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역사 최전선
허동현·박노자 지음 / 푸른역사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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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역사 최전선 이라는 책제목은 나의 구미를 당겼다. 박노자라는 조금은 불편한 진보주의자와, 허동현이라는 보수(나는 수구라고 부르고 싶다.)의 논쟁은 어떻게 치열하게 상대방에서 창과 방패를 휘두르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1. 실망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고, 나는 실망을 금치 못했다. 나의 상상과는 달리 둘다 공자왈 맹자왈 등의 너무도 당연하고 도덕적인 말들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뉴라이트 성향의 교수로 알려진(http://www.nocutnews.co.kr/news/1156588 뉴스 참조) 허동현가 적극적으로 수구파의 논리를 말할 것으로 기대했다. 박노자는 진보라고 하지만, 안중근을 인종주의를 넘어서지 못한자(http://legacy.www.hani.co.kr/section-021109000/2006/12/021109000200612210640012.html)로 평가하는 글들을 보면서 그들의 진정한 본심을 듣고 싶었다.

 

자칭 '건강한 보수'와 '개인주의적 진보'라는 두 사람의 글들은 서신교류(메일)라는 택스트이기에 스스로 자기 검열을 하고 타인에게 공격받을 글들을 쓰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인다. 이것이 이책을 읽으면서 내심 실망감을 갖게했다.

 

2. 희망

나의 기대와는 상관 없이, 언론에 비친 그들의 모습일 잘못된 것이든, 아니면, 철저한 자기 검열을 통해서 쏟아진 글이든. 이책 자체는 상당히 건전한 글들로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이 책의 내용과 글들이 이들의 진정한 모습이길 바란다. 서로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지만, 시대를 고민하며, 우리사회를 올바른 사회로 만들길 원하는 이들의 치열한 고민과 토론은 기대승과 이황과의 사단 칠정 논쟁을 연상시킨다. 주장은 있지만, 토론과 경청은 없는 우리시대의 자화상을 보며, 절대 대화가 불가능해 보이는 두사람의 토론은, 그 토론 자체만으로도 상당한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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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토리아 노바 - 주경철의 역사 에세이
주경철 지음 / 산처럼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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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꺼운 책들을 무겁게 읽지 않고, 산책하며 가볍게 읽을 수 잇는 책이다.

 

참고문헌도, 해당 주제에 1~3편에 불과하다. 이정도의 참고문헌으로 쓴 글을 어떻게 신뢰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산책하며 가볍게 머리를 식히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강력하게 추천한다.

 

상식으로 알고 있던 주제는 좀 싱거웠지만, 나도 몰랐던 주제들은 너무도 새로웠다. 서양사학자로서 서양사에만 치중되기 쉬운 주제를 한국사를 포함한 세계사의 많은 주제들을 고대부터 현대까지 소개하고 있다.

 

인상적인 몇개의 주제를 하나 소개하자.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칼래의 시민에 대한 새로운 소개이다. 이것이 과장되었다는 사실을 자세히 소개하였다. 그러나, 노암 촘스키가 말했듯이 " 우리가 진실을 알면 때때로 씁쓸해 진다." 노빌레스 오빌리쥐를 이야기 할 때, 근거로 소개하는 것이 바로 칼래의 시민이었다. 그러나, 현실의 불합리를 깨부수기 위해서 과거의 신화를 깨부술 필요가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였다. 그리고 주경철의 말을 믿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참고문헌과 기록, 그리고 치밀한 논증이 뒤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른 주제들도 5분정도 읽고 머리 식히고 싶을때, 펼처들면 좋은 책들이다.

 

과거 읽었던, 문화로 읽는 세계사에서 느꼈던 재미와 감동에 비해서는 못하다는 느낌든다. 주경철에게 부탁하고 싶다. '문화로 읽는 세계사'와 같은 재미와 감동을 같이 사냥할 수 있는 책을 써주길... 물론, 이 책도 나름의 가치가 있다. 그것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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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권을 읽고 난후, 2권을 집어들었다. 정조가 없는 암흑의 시대! 정조라는 성군을 만났기에 화성을 건설하고, 목민관으로서 선정을 베플 수 있었다. 그러나 정조가 없는 세상은 해가 없는 하늘이고 달이 없는 밤이었다.

  이 암흑의 시대를 정약용은 학문에 대한 열정으로 채웠다. 실학을 집대성하고 500여권의 저서를 남긴 것은 바로 그의 18년 유배생활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는 실학의 최고봉이자, 조선 500년 역사 최고의 학자로 남겨질 수 있었다. 이러한 유배를 그에게는 다행이라고 생각해야할 까? 아니면 불행이라고 생각해야할까? 아마도 불행을 정약용이 행운으로 바꾸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이다. 정조가 없는 암흑의 시대를 학문이라는 등불로 밝혀나가고자했던 그의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그에 대한 노론 벽파의 공격은 천주교를 트집잡아 시작한다. 그는 천주교를 배격하였으나, 노론 벽파에게는 이 사실보다는 그를 죽이겠다는 표독한 집념밖에 없었다. 그리고 수 많은 인재가 죽어갔다. 이익의 종손인 이가환 부터 시작해서 수 많은 남인들이 죽어갔다. 그리고 그의 형, 정약종도 그 수많은 사람중에 한사람이었다. 단지 정약용 그와 그의 형 정약전이 유배되었음을 다행으로 여겨야할 정도였다. 피바람의 시대, 야만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 책은 유배시절의 그의 많은 저서와 민초들에 대한 안타까움, 그리고 형에 대한 그리움으로 채우고 있다. 때로는 너무도 어려운 '주역'이라는 책을 정약용의 저서를 길게 인용하면서 설명하고 있다. '주역'의 '주'자도 모르는 나에게 너무도 이해하기 난해했다. 정약용 그가 '왕필'을 능가하는 '주역'의 대가라는 것 밖에는 머릿속에 남지 않는다. 이덕일이 밉기가지 했다.

  유배지에서의 탁월한 학문적 업적과 그의 형 정약전의 '자산어보'의 완성, 탁월한 스님 혜장 선사를 유학자로 만든 일화 등이 정약용의 유학자로서의 탁월함과 그의 형재들의 재주가 사장된 사실에 대한 안타가움을 더했다. 국가의 안보보다는 정권의 안보만을 위하는 노론 벽파의 모습이 치가 덜리기도 했다. 18년 동안의 유배에서 돌아와 고향에 안착한 그에게 서용보가 측은히 안부를 묻는다. 그러나 그는 겉으로는 정약용을 위하면서 조정에서는 정약용을 배척했다. 노론벽파의 광란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익종이 죽기 직전에 그를 불러 치료하게 해서, 치료를 하지 않아도 죽고, 치료해도 죽게 만든다. 정약용의 기지가 아니었다면, 그는 또다시 유배를 가거나, 죽음을 맞이했어야 했다.

 광란의 시대! 암흑의 시대! 그 시대를 살아가며 시대를 달관했던 정약용! 18년동안 정조의 곁에 있었고, 18년 동안 유배를 갔고, 18년 동안 유배지에서 돌아와 초야에 묻혀 살아야했다. 너무나도탁월한 그의 재능이 현실에서 너무도 짧게 쓰여진 것이 안타깝다. 언제나 인재는 있지만, 그 인재를 쓸 수 있는 시대가 아니기에 그 인재는 땅에 묻힌 구슬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어찌보면, 노론 벽파! 그들의 광란이 우리의 역사발전을 가로 막았고, 그리고 근대화를 막았으며, 일제 강점의 토대를 만든 것이 아닐가? 그리고 오늘은 과연 그렇하지 안는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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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근대, 다시 읽는 해방 전前사 - 이덕일 역사평설
이덕일 지음, 권태균 사진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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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책을 몇권 읽었던 적이 있다.

 

우리 역사를 과도하게 좋은 시각으로만 보는 것은 아닌지,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기도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의 참신한 시각이 좋다.

 

지금 역사학계의 키워드가 1국사를 넘어 시야를 넓혀서 우리의 역사를 보자는 것 같다. 내가 요즘 읽고 있는 책도 이러한 류의 책이다.

'근대를 말하다'(이덕일)과 '고종과 메이지의 시대'라는 책을 읽고 이 책을 읽었는데,  단순히 1국사의 입장에서 한국사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과 한국의 상황을 긴밀하게 살피면서 우리의 근대사를 살피니, 역사의 흐름이 한눈에 들어오고 이해가되었다. 참으로 참신한 서술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 한국사만 연구해도 힘들텐데, 어떻게 한국의 고대사에서 부터 근대사의 역사를 이해하고 더 나아가서 일본의 역사도 이해해서 이해하기 쉽게 책을 섰는지 의문스럽기도하다.

 

내가 알지 못했던 일제하 사회주의 운동사와 아나키즘에 대해서 쉽게 써준것도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일제하 사회주의 운동사는 왜그리도 복잡한지, 읽을 때는 이해가 되었지만, 읽고나서는 다시 혼란스럽다. 너무도 파벌이 심했던 사회주의자들이 밉기도 하다. 이를 일목요연하게 계보도를 그려서 설명해 주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일본인이 쓴 대중 역사서에 일반인들이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도표로 깔끔하게 사건을 도식화시켜 놓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설명이, 일제하 사회주의 운동사를 설명할 때는 필요할 것 같다.

 

일제의 전쟁기계들에 대한 설명과 이들이 파멸로 이르는 모습은 너무도 흥미로웠다. 내가 일본사 책을 좀 읽었지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내용들이 많았다. 그런데, 일본사 전공자도 아닌 이덕일은 이를 쉽게 설명해 주었다. 흥미롭고 쉽게 서술하는 그의 글이 빛을 발한 것이다.

 

물론 아쉬운 점이 있다.

첫째, 1930년대 만주에서 활약했던 한국독립군과 조선혁명군의 활약상을 서술해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특히, 제2의 청산리 대첩으로 불리는 대전자령 전투는 다른 책을 통해서라도 서술해주었으면 좋겠다.

둘째,, 글과 사진의 배치가 어색하다. 본문에서 설명하고 있는 사진이 해당 페이지에 나오지 않고 쉽부분에 배치되어 나오는 경우가 있다. 한가지 예를 든다면, 210쪽의 가와시마 요시코(김벽휘) 사진을, 그녀에 대한 설명이 나오는 208쪽에 배치했다면, 독자가 이해하기에 좋았을 것이다.

셋째, 오타 이다. 369쪽 11줄에 "강원도반 반장이었던 장준하는~"  이라고 적혀있다. 그러나, 같은 페이지 4번째 줄에는 "경기도반(반장 장준하)으로 구성했다."라고 적혀있다. 장준하는 경기도 반이 맞다. 그의 자서전에서도 분명 경기도반이라고 적혀있다. 이러한 사소한 실수를 수정했으면 좋겠다.

 

암튼, 독자에게 좋은 읽을 꺼리를 선사해준, 이덕일에게 박수를 보낸다. 앞으로 더 좋은 책을 많이 써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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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지정학 - 5000년 문명사를 통해 보는 세계질서의 대전환 그레이트 하모니 3
아미타브 아차리아 지음, 최준영 옮김 / 21세기북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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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는 'The Once and Future World Order'이다. '세계질서의 어제와 오늘'로 번역할 수 있다. 화이트의 소설 'The Once and Furure King'에서 패러디한 제목이다. 인도계 미국인이자 캐나다인인 아마티브 아차리아는 5000년 세계 역사를 서구중심 역사관에서 탈피해서 세계질서의 변화를 조망하였다. '21세기 지정학'이라는 의역이 나에게는 왠지 어색했다. 지정학(地政學, Geopolitics)이란 지리적 위치, 영토, 자원 등의 지리적 조건이 국가의 정치, 외교, 안보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마치 21세기 지정학에 대해서 심도 있는 분석을 통해서 미국의 쇠퇴와 세로운 세계 질서의 형성을 지정학적 관점에서 설명해줄 것 같은 의역에 기대를 갖고 이책을 읽는다면 실망감이 많을 것이다. 이 책에는 지리적 위치나 영토, 자원 등의 지리적 조건이 국가의 정치, 외교, 안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심도 깊은 분석을 해주지도 않는다. 서구중심의 세계질서가 끝나고 새로운 세계 질서가 성립되겠지만, 이러한 대전환은 과거에도 있었왔고 미래에도 있을 것이라는 원제의 탁월한 함축적 의미를 '21세기 지정학'이라는 제목은 살리지 못했다. 오히려, 지정학 책이라기 보다는 역사책에 가깝다는 인상을 받았다. 


  책의 내용에 대해서 탐구해보자. 아미타브 아차리아는 서구중심의 역사관에서 벗어나서 그동안 무시되거나 무관심했던 나머지 문명들의 목소리에 주목한다. 기존의 서구중심 역사관은 지금의 세계질서는 유럽을 중심으로한 서구문명이 낳고 길렀다고 말한다. 그러나, 아미타브 아차리아는 그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인도, 중국, 동남아시아 등지에서도 서구와 앞서거나 혹은 서구와 비슷한 시기에 그러한 질서와 문화를 만들었다고 실증적으로 증명한다. 

  영화 300에 그리스를 침략한 페르시아는 어둡고 폭력적일 뿐만 아니라 야만의 모습을 하고 있다. 실제로 서구인들은 페르시아를 그렇게 보고 있다. 키루스 대왕의 자비와 관용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최초의 인권선언이라 불리는 키루스 실린더의 복제본이 뉴욕 국제연합 본부에 전시되어 있다는 사실을 그들은 떠올려야한다. 반면 그리스는 평화를 사랑하고 용감하게 그려진다. 그러나 아테네가 멜로스에서 저지른 대량학살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세계는 그리스 문명의 유산을 인정해야한다. 그러나 서구와 전 세계는 또한 페르시아의 유산인 종교적, 민족적 관용, 타문화 수용능력, 광대한 영토 관리 능력을 배울 수 있다."-86쪽


  아미타브 아차리아는 인도화(Indianization)과 헬레니즘화를 비교한다. 헬레니즘이 전쟁에 의해서 시작된 반면에 인도 사상이 북아시아와 동남아시아 확산에 강압이나 정복은 없었다. 현지 사회의, 현지 사회에 의한, 현지 사회를 위한 인도화가 이루어졌다. 그 영향력도 헬레니즘보다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현지 통치자들의 정치적 권위를 확장하도록 힘을 실어주어 큰국가, 제국 건설을 하도록 도움을 주었다. 

  세계사를 배우며 한번도 인도화와 헬레니즘화를 비교한적이 없었다. 기존 역사적 서사를 당연시하며 받아들였다. 아미타브 아차리아의 문제제기는 우리가 당연시하는 역사적 서사사가 당연한 것이 아니며, 서구중심의 서사가 만들어지고 이것이 우리의 세계관을 지배하고 있다며 문제를 제기한다. 서구중심의 서사는 비서구문명의 업적과 가치에 무관심과 무시로 이어진다. 

  서구의 국제관계는 평등을 기반으로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것은 베스트팔렌조약 이후의 국제질서이다. 물론, 저자 아미타브 아차리아는 베스트팔렌조약의 한계점을 지적한다. 그렇다하더라도 베스트팔렌조약 이전 서구의 국제관계는 국가간 주권을 인정하는 평등한 관계가 아니었다. 베스트팔렌조약 이후의 국제질서를 확대해석하여 중국의 조공책봉체제를 굴욕적이거나, 비정상적인 것으로 폄훼하는 경향이 있다. 이에 대해서 아미타브 아차리아는 다른 평가를 내린다. 


  "강압보다 의례에 더 많이 의존했던 중국의 조공체제는 식민지화 없이도 다른 국가들에게 상당한 경제적, 외교적 혜택을 부여했다. 이 체제가 거의 2천년 동안 지속되고 중국의 이웃 국가들에게 지지받았다는 사실은 그 효과와 정당성을 증명한다."-142쪽


  한국 사람들은 조공 책봉 체제를 치욕스런 것으로 생각한다. 이에 비해서 아미타브 아차리아는 세계 역사를 조망하며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서구도 베스트팔렌조약 이후에나 주권을 존중하는 평등한 국제관계를 맺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모든 국가를 평등한 주권국가로 대우한 것도 아니다. 서구의 약탈적 식민지화보다는 인간적인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 조공책봉체제이다. 오히려, 지금의 무국 중심의 세계질서가 중국의 조공책봉 체제보다 더 나은지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평등한 주권국가와의 합의를 무시하고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일괄적으로 고율의 관세를 부여했다. 그리고 이를 무기삼아 각국에게 많은 투자를 뜯어내기 시작했다. 베네수엘라라는 주권국가를 침략하여 마두르 대통령을 납치했다. 냉혹한 국제사회에서 모든 국가가 평등한 주권국가로 대우받고 교류하는 것은 하나의 이상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 이상에서 멀리 떨어져있다. 문제는 그 이상에 현실을 얼마나 가까워지게 만드는가이다. 

  세계사에서 가장 무시되고 무지한 대륙은 아프리카이다. 저자 아미타브 아차리아는 아프리카 역사 중에서 '만뎅헌장'에 주목한다. 만리제국을 세운 순디아타가 쿠루탄 푸가에서 귀족회의를 소집한다. 그리고 그는 1235년 '만뎅헌장'을 선포한다. '만뎅헌장'에는 "다양성 속의 사회평화, 인간의 불가침성, 교육, 조국의 통합, 식량안보, 약탈을 통한 노예제도 폐지, 표현 및 무역의 자유"(266쪽)가 천명되어 있다. 그뿐만아니다. 여성이 모든 통치에 참여한다는 내용까지 포함되어 있다. 

  1215년 만들어진 마그나 카르타와 비슷한 시기에, 마그나 카르타보다도 더 앞선 진보적인 인권이 천명되어있는 것이 '만뎅헌장'이다. 우리는 영국의 마그나 카르타는 알아도 '만뎅헌장'은 모른다. 서구 중심의 역사교육의 한계의 슬픈 결과이다. 

  물론, 공자가 위대한 사상가로 인정받는 것은 그의 탁월한 제자덕분이듯이, 서구문명이 세계사의 주류가 된 것은 최근 500여전 동안 서구가 비서구를 폭력적으로 지배통치하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찬란한 역사가 있었다한들 이를 기억해줄 사람이 없었다. 미국을 중심으로한 서구문명이 쇠퇴하는 지금, 세계 무형유산에 선정된 '만뎅헌장' 헌장을 이제는 세계사 교과서에서 가르쳐야하지 않을까? 그것은 서구 중심의 역사관에서 벗어나 세계를 우리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온전한 역사관의 시작일 것이다. 

  서구중심 역사관의 가장큰 폐해는 서구중심 세계질서를 합리화하고 그 질서가 흔들리면 불안해한다는 것이다. 과연 서구중심의 국제질서가 비서구에게 축복이었을까?


 "나머지 세게의 관점에서 볼때 미국과 서구의 지배는 축복이라기보다는 그들의 안녕과 독립뿐 아니라 자존심까지 미치는 위협이었다."-13쪽

  "여러 사람들은 자유주의적 국제 질서가 인종차별주의, 노예제도, 아메리카 원주민 토지의 식민지화에 기반을 두었다는 점을 언급하지 않는다."-253쪽


  아미타브 아차리아는 미국과 서구의 지배를 위협으로 보고 있다. 사실 그러했다. 서구문명의 확장 역사는 비서구 문명의 파괴와 약탈의 역사였다. 아메리카 대륙에 살았던 그땅의 주인들이 총과 균에 의해서 학살당했다. 유럽 제국주의 국가들이 아시아 아프리카를 식민지화하고 그 이익으로 서구문명의 발전을 이루었듯이, 미국도 노예제와 아메리카 원주민 토지의 식민지화를 기반으로 발전했다. 서구가 되고 싶었던 일본은 이웃국가인 대한제국을 식민지로 삼고 아시아 태평양전쟁을 일으켰다. 일본 근대화는 대한제국을 비롯한 아시아 아프리카의 피눈물 위에 가능했다. 서구와 서구가 되고 싶었던 일본의 발전은 진흙탕 속에서 피어난 아름다운 연꽃과 같다.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그리고 아시아의 희생이라는 진흙탕을 자양분으로 아름다운 서구중심의 근대문명을 꽃피웠다. 그러나 연꽃은 스스로의 아름다움을 뽐내지 않는다. 그렇지만 서구와 일본은 그러하지 않았다.  

  서구중심의 세계질서가 흔들리는 지금 우리는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기존 서구중심의 질서에 적응했는데,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세계질서에 불안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이 불안감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 힌트는 팍스 로마에서 찾을 수 있다. 


  "팍스 로마나의 개념은 어느정도는 로마인들의 자화자찬적 서서의 산물이다."-154쪽

  "제국 통치하에서 로마는 안정적 평화를 위해서는 지배적 세력의 존재가 필요하다는 근대적 사상을 낳았다."-168쪽


  팍스 로마시기에 세계에 분쟁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서구 문명은 팍스 로마 시기를 로마에 의한 대평화시기로 기억한다. 이러한 서구중심의 역사관은 헤게모니 안정이론을 탄생시킨다. 로마에서 19세기 후반 영국으로, 그리고 2차세계대전 이후의 미국으로 초강대국이 패권을 장악하고 있어야 세계는 안정될 수 있다는 잘못된 신념을 갖게 되었다. 

  로마의 유산이라고할 수 있는 헤게모니안정론! 과연 세계의 지배세력이 하나만 존재해야할까? 투키디데스트랩과 함께 미국의 패권을 합리화하고 중국 견제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한 이론은 아닌가? 세계 패권국가가 꼭 미국일 필요가 있는가? 지역 패권국가 여럿이 존재하는 것은 불가능한가? 서로를 인정하는 국제 질서는 불가능한가? 물밀려 오듯이 여러가지 질문이 샘솟는다. 

  서구중심의 세계질서에 적응하고 서구의 시각에서 세계를 바라보는 우리는 미국과 서구의 시대가 저물어가고 새로운 질서가 정립되지 않은 지금이 불안의 시기일 수 있다. 그러나, 달리본다면 변화속에 기회가 있다. 서구 중심의 세계질서를 비서구국가들이 새롭게 만들수도있다. 그 작업에 우리가 참여할 수 있다면 우리는 그 변화를 주도하여 보다 인간적인 질서를 만들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아미타브 아차리아가 그리고 있는 앞으로의 세계는 어떠한 모습일까? 글로벌 멀티 플랙스이다. 다극(multripolar)이 아니라 멀티플랙스(multiplex)화이다. 기업, 재단, 비정부기구, 소셜미디어를 통해 영향력을 발휘하는 훨씬더 많은 행위자들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관리되며, 사상과 문화의 역할이 중요시되고, 강대국 수가 증가하고, 새로운 형태의 리더십과 협력이 나타나는 멸티플랙스화가 이뤄질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 

  아미타브 아차리아는 대부분의 서구인들이 불안감 속에서 미래를 어둡게 보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미래를 밝게 보고 있다. 서구 중심의 국제 질서에서 벗어나서 보다 다차원적인 세계질서를 예상하고 있는 것이다. 아미타브 아차리아의 밝은 미래상에 나는 동의하지는 못한다. 새로운 춘추전국시대가 도래할 것이며 국지전이 일상화되는 전쟁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 예상한다. 세계 여러나라에서 극우화 현상이 일어나고 있기에 제2차 세계대전 직전의 모습과 현재에서 유사성을 찾는 사람도 있다. 제3차 세계대전이 발발할 수도 있다. 문제는 비관적 예상을 깨고 어떻게 하면 아미타브 아차리아가 예상하는 밝은 미래를 만들 수 있느냐이다. 아미타브 아차리아는 그 방법을 제시해주지는 않늗다. 다만 이븐 할둔의 말을 남기며 이책의 끝을 맺는다. 


  "마치 온 창조물이 변하고 온 세상이 바뀐 것 같으며, 마치 새로운 창조가 반복되어 새로운 세상이 존재하게된 것 같다."-435쪽


  우주적 관점에서 세상을 조망하는 인도문명의 유산을 품고있는 인도계 미국인이자 캐나다인 다운 끝맺음이다. 파괴는 새로운 창조의 시작이다. 제국주의, 문화적 오만, 인종적 배제가 깔린 서구문명의 몰락은 새로운 세계를 구축하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상적인 국제질서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는 아미타브 아차리아가 남겨준 우리의 과제가 되었다. 




ps. 옥의 티

  71쪽에 "조로아스터교는 아케메네스 왕조 아래에서 부활하여 국교가 되었는데, 창시자의 시대와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라고 서술했다. 그러나, 조로아스터교가 국교화한 것은 사산왕조 페르시아에서이다.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는 조로아스터교를 장려했지만, 국교로 삼지는 않았다. 특히, 키루스왕은 유대인들에게 조로아스터교를 강요하기보다는 그들의 고향으로 갈 수 있게 했으며, 그들의 성전을 만드는데 도움을 주기까지 했다. 세계 역사에 대해서 날카로운 지적 모습을 보인저자의 실수가 못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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