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역사 최전선
허동현·박노자 지음 / 푸른역사 / 2003년 9월
평점 :
일시품절


우리역사 최전선 이라는 책제목은 나의 구미를 당겼다. 박노자라는 조금은 불편한 진보주의자와, 허동현이라는 보수(나는 수구라고 부르고 싶다.)의 논쟁은 어떻게 치열하게 상대방에서 창과 방패를 휘두르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1. 실망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고, 나는 실망을 금치 못했다. 나의 상상과는 달리 둘다 공자왈 맹자왈 등의 너무도 당연하고 도덕적인 말들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뉴라이트 성향의 교수로 알려진(http://www.nocutnews.co.kr/news/1156588 뉴스 참조) 허동현가 적극적으로 수구파의 논리를 말할 것으로 기대했다. 박노자는 진보라고 하지만, 안중근을 인종주의를 넘어서지 못한자(http://legacy.www.hani.co.kr/section-021109000/2006/12/021109000200612210640012.html)로 평가하는 글들을 보면서 그들의 진정한 본심을 듣고 싶었다.

 

자칭 '건강한 보수'와 '개인주의적 진보'라는 두 사람의 글들은 서신교류(메일)라는 택스트이기에 스스로 자기 검열을 하고 타인에게 공격받을 글들을 쓰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인다. 이것이 이책을 읽으면서 내심 실망감을 갖게했다.

 

2. 희망

나의 기대와는 상관 없이, 언론에 비친 그들의 모습일 잘못된 것이든, 아니면, 철저한 자기 검열을 통해서 쏟아진 글이든. 이책 자체는 상당히 건전한 글들로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이 책의 내용과 글들이 이들의 진정한 모습이길 바란다. 서로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지만, 시대를 고민하며, 우리사회를 올바른 사회로 만들길 원하는 이들의 치열한 고민과 토론은 기대승과 이황과의 사단 칠정 논쟁을 연상시킨다. 주장은 있지만, 토론과 경청은 없는 우리시대의 자화상을 보며, 절대 대화가 불가능해 보이는 두사람의 토론은, 그 토론 자체만으로도 상당한 의의가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히스토리아 노바 - 주경철의 역사 에세이
주경철 지음 / 산처럼 / 201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두꺼운 책들을 무겁게 읽지 않고, 산책하며 가볍게 읽을 수 잇는 책이다.

 

참고문헌도, 해당 주제에 1~3편에 불과하다. 이정도의 참고문헌으로 쓴 글을 어떻게 신뢰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산책하며 가볍게 머리를 식히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강력하게 추천한다.

 

상식으로 알고 있던 주제는 좀 싱거웠지만, 나도 몰랐던 주제들은 너무도 새로웠다. 서양사학자로서 서양사에만 치중되기 쉬운 주제를 한국사를 포함한 세계사의 많은 주제들을 고대부터 현대까지 소개하고 있다.

 

인상적인 몇개의 주제를 하나 소개하자.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칼래의 시민에 대한 새로운 소개이다. 이것이 과장되었다는 사실을 자세히 소개하였다. 그러나, 노암 촘스키가 말했듯이 " 우리가 진실을 알면 때때로 씁쓸해 진다." 노빌레스 오빌리쥐를 이야기 할 때, 근거로 소개하는 것이 바로 칼래의 시민이었다. 그러나, 현실의 불합리를 깨부수기 위해서 과거의 신화를 깨부술 필요가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였다. 그리고 주경철의 말을 믿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참고문헌과 기록, 그리고 치밀한 논증이 뒤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른 주제들도 5분정도 읽고 머리 식히고 싶을때, 펼처들면 좋은 책들이다.

 

과거 읽었던, 문화로 읽는 세계사에서 느꼈던 재미와 감동에 비해서는 못하다는 느낌든다. 주경철에게 부탁하고 싶다. '문화로 읽는 세계사'와 같은 재미와 감동을 같이 사냥할 수 있는 책을 써주길... 물론, 이 책도 나름의 가치가 있다. 그것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권을 읽고 난후, 2권을 집어들었다. 정조가 없는 암흑의 시대! 정조라는 성군을 만났기에 화성을 건설하고, 목민관으로서 선정을 베플 수 있었다. 그러나 정조가 없는 세상은 해가 없는 하늘이고 달이 없는 밤이었다.

  이 암흑의 시대를 정약용은 학문에 대한 열정으로 채웠다. 실학을 집대성하고 500여권의 저서를 남긴 것은 바로 그의 18년 유배생활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는 실학의 최고봉이자, 조선 500년 역사 최고의 학자로 남겨질 수 있었다. 이러한 유배를 그에게는 다행이라고 생각해야할 까? 아니면 불행이라고 생각해야할까? 아마도 불행을 정약용이 행운으로 바꾸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이다. 정조가 없는 암흑의 시대를 학문이라는 등불로 밝혀나가고자했던 그의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그에 대한 노론 벽파의 공격은 천주교를 트집잡아 시작한다. 그는 천주교를 배격하였으나, 노론 벽파에게는 이 사실보다는 그를 죽이겠다는 표독한 집념밖에 없었다. 그리고 수 많은 인재가 죽어갔다. 이익의 종손인 이가환 부터 시작해서 수 많은 남인들이 죽어갔다. 그리고 그의 형, 정약종도 그 수많은 사람중에 한사람이었다. 단지 정약용 그와 그의 형 정약전이 유배되었음을 다행으로 여겨야할 정도였다. 피바람의 시대, 야만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 책은 유배시절의 그의 많은 저서와 민초들에 대한 안타까움, 그리고 형에 대한 그리움으로 채우고 있다. 때로는 너무도 어려운 '주역'이라는 책을 정약용의 저서를 길게 인용하면서 설명하고 있다. '주역'의 '주'자도 모르는 나에게 너무도 이해하기 난해했다. 정약용 그가 '왕필'을 능가하는 '주역'의 대가라는 것 밖에는 머릿속에 남지 않는다. 이덕일이 밉기가지 했다.

  유배지에서의 탁월한 학문적 업적과 그의 형 정약전의 '자산어보'의 완성, 탁월한 스님 혜장 선사를 유학자로 만든 일화 등이 정약용의 유학자로서의 탁월함과 그의 형재들의 재주가 사장된 사실에 대한 안타가움을 더했다. 국가의 안보보다는 정권의 안보만을 위하는 노론 벽파의 모습이 치가 덜리기도 했다. 18년 동안의 유배에서 돌아와 고향에 안착한 그에게 서용보가 측은히 안부를 묻는다. 그러나 그는 겉으로는 정약용을 위하면서 조정에서는 정약용을 배척했다. 노론벽파의 광란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익종이 죽기 직전에 그를 불러 치료하게 해서, 치료를 하지 않아도 죽고, 치료해도 죽게 만든다. 정약용의 기지가 아니었다면, 그는 또다시 유배를 가거나, 죽음을 맞이했어야 했다.

 광란의 시대! 암흑의 시대! 그 시대를 살아가며 시대를 달관했던 정약용! 18년동안 정조의 곁에 있었고, 18년 동안 유배를 갔고, 18년 동안 유배지에서 돌아와 초야에 묻혀 살아야했다. 너무나도탁월한 그의 재능이 현실에서 너무도 짧게 쓰여진 것이 안타깝다. 언제나 인재는 있지만, 그 인재를 쓸 수 있는 시대가 아니기에 그 인재는 땅에 묻힌 구슬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어찌보면, 노론 벽파! 그들의 광란이 우리의 역사발전을 가로 막았고, 그리고 근대화를 막았으며, 일제 강점의 토대를 만든 것이 아닐가? 그리고 오늘은 과연 그렇하지 안는지 생각해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잊혀진 근대, 다시 읽는 해방 전前사 - 이덕일 역사평설
이덕일 지음, 권태균 사진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덕일의 책을 몇권 읽었던 적이 있다.

 

우리 역사를 과도하게 좋은 시각으로만 보는 것은 아닌지,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기도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의 참신한 시각이 좋다.

 

지금 역사학계의 키워드가 1국사를 넘어 시야를 넓혀서 우리의 역사를 보자는 것 같다. 내가 요즘 읽고 있는 책도 이러한 류의 책이다.

'근대를 말하다'(이덕일)과 '고종과 메이지의 시대'라는 책을 읽고 이 책을 읽었는데,  단순히 1국사의 입장에서 한국사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과 한국의 상황을 긴밀하게 살피면서 우리의 근대사를 살피니, 역사의 흐름이 한눈에 들어오고 이해가되었다. 참으로 참신한 서술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 한국사만 연구해도 힘들텐데, 어떻게 한국의 고대사에서 부터 근대사의 역사를 이해하고 더 나아가서 일본의 역사도 이해해서 이해하기 쉽게 책을 섰는지 의문스럽기도하다.

 

내가 알지 못했던 일제하 사회주의 운동사와 아나키즘에 대해서 쉽게 써준것도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일제하 사회주의 운동사는 왜그리도 복잡한지, 읽을 때는 이해가 되었지만, 읽고나서는 다시 혼란스럽다. 너무도 파벌이 심했던 사회주의자들이 밉기도 하다. 이를 일목요연하게 계보도를 그려서 설명해 주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일본인이 쓴 대중 역사서에 일반인들이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도표로 깔끔하게 사건을 도식화시켜 놓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설명이, 일제하 사회주의 운동사를 설명할 때는 필요할 것 같다.

 

일제의 전쟁기계들에 대한 설명과 이들이 파멸로 이르는 모습은 너무도 흥미로웠다. 내가 일본사 책을 좀 읽었지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내용들이 많았다. 그런데, 일본사 전공자도 아닌 이덕일은 이를 쉽게 설명해 주었다. 흥미롭고 쉽게 서술하는 그의 글이 빛을 발한 것이다.

 

물론 아쉬운 점이 있다.

첫째, 1930년대 만주에서 활약했던 한국독립군과 조선혁명군의 활약상을 서술해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특히, 제2의 청산리 대첩으로 불리는 대전자령 전투는 다른 책을 통해서라도 서술해주었으면 좋겠다.

둘째,, 글과 사진의 배치가 어색하다. 본문에서 설명하고 있는 사진이 해당 페이지에 나오지 않고 쉽부분에 배치되어 나오는 경우가 있다. 한가지 예를 든다면, 210쪽의 가와시마 요시코(김벽휘) 사진을, 그녀에 대한 설명이 나오는 208쪽에 배치했다면, 독자가 이해하기에 좋았을 것이다.

셋째, 오타 이다. 369쪽 11줄에 "강원도반 반장이었던 장준하는~"  이라고 적혀있다. 그러나, 같은 페이지 4번째 줄에는 "경기도반(반장 장준하)으로 구성했다."라고 적혀있다. 장준하는 경기도 반이 맞다. 그의 자서전에서도 분명 경기도반이라고 적혀있다. 이러한 사소한 실수를 수정했으면 좋겠다.

 

암튼, 독자에게 좋은 읽을 꺼리를 선사해준, 이덕일에게 박수를 보낸다. 앞으로 더 좋은 책을 많이 써주길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유대인 이야기 - 그들은 어떻게 부의 역사를 만들었는가
홍익희 지음 / 행성B(행성비) / 201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세계에서 가장 똑똑한 민족,유대인! 그들을 처음 알게 된 것은 마빈 토케이어가 쓴 '탈무드'라는 책을 통해서 였다. 자선을 베풀줄 아는 사람들이며, 부유한 그들을 시기 질투하는 유럽인들에게 박해를 받았고, 마침내, 2천년 동안의 유랑을 끝내고 약속의 땅에 '이스라엘'을 세운 민족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팔레스타인인들을 몰아내고 이스라엘을 세운 것에 대해서 비판하는 친구에게 유대인 편에서 반박했을 정도로 유대인에 대한 친근감은 높았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지역에 폭탄이 쏟아지는 모습을 언덕위에 올라가 감상하면 환호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유대인에 대한 우호적인 생각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사람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며 환호하는 그들을 비판하는 기자가 쫓겨나는 현실을 보면서 유대인에 대한 두려움이 생겼다. 연민의 정에서 시작하여 두려움을 주고 있는 그들에 대해서 알고 싶었다. 그래서 '벽돌책'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600페이지를 자랑하는 '유대인 이야기'를 꺼내들었다.

 

1. 개같이 벌어서 정승처럼 쓰는 것은 정당한가?

  우리 속담에 '개같이 벌어서 정승처럼 쓰라'는 말이 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돈을 벌어서 좋은 곳에 쓰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선한 사람일까? 로마에 의해서 성전이 무너지자, 유대인들은 현실의 성전을 짓는 것보다 시간 속에 성전을 짓는 것을 중시하게 되었다. 바리세인들은 율법을 중시여기고 토라와 탈무드를 가르치고 읽었다. 중세 유럽인의 90% 이상이 문맹자였던 그때에 유대인들은 토라와 탈무드를 읽기 위해서 글을 배웠다. 자신들만의 네트워크를 만들어 유럽 정세를 파악하고 위기를 기회로 삼아 엄청난 부를 쌓았다.

  그런데, 땅을 소유할 수 없었던 유대인들은 기독교인들이 천시여기는 금융업, 시체처리하는 일, 동물의 가죽을 베끼는 일 등등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살기 위해서는 이러한 일이라도 해야했다. 유대인은 항상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다. 그들은 유럽의 금융을 장악해갔다. 때로는 밀수와 노예무역을 통해서 엄청난 부를 축적하기도 했다. 유니대인 출신의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가 만든 '아미스타드'에 노예무역의 잔혹함이 잘 그려져 있다. 그런데, 노예무역에 유대인들이 참여했다. 수많은 흑인 노예들이 배안에서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으며, 때로는 바다에 던져져 죽었고, 때로는 노예시장에 팔려 책찍을 맞으며 설탕과 목화를 생산하도록 내몰렸다.

  최영장군은 "황금보기를 돌같이 하라"라는 말을 했다. 드비어스의 창공에 있는 다이야몬드 원석 모드가 세상에 나온다면 "다이아몬드"는 "돌값으로 폭락할 수 있는 위험성"이 있다. 에드워드 즈윅 감독의 '블러드 다이야몬드'는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이다. 다이야몬드를 채취하기 위해서 사람들을 노예처럼 다루고, 어린 소년들에게 살인을 하도록 시킨다. 그리고 다이야몬드의 유통을 장악하고 있는 드비어스가 소개된다. 드비어스! 유대인에 의해서 세워진 공룡 기업!! 그 실체를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드비어스가 '블러드 다이야몬드'를 만들도록 강요한 적은 없다. 전체 유통구조를 드비어스가 장악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인간의 탐욕은 다이야몬드에 피를 덧칠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탐욕의 다이야몬드를 갖기 위해서 피를 뭍히고 있다. 탐욕의 유통구조 정점에 드비어스가 있었다. 내가 결혼 반지로 다이야몬드를 거부한 이유도 영화 '블러드 다이야몬드'를 보았기 때문이다.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면서 피묻은 다이야몬드를 건네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충실히 다이야몬드의 수요와 공급을 조절하면서 돈을 벌고 있는 드비어스는 '블러드 다이야몬드'에 대한 책임이 없을까? 우리 손에 끼워져 있는 다이야몬드가 사람의 핏값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다이야몬드를 사랑하는 당신에게는 책임이 없는가?

  유대인들은 약속을 중시여긴다. 로스차일드 가문은 빌헬름 9세의 돈을 지키기 위해서 4만 탈레르에 달하는 자신의 재산을 포기한다. 자신의 재산보다 빌헬름 9세의 신용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했다. 이러한 유대인의 신용은 그들이 금융업계의 대부가 되는데 많은 기여를 한다. 그런데, 모든 유대인이 이러한 모습을 보인 것은 아니다. 유대인 록펠러 형제는 동료 정유업자들을 설득하거나 협박하여 신디케이트를 형성한다. '클리블랜드 대학살'로 알려진 기업 인수 작전을 저자 홍익희는 '합병전쟁'이라고 표현했다. 물론 말년의 록펠러는 록펠러 재단을 만들어 개같이 벌어들인 돈을 사회를 위해서 쓴다. 상도를 지키며 돈을 벌어 사회를 위해서 그 돈을 사용한다면 더욱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든다면, 그것은 나의 지나친 욕심일까? 약자에 대한 배려 없이 스쿠루지 영감처럼 돈을 모아, 크리스마스가 지나서야 새인간이 되어서 세상을 위해서 돈을 쓰는 록펠러를 어떻게 평가해야할까?

  IMF라는 단어를 들으면 당신은 누가 생각나는가? 고 김영삼 대통령? 고 김대중 대통령? 고통받는 서민들의 모습? ...... 나는 조지 소로스가 생각난다. 헤지펀드들이 아시아 국가를 사냥하고 다녔고, 그 마수에 대한민국도 걸려들었다. 국가 부도 직전까지 몰린 대한민국의 현실은 너무도 처참했다. 물론, 나는 군대에 있었기에 그 고통을 직접 체험할 수는 없었다. 헤지펀드를 이용해서 영란은행을 굴복시킨 조지 소로스를 피도 눈물도 없는 약탈자로 생각했다. 그런데, 그가 31개국에 재단을 설립하고 다양한 프로젝트로로 자선사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1979년에는 '열린사회 기금'을 설립해서 옛 소련 및 동유럽권의 순조로운 체제 전환을 위해서 매년 3억 달러를 지원하고 있다. 자신이 태어난 헝가리에는 중앙유럽대학을 설립해서 해마다 2천만 달러를 기부하고 있다. 조지 소로스는 천사인가? 악마인가?

  나는 '개같이 벌어서 정승처럼 쓰라'라는 속담을 좋아하지 않는다. 상도를 지키며 돈을 벌어야하며, 정당한 돈을 선하게 사용해야한다고 생각한다. 록펠러나 조지 소로스를 존경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어떤이는 나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러니까, 니가 돈을 못버는 거야!" 모두가 부동산 투기에 혈안이 되어, 집값 올리는데 뛰어든다. 이를 거부하며, 그들과 거리를 두려는 나를 그들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돈이 인생의 전부일수는 없다. 돈은 나의 하인일뿐이다. 하인의 수가 많을 필요는 없다.

 

2. 유대인 성공의 비밀은?

  유대인들이 수많은 박해에도 불구하고 세계 경제를 휘어잡은 비결은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위기를 기회로 만들기 때문이다. 이 책의 곳곳에 유대인들이 박해를 받지만, 이러한 위기를 기회로 삼아 경제적 부를 이룩한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 시기에 폴 존슨은 주택시장의 거품이 꺼질 것을 미리알고 공매도를 하여 엄청난 돈을 거머쥐었다. 성공하는 자는 위기를 기회로 만들지만, 실패하는 자는 위기에 두려워하며 무너진다. 우리 속담에 호랑이를 만나도 정신을 똑바로 차리면 산다.는 말이 있다. 경제 위기라는 호랑이를 만나도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한다. 물론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는 혜안은 평소 갈고 닦은 능력 여하에 달려있다. 그렇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자. 위기에 닥쳤을 때, 발휘할 수 있는 지혜를 평소에 준비해 놓자.

  유대인들이 성공한 또다른 이유는 없을까? 휘저우 상인에거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화교가 진출하면 그 지역의 상권을 장악한다. 중국 상인들 중에서도 휘저우 상인은 특히 유명하다. 휘저우 상니들이 자본금을 마련하기 위해 여러 상인들이 공동 출자하고, 이익을 배분하여 자본을 키운다면, 유대인들은 "헤부르이 무이자 대부업체"를 통해서 자본금을 마련한다. 휘저우 상인들의 자제들이 관료가 되어 가문의 신용을 높이고, 고급 정보를 가문에 준다면, 유대인들은 권력의 길목을 지키며 권력의 주변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높인다. 휘저우 상인들이 동향인들기리 정보를 공유하고 이를 바탕으로 사업을 계획한다면, 유대인들은 랍비를 중심으로한 유대인 공동체를 중심으로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정보를 주고 받는다. 휘저우 상인과 유대인 모두 독과점을 형성하여 경쟁자를 도퇴시키고 시장을 장악한다.

  재미있는 상상을 해본다. 휘저우 상인과 유대 상인들이 대결한다면 어느쪽이 승리할 것인가?거대 공룡 중국을 배경으로한 중국상인이 유리할까? 미국을 움직이는 유대인들이 유리할까? 유대 상인과 중국상인의 상술 중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무었일까?

  유대인들이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경제학자의 눈이 아닌, 자신의 눈으로 시장을 해석하는 방법을 터특했다는 사실이다. 세계적인 투자자 조지 소로스는 기존 경제학을 비웃는다. "수요와 공급이 주어졌다는 가정은 현실과 동덜여진 것이다." "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따라서만이 아니라 판맨자와 구매자의 기대에 따라 좌우된다."는 그의 소신은 그를 세계적인 투자자로 만들었다. 워런 버핏이 버크셔 헤셔웨이 주주 총회에서 MBA에서 배우는 것은 현실에서 전혀 쓸모 없는 것들이라는 내용의 말을 했다. 쉽게 설명할 수 있는 내용을 어렵게 표현하고, 99%밖에 들어 맞지 않는 경제학 이론을 학생들에게 가르친다. 워런 버핏은 나머지 1%에 투자하여 돈을 번다. 현실과 동떨어진 상아탑의 소리를 듣기 보다는 자신의 눈으로 경제를 분석하고 현장을 읽을 수 있는 눈을 갖아야 세계적 투자자로 성공할 수 있다.

  워런 버핏은 시장과 돈의 노예가 되지말고 시장과 돈의 주인이 되라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지장과 경제 학자들을 하인으로 부릴 때만이 위대한 투자자로 다시 태어날 수 있는 것이다.

 

3. 경제를 지배한 그들! 세계 정치를 지배하다.

  세계 금융을 지배하는 것은 유대인이다. 금융을 지배한 그들은 세계 경제를 지배하고, 이를 바탕으로 세계의 정치를 지배한다. 세계 초강대국 미국의 심장부를 이들 유대인들이 장악하고 있다. 홍익희의 표현을 빌리자면, 유대인들은 권력자들이 지나는 길목을 지키다가, 정치인들과 인연을 맺는다. 럼스펠드 국방장관부터 시작하여, 존 볼톤, 키신져 등등... 수많은 유대인들이 미국정치의 중요참모로 활약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가 유대인 쿠시너이며, 쿠시너의 머릿속에서 트럼프의 정치 외교 전략이 나온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있다.

  이 책을 통해서 알게된 놀라운 사실은 유대계 자본에 의해서 설립된 골드만 삭스가 지도자를 공급하는 사관학교로 기능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금융계는 물론이고, 미국 행정부와 의회에서도 골드만 삭스 출신이 진출해서 큰 활약을 하고 있다. 집단주의를 강조하는 골드만 삭스의 문화 때문에 이들은 골드만 삭스 사관학교 후배들을 잘 이끌어 준다. 대한민국에 학연, 지연, 혈연이 만연해있고, 이것의 폐해를 수많은 사람들이 지적하고 있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나 볼 수있는 모습들이 골드만 삭스를 중심으로한 미국사회에서 목격되고 있다. 골드만 삭스 출신들은 미국 내에서만 머무르지 않는다. 중국 인민 은행 부행장도 골드만 삭스 출신이라는 사실은 골드만 삭스가 대단해 보이는 것을 넘어서서 드려움을 준다. 사실 이러한 사실은 애교에 불과하다. 부시행정부의 실세 볼튼은 1994년에서 1999년 골드만 삭스 유럽 법인 책임자였다. 유대인들에 의해서, 유대계 금벌세력에 의해서 세계가 움직이고 있었다. 버락 오바마가 예루살렘의 통곡의 벽에서 기도를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생각한다면, 유대인들의 영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쉽게 추측해 볼 수 있다. 이들의 영향력은 당연히 한반도에도 미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런데, 우리 세계를 움직이는 유대인들에 대한 자세한 정보가 많지는 안다. 저자 홍익희는 '맺는 말'에서 "소송을 무기로 유대인 연구를 감시하는 유대인 비방 대응기구(Anti Defamation League, ADL) 때문에 서구에서는 유대인에 관한 자료를 구하기 힘들었다."고 말한다. 유대인들은 철저히 자신을 숨기고, 반유대인 정서를 불러 일으킬 수 있는 저작들을 싹부터 자르고 있었다. 유대인들은 살아있는 권력 그 자체였다.

  세계를 움직이는 미국을 움직이는 유대인! 우리는 그들을 어떻게 대해야할까? 말과 경쟁하기 보다는 말에 올라타라고 조언해주고 싶다. 유대인과 경쟁하기 보다는 유대인의 능력을 이용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다.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잘 유지한다면, 남북관계를 유리한 쪽으로 풀어낼 수 있지 않을까? 자유로운 상상을 해본다.

 

 

  저자 홍익희의 '유대인 이야기'는쉬운 서술이 돋보이는 책이다. 유대교에 조로아시터교가 스며든 이유를 역사적으로 잘 서술하였고, 어려운 성경의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서술했다. 유대인의 역사만 서술하지 않고 기술의 역사는 물론이고, 이베리아 반도에서 이슬람 인들이 유대인을 박해하지 않고 평화롭게 살았던 역사도 서술하고 았다. 동아시아사 교과서에서 어렵게 서술되어 있는 은과 금의 유통도 쉬운 설명으로 이해가 쉽도록 했으며, 동양에서 회취법이 발견되기 전에 유럽에서는 '수은 아말감공법'으로 은을 추출했다는 사실도 이책을 통해서 알았다. 세계사에서 빠져 있었던 유대인의 역사와 교과서에서도 빠져있는 세게 경제사의 깨알 같은 지식을을 이 책은 쉽게 서술하고 있다. 더불어, 이 책을 읽고 세상을 보는 눈을 갖는다면, 월가를 점령하라는 시위가 왜? 벌어졌으며, 그 시위가 왜? 실패했는지도 이해할 수 있다. 오늘의 세계를 바라보는 혜안을 얻고자하는 사람들에게 이책을 권한다.

  ps. 이 책에 '옥의 티'가 있다. 이는 수정되었으면 좋겠다.

1. 250쪽 "프랑크 왕국의 재상인 칼 마르텔이 투르 근처에서 이들을 격퇴해 프랑크 왕국을 위기에서 구했다. 카롤루스 대제 때의 일이다." => 카롤루스 대제 이전의 일이다. 마르텔은 메로베우스 왕조, 카롤루스 대제는 카롤루스 왕조 시기의 인물이다.

2. 110쪽 "헬레네스'는 "제우스의 아내이자 누이인 헤라 여신의 자손이라는 뜻이다." => 헬렌의 자손이라는 듯이다. 그래서 EU 깃발에 헬렌이 제우스가 변한 황소를 타고 있는 것이다.

3. 520쪽 "1917년 4월 6일 미국은 특별한 사유도 없이 1차 3대전에 참전했다." => 독일의 무제한 잠수함 작전으로 미국의 민간배가 침몰하자, 이를 이유로 미국이 참전했다. 아무 이유가 없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4. 48쪽 "요즘 관광객들이 보는 이집트 신전 대부분이 그때 유대인 건설 노예들에 의해 지어진 것이다." => 피라미드와 신전을 짓는데, 이집트는 노예를 상용하지 않았다. 농한기에 농민들에게 급료를 주면서 일을 시켰다. 이에 관한 기록이 남아 있기에 논란의 여지가 없다.

5. 223~224쪽 성소피아 성당 캡션 오류 "콘스탄티 누스 황제가 세운 성소피아 성당" => 불타버린 성 소피아성당을 지금의 모습으로 재건한 것은 유스티니아 누스 대제이다.

   "콘스탄티 누스 황제에 의한 성소피아 성당 건설" => 성소피아 성당은 '콘스탄티 누스 2세때 건립되었다가 소실되었다. 테오도 시우스 2세때 다시 재건 되었으나, 니카의 반란으로 소실되어 유스티니아 누스 1세때 재건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