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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알아야 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모든 것
도브 왁스만 지음, 장정문 옮김 / 소우주 / 2024년 5월
평점 :
도브 왁스만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모든 것'이라는 책제목은 너무도 매력적이다. 팔레스타인 문제를 쉽게 설명해줄 책으로 느껴졌다. 그러나, 도브 왁스만이 팔레스타인 분쟁의 원죄를 저지른 영국 출신이라는 사실에 불안감이 들었다. 과연 도브 왁스만은 그의 조국 영국이 저지른 원죄에서 벗어나 팔레스타인 문제의 진실을 우리에게 설명해 줄 수 있을까?
도브 왁스만에 대한 불신은 한국어판 서문을 읽으면서 시작되었다. 이스라엘과 친한 한국과 팔레스타인과 친한 북한의 구도를 설명하는 도브 왁스만의 글을 읽으며 그가 객관과 중립이라는 미명하에 팔레스타인의 진실을 거짓과 섞어서 우리에게 전하진 않을까? 라는 불안감이 들었다.
"사람들은 갈등이 있을 때, 그 안에 숨겨진 복잡성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대신 어느 한쪽편을 드는 경향이 있다. 분쟁에 대해 단순하고 편향된 관점을 취할 뿐 아니라, 선과 악 사이의 일종의 도덕적 게임으로 간주하는 것이다."-16쪽
달리는 기차에서 중립이란 있을 수 없다. 정의와 불의 사이에서 중간은 기회주의자들의 선택일 뿐이다. 아일랜드 철학자 에드먼드 버크가 "악이 승리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단 하나 선한 사람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양비론, 양시론으로 양쪽의 비판을 피해가며 악이 승리하도록 방조하는 우를 도브 왁스만이 저지르지는 않을지 내심 불안했다. 특히 이스라엘의 소설가 아모스 오즈의 말을 저자가 인용할 때는 그 불안감이 최고조에 달했다.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분쟁은 비극이며, 정의와 정의의 충돌이다. 따라서 흑백으로 구분할 수 없다. 하지만 최근에는 불의와 불의의 충돌이기도하다."-19쪽
전형적인 양비론, 양시론이다. 양쪽을 긍정하고 양쪽을 비판하는 전형적인 미꾸라지들의 행태이다. 논어에 자공이 마을 사람이 모두 좋아하는 사람는 사람은 어떻습니까?라고 묻자 공자는 좋지 않다고 말했다. 다시 자공이 마을 사람이 모두 싫어하는 사람은 어떻습니까?라고 다시 묻자 역시 좋지 않다고 말했다. 공자는 마을 사람중 착한 사람은 그를 좋아하고 착하지 않은 사람은 그를 싫어해야한다고 말했다.(子貢問曰: 鄕人皆好之, 何如? 子曰: 未可也. 鄕人皆惡之, 何如? 子曰: 未可也. 不如鄕人之善者好之, 其不善者惡之.) 중립을 지키는 책보다는 정의를 말할 용기가 있는 책을 읽고 싶었다. 그랬기에 이 책을 읽는 초반에 도브 왁스만의 글을 의심의 눈초리를 읽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나의 우려는 기우에 불과했다. 이 책은 생각보다 객관적으로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분쟁의 역사를 서술하고 있었다. 1994년 헤브론의 이브라히미 모스크에서 이스라엘 시온주의자들이 기도하던 팔레스타인인 29명을 총으로 쏴죽인 사건을 도브 왁스만은 과감하게 소개했다. 팔레스타인의 가해는 대서특필하면서 이스라엘의 전쟁범죄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서방 언론과는 확실히 대비되는 서술이었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의 땅을 빼앗은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팔레스타인 민족은 없다.'라고 선전한다. 심지어 "땅없는 민족에게 민족없는 땅을"(94쪽)이라는 구호는 초기 시오니스트들의 폭력성과 야만성을 극명히 보여주며 팔레스타인이라는 민족이 실존하지 않다는 프로파간다를 갖게한다. 더욱이 서아시아 역사와 문화에 정통한 박현도 교수님도 팔레스타인 민족은 없다고 팟캐스트에서 지적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도브 왁스만은 팔레스타인 민족을 인정하고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서 한걸음 떨어져 객관적으로 이지역의 역사를 바라보고 있다고 신뢰하는 박현도 교수님도 팔레스타인 민족은 없다고 말했는데, 영국 출신의 도브 왁스만이 이를 인정하다니! 이는 충격이었다.
보드 왁스만은 근대민족주의가 18세기 이후의 산물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민족주의가 근대의 산물이라면 1834년 대규모반란과 1948년 5월 15일 나크바 이후 팔레스타인 민족이 탄생했음을 인정하는 것은 당연하다. 더욱이 팔레스타인인들이 스스로를 팔레스타인 민족이라 말하고 있지 않은가? 이스라엘인들이 팔레스타인 민족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주인없는 땅에 옛주인이 다시 돌아왔다는 그들의 서사를 정당화하기 위한 레토릭일 뿐이다. 거꾸로 말하자면, 이스라엘인들이 팔레스타인 민족을 인정할 때만이 평화의 대화가 가능하다.
팔레스타인 분쟁의 역사를 공부하면서 팔레스타인인들의 고통에 동병상련의 아픔이 느껴졌다. 땅의 주인이면서도 땅을 빼앗기고 그땅에 죄인처럼 창살없는 거대한 감옥에 살아야했던 우리의 근대사와 팔레스타인의 역사가 오버랩되었다. 만약 우리가 독립을 성취하지 못했다면, 팔레스타인인 처럼 창살없는 감옥에 살거나 전세계에 흩어 뿌려져서 뿌리내리지 못한 민족으로 살았을 것이다. 그러기에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 투쟁하신 선열들이 더욱 고맙게 느껴진다.
한편, 강경파 팔레스타인이들에 대한 아쉬움도 들었다. 팔래스타인 지역문제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를 두고 UN에서 고민이 있었다. 이때 팔레스타인 아랍지도자들은 팔레타인 특별 위원회(UNSCOP)에 참여를 보이콧했기 때문에 특별 위원회는 시온주의자들의 발표만 들었다. 결국, 이스라엘에 유리하게 결정이 내려졌다. 팔레스타인 특별 위원회(UNSCOP)의 결정에 시온주의자들은 예루살렘 헤브론 등 유대의 역사적 종교적으로 중요한 지역이 아랍 국가 영토에 포함되어 불만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팔레스타인 특별 위원회(UNSCOP)의 분할 계획을 수용한다. 반면, 팔레스타인인들은 이에 반발하며 팔레스타인 특별 위원회의 결정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결과는 나크바(대재앙)으로 이어졌다.
이 부분은 5.10 총선에 참여하지 않은 김구를 비롯한 독립운동가들의 행동과 오버랩된다. 결국 김구를 비롯한 독립운동가가 5.10 총선을 거부하자, 한민당과 이승만 계열은 선거에서 승리한다. 그후, 친일파에 의해서 독립운동가가 역청산되는 비극이 벌어진다. 현실을 무시한 선명성 경쟁이 비극을 불러온 것이다. 지금 100%를 갖지 못한다해도 이를 받아들이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조금씩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려 노력하는 영리함을 독립운동가와 팔레스타인인들은 갖지 못했다.
오슬로 협정에 대해서 '팔레스타인 100년 전쟁'에서는 이스라엘에 굴복한 굴욕적인 협정으로 서술되어있다. 그러나, 도브 왁스만은 오슬로 협정의 많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인 면을 강조한다.
"오슬로 협정은 폭력에 대한 외교의 승리이자, 이스라엘 정부와 PLO 지도부가 만들어낸 정치적으로 대담한 이니셔티브의 상징이다."- 209쪽
PLO가 패배한 협상을 정적으로 바라보는 도브 왁스만의 평가에 동의할 수 없다. 이협정에 도장을 찍은 아라파트도 결국은 암살당하지 않았던가? 팔레스타인 인들은 정부를 구성하지도 못했다. 이스라엘 군대에 의해서 인권을 침해당하며 생명까지도 잃는 서안지구의 팔레스타인 인들의 모습을 도브 왁스만은 외면하고 있는 것인가?
헤르츨은 '오래된 새로운 땅'이라는 글에서 "이루고자하는 의지가 있다면 그 목표는 더 이상 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유대인의 의지가 팔레스타인인에게는 재앙의 시작이 되었다. 도브 왁스만이 이 책에서 말했듯이,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대부분의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인은 유전자가 상당부분 겹치는 것으로 밝혀졌는데 이는 두 민족이 유전적으로 서로 관련이 있음을"(68쪽) 알려준다. 같은 공간에서 비슷한 유전자를 가지고 살았던 두 민족이 이제는 서로를 인정하지 않으며 불행의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제 팔레스타인인과 이스라엘인이 '평화'라는 목표를 같이 이루고자 노력하길 바란다. 그런다면 두민족은 더 이상 한민족의 의지가 타민족의 재앙의 시작이 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