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명이 모였습니다.

중세철학, 두 번째 시간이었습니다.

고대 교부철학까지 합치면 기독교 관련 철학을 3주 공부하였습니다.

이성과 믿음, 철학과 신학의 문제를 계속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는데요.

비기독교인으로서는 어려운 부분이기도하고, 새로운 부분이기도 했습니다.

기독교인들이 보기에는 당치도 않은 이야기,

혹은 반기독교적인 표현을 하지는 않았는지, 뒤늦게 걱정이 됩니다.

의도한 것은 아니니 혹여라도 거슬리셨다면 사과를 드리며 너그러이 양해해주시기를 바랍니다. 무지의 소치라 변명드립니다.

 

마지막에 잠깐 움베르트 에코의 『장미의 이름』을 소개해 드렸습니다.

1980년에 쓰인 이 소설은 1986년에 번역판이 처음 출간되었고, 이후 몇 번의 수정을 거쳐 현재는 4판이 발매중입니다. 두 번째 개역 때는 우리가 즐겨 듣고 있는 강유원 선생님의 의견이 많이 반영되었다고 합니다. 그만큼 이 책에는 중세 철학의 내용이 풍부하게 담겨있습니다. 이 책의 제목인 '장미의 이름'이 보편개념 명칭론(유명론)과 관련이 있다는 말을 듣고 저도 지난주에 다시 이 책을 읽어 보았습니다. 추리소설로서도 여전히 재미있었고, 『철학으로서의 철학사』에서 본 중세철학자들이 빠짐없이 등장하는 것에 은근히 기뻤고(그들이 누구인지를 알 수 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중세의 가을'이라 불리는 14세기 기독교 사회의 모습을 머리에 그릴 수 있어서 유익했습니다.

 

기원후 1000년은 중세 기독교 사회에서 심판의 날로 예언된 시기라고 합니다. 하지만 14세기 초까지 종말은 오지 않았고 당황한 기독교도들은 예언의 시기를 콘스탄티누스 대제 이후 1000년으로 계산하기도 하면서 끊임없이 세계종말과 최후의 심판에 대한 예언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청빈을 앞세우고 종말을 예언하는 이단이 우후죽순 생겨나 사람들을 구름같이 몰고 다니고,  교회는 이들 무리들을 끊임없이 화형대 위에서 불태웠습니다. 유럽 인구의 1/3을 죽인 흑사병은 이단이 그토로 성행했던 이유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신에 대한 믿음이 점점 약해진 반면 종교재판은 더욱 심해져, 종교를 둘러싼 악순환이 거듭되었습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보편개념 명칭론은 다시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최고의 보편개념이라 할 수 있는 신 역시 실재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도 가능한 시대였을까요? 물론 프란체스코 교단이 이끌었던 보편개념 명칭론은 그 상대짝으로서 '의지주의'를 주장했습니다. 신은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할 수 있는 합리적 대상이 아니라, 어떤 합리적인 법칙도 거스를 수 있는 전능한 분이라는 것입니다. 신은 더 이상 로고스가 아니라 초월적, 신비적 존재입니다. 로고스는 이제 온전히 인간의 것이 되었습니다. 인간은 이성을 사용하여 눈앞의 세계를 탐구하는 것에 몰두합니다. 신에 대해서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믿음뿐입니다. 토마스 아퀴나스가 그토록 이루고 싶었던 신앙과 이성의 조화는 깨지고, 신앙과 이성은 각자의 길을 가게됩니다. 신학은 계시의 학문이 되고, 철학은 자연과학의 길을 예비합니다. 오캄 이후 신학에서 사변적 신비주의가 유행한 것도 신이 이성으로부터 놓여났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이성과 신앙의 결별은 신학과 철학 모두에 자유를 주었다고 할 수도 있을까요?

 

14세기는 역사적으로 르네상스가 발흥한 시기입니다. 중세철학의 마지막은 르네상스로 이어집니다. 『철학으로서의 철학사』에서도 중세 다음은 르네상스 시대의 철학을 공부하게 됩니다. 저희는 여기서 오래 잊고 있었던 『인문고전강의』로 되돌아 가겠습니다. 단테의 <신곡>은 토미즘 문학의 진수라고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중세철학의 마무리는 『인문고전강의』의 신곡편으로 하겠습니다.

 

  절대자와의 만남 : 단테 <신곡>

   p 185 ~ p 258

 

 <인문고전강의> 파일 20090507 ~ 20090528

                       (1시간 짜리 8개 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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