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 이야기 2 김명호 중국인 이야기 2
김명호 지음 / 한길사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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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호의 '중국인 이야기1'을 읽고 중국인 이야기2를 읽기로 마음 먹었다. '중국인 이야기1'이 여러 가지 이야기들의 나열이라는 느낌을 받았다면, '중국인 이야기2'는 6개의 주제로 이야기를 묶으려는 노력이 보였다. 물론, 김명호 작가의 성격이 주제별로 이야기를 묶는데 별로 취미가 없는듯한 느낌을 받기도 했다. 만약, '중국인 이야기'를 8권 혹은 그이상 출판하려 했다면, 각권마다 부제목을 정하고 그 안에서 주제별로 이야기를 묶어야했을 것이다. 그런데, 김명호는 그러지 않았다. 서문에서 그가 말했듯이, 중국은 그의 놀이터였다. 놀이를 하는데 순서와 규칙이 필요없다. 그것은 김명호가 중국이라는 놀이터에서 노는데 거치장 스러울 뿐이다. 반면, 그 놀이터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로서는 김명호의 서술방식이 불친절해보일 수도 있다. 그래, 불친절한 김명호의 '중국인 이야기2' 놀이터에서 놀아보자. 


  2권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중국혁명을 이야기할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들의 이야기가 속속들이 펼쳐졌다는 점이다. 국부 쑨원이 일본 망명 시절 대정객 이누카이 쓰요시와 나눈 대화가 흥미롭다. "가장 좋아하는 게 무엇이냐"라고 쑨원에게 질문했더니, 쑨원은 "혁명"이라 대답했다. 이누카이 스요시가 만족스럽지 못한 표정을 짓자, "여성"이라 대답하고, 마지막으로 "책"이라고 대답했다. 쑨원을 비롯한 장제스의 여성편력은 너무 노골적이기도 했지만, 인간의 본능적인 모습이기도 하기에 중국의 국부 쑨원의 인간적인 모습을 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했다.

  쑨원과 장제스뿐만 아니다. 5. 사랑과 혁명 편에서는 일명 '붉은 사랑'의 노골적인 면들이 드라마처럼 펼쳐졌다. 유교로 대표되는 봉건적 사랑에서 벗어나, 서구의 자유주의적 사랑과 마르크스의 사회주의식 사랑이 뒤범벅된 '붉은 사랑'은 정말 혼란스러웠다. 도표를 그려가며 남녀관계를 이해해야할 정도였다. 도표를 그리는 것이 귀찮아서 그들의 '붉은 연애'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넘어갔다. 마치 3류 아침드라마를 보는 것 처럼, 사랑과 배신이 뒤엉켜버린 사랑이야기는 인간의 냄새가 났다. 3류 아침드라마를 욕하면서 보는 이유는 그것이 바로 우리의 삶이기 때문이다. 친구의 애인을 빼앗고, 혹은 빼앗기고 술로 고통스러워하던 우리들 이야기도 바로 3류 아침드라마속 이야기의 일부분이다. 

 남녀간의 사랑은 둘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들의 부모와 얽힌 갈들으로 이어진다. 화류병을 앓고 있고, 본부인과 첩, 정식부인은 아니지만, 부인처럼 살고 있는 여성이 있는 장제스와 결혼하겠다는 막내딸을 쑹자수의 부인은 어떠한 심정으로 대했을까? 그리고 자신이 전재산을 아낌없이 혁명사업에 지원했던 쑨원에게 자신의 딸을 빼앗긴 쑹자수는 어떠한 심정이었을까? 당시 쑨원은 49세 자신의 둘째 딸은 22세였다. 무려 27살의 나이차가 난다. 일본에 가서 쑨원을 만나 악담을 했지만, 결국은 무뤂꿇고 세번절을하며 딸을 잘 부탁한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그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혁명의 와중에도 그들은 사랑을 나누었다. 누가 보기에는 불륜이었고, 누가 보기에는 혁명을 아름답게 수놓은 세기의 사랑이었다. 역사책에는 빠져있는 그들의 사랑을 생각하며 혁명은 붉은 색일 수 밖에 없는 이유를 꼽아본다. 

  내가 한국사람이다보니, 중국 역사책을 읽으면서도 한국 관련 이야기가 나오면 눈이 초롱초롱해진다. 6.25전쟁 시기 김일성과 펑더화이가 주먹질을 했다는 소문은 참으로 흥미로웠다. 같은 사회주의 혈맹이기에 중국과 북한은 사이가 좋을 듯했지만, 소련과 중국이 사이가 나쁘듯이, 중국과 북한도 좋기만한 것은 아니었다. 특히 소규모 전투만 해봤던 김일성이, 6.25전쟁을 제대로 지휘할 수 없었고, 이로인해서 대규모 전쟁을 지휘했던 백전노장 펑더화이와 김일성의 다툼은 있을 수밖에 없다. 남침을 했다가 쪽박 차게된 김일성과 무모한 전쟁을 일으킨 김일성 덕에 남의 나라 전쟁에 참전한 펑더화이가 주먹질을 했다면 누구의 주먹이 더 강했을까? 중국도 어리석은 전쟁을 적극 반대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6.25전쟁의 발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현명한 이웃을 두지 않았다면, 현명하지 않은 이웃이 어리석은 일을 하지 않도록 적극적인 조언은 했어야했다. 


  김명호의 '중국인 이야기2'에는 수많은 인물이 등장한다. 몇몇을 빼놓고는 그 이름을 외우기도 힘들다. 그들이 얼키설키 뒤엉킨 역사는 흥미와 혼란을 동시에 주었다. 그뿐만 아니다. 한 인물을 단순하게 파악할 수 없을 정도로 여러가지 면을 가진 인물도 많았다. 특히 차오쿤이라는 인물은 돈을 주고 총통직을 샀다. 그렇다면 부패하고 무능할 것이라 상상한다. 그런데 "정식 교육은 못 받았지만 도량이 넓었"고 "세계 어디에 내놔도 빠지지 않을 영수의 품격을 갖춘"인물이라는 평을 받았다. 더욱이 그는 관상쟁이의 말에 빠져서 3류 창기 류펑웨이를 자신의 부인으로 삼았고, 그로 인해세 세상의 조롱꺼리가 되었다. 그런데, 3류 창기 류펑웨이는 단순한 인물이 아니었다. 일본군의 괴뢰수반이 되지 말라고 차오쿤을 설득한 것고 그녀이며, 차오쿤이 죽자 장제스가 거액의 위로금을 보냈지만, 거절하고 일본인 문상객은 받지 않은 것도 그녀이다. 평면적 인물이라기 보다는 입체적인 인물들이다. 이러한 역동적인 인물이 있기에 김명호의 '중국인 이야기' 스리즈를 읽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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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7-22 11: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시리즈 정말 좋아합니다
근현대 중국사 인물 평전으로도 손색이 없는 책인것 같습니다(소설보다 재밌는)

강나루 2021-07-22 11:51   좋아요 2 | URL
맞아요
게다가 재미있어요^^
 
일본인 이야기 2 - 진보 혹은 퇴보의 시대 일본인 이야기 2
김시덕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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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사를 떠올리면, 오다노부나가, 도요토미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로 대표되는 센코쿠 시대를 떠올린다. 일본인 이야기1의 표지만 보고 센코쿠시대부터 메이지 유신까지의 역사를 서술한 책으로 오해했다. 일본 근대가 궁금했기에 일본인 이야기2부터 읽기 시작했다. 나의 예상과는 달리 이 책은 에도시대 민중의 삶에 대한 책이었다. 일본사 책들 중에서 일본인들이 쓴 책들은 상당히 읽기 힘들다. 일본인 인명을 외우기도 힘들고 지명들의 날립으로 읽으면서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김시덕이 쓴 책들은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서술되었기에 믿고 읽었다. 일본 근대를 알고 싶어서 읽기 시작했지만, 에도시대 일본인들의 삶을 속속들이 알 수 있어 나름데로 재미있었다.

 

김시덕은 글을 시작하면서부터 자신이 지배층 위주의 역사 서술에서 탈피해서 민중의 삶을 들여다보는 역사서술을 하겠다고 선언한다. 그가 소개한 에도시대 민중의 삶은 상당히 고달팠다. 내가 가르치는 한 학생은 조선을 싫어한다. 조선이 임진왜란때 멸망했다면, 개항도 빨리되고 더 잘살았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조선의 백성은 살기 힘들었기에 일본의 지배를 받는 것이 더 좋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선의 백성들은 수탈을 당했고 양반들은 배불리 먹고 살았다는 잘못된 역사교육이 이러한 엉터리 역사관을 가진 학생을 만든 것이다.

일본 지배층들은 백성들이 죽기를 면할정도의 삶을 살도록 수탈했다. 일본사를 제대로 공부하지 않은 녀석은 일본은 모두 잘살았다는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설명을 해주어도 들으려하지 않는 녀석에게 이 책에 소개된 '마비키(영아살해)'를 들려주고 싶다. 18세기 일본인들 사이에서 한두명의 자녀만 남기고 모두 낳자 마자 마비키(영아살해)하는 풍속이 있었다. 동화 헨젤과 그래텔을 분석하면 흉년으로 먹을 것이 없어 자녀를 버리는 행위가 중세시기에 서양에서 행해졌음을 알 수 있다. 일본에서도 인구조절과 집안 생활향상을 위해서 냉혹하게 마비키를 행했다. 중국과 조선에서도 먹고 살기 힘든 가정에서 자녀를 버리거나 살해하는 일들이 있었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단순히 흉년으로 인해서 먹고 살기 힘든 것만이 아니라, 집안 생활 향상을 위해서 마비키를 행했다.

냉혹한 일본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인권이라는 개념이 근대의 발명품이라는 생각을 한다. 농업생산력이 낮고, 자연재해에 취약했던 과거에는 인권보다는 생존이 우선시 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모습은 동양과 서양의 차이가 없고, 조선과 일본의 차이가 없다. 단지, 일본의 마비키는 더욱 냉혹했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일본의 역사를 알면 알 수록, 일본인들의 냉혹함에 간담이 서늘할 때가 많다. 그중에 하나가 자국민을 노예로 팔어먹는 일본인의 모습이다. 어느 윤리 교사에게 그리스 로마시대의 노예는 결혼도 할 수 없었으며, 아무런 권리가 없었던데 비해서 조선의 노비는 달랐다고 설명했다. , 외거노비는 결혼을 하고 재산을 축적해서 노비를 거느리기 까지했다. 물론, 재산을 모아 신분상승도했다. 특히 세종은 임신한 노비에게 출산휴가를 주도록 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그 윤리교사는 "에그 그래도 조선은 같은 동족을 노비로 말들었잔아"라고 반론을 펼쳤다. 그래서 "그럼, 다른 종족을 노예로 삼아도 되고, 같은 종족은 노예로 삼으면 안된다는 말인가요?"라고 반문하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전근대 시기에 인권이라는 개념이 자리잡지 못한 상황에서 노예와 노비 중에서 어느쪽의 삶이 더 나은가?라는 질문이 부질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센코쿠시대 일본에서는 상대편 영지의 백성을 노예로 팔아버리는 것이 일상이었다. 17세기 말까지 포르쿠갈 리스몬, 남아메리카 리마에서 일본인 노예의 흔적이 보인다. 임진왜란 시기 조선인 포로가 노예시장에 나타나자, 국제 노예값이 폭락했다. 그러나 임진왜란 이후에 조선인 노예가 사라졌다면, 일본인 노예는 그 후에도 계속 국제시장에 출몰했다. 같은 일본인이라는 관념이 형성되지 않았고, 인권이라는 개념이 없었던 일본에서 이웃 영지의 백성을 노예로 파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김시덕은 책 표지에서 "진보 혹은 퇴보의 시대"라고 에도시대를 규정한다. 그는 "퇴보"쪽에 힘을 실어 에도시대를 설명한다. 센코쿠시대 유럽과 교류하며 더 많은 발전을 하였으나, 에도막부가 쇄국정책을 추진하면서 이를 포기했다. 서양의학을 더 빨리 더 많이 들여올 수 있는 기회를 에도막부가 막아섰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나는 묻고 싶다. 누구를 위한 발전인가? 센코쿠시대보다 에도시대가 퇴보했다고 주장하기에는 센코쿠시대에 벌어졌던 수 많은 잔혹한 일들이 너무도 많았다. 에도막부의 안정은 전쟁의 소멸로 이어졌다. 비록 서구의 문물이 늦게 일본에 들어왔다 할지라도 에도시대를 살았던 일본의 서민들에게는 센코쿠 시대보다는 에도시대가 더 행복하지 않았을까?

 

저자 김시덕의 책은 쉽게 쓰여져 있는 것이 매력이다. 일본인이 쓴 일본사 책들을 읽으면서 이해도 못하면서 책장을 넘겼던 아픈 기억을 떠오른다. 반면, 김시덕의 책은 일본을 이해할 수 있는 고마운 책이다. 특히 일본 지배층 중심의 역사에서 벗어나서, 피지배층의 삶을 조망하고, 간간히 조선과 중국, 서양의 역사도 비교해서 서술한 점이 무척 흥미롭다. 미처 읽지 못한 '일본인 이야기1'도 읽어 보아야겠다.

 

ps. 에도막부의 5대 쇼군, 도쿠가와 쓰나요시를 '개쇼군'으로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많다. '살생금지령' 때문이다. 그러나 도쿠가와 쓰나요시는 개를 살생하지 말라는 명령만 내린 것이 아니라, 버려진 아이를 거두는 정책, 백정 즉, 히닌에게 쌀을 주는 정책, 죄수 복지에 관한 정책도 시행했다. 역사를 보고 싶은 것만 본다면, 제대로 과거를 알 수 없다. 이 책을 통해서 도쿠가와 쓰나요시의 새로운 면을 알게 된 것도 커다란 수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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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7-21 17:0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 책 보고 싶어서 담아둔 책인데 자세한 리뷰덕분에 대충 감을 잡을 수 있겠네요. 에도 시대를 퇴보로 보는것은 저도 역시 문제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에도막부시대 서민경제의 성장과 새로운 문화의 등장같은 걸 보면 단순히 쇄국정책만으로 판단할 수 있는 건 역시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아 그런데 고대 로마와 그리스의 노예는 좀 다양했습니다. 노예들 중에는 지금으로 치면 지식인 전문가 그룹도 많았었고, 그들의 생활은 일반 노동 노예들과는 당연히 차이가 많이 났고요.

강나루 2021-07-21 17:13   좋아요 2 | URL
좋은 댓글 감사합니다
김시덕의 책은 읽을만 하다는 걸 다시 확인한 책입니다.

scott 2021-07-21 17: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런 책 좋아합니다(이 페이퍼 읽자 마자 장바구니 속으로 ~@@@)
과장된 일본 대하 소설 읽다가 의문 생길때 마다 들춰봐야 겠네요.


강나루 2021-07-21 17:55   좋아요 1 | URL
일본사에 대한 색다른 접근을 맛볼수 있죠^^

scott 2021-08-06 15: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강나루님 이달의 당선작 추카~~

담달에는 중국인 이야기로 ^.~

강나루 2021-08-06 19:56   좋아요 1 | URL
저보다 당선소식을 먼저 아셨군요.
감사합니다.^^

mini74 2021-08-06 15: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

강나루 2021-08-06 19:57   좋아요 1 | URL
min74님 감사합니다.^^

초딩 2021-08-06 17: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
짝짝짝~

강나루 2021-08-06 19:57   좋아요 0 | URL
감사 감사 감사합니다.^^

이하라 2021-08-06 18: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강나루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강나루 2021-08-06 19:57   좋아요 0 | URL
이하라님 감사합니다.^^

thkang1001 2021-08-06 18: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강나루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강나루 2021-08-06 19:58   좋아요 0 | URL
thkang1001님 감사합니다.^^

서니데이 2021-08-06 18: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강나루 2021-08-06 20:00   좋아요 1 | URL
부지런한 서니데이님 감사해요^^

황후화 2021-08-06 19: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강나루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

강나루 2021-08-06 19:58   좋아요 1 | URL
황후화님, 감사드려요^^

겨울호랑이 2021-08-06 20: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강나루님의 글을 통해 이웃나라이면서도 우리가 알고 있는 일본의 모습은 ‘서구인의 눈에 비친 일본‘, ‘고대 우리에게 문화를 전수받은 후진국‘ , ‘우리를 식민지로 만든 적국‘ 이미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실감하게 됩니다.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

강나루 2021-08-06 20:15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물감 2021-08-06 21:4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강나루님도 당선 축하드립니다^^
너무 넘사벽 리뷰를 쓰셔서 평소 댓글달지 못했는데 이 기회에 친한척 해봅니다.ㅎㅎ

초딩 2021-08-06 21:55   좋아요 2 | URL
저도요!!!

강나루 2021-08-06 21:55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물감님의 리뷰도 넘사벽이지요^^

bookholic 2021-08-07 06: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강나루 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일본인과 중국인을 같이 읽으시는 것 같던데요..
다음달에는 중국인으로 이달의 당석작 기대하겠습니다...^^

강나루 2021-08-07 07:05   좋아요 0 | URL
bookholic님 감사합니다^^
 
중국인 이야기 1 김명호 중국인 이야기 1
김명호 지음 / 한길사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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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를 공부하다보면 유난히 손에 잡히지 않는 부분이 있다. 건조한 분석적인 글들만 읽다보니, 역사에 사람냄새가 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잡힐듯 잡히지 않는 듯한 느낌을 많이 받는다. 중국 근현대사도 마찬가지이다. 대학에서 중국 근대사와 중국 현대사 강의를 수강했고, 중국사에 관련된 책을 꾀 읽었다고 자부하면서도 왠지 모를 공허감을 느끼고 있었다. 중국 대륙에서 펼쳐진 역사에 분석은 있었지만, 사람냄새는 나지 않았다. 사람냄새나는 역사책이 나에게는 필요했다. 김명호의 '중국인 이야기'는 이러한 나의 공허감을 채우기에 적격이다. 격동의 중국 근현대사를 수놓은 수많은 인물들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한편의 무협지를 읽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중국은 땅도 넓고 사람도 많다. 무엇을 하던지 대륙의 스케일은 상상 이상을 보여준다. 가장 먼저 나에게 깊은 인상을 준 것은 인작대전(人雀大戰)스케일이다. 1958년 4월 19일 새벽 4시를 기해서 참새와 대전을 벌인다. 첫날 참새 8만 3249마리를 사살했다. 참새와 전투를 벌인다는 발상 자체가 놀라울 뿐만 아니라, 첫날 사살한 참가가 8만 마리가 넘었다는 사실자체도 놀라웠다. 그후, 펼쳐진 3천만명의 아사자들의 숫자는 더욱 놀라웠다. 강력한 리더십을 가진 리더가 16억 중국인을 잘못이끌었을 때의 참상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이다. 그래서 중국은 두려운 존재이면서 우리에게는 기회의 시장이기도하다. 아무리 싫어도 이웃 나라를 바꿀 수는 없다. 중국을 우리가 좋은 이웃으로 만들어야만 중국과 우리가 행복해질 수 있다.

  3천만명의 아사자를 낳고도 중국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16억이라는 덩치 덕분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중국의 숨은 저력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중일 전쟁기간에도 중국의 교육자들은 일종의 연합대학인 '시난연합대학'을 만들었다. 1938년부터 1946년 사이 8년간 전시임에도 불구하고 3,300명의 인재를 배출했다. 전쟁이라는 국가의 위기에도 인재를 길러 미래를 준비하는 열의가 있었기에 중국이 망하지 않고 중일전쟁에서 승리하고 수많은 실책에도 이를 견뎌낼수 있었다. 시난 연합대학 교장인 메이이치는 "대학은 큰 건물이 아니라 큰 학자가 있는 곳"이라는 유명한 말을 했다. 학생들 등록금으로 큰건물을 짓는데 열을 올리는 우리 대학들이 새겨들어야하는 말이다. 중국의 저력을 알고 중국의 장점을 배워야한다. 

  중국대륙에는 인물도 많고 사건도 많다. 이 책에는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낄수 있는 고뇌가 느껴지는 인물들이 있다. 장제스과 그의 아들 장징궈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장제스는 공산당을 무척 싫어해서 항일전쟁보고 공산당 소탕을 더 중시했던 인물이다. 그런데 장제스가 원래는 홍군장군이라 불렸을 정도로 마르크스 사상에 심취했다는 사실은 놀라웠다. 더욱이 그의 아들 장징권는 소련에 유학했으며, 그의 아버지 장제스가 쿠데타를 일으켜 공산주의자들을 소탕하자, 아버지를 비난하는 편지를 공개적으로 보내기도 했다. 부자가 서로 다른 길을 갔으며, 그 과정에서 아버지를 비난하는 편지를 보내야했던 아들의 심정은 얼마나 괴로웠을까? 공산장 첩보원과 아들을 바꾸자는 소련의 제안을 거부하던날, 장제스는 고통스러워 울부짖었다. 장징궈는 소련 여자와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웃음을 잃지 않고 하루하루를 살아갔다. 그리고 아버지를 다시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장제스에게 돌아온 장징궈는 아버지와 관계가 얼마나 서먹서먹하게 느껴졌을까? 전쟁과 이념이 부자 사이를 갈라놓은 사례가 많다. 그러나 장제스와 장징권의 이야기는 너무도 극적이다. 

  중국 대륙에는 괴짜들이 많다. 미친척하여 목숨을 구한 사례들이 꾀있다. 창업을 위해서 꾀를 내며 목숨을 걸었지만, 창업을 이루고 나서는 불로초를 구한다며 초야로 떠난 장량과 같은 인물이 있다. 중국 현대사에도 탁월한 전략가 린뱌오가 바로 장량과 같은 인물이다. 국공내전을 승리로 이끈 주역이 바로 린뱌오이다. 국공내전이 끝나고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자, 사람만나는 것을 꺼려한다. 권력 핵심인 마오쩌둥의 말이라면 무조건 예스를 외친다. 그는 권력의 속성을 알았다. 류샤오치가 숙청당하는 것을 보며 그는 마오쩌둥에 충성을 다한다. 그리고 권력 서열 2위에 오른다. 린뱌오는 장량처럼 토사구팽 당하지 않기 위해서 정치에 무관심한 것처럼 행동했다. 그러나, 장량이 자신의 목숨을 건지는데 성공했다면, 린뱌오는 몽골로 가는 비행기가 의문의 추락을 하면서 아들과 함께 죽는다. 장량과 같은 지략을 가졌지만, 장량처럼 천수를 누리지는 못했다. 그는 군사천재였지만, 정치의 속성은 제대로 알지 못했다. 

  역사 속에는 반드시 기억해야할 인물들이 잊혀지는 경우가 많다. 차이어가 바로 우리가 기억해야할 인물이다. 자신을 아껴주고 일본유학을 주선해준 위안스카이가 공화제를 무너뜨리고 황제가 되려하자 그는 위안스카이을 몰아내기로 결심한다. 기녀들과 어울리며 정치에는 관심 없는 것처럼 위장하고 요양을 위해서 일본으로 가는 것을 허락받는다. 그러나 차이어는 위안스카이에게서 벗어나 군대를 규합하여 위안 스카이의 중화제국을 무너뜨린다. 그리고 관직을 사양한다. 최고 권력을 얻을수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권력의 유혹을 뿌리쳤다. 사적인 은혜보다 공화제라는 대의를 지키려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다. 그리고 건강이 악화되어 짧은 생을 마감한다. 위안스카이의 중화제국을 차이어가 무너뜨리지 않았다면, 중국의 역사는 더 오랜 동안 뒷걸음질을 쳤을 것이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다시 앞으로 돌린 차이어를 위리는 기억해야한다. 그것은 중국 혁명의 역사가 일제 강점기 한국의 독립운동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김명호의 '중국인 이야기' 책장을 덮고, 긴 탄식이 나왔다. 생생한 중국인들의 역사를, 사람냄새나며, 중국인의 살결 냄새가 묻어나는 김명호의 '중국인 이야기' 스리즈의 유혹을 뿌리칠 수 없음을 깨달았다. 8권까지 나온 '중국인 이야기'에게서 벗어나지 못하고 이 책들을 읽느라 한해를 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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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 지음 / 나무연필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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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로츠키는 자신에게 따뜻하게 대하는 아버지가 소작농에게 가혹하게 대하는 충격적인 장면을 본다. 트로츠키는 따스한 아버지가 왜? 소작농에게는 가혹하게 대하는지 궁금증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탐구한다. 트로츠키의 결론은 아버지가 가혹한 것이 아니라 체제가 아버지를 가혹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아버지의 이중적인 모습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하지 않고, 아버지를 소작농에게 잔인한자라고 매도하지 않고 러시아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찾아내는 트로츠키의 모습이 경이롭다. 러시아 출신 박노자도 트로츠키와 비슷한 점이 많다. 유대인이며, 러시아 출신이다. 그리고 공산주의에 대한 나름의 신념이 있다. 한국사회에서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문제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며 그 구조적 원인을 찾으려 노력하는 것도 트로츠키와 박노자가 닮은 점이다. 박노자가 본 '러시아 혁명사'는 무엇인가 다른점이 있으리라 기대된다. 박노자의 안내로 '러시아 혁명사'를 감상해보자. 


1. 성장은 폭력의 다른 이름인가?

  아직도 박정희 향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있다.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 문턱에 이르렀으면서도 개발도상국 시기의 고도성장을 기대하며 박정희 리더십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에게는 "성장"은 신의 은총과도 같은 존재이다. 

  그런데, 빠른 경제 성장은 박정희만 이룬 것이 아니다. 스탈린도 강력한 계획경제 정책을 통해서 미국과 세계 패권을 두고 자웅을 겨루는 국가로 소련을 만들었다. 스탈린은 빠른 공업화를 위해서 농촌을 희생했다. 농민들의 잉여를 수취하기 위해서 법률로 곡물 가격을 낮추는 적곡가 정책을 펼쳤고, 이를 통해서 농촌의 잉여를 산업에 투자했다. 농촌을 희생해서 공업화를 이루는 모습은 박정희의 개발정책과 너무도 유사하다. 박노자는 스탈린식의 적색 개발에서는 노동자에 대한 복지에 신경썼었면, 박정희의 백색 개발에서는 노동자의 복지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못했다고 지적한다.우리가 노동 3권을 보장받으며 노동운동을 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었다. 식민지를 희생시켜가면서 경제 개발을 한 서구 자본주의 국가와는 달리 식민지가 없었던 주변부 국가들은 내부의 농민을 희생시켜 산업화를 이룰 수밖에 없었다. 충직한 박정희의 추종자로 살다가신 아버지가 사실은 박정희의 백색 개발 정책의 희생자였었다는 사실에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스탈린 시기는 경제 성장과 함께 대규모의 숙청이 함께 이뤄졌다. 스탈린 시기를 암흑의 시기로 기억하고 혁명을 일으켜야하는 소련인들은 그 시기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혁명을 꿈꾸기 보다는 출세의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고 박노자는 지적한다. 이것이 무슨 뚱단지 같은 말인가! 자신의 정적을 비롯해서 죄없는 수많은 사람들을 총살시키거나 시베리아로 보낸 스탈린 집권기가 출세의 희망에 부풀어 있었던 시기라니! 박노자는 "스탈린 체제의 대량 총살은 대량 출세의 다른 이름이었"다라고 지적한다. 68만명의 간부가 숙청된다면 다른 68만명이 그 자리를 채우며 고속 승진의 기회를 잡는다. 대표적인 사례가 스탈린의 후계자 니키타 후루쇼프가 노동자 출신으로 고속 성장한 것을 들 수 있다. 숙청과 고속 출세는 동전의 양면이었었다. 자신이 숙청당하지 않는다면 숙청의 열풍은 기회의 열풍이었다. 박정희 시대도 비슷할 것이다. 유신시절 유신 정우회는 대통령에게 잘보이면 국회의원이라는 떡을 얻어 먹을 수 있는 자리였다. 박정희 정권에게 잘보인다면 달콤한 떡고물들을 얻어 먹을 수 있다. 자신이 저임금 저곡가 정책의 희생작 아니고, 민주화 운동을 하지 않고 박정희 독재에 순응한다면, 아니 더 열심히 추종한다면 박정희 정권의 떡고물들을 핥아 먹을 수 있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암흑기가 누군가에게는 기회의 시기였다. 

 

  "성장이란 폭력의 다른 이름이었고, 폭력의 사회적 명분 또한 성장이었지요"

  "성장을 약속하는 보수적인 리더에게 몰표가 나오는 이유도 짐작 가능하지요. 하지만 그렇게 표를 던지는 이들은 양극화의 희생지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164쪽


  성장과 출세에는 필연적으로 폭력이 수반된다. 한강의 기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수많은 노동자와 농민의 희생이 있어야했다. 독재정권에서 출세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사람들을 짓밟고 일어서야한다. 성장과 출세라는 욕망은 참으로 대단하다. 자신의 몸이 타는줄도 모르고 불길로 달려드는 불나방처럼, 인간은 성장과 출세를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불태운다. 그리고 그 시기를 추억한다. 


2. 박노자는 공산주의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였는가?

  박노자의 그들을 읽어보면, 대한민국에 대한 찬사를 찾아보기 힘들다. 유튜브 속의 외국인들이 한국을 대단한 나라인 것 처럼 찬양하지만, 박노자는 대한민국을 분석하고 비판한다. 그런 박노자가 아련하게 추억하는 시절이 있다. 소련 공산당 시절을 추억하는 부분에서 날카로운 비판보다는 그래도 그때는 추억이 있다며 비교적 긍정적으로 묘사한다. 물질적 풍요는 누리지 못했지만, 문화 공연을 볼 수 있었고, 취미생활을 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었으며, 도서관에서 책을 읽을 수 있었다고 추억한다. 농촌의 공동체가 자신이 살던 도시에 살아 숨쉬고 있었기에 공동체의 따스함을 느낄 수 있었다고 그는 추억한다. 

  박노자는 여기서 한발자국 더 나간다. 구시대의 유물이 되어버린 '공산혁명'이라는 미련을 박노자는 벗어던지지 못한 듯한 인상을 이 책 곳곳에서 받는다. 프랑스의 공산당이 체제내에 안주하면서 혁명의 시기가 왔음에도 불구하고 자본가 편에서 노동자의 요구를 조정함으로써 혁명의 기회를 없애버렸다고 서술한다. 심지어 "한국을 비롯해서 신자유주의의 광풍이 휘몰아치고 있는 21세기의 아시아에 또 다시 공산주의 운동이 필요하지 않을까요?"라는 질문을 던지기 까지한다. 

 박노자가 대한민국 사회를 비판하는 글을 읽으면 한국사회의 아푼 곳을 찔린듯, 움찔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박노자가 이상으로 생각하는 사회는 자본주의 사회가 아니라, 지금 붕괴되어 없어진 공산사회가 아닌지 의문이들 때가 많다. 멕시코에서 스탈린이 보낸 자객의 테러를 당하고 머리 수술을 받기 직전의 트로츠키가 한말이 있다. "궁극적인 차원에서 당은 올바르다."!! 트로츠키는 자신을 죽이려하는 스탈린의 당을 부정하지 못했다. 도그마에 갖혀 세상을 바로 보지 못하는 그는 눈뜬 장님있었다. 박노자가 신자유주의의 문제를 치유할 대안으로 제시하는 공산주의라는 환상은 트로츠키가 벗어던지지 못했던 공산당에 대한 환상과 같은 것은 아닐까?

  중국 CCTV에서 만든 '대국굴기' 소련편에서 레닌은 이상적인 지도자로 묘사하고 있다. 반면, 박노자는 "레닌은 작은 데서 성공했지만 큰데서 실패했습니다. 그는 권력을 잡았지만, 그가 꿈꾼 이상적인 사회는 만들지 못했습니다."라며 레닌에 대해서 냉철한 평가를 내렸다. 그런데, 박노자는 한세기 동안 이뤄진 공산주의 실험이 실패로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공산주의에 대한 미련을 벗어던지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신자유주의의 폐해가 크기 때문일까? 아니면, 박노자가 어린시절을 아름답게 추억하고 싶은 욕망이 크기 때문일까?


  1914년 8월 4일 독일 의회에서 전시 공채 발행안 투표에서 독일 사민당은 단 2명만이 반대표를 던졌다. 박노자는 이를 두고 "독일 사민당이 자국의 노동자를 도살장으로 내몬 것"이라고 비판했다. 전쟁이라는 비상시에 "NO"를 외칠 것을 요구하는 박노자! 그러나 "NO"를 외칠 수 없는 나약한 우리들!! 박노자의 글은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도록 우리를 안내한다. 그리고 그속에서 불편함을 느끼도록한다. '러시아 혁명사 강의'라는 책도 나를 불편하게 했다. 그렇지만, 공산주의에 대한 미련을 벗어던지지 못한 박노자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없다. 우리 사회를 정글 속 야만으로 내모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 논리로 사용할 수는 있어도, 결코 우리 사회가 공산사회가 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점이 박노자와 내가 다른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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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위안부가 아니다 - 아시아의 일본군 성노예 피해 여성 21인의 목소리
안세홍 지음 / 글항아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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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군 '위안부'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많은 사람들은 조선인 피해여성을 떠올린다. 조선 출신이 가장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조선인만 피해자였던 것은 아니다. 일제가 중국을 침략하고 현지에서 중국인 여성을 강제로 일본군 '위안부'로 만들었다. 일제가 동남아시아를 침략하면서 동남아시아 일대의 인도네시아,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등의 국가의 여성도 일본군 '위안부'로 피해를 입어야했다. 심지어는 인도네시아를 식민지배던 네덜란드 출신의 여성도 일본군 '위안부'로서 고통을 당해야했다. 자칫 조선인 여성만이 피해를 입은 것으로 착각하기 쉬운 일본군 '위안부'문제를 보다 넓은 시각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안세홍 작가의 '나는 위안부가 아니다.'라는 책은 커다란 의미가 있는 책이다. 겹겹사진전으로 유명한 그는 전세계에 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만나면서 자신이 가장 잘하는 사진으로 그분들의 기록을 남기는 일을 하있다. 이 책을 통해서 그와 그의 책속에 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분들을 만나러 가보자. 


1. 깊게 패인 주름

  "국제법은 미성년의 경우 본인의 승낙 여부와 관계 없이 매춘업에 종사하는 것을 전면금지하고 있다."(48쪽) 그러나 일제는 미성년자를 동원했다. 이 책에 소개된 대부분의 피해자 분들은 13살~16살의 꽃다운 소녀들이었다. 소녀들을 강제로 끌고가서 일본군의 성욕을 채우는 도구로 사용한 이유는 그녀들이 임신할 염려가 없다는 사실이다. 즉, "콘돔이 부족해지자 일본군은 성노예 여성을 동원할 때 임신이 되지 않는 여자를 끌고" 갔던 것이다. 일본군에게 상식과 인권을 바란다면 너무도 헛된 바램이었을까? 

  동티모르 베코 출시의 이네스는 일본군에 끌려가 밤에는 성폭력에 시달리고 낮에는 노역을 해야했다. 성폭력을 당한 그녀들에게 일본군은 춤과 노래를 부르도록했다. 도망치고 싶어도 부족장이 그녀들을 감시해서 도망칠수도 없었다. 부족장이라면 부족민들의 안전을 먼저 생각해야했지만, 부족장은 일본군에 협력하며 부족민을 짖밟는데 앞장섰다. 이네스는 성폭력을 당하고 일본군의 딸을 낳았으나 아이를 빼앗겼다. 그리고 그 딸의 생사도 알길이 없었다. 

  필리핀 팜팡가 출신의 루시아는 "항상 강간을 당하는 꿈"을 꾼다고 한다. 12살에 일본군에 강제로 끌려가서 성폭행을 당하고 온몸이 부서졌다. 너무도 가슴 아프고 분통터지는 이야기를 계속 읽기가 힘들었다. 얇고 사진이 많아 쉽게 읽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책을 덮고 잠시 머리를 식혀야했다. 책장을 쉽게 넘길 수 없었다. 사진속 여성들의 얼굴에 깊게 패인 주름은 그녀들이 살아온 과거를 말해주고 있었다. 주름에 새겨진 고통과 통한의 역사를 그냥 넘길 수 없어 다시 한번 사진속 여인들을 바라본다. 중국 아이난 출신의 왕즈펑의 모습은 울부짖는 듯한 표정이었다. 일제에 대한 원망과 하소연이 담겨 있으며, 침묵하는 일본과 외면하는 중국 정부에게 보내는 또다른 외침으로 보였다. 과연 우리는 그녀들의 외침에 귀기울이고 있는가?


2. 한숨과 탄식

  중국 하이난 출신의 황유량은 1941년에 13세의 나이로 일본군에 성폭행을 당했다. 그리고 2년간 지옥과 같은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천신만고 끝에 살아돌아온 그녀를 주민들은 르번구냥(일본처녀)라며 무시했다. 일본군에게 피해를 입은 그녀가 마을 주민들에게 놀림을 받고 심지어는 그녀의 자녀들도 마을 주민들로부터 눈총을 받았다. 결국 자녀들도 그녀를 탓했다. 가해자인 일본인들은 뻔뻔하게도 피해자인 그녀들을 창녀라고 몰아붙이고, 피해자들은 숨죽이며 살아야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라니.... 한숨과 분통이 터져나온다. 

  더욱 문제인 것은 유교의 영향이 강한 한국에서는 그녀들을 화냥년이라며 무시했고, 이슬람의 영향력이 강한 인도네시아에서는 명예살인의 위험속에서 피해사실을 숨기며 숨죽여 살아야했다. 약자에게 희생을 강요하고 강자의 폭력에는 침묵하는 양아치 윤리를 강요하는 어이없는 현실이 우리의 현실이다. 미투 운동이 있기 전까지 우리 사회는 성폭력에 대해서 얼마나 야만적이었는가! 피해자가 신고를 해야 처벌을 받고, 피해자가 2차가해를 우려해서 숨죽여 살아야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이었다. 

  중국 산시성 출신으로 13살 때 일본군에게 성폭력을 당하고 지옥과 같은 시간을 보낸 런란어는 "난 이일이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중국 정부가 더문제에요."라고 울붑짖는다. 중국에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를 우리 처럼 적극적으로 이슈화 시키지 않는다. 대국이라고 불리는 중국은 힘없는 여성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보다. 중국이 미국을 넘어서는 세계 패권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약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한다. 강자에게 비굴하고 약자에게 굴림하는 양아치리더십으로는 세계의 패권을 가질 수 없음을 중국 정부는 알아야할 것이다. 


3. 회한과 끝없는 고통

  전라도 출신의 박차순 할머니에게 안세홍 작가가 무엇이 가장 갖고 싶냐고 물었다. 박차순 할머니는 "엄마! 갖...고...싶...다."라고 대답했다. 일본군 '위안부' 생활을 하면서 몸이 망가졌고 아기를 낳지 못해 양달을 데리고 사는 그녀에게 어머니와 같은 안식처는 없었다. 어머니의 따스한 품처럼 그녀를 따스하게 안아줄 안식처는 그 어느 곳에도 없었다. 전쟁이 끝났지만, 그녀들에게 삶이 곧 전쟁이었다. 주변의 시선과 싸워야했으며, 뻔뻔하게 반성하지 않는 일본 정부와도 싸워야했다. 

  중국 광시좡족자치구 출신의 웨이사오란은 유부녀임에도 불구하고 24세의 나이로 일본군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딸을 살리기 위해서 일본군이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살아돌아온 그녀는 딸을 잃고 일본군의 아이를 낳는다. 시댁에서는 아이를 낳으면 바로 죽이겠다고 했다. 그런데, 아들을 낳자 농사짓는데 쓰겠다며 죽이지 않았다. 아이가 자라자 마을 사람들은 "아이가 일본군을 닮았다고 멸시했"다. 아무런 잘못도 없는 아들은 일본군을 닮았다는 비아냥을 들으며 직업도 얻지 못하고 결혼도 하지 못하고 어머니를 모시며 살아야했다. 2010년 12월 일본 의회가 주최한 '위안부' 피해자 공청회에 참석한 아들은 큰소리로 울부짖으며 그동안 하지 못한 울분을 토로했다. 일본군이 뿌린 불행의 씨앗은 대를 이어 깊은 상처를 남기고 있었다. 

  필리핀 팜팡가 출신의 파우스트 고메즈는 12세의 나이에 일본군에 끌려가 깊은 상처를 받는다. 그리고 2000년 '롤라스 컴패니아 성노예 생존자 그룹'에 들어가 해외 언론이 올 때마다 피해 사실을 증언하고 있다. 그녀는 말한다. "나는 그저 우리가 싸우는 것을 위한 정의가 세워지길 바라요. 그리고 공식적인 보상과 사과를 원합니다." 정의가 세워지고 일본인들이 진심으로 반성하는 그날을 고대하며 그녀는 삶의 마지막 힘을 다해서 일제와 맞서 싸우고 있다. 그러나 그녀들의 이러한 투쟁에 일본은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아시아 태평양 전쟁을 '대동아 전쟁'이라고 부르면서, 일본이 서양 제국주의 국가들로 부터 아시아 국가들을 해방시켰다는 망발을 한다. 필리핀, 인도네시아, 중국 등지의 여성을을 일본군의 성노예로 만들고 그 가족을 죽이는 만행을 저지르고서 어찌 이런 망발을 한단말인가! 반성할줄 모르는 그들에게 우리가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것은 아닌가!


  필리핀 코레히도르 섬을 방문한 일본 여행객은 이곳에서 묵념을 하며 전쟁의 아픔을 기억하기 보다는 "자기네 일본군들이 명예롭게 싸우다 죽음을 맞이한 것에 존경심을 표했다." 같은 역사를 겪었지만, 기억하는 것은 너무도 다르다. 일본은 그들이 행한 침략전쟁과 전쟁과정에서 그들이 벌인 만행을 가르치지 않는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핵폭탄을 맞은 것을 빌리로 피해자 코스프레를 한다. 역사는 기록하는 자의 것이며 기억하는 자를 위해서 존재한다. 우리가 아픈 역사를 기록하지 않고 기억하지 않는다면 일제의 침략전쟁을 미화하는 역사만 존재할 것이다. 그렇다면, 아픈 역사는 또다시 반복되기 마련이다. 아프고 괴로울 수록 기억하자! 우리 자녀들에게 이 책을 권해야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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