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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로 만드는 밀리터리 세계 종이로 만드는 시리즈
사이언 아담스 지음, 박지웅 옮김, 백 오브 배저스 페이퍼 엔지니어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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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 19'가 재확산되고 있는 요즘이다. 내가 사는 곳만 해도 오늘 20먕 가까이 확진자가 발생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더욱 외출을 삼가게 된다. 그러나 집에서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것도 만만치 않다. 책이랑 넷플릭스가 있지만 그것만 주구장창 보고 있을 수도 없다. 과하게 반복되면 뭐든 질리기 마련이니까.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다른 소일거리를 찾게 되었고 그러다 이 책이 눈에 띄었다. '종이로 만드는 밀리터리 세계'. 제목 그대로 뜯고 접고 붙여서 군사 무기 탈것을 만드는, 한 마디로 공작책이다. 이 책에 눈이 간건 어린시절의 향수 때문이었다. 어릴 때, 이런 책을 많이 갖고 놀았던 것이다. 주로 해문출판사에서 시리즈로 출간한 것이었는데, 탱크 만들기도 있었고 군함 만들기도 있었고 전투기랑 경주용 차 만들기도 있었던 게 기억난다. 주말이나 방학 때 몇 시간을 들여가며 가위로 자르고 풀러 붙여서 이것 저것 만들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 시간으로 다시 한 번 돌아가보는 것도 좋겠다 여겨져서 단번에 이 책과 벗하게 되었다.




 책의 표지는 이렇게 생겼다. 표지에 나와 있는 모형들은 모두 이 책에 실린 도면으로 만들 수 있는 것들이다. 책 옆에 놓여 있는 복엽기도 이 책의 두 번째에 있는 도면으로 내가 직접 만들어 본 것이다. 세계 제 1차 대전 당시에 만들어져 전투에 사용되었던 솝위드 카멜의 모형이다. 





 책의 구성은 이러하다. 보시는 바와 같이, 한 면을 두 개의 부분으로 나누어 윗 부분에는 도면으로 만들 수 있는 것에 대한 설명을 담고 있다. 단순히 만드는 것에 그치지 않고 내가 지금 만들고 있는 것에 대한 대략적인 정보까지 얻을 수 있다는 게 이 책이 가진 장점 중 하나다. 다른 장점은 가위가 필요 없다는 것이다. 도면에 있는 부품들은 모두 손으로 그냥 뜯을 수 있다. 직접 뜯어 보니 쉽게 잘 뜯겼다. 예전엔 가위로 하나하나 다 오려야해서 불편했었는데 이 책은 그런 과정은 그냥 건너뛰게 해줘서 더 편하게 공작에 집중할 수 있었다. 책에는 배, 비행기, 탱크, 자동차를 망라하여 모두 25개의 모형이 실려 있다. 그 대상도 1차 대전에 활약했던 것부터 현대전에서 활약하는 것까지 아우르고 있다. 다양하게 만들 수 있어서 좋은 것 같다. 나는 여기서 처음에 나오는 1906년에 진수한 군함, HMS 드래드노트와 솝위드 카멜 두 개만 만들어보았다. 재료가 종이였지만 약하진 않았고 만드는 것 또한 책 마지막에 조립 설명이 나와 있어 그리 어렵지 않았던 것 같다. 부품엔 모두 번호가 매겨 있어 훨씬 더 쉽게 만들 수 있도록 했는데 숍위드 카멜엔 번호가 없어서 설명서를 보며 한동안 눈과 머리를 굴려야 했다. 다른 것도 숍위도 카멜처럼 번호가 빠져 있나 하고 한 번 휙 살펴 봤는데 숍위도 카멜만 그런 것 같았다. 이것 하나만 누락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다음 쇄엔 바로 잡혀 나왔으면 좋겠다. 어쨌든 하나 둘 뜯어내어 접고 붙이고 하다보니 시간은 잘 갔다. 오래도록 잊고 있었던 모형 만들기의 열정도 되살아나고 여러모로 좋았다. 집에서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하나 고민이고 종이로 모형 만드는 것이 취향이라면 나처럼 한 번 벗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 같다.





 이 책의 처음에 나오는 HMS 드래드노트를 한 번 찍어 보았다. 하나만 놔두긴 심심해서 2년 전에 아주 열정적으로 플레이한 게임인 '젤다의 전설 : 야생의 숨결' 주인공 링크를 특별 출연시켰다.




 하나만 올리면 정이 안 가니까. 내친 김에 숍위드 카멜도 다시 연출해 찍는다. 이번에는 '강철의 연금술사'에 나오는 에드워드와 알폰소다. 그들이 연금술로 만들어낸 것 같은 설정으로 찍어 보았다. 



이번엔 둘이 함께 찍어 보았다. 이렇게 사진을 찍어 놓으니 뭔가 그럴 듯 하다. 나만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모형 만들어서 이렇게 저렇게 연출해 보는 것도 심심한 시간을 재밌게 보낼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된다. 어쨌든 아직 23개가 남아 있어 행복하다. 이런 게 사람들이 말하는 소확행이란 것이겠지. 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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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0-12-25 0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드워드와 알폰소라니... 귀엽네요 강설의 연금술사 예전 건 어쩐지 별로였는데, 나중에 만든 건 좀 나았던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만화가 다 끝나지 않았을 때 만들어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래도 여자아이를 개로 만든 건 안 좋았어요 그건 아직도 기억합니다

성탄절이네요 어제 라디오 방송에서 여러 나라 아이들이 어딘가에 산타는 오느냐고 물어봤다고 하더군요 그 말에 산타는 바이러스 면역이 있어서 갈 수 있다고 했답니다 저도 이번에는 산타가 쉬려나 했는데, 그건 아니었네요

성탄절 마음 따듯하게 보내세요


희선

ICE-9 2020-12-31 18:56   좋아요 1 | URL
앗! 희선님이 댓글을 이제야 보게되었네요.
크리스마스에 일부러 들러 인사를 남겨주셨는데 새해를 코 앞에 둔 지금에서야 답례를 드리게 되는군요. 하하^^
처음에 나왔던 것은 분위기가 꽤 어두웠던 걸로 기억해요. 다음에 나왔던 것은 원작에 충실한 것도 있어서 개인적으론 마음에 더 들었습니다^^ 아, 그 에피소드는 다시 봐도 정말 충격적이더군요.
어쨌든 안부를 남겨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희선님도 다가오는 새해 늘 건강하고 좋은 일만 있길 바랄게요^^
 
고양이 낸시 (스티커 포함)
엘렌 심 지음 / 북폴리오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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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그녀가  삶에 들어왔다누군가 키우는  더는 감당할  없었는지 상자에 넣어 두고  고양이들  하나였다그녀의 눈을 들여다  순간그대로 내버려둘 수는 없어서 고민 끝에 삶을 동행하게 되었다그렇게 6년이 지났다처음엔 꼭꼭 숨어서 하루에 얼굴   보기도 힘들었던 그녀였다그녀 덕분에 좁은  집에도 숨을 곳이 얼마나 많은지 알게 되었다책장에 꽂힌  위에서  작은 몸을 어떻게든 끼워 잠든  발견했을 때는 처음엔 너무 귀여워서 기절하는  알았고 다음엔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서로의 거리가 줄어드는  쉽사리 허락하지 않는 그녀가 야속했다그러다 추운 겨울 문득 깨어났는데 그녀가 어느새  곁에 다가와 자기 몸을 밀착시킨  곤히 잠든  보고 어마어마한 감동의 물결에 젖은 적도 있었다 그녀가  곁에서 집사들 사이에선 흔히 ‘골골송이라 부르는 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제목마냥 이렇게 가족이 되는구나 하고




 새삼스레 그녀와 동반한 삶을 반추하게    권의  때문이었다

 미국에서 작품 활동을 하는 한국인 작가 엘렌  고양이 낸시  소환자였다버려진 어린 고양이가  가족에게 거둬져 길러지게 된다는 독특하면서도 기발한 상상력을 뼈대로 하고 있는  작품은 내가 그녀와 처음 만나 가족이 되는 과정과도 유사하여 더욱 깊이 빠져 읽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와 그녀의 동거는 낸시와 더거씨 가족처럼 순탄하진 않았다앞서도 말했듯 그녀는 마음을 쉽게 열지 않았고 값비싼 이어폰 줄을  개나 잘라먹거나 아끼는 책마다 발톱으로 무자비하게 스크래치  놓는  이런저런 사고도 참 많이 쳤다이유없이 밤마다 현관 앞에서 심하게 울어서 근심과 짜증 속에서 왔다갔다 하면서 잠을 설치게 만든 일 많았고 여행을  때면대신 돌봐  사람이 없을 경우  원하는만큼 있지 못하고 일정을 많이 앞당겨 돌아와야했다그녀와 같이 있어서 즐겁고 행복했던 것만큼이나 불편하고 피곤한 것도 많았다는 뜻이다내가 보기에 작품  고양이 낸시는 오빠가 엉터리로 매어  옷의 리본도 오빠의 정성을 생각해서 고쳐 매어주려는 아빠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방식으로 매어  것이라 괜찮다고 대답하고 자신도 학교 연극에서 공주 역할을 하고 싶지만 우연히  친구 아가사가 공주가 되고 싶다고 그린 그림을 보고선 기꺼이  마음을 접고 다른 역할을 하겠다고 먼저 자원할 정도로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이 참으로 커다란 착한 고양이다그러나 나의 그녀는 그렇지 않다 마디로 말해 정반대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양이 낸시 ‘이건 그냥 동화에 불과해!’라고 하면서 중도에 포기하지 않은 것은 단순히 고양이와 함께 사는 것에 대한 얘기를 넘어서 고양이가 상징하는 ‘낯선 타자 공존하는 법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쥐에게 고양이가 그렇듯이자신과 완전히 다르고  다름으로 불안을 넘어 위협마저 느낄  있는 이들과의 공존은 현재 점점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이건  반대의 흐름이  세계적으로  거세어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가 타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기반으로 탄생한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일본의 아베 정권 또한  배척에 의존하여 자신의 가냘픈 명줄을 이어가는 형편이며 중국 또한 최근 홍콩 시위가  보여주듯자신의 뜻대로 따라와주지 않으면 같은 민족에게조차 서슴없이 강한 억압을 행사하고 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영국의 브렉시트작금의 유럽 국가들에서 두드러지는 우경화 경향 역시 이와 연장선 상에 있다.


 그런데 이런 흐름은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목소리가 아니었다대부분 거꾸로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목소리였다많은 이들이 타자에게서 그런  경험한 탓에 자연스럽게 발생한 경향이 아니라 소수의 누군가가 타자의 다름과 그것이 주는 해악을 특별히 강조하고 그걸 지속적으로 전파해서 출현한 마디로 인위적인 형성이었다자신과 다른 타자에 대해 적대와 혐오를 쏟아내는 사람들 대부분은 그들이 욕하는 대상을 직접 경험하지 못한 이들이었다오직 누군가가 특정 의도에 따라 유포한 글과 말에 기반한 간접 경험밖에 없었다. 작품에서 가장 낸시를 힘들게 만들었던 헥터 삼촌이 책의 내용에 근거하여 낸시를 마을에서 쫓아내야 한다고 행동하게 만들었던 것처럼 말이다.


 

 작품에서 책은 자주 등장한다

 더거씨가 낸시를 처음 받아들였을  무엇을 먹여야 할지 몰라 백과사전에 나오는 고양이 항목을 살펴보기도 하고 낸시가 다닌  마을 학교에서 친구들이 우연히 책에서 고양이에 대한 부분을 발견하게 되기도 한다헥터 또 낸시를 추방하기 위해 아버지를 설득할  고양이가 위험하다고 말한 책을  권이나 갖다 보인다 생각에 이건 단순한 연출 아니다. 이는 우리에게 낯선 타자를 헤아릴  흔히 저지르는 잘못을 보여주기 위해 삽입된 것 같다.  생쥐가 코끼리 다리를 만지고 있으면서도 자신을 코끼리 권위자라고 소개한 사람이 지금 만지고 있는  엉덩이라고 말하자 무턱대고 '그래, 이건 엉덩이야!'하고 믿는 것과 마찬가지로 상대를 제대로 접해보지도 않았으면서 오직 어디서 전해 들은 정보로만 가지고 쉽사리 그를 판단해버리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느끼도록 하기 위해서 말이다. 책은 내가 직접 살펴보지도 않고 누군가 보여주는 것만 보면서 그걸 전부로 여겨버리는, 우리도 일상 속에서 흔히 표출하는 습성의 상징인 것이다.


 이것이 왜 위험한가?

 그걸 작가는 고양이에 대한 책의 내용과 관련하여 상반된 두 가지 태도를 재현함으로써 설득력있게 제시하고 있다. 그 중 하나는 헥터로, 그는 상대를 오로지 책의 내용에 따라 판별한다. 반면 낸시를 보살피게 되는 더거씨나 그의 동료들, 낸시의 오빠 쥐 지미나 학교 친구 쥐들은 책에서 고양이에 대해 어떻게 말하든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이 낸시를 직접 보고 경험한 바에 따라서만 판단한다. 이는 단순히 간접 경험과 직접 경험의 차이와 어느 것이 더 적절한가만 보여주는 게 아니다. 보다 근본적으로 왜 어떤 이들은 간접 경험한 것만으로 상대방을 평가하는 걸 충분하다고 여기는가에 대한 이유까지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헥터는 '고양이 낸시' 중에서 '낸시' 보다 '고양이'라는 사실을 더 중시했다. 그의 눈에 낸시라는 고유한 개체성을 사라지고 없었다. 존재하는 건 오직 고양이라는 일반적인 범주 뿐이었다. 그러나 다른 이들은 달랐다. 더거씨와 지미, 그리고 학교 친구들과 마을 사람들 눈에 낸시는 고양이가 아니라 그저 낸시였다. 자신과 일상을 함께 하는 가운데 직접 체험을 통해 인식한 개별적이며 고유한 존재로서의 낸시만 있을 뿐이었다. 그랬기에 헥터가 아무리 낸시가 위험하다고 하여도 설득되지 않았다. 헥터가 고양이라는 대답을 기대하며 낸시가 무엇인지 아느냐고 물었을 때, 마을 사람들이 내어놓는 대답은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낸시라는, 독립적이며 고유한 개체성의 지표인 이름부터 말하며 나아가 우리는 다음 대사에서 낸시를 무엇보다 개인적이며 인격적인 관계 속의 존재로만 인지하고 있다는 또한 잘 알 수 있다. 그들은 오로지 낸시로만 보고 있었기에 고양이라는 일반적 범주가 지니고 있는 특성 같은 건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책이 고양이에 대해 써 놓은 것은, 그것이 아무리 자신에게 위험한 내용이라 하더라도 오랜 시간에 걸쳐 친밀한 관계 속에서 형성된 체험 앞에서 아무런 위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



 이는 위와 같은 장면에서 가장 극적으로 연출된다. 낸시의 오빠 지미가 고양이 낸시를 위해 아예 책에 있는 고양이 항목을 찢어 먹어버리는 것이다. 이만큼 간접 경험한 것이 아니라 직접 경험한 것이 중요하다는 작가의 의도가 극명하게 나타난 것이 또 있을까 싶다. 남이 규정한 말이 아니라 내가 직접 보고 느낀 끝에 도달한 마음의 소리를 따르는 것. 바로 이것이 타자와의 관계에서 정말 필요하며 소중하다는 것을 '고양이 낸시'는 이렇게 집약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헥터는 자신만이 낸시의 진실을 보고 있으며 다른 이들은 보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 역시 낸시를 직접 겪어보고는 깨닫게 된다. 낸시라는 타자의 진실을 가장 잘못 보고 있었던 사람은 바로 자신이란 걸.



 헥터의 자성을 통해 독자인 우리 역시 깨닫게 된다. 하나의 타자를 바라볼 때, 독립적이며 고유한 존재로써의 그를 보지 않고 흔히들 자주 넣곤 하는 인종이라든지, 성별이라든지, 계급이라든지, 국가라든지, 이념이라든지 하는 일반적인 범주에만 집어넣고 바라보면 얼마나 잘못된 판단을 할 수 있는지 말이다. 그런데 오늘날 타자와 관련하여 갈등을 유발하고 차별과 배척을 가져오는 건 대부분 타자를 그 개인 자체로 보지 않고 일반적 범주에만 의거하여 보는 탓이다. 그러고 보니 아주 어릴 때 '톰과 제리'라는 애니메이션이 있었던 게 기억난다. '톰과 제리' 역시 고양이와 쥐가 나오나 그 관계는 '고양이 낸시'와 정반대이다. 



  고양이 톰은 생쥐 제리를 못 잡아먹어서 늘 안달이고 제리는 그런 톰을 피해다니느라 바쁘다. 톰에게 제리는 그저 쥐라는 일반적 범주일 뿐이고 제리에게 톰 역시도 그저 고양이라는 일반적 범주일 뿐인 것이다. 그런 톰과 제리의 세계는 폭력과 고통으로 점철되어 있다. 이는 '고양이 낸시'가 재현하는 세상과 얼마나 다른가?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세계 곳곳에서 타자에 대한 적대와 혐오가 표출되는 요즘은 그야말로 '톰과 제리'의 세상이라 하여도 과언은 아닌 것 같다. 이런 세상 속에서 오늘 차별과 적대를 당하고 있는 이가 결코 자신에게 그 이유가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듯, 우리 역시 언제든 어느 누군가에 의해 멋대로 규정 당하여 차별과 배척의 희생자가 될 수 있는 위험에 빠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최근 코로나 사태 때문에 오직 중국과 가까운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호주의 기숙사에서 쫓겨난 이처럼 말이다. 그런 면에서 한 사람을 그가 속한 조건이 아니라 직접 부대끼며 그 자체로 보고 헤아릴 것을 강조하는  '고양이 낸시'는 그런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는 소중한 길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타자에 대한 직접 체험과 그 독립적이며 고유한 존재를 그 자체로 받아들이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작가는 헥터의 이야기를 작품의 후반부라 할 수 있는 3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등장시키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사실 고양이를 쥐의 가족이나 친구로 설정하는 건 모험이다. 현실에서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고양이와 쥐가 가족이 되고 친구가 되는 것에 대해서 얼마나 독자의 공감을 끌어낼 수 있느냐가 이 작품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할 수 있다. 작가는 그것에 크게 성공하고 있는데, 그건 1부와 2부 내내 낸시와 쥐 마을 사람들이 친밀한 관계를 얼마나 잘 만들어나가는지 충실히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거기서 우리는 언제나 타자의 입장에서 먼저 생각하고 배려하는 그들의 모습을 본다. 그 관계에서 깊이 느껴지는 따스함 속에서 우리는 일반적인 범주의 고양이와 쥐가 형성하는 현실 속 관계는 어느새 잊어버리고 쥐 마을 사람들이 낸시를 고양이가 아니라 나의 가족이자 이웃이며 친구인 낸시로 받아들이는 것을 당연히 그럴만하다고 인정하는 것이다. 이러한 인정은 단지 몇 장면의 나열만 가지곤 절대 일궈낼 수 없다. 그렇기에 작가는 작품의 절반이나 할애하면서 그들의 관계를 재현한 것이다. 덕분에 우리는 지미가 헥터에게 했던 아래의 말에서 감정의 울림을 느끼고 헥터의 눈에 왜 눈물이 어리며 자신이 낸시를 완전히 잘못 보고 있었다는 고백을 하는 것까지 자연스럽게 납득하게 된다.



 변화는 헥터에게만 찾아오는 게 아니라 독자인 우리에게도 다가온다. 우리 역시 일반적 범주에 따른 고정된 정체성으로만 바라보았던 고양이와 쥐에 대한 눈이 어느덧 달라졌다는 걸 깨닫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작품을 통해 직접 체험했듯이, 타자를 직접 경험하며 온전히 그것만으로 그를 바라보는 것이 관계 형성에 얼마나 중요한지 또한 절감한다. 타자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게 만들며 시간을 들여 그를 직접 경험하려는 의지를 가지기 보다는 미리 주입된 편견에 따라 먼저 거부부터 하도록 이끄는 마음을 경계해야겠다고 다짐하는 것이다. 


 이제 와 생각해 보니, 내가 '고양이 낸시'를 읽으면서 그녀와 함께했던 지난 시간을 떠올린 것은 당연했던 것 같다. 그녀와 겪었던 그 모든 시간의 과정이 이 작품에서 강조하는 직접 경험하며 알아가는 여정 자체였으니까 말이다. 늘 그녀가 뭔가를 요구할 때마다 싫다, 귀찮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면서도 원하는 대로 해주는 것이나 조금이라도 침울하게 있는 걸 보면 혹시 아파서 그런 것은 아닌지 걱정부터 드는 것도 다 그런 시간이 영글어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하여 나의 그녀는 언제든 대체 가능한 일반적 범주의 고양이가 아니라 결코 대체할 수 없는 유일한 그녀가 되었다. 그런 눈으로 보면 그의 입장에서 헤아리는 것도, 배려하는 것도 그렇게 커다란 의지를 들여야 하는 일이 아니다. 고양이 낸시에서 고양이를 뚝 떼어내고 '낸시'로만 바라보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다. 다시 한 번 몸소 부대끼며 함께 축적한 시간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그리고 오로지 그 시간의 척도로 타인을 바라보는 것만이 그를 가늠하는 진실한 잣대인 것도 체득한다. 이는 앞서 누누이 말했던 대로 '고양이 낸시'가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목소리이기도 하다. 불행한 내 삶에 원망할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사랑하고 책임지는 것보다 무시하고 싫어하며 증오하는 게 쉽고 편하다는 이유로, 아니면 그저 내게 유익이 된다는 이유로 불화와 혐오 그리고 적대에 쉽게 자신의 영혼을 의탁하는 이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이처럼 톰과 제리의 세상이 가속화 되는 상황 속에서 '고양이 낸시'는 더욱 더 널리 울려야 할 목소리라고 생각된다. 부디 많은 이들이 귀 기울여 들어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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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브리나의 오싹한 모험
로베르토 아기레사카사, 로버트 핵, 최필원 / 문학세계사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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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혹시 오래된 팝송 중에 'SUGAR SUGAR'란 노래를 아실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노래였죠.




 나이가 어느 정도 되신 분이라면 분명 귀에 익은 멜로디라 생각합니다. 원래 이 노래는 69년에 발표된 '아치'란 애니메이션 시리즈의 주제가였죠.

 이 애니메이션의 제목인 '아치'는 사실 '마블'처럼 미국의 만화 출판사입니다. 1939년에 설립되어 역사도 제법 오래되었죠. 물론 지금도 존속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블처럼 슈퍼 히어로를 대상으로 하지 않고 미국의 평범한 십대들의 삶을 많이 다루었습니다.

 이런 아치 출판사의 대표 캐릭터가 바로 '십대 소녀 마녀 사브리나'죠.

 유명 캐릭터답게 이 뮤직 비디오에도 출연하고 있습니다. 키스로 개구리로 변신 시키는 사탕 가게 소녀가 바로 그녀랍니다.

 노래 가사의 '유아 마이 캔디 걸'이 바로 사브리나인 것이죠^^.



 


  갑자기 이런 얘기를 하게 된 것도  사브리나 때문입니다.

  최근 넷플릭스에서 이 사브리나를 어두운 버전을 드라마로 만들어 공개했는데, 그게 시청률 랭킹 1위를 차지할만큼 히트를 쳤거든요.

  물론 오리지널 드라마는 아닙니다.


  엄연히 원작이 있죠. 사실 십대는 호러물의 주 소비층이기도 합니다.

  당연히 십대를 주된 소비자로 하는 아치 출판사가 이걸 놓칠 수 없죠. 그래서 호러물을 주로 다루는 아치 호러를 만들었고 아치 코믹스의 유명 캐릭터들의 다크한 버전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뮤직 비디오에서 신나게 기타를 연주하는 이들이 아치 코믹스의 가장 대표 작품인 '아치와 그의 친구들'에 나오는 이들이죠.



  이들은 '리버데일'에 사는데, 원작과는 다르게 아주 어둡고 무시하게 이야기를 전개시킨 '리버데일'이란 작품이 아치 호러에서 나왔죠.

  물론 이 작품도 드라마로 만들어졌습니다. 이번에 넷플릭스에서 방영한 사브리나 역시 아치 호러에서 나온 '사브리나의 오싹한 모험'을 드라마로 만든 것이죠.

  그렇지 않아도 그 원작 만화가 궁금했던 참인데, 드라마의 인기에 힘입어 이렇게 우리나라에 번역판이 나와주었네요.




  이 그래픽 노블은 정말로 원작 사브리나를 아는 이들에게 충공깽을 선사하고 있습니다. 그토록 사랑스럽고 달달한 사브리나의 세계가 어쩌면 이렇게나 어둡고 잔혹할 수 있단 말입니까!

 사브리나의 연인 하비가 마녀에게 뼈가 다 보일만큼 살을 뜯어 먹혀 죽었을 때는 정말 충격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사브리나 아버지의 이야기도 그렇고 사브리나를 아는 이에겐 너무나 친숙한 캐릭터인 힐다와 젤다(저는 감히 '야생의 숨결'로 이제는 더욱 유명해진 닌텐도 게임인 '젤다의 전설'의 그 젤다가 사브리나 고모의 이름에서 따왔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이 작품이

 처음 발표된 것은 1962년이었고 너무나 유명했으니까요.) 고모의 모습 또한 '헉!' 소리가 나오지 않을 수 없었으니까요. 이제와 하는 얘기지만 저는 아직 드라마를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원작 만화를 보니 하도 충격을 받아서 드라마조차 보기가 두려워지네요. 사실 이 사브리나는 우리가 너무 잘하는 '요술공주 밍키' 같은 마법 소녀물에게 많은 영향을 준 작품이기도 합니다. 마법 소녀들이 원래 자신이 살던 세계를 떠나 다른 세계에서 살게 되는 게 바로 이 사브리나의 설정이었거든요.



어쨌든 그렇게 사랑스럽고 달달한 세계는 어디론가 없어지고

 불안과 고독 그리고 공포와 죽음만이 가득한 세계가 되고 말았습니다. 제목은 오싹하다고 되어 있지만 그보다 더 한 표현을 써야했어야 되지 않나 싶네요.

 잔혹한이라든가 참혹한이라고...


 그런 세계를 만들어가는 대표적인 존재가 아마도 사브리나의 가장 최대의 적이 될 '리리스'란 존재입니다. 리리스란 이름은 외경에 나오는, 이브 전에 있었던 아담의 첫 아내 이름이지요.

 그 이름처럼 리리스도 원래 사브리나의 아버지, 에드워드를 열렬히 사모했는데, 사브리나의 아버지가 자기 대신 사브리나 엄마인 다이애나를 선택하는 바람에 커다란 상처를 받고 자살하고 맙니다.

 그러나 에드워드에게 복수하고 싶은 마음이 자살자들이 가는 지옥인 게헤나에서 빠져나오게 했고 부활을 통해 가지게 된 엄청난 마법으로 그녀는 나무가 되는 저주를 받은 에드워드를 불태워버리는 등, 자기 상처에 대한 보복을 하나하나 실행해 나갑니다. 에드워드와 다이애나를 거친 그녀의 복수는 마침내 사브리나에 이르게 되죠. 이런 스토리가 아주 스산하고 무거운 색조의 그림을 통해 펼쳐지니 그저 이게 내가 알던 사브리나 맞나 하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이런 분위기의 그래픽노블입니다.



  그러나 아주 흥미로웠고, 원작에는 볼 수 없었던 십대 소녀의 불안한 심리를 이야기로 잘 살려내고 있어 좋았습니다. 드라마를 보고 원작이 궁금하신 분들은 말할 것도 없고 내용과 전개가 독특한 개성을 가지고 있기에 색다른 그래픽 노블을 좋아하시는 분도 꼭 한 번 만나보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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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러브 디스 파트
틸리 월든 지음, 이예원 옮김 / 미디어창비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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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 노블 좋아하시나요? 저는 좋아합니다. 이번에도 독특한 그래픽 노블 하나를 만났네요. 탈다 윈튼의 '아이 러브 디스 파트'란 작품입니다. 일단 작가의 나이가 너무 젊어서 눈길이 갔습니다. 96년생이었거든요. 2015년에 첫 책을 냈으니, 와! 몇 살 때 데뷔한 건가요? 작가의 나이보다 더 이 작품을 이채롭게 기억하게 된 건 내용 때문이었습니다. 10대 레즈비언의 이야기였거든요. 나중에 알았는데, 작가 역시 레즈비언이라고 해요. 자신의 이야기를 그래픽 노블로 풀어간 것이죠. 누군가 그러더군요. 자기 얘기를 할 때 가장 잘 말할 수 있다고. 아마, 라이너 마리아 릴케일 겁니다.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그런 말을 했던 것 같아요.


  미국 사회가 아무리 성소주자의 사랑에 대해 관대해졌다고 해도 막상 밑바닥 현실로 들어가보면 아직 벽이 높은 것이 사실이죠. 처음 사랑을 할 때는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지만, 시간이 흐르면 점차 넘지 못할 현실의 벽 때문에 이런 사랑을 해도 될까 하는 두려움이 슬금슬금 고개를 듭니다. 성인이 아니라 십대라면 더 하겠죠. 그런 과정을 이 그래픽 노블은 담아내고 있습니다. 목소리를 크게 하지 않고 장면의 연출로 느끼도록 하면서 말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잔함과 더불어 나의 첫사랑은 어떠했던가 추억까지 하게 되니 작가의 실력이 꽤 좋다고 해야겠죠. 만화 부문에서 뛰어난 성취를 이룬 작품에 주는 이그나츠 어워드 신인상을 탈만 합니다.





 책의 표지입니다. 처음에 전 옆의 흑인 아이를 남자로만 생각했어요. 그래서 흑인과 백인의 사랑 이야기를 다뤘구나 여겼죠. 하지만 이내 곧 흑인 아이도 여자 아이란 게 밝혀지더군요. 그러므로 이 둘은 두 가지나 사회에서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 사랑을 하는 셈입니다. 하나는 인종 간, 다른 하나는 동성 간. 부모와 또래 그룹의 시선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10대이니만큼 이들의 사랑 행로가 그리 평탄하지 않을 것임은 명약관화죠.


 미래야 어찌되었든 서로에게 호감을 갖고 사랑을 쌓아가던 무렵에는 세상을 다 가진 것만 같았습니다. 당신도 사랑을 하셨다면 이들의 마음을 잘 알겠지요. 우리도 그러지 않았나요? 내가 세상의 중심이 된 것마냥 세상에서 가장 커다란 존재가 된 기분을 느끼곤 했었죠. 다음과 같은 장면은 바로 그것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누구보다 큰 존재가 되어, 세상에 오직 단 둘만 있는 것 같은 느낌을 가졌던 때를.





 이건 마치 제목처럼 음악에서 제일 좋아하는 부분을 반복해서 듣는 것과 같죠. 가장 환하게 사랑이 밝았던 시간. 사랑을 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그런 부분이 있기 마련입니다. 음악의 가장 좋은 부분이 그러하듯이, 언제 떠올려도 먼저 흐뭇함으로 다가오는 사랑의 기억이...





 하지만 음악은 가장 좋은 부분만 계속해서 들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음악도 언젠가 끝이 납니다. 사랑과 현실 또한 그러합니다. 사랑에 마냥 취했던 시간이 시나브로 지나가면 눈에서 콩깍지가 떨어져 나가며 자신의 사랑을 위협하는 차디 찬 현실의 냉기를 느끼게 됩니다. 사회가 인정하지 않는 사랑을 하는 사람일수록 더욱 그러하겠죠. 작품은 그런 과정을 직접 드러내지 않고 공간이나 풍경의 단편적인 묘사를 통해 간접적으로 표현합니다. 공개적으로 표현할 수 없는 사랑의 괴로움, 부모에 대한 두려움과 주위 사람들의 수군거림 등 현실 앞에서 약해져만 가는 사랑을 고요하게 소묘합니다. 너무나 거대했던 그들의 존재가 서늘한 현실 속에서 자꾸만 작아져가는 과정을...

 결국 그들의 사랑은 이뤄지지 못하고 이렇게 거대한 현실 안에서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아지고 맙니다.





 여름의 햇살만큼 눈부셨지만 짧았던 사랑은 그렇게 끝나고 이젠 추억만 남았습니다. 마지막의 장면들은 그걸 묘사합니다. 음악이 끝나고 난 뒤 선율의 여운이 기억되듯이 사랑도 그렇게 남는다는 걸 말이죠. 이토록 잔잔하게 사랑의 시작과 끝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그러면서 어느 순간 묻고 있죠. 이들의 사랑이 당신의 사랑과 얼마나 다른가 하고? 왜 이들은 당신과 닮은 사랑을 했는데, 당신은 할 필요가 없었던 걱정과 두려움을 가져야 했냐고. 사랑은 햇살입니다. 누구도 배척하지 않고 두루 환한 빛 속에 있게 만들죠. 그런데 우리는 왜 사랑이 특정한 사람에게만 허락되는 것처럼 굴고 있는 걸까요? 사랑이 마치 입장권처럼 자격이 되는 이에게만 부여되는 것으로 여기는 걸까요? 음악이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것처럼, 인종과 성별을 가리지 않고 누구나 삶의 가장 좋은 부분인 사랑을 영유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 작품의 아이들이 그러했듯이, 사랑이 아닌 다른 이유로 이별의 고통을 겪어야 하는 이들이 없는 세상이 하루빨리 다가오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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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ke : 초보 메이커의 전기 공작 - 쉽게 이해하는 전자 회로와 아두이노 초보 메이커 시리즈
조디 컬킨.에릭 헤이건 지음, 이하영 옮김 / 블로터앤미디어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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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기 공작. 제게는 뭔가 추억을 소환하는 말입니다. 아버지가 회사에서 전기 관리 일을 했기에 어릴 때부터 이쪽 방면과 친해 즐겨 만들었기 때문이죠. 그 때는 회로도도 직접 그리고 녹색 기판에 부품 꽂고 납땜 인두 지지며 뭔가를 만들었는데, 지금은 아두이노(ARDUINO)라는 것이 있는 모양이더군요. 이건 이 책을 읽고 처음 알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Make : 초보 메이커의 전기 공작'이란 책입니다.


책은 이렇게 생겼습니다^^


 막상 이 책을 읽었을 때는 제목에 속았다는 생각부터 먼저 들었어요. 제목 때문에 저는 무턱대고 이 책을 다양한 것을 만들 수 있는 전기 공작 책으로 여겨버렸거든요.

그런데 '아두이노'에 대한 책이더군요. 제가 이렇게 허술합니다. 무작정 단정 짓고 잘 살펴보지 않아요. 하하. 그래도 어쨌든 이렇게 '아두이노'라는 것을 알았으니 뭐, 손해라고 할 수 없을 것 같네요. 뭐라도 하나 새롭게 배우면 다 이득인거죠. 이거 근거 없는 자기 합리화일까요? 어쨌든 저처럼 아두이노를 처음 들어본 분들을 위해 아두이노가 뭔지 간단히 설명하자면, 아두이노란  엔지니어가 아닌 디자인 전공 학생들이 상호 대화가 가능한 사물과 환경을 만들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저렴하고 단순한 소형 컴퓨터라고 합니다.


아두이노는 이렇게 생겼습니다. 아두이노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실 분들을 위하여 그 모습을 올려봅니다. 



 왜 요즘 설치 미술들 보면 전구가 시시각각 다양한 색으로 점멸한다든지 사람이 다가오면 빛과 소리가 나온다든지 하는 게 많잖아요? 미술만 한 사람들이 그러한 전기에 관련된 일에 지식이 많을 리 없으니 그런 작업을 하는 게 어려울 거라는 건 뻔한 사실이죠. 한 마디로 아두이노는 그런 일에 도움을 주기 위해 만들어진 제품이라는 거죠. 그렇다고 당연하게도 디자인 전공 학생에게만 소용이 있는 건 아니에요. 일상 생활에서도 무한하게 응용 가능한 게 또 아두이노더군요. 그렇지 않았다면 2005년에 첫 선을 보인 아두이노가 아직도 전 세계적으로 쓰이고 있진 않았겠죠. 뭐, 이 정도로 아두이노에 대한 설명하고 내게 아두이노에 대해 처음 알려준 이 책에 대해서 말하자면, 정말로 제목 그대로 초보자를 위해 쓴 책입니다.


 아두이노가 무엇이고 그것은 기본적으로 어떤 것을 필요로 하며 구성은 어떻게 되어있는지를 비롯한 아주 기초적인 사항부터 아두이노를 가동시키는 데 필요한 부품 설치하는 법과 운용 시키기 위한 프로그램을 인터넷으로 다운받고 설치하여 코드 짜는 법까지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더군요. 때로는 전압과 전위 그리고 저항등, 전기 공작하면 친숙해질 수밖에 없는 기초적인 사항까지 자세히 설명하고 있어 살짝 짜증도 났습니다. 그러나 이건 저에게만 해당되는 사항이고 이런 걸 처음 접하는 이들에겐 이참에 전압이 뭐고, 전류와 저항은 뭔지 아주 잘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책은 총 9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하나 하나 단계별로 나아갑니다. 나중엔 서브 모터를 연결하여 아두이노를 통해 움직이게 하는 것과 자신만의 독창적인 아이디어로 아두이노를 활용하는 방법까지 전진하고 있더군요. 원래 아두이노에 대해 관심이 많았고 그것을 기초부터 잘 안내해 줄 책을 찾고 있었다면 이 책은 꽤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검색해 보니 요즘은 초등학교에서도 아두이노 프로그램 수업을 하는 것 같더군요. 그러고 보니 이 책, 초등학생이 보면 딱일 것 같다는 생각도 드는군요.


 제가 원한 책은 아니었습니다만 그래도 어릴 때의 취미였던 전기 공작의 취미를 한껏 소환시켜 주어 좋았습니다. 읽다보니 아두이노에 대해 관심도 많이 가더군요. 언제가는 옛날의 기분을 느끼면서 아두이노를 해보고 싶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 때, 컵라면을 들이밀면 3초간 스프를 뿌려주는 기계를 만들려고 했던 게 기억나네요. 물론 저 혼자만의 설계는 아니었고 '라디오와 모형'이라는 잡지에 나왔던 것을 따라 만들려했던 것이었습니다만. 결국 부품을 구하지 못해 중간에 접어야했지만 그래도 회로도 보면서 작동 원리를 배워 나갔던 게 기억납니다. 그렇게 원리를 알고 나니 사물이 정말 이전과 완전히 다르게 보이더군요. 전기 공작이란 단순히 만든다는 것에만 있지 않고 이렇게 사물을 새롭게 만나고 이해하게 되는 기회도 되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런 걸 아두이노를 통해서 느껴보는 것도 좋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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