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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토리아 노바 - 주경철의 역사 에세이
주경철 지음 / 산처럼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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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꺼운 책들을 무겁게 읽지 않고, 산책하며 가볍게 읽을 수 잇는 책이다.

 

참고문헌도, 해당 주제에 1~3편에 불과하다. 이정도의 참고문헌으로 쓴 글을 어떻게 신뢰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산책하며 가볍게 머리를 식히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강력하게 추천한다.

 

상식으로 알고 있던 주제는 좀 싱거웠지만, 나도 몰랐던 주제들은 너무도 새로웠다. 서양사학자로서 서양사에만 치중되기 쉬운 주제를 한국사를 포함한 세계사의 많은 주제들을 고대부터 현대까지 소개하고 있다.

 

인상적인 몇개의 주제를 하나 소개하자.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칼래의 시민에 대한 새로운 소개이다. 이것이 과장되었다는 사실을 자세히 소개하였다. 그러나, 노암 촘스키가 말했듯이 " 우리가 진실을 알면 때때로 씁쓸해 진다." 노빌레스 오빌리쥐를 이야기 할 때, 근거로 소개하는 것이 바로 칼래의 시민이었다. 그러나, 현실의 불합리를 깨부수기 위해서 과거의 신화를 깨부술 필요가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였다. 그리고 주경철의 말을 믿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참고문헌과 기록, 그리고 치밀한 논증이 뒤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른 주제들도 5분정도 읽고 머리 식히고 싶을때, 펼처들면 좋은 책들이다.

 

과거 읽었던, 문화로 읽는 세계사에서 느꼈던 재미와 감동에 비해서는 못하다는 느낌든다. 주경철에게 부탁하고 싶다. '문화로 읽는 세계사'와 같은 재미와 감동을 같이 사냥할 수 있는 책을 써주길... 물론, 이 책도 나름의 가치가 있다. 그것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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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와 우연의 역사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안인희 옮김 / 휴머니스트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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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슈테판 츠바이크!! 그를 나는 너무도 늦게 알았다. 그의 책 '광기와 우연의 역사'를 읽으면서 당시 현장을 직접 취재한 기자가 다큐멘터리를 만들듯이 탁월한 현장 묘사와 인물의 심리묘사가 살아 있는 글을 읽으면서 심장이 빨리 뛰었다. 이러한 탁월한 작가를 이제야 알았다는 사실에 나에 대한 실망감도 밀려왔다. 유럽의 역사를 이렇게 재미있게 읽는 것은 처음이다. 

  이 책에 소개된 12개의 역사적 사건은 하나 같이 극적인 순간들이다. 첫번째로 소개된 '동로마 제국 최후'는 비잔틴제국이 오스만제국에게 몰락하는 역사적 순간을 장쾌한 전쟁영화를 보듯이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이 순간의 장쾌한 역사를 자세히 설명하며 그 시대, 그 현장으로 우리를 안내해줄 책을 찾았으나 여태껏 그러한 책을 찾지 못했다. 드디어 슈테판 츠바이크가 이 역사적 순간을 세세하게 묘사하고 설명한 책을 읽으면서 엄청난 희열을 느꼈다. 서양인들이 역사를 서술하면 벌어지는 유럽중심주의의 해독도 이 책에는 보이지 않았다. 

  가장 민망한 이야기는 '칼스바트와 바이마르 중간 지점에 선 괴테'이다. 74세의 할아버지 괴테가 19살의 울리케를 사랑하여 청혼하는 순간, 괴테는 그 순간을 시로 표현했다. 아들도 있는데, 아들보다 어린 증손자뻘의 여성을 사랑하고 청혼한다는 것이 나로서는 이해되지 않는다. 물론, 사랑에는 국경이 없기에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한 괴테를 나무랄수는 없다. 암튼, 70대에도 여성을 사랑하고 불타오르는 애정을 시로 표현하는 그의 열정이 남달라 보인다. 아침 드라마를 보면서, 막장 드라마라고 비판하지만 우리 인생은 막장 드라마가 많이 펼쳐진다. '사랑과 전쟁'이라는 드라마가 인끼를 얻는 것도 막장 드라마가 우리 현실에 흔히 있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다양한 이야기들이 이 책에는 소개되어 있다. 어떤 이야기는 처음 듣는 이야기, 어떤 이야기는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이책을 통해서 보다 자세히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알고 있는 내용을 읽으면서도 그의 탁월한 심리묘사에 무릎을 여러번 쳤다. 그런데, 서평을 쓰려 알라딘에서 책을 검색하던 중 '광기와 우연의 역사' 완역본이 출판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목차를 비교하니 내가 읽은 책에는 2개의 에피소드가 빠져있었다. 구지 2개의 에피소드를 빼고 번역한 이유가 있을까? 슈테판 츠바이크의 명작이니 최신판을 구해볼 수밖에 없겠다. 왠지 모를 씁쓸함이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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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llC 2023-02-14 22:5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화북스에서 나온 책이 완역판이었네요. 츠바이크 선집으로 계속 출간될 예정인가 봐요.
역시 평전만큼 슈테판 츠바이크가 돋보이는 장르는 없는 것 같아요ㅎㅎ

강나루 2023-02-16 06:27   좋아요 1 | URL
네 감사합니다.^^
 
도시로 보는 유럽사 - 아테네, 로마부터 파리, 프라이부르크까지 18개 도시로 떠나는 역사기행 도시로 보는 시리즈
백승종 지음 / 사우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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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양의 역사에 대한 번역서들은 번역의 어설픔과 내용의 딱딱함 때문에 읽기 불편한 경우가 많다. 그런데, 한국사 전공자인 백승종 교수의 '도시로 보는 유럽사'는 쉬우면서도 깔끔한 서술로 읽기에 편하다. 18개의 도시를 한국사 전공자의 시각에서 서술하다보니, 종종 한국사와 대조해서 설명하는 경우가 있어 이해가 편했다. 

  이책에 등장하는 도시들의 역사를 스케치하듯이 서술하여 역사의 특정시대만 등장하는 그 도시가 그 이후에 어떠한 역사를 만들었는지 알 수 있는 책이다. 한예로 파르테논 신전을 설명하면서, 아테나 여신을 위한 신전인 파르테논 신전은 델로스 동맹의 자금을 유용하여 건설했다. 로마 시대에 접어들면서 기독교가 국교화하자 가톨릭교회로 변신하였고, 비잔틴 제국 시기에는 그리스 정교회 사원으로, 오스만 제국 시기에는 이슬람 모스크로 이용되다가, 1832년 그리스가 독립하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그리스의 역사를 살피면서 델로스 동맹의 자금을 유용해서 건축되었다는 사실 밖에 몰랐던 나는 그 이후의 변화상을 보면서 역사의 풍파를 겪은 파르테논 신전이 새롭게 보였다. 아름다운 여신의 이미지에서 세월의 모든 고통을 감내하여 주름이 깊게 페인 어느 할머니의 모습으로 보인다. 

  이책에도 아쉬움은 있다. 백승종 교수가 소개한 18개의 도시를 유럽지도에 표시해주는 친절함이 없다. 역사를 배우려면 지리를 알아야한다. 해당도시가 유럽의 어느 곳에 있는지, 그 도시를 설명하면서 등장하는 박물관과 유적들이 그 도시 어느 쯤에 위치하는지를 도시 안내도와 함께 제시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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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브라이슨 발칙한 영어 산책 - 엉뚱하고 발랄한 미국의 거의 모든 역사
빌 브라이슨 지음, 정경옥 옮김 / 살림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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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빌 브라이슨의 책에는 독특한 유머가 있다. 글을 재미있고 위트있게 쓰는 책을 읽는 것은 나름의 흥미가 있다. 사실 '발칙한 영어'를 일기 보다는 '엉뚱하고 발랄한 미국의 거의 모든 역사'라는 부재에 끌려서 이책을 선택했다. 이 책은 미국의 역사라는 그릇에 영어라는 음식을 빌 브라이슨이라는 소스를 뿌려 만든 작품이다. '미국 이라는 그릇'을 기대했던 나는 '영어라는 음식'을 즐기지 못했다. '영어라는 음식'을 학교 교육을 통해서 맛 보았다. 그러나 '빌 브라이슨이라는 소스'를 뿌렸다 한들 영어의 생소함과 어려움은 음식맛을 즐기지 못하게 만들었다. 꾸역꾸역 600페이지를 읽고 나만의 방식으로 음식 후기를 남긴다. 


 빌 브라이슨은 미국의 역사를 즐겁게 해체한다. 정통 미국 역사책은 필그램파더에서 시작하는 자유를 찾아 미국인들이 서부 개척을 통해서 자유를 아메리카대륙에 확대시켰으며 세계 1,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끌면서 자유의 파수꾼으로서 세계 경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서술한다. 이른바 '자유의 확대'가 미국 주류 역사학의 거대한 서사이다. 그런데, 빌 브라이슨은 이러한 신화와 네러티브를 해체한다. 그만의 유쾌한 필체로 근엄한 주류 역사 서술을 무장해제시킨다. 

  청교도들인 필그램파더가 자유를 찾아서 플리머스 바위해안에 첫발을 내딛었다는 신화를 살펴보자. 빌 브라이슨은 필그램 파더들이 암초의 위험을 무릎스고 플리머스 바위해안에 내리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더욱이 필그램 파더 이전에도 먼저 온 미국인들이 있었음을 지적하며 수많은 이주자 중에서 필그램파더를 미국사의 시작으로 꼽는 미국인들의 의도에 시원한 유머를 날려준다. 

  그렇다면, 청교도들은 종교의 자유를 얻기 위해서 미지의 땅, 아메리카로 왔을까? 아니다. 빌 브라이슨은 냉정하면서도 정확하게 청교도들이 아메리카로 온 이유를 설명한다. 


  '고향땅에서 오랫 동안 박해를 받은 그들이 아메리카에서 원한 것은 오로지 그와 똑같이 편협한 제도를 독자적으로 확립할 기회였다.'-462쪽


  '종교의 자유'라함은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종교를 자유로이 믿을 수 있는 자유를 뜻한다. 그러나, 청교도인들은 '청교도만 믿을 수 있는 자유'를 원했다. 이러한 자유는 자유라기 보다는 속박이다. 정확히 그들이 원했던 것을 찝어내어 정확한 표현을 사용한 점은 감탄이 절로 나온다. 

  사실 초기 청교도들과 함께 사는 삶이 유쾌할 수 없다. 그것은 그들이 말하는 자유는 사실상 또다른 속박이기 때문이다. 자위행위도 중대 범죄로 처벌 받았으며, 코네티컷 뉴헤이븐이라는 사람은 마을에 외눈 박이 돼지가 태어나자, 수간혐의로 교수형에 처해지기까지했다. 어느 것이든지 극단에 치우치면 그것이 새로운 속박의 굴래가된다.  "청렴하면서도 포용력이 있고, 어질면서도 결단을 잘 내리고, 사리에 밝으면서도 지나치게 파헤치지 않고, 곧으면서도 지나치게 바로잡으려 하지 않으면, 이것을 가리켜 꿀범벅이 달지 않고 해산물이 짜지 않다고 하는 것이니, 이것이야말로 아름다운 덕이다.(淸能有容,仁能善斷明不傷察,直不過矯 是謂 "蜜餞不甛,海味不함",是懿德)"라는 채근담의 당부를 청교도인들은 귀담이 들어야할 것이다. 

  빌 브라이슨은 미국 독립 혁명의 민낯을 파헤친다. 미국인 대영제국의 압제에 대항하여 용기있게 독립 혁명을 일으켰다고 주류 역사학자들은 서술한다. 그러나, 당시 영국 시민 모두가 투표권을 갖고 있는 상황이 아닌 당시에 유독 아메리카에 있는 영국령 식민지만 압제했다는 말은 논리적이지 않았다. '대표 없는 곳에 과세 없다.'는 구호만 듣는다면 영국이 엄청난 세금을 미국인들에게 부여하고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시 영국령 아메리카 대륙에 사는 사람들은 낮은 세금을 내고 있었다. '이것이 반역이라면 최대한 이용하자',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외쳤다고 알려진 페트릭 헨리는 이러한 말을 하지 않았으며 영국에 강력한 저항을 표시하지도 않았다. 자유의 획득을 위해서 압제에 저항했다는 미국 독립혁명의 신화를 빌 브라이슨은 유쾌하게 깨부스고 있다. 

  나라를 만든자는 그 정당성을 부여하고자 신화를 만든다. 소위 '정사'로 알려진 역사는 그들의 신화를 역사적 사실이라 주장한다. 빌 브라이슨 책의 유쾌함을 그러한 '정사'에게 시원한 일침을 날리고 있기 때문이다. 

  필그램파더들이 미국에 온 이후, 세계의 다양한 지역의 사람들이 미국으로 밀려왔다. 이민자들이 미국 대륙에 발을 내딛자, 친절한 미국인이 다가와서 일자리를 소개해주고겠다며 이민자의 가방을 들어준다. 그리고 이민자는 모든 재산을 사기당하며 미국 생활이 호락호락하지 않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3분의 1정도의 유럽 이민자들이 다시 고향으로 돌아갔다. 유렵인들이 쉽게 미국에 정착했다는 생각은 나의 선입견이었다. 

  미국에 정착한 수많은 이민자들은 미국 영어에 새로운 단어를 선물했다. 미국 영어는 다양한 유럽언어 뿐만 아니라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의 언어에서 단어를 들여왔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영국의 템스강을 위해서 만들어진 언어로 미시시피의 웅장함을 표현하려는 사람들은' 적절하게 자신의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서 영어를 새롭게 창조하고 재해석해야했다. 문화와 자연환경이 바뀌면 이를 표현하는 언어도 변화해야한다. 이것은 영국식 영어와 미국식영어, 호주식 영어가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이민자들은 미국에 새로운 창조력을 불어 넣었다. 미국은 세계 초 강대국으로 군림한다. 미국인들도 풍요의 시대를 맞이한다. 집안일을 줄이기 위해서 다양한 전자제품이 미국가정을 가득 채운다. 그렇다면 그들은 행복해졌을까? 빌 브라이슨은 아니라고 말한다. 소비성 품목이 더 증가했을뿐, 여가 시간이 증가하지는 않았다. 주택의 규모가 커졌으며, 생활양식이 다양화졌고, 집안의 청결 기준이 철저해지면서 우리가 상상하는 여유로운 여가 생활과 휴식이 주어지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은 우리 현실과 비슷한다. 각종 전자 제품이 가사일을 줄여주었지만, 맞벌이를 해야 하는 현실 속에서, 보다 많은 소비를 해야한다. 집안일은 줄어들었을지 몰라도 여가 시간은 그리 크게 늘지 않는 역설적 상황은 한국에서도 진행중이다. 


  마트에서 흔히 보는 '오레오'가 1912년 3월 6일 부터 미국에서 팔리기 시작한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과자라는 소소한 사실을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알았다. 모른는 영어 단어에 집착하며 이 책을 읽는다면 책을 읽는 시간 자체가 고통일 것이다. 그러나, 사소하지만 재미 있는 미국의 생활사를 유쾌하게 탐험한다는 마음으로 이 책을 읽는다면, 당신은 소소한 즐거움을 얻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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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지 2022-12-31 15: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동감입니다. 배배꼬인 말을 이렇게 두꺼운 책을 낼 정도로 꾸역꾸역 내뱉는 사람은 빌브라이슨 뿐일거에요, 쿠쿠

강나루 2023-01-03 20:49   좋아요 1 | URL
빌 브라이슨만의 특징이지요.

레삭매냐 2023-01-03 16: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미국 생활사를 유쾌하고
가치 파괴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재밌지 않을까 싶
습니다. 한 번 읽어보고
싶네요.

미국 건국 신화를 통렬하
게 저격하는 시니컬한 빌
브라이슨 스타일이 마음에
쏙 드네요.

강나루 2023-01-03 20:47   좋아요 1 | URL
영단어에도 관심이 많은 분이라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인간인가 -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의 기록
프리모 레비 지음, 이현경 옮김 / 돌베개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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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강렬한 시에서 부터 시작된다.

 

"생각해보라 이것이 인간인지.

진흙탕 속에서 고되게 노동하며

평화를 알지 못하고

빵 반쪽을 위해 싸우고

, 아니오라는 말 한마디 때문에 죽어가는 이가."

 

인권이라는 숭고한 가치가 철저히 짖밟히고, 동물적 식욕과 생존 욕구만이 남아 있는 인간! 프리모 레비는 질문하고 있다. 이것이 인간이냐고.... 프리모 레비는 인간이 인간으로서 존재하려면 기본적인 인권과 생존권이 보장되어야한다고 믿고 있다. 인간다움을 느끼기 위해서 인권과 생존권은 보장되어야한다. 그러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는 인간이 인간으로서 존중받기 위해서 필요한 인권과 생존권이 철저히 무시된다. 우리가 누리는 평범한 일상이 허락되지 않는 그 속에서는 동물적 욕구만이 존재한다. 같은 유대인이면서도 생존을 위해서 나치에 협력하는 카포는 가스실에서 죽은 유대인의 시체를 처리하며 그들의 입속에 있는 금니를 뽑아낸다. 구타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생존을 위해서라도 유대인 포로들은 카포에게 잘 보여야만 했다.

이탈리아에서 레지스탕스 활동을 하던 작가는 이송도중 독일군 호위병에게 이유없이 구타를 당한다.

 

"그들이 우리를 버스에 태워 카르피 역으로 데려갔다. 그곳에서 기차와 호위병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거기서 우리는 최초의 구타를 당했다. 너무나 생소하고 망연자실한 일이어서, 몸도 마음도 아무런 통증을 느낄 수 없었다. 단지 무척 심오한 경이로움만을 느꼈을 뿐이다. 어떻게 분노하지 않고도 사람을 때릴 수 있을까?"-17

 

분노하지 않고도 사람을 때리는 그들을 보면서 프리모 레비는 '무척 심오한 경이로움'을 느낀다. 섬세한 프리모 레비의 감수성에 감탄이 절로나온다. 우리는 폭력에 익숙해져있다. 나의 어린시절, 학교에서도 폭력은 일상적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책상위에 삼국지를 올려 놓았다고 담임 선생은 나의 머리를 주먹으로 가격했다. 산수문제를 못푸는 학생은 머리카락을 손으로 잡고 칠판에 강하게 부딪쳤다. 폭력은 '사랑의 매'라는 이름으로 합리화되었다. 교사가 휘두르는 폭력을 학생들도 그대로 배웠다. 학교에서도 학생들 사이에 폭력은 종종 벌어졌다. 단지 담임 교사가 무관심해서 몰랐을 뿐이다. 학교의 폭력은 군대에서도 이어졌다. 훈련을 앞두고 군기잡는다는 명목으로 폭력을 휘둘렀다. 일명 '차기'인 상병이 이등병과 일병을 구타했다. 상병이 제대로 구타하지 못하면 병장이 상병을 몰레 구타하며 '군기 제대로 잡아라'며 훈계했다. 우리 사회는 폭력이 일상화되었다. 일제강점기와 군사정권을 거치면서 일상화된 폭력 속에서 우리는 폭력에 무감각해졌다. 분노하지 않고도 사람을 때리는 경우를 우리는 흔하게 보았다. 재미로 사람을 때리고 괴롭히며 즐거워하는 사람을 나는 많이 보았다. 프리모 레비에게는 우리가 익숙한 폭력의 일상화가 무척 생소했다. 이러한 감수성이 그가 아우슈비츠의 고통을 문학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자양분이었을 것이다.

나치의 유대인 수용소에는 유럽 각지의 유대인들이 몰려들었다. 의사, 제봉사, 약사, 화학자 등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강제로 끌려왔다. 그런데, 때로는 강제로 끌려오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법을 따르기 위해' 자발적으로 들어온 유대인이 있었다. 순간 나의 눈을 의심했다. 죽음의 수용소에 '법을 따르기 위해' 자발적으로 들어온 유대인이 있었다니, 정말 믿어지지 않았다. 프리모 레비는 '터무니없게도'라는 수식어를 붙였지만 나로서는 믿겨지지 않았다. 자신의 숨통을 옥죄는 악법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노예'가 현실에는 존재한다. 법이 존재하는 정당한 이유와 목적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고, 악법도 법이라고 믿는 그들은 스스로를 죽음의 길로 인도하고 있다. 한나 아랜트의 '악의 평범성'의 사례는 가해자들에게만 적용되는 개념이 아니었다. 생각하지 않는 '노예'들은 악법으로 인간을 괴롭히고 사법살인을 하는 '법비(法匪)'의 좋은 먹이감일 뿐이다. 이런 노예들은 우리 주변에 많지 않은가? 나라를 도둑질할 놈을 그가 특정 지역 후보이기 때문에 무조건 찍어주는 어리석은 인간들이 우리주변에 흔하게 있지않은가?

'이것이 인간인가'라는 책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이 떠올랐다. 빅터 프랭클의 글에 묘사된 죽음의 수용소에는 음울한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사람들은 유머를 잃지 않았다. 생존자들은 삶의 의미를 찾으며 살아남기 위해서 노력했다. 그에 반해서 프리모 레비의 책에는 음울함이 짙게 묻어난다. 수용소에서의 생활은 배고픔이 떠나지 않았으며 그러한 극한의 상황에서 인간 본능을 레비는 탁월하게 묘사했다. 하루 하루를 살아내는 것이 유일한 목표이며 장기적인 목표를 갖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표현들이 곳곳에 있다. 현실을 바라보는 그의 음울함이 그가 1987년 자택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물론, 그도 삶의 의미를 말하기도 했다. 독자의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한다.

 

"살아남아 우리가 목격하고 참아낸 일들을 정확하게 이야기해야한다는 의지가 생존에 도움을 주엇을 것이다."-307

 

죽음의 수용소에서 자신이 겪은 진실을 증언해야한다는 그의 삶의 의무, 혹은 의미는 그가 1987년까지 살아 남는데 기여했다. 수용소에서 자신뿐만 아니라, 동료들도 공통으로 꾸는 꿈이있다. 고향으로 돌아가서 따뜻한 방에서 맛있는 음식을 차리고 가족에게 자신이 겪었던 수용소의 삶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가족과 친구들은 이를 믿지 않는다. 진실을 알리려하지만 아무도 믿지 않는 고통속에서 꿈에서 깨어난다. 그들은 증언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것이 그의 삶의 목표이자 의미가 되었다. '이것이 인간인가'의 일본어판 제목이 '아우슈비츠는 끝나지 않았다.'이다. 작가 프리모 레비는 아우슈비츠의 비극은 끝나지 않았으며 우리는 이를 기억해야한다고 끊임없이 말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가 1987년 자살한 이유도 전후 세대들이 아우슈비츠의 진실에 대해서 관심이 사그러들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것이 그의 삶의 의미를 사라지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이스라엘이 팔래스타인 난민들을 잔혹하게 탄압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우슈비츠의 고통은 계속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작가 프리모 레비는 1982년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침공한 것에 대해서

 

"아무리 전쟁중이라하더라도 베긴과 그 동료들이 보여주었던 잔인한 오만함을 정당화할 수 없다."-319

 

라고 일갈했다. 시집살이를 혹독하게한 며느리가 시어머니가 되어서는 더욱 악독한 시어머니가 되는 어리석음을 프리모 레비는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아우슈비츠가 그에게 또다른 대학이었기에 가능한지도 모르겠다.

 

"전체적으로 보았을때 나의 과거는 나를 더욱 풍요롭고 자신감 넘치게 해주었다. 새파랗게 젊은 시절 라벤스 부르크 여자 수용소에 끌려갔던 내 친구는 수용소가 자신의 대학이었다고 말한다."-307

 

감옥, 수용소를 인생과 세상을 배우는 대학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고 신영복 선생부터, 빅터 프랭클, 프리모 레비 ..... 어느 곳에선들 배우고 알려한다면 인간은 성장한다. 똑같은 고난 속에서도 그가 무엇을 배우려하는가에 따라서 고통은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진흙탕에서도 연꽃이 피듯이...... 어떠한 고난 속에서도 인간으로서의 존재 이유를 잊지 않고 성장하는 인간이 진정 인간적인 인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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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3-01-06 23: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따뜻한 주말 보내세요.^^

강나루 2023-01-10 03:44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 감사합니다.
요즘 바빠서 댓글을 지금 다네요.
새해에 웃음짓는 일 많이 생기길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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