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스티드 캔들 에드거 월리스 미스터리 걸작선 1
에드거 월리스 지음, 양원정 옮김 / 양파(도서출판)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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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세기 초에 활약한 영국의 추리 소설가 에드거 월리스. 그는 우리가 잘 아는 킹콩의 원안이 되는 극본을 쓴 사람이기도 하다. 이번에 나온 '트위스티드 캔들'은 1905년, '네 명의 의인'을 데뷔한 그가 13년 뒤인, 1918년에 발표한 작품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3. 1운동이 일어나기 1년 전이다. '트위스티드 캔들'은 탐정 역할을 하는 티엑스도 등장하고 밀실 살인 사건이 나오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전 추리 소설 보다는 피카레스크에 속하는 작품이다. 누구보다 교활하고 무시무시한 악의를 내뿜는 '카라'라는 악당의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소설의 대부분은 존 렉스맨이라는 성공한 미스터리 소설가가 이유를 알 수 없는 카라의 흉계로 인해 겪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고난이 차지하고 있다. 알바니아 출신의 카라는 엄청나게 부유한데다 명망있는 귀족이라 누구도 그가 악당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범죄를 통해 돈도, 명예도 더이상 구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오직 단 한 사람만이 그가 악당이라고 의심한다. 그가 바로 경시청 최고의 형사, 티엑스다. 소설은 마치 소나타 형식처럼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첫 부분은 주요 등장인물을 소개하고 두 번째 부분은 카라의 가련한 희생자가 된 렉스맨을 구하기 위한 티엑스가 여러 가지 모습으로 카라와 대결하는 장면들을 그리고 있으며 마지막은 스포일러가 되기에 밝힐 수 없지만 수수께끼의 밀실 살인 사건이 일어나고 그 사건이 해명되는 부분이 차지하고 있다. 전개가 고전 범죄 소설의 형식에서 그리 벗어나지 않아서 조금 옛스러움을 느낄 수 있으나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내는 데 있어 따라올 자가 없었다는 줄리언 시먼스의 작가에 대한 평가 그대로 여러가지 사건을 끊임없이 배치하여 지루하지 않도록 만든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이었을, 비행기를 이용한 탈출이라는 꽤나 대담한 연출까지 선보이고 있어 그렇지 않아도 다양한 사건 전개와 탐정과 범인 사이의 선명한 선악 구도에 더하여 빠른 전개로 흡인력 있는 작품을 더 인상 깊게 만들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1960년에 영국에서 이 소설을 영화로 만들었을 지도 모르겠다.



 


 무구한 렉스맨을 그토록 잔인하게 괴롭힌 카라의 동기가 흥미로운데, 그건 오로지 자신의 자존심이 상처 입었기 때문이다. 부와 권력, 모든 것을 다 가진 그가 누구나 할 것없이 선망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데, 렉스맨과 그 아내에게 있어서만은 그렇지 못했던 것이다. 이러한 것은 당시로서는 꽤 이례적인 것으로 이로써 에드거 월리스는 현대에 일어날 범죄는 과거와 꽤 다를 것이라는 걸 예견하고 있다. 다음과 같은 티엑스의 말을 통해서 말이다.


 "정말이지 불쌍한 눈 먼 맹수가 따로 없군." 티엑스는 답답하다는 듯 맨서스를 쳐다 보았다.

 "자넨 엄청난 범죄들이야말로 물질적인 욕망이나 구체적인 이익을 얻을 가능성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정녕 모른단 말인가?(...) 자신의 아내를 때리는 저속한 인간들은 말이지, 맨서스. 아내가 자신을 형편없는 인간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그러는 거야. 주변 사람에게 좋은 평판을 얻고 싶어하는 마음이야말로 우리 삶의 가장 큰 관심거리이자 우리 영국인이 지니고 있는 민족성이네.(p. 100 ~ 101)


 제목의 '트위스티드 캔들'은 고문도구로 사용되는 양초를 뜻한다. 단순히 자기 존재의 과시를 위해 자행되는 고문을 암시하고 있다. 그런데 당시는 또한 세계 제1차 대전이 한창 벌어지는 와중으로 곳곳에서 이기주의로 인해 타인의 삶이 무참히 파괴되고 있었다. 약자들의 삶에 아무런 관심을 두지 않고 마음껏 유린하는 소위 제국이라 말하는 그 때의 강대국들은 거의 카라나 진배 없었다. 집요하고도 잔인학 악당 카라는 정말로 그런 나라를 비유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당시 상황을 염두에 두고 읽으면 더 흥미로운 이 소설은 나처럼 고전 범죄 소설에 애틋한 그리움을 간직한 이에겐 더 할 나위 없이 좋은 선물이 되어줄 것 같다. 여성에게 진실을 실토하게 만들고 꼼짝 못하도록 협박하는 게 고작 키스라니, 사지 절단이 예사로 나오는 현대 범죄 소설을 즐겨 읽는 이들에겐 귀엽게 보이기까지 하는 연출인데, 당시만 해도 엄청난 공격이었고 범죄였던 키스를 지금은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과도 같이 그만큼 우리가 타인을 침해하는 정도에 대해 너무나 무감각해진 것 같아서 씁쓸한 마음도 든다.


  "두려움에 떨고 있군, 그래!" 카라가 홀랜드 양의 귀에 입을 가까이 대고선 소곤거리며 희롱했다. "이제야 두려워하고 있어. 그렇지? 만약 소리를 지르면 다시 키스할 거야, 알겠나?"(p. 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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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18-12-25 0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은 정말 사람을 잔인하게 죽이는 모습이 나오기도 합니다 실제로도 그런 일이 일어날지... 제가 잘 모르는 거고 갈수록 사람은 잔인해지는지도 모르겠네요 그런 소설을 보면 무엇을 얻으려는 그럴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여기에서는 자존심 때문이라니... 누구나 자신을 좋게 여겨야 한다고 생각하다니, 그런 모습은 사이코패스에 가깝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소시오패스라고 해야 할지...

성탄절이네요 저는 그날이라고 다를 건 없지만... 오늘 하루 평화로우시길 바랍니다


희선

2018-12-26 00: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2-26 22: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가라, 아이야, 가라 1 밀리언셀러 클럽 46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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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켄지와 제나로 시리즈를 정말 좋아한다. 이렇게 시리즈를 전권 소장하고 있을 정도로.




 이유는 많다. 일단 캐릭터가 너무 좋고(그 중에서 앤지 제나로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여성 캐릭터다.) 이야기가 다들 흥미로우며(시리즈의 마지막 '문라이트 마일'은 어쩔 수 없이 우울했지만) 마음에 훅 들어오는 문장도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내가 이 시리즈를 좋아하는 건 이 두 주인공들이 나와 그리 다르지 않는 고민을 하고 내가 그러는 것처럼 힘겹게 버텨가면서 그 고민에서 헤어날 길을 찾아 분투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고민이냐고?

 그건 당신이 최근 일어난 PC방 아르바이트생을 무참히 살해한 사건이나 곧 결혼을 앞둔 어린이집 교사가 아무 것도 아닌 이유로 맘 카페 회원들에게 신상이 털리고 괴롭힘을 당하다가 끝내 자살해 버린 사건 아니면 여전히 우리 마음 속에 커다란 아픔으로 남아 있는 세월호 참사를 보았을 때 드는 생각과 비슷하다. 이토록 갑자기 아무 이유없이 생명을 잃을 정도로 세상이 온통 우리가 헤아리기 어려운 악의로 가득한데, 그 속에서 우리는 과연 어떻게 버텨나갈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고민이다. 켄지와 제나로는 늘 이 고민을 마주한다.


 대표적으로 '가라, 아이야 가라'가 그렇다. 한 아이가 실종된다. 무책임한 엄마에게서 자주 방치되고 학대 받는 아이였다. 아이가 사라져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오직 아이의 외숙모만이 걱정하여 켄지와 제나로에게 찾아온다. 아이를 찾아달라고. 그런 부인에게 켄지는 말한다.


  "맥크레디 부인, 돈 낭비가 될 겁니다."


 그러자 외숙모는 이렇게 대답한다.


 "조카를 낭비하는 것보단 낫겠죠."(1권, p. 21)


 미국에선 매일 2,300명의 아동이 실종된다(p. 15). 그 중에서 300명의 아이들이 영영 돌아오지 못한다.(p.16). 이 아이들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우리는 그걸 2권에서 아주 아프게 확인한다. 어른들의 이기적인 욕망에 처참하게 희생되어버린 몰골로. 켄지와 제나로는 아이가 관련된 사건을 가급적 맡지 않으려 한다. 그 사건을 통해 또 얼마나 무섭고 어두운 세상의 악의를 보게 될 지 두렵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악의 때문에 절망하여 자신 또한 괴물이 되어버리지 않을까 염려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가라, 아이야 가라'에선 너무나 많이 보아버린 세상의 어둠 때문에 인간과 괴물의 경계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인물들이 많이 나온다.



 켄지와 앤지가 큰 호감을 갖고 있는, 아동 유괴 범죄 담당의 브루사드 형사는 가장 대표적인 존재다. 맡은 업무로 인해 자주 이성의 한계를 가볍게 초월하는 인간의 어두운 모습을 만나게 되는 브루사드는 어떻게든 사라진 아이를 찾는 것만이 온통 까만 밤과도 같은 이 세상을 그나마 조금이라도 밝힐 수 있다는 생각으로 가까스로 버텨 나가고 있다. 우리가 그러하듯이.


 그런 의미에서  켄지와 제나로, 브루사드를 비롯하여 '가라, 아이야 가라'에 나오는 인물들은 저마다 우리의 도플갱어들이며 그들의 길은 단 하나의 질문에 대한 답을 우리를 대신하여 찾는 여정이라 할 수 있다.


 내 손을 강하게 잡고 있는 어둠을 놓아버릴 수 있는 길은 어디에 있을까?


 우리의 대역이 된 그들은 고민하고 갈등하며 버티면서 저마다 자신만의 길을 찾는다. 켄지는 붕괴된 질서를 방치하고 있는 신을 원망하고 앤지는 조금이라도 구원이 될 수 있는 걸 선택한다. 부바는 일단 눈 앞의 악부터 제거하고 본다. 길이 이렇게 다른 건, 답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더하여, 누군가 대신 답을 해 줄 수 없는, 오직 스스로의 힘으로 대답을 찾아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우리 삶 또한 그러하듯이, 어둠을 몰아낼 여명이 쉬이 찾아오지 않는 까닭이다. 아니, 가면 갈수록 더 큰 어둠을 목도하며 그 앞에서 우리가 참으로 연약하다는 걸 절감하는 탓이다.


 이 소설에서 켄지와 앤지의 길이 그러하다. 믿었던 인물은 자신을 배신하고, 아이를 위해 최선이라 여겼던 선택도 아이의 삶에 아무런 변화를 가져다 주지 못한다. 구원을 찾으려 뭔가를 하면 할수록 더욱 흐려져 버린 흙탕물을 마주할 뿐이다.


 "올해 워싱턴에서 생면부지의 엄마에게 딸의 양육권을 넘긴 판결이 나왔죠. 단지 생모라는 이유 때문이었어요.(...) 생모는 태어난 지 6주 된 또 다른 딸을 죽인 죄목으로 복역했어요. 딸 아이가 울어대자 화가 나서 아이의 목을 졸라 쓰레기통에 던져버리고는 바비큐파티에 갔다는 겁니다. 이 여자한테는 남은 아이가 둘 있었어요. 하나는 친조부모가 키우고 있었고 다른 아이는 수양 부모에게 있었죠. 그녀는 딸을 살해한 죄로 2년 밖에 복역하지 않았고 지금은 양부모에게서 뺏은 딸을 키우고 있어요. 양부모가 법원에 양육권을 청원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죠. 이건 실화예요. 찾아보세요."

 "말도 안 돼요."

 앤지가 말했다.

 "아니, 말 돼요."

 "도대체 어떻게...."

 "그게 미국이니까요. 모든 성인은 자기 아이를 산 채로 씹어먹을 전적이고도 배타적인 권리를 갖는다."(2권, p. 215)


 어둠은 갈수록 강하고 우리는 늘 차라리 거기에 먹히고 싶은 유혹을 받는다. 괴물이 되는 길과 사람으로 남는 길 사이에서 갈팡질팡 한다. 그런 우리의 연약함, 그로 인한 고통을 너무나 잘 아는 데니스 루헤인은 '가라, 아이야 가라'에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최대한 받아들여 어떤 길을 걸어갈 것인가 스스로 생각토록 한다. 진정한 강함은 누군가가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직접적인 경험의 축적을 통한 자발적인 각성 속에서 비로소 도래하기 때문이다. 데니스 루헤인은 독자에게 바로 그런 것을 주려고 한다. 


 '가라, 아이야 가라'는 단순한 스릴러가 아니다. 마치 스릴러 판, 단테의 '신곡'과도 같이 희망 없는 지옥의 순례이며 그 지옥 속에서 인간의 위엄을 잃지 않도록 도와주는 베르길리우스라 할 수 있다. 물론 눈 앞에 펼쳐진 광막한 악의의 어둠에도 불구하고 사람으로 남는 길을 선택할 때의 얘기지만.


 만일 당신도 사람으로 남고자 한다면 당장 켄지와 앤지를 만나라고 권하고 싶다. 나처럼 그들의 신도가 되라고.

 걸으면 걸을수록 더 커다란 어둠을 마주하는 그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인간다움을 굳건히 유지하는 그들의 모습 자체가 희망이 되어 줄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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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베스 호가스 셰익스피어 시리즈
요 네스뵈 지음, 이은선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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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져라, 꺼져라, 짧은 촛불!

인생이란 움직이는 그림자일 뿐이고

잠시 동안 무대에서 활개치고 안달하다

더 이상 소식 없는 불쌍한 배우이며

소음, 광기 가득한데 의미는 전혀 없는

백치의 이야기다.


-세익스피어, '맥베스' 중에서 -



 윌리엄 세익스피어 서거 400주년을 맞이하여 현대 유명 작가들이 그의 대표작들을 재해석하여 자기만의 소설을 쓰는 '호가스 세익스피어 프로젝트'가 발표되고 어떤 작가들이 거기에 참여하고 있는지 명단을 미리 알렸을 때 내 눈에 가장 먼저 띄었던 작가는 바로 '요 네스뵈'였다. 해리 홀레 시리즈를 너무나도 아끼는 나로서는 당연한 반응이었다. 요 네스뵈는 권력을 향한 욕망에 눈이 멀어 스스로 파멸의 길로 나아가는 '맥베스'를 맡았다. 늘 사랑으로 아파하고 그로인해 고난을 자처하는 해리 홀레를 떠올린다면 리어왕이 좀 더 그와 맞지 않을까 싶었지만 우울과 죽음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해리 홀레를 생각한다면 맥베스도 제법 괜찮을 것 같았다. 그런 파멸의 궤적을 그리는 데 있어 능한 작가가 바로 요 네스뵈였으니! 그러고 보면 '맥베스' 처음에 등장하는 맥베스가 극 중에서 첫 전투를 치르게 되는 이가 바로 노르웨이의 왕 '스위노'다. 혹시 이것 때문에 요 네스뵈가 맥베스를 맡게 된 건 아니겠지? 요 네스뵈가 노르웨이 작가라서. 안다. 말 도 안 되는 상상이란 걸. 그냥 웃자고 하는 소리다. 흰 소리는 그만하고 어쨌든 드디어 수 년의 기다림 끝에 그 작품을 만났다. 그런데 이런! 제법 두툼하다. 세익스피어의 '맥베스'는 그렇게 분량이 많지 않은데, 어쩌다 이렇게 분량이 늘어났을까? 그 궁금증 때문에라도 나는 서둘러 책을 펼칠 수밖에 없었다.




 요 네스뵈는 일단 맥베스의 골격을 그다지 바꾸진 않았다. 스위노와의 전투에서 공을 세워 덩컨 왕에게 코도의 영주로 임명되고, 갑자기 나타난 세 마녀를 통해 자신이 장차 왕이 될 것이며 버남 숲이 스스로 움직이지 않는다면 그리고 여자가 낳은 자가 상대라면 절대 파멸하지 않을  거라는 예언을 듣게 되는 것도 그대로 나온다. 물론 자멸하는 것도. 인물들 역시 원래 희곡에서 맡은 역할에 변화를 주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 네스뵈의 '맥베스'가 새로운 이야기로 읽히는 것은 그것을 아주 현대적인 이야기로 잘 옮겼기 때문이다. 희곡의 무대가 되었던 중세의 스코틀랜드는 70년대의 도시로 바뀌었다. 그런데 이 도시란 배트맨에 나오는 고담과 그리 다를 바 없다. 전직 경찰청장 케네스 때문에 부패와 마약이 만연되어 있는 것이다. 희곡에선 스코틀랜드 왕으로 나왔던 덩컨은 그런 부패와 마약 조직을 일거에 소탕하여 깨끗한 도시로 만들려고 하는 신임 경찰청장이다. 소설의 맥베스는 희곡과 마찬가지로 도시의 마약 시장을 카테(희곡에선 세 마녀를 거느린 여신 같은 존재였는데, 소설에선 마약 조직의 수장이다.) 조직과 양분하고 있던 노스 라이더 조직 급습 작전을 성공시킴으로써(그 와중에 노스 라이더 조직의 수장 스위노는 사살된다.) 덩컨에 의해, 희곡에서 코도의 영주가 되었던 것과 똑같이 조직범죄수사반장이 된다. 그러자 헤카테가 거느린 세 마녀와 같은 존재들(그들은 헤카테 아래에서 마약을 제조한다.)이 나타나 희곡과 같은 예언을 들려준다. 세 마녀는 헤카테에게 돌아가 맥베스 마음에 일단 씨앗은 심어 놓았지만 과연 맥베스가 헤카테 생각대로 움직일 것인지 의심한다. 그런 그들에게 헤카테는 맥베스 혼자라면 불가능하겠지만 레이디가 있으니까 괜찮다고 말한다. 레이디는 맥베스가 결혼한 여성으로 그녀는 인버네스 카지노의 사장이기도 하다. 소설에서 이름이 아니라 레이디로 나오는 이유는 세익스피어 희곡에서도 그냥 '맥베스 부인'으로만 나오기 때문이다. 이름을 줬어도 별 상관없었을테지만 이만큼 요 네스뵈는 원작의 골격을 유지하고 싶었던 게 아닐지. 아무튼 맥베스는 그 예언을 레이디에게 들려주고 레이디는 맥베스에게 덩컨을 죽여야 한다고 말한다. 요 네스뵈는 레이디를 맥베스만큼이나 권력 욕망에 물든 존재로 그린다. 그런데 여기엔 연유가 있다. 과거에 그녀가 잘못된 선택을 했고 그 잘못된 선택을 스스로 정당화시키다 보니 권력의 집착에서 더이상 헤어나올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레이디의 잘못을 맥베스 역시 하게 된다. 처음엔 사소한 오판에 따른 선택이었던 것이 나중엔 벗어날 수 없는 어두운 운명의 올무가 된다. 처음엔 반신반의했던 한낱 낯선 이의 예언이 나중엔 맹목적으로 신뢰하는 신탁이 되어버렸던 맥베스처럼.


 톨킨의 '반지의 제왕'처럼, '맥베스' 역시 욕망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연약해질 수 있는지 잘 보여준다. 세익스피어의 맥베스는 욕망을 자신의 인간성과 맞바꾼 자의 이야기다. 그건 그가 원하는 자리에 가면 갈수록 자신의 사람다움을 잃어버리는 것에서 드러난다. 다른 이의 죽음은 누군가에게 아픔이 되고 분노가 되지만, 맥베스의 죽음은 찰라로 묘사되며 누구에게도 잔영을 남기지 않는다. 그는 마치 원래부터 없던 사림인 것처럼 된다. 요 네스뵈는 이것을 더욱 극명하게 보여준다. 소설에서 맥베스가 자신이 원하는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살해하는 인물은 알고보면 그 때 가지고 있었던 맥베스의 중요한 정체성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덩컨은 경찰로서 맥베스가 되고 싶은 바람직한 경찰의 상징같은 인물이고 뱅쿼(희곡에선 맥베스와 함께 세 마녀의 예언을 듣는 인물이기도 하다.)는 진짜 아버지도 아니면서 진짜 아버지보다 더한 부성애로 약물에 중독되었던 맥베스를 파멸에서 건져내고 사람으로 만들어준, 달리 말하자면 두 번째 기회를 가져다 준 사람으로 인간으로써의 맥베스가 가져야 할 사람다움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이 둘을 참혹하게 살해하여 원하는 경찰청장 자리에 오르는데, 이건 그대로 권력을 차지하는 대가로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경찰로서의 정체성과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희생시키는 것과 같다. 한 마디로 그는 괴물이 된 것이다.


 그런데 맥베스는 경찰청장이 되고 난 후, 더욱 약효가 강한 마약을 찾게 된다. 마치 자신이 저지른 죄악의 크기에 비례하여 더 중독성 강한 약을 찾는 것만 같다. 여기서 약은 이중의 의미로 사용된다. 하나는 약의 중독에서 쉽게 헤어나올 수 없는 것처럼 하나의 사소한 잘못된 선택도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삶의 굴레가 될 수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맥베스의 삶이 그랬듯이 처음엔 타의에 의해 괴물이 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지속되면 이제 자의에 따라 괴물로 남는다는 것이다. 약은 명확하게 괴물의 상징이다. 사람의 증명이라 할 수 있는 이성을 억제하고 오로지 욕망의 충족만 추구하도록 만드니까 말이다. 세익스피어 희곡에서는 맥베스에게 잠을 박탈하는 것으로 점점 비인간화 되어가는 그를 나타내었다. 소설에서의 마약 중독은 마약이 늘 각성 상태에 있게 한다는 것을 감안할 때, 희곡에서 잠을 상실한 것을 빗대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잠의 상실이 소설에서 아예 사라진 것은 아니어서 더프가 맥베스를 죽이기 위해 찾아갔을 때 이런 말을 하기도 한다.


 "원하는 게 뭐야?"

 "정의와 우리의 잠을 돌려 받는 것"(p. 430)



그런 마약이 팽배해는 세상에서 자신의 이익이 아니라 정의나 타인을 위해 싸우는 사람은 모두 마약과 멀리 있다는 것도 이것을 방증한다. 한 쪽에는 괴물이 있고, 다른 한 쪽엔 사람이 있다. 맥베스의 반대편엔 더프(희곡에선 맥더프)가 있다. 희곡을 읽어 본 사람은 이 더프가 장차 어떤 인물이 될 것인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가 불륜을 저지르고 있는 연인 케이스네스(희곡에서 케이스네스는 그저 더프와 뜻을 같이 하는 스코틀랜드 귀족으로 나왔는데, 요 네스뵈는 재밌게도 소설에서 연인으로 만들어버렸다.)에게 고백했듯이, 그는 욕망보다 사랑과 책임을 더 소중히 하는 사람이다. 케이스네스를 향한 욕망 또한 아이들에 대한 책임과 사랑 때문에 과감하게 접을 수 있는 인물인 것이다. 


 내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우리 어머니는 나를 위해서 당신의 목숨을 바쳤어. 내가 살 수 있도록 당신을 희생했어. 그러니까 우리 어머니가 그랬듯이 사랑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게 내 천헝이라 하더라도 아이에 대한 사랑이 가장 큰 사랑이잖아. 그러니까 아이들을 위해 그보다 더한 걸 바치지는 못할망정 다른 여자를 사랑하는 내 이기적인 욕심에 아이들에게서 가족을 빼앗겠다니, 그런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우리 어머니의 무덤에 침을 뱉는 거나 다름없어.(p. 313)


 올곧게 욕망의 길만 따랐던 맥베스와는 정반대의 남자. 하지만 아직 맥베스를 만나지 않은 분들을 위해 여기까지만 말하기로 하자. 지금은 그저 세익스피어가 맥베스를 통해 구현하려 했던 주제를 현대적으로 잘 리메이크 하고 생생한 현실과 심리 묘사로 잘 살을 붙여 더욱 피부에 와닿는 이야기로 만들었다는 것만 말해두려 한다. 부피가 이토록 두터워진 연유는 바로 거기에 있었다. 등장 인물들을 리얼한 삶의 현장 위에서 살아 숨쉬는 캐릭터로 만들기 위해 그만한 부피로 핍진성을 부여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건 성공했고 끝까지 몰입해 읽을 수 있도록 한다. 액션 장면도 많아 더욱 지루할 틈이 없다. 맥베스를 좋아하는 사람도, 요 네스뵈를 좋아하는 사람도 다 만족할만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당연히 추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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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31 23: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1-01 20: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네 명의 의인 에드거 월리스 미스터리 걸작선 2
에드거 월리스 지음, 전행선 옮김 / 양파(도서출판)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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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전 미스터리 소설을 읽을 때, 그 평가를 가장 많이 참조하고 미스터리 팬에겐 걸출한 평론서인 '블러디 머더'로 이름 높은 줄리언 시먼스는 에드거 월리스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다작 작가들 중에서 진정한 상상력의 재능을 지닌 사람은 에드거 월리스가 유일했다.('블러디 머더', p. 317)


 신랄한 평가를 서슴지 않는 시먼스라 이 정도로 말하면 상찬이 분명하다. 그러나 에드거 월리스는 우리들에게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다. 무려 173편의 소설을 발표(그 중의 절반이 추리 소설이다. 그는 SF를 쓰는 것도 좋아해 많은 작품을 발표했는데 유감스럽게도 그리 성공적이진 못했다.)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엔 거의 소개되지 않았다. 그랬기에, 이 작품의 출간이 반가웠다. 그것도 윌리스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네 명의 의인'이라서 더욱 그랬다.






 '네 명의 의인'은 제목과 다르게 피카레스크 장르에 넣어야 할 듯 하다. 필요하다면 서슴없이 살인을 저지르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이 사익 때문에 저지르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사실 돈 때문에 살인할 필요가 없다. 충분히 부유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대의를 위해 살인을 감행한다. 세상을 고통 속에 빠뜨렸는데도 자신의 돈과 권력을 사용하여 법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자들을 찾아내 처형하는 것이다. 때로 여기엔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는 자를 방해하는 이들도 포함된다. 소설에서 '네 명의 의인'의 최종 목적이 되는 영국의 외무부 장관, 필립 레이먼 경이 그러하다. 최근 영국에 스페인에서 부패한 정부(엄청난 기근이 스페인에게 닥쳐 국민들이 굶어 죽어가는데도 정부는 자신의 주머니 채우기에만 급급해 국민의 엄청난 분노를 샀다.)를 무너뜨리는데 앞장을 서고 있는 마누엘 가르시아가 스페인 정부의 손을 피해 망명해왔다. 그런데 필립 레이먼 경은 새로운 스페인을 위한 혁명의 등뼈와도 같은 가르시아를 스페인 본국으로 송환하는 법을 만들어 통과시키려 한다. 이 법이 실행될 경우 가르시아는 죽은 목숨이다. 그것은 현재 부패한 스페인 정부가 계속 존치하는 것을 뜻한다. '네 명의 의인'은 이것을 두고 볼 수 없다. 정의가 바로 세워지기 위해선 가르시아를 영국에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므로 그걸 방해하는 필립 레이먼 경은 죽어야 한다. 소설은 처음부터 '네 명의 의인'(실은 세 명이지만.)이 필립 레이면 경을 암살하기 위하여 준비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최근 탈퇴해 경찰에 쫓기다 죽어버린 맴버를 대신해 '네 명의 의인'이 새로 영입한 인물은 '테리'. 그러나 스페인에서 데려온 이 청년은 선뜻 합류하려 하지 않는다. '네 명의 의인'에게 그는 필립 레이먼 경을 죽이기 위해 꼭 필요한 인물이다. 과연 테리는 그들의 맴버가 될 것인가? 그 이야기를 한 축에 두고 다음으로 넘어가면 필립 레이먼 경을 암살하기 위한 과정이 본격적으로 진행된다. 그들은 스스로 신사라 자청하기에 방법도 정정당당하게 한다. 그러니까 필립 레이먼 경에게 법안을 철회하지 않으면 언제까지 죽일 것이라 예고장을 공개적으로 보내는 것이다. 아침마다 수 십 통의 협박을 받는 레이먼 경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러자 '네 명의 의인'은 자신이 마음먹으면 누구든 얼마든지 죽일 수 있다는 것과 자신의 예고장이 허튼 소리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하여 영국 하원 의회에 폭탄을 설치하고 그렇게 했다는 쪽지를 남긴다. 오직 경고의 목적이었기에 폭발을 하지 않도록 된 폭탄이었지만, 그토록 사람이 많았던 하원 의회에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들어와 폭탄까지 설치했다는 사실에 그 의회에 있던 사람은 물론 영국 전체가 공포에 잠긴다. 그 일로 온 국민의 뜨거운 관심을 받게 된 '네 명의 의인'은 그들이 전에도 대의 명분을 위해 먼 외국의 대통령까지 목을 매달아 처형하는 등 이런 일을 비일비재하게 해왔다는 게 알려지면서 더 비상한 관심과 공포의 존재가 되며 과연 그들이 제시한 시간에 레이먼 경이 죽을 것인가가 초유의 관심이 된다.


 그러나 뚝심 있는 레이먼 경은 법안 철회를 생각도 않고, 경찰은 '네 명의 의인'을 대대적으로 쫓는 한 편, 레이먼 경을 보호하기 위해 물샐틈 없는 경비로 완벽한 밀실을 만든다. 과연 '네 명의 의인'은 이 두터운 벽을 뚫고 레이먼 경을 암살할 수 있을까?


 피카레스크 장르에 밀실 살인을 뒤섞은 참신한 설정의 소설이다. 거기다 이 소설이 세상에 나온 때가 1905년임을 감안하면 돈과 권력의 힘을 빌어 법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자를 스스로 처벌하는 자경단이 등장한다는 것도 놀랍다. 자경단의 대표 작품이라 할 수 있는 배트맨도 1940년이 되어서야 등장했으니 얼마나 앞서 있는 것인가? 그러고 보니 배트맨의 설정은 아주 부유한 자가 자경단이 된다는 동일한 설정을 가지고 있는데, 혹시 밥 케인이 '네 명의 의인'을 읽고 그런 설정은 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비록 책을 읽지 않았더라도 '네 명의 의인'은 1921년과 39년에 두 번이나 무성 영화로 만들어진 적도 있어서 밥 케인이 영화로 만났을 수도 있다.


 

1939년에 나온 영화의 포스터


 어쨌거나 저쨌거나 당대엔 잘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캐릭터와 설정 그리고 형식으로 무장했으니, 왜 줄리언 시먼스가 에드가 월리스를 두고 진정한 상상력의 재능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했는지 알 것도 같다. 아주 오래된 작품이지만 피카레스크 장르에 미스터리 물, 법정 물까지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기에 마지막까지 지루할 틈 없이 읽힌다. '네 명의 의인'이 때로는 위협을 위해, 때로는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양한 트릭을 구사하는데 그것을 보는 재미도 있다. 물론 그 중 어떤 것은 좀 너무 안일한 것 같지만 말이다.(하지만 1905년이란 시간을 감안하면 용서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은 프랑스의 유명한, 범죄자 출신 경찰이자 경찰 제도의 근간을 만들었던 '비독'의 영향을 받은 것도 같다.) 아무튼 재밌다. 분량도 200여 페이지밖에 안 되니 가볍게 즐길 만하다. 고전 미스터리 소설이 취향이라면 오래도록 미싱 링크였던 것을 이제 확인한다는 마음으로 만나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다시 줄리언 시먼스에 따르면, 에드가 윌리스는 꽤 독특한 방식으로 소설을 쓰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는 인물의 이름만 적어두고 거기에 대해 다른 어떤 것도 메모하지 않았고 연재 소설을 쓸 때는 다음 편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거의 생각하지 않은 채로 즉흥적으로 썼다고 한다. 이 말을 듣고 보니 왜 '네 명의 의인'이 자유 분방한 전개를 보였는지 알 것 같다. 이런 그가 믿었던 것은 자신의 경험이었던 것 같다. 에드가 윌리스는 그리 넉넉하지 못한 집안에서 태어났고 여러 직업을 거쳐 가며 사회의 밑바닥 생활을 체험했다. 그러한 거리의 삶이란 당시를 생각해보면 범죄에 많이 노출된 삶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윌리스는 그 어떤 미사여구로도 숨길 수 없는 사회가 가진 냉엄한 진실을 보았던 것 같다. 주로 사기꾼들을 통해서 말이다. 시먼스에 따르면 윌리스는 사기꾼들의 습성과 언어에 대해 폭넓게 알고 있었고 그 지식을 작품에 효과적으로 활용했다고 한다. 이 소설에 나온 재치있는 트릭들도 그런 식의 활용이었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악인을 통해 사회의 참된 진실을 보고 그런 그들의 행위가 우리의 생각과는 반대로 가진 자들 쪽으로 너무 기울어진 사회의 균형을 바로 잡는 일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그로 하여금 지속적으로 사회가 만든 정상성의 범주를 이탈한 타자를 통해 기존 사회의 전복을 꾀하는 이야기를 쓰게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네 명의 의인'도 그렇지만 이 책의 띠지에서 윌리스의 대표작으로 소개하고 있는 '킹콩'(이것은 책으로 발표된 것이 아니라 1931년,  RKO 영화사가 당시 고릴라가 나오는 영화를 계획했을 때, 그것을 위해 썼던 110 페이지 분량의 초안이다. 월리스는 이것을 5주에 걸쳐 썼다고 한다.)도 문명 저 바깥의, 오로지 야만의 땅에서 온 타자가 아니던가. 그 타자가 자신을 이용만 하고 용납하지 못하는 기존 사회를 거의 전복시킬 정도로 뒤흔드는 것이다. 이건 그대로 혁명의 은유로 보아도 무방하다. 언제까지 타자를 배척하거나 이용만해서는 사회 역시 지속될 수 없다는 외침의 표현이다. '네 명의 의인' 역시 정확히 그 연장선 상에 있다.


1933년 '킹콩' 영화 포스터. 원안이 에드거 윌리스에서 나왔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이 소설 후기에는 나오지 않는데, 시먼스는 이 책과 관련하여 재미난 사실 하나를 알려주고 있다. 원래 이 책은 출판사에 팔리지 않아서 에드거 윌리스가 자비로 출판했다고 한다. 그는 책이 좀 많이 팔릴 수 있도록 꾀를 냈는데, 그건 마지막에 필립 레이먼 경이 사방이 가로막힌 밀실에서 살해 당하는데 과연 '네 명의 의인'이 어떤 방법으로 살해했는지 그 방법을 책에서는 밝히지 않고 누군가 정답을 맞추면 상금으로 500 파운드를 주겠다고 신문에 광고를 실은 것이다. 그런데 결과는 참혹했다고 한다. 아무도 못 맞힐 것이라 여겨서 500 파운드나 되는 상금을 걸었는데, 정답이 너무 많이 접수되었던 것이다. 이런!


 줄리언 시먼스는 에드거 윌리스의 최고작으로 1922년에 발표된 '크림슨 서클'을 꼽고 있다. '놀라운 심리 탐정' 데릭 예일이 스코틀랜드 야드와 맞붙는 이야기라고 한다. 그는 이 소설을 자신의 베스트 100으로 꼽기도 했다. 그 당시에 미드 '멘탈리스트'와 같은 심리 분석 탐정이라니, 놀랍다. 이 작품도 만나볼 수 있게되면 좋겠다.


1933년에 나온 영국판 초판 페이퍼백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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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더 포스 1~2 세트 - 전2권
돈 윈슬로 지음, 박산호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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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욕 시민들이 절대 감옥에 가지 않을 사람으로 시장, 미국 대통령, 교황에 이어 마지막으로 꼽을 만한 사람이 바로 뉴욕 형사 데니스 존 멀론이다.

 영웅 경찰.

 영웅 경찰의 아들.

 뉴욕시 경찰청 최고 엘리트팀 소속 베테랑 경사.

 맨해튼 북부 특별수사대.

 무엇보다 숨겨진 모든 비밀을 알고 있는 사나이이자 그 중 절반을 직접 처리한 장본인. (p. 9)


 스스로 말했던 것처럼 데니 멀론은 맨해튼 북부의 왕이었다. 그는 권력의 정점에 있다고 해도 틀리지 않는 특별 수사대 '더 포스'의 리더이니까 말이다. 그는 상부의 명령 없이 자의적으로 수사와 작전을 벌일 수 있었고 체포와 신문 과정에서 불법을 자행에도 간단히 넘길 수 있었다. 마피아도 그를 쉽게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 그들과 온갖 거래를 하거나 심부름을 하며 뒷돈을 챙기고 있었지만 대니 멀론을 비롯한 '더 포스'의 형사들은 그다지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다. 커다란 정의를 실현하려면 그런 작은 악행들은 필요불가결하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합법적 절차를 준수하며 윤리적으로 형사 일을 해도 뉴욕의 범죄를 근절시킬 수 있다는 이상주의를 경멸했고 그런 면에서 철저한 마키아벨리스트였다. 그런 그들에겐 거칠 것이 없었다. 그러나 달도 차면 기우는 법. 데니 멀론은 하나의 사소한 성급한 판단으로 몰락의 위기에 처하게 된다. 멀론은 그동안 선과 악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면서 위기를 잘 헤쳐나왔다. 그러나 이번에 닥쳐온 덫은 그리 만만한 게 아니다. 살면서 성취한 모든 것, 자기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족은 물론 형제나 다름없는 동료들 그리고 자신은 좋은 경찰이라는 자부심. 이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 과연 다시 한 번 더 데니 멀론에게 운이 따라줄까? 멀론이 입버릇처럼 말했던, 분명 스타워즈의 대사를 패러디한, '다 포스'의 은총이 그와 함께 하게 될까?


 '개의 힘'으로 이제 우리에게도 제법 이름을 알린 작가, 돈 윈슬로가 새로운 작품을 들고 찾아왔다. 2017년에 출간되어 그 해, 뉴욕타임즈가 선정한 최고의 소설에도 뽑힌 '더 포스'가 바로 그것이다. 뉴욕타임즈만 올해의 책으로 뽑은 건 아니다. 내셔널 퍼블릭 라디오도, 반스 앤 노블스도,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즈와 데일리 메일도 올해의 책으로 뽑았다. 비록 언론의 감식안이라는 게 그리 믿을 게 못된다고 해도 이 정도로 많은 이들이 올해의 책으로 꼽는다면야 작품이 확실히 좋긴 좋은 모양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말도 있지만 이 소설만큼은 그게 전혀 해당되지 않는다. 실제로 읽어봤더니 나 또한 올해의 책으로 꼽고 싶을만큼 뛰어났던 것이다.




 돈 윈슬로의 '더 포스'는 진정 뛰어난 작품이다. 400여 페이지 가까운 분량으로 두 권이지만 그런 길이따위 아무래도 상관없을만큼 페이지터너인데다 인종 갈등을 비롯한 온갖 구조적 모순으로 점철된 미국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해부에 서린 압도적인 깊이하며 생생하게 묘사된 등장인물의 삶이 가져다 주는 묵직한 정서적인 울림 또한 있기 때문이다. 스티븐 킹은 이 소설을 읽고 마리오 푸조의 '대부'가 생각난다고 했는데,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땐 킹이 또 과장한 것이겠거니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정말 나도 대부가 떠오를만큼 그만한 울림이 있었다. 저번에 '개의 힘'을 읽었을 때 이미 그의 역량이 심상치 않음을 느꼈지만 이번 '더 포스'는 그보다 더 성숙한 느낌이다. '더 포스' 이전에 나온, '개의 힘' 속편인 '더 카르텔(2015)'도 정말 뛰어난 소설이라고 하는데, 그는 점점 성장하고 있는 모양이다. 이 순간 나의 바람은 '더 카르텔'을 빨리 만나고 싶을 뿐이다.


 커다란 정의 실현을 위해 사소한 비리와 불법을 거침없이 행하는 형사나 경찰 조직에 대해선 익히 보아왔다. 대표적으로는 미국 드라마인 '더 와이어'가 있을 것이다. 이는 모든 합법과 윤리를 지켜서는 범죄를 제대로 근절할 수 없는 현실의 반영이다. 하지만 태평양 건너편에 있는 내겐 그 모든 게 드라마적 과장으로 보였다. 설마 가장 견제 시스템이 잘 되어있다고 자부하거나 평가받는 미국의 경찰 조직이, 지금이 엘 카포네가 설쳐대는 대공황 시대도 아니고 저토록 비리에 물들어 있을리 있겠어 여겼던 것이다. 그러나 '더 포스'를 읽어보니 그건 절대 과장이 아니었다. 뉴욕 경찰 역시 뿌리 깊이 어둠에 물들어 있었던 것이다. '더 포스'는 그걸 아주 적나라하고도 생생하게 보여준다. 시드니 루멧의 영화인 '형사 서피고'(소설에서 데니 멀론은 비리에 물든 경찰 조직을 홀로 고발했던 서피코(프랭크 서피코)를 배신자라고 욕하지만.)에 영향 받아 무려 5년 동안 수십명의 경찰들을 인터뷰 하면서 이 소설을 준비했다고 하던데, 소설에서 갓 잡은 송어처럼 펄떡 펄떡 뛰고 있는 리얼리티를 보면 빈말은 전혀 아닌 것 같다. 그러니 믿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뉴욕 경찰을 비롯한 미국 사회가 개인이 어떻게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썪어 있다는 것을 말이다. 멀론에겐 동생이 있었다. 그는 소방관으로 2001년 9.11 사태가 벌어졌을 때 진화 작업을 하다 숨졌다. 멀론에겐 동생의 죽음이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그 때문에 그는 곁에 있는 가족과 동료를 소중히 여긴다. 그러나 그러한 무리의 형성은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들기 마련이다. 무리에 절대 끼어들 수 없는 사람이 필연적으로 생기니까 말이다.


 '9.11' 이후, 미국은 대체로 그런 길을 걸어왔다. 테러를 빌미로 나와 피아를 구별지었고 피아에겐 차별로 대했다. 그렇게 9.11 이후 더욱 거세어진 미국 보수주의의 흐름을 '더 포스'는 여전히 짙게 남아 있는 인종 갈등을 가져와 매섭게 비판하고 있다. 


 당신이 겪은 일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다른 동료 경찰들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건 나도 이해해. 당신네 경찰들은 모두 프레디 그레이나 마이클 베넷(둘 다 경찰의 발포로 죽은 흑인 소년, 청년들) 죽였다고 비난받는 것이 괴롭고 억울하겠지. 하지만 자신이 프레디 그레이이거나 마이클 베넷이라서 비난을 받는 건 어떤 느낌인지 당신은 절대 몰라. 당신은 당신 직업 때문에 사람들이 당신을 증오한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나라서 사람들이 나를 중오한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잖아. 당신은 그 파란 경찰 재킷을 벗을 수 있지만, 난 이 피부 속에서 하루 24시간 일주일에 7일을 이렇게 살고 있어. 당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건, 당신이 백인이기 때문에 이해할 수 없는 건, 이 나라에서 흑인으로 산다는 것의... 무게야... 그 어마어마하게 진이 빠지는 무게가 어깨를 짓누르고 눈을 피곤하게 해서 가끔은 그냥 걷는 것만으로도 너무 힘들고 아파.(p. 239)


 이것은 멀론의 연인이자 흑인인 클로데트가 하는 말로 이 소설에서 내가 꼽고 싶은 최고의 문장이기도 하다. 어떤 정체성의 강조는 그 정체성이 될 수 없는 자의 아픔과 희생을 필연적으로 동반한다. 인종 갈등은 그 대표적인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미국은 9. 11 이후 자기만의 정체성을 강조하고 강요하는 쪽으로 흘러갔다. 9.11 이후 미국은 '애국자법'을 제정하고 국토안보부를 창설하였다. 애국자법은 모든 분야에 대해 사법집행기관의 감시를 강화하는 것으로 개인의 사생활과 통신의 자유를 비롯한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감시에 있어 국토안보부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졌다. 이쯤 되면 왜 돈 윈슬로가 멀론의 동생을 9.11에서 죽게 하고 그 트라우마에 의해 '더 포스'를 창설하는 식으로 설정했는지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 과정이 그대로 미국이 국토안보부를 창설하는 과정과 닮아 있기에 그런 것이다. 즉, '더 포스'는 '국토안보부'의 문학적인 비유다. 국토안보부는 실제 인권 침해를 하면서도 테러 방지라는 더 큰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그걸 용인했다.(오바마 역시 이와 비슷한 이유로 '애국자법을 연장하는데 서명했다.) 이건 멀론의 '더 포스'가 마피아들과 더러운 뒷거래를 정당화할 때 하는 것 그대로이다. 소설 '더 포스'는 그렇게 걸어온 미국이 어떤 결과를 낳았나 보여준다. 그것이 어떤 오늘의 현실을 빚어놓았는지를 말이다. 그들은 보다 더 단단한 내부의 결속을 위하여 외부를 도려내고 버렸지만 그렇다고 내부의 연대가 단단해진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내부의 고인 물이 썪어간데다 내부와 외부의 대립과 갈등은 더 들끓어 아주 작은 것도 방아쇠가 되어 사회를 붕괴시킬 수 있었다. 그만큼 약하고 아슬아슬한 상태가 바로 미국이었던 것이다. 소설 후반은 그걸 극명하게 재현하고 있다


 물론 '더 포스'엔 이러한 사회 비판적인 주제만 있지 않다. 이 소설은 장대한 인간 드라마이기도 하다. 선과 악, 개인과 제도 사이에서 회오리 바람 속의 연처럼 이리저리 흔들릴 수밖에 없는 인간의 연약함, 희극과 비극이 교차하는 아이러니한 삶의 순간들, 가난과 고난 그리고 그것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실천하는 용기라든가, 가랑비에 옷이 젖는 것처럼 사소한 악행을 거듭하다 되돌아 올 수 없는 파멸의 길로 치닫는 인생들하며... 그런 드라마가 유유히 펄쳐진다. 사회적인 주제에 맞춰 읽든, 인간드라마에 맞춰 읽든, 그 어느 쪽으로 읽어도 '더 포스'는 포만감을 선사하는 작품이다. 물론 그냥 재밌는 스릴러로 읽겠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이명박과 박근혜를 경험하고 최근 양승태의 사법 농단과 국민 여론을 깡그리 무시하고 영장 기각을 남발하면서 사법 농단 세력을 비호하기에 여념이 없는 사법부를 비롯하여 날이 갈수록 자신과 다른 정체성을 가진 자들에게 혐오와 적개가 깊어지는 걸 보고 있는 우리들에겐 이 소설이 특히 더 피부에 와 닿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런 이유로 감히 올해 내가 읽은 소설 중 최고의 한 편으로 꼽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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