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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적 의심
도진기 지음 / 비채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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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사 출신이라는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는 도진기 작가의 신작이 나왔다. '합리적 의심'이 바로 그것이다.

 그를 유명하게 만든 고진 변호사와 진구 시리즈는 아니다. 스탠드 얼론으로 이번엔 형사 사건 1심을 주관하는 부장판사가 주인공이다. 이름은 현민우. 별로 행복하지 못했던 결혼 생활을 선사했던 아내는 몇 년전 병사하고 지금은 아들 하나와 외로이 살고 있다. 이야기는 여느 때와 다름 없는 직장에서의 아침을 보내던 현민우가 책상 위 신문에서 한 뺑소니 사건을 읽으면서 시작된다. 그는 그 뺑소니 사건에서 희생된 여자를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바로 얼마 전 맡은 형사 재판에서 열 살 어린 남자 친구를 죽였다는 죄목으로 법정에 섰던 피고인이었으니까. '젤리 살인사건'이란 이름으로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그 사건은 판결이 쉽지 않았다. 피해자는 먹은 젤리로 목이 막혀 뇌사 상태에 빠졌다가 숨졌는데, 시신이 이미 화장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처음엔 단순 사고였던 이 사건은 나중에 살인으로 의심 받게 되었는데, 그건 그와 단 둘이 모텔에 들어갔고 그 모텔에서 남자 친구가 젤리에 목이 막혀 의식을 잃었을 때 현장에 있던 유일한 사람이었던 그녀가 남자 친구 앞으로 거액의 생명 보험을 이미 들여놓았고 보험료도 그녀가 납부했으며 생명 보험금 수익자 또한 가족이 아니라 그녀의 이름으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남자 친구가 죽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다른 남자들을 사귀고 그들과 함께 보험금을 흥청망청 써버렸던 것이다. 정황상, 보험금을 노린 살인 사건이란 심증을 굳힌 검찰은 그녀를 살인죄로 법정에 세웠던 것이다. '젤리가 목에 걸려 죽은 게 아니라 그녀가 남자 친구의 숨을 틀어막아 죽였다(p.22~ 23)'고.



 재판은 쉽지 않았다. 확실한 물리학적 증거인 시신이 이미 화장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대부분 목격자들의 기억과 정황으로 사건을 판단해야 했다. 현민우는 재판을 하는 동안 피고인 김유선이 살해했다고 판단한다. 그러나 판결을 선고하려면 좌우에 있는 배석판사도 여기에 동의해야 한다. 적어도 둘이 합의해야 판결을 선고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젊을 때의 자신과 많이 닮았다고 생각하는 민지욱 판사가 무죄 의견을 내놓는다. 이제 막 판사가 되었으면서도 모두가 다 어려워하는 법원장이 자기가 주관하는 법정에 들어왔을 때, 재판에 방해된다고 바로 내쫓아 버린 패기까지 있어서 내심 뿌듯하게 여기던 그였는데 자신과 완전히 상반되는 판결을 내놓은 것이다. 나머지 한 사람, 정남희 판사는 심증으로는 살인자라고 생각하지만 뚜렷한 물증이 없어놔서 합리적 의심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니 이럴 땐 피고인에게 이익이 되도록 무죄를 선고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믿었던 정남희 판사마저 그런 의견을 내놓자 김유선을 살인자라고 확신하고 있는 현민우는 커다란 갈등에 빠질 수밖에 없다. 절차대로 따라 김유선을 무죄로 풀어 줄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판단을 밀고 갈 것인가?


 목이 꽉 막혔다. 판사들이 흔히 빠지는 함정이다. 사람들이 합리로만 움직인다고 생각한다. 특정 상황에서 판사가 기대한 대로 행동하지 않았으면 진실이 아니라고 단정한다. 세상 일이 그들이 생각하는 대로만 착착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판사들은 종종 잊는다. 실수를 하고 바보짓도 하는 게 인간이다. 모두가 기계처럼 움직이고 계산한다면 애당초 이 사건이 일어나지 말아야 할 것 아닌가.(p. 125)


 아마도 소설 속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기시감이 들었을 것이다. 유명했던 어떤 사건과 많이 닮았는데 하며...

 맞다. 이 사건이 실제 있었던 사건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바로 2010년에 일어났던, 일명 '산낙지 사망 사건'이다. 피해자와 범인의 성별이 바뀌고 산낙지가 젤리로 바뀌었을 뿐, 소설 속 사건은 실제 사건과 상당히 유사하다. 1심과 2심의 판결 역시 다르지 않는데, 이건 스포일러가 되기에 밝히지 않겠다. 대법원에서도 판결이 내려졌다. 바로 여기, 2심과 3심의 결론을 가져온 것이 '합리적 의심'이었다. 여기에도 뭔가 덧붙이고 싶지만 역시 스포일러가 될까 봐 그만둔다. 보다 자세한 것은 책에서 직접 확인하는 게 좋을 것 같다.


 '합리적 의심'은 모두 2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합리', 2부는 '의심'이란 제목을 가지고 있다. 1부의 이야기는 주인공 현민우가 1심 판결을 내리기까지의 과정을 담고 있고 2부의 이야기는 2심의 결과와 제도로써는 세우지 못했던 정의를 현민우 스스로 바로 잡기 위해 개인적으로 노력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여기서 도진기 작가가 미스터리 소설을 주로 쓴다는 점을 감안하여 일단 밝혀야 할 게 있다. 이 소설이 진실이 모호한 살인 사건을 전면적으로 다루긴 하지만 온전히 미스터리 소설은 아니라는 것이다. 만일 이 소설에 두 발이 있다면 서로 다른 쪽에 걸치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하나는 살인 사건이 주가 되는 미스터리요 다른 하나는 주로 현민우의 고백으로 채워지는 현재 사법부란 존재의 실상이다. 특히 후자에 관해선 판사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바라는 것만큼 따라주지 못하는 사법 현실에 대한 솔직한 고백과 그 간극을 보다 메울 수 있는 길에 대한 모색이 담겨 있는 것이다.


 1부와 2부의 제목은 아무래도 그 간극을 염두에 둬야 왜 하필 '합리'와 '의심'이라고 붙였는지 알 수 있을 듯하다. 소설 속 민지욱 판사가 오로지 합리를 기준으로 사건을 판단했다가 인간이 가진 이면을 전혀 보지 못한 것에서 잘 드러나듯이, 여기서 '합리'란 세상과 무관하게 흘러가는 사법부의 현실을 가리키고 있다. 법리를 논리적으로 연결하는 것에만 매몰되어 거기까지 이르게 된 사람들의 사정이라든지,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라든지, 그런 것을 전혀 헤아리지 않는 것을 말한다. 때로 국민 감정과 완전히 반대되는 판결이 내려질 때가 있지 않은가? 그런 판결을 이 소설의 '합리' 범주에 넣어도 좋을 듯하다. 그럴 때 우리는 뭐라고 판결을 비판하는가? 민심을 전혀 헤아리지 못하는 판결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 반대에 '의심'이 있다. 의심은 보이는 법리나 사건에만 머물지 않고 거기 깃든 깊은 내막이나 마음 혹은 현실적 상황 같은 것을 더 들여다 보는 태도를 가리킨다. 다시 말해 세상 사람들이 사법부를 바라볼 때 느끼는 간극을 좀 더 줄이고자 하는 몸짓인 것이다. 작가는 그런 마음을 담아 '합리'와 '의심'으로 자신이 생각하는 사법부의 현실과 한계를 솔직히 드러내며 보다 바람직한 길은 어느 것인지 은연 중에 나타내려 하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작금에 많은 국민들이 쏟아내는 사법부에 대한 비판에 성실히 답하려는 태도이기도 하다. 다음과 같은 소설의 말을 증거로 삼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법원도 나름의 노력은 합니다. 근데 그게 갇힌 방 안에서 거울 보는 식이라 한계가 있어요.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선뜻 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판사들이 세상과 섞여서 인생 경험도 많이 하고 어떨 땐 피해도 당해보고, 뭐 그런 것들이 필요하죠. 근데, 또 판사가 너무 사람과 섞이면 불필요한 오해를 낳고 그 이유만으로 지탄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물의를 일으킨 사람과 점심식사 한 번 했다는 이유로 법복을 벗기도 해요. 그래서 더 빗장을 단단히 걸어 잠급니다.(...) 법원이란 곳은 변화를 주도하는 기관이 아니에요. 모든 것이 변할 때 가장 나중까지 남아 있다가 뒤처리를 하고서야 자신도 모습을 바꾸죠. 당시만 해도 남성 중심, 가부장적인 의식이 강했으니까... 요즘에는 시대의 흐름이 바뀌었죠. 성범죄 양형이 대폭 올라간 건 결국 시대가 변했기 때문입니다. 판사는 그걸 따라가는 존재에 불과해요.(p. 217 ~ 219)


 작가는 후기에서 법률가로서 언젠가 이런 이야기를 꼭 쓰고 싶었다고 한다. 법학전서에 나오는 착한 말씀들 말고 이십 년을 법정에서 구르면서 흘러나온 육성을 들려드리기(p. 305) 위해 이 소설을 썼다고 한다. 그 마음은 소설에 충실히 반영되어 있다. 그러니 오늘의 사법부가 왜 이 모양인지 너무나 궁금하여 그 내부를 꼭 한 번 들여다보고 싶었다면 '합리적 의심'은 그 목적에 충분히 부합해 줄 것이라 본다. 뭐, 그런 거 따지지 않고 이야기 자체로만 읽어도 괜찮다. 결말에 다소 호불호가 있을 수 있겠지만, 역시 판사 출신 작가라 그런지 법정 드라마가 아주 현실감 넘치는 데다 재미까지 주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영화 '증인'을 비롯하여 이제 우리나라에도 법정물이 제법 자리를 잡은 것 같은데, 만일 거기에 취향이 있으시다면 '합리적 의심'은 단연 좋은 선택이라는 걸 아울러 말씀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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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강
핑루 지음, 허유영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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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핑루의 새로운 작품이 이렇게 나오다니, 반가웠다.

 작가로서의 경력만 벌써 30년이고 대만에서 아주 유명한 작가이지만 그간 우리나라에서는 그녀의 작품을 보기가 힘들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 나온 그녀의 작품은 단 두 편. 하나는 그녀의 이름을 세상에 널리 알린 데뷔작 '옥수수 밭에서의 죽음'이 실려 있는 단편집이고 다른 하나는 쑨원의 아내인 쑹칭링의 삶을 그린 '걸어서 하늘 끝까지'이다. 둘 다 아주 인상적인 작품이기에 '핑루'라는 이름을 뇌리에 새겨둘 수밖에 없다.


 나도 그랬다. 작가에게 매력을 느껴 그녀의 더 많은 작품을 보고 싶었지만 만날 수 없었다.

 그러다 이렇게 2015년에 나온 '검은 강'을 만나게 되었으니 어찌 반갑지 않을 수 있으랴! '검은 강'은 그리 늦지 않게 우리에게 소개되어 더욱 기뻤다. 지금까지 나온 핑루의 소설들은 늦어도 너무 늦게 우리에게 소개되었기 때문이다. '옥수수 밭에서의 죽음'은 원래 83년에 나왔다. 그리고 '걸어서 하늘 끝까지'는 95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2013년과 2014년에서여 소개되었다. 늦어도 너무 늦은 것이다. 그것도 '걸어서 하늘 끝까지'가 먼저 소개되어 어느 정도 반향을 얻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옥수수 밭에서의 죽음'마저 만나지 못 할 뻔했다. 자꾸 이렇게 책과 상관없는 사설을 늘어놓은 것은 '검은 강'을 읽고나니 더욱 그녀의 작품에 대한 허기를 느끼게 되는 탓이다. 이제 또 한동안 볼 수 없을테니, 왜 이렇게 핑루의 작품이 많이 나오지 않는 거냐고 이 자리를 빌어서나마 하소연 할 밖에.


 사실 '검은 강'의 스타일은 '옥수수밭에서의 죽음'과 '걸어서 하늘 끝까지'와 많이 닮았다.

 이미 하나의 사건이 벌어지고 난 뒤에 소설이 시작하여 그 이유에 대해 탐문해 나가는 건, '옥수수밭에서의 죽음'과 닮았다. 그리고 사건에 관계되는 자 중에 가장 중심이 되는 두 사람을 택해 서로 번갈아가며 화자 역할을 하는 것은 '걸어서 하늘 끝까지'와 유사하다. 이처럼 '검은 강'은 스타일을 공유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핑루의 서술 스타일이 이미 데뷔 때부터 완성되었으며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어떤 이들은 핑루를 말할 때 꼭 여성 작가라는 것을 밝히기도 한다. 그것은 그녀의 글 쓰는 스타일 때문으로 핑루는 자신의 글에서 철저하게 여성적인 면모를 지우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글이 어떤 성별로 다가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런 그녀의 글쓰기 근간을 이루는 것은 저널리즘이다. 그것은 그녀가 오래도록 저널리스트로 일한 것에서 기인한다. 이것은 또한 그가 작품을 형성하는 중요한 뼈대가 되기도 한다. 핑루는 언제나 실제로 있었던 사건이나 존재했던 인물에 대해 작품을 쓴다. 실제 사건 그대로 다루지는 않지만 그래도 출발은 어디까지나 정말로 발생한 사건이며 실존 인물이다.



 '검은 강' 역시 그러하다.

 이 소설은 대만의 신베이시에서 실제로 일어난 '마마하우스 커피점 살인 사건'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 커피점의 여자 점장이 단골이었던 노인과 그의 아내를 먼저 커피에 약을 타 마시게 하여 의식을 잃게 한 뒤 강으로 끌고 가 칼로 살해한 사건으로 범인이 여성이라는 점과 범행의 잔혹함 때문에 대만 사회는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당연히 그 사건을 두고 뜨거운 논란이 벌어졌다. 소설가는 보통 이렇게 중요한 논란거리가 되어버린 사건에 더더군다나 자신의 작품으로는 발을 담그지 않으려 한다. 이런 논쟁에 뛰어드는 경우, 그것이 아무리 소설이라 하여도 작품을 통해 아무래도 특정 태도를 보이게 마련이니 어떻게든 논쟁의 불길이 자신에게 옮겨붙기 때문이다. 작가로선 얻는 것은 적고 잃을 것은 많은 행위이다. 그러나 핑루는 과감하게 뛰어든다. 이 사건의 2심 판결이 2014년 9월에 났으니, 핑루는 소설로 논쟁에 거의 현재형으로 참여한 것이다. 그것도 모두가 괴물로 손가락질하는 자의 내면을 중점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말이다. 찬찬히 그리고 깊게. 이런 식의 재현이 많은 원성과 비난을 부를 것을 능히 알면서도 그렇게 한다. 핑루는 그토록 대담하다. 그럴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자신의 문학적 신념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여론은 때로 언론의 부추김을 입어 감정적이 되어 편향된 시야를 가지기 쉽다. 고루 다 들여다보고 판단해야 하는데,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단정 지어 버리는 어리석음으로 한 인간 또는 가족의 삶이 산산이 부서지는 경우도 있다. 누군가 달리 볼 수 있는 시야를 열어주고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하였다면 지켜질 수도 있는 삶이었다. 특히나 대만은 오래도록 독재국가였다. 거기다 장제스에 의해 원래 그 땅에서 살았던 원주민이 가혹한 차별을 당했다. 누군가의 자의적 판단으로 사람들의 소중한 삶이 무참히 짓밟히는 게 허다하게 일어났다. 핑루는 그것을 목격했다. 그러니 이런 마음이 들지 않았을까? 그 삶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달리 볼 수 있는 시야를 자신이 열어주어야겠다고. 여기 당신들이 쉽게 짓밟는 발 아래 그 자체로 존중되고 헤아림을 받아야 할 사람이 있다는 걸 알려주어야 겠다고.

 바로 그런 신념의 체화(體化)가 핑루의 소설이다.


 그러므로 핑루는 사건이 아니라 사람을 쫓는다.

 그녀가 언제나 결과보다 이유에 천착하는 것도 사람을 이야기의 중심에 놓기 위해서다. 그는 묻는다. '왜 그녀는 그런 범죄를 저질렀는가? 어째서 그들은 그녀의 희생자가 되어버렸는가?'. 핑루의 탐침은 나침반의 자침이 언제나 북극을 가리키듯 거기서 떠날 줄을 모른다. 그 이유를 알기 위해 그녀는 한 사람의 삶을 온전히 담아내려 한다 '걸어서 하늘 끝까지'에서 쑨원과 쑹칭링의 삶을 여과없이 그렸던 것과 마찬가지다. 핑루의 작품은 언제나 전기(傳記)의 성격을 지닌다. 자신이 아는 것과 원하는 것에 비추어 자신이 담고자 하는 타인의 삶을 섣불리 재단하지 않는 것이다. 핑루는 자신이 그리는 인물을 독자가 가급적 투명하게 만나길 원한다. 작가의 시선이 독자의 시선이 되지 않도록 그는 그저 단순한 매개자로만 남으려 한다. 혹시 독자들이 자신의 시선에 오염될까봐 독자가 여러 목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실제에서 그대로 가져온 정보들을 병기하기도 한다. '검은 강'도 그러하다. 우리는 여기서 챕터가 하나 끝날 때마다 그와 관련된 실제 사건에서의 목소리들을 보게 된다. 피고인이나 피해자 혹은 그들의 지인 또는 언론 보도나 댓글에서 나왔던 말들을 말이다. 그런 식으로 핑루는 비록 자신의 손 끝에서 창조된 인물이지만 그 진정한 초상은 독자 스스로 구현하도록 이끈다. 그리하여 그 인물의 삶에 대한 최종적인 판단도 작가가 아니라 독자가 할 수 있도록.

 이런 식으로 핑루는 자신의 신념을 실천한다.


 우리의 문화는 인성이라는 의제와 감추어진 동기에 깊이 파고드는 것에 흥미가 없습니다. '악한 사람'의 동기를 파헤치는 것을 시간 낭비로 치부하죠. 살인을 했다는 사실만으로 일찌감치 대중에게 공개 처형당해 일벌백계의 본보기가 되거나,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만으로 '선한 사람'이라는 보루 안에 안전하게 숨길 수 있습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서 '검은 강'은 비록 소설이지만 '악한 사람'을 변호하는 것, 또는 죽은 사람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떠들게 만들어 불필요한 상해를 입히는 것으로 오인받을 수 있습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소설이 사건을 바라보는 또 다른 시각을 제공하고, 인성이라는 문제에 회색 지대를 남겨 출구를 만들어주는 역할을 한다는 겁니다.(p. 290 ~291)


 제목의 '검은 강'은 부부가 살해된 단수이허 기슭에 있는 강을 뜻하지만, 제목의 의미는 거기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검은 강'은 핑루가 바라보는 사회의 모습이기도 한 것이다. 그 사회란 어떤 사회인가? 타인의 삶을 자신의 삶만큼이나 중하게 여기지 않기에 타인의 삶을 편향되게 바라보는 것도, 섣불리 단죄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한 사회이다. 그래서 '검은 강'이다. 그 어떤 삶도 자신만의 고유한 빛을 온전히 지니지 못한 채, 사람들의 무시와 단정 속에 그들의 검은 빛으로 흡수되기 때문이다. 검은빛은 모든 빛을 자신의 색깔로 빨아들인다. 그들의 규정이 곧 진실이 되는 것이다. 핑루는 그 검은 강에 빛의 너울을 자아내려 한다. 모두의 삶에 저마다 지니고 있는 빛을 되찾아 주는 것이다.


  '검은 강'은 그런 마음으로 가득하다. 비합리적이고 감정적인 태도로 자신의 목소리를 어떻게든 타인에게 강요하려 드는 이런 선동의 시대에선 더욱 소중해질 수밖에 없는 마음이다. 핑루의 마음이 여전히 거기에 머물러 있어 반갑다. 그 마음을 더 많이 만나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현대문학이 그렇게 해주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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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7-09-01 14: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핑루 작가의 다른 책들도 번역이 돼서
나왔으면 싶네요.

아마 잘 팔리진 않겠지만.

헤르메스 2017-09-02 02:04   좋아요 0 | URL
정말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로또라도 당첨된다면 마구 구입해 시장 좀 만들어 줄 텐데요.. ㅠ ㅠ
 
사이버 스톰
매튜 매서 지음, 공보경 옮김 / 황금가지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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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7년 1월, 주로 첨단 기술이 우리 사회 전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다루는 것으로 유명한 잡지 '와이어드'에 존 칼린이란 기자가 '무기여 잘 있거라'는 제목으로 한 기사를 실었다. 그건 인터넷 환경의 발달과 함께 지금까지 초강대국들이 고수하고 있었던 전쟁 수행 양상에 일대 지각 변동이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글이었다.


 기사에 따르면 워싱턴에서는 특정 상황 대응 전략을 만들기 위해 늘 가상의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한 수많은 시뮬레이션 게임이 펼쳐진다고 한다. 그 중 압도적으로 많이 수행되는 것이 'THE DAY AFTER'인데, 이는 미국이 핵공격을 당하는 시나리오의 게임이라고 한다.


 전략 게임이 빈번하게 치뤄진다는 것은 거기에 대한 대응 전략 수립이 그만큼 중요하고 절실하다는 뜻일 것이다. 하긴 핵공격만큼 엄청난 것도 없을테니 그만큼 많이 수행되는 것엔 얼른 수긍이 간다. 그런데 말입니다.(김상중 톤으로...) 이제는 그 게임의 시나리오가 완전 달라졌다고 한다. 뭬야~!, 핵공격 보다 엄청나서 그 대응 전략이 중요하고 시급한 게 있단 말이야? 북한의 인공위성 로켓마저 핵을 위한 미사일이라며 오도방정을 떠는 작금의 정부와 언론 현실을 보노라면 얼른 이런 의문부터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과연 그 공격은 무엇일까? 일단 게임은 이렇게 이뤄진다. CIA, FBI, 외국정책 전문가, 국방성 과학자, 국가안보국 지역책임자 등 각 파트의 전문가들을 망라하여 모두 50명이 게임에 참여한다. 인원 규모나 참가자들 전문 분야를 고려해 보니 얼마나 이 공격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더욱 느껴지는 것 같다.


 아무튼 이들은 한 팀에 10명씩, 다섯 팀을 이루어 불과 24시간 안에 미국에서 일어난 다음과 같은 상황에 대응하여 적절한 대처 전략을 짜야 한다. 상황은 이러하다.


 해킹으로 조지아 주의 통신 시스템이 다운된다. 덴버 시는 수도 공급이 중단되고 뉴욕과 워싱턴 사이의 암트랙 철도는 마비된다. 신호 교란으로 열차 정면 충돌마저 일어난다. 로스엔젤러스 공항은 관제탑의 전산이 모두 망가져 이착륙을 비롯한 항공기 통제를 할 수가 없다. 항공기 추락도 시간문제다. 거기다 텍사스 기지 지하 창고에 보관된 폭탄들마저 불법 입력된 명령으로 폭발하기까지 한다.


 자, 이만하면 얼른 떠오르는 대답이 하나 있을 것이다. 맞다. 바로 사이버 테러다. 이렇게 가장 많은 비범한 두뇌들을 가지고 자주 치뤄지는 대응 전략 게임마저 핵공격에서 사이버테러로 바꼈을만큼 세계는 우리가 피부로 느끼는 것 이상으로 이미 병기에 의한 물리적 공격보다 안보와 기반 시설에 은밀하게 들어와 통제권을 빼앗아가는 사이버 테러를 더 위협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하기사 사회의 모든 기반 시설들이 이제는 인터넷으로 통제되고 있으니 그렇게 여기는 것도 당연해 보인다.


 그건 그렇고 아까 열거한 공격 상황들을 보노라면 얼른 떠오르는 영화가 하나 있지 않은가? 맞다. 브루스 윌리스가 주연했던 영화 '다이하드 4.0'이랑 많이 비슷할 것이다. 그 영화도 사이버 테러로 뉴욕처럼 아무리 거대한 도시라 해도 얼마나 손쉽게 도시의 통제권을 가져올 수 있는지 잘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당연하다. '다이하드 4.0'의 시나리오는 존 칼린의 이 기사를 토대로 만들어졌으니까.


 사이버 테러로 뉴욕의 통제권을 빼앗는 해킹 집단의 리더로 분했던 저스틴 롱. 인터넷을 장악하면 아무리 소수의 집단이라 하더라도 얼마나 능수능란하게 도시를 장악할 수 있는지 잘 보여준다. 


  이렇게 영화에 '다이하드 4.0'이 있다면, 소설엔 '사이버 스톰'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공간적인 배경도 동일하게 뉴욕이다. '사이버 스톰'은 고유 명사가 아니다. 소설은 정체불명 해커 집단에게 잇단 기반 시설을 공격 받아 통신도, 전기도, 가스도, 물도 공급이 중단된 뉴욕의 혹한을 그리고 있는데 그런 의미에서 뉴욕을 고립시키고 파괴시킨 두 상황, 그러니까 사이버 테러와 때마침 불어닥친 거대한 눈 폭풍을 합성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사이버 스톰은 다이하드 같은 액션물은 아니다. 뉴욕에서 평범하게 살아가던 한 가장이 사이버 스톰을 맞아 가족의 생존도, 안전도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상황에서, 그 모든 것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 하는 이야기다.



 작가는 캐나다 출신의 매튜 매서. 사이버 스톰은 그의 데뷔작이다. 그는 다양한 이력을 가지고 있는데 거기엔 사이버 보안도 있다. 이 소설은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쓰여졌고 그런 까닭에 소설이 그리는 사이버 테러로 인한 사회 혼란이 꽤 현실적이다. 그렇지 않아도 이런 사실적인 묘사가 작가의 특색이라고 한다. 무너진 사회 시스템으로 인해 고립되고 질병과 허기로 점점 파괴되어가는 인간 군상을 눈이 내리는 것처럼 차분하고 얼음처럼 냉정하게 그린다. 그래서 더욱 '혹시나 이런 일이 나에게도 닥친다면?' 하는 상상으로 공포를 느끼며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소설은 사이버 스톰이 시작된지 한 달 정도 지나 사람들이 인육을 먹는 장면도 그리고 있는데 혹자는 이것이 너무 나간 것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내 생각에 이 장면들은 작가가 2차 대전 당시 스탈린그라드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실에 근거를 두고 쓴 것 같다. 스탈린그라드는 20세기의 가장 참혹한 전투로 손꼽히는데 거기서 양쪽의 병사들은 전투가 길어지고 군량이 바닥나자 실제로 인육을 먹었기 때문이다. 스탈린그라드를 다룬 책 중에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책인 '피의 기록, 스탈린 그라드 전투'에서 저자 안토니 비버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굶주림은 정신과 성격을 바꾸어 놓았다. 그것은 개인의 사고 속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행동 패턴에서는 그대로 드러났다. (…) 루마니아 병사뿐 아니라 독일군 병사도 살아남기 위해 인육을 먹었다. 그들은 얼어붙은 시체에서 살점을 얇게 잘라내어 끓인 뒤 ‘낙타고기’라고 하면서 나누어 먹었다. 인육을 먹은 자들은 금새 알아볼 수 있었다. 안색이 파리한 대다수 포로들과 달리 얼굴에 붉은 빛이 돌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주 막나간 과장은 아니다. 시쳇말로 사람은 막다른 골목에 처하면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는 건 누구나 다 알지 않는가.


 단 몇 달만의 허기로 인육을 먹는 것까지 가능하다면 우리의 문명이라는 것도 알고 보면 아주 허약한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라캉에 따르면 문명은 우리로 하여금 타인의 인정을 받기 위해 타인이 욕망하는 것을 내 욕망으로 믿게 만든다고 한다. 하지만 문명이 그토록 얄팍한 것이라면 그런 문명 안에서 과연 우리는 정말 무슨 영화를 얼마나 보겠다고 문명으로 총체화되는 타인의 인정을 받기 위해 이토록 나를 억누르고서 내 것이 아닌 남의 꿈을 쫓으며 사는 것인지 의아하게 된다. 그런 면에서 사이버 스톰은 모든 재난 소설이 그런 것처럼 이전 문명의 상상적 그라운드 제로에서 이제까지 생각하지 못했던 다른 삶의 가능성을 상상하게 만듦으로써 오늘 나의 삶을 더욱 윤택하게 만들 실마리를 준다고 하겠다. 거기서 내가 느낀 나를 둘러싼 삶의 껍질이 가진 두께의 크기에 따라 그것이 자유일 수도, 책임일 수도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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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측 죄인
시즈쿠이 슈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 / arte(아르테)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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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죄의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태완이법의 무산으로 남의 이야기가 아닌 것 같아 더욱 몰입할 수 있었던 작품. 꽤나 두터운 페이지를 자랑하지만 펼쳐지는 드라마도, 그 깊이도 두께만큼이나 묵직하다. 그렇다고 재미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며 시즈쿠이 슈스케의 연출력이 좋아서인지 흡인력이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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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에 바라다 - 제142회 나오키상 수상작
사사키 조 지음, 이기웅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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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묘한 매력이 있는 소설이었습니다.

 별 뜻 없이 집어 들었는데 손에서 놓기가 어렵더군요.
 아무래도 이 소설만이 가진 어떤 독특한 분위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무리하게 정의하자면 사사키 조의 '폐허에 바라다'는 과정의 소설입니다.
 형사가 등장하는 미스터리 장르물이지만 정작 추구하는 건 '누가 했느냐?'라는 식의 범인 체포가 아닙니다. 그 보다 더욱 천착하는 것은 사건 해결이야 어찌 되었든지간에 풀어나가는 과정 자체를 온전히 드러내는데 있습니다. 그러니까 뭐랄까요? 산책자의 소설이라고 할까요? 산책자는 목적지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걷고 있다는 그 사실, 걸으면서 주위의 풍경을 보고 있다는 그 사실이 중요할 뿐이죠. 풍경을 음미하면서 조용히 걸을 수만 있다면 목적지 따위야 아무래도 좋은 것이 바로 산책자입니다. 사사키 조의 '폐허에 바라다'는 정말 그렇습니다.
 
 비슷한 예로 미국의 하드보일드 작가 로스 맥도널드를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형사가 주인공도 아니고 루 아처라는 사립탐정이 주인공입니다만 풀어가는 스타일이 사사키 조와 유사합니다. 로스 맥도널드는 주로 당시 미국 가정들이 겪고 있는 불안과 갈등들을 드러내는데 주력하는 작가인데 역시나 그 불안과 갈등등은 범죄로 표출되지만 맥도널드 역시도 누가 그것을 했는지는 부차적인 문제입니다. 그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지금의 가정이 왜 이렇게 불안과 갈등을 안게 되었느냐는 것이며 바로 그 이유의 탐색을 위해서 당대의 미국 사회를 풍경을 온전히 드러내는데 주력합니다. 말 그대로 로스 맥도널드의 소설도 과정의 소설인 것이죠.
 
 그래서 그런지 '폐허에 바라다'의 주인공 센도의 역할이 기묘합니다. 그는 형사이지만 어쩐지 사립탐정과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몇 년 전 참여했던 사건의 비극으로 PTSD, 즉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고 있는 센도는 이 때문에 그 마음의 상처 부터 치료하고자 휴직을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요양을 하는 가운데서도 자꾸만 과거의 인연으로 사람들이 사건을 의뢰해 와서 할 수 없이  계속 사건을 마주하게 됩니다. '폐허에 바라다'는 그런 식으로 뛰어든 사건들의 에피소드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지금 휴직 상태이기 때문에 멋대로 경찰의 신분을 내세울 수 없습니다. 그래서 경찰이지만 사건 탐문 때는 경찰신분증을 가지고 다니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정보를 얻기위해 할 수없이 사람들에게 경찰임을 드러낼 때는 명함을 건네줍니다. 이건 그대로 사립탐정이 자신의 신분을 나타낼 때 하는 것과 똑같은 행위입니다. 그렇게 센도는 경찰이지만 경찰이 아니고 자신을 드러내는 외양만 보자면 사립탐정과 같습니다. 더구나 사건을 탐문할 때 마다 늘 스스로나 타인들이 자꾸만 휴직 상태임을 일깨웁니다. 그렇게 경찰로 일한다기 보다는 사립탐정으로 일한다는 것을 내내 일깨워주는 것만 같습니다.
 
굳이 사사키 조가 왜 이런 번거로운 방식을 택한 것일까 의문이 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경찰이지만 왜 자꾸 사립탐정의 역할을 연기하게끔 하는 것일까? 아마도 여기에 대한 대답이 사사키 조가 '페허에 바라다'를 통해 하고 싶은 말의 주된 의미가 될 것 같습니다.
 
 여기서 중요해지는 것은 역시 센도에게 PTSD를 가져다 준 사건의 성격입니다. 그 사건의 내막은 마지막 에피소드인 '복귀하는 아침'에 이르러서야 드러나는데 센도가 PTSD를 가지게 된 것은 상황에 따라 임기응변식으로 제대로 대처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고 그저 고지식하게 수사 원칙을 지키려고만 했기 때문에 그와 같은 비극적 사건(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으므로 말하지는 않겠습니다.)을 불러일으키고 말았다는 자책 때문이었습니다. 즉 그는 그 사건으로 인해 과연 자신이 가지고 있는 수사에 대한 신념을 지키는 것이 옳으냐 아니면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그런 원칙 따위는 무시해 버려야 하는 것이냐 하는 선택에 직면한 것이죠. 그러므로 결과만 좋으면 과정 따윈 아무래도 좋은 게 아닐까 이런 생각에 흔들리는 것입니다. 때문에 훗설이 말하는 에포크, 즉 판단중지가 필요한 것이죠. 제대로 결론을 내리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모든 것을 초기화 시키고 다시금 처음부터 되새겨 볼 필요가 있으니까요.
 
 그러므로 '폐허에 바라다'에 나오는 에피소드들은 바로 센도가 지금 안고 있는 그 의문에 대한 탐문인 셈입니다. 이런 면에서 사사키 조가 왜 이 소설을 과정의 소설로 만들었는지 그리고 하드보일드 장르의 사립탐정으로 만들었는지가 이해되는 것이죠. 사립탐정의 역할은 경찰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즉 경찰이 질서의 복원이라면 사립탐정의 역할은 폐허가 되어버린 질서를 관찰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여기에 대해서 좋은 말을 했었죠. 아시다시피 그는 레이몬드 챈들러의 광팬입니다. 그 소설을 말하면서 그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립탐정은 어떤 진실을 추적하지만 결국 확인하게 되는 그것이 변질되고 말았다는 사실 뿐이라고 말입니다. 그렇게 사립탐정은 변화의 목격자이며 바로 이 때문에 사사키 조는 굳이 센도에게 사립탐정의 외양을 취하게 한 것입니다. 센도에게 폐허의 관찰자가 되기를 바랐던 사사키 조의 의중은 에피소드 곳곳에 나타나는 세월에 변해버린 공간의 묘사에서 두드러집니다. 훗카이도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사건의 무대들은 모두 외국인들이 들어오거나(오지가 좋아하는 마을), 서서히 몰락하고 있는 중(폐허에 바라다)이거나 좋았던 전통이 몇몇의 협잡으로 무참히 파괴되고 있는 곳(오빠 마음)이거나 한 곳들이죠. 그렇게 변화의 와중에 있는 곳입니다. 센도는 바로 그런 곳을 돌아다니면서 사건을 탐문합니다. 그리고 확인합니다. 공간이 변한 만큼 사람들 역시도 변해 버렸다는 것을. 그것도 현실적인 욕망의 추구로 말이죠. 이것이 바로 센도가 가지고 있었던 PTSD를 불러온 의문에 해답이 되는 셈입니다. 즉 사사키 조는 정당한 원칙을 거스르면서까지 변화에 임기응변으로 임한다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를 그 모든 공간과 사람들의 변화를 통해서 보여주는 것이죠. 결국은 비극적인 결과가 초래되었다 하더라도 원칙을 고수함이 올바른 것이라고. 이는 센도와 공간의 대비로 인해 두드러집니다. 즉 그렇게 변화하고 있는 공간과 사람들과는 달리 센도만은 PTSD마저 겪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여전히 고지식하고 남들이 보면 안지켜도 될 것 같은 것도 충실히 지키려들죠. 그 세세한 원칙의 고수를 사사키 조가 반복해서 보여주는 이유입니다. 지킬 것은 지키는 것. 센도의 손을 들어주기 위해서 말입니다.
 
 사사키 조의 '폐허에 바라다'의 독특한 매력은 여기에 있었습니다. 모두가 현실적 타협을 위해 신념을 져버리거나 원칙을 무시하는 것쯤 별 거 아니라고 말하는 시대에 고지식하게 자신의 신념과 원칙을 꿋꿋이 지켜나가는 것을 작가가 마음으로 부터 지지하는 소설이었기 때문이죠. 바로 그것을 보여주기 위해 사사키 조는 이 소설 전체를 일종의 산책자의 소설로 만든 것입니다. 아마도 제가 손에서 놓기가 힘들었던 것은 이러한 센도의 신념에, 사사키 조의 지지에 공명한 결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사키 조의 작품은 '경관의 피'와 '제복 수사'를 비롯하여 여러 작품이 있는 것 같던데 차후의 여정이 어떻게 될 지 또 지켜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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