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주의의 기원 2 한길그레이트북스 84
한나 아렌트 지음, 이진우, 박미애 옮김 / 한길사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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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나 아렌트!! 그녀는 알것 같으면서도 알기 힘든 여성이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책을 읽었을 때만 하더라도 어려운 책이지만 읽을만한 책이었다. 그런데, '전체주의의 기원1'은 읽기 힘들었다. 읽기를 포기하려는 욕망도 있었지만, 그녀가 주는 매력이 너무나도 고혹적이었기에 포기할 수 없었다. '전체주의의 기원2'를 마져 읽었다. 자신을 정복해보라 유혹하지만 쉽게 정상을 허락하지 않는 히말라야와 같은 그녀를 보며 정복했지만 결코 정복하지 못한 비밀을 갖은 매력의 소유자라는 생각을 했다. 그녀는 '전체주의의 기원'을 통해서 전체주의의 실체를 드러냈다. 역사서의 글쓰기 방식이 아닌, 철학서의 글쓰기 방식이라 읽기에 힘든점이 많지만, 역사서와는 다른 통찰을 우리에게 던져주었다. 그렇다면, 그녀가 파헤친 전체주의에 실상을 통해서 전체주의에 대항하기 위한 필살기는 무엇일까?


1. 어리석은 군중이 메시아를 갈망한다.

  많은 사람들은 히틀러를 악마화한다. 히틀러가 미대에 합격했다면 제2차 세계 대전의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 상상한다. 독일 국민들은 히틀러의 선동에 농락당한 피해자이며 모든 죄는 히틀러가 짊어져야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히틀러가 없었으면 2차 세계 대전의 비극은 없었다는 말은 성립하지 않는다. 독일 국민은 히틀러와 같은 존재를 원했다. 히틀러가 자라날 수 있는 토양이 준비되어 있었기에 히틀러가 마음껏 날개를 펼 수 있었다. 한나 아렌트는 말한다. 


  "전체주의 지배의 이상적인 신하는 골수 나치나 골수 공산주의자가 아니라, 사실과 허구(즉 경험의 현실)의 차이와 참과 거짓(즉 사유의 기준)의 차이를 더이상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다."-276쪽


 1차 세계 대전의 패배원인을 유대인들에게 돌리며, 오늘날 모든 모순의 근원을 유대인들에게 돌렸다. 제3제국의 영광을 쟁취하겠다는 히틀러의 말을 들으면서 독일인들은 사실과 허구의 차이와 참과 거짓의 차이을 파악하지 못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을 히틀러가 말해주었으며, 그것을 믿었다. '나라를 팔아먹어도 XX당을 찍겠다'고 말하는 부류의 사람들이 독일에는 많았다. 그들이 히틀러와 같은 존재의 출현을 갈망했다. 그들에게 히틀러는 메시아였다. 

  권력을 잡은 독재자들은 시민의 말을 듣는 자들을 요직에 앉히기 보다는 자신의 말을 잘 듣는 멍청이들을 등용한다. 


  "권좌에 앉은 전체주의는 반드시 모든 일류 재능을, 정권에 대한 그들의 호감과는 상관없이, 미치광이들과 바보천치들로 대체한다. 그들에게 지적 능력과 창조력이 부족하다는 것이 그들의 충성심을 가장 잘 보증하기 때문이다."-68~69쪽


  '악의 평범성'을 말한 그녀가 '미치광이들과 바보천치'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전체주의 정권의 하수인들을 비판하고 있다. 어쩌면 스스로 생각하지 못하고, 스스로 사리분별을 못하는 아이히만과 같은 존재는 '바보천치'일 수도 있다. 과거 유능한 민주정권에서는 큰 대회도 성공적으로 개최할 정도로 유능한 정부관료가 정권이 바뀌고 나서는 실패할 수 없는 행사라고하는 잼버리를 엉망으로 개최한 것을 우리도 보았지 않았는가! 현명하지 못한 국민은 히틀러와 같은 독재자를 권좌에 앉히고, 독재자는 '미치광이들과 바보천치들'을 그 하수인으로 앉힌다. 그리고 전체주의 국가의 어리석은 국민은 서서히 고혈을 빨리며 야위어간다. 

  무지목매한 민중은 히틀러나 스탈린과 같은 독재자들이 던져주는 사탕에 현혹된다. 그들이 자신의 고혈을 빨아들이는데도 그들의 달콤한 사탕에 빠져 고통을 직시하지 못한다. 


  "달리 말하면 우리는 전체주의 비밀경찰의 활동 방식과 특수한 기능을 알고 있지만, 이 비밀 사회의 '비밀'이 얼마나 잘 또는 어느 정도는 우리 시대 대중의 은밀한 욕망에 부응하고 대중과 은밀한 공모 관계를 이룰지는 잘 알지 못한다."-218쪽

  "'객관적인 적' 개념-이 적의 정체는 일반적인 상황에 따라 수시로 변하기 때문에 한범주가 청산되자마자 다른 범주와의 전쟁이 선포된다."-199쪽

  권력을 가진 히틀러와 스탈린은 끊임없는 숙청을 했다. 히틀러의 경우 유대인을 박멸한 다음에는 폴란드인을 그다음 절멸의 대상으로 생각했다. 독일인 중에서도 심장질환이 있는 자나 그 가족 또한 절멸의 대상이었다. 스탈린은 숙청 인원을 할당해주었다. 끊임 없는 숙청은 새로운 승진의 자리를 마련해주었다. 비밀경찰 내부에서도 숙청이 이뤄졌고, 그들은 자신의 상관이 사라지만 자신이 그자리를 앉을 수 있다고 기뻐했다. 짧게 권좌에 앉아 있는다 할지라도 그 달콤함을 위해서 그들은 히틀러와 스탈린에게 충성을 했다. 끊임 없는 숙청은 대중에게는 실업의 위협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단비였다. 그리고 자신도 새로운 '객관적인 적' 개념에 포함되어 숙청된다. 거란족이 세운 '요'나라가 끊임 없는 전쟁을 통해서 번영했듯이, 전체주의 국가도 끊임없는 '객관적인 적'을 만들어 가야번영한다. 그 것이 중단될때 번영도 중단된다.

  많은 정치인들이 '국민은 절대 옳다.'라는 말을 내뱉는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국민은 옳을 수도 있고 어리석을 수도 있다. 고통스러운 현실을 직시하하기 보다는 달콤한 괴변에 현혹되어 히틀러와 스탈린과 같은 정치인을 메시아로 갈망한다. 그리고 그 자신도 그들의 희생자가 된다. 


2. 현명한 시민이 되려면 어찌해야할까?

  히틀러가 독일 국민을 속였다기 보다는 어리석은 독일 국민이 히틀러를 갈망했다. 히틀러가 없었어도 어리석은 독일 국민은 또다른 독재자를 총통의 자리에 앉혔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현명한 시민이 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첫째, 연대하라! 전체주의는 시민들의 단결을 가장 두려워한다. 시민들이 스스로를 조직화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그들을 원자화한다.


  "전체주의 운동이 대중사회의 비체계성보다 원자화되고 개인화된 대중의 특별한 조건에 더 의존한다는 사실을 가장 명확하게 볼 수 있다. 스탈린은 레닌의 혁명적 독재 체제를 완전한 전체주의 통치로 변화시키기 위해 우선 원자화된 사회를 인위적으로 만들어내야만 했다. 독일에서는 우연한 역사적 상황으로 원자화된 사회가 나치에게 주어져 있었다."-35쪽


  가정폭력에 시달리면서도 그 굴레이서 벗어나지 못하는 여성이 있다. 가스라이팅을 당하면서 연인에게 착취당하는 사람이 있다. 친구에게, 부모에게, 직장 동료에게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착취당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주변에 그를 도와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가해자는 가스라이팅의 대상이 연대할 수 있고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들을 옆에 둘 수 없도록 고립시킨다. 그들을 원자화 시킨다. 

  전체주의에 빠져든 국가의 국민들도 마찬가지였다. 독재자가 의도했든, 당시 시대적 상황이 그러했는지에 상관없이 국민들은 원자화되었다. 그리고 쉽게 어리석은 국민이 되었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전체주의에 빠져들지 않기 위해서는 연대해야한다는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 건전한 공동체를 재건하고 소통과 참여를 통해서 깨어있는 시민이 되어야한다. 이는 개인의 행복을 위해서도, 국가와 사회라는 공동체를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고통스러운 어둠의 터널을 헤처나갈 수 있는 용기와 힘은 손을 잡고 함께 걸어갈 동지가 있기 때문이다. 

  둘째, 메시아를 갈망하지 마라! 우리가 메시아가 해주길 바라는 일을 해나가자! 많은 사람들이 메시아를 갈망한다. 고통스럽고 혼란스러운 현실을 메시아가 나타나 단번에 해결해 주길 바란다. 그러한 메시아에 대한 갈망은 독재자의 탄생으로 이어진다. 


  "사상을 서술하는 확실한 예언 형식이 그 내용보다 훨씬 더 중요하게 되었다. 영원한 오류 불가능성이 대중 지도자의 주요 자격이 되었다. 그는 결코 오류를 허용하지 않는다. 게다가 오류 불가능성의 가설은 우월한 지성에 토대를 두고 있다기보다는 역사 및 자연 내에 존재하는 본질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힘에 대한 정확한 해석에 토대를 두고 있다."-82~83쪽


  중세시대 '교황무오류설'이 있었다. 교황은 절대 오류를 범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이 '교황무오류설'은 중세를 암흑기로 인식하는데 많은 기여를 했다. 중세 교회의 수많은 부정과 부패를 개혁할 수 있는 기회를 원천적으로 차단했다. 인간인 교황이 신의 반열에 오르는 순간 교황의 타락과 교회의 몰락은 시작되었다. 

  전체주의 국가 지도자도 '영원한 오류 불가능성'을 대중에게 주입했다. 아니, 괴로운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대중들이 영원히 오류를 범하지 않는 메시아를 갈망했다. 그리고 히틀러와 스탈린은 그들의 마음을 얻는데 성공했다. 누군가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길 바라고, 스스로 문제를 직시하길 거부하는 순간 우리는 독재자를 영접하게 된다. 그것은 스스로 주인이 되길 포기하는 사람은 노예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괴로운 현실을 직시하고 고통의 강을 건널 준비가 되어있어야한다. 

  셋째, 인간의 가치를 발견하라. 전체주의는 개인의 가치, 더 나아가서 인간의 가치를 무용지물로 만든다. 스스로의 가치를 부정하는 순간 전체주의는 우리를 덮친다. 


  "전체주의는 인간에 대한 전체적 지배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완전히 무용지물이 되는 시스템을 갖고자 노력한다. 전체주의의 권력을 얻고 지킬 수 있는 곳은 조건반사의 세계, 자발성의 흔적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꼭두각시의 세계뿐이다. 인간의 힘은 크기 때문에 인간이 완전히 지배될 수 있는 것은 그가 인간이라는 동물종의 한 표본이 될 경우뿐이다."-248쪽


  전체주의는 우리를 '완전히 무용지물이' 되도록 시스템을 만들려한다. 스스로 생각하기 보다는 파블로프의 개처럼 조건반사적 행동을 하길 바란다.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가치를 창조하는 주인이기 보다는 지배자가 시키는 일을 무조건 실행하는 꼭두각시를 원한다. 그 순간 인간은 고귀한 생명체에서 '동물종의 한 표본'으로 전락한다. 

  우리가 '동물종의 한 표본' 이기를 거부하고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발견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조할 때, 전체주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다. 자신의 가치를 창조하는 시민만이 전체주의의 거짓 선전에 흔들리지 않는다. 

  넷째, 이데올로기의 노예가 되지 마라. 이데올로기는 세상을 해석하는 하나의 틀이다. 그런데, 어리석은 군중은 그 틀로 세상을 제단하려 한다. 


  "이데올로기는 과학적 성격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이데올로기는 과학적 접근과 철학과 관련된 결과들을 결합시켜 과학 철학인 것처럼 행세한다. (중략) 이데올로기는 사이비 과학인 동시에 사이비 철학일 것이며 과학의 한계를 위반하는 동시에 철학의 한계도 위반한다."-268쪽


  공산주의 사상을 '과학 철학'인 것처럼 받아들이는 사람이 많았다. 지난 20세기 동안 '사이비 과학인 동시에 사이비 철학'인 이데올로기의 노예가 되어 수많은 사람을 희생시켰다. 세상을 해석하는 하나의 도구를 경전처럼 떠받들며 인간이 스스로 이데올로기의 노예가 되었다. 

  일찍이 마르크스는 자신을 훌륭한 마르크스주의자라며 칭찬하는 친구에게 자신은 자신은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라고 말했다. 마르크스는 '~주의', '~ism'의 위험성을 간파하고 있었다. 그러나, 마르크스가 염려했던 '마르크스주의', '공산주의', '사회주의'가 출현했다. 그리고 이들 이데올로기는 한시대를 지배하는 비극을 낳았다. 

  아무리 좋은 사상도 교조화된다면 비극은 시작된다. 현명한 시민이 되려한다면 이데올로기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된다. 스스로 주인이 되어야만 비극은 우리의 문을 두드리지 못할 것이다. 


  지구촌에 어둠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다. 지구촌 곳곳에서 독재자가 활개치며 극우파가 득세를 하고 있다. 트럼프가 미국의 유력 대권주자로 등극했다. 팔래스타인에서는 오늘도 수많은 생명이 죽어가고 있다. 우크라이나에서는 포탄 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러한 현실은 한나 아렌트가 살아던 시대의 음습함을 떠오르게 한다. 한나 아렌트가 했었던 고민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정복하기 힘든 그녀의 책을 가슴에 품고 그녀와 대화하려 노력한다. 그리고 고혹적인 그녀의 미소에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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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주의의 기원 2 한길그레이트북스 84
한나 아렌트 지음, 이진우, 박미애 옮김 / 한길사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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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올로기는 과학적 성격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이데올로기는 과학적 접근과 철학과 관련된 결과들을 결합시켜 과학 철학인 것처럼 행세한다. ‘이데올로기‘란 말은 동물이 동물학의 주제인 것처럼 이념도과학의 주제가 될 수 있다는 함의를 또 이데올로기 (Ideologie, ideolo-gy)의 접미어 로기 (logy)는 동물학인 zoology에서처럼 로고이(logoi),
즉 그것에 관한 과학적 진술만을 의미한다는 함의를 담고 있는 것 같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이데올로기는 사이비 과학인 동시에 사이비 철학일 것이며 과학의 한계를 위반하는 동시에 철학의 한계도 위반한다. - P268

 전체주의 지배의 이상적인 신하는골수 나치나 골수 공산주의자가 아니라, 사실과 허구(즉 경험의 현실)의 차이와 참과 거짓(즉 사유의 기준)의 차이를 더이상 보지 못하는사람들이다. - P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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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주의 장자수업 1 - 밀쳐진 삶을 위한 찬가 강신주의 장자수업 1
강신주 지음 / EBS BOOKS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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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자'는 우화집이다. 그러나 단순한 우화집이 아니다. 처음 '장자'를 읽으며 재미 있는 부분을 지나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를 읽고 생각했다. 과연 장자는 무엇을 이야기하려할까? 이해할 수 없는 난해함에 '장자, 차이를 횡단하는 즐거운 모험'(강신주)을 함께 읽었다. '장자, 차이를 횡단하는 즐거운 모험'에 강신주가 설명한 이야기는 '장자'라는 책의 내용에 비하면 너무도 적었다. 어떻게 필부가 '장자'의 모든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장자'를 완독하고 나서 장자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안다고 생각했다. 강신주가 장자 강의를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텔레비젼을 잘 보는 성격이 아니라, 유튜브의 단편적 강의를 들으며 '강신주의 장자 수업1'을 읽기 시작했다. '장자, 차이를 횡단하는 즐거운 모험'에서 벗어나 얼마나 많은 깨달음을 강순주는 우리에게 던져줄까?


1. 자본주의 사회에서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방법!! 독맥적 삶.

  영원한 자유인 강신주! 그는 여전히 자유를 말하며, 인문학자라면 자본주의에 동의할 수 없다고 말한다. 


  "문제는 우리가 국가나 자본의 질서를 벗어나서는 살 수 없다고 믿는데 있습니다. 심지어 국가나 자본의 질서를 강화하고 타인에게 강요하는 사람도 많습니다.마마보이나 마마걸보다 무서운 국가 보이나 국가걸 혹은 자본보이나 자본걸이라는 괴물이 되고 마는 겁니다." -196쪽


  재미있는 것은 자본주의를 거부하며 자본주의에서 벗어날 것을 일갈하는 강신주 조차도 자본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가 여러권의 책을 쓰는 것도, 그 책이 많이 팔리기를 바라면서 강의를 하고 벙커1에서 방청객들에게 자신의 책을 사서 보길 바라며 한 말들을 떠올린다면 그도 역시 자본주의 사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직면하게 된다. 10여년 전으로 기억한다. 대중강연에서 강신주는 '바람이 없으면 글라이드를 탈 수 없듯이, 자본주의라는 바람을 이용해서 우리는 살아가야한다.'는 말을 했다. 자본주의를 맹렬히 비판하며 자본주의에서 벗어나라고 우리를 채근하는 그는 자본주의라는 감옥에서 '관념적 탈옥'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강신주는 한발자국 더 나아간다. 문명화를 가축화라 지적하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표현을 사용하여 자본보이와 자본걸을 비판한다. 그런데, 과연 강신주의 말은 현실성이 있을까? 사실 자본과 국가라는 질서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만약 벗어나고 싶다면 자연인이 되는 길밖에 없다.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다큐속 자연인들도 100% 자연으로 돌아간 사람은 매우 적다. 스스로 자급자족할 수 없는 것들은 읍내로 나와서 구입할 수 밖에 없다. 필요한 것을 구하기 위해서 양봉이나 약초채집 등의 경제활동을 한다. 

  장자관련 서적을 읽으며 나의 가슴에서 남는 세속을 떠나는 방법에 관한 글이 있다. '속세를 떠나 산속에서 은일하는 것은 최하급의 은일이고, 최고의 은일은 속세 속에서 은일을 하는 것이다.' 라는 글이다. 진정한 도는 산중에서 닦는 것이 아니라 인간 속에서 인간의 고통을 고뇌하며 몸으로 닦는 도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국가나 자본의 횡포에 대항하고 연대하며 우리의 국가,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를 만드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도이다. 부순다고 파괴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맘에 들지 않지만 고쳐나가고 변혁해 나가며 우리 사회에서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만드는 것이 자본주의라는 바람을 이용해서 창공을 날아가는 현명한 방법일 것이다. 

  그렇다면, 자본과 국가 속에서 살아가며 우리는 어떠한 생각을 가슴속에 담고 살아야할까? 나는 '강신주의 장자수업'을 읽으며 '독맥적' 삶에 대해서 생각했다.


  ""독맥적인 것을 따른다."는 것은 척추로 상징되는 당당함과 양기로 상징되는 경쾌함을 기준으로 삶을 살아야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당당하고 경쾌한 삶! 억압체제를 떠나거나 극복하지 못해도, 아니억압체제를 떠나거나 극복할 때까지 한순간이라도 잊어서는 안되는 가치입니다." -199쪽


  독맥(督脈)!! 얼마나 멋있는 말인가! '숫타니파타'에도 나오는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는 것이 독맥적 삶이 아닐까? 자본주의에 노예가 된자들이 유행에 따라가지 못한다며 나에게 핀잔을 주어도, 승진에 목을 매며 그 경쟁에 같이하지 않는 나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눈빛을 보내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경쾌하게 나의 삶을 살아가는 것 그것이 독맥적 삶이 아닐까? 내가 원하는 것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스토커와 같은 삶보다는 그가 원하는데로 그에게 행해주지만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 나는 나의 길을 가야겠다.


2. 역사공부를 해야하는 이유

  강신주라는 철학자를 좋아하지만, 그가 말하는 논리의 근거에 동의하지 못하는 것들이 많다. 강신주는 철학뿐만 아니라 뇌과학과 인류학 분야의 많은 책들을 읽으며 사유의 폭을 넓힌다. 그런데, 역사학 관련 서적은 많이 읽지 않는다는 인상을 그의 책에서 강하게 받는다. 대표적인 것이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노예가 건설했다는 표현이다. 


  "파라오 한사람을 위해 돌을 나르는 수십만명의 노예들을 떠올려 보세요." -222~223쪽


  이집트에서 발견된 상형문자를 해독한 결과 피라미드는 노예가 건설한 것이 아니라, 이집트의 농민이 건설했으며 그 댓가로 맥주와 밀가루를 주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피라미드 건설은 농번기를 피해서 농한기에 일종의 뉴딜정책처럼 시행되었다는 연구결과를 강신주는 알지 못하고 있다. 헤로도투스의 '역사'에서 피라미드를 노예를 동원해서 건설했다는 잘못된 기록을 강신주는 아직도 믿고 있다. 강신주가 쓴 여러 책에서 피라미드를 노예들이 건설했다는 잘못된 표현이 반복되고 있는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강신주가 '농민도 어자피 노예이다.'라고 항변할 수도 있다. 그러나 노예와 농민은 엄격히 구분된다. 또한 농민을 노예로 여긴다 할지라도 대중을 위한 책에는 '노예와 같은 삶을 사는 농민들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어야했다. 물론 맘에 들지 않는 표현이지만 말이다. 

  강신주는 농경문화를 경멸하며 유목문화를 찬양한다. 억압과 지배의 문화가 농경문화라면 유목문화는 자유가 있는 문화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이웃이 마음에 안들면 천막을 걷은 다음 가축을 몰로 다른 곳으로 떠나면 그만이니까요. 이웃을 쫓아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미련없이 떠난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277쪽


  강신주의 설명 대로라면 농경사회에서는 이동할 수 없기에 이웃과 다툼이 일어나지만, 유목사회에서는 이동할 수 있기에 분쟁이 발생할 수 없다. 이것은 사실일까? 유목민은 언제나 자유로이 떠나며 분쟁을 겪지 않는 사람들일까? 아니다. 강신주에게 '유목민족 제국사'라는 책을 읽어보길 권하고 싶다. 유목민 조차도 혼자살 수 없다. 그들은 광활한 초원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부족을 형성한다. 쪼드나 강과 같은 가뭄과 홍수가 초원을 덮치며 가축들이 먹을 풀은 줄어든다. 가축의 배를 가르면 자갈들이 가득한 경우도 있다. 뜯어먹을 풀이 없다보니 배고푼 가축이 자갈을 먹은 것이다. 늘어나는 인구와 가축에 비해서 한정된 초지를 두고 부족간의 피의 사투가 벌어지기도한다. 그러한 사투는 너무도 참혹하다. 강신주가 칭기즈칸이 칸으로 추대되기 전까지의 고난의 기록을 읽어보았다면, 유목민에 대한 낭만적 감상주의에 빠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불쌍한 강신주는 여기에서 한발자국 더 나가는 오류를 범한다.


  "유목국가들은 인간을 가축화하는 야만을 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들 국가가 대부분 무문자 사회였다는 것이 그 증거일 겁니다." -276쪽


  강신주는 유목국가들이 인간을 가축화하지 않는 근거로 '무문자 사회'라는 점을 제시한다. 이것도 엄청난 오류이다. 유목국가들도 문자를 만들었다. 돌궐제국도 자신들의 문자를 만들었고 돌궐문자로 쓰여진 톤유쿡 비석이 발견된 사실이 이를 실증적으로 증명해준다. 그뿐만이 아니다. 거란에는 거란문자가 있었고, 여진에는 여진문자가 있었으며, 서하에는 서하문자가 있었다. 유라시아 대제국을 세운 몽골에는 파스파 문자가 있었다. 부족간의 치열한 죽고 죽이는 전투가 벌어지는 가운데 부족을 통일한 유목민을 국가를 세우고 자방을 정복해 나아간다. 그리고 문자를 만든다. 유목국가가 무문자 사회였다는 강신주의 낭만적 역사관은 전혀 역사적 근거가 없는 그의 공상이다.

  강신주에게 말하고 싶다. 역사를 여행자의 시선에서 보지 말라!! 커피에 우유를 부어 마시는 비엔나 커피를 여행자는 낭만적으로 바라본다. 그러나, 커피와 우유를 마쉴 여유가 없는 마부는 한손에 고삐를 쥐고 다른 한손에 커피와 우유를 들 수 없기에 커피와 우유를 섞어 마셨다. 비엔나 커피는 여행자에게는 낭만적인 모습이지만 마부에게는 고단하게 하루를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절박함이 묻어있는 현실이다. 강신주는 여행자의 시선에서 유목민을 바라보고 있다. 이제는 유목민이되어 유목민의 삶을 바라보길 기대한다. 

  강신주의 많은 글에 감탄과 찬사를 보내는 나이지만, 때로는 그의 아전인수식 해석에 동의할 수 없을 때도 있다. 특히, '수주대토' 고사에 대한 그의 설명은 절대 동의 할 수 없다.


  "송나라 사람이 지킨 나무 그루터기는 단순히 전통이나 통념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그것은 토끼가 나무 그루터기에 부딪혀 죽은 사건에 대한 사유의 결과물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그가 지킨 나무 그루터기는 그가 옳다고 판단한 자신의 생각이었던 겁니다. 한비자는 나무 그루터기를 지킨 송나라 농부를 잘못 읽어냈습니다. 송나라 농부는 고지식해서 융통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사람은 아니었으니까요. (중략) 일회적 사건을 일회적이라고 치부하지 않고 오히려 그로부터 일반적 법칙을 끌어내고 그것을 현실에 과감히 적용합니다. 평범한 바보나 멍청이는 이런 일을 감당하지 못합니다. 창조적인 과학자나 비판적인 지식인만이 그렇게 할 수 있죠. 송나라 출신들은 주어진 관념이나 상식의 노예가 아니었습니다." - 162쪽


  과연 그럴까? 상식과 관념은 현실을 살아가는 일차적 지식이다. 이에 기초해서 사유했다면 일회성 사건을 일반적 법칙으로 오인해서 나무그늘에서 늘어져 쉬면서 어리석은 토끼가 나타나기를 기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농부의 행위는 경쾌하지도 과감해 보이지도 않는다. 우숩고 무모해보일뿐이다. 강신주가 사건을 달리보려는 시도는 좋아보인다. 그러나 상식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진실을 왜곡하여 자신의 입맞대로 평가한다는 인상을 주는 것은 못내 불편하다. 역사를 실사구시적 관점에서 보아야하듯이, 기존의 상식들도 과연 그러한지, 타당성이 있는지 냉철할게 바라보아야하지 않을까?



  책을 덮었다. 책을 읽고 나의 머릿속에 남는 한귀절이 있다. "세계는 나와 더불어 태어났으니, 만물과 나는 하나라고 여길 수 있다."(310쪽)라는 혜시의 말이다. 물론 장자는 ""세계는 나와 더불어 태어났다"고 느껴지는 그 애절한 상황, 그리고 "세계는 나와 더불어 태어났다"고 느껴지는 그 경이로운 상황에서 벗어니지 말고, 이러한 상황에 따르라"(314쪽)고 말하고 있지만, 나는 혜시의 말을 따르고 싶다. 이 순간 만큼은 타의 탄생과 함께 나의 세계가 열렸으니, 나의 세계와 나는 하나라는 생각을 하며 책장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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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용운의 채근담 강의
한용운 지음, 이성원.이민섭 옮김 / 필맥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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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용운의 채근담 강의'이라니!! 만해 한용운을 김관호라는 청년이 찾아왔다. 한용운은 '정선강의 채근담'을 내어주며 이 책을 읽고 다시 오라고 말했다. 독립운동가이자, 승려이며 시인인 그가 김관호에게 불교서적도 아니며 시집도 아닌 '정선강의 채근담'을 왜 내주었을까? 아마도 식민지 조선이라는 어둠의 터널을 걸어가며 흔들리지 않고 조국 독립의 길을 갈 수 있는 마음가짐을 채근담을 통해서 얻길 바라지 않았을까? 수많은 채근담 번역서가 있다. 그 중에서 '한용운의 채근담 강의'를 선택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조국 독립이라는 뜻을 꺽지 않고 당당히 나아간 한용운의 마음을 채근담을 통해서 만나고 싶다. 


1. 무엇이 그를 채근담으로 이끌었을까?

  고전은 나의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다. 고민이 있을 때 접한 한줄기 글귀가 나를 덮고 있는 고민덩어리에서 해탈케한다. 식민의 고통을 겪었던 만해 한용운에게 어떤 채근담의 글귀가 힘과 용기를 주었을까? 

  친일파들이 난동을 벌이고 있다. 매국노들이 나를 일제에 팔아 넘겼다. 을사오적과 일진회 세력이 활개를 치는 그 시대에 만해는 고민했을 것이다. 어떠한 삶을 살 것인가? 승려로서 구도자의 삶을 살 것인가? 시인으로서의 삶을 살 것인가? 현실에 순응하는 소시민으로 살 것인가? 그 때 한용운은 현실에 순응하는 삶을 걷어차버린다. 그리고 당당하게 승려이면서 시인으로서 삶을 살아가는 동시에 독립운동가로서의 소명을 다한다. 아마도 그는 채근담의 다음 구절에서 용기를 얻었을 것이다. 


隨時之內善救時 若和風之消酷暑, 混俗之中能脫俗 似淡月之映輕雲.

(시대의 흐름을 따르면서도 시대를 잘 구제하는 것은 산들바람이 불어와서 무더위를 몰아내는 것과 같다. 세속에 섞여 있으면서도 세속을 벗어날 수 있는 것은 희미한 달빛이 가벼운 구름을 환히 비추는 것과 같다.) 84쪽


  칠흑같이 어두운 식민의 터널을 걷고 걸어가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다. '시대를 잘 구제'하여 독립의 꿈을 이룬다면 이것은 '산들바람이 불어와서 무더위를 몰아내는 것'과 같지 않은가? 일제 강점기 조선을 살면서도 조국 독립을 이루는 것은 '희미한 달빛이 가벼운 구름을 환히 비추는 것'과 같지 않은가? 

  누구는 절망했고, 누구는 변절했다. 그러나 만해 한용운은 현실과 굴복하지 않았다. 풀뿌리를 씹어 먹으면서도 자신의 올곧은 신념을 꺽지 않았다. 친일을 선택한 민족반역자들은 풍요로운 삶을 살아갈 때 한용운은 총독부가 보기 싫어 북향으로 집을 짓는다. 그리고 집이름을 심우장이라했다. 아이가 소를 찾아 깨달음을 얻듯이 그도 자신이 추구하는 참된 진리를 찾아 긴 여생을 보내며 자신의 집을 심우장이라 지었다. 


貧家淨掃地, 貧女淨梳頭, 景色雖不艶麗, 氣度自是風雅. 士君子一當窮愁寥落, 奈何輒自廢弛哉.

(가난한 집의 마당을 깨끗이 쓸고 가난한 여인의 머리를 곱게 빗으면 외관과 외모가 화려하지는 않아도 기품이 우아할 것이다. 사군자가 가난하고 불행한 처지에 놓이더라도 어찌 스스로 피폐해지고 해이해질 것인가) 290쪽

肝腸煦若春風 雖囊乏一文 還憐煢獨 氣骨淸如秋水 縱家徒四壁 終傲王公.

(마음이 봄바람처럼 따뜻하면 주머니 속에 먼지만 가득해도 오히려 의지할 데 없는 이들을 동정하며, 기개가 가을 강물처럼 맑으면 사는 집이 사방 벽으로 간신히 바람만 막는 정도라도 왕후장상을 우습게 여긴다.) 118쪽


  비록 가난했지만 한용운의 마음은 풍요로웠다. 창녀의 화려함을 절개 있는 처녀가 부러워할리 없듯이, 친일파의 부귀를 한용운이 부러워할리 없다. '사군자가 가난하고 불행한 처지에 놓이더라도 어찌 스스로 피폐해지고 해이해질 것인가'라는 글귀를 가슴에 새기며, 오히려 변절한 친일파들을 '동정'하였을 것이다. 부귀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자신의 신념임을 그들은 모를 것이다. 

  독립운동가의 삶은 순탄할리 없다. 수없이 감옥에 갖히고 죽을 고비를 넘겨야했다. 순탄한 삶을 살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고난의 길을 선택했다. 어떤이는 그만 타협하고 편안한 삶을 살라고 그에게 말했을 것이다. 그때 한용운은 채금담의 이 귀절을 되새겼을 것이다. 


一念錯 便覺百行皆非 防之當如渡海浮囊 勿容一針之罅漏.

(한 생각이 잘못되면 백 가지 행동이 잘못된다. 이것을 예방할 때는 바다를 건널 때 쓰는 부낭에 바늘구멍만한 틈도 없게 하듯이 해야한다.) 18쪽

欲做精金美玉的人品 定從烈火中鍛來 思立欣天揭地的事功 須向簿氷上履過.

(순금이나 좋은 옥과 같은 인품을 만들기를 원한다면 뜨거운 불 속에 단련되어야한다. 천지를 들었다 놓을 만한 업적을 이루기를 생각한다면 살얼음 위를 걷듯 해야 한다.) 16쪽


 조금의 타협도 용납할 수 없다. 식민의 바다를 건너는데 '부낭'에 '바늘구멍만한 틈'이 생긴다면 이는 곧 친일의 나락으로 빠져든다. 순금을 '뜨거운 불 속에 단련'하듯이 자신의 이 고통도 자신을 단련하는 하나의 과정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리고 만해는 다음과 같은 해설을 남긴다. 


  역사상 위대한 충국의 열사와 절개 있는 사람은 칼날을 밟고 뜨거운 피를 뿌리는 외롭고 고통스럽고 험난한 환경에서 나오고, 세상에 드문 영웅과 호걸은 구사일생의 어려움 속에서 생깁니다." 17쪽


  한용운은 앞으로 자신의 삶을 예견하듯이 해설을 달아 놓았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라면 '칼날을 밟고 떠거운 피를 뿌리는 외롭고 고통스럽고 험난한 환경'을 마다하지 않겠다는 굳은 결의를 내 보였다. 그리고 자신의 결의를 한마디로 표현한다. 


若果一念淸明, 淡然無欲, 天地也不能轉動我, 鬼神也不能役使我, 況一切區區事物乎! 

(생각이 청명하여 담당하고 욕심이 없으면 천지도 나를 흔들지 못하고 귀신도 나를 부리지 못하는데 하물며 모든 사소한 사물이야 오죽하겠는가.) 160쪽


  그렇다. 조국 독립에 대한 '생각이 청명하여 담당하고 욕심이' 없기에 '천지도 나를 흔들지 못하고 귀신도 나를 부리지 못'한다. 그 누가 나의 곧은 지조를 꺽겠는가? 한용운의 피맷힌 포효가 느껴진다. 


2. 우리는 채근담을 통해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채근담이 만해 한용운의 마음을 단단하게 하는데 일조했다면, 우리의 마음도 단단하게 만들 수는 없을까? 채근담에는 우리마음을 단단하게 해주는 주옥같은 글귀가 많다. 그 중에서 몇가지를 꼽아보자.


紅顏失志 空貽皓首之悲傷.

(젊어서 뜻을 잃으면 늙어서 슬픔만 남는다.) 44쪽


  청소년기에 수많은 고민에 휩싸인다. 때로는 좌절하고 때로는 자신의 능력에 회의를 품기도한다. 힘들어하는 이땅의 청소년과 젊은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글귀이다. '젊어서 뜻을 잃으면 늙어서 슬픔만 남는다.' 그러니 용기를 잃지 마라. 정면대결이 힘들다면 우회로를 생각해 보라. 

  패기가 있고 도전정신이 있는 젊은이들에게 사회적 경험이 적어 실패를 맛보기도 한다. 이러한 청년에게 들려주고 싶은 글귀가 있다. 


欺人者非福, 而受人欺者遇一番橫逆便長一番器宇, 可以轉禍而爲福.

(남을 속이는 것은 복 받을 일이 아니다. 그러나 속임을 당한 사람은 한 번 속을 때마다 한 번 더 자신의 도량을 키워 화를 바꾸어 복으로 만든다.) 136쪽


  현명한 자는 실수로 부터 배우고, 멍청한 자는 실수를 반복한다. 타인에게 속임을 당했다면 그것으로부터 배워야한다. 그래야 다시는 같은 이유로 속임을 당하지 않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대학에 입학할 때 잡상인에게 영어 교재를 강제 구매 당한적이 있다. 너무도 어리석은 일이라서 남에게 말하고 싶지 않다. 그런데, 그와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나의 어리석은 일로부터 배워야한다. 그러한 배움이 쌓이면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바위처럼 굳건히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 

  사회에 나아가서 여러사람을 만나다보면 자신과 맞지 않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러한 사람은 어떻게 대처해야할까?


 士君子之涉世, 於人不可輕爲喜怒 喜怒輕 則心腹肝膽 皆爲人所窺, 於物不可重爲愛憎 愛憎重 則意氣精神 悉爲物所制.

(사군자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남들에게 기쁨과 노여움을 쉽게 품지 말아야 한다. 기쁨과 노여움을 쉽게 품으면 남이 속마음을 샅샅이 엿보게 된다. 외부 사물에 지나친 애증을 품지 말아야 한다. 애증이 지나치면 의기와 정신이 모두 외부 사물의 지배를 받게 된다.) 64쪽


  나는 사회 생활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이 나의 감정을 얼굴에 쉽게 드러낸다는 것이다. 싫어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사람을 얼굴에 분명히 드러내어 대인관계에서 불이익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채근담에서는 나의 기쁨과 노여움을 드러내지 말라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들에게 기쁨과 노여움을 쉽게 품지 말아야'하며, '외부 사물에 지나친 애증을 품지 말아야'한다. 이것은 인생을 현명하게 살기 위해서 우리가 가져야할 마음 가짐이다. 

  때로는 열심히 노력하는데도 하늘이 운이 따르지 않을 때가 있다. 


 天薄我以福, 吾厚吾德, 以迓之  天勞我以形, 吾逸吾心, 以補之  天阨我以遇,吾亨吾道, 以通之  天且我奈何哉 

(하늘이 나에게 복을 박하게 주면 나는 나의 덕을 두텁게 하여 박한 복을 맞아들이고, 하늘이 내 몸을 힘들게하면 나는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하여 힘든 육체를 돕고, 하늘이 나에게 액운을 내리면 나는 나의 도를 형통하게 해서 앞길을 열리니 하늘인들 나를 어찌하겠는가)- 296쪽


  운명론적 삶을 거부하라! 채근담은 말한다. 사회의 일부 지도층 사이에서 역술인에 의존하는 자가 있다. 부적을 차고 다니고, 무속인이 쓴 글자를 손에 적고 다닌다. 자신의 삶이 떳떳하지 않거나, 자신의 마음가짐이 단단하지 않을 수록 역술에 의존하게 된다. 하늘이 나아게 나에게 복을 박하게 주면 나는 덕을 두텁게하고, 하늘이 몸을 힘들게하면 나는 마음을 편하게 할 것이며, 하늘이 액운을 주면 나는 도를 형통하게 할 것이다. 그렇다면 하늘인들 나를 어찌하겠는가! 얼마나 아름답고 멋있는 말인가! 운명에 나의 모든 것을 내 맡기기 보다는 나의 운명을 내가 만들어가자.

  내가 사회적 리더가 되었을 때는 어떠한 마음 가짐을 가져야할까? 채근담은 이렇게 말한다. 


我果爲洪爐大冶 何患頑金鈍鐵之不可陶鎔 我果爲巨海長江 何患橫流汚瀆之不能容納
(내가 큰 화로와 거대한 대장간이 되면 단단한 쇠를 녹이지 못할까를 어찌 걱정하며, 내가 큰 바다와 긴 강이 되면 내가 제멋대로 흐르거나 더러워진 강물을 용납하지 못할까를 어찌 걱정하리오.)


  리더가 될 사람은 그릇을 키워야한다. 그릇이 크지 않은자가 큰척한다면 마음에 큰 상처를 얻을 것이다. 나의 마음을 거대한 대장간으로 만들고, 커다란 바다와 긴 강으로 만든다면 때로는 치기 어린 아랫사람도 품어 안을 수 있다. 우리 자존감의 그릇을 키우자.

  나에게는 세상을 사는 젊은이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 현실 정치에 혐오감을 느끼더라도 절대 현실정치에 무관심 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이를 채근담은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居軒冕之中,  不可無山林的氣味. 處林泉之下,  須要懷廊廟的經綸

(관직에 있어도 산림 속에 사는 듯한 기질과 취미를 버리지 말아야 하고, 산속 샘가에 살더라도 반드시 조정에 있는 듯이 경륜을 품어야 한다.) 224쪽


  자연인으로 산다 할지라도 현실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한다. 정치는 우리의 삶에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우리는 반드시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한다. 국민이 정치에 무관심하기를 바라는 자는 바로 독재자들이다. 로마의 황제들이 빵과 써커스 정책을 펼치면서 로마 시민들에게 정치에 관심을 가지 않도록했다. 너의 눈과 귀, 그리고 배를 채워줄테니 황제의 독재에 대해서 관심을 갖지 말라는 것이다. 이러한 우민화 정책은 전두환 정권의 3S 정책으로 이어졌다. 성과 영화, 스포츠을 보면서 즐기면서 전두환 독재정치에 관심을 갖지 말기를 그들은 바랬다. 이러한 상황은 지금도 다르지 않다. 관직에 있으면서도 산림 속에 사는 기질을 버리지 말아야하듯이, 산속에 살더라도 반드시 나랏일에 관심을 가져야한다. 이것은 홍자성이 살았던 명나라 시기만의 교훈은 아닐 것이다.



  만해 한용운은 단순한 독립운독가가 아니다. 만해는 '고려대장경'을 낱낱히 열람하여 1000권을 선정하고 그 중 중요한 구절을 정선하여 번역했다.(1914) 그리고 그 이듬해에는 '정선 강의 채근담'을 집필했다. 그는 보통의 승려 이상의 능력과 실천력을 가진 분이시다. 중학교 시절, '님의 침묵'을 읽고 30여년이 지나서 그가 강의한 채근담을 읽었다. 채근담을 읽으며 자신의 마음가짐을 가다듬었을 만해의 뜨거운 열정이 나의 가슴속에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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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루이)는 자신이 한 국가의 장관을 그의 가족과 함께 맨 밑바닥으로 끌어내리고 극심한 불만감에 귀족을 짓밟을 수는 있어도 귀족이나 귀족의 혈통을 완전히 말살할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만약 그렇게 되면 아무리 재산이 많아도 그에게는 소용이 없다. 그가 자신의 장관들에게 같은 혈통의 왕자들보다도 높은, 국가에서 가장 높은 권한을 부여하려 한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생시몽 회고록

술탄들 중의 술탄이자 국왕들 중의 국왕이고, 지구상의 군주들에게 왕관을 나눠 주는 사람이며, 이 세상의 신의 그림자이고, 백해와 흑해의 술탄이자 최고 통치자이며, 루멜리아, 아나톨리아, 카라마니아의 최고 통치자인 내가 (중략) 프랑스 왕인 그대 프랑수아에게 전한다.
그대는 나의 정부에 서한을 보냈다. (중략) 그대는 그대를 구해 달라며 원군을 요청했다. (중략) 용기를 내고 낙담하지 말라. 우리의 영예로운 전임자들과 걸출한 조상들(신께서 그들의 무덤에 빛을 밝혀 주기를!)은 적을 물리치고그의 영토를 정복하기 위해 전쟁을 중단하지 않으셨다. 우리도 그들의 발자국을 따랐고 아주 강력하고 접근하기 어려운 성채와 지역도 늘 정복해 왔다. 우리의 말에는 밤낮없이 안장이 얹혀 있고 허리에는 우리의 칼이 걸쳐있다.
-술레이만 - P128

만약 폐하께서 외국 무역을 금지하는 그 오래된 법을 폐지해도 안전하다는 데 만족하지 못한다면, 실험을 해 보기 위해 그 오래된 법을 5년에서10년 정도 유예할 수도 있습니다. 바라던 만큼 이롭지 않은 것으로 판명나면, 그 법을 다시 회복시킬 수 있습니다. 미국은 종종 해외 국가와의 조약을몇 년 정도로 제한한 다음, 희망에 따라 그 조약의 갱신 여부를 정합니다.
-페리가 가져온 필모어 대통령의 서한 - P211

1. 이 서약으로 "우리는 광범위하게 국가의 부를 축적하고 헌법과 법률의틀을 수립하는 것을 목표로 세운다.
2. 심의회가 널리 설립되고 모든 문제가 열린 토론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3. 모든 계층은 국가의 문제를 힘차게 관리해 나가는 데 힘을 합쳐야 한다.
4. 불만이 존재하지 않도록 문관과 무관은 물론 일반인들도 각자의 소명을 추구할 수 있어야 한다.
5. 과거의 악습은 중단되어야 하고 모든 것이 공정한 자연법에 근거해야한다.
6. 황제 통치의 기초를 강화하기 위해 세계 전역에서 지식을 추구해야한다.
-메시지 유신 대관식에 서명한 5개조 서문 - P213

우리는 열강들로 이루어진 집단이나 어떤 진영에도 연루되지 않을 계획이다. 36그래야만 우리가 인도의 대의명분뿐 아니라 세계 평화의 대의명분에도 기여할 수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때때로 이 정책으로 한 집단의 열렬한지지자들은 우리가 다른 집단을 지지하고 있다고 상상할 수도 있다. 모든국가는 외교 정책을 수립할 때 자국의 이익을 우선시한다. 다행히도 인도의이익은 평화로운 외교 정책과 일치하며, 모든 혁신적인 국가들과의 협력과도 일치한다. 필연적으로 인도는 우리에게 우호적이고 협력적인 국가들과가까워질 것이다.
-네루, 뉴 리퍼블릭, 1947 - P231

인도 대표단이 미국을 자극할까 두려워 소련 진영을 피했다면 터무니없고 현명치 못한 행동이 되었을 것이다." 미국이나 다른 나라가 계속해서 비우호적인태도를 보이면 불가피하게 다른 곳에서 친구를 찾을 거라고 그들에게 분명하고 확실하게 말해야 할 때가 올 수도 있다.
-네루 - P232

우리 아시아, 아프리카 국가들은 친공산주의나 반공산주의가 되는 것 외에는 확실한 입장을 취할 수 없습니까? 세계에 종교를 비롯한 온갖 종류의것을 안겨 준 사상계의 대표자들이 이런저런 종류의 집단에 꼬리표를 붙이고 자신들의 소망을 실행에 옮기면서 가끔은 아이디어를 주는 이런저런 집단 주위를 어슬렁거려야 하는 지경이 되었습니까? 이는 자존심이 있는 민족이나 국가에게는 가장 모멸적이고 굴욕적인 것입니다.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훌륭한 국가들이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상태가 된 뒤 결국 이런식으로 굴욕을 당하고 비하된다는 것은 견딜 수 없는 일입니다.
-네루, 1955, 반둥회의 - P232

독일 국민에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은 이렇다. 만약 그들이 전쟁이끝난 뒤에도 세계 평화를 어지럽히는 데 관심이 있는 야심과 음모를 꾸미는지배자들, 다시 말하면 세계의 다른 민족들이 믿을 수 없는 사람들 밑에서계속 살아야 한다면, 차후에 세계 평화를 보장해야 할 국가들의 동반자로 그들을 인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윌슨 - P293

따라서 그리스와 터키를 포함한 서유럽 지역에서의 활기차고 독립적인정치 활동의 보존을 요구하는 대서양 해양 세력의 이해관계와 늘 불안한 유라시아 대륙 세력의 이해관계 간에 근본적 충돌이 유럽에서 발생할 것인데, 유라시아대륙 세력은 늘 서쪽으로 세력 확장을 추구해야하기 때문이다. 대륙 세력의입장에서 보았을 때, 대서양 외에는 안전하게 팽창을 멈출 수 있는 장소를발견하지 못한다..
-1945,케넌, 소련이 적으로 돌아설것 예상 - P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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