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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보스 ㅣ 수상한 서재 1
김수안 지음 / 황금가지 / 2018년 4월
평점 :
스페인어로 '양쪽'을 뜻하는 '암보스'는 바디 스위치(body switch) 장르의 소설입니다. '암보스'란 말을 들으니 문득 헤밍웨이가 그렇게나 좋아했다는 하바나에 있는 '암보스 문도스 호텔'이 생각나네요. 아무튼 '바디 스위치'란 사람의 영혼이 서로 뒤바뀌는 것을 다루는 장르로 얼마 전에 개봉한 영화 '아빠는 딸'을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이런 장르는 대부분 '아빠는 딸'처럼(혹은 미국에서 엄마와 딸의 영혼이 바뀌었던 '프리키 프라이데이'처럼) 서로 극심한 갈등을 겪는 두 사람이 몸이 뒤바뀐 것을 계기로 상대방의 입장을 진심으로 이해하게 된다는 것을 주로 얘기해 왔기에, 이 소설처럼 스릴러 소재로 삼은 적은 거의 없어서 일단 새로웠습니다. 그리고 이런 신선해 보이는 시도가 독자들에게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도 궁금했구요.
초반에 나오는 하나의 허들만 독자가 잘 넘길 수 있으면 이 소설은 끝까지 꽤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네요. 그 허들이란 바로 이 소설의 주인공인 기자 이한나와 은둔한 소설가 강유진의 영혼이 서로 뒤바뀌는 것이죠. 소설은 왜 그렇게 되었는지에 대해 아무런 설명도, 장면도 보여주지 않아요. 아예 뒤바뀐 것에서 시작해 버리죠. 마치 독자들에게 그렇게 뒤바뀐 상황을 그냥 납득하라고 말하는 것 처럼 말이죠. 소설 끝까지 어떻게 가능했지는 나오지 않아요. 마지막 부분은 그것의 단서 같아 보이지만, 그조차 모호한 지라 딱 '이거다!'라고 말하긴 쉽지 않아요. 그러니 정신 건강을 위해서라도 그냥 소설이 보여주는 대로 받아들이고 읽는 것이 좋을 것 같네요. 일단은 자신의 손을 소설에 허락하고 소설이 이끄는 쪽으로 무작정 따라갈 필요가 있다는 것이죠. 그 한 걸음만 수락하면 소설이 준비한 게임이 아주 흥미롭게 당신 눈 앞에 펼쳐질 겁니다.
이 소설엔 프롤로그가 있습니다. 아이가 자신의 엄마가 누군가에게 살해당하는 것을 목격하는 내용이죠. 그 다음, 우리가 보는 건 강유진의 몸으로 병원에서 의식이 깨어나는 이한나의 모습입니다. 초반 전개는 '바디 스위치'에서 흔히 보는 대로예요. 결국 자신의 몸이 강유진과 바뀌었다는 것을 깨달은 이한나는 자신의 몸이 되어 있는 강유진과 독대를 하게 되죠. 강유진은 빌딩에서 뛰어내려 자살하다가, 이한나는 건물 방화 현장을 취재하다가 화염에 포위되자 자신이 지고 있는 삶의 짐이 너무 힘겨워 살려는 의지를 스스로 내려 놓다가 영혼이 교체되었다는 것을 말이죠. 그런데 왜 하필 바뀐 대상자가 그들이었을까요? 거기에 대해 이한나는 마침내 이런 결론에 도달합니다.
내가 갈구한 것. 가족으로부터의 자유, 경제적 여유, 누구의 삶과도 무관한 글을 마음 편히 쓰는 것, 쫓기지 않는 삶.
그게 전부 강유진에게 있었다.
그녀가 갖지 못한 것. 가족, 사회적 관계, 반듯한 외모, 건강.
이건 고스란히 내게 있었다.
믿기 어렵지만 믿을 수밖에 없는 답은 전율을 몰고 왔다. 완벽하게 대조된 삶이었다.(p. 102)
모두 자신의 삶에서 달아나고 싶었기에, 그들은 현재 주어진 육체를 받아들이기로 합니다. 딱 1년 만, 이한나는 강유진으로, 강유진은 이한나로 살기로 한 것입니다. 그걸 바란 건 강유진이었습니다. 사실 이한나는 강유진에게 마음의 빚이 있었습니다. 예전 자살한 청소년 기사를 쓴 적이 있는데 그가 강유진의 소설 '글루미 선데이'에 영향 받아 자살했다고 기사를 쓴 바람에 강유진이 사회적으로 많은 고초를 겪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과연 1년 후에 강유진의 말대로 몸이 원래대로 돌아올지 모르겠지만 그 때를 위해 서로의 삶이 파괴되지 않도록 잘 지켜주자는 계약까지 한 채, 둘은 새로 거주하게 된 육신의 삶을 살아갑니다. 그런데 이한나에겐 청천벽력 같은 사건이 벌어지고 맙니다. 강유진이, 그러니까 이한나의 몸이 연쇄 살인마의 손에 무참하게 살해당하여 양손이 잘린채로 발견된 것입니다. 하지만 경찰은 이 살인이 실은 모방 범죄라는 걸 알아냅니다. 그런데 연쇄 살인 방식은 오직 경찰만 알고있을 뿐, 언론으론 전혀 내보내지 않았습니다. 과연 범인은 어떻게 그 정보들을 얻은 것일까요? 그래서 경찰은 죽은 이한나가 통칭 '812'라고 부르는 연쇄 살인을 추적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내자 범인은 분명 이한나에게서 그 정보를 얻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한나의 주변 인물들을 수사합니다. 그러다 최근 가장 많이 연락하고 돈까지 오고간 정황이 드러난 강유진(실은 이한나)가 주요 용의자로 수사망에 포착됩니다.
졸지에 돌아갈 몸도 잃은데다, 그래서 이젠 너무나 싫어하게 된 강유진의 삶을 계속 살아야하는 것도 모자라 살인 용의자까지 오르게 되었다는 걸 안 이한나는 강유진의 돈을 사용해 스스로 강유진 죽음의 진실을 찾아 나섭니다. 과연 이한나는 자신에게 씌어진 모든 누명을 벗고 원래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도대체 강유진은 어쩌다 그렇게 죽게 되었을까요? 이것은 또 프롤로그에 나왔던 살인과 어떻게 연결될까요? 소설은 이런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을 주면서 전혀 뜻밖의 진실 앞으로 독자를 데려갑니다.
표지는 이렇게 양면으로 펼쳐야 온전히 보이도록 되어 있는데, '바디 스위치'라는 걸 잘 드러내고 있어서 마음에 듭니다.
소개는 이 정도로 하고 소설에 대한 제 인상을 말하자면, 바디 스위치란 소재를 재치있게 사용한 지적 게임에 가까워 보입니다. 소설은 이한나와 탐정 역할을 맡는 형사의 시선이 번갈아가면서 전개되는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시간 순서가 다소 얽혀 있어 앞에 등장한 사건이 나중에 가서 커다란 문제라는 게 비로소 밝혀지는 등, 읽는 이의 흥미를 유발할만한 장치가 잘 마련되어 있습니다. 후반에 이르면 경찰이 사건 추리를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것을 보면 작가가 꽤 논리적으로 공들여 설정했다는 것을 알 수 있겠더군요. 그 정도라면 작가의 설명 없이 독자 스스로 사건의 전말을 파헤칠수도 있다고 생각하기에 지적 게임이란 말을 해봤습니다.
다른 걸 다 떠나 그냥 이야기 하나만으로 재밌게 읽을 수 있습니다. 작가도 그다지 욕심을 가지지 않은 것 같아요. '바디 스위치'는 정체성 문제와 긴밀하게 연결되기에 솔직히 욕심껏 철학이나 사회적인 의미들을 곁가지로 얼마든지 넣을 수 있는데 그러지 않고 오직 '육체 교환을 통한 미스터리와 서스펜스의 창출'이라는 이 하나에만 매진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몰입감이 더 컸던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장점만 있는 건 아닙니다. 물론 개인에 따라서 생각이 다를 수도 있지만 제게는 경찰에 대한 부분과 조연급 인물들에 대한 부분이 너무 상세하게 나와 분량이 필요 이상(이 소설은 무려 500페이지 입니다.)으로 늘어난 느낌이었습니다. 장황 하다고 해야할지, 하여간 그것이 조금 이야기의 몰입을 방해하는 측면이 있더군요. 뭐, 어디까지나 '조금'입니다. 재밌는 소설이라는 건 변함 없어요.
오직 재미만 추구한다고 해서 아무런 주제의식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이건 소설에 대한 오해가 될 것 같아 꼭 얘기해야겠네요. 이 소설에도 주제가 있다고 말이죠. 이한나와 강유진이 육체 교환을 받아들이게 만든 이유가 바로 소설의 주제입니다.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기에 자세히 말할 수는 없지만, 그 이유가 전혀 이유가 될 수 없음을 당사자가 깨닫는 것이 소설이 전하고자 하는 바라는 거죠. 타인의 삶이란 그저 아주 멀리서 바라 본 풍경에 지나지 않는다는 거랄까요. 높은 하늘 위에서 아래를 바라다 보면, 높은 빌딩도 낮은 움막도 그저 2차원의 사각형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말이죠. 그런 거리가 동경과 부러움을 만드는 것이지, 그 누구의 삶이든 실제 안으로 들어가보면 내 삶만큼이나 모나고 아픈 것들이 비일비재하다는 겁니다.
아니, 당신도 이미 잘 알고 계시지 않을까요? 완벽하게 행복한 삶은 오직 TV나 영화관 화면 속에만 존재한다는 것을. 사막을 정처없이 헤매이게 만드는 오아이스의 신기루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그런 신기루에 대한 현혹이 내게도 있다는 생각이 드신다면, 재미를 떠나 자신에게 경고를 준다는 의미로도 '암보스'를 만나보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