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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에스프레소 - 위대한 철학자 34인의 일상과 사상
빌헬름 바이셰델 지음, 안인희 옮김 / 프라하 / 2011년 8월
평점 :
절판
2012년 1월 12일, 카페소모임 후 쓴 글입니다.
지브롤터님의 발제 글을 읽는데, 아무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이것이 진짜 내가 읽었던 책인가 싶어서, 다시 <철학의 에스프레소>를 빌려왔다. 사실 처음부터 중세 철학자들에겐 별 관심이 없었다. 아우구스티누스와 토마스 아퀴나스를 제외하면 이른바 ‘듣보잡’ 이어서, 왜 이렇게 중세 철학자를 많이 넣었냐고 바이셰델이란 저자에게 투덜대기도 했다. 그런데 “타인의 결점은 단지 우리 자신의 관점의 왜곡을 객관화한 것”이라는 말이 있듯이, 듣보잡은 그 대상의 속성이 아니라, 차라리 내가 듣고 보는 것에 게을렀다는 증거라 할 수 있다.
어쨌거나 중세 철학을 간단히 암흑기로 치부해 버리게 된 더 큰 이유는 나를 만들어 온 환경에 있다. ‘신’이란 존재와는 전혀 역사적 ·정서적 교감이 없는 환경에서 자라나, 도대체 신이 내 삶의 한 귀퉁이에조차 들어 와 본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양 문학이나 철학이, 혹은 신앙인들이 신을 두고 하는 고민에 현실감을 느낄 수가 없었다. 그런 까닭에 고민을 말하자면, 오히려 신을 고민할 수 없는 것이 고민이다. 숱한 문학작품 속의 주인공들이 신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혹은 신으로 되돌아가기 위해 고뇌하고 속죄하고 울부짖는 그 격정들이 내겐 너무도 덤덤하고 평면적이고 기이하기까지 하다. 주인공들의 의식을 꽉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 신들의 존재가 내게는 언제나 수수께끼라고 할 수 있다.
신에 대한 무지가, 사실은 지知의 차원이 아니겠지만, 여하튼 그 무지가 장애물로 느껴질 때면 간혹 성경을 뒤적이기도 했다. 처음에는 끝없이 이어지는 누가 누구를 낳고에 걸려서 덮어버리고, 또 어떤 때는 너무나도 잔인하고 독선적인 신의 모습에 놀라서 덮고, 또 어떤 때는 행하신 기적이 도저히 믿기지 않아서 덮어버리고를 반복하면서 이십여 년 간 마음속에만 있는 성경을 여전히 얼마 읽어내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최근에 얻어 들은 새로운 정보는 더욱 절망적인데, 신은 보여서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믿어야만 비로소 그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신을 보기 위해서는 혹은 알기 위해서는 믿어야 하는데, 그럼 믿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인지...내게는 꽉 닫힌 원환이 아닐 수 없다. 신의 존재가 보이거나 혹은 이해되거나 해야 믿을 수 있는 것이지 어떻게 덮어 놓고 믿을 수가 있는 것인지, 누가 좀 가르쳐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나도 신의 존재가 절실히 필요해 질 때가 있기 때문이다. 이 미칠 것 같은 불안이 나를 덮쳐올 때 모든 것을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신이 있다면 그 얼마나 좋을 것인가....
중세 철학에는 신의 존재 증명이라는 주제가 있다. 다시 <철학의 에스프레소>를 읽으며 나는 일단 그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여섯 명의 철학자 각각이 어떤 사상을 가졌나를 정확히 아는 것 보다 그것이 내게는 더욱 흥미롭기 때문이다. 그들의 증명에 동의할 수 있다면 내게도 드디어 신을 가질 방법이 생길 터이다.
그런데 이 여섯 명의 철학자가 모두 신의 존재를 증명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어떤 이에게는 그것이 전혀 필요하지 않았을 뿐더러 그런 발상 자체가 신에 대한 모독으로 간주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내가 진짜로 존재하는 것이 맞나 하는 회의를 데카르트 이전에는 할 수 없었던 것처럼, 어떤 시점 이전에는 그런 물음 자체를 의식에 떠올릴 수조차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너무나 자명한 진리였을 테니 말이다. 그러고 보면 철학의 역사는 이전 시대가 자명한 진리로 전제한 것들에 대한 의심과 질문의 역사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전 시대에는 당연하다고 전제했던 신을 두고 정말로 신은 존재하는 것인가?, 신의 모습은 어떠한가? 란 질문을 하고, 또 그 다음 시대는 한 번도 의심의 대상이 되지 않았던 사물을 두고 저것이 진짜 존재하는가? 그걸 보고 있는 나는 또 존재하는가? 란 의심을 하고, 최근에는 내가 하는 말의 주인이 진짜 나인가 아니면 거꾸로 언어가 나를 통해 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질문까지 하고 있다. 그러나 이 질문들은 여전히 진행 중인데, 철학이 내놓은 답들이 그렇게 완벽하지는 못했던가 보다. 어떤 시대에는 정답으로 간주되었던 것이 시대가 바뀌면서 오답처리 되기도 하고, 폐기되었던 오답들이 새로운 답의 단서로 다시 살아나기도 하니 말이다. 플라톤과 데카르트, 스피노자는 그렇게 지금도 되풀이 되고 있다. 칸트와 헤겔도. 그래서 이들을 읽는 것은 과거의 윤곽을 그리기 위한 것일 뿐 아니라 현재의 문제를 풀기 위한 실마리를 찾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인간적인 방탕함에 흠뻑 취했다가 뒷날 참회하고 훌륭한 신학 철학자가 되었다는 아우구스티누스는 그의 삶에 딱 접합한 방식인, 인간적 체험으로부터, 신을 증명해냈다고 한다. 그의 증명이란 것은 이렇다.
“인간은 자신을 들여다보고 참이 있음을 안다. 그렇다면 이성이 참 안에 있는지 측정할 수 있는 척도도 있어야 한다. 이성을 판단하는 척도는 이성보다 더 높은 것이어야 하며, 이성보다 높은 것은 신이다. 그러므로 참의 척도인 신이 존재한다고 결론을 내린다.”
이것을 증명이라고 할 수 있는지 참으로 의심스럽지만, 그 시대에는 아마 이런 증명법도 통용되었던가 보다. 더 높은 것, 인간이 알 수 없는 것의 존재는 곧바로 신의 존재에 대한 증거가 된다는 식이다. 그런데 같은 책에 이런 내용이 있다.
“신에 대한 철학적 진술에 이를 수 있는 여러 가능성들에는, 인간과 나머지 현실이 신에 의해 창조되었다는 생각이 그 토대가 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것을 의심해본 적이 없다. 그래서 그는 그 근거를 제시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신은 세계의 창조주이고, 세계는 신의 피조물이라는 생각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신학적 사유뿐만 아니라 철학적 사유의 토대를 이루는 제1전제이다.”
뭔가 모순적이다. 사유의 제1전제를 그는 왜 다시 증명하려 했던 걸까? 앞 뒤 문맥을 이어보면 신의 존재는 근거를 제시할 필요도 없는 것이지만, 그는 또한 이성으로도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던 것 같다. 그 이성이란 것이 천 오백년도 더 지난 후세의, 기독 사상의 영향 아래 있지 않은 일반인의 이성 개념과는 매우 다른 것 같지만 말이다. 어쨌든 아우구스티누스는 내게 신에 이르는 비법을 알려 주지 못했다.
다음, 제목이 아예 ‘신의 증명’ 인 안셀무스가 있다. 그런데 조금 불길하게도 먼저 이런 문장과 만나게 된다.
“신을 인식하는 일은 중립적인 앎이 아니고 신에 대해 무한한 관심을 가진 통찰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인식은 신에 대한 사랑을 전제로 요구한다. 그리고 이 사랑이 바로 믿음이다. 그래서 안셀무스는 이렇게 말한다. ” 내가 믿지 않는다면 나는 절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
믿음과 앎의 문제에서 믿음이 앞선다는 이 원칙은 현대에 급조된 것이 아니라 천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오~래된 명제였던 것이다. 어쨌든 이것과는 별도로 안셀무스는 “진짜로 전제가 없는 출발점이 될 증명 근거를 찾았다”고 하는데, 나에게는 유달리 고마운 일이다. 순수한 신의 개념 안에서 해냈다는 이 증명은 이렇다.
“모든 인간은 바보이거나 믿지 않는 사람조차 신을 ‘그보다 더 큰 것을 생각할 수 없는 어떤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인간의 정신에는 절대적으로 가장 큰 것인 신의 이념이 존재한다. 여기서 크기는 양적인 관계가 아니라 존재가능성들 중에서 가장 큰 풍부함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결론은 다음과 같다. 오성에 신이 존재한다면 현실로도 존재하는 게 분명하다. 오성에만 존재하는 것이 오성과 현실에 존재하는 것보다 분명 더 작기 때문이다. 머릿속에만 있는 신에는 완전성, 곧 존재가 결핍되어 있다. 생각할 수 있는 한 가장 위대한 것으로서의 신은 현실적으로도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아마 중세에는 절대적으로 가장 큰 것을 신 이외의 개념으로는 상상할 수 없었나보다. 나는 ‘더 큰 것을 생각할 수 없이 큰 것’은 당연히 신이라는 생각자체를 상상할 수 없는데 말이다. 그리고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은, 신은 가장 큰 어떤 것이기 때문에 관념으로 존재한다면 당연히 현실로도 존재해야 한다는 발상이다. 관념만으로 있는 것 보다는 관념+현실로 있는 것이 더 큰 것이니까, 무엇보다 더 큰 신은 현실로도 존재해야 한다는 증명법이다. 이 방법도 그다지 그럴듯해 보이지 않는다. 일단 가장 높고 큰 것에는 무조건 신의 이름을 붙인다는 전제에 동의하기가 힘들다.
이성과 신앙이 각자 고유한 영역을 가지고 있다는, 당시로서는 매우 급진적인 사상을 펼쳤던 토마스 아퀴나스에게 다시 해답을 구해보아야겠다. 그는 “신앙은 초자연적인 참과 관계한다. 세속적인 것들을 인식하는 분야에서 신앙은 직접적으로는 아무 관계도 갖지 않는다. 그에 반해 자연적인 이성은 무엇보다도 세계의 현실을 지향한다. 이 분야에서는 이성적으로 일이 진행되어야 한다.” 는 생각을 가졌다. 그러나 그 역시 신학자였다.
“예를 들어서 존재하는 모든 것은 그것이 존재하는 원인을 가진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고 토마스는 말한다. 이 원인은 다시 더 높은 원인에서 기원한다. 그러나 이런 원인의 사슬을 무한히 거슬러 올라갈 수는 없다. 그러니까 최초의 원인이 있음이 분명하고 이 최초의 원인이 바로 신이라는 것이다.”
‘최초의 원인’에 관한 탐구는 지금도 진행 중인 걸로 나는 알고 있다. 우주는 빅뱅과 함께 시작되었다지만, 여전히 그 최초의 운동, 빅뱅이 일어난 원인이 무엇인지는 모르고 있다. 새로운 해답이 이미 제시되었는지 여부를 확신할 수는 없지만 내가 알고 있는 한, 혹은 지식 검색이 찾을 수 있는 한, 여러 가지 의견이 분분하기만 할 뿐 정설로 인정되는 것은 없는 것 같다. 어찌되었든 토마스 아퀴나스가 제기했던 ‘최초의 원인’이라는 질문은 정작 그 자신의 명쾌한 해답과는 상관없이 지금도 과학자들의 골칫거리이자 탐구욕의 대상이다. 그러나 ‘이성의 세례’를 받았다는 토마스 아퀴나스 역시 ‘말 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 하는 대신 신의 이름을 붙여 주었다. 여기서 잠깐 고백하고 넘어갈 것이 있다. ‘말 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는 우리가 제일 나중에 공부할 비트켄쉬타인이라는 철학자가 언명한 유명한 말이다. 그런데 나는 이 말 이외에 비트켄쉬타인에 대해 아는 바가 없고, 이 말 역시 어떤 맥락에서 쓰였는지 읽어 본 적이 없다. 단지 무척 멋지게 들리는 말이라는 것과 어떤 사람들은 얼토당토않게 이 말을 오용한다는 것이다. 진실을 말하면 무슨 불이익을 당할지 몰라 침묵하는, 인정상 충분히 공감은 가지만 결코 자랑스럽지는 않을 그런 상황에다가 이 말을 떡 갖다 붙이고 합리화하는 것을 볼 때 진짜 욕이 치민다. 그리고 놀란다. 나 역시 여기저기서 주워 읽은 것들을 이런 식으로 인용하고 있지는 않나 하는 불안 때문이다. 이 모임에 대한 나의 작은 소망 중 하나는 이런 오류를 저지르지 않을 지식을 갖는 것이다. 누구나 인용할 수 있고 또 흔히 인용하는 유명한 명제들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 혹은 적어도 엉뚱하게 오독하지 않는 것. 문제는 간단할 지도 모른다. 모르면 안 쓰면 그만이다. 그런데도 사람이란 엉뚱한 욕망에 시달리는 허영의 동물인지, 멋진 건 쓰고 싶고 맛있는 건 먹고 싶어진다. 욕망을 탓하지 말고, 그 욕망에 제대로 된 길을 터주는 것이 좋을 것 같단 생각을 한다. 어쨌건 고백의 요지는 말하자면, 비트켄쉬타인에 대한 나의 인용 역시 충분히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더불어 다시 결론을 내리자면, 토마스 아퀴나스의 증명 역시 내게는 신의 존재를 입증하기에 미흡한 것으로 보인다.
이 세 명의 철학자는 신을 훌륭하게 입증해 냈지만, 내게는 여전히 갇힌 원환처럼 보인다. 믿어야 보이고, 보이니 더욱 믿는다. 그것의 전제는 인간의 인식으로 알 수 없는 것, 존재하는 모든 것 보다 더 높은 것 혹은 더 큰 것, 이런 것들에 대한 개념적 필요성이 곧 신의 존재를 증거하고 있다는 것이다. 필요가 곧 존재를 입증한다는 사상이 아무래도 나는 납득하기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중세적 '믿음'은 오늘날까지 폐기되지 않고 있다. 아니 오히려 그 필요성이 더욱 절실해 지고 있기까지 하다.
어느 책에서 읽은 발터 벤야민의 「역사철학테제」제 1번에는 이런 말이 있다. “ ... 역사적 유물론이라는 꼭두각시는 언제나 승리한다. 역사적 유물론이 신학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인다면, 누구와 싸워도 그 게임은 승산이 있다. 오늘날 신학은 알다시피 보기 흉할 정도로 비쩍 마른 터라,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해야 한다.” 옛날에 체스 명수인 꼭두각시가 있었는데, 사실은 탁자 안에 숨은 체스의 달인 곱사등이 난쟁이가 손으로 끈을 조종해서 체스를 둔 것이었다는 얘기에 신학과 역사적 유물론을 빗댄 것이라고 한다. 벤야민은 또한 신학 없이는 혁명이 승리할 수 없다고도 했다. 언뜻 보아 상극일 것 같은 역사적 유물론과 신학이 공생의 관계에 있다는 말이 이상스럽게 들린다. 그런데 여기 벤야민의 이 테제를 다시 뒤집어 천명한 사람이 있다. “신학이라는 꼭두각시는 언제나 승리한다. 신학이 역사적 유물론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인다면, 누구와 싸워도 그 게임은 승산이 있다. 오늘날 역사적 유물론은 알다시피 보기 흉할 정도로 비쩍 마른 터라,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해야 한다.” 이 역전은 무슨 의미일까? 나는 정확한 답을 모른다. 내 나름대로의 개략적인 답에도 자신이 없다. 좀 더 많이 공부하게 되면 좀 더 확실한 답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헤아리고 있을 뿐이다. 여기서 잠깐 진중권의 글 한 대목을 소개하는 걸로 얼마간 답을 대신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진중권의 <아이콘>이란 책은 ‘진중권의 철학 매뉴얼’이라는 소제목을 달고 있는데 현대 철학자들의 사상을 진중권식 사회비평을 통해 소개하고 비판하는 글이다. 어떤 글들은 솔직히 내가 이해하고 있는 철학자의 모습과 조금씩 엇나 있어 당황스럽기는 하지만, 일단 그는 진중권이 아닌가! 여하튼 진중권이 발터 벤야민의 「역사철학테제」제 1번을 인용하고 있는 '유물론자의 신학'이란 글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유물론적 과학이 왜 신학의 조종을 받아야 하는가? 그것은 유토피아의 실현이 과학으로 대체할 수 없는 세속 종교적 신앙,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비합리적 열정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지젝은 말한다. "신학적 차원 - 베냐민에 따르면 이것 없이는 혁명이 승리할 수 없다 - 이 바로 충동 과잉의 차원, ‘지나치게 많음’의 차원이 아닌가?" 사실 광적인 예수쟁이들의 문제는 열정의 과도함에 있는 게 아니다. 그 열정을 시도 때도 없이, 아무 데서나, 아무한테나 드러내는 데에 있다. 이는 좌파 신학자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진중권이 언급하고 있는 지젝이라는 사상가는 그의 여러 저작들에서 ‘믿음의 도약’이라는 말을 되풀이 주장한다. 혁명적 순간에 필요한 것은 바로 이 믿음의 도약이다. 혁명은 어쩌면 끔직한 재앙으로 돌아올지 모른다. 왜냐하면 어떤 혁명도 새로운 세상의 모습을 보증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도래할 세상에 관한 완벽한 지식이 혁명에 대한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혁명에 대한 믿음이 새로운 세상을 가능케 한다고 읽어야 할 것이다. 여전히 문제는 믿음이다. 그런데 앎 없이 어떻게 믿을 수 있단 말인가!
“다시 시작하라, 다시 실패하라, 더 잘 실패하라 Try again, fail again, fail better. "
믿음이 약한 자에게 보내는 지젝의 전언은 베케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