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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가까운 유럽, 핀란드 - 따루와 연희의 사적이고 주관적인 핀란드 길라잡이
따루 살미넨, 이연희 지음 / 비아북 / 2016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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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에 대체 뭐가 있어?” 윗사람이 물었다.

“시벨리우스,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영화, 마리메꼬, 노키아, 무민.” 쓰쿠루는 생각나는 대로 말했다.

 - 무라카미 하루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중에서 (p. 279) -




  핀란드에 가고 싶었다. 물론 나 역시 시벨리우스와 아키 카우리스 마키 감독 그리고 무민을 좋아하지만 결정적으로 그런 바람을 가지게 만든 것은 한 편의 소설이었다. 바로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거기서 삶에 커다란 구멍을 가지고 있는 주인공 쓰쿠루는 그 근본적인 균열을 메우기 위하여 핀란드로 간다. 핀란드. 그 곳은 무엇보다 늘 잘못되어 있다고 여겼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는 곳이었고 느리면 느린대로 부족하면 또 부족한 대로 언제나 나다운 것을 사랑하게 만드는 곳이었다. 미셸 옹프레는 ‘철학자의 여행법’에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우리는 자아를 치유하기 위해서 여행하는 것이 아니라 자아에 더 익숙해지기 위해, 더 강해지기 위해, 스스로를 더 잘 알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고.


 내겐 핀란드가 그런 곳으로 보였다. 하루키가 그려놓은 핀란드는 미셸 옹프레의 말을 현실로 구현시켜 놓은 것과 같았던 것이다. 지금 내게 필요한 것도 바로 그것이었다. 진정한 나를 만나고 그런 나를 보듬어 안아주는 것. 기피와 혐오의 시선이 아니라 직시와 이해의 시선으로 나를 찬찬히 돌이켜볼 수 있는 곳, 핀란드. 그 곳에 가면 일상에 너무 함몰되어 있느라 제대로 마주할 수 없었던 나 자신의 가장 그늘진 통증들까지도 시간을 들여 가까이 임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가고 싶었다. 고독의 시간이 약속된 그 곳으로. 마주한 풍경이 전해주는 위안과 치유 속에서 내 자화상을 새로이 빚어낼 수 있게 되길 바라며...



 핀란드 현지인 따루 살미넨과 이연희가 같이 쓴가장 가까운 유럽, 핀란드’는 그런 마음으로 벗하게 된 책이었다. 


 사실 핀란드 여행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이 책말고는 달리 선택권이 없다. 그건 당장 검색만 해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복지와 교육 그리고 디자인에 관한 핀란드 책은 많아도 여행에 대한 핀란드 책은 얼마 없다. 설령 있더라도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세 나라와 묶어서 이야기하는 게 고작이고 이 책처럼 한 권 전체를 온전히 핀란드 여행에 바치지는 않는다. 물론 분량의 많고 적음이 좋은 책을 결정하는 기준이 되는 것은 아니나 그래도 여행서에 있어서만큼은 좋고 나쁨을 결정하는 기준이 될 수 있다고 본다. 할애된 분량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여행지에 대한 정보가 확실히 더 상세하고 풍성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핀란드 여행만 생각한다면 이 책이 유일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거기다 공동 저자 중 하나인 따루는 핀란드 사람이다. 한 지역의 볼거리와 먹거리에 있어서 현지인만큼 정통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더구나 따루는 한국에서 오래 생활하여 거의 한국 사람이 되다시피 한 사람이라(하나의 예로 따루는 막걸리와 깔깔이 예찬론자라고 한다.) 한국인 정서와 취향에도 능통하다. 다시 말해 따루는 자신이 속속들이 알고 있는 핀란드의 이모저모를 한국인의 정서와 취향으로 검증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점이다. 우리의 취향과 정서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현지인의 추천은 실제 가봤을 경우 때로 너무 낯설어 곤혹스럽기만 하고 아무 도움이 안 되는 경우도 왕왕 있다. 따루의 추천은 바로 그런 위험을 피하도록 만든다. 물론 이런 역할은 또 한 명의 저자인 이연희도 할 수 있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너무 한국인에게만 맞추다 보면 여행지에서만 맛볼 수 있는 아주 중요한 매력인 이국적인 면모를 놓치게 되기 쉽다.


 역시 여행은 낯선 것을 마주해야 한다. 그래야 익숙한 일상의 눈이 아니라 그 일상의 중력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선과 생각으로 나를 관조하고 음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주 우리는 여행을 통해 자유를 얻는다는 말을 듣는데 이런 것이 바로 여행을 통해 얻는 자유의 진짜 정체가 아닐까 싶다. 그렇다고 낯선 것을 마냥 추구할 수만은 없다. 적절한 수준을 지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실망과 혐오만 동반하여 벗어나야할 일상의 틀을 오히려 더 두텁게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디까지나 여행의 자유는 매혹적인 낯선 것으로부터 온다. 매혹을 통한 동경과 경탄이 어느새 나를 무장해제 시키고 낯선 것을 쉽게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데 매혹은 ‘Beauty is in the eye of the beholder’란 말도 있듯이 바라보는 자의 정서와 취향이 투영된 결과다. 정서와 취향을 잘 알면 알수록 더 커다란 매혹을 가져올 수 있다. 그런 면에서 핀란드는 핀란드대로, 우리의 정서와 취향은 또 그것대로 골고루 다 잘 아는 따루 살미넨이 핀란드 여행 추천에 있어 적임자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의 설정은 크게 두 부분으로 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먼저 핀란드의 볼거리와 먹거리 그리고 놀거리 추천을 현지인인 따루 살미넨이 일임하고 다음에 그것을 한국인 저자가 실제 체험해 본다는 설정이다.


 말이 나온 김에, 여기서 이 책의 형식을 간단히 말해 보려 한다.

 먼저, 아래의 사진은 이 책의 목차다.



 차례에서 잘 볼 수 있듯이, 이 책은 핀란드의 가볼만한 곳들을 지역으로 나누어 각각 설명하고 있다. 각 지역의 위치는 표지에 그려진 핀란드 지도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지도는 각 지역에 들어갈 때 가장 첫 머리에 해당 지역만 표기되어 따로 나오기도 한다.


 그래서 각 지역으로 들어가보면 아래에서 보듯, 양면을 다 채워서 눈을 즐겁게 만드는 각 지역의 사진으로 시작하고 있다.


 특별히 뚜르꾸를 가져온 곳은 내가 핀란드에 가면 꼭 찾아가보고 싶은 곳이 바로 쓰쿠루가 에리를 찾아갔던 '하메린나'인데 그 곳이 바로 뚜르꾸로 가는 길에 있기 때문이다.하메린나는 우리들에겐 '핀란디아'라는 교향시로 유명한 얀 시벨리우스(그러고 보니 작년이 시벨리우스 탄생 150주년이었다.)의 고향이기도 한데 그는 그 곳에 있는 바나야베시 호수를 떠올리며 핀란디아를 작곡했다고 한다. 쓰쿠루도 에리와 함께 호수를 찾아가 자신의 오랜 망집을 비로소 던져버리게 되는데 그 호수가 아마도 바나야베시가 아닐까 싶다.

 사실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는데, 뚜르꾸는 헬싱키가 핀란드 수도가 되기 전의 수도로 중세 이후 내내 핀란드의 중심이었다고 한다. 여기엔 핀란드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인 뚜르꾸성이 있는데 1280년에 세워진 그 성은 핀란드가 스웨덴의 지배를 받을 때엔 총독이 거처하던 곳이기도 해서 핀란드의 아프고 굴곡진 역사를 드러내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이 곳에 있는 '야르벤뻬'는 시벨리우스가 가정을 이루고 죽을 때까지 살았던 곳으로 시벨리우스 박물관도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한다. 사진을 보면 강이 흐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아우라'란 이름의 강으로 우리나라 돈으로 6,500원을 내면 이 강을 운행하는 유람선을 탈 수 있다고 한다. 또한 이 뚜르꾸에는 '난딸리'란 곳이 있는데, 바로 거기에 이제 핀란드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중의 하나가 된 무민을 마음껏 볼 수 있는 무민월드가 있다. 하지만 주의할 점이 하나 있다. 무민월드는 1년 내내 늘 개방되지 않으며 여름에만 잠깐 문을 연다고 한다. 인기가 없어서가 아니라 인기는 아주 많은데 핀란드에 인구가 너무 작아서 상시 개방이 어려운 것이라 한다. 이런 사실들은 모두 뒷페이지에서 바로 이어지는 이연희 작가의 글에서 얻게 된 것들이다. 아래 사진에서 보듯이 이렇게 이연희 작가의 글이 나오고 나서 '따루의 핀란드 ON AIR'란 제목으로 따로 코너를 마련하여 따루 살미넨이 직접 핀란드를 여행할 때 꼭 보고, 먹고, 놀고, 쇼핑하면 좋을 것들을 소개하고 있다.

 

 핀란드의 국립공원은 모두 입장료가 무료라고 한다. 사진은 핀란드의 가장 유명한 국립공원이기도 한, 레뽀베시 국립공원의 호수 풍경이다. 레뽀베시는 호수 지역에 있다고 하는데 핀란드엔 무려 약 18만 8,000개의 호수가 있다고 한다.


 그렇지 않아도 핀란드를 '숲과 호수의 국가'라고 하는데 레뽀베시 국립공원은 그러한 핀란드의 면도를 한껏 느끼게 해 줄 것으로 보인다. 사진에서 오른쪽에 있는 자작나무의 길은 사진만으로도 멋져 보여 나도 꼭 걸어보고 싶어진다.

 이렇게 이연희 작가의 글이 끝나면 '따루의 핀란드 ON AIR'가 시작된다.
 차례는 볼거리, 놀거리, 먹거리 그리고 쇼핑할만한 곳 순이다.


 볼거리엔 장소에 대한 설명만이 아니라 개장시간과 입장료, 주소와 전화까지 상세하게 기재되어 있다. 물론 이것은 놀거리, 먹거리 그리고 추천 쇼핑지도 같다.




 그리고 여러가지 거리들에 대한 소개가 끝나면 이렇게 따루의 핀란드 요점 정리가 마지막에 나온다.


 여행에서 가장 신경쓰이는 것이 바로 여행하려는 지역의 물가인데 특히 유럽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물가가 높다는 선입관이 있어서 여행할 때 여간 신경쓰이는 것이 아니다. 거기에 대해 따루는 핀란드 물가가 싼 것은 아니나 모든 것이 비싸기만 한 것은 아니니 싸고 비싼 것을 잘 알고 있으면 알뜰한 여행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핀란드에서 비교적 저렴하게 살 수 있는 것들을 설명한다. 이렇게 '핀란드의 요점 정리'는 여행을 하면서 아무래도 신경쓰게 되는 날씨나 물가 혹은 음식에 대해 이런저런 정보들을 소개하고 있으며 때로는 술문화나 자연 그리고 사우나에 이르기까지 알아두면 더 살뜰하게 핀란드를 여행할 수 있는 지식들을 일러주기도 한다.

 이상으로, 이 책의 구성에 대해 대략적으로 살펴보았는데 여기서 이채로은 것은 역시나 마치 서로 캐치볼을 하는 것처럼 이연희 작가가 먼저 공을 던지면 그것을 따루가 받아 다시 던지는 것 같은 형식의 글 배치다. 나는 이것이 특히 마음에 들었는데, 왜냐하면 핀란드가 가지고 있는 이국적인 매력은 매력대로 한껏 살리면서 동시에 그것이 가져올 수 있는 위험은 한국인 저자의 실제 체험을 통해서 잘 피하고 있다는 인상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덕분에 핀란드는 내 마음속에 정말로 '매혹될만한 것은 많고, 실망과 두려움은 적다!'는 문장으로 깊이 각인되어 버렸다. 그러니 가고 싶다는 열망이 더욱 커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이 책을 통해 핀란드의 새로운 매력을 많이 깨닫게 된 탓이기도 했다.
 나는 그동안 핀란드를 교육과 복지로 한껏 앞서나간 나라로만 생각했지 핀란드의 문화 그리고 역사엔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않았었다. 그런데 핀란드는 중세 이후 스웨덴과 러시아의 오랜 지배를 받은, 그렇게 우리나라만큼이나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핀란드에 존재하는 오래된 건물마다 수 차례 타버렸다가 다시 재건된 과거가 있었고 그것은 그대로 핀란드의 역사적으로 누적된 상흔을 오롯이 드러내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핀란드는 국민들이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가 되었으니 비슷한 역사를 가졌으나 전혀 반대의 나라에 살고 있는 나로서는 아무래도 놀랍지 않을 수 없고 그 비결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비결의 대략적인 모습을 나는 이연희 작가의 글에서 어설프게나마 볼 수 있었는데 그것은 아무래도 겸허가 아닐까 싶다.

 핀란드하면 얼른 떠오르는 것은 역시 울창한 숲과 많은 호수로 대변되는 거대한 자연이다. 경작지가 전 국토의 6% 밖에 안된다고 하던가? 그만큼 생존하기에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핀란드 사람들은 겸허히 순응하고 자연과 조화롭게 지냈다. 내게 이익이 안된다고 해서 함부로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겸허하게 자연이 자신들에게 허락한 것들만 받아들였다. 숲에서 버섯이나 베리를 채집하는 장면이 내겐 참 인상적이었는데 핀란드에서 누구라도 숲에 들어가서 버섯이나 베리를 자유롭게 채집할 수 있으며 설령 시장에 내다 판다고 해도 일절 세금을 매기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그렇게 허용해도 핀란드 사람들은 가족들이 먹을만큼만 채집한다고 한다. 상업적으로 판매하는 사람들은 외국인 밖에 없다고(p. 178) 분명 이 채집은 핀란드인들의 오랜 생존 방식 중 하나였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핀란드인들의 모습에서 보듯, 그들은 부자가 되기 위해 내가 필요한 것 이상을 절대 채집하지 않았다. 오직 생존에 필요한 양만 자연에게서 가져왔다. 이것이 바로 자연에 대한 핀란드인들의 태도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게 아닐까 싶다. 내게 필요한 것 이상의 것을 가져오지 않겠다는 마음은 그것들이 내 노력의 대가가 아니라 자연이 특별히 허락한 은총이라는 깨달음이 선행되지 않고선 불가능하다. 그리고 은총이라는 생각은 자연 앞에서 겸허한 태도를 가질 때 자리잡는다.

 바로 이 겸허가 오늘의 핀란드를 만든 궁극적 원인이 아닐까 생각된다. 자연에 대한 이런 태도가 결국 사람들에 대한 태도로 자리잡아 오늘날의 핀란드 교육이 어디까지나 뒤처지는 아이들을 더 중점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볼 때(p. 194) 나보다 못한 이들에 대한 배려를 통해 더 성숙한 조화를 만들어내는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자연 속 채집의 태도가 사람에 대한 태도가 되어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축제'인 바뿌가 되고,

 그동안 핀란드 사람들은 조용하고 말수가 없는 줄로만 알았는데 바뿌를 직접 경험해보니 그러한 생각은 오해였다. 역시 선입견이란 무섭다. 내가 보기에 핀란드 사람들은 그 어떤 국가의 사람들보다 정이 많다. 단지 표현에 서투를뿐이다. 따라서 예의를 갖추어 서서히 말을 걸고 진심을 다해 나의 감정을 표현하다 보면 그들도 다정하고 수다스러운 면모를 보여줄 지 모른다.(p. 20)

 생활 속 물건에 대한 태도까지 확장되어 비록 나는 사용하지 않는 물건이라 하더라도 남은 사용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도시 전체가 사용하지 않는 물건을 들고 나와 서로 교환하거나 팔고 사는 행사인 '시보우스빠이바'를 낳았을 것이다. 우리나라와는 참 많이 달랐던 대학도서관의 모습 역시도 그 근본엔 상대를 먼저 생각하는 겸허가 있었을 것이다.

 도서관 안에는 대학생으로 보이는 사람들 외에도 어린이와 노인 등 외부인이 많았다. 학생과 교직원 외에는 입장이 불가능한 대부분의 한국 대학 도서관을 생각하면 참 반갑고 신기한 풍경이었다. 한술 더 떠 다들 여기가 마치 제집 안방인 듯 편안한 자세였다. 푹신한 의자에 눕다시피 파묻혀 책을 읽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네를 타고 노는 아이들, 헤드셋을 쓰고 음악을 감상하는 할아버지도 보였다. 도서관이 누구에게나 개방된 열린 공간인 덕에 핀란드 사람들이 전세계적으로 책을 가장 많이 읽는 국민이 된 걸까? 경직된 분위기에서 똑같은 자세로 책만 들여다보는 한국의 대학 도서관과 대비되는 모습이 흥미로웠다.(p 83 ~ 84)

 무엇보다 산타 마을이 있는 라플란드에서의 코티지 체험은 더욱 핀란드 사람들에게 겸허가 근본적인 태도로 자리잡고 있음을 느끼게 했다.


 핀란드 북쪽에 있는 라플란드. 겨울의 라플란드는 말 그대로 눈으로 뒤덮힌 곳이다. 따루와 이연희 작가는 여기서 코티지 체험을 한다. 하지만 거기서는 문명의 이기를 일체 누리지 않는다. 아무리 추워도 장작으로 불을 떼고 촛불로 전깃불을 대신한다. 아무리 바깥 상황이 혹독해도 오로지 자연적인 것에만 의존해서 살아가는 모습은 내게 핀란드 사람들에게 겸허의 태도가 얼마나 뿌리 깊이 내리고 있는지 똑똑히 보게 했다. 그들은 설사 내가 아무리 힘들다 하더라도 내 편의를 주장하지 않았다. 그럴수록 더 타자인 자연에 순응하고 그것을 포용하려 애썼다. 물론 그것은 사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바뿌도, 시보우스빠이바도, 도서관의 풍경도, 라플란드의 코티지 체험도 모두 그런 겸허에서 태동한 포용이 낳은 산물이었다. 그렇기에 핀란드는 국민들이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가 된 것이다. 또한 자신을 인정받지 못해 내내 죽음만을 생각하고 살았던 쓰쿠루가 핀란드에서 비로소 자신을 긍정하고 타인을 품을 수 있게 된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었다.

 한 마디로 핀란드는 내게 왜 먼저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한지 일깨우고 있었다. 겸허는 무엇보다 긍정에서 발현되는 태도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모습과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을 먼저 겸허하게 수용하는 것. 그것이 앞으로 더 멀리 한발짝을 내딛기 위해 지금 내가 놓아야 할 징검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생각만으로는 어렵다. 구체적인 현실의 충전이 없으면 생각은 쉽사리 에너지가 소진되어 실천으로 나오지 못하고 만다. 현실에서 그 겸허를 그리고 포용을 실제적으로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그러자면 역시 핀란드로 가야 한다. 이 책으로 확인한 바, 핀란드가 바로 그런 것들로 더없이 가득한 땅이라는 것은 틀림없으니. 이렇게 가려는 열망이 한층 더 깊어진 나는 이제 쓰쿠루가 했던 고백을 똑같이 할 수밖에 없다.

 사람의 마음은 밤의 새다. 조용히 뭔가를 기다리다가 때가 오면 일직선으로 그쪽을 향해 날아간다.

 진정, 지금 내 마음은 핀란드를 일직선으로 향해 있다. 얼른 날아가고 싶다.

 마지막으로, 핀란드로 더욱 가고 싶게 만드는 곳들을 사족처럼 붙여 본다. 


 아래에 보이는 CD는 시벨리우스 말고 내가 아는 유일한 핀란드 뮤지션인 'TABULA RASA'다. 록밴드이나 다른 록밴드들과 차별되는 그들만이 독특한 매력이 있는데 그건 청아한 느낌의 기타 선율을 바탕으로 꽤나 명상적인 분위기의 연주를 들려준다는 점이다. 이 앨범의 'RAKASTAA'를 듣고 있으면 때로 하얀 자작 나무 숲길을 홀로 조용히 산책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정말 핀란드에 가게 되면 꼭 가지고 가서 숲에서 들어보고 싶다. '땀뻬레'는 바로 이 밴드가 결성된 곳이다. 땀뻬레가 핀란드 최고의 공업 도시라는 것은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에드먼드 윌슨의 '핀란드 역으로'라는 유명한 책이 있다. 레닌을 비롯한 근대 이후 혁명가들을 다룬 책으로 제목의 핀란드 역은 레닌이 러시아 혁명을 결심하며 내렸던 역이기도 하다. 모스크바의 역이름은 출발지로 정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핀란드 역은 핀란드에서 출발한 열차 노선의 종착지였다. 그 열차가 출발하는 곳이 바로 땀뻬레다. 실제로 여기서 레닌은 오래도록 러시아 혁명을 준비했다고 한다. 그것을 기념하여 레닌 박물관도 땀뻬레에 있다고 한다. 모스크바에 있는 레닌 중앙 박물관이 문을 닫은 현재, 레닌의 자료를 관람할 수 있는 곳은 여기가 유일하다고 한다. 겸사겸사 둘러보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여기, 뽀리에 있다는 끼르유린루오또 공원.


 재즈를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익히 알고 있을 지도 모를 곳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해마다 여름이면 뽀리 재즈 페시티벌이 열리는 곳이기 때문이다. 뽀리 재즈 페스티벌은 유럽에서 가장 크고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재즈 페스티벌로 유명한 재즈 뮤지션은 다 모이는만큼 재즈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꼭 한 번 가고픈 페스티벌이다. 물론 입장료는 없다.


 사진은 2013년 뽀리 재즈 페스티벌의 모습. 이 엄청난 인파를 보라. 언젠가는 나도 이들 틈에 낄 수 있게 되기를 정말 염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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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비틀스 솔로 - 전4권
맷 스노 지음, 정미우.정지현 옮김 / 시그마북스 / 2014년 5월
평점 :
절판


  세기말.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의 록 잡지 '롤링스톤스지'는 그동안의 록 역사를 정리하면서 20세기 가장 영향력이 많은 아티스트들을 선정한 적이 있다. 거기서 비틀즈는 당당히 1위에 올랐다. 뿐만 아니다. 20세기 최고의 락 앨범 100편도 선정했는데 거기서도 비틀즈의 앨범 '페퍼스 론리 하츠 클럽 밴드'가 1위에 올랐다. 이것만이 아니다. 그들의 '리볼버'는 3위에, '러버소울'은 5위에 그리고 '비틀즈'는 10위에 올랐다. 20세기 최고의 10개 락 앨범에 무려 네 개나 포함된 것이다. 이는 평론가들이 선정한 것인데 재밌는 것은 독자들이 선정한 것도 앨범이 다를뿐 동일하게 10위 안에 네 개가 올랐다. 평론가들과 독자들이 선정한 것을 합한다면 비틀즈의 스튜디오 앨범 대부분이 10위 안에 들어 있는 셈이다. 그들은 역사적으로 가장 영향력 있는 밴드에서도 1위에 올랐고 존 레논은 20세기 최고의 작곡가라는 명예를 거머쥐었다. 이 모든 리스트가 보여주듯이 록의 시대라고 할 수 있는 20세기는 그대로 비틀즈의 시대였다. 비틀즈를 빼놓고는 록이든 팝이든 대중 음악을 논한다는 게 불가능했다.


-사진은 비틀즈 솔로 중 폴 매카트니 책의 가장 첫 부분, 비틀즈의 영화 '매지컬 미스터리 투어' 개봉 당시에 BBC와 인터뷰하는 폴 매카트니 모습이다. -


 하지만 비틀즈는 해체 전에도 전설이었지만 해체 후에도 전설이었다. 역사상 최고의 슈퍼 밴드를 만들어낸 그들의 능력은 밴드 해체 후 솔로가 되었어도 전혀 퇴색하지 않았다. 'THE PLASTIC ONO BAND' 앨범으로 솔로 활동의 포문을 연 존 레논은 비틀즈보다 더욱 사회적 발언을 첨언하여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아티스트의 경지로 나아갔으며 늘 레논의 라이벌인 폴 매카트니는 비록 솔로 활동은 레논 보다 빨랐으나 평가에 있어서는 레논에게 뒤쳐지고 말았는데 결국 밴드 WING을 결성하고서는 재빠르게 비틀즈 전성기 때 자신의 실력을 회복해 '역시 매카트니!'라는 인정을 얻는데 성공한다. 밴드 해체후 더욱 성장한 아티스트는 단연 조지 해리슨이다. 물론 비틀즈 시절에도 '애비 로드'의 'SOMETHING'처럼 자신이 작곡한 노래를 앨범에 실어 비틀즈에서 실력 있는 이가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만은 아니다라는 걸 증명했지만 솔로가 된 뒤에 그의 활약은 더욱 눈부셨다. 공교롭게도 매카트니의 첫 앨범과 같은 해에 나와 더욱 비교가 되었던 조지 해리슨의 'MY SWEET LORD' 앨범은 매카트니보다 더욱 평단과 대중 양쪽으로 성공을 거두어 다들 조지 해리슨에게 있어서만큼은 비틀즈 해체가 약이 되었다고 입을 모았다.(그래서일까? 조지 해리슨은 비틀즈가 공식적으로 해체 되었을 때, "감사합니다, 하느님. 이제 다 끝났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마지막 남은 비틀즈의 드러머 링고 스타는 밴드 활동 시절에도 스스로 어쩐지 왕따 같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사실은 좀 위축된 감이 없지 않았는데('비틀즈' 시절 그가 작곡해서 앨범에 실린 노래는 딱 하나다.) 그 역시 솔로가 되고 나서 마음껏 자신의 실력을 발휘한 축에 속한다. 많은 유명 아티스트들이 참여한 '링고'는 비틀즈 시절 가려졌던 그의 실력을 한껏 드러낸 걸작 앨범이었으며 그로 인해 많은 이들이 가리워져 있었던 그의 실력을 보다 빨리 알아보지 못했음을 한탄하게 만들었다.


 - 그들의 솔로 활동은 세간의 우려와 달리 이렇게 기쁨에 겨운 활동이 되었다. 폴 매카트니도 그동안 슬럼프가 찾아왔으나 결국은 훌륭히 극복했다. 사진은 9.11 테러 희생자들을 돕기 위해 열린 콘서트에서 연주하고 있는 그의 모습이다. -

 - 이 책을 읽다보면 삶이 그렇듯이 음악도 홀로 가는 고독한 여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고난이 오고 절망이 와도 누가 대신 해결해주지 않는다. 결국엔 홀로 맞서 한걸음 한 걸음 이어가야 한다. 음악이 이어지기 위해 한음 한음 계속 연주해야 하듯이 -

- '혼자여도 빛나다' 존 레논에 있어서만큼은 더 없이 진실이다. 그는 비틀즈 밴드 때보다 혼자였을 때 더욱 찬란히 빛났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솔로 활동은 비틀즈로서의 존 레논이 아니라 존 레논이라는 아티스트 자체를 사람들에게 깊이 각인시킨 여정이었다. 나 역시 개인적으로는 비틀즈 앨범 보다 존 레논의 앨범에 손이 더 가는 경우가 많다. 특히 '플라스틱 오노 밴드'는 지금도 위안 삼아 자주 듣는 앨범이다.- 

-비틀즈 밴드의 도화선이 되었던 오노 요코와 거리를 걷고 있는 존 레논. 사랑과 예술적 동지로서의 연대가 가장 강고하던 시절의 사진이다. 존 레논은 아마 이 때가 절정이었을 것이다. -

- '혼자여도 빛나가'가 존 레논의 진실이라면 '모두 발산하다'는 조지 해리슨의 진실이라 할 것이다. 그는 정말로 솔로가 되자 그의 모든 것을 발산했다. 그의 'MY SWEET LORD'가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냈을 때 모두들 놀라워했다. 모두는 비틀즈 때보다 한층 더 업그레이드된 조지 해리슨을 보고 있었다. 그의 진짜 재능이 해체와 더불어 부화하여 날아오르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명곡 'MY SWEET LORD'는 결국 조지 해리슨에게 죽음을 가져다주고 말았다. 한 광인이 그 노래를 듣고 조지 해리슨이 악마 숭배자라고 생각하여 총으로 쏘았던 것이다.- 

-사진은 1980년 무렵 LA에서 뜨거운 기자 회견장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하는 조지 해리슨의 모습이다. 이 때가 조지 해리슨의 가장 어려운 시기 중 하나였다. 그는 당시 소속되어있던 워너 브라더스에 완성한 앨범을 넘겼지만 퇴짜 맞고 말았다. 변해버린 음악 판도로 인해 조지 해리슨 개인의 음악적 신념은 상업적 성공이라는 벽 앞에서 계속 수정당해야 했다. 사진은 그 힘겨운 현실을 치열하게 헤쳐나가고 있는 조지 해리슨을 잘 보여주는 것 같다.-

-조지 해리슨과 에릭 클랩튼의 1991년 모습니다. 이제는 제법 유명해진 이야기인데 한 때 둘은 연적이었다. 조지 해리슨이 SOMETHING'이란 노래를 바쳐 연인이 되었던 패티 보이드를 에릭 클랩튼도 좋아했다. 하지만 친구의 여자를 뺏을 수는 없어서 마음을 감추고 멀리서 지켜보기만 했다. 당시 조지 해리슨은 인도에 빠져 보이드를 혼자 두기 십상이었고 문란한 생활로 상처를 입히는가 하면 종종 폭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그런 패티 보이드를 에릭 클랩튼은 곁에서 내내 위로해 주었다. 그러다 결국 마음을 접지 못하고 'LYLA'란 노래로 사랑을 고백한다. 무릎을 꿇고 사랑을 갈구하는 그 노래의 가사는 에릭 클랩튼을 생각하고 들으면 참으로 절절하다. 그 노래에 깃든 클랩튼의 애절함이 결국 그녀의 마음을 움직인 것인지 패티 보이드는 조지 해리슨 곁은 떠나 에릭 클랩튼에게로 온다. 그런 그녀에게 에릭 클랩튼은 'WONDERFUL TONIGHT'을 선사한다. 당연히 조지 해리슨과 에릭 클랩튼은 사이가 나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흐르는 세월 앞에서는 감정도 무뎌지는 법. 결국 둘은 사진이 보여주듯 화해한다.- 

- 사진 속에서 얼굴을 찡그리고 있는 오른쪽에서 두 번째 남자가 바로 링고 스타이다. 그는 자주 비틀즈 속에서 자신이 소외당하는 걸 느꼈다고 고백했다. 아마도 가장 약한 존재감에서 오는 소외감이었으리라 생각된다. 사실 비틀즈 시절 링고 스타는 자신의 기량을 드러낼 기회를 가지지 못했다. 그의 진짜 기량은 솔로가 되어서야 비로소 활짝 드러났다.-

- 하지만 그의 관심은 굳이 음악에 국한되지 않고 다방면에 걸쳐 있었고 때문에 한동안 음악 보다는 연기 활동에 매진했던 적도 있었다. 이제 링고 스타는 아이들에게도 유명한 존재가 되었다. '토마스와 기차들'을 보면 언제나 처음에 섬의 날씨 이야기와 기차들을 설명하는 마치 친절한 아저씨 같은 부드러운 저음의 목소리를 만날 수 있다. 바로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링고 스타다.-


 그들은 그렇게 솔로가 되고 나서도 '역시 비틀즈!'라는 평가를 이어나갔다. 아니 어떤 이들은 '진작 뛰쳐 나왔어야 했어!'라는 말까지 들을 정도로 성공했다. 비틀즈의 솔로 활동은 비틀즈 시절만큼이나 흥미롭다. '각자도생'의 길로 나아갔던 그들이 모두 자신의 길에서 정점에 설 때까지의 이야기가 실로 파란만장하기 때문이다. 누구는 음악으로 사회 의식을 일깨우고 누구는 거기에 반발하여 순수 음악의 열정을 불사르고 또 누구는 밴드 시절 억눌렸던 자신의 창조성을 마음껏 펼치고 또 누구는 아예 음악에서 떠나 연기의 열정에 몸을 맡기기도 하였다. 그렇게 그들 모두는 과거의 전설이 아니라 현재의 전설로 살았다. 결국 밴드 중 두 명은 암살 당하여 이제 불멸의 전설마저 되어버렸지만.


 맷 스노의 '더 비틀즈 솔로'는 그러한 현재에서 불멸로 나아가버린 비틀즈 솔로 활동의 전설을 가득 담은 책이다.


 보다시피 책의 판형은 큰 편이다. 비교를 위해서 비틀즈 앨범 LP와 존 레논의 '플라스틱 오노 밴드' CD를 함께 놓고 찍어보았다. 크기가 대충 짐작되실 지 모르겠다. 책은 이렇게 네 권이 하나의 케이스에 담겨 있는 구성이다. 각각의 네 권은 비틀즈 맴버 하나씩을 담고 있다. 보는 방향으로 맨 왼쪽에서부터 존 레논, 폴 매카트니, 조지 해리슨, 링고 스타다.


  

케이스에 넣으면 이런 모습이다. 사진은 아직 비닐을 뜯지 않았을 때의 것이다. 역시나 책 크기의 비교를 위해서 가장 큰 판형으로 나왔다고 볼 수 있는, 그리고 비틀즈의 팬이라면 빠뜨리지 말아야할 책들인, 우리나라 저자가 써서 더 소중한 한경식의 '비틀즈 컬렉션'(왼쪽)과 비틀즈 연대기의 결정판으로 평가받는 마크 루이슨의 '컴플릿 비틀즈 크로니클'(오른쪽)을 나란히 놓고 찍어 보았다. 나름 비틀즈의 노래와 역사를 이해하는데 빠져서는 안 될 삼총사로 보시면 될 것 같다.


 이건 세워서 찍어 본 것.


 맷 스노는 각종 음악 잡지에 글을 기고했던 저널리스트다. 어쩌면 롤링스톤스지에서 그의 글을 봤을 수도 있고 혹은 '모조'에서 봤을 수도 있다. 특히 '모조'에서라면 자주 보았을 것이다. 그는 그 잡지의 편집자이기도 했으니까. 그의 글은 신랄하면서도 재밌다. 음악의 리뷰이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은 게 맷 스노의 장점이다. 그런 그가 비틀즈 솔로 활동을 쓴 것이다. 더구나 그는 네 살 때부터 열렬한 비틀즈의 팬이었다. 비틀즈에 대한 애정에 있어서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은 그가 마치 그 애정을 책으로 표현하기라도 하듯 솔로 활동에 대해 쓴 것이다. 그러니 맷 스노를 안다면 읽지 않을 수 없고 그가 쓴 비틀즈 솔로 이야기라면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은 대상과 저자가 제대로 만나 이루어진 환상의 조합과도 같다.


 맷 스노는 그의 스타일 그대로 비틀즈 맴버들의 솔로로서의 음악적 여정과 그들의 사생활을 유기적으로 잘 엮어낸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의 예술적인 삶과 개인적인 삶 모두를 아우를 수 있다. 그러면서 삶과 예술이 어떻게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았는지 보게 된다. 음악은 음악만이 아니고 그 음악을 탄생시킨 삶까지 보았을 때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책 '비틀즈 솔로'는 솔로로서의 그들의 음악을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는 통로가 된다. 그들이 어떤 마음으로 노래를 만들었는지를 통해 우리는 익히 알았던 노래도 다시금 새로이 음미하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비틀즈를 아는 이들에게 좋은 선물이지 않을까 싶다. 아니 모르는 이들에게도 비틀즈의 맴버 개개인을 잘 알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다. 책은 꼭 비틀즈 팬이 아니더라도 흥미진진하다. 당시 음악 사정에 지식이 있다면 더욱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사이사이에 사진들이 많이 실려 있어 더욱 눈을 즐겁게 하는 책이다.


 어쨌든 그동안 비틀즈 밴드에 대해선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는 책이 많이 나왔지만 솔로 활동에 대해서는 이번이 처음 아닌가 싶다. 그만큼 잘 알려지지 않았던 비틀즈 맴버들의 솔로 활동에 대해 제대로 잘 알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다. 단언컨대, 비틀즈 솔로 활동에 있어서라면 '결정판'과도 같은 책이다. 읽어도 후회는 별로 들지 않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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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나는 수채색연필 - 내가 그린 일러스트로 그림엽서와 카드 만들기 행복한 손놀이
아키쿠사 아이, 고이즈미 사요 지음, 허앵두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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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요즘은 손으로 손수 만든 카드 참 만나보기가 힘들죠?

어릴때만 해도 겨울방학만 되면 크리스마스 카드다 신년 카드다 해서 이것저것 손수 만들던 기억이 참 새록새록한데...

수채색연필의 느낌 참 좋아합니다.

요즘은 디지털로 뭐든 다 매끄럽게 잘 나와서 오돌토돌한 손 맛이 느껴지는 그림들이 오히려 더 그립더군요. 아카쿠사 아이와 고이즈미 사요가 함께 지은 '처음 만나는 수채색연필'이란 책을 만났을 때 제 두 눈이 '하트 뿅뿅'이 되었던 것도 그런 아날로그한 카드에 대한 추억과 손맛 가득 느껴지는 수채색연필의 느낌 때문이었죠.


이렇게 만든 사람의 정이 듬뿍 느껴지는 아기자기한 카드들 만들어 보내고 싶지 않으신가요?

'처음 만나는 수채색연필'은 그림에 그다지 능숙하지 못한 이라 하더라도 얼마든지 이런 카드를 직접 만들 수 있도록 해 주는 책입니다.

첫 장을 열면 저렇게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대표적인 두 종류의 수채색연필과 함께 표준이라 할 수 있는 24가지의 색깔에 대한 소개가 나와 있습니다. 왼쪽 위 모퉁이에 있는 빨간 색연필 통은 제가 가지고 있는 수채 색연필입니다. 대표 수채색연필중 하나로 파버카스텔사의 24색 세트가 소개되어 있어 제가 가지고 있는 12색 세트를 한번 슬쩍 넣어봤어요^ ^



수채색연필은 무엇보다 색의 배합이 가능하다는 점이 장점이죠. 그래서 24색이라 하더라도 배합에 따라 얼마든지 무궁무진한 색깔들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이 병아리들처럼 말이죠^ ^


굵기도 다양하게 해서 선 터치의 느낌을 다변화시킬 수 있고 수채물감과 무리없이 어울리기 때문에 배경은 붓을 통해 칠하는 게 가능하다는 것도 장점이죠. 또한 종이의 질감들이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에 종이를 통한 효과도 노릴 수 있기도 하구요. 뭐, 그야말로 수채색연필은 손수 만든 카드에는 더없이 적합한 도구인 셈이죠.



책은 사계절 어느 때라도 계절에 맞는 카드를 만들 수 있도록 봄,여름,가을 그리고 겨울로 나눠 수채색연필로 일러스트 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벗꽃 풍경을 수채 색연필로 나타내는 과정입니다. 봄하면 벗꽃이겠죠^ ^

보시다시피 단계별로 나누어 그림 그리는 과정을 자세히 나타내고 있기에 그림에 익숙하지 못한 이들고 쉽게 따라할 수 있게끔 되어 있습니다.


이번엔 여름.
여름하면 뭐니뭐니해도 역시 바다의 풍경이겠죠. 바다색을 나타내는 게 멋지네요. 이런 카드를 여름에 받게 되면 왠지 시원한 파도소리가 들려올 것 같아요.

이번엔 가을. 도토리와 귀여운 다람쥐만큼 정감있는 가을을 전해주는 그림도 없을 것 같아요.

오른쪽 윗 부분의 수채색연필로 다람쥐를 그리는 방법 독특하네요. 이렇게 또 한 수 배웁니다.


겨울엔 역시 크리스마스 카드와 신년 카드겠죠. 이건 십이지신을 모델로 해서 만든 카드입니다. 매년 그 해에 해당되는 동물로 손수 그려진 카드를 보내면 그냥 사서 보내는 것보다 더욱 도타운 정이 쌓일 것 같네요.



이런 식으로 각 계절마다 어울리는 카드를 그려 보낼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는데다가 그 과정 역시 친절하게 보여주기 때문에 더욱 쉽게 그릴 수 있도록 해 줍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 수채색연필의 매력이 더욱 살아나는 쪽은 카드 보다는 역시 여행할 때 스케치라고 생각됩니다. 저 역시 여행할 때마다 자주 그렇게 스케치를 하곤 했는데 아니나다를까 이 책 역시도 그에 대해 설명해주고 있더군요.


여행할 때 멋진 풍경을 보면 사진으로 남기는 것보다 이렇게 수채색연필로 남기는 것은 어떨까요?

훗날 그 풍경을 보았을 때의 기억이 사진보다 더욱 잘 살아날 것 같은데요. 저는 그렇더라구요. 그래서 작은 스케치북 같은 걸 자주 들고다니곤 합니다. 이 책으로 풍경 그리는 법을 익혀두셔서 여행할 때 직접 본 풍경을 그려보시면 더욱 알찬 여행이 되실거에요.


이렇게 말이죠. 확실히 사진으로 보는 것과는 느낌이 많이 다르죠.

이런 그림은 풍경과의 내밀한 교감에서 우러나온 것과 같으니 사진보다 더욱 진하게 그 때 본 풍경의 느낌을 진하게 되살려 줄 것은 두 말할 것도 없고 말이죠.


수채 색연필에 익숙해지시면 보다 난이도가 있는 꽃그림에도 이렇게 도전이 가능합니다. 꽃그림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수채색연필로 직접 자기가 좋아하는 꽃그림을 그려볼 수 있으실겁니다.



'처음 만나는 수채색연필'은 이렇게 부드러우면서 아기자기한 정감이 넘치며 그리는 이의 마음 또한 그 결마다 한껏 드러날 수 있는 그림을 직접 그려볼 수 있도록 쉽고도 친절하게 설명해줍니다. 아마도 별 무리없이 흠뻑 그림의 세계에 빠져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되네요. 그러니 그동안 그림을 그려보고 싶었던 분들은 이 책을 통해 한 번 도전해보는 것도 어떨까 싶어요.


이토록 다양한 수채색연필의 세계에!

여기에 있는 그림들을 모두 이 책을 통해 다 그려볼 수 있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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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생각하고 느끼는 우리 명승기행 - 김학범 교수와 함께 떠나는 국내 최초 자연유산 순례기 보고 생각하고 느끼는 우리 명승기행 1
김학범 지음 / 김영사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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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이 책은 안타까움의 소산이다.

현재 세계의 여러 나라들은 문화의 중요성이 날로 대두되면서 자국의 문화유산을 보호하는 차원을 넘어 적극 발굴하고 아울러 그 우수성과 아름다움을 적극 홍보하는 경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러한 추세는 무엇보다 해마다 늘어나는 명승지정의 개수로 증명되는데 가까운 중국을 예로 들자면 국가 지정 명승은 208건, 지방 지정 명승은 2,560건으로 도합 2,768 건이라는 엄청난 규모를 자랑한다. 이는 일본도 예외는 아니라서 일본은 모두 360건의 국가 지정 명승이 있다. 이 뿐 아니라 북한마저도 320건의 명승이 있는데 그렇다면 과연 우리나라엔 지정된 명승이 얼마나 될까? 아마 북한보다는 많겠지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문화에 있어서만큼은 우리나라가 훨씬 관심도 많고 앞서 있다고 생각 할 테니까. 하지만 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우리나라가 명승을 국가문화재로 지정한 것은 1970년대 초부터인데 2003년까지 지정된 명승은 단 7건에 지나지 않았다. 2003년에 이르러서야 겨우 여기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명승 지정과 보호에 관심을 기울였는데 그 결과 2013년 5월 현재 모두 104 곳의 명승을 지정했다. 꽤 노력을 하긴 했지만 그래도 아직 북한의 절반도 안되는 숫자다. 이래가지고서야 그동안 문화강국이라 외쳐온 사실만 부끄러울 뿐이다. 현재 문화재 위원회 천연기념물분과 위원장으로 재직 중인 김학범의 '보고 생각하고 느끼는 우리 명승 기행'은 바로 이런 안타까움에서 태어난 책이다. 이렇게 부족한 명승의 숫자는 결코 우리의 국토가 적어서 명승지 또한 적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가 아니라 우리가 너무 우리 것이 가진 아름다음에 관해 관심이 없고 그로인해 찾고 발굴하며 기억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김학범의 이 책은 안타까움을 낳은 바로 그러한 현실을 조금이나마 고쳐보고자 태어났다. 우리나라의 명승이 가진 아름다움을 이 책을 통해 독자들에게 충실히 완상케 하여 그 가치와 보호의 중요성을 일깨우고자 함이다.




한데, 책을 읽다보면 과연 이런 것도 명승이 되나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정원' 이나 문경새재나 대관령 옛길이나 벼랑길 같은 '옛길' 뿐만 아니라 '법성진 숲쟁이' 같은 전통 포구 앞의 마을 숲이나 내앞마을의 '백운정'과 '개호송숲'과 같은 화려한 문화재에 비한다면 어쩌면 평범한 일상의 풍경이라고 할 수도 있는 곳까지 모두 명승으로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에 따르자면 지금까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른바 유명한 고적, 아름다운 산수로 대변되는 명승의 개념이 오히려 너무 협소하다고 한다. 명승의 개념은 역사적으로 이름이 높다거나 대대로 아름답다고 칭송되어 온 것에 그치지 않는다. 한 개인의 정원이나 사람들이 오고가는 길, 또는 아무나 언제든 와서 편히 쉴 수 있는 저수지나 숲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기리고 보존할만한 우리 고유의 아름다움을 지니거나 우리 문화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면 얼마든지 명승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가까운 일본만 봐도 알 수가 있다. 일본은 일찍이 정원을 명승에 포함했는데 사실 306건의 일본 명승 중 200건이 바로 정원이니까 말이다.


(사진은 이 책의 첫 장을 여는 길재가 세운 금오산 채미정의 모습. 벽체 없이 16개의 기둥만 있는 정자다. 특히 이 채미정에서 바라보는 금오산의 풍광이 수려하다고 한다.)





책은 그렇게 달라져야 할 명승의 개념을 독자들에게 주지시키듯 익히 우리에게 알려진 명승이 아닌 우리가 새로이 관심을 갖고 찾고 발굴해야 할 명승들에 더욱 주안점을 두어 그 쪽으로 관심을 유도하도록 잘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명승들을 소개하는데 더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책의 첫 장을 '고정원', 그러니까 옛 선조들의 정원들의 소개가 차지하는 것도 그런 까닭일 것이다. 그렇게 이 책은 우리에게는 그리 잘 알려지지 않은 길재가 금오산에 지었다는 채미정과 그림으로 남아있는 양산보의 '소쇄원'을 비롯한 14개의 '고정원'과 경남 원학동에 있는 수승대와 '춘향전'이 공간적 배경으로 유명한 전남 남원의 광한루원을 포함한 6개의 '누원과 대'와 퇴계 이 황과 그를 모셨던 기생 두향의 애절한 사연이 담긴 단양의 구담봉과 과거를 치르기 위해서는 꼭 넘어야 했다는 문경새재와 함께 한 14개의 '팔경구곡과 옛길'을, 그리고 가야산의 해인사, 두륜산 대흥사, 속세를 떠나있는 곳이란 이름의 속리산 법주사를 비롯한 8개의 유명한 역사와 문화 명소 뿐 아니라 아름다운 지중해풍의 풍광과 더불어 농경 자체가 하나의 문화 경관이 되어버린 남해 '기천 마을의 다랑이논'이나 같은 남해지만 이번에는 오래된 어업문화를 보여주는 '지족해협의 죽방림'을 포함한 7개의 전통산업 문화 경관까지 모두 49개의 우리가 알고 찾고 보고 느껴야 할 명승들을 소개해주고 있다.





(사진은 함양에 있는 화림동 계곡에 있는 거연정의 모습. 주위 경관과 어울림을 최고로 꼽는 한국의 미학이 참으로 잘 살아난 곳이라 할 수 있다. 이 화림동 계곡은 특별히 팔정팔담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여덟개의 정자와 여덟 개의 담이 있는 계곡이라는 뜻이다.



(사진은 팔정팔담으로 유명한 화림동 계곡의 모습.)



전문가답게 설명은 우아한 물결처럼 막힘없이 유려하게 흐르고 또한 쉬워서 비록 많은 수의 명승을 소개하고 있으나 한달음에 읽어버리게 만든다. 거기다 그 풍광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사진까지 곁들어 있어 이해에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82페이지에 있는 거연정의 경치 사진이나 90페이지에 있는 하원의 하지 사진 또는 130페이지의 죽서루 사진이나 162페이지 도담상봉 일출 사진 그리고 240페이지의 공주 고마나루 솔숲 사진은 빼어나게 멋져서 한동안 눈길을 붙드는 것을 넘어서 꼭 거기 가서 그 경치를 바라보았으면 하는 소망마저 가지게 만든다. 결론지어 말하자면 이 책 자체가 하나의 명승이라 일컬어도 손색이 없다. 아래에서는 개인적으로 특히나 인상깊었던 곳을 몇 가지 말해본다.



(16세기 후반 퇴계로부터 '동방의 도학을 전수할 사람'이라는 찬사를 받았던 남언기가 전라도 동복현 사평촌에 은둔하면서 지은 정자가 있는데 그 이름이 '고반원'이라 한다. '고반'이란 <시경>에 나오는 말로 '고'는 이룬다를 뜻하고 '반'은 머뭇거려 멀리 떠나지 않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뜻 그댈 은거할 집을 이름이다. 전라남도 화순에 있는 임대정은 바로 이 '고반원'에서 유래된 것으로 정자가 있는 '상원'과 정자 앞의 사각형 연못 둘을 중심으로 한 '하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두 연못의 이름을 각각 '상지'와 '하지'라 하는데 사진은 그 하원 중 하지의 모습이다.)





(사진은 단양팔경중 하나인 도담삼봉의 일출을 찍은 것이다. 도담에 떠 있는 세 봉우리가 수려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데 퇴계 이황은 이 아름다움에 반해 '도담상봉'이란 시까지 지었다고 한다. 조선의 개국공신 정도전 또한 이 도담삼봉을 사랑한 이들 중 하나다. 그가 호를 '삼봉'이라 한 것도 바로 이 '도담삼봉'에서 연유한 것이다. 사진에 보이듯이 중간 봉우리에 정자가 하나 있는데 '삼도정'이라 한다. 이 정자에 가기 위해서는 배를 이용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찾는 사람은 드물다고 한다.)



(사진은 단양에 있는 '석문'으로 우리나라에서 신선 할머니로 유명한 마고할미의 전설이 서려있는 곳이기도 하다. 단양 팔경 중 하나인 석문은 커다란 문과 같이 생긴 바위로 석회암 카르스트 지형이 만들어낸 자연유산인데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마치 신선이 살고 있는 동천과 같다고 기록되어 있다. 보시다시피 겨울에 가면 더욱 빼어난 절경을 감상할 수 있다.)



(조선후기엔 남종화가 유행했는데 사진에 보이는 운림산방은 바로 그 남종화의 산실이기도 하였다. 운림산방은 남종화의 대가 '소치 허련'이 지은 것으로 그의 다른 이름은 '허유'라 하기도 한다. 그것은 중국 당나라 남종화의 효시라 알려진 왕유의 이름을 따 온 것이다. 허련은 추사 김정희가 죽자 그 다음해에 고향인 진도로 내려와 초가를 짓고 거처했는데 그 이름을 '운림각'이라 짓고 그 앞에는 커다란 연못과 정원을 만들어 그 풍경을 그리면서 말년을 보냈다. 추사 김정희가 '압록강 동쪽에서는 소치를 따를 자가 없다'고 말했던 허련의 말년이 그대로 풍경이 되어 화한듯한 느낌의 명승이다.)



(사진의 하늘재는 백두대간을 넘는 최초의 고갯길이다. 신라가 망했을 때 경순왕의 아들 마의태자는 그의 누이 덕주공주와 함께 바로 이 하늘재를 넘었다. 하늘재는 여러가지 얼굴을 가지고 있다. 삼국시대 이 하늘재는 접경지역에 있어 적을 공격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지날 수 밖에 없는 고개였지만 한 편으론 문명 교류의 통로이기도 했다. 고구려에서 신라로 불교가 전해질 때도 바로 이 하늘재를 통해 이루어졌다. 그렇게 하늘재는 여러가지 얼굴로 무려 2,000년의 역사가 간직된 곳이다.)


(백제를 상징하는 동물은 곰이다. 백제 사람은 곰의 후예라 할 수 있다. 금강이 공주시 유역을 굽이돌아 흘러가는 강변에 위치하고 있는 고마나루는 풀이하자면 '곰나루'라 할 수 있다. 사진은 이 고마나루에 조성된 솔숲을 찍은 것이다. 아침이면 뿌옇게 몰려오는 안개에 어슴푸레하게 잠긴 솔숲이 그야말로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언젠가 꼭 한 번 찾아가서 그 아침 안개에 젖어들어가는 솔숲을 바라보고 싶다. 그 마음으로 특별히 담은 사진이다.)





이제 결론이다.

안타까움이 너무 깊으면 오히려 그것이 알찬 씨앗이 되어 우렁우렁 커다란 결실의 나무로 자라난다고 하더니. 과연 그 말에 딱 걸 맞는 책이다. 지나친 상찬이라고 여길 수도 있겠으나 백문이 불여일견. 일단 읽어보면 이 책의 진가는 알게 되리라 믿는다.




바야흐로 곧 휴가철이다. 이미 해외 쪽은 예약이 모두 꽉 차 있다는 말도 들린다. 그렇다면 너도 나도 다 가는, 남들과 똑같은 해외여행으로 금쪽같은 휴가를 보내기 보다는 그렇지 않아서 오히려 좀 더 의미 있는 시간이 되어 줄, 이 책에 소개된 잘 알려지지 않은 명승들을 한 번 찾아다녀 보는 것은 어떨까? 나의 일부분을 분명 형성하고 있는 역사의 경관 속에서 그 역사를 더듬어 가면서 거기에서 파생된 '나'라는 존재를 한 번 반추해 보는 것도 분명 가치 있는 시간이 되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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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13-07-01 0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운림산방, 이런 곳에서 살면 아주 조용해서 다른 생각은 하지 않겠습니다 공기도 아주 맑겠군요 뒤로는 산, 앞에는 물이 있다는 말 ‘배산임수’ 가 절로 떠오르는 곳이네요 하늘재도 걸으면 참 좋겠네요

우리나라에도 경치 좋은 곳이 많죠 그런 곳을 찾아내고 잘 지켜나가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책으로 봐도 멋지겠지만, 실제로 가 보는 것도 좋겠군요 저는 어디 가는 거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그래도 자연을 만난다면 그것은 좋겠습니다^^


희선

ICE-9 2013-07-21 01:20   좋아요 0 | URL
저도 이 책을 통해 이렇게나 좋은 곳이 많다는 걸 비로소 알았어요. 그것도 모르고 우리나라는 정말 갈 곳이 없어하고 불평했던 제가 다 부끄러워지더군요. 언젠가 꼭 거기서 자연을 더없이 만끽하게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
 
기차여행 컨설팅북 - 똑똑한 기차여행을 위한 일일 코스의 모든 것
변지우 외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6월
평점 :
품절


어릴적 살았던 고향집은 기차역 부근에 있었다.
일제 시대 때 지어졌던 그 역은 가끔 완행열차나 서고 볼 것이라고는 언제 누가 심었는지는 모를 노송하나가 전부인 아주 작디 작은 역이었지만 그래도 어린 동심을 유혹하기엔 충분했다. 어린 시절은 'SIZE IS MATTER!'라는 영화 고질라의 메인 카피처럼 커다란 것을 동경하기 마련이다. 그렇게 '칙칙폭폭'하는 왠지 거친 호흡과도 같은 소리를 내는 거대한 디젤 기관차가 도착하는 것을 보기 위해 얼마나 자주 놀러 갔었는지 모른다. 여름날이면 넓다란 그늘을 드리우는 노송에 기대어 역에 내리는 사람 구경도 하고 철로에 귀를 대어 기차가 오는지 안오는지 듣기도 했다. 별 것 아닌 일들이었지만 그래도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도 모를 정도로 흠뻑 빠졌었다. 그 때를 생각하면 향처럼 조용히 미소가 피어오르는 유년시절의 좋은 추억이다. 새삼 그 추억을 말하는 건 내 인생에서 기차가 차지하는 부분이 얼마나 컸던가를 말하고자 함이다. 어린 시절의 동경이었고 사춘기에 접어들어서는 새벽마다 멀리서 들려오는 기적소리로 인해 자유롭게 되기를 부채질했었던 기차. 그래서 나 역시 비슷한 추억이 있는 스티븐 킹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로브 라이너 감독의 영화 '스탠 바이 미'를 좋아하고 윤후명의 소설 '협궤열차' 또한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얼마나 철길을 따라 걸었으며 또 얼마나 많은 협궤열차를 비롯한 이런저런 완행열차를 타고 이름모를 역에 내려 정처없는 순례를 했는지 모른다. 그러다 사회로 나오면서 느림의 미학인 기차 여행은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미루게 되고 차츰 철도 환경도 달라져 이제는 기차에서 느긋하게 풍경을 완상하는 것이나 독특한 분위기가 있는 이름모를 낯선 역을 만나는 즐거움도 자주 가지지 못하게 되었다. 그렇게 기차는 내 삶에서 물러났다. 아니 어쩌면 내가 먼저 물러났는지도 모른다.

그러다 다시금 기차에 대한 매력을 일깨워 준 책을 두 권 만나게 되었다. 하나는 아주 결정적인 것으로 일본 만화가 하야세 준으; '에키벤'이다. 음식을 소재로 한 만화는 일본 만화에 있어 이미 하나의 주류적 장르이지만 그래도 '에키벤' 같은 만화가 가능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에키벤'은 제목 그대로 기차역에서 파는 도시락을 말한다. 오랜 철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일본은 이 에키벤의 역사 또한 깊어서 각 지역마다 혹은 각 노선마다 유명한 에키벤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만화 '에키벤'은 바로 그걸 소재로 한 만화다. 그렇게 만화는 각 노선이나 각 지역에서 유명한 에키벤들을 스토리와 곁들어서 조목조목 보여주고 있는데 읽다보면 거기 나오는 에키벤들이 하나같이 먹음직스러워서 어느새 기차를 타면서 그 에키벤을 먹고 있는 모습을 동경하게 된다. 이 만화를 읽은 때가 이미 일본 원전 사고가 일어나기 전이라 그 때는 정말로 에키벤을 테마로 한 일본 여행 계획을 짜기도 했었다.

하지만 일본말고 우리나라 기차 여행의 묘미도 새로이 되살려줄 책이 하나 있었으면 싶었다. 그러다 드디어 만나게 된 게 바로 이제 이야기할 '기차여행 컨설팅북'이란 책이다. 사실 RHK에서 나오고 있는 '컨설팅북' 시리즈를 좋아한다. 처음 만났던 것은 '주말여행 컨설팅북'이었는데 실제로 그걸 가지고 여행 계획을 짜보거나 가지고 다녀 보니 도움이 많이 되었다. 그런 경험까지 있어 '컨설팅북'을 특히나 신뢰하게 되었는데 그 시리즈 세번째로 이렇게 '기차여행 커설팅북'이 나오다니 개인적으로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먼저 책 표지를 넘기는 날개에 이 책에 참여한 저자들이 나오는데 그 소개글을 가만히 읽어보면 '기차여행'이란 테마가 먼저 기획되고 거기에 맞춰 쓰여진 책이란 걸 알 수 있다. '주말여행 컨설팅북'은 그러한 뉘앙스를 못 느꼈기 때문에 어쩌면 컨설팅북이 인기를 끌게 되면서 특별히 기획된 책이 아닐까도 싶다. '컨설팅북'의 매력이란 한마디로 뭐랄까 일종의 '눈높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철저하게 사용자 편에서 자신에게 마춤한 여행을 스스로 계획하고 누릴 수 있도록 최대한 배려하고 있다는게 이 시리즈의 장점이다. '기차여행 컨설팅북' 역시도 마찬가지다. 기차 여행 준비서부터 다녀볼만한 각 철도 노선의 역을 중심으로 한 여행지 소개에 이르기까지 초보자의 눈높이에서 말해주고 있다.



사진은 책의 부록인 '한국철도노선도'이다. 아직도 우리나라엔 이렇게 많은 철도 노선이 존재한다. 보통역의 위치가 나와 있어 오히려 그런 역으로의 여행을 즐기는 나에게는 퍽 유용해 보인다.

책의 구성은 '철도노선도'처럼 역을 중심으로 되어 있다. 그러니까 각 중요 철도 노선마다 꼭 들러볼만한 역을 중심으로 여행지를 세부적으로 소개하는 형국이다.



이를테면 이국적인 근대 건축물들이 많아서 나도 언젠가 가보려 하는 강경역으로 가고자 한다면 강경역이 위치한 호남선 항목을 찾는다.(얼른 노선이 생각나지 않는다면 처음의 목차에서 지역별로 찾아도 된다.) 그러면 강경역 항목이 나오고 저렇게 지역과 코스에 대한 대략적인 설명과 함께 뒤로 책장을 넘기면 코스로 꼭 가보면 좋을만한 곳들 그러니까 '구 남일당 한약방'이라든지 아니면 '강경역사문화원'나 '중앙초등학교 강당'이나 '강상고등학교 사택'(모두 근대건축의 이국적인 미를 보여주는 곳들이다.) 혹은 '죽림서원' 같은 곳들의 보다 상세한 설명이 나오게 된다.



책은 대체적으로 이러한 구성을 취하고 있다. 코스는 자가용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대중교통에 맞춰 설정되어 있으므로 기차 여행을 하는 이에겐 더욱 최적화된 셈이다.(때문에 각 여행지마다 이용할 수 있는 대중교통편에 대한 설명이 자세히 나와 있다.)

이 책을 읽다보니 '강경역'과 더불어 언젠가 한 번은 꼭 가야지 했지만 잊고 있었던 곳들을 다시금 만나 더욱 눈을 번뜩이며 이번엔 기필코 가야지 마음먹게 되는 곳을 더러 만나게 되었는데 그 중에서도 하동역과 곡성역이 내겐 그랬다.



하동역은 무엇보다 감명깊게 읽은 '토지'가 태어난 곳이라 꼭 가고픈 곳 중의 하나였다. 하지만 마음만 있었지 정작 실천은 못하고 오래도록 잊고 있었는데 이 책에서 다시금 만나게 되어 반가웠다. 사진은 하동역 항목의 맨 앞부분. 강경역과 같이 지역의 소개와 교통편 그리고 에디터 추천 코스가 간략하게 나와있다. 책을 보니 하동엔 그것 말고도 유명한 게 많았다. 화개장터가 있다는 것은 두 말할 것도 없지만 4월이 되면 구례에서 하동까지 이어지는 25KM의 도로가 모두 벚꽃으로 뒤덮인다는 섬진강 벚꽃길 백리가 있는데 그 중에서도 압권인 화개장터에서 쌍계사 입구까지 이어지는 6KM의 '십리 벚꽃길'의 존재를 알게된 것은 이 책을 통한 또 하나의 수확이었다. 사진의 벚꽃들이 너무나 유혹적이라 봄에 꼭 한 번 가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하동역 항목의 맨 앞부분을 넘기면 이렇게 대표 추천 코스 각 여행지의 세부적인 설명이 전개된다.




토지를 좋아한다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평사리 최참판댁'. 토지의 주요 무대가 되는 평사리 마을과 최참판댁을 소설 그대로 재현해 놓은 곳이다. 드라마 '토지'도 여기서 촬영되었다고 한다. 주말에 가면 서희와 길상이가 혼례를 치르는 장면도 볼 수 있다고...



아무래도 기차 여행이 테마라면 곡성역을 빼놓을 수 없을 듯 하다. 왜냐하면 곡성역은 '은하철도 999'를 좋아한다면 지나칠 수 없는 증기기관차에 대한 로망을 실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곳이 바로 '섬진강 기차 마을'이다. 어른 청소년은 6천원, 어린이는 5,500원의 왕복비용으로(이 책에 실린 모든 정보는 2013년 4월 것이므로 이대로 믿고 가도 상관없을듯 하다.) 증기기관차 여행을 즐길 수 있는데 '은하철도 999'의 기분을 한 껏 낼 수 있을 듯 하다.



읽다보니 기차 여행의 좋은 점 하나를 알게 되었다. 그것은 자가용을 가지는 것과는 다르게 마음만 먹으면 쉽게 떠날 수 있다는 것이다. 하루 정도의 일정이라면 다른 건 하나도 필요없이 그저 기차에 몸만 실으면 되니 이보다 더 수월하게 여행할 수 있는 길이 또 있을까? 사실 이미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전까지는 가지고 있는 별다른 정보가 없었기에 기차역에 도착하고 난 뒤부터는 어떻게 해야할 지 좀 막막해서 기차여행을 선뜻 떠나지 못했던 까닭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좀 더 대담하게 시도해볼 수 있을 듯 하다. 대중교통 정보가 자세히 나와있는 이 컨설팅북도 있으니까 말이다. 아무튼 이제 곧 휴가철이다. 혼자서 기차여행을 하기엔 더없이 좋은 때가 오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화가 나는 소식이긴 하지만 철도 민영화가 본격적으로 추진된다고 하니 기차 요금이 턱없이 오르기 전에 미리 다녀오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어쩌면 보다 저렴하게 기차 여행을 즐길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인지도 모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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