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문의 비극 일본 추리소설 시리즈 5
고사카이 후보쿠 외 지음, 엄인경 옮김 / 이상미디어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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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르 소설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일본은 미스터리 소설 강국으로 인식된다미스터리 소설 쪽으로 유명한 작가도 많고 해마다 많은 미스터리 소설들이 출간될 뿐만 아니라 독자층도 넓어 판매량도 상당하다일본은 매년 ‘ 미스터리가 대단해 같은 미스터리 소설 대상 작품도 발표하는데우리나라 독자들 또한 어떤 작품이  상을 탔는지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진다미스터리 소설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아무래도 일본이 어떻게 해서 그만한 미스터리 소설의 강국이 되었는지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문학의 경우순전한 무에서 창조되는 경우란 없다오늘날 우리가 어떤 문학이 부흥하는  보고 있다면 그건 그것이 지닌 역사 속에서 성장한 것의 결과일  분명하다일본 미스터리 소설 또한 그럴 것이다그러고 보면 일본 미스터리 소설은 역사가 아주 깊다일본에서 소위 근대 소설이라는 것이 태어났을 때부터 이미 미스터리 추리 소설이 있었으니까 말이다그들이 서양 문학 세례를 받았을 가장 적극적으로 소화했던 것이 서양의 미스터리 소설이기도 했다 시기 활동한 에도가와 란포는 서양의 미스터리 소설을 거름 삼아 일본 특유의 추리 소설 세계를 창조했다그건 긴다이치 코스케 탐정 시리즈로 유명한 요코미조 세이시도 마찬가지였다이러한  세대들의 적극적 수용과 독창성을 향한 노력이 시간 속에서 천천히 숙성되어 오늘날 일본의 미스터리 소설 세계를 구현한 것이 분명하다그러니 아무래도 과거의 일본 미스터리 소설은 과연 어땠는지 관심을 가지지 않을  없다.



 

 그러나 오래도록  관심을 충족시킬  있는 기회를 만나기란 어려웠다주로 현대의 일본 미스터리 소설들만 소개될 초창기의 작품들은 거의 소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러던 차에 작년정말 반가운 시리즈를 하나 만났다바로 고려대학교 일본추리연구회가 의욕적(2018년에 시작되어 벌써 6권까지 나왔으니 ‘의욕적이라  만하다.)으로 발간하고 있는 일본 추리소설 시리즈여기서는 무엇보다 일본 미스터리 소설 초창기의거의 일본 추리 소설의 원형이라 해도 좋을작품들을 중점적으로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덕분에 나는 그동안 나의 고전 일본 미스터리 소설에 대한 호기심을 유일하게 채워주었던 ‘일본의 탐정 소설(‘메이지 시대부터 ‘쇼와 시대까지 일본 미스터리 소설의 역사를 다루는 책이다.)이란 책에서 오직 이름으로만 접했던 작가와 작품들을 실제로 만날  있게 되었다이처럼 해묵은 호기심을 비로소   있게 되었으니 일본 추리소설 시리즈 아무래도 좋아하지 않을  없다.

 

 쓰노다 기쿠오의 중편 작품을 표제작으로 하는 어느 가문의 비극 시리즈  다섯 번째 책이다여기엔. ‘법의학자’ 출신답게 주로 자신의 전공인 의학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작품을 썼으며 ‘에도가와 란포 스승으로도 유명한 고사카이 후보쿠 단편  (‘’연애 곡선’, ‘투쟁’) ‘에도가와 란포’, ‘오시타 우다루 함께 ‘일본 탐정 소설의 3 거성으로 불리며 흔히 ‘사회파 추리소설 구분하기 부르는 말로 순수하게 미스터리 해결에만 집중하는 추리소설을 일컫는 본격이란 단어를 처음 썼던  고가 사부로 단편  (‘호박 파이프’, ‘꾀꼬리의 탄식’) 그리고  고가 사부로를 추리 소설 작가로 입문하게 했으며  역시 3 거성  하나인 오시타 우다루 ‘이란 단편 하나와 앞서 말한요코미조 세이시와 더불어 장편 추리소설의 시대를 함께 열었던 쓰노다 기쿠오 ‘어느 가문의 비극 실려 있다.  모두  이름은 익히 들었지만 정작 작품은  어디서도 만나볼  없었던 이들이라 특히  반가웠던 책이다

 

 

 

 가장 먼저 나오는 것은 고카사이 후보쿠의 ‘연애 곡선이다

 제목만으로 내용이 얼른 짐작되지 않는  단편은 정말 제목 그대로 연애 곡선을 소재로 하고 있다이야기는  결혼을 앞둔  남자가 받은  통의 편지로 시작한다 편지는  의학자가  것으로 알고보니 그는 남자가 결혼하려는 여인을 오래도록 사랑한 사람으로 남자 때문에 커다란 실연을 겪어 그것을 기회로 마침내 연애 곡선을 발견하게 되었다면서  과정을 소상하게 밝힌 것이었다 ‘연애 곡선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곡선이 과연 어떻게 미스터리로 형상화되는지 궁금하다면    들여다볼 것을 권한다법의학 출신 작가답게  과정이  설득력있게 재현되어 있으며 추리소설다운 마무리도 일품이다뒤이은 ‘투쟁 얼마 전에 작고한 천재 의학 교수인 모리가 마지막으로 맡았던 기타자와란 남자의 자살 사건을  제자가 친구에게 소개하는 편지로  소설이다지병으로 39세에 요절한 작가가 거의 마지막에 발표한 작품으로 어쩌면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것은 아닐까 생각되기도 하는 단편이다마지막에 밝혀지는 놀라운 진실은 사건의 배후에서 이뤄진  천재 교수의 불꽃 튀는 대결을 보여주는데(제목이 ‘투쟁   때문이다.), 이러한 천재의 대결에서   작가가 에도가와 란포의 스승으로 불리워지는지 알것 같기도 하다뛰어난 지성을 지닌 천재들의 대결은 에도가와 란포의 작품에서 자주   있는 것이었으니까 말이다.

 

 

 이어서 만나본 고가 사부로  단편은   작가가 일본 추리소설 3 거성  하나인지 짐작하게 했다그가 처음 만든 말이기도  본격 맛을 충분히 지향하면서도 2 세계 대전(꾀꼬리의 탄식) 관동 대지진(호박 파이프같은 거대한 자연 재해가 가져다  사회적 충격의 여파를  드러내고 있었기 때문이다덕분에 요코미조 세이시가  보여준미스터리와 기존 사회 질서의 몰락을 교묘하게  뒤섞는 것이 어디서 연원한 것인지    있었다호박 파이프 등장한 자경단의 설정이나 범인의 진실된 정체는 경찰로 대표되는 기존의 사회 질서가 이제 더이상 지속될  없다는 것을 선명하게 느끼게 했으며 그건 2 대전 이후 가속화된 화족의 몰락을 중점적으로 그리고 있는 꾀꼬리의 탄식에서도 여전했다흥미로운 설정에 기반하여 호기심을 유발하는 미스터리를 계속 발생시키며 끝까지 결말을 궁금하게 만들어가는 능력도 좋았지만 그것에 그치지 않고 사회적 맥락 속에다 집어넣어 급격하게 변해버린 사회적 상황 앞에서 자신의 무력감과 혼돈을 곱씹는 그당시 일본인들의 자화상을 세밀하게 구현하고 있었던 것이다때로 범죄를 다루는 미스터리 소설은 범죄라는 상황 때문에 순문학보다 인간이나 시대상을 더욱 극명하게 드러낼  있는데 그런  느끼게   작품들이었다때로 ‘데우스 엑스 마키나’ 식의 해결로 인해 조금 흠이 보이 하지만 감히 명성에 걸맞는 작품이었다고 평가하고 싶다.


[시리즈가 처음 시작될 때 나왔던 책들과 나란히 함께 찍어보았다.]

 

 

  미스터리 보다 유일하게 심리 묘사에  많이 치중하여 이색적인 색채로 다가오는 오시타 우다루의 ‘ ‘대지진이 일어나기 1 전인 1922이라는 작중 언급이 없다면 그대로 최근 나온 일본 추리소설로 믿을만한 소재와 전개를 보여주고 있어 한층  흥미롭다요즘 나오는 일본 추리소설에서 자주 다루는 붕괴한 가정과 그로인해 혼란과 불안에 휩싸인 자녀의 심리 묘사가 주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물론  또한 고가 사부로의 작품과 마찬가지로 당대 사회의 맥락 속에 넣어 해석할  있다여기서 모든 갈등의 원천이 되는 주인공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무리한 교육을 멋대로 강요하는 폭군이자 아내에게 늘상 가정 폭력을 행사하는 존재로 이러한 그는 그대로 전쟁을 획책하며 국민을 강제 동원하던 군국주의 국가 일본을 나타내고 있다고 하겠다소설은 불현듯 찾아온 아버지의 죽음이 가진 미스터리의 진실과 그것이 남긴 여파를 차분하게 그려나가고 있는데그런 전개 속에서 폐인의 궤적을 거듭하는 아들의 모습과 아버지와 전혀 다른 인생 항로를 걷는 어머니의 모습을 통해 군국주의 국가 일본이 가져올 미래와  병폐를 가급적 억제할 대안은 어떤 것인지 슬며시 드러내고 있다  편에다 짧은 분량의 작품이라 과연 들었던 명성대로 오시타 우다루의 역량을 확인할  있을까 조금 걱정했었는데충분히 만끽할  있어서 더욱 만족스러운 소설이었다.

 

 마지막은 표제작이자 가장 ‘본격’ 미스터리의 맛을 보여준 쓰노다 기쿠오 ‘어느 가문의 비극이다만일 당신이 오직 재미를 위해  책을 선택했다면 바로 그걸  작품에서 흠뻑 맛볼  있을 것이다. 1947년에 발표되었지만(원래 제목은 ‘총구를 마주하고 웃는 남자였다.) 소설이 묘사한 시대상을 논외로 한다면 그렇게 오래되었다고 전혀 여겨지지 않으며 이것이 가지고 있는 이중삼중의 미스터리와 반전이 전해주는 재미를 생각한다면 이런 작품이  이제야 소개되었는지 의아함마저 느끼게 했던 작품이었다재미가 가득한 작품이므로  내가 이런 재미를 느끼게 되었는지 설명하고자 한다면 아무래도 이야기를 소개하지 않을  없을  같다그래서 가급적 간략하게 소개해 본다.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는 다카기 고헤이가 자신의 침대에서 얼굴에 총을 맞아 죽은 상태로 발견된다평소 하녀를 포함 여동생친아들까지 포함해 여러 사람에게 아주 잔인하게 굴었던 그이기에 살인 동기를 가진 용의자가  많은 상황이다거기다 살해된 것으로 추정되는 오후 3시의 알리바이가 모두에게  있다과연 다카기 고헤이는 누구에게 살해된 것인가여기에 가가미 게이스케는   사람을 의심한다그건 바로 고헤이의 친아들 고로가가미는 사건이 일어나기 전의  카페에서 그가 소동을 일으키는  목격한 적이 있다이것이 바로 소설의  장면이기도 하다거기서 가가미는 고로가 계속 시간을 상기시키는 것에 의혹을 가진다나중에 살해 시각이 하필이면 고로가 소동을 일으켰던 시간과 동일하여 그에게 완벽한 알리바이가 성립되자 고로에게 향하는 의혹의 시선은 한층  짙어진다그러던 차에 고로와 연인으로 알려진 하녀 유코가 자신이 고헤이를 살해했다고 자백한다그러나 드러난 증거에 비추어 누군가를 비호하기 위해 유코가 일부러 자백했다는  밝혀지고 가가미는 유코가 고로를 위해 거짓 자백한 것으로 판단하고 집요하게 고로를 뒤쫓는다그런데 그만 고로가 살해되는 일이 벌어진다중요한 용의자였던 고로가 갑자기 살해되자 사건은 더욱 미궁에 빠지고 그러던 차에 새롭게 용의자가 나타난다과연 그가 진범일까?

 

 이런 식으로처음부터 진실을 알고 싶게 만드는 설정을  하고 던져주더니 그걸 계속 거듭된 수수께끼로 불려나가 결말을 도저히 궁금하지 않을  없게 만드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알리바이 깨드리기와 비밀 장치 살인 그리고 뜻밖의 범인  셜록 홈즈와 엘큘 포와로혹은 란포의 ‘아케치 코코로 긴다이치 코스케 같은 탐정이 활약하는 고전 추리소설의 스타일이 아주  살아나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을 좋아한다면 정말 환호작약하지 않을  없을 것이다적어도 나는 그랬다그러나 이런 재미도 재미지만 소설을 말할  무엇보다 빼놓지 말아야  것이 있다바로 탐정 캐릭터형사인 가가미 바로  존재인데언뜻 조르주 심농의 유명한 형사 ‘매그레 연상시키기도 하는 분위기를 풍기는 그는 가급적 말없는 관찰자로 자처하며 오직 수사에만 묵묵히 전념한다탐정은 보통 수다스러운 편인지만 가가미는 전혀 반대의 모습을 보여주기에 그것이 한없이 개성적인 색채를 지녀 인상 깊게 다가오는 것이다사실 이처럼 흔치 않은 캐릭터는 양날의 검이다 묘사하면 더없이 매력적으로 여겨지지만 그렇지 않으면 그저 허무맹랑하게 생각되기 십상이다바로 그걸 나누는 것이 작가가 자신의 캐릭터를 얼마나  알고 있느냐인데쓰노다 기쿠오는 전자다그리 무리하지 않은 설정과 필치로 가가미란 캐릭터를 설득력있게 형상화하는 것을 보노라면 자신의 캐릭터를 확실히 장악하고 있다고 여기지 않을  없다덕분에 매력이  살아난 가가미 형사가 활약하는 또다른 작품을 만나고 싶어진다 마지막에 실려 있는 작가의 약력을 보니 정말 많은 작품들을 출간했던데부디  하나로 그치지 말고 다른 작품들도 소개되었으면 좋겠다이왕이면 가가미 형사가 활약하는 것으로.

 

 처음엔 오랜 호기심으로 잡아  시리즈였지만 책이 거듭될 수록 예전엔 미처  매력을 몰랐던 작가와 작품들을 새롭게 만나는 재미가  컸던 ‘일본 추리소설 시리즈’. 이번에 만난 ‘어느 가문의 비극 내가 '일본 추리소설 시리즈'를 좋아하는 이유를 다시   크게 확인시켜  책이었다더구나 추리소설이 그리 발달하지 않은 시기에도 그저 재미만 추구하지 않고 작가가 직면한 시대의 어둠과 고통을 담으려고 노력했다는 것을 알게 되어 더욱 뜻깊었다사람에게 새로운 것을 알게되어 인식의 지평이 날로 확대되는 것만큼 좋은 일로 다가오는 것도  없을 것이다적어도 일본 추리소설에 대해서만큼은 확실하게 그런 좋은 것을 느끼게  주는 일본 추리소설 시리즈가 앞으로도 꾸준히 발간되어 더욱  많은 읽고 아는 재미를 경험하게  주었으면 좋겠다.


 


 '본 리뷰는 출판사 경품 이벤트 응모용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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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변화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83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권일영 옮김 / 비채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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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이런 질문으로 글을 시작해 보고 싶다. 나라는 정체성은 정말 어떻게 결정되는 것일까? 알츠하이머 병에 걸린 이들을 보면 뇌가 그것을 결정하는 것 같다. 지인도 잊고, 가족도 잊고, 끝내 자신이 누구인지도 잊어버리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뇌를 다른 사람에게 이식한다면, 이식된 그 사람 또한 뇌로 인해 뇌가 가진 정체성을 가져버리게 되는 것일까? 모든 장기 이식이 가능해진 이 시대에 뇌 또한 언젠가 이식되지 말란 법은 없기에 이런 호기심을 품어보는 것도 그리 몽상만은 아니리라. 그렇지 않아도 예전 어떤 책에서 심장을 이식 당한 이가 그 심장을 기증한 이의 부모에게 마치 자기 부모를 만나는 것만 같은 특별한 감정을 품게 되었다는 걸 읽은 적이 있다. 기억과 사유가 불가능한 심장마저 그러하다면 뇌가 이식되었을 경우 정체성의 혼란 혹은 변화는 아무래도 더욱 커질 수밖에 없을 듯하다. 갑작스레 이런 말을 하게 된 것은 최근 이런 소재를 다루고 있는 소설 하나를 만났기 때문이다. 바로 히가시노 게이고의 '사소한 변화'다.원래는 91년에 발표된 '변신'이라고 한다. 그것을 완전히 새롭게 번역하고 저자와 협의를 거쳐 '사소한 변화'라는 새로운 제목으로 발간했다고 한다.




 이야기는 주인공 나루세 준이치가 부동산 중개사 사무실에서 인질극을 벌이는 범인에게서 창문으로 도망치는 소녀를 구하려다 머리에 총을 맞고 사망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나루세는 죽지 않았다. 도겐 박사가 세계 최초로 성인 뇌이식 수술을 성공하여 다른 이의 뇌를 이식한 채, 멀쩡하게 살아난다. 이대로 기적처럼 두번 째로 주어진 새로운 삶을 사랑하는 메구미와 함께 살아가나 했는데 살다보니 차츰 자신에게 알 수 없는 일이 일어난다. 나루세는 원래 그림을 좋아하고 메구미의 초상화를 즐겨 그렸었는데, 어느새 그림에게 관심이 없어지고 예전만큼 그림도 잘 그리지 못하게 된 것이다. 게다가 예전에 아주 즐기며 보았던 영화들조차 이젠 아무런 재미를 느낄 수 없고 눈물을 흘리며 보았던 영화조차 따분하게 생각될 뿐이다. 변한 건, 취향과 능력만이 아니다. 성격까지 변해서 주위 사람과 별 트러블 없이 잘 지내던 그가 곧잘 타인들을 비난하고 폭력까지 휘두르게 된다. 자꾸만 예전과 다른 모습을 보이는 자신에게 혼란을 느끼면서도 죽을 뻔했던 사건의 후유증이라 여기며 넘겼지만 더이상 그럴 수 없는 일이 일어난다. 메구미에 대한 마음이 변하여 이제 더이상 그녀를 사랑하지 않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옆 방에 살고 있는 대학생이 하도 한심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 분노가 치밀어오른 커다란 살의를 가지게 된 것이다. 칼까지 거머쥐고 들어가서 죽여버릴까 문 앞에서 서성일 정도로.


 제목처럼 더이상 사소한 변화로 치부할 수 없게 된 나루세는 이렇게 된 이유가 뇌 이식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에게 이식된 뇌가 누구의 것인지 알아내려고 한다. 그러나 도겐 박사는 무슨 이유 때문인지 그것을 철저히 비밀에 붙이고 알려주지 않는다. 그러한 도겐 박사의 반응에 더욱 의혹을 가지게 된 나루세는 혼자 힘으로 뇌를 기증한 자를 찾아나선다. 그리고 아주 충격적인 진실을 발견하게 된다.


 나루세 준이치는 뇌를 통째로 이식당한 것은 아니다. 그저 회생시킬 수 없는 일부를 이식받았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준이치는 변화를 느낀다. 점점 더 기증자의 취향과 성격이 되고 기증차럼 행동하고 생각하게 된다. 육체는 온전히 준이치의 것이지만, 그는 사라져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뇌는 그냥 뇌일 뿐이며 지금 일어나고 있는 변화도 10만 분의 1이라는 기적의 확률로 다시 얻게 된 삶이니만큼 그냥 삶의 새로운 출발이라고 받아들이면 안되겠느냐고 말하는 도겐 박사에게 준이치가 이렇게 절규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당신은 몰라. 뇌를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고 지껄이는 당신은 말이야. 뇌는 특별한 거야. 당신이 상상이나 할 수 있어? 오늘의 나와 어제의 내가 달라. 내일 눈을 뜨면 거기 있는 건 오늘의 내가 아니지. 먼 과거의 추억은 전혀 다른 사람 것이 되고 말지. 그렇게밖에 느껴지지 않아. 오랜 시간을 들여 남겨온 것들이 모두 사라져버려. 그게 어떤 건지 아나? 가르쳐줄까? 그건... (...) 그건 죽음이야. 살아 있다는 건 그저 숨이나 쉬고 심장이 뛰는 게 아니야. 뇌파가 나온다고 살아 있는 게 아니라고. 산다는 건 발자국을 남기는 거지. 뒤에 남은 발자국을 보며 저건 분명 내가 낸 거라고 알 수 있어야 살아 있는 거야. 하지만 지금 나는 예전에 남긴 발자국을 봐도 내 것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아. 이십 년 이상 살아온 나루세 준이치는 이제 어디에도 없다고."(p. 270)


 자신은 사라져버릴 것이라며 준이치가 예견한 그대로 준이치는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되어 버린다. 원래 제목 그대로 '변신'하는 것이다. 파리 하나 죽이지 못했던 그가 단지 시끄럽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개의 목을 자르고 끝내 살인까지 저지르게 된다. 운명은 가혹하게도 10만 분의 1의 확률로 일어난 기적을 그대로 저주로 바꿔버린 것이다. 도대체 누구의 뇌이기에 준이치를 차가운 살인마로 만들어버린 것일까? 과연 준이치는 예전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그러는 가운데 이제 준이치의 살의는 자신이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사랑하는 사람인 히무라 메구미에게로 향한다.


 일본에서 100쇄나 찍고 무려 125만 부나 팔린 작품답게 꽤 흥미롭고 재밌는 작품이다. 뇌 이식이라는, 다소 공상과학적인 설정이지만 탄탄한 리얼리티로 독자를 무리없이 그 세계에 안착하도록 하고 있으며 타인의 뇌 이식과 관련된 정체성 혼란의 문제도 나루세 준이치를 둘러싼 일상의 변화와 심리의 세세한 묘사를 통해 독자 피부에 와 닿도록 만들고 있다. 때문에 후반에 가서 이뤄지는 나루세 준이치의 청천벽력 같은 변화도 그리 허황되게 여겨지지 않는다. 뇌 이식과 완전히 달라지는 정체성 때문에 여러모로 조던 필의 영화 '겟 아웃'이 연상되는데, '사소한 변화' 또한 그 영화만큼 흥미로운 텍스트이니 그 영화가 마음에 들었다면 이 소설 또한 만나볼 것을 권한다.


 그리고 도겐 박사의 이름 때문에 히가시노 게이고가 혹시 이 소설을 오마쥬 하고 있지는 않나 생각하게 되었다. 바로 '양서류 인간'으로 유명한 러시아의 SF 작가인 알렉산더 벨라예프의 '도웰교수의 머리'라는 소설이다. 


 우리나라엔 70년대에 아동용 SF로 이렇게 소개된 적이 있다.

그 때의 홍보 문구가 '죽었어야 할 도웰 박사가 머리만 살아 있다니!'였다.


 벨라예프의 데뷔작으로 러시아에서 영화까지 만들어진 바 있다. 거기서 죽은 인간을 되살리기 위해 뇌를 연구하는 학자가 바로 도웰 교수다. 뇌를 통해 죽은 자를 되살린다는 점에서 둘이 하고 있는 일도 유사하므로 '도겐'이란 이름은 이 '도웰'에서 따오지 않았을까 한다. 물론 전적으로 내 생각이다. 그런데 비슷한 건 이 하나만은 아니다. 그 소설에서 권총에 맞아 숨져 나중에 머리만 다시 살아있게 되는 카페의 댄서, 빌케는 나루세가 죽었다 다시 살아나는 과정과 비슷하고 또한 그 빌케는 나중에 다른 어떤 여성의 신체와 접합하여 온전한 육체를 소유하게 되는데 그 원래 신체의 주인은 화가였고 빌케는 직업이 직업이니만큼 음악을 좋아한다는 점도 '사소한 변화'의 설정과 닮아 보인다. 이 정도라면 히가시노 게이고가 이 작품을 쓰면서 벨라예프 작품에 영감을 받았다고 해도 크게 무리는 아닐 것 같다. 그렇다고 이 말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진 말길 바란다. 그저 '사소한 변화'를 좀 더 재밌게 즐기기 위한 조미료 같은 거라 생각해주면 고맙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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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성역 1 - 노아즈 아크, Novel Engine POP
카지오 신지 지음, toi8 그림, 구자용 옮김 / 영상출판미디어(주)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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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의 문학상 중엔 '성운상'이라는 게 있다. 한 해 동안 발표된 SF 소설 중에 가장 좋은 작품에다 주는 상이 바로 성운상이다. 1970년에 시작된 것으로 역사도 제법 오래되었다.

이 상을 수상한 작품 중에 우리나라에 알려진 것으로는  고마츠 사쿄의 '일본 침몰'이나 칸바야시 쵸헤이의  '전투 요정 유키카게', 다나카 요시키의 '은하영웅전설', 아리카와 히로의 '도서관 전쟁'등이 있다. 수상 작품의 면면을 살펴보면 알 수 있듯이, 꽤 권위있는 상이라 할 만하다. 갑작스럽게 성운상 얘기를 하게 된 것은 또 하나의 성운상 수상작이 우리나라에 최근 소개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카지오 신지의 '원수성역'이다. 수상한 해는 2016년.




 카지오 신지는 1947년 생으로, 1971년에 SF 단편으로 데뷔했으니 경력이 꽤나 오래된 작가다. 91년에 '셀러맨더 섬멸'로 일본 SF 대상까지 수상한 바 있어 꽤 명망 있는 SF 작가라 할 수 있다. 그런 그가 2005년 부터 시작하여 10년 넘게 써왔던 소설이 바로 '원수 성역'이다. 모두 3권으로 이루어진 작품으로 그 중 첫 권인 '노아즈 아크'가 이번에 우리나라에 소개된 것이다.


 여기서 '노아즈 아크'란 성경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를 뜻한다. 이런 제목이 나오게 된 연유가 있다. 소설에 나오는 지구 역시 성경에서 그랬던 것처럼 종말을 맞이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홍수는 아니다. 원흉은 태양이다. 태양의 불꽃이 점점 커져 그 화염 속에 지구가 삼켜질 예정이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라면 지구 전체에 일대 혼란이 일어나야 하겠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사실을 미리 안 사회지도자 계층이 철저하게 숨겼기 때문이다. 자기들이 지구를 탈출할 시간을 벌기 위해서 말이다. 사람들이 아무 것도 모르고 일상을 영위하는 동안 미국 대통령을 비롯하여 재력과 권력을 가진 자들은 '노아즈 아크'란 우주선을 만들어 170만 광년 거리에 있는, 지구와 똑같은 환경을 가진 '에덴'이란 별로 달아날 준비를 착착 진행한다. 자신의 죽음마저 위장할 정도로 아주 철저하게 비밀을 유지했기에 많은 지구인들은 그들이 우주로 떠난 뒤에야 종말의 시계가 가까워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믿었던 이들에게 버림을 받았다는 것도. 하지만 절망하기는 이르다. 대통령의 딸을 사랑했던 공학도 이안에 의해 우주선 없이도 '에덴'에 갈 수 있는 방법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영화  '스타트렉'에서 흔히 보았던 순간 이동 기술. 소설에선 '점프'라 부르는 그 기술은 사람을 그대로 순간 이동시켜 170만 광년 거리에 있는 별로 보낼 수 있다. 어떻게 보낼 수 있는가에 대해선 자세히 따지지 말자. 이 소설은 닐 스티븐슨의 '세븐 이브스' 같은 하드 SF가 아니니까.


 그러나 이 '점프'라는 기술은 그리 안전하지 않다. 보내긴 보내지만 어디로 떨어질 지 미리 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냥 하늘에 떨어져 추락사할 수 도 있고 바다에 떨어져 익사할 수도 있으며 아예 별에 도착하지 못하고 우주 공간에 내던져질 수도 있다. 다시 말해 무사히 별에 도착할 확률은 1700분의 1. 그래도 몇몇은 살아남아 '에덴'에서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간다. 소설 처음에 등장하는 주인공 마사히로 역시 그 중 하나. 그는 가족 모두와 함께 점프했으나 오직 자신만이 살아서 별에 도착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러나 슬퍼할 겨를이 없다. 여기저기 사람을 잡아먹는 기묘한 생물이 많이 사는 그 별에서 생존을 해야 하니까.


 그렇게 계획 없이 점프한 이들에 의해 '에덴' 여기저기에 부락이 만들어진다. 오직 생존만이 지상 목표였기에, 그 생존을 위해 부락민 전부의 힘을 하나로 모을 필요가 있었고 그로 인해 부락을 제외한 모든 바깥 영역을 위험과 적대의 곳으로 간주할 필요가 있어 때로 점프한 이들이 만든 부락 서로도 상대방을 식인 괴물로 여기는 일도 존재한다. 이처럼 다 다르게 살아가는 그들이었지만 하나만은 같았는데, 그건 바로 자신을 버리고 몰래 우주로 달아나버린 '노아즈 아크'에 대한 분노다. 부락민들의 일치단결을 위해서 필수적으로 벌어지는 종교 행사에서 그들은 한결같이 노아즈 아크에 대해 저주를 내린다. 그 원한을 꼭 갚아야 한다면서.


 이제 제목이 왜 '원수 성역'인지 아셨을 것 같다. 그렇게 노아즈 아크를 원수로 알고 분노와 적대를 표출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이런 곳에 드디어 노아즈 아크가 착륙한다. 그들은 그들대로 장기간 우주 항행에서 주로 가족 없이 홀로 탄 이들을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는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을 막기 위해서 인위적인 이데올로기를 유포시켰다. 그건 바로 지구가 이미 종말을 고했으며 전 우주에 인류는 자기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인류의 보존을 위해서라도 헛되이 목숨을 끊지말고 힘을 뭉치자고 말이다. 당연히 그런 믿음으로 에덴에 상륙한 '노아즈 아크'에게 에덴의 거주민들이 자기와 같은 인간으로 보일 리 없다. 결국 점프한 이들과 노아즈 아크는 제목처럼 보기만 하면 이빨부터 드러내는 사이가 된다. 과연 그 싸움의 결말은 어떻게 될 것인가? 물론 그것을 알기 위해서 우리는 다음 권이 나오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여기까지 소개한 줄거리로 '원수 성역'이 주로 다루고자 하는 것이 뭔지 어쩌면 알아차렸을 지도 모르겠다. 바로 이데올로기라는 걸 말이다. 점프민들은 척박한 대지에서 생존하기 위해 이데올로기를 만들어 유포하고 '노아즈 아크' 역시 고급 인력을 헛되이 낭비하지 않기 위해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낸다. 이런 이데올로기가 만들어내는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적대 관계는 얼른 1950년대에 존재했던 냉전 시대를 떠올리게 만든다. 어쩌면 정말로 바로 그것을 SF적 상상력에 인류학을 가미하여 풀어내고 있는 게 '원수 성역'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인류학 운운 한 것은 소설이 주인공을 중심으로 단선적으로 전개 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이들에게 주인공 자리를 내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독자는 하나의 시야로 작품을 바라보는 게 아니라 '노아즈 아크'와 '에덴'과 관련된 사건을 다양한 시야로 보게 된다. 이런 까닭에 이데올로기 같은 문제도 눈에 들어오지만 종말이 예정된 삶도 끝까지 지속할 의미가 있을까 같은 다소 형이상학적 질문도 문득 생겨난다. 하여, 얼른 생각나는 것은 카멜레온인데 이렇게 다채로운 색깔을 지녔기에 재미도 재미지만 성운상을 탄 게 아닐까 여겨지기도 한다. 여하튼 좋은 SF란 건 틀림없는 것 같다. 얼른 2권을 만나게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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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속 외딴 성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서혜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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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에 있었던 자신의 일을 소설로 풀어내는 게 아닐까 생각되는 작가가 있습니다. 그가 바로 일본 작가인, 츠지무라 미즈키이죠. 이 말은 제가 그의 작품을 아직 딱 하나밖에 읽지 못해서 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네, 저는 그의 데뷔작이기도 한 '차가운 학교의 시간은 멈춘다'만 읽었는데요, 거기에 묘사된 십대 아이들의 일상이나 심리가 아주 생생하게 그려져서 아무래도 작가가 직접 겪은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죠. 그만큼 깊은 인상을 남긴 작가라 이름을 뇌리에 새겨두고 있었는데, 이렇게 그의 작품을 또 다시 만나게 되었네요.

 그것이 바로 '거울 속 외딴 성'입니다.


 2018년 서점 대상 수상작이라고 합니다. 일본의 서점 대상은 점수제로 운영되는데 역대 최고 점수를 받았다고 하니 도저히 찾아 읽지 않을 수 없더군요. 표지까지 예뻐서 더욱 소장 욕구를 높였구요. 




제목에서 판타지 소설이 아닐까 생각했었는데, 과연 설정은 판타지였습니다. 제목 그대로 거울을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는 외딴 성이 나오거든요. 하지만 흔히 생각하는 판타지와는 결이 좀 달랐어요. 외부의 적을 물리치거나 세계를 구원하는 거창한 것은 아니고 세상에서 이렇게 저렇게 상처 받은 아이들이 스스로 치유해 나가는 이야기였으니까요. 줄거리를 간단히 소개하자면 이렇습니다. 이제 막 중학생이 된 고코로란 아이가 주인공입니다. 그녀는 현재 학교에 나가지 않고 있습니다. 같은 반 아이들에게 거의 집단 따돌림에 맞먹는 엄청난 괴롭힘을 당했기 때문이죠. 가뜩이나 예민한 나이에 타인에게서 그것도 한 명도 아니고 집단으로 아무 이유 없이 공격을 당하다 보니 세상이 잔뜩 무서워져 버린 것입니다. 그는 매일 자기 방에만 틀어박혀 지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전신 거울에서 빛이 나는 걸 발견합니다. 호기심에 거울 쪽으로 손을 뻗었는데, 거울에 손이 닿자마자 그만 거울 속으로 빨려들어가 버립니다. 거울 속으로 들어와버린 고코로 앞에 나타난 것은 늑대 가면을 쓴 여자 아이. 그 아이로 인해 고코로는 외딴 성으로 가게 되고 거기서 자신과 똑같이 학교에 가지 않고 있는 여섯 명의 아이들을 만납니다. 그리고 이런 말을 합니다.


 "이 성 깊은 곳에는 아무도 들어갈 수 없는 '소원의 방'이 있어.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 소원을 이루는 자는 한 명 뿐이야. 빨간 모자들."

 "빨간 모자?"

 "(...) 너희들은 길을 잃고 헤매는 빨간 모자들이지."(p. 51)


 그렇게 일곱 명 중 한 명이 성에서 소원을 이룰 수 있는 열쇠를 찾을 때까지 내년 3월을 기한으로 계속 성으로 오게 될 것이라 말합니다. 물론 강제는 아닙니다. 찾고 싶을 때만 올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성에 있는 동안은 뭘하든 자유입니다. 굳이 열쇠를 찾지 않아도 되는 것이죠. 다만 밤에는 올 수 없습니다. 성에 올 수 있는 시간은 학교에 있어야 하는 시간과 일치합니다. 이런 점 때문에 외딴 성은 일곱 명의 아이들에게 학교에 가지 않는 동안 있을 수 있는 아지트가 되어 버립니다. 아이들은 성에 와서 게임을 하고 이런저런 수다도 떱니다. 그러면서 혼자는 절대 만들 수 없는, 또래와의 관계를 맺어갑니다. 그러는 가운데 타인을 대하는 법,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법 등등 자신이 당했던 것처럼 서로 상처를 주지 않는 관계란 어떤 것인지 하나하나 배워나가죠. 인용한 말에 나왔듯, 이 소설은 그림형제의 유명한 '빨간 두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습니다. 거기서 빨간 두건 소녀는 엄마의 말을 듣지 않고 딴 짓을 하다가 길을 잃고 그만 늑대에게 희생당하고 말았죠. 하지만 이 소설에서 늑대는 길을 잃은 아이들이 스스로 자신의 길을 찾아가도록 돕고 있는 존재입니다. 그런 변형이 재밌게 여겨지더군요. 아, 그러나 무서운 늑대도 있습니다. 금지된 시간에 성에 있게 되면 정말로 무시무시한 늑대가 나타나 아이를 잡아가 버리니까요. 어쨌든 환경의 변화로 별안간 세상의 거센 공격을 받아 자신만의 외딴 방에 갇혀버린 아이들이 외딴 성을 통해 그런 세상 앞에 담대하게 설 수 있도록 치유하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은.


 함께 한다는 경험이, 서로를 소중히 여긴다는 마음이 자신 또한 얼마나 현명하고 강하게 만들 수 있는지 보여주는 이야기이고, 결국 자신의 마음이 강해지지 않으면 어디에 있더라도 지옥을 만난다는 걸 느끼게 만드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이 세계 혹은 이 길밖에 없다고 생각하지 말고 내가 지금 서 있는 이 곳엔 많은 세계와 길이 가능하다고 여기는 마음 또한.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에서 나왔듯이 네트(세계)는 광대하니까요.


 이 소설은 직접 읽으면서 느끼는 게 최고의 독서법 같기에 책에 대한 말은 이 정도로 하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우리나라에도 요즘 학교에 가지 않고 집에서 홀로 지내는 아이들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그들의 삶이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니고 그저 약간 다르게 오늘의 시간을 지내고 있을 뿐이라고 말해주고 싶네요. 그리고 혹시 그런 삶에 상처를 받고 싶다면 위로와 그런 상처따위 전혀 받을 필요 없다고 말하고픈 마음으로 이 책을 그들 곁에 놓아주고 싶습니다. 그런 면에서 비슷한 나이의 자녀를 두신 부모님들도 한 번 읽어보면 좋을 것도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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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18-10-06 0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슷한 아이들이기에 서로 알았던 건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세상에는 비슷한 생각이나 비슷한 아픔을 겪는 사람이 있겠지요 그렇다 해도 자신이 가장 힘들다 생각하지만... 비슷한 사람 만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 듯합니다 비슷한 사람을 만나지 못한다 아쉬워하지 않고 다들 무언가 아픔이 있겠지 생각하면 나을지도 모르겠네요

저는 여러 권 만났는데, 이런 저런 이야기를 쓰는 듯해요 여자 친구들 이야기, 읽지 못했지만 결혼하려는 사람과 그 둘레 사람 이야기도 있고(이건 드라마로 봤군요), 죽은 사람을 만나는 이야기(츠나구, 이건 영화로 만들었더군요), 지난해에는 입양...


희선
 
청부살인, 하고 있습니다 모노클 시리즈
이시모치 아사미 지음, 민경욱 옮김 / 노블마인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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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 보았던, 왕가위 감독의 영화인 '타락천사'의 한 장면이 생각난다.

극중에서 청부살인업자로 나오는 여명이 아주 늦은 밤의 버스 안에서 어떤 남자를 우연히 만난다. 남자는 오랜만에 만난다면서 반갑게 인사하는데, 여명은 할 수 없이 인사에 응하면서 조금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남자가 요즘 무슨 일하냐고 묻자, 곤혹스러움은 더욱 짙어진다. 그러는 가운데 여명의 독백이 이렇게 지나간다.

 '청부살인업자에게도 고교 동창은 있다.'


 청부살인이라는, 사회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예외적인 존재가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역시 우리와 그리 다를 바 없는 한낱 평범한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아니면 현재엔 비록 청부살인업자라는 괴물이 되었을 지 몰라도 과거의 한 때는 평범한 인간이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일지도. 어쨌든 청부살인업자, 그도 인간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대중 문화 속에 등장하는 청부살인업자는, 특히 주인공인 경우엔 대부분 같은 인간이라는 뜻에서 인간다움을 강조하기 마련이다. 그 인간다움을 보여주기 위해 주인공의 청부살인은 주로 범죄자 같은 악인을 표적으로 삼는다. 살인의 정당성을 주어서 주인공이 저지르는 살인이 가지는 부정성(否定性)을 희석시키려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만 독자들이 주인공에게 공감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소설은 주인공에 대한 공감이라는 연료가 없으면 멀리 갈 수 없는 자동차와 같은 존재니까 말이다.


 청부살인업자가 나오는 영화 중에 가장 유명한 오우삼 감독의 '첩혈쌍웅'에 나왔던 주윤발 캐릭터를 생각해 보라. 언제나 마피아의 보스만 표적으로 삼고 거기에 휘말려 한 여가수가 불행하게 시력을 잃게되자 죄책감을 느끼고는 곁에서 끝까지 돌보는 것까지 하지 않던가? 보통은 이렇게 묘사한다. '청부살인업자'란 캐릭터는 어네스트 헤밍웨이가 '살인자'란 단편에서 처음 등장시킨 뒤로, 하드보일드 장르에 단골로 등장했다. 그러나 주인공인 경우엔 그런 비정(非情)함이 잘 허락되지 않았다. 그렇게 되면 괴물을 더욱 괴물로 만들 뿐이니까 말이다.




 장 피에르 멜빌의 영화 '사무라이'에 나왔던, 알랭 드롱이 분했던 킬러가 대표적이다.('사무라이'는 '첩혈쌍웅'의 원본과 같은 영화이기도 하다.) 그는 영화 내내 대사 한 마디 없다. 언제나 굳은 침묵으로 무표정할 뿐이다. 그렇지 않아도 살인을 거리낌 없이 저질러 사회의 예외적 존재가 되는 그는 그 외양으로 인해 더욱 그렇게 된다. 침묵과 무표정은 그를 불가해한 존재로 만든다. 그는 인간일까, 괴물일까? 우리는 궁금하다. 거기에 멜빌은 살인하는 그를 목격했지만 고발하지 않는 여인과의 관계를 통해 알랭 드롱이 인간이라는 것을 슬쩍 드러낸다. 비록 지금은 괴물이지만 마음 한 편엔 인간다움이 있어, 언젠가 인간이 되려 하는 괴물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영화의 마지막 그의 죽음이 씁쓸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선 '고독'이라고 제목을 붙였을만큼. 이처럼 비록 일말이나마 인간다움을 품고 있어야 한다. 안 그러면 독자는 그를 끝까지 바라보려 하지 않는다. 온통 검게 칠해진 페이지만 있는 책을 읽으려는 사람이 없듯이.



 이시모치 아사미의 '청부살인, 하고 있습니다'는 제목에 나와 있듯 청부살인업자가 주인공이다.

 그는 먹고 살기 위해 청부살인을 한다. 한 번 의뢰를 받아 청부살인을 하면 650만엔이 그의 수중에 떨어진다. 그가 직접 의뢰를 받는 것은 아니다. 의뢰를 받는 이는 따로 있다. 그 일은 현재 치과의사로 일하고 있는 이가 맡고 있는데, 그와 주인공이 직접 연결되지는 않는다. 중간에서 둘을 이어주는 다리 같은 존재가 또 하나 있다. 그는 현재 지방 공무원이다. 의뢰를 맡는 사람은 그 중간에 있는 전달자만 만나고, 주인공 역시 그 전달자만 만난다. 이렇게 하면 의뢰를 받는 자와 청부살인을 하는 자 중 누가 체포되더라도 나머지 한 사람은 보호받을 수 있다. 물론 중간 전달자가 체포된다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하지만 그는 의뢰도, 청부살인도 하지 않고 단순히 의뢰 받은 것과 청부살인업자가 살인을 맡을 것인지 말 것인지만 전할 뿐이니 법망에 걸릴 가능성은 희박하다. 아무튼 주인공이 한 축을 맡고 있는 청부살인은 이런 시스템으로 돌아간다.


 '청부살인, 하고 있습니다.'는 단편집이다. 주인공이 의뢰를 받아 청부살인을 하는 게 주된 줄거리인 단편이 모두 일곱 개 실려 있다. 맞다. 당신은 이 책에서 일곱 번의 청부살인을 보아야만 한다. 그런데 주인공에게 살해당하는 사람들은 앞서 말했던 것처럼 마피아의 보스이거나 범죄자 같은 존재가 아니다. 그냥 평범한 사람이다. 우리 주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그런 사람들 말이다. 그런 사람들을 주인공은 냉정하게 살해한다. 오로지 돈을 위해서. 그리 커다란 잘못을 저지르지도 않은 사람들이 돈 때문에 살해당하는 것을 보는 건 기분이 썩 좋지 않다. 그렇다고 청부살인업자가 어떤 인간다움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어서 한층 더 불편하다.


 '청부살인, 하고 있습니다'는 독특한 컨셉의 소설을 가지고 있다. 청부살인업자에 대한 것은 아니다. 그가 탐정 역할을 맡고 있다는 게 그렇다. 이 소설은 '미스터리'가 주를 이룬다. 주인공은 청부살인을 하기 위해 목표 대상을 스토킹 하는데(이런 식으로 보다 잘 죽이기 위한 정보를 모으는 것이다. 대상에 대한 그의 이해는 어디까지나 원활한 살인에 맞춰져 있다.) , 그 때마다 목표물이 잘 이해가 가지 않는 수수께끼 행동을 하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이를테면 첫 단편에서 타겟인 여성이 밤마다 몰래 나와 검은 물을 버리는 것과 같은. 


 그는 타겟들이 그러는 이유를 죽여 놓고 난 뒤 추리 한다. 이처럼 소설은 주인공이 의뢰를 받고, 타겟을 따라다니다 수상한 행동을 목격한 뒤 처리하고 그 행동의 이유에 대해 추리한 것을 중간 전달자에게 말해주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미스터리가 소소한 것이기에 흔히 말하는 일상 미스터리 계에 넣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어쩌면 그렇게 보는 것이 보다 더 정확할 지도 모르겠다. 청부살인업자가 탐정인 일상 미스터리 계 소설이라고 말이다. 


 솔직히 말해 나는 이 두 가지가 조합 가능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시도는 매우 신선하게 여겨진다. 그러나 그리 성공적이진 않다. 오로지 돈을 위해 별로 죄도 없는 사람을 살해하고, 살인에 비하자면 하찮은 것에 불과한 수수께끼를 목숨보다 더 비중을 두고 생각한다라? 잘 납득되지 않는 설정이다. 더구나 주인공은 타겟에게 절대 감정이입 하지 않으려고 의뢰인의 신원도, 그 동기도 묻지 않는다. 그런데 사소한 행동에는 왜 의문을 품는 것일까? 그것을 헤아리려면 상대의 입장에 서야 하니, 그 또한 감정이입의 요소가 아니던가? 그러므로 모순으로 보인다. 그저 미스터리를 가져오기 위해 설정된 호기심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무리한 설정이라고 해야 하겠다. 그리고 이런 걸 설정했다는 자체에서 난 작가의 윤리 의식 역시 조금 꼬여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작가의 모습은 내게 마치 잠자리 날개를 뜯으면서 왜 잠자리에겐 날개가 네 개밖에 없고 이렇게 쉽게 뜯겨나갈까 궁금해하는 아이를 떠올리기 때문이다. 특히 놀라운 것은 주인공에게 애인이 있는데, 그 애인이 주인공이 청부살인업자라는 걸 알면서도 사귀고 있다는 점이다. 뭐, 이 넓은 세상에 그런 사람이 없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소설에 대놓고 나오니 상식적인 견지에서 얼른 납득이 안 된다.


 '청부살인, 하고 있습니다'는 평범한 제목처럼 소설의 주역들은 대부분 아주 평범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어떤 특별한 계기나 뚜렷한 동기 없이 어쩌다 청부살인업계로 흘러든 사람들이다.(주인공이 과거를 술회하는 장면에서 우리는 이것을 알 수 있다.) 문득 정신을 차려 보니 이런 회사에서 일하고 있더라 하는 느낌이다. 소설은 지속적으로 살인청부업계가 그리 먼 세상이 아님을 강조한다. 치과의사, 공무원, 중소기업 경영 컨설턴트, 만화가가 이들의 직업인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이 언제든 쉽게 만날 수 있는 존재라는 점에서. 이렇게 소설은 평범함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살인청부도 그런 평범한 세계 속에 속한다고 알린다. 주인공의 애인이 그러하듯, 우리와 별로 다를 것도 없는 이들이 살인청부를 쉽게 용납하는 것처럼.


 과연 여기에 문제는 없는 것인가? 소설을 읽으며 나는 이런 질문을 하게 되었다. 한 사람의 목숨이 돈 때문에 이토록 쉽게 사라지는데도 모두들 그걸 평범한 일상으로 받아들이는 세상이란 과연 어떤 곳인가? 타인의 삶을 하찮게 바라보는 곳.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허다한 갑질 사태를 볼 때 드는 마음 그대로 바로 그런 곳이 지옥은 아닐까? 타인에 대하여 정작 궁금해하고 헤아려야 할 대상은 삶이라는 것이건만, 본질이 되는 삶은 홀연히 사라지고 삶에 견주자면 한없이 사소할 행동의 의미에만 천착하는 건 그저 내게 흥미 있는 것만 취하려는, 그렇게 타인을 피상적으로 소비하는 것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소설은 바로 여기서 재미를 주려고 하는데, 이것은 그대로 남의 삶을 하찮게 만드는 것에서 재미를 추구하는 것이니 이런 태도가 불편하게 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소설에도 어느 정도 윤리적 틀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윤리적 틀의 주된 축은 타자의 삶에 대한 존중이다. 다른 소설이나 영화에서 등장한 청부살인업자 주인공들이 가졌던 인간다움도 근본엔 그것이 있었다. 타자의 삶이란 결코 나만을 위한 소비의 대상이 아니다. 하물며 장르 소설이라 하여도 그러하다. 이 소설은 2017년에 나왔다. 이런 소설의 등장이 당시 일본 사회의 기저에 흐르는 공기와 어쩌면 관련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최근에 나오는 일본 애니메이션에서도 이런 것을 느꼈기에 나중에 한 번 제대로 알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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