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이턴 록
그레이엄 그린 지음, 서창렬 옮김 / 현대문학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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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독일을 휩쓴 파시즘의 매혹과 그것에 대항하여 희망을 재건하는 휴머니즘을 두 여성을 중심으로 섬세하게 조명하는, 묵직하면서도 강렬해 그 여운이 오래 남는 느와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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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크리트의 섬 JGB 걸작선
제임스 그레이엄 밸러드 지음, 조호근 옮김 / 현대문학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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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G 밸라드의 팬들이여 기뻐하시길! 드디어 '콘크리트의 섬'이 발간되었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크래시' 그리고 '하이 라이즈'와 더불어 도심 재난 3부작을 이루고 있는 의미 깊은 작품이지만 지금껏 우리나라에 소개되지 않아 여간 궁금했던 책이 아닌데, 드디어 우리들 눈 앞으로 당도한 것이다. 꽤 마음에 드는 표지와 함께. '콘크리트의 섬'은 여러모로 우리나라 영화 '김씨 표류기'가 생각나는 작품이다. 그 영화가 도저히 표류자가 생길 것 같지 않는 서울의 한강에서 표류되어 버린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렸듯이 이 소설 또한 고속도로 사이에 있는 교통섬에 우연히 갇혀버린 한 남자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모두 로빈슨 크루소의 후예들이다. 바다 저 멀리 있는 섬이 아니라 도시 한 가운데에서 그런 일을 당한다는 것만 다를 뿐




. 이런 일이 과연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을까 싶지만 소설을 읽어보면 얼마든지 가능해 보인다. 그만큼 발라드가 현실감 넘치게 상황을 묘사하고 있는 까닭이다. 발라드의 소설답게 한 번 그 세계를 받아들이게 되면 놀라운 몰입력으로 끝까지 내처 읽게 만든다. 주인공은 로버트 메이틀랜드. 건축사무소를 운영하고 있을 정도로 성공한 건축가인 그는 운전 도중 과속으로 교통 사고를 일으키고 교통섬에 고립된다. 주위엔 차들로 가득하지만 그의 구조 요청엔 아무도 응답하지 않는다. 바로 지척에 안온한 일상을 두고도 가지 못하며 참혹한 일상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더 커다란 절망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곧 거기에 자기 혼자 살고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 밝혀진다. 자신처럼 교통섬에 고립되어 살아가는 이들을 많이 만나게 되는 것이다. 이들은 바깥 세계로 나갈 수 있는데도 거기에 머무르는 걸 선택한 이들이다. 그들은 자기들만의 문화와 규칙으로 살고 있다. 메이틀랜드는 차츰 그 공동체에 적응해 간다. 그러면서 전보다 훨씬 강한 인간으로 성장하게 된다. 로빈슨 크루소가 그랬듯이. 그 역시 거기 있는 다른 이들처럼 그렇게 지내는 것에 매력을 느껴 머무르고 싶은 강한 충동이 들지만 바깥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가족을 생각하여 빠져나갈 의지를 버리지 않는다. 과연 그에게 탈출할 기회는 찾아올까? 소설은 열린 결말로 그에게서 시선을 거둔다. 


 '콘크리트의 섬'은 문명 비판을 담고 있다. 인간은 무자비한 자연 앞에서 약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문명을 만들어냈으나 아이러니 하게도 그 문명에 너무 의존하느라 오히려 더 약해져버렸다는 메세지를 담고 있는 것이다. 메이틀랜드의 곤경은 문명의 발전 속에서 오히려 더 소외되기만 하는 인간 보편의 운명을 상징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죽음을 암시하는 것 같은 장면을 매개로 문명과 격리된 교통섬의 공간으로 삽입되게 된다는 것이 의미심장하다. 그것은 인간의 진정한 성장이 문명의 안에선 불가능하다는 뜻일까? 어쨌든 메이틀랜드는 야만의 영역이라 해도 무방한 교통섬에서 전보다 더 강한 인간이 되는 건 사실이다.


 '로빈슨 크루소' 이야기를 현대 문명에 빗대어 새롭게 써내려 간 '콘크리트의 섬'은 이처럼 찾아낼 수 있는 다양한 의미들이 있어 더욱 연거푸 읽게 되는 매력적인 작품이다. 왜 여전히 J. G 밸라드의 팬으로 남을 수 밖에 없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다.



[원서 초판본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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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소녀들
팜 제노프 지음, 정윤희 옮김 / 잔(도서출판)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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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는 1943년. 미국은 독일 점령 하의 프랑스에서 군사 정보를 획득할 목적으로 오직 여성으로만 첩보 부대를 결성, 잠입시킬 것을 계획한다. 여성만으로 이뤄진 첩보 작전을 결행하게 된 것은 그동안 프랑스에 보낸 남성 첩보원들이 계속해서 독일 비밀 경찰들에게 붙잡혔기 때문이다. 유태인 출신 여성 장교 엘레노어가 이 부대의 총책임자가 되어 원래 군인이 아닌, 여러 사연을 지닌 민간인 여성들을 고용, 첩보 부대원으로 훈련시키기로 한다. 오직 프랑스 말을 잘 한다는 이유로 고용된 그녀들은 평범한 여성들로 마리 같은 경우는 양육비가 필요해서 요원이 될 것을 수락한 것이었다. 훈련은 잘 이뤄져 마리를 포함한 12명의 여성 대원들은 프랑스에 투입된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그녀는 독일 경찰에게 전원 체포되어 미스터리 하게 사라진다. 그래서 제목이 '사라진 소녀들'인 것이다. 지금까지 이야기는 팜 제노프의 '사라진 소녀들'의 줄거리를 대략적으로 소개한 것이다. 





 이 소설은 인물들을 번갈아가며 그 각각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소설의 시작을 여는 것은 그레이스란 여성이다. 그녀는 역에서 우연히 가방 하나늘 발견하는데, 거기에 들어있는 것은 놀랍게도 위에서 말한 '사라진 소녀들'에 대한 파일들이었다. 이 때가 1946년. 이렇게 소설은 두 개의 시간대를 다룬다. 하나는 '사라진 소녀들'이 주축이 되는 1943년이고 다른 하나는 그녀들이 왜 사라졌으며 그 이후에는 어떻게 되었는지 추적하는 1946년이다. 엘레노어는 부대의 책임자로서 자기 부하들이 사라진 시건에 대한 막중한 책임을 지고 유족을 위해서라도 끝까지 파헤칠 것을 다짐하고 결국 그걸 해낸다. 그레이스는 우연히 사건에 뛰어들게 되었지만 자신과 동일한 평범한 여성들이 그토록 많이 갑작스레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그걸 그저 없던 일로 치부해버리려는 정부에게 분노하여 자기 힘으로라도 진실을 찾으려고 한다. 이 둘이 끝내 알게되는 사건의 내막은 진실로 충격적인 것이다. 전쟁이라는 거대한 흐름에 휩쓸려 덧없이 사리진 개인들이 너무나 많다. 그런 비극에 대해 아무런 신경을 쓰지 않는 정부도 많다. 더구나 그것을 획책까지 해 놓고서 말이다. 소설은 그렇게 정부가 조장하고 방기한 개인들을 다시 역사의 중심에 올려놓고자 한다. 그들처럼 아직 관심의 조명을 받지 못하는 이들 또한 우리의 시선 앞으로 소환하기 위해서. 팜 제노프의 '사라진 소녀들'은 첩보 소설의 외양을 하고 있지만 이러한 깊은 역사적 주제를 담고 있는, 그런 까닭에 꼭 한 번 읽어보면 좋을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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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버드, 블루버드
애티카 로크 지음, 박영인 옮김 / 네버모어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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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이 심한 미국의 텍사스. 거기서 흑인 대런은 텍사스 레인저로 일하고 있다. 텍사스 레인저란 쉽게 말하면 텍사스 주의 FBI라 할 만하다. 현재 그의 삶은 내딛는 곳마다 진창인 상황이다. 가정에 대해서라면 아내 리사와의 관계가 좋지 않고 일에 대해서라면 한 흑인이 자신의 주거를 침입했다는 이유로 백인을 쏘아 죽였는데 대런이 그 흑인을 비호하고 있다는 의심을 받아 정직을 당했다. 그러다 친구인 FBI 그렉으로부터 한 가지 제안을 받는다. 텍사스 주 라크에서 일어난 두 명의 살인 사건을 개인적으로 조사해 달라는 것이다. 한 명은 흑인 남성이고 다른 한 명은 백인 여성이다. 라크는 인구가 178명밖에 되지 않는 작은 마을이라, 갑자기 살인이 두 번이나 연이어 일어난 것이 아무래도 사건들 사이에 뭔가 연관 관계가 있어 보인다는 것이다. 대런은 텍사스는 자신의 고향이지만 여전히 여기서는 흑인 보다 백인의 살인 사건을 중시한다는 걸 알기에 자신이라도 나서서 흑인 살인 사건을 조사해야겠다고 생각하고 그렉의 제안을 수락한다. 




 에드거 최우수 작품상을 비롯 CWA 스틸 대거 상과 앤서니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한 애티카 로크의 '블루버드, 블루버드'는 이렇게 시작한다. 제목의 블루버드는 미국의 블루스 가수인 존 리 후커가 발표한 노래에서 따온 것으로 한 편으론 사건의 진실을 찾아가는 대런을 상징하기도 하고 또 다른 하나는 살해당한 흑인 마이크 라이트를 찾아 라크 마을에 온 아내 랜디를 상징하기도 한다. 이 두 인물이 소설의 주역이 되는데, 그들은 함께 하면서 살인 사건들에 얽힌 진실과 그 와중에 받게 되는 아픔을 나눠 나간다. 작가가 이 둘을 하나의 관계로 묶는 것은 아마도 같이 부부 관계의 위기를 겪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대런도 아내 리사와 거의 결별 직전까지 가 있지만 랜디 역시 죽은 남편과 이혼의 위기까지 다다라 있는 것이다. 그러나 대런은 아내가 떠날 것을 알면서도 텍사스 레인저를 그만둘 수 없고 랜디 또한 왜 남편이 여기까지 와서 살해당했는지 알기 전까진 라크를 떠날 수 없다. 이건 그대로 왜 대런 같은 흑인들이 얼마든지 텍사스를 떠나 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인종차별이 심한 텍사스를 떠나지 않는 것인 지에 대한 이유와 그대로 이어진다. 거기에 대런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는 것이다.


 '텍사스는 고향이니까요.'


 내가 읽은 '블루버드, 블루버드'는 인종차별이 여전한 미국 현실에 대한 비판임과 동시에 쉽사리 끊을 수 없는 관계의 딜레마를 뭉근하게 보여주는 스릴러였다. 그건 라크에서 유일하게 흑인이 출입할 수 있는 선술집을 운영하고 있는 제니퍼를 둘러싼 관계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제니퍼에게 얽힌 과거, 갑자기 제니퍼와 시작된 사랑 때문에 헌신했던 음악 밴드를 떠나 그녀의 곁에 정착하고야 말았던 조, 그리고 죽기 직전에서야 밴드를 홀연이 떠나버렸던 그를 용서한 삼촌의 뜻에 따라 그의 기타를 돌려주기 위해 라크로 찾아온 죽은 마이크 라이트 하며. 이것은 떠난 자와 남은 자의 이야기 임과 동시에 떠날 수 없는 자들이 그것을 숙명의 하나로 받아들인다면 현재의 관계를 어떻게 꾸려나가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했다. 소설이 문제로 삼고 있는 인종차별 역시 후자와 관계가 있다. 그러니까 결국 미국이라는 곳을 백인과 흑인 둘 다 떠날 수 없다면 소설에 등장했던 허다한 죽음과 같은 커다란 비극을 양산하기 전에 전과 같은 차별과 적대의 시선은 거두는 게 좋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다. 애티카 로크의 '블랙버드, 블랙버드'는 놀랍도록 세밀하고 생생한 등장인물들과 사회의 묘사를 통해 은근히 거기에 대한 사유로 이끈다. 그렇다고 재미 보다 깊이가 더 뛰어난 소설이라고 말하고 싶진 않다. 작품이 전하고자 하는 주제에 깊이 천착하게도 만들지만 전개될 수록 밝혀지는 사실들 때문에 확실히 후반으로 갈수록 읽는 속도가 붙는, 스릴러적 재미도 있기 때문이다. 분명 이렇게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기 때문에 화려한 수상 경력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스릴러적 재미도 살아 있고 현재 미국 남부 사회의 현실을 깊이 있게 들여다 볼 수 있는 이 소설을 아무래도 추천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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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부러진 계단 스토리콜렉터 93
딘 쿤츠 지음, 유소영 옮김 / 북로드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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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술의 발전엔 밝음과 어둠이 있습니다. 원자력에 원자력 발전이란 밝음과 핵폭탄이라는 어둠이 있는 것처럼 말이죠. 나노와 AI의 기술 역시 그 중 하나일 겁니다. 그 기술을 특히 의료 분야에서 각광받고 있죠. 체내에 주입해 자율 활동으로 몸 안에 있는 병원체라든가 암세포 같은 것들을 분석, 정확한 대응을 가능하도록 만들 수 있으니까요. 이를 통해 불치병까지 치료할 수 있으리란 전망입니다. 하지만 그 밝음만큼 어둠도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오드토머스 시리즈로 유명한 미국의 장르소설가 딘 쿤츠는 그 어둠에 집중하여 일련의 시리즈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현재 5권까지 발간된 제인 호크 시리즈입니다. 전직 FBI인 여성 제인 호크가 주인공인 시리즈죠. 그 제인 호크는 '테크노 아르카디언'이라 불리는 집단과 단신으로 맞서 싸웁니다. 


 미국의 정재계에서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는 소수의 인물들로 이뤄진 그 집단은 어둠 속에 숨어 자신들이 가진 나노 기술로 자신들이 우두머리가 되는 전체주의 사회를 꿈꾸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나노 로봇들을 호박색 액체 상태로 사람들 체내에 주입하여 그들의 두뇌에 오로지 복종하는 것만이 전부인 노예로 만드는 세뇌 프로그램을 부팅시키는 것이죠. 이러한 '나노웹 기술'을 통해 그들은 고대 그리스와 똑같은 노예 사회가 다시 도래하길 바랍니다. 그래서 자신들도 아르카디언이라 부르는 것이죠. 아르카디아는 고대 그리스가 생각했던 유토피아의 이름이니까요. 오로지 그들의 성적 환락만을 위해 멀쩡한 여성들은 나노 기술로 성노예로 만든 곳도 소설엔 등장하는데, 거기 이름은 '아스파시아'입니다. 이 역시 고대 그리스에서 따온 것이죠. 아시다시피 당시 아테네에서 가장 잘 나가는 기생이자 페리클레스의 정부인 여성의 이름이니까요. 이처럼 이들은 그리스를 동경합니다. 철저하게 신분이 계급화된 사회를. 한 테크노 아르카디언의 진술에 따르면 이미 16,000명이 그런 상태가 되었다고 하는데 이들 역시 평민, 가축 등등의 계급으로 분류되어 있다는 군요. 


 


 그 분류에 따라 그들은 테크노 아르카디언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일례로 '아스파시아;에서 성적인 봉사만 하거나 그들의 시설이나 자택을 지키는 충실한 경비견 노릇만 하는 것이죠. 때로는 단지 재미를 위해 자살을 당하기도 하며 사회적 혼란을 부추길 목적으로 평화적 집회에 숨어들어가 자폭을 감행하기도 합니다. 한 평화적 집회에선 노예가 된 이들의 자폭으로 300명이 사망했다고 하는군요. 한 머디로, 노예가 되면 자신의 삶은 없습니다. 오직 테크노 아르카디언의 이익과 재미를 위한 도구로 전락할 뿐입니다. 이번 시리즈 세 번째 작품인 '구부러진 계단'에서 나노웹 기술의 새롭게 희생자가 된 타누자와 산자이 남매처럼.


 그런데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 건 오직 제인 호크뿐입니다. 이제 FBI도 아니라 일개 평범한 시민에 지나지 않는 제인 호크만이 가장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는 국토안보부뿐 아니라 FBI, 경찰력까지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는 테크노 아르카디언과 홀로 맞서고 있는 것이죠. 가히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 할만합니다. 그것도 타노스 급의 골리앗과 맞서 싸우는 형국인 것이죠. 게다가 그녀는 커다란 약점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어린 아들 트래비스 또한 아르카디언의 마수로 부터 지켜야 하는 것이죠. 이토록 약점이 많은 제인 호크이지만 그들과의 대결에 있어서 전혀 꿀리지 않습니다. 아니, 전적만 보면 아르카디언의 완패라고 해도 좋을 정도입니다. 그녀의 돌팔매는 지금까지 골리앗의 약점들을 제대로 공략했습니다. 그 결과 음모를 알아냈고 보다 상층부의 인물들을 하나씩 찾아 처리할 수 있었죠. 이것이 '사일런트 코너'와 '위스퍼링 룸'까지 이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제인 호크는 이제 보다 더 윗선에 이르렀습니다. 사이먼과 헨드릭슨 형제에게 말입니다. 하지만 아르카디언 역시 손을 놓고 있진 않습니다. 그들은 제인 호크를 잡으려면 아들을 손에 넣어야 한다는 걸 깨닫고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자원을 동원하여 추적을 개시한 것입니다. 은밀하게 미국 권력을 장악한 그들답게 마수는 순식간에 트래비스에게 뻗쳐오고 제인 호크의 부탁으로 트래비스를 보호하고 있었던 군인 출신 부부, 개빈과 제시카는 트래비스를 지키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합니다. 이것이 바로 시리즈 세 번째 작품, '구부러진 계단'의 대략적인 내용입니다. 그러니까 이야기는 세 부분으로 나뉘어 돌아가며 전개되는 셈이죠. 하나는 타누자 - 산자이 남매 이야기, 다른 하나는 제인 호크의 추적 이야기 또 다른 하나는 트래비스의 도피 이야기. 


 시리즈의 다른 작품과 달리 '구부러진 계단'만이 가지는 이채로운 점이 있습니다. 그건 바로 타누자 - 산자이의 이야기에서처럼 나노웹 기술이 어떤 식으로 사람의 의식을 완전히 바꿔놓는지 마치 1인칭 시점으로 그걸 목도하듯 상세하게 묘사해 놓았다는 것입니다. 타누자 - 산자이 남매뿐만 아니라 후반에 이르면 아르카디언 주요 인물의 내면을 통해 더욱 보강되어 나오기도 합니다.(이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선 스포일러가 되기에 밝히지 않겠습니다.) 제목의 '구부러진 계단'은 이것의 정점에 있습니다. 그건 아르카디언을 탄생시킨 하나의 태고적 장소임과 동시에 나노웹 기술이 궁극적으로 어떤 것을 기반으로 사람의 이식을 형성하는가에 대한 증거이기도 합니다. 그건 제인 호크를 '구부러진 계단'으로 이끄는 인물이 혼잣말처럼 떠드는 다음과 같은 말에 집약되어 있지요.


 '나는 혼자 생각하고, 혼자 놀고, 아무도 내가 혼자 뭐라고 말하는지 모르지.'(p. 330)


 아마도 그렇기에 작가는 제인 호크를 엄마로 만든 것 같습니다. '구부러진 계단'은 딘 쿤츠가 왜 제인 호크를 모성의 존재로 만들었는지 잘 알게 하는 작품입니다. 여기엔 두 가지 뚜렷하게 대비되는 모성의 모습이 나오니까요. 제인과 반대되는 모성은 지속적으로 자기 자식들에게 단절을 가르칩니다. 사람의 관계란 오로지 지배와 복종밖엔 없다고 말이죠. 하지만 제인의 모성은 완전히 반대의 모습을 보여주죠. 그녀는 헌신적으로 자신의 아들을 지키려 하니까요. 제인은 아들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지만, 반대의 모성은 그렇지 못합니다. 반대편의 자식이 기억하는 모성은 오직 공포와 폭력 뿐이죠. 세뇌 당한 타누자 - 산자이 남매가 마지막에 했던 것도 이를 잘 보여줍니다.


 딘 쿤츠가 '구부러진 계단'에서 이토록 모성의 대비를 뚜렷하게 연출한 것은 아마도 다음 편 때문일 것입니다. 네 번째 작품인 '금지된 문'에선 이 두 모성 사이에 전면전이 펼쳐질 것 같으니까요. 나노웹 기술이 주입된 이들이 마치 영화 '킹스맨'에서 그랬던 것처럼 대량으로 폭동을 일으킨다고 하니 말이죠. 그런 장애물을 뚫고 제인 호크는 아들을 구하기 위해 미국 대륙을 횡단해 나가야 합니다. '구부러진 계단'은 그 전면전을 위한 징검다리로 나노웹 기술의 끼치는 영향을 상세히 기술하여 네 번째 작품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보다 핍진성을 부여하기 위한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물론 시리즈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를 부각시키는 것도 있구요. 네 번째에서 제인이 직접 아들을 구하게 되는 건 바로 여기 세 번째에서 두드러진 모성의 대비를 자연스럽게 보다 명확하게 하는 것이겠죠.


 여하튼 여전히 흥미로운 작품이었고 네 번째 작품을 잔뜩 기대하게 했습니다. 과연 다음 번에 펼쳐질 제인 호크의 전쟁은 어떤 양상일지 궁금하네요. 무엇보다 대규모 전이 예상되리라 더욱 그렇습니다. 부디 다음 권이 빨리 나와주었으면 좋겠네요. 


['구부러진 계단'의 미국판 표지, 여기선 제인 호크의 모습을 볼 수가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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