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에 간 뇌과학자 - 화가의 뇌가 그린 내면의 풍경들 ㅣ 미술관에 간 지식인
송주현 지음 / 어바웃어북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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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술관에 간 뇌과학자'를 읽으며 뇌과학에 대한 지식을 재미있게 넓힐 것을 상상했다. 그러나, 책을 통해서 얻은 것은 뇌과학에 대한 지식보다는 자신의 결함 조차도 예술로 승화시키는 위대한 예술가의 처절한 열정을 가슴으로 느꼈다. 

  뭉크의 '절규'를 보면서 당신은 무엇을 느끼는가? 호퍼, 칼로를 비롯한 많은 예술가들이 불면을 예술로 승화했다. 


  "불면은 화가에게 고통인 동시에 창의적 자극이 되기도 합니다. 감각은 예민해지고 희미해지지만, 그 속에서 새로운 이미지를 찾으려는 뇌의 시도가 예술적 언어를 낳기도하지요"-178쪽


  정신적 고통으로 불면증을 호소했던 뭉크는 외부자극이 위협적으로 증폭되고, 감정은 과잉반응으로 치닫는다. 그리고 뭉크는 이를 '절규'를 비롯한 다수의 작품으로 표현했다. 다른 불면증 환자들이 자신의 고통을 표현하지 못하고 고통스러워할때, 뭉크를 비롯한 예술가들은 자신의 고통을 예술로 승화시켰다. 그의 작품이 우리의 공감과 감동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있유는 그들의 고통의 키기가 너무도 켰기 때문일 것이다. 

  화가에게 눈은 더없이 소중한 일부분이다. 백내장을 앓은 모네는 그 고통속에서도 수련 연작을 완성해갔다. 색을 제대로 분간 못하는 고통 속에서도 그는 창작을 멈추지 않았다. 드가는 황반변성으로 섬세한 선과 색을 잃었다. 그는 색의 경계 없는 조합으로 예술을 재탄생시켰으며, 고흐는 황시증을 앓으면서 노란빛의 왜곡된 세상을 예술로 승화시켰다. 그들은 화가에게 가장 중요한 시력을 잃으면서도 이에 좌절하기 보다는 고통을 새로운 예술로 재탄생시켰다. 고통이 새로운 창조의 원동력이 된 것이다. 불운을 창조의 원동력으로 만들 수 있다면, 우리의 삶도 그러할 수 있지 않을까? 흑수저라 좌절하기 보다는 흑수저를 삶을 새로운 창조력의 발판으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예술가들이 그리 했던것 처럼....

  송주현작가는 조현병 환자의 작품까지 분석했다. '배외측전전두피질의구조적, 기능적 이상'이 조현병을 일으킬 수 있다. 그런데, 대드, 웨인, 뵐플리는 이러한 뇌구조의 이상을 예술로 승화시켰다. 자신의 삶의 고통과 구조적 이상마져도 예술로 승화시켰기에 그들은 그들의 삶에서 승리자가 될 수 있었다. 예술이 그들의 고통을 위로했고, 그 고통을 그들의 작품을 통해서 우리는 읽을 수 있다. 처절히 예술로 자신의 모든 것을 승화시키려했던 그들의 작품을 바라보며, 경외감을 감출 수 없는 것은 오늘의 고통에 쉽게 주저앉고 싶어하는 나의 나약함을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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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년의 질문, 베스트셀러 필사노트 (양장) - 필사로부터의 질문, 나를 알아가는 시간
김태현 지음 / 리텍콘텐츠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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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 한페이지를 필사했다. 베스트셀러라면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은 책이다. 그 책에서 작가는 가장 울림이 큰 문장들을 모았다. 마치 세잎 클로버 속에서 네입 클로버를 찾듯이 작가는 명 문장들을 주섬주섬 모아서 이 책에 담았다. 책을 필사하는 아침은 고용하기 보다는 다소 분주하다. 딸들과 아내는 출근준비, 등교준비를하고 있다. 일찍일어나 아침 운동을 한 나는 아이들의 식탁을 차려주고, 필사를 시작했다. 10분 동안 필사를 하는 동안 나의 가슴을 울린 문장들이 나의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인생에 대해서 논할 수 있는 문장 2개와 지금의 국제정세를 생각해 볼 수 있는 2문장이 귓가를 맴돈다. 

  그 첫번째 문장은 희망에 관한 문장이다. 


  "희망이란 말은 희망속에 있지 않다는 걸. 희망은 절망 속에서 피는 꽃이라는 걸. 그 꽃에 이름이 있다면, 그 이름은 아마 '그럼에도 불구하고'일 거라고," -58쪽(빨간머리앤)


  희망은 어둠 속에서 밝은 불빛 한줄기를 바라보는 것이다. 한비야의 '지구밖으로 행군하라'는 책에 흥미로운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다. 씨앗을 심은 마을과 씨앗을 심지 않은 마을이 있었다. 그런데, 비는 오지 않았고 씨앗은 싹을 틔우지 못했다. 그러넫, 씨앗을 심은 마을의 아사자는 씨앗을 심지 않은 마을 보다 적었다. 희망이란 그런 것이다. 어둠속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하더라도 빛한줄기가 삶의 희망의 씨앗을 심어준다. 아무리 현실이 괴롭다하더라도 한줄기 희망의 빛이 있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삶의 희망을 던져준다. 

  두번째 문장은 인생 등반에 관한 이야기이다.


  "산의 정상에 오르기 위해서ㅕ는 골짜기를 지나야 하며, 오아시스를 만나기 위해서는 사막을 건너야 한다. 나아가 무지개를 보기 위해서는 먼저 비를 맞이해야하며, 화려하고 예쁜 꽃을 보기 위해서는 혹독한 겨울을 보내야한다."-136(가슴이 시키는 일)


  김이율의 이글을 나의 가슴으로 축약했다. '오아시스를 만나기 위해서는 사막을 건너야하며, 무지개를 보기 위해서는 비를 맞이해야한다.' 너무도 좋은 말이다. 비바람을 맞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있으랴! 모진 풍파를 견뎌내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다. 그 인생속에서 오아시스와 무지개를 만나며 희망을 잃지 않는다. 오아시스와 무지개는 또다른 사막과 비속을 헤쳐나가는 힘을 준다. 이겨내는 것이 아니라, 견뎌내는 것이 인생이다. 꽃길만 걸을 수 없다. 인생에는 가슴 아픈 이별이 있고 가슴 설래는 만남이 있다. 뜨거운 사랑이 있는 반면, 더러운 인연도 있다. 그것이 인생이다. 견뎌내야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오아시스와 무지개를 찾으며 인생을 살아가야한다.

  세번째 문장은 국제 관계에 관한 글이다. 


  "모든 초강대국들에게 관용은 패권을 장악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필수 불가결한 요소였다."-96쪽(제국의 미래)


  에이미 추아의 '제국의 미래'라는 책은 몇년전에 읽은 책이다. 재미있게 제국이 발전하기 위한 필요 조건이 '관용'이라는 사실을 역사적 제국들의 사례에서 확인했다. 제국은 불관용과 인종적, 종교적 배타성을 띄면서 쇠퇴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교훈은 트럼프의 미국에게도 적용된다. 인종의 용광로 였던 미국이 이제는 아시안들에 대한 혐오와 히스페닉 불법 체류자에 대한 불관용으로 세상을 시끄럽게하는 나라가 되었다. 에이미 추아의 주장이 맞다면, 미국의 추락은 이미 시작되었다. 너무도 큰 제국이기에 추락하는데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러나, 이란과의 어리석은 전쟁을 보고 있노라면 미국의 추락이 예상보다 더 빨리 진행될 것 같다. 

  마직막 문장은 자본주의에 관한 문장이다. 


  "자본주의는 개인을 해방시켰다. 자본주의는 인간을 협동적인 조직체로부터 해방시켜 자기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 나갈 수 있게 했던 것이다. " -112쪽(자유로부터의 도피)


  엄마 품에서 아이가 독립하여 어른이 되었듯이, 인간은 자본주의와 돈의 힘으로 협동조직체의 품에서 독립하여 한 개인이 되었다. 그러나 그 자유로운 인간이 더 행복해졌는지에는 의문이 든다. 부모의 간섭과 명절날 친척의 간섭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원룸을 얻어 빨리 독립하지만, 퇴근해서 원룸문을 열고 들어서면 써늘한 냉기가 감돈다. 개인으로서 독립을 원하지만, 한편으로는 부모의 품을 그리워한다. 마을 공동체의 간섭에서 벗어나 도시의 익명성에 살고 싶지만, 도시의 익명성에서 외로움을 느끼며 마을 공동체를 그리워한다. 개인과 공동체 사이에서 우리의 진정한 행복은 어디쯤에 위치해있는 것일까?


  '백년의 질문, 베스트셀러 필사노트'의 마지막장을 덮었다. 이제 '동주필사'를 시작한다. 필사를 하면서 이 글을 쓴 사람의 생각을 따라갔다. 소란스럽고 분주한 아침이지만, 그 속에서 고요한 내면을 찾으려했다. 그 시간을 잊을 수 없기에 새로운 필사를 다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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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몰랐던 러시아 그림 이야기
김희은 지음 / 자유문고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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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사 수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우연찮케 러시아 그림을 접했다. 강렬하게 현실을 직시하는 그림을 보면서 고닮픈 러시아인의 삶이 가슴으로 와닿았다. 현실이 고통스러울지라도 이에 굴하지 않고 힘찬게 앞으로 나아가는 러시아 민중들의 삶에서 고단한 근현대사를 살아온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기도했다. '우리가 몰랐던 러시아 그림 이야기'라는 책에 마음이 이끌린 것도 이때문이다. 

 이 책에 소개된 수많은 명화들 중에서 나의 뇌리에 여전히 강렬하게 남아있는 세작품을 소개하고 싶다.

 첫번째 작품은 "1581년 11월 16일 이반 뇌제와 그의 아들 이반"이라는 일리야 레핀의 작품이다. 광끼에 사로잡혀 자신의 아들과 임신한 며느리를 죽이고 나서야 제정신을 차린 이반뇌제의 모습이 너무도 강령한 비극으로 다가왔다. 러시아를 중앙집권화 시킨 명군으로 기억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의 폭압적인 통치는 왕권을 제약하는 귀족만 제거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가장 소중한 뱃속의 손자와 며느리, 아들을 제거했다. 자신의 소중한 분신들을 잃어버린 순간에서야 이반 뇌제는 제정신을 차렸다. 

  그림이 주는 강렬함은 세계사 속의 러시아의 역사를 설명하기에 너무도 좋은 소재였다. 그러나, 이 그림은 러시아의 성립 초기의 역사만 가르치는데 쓰일 수 있는 명화가 아니었다. 이 그림이 그려질 당시 알렉산드르 2세가 폭탄 테러로 목숨을 잃은 사건이 발생한 후 대대적으로 피의 숙청이 이뤄질 때였다. 그림 속에 널부러진 왕 홀은 당시 예술가의 눈과 귀, 입을 통제하던 검열제도를 상징하고 있다. 이 명화는 러시아 근대사를 설명할 때도 사용할 수 있는 명화였다.

  두번째 그림은 "쿠르스크 지방의 십자가 행렬"이라는 일리야 레핀의 그림이다. 헐벗은 민중들이 축복을 받기 위해서 성물 주변을 따라가고있다. 책찍을 든 자가 귀부인과 이들을 분리시키려고 책찍을 마구 휘두르고 있다. 한 소년은 쩔뚝이면서도 힘차게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를 제지하는 회초리를 든자의 눈초리를 무시하면서 힘차게 나아가고 있다. 

  억압받고 헐벗은 민중은 구원을 원하고 있다. 안락한 귀족들은 민중의 염원에 무관심하다. 같은 러시아인이면서도 민중과 귀족의 삶은 분리되어 있다. 이 그림을 보면,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는 마르크스의 말이 떠오른다. 그들을 구원해주지 않는 신을 민중은 굳게 믿으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귀족과 민중을 연결하는 끈이기도하지만, 그 끈은 끊길수도 있음을 이그림은 암시한다. 민중이 종교에 의지하지 않고, 신의 자리에 인간의 의지를 올려 놓고 현실을 개혁하려한다면, 혁명의 불길이 전러시아를 불태울 수 있음을 그림은 말하고 있다. 

  세번째 그림은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라는 일리야 레핀의 그림이다. 혁명가가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 혁명가를 반기는 자는 찾아보기 힘들다. 단지, 아들만이 밝게 웃으며 아버지를 반기고 있다. 그러나, 딸아이는 아버지를 알아보지 못하고 있다. 경계의 눈초리로 혁명가를 바라보고 있다. 아내조차도 그가 왜 돌아왔는지 다소 놀란듯하다. 성경에 '선지자는 고향에서 환영받지 못한다.'라고 했던가! 혁명가는 가정에서도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 

  가족조차도 혁명의 이념에 감화시키지 못한자가 어찌 민중을 혁명의 대열로 이끌 수 있을까? 혁명이라는 신념을 잃지 않고 모든 것을 조국 러시아를 위해서 바쳤지만, 아무도 그를 반기지 않는다. 오직 자신만이 혁명가의 신념에 경의를 표할 뿐이다. 하얼빈 의거를 일으킨 안중근 의사의 대의를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는 이해했다. 그리서 아들을 위해서 수의를 지어보내며, 항소하지 말고 죽으라고 편지를 보냈다. 안중근 의사는 그의 대의에 공감할 수 있는 가족이 있어 행복했다. 그러나, 일리야 레핀의 그림속 혁명가는 가족에게 조차도 공감을 얻지 못했다. 세계사 수업시간에 이 그림을 보여주며 러시아 혁명가의 삶을 유추해보도록했다. 러시아 그림은 우리에게 러시아 역사를 가슴으로 느끼게 한다.

  가장 나의 가슴을 울린 세점의 그림이 모두 일리야 레핀의 그림이다. 활자로 보여지는 러시아의 역사보다는 강렬한 명화가 보여주는 그림 한장이 우리의 가슴에 많은 울림을 준다. 동토의 땅! 그곳에서 생명을 이어가 러시아인들은 어떠한 시련이 닥쳐도 굴하지 않고 현실과 맞서 싸웠다. 그 치열한 역사를 바라보면서 우리와 많은 닮은 점을 발견하다. 그렇기에 러시아 그림의 매력에 빠져드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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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풀니스 (50만 부 뉴에디션) - 우리가 세상을 오해하는 10가지 이유와 세상이 생각보다 괜찮은 이유
한스 로슬링.올라 로슬링.안나 로슬링 뢴룬드 지음, 이창신 옮김 / 김영사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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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와이 카우아이섬에는 Kauaʻi ʻōʻō (카우아이 오오새)의 목소리가 너무도 아름다웠다고한다. 카우아이 오오새가 멸종위기에 몰리면서 암컷이 사라졌다. 홀로 남은 수컷 카우아이 오오새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암컷을 부르며 아름다운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생을 마감했다. '팩트풀니스'의 대표저자 한스 로슬링은 카우아이섬의 카우아이 오오새와 같은 존재이다. 세계 보건 교수로서 지구상에 의료 취약자들을 위해서 자신의 젊음을 불살랐다. 그러나, 눈앞의 한명의 생명을 살리는 것보다 자신의 눈앞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생명을 살리는 것이 더 중요함을 그는 깨달았다. 그래서 통계학을 이용해서, 의학과 농업, 가난, 경제 발전, 건강의 상관관계를 연구했다. 그는 암 판정을 받았다. 얼마남지 않은 자신의 남은 생의 에너지를 남겨진 인류를 위해서 '팩트플니스'를 집필하는데 쏟았다.


    한스 로슬링은 우리가 진실을 보지 못하는 이유를 10가지 본능으로 설명한다. 간극 본능, 부정 본능, 직선 본능, 공포 본능, 크기 본능, 일반화 본능, 운명 본능, 단일 관점 본능, 비난 본능, 다급함 본능이 바로 그것이다. 이들 본능은 나에게 많은 깨달음을 주었다. 이글을 읽는 모두가 이 본능에 대해서 안다면 보다 진실을 볼 수 있는 눈이 밝아질 것이다. 

  가장 먼저 나에게 깨달음을 준 것은 '간극본능'이다. 잘사는 사람과 못사는 사람 사이에는 수많은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그들의 존재를 무시한채 이분법적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우리 일상생활에서도 외모를 평가할 때, 예쁘다와 못생겼다는 두단어를 주로 사용한다. 사실 우리 주변에는 예쁜 사람과 못생긴 사람보다는 평범한 대다수의 사람이 앞도적으로 많은데도 말이다. 예쁘지 않다는 말이 못생겼다는 말과 같은말이 아닌데도, 우리는 예쁘지 않다는 말을 못생겼다는 말로 이해한다. 예쁘지 않은 존재는 평범할 수도 있는데 말이다. 

  두번째 부정본능도 나에게 많은 깨달음을 주었다. 세상을 비판적으로 혹은 부정적으로 보아야 지적인 사람으로 보인다. 역사학을 배우면서 비판적 사고력을 키우려 무척이나 노력했다. 그래서일까? 사료를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나아가서 우리 현실을 비판적으로 말하는 모습이 매우 지적으로 보였다. 

  이러한 모습은 매일매일의 뉴스에서도 볼 수 있다. 가슴이 따뜻해지는 소식보다는 커다란 사고나, 재앙, 부정 부패를 고발하는 뉴스가 사람들의 주목을 끈다. 대학교생 시절, 동양중세사 수업시간에 교수님이 '신문기사만 보면 한국 사회는 망하기 일보직전으로 보인다. 뉴스로 우리 현실을 100%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커다란 오산이다. 사료를 볼때, 그 사료만으로 역사를 다 알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고 말씀하셨다. 그렇다, 대한민국 뉴스가 대한민국의 모습을 온전히 보여줄 수 없다. 그 속에는 뉴스에 나올 수 없는 너무도 조용하고 평범한 일상이 있다.  뉴스에 나오지 않는 우리의 일상이 우리삶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을 우리는 명심해야한다. 그래서 한스 로슬링은 이렇게 말한다. 


  "나쁜 뉴스가 많이 나오는 이유는 세상이 나빠져서가 아니라, 고통을 감시하는 능력이 좋아졌기 때문일 수 있다."(117쪽)


  세번째 본능은 직선본능과 운명 본능이다. 한스 로슬링은 '직선이라 단정하지 마라'라고 조언한다. 이 추세가 그래프상에 직선으로 계속될 것이라는 추측은 너무도 단순한 생각이다. 세상에는 다양한 곡선이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너무도 쉽게 이 추세가 계속될 것이라는 직선본능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20여년전, 대학교 친구와 술을 마시면서 중국의 가능성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었다. 친구는 중국에 다녀왔고 나는 중국을 책으로만 알았다. 친구는 확신에 차서 말했다. 중국이 우리를 따라오기에는 아직 멀었다. 화장실에 가면 상반신이 다 보이며, 낙후한 중국 구석구석의 일화를 쏟아냈다. 반면 나는 중국의 가능성에 대해서 말했다. 중국이 우리를 추월하고 미국과 패권경쟁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친구는 한심하다는 듯이 '너도 중국에 갔다와야해'라는 말을 연거푸했다. 친구는 중국의 현재를 말했고, 나는 중국의 미래 가능성을 말했다. 현재만 보는 친구를 설득시킬 수는 없었다. 20여년이 지난 현재, 중국은 우리를 추월했고, 미국과 패권경쟁을 하고 있다. 나의 예상이 맞아 떨어졌다. 현재의 상태가 직선으로 계속될 것이라는 직선본능을 가진 그 친구는 그때 나와 한말을 기억할까? 역사의 상수는 변화와 적응인데, 친구는 이를 배우지 못했다. 

  맬더스의 인구론도 직선본능을 극복하지 못한 이론이다.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데,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한다. 빈민가 사람들에게 소독을 하고 먹을 것을 주는 것은 인구문제를 악화시켜 종국에는 인류의 파멸을 일으킬 것이라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이에 대해서 한스 로슬링은 이렇게 말한다. 


  "아이들의 생존율이 높아지면 아이들을 노동에 동원할 필요가 없어지면, 여성이 교육받고 정보를 얻어 피임할 수 있으면, 문화와 종교에 상관없이 남성과 여성 모두 자녀를 적게 낳아 제대로 교육할 꿈을 꾸기 시작한다."(140쪽)


  직선본능은 운명본능과 접점이 있다.  저개발국은 항상 저개발에 머물고, 못사는 사람들은 항상 많은 아이를 낳으려하며,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들은 자녀를 많이 낳을 것이라는 운명적 본능과 직선적 본능을 한스 로슬링은 한번에 깨주었다. 맬더스는 생활 수준이 높아지고, 여성이 교육을 받고 직장을 갖게 된다면 자연히 출산율은 낮아질 것이라는 사실을 몰랐다. 문화도 변하며, 종교도 그 변화를 가로막지 못한다. 매일의 조그만 변화가 쌓이면 엄청난 변화를 이뤄낼 수 있다. 단순한 직선적 사고로 인구위기를 예견했고, 운명론적으로 자신의 이론을 포장했다. 자신이 설정한 비극을 막기 위해서 극단적인 대책을 제시했다. 한스 로슬링은 맬더스론자들에게 멋진 한방을 날렸다. 직선본능에서, 운명본능에서 탈피하라고....

  네번째 본능은 일반화 본능이다. 한스 로슬링은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이 책에서 솔직히 털어 놓았다. 아기 돌연사를 막기 위해서 아기를 엎드려 자게 무수히 노력했던 그가, 사실은 아기 돌연사를 높이는 행동이었다. 6.25 전쟁 시기, 의식을 잃은 병사를 엎드려 있도록했더니 똑바로 누운 군인보다 살 확률이 높아졌다. 이를 성급하게 일반화하여 아기에게 적용했다. 아기의 돌연사가 줄기는 커녕 오히려 높아지는데도 많은 의사들은 아기를 엎드려 자도록하는 것이 돌연사를 줄인다고 믿었다. 너무 많은 댓가를 치루고 나서야 아기 돌연사를 막기 위해서는 똑바로 뉘워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우리도 그러하지 않은가? 내가 아는 지식으로, 선의로 한 일이 치명적인 잘못으로 드러날 수 있음을 우리는 겸손하게 받아들여야한다. 비슷한 경험을 나도했다. 어머니를 모시고 치과에 갔다. 의사 선생님이 치주염이 심하다는 말을 하자. 어머니는 "그래, 그래서 무릎이 아팠어."라고 말했다. 순간 헛웃음이 나왔다. 치주염과 무릎이 아픈 것이 무슨 관련이 있단 말인가? 그런데, 의사선생님이 의외의 말을 하셨다. "관련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의학저널에 치주염이 핏속을 떠돌다가 신경통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실렸습니다."라고 말했다. 나이드신 분들은 너무도 최신 의학과 거리먼 분이기에 과학적이지 않은 말들을 잘한다는 과잉 일반화가 나의 어리석음을 심화시켰다. 내가 틀릴 수도 있음을 우리는 인정해야한다. 우리도 틀릴 수 있다. 

  다섯번째 단일관점 본능이다. 망치를 든자는 모든 것이 못으로 보인다. 우리는 단순한 생각과 단순한 해결책을 조심해야한다. 대학시절, 하나의 키워드로, 하나의 관점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는 지식인이 멋있어 보였다. 80년대 학번은 사회과학서적을 읽으며, 마르크스적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았고, 90년대 신자유주의가 세상을 휩쓸면서 신자유주의적 관점에서 우리 삶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지금은 능력본위, 승자독식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이 젊은 층에서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역사를 살펴보면, 하나의 이념이 세계를 뒤흔들었고, 그 이념이 수많은 사람을 전쟁의 구렁텅이로 몰아 넣었던 적이 있다. 이념 때문에 우리는 같은 민족이 서로의 가슴에 총뿌리를 겨누지 않았던가! 명쾌하게 하나의 이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역사를 통해서 이제는 깨달아야하는데도 우리는 단일 관점 본능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지적인 사람은 애매한 것을 견디는 자라는 말이 있다. 양도일단의 명쾌한 설명보다는 다소 복잡하지만, 다소 명쾌하지 않지만 시간을 갖고 숙고하며 신중히 세상을 바라보아야한다. 

   한스 로슬링의 모든 견해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한스 로슬링은 공포본능을 말하면서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를 예로 든다. 방사능 때문에 사망했다는 보고는 없다. 그런데,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탈출 과정에서 1600명이 사망했다. 이들을 죽음으로 내몬 것은 방사능이 아니라 방사능 공포였다고 그는 강조한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한스 로슬링의 주장에 강한 반발을 할 수 밖에 없었다. 한스 로슬링은 핵발전소 사고로 인해서 남한 크기 정도의 일본 국토가 고농도 오염지역이 되었으며, 제염작업에 엄청난 비용이 들고, 장기적으로 암발생율이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있다. 더욱이, 초음파 기술의 발달로 기형아를 태아 상태에서 발견해서 낙태시키는 현실을 말하고 있지 않고 있다. 방사능과 죽음 사이의 직접적인 관계를 증명하기는 힘들다. 일본정부가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피해를 덮기 위해서 언론의 자유도 억압하는 상태에서 이를 과학적으로 연구할 수도없다. 이러한 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일부 사실만을 떼어다가 자신의 유리한 주장을 전개하고 있다. 한스 로스링도 100퍼센트 '팩트풀니스(Fact Fullness)'하지는 않다. 그도 인간이니까...


  총 10개의 본능을 살피면서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 이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지식은 끊임없이 신선하게 유지해야한다'라고 말할 수 있다. 식품에도 유통기한이 있듯이, 지식에도 유통기한이 있다. 그리고 시간이 갈 수록 지식의 유통기한을 더욱 짧아지고 있다. 세상을 밝게 보기 위해서는 나의 지식을 신선하게 유지해야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 

  한스 로슬링은 이 책의 원고 검토를 마치고 생을 마감했다. 그의 아들과 며느리가 책을 마무리했다. 이미 존재하지 않는 암컷을 부르다 쓰러진 카우아이 오오새는 아름다운 새소리만 남기고 사라졌다. 한스 로슬링은 인류를 위해서 '팩트플니스'라는 아름다운 책을 남겼다. 카우아이 오오새는 존재하지 않는 암컷을 위해서 울었지만, 한스 로슬링은 앞으로도 계속 존재해야하는 인류를 위해서 이책을 남겼다. '팩트 플니스'가 슬픈 카우아이 오오새의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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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인생 여행지 - 킴스트래블 국내 여행 산문집
킴스트래블 지음 / 용감한까치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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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혼여행을 이탈리아로 갔다가 어머니를 뵈러 시골길을 주행했다. 예전에 느끼지 못했던 아름다운 녹음이 나의 가슴속에 밀려왔다. 로마, 피렌체, 베네치아를 여행하며 아름다운 예술품과 자연 경관을 마음껏 즐겼던 내가, 조국 산천의 아름다움에 깊은 감동을 했다. 너무도 익숙하기에 그 아름다움을 알지못했다. 타국의 아름다움을 보고서야 내 땅의 아름다움에 눈을 떳다.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인생 여행지'를 손에서 떼어 놓을 수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책에 소개된 수많은 여행지 중에서 깊은 인상을 준 것은 내가 살고 있는 대전 주변에 이토록 아름다운 곳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대청호 오백리길'을 저자는 '물 위를 걷는 아름다운 산책'이라 말했다. 자동차로 가족과 함께 대청호 주변의 맛집을 찾아다니며 간단히 산책만 했던 곳이었다. 아름다운 사진 속 장면은 너무도 친근한 내 주변이 이토록 아름다운 산책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해주었다. 친근한 아름다움도 내 마음속에 담기지 않는다면 그 아름다움을 알 수 없다. 로마에서 돌아오고서야 내 고향 산천을 낯설게 보았다. 그 낯섦이 고향 산천의 아름다움이 내 마음속에 다가 올 수 있게 해주었다. 저자 킴스트래블의 사진은 대청호 산책길을 낯설게 해주었고, 그 아름다움이 나의 가슴속에 들어올 수 있게 해주었다. 

  비경을 보기 위해서 최소한의 비용이 필요하다. 열정과 시간이 그 비용이다. 노고단, 세량지, 담양 메타세쿼이야, 옥정호 ...... 많은 절경을 보려면 공통적으로 새벽녘에 출발하여 동틀무렵 그곳에 도착해야한다. 안개낀 시기! 아직 자신의 모습을 모두 드러내지 않은 그 시기에 절대 비경을 볼 수 있다.

  세량지의 아름다운 풍광은 오전 6시에, 노고단의 아름다움은 오전 5시에 찍혔다. 자연은 경이로운 자신의 모습을 함부로 보여주지 않는다. 자연은 '나의 아름다움을 보고 싶다면 그만한 댓가를 치루라'말한다. 너무도 쉽게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자본주의 시대에, 우리 산천은 이를 거부한다. 아름다움을 보려면 너의 열정과 시간을 자연에 바치라한다. 그러기에 우리 산천이 더욱 아름다워 보이는지도 모른다. 

  가족과 겨울에 종종 들렀던 대둔산을 저자는 '호남의 금강에서 만나는 설경의 극치'라고 설명했다. 킴스트래블의 이 설명을 읽자, 대둔산이 다시보였다. 너무도 가까이에 있기에 이정도 아름다움이라 생각하지 못했다. 선지자는 고향에서 환영받지 못한다고 했던가! 비단 선지자만이 아니다. 가까이에 있는 산천도 너무 친근하기에 그 아름다움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다.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인생 여행지'는 너무도 익숙하기에 그 아름다움을 몰라보았던 나의 눈을 띄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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