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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의 일주일은 잠을 정말 적게 잔 것 같다. 축제는 원래 그 빈자리에서 그것의 즐거움이 더 뼈져리게 각인되는 법이다. 어제까지 그런 공동 상태에 빠져 있었는데 이제는 조금 정신이 돌아오고 있다. 어쨌든 난 승리만을 바랄 뿐이고 그 때까지는 이길 수 있는 말을 끝까지 응원하련다. 실망할 것도 알고, 배신할 것도 알지만 그냥 더이상 패배는 원치 않으므로, 이런 쓸데 없는 말은 신간 추천을 하는 자리에서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어떤 마음으로 내가 신간을 고르는 것인지는 선택의 투명성을 위해 밝혀 놓아야 할 것 같아서 굳이 던져 놓는다.
그럼, 2월의 신간들 중 내가 추천하고 싶은 작품들을 소개해 본다.
2월의 신간을 훑어 보는데 반가운 이름들이 눈에 띈다. 윤대녕과 김원일이다. 하지만 반가울 뿐이고 읽고 싶다는 기분은 들지 않는다. 윤대녕은 솔직히 그동안 많이 실망해서 더 이상 읽고 싶지 않다. 김원일도 '불의 제전'까지 포함해서 많이 읽었고 좋아하는 작가인데 이왕이면 나중에 좀 차분해진 다음에 만나고 싶다.
이번 필리버스터 기간에 나는 틈틈이 조이스 캐롤 오츠의 '그들'을 읽었는데(그동안 너무 시간이 없어서 2월 후반에야 겨우 손에 잡을 수 있었다.), 다시 읽었는데도 너무 좋았다. 원래 난 이 작품을 통해 오츠를 좋아하게 되었고 그 때나 지금이나, 이런 단언이 전혀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그들'은 그녀의 최고작이다.
이 소설의 핵심은 작중 조이스 캐롤 오츠에게 보낸 모린의 편지 두 장에 있다. 거기서 모린이 오츠를 비판했던 것, 정확히 오츠가 그녀가 전혀 되어보지도 못했고, 경험해보지도 못했던 로레타와 모린의 삶을 담아냈던 소설 '그들' 자체에 대한 비판을 오츠는 어떻게 헤쳐나갔던가 하는 것이 '그들'의 '코어(CORE, 괜히 핵심이라는 말을 반복하기 싫어서 이렇게 쓴다)'다. 이것은 그대로 특히나 소외된 자들을 다루는 리얼리즘 문학에 대한 매서운 질문이다. 계급적으로 절대 그들이 될 수 없는 작가들이 그들을 묘사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오츠는 말한다. 설령 내가 그들에 관해 아무리 써도 정작 그들은 내 글을 읽을 수도, 이해할 수도 없다고. 그렇다면 문학의 의미는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그저 모사를 통한 자기 위안, 정당화일 뿐인가? 문학은 언제나 전위에 있는 실천을 질투하거나 무시하려는 자들의 비겁을 은폐시키고 있을 뿐인가? 이런 면에서 오츠의 '그들'은 비슷한 주제를 다뤘던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을 강하게 환기시킨다.
이건 사실 지금도 쓰고 있는 리뷰에 썼던 것인데 여기서 쓰고 있다. 아무튼 조이스 캐롤 오츠의 '그들'은 이런 의문들을 제기하고 있으며 그래서 좀 더 차분한 마음으로 오래도록 곱씹고 써보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 나라가 안팎으로 들끓고 있는 상황에서 그게 안되는 것이다. 나 원, 리뷰 하나에 뭐 그렇게까지 말하나 싶겠지만 이건 '그들'에 대한 내 애정의 문제라서 그렇다. 정말 좋은 작품이기에 그 매력을 잘 보일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은 것이다. 물론 전적으로 욕심이지만 어쨌든 지금은 그게 안 된다. 자꾸 신경이 다른 쪽으로 가서... 그래서 되도록 좋아하는 작가들의 작품은 나중에 만나고 싶은 것이다. 나도 모르게 사설이 길어졌다. 이게 다 '그들'의 리뷰가 내 뜻대로 잘 써지지 않기에 그러는 것 같다. 어쨌든 바로 신간 추천으로 뛰어든다.
MOST WANTED
1. 조 월튼, '타인들 속에서'
조 월튼의 이 작품을 발견하고 나도 모르게 휘파람을 불었다. 역시 아작에는 SF 덕후들이 서식하고 있음에 틀림 없다.자기들이 좋아하는 작품을 많은 이들에게 알리고 싶어서 출판사를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어쨌든 조 월튼의 이 작품 정말 대환영이다. 2012년에 발표되어 SF 상의 양대산맥인 휴고와 네블러를 휩쓸고 그것도 모자라서 영국의 판타지 대상까지 먹어치운 무서운 작품이다. SF와 판타지 계가 이 작품에 이처럼 상을 몰아준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동병상련을 느끼게 하는 소설이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주인공인 열 다섯 살의 모리가 SF와 판타지 소설책 덕후이기 때문이다. '타인들 속에서'는 그런 그녀의 일기다. 그러니 책덕후로서의 면모가 얼마나 많이 나올 것인가? 그런 모습에서 SF와 판타지 독자들은 자신들의 초상을 보게 되었고 그것이 이 책에게 무서운 수상 경력과 인기를 가져다 준 것이다. 단적으로 워싱턴포스트지의 리뷰어 엘리자벳 핸드의 말에서 알 수 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이 작품은 무엇보다도 SF와 판타지 팬들에게 보내는 러브레터다."
달리 무슨 말이 필요하랴! 그동안 남다른 취향으로 외로움과 그 고독이 사무쳐 눈물을 뚝뚝 흘려본 이라면 이 책을 통해 위안과 격려를 받게 되리라. 그리고 확인받게 되리라. 당신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고.
so so ...
2. 주노 디아스 '이렇게 그녀를 잃었다'
'드라운',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에 이어 세번째로 우리나라에 소개되는 주노 디아스의 소설이다. 나는 이전에 나온 두 작품을 모두 읽었는데 그래서 당연히 세번째 나온 이 소설도 읽고 싶다. 유니오르가 계속 등장한다고 하니 더욱 그렇다. 옴니버스 단편집이라는 게 좀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그래도 역시 내내 만나온 등장인물이 계속 나온다고 하니 현재는 어떤지 궁금해 손에 들고 싶어진다. 이렇게 썼지만 솔직히 선정되는 게 더 걱정이다. 전의 두 작품을 읽은 지가 오래 되어 벌써 내용이 가물가물한 탓이다. 지금 헤아려보니 거의 백지 상태나 다름 없어서(아, 참으로 빈약한 나의 메모리여...) 아무래도 이 작품이 선정되면 리뷰를 쓰기 위해서라도 앞의 두 작품도 읽어야 할 것 같은데 과연 그럴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고 싶다.
3. 마이클 코넬리 '파기환송'
미키 할러가 돌아왔다. 그것도 변호사가 아니라 검사로.
'탄환의 심판'에서 우리는 회심한 그를 보게 되었다. 검사가 그 회심의 결과다.
검사로 일하는 미키 할러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 소설을 읽을 이유는 충분하지만
'나인 드래곤'에서 슬쩍 예고되긴 했지만 '탄환의 심판' 때처럼 미키 할러와 해리 보슈의 콜라보가 펼쳐진다는 점도 이 소설을 펼치게 만드는 충분한 유혹 거리이다.
구구절절 말할 필요 없이, 나로서는 나오면 읽고 싶은 게 마이클 코넬리 소설이다.
어차피 구입해서 읽을 거 신간평가단으로 읽으면 꿩먹고 알먹고, 도랑치고 가재잡고, 마당쓸고 돈줍고이지 않을까 해서 사심 가득 추천해 본다.
4. 엘리너 캐턴, '루미너리스'
내가 가장 신뢰하는 맨부커 상을 그것도 최연소의 나이로 탔다니 작품의 내용을 떠나 그 자체만으로도 읽어보고 싶게 만든다.
도대체 이 작품이 어느 정도이기에 그런 영예를 안을 수 있었을까?
궁금증이 자꾸만 귀밑을 간질거린다.
인생의 막장으로 내몰린 자들이 마지막으로 인생 역전을 꿈꾸며 찾아온 금광에서 벌어지는 살인 이야기라니, 흥미를 끌만한 요소는 제법 다 갖춘 것 같다. 제목의 '루미너리스'는 빛을 주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는데 과연 그들을 이끌고, 찾게 된 빛은 무엇이었을지 호기심이 인다.
5. 도리스 레싱 '그랜드마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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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한 편의 영화가 우리를 놀라게 했다. 바로 앤 폰테인이 감독한 '투 마더스'로, 평생 친구로 지내온 두 여자가 상대의 십대 아들과 사랑에 빠진다는 이야기였다. 놀랍게도 이 영화는 미국에서 '퍼펙트 마더'란 제목으로 개봉되었다. 당연히 격렬한 논쟁이 따를 수밖에 없었고 그 여파로 아래 포스터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이제는 '마더'를 빼버린 'ADORE'가 정식 제목이 되었다.
아무튼 이 영화는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것이었고, 영화를 보면 원작 소설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는데, 그것이 바로 도리스 레싱의 '그랜드마더스'였다. '그랜드마더스'는 2003년에 나온, 표제작 '그랜드마더스'를 포함 네 개의 작품을 엮은 책이다. 도리스레싱의 마지막 소설집이기도 한데, 과연 말년의 그녀는 어떤 심정으로 이런 소설을 썼던 것일까? 그렇지 않아도 꼭 한 번 읽어보고픈 소설이었는데 이렇게 나와주어 정말 반갑다. 이 기회에 소설을 읽으면서 영화도 다시 보고 싶다. 이 역시 내 빈약한 메모리 사양으로 영화의 자세한 내용들이 가물가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