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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얻는 지혜
발타자르 그라시안 지음, 임정재 옮김 / 타커스(끌레마)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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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얻는 지혜'는 무엇일까? 좋은 인간관계를 위한 지혜를 얻고 싶은 마음에 책을 꺼내들었다. 발타자르 그라시안은 스페인을 대표하는 철학자이자, 예수회 신부란다. 1601년 태어난 그의 저서가 400여년이 지난 지금에도 많은 사람들에게서 읽히고 있다고하니, 한번 읽어 볼만한 책이라는 생각이든다. 그럼, 한번 책을 살펴보자.

 

 

1. 유가보다는 도가에 가까운 발타자르 그라시안

 

'사람을 얻는 지혜'를 읽다보면 유가와 도가를 비롯해서 동양의 사상가들이 전했던 인생의 지혜와 흡사한 것들이 많았다. 동양과 서양의 지혜가 서로 맞닿아 있다는 사실이 무척 흥미롭기도했다. 그러면서도 발타자르 그라시안은 동양의 어느 사상에 가장 가까운 생각을 하고 있을까?라는 궁금증이 생겼다.

만약 당신에게 악의를 가진 사람이 있다고 하자.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발타자르 그라시안은 "악의를 가진 사람에게 오히려 호의를 베풀어 감사의 마음을 갖게 하라!'(17)고 말한다. 당신은 나에게 악의를 가진 사람에게 호의를 베풀 것인가? 동양의 철학자 공자와 노자가 이에 대해서 서로 다른 의견을 제시했다.

우선, 노자의 말을 살펴보자. 도덕경63恩始章(은시장)하는 것이 없음을 실천하고, 일이 없음을 일삼으며, 맛이 없음을 맛보고, 작은 것을 크게 여기며 많은 것은 적게 여기니, 원수를 덕으로 갚는다(爲無爲 事無事 味無味 大小多少 報怨以德)라고 하였다. '원수를 덕으로 갚는다.'는 보원이덕(報怨以德)이라는 말이 놀랍도록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말과 일치한다.

반면, 공자는 논어헌문편에서 어떤 사람이 "은덕으로 원수에 보답하는 것은 어떻습니까?"라고 묻자, 공자는 "그렇게 한다면 무엇으로 은덕에 보답하겠느냐? 정직함(곧음)으로 원수에 보답하고 은덕으로 은덕에 보답하는 것이다." (或曰: "以德報怨, 何如?" 子曰: "何以報德? 以直報怨, 以德報德.")라고 말하였다. 나는 공자의 말이 더 가슴에 와 닿는다. 싸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에게 호의를 베품면, 그들은 오히려 그 사람을 이용한다. '어금니 아빠' 사건과 '가평 계곡 살인 사건'의 경우 타인의 동정과 호의를 범죄에 이용한 대표적 사건이다.

이밖에도 도덕경에서 보았던 글귀와 유사한 문장이 이 책의 곳곳에서 발견된다. "양보는 뜻을 이루는 최고의 위장술이다.(22)""먼저 베풀고 보상은 나중에 받아라."(27)의 표현도 도덕경의 표현과 유사하다. 도덕경74장에 "남들로부터 존경 받으려거든 먼저 그들을 존중하라"는 문장이 있다. 물건을 움켜쥐려면 먼저 손을 펴야한다. 상대를 쓰러뜨리려면 먼저 상대를 일으켜세워야한다. 상대에게 얻으려면 먼저 상대에게 베풀어야한다. 노자와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생각은 놀랍도록 맞닿아있다. "나중에 베풀면 대가가 되지만 먼저 베풀면 호의가 된다."라는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지혜는 약한듯 보이지만, 강함을 숨기고 있는 노자 철학을 보는듯하다.

오랫 동안 예수회 신부로 활동한 발타자르 그라시안이기에 현실에서 한걸음 물러나서 세상을 바라본 지혜가 노자의 철학과 통한 비결이 아닐까?

 

2. 한비자의 지혜를 품은 발타자르 그라시안

도덕경에 대해서 최초로 주석을 달았던 사람이 바로 한비자이다. 그래서인지,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말은 한비자의 말과 유사한 점이 있다.

"속마음을 쉽게 드러내지 마라."(20)는 표현도 한비자가 군주가 신하를 대할 때 지켜야할 유의사항 중 하나로 제시했다. 군주는 신하에게 자신의 마음을 보이지 말아야한다. 신하가 군주의 마음을 알게 되면 이를 이용하여 아첨하며 군주를 이용할 수 있다. 그러하기에 군주는 신하에게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지 말고, 신하의 말을 경청하며 그들의 지혜를 이용해야한다. 발타자르 그라시안도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의 지식과 용기를 절대 전부 드러내지 않는다."(51)고 말했다. 그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해 할 때, 타인은 우리를 더욱 존경하게 한다. 한비자가 군주에게 했던 당부를 발타자르 그라시안은 우리에게 하고 있다.

발타자르 그라시안은 이러한 말도했다. "지혜로운 사람은 진실의 날카로움은 유지하되 부드럽게 전달함으로써 상대방이 거부감없이 받아들일 수 있게 한다."(128) 타인에게 직언을 하기가 얼마나 힘든가! 한비자는 '세난편'에서 진실로 군주에게 간하기가 어려운 현실을 토로했다. 한비자도 진시황제와 대화를 나눈 이후에 죽음을 당하지 않았던가! 군주에게 말을 한다는 것은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나누는 모험이다. 그러하기에 한비자에는 군주에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가 서술되어 있고, 지혜롭게 자신의 의견을 군주에게 제시한 사례가 적혀있다. 발타자르 그라시안이 "날카로움은 유지하되 부드럽게 전달"하라는 대화의 기술을 한비자도 공감하고 있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원칙을 아는 것과 이를 행하는 것은 다른 차원인가보다. 자동차의 운행원리를 아는 것과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이 맞닿아있으면서도 같은 것은 아니듯이 말이다.

당신이 옳다.라는 책에서는 상대를 설득시킬때, 상대방의 말을 들으며 공감을 한 후에 자신의 말을 하라한다. 이것이 '날카로움'을 유지하면서 '부드럽게' 자신의 의견을 전달하는 지혜가 아닐까?

 

3. 발타자르 그라시안! 동의할 수 없어요.

'신독'이라는 표현이 있다. 중학교 도덕시간에 혼자 방안에 있으면서도 사거리에 있는 것 처럼 조심히 행동하라는 교과서 내용을 배웠다. 마치 살얼음을 걷듯이 조심조심 살아가라는 '신독'을 당연시 배웠는데, 국어선생님은 그렇게 살면 정신병에 걸린다고 말씀하셨다. 발타자르 그라시안도 비슷한 말을 했다. "혼자 있을 때에도 몸가짐을 조심하라."(65) 는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표현을 읽으며, 이렇게까지 살아야할까?라는 생각을 했다. 중학교 시절, 국어선생님의 표현대로 이렇게 살면 정신병에 걸리지 않을까 걱정이된다. 이렇게 동의할 수 없는 내용의 주장을 발타자르 그라시안이 하는 경우도 많았다.

"문제의 본질을 파악해라"(152), "언제나 최선의 결정을 내려라(192)"는 표현은 좋은 표현이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문제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는지, 최선의 결정을 내리는 비결은 무엇인지가 제시되어 있지 않다. 누구인들 본질를 파악하고 싶지 않을까? 누구인들 최선의 결정을 내리려하지 않을까? 자신의 삶에서 최선을 다하고자 하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의 마음이다. 발타자르 그라시안은 누구나 원하는 목표를 제시했지만, 그 목표에 이르는 방법을 제시하지 않았다. 그러하기에 공허한 메아리로 들린다.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표현중에는 절대 동의할 수 없는 표현도 있다. "운의 흐름을 읽어라"(161)는 표현은 요행수를 추구하는 듯한 표현이라 거부감이 들었다. 그래도 이 표현은 거부감이 덜했다. 그러나, "지는 해가 될 때까지 기다리지마라"라는 명제를 제시한 다음, "미인은 늙어서 추해진 자신의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적절한 시기에 거울을 깨뜨린다."라는 설명을 한 것은 너무도 황당했다. 발타자르 그라시안은 나이듦이 곧 추해지는 것이라는 관념을 갖고 있는 것일까? 거울을 깨뜨리면 더 이상 '추함'은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철학자 강신주의 말이 생각난다. 그는 대중강연에서 '나이듦은 익어가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나이듦을 거부하고 주름살을 추함으로 인식하지 않고, 인생의 지혜가 익어감으로 파악한 강신주와 나이듦을 추함으로 인식하고 이를 거부하려 거울을 깨뜨리는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어리석음이 너무도 대비를 이룬다. 우리는 곱게 나이드는 지혜를 얻어야한다. 인생의 무상함을 거부하며 영생을 누리려하다가 오히려 일찍 죽음을 맞이한 시황제를 보면서 우리는 인생의 지혜를 얻어야할 것이다.

이밖에도 "백번 성공하는 것보다 한번도 실패하지 않는 것이 더 낫다."(138), " 실패의 책임을 다른 이에게 넘기는 것도 능력이다."(230)는 표현도 절대 공감할 수 없다. 실패가 없이 어찌 성공하길 바라겠는가! 아이가 넘어지지 않고 걸어다닐 수 있는가! 실패의 책임을 타인에게 떠넘기는 비열함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싶지 않다. 탁월한 철학자의 말이라도 버려야할 것과 취해야할 것이 있다.

 

4.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눈으로 현실을 바라보다.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말 중에는 우리의 현실을 바라보는 지혜가 담긴말도 많다. 이를 살펴보자.

첫째, "신을 신성한 존재로 만드는 사람은 신상을 장식하는 사람이 아니라, 신상을 숭배하는 사람이다."(15)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말이 옳다면, 인간에 대한 권위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그에게 권위가 있는 것을 그를 존중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우리의 대표로 인정할 수 없는 존재에게 풍자를 던진다면 그는 더 이상 우리에게 권위를 가질 수없다. 그가 그 자리에 있을 만한 존재가 아니라면, 우리는 더 이상 그를 존중하며 그의 권위를 존중할 필요가 없다.

둘째, "원칙을 지키는 사람과 어울려라"(110) 한국에서는 원칙을 지키는 사람을 융통성이 없다고 비난한다. 가장 부패한 후보가 당선되는 초유의 사태도 종종 일어 난다. 우리 사회의 탐욕이 얼마나 흘러넘치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결과에 많은 사람들이 망연자실한다. 이러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원칙을 지키는 사람과 어울"리는 것이다. "그들은 언제나 자신의 인격대로 행동하기 때문"에 그들과 어울려야한다. 근묵자흑이라했던가! 세상이 혼탁할 수록 원칙을 지키는 사람과 가까이 지내자!

셋째, "사악한 고집쟁이는 피하는 것이 최선이다."(130) 사악한자가 더 권세를 누리고, 세상이 사악한자에 빌붙어 탐욕을 채우려하고 있다. 겉으로는 고고한척하면서도 탐욕스러운 사람에게 투표하며 자신의 탐욕을 대리충족시키고 있다. 사악한 고집쟁이에게 진실을 말하려했던 적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탐욕을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탐욕을 정당화하며 당당히 외치기까지 했다. 이제는 사악한 고집쟁이를 피하고 싶다.

넷째, "부당한 상황에서도 화를 낼줄 모르면 무능한 사람이되고 만다."(208) 불의를 보고도 분노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많다. 좋은 것이 좋은 것이라며 조금만 참으면 편한데 왜? 오지랖 넓게 나서냐고 말한다. 정의로운 사람이 오지랖이 넓은 사람이라고 비난을 받는 현실을 바라보며 탄식이 나온다. 우리가 부당함을 당하면서도 이를 참고 편히 살아갈 수록, 그들은 우리를 개, 돼지로 취급한다. 참는 것이 미덕이 아니다. 때로는 진정한 분노가 덕()이다.

 

 

책은 거울이다. 자신의 고민을 가지고 책을 읽으며, 책속에 고민이 떠오르고 해답도 떠오른다. 요즘처럼 답답한 시기가 또 있을까? "자기 혼자만 정상적인 사람이 되기보다는 온 세상 사람들과 함께 미치는 것이 낫다."(112)는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의견에 동의할 수 없기 때문에 나는 안되는 줄 알면서도 되게하려 노력하는 공자처럼 오늘을 바꾸려 노력한다. 그럼에도 바뀌지 않는 현실의 벽을 바라보며 답답한 마음을 끌어 안고 오늘도 하루를 살아가야하는 우리 소시민이기에 한권의 책에서 큰 위안을 얻는다. 책속에서 우리의 답답함을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엄청난 해결책을 찾을 수는 없다. 그러나, 책속에서는 우리의 답답함에 한줄기 위안은 발견할 수 있다. 긴한숨을 쉬며 오늘도 새로운 한페이지를 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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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2-05-07 17: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강나루 2022-05-07 21:34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행복한 연휴 보내세요.

이하라 2022-05-07 18: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강나루님 이달의 당선 축하드려요~^^

강나루 2022-05-07 21:35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즐거운 연휴 보내세요.

thkang1001 2022-05-07 19: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강나루님! 이달의 당선작 선정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행복한 주말과 휴일 되시길 기원합니다!

강나루 2022-05-07 21:35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즐거운 연휴 보내세요.

러블리땡 2022-05-08 09: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강나루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

강나루 2022-05-08 18:33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편안한밤 보내세요^^

겨울호랑이 2022-05-08 21: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강나루님의 리뷰를 읽으며, 발타자르 그라시안에게서 마키아벨리적인 성향도 느끼게 됩니다. 한비자와 마키아벨리가 여러모로 비교되기에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개인적으로 예수회 신부출신인 그라시안에게서 바티칸의 금서로까지 여겨지는 마키아벨리의 면모가 느껴지는 것이 자못 흥미롭습니다. 강나루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

강나루 2022-05-10 05:00   좋아요 2 | URL
그렇네요
동양철학자와 비교하려 했는데 마키아벨리와 비교하니 비슷한점이 많네요

scott 2022-05-09 16: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강나루님 이달의 당선 축하합니다!
오월 행복한 일만 가득 ^ㅅ^

강나루 2022-05-10 04:59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thkang1001 2022-05-10 09: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강나루님! 이달의 당선작 선정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강나루 2022-05-10 10:19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나무야 나무야 - 국토와 역사의 뒤안에서 띄우는 엽서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199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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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으로부터 사색을 비롯해서, 신영복 선생이 쓰신 강의와 담론을 읽었다. 깊은 사색과 철학적 사유가 그리워 다시 신영복 선생의 '나무야 나무야'를 펼쳐 들었다. 얇고 그림도 많아서 부담 없이 펼쳐 읽어 내려갔다. 그런데, 전공이 역사고, 하는 일이 역사를 기르치는 일이라서 신영복 선생의 글에 집중할 수 없었다. 역사적 사실과 어긋나는 일을 지나칠 수 없는 직업병이 도진 것이다. 영화를 보면서도 역사적 사실에 어긋나거나, 소품이 시대와 맞지 않으면 그것이 거슬려서 영화에 집중하지 못하는 나를 발견한다. 이러한 모습은 책을 읽으면서도 마찬가지였다.

 

전문 역사가가 아닌 신영복 선생의 글 속에서 역사적 사실과 어긋난 설명을 찾아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으랴마는 직업이 직업인지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피라미드의 건설이 정치가 아니라, 피라미드의 해체가 정치라는 당신의 글귀"라는 문장이다. 많은 치적을 쌓기 위해서 무수한 인명을 해치고 백성을 괴롭혀서는 안된다는 의미에서 신영복 선생은 이러한 말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피라미드의 건설이 정치일 수 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피라미드를 신영복 선생은 노예가 건설했다고 믿는다. 지금도 수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믿고 있다. 그러나, 피라미드는 이집트의 농민들이 농한기를 이용해서 건설했다. 건설의 댓가로 빵과 맥주를 받았다. 농민들로서는 농한기에 일자리와 먹을 것을 얻은 셈이다. 일종의 뉴딜정책이라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피라미드의 건설은 정치일 수 있다. '억강부약(抑强扶弱)'이 정치라면, 농민들에게 일자리와 먹을 것을 주는 피라미드 건설은 좋은 정치이다. 피라미드 건설이 정치이기에 이집트 문명이 그렇게 장구한 세월 동안 존속할 수 있었다.

둘째, "'동의보감'의 찬술 자체가 허준의 기획이었고, 허준의 집필"이라는 문장이 나의 마음에 거슬렀다. 홀로 서는 나무는 없다. 나무가 더불어 숲을 이룰 때 나무는 나무로서의 행복을 누릴 수 있다. 허준이라는 나무도 마찬가지이다. '동의보감'이 나올 수 있었던 이유는 임진왜란이라는 전란 속에서 백성이 이용할 수 있는 편리한 의서가 필요했다는 시대적 필요성에 동의한 수 많은 사람들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허준과 같은 수 많은 나무들이 '동의보감' 저술에 참여했다. 소설 '동의보감'에서 허준을 괴롭혔던 양혜수도 그중 한사람이다. 내의원 의원들이 참여하다가 허준이 이를 유배지에서 완성한다. '동의보감' 저술을 허락한 선조와 완성된 '동의보감'을 출판할 수 있도록 명한 광해군도 그러한 나무 중에 하나이다.

신영복 선생은 허준을 가르쳐준 스승이 유의태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는 역사적 사실에 어긋나는 설명이다. 물론, 허준이라는 나무가 홀로 태어날 수 없기에 유의태와 같은 스승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허준의 스승이 유의태는 아니다. 유의태는 허준이 태어난지 200년 이후의 인물이다. 시신을 해부했다는 설화도 허준 덕분에 의술의 혜택을 받게 된 민중들이 그 고마움을 갚기 위해서 만들어낸 이야기일 뿐이다. 잡과라는 과거시험을 통해서 내의원에 들어간 것이 아니라, 추천에 의해서 내의원에 들어간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소설은 소설일뿐 역사일 수 없다.

셋째, "하곡이 정작 자르고 왔던 것은 당시 만연했던 이기론에 관한 공소한 논쟁"이라는 표현이다. 하곡 정재두가 강화도로 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이기론 논쟁이 싫어서일까? 물론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하곡 정재두가 겉으로는 성리학자인 것 처럼 살았지만, 병이 들어 죽음이 가까이 왔음을 직감하자, 자신이 양명학자임을 밝혔다. 일종에 커밍아웃을 한 것이다. 그런데, 마음의 부담을 벗었기 때문일까? 하곡 정재두는 죽지 않고 병석에서 일어섰다. 그러나 어쩌랴, 자신이 양명학자임을 밝혔으니, 주위의 성리학자들에게 배척을 당할 수 밖에....윤휴가 사문난적으로 몰려 죽음을 당했던 역사적 사실을 상기해본다면, 양명학자임을 스스로 밝힌 그는 옥사에 휘말려 죽을 수도 있다. 그래서 그는 강화도로 찾아들었다. 신영복 선생의 표현이 진실일 수도 있으나, 나의 얇팍한 지식이 공감을 느끼지 못하도록 한다. 아는 것이 병이란다.

넷째, "황소가 당나라의 학정에 견디지 못하여 궐기한 농민장수인 한"이라는 문장이 눈에 거슬린다. 황소는 학정에 견디지 못해서 궐기한 농민 장수가 아니다. 그는 과거시험을 준비하다가 낙방하고는 반정부세력이된다. 이후, 소금 밀매업으로 큰 돈을 벌었던 황소는 소금 밀매업자는 사형에 처하는 엄격한 당나라의 형벌에 불만을 갖게 된다. 소금밀매업자 왕선지가 난을 일으키자 그도 난을 일으킨다. 민란이 일어나면 무조건 농민이 일으켰다고 생각하는 것도 역사를 제대로 살펴보지 않고 상상으로 학습하는 자의 어리석음이다. 민란의 참여자 대다수가 농민일지라도 제대로 된 공부를 하지 않은 일자무식의 농민이 민란의 주도자가 될 수는 없다. 조직을 이끌려면 이론과 실제 두가지를 감당할 수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 황소는 과거시험을 준비했을 정도로 머리에 학식이 있었으며, 소금밀매업을 통해서 조직을 움직여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다. 그러했기에 당나라의 수도 장안을 점령할 수 있었다. 실사구시라는 말을 자주한다. 실제 역사가 그러한지 찾아본 이후에, 올바름을 탐구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을 읽으면서 얻은 것이 없는 것은 아니다. 좌석을 구하려 분주히 버스를 헤매던 40대 여성이 드디어 자리를 차지했으나, 자리를 차지한 그때야 비로소 목적지를 지나쳤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일화를 읽으며, ‘우리 삶도 이러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성공을 위해서 앞만 보고 달리다가, 인생에서 진정으로 소중한 그 무엇을 놓치고 말았음을 뒤늦게 깨닫는 우리의 삶과 닮았다. 내일을 위해 살고 있는 우리에게 나는 오늘의 소중함을 잃지 말자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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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의 시간 - 아픔과 진실 말하지 못한 생각
조국 지음 / 한길사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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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에서는 금기가 있다. 예전에는 색깔론에 대해서 맞서는 것 자체가 금기였다. 색깔론이 힘을 발휘할 수 없는 시대가 되자, 페미니즘에 반대하는 시각이 금기가 되었다. 고 박원순 시장의 죽음을 둘러싸고 박원순 시장을 옹호하는 발언 자체자 금기가 되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금기가 생겨났다. 조국을 옹호하는 발언 자체가 금기가 되었다. 조국 사태가 발생했을 때, 나도 숨죽였다. 이 사회의 금기를 깰 용기가 없었다. 단지 조국 교숙가 쓴 '조국의 시간'을 구입하며 '나는 조국을 지지한다.'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조국 가족을 멸문지화의 위기로 몰아 넣은자가 야권의 강력한 대권후보가 되었다. 그의 민낯을 드러내는 연속된 실언과 망언이 계속되면서 다시 조국을 떠올렸다. 이제 '조국의 시간'을 읽을 용기가 생겨났다. 조국이 하고 싶었던 말! 내가 그에게서 듣고 싶었던 말! 우리 모두가 가슴속에 새겨 들어야하는 말들을 이제 읽어보자.


검찰개혁은 고 노무현 대통령의 꿈이었다. 정치 보복의 칼날 앞에서 쓰러져야만 했던 바보 노무현을 떠나 보내면서 많은 사람들이 분노했다. 그중에 나도 있었다. 많은 시민들이 그의 운구행렬을 바라보며, 투표로 복수하자고 외쳤다. 그러나 박근혜가 정권을 재창출하면서 투표로 복수하자는 외침은 이뤄지지 않았다. 촛불혁명으로 문재인 정권이 탄생하면서 비로서 정의를 바로 세울 수 있게 되었다. 적폐를 청산하기 위해서 박영수 특권은 칼날을 휘둘렀다. 정의가 바로 선다고 많은 사람들이 믿었다. 박영수 특검에서 활약하던 윤석렬이 검찰총장이 되면서 정의로운 세상이 될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그것은 가시밭길의 시작이었다. 그 가시밭길을 조국일가는 온 몸으로 걸어야했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습니다. 단지 조직에 충성할 뿐입니다.'라는 윤석렬의 명언을 우리는 기억한다. 여기서 조직이 검찰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미처 깨닫지 못했다. 보수 정치인에 대해서는 사정의 칼날을 감추고, 조국을 비롯한 진보진영에게는 '인디언 기우제'식의 수사가 이뤄졌다. 그 가시밭길 속에서 수구 언론이 나팔수 역할을 했다. 언론의 무차별적 조국 비난보도에 많은 사람들이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S대를 비롯한 서울지역 대학생들이 조국을 비난하는 시위에 참석했다. 그들의 논리는 '공정'이었다. 진보지식인이 사회적 특권을 이용해서 자녀를 명문대에 진학시켰고, 이것이 공정에 어긋난다는 말이다.

그래, 명문대를 진학하지 못한 이땅의 흑수저들은 그러한 비난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서울의 명문대생은 조국을 비난할 자격이 있을까? 진학을 담당한 경험이 있는 분들의 말에 의하면, 그 시절에는 부모를 통한 체험학습과 봉사활동이 대부분 이뤄졌다한다. 조국만이 아니고, 강남만의 일도 아니다. 그리고 이러한 체험학습과 봉사활동의 폐해로 인해서 체험학습이 생기부에서 삭제되고, 해외봉사활동이 입력불가가되었다. 서울지역 대학에 진학한 학생들 중에서도 부모의 인간관계를 이용한 체험학습과 봉사활동이 조국가족 이외에는 없었을까? 입시현실에 무지한 기자, 혹은 한쪽눈만 뜬 기레기들이 조국을 천하의 범죄자로 만들었다. 진보인사에게만 가혹한 도덕의 칼날에 무슨말을 할 수 있을까?

부유한 집안의 서울대학교 교수인 조국! 그가 시류에 영합하여 편히 살려했다면 그의 가족은 영화를 누리며 달콤하게 살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가 왜? 검찰 개혁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을까?


  "검찰개혁은 학자와 지식인으로서 제 필생의 사명이었고, 오랜 동안 고민하고 추구해왔던 목표였습니다."-265쪽

  "상설조직과 자체수사 인력을 갖춘 공수처가 있었다면, 결과는 달랐을 것이다. MB는 대선전, 적어도 취임전 기소되었을 것이다."-117쪽


조국은 행동하는 지식인이다. 학자로서 지식인으로서 이 사회의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 검찰개혁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을 그는 깨달았다. 그리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던졌다. 견제와 균형의 원리에 기초한 수사구조 개혁! 이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 조국은 가족을 희생양으로 내 놓아야했다.

언론 검찰, 보수시민들의 조리돌림 속에서도 그는 죽지않았다. 살아서 우리에게 왔다. 사실 조국 사태 속에서 조국이 제2의 노무현이나, 제2의 노회찬이 되지 않기를 바랬다. 제발 그가 살아서 우리에게 돌아오기를 고대했다. 만주의 항일무장투쟁을 공부하면서, '생존이 최고의 투쟁인 시기'라는 표현을 인상 깊게 읽었다. 그랬다. 조국에게 이 시간은 생존이 가장 큰 투쟁의 성과였다. 그가 살아서 '조국의 시간'을 썼다. 그의 고민을 시민과 공유하며, 검찰개혁의 필요성을 되새긴다. 조국! 살아 돌아와서 고마워요!

조국을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조형근 선생의 말을 해주고 싶다. 


  "위선이 악이 선에 바치는 경배"

  "위선은 역겹지만 위선마져 사라진 세상은 야만이다."-359쪽


조국은 강남의 금수저인 자신이 진보 지식인으로 활약하면서도, 기득권을 버리지 못한점을 이 책에서 반성한다. 일부 시민들은 기득권을 버리고 도덕군자처럼 조국이 살길 바랬나보다. 이들은 너무도 순진하다. 현실에서는 절대 선의 존재는 있을 수 없다. 속세를 버리고 산사로 들어가 홀로살아간다한들, 어찌 때가 묻지 않겠는가? 고려시대 사찰에서도 국왕을 따르는 승려와 문벌귀족을 따르는 승려 사이의 다툼이 있었다. 

단지 우리는 옷에 구정물이 튀어도 이를 부끄럽게 여기며, 자신이 살아가는 현실 속에서 떳떳하게 살아가려 노력할 뿐이다. 그러면서도 현실의 유혹에 고뇌하는 나약한 존재가 우리이다. 그러나, 우린 염치가 있고, 부끄러움을 안다.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지 않고, 국민을 개, 돼지로 보는 세력과는 엄연히 다르다. 우리의 옷에 구정물이 묻었다고 우리를 버리고 국민을 개, 돼지로 보는 세력을 선택한다면, 결론은 파국으로 치달을 것이다.



조국은 재기할 수 있을까? 15년전, 공개 강좌에서 한 시민이 "'조국이 대통령감이다.' 라는 말을 많이 듣는데, 대통령에 도전하실 생각은 없으신지요."라고 질문했다. 그때, 조국 교수는 자신은 그럴 마음이 없다고 겸손해했다. 겸손한 사람, 정의를 지키려는 사람, 약자를 보듬어주려는 사람! 그 사람이 조국이다. 조국에게는 할일이 남아있다. 조국이 가족을 제물삼으며 공수처의 출발을 고대했지만, 공수처에 걸었던 기대는 실망으로 되돌아 오고 있다. 염치없지만, 조국에게 다시 정치로 뛰어들기를 부탁해야하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조국이 복권되어 다시 이 사회의 정의를 바로 세우길 바란다. 박근혜 처럼 대통령의 사면령이면 끝나는 일이 아니라서 깊은 탄식이 터져나온다. 조국! 그는 언제쯤 복권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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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10 15: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강나루 2022-01-13 16:16   좋아요 1 | URL
그때를 떠올리며 읽었더니 금새 다읽었습니다.
로스쿨가는 따님이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우겠네요.
 
다시, 책은 도끼다 - 박웅현 인문학 강독회
박웅현 지음 / 북하우스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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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은 도끼다.'라는 제목이 강렬한데, 여기에 '다시'가 붙었다. 사실 '책은 도끼다.'라는 책을 읽고 싶어서 책을 골랐는데, '다시, 책은 도끼다.'라는 책을 잘못 골랐다. 어쪄랴! 책을 읽어 내려갈 수밖에.... 그런데, 박웅현의 사진을 보면서, 나는 스님을 떠올렸다. 물론, 도올 김용옥 선생도 떠올랐다. 책을 읽는 동안 실제 스님들과도 교류를 하며 지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그의 사유에 불교적인 사유의 흐름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우리를 사로잡은 박웅현의 불교식 독서법을 살펴보자.

 

저자 박웅현은 책의 액기쓰를 짜내며 읽는 독서법을 가지고 있다. 자신이 의미를 발견한 문장을 밑줄을 긋고 적어 놓았다가 이를 타이핑해 놓는 독서법이다. 그리고 그러한 문장들을 사무실에 걸어 놓기도하고, 따로 모아서 인문학 강독회를 열고 책으로 출판도한다. 팟캐스트 '인생내공'의 조우성 변호사도 이러한 방식으로 독서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자산들은 팟캐스트 제작과 공개강의를 할 때 요긴하게 사용한다. 책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체화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이를 강연 및 출판에 이용한다는 점에서 원소스 멀티유즈(One source multi-use, OSMU)의 알뜰한 사례라 할 수 있다.

박웅현은 '독서에 관하여'라는 책의 일부분을 인용하며 일상이 예술이 될 수 있음을 강변한다.

 

"왜 꼭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있는 것만 예술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이야깁니다."-35

 

그렇다. 우리는 예술가라는 사람이 평범한 일상을 묘사한 것을 보고 예술이라 감탄한다. 우리의 일상이 예술인데 우리는 너무 멀리서 예술을 찾았다. 박웅현의 글귀를 읽으며 나는 임제스님의 법문이 떠올랐다.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 , 머무르는 곳마다 주인이 된다면, 네가 서 있는 바로 그곳이 진리의 세계이다!! 나의 인생에서 주인으로 살면서 나의 주변을 바라보면 그곳이 바로 진리의 세계, 곧 예술의 세계인 것이다. 머무르는 곳마다 진리의 세계가 될 수 있듯이 머루르는 그곳이 예술의 세계일 수 있는 것이다. 박웅현 자신은 모르겠지만, 그는 임제스님의 법문을 예술의 세계에 적용시켰다. 그의 사유에 불교적 사유가 흐르고 있기에 책을 읽으며 불교적 사유를 건져올리고 있다.

그렇다. 박웅현은 책속에서 진리를 건져 올렸다. 책속에는 그리고 세상에는 진리가 널려 있다. 그 진리를 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달은 어디에나 있지만 보려는 사람에게만 뜬다."-89

 

'역사는 기억하는 자의 것이고, 기록하는 자의 것이다.' 라는 말이 있듯이, 진리는 어디에나 있지만, 진리를 보고자하는 마음이 없다면 진리를 볼 수도 찾을 수도 없다. 평범한 돌도 가치를 알아보는 자에게는 보석이 되지만,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는 자에게는 다이야몬드도 돌덩이일 뿐이다. 세상은 객관적으로 보이기보다는 주관적으로 보여진다. 각자 자신이 보고 싶은 것들을 볼 뿐이다.

그런데, '달은 어디에나 있지만 보려는 사람에게만 뜬다.'라는 문장 자체는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문장으로 보인다. 달은 하나이지만, 천개의 강에 떠오른다는 문장 자체가 모티브가 되어 '달은 어디에나 있지만 보려는 사람에게만 뜬다.'라는 문장에 영향을 주었다고 추리한다면 나의 억측일까? '월인천강지곡'은 세종대왕이 소헌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서 한글로 편찬한 찬불가이다. 부처를 달에 비유하고, 그 달이 하나이지만, 천개의 강에 떠오른다는 표현 자체는 무척이나 문학적이다. 박웅현이 불교적 사유가 내면에 흐르고 있었기에 이 문장이 그의 가슴을 울리지 않았을까?

박웅현이 불교적 사유에 깊이 물들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문장이 있다.

 

"그 오랜 세월의 몸부림과 분투 끝에 셰익스피어는 마침내 모든 희망으로 부터 해방되었다. (중략) 그렇게 그는 자유로워졌다."-211

 

이 글에서 "모든 희망"을 불교식으로 표현하자면 "욕망" 혹은 "집착"이라고 말할 수 있다. 모든 집착에서 벗어난다면 우리는 해탈하고 열반에 들 수 있지 않을까? 불교의 중요한 화두인 집착을 버리라는 말을 카잔차키스는 '희망'이라 표현했다. 박웅현의 내면에 흐르는 불교적 사유는 이를 놓치지 않고 건져올렸다.

스님들은 너의 욕망을 버리고 너의 마음을 곧바로 보라고 말씀하신다. 이것이 바로 '직지인심(直旨人心) '이다. 박웅현도 이와 비슷한 글귀를 놓치지 않았다.

 

"짧은 순간 동안 이 문장은 삶의 산문성을 가리는 커튼을 살짝 걷어 올린다."-220

 

밀란쿤데라의 이 글귀는 돈키호테의 죽음을 설명하면서 우리 인간의 본성을 곧바로 들여다보게한다. 돈키호테 주변 사람들은 그의 죽음을 슬퍼만하지 않는다. 유산을 상속받을 수 있는 질녀는 특히 그러하다. 보통의 문학작품들이 필요한 부분만 아름답게 조각하여 보여주지만, 돈키호테라는 작품은 우리의 본성을 가리고 있는 커튼을 찢어버린다. 그리고 그 속성을 곧바로 보여준다. 이는 우리의 현실을 곧바로 보라는 불교의 가르침과 일맥상통한다. 그렇게 박웅현은 불교의 관점에서 책을 읽고 세상을 살아가고 있었다.

 

한알의 밀알에서 우주를 발견하고, 우리의 삶이 인연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일깨워주는 것이 바로 불교의 가르침이다. 박웅현의 인문학 강독회와 이를 묶어서 편찬한 '책은 도끼다.''다시, 책은 도끼다.'라는 책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이유는 불교 철학의 깊이 있는 사유를 박웅현이 의도하지는 않았으나, 쉽고 재미있게 풀이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참선을 통해서 깨달음의 세계에 진입하는 스님의 모습을 박웅현의 모습에서도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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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12-09 15: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강나루님 이달의 당선 추카 합니다
박웅현님 책
도끼! 리커버도 출간 되었네요^^

강나루 2021-12-10 06:01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좋은 정보도 감사해요^^

쎄인트saint 2021-12-09 17: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리뷰 선정 축하드립니다~!!

강나루 2021-12-10 06:01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시길...

thkang1001 2021-12-09 18: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강나루님! 이달의 리뷰에 선정 되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강나루 2021-12-10 06:02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축하해주시는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하라 2021-12-09 18: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

강나루 2021-12-10 06:02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행복한 12월 보내세요.^^

서니데이 2021-12-09 21: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강나루 2021-12-10 06:02   좋아요 1 | URL
부지런한 서니데이님, 감사합니다.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러블리땡 2021-12-10 02: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강나루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짝짝짝!!!

강나루 2021-12-10 06:03   좋아요 0 | URL
러블리땡님 감사합니다.

러블리땡님도 행복하게 주말 보내세요.

물감 2021-12-10 07: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강나루님, 당선 축하해요😀
좋은하루 되시길요😉

강나루 2021-12-11 07:12   좋아요 1 | URL
물감님 감사합니다^^
 
달까지 가자
장류진 지음 / 창비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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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락방, 독서와 수업 사이에서 한 선생님이 '달까지 가자'라는 책을 읽고 가상화폐에 대해서 대화를 하고 싶다하였다. 내키지는 않지만 책을 읽어 내려갔다. 내가 소설책을 잘 읽지 않는 이유는 뻔한 줄거리 때문이다. 몇페이지만 읽어보면 결론이 눈에 들어오는 책들은 읽고 싶은 마음을 멸균시켜버린다. 장류진의 소설 '달까지 가자'를 읽으며, 가상화폐에 투자했다가 쪽박차게되는 이야기를 떠올렸다. 그러나, 장류진의 '달까지 가자'는 나의 예상을 빗나갔다. 그것이 이책을 읽으며 느낀 유일한 호감이다. 돈에 미쳐있는 대한민국에서 가상화폐라는 지극히 위험한 곳에 자신의 전재산과 빚을 끌어모아 투자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을 두둔하는 소설로 읽혔다. 장류진은 과연 '달까지 가자'라는 책을 통해서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가 말하려는 의도와는 달리, '달까지 가자'는 청년들에게 가상화폐에 투자하도록 독려하는 역할을 하진않을지 걱정이 된다. 가벼운 문체에 가벼운 주제를 담아 가볍게 읽고 책을 던져버릴 수 있도록 책을 썼다. 우리의 삶이 가볍지 않을진데 가벼운 책을 읽은 것이 못내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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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거서 2021-09-02 22: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상화폐에 대해 대화를 하려면 다른 책을 먼저 읽어야 하지 않나요. 소설이 아니라… 가상화폐의 근본적인 지식이 부족한 상태에서 쪽박 차는 경우부터 가상화폐에 접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감히 말씀 드립니다만, 가상화폐를 투기의 수단으로 여기는 것은 첫 단추를 잘못 끼는 것과 다름이 없거든요.

강나루 2021-09-03 19:45   좋아요 0 | URL
네 공감합니다.
제가 가상화폐에 관심이 없어 깊이 있는 책부터 읽자는 제안을 안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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