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과 4분의 1세 헨드릭 흐룬의 비밀일기
헨드릭 흐룬 지음, 최민우 옮김 / 문학수첩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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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종류의 책을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별다른 이야기 없이 일상의 일을 잔잔하게 서술했기에 책을 읽는 동안 집중해서 읽을 수가 없었다. 특별한 정보를 제공하기에도 정보가 적었으며, 재미를 느끼기에는 문화적 거리감이 켰다. 그럼에도 이책을 끝까지 읽어 내려갔다. 그러면서 모래사장에서 옥구슬을 찾아내려 노력했다.

 

이 책은 우울할 수 있는 요양원생활을 특유의 과정법과 풍자로 웃음을 선사하려 노력했다. 한예로 시설원장 스텔바바헌 부인은 온도 조절장치를 27도에 놓고 열대식물을 키운다. 그러나 노인은 23도로 온도조절 장치를 고정시켜 놓고 추위를 타는 사람은 옷을 입도록 한다. 또한 주인공은 먹기 싫은 케익을 물고기에게 주었다가 물고기가 죽는 사태가 벌어졌고, 요양원측은 경찰을 불러 이를 해결하려 했다. 이렇게 유치하고 별다른 사건이라고 보기에 부족한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우리에게 당혹감을 주는 유머도 있다. 당뇨병이 있는 에베르트는 잘려진 자신의 발가락을 유리병에 담아가겠다고 간호사에게 말했다. 간호사가 이미 처분했다고 말하자, 에베르트는 법적 절차를 밟겠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웃으며 농담이라고 말했다. 섬뜻한 농담이다.

다소 황당하기까지한 과장된 표현과 농담들을 읽으며 처음에는 이해되지 않았다. 헨드릭 흐룬은 왜? 이러한 당혹스러운 농담을 하는 것일까? 사실 지옥에서도 인간이 버틸 수 있는 이유는 유머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에서 빅터 프랭크는 그곳에서도 웃음이 있다고 적고 있다. 지옥과 같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도 그들은 유머를 잃지 않았다. 그것이 그들을 버티게 했다. 삶의 의미만으로는 그 기나긴 죽음의 터널을 벗어나기 힘들다. 유머가 있기에 그들은 순간이지만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헨드릭 흐룬이 사는 곳은 지옥에 가깝다. 매일 사람들이 죽어갔다. 그리고 살아있더라도 제정신을 잃고 치매 병동으로 사람들이 옮겨간다. 몸은 늙고 병들었다. 요실금으로 기저기를 착용해야하는 삶이다. 이곳을 벗어나는 길은 죽음 뿐이다. 헨드릭 흐룬은 이책 곳곳에 안락사를 되뇌인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죽음이라는 종착역을 향해 출발하는 기차에 올라탔다. 요양원에 있는 사람은 그 종착역에 보다 가까이간 사람이다. 어떤 사람은 그 종착역에 더 빨리갈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

그 깊고도 어두운 길을 헨드릭 흐룬은 좌절보다는 유쾌하게 가려한다. 그리고 단조롭고 평범한 일상을 평범하지 않게 보려 노력한다. 때로는 과정되게 때로는 유머로 웃음으로 건너가려한다. 그래서 헨드릭 흐룬의 유머는 호쾌하게 웃을 수 없다. 그들이 가는 길이 밝지 않기 때문에....

헨드릭 흐룬이 이책에서 2번씩이나 강조해서 제시한 문장이 있다. "한나라의 문명 수준은 노인과 약자를 어떻게 대하느냐로 측정할 수 있다."(307) 노인인 그에게 주된 관심사는 노인 정책과 요양원에서의 삶이다. 그의 말이 맞다면, 노인을 공경할 것을 강조하는 유교는 지상 최고의 사상일 것이다.

서양인들이 동양의 노인 공경문화를 동경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서양의 문화 유입과 자본주의 사회가 자리잡은 동양사회에서 예전만큼의 노인공경은 찾아보기 쉽지 않다. 그리고 그렇게된 이유는 노인에게도 있다. 삶의 지혜를 가지고 있으며 조용히 젊은이들에게 조언하는 존재에서, 아집에 휩싸여 화를 잘 내는 존재로 노인은 이미지가 변화했다. 노인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은 광화문의 태극기 집회이다. 시대는 민주주의 시대로 변했지만, 그들의 생각은 독재정권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다. 계속 배우며 지혜를 쌓기 보다는 젊은 시절 배웠고 세뇌당했던 논리를 젊은 세대에 강요하려하고 있다. 시대가 변한다. 그렇다면 노인도 변해야한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진리는 모든 것은 변한다는 사실 뿐이다.

이 책을 읽으며 어머니를 떠올렸다. 노쇠하고, 먹어야하는 약이 늘어나고, 거동이 불편한 것은 소설 속 요양원 노인과 비슷했다. '논어'에 부모님의 나이를 알아야한다. 한편으로는 부모님의 장수하심에 기뻐하고 한편으로는 나이듦에 두려워해야한다.(子曰 父母之年 不可不知也 一則以喜 一則以懼.)라고 했다. 헨드릭 흐룬이 가는 길은 어머니가 가는 길이며 우리가 갈 길이다. 그러하기에 헨드릭 흐룬의 이야기를 마냥 가볍게만 읽을 수 없다. 때로는 무겁게, 때로는 긴 한숨을 쉬며 읽었다.

헨드릭 흐룬은 독일 자녀들이 부모를 우크라이나 혹은 슬로바키아, 심지어 태국의 싸구려 요양원에 버린다는 보도를 보고는 분개한다. 나는 헨드릭 흐룬에게 묻고 싶다. 좋은 요양원은 어떤 것인가를 진지하게 묻고 싶다. 초고령화 사회가 우리 앞에 다가오고 있다. 1인 가구가 늘어나고 있으며, 결혼 했어도 자녀 없는 가정이 많다. 자녀가 있다할지라도 상당수는 말년을 요양원에서 보낼 가능성이 높다. 또한 저소득 노령 인구의 증가로 요양원에 가지도 못하고 쓸쓸히 고독사하는 사람도 증가할 것이다. 그들에게 좋은 요양원은 무엇인가? 좋은 요양원은 존재하는가?

 

나이듦이 우리의 숙명임을 생각한다면, 부모를 편히 보내드리고 우리도 편히 그 길을 갈 준비를 해야한다. 그리고 헨드릭 흐룬이 고민하듯이, 자신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서 존엄사를 고려해야하는 순간이 올 수도 있다. 헨드릭 흐룬의 부인은 정신병원에 있다. 사랑하는 에이피어는 1229일에 저하늘로 갔다. 그리고 그의 친구 에베르트는 당뇨 합병증으로 다리를 잘라야했다. 흐리티어는 알츠하이머를 알고 있다. 그녀는 서서히 자신을 잃어가고 있다. 헨드릭 흐룬의 친구가 하나둘 세월의 무게에 짓눌려 서서히 쓰러지고 있다. 그렇지만, 그 속에서도 그들은 웃음을 잃지 않으려 노력한다. '늙었지만 죽지 않아' 모임도 새로운 계획을 세우며 다시 출발한다. 죽음이라는 종착역이 가까워질지라도 우리는 웃음을 잃지 않고 웃으며 그 곳에 갈 수 있음을 헨드릭 흐룬은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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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innk 2023-11-03 10: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빅터 프랭클...죄송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