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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토리아 노바 - 주경철의 역사 에세이
주경철 지음 / 산처럼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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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꺼운 책들을 무겁게 읽지 않고, 산책하며 가볍게 읽을 수 잇는 책이다.

 

참고문헌도, 해당 주제에 1~3편에 불과하다. 이정도의 참고문헌으로 쓴 글을 어떻게 신뢰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산책하며 가볍게 머리를 식히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강력하게 추천한다.

 

상식으로 알고 있던 주제는 좀 싱거웠지만, 나도 몰랐던 주제들은 너무도 새로웠다. 서양사학자로서 서양사에만 치중되기 쉬운 주제를 한국사를 포함한 세계사의 많은 주제들을 고대부터 현대까지 소개하고 있다.

 

인상적인 몇개의 주제를 하나 소개하자.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칼래의 시민에 대한 새로운 소개이다. 이것이 과장되었다는 사실을 자세히 소개하였다. 그러나, 노암 촘스키가 말했듯이 " 우리가 진실을 알면 때때로 씁쓸해 진다." 노빌레스 오빌리쥐를 이야기 할 때, 근거로 소개하는 것이 바로 칼래의 시민이었다. 그러나, 현실의 불합리를 깨부수기 위해서 과거의 신화를 깨부술 필요가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였다. 그리고 주경철의 말을 믿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참고문헌과 기록, 그리고 치밀한 논증이 뒤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른 주제들도 5분정도 읽고 머리 식히고 싶을때, 펼처들면 좋은 책들이다.

 

과거 읽었던, 문화로 읽는 세계사에서 느꼈던 재미와 감동에 비해서는 못하다는 느낌든다. 주경철에게 부탁하고 싶다. '문화로 읽는 세계사'와 같은 재미와 감동을 같이 사냥할 수 있는 책을 써주길... 물론, 이 책도 나름의 가치가 있다. 그것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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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에서 바라보는 유럽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나이토 마사노리 지음, 권용철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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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 평등, 우애라는 프랑스 혁명의 이념은 강대한 유럽의 힘에 의해서 세계에 퍼졌다. 톨레랑스의 나라 프랑스는 유럽연합의 맹주가 되어 세계 정치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자신들의 역사와 문화에 엄청난 자부심을 갖고 있는 프랑스로 대표되는 유럽을 떠올리면서 지금도 프랑스 혁명의 이념을 존중하고 있는지 의문을 품는다. '이슬람에서 바라보는 유럽'이라는 책은 지금의 유럽을 고민하게하는 책이다. 


  유럽은 이슬람 포비아를 앓고 있다. 니캅, 부르카로 대표되는 이슬람의 덮개를 허용하지 않는 법안을 제정한 나라가 많다. 유럽에 반이슬람 포비아가 퍼진 계기는 9.11 테러 이후이다. 쌍둥이 빌딩을 비행기가 들이받는 모습은 유럽인들에게 이슬람인들은 테러리스트라는 선입견을 심어 놓았다. 그들에게 관심없었던 유럽인들에게 반이슬람 정서가 폭발적으로 확산되었다. 슬로베니아의 경우, 난민들이 자국영토를 통과했는데도 이들에 대한 공포가 높아졌다. 2018년 총선에서는 반난민당이 1당이 되기도했다. 

 유럽에서 반이슬람 정서가 확산되자, 그동안 이슬람 문화에 대해서 심도있는 관심이 있지는 않았던 젊은 유럽내 이슬람 청년들이 IS에 가담하거나, 테러에 가담하기 시작했다. 태어날때부터 유럽에서 살았음에도 토착유럽인들은 그들을 자신과 같은 동료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들을 테러리스트로 보고 경계의 시선을 보냈다. 결국, 무슬림이라는 자각을 통해서 더 극단적인 행동에 가담한다. 

  유럽인들을 보면, 공포에 질린 어린아이와 같은 모습이 관찰된다. 루스 포비아를 비롯해서 이슬람 포비아에 젖어 타인을 적으로 생각한다. 루스 포비아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일으키는데 한몫했다. 러시아는 믿을 수 없고, 러시아가 유럽을 처들어 올것이라는 공포심은, 우크라이나에게 러시아와 휴전하기 보다는 맞서 싸울 것을 종용했다. 우크라이나가 밝혔듯이, 영국총리가 우크라이나를 도와줄테니 전쟁을 계속하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슬람 포비아는 유럽내 무슬림을 적으로 만들었다. 그뿐아니다. 튀르키예를 친구로 끌어 안지 못했다. 즉, 튀르키예는 유럽연합 가맹 교섭을 중단했다. 유럽이 튀르키예의 유럽가맹을 사실상 반대한 것이다. 유럽의 친구가 되고 싶었던 튀르키예는 유럽이 자신들을 친구로 받아들일 마음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자, 이슬람의 정체성을 강화시키고 있다. 적을 친구로 만들지 못하는 유럽의 옹졸함을 다시한번 확인했다.

  유럽이 러시아와 이슬람을 친구로 만들지 못한다면,유럽은 적들에게 둘러싸여 쪼그라들 것이다. 유럽이 그렇게 믿었던 미국은 국가안보보고서에서 유럽은 사라질 문명이라고 진단했다. 자유, 평등, 우애라는 프랑스 대혁명의 이념을 그들이 다시한번 각성한다면, 현실은 바뀔 수도 있다. 러시아와 이슬람을 우애로 대하며 그들을 친구로 만든다면 유럽의 내일은 더 밝아질 것이다. 


  책장을 덮고, 우리의 현실을 바라보았다. 만약, 우리나라에 이슬라 난민이 들어온다면 우리는 어떻게 반응할까? 분명, 펨코를 중심으로 활발한 반대운동이 일어날 것이다. 더 나아가서 니캅과 부르카에 대한 혐오 글들이 인터넷을 뒤덮을 수도 있다. 반중감정을 일으켜서 장사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을 보면서, 친구를 적으로 만드는 어리석은 유럽의 모습이 어버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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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의 시대 리더의 탄생
도리스 키언스 굿윈 지음, 강주헌 옮김 / 커넥팅(Connecting)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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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도리스 컨스 굿윈은 에이브럼햄 링컨, 시어도어 루스벨트, 프랭클린 루스벨트, 린든 존슨의 삶을 살펴보며 대통령의 리더십을 제시했다. 1부에서는 이들 인물들이 야망ㅇ을 갖고 리더십을 자각하는 시기를, 2부에서는 역격을 딛고 성장하는 모습을, 3부에서는 대통령으로서 그들이 어떠한 리더십을 발휘했는지를 서술했다. 재미 있으면서도 마음 안편으로는 이들이 달라워보이지 않았다. 왜일까? 

  링컨은 어린시절에 읽은 위인전을 통해서 친숙하게 알고 있었던 인물이다. 흑수저 가정에서 자수성가한 링컨의 삶은 우리에게 많은 희망과 용기를 주었다. 그러한 링컨이 우울증을 겪었고, 그가 극단적인 선택을 할까봐 면도기를 비롯한 날카로운 것들을 친구들이 치워 놓아야만했다는 사실은 놀라웠다. 이러한 역경을 딛고 링컨은 미합중국의 분열을 막으로 노력했고, 전쟁을 뒤집을 카드로 노예해방을 내 놓았다. 단순히 대통령의 결단으로 쉽게 이뤄질 수 있는 일이라 생각했던 나의 선입견은 무참히도 짖밟혔다. 국무위원들을 한사람씩 설득하고 기다렸다.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서 그는 국회의원들에게 공직을 제안하기도했다. 정치의 '정()'자가 바를정과 칠복자가 합쳐진 말이란다. 전근대사회에서는 힘으로 권력을 장악하고 세상을 바르게한다는 뜻이다. 권력을 가져야 세상을 바로잡을 수 있다. 근대사회에서 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해서는 안된다. 그래서 링컨은 상대 국회의원을 회유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원대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자신의 손에 구정물을 묻히는 것을 주저해서는 안된다. 그것이 정치이다. 링컨이 이를 말해준다. 

  시어도어 루스벨트와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금수저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렵지 않게 정계에 입문했다. 링컨에 비교한다면 그들은 영웅이 될 수 있는 토대가 없었다. 기득권을 지키며 기득권을 자식들에게 물려줄 방법만 생각하는 속물의 삶을 살기에 너무도 좋은 조건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러한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는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 약자의 삶에 관심을 가졌다.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석탄 광부들의 파업에 군대까지 출동 시킬 수 있다는 카드를 내비치며 사용자들을 압박했다. 그리고 무력을 사용하 않고, 당시 대통령은 책임도 권한도 없었던 기업과 노동자의 문제를 현명하게 해결했다. 그는 국민의 편에서 국민을 위해서 리더십을 행사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더 거대한 인물이다. 소아마비에 좌절하지 않고 정계에 복귀했다. 자유방임주의에 갖혀있는 후버를 비롯한 정치인들에 맞서서 당당하게 새로운 길을 개척했다. 뉴딜은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의 탁월한 리더십 때문에 가능한 정책이었다. 소아마비와 대공황의 극복만으로도 힘든데, 국외적으로는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했다. 린든 존슨이 베트남 전쟁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허둥되었던 것에 비해서 그는 자유주의 세계를 지키는 전사가 되었다. 그리고 전쟁 이후 세계의 평화를 만들기 위해서 4선에 도전했다. 그러나, 건강이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는 4선에 성공하고 나서 몇달 후에 생을 마감한다. 범인은 범접할 수 없는 리더십을 발휘하며 자신의 역경과 국가의 고난과 세계의 시련을 그는 헤처나갔다. 4명의 영웅 중에서 그가 가장 빛난 이유이다. 

  린든 존슨을 좋지 않은 대통령으로 생각했다. 4명의 대통령에 저자가 린든 존슨을 넣은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 단지 자신이 상관으로 모셨기 때문일까? 린든 존슨이 미국인들에게는 좋은 평가를 받는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링컨이 노예를 해방했다면, 린든 존슨은 민권법을 통과시켜서 유색인종이 차별받지 않고 시민으로서 미국에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었다. 미국인들에게 린든 존슨은 위대한 대통령이었다. 그러나, 베트남 전쟁에서 보여준 그의 어리석은 리더십은 세계인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책을 덮었다. 네명의 대통령 중에서 링컨과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세계 사람들이 사랑과 존경을 하는 대통령이다. 그에 비해서 시어도어 루스벨트와 린든 존슨은 미국인들은 사랑하지만, 세계의 일부 사람들에게만 사랑받는 대통령이다. 가쓰라테프트 밀약으로 대한제국을 일본이 식민지화하는 것을 결정한 것이 시어도어 루스벨트이다. 베트남 전쟁의 수렁 속에 수많은 젊은 이들을 밀어 넣어 세계적인 반전운동의 빌미를 제공한 것이 린든 존슨이다. 한사람의 리더십이 모두에게 사랑받을 수도 있지만, 특정 나라 사람에게만 사랑받을 수도 있고, 대외정책은 비난받지만 대내정책은 사랑받을 수도 있다. 우리는 어떤 리더십을 원할까? 그리고 한국의 역대 대통령은 어떠한 리더십을 발휘했을까? 12.3 내란을 통해서 극우파를 제외한 나머지 세력의 미움을 받는 대통령을 원하는가? 부엉이 바위에서 안타깝게 죽었다며 많은 이들의 가슴속에 살아있는 대통령을 원하는가? 우리는 그 질문에 현명한 대답을 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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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유의 장미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전영애.박광자 옮김 / 청미래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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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테레지아의 막네딸, 마리 앙투아네트!! 그녀는 유죄일까? 무죄일까? '빵이 없으면 케익을 먹으라고해요'라는 말을 했다는 잘못된 정보로 유명한 그녀이다. 혁명파들에게 그녀는 죽어야만하는 여성이다. 적국인 오스트리아의 여성이며, 구시대의 유물인 왕권에 너무도 가까이 있었기에 그녀는 추악한 여성이여야만했고, 민중의 이름으로 국민의 면도날인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져야만했다. 그녀에 대한 측은함이 밀려왔다. 그래서, 믿고 읽는 슈테판 츠바이크의 '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유의 장미'를 펼쳤다.

14! 요즘으로 말하면 중학생 나이에 정략결혼에 따라서 프랑스로 시집가야만했다. 익숙하지 않은 프랑스말을 배우며 낯선 사람들과 성적으로 무능한 남편에 기대어 철부지 마리앙투아네트의 프랑스살이가 시작되었다.

슈테판 츠바이크의 필력은 '침실의 비밀'편에서도 빛났다. 루이 16세의 성적 무능이 왕권과 그와 왕비에게 미쳤을 정서적 정치적 영향을 뛰어난 문학적 표현으로 묘사했다. 이 책이 쓰여진 1932년 즈음은 심리학이 그리 발전하지 않았던 시절인데도 심리학적 이해를 바탕으로한 탁월한 묘사가 감탄스러울 따름이다. 슈테판 츠바이크는 대단한 다독가였으며, 섬세한 관찰자였을 것이다.

마리 앙투아네트가 프랑스로 시집온 것 자체가 불행의 씨앗이었다. 루이 14세 시절부터 잦은 전쟁과 베르사유궁전으로 대표되는 웅장한 건축물은 서민들의 등골을 휘게 만들었다. 그뿐인가? 미국독립혁명에 프랑스가 참전하면서 프랑스의 재정은 더욱 악화되어가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마리 앙투아네트는 '로코코의 여왕'으로 고통받는 민중의 삶을 외면한 채 화려한 궁전 생활을 만끼하고 있었다. 그리고 슈테판 츠바이크는 그러한 그녀를 비판하고 있다.

슈테판 츠바이크에게 반론을 제기하고 싶다. 그것이 그녀의 책임인가! 앙시앙 레짐이 그녀의 책임인가! 당시 유럽에서 마리아테레지아를 비롯하여 여성 정치가가 국제 정세를 주도하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마리 앙투아네트가 프랑스의 정치를 주도할 수 있었겠는가? 왕은 분명히 그녀의 남편 루이 16세이다. 우유부단하여 여러 차례 혁명군을 잠제울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나 그는 기회를 놓쳤다. 그뿐인가? 그는 지금 무엇이 문제인지 몰랐으며, 자신의 어리석은 우유부단함이 그의 가족에게 어떠한 비참한 결과를 가져올지도 몰랐다. 슈테판 츠바이크가 마리 앙투아네트를 비판하기 이전에 루이 16세를 먼저 비판해야하지 않을까?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부르붕 왕조의 몰락의 책임을 묻는 것은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슈테판 츠바이크의 냉혹한 비판에 반감을 갖던 나는 '로코코의 여왕'편을 읽으며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가졌던 연민이 점차 옅어지고 있었다. 그녀는 사치와 향략, 안일에 바져있었다. 그녀의 어머니인 마리아테레지아의 훈계도 듣지 않았다. 이제는 프랑스의 왕비로서, 한가정의 어머니로서 철이 들어야만하는 나이이고 위치이다. 그녀는 너무도 철이 없는 여성이었다.

학자들은 그녀의 사치는 과장된 것이며, 다른 왕비들의 평균치보다 그녀의 사치는 높지 않다고 말한다. 프랑스 재정문제의 근본원인은 그녀가 제공한 것이 아니란 말이다. 그렇다면, 그녀는 무죄일까? 프랑스의 재정은 파국에 이르렀고, 앙시앙 제짐 속에서 민중은 혁명을 갈망하고 있었다. 사회는 변화하고 있었다. 변화하는 사회에 과거와 같은 대응을 한다면 그 처럼 어리석은 자는 없다. 시대가 변하면 과거와 다른 새로운 대응을 해야한다. 그녀가 프랑스 재정 파탄의 근본원인 제공자가 아니라고한다고, 그녀가 왕이 아니라고 한다고, 그녀가 과거 왕비보다 많은 사치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고 면죄부가 발부되는 것은 아니다.

부르붕 왕조라는 배는 파국으로 치닫고 있었다. 선장인 루이 16세는 폭풍우가 밀려오는데도 이를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사냥이나 다니고, 자물쇠를 따는 취미에 몰두했다. 어찌나 무능했던지, 혁명이 일어나던 날의 일기에도 '아무일도 없었음'이라는 한심한 기록을 남겼다. 그렇다면, 묻겠다. 당신이 루이 16세라는 선장의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나는 선장이 아니니, 그의 무능을 탓해야지, 나는 나의 분수에 맞게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아야하는가? 비상 상황에는 비상한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다. 폭풍우의 한가운데로 가기 전에 무능한 선장에게서 키를 빼앗아야했다. 그리고 배를 안전하게 운행해야한다. 폭풍우를 피하지 못했다면, 폭풍우에 맞서며 이를 헤쳐나갈 길을 모색해야한다. 그러나, 그녀는 그러하지 못했다. 심지어는 그녀의 고향인 오스트리아 빈으로 도망가는 극박한 상황 속에서도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무능한 남편 루이16세에게 현명한 조언을 하지도 못했다. 그것이 그녀가 무죄가 아닌 이유이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오빠 오스트리아의 요제프 황제는 너무도 대조적이다. 요제프 황제의 검소함과 민중친화적인 모습을 슈테판 츠바이크는 냉소적으로 묘사하고 있으나, 사치와 향략에 쩔어 있는 마리 앙투아네트와 비교한다면 너무도 훌륭한 황제이다. '위선은 악마가 보이는 선에 대한 최대한의 경의'라는 말이 있다. 위선 조차도 없다면 그 사회는 너무도 야만적인 사회이다. 요제프 황제의 검소함과 민중친화적인 모습이 위선이라 할지라도 최소한의 위선마져 잃어버린 프랑스의 부르붕왕조는 너무도 야만적이다. 요제프 황제가 동생에게 '민중이 혁명'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사실을 부르붕왕조 사람들은 깨닫지 못했다.

혁명은 루이 16세를 먼저 단두대에 보냈다. 그리고 마리 앙투아네트를 단두대로 보내기로 결심했다. 문제가 있었다. 바로, 그녀의 목을 단두대의 이슬로 만들 증거가 없었다. 그녀가 오스트리아 군대가 프랑스로 진군하길 바라면서 쓴 편지가 지금은 오스트리아 문서고에 있지만, 당시 혁명정부에는 그러한 증거가 단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무엇일까? 그녀가 그녀의 아들과 부적절한 관계를 갖았다는 죄목을 뒤집어 씌우는 것이다. 근친상간이라는 죄목은 혁명정부의 추악한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는 일대 사건이다.

프랑스 대혁명은 우리 인류 역사에 커다른 의미를 가지는 사건이다. 인류에게 자유 평등 우애라는 보편의 이념을 확산시킨 고귀한 혁명이다. 그렇다면, 혁명의 승리를 위해서, 구시대 유물을 없애기 위해서 혁명은 어디까지 폭력과 야만을 허용할 수 있을까?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저지른 폭력은 어디까지 정당화될 수 있을까? 야만을 야만적인 방법으로 다스릴 수 밖에 없는 것이 우리 인간의 숙명이다. 악마는 천사에게 비겁한 방법으로 싸움을 건다. 천사는 정정당당한 방법으로 악마와의 싸움에서 이기려한다면 천사의 패배는 너무도 명약관화하다. 그렇다면, 선의 승리를 위해서 천사는 악마에게 얼마만큼의 속임수를 쓰는 것이 허락될까?

마리 앙투아네트도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녀의 시신은 다른 시신들과 함께 매장되었다. 루이 18세가 그녀의 시신을 찾도록 명하지 않았다면, 그녀는 수많은 혁명의 희생자들 속에서 잠들었을 것이다.

단두대의 칼날이 그녀를 향해 돌진했을 찰나! 그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합스부르크가의 가훈은 "3자로 하여금 싸우게 하라. 그래도 다행스런 오스트리아여, 그대는 혼인하라"이다. 그녀가 합부르크가의 가훈을 찢어 버리고, '공주님 저와 결혼해요'라는 말을 건넸던, 어린 모차르트와 결혼했다면 그녀는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합스부르크가의 가훈을 찢어버릴 용기도 없었다. 무능하고 우유부단한 남편을 대신해서 프랑스를 통치할 지혜도 없었고, 결단력도 없었다. 그녀가 유죄라면, 용기도, 지혜도, 결단력도 없이 변화하는 시대를 맞이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죄목은 우리에게도 해당되는 죄목이 아니길 바란다.

괴테는 마리 아웉아네트와 루이 16세의 죄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한 국왕을 빗자루로 쓸 듯이

그렇게 쓸어버렸단 말인가?

국왕들이 아직도 있다면

의연하게 서 있을 텐데."

무능은 죄인가? 죄이다. 능력이 되지 않으면서도 만민이 우러르는 자리를 차지하고 배를 수렁속으로 빠뜨렸다면, 무능은 죄이다. 그 자리에 있을 능력이 없다면, 스스로 그 자리에서 내려왔어야만했다. 무능한 남편을 둔 것은 유죄일까? 유죄이다. 무능한 남편을 현명하게 이끌지 못했다면, 무능한 남편이 현명하게 권좌에서 내려오도록 안내하지 못했다면, 유죄이다. 혁명이라는 폭풍우는 '나는 그 자리에 없었어요. 그러한 힘이 나에게는 없었어요.'라는 변명을 용납하지 않는다. 이러한 단호함은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에게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다. 민주주의 국가! 민이 주인된 국가에 사는 우리도 주인으로서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시대의 폭풍우는 우리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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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외교의 거대한 환상 - 자유주의적 패권 정책에 대한 공격적 현실주의의 비판
존 J. 미어샤이머 지음, 이춘근 옮김 / 김앤김북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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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칸트의 '영구평화론'을 읽으며 지구상에서 전쟁을 없앨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다. 칸트는 확정조항으로 제시한 3가지 중에하나가 모든 국가는 공화정체여야한다고 주장했다. 공화제 즉, 민주 공화제를 각국에 도입하는 것은 영구평화를 위한 초석을 놓는 일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자유주의자 학자들이 민주주의 국가 사이에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칸트의 영구평화론을 지지했다. 그들의 강의를 들으며 나도 이에 동조했다. 칸트의 '영구평화론'을 평화수업에 인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를 확산시키는 것이 미국 네오콘의 논리라는 사실을 깨닫는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존 미어샤이머 교수의 '미국 외교의 거대한 환상'이 그 단초를 제시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진리가 세상을 더욱 혼란하게 만든다는 생각을 해보았는가? 미국의 자유주의적 패권정책이 바로 그러한 정책이다. 칸트가 모든 국가가 공화정체여야한다고 주장했듯이, 미국의 자유주의적 패권정책은 지구상의 독재국가를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교체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미국과 같은 자유주의적 패권국가의 도덕적 의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러한 자유주의적 패권 정책을 존 미어샤이머 교수는 '거대한 환상(The Great Eelusion)'이라고 말한다. 


  "세상 어디에서도 자유주의의 보편적 소성이 자유주의자들이 믿고 있는 것 만큼 강력하지 않다. 자유주의자들이 말하는 개인의 권리가 중요하다는 주장은 자유주의자들이 생각하는 것 만큼 설득력이 있는 것이 아니며, 심지어 그 같은 주장은 완전히 잘못된 것일지도 모른다." -202쪽


 자유주의자들이 절대적이라 생각하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현실 국제정치에서는 보편적 진리일 수 없다. 지난 코로나19 팬데믹 사태 속에서 서구의 소위 선진국이라는 국가들은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한다는 명분아래 마스크 착용을 강제하지 않았다. 한국과 같은 나라에서 마스크 착용의 효과가 나타나자 그제서야 마스크 착용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강경화 장관이 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개인의 자유가 절대적인 진리가 아님을 말했듯이, 서구 자유주의자들이 진리라고 생각한 것은 그들 사이에서만의 진리였다. 

  존 미어샤이머 교수는 미국의 외교정책 전문가에게 두가지 충고를 한다. 첫째, 미국의 자유주의적 패권에 대한 야망을 버려라. 둘재, 미국은 민족주의에 대한 이해와 현실주의에 근거한 절제된 외교정책을 채택하라.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확신에 가득찬 미국의 외교전문가들은 공산주의 확산을 막기 위해서, 독재국가를 타도하여 자유민주주의를 확산하기 위해서 자유주의적 패권 정책을 추진하였다. 1953년 이란에서, 1954년 과테말라에서, 1973년 칠레에서, 2006년 팔레스타인에서 하마스를 불인정하고, 2013년 이집트의 무슬림 형제단을 추출하려는데 관여하였다. 그렇다면 세계는 자유민주주의가 확산되고 더 평화로워졌을까? 현실은 그러하지 않다. 


  "자유주의적 패권주의 모굪가 세상을 더욱 평화로운 곳으로 만드는데 있다고할지라도 그 나라의 외교정책은 국제체제의 불안정을 야기하게 된다." -273쪽

  "강대국들이 현실주의에 배치되는 자유주의적 정책을 채택하는 경우 그들은 항상 후회하게 될 것이다." -29쪽


  미국이 세계 평화를 위해서 군사활동을 하면 할 수록 세계는 더 불안정해진다는 역설적인 상황이 전개되었다. 특히 베트남 전쟁에 뛰어든 미국은 그 수렁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많은 젊은이의 피를 댓가로 지불했다. 굴욕적인 베트남 전쟁의 패배는 현실주의에 배치되는 자유주의적 패권정책이 미국에 어떠한 불행을 안겨주는지 잘 보여준다. 그럼에도 미국은 소련의 붕괴와 걸프전쟁의 승리에 도취되어 아프카니스탄과 이라크를 침공하는 어리석은 정책을 추진했다. 그리고 세계는 더욱 혼란해졌고, 미국의 재정적자와 무역수지 적자는 커져만 갔다. 

  미국은 '자유주의는 민족주의와 충돌할 경우 항상 패배할 수밖에 없다.'(-155쪽)는 존 미어샤이머 교수의 충고를 명심해야한다. 베트남의 호치민은 미국에 손을 내밀었다. 베트남 독립직전 미군 공군 조종사를 구출해서 미군에 보내기까지 했다. 그러나 조국 독립을 위해서 공산주의와 손을 잡은 호치민을 미국은 신뢰하지 않았다. 자유주의적 패권정책은 미국 외교의 불행을 가져왔다. 베트남의 민족주의자들은 호치민을 중심으로 미국과 끈질긴 전쟁을 시작했다. 그리고 베트남은 승리하고 미국은 패배했다. 내가 믿고 있는 올바른 신념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것은 폭력이다. 정조가 천주교를 박해하라는 노론의 주장에 '정학을 열심히 익히면 자연히 사라질 것이다.'라고 말했듯이, 미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로서의 모범을 보인다면 세계의 시민들은 미국을 동경하며 스스로 미국의 자유민주주의를 받아들이기 위해서 자국의 독재자와 싸울 것이다. 절제된 외교는 바로 이것이다. 

  존 미어샤이머 교수는 현실주의에 입각해서 국제외교를 바라보고 있다. 그는 자유주의자 뿐만 아니라 미국을 비롯한 서구의 주장에 날카로운 일침을 가한다. 민주주의 국가 사이에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자유주의자의 주장도 제1차 세계 대전시 독일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미국 사이의 전쟁은 민주주의 국가 사이에 일어난 전쟁이라 반박한다. 이밖에도 보어전쟁, 미서전쟁, 카길전쟁(인도와 파키스탄 사이의 전쟁)도 민주주의 국가 사이의 전쟁이라 반박한다. 내가 자유민주주의를 확산시키는 것이 세계 평화를 정착시키는 길이라 믿었던 근거를 존 미어샤이머 교수는 근본부터 무너 뜨렸다. 그뿐만 아니다. 우크라이나의 야누코비치를 몰아내는 시민혁명은 서방측 특히 미국의 CIA의 부추김이 있었다고 지적한다. 키예프 새정부에 신파시스트라고 불러도 될 수 있는 인물이 4명이 포함되어있었다는 주장도 한다. 서구 특히 미국의 입장에서 불리한 사실도 과감하게 제시하는 미국 시카고대학 석좌교수 존 미어샤이머에게 경의를 표하면서 책장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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