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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의 미래, 중년파산 - 열심히 일하고도 버림받는 하류중년 보고서
아마미야 가린 외 지음, 류두진 옮김, 오찬호 / 위즈덤하우스 / 2016년 10월
평점 :
절판
사오정이 현실화된 지 오래다. 퇴직할 정년의 나이는 참 많이도 빨라졌는데, 막상 퇴직하면 할 일이 없다는 것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대부분은 별 다른 기술을 요구하지 않고 창업이 쉽다는 이유로, 또 목만 잘 잡으면 수입이 안정적이라는 이유로 치킨집의 '블랙홀'로 빠져 든다. 하지만 알토란 같은 퇴직금만 날리고 가게를 접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그렇게 되면 파산이라는 말이 남 일처럼 다가오지 않는다. 노년 파산이라는 말은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노년 파산을 넘어 중년 파산의 시대다. 실제로 그렇다. 도표가 증명한다. 2015년, 1월부터 2월까지 서울 거주자를 대상으로 한 연령별 파산 현황이다.
이른바 중년이라 할 만한 나이대의 파산이 무려 65.4%나 된다. 실태가 이러하니 어떻게 중년 파산이라는 말이 마냥 허무맹랑하다고 할 수 있을까? 노년 파산이라는 말은 우리가 겪는 것을 정확히 10년 앞서 경험한다는 일본에서 나온 말이다. 중년 파산도 그렇다. 그것은 지금 일본에서 현격하게 가시화되고 있다. 이번에 나온 아카기 도모히로를 포함한 다섯 명의 일본 자유기고가 쓴 '98%의 미래, 중년 파산'은 바로 그것을 다루고 있다.
일본은 1994년부터 2005년까지 아주 극심한 경제 침체를 겪었다. 흔히들 말하는 '잃어버린 10년'이다. IMF가 터졌을 때의 우리나라와 똑같이 그 때 갓 대학을 졸업한 이들에게 취직이란 하늘의 별 달기보다 더 어려웠다. '취업 빙하기'란 말이 유행어처럼 번졌다. 이제 그 빙하기 때 구직활동을 했던 이들이 40대가 되었다. 중년이 된 것이다. 일본에서 그들은 '잃어버린 세대'(단카이 주니어 세대가 여기에 해당된다.)라 불린다. 앞 세대(단카이 세대)와 다르게 경제 부흥에 따른 달콤한 과실을 전혀 맛보지 못한 세대이기 때문이다. 취업이 어려웠던 그들 대부분은 비정규직이 되었다. 그런데 한 번 비정규직이 되면 결코 정규직이 될 수 없었다. 이 책의 2장은 이런 문제에 관심이 많은 이들의 대담으로 이뤄졌는데, 그 중 다음과 같은 말은 왜 일본에서 '중년 파산'이 현실적 문제가 될 수밖에 없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아마미야 : 흔히 '잃어버린 20년'이라고 말하는데, 세상 사람들 대부분은 20세부터 40세까지 20년 동안 취직을 하거나 업무를 익히거나 결혼, 출산을 합니다. 말하자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20년인데, 단카이 주니어 세대는 그것을 빼앗긴 셈이지요. 제가 조합원으로 속해 있는 '프리터 전반노동조합'은 비정규직 노동자 이외에도 실업자, 저소득자, 위킹푸어 같이 고용 형태를 불문하고 폭넓게 가입할 수 있는 독립계 노동조합입니다. 이곳에서 8년 동안 함께 운동을 해왔던 조합원들은 전부 30대 후반 이상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들 중에 누구 한 사람도 결혼한 이가 없었고 아이도 없었지요.
가야노 : 조합원 중에 정직원이 된 사람은 있습니까?
아마미야 : 제가 아는 사람 중에는 없었어요. 정직원으로 일했던 사람이 8년 사이에 실직해서 지금은 생활보호를 받고 있다든지 하는 반대의 경우라면 수도 없이 많지만요. (p. 77 ~ 78)
그들에게 더이상 삶이 나아질 가망은 없다. 현상유지만 되어도 다행인 것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일본 역시 출산율이 줄어들고 있다. 자꾸만 늘어나는 노년층으로 인한 부담이 사회에 가중될 수밖에 없다. 반목과 증오도 덩달아 커지게 된다. 왜냐하면 사회가 쓸 수 있는 재화엔 한계가 있고, 경제 불황과 노년층의 증가로 갈수록 세수가 줄어들게 되면 사회로부터 그동안 받았던 혜택을 줄어들며, 그 줄어든 원인을 남들에게서 찾기 때문이다. 즉, 저 외국인 노동자 때문에 내가 받을 임금이 적어졌어, 혹은 복지 혜택이 줄어들었어 하는 것과 비슷하게.
이런 식으로 '중년 파산'의 징후는 왜 극우로 치닫고 있는 아베 정권을 일본 국민들이 지지하는가에 대한 것 역시도 알게 해 준다. 우리나라의 일베와 마찬가지로 일본에도 '재특회'라고 해서 극우를 표방하는 넷우익이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진 바다. 처음엔 이런 넷우익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주로 사회적 소외와 불만 계층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왠걸 어디든 있을 법한 주부나 멀쩡한 회사의 정직원들마저 많이 가입해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무엇이 안정적이고 평범한 그들에게 중국과 한국에 대한 무분별한 증오심을 부추기는 것일까? 바로 여기에 경제적인 불안감이 자리한다. 그러니까 '일본 최고다!'하는 내셔널리즘이 아니라, 중국과 한국인들 때문에 내가 쓸 수 있는 경제의 파이가 적어진다는 박탈감이 증오의 근본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경제적 불안이 타인에 대한 적대와 증오를 부추긴다. 사실 우리나라의 일베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최근 가뜩이나 많이 늘어난 혐오 문제도 이번 정부에 들어와 더욱 나빠진 경제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현재도 암울한데 미래의 전망마저 보이지 않으면 타인을 포용할만한 여유는 물에 젖은 솜처럼 무한정 줄어들기 마련이다. 혐오를 지양하고 모두가 평화로운 사회를 만들고 싶다면 선플 운동 같은 걸 할게 아니라, 사람들이 쓸 수 있는 경제적 자본을 늘려주면 된다. 최저 임금을 현실화 하고, 부자 증세를 통한 세수 확충으로 고용과 복지 혜택을 증대하여 현재와 미래를 불안 속에 걱정하면서 맞이하지 않게만 하여도 지금의 혐오와 증오는 많이 줄어들게 될 것이다. 곳간에서 인심난다는 속담도 있지 않은가.
지금 사회가 너무 가진 자 위주로 되어, 98%의 사람들이 당연히 받아야 할 몫을 못 받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한없이 한 쪽으로 기울어진 소득 불평등의 운동장을 얼른 균형을 이루도록 만들어야 한다. 일본의 '중년 파산'은 결코 남의 나라 일도, 시간적으로 멀리 있는 일도 아니다. 우리나라도 지금 비정규직의 비율이 50%가 넘었다. 언제 성큼 닥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