는 구멍, (W)hole이다. 우리는 세계에 갇혀 있지만, 그 세계의 한중심부는 구멍 나 있다. <설국열차>의 심장은 엔진이지만, 그 엔진의 중심은 구멍 뚫려 있다. 그 구멍을 가리고 있는 것은 한 어린 소년의 뼈만 남은 몸뚱이다. 그 소년을 빼내자, 엔진은 정지하고, 세계는 폭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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