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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신화와 천황제 이데올로기 - 신화와 역사 사이에서
김후련 지음 / 책세상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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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메이지 유신을 하면서, 근대 일본 만들기는 시작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전통'은 사실 근대의 창작물인 경우가 많다. 일본을 대표하는 일본 신화와 천황제 이데올로기도 근대의 창작물이었다. 일본 고대와 중세의 작품을 가져다가 근대 민족국가 이데올로기에 알맞도록 다시 창작해낸 '천황제 이데올로기'는 일본의 제국주의 침략을 합리화했다. 수 많은 일본인들과 동아시아의 수많은 젊은 영혼들이 죽음을 맞이해야하는 비극을 겪었다. '일본 신화와 천황제 이데올로기'라는 책은 일본의 신화가 어떻게 천황제 이데올로기로 새롭게 태어났는가를 깊이 있는 연구로 밝혀냈다. 저자 김후련의 안내를 받아 일본 천황제의 허상을 뜯어보자.

 

1. '무형의 형태', 신도

  일본의 토착 종교는 '신도'이다. 신의 길이라고 풀이할 수 있는 신도는 우리 나라의 무속신앙과는 달리 엄청난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우리의 무속신앙은 외부에서 들어온 불교와 크리스트교, 유교에 짖눌려 종교이기 보다는 '미신'으로 취급받고 있다. 이에 반해서 '신도'는 아직까지 살아남아 일본인들의 삶에 깊숙히 뿌리 내리고 있다. 합격을 기원하며 신사로 향하기도 하며, 결혼식을 신사에서 하는 일본인도 많다. '살아서는 신도, 죽어서는 불교'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신사의 생명력은 강하다. 그 생명력의 근원은 무엇일까?

 '신유습합'과 '신불 습합'에 있었다. 불교이든 유교이든 신도는 이들 사상을 흡수하여 새롭게 태어났다. 불교가 탁월한 철학적 체계를 가지고 각지역의 토착신앙을 흡수하면서 발전했다면, 이러한 이론적 체계가 없었던 신도는 불교 신앙을 받아들여 '신사'를 만들어냈으며, 외세가 침략할 때는 그들만의 '화이'사상을 만들어냈다. 이것을 '무형의 형'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무형의 형'의 무서운 힘은 조선을 강제 병합하면서 다시 발휘된다. 조선 총독 고이소 구니아키(1942~1944)는 스사노오노 미코토가 신라에 강림했다는 고대 천황신화를 만든다.

 

  "여기 반도 2,500만의 원민족은 틀림없이 스사노오노미코토의 후손이라고 생각한다. 과연 그렇다고 하면 아마테라스오미카미의 후손인 내지(일본) 민족과 바로 뿌리가 같고 하나라는 것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 아닌가 생각될 뿐만 아니라, 우리가 오늘날 알 수 있는 역사상으로나 그 후로나 피의 혼합이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다. .... 그런데 명치 43년(1910)의 성대에 아마테르사오미카미의 후손이신 메이지 천황에 의하여 스사노오의 후손인 조선이 병합된 것은 신대 말기의 신사가 더욱 철저히 완성적으로 다시 되풀이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든다."-42쪽

 

  일본신화에 우리의 단군 신화를 흡수하려하는 조선 총독의 모습에서 그들의 집요함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일본의 태양신인 아마테라스의 후손이 세운 일본에 의한 아마테라스의 남동생이 세운 조선 병합을 합리화하려는 그들의 모습은, '무형의 형'으로 새로운 외부의 사상을 흡수하는 신도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아마테라스는 신도의 가장 근본적인 신이다. 일본의 신도는 '일본서기'와 '고사기'에 적혀있는 일본 신화를 호출하여 일본의 조선 점령을 합리화하려했다. 신화는 신대의 필요에 따라서 다시 호출될 수 있다. 그리고 그 힘을 오용한다면 그 폐해는 가공할만한 위력을 발휘한다. 오늘 필요에 따라서 과거를 호출하고, 새롭게 신화를 만들어 낸다. 그리고 자신들이 만들어낸 신화를 믿으며 침략전쟁을 합리화한다.

  만약, 우리가 일본의 '신화 만들기'에 대항할 문화적 백신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일제의 민족 말살 정책이 성공했다면 어떠했을까? '2009 로스트 메모리즈'라는 영화가 있다. 안중근 의사의 이토 처단이 실패로 끝나서, 일제의 황국신민화 정책이 성공한 미래사회를 그린 영화이다. 그러나, 우리는 '2009 로스트 메모리즈'라는 가공의 영화를 호출할 필요가 없다. 민족 말살 정책이 성공한 실제 나라가 있으니까 말이다. 바로 '류큐'국이다. 일본과는 다른 독자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었던 '류큐'왕국은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에 복속된다. 황국신민화 정책이 조선 보다 일찍 시작되었다. 하나의 현으로 일본 영토에 편입된 류큐는 '일본인'으로서 침략전쟁에 참여한다. 그러나,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차별이었다. 오키나와 전투에서 류큐 민간인들은 군부에 의해서 '옥쇄'를 강요받았다. 수많은 일본인들이 천황을 위해서 옥쇄를 했지만, 류큐인이 지키려했던 쇼와 천황은 류큐를 미군기지로 사용하도록 미국에 넘긴다. 이때가 1947년이다. 일본으로부터 버림받은 류큐는 미군 기지로 인해서 발생하는 모순에 고통스러워하며 일본으로 돌아가고 싶어했다. 1972년 다시 일본으로 돌아갔지만, 일본사회에서 류큐는 '오키나와'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차별을 받는다. 단일민족이라는 허상을 믿으며, '오키나와인'과 '아이누인'을 차별하는 야마토인에게 류큐인은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일본으로부터 차별과 멸시를 받으면서도 일본에 귀속되려는 '류큐인'을 보면서, 일제의 황국 신민화 정책의 위력이 얼마나 큰가를 새삼스레 절감한다. 문화적 백신이 없는 '류큐'인들은 계모에게 학대받으면서도 계모를 친모로 믿고 사랑을 받으려는 어린아이 같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나 뿐일까?

 

2. 일본의 신화 만들기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을 이길 수 있었던 여러 이유중에서, 거짓말을 하고, 그 거짓말을 믿는 능력을 꼽았다.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신과 신화를 만들어 내고, 이를 진실로 믿는다. 이러한 믿음은 엄청난 수의 사피엔스를 하나로 뭉치게 만든다.

  일본은 유발 하라리가 말한 '사피엔스'의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한 민족이다. 일본의 신화 만들기는 고대에서부터 시작하여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으니 말이다. '일본서기'에는 재미있는 내용이 있다. 천손이 규슈의 휴가에 강림했는데, 천손이 강림한 구지후루타케는 가야국의 수로왕이 강림한 구지봉에 해당한다. 김후련을 비롯한 많은 신화학자들이 지적했듯이, '구지후루'는 '구지'의 발음과 유사하며, '다케'는 구지봉의 '봉'에 해당하기에 일본신화의 천손강림과 가야의 김수로왕 강림신화는 같은 계열의 신화라 할 수 있다. 한반도인이 일본에 건너가 국가를 세웠다는 주장을 할수도 있는 기록이다. 그러나 일본은 이 기록을 외면한다. 일본 신화학자는 그들의 입맞에 맞는 기록만을 선택해서 호출한다. 신공황후의 신라 정벌 이야기에만 관심을 갖는다. 그들 천황가의 뿌리가 한반도 일 수도 있다는 기록은 애써 왜면한다.

  '일본서기'와 '고사기'가 저술되던 시기 그들의 일본지배를 합리화하기 위해서 일본은 신화를 다시 정리한다. 아마테라스 오미카미의 동생인 스사노 미코토는 이즈모 전승에 따른다면, 일게 지방신이었다. 절대 황조신 아마테라스의 남동생이 아니었다. 제우스가 바람둥이인 이유가 해당 지역의 토착신과 그 후손들이 제우스와 연결시키려다 보니, 제우스를 바람둥이로 만들 수 밖에 없었다는 연구결과를 떠올린다면, 일본서기를 집필할 당시, 천황가의 일본지배를 합리화하려는 목적에서 신화가 다시 정리되었음을 쉽게 유추할 수 있다.

  더욱 재미 있는 것은 일본서기 편찬시기 천황가의 일본 지배를 합리화하기 위해서 정리된 일본 신화가 근대시기에 다시 재해석된다는 것이다. 이른바 '외팔주 사관'이다.

 

  "국토 창조 신화가 중세를 거쳐 근대에 이르면 일본은 세계를 축소해 놓은 것이라는 '외팔주사관'으로 재생산된다. (중략)외팔주사관은 기무라 다카타로가 주장한 것으로 (중략) 고대 세계사의 인명과 지명에 일본의 그것을 조합시켜 유라시아 대륙과 아프리카에 군림하는 거대 국가 일본을 창조해낸 것이다.기무라의 주장에 따르면 태고의 일본은 결코 극동의 작은 섬이 아니었으며, 현재의 일본은 옛날에 세계 전체에 걸쳐 있었던 일본의 지리를 세밀하게 축소해 일본 열도에 투영시킨 것이다."-33쪽

 

  군국주의 시대, 일본의 침략주의를 합리화하려는 목적에서 탄생한 주장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일본은 자신의 필요에 따라서 신화를 다시 정리하고 새롭게 해석해오고 있다. 문제는 이를 진실로 믿는다는 것이다. 일본 천황가가 중요시 여기는 '삼종신기'라는 것이 있다. 천황가가 하늘의 후손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옥과 청동검, 거울을 뜻한다. 그러나, 남북조시기 삼종신기 일부는 사라졌다. 엄밀히 말하면 삼종신기는 중세에 다시 말들어진 것이다. 더욱이 '삼종시기'라는 말은 에도시대까지만 해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삼종신기'는 중세의 신국 사상과 근세의 국학과 미토학, 근대 천황제 국가의 이데올로기로서 끊임 없이 재생산되고 있다. '만들어진 전통'이라는 말이 있다. 전통은 필요에 의해서 근대에 만들어진 산물이다. 만들어진 전통에 의해서, 만들어진 신화에 의해서 인간이 노예가 되어 죽어가는 비극을 우리는 직시해야한다.

 

3. 만들어진 '신화'가 인간을 잡아 먹고...

  SF영화에는 인간이 만든 바이러스 혹은 생명체, AI가 인간을 지배하거나 인간의 생존을 위협한다는 설정이 흔히 있다. 인간이 만든 창조물이 도리어 인간을 해친다는 설정은 SF영화에서만 있는 이야기는 아니다. 인간이 만든 '신화'가 인간을 죽음으로 몰아 넣는 일이 인류 역사에서는 실제로 발생했으니까 말이다.

  태평양 전쟁 말기, 군국주의 광기에 휩싸인 '카미카제 특공대'를 떠올리며, 일본의 사무라이 정신이 대단하다고 감탄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카미카제 특공대'가 태어나기 위해서 일본은 중세 시기부터 준비를 했다. 하야시 라잔은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타고나지도 않은 부귀와 수명을 바라는 것은 이에 어긋난다. .... 이루어지지도 않은 소원을 꾀하고 이루어지지 않은 희망을 이루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자의 소행이다. 그런 자는 돼먹지 못한 일을 생각해내고 도리에 어긋난 일을 행하여 죄를 지음으로써 결국에는 몸을 망치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라서는 안 될 도리가 되는 까닭이다."-(삼덕초)1643년 이후-하야시라잔

 

  '바라서는 안될 도리'라는 말은, 각자 자신의 신분에 맞게 행동해야한다는 것이다. 한번도 왕조교체가 일어나지 않은 나라 '일본'은 각자 자신의 신분에서,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려했다. 우리처럼 신분의 굴레를 벗어나서 상승하려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만세일계'라는 신화는 일본의 안정성을 보여주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일본의 정체된 사회 모습을 보여준다. 하야시 라잔이 말했듯이, 자신의 신분에 벗어나서 '바라서는 안될 도리'를 바라지 않았다.

  근대에는 니토베 이나조에 의해서 '일본의 영혼, 무사도'라는 책이 씌여진다. 서구인들에게 일본을 소개하기 위해서 영어로 씌여진 이 책을 통해서, 일본인들은 새로운 신화를 만든다. 주군의 명령에 목숨을 내놓는 사무라이의 모습을 '무사도'라 포장하고, 생명력이 가득한 '핀사쿠라'의 모습이 아닌, 천황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며 죽음으로 뛰어드는 '지는 사쿠라'로 행동하길 강요받는다. 그리고 수 많은 일본인들을 '지는 사쿠라'가 되도록 강요한다.

  이러한 광기에 미토학의 국체론이 한몫한다. 후지타 도코(1806~1855)는 "세번 죽음을 각오하면 죽지 않는다."라고 시작하는 '회천시사'를 남긴다. 이 시는 막부말기 지사들이 즐겨 낭송했으며, 태평양 전쟁 시기 '회천(가이텐)'이라 불렸던 가미카제 특공대원들에게 전승된다.

  군국주의 광기는 어느날 갑자기 만들어지지 않았다. 군국주의 광기를 만들려는 자들에 의해서 과거의 불행한 유산들이 소환된다. 여기에 시류에 영합하며, 순응하는 일본의 국민성이 더해진다. 여기에 신공화후 신화와 태양신 아마테라스의 신화가 다시 등장하여 침략전쟁에 힘을 불어 넣는다. 국가 통치권의 주체는 국가자체이고 천황은 국가의 최고기관으로서 통치권을 행사할 권능을 갖는 것에 불과하다는 미노베 다쓰기치의 천황기관설 마져도 불경죄로 여겨졌고, 급기야는 우익인사의 통탄을 맞기도 했다. 이것이 일본의 광기에 부레이크를 사라지게 했다. 단테의 '신국론'-지옥편에 "지옥의 가장 뜨거운 자리는 도덕적 위기의 시기에 중립을 지킨 자들에게 예약되어 있다."  (The hottest places in hell are reserved for those who, in times of great moral crisis, maintain their neutrality).”라는 말을 우리는 되새겨야한다. 수많은 젊은이 들이 사람을 죽이기 위한 전쟁에 내몰렸다. 잘못된 방향으로 돌진하는 일제를 바로잡지 못한 댓가는 일본의 시민과 동아시아의 무고한 시민들의 희생으로 막을 내렸다.

 

4. 광기를 죽이는 방법

  아베내각이 한국에 대한 경제적 침략에 날을 세우고 있다. 아베는 그의 외할아버지인 A급 전범 기시 노부스케가 되고 싶은 지도 모른다. 일본의 광기를 죽이는 방법이 없을까?

  일본의 침략적 망언들을 들을 때 마다, 우리는 정부가 강하게 일본에 대응해주기를 바란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했을 때,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 우리 땅 독도에 가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저자 김후련은 이것이 어리석은 행동이었다고 말한다. 왜? 일까? 이명박 전 대통령은 '천황이 한국에 오려면 과거사에 사죄하라'라는 내용의 말을 한적이 있다. 김후련의 지적에 따르면 이는 쇼와 천황과 헤이세이 천황을 구분하지 못하고, 일본의 극우들이 준동할 수 있는 빌미를 주었다고 한다. 즉, 헤이세이 천황은 '천황가의 혈통에 백제 왕가의 피가 흐르고 있어 한국에 대해 친근감을 느낀다.'고 밝힌 사람이다. 헤이세이 천황을 한국에 초대하고 그로 하여금 서대문 형무소에 참배하게 하는 노련한 외교력을 발휘했다면 한일관계는 지금과 달랐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우경화에 반대하는 그를 비난함으로써, 우리의 우군으로 삼을 수 있는 사람을 적군으로 돌리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일본인 모두를 적으로 삼지 않고, 일본의 양심있는 시민과 연대하여 일본사회의 광기를 누그러 뜨릴 수 있는 기회를 놓친 셈이다.

 "NO Japan"운동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중에 하나는, 아베를 중심으로한 일본 극우파를 우리의 적으로 삼고, 일본 시민을 적으로 삼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다. 일본인 모두를 적으로 만드는 과거의 행동방식으로는 일본의 광기를 없앨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성숙된 대처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김후련은 고이즈미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시기, 한국과 중국이 반발하자, 야스쿠니에 대해서 관심이 없었던 일본인들이 야스쿠니에 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고 한다. 일본의 망언과 망령된 행동에 우리가 과도하게 대응한다면 결과적으로 일본 극우세력에게 힘이 된다는 주장이다. 극과 극은 통한다는 말이 있다. 우리의 극한 분노가 일본극우를 살찌운다는 역설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할까?

 

  "한국의 언론은 외교의 장과 학문의 장에서 논리적이고 냉철하게 다룰수 있도록 비켜나 있어야 한다." - 51쪽

 

 일본 정치가들의 말령된 행동을 한국인들에게 알리는 것은 언론의 당연한 책무이다. 적절한 시기에 망언을 하고, 이를 통해서 주변국의 반반을 유도하여 일본내의 극우파의 입지를 강화시키는 효과를 얻는 그들을 상대하려면 우리는 그들보다 더욱 성숙해야한다.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논리적이면서도 냉철하게 일본에 대응해야한다. 극도의 자제력이 필요한 장기전에 대비할 준비가 우리는 되어 있는가? 스스로 자문해 본다.

 

 

  헤이안 시대까지만 하더라도 일본 천황은 일본을 직접다스렸다. 그러나, 막부시대가 개막되면서 천황은 막부의 등살에 기를 펴지 못했다. 특히 에도 막부시기가 되면, 천황은 황궁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다이묘가 직접 천황을 만날 수 없었으며, 정치에는 일체 관여할 수 없었다. 천황의 세력은 날로 약화되어 즉위식 조차 제대로 치룰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마치 가정 폭력을 행사하는 남편이 아내의 친구를 비롯한 주변인과의 관계를 끊어 놓가 고립시키듯이, 막부의 쇼군은 천황을 세상과 단절시켜 놓았다.

  고립된 천황을 다시 세상밖으로 끌어낸 것이 사쓰마번과 죠슈번의 사무라이들이었다. 그들은 천황이라는 신화를 다시 소환하여 동아시아를 전쟁의 광기로 몰아 넣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갓다. 천황제를 지키기 위해서 오키나와에서는 옥같이 부서지라는 '옥쇄'작전이 전개되었다. 오키나와의 히메유리 위령탑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있다.

 

  "우리 본토 일본인이 오키나와에 가면 꼭 히메유리 탑을 찾아 머리를 조아리는 까닭은 오키나와가 본토를 위해 산화해주었기 때문이 아니라 전쟁 피해의 궁국적인 모습을 거기서 발견하기 때문이다. (중략) 전쟁을 겪은 세대에게 그것은 자신의 '무죄증명'이며 용서의 장소이고 감미롭고 감상적인 장소, 이제는 평화의 눈물을 흘리 수 있는 장소이다."-418쪽

 

  전형적인 유체이탈 화법이다. 천황제의 광기 속에서 자신들이 저지른 침략전쟁으로 인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갔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반성하지 않는다. 스스로를 피해자로 볼 뿐, 가해자로 직시하지 않는다. 그래서 김후련은 강연이 끝날 때마다.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일본은 단 한번이라도 좋으니 진심으로 과거사를 직시하며 자기 자신에 대해 성찰하고, 한국은 단 한번이라도 좋으니 의연하게 과거사를 털어내고 한일의 미래를 향해 일보 앞으로 전진하기 바란다."-552쪽

 

 

 김후련의 말에 이제 우리가 답할 차례이다. 김후련의 말이 오늘날 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후련하게 해결할 수 있는 해법을 제시해주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해결의 첫걸음을 내딛을 수 있게 해주기 때문기에 우리는 그녀의 말에 귀기울여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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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누아 2020-06-07 17: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김후련의 말을 다시 읽어봅니다. 아쉽게도 의연함과 냉정함을 요구하는 이들이 불매운동을 자제력 없는 감정 대응으로 치부하지는 않았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강나루 2020-06-07 17:45   좋아요 1 | URL
냉정과 열정 사이를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네요
암튼 노재펜은 냉정하고도 의연한 대처였어요
 
21세기 한중일 삼국지 - 갈팡질팡 한국, 허겁지겁 중국, 아등바등 일본
우수근 지음 / 두리미디어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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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깝지만 먼나라! 라는 말이 어울리는 나라가 있다. 중국과 일본이다. 일본은 너무도 가깝지만, 과거사를 반성하지 않는 그들의 오만함에 치를 떤다. 중국은 공산주의 국가로, 개인의 인권보다는 국가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나라이다. 대국으로 굴기하려는 중국은 힘의 외교를 구사하는 저돌적인 모습을 보이기도한다. 미우나 고우나, 우리는 중국과 일본과 교류하며 살아야한다. 신숙주가 죽으며 왕에게 남긴 유언이있다.   "일본과 관계를 끊으면 아니되옵니다." 일본과 외교 관계를 끊는다면, 이는 전쟁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신숙주의 예견은 놀랍게도 적중했다. 임진왜란! 7년 전쟁은 조선 민중의 삶을 도탄에 빠뜨렸다. 조선의 평화를 위해서 일본과 관계를 끊으면 안된다는 신숙주의 유언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아니다. 신숙주의 마지막말은 "중국과 일본을 비롯한 주변국과의 관계를 예의 주시해야합니다."로 고쳐야한다. 중국의 사드 보복이 한국 경제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하며, 일본이 반도체 핵심 소재를 수출 못하게하여 우리의 반도체 산업을 붕괴시키려했던 만행도 기억해야한다. 적의 한손을 잡고 있어야, 다른 한손으로 무엇을 할지를 알 수 있다. 중국과 일본을 적으로 만든다면, 우리의 미래는 순탄치 않을 것이다. 반면, 중국과 일본을 친구로 만든다면, 동아시아의 번영을 이끌 수 있을 것이다. 중국과 일본을 적이 아닌, 친구로 만들기 위해서는 그들을 이해해야한다. 그래서, 우수근의 '21세기 한중일 삼국지'를 펼쳐들었다.

 

1. 내뱉는 문화를 가진 중국과 삼키는 문화를 가진 일본, 그 중간의 한국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 사회와 문화를 살펴보면, 중국과 일본이 양극단에 있고 한국은 두 나라의 가운데에 있는듯한 모습들을 많이 본다. 집안에서 여성의 권위가 강한 중국과 순종적인 이미지의 일본 여성, 두 나라의 중간 지대에 있는 한국의 모습이 대표적이다. 우수근의 '21세기 한중일 삼국지'에서는 중국의 문화를 '내뱉는 문화'라고 지칭하고, 일본의 문화를 '삼키는 문화'라고 이름 붙인다. 교통사고 현장에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소리부터 높이는 중국인들에 비해서, 자신이 잘못한 것이 없는데도 "죄송합니다."라는 말부터하는 일본인들의 모습은 너무도 대조적이다. 동아시아 3국의 사회 문화가 비슷한듯하면서도 이리도 차이가 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역사를 전공한 나로서는 동아시아 3국이 걸어온 역사의 차이에서 찾고 싶다.

  중국의 경우, 거대한 중국이라는 바다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친구가 필요했다. 그래서 중국인 들은 "꽌시"를 중시하게 되었다. 어떠한 "꽌시"를 맺느냐에 따라서 중국이라는 거대한 바다에서 성공의 길이 순탄할 수도 있고, 몰락의 길을 걸을 수도 있다. 이 말은 내가 잘못을 저지르면, 나와 꽌시를 맺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피해가 올 수 있다는 말이다. 조선이라는 나라는 반역을 저지르면 3족을 멸한다고 한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9족을 멸한다는 말이 있다. 명나라 연왕이 쿠데타를 일으켜 영락제로 등극할때의 일이다. 영락제는 유명한 학자인 방효유에게 즉위조서를 쓰도록 했다. 방효유는 이를 거절하며 붓을 집어던졌다. 반역을 하면 보통은 9족을 멸하는데, 영락제는 10족을 멸했다. 친족뿐만아니라, 870명에 달하는 방효유의 친구와 문생까지도 도륙했다. 잘못을 인정한다는 것은 자신뿐만 아니라, 자신의 가족과 친척, 잘못하면 자신과 꽌시를 맺고 있는 친구들까지도 죽을 수 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중국의 문화를 만들어내지 않았을까? 유튜브'우수근의 한중일 TV'에서 우수근은 중국인은 체면을 중요시여기는 잘못을 인정하지 않더라도 잘못을 인정시키려 몰아붙이지 말것을 당부한다.

  일본은 왜? 자신의 잘못이 아닌데도, "죄송합니다."라고 말할까? 이것도 역시 일본의 역사에서 찾아야할 것이다. 일본은 천년 이상 칼이 지배했던 사회이다. 도망갈 곳이 없는 섬나라 일본에서는 패배자는 할복을 하거나 승자에게 무릎꿇고 목숨을 구걸해야했다. 사무라이만이 칼을 휴대할 수 있는 에도막부 시기에는 사무라이가 자신의 명예를 더럽힌 사람을 죽일수도 있었다. 어느 사무라이의 아들이 자신의 떡을 훔쳐 먹었다며 떡값을 요구하자, 사무라이는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 자신의 아들의 창자를 꺼내 떡이 없음을 보여주고, 그 상인을 죽였다. 그리고 자신도 할복을 한다. 일본인들은 이 이야기 들으며, 사무라이 정신이 녹아 있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붓이 지배해온 우리의 감성으로는 절대 이해되지 않는 행동이다. 이러한 사무라이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평민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자신의 잘못이 없으면서도 무조건 사무라이에게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해야했다. 일본인의 과잉 친절도 그들만의 아픈 역사적 배경이 있었다.

  그러나, 자신의 잘못이 아닌데도 먼저 잘못했다고 용서를 구하는 일본인이지만, 일본이라는 국가를 보면 우리의 상식은 무너진다. 우리에게 했었던 수 많은 역사적 죄를 그들은 인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일본의 식민지배 때문에 한국이 발전했다고 말한다. 국가나 민족이라는 전체속에서 일본인이라는 개인은 목소리를 낮춘다. 강대국인 미국앞에서는 너무도 작아지는 일본이,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서만은 근거없는 자신감과 오만으로 다가온다. 호사카 유지 교수가 일본인이 많이 읽는 고전은 "손자병법"이라고 말했다. 전쟁이라는 관점에서 그들은 미국은 절대 이길 수 없는 절대강자이며, 한국은 손만까딱하면 제압할 수있는 약자로 보이나보다.

 

2. 한국과는 다르지만, 일본과 중국은 너무도 닮은 것들

  한국은 일본과 중국 사이의 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말은 모든 분야에 적용되지는 않는다. 타인의 일에 간섭하지 않으려는 습성은 중국인과 일본인이 놀랍도록 닮아 있다. 그에 비하면, 우리 한국인은 놀랍도록 타인에 대해서 관심이 많다.

  중국 TV에서 시민을 대상으로 실험을 했다. 공원에서 아이를 납치하는데,공원에 있었던 그 어떤 사람도 이를 신고하지 않았다. 이러한 충격적인 모습은 일본에서도 발견된다. 우수근의 '21세기 한중일 삼국지'에는 저자가 겪은 일화가 소개되어 있다. 추운 길거리에 사람이 쓰러져있는데 아무도 도우려하지 않는다. 저자가 그 사람을 건물안으로 옮기고 경비원이 구급차를 부르는 동안, 같이있었던 일본인 친구들은 자리를 피했다. 일본에서 고 이수연씨가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을 구하려다가 자신의 목숨을 잃어버린 이야기에 일본인이 충격을 받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중국이라는 거대한 바다 속에서 괜히 잘못 남의 일에 엮이게 된다면, 자신의 가족과 친구들이 다칠 수 있기에 중국인들은 타인의 일에 나서려 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일본의 경우에도 칼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타인에게 신세를 지는 것도 싫어하고, 신세를 받는 것도 싫어하는 극단적인 문화가 죽어가는 생명을 보고도 못본척하는 삭막한 일본인을 만들었을 것이다.

  이러한 중국과 일본에 비해서, 우리는 어떠한가? 기저질환이 있어 마스크가 필요한데, 마스크를 구할 수 없다며, 보리쌀과 마스크를 물물교환하자는 인터넷글이 올라온 적이 있었다. 이 글을 읽은 한 시민이 그 사람을 직접 찾아가서 마스크를 선물하고 왔다는 훈훈한 일이 벌어졌다. 사회적 약자를 위해서 4월이 올때까지 마스크를 사지 않겠다는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코로나19를 이겨내는데, 한국인의 문화는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타인의 일에 간섭하지 않으려는 습성은 시위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일본은 잘살게 되어 나서는 것을 싫어하게 되었고, 그래서 자신과 관계 없는 정치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우수근은 말한다. 물론, 나의 생각은 사무라이가 지배했던 일본의 역사에서 원인을 찾아야한다고 생각한다. 한편, 중국은 강력한 중앙정부가 무서워서 시위를 하지 못한다. 단, 자신의 생존권과 관련된 일에 대해서는 '상방'이라는 시위를 하기 시작했다. 반면 한국은 어떠할까? 박근혜 최순실 사태를 겪으며, 세계인들이 놀라는 촛불 혁명을 이뤄냈다.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외면하지 않고 가족과 함께 촛불 문화재를 열며 박근혜 최순실을 권좌에서 끌어냈다. 조선왕조를 당파싸움만하다가 멸망한 나라라고 폄하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붓이 지배하는 나라이기에, 자신의 주장은 목숨을 걸고서라도 꿋꿋하게 했다. 사약을 받아 마시면서도 자신의 말을 하는 선비정신이 있었기 때문에 조선왕조가 500년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의 선비정신은 21세기 한국에서 촛불혁명을 일으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나는 이를 '역사적 무의식'이라 말하고 싶다. 우리는 모르지만, 우리는 '역사적 무의식'이 잠재되어 있다. 그리고 위기의 순간, 우리의 선택이 필요한 시기에 '역사적 무의식'은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지금의 코로나 19 위기 속에서도 우리의 '역사적 무의식'은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시위를 이야기 했으니, 한중일의 정치에 대해서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은 투표 제도 자체가 후진적이다. 유권자가 지지하는 사람의 이름을 투표용지에 적접적어야한다. 한지역구에서 대를 이어서 국회의원을 하는 집안이 있을 정도이다. 마치 에도막부시기 지방의 다이묘들을 보는듯하다. 중국은 어떠한가? 중국 공산당 독재를 비판할 수 없다는 사실은 코로나 19를 강력한 통제의 방식으로 처리하는 중국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코로나 19에 대해서 친구들과 의견을 교환하며 대책을 논의하던 리원량이라는 의사는 중국 당국에 잡혀가 다시는 이와같은 일을 하지 않겠다는 반성문을 쓰고 풀려났다. 그리고 리원량은 환자를 치료하다가 코로나 19에 걸려 저세상으로 떠났다. 중국과 일본은 서로 다른점이 많지만, 정치적으로는 중국 공산당 일당독재와 자민당 일당 독재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서로를 미워하지만, 너무도 둘은 정치적으로 닮아 있다.

  반면, 한국은 이명박근혜 시기의 어둠을 뚫고, 촛불혁명의 민주주의를 완성해가고 있다. 중국식 통제 방식으로 코로나 19를 극복하는 세계의 여러 나라들과는 대조적으로 우리는 민주주의의 자율성을 살려가며 코로나 19와 싸워가고 있다. 한국의 극복사례와 중국의 극복사례는 단순히 두가지의 코로나 19 극복사례가 아니다. 민주주의의 자율성과 공산주의의 통제정책의 대결이다. 우리 한국은 그 막중한 역사적 사명을 띠고 오늘을 살고 있는 것이다.

 

3. 한중일의 공통점

한중일이 서로 다른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수근은 한중일의 결혼과 이혼, 그리고 성문화까지도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우수근이 소개하는 한중일의 결혼과 이혼, 그리고 성문화는 속도의 차이는 있지만, 비슷한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

  일본은 잦은 동거와 쉬운 이혼을 할 수 있는 나라이다. 성문화 역시 예전부터 개방적이었다. 한 마을에 사는 주부가 13세 혹은 15세 정도의 '동정' 청소년에게 성 관계를 위해 접근할 때 사용하던 의식을 소개한 부분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일본을 '성진국'이라고 말하는 이유가 이해되었다. 이밖에도 신주쿠의 성문화 소개는 우리의 상상 그이상의 것들이었다.

  중국 또한 자본주의 물결이 넘실되면서, 이혼이 쉽게 되었다. 부부사이의 문제가 없는데도 새로운 파트너를 찾기 위해서 이혼을 하는 경우도 있다. 성문화도 개방화의 길을 걷고 있다. 중국 호텔 주변에서 쉽게 하룻밤을 자자는 여성이 있다는 것은 놀랍지도 않았다. 놀라운 것은 중국인들은 축첩에 대해서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그를 부러워한다고 우수근은 말한다. 공산주의 중국도 성문화 만큼은 빠른 속도로 개방화의 길을 걷고 있다.

  쉬운 이혼과 결혼, 빠르게 퍼져나가는 동거문화, 성에 대한 개방화는 한중일 3국이 각자 속도의 차이는 있지만, 출발점은 다르지만, 개방화라는 목표를 향해서 질주하는 듯하다. 다시 전통시대 유교문화가 지배이데올로기인 시대로 돌아가지 않는 이상, 이러한 개방화는 바뀌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것을 개인 자유의 확대와 행복추구라는 점에서 긍정해야할까? 아니면 성의 문란과 안정적인 가정의 해체라는 점에서 부정적으로 보아야할까?

 한중일의 공통점 중에서는 씁쓸한 것이 많다. 그중에 하나가 교육 분야의 문제점과 영어를 숭배하는 문화이다. 고등학교에서 일본어 선생님이 일본에서 어설푼 일본어를 하기 보다는 영어를 하는 것이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다고 말하셨다. 그런데, 이러한 모습은 중국에서도 마찬가지란고 우수근은 말한다. 한국의 경우는 말하지 않아도 우리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영어를 배우기 위해서 막대한 돈을 쏟아 붓고 있으며, 외국인이 영어로 길을 물어보면, 영어를 하지 못해 부끄러워하는 우리의 모습을 보면서, 씁쓸해질때가 많다. 대국이라 자처하는 중국마쳐도 영어에 주눅들고 있다는 사실을 보면서, 언제쯤, 한중일 삼국이 영어 숭배에서 벗어날지 한숨이 나온다. 아마도, 중국이 G1으로 우뚝 솟는다면 가능할까?

  교육 분야도 한중일이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다. 학교붕괴, 엄벌주의의 문제를 보면서, 미국식 경쟁교육을 따라하며, 많은 교육 문제를 야기하고 있는 한중일 삼국이 머리를 맞대고 참다운 교육을 위해서 고민한다면 해결책을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우수근의 '21세기 한중일 삼국지'는 중국과 일본을 통해서 우리를 다시 비춰볼 수 있는 기회를 안겨주었다. 빠르게 자본주의 사회로 발전하고 있는 중국이 자본주의의 문제점도 빠른 속도로 키우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고, 기미가요와 히노마루를 이용한 국가주의 교육에 저항하는 젊은 교사들의 용기있는 행동도 이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1인자를 추종하는 '대세주의적 영합관'을 가지고 있는 일본의 모습과 침묵하고 있기는 하지만 일본의 잘못을 직시하고 있는 많은 젊은이들이 있다는 사실은 일본이 가야할 길이 멀지만, 좌절만할 일은 아니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세계 어느 나라든지 이웃한 나라와 사이가 좋은 경우는 드물다. 가까이 있기에 서로 살을 부대끼며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편견을 갖기도 했다. 이제 21세기에는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서 서로를 알아가야한다.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상대의 눈동자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한발자국 더 다가가야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수근의 '21세기 한중일 삼국지'는 읽어볼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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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의 한일관계
동북아역사재단 엮음 / 동북아역사재단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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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사에 대한 기초지식을 넓히기 위해서 이 책을 펼쳤다. 한일관계사의 쟁쟁한 인물들이 각자 자신의 전공분야를 한꼭지씩 집필했다. 총 18꼭지의 글들은 상당히 깊이가 있었다. 깊이가 있는 만큼 어려운 내용도 있었다. 18번꼭지의 '일본의 외교 안정보장 전략의 변천과 한국'이라는 글을 이해가 힘들어서 저자를 살펴보았더니, 국제정치 전공자였다. 암튼, 18번꼭지의 산을 넘어 책을 다읽었으니, 다행이다. 이 책을 읽으며, 세가지 생각할 꺼리가 던져졌다.

첫째, 허동현이라는 사람의 정체는 무엇인가? 허동현 교수는 과거 새누리당 국회의원 대상 강의에서 식민지 근대화론 관련 강의를 했다. 뉴라이트 계열의 학자들과 친하다는데 허동현은 뉴라이트 학자인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의 글 '12. 오늘의 시점에서 본 한일관계'를 읽으며 그의 명확한 관점을 알고 싶었다. 글의 내용은 열린 민족주의에 대해서 논한 큰 무리 없는 글이었다. 그런데, 내가 알고 싶었던 뉴라이트에 대한 그의 명확한 견해는 없이, 혼란만 계속되는 글이었다.

 

  "최근 우리 지식사회는 정치지향과 세계인식을 기준으로 불때 크게 세 그룹의 지식인 집단으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중략) 민중적 민족주의 담론을 지향하는 지식인 집단이다. (중략) 다른 하나는 (중략) 뉴라이트 계열의 경제사학자 또는 정치사학자들이다. 마지막 하나는 (중략) 세계 시민 또는 민중의 연대가 필요하다고 보는 서양사학자와 역사사회학자들이다. (중략) 호랑이에 쫓겨 나무 위에 오른 누이와 같은 오늘의 우리 눈앞에 드리워진 동아줄 세 가닥 중 어떤 줄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우리를 살릴 생명줄일지 못내 궁금하다."-202쪽

 

허동현도 궁금하니, 나는 얼마나 궁금하겠는가? 허동현! 그의 정체는 무엇인가?

둘째, 일본 지식인은 살아있는가? 일본의 지식인들은 천황제 앞에서는 작아지는 모습을 보인다. 물론, 천황을 비판했다가 총격을 받은 나가사키 시장의 예처럼 목숨을 걸어야하는 일이기도하다. 가토 노리히로의 주장은 참으로 신기하다. 천황의 전쟁책임에 대해서 인정하는 것 같기도 하면서, 인정하지 않는 듯한 주자을 하기도 한다. "가토는 천황의 이름으로 일으킨 침략전쟁에서 희생된 2천만 '아시아의 희생자'에 대한 가해책임은 '일본 국민'에게 있으며 천황의 전쟁 책임은 천황의 이름 아래 죽은 300만의 '자국의 전사자'들에 대한 책임"을 주장한다. 이 무슨 괴변인가? 천황이 아시아인에게 저지른 만행은 죄가 아니란 말인가? 천황앞에서는 작아지는 일본 지식인의 나약함에 경의를 표한다. 더 나아가서, 미국과한 태평양전쟁 즉, 1941년 '선전조칙의 서명자'로서 책임만 천황의 책임으로 인정한 것도 그들의 빈약한 의식을 드러낸다.

셋째, 힘이 없는 정의는 공허한 메이리인가? 도쿄 전범재판소에서 정의가 실현되지 못했다. 전쟁 최고 책임자인 천황이 처단되지 않았고, 강대국 민국의 입맞에 맞는 재판이 무리하게 진행되었다. A급 전범에 대한 사형집행되 제대로 되지 않았으며, 그들 상당수가 일본 정계와 사회분야에서 다시 등장했다. 정의는 반드시 승리한다는 말이 강조되는 이유는, 정의가 반드시 승리하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도쿄 전범재판은 이를 반증한다.

 

이 책을 통해서, 한일관계에 대한 지식을 얻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서문에서 말했듯이, 학계의 전문적인 글들을 대중을 위해서 쉽게 풀었느다고 했는데, 이를 쉽게 읽을 대중이 많지는 않을 것 같다. 전문적 글쓰기 훈련이 되어있는 저자들이 쉬운 글을 쓰기 힘들었을 것이고, 여러 저자의 글을 모아 놓았기 때문에 저자들의 쉬운 글쓰기 역량이 균질하지도 않았다. 쉬운 글쓰기를 하는 전문 저자를 섭외해서 이 책을 쉽게 풀어쓰도록 하는 것은 어떨까? 동북아역사재단에 제안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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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사의 변혁기를 본다 - 사회인식과 사상
김용덕 / 지식산업사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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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이 역사를 추동하는 것일까? 역사가 사상을 낳은 것일까?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라는 고루한 질문 같지만, 역사와 사상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사상이 역사가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제공하기도하고, 때로는 시대적 필요속에서 새로운 사상이 등장하기도한다. 이를 일본사에서 찾아보고 싶었다. 그래서 '일본사의 변혁기를 본다.'를 꺼내들었다.

 

1. 역사가 사상을 낳다.

급격한 역사의 변화는 필연적으로 현실을 정당화 시킬 수 있는 사상을 필요로한다. 일본사에서도 이러한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첫째, 조큐의 난 이후의 사상의 변화이다. 무사정권이 일본 덴노 정권을 무력으로 제압한 조큐의 난 이후, 기존의 하늘의 자손이 군주가 된다는 신손위군설을 대체할 사상이 필요했다. 무사정권은 유교의 덕치 사상으로 자신을 합리화한다. 즉, 천황가를 떠받치던 아마테라스 오미카미와 하치만신의 백왕수호에 대한 의구심은 군왕이 덕이 없으며 하늘이 그를 폐할 수 있다는 덕치 사상과 쓰루카오카 하치만이 무가정권의 수호신으로 부상한다. 사상이 현실을 합리화하기 위해서 호출된 사건이다.

두번째는 무로마치 시대에서 전국시대에 '도리'와 '천도'를 강조한 사례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하극상의 시대! 무사들은 하극상을 예방하거나, 자신의 하극상을 정당화하기 위한 사상을 필요로했다. 무사들은 '도리'와 '천도'라는 유교적 정치 사상을 호출한다. 특히 오다노부나가는 '천하'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어국의식'과 다른 자신만의 의식을 드러냈다. 오다노부나가는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새로운 단어를 호출했다.

셋째, 막부말기 부터 메이지 유신시기에 있었던 '정한론'이다. 쓰시마주 개항을 둘러싸고 막부의 원조를 받아내기 위해서 조선 정벌론이 대두되었고, 이후, 메이지 정부에서 나약한 조선을 정벌하자는 주장이 대두되었다. 외부의 커다란 충격이 가해지자, 이를 조선 정벌을 통해서 내부의 문제를 숨기고 단결을 강화시키고자하는 그들의 의도가 섬득하다. 그렇다면, 지금은 다를까?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 일본은 급속히 쇄락하고 있다. 이러한 내부의 문제를 숨기기 위해서 일본의 아베정권은 경제전쟁을 벌이고 있다. 역사는 반복되기도 한다.

  인간은 합리적 존재이기 보다는 합리화하는 존재라한다. 이상 살펴본 세번의 사례는 일본인들이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기 위해서 새로운 사상을 만들거나 기존의 사상을 호출한 사례이다. 이렇게 만들어지거나 호출된 사상이 이후의 역사에 불행한 영향을 미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2. 사상이 역사를 이끌다.

위대한 사상이 새시대를 열기도한다. 독일의 철학자 칼 야스퍼스가 말한 '축의 시대(BC 800~AD200, Achsenzeit)에 새로운 사상과 철학이 중국, 인도, 그리스, 페르시아에 등장했다. 그리고 이 시기 발생한 사상은 이후 역사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일본에도 이러한 사례가 있다.

  첫째, 메이로쿠샤를 중심으로한 일본 지식인들의 치열한 논쟁이다. 후쿠자와 유키치를 비롯한 일본의 쟁쟁한 지식인들이 '서양인의 국내 여행'문제를 비롯해서 '대의기관 수용'문제와 같은 심도 깊은 문제에 대한 논쟁을 했다. 일본이 근대화를 성공시킬 수 있었던 이유 중에 하나는 지식인들이 치열한 논쟁이 있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길을 가야할 변혁의 시기에 일본이 나아가야할 새로운 길을 제시했던 이들이 있었기에 일본의 근대화는 성공할 수 있었을 것이다.

  두번째 사례는 "수양"이라는 책의 저자 니토베 이나조이다. 니토베 이나조는 "무사도"라는 책을 저술해서 서양에 일본도 서양의 "기사도"에 필적할 만한 나름의 일본정신이 있다는 주장을 한 사람이다. 메이지 유신의 급성장 시기를 지나서, 청일 전쟁과 러일전쟁 이후, 서양학문을 배운다는 것이 미래를 보장하지 못하게 된다. 이때, 청년들에게 다양한 글을 통해서 새로운 위안을 준이가 바로 이토베 이나조 이다. 마치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저술한 김난도 교수와 같은 일을 니토베 이나조가 한다. 니토베 이나조가 말한 수양의 한계를 살펴보자.

 

  "계속 노력하였음에도 끝까지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는 어찌할 것인가? 여기서 수단과 목적의 전이가 생긴다. 수양의 목적은 '공명과 부귀를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 주의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역경에 빠지더라도 일상생활에 완벽을 추구하며 그 속에 행복을 느끼며 감사의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라는 것이 바로 니토베 수양론의 핵심이었다. 급속한 계층상승이 더 이상 불가능한 사회에서, 청년들이 사회적 불만세력을 형성하지 않도록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서 의미를 찾으며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도록 도움을 주는 논리, 사회의 문제를 '남들에게 인정받지 못하여도 분노하지 않는 마음'이라는 내면의 문제로 바꾸는 논리, 그것이 체제의 안전장치로서 니토베 수양론의 역할이었다."-276쪽

 

 니토베 이나조의 '남들에게 인정받지 못하여도 분노하지 않는 마음'은 공자가 말한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라는 말과 정확히 일치한다. 열심히 현실 권력에 등용되길 바랬던 공자가 말년에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세상을 향해서 스스로 던진 위안의 말이다. 사람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화내지 않는다면 역시 군자가 아니겠는가?라는 말은 더이상 계층 상승을 할 수 없는 일본의 상황에서 현실에 만족하라는 니토베 이나조의 말과 상통한다. 공자의 말은 이후, 수많은 군자들을 만들었다. 그러나 니토베 이나조의 말은 현실에 만족하며 잘못된 현실정치에 분노하지 않고 사회혁명을 일으키지 못하는 식물청년들을 양산해냈다. 그렇게 일본의 정치발전 가능성은 니토베 이나조 시기부터 사라지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사상은 현실을 정당화 시키기 위해서 호출되지만, 호출된 사상은 새로운 시대를 만든다. 메이지 유신 시기 근대화된 일본을 만든 지식인들은, 이후 자민당 일당지배 시스템을 만들드는데 일조했다.  한시기의 성공이 이후 시기의 성공을 담보하지 못했다.

 

3. 일본을 발견하다.

일본을 모르는 사람은 일본을 쉽게 무시한다. 일본사를 살펴보면, 일본의 모습에 놀라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며 일본을 모르는 우리가 놀라는 일본의 모습을 살펴보자.

  첫째, 일본 고대 역로의 모습이 놀랍다. 일본 고대 역로는 최소 9m, 최대 20m라는 넓은 폭을 가지 도록였다. 산을 깎고 계곡을 메우면서 직선으로 개설된 도로였다. 일본 고대를 낮추어 보았던 나에게, 율령지배가 세밀히 갖춰진 일본의 모습은 충격적이다. 우리 고대에는 이러한 역로를 가지고 있었는가? 세밀한 발굴을 통해서 삼국시대 역로의 모습이 드러나길 기대한다.

  둘째, 일본의 존왕양이론, 주전론의 진실이다. 우리의 위정척사파 처럼 일본의 존왕양이론자들도 일본과의 통상을 적극적으로 반대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내가 그러했다. 그러나, 일본의 주전론, 양이론을 주장하는 이들조차도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전략적 주장일뿐 시대 변화를 파악하지 못한 못난 주장을 한 사람들은 아니었다. 그들은 시대변화를 읽고 있었다. 대표적인 양이론자인 도쿠가와 나리아키역시 전쟁을 주장하거나 화친을 선택지에서 배제시키지 않았다. 그는 무모한 주전론자라기 보다는 전략적인 외교가이자 술책자였다.

  서양세력을 막을 구체적 방법 없이 무모한 개항반대, 개화반대를 주장했던 우리의 위정척사파와 다른 일본인들의 대처는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그것은 '손자병법'을 신봉하는 무사와 주자학에 경도된 유학자의 차이가 아닐까? 현실을 냉철히 파악한 위해서 살아남기 위한 방법을 모색한 일본의 사무라이와 실리보다는 명분을 중시여기는 조선의 유학자의 차이가 서양 제국주의자의 충격에 너무도 다른 대처를 했다.

  셋째, 다이쇼 데모크라시시기 '모성보호논쟁'이다. 좋은 집안의 라이초와 기쿠에를 비롯해서, 빈농출신으로  해외 배춘부로 팔려갔다가 탈출하여 남편에게서 글을 배운 야마다 와카가 "주부지우"라는 잡지에 자신의 주장을 치열하게 전개했다. 마치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의 한국의 모습을 보는듯했다. 물론, 우리의 6월 민주항쟁이 민주주의의 진보로 이어졌다면, 일본의 다이쇼 데모크라시는 1930년대 군부 집권으로 싹이 잘려나간다. 그러하더라도 다이쇼 데모크라시 시기 벌어진 '모성보호논쟁'의 치열함은 나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그것은 이 역사가 일본 여성운동의 자신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상은 시대와 소통하며 발전한다. 시대를 떠난 사상이 없듯이, 사상 없는 시대도 존재할 수 없다. 역사의 고비고비마다 치열히 사상과 역사가 호흡했다. 역사가 사상을 호출하기도하지만, 사상이 새로운 시대를 호출하기도한다. 그렇다면, 우리시대에 우리는 어떠한 사상을 호출하여 새로운 시대를 만들것인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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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빚어낸 여섯 도읍지 이야기
이유진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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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천년고도 시안, 용문석굴로 유명한 뤄양, 찬란한 송나라의 수도 카이펑, 남송의 낭만이 깃든 항저우, 육조 문화가 꽃을 피운 난징, 농경민족이 세운 명나라와 유목민족이 세운 원나라, 청나라의 수도 베이징의 역사와 문화를 재미있는 일화를 곁들여 서술했다. 특히 각 도읍지의 문화 유적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어 중국 도읍지를 답사 혹은 관광하는 여행객들에게 좋은 안내서 역할을 할 수 있는 책이다. 중국의 도읍지에 대한 기초 지식이 부족한 나에게 이번책은 꼭 읽어 보고 싶은 책이다. 책을 읽는 내내 마치 중국의 여섯 도읍지를 여행하는 듯한 착각을 했다.

 

이 책의 모든 내용을 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두가지가 나의 머릿속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첫번째는 용문석굴의 많은 불상들이 불법적으로 뜯겨져 외국으로 반출되었다는 사실이다. 딱딱한 돌들을 쪼아서 외국에 팔어버린 중국인과 이를 사들여 자국에 전시하는 뻔뻔한 제국주의 국가들의 행태는 분노를 자아낸다. 용문석굴의 불상을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는 나라는 1위가 일본이고 2위가 미국이다. 대부분 반환되지 않고 있다. 한국의 수많은 문화재도 외국을 떠돌고 있다. 동병상련의 아픔을 느끼며 도덕보다는 힘이 앞서는 국제사회의 냉엄함을 다시 한번 절감한다. 이러한 양심없는 국가에 비해서 캐나다 국립 미술관에서는 간경사 마하가섭상이 불법 반출되어 캐나다 국립 미술관에 흘러들어온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자진해서 중국에 문화재를 돌려주었다. 당연히 인간으로서 해야할 일이 칭찬을 받는 경우가 많다. 너무도 비정상적인 일들이 흔하게 일어나다보니, 주인에게 돌려주어야할 장물을 돌려주었을 뿐인데 칭찬을 받는다. 언제쯤이면 장물을 취득한 사람들이 이를 주인에게 돌려주는 사례가 미담으로 신문에 나오지 않는 날이 올까? 아마도 인간의 탐욕이 사라지지 않는 이상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두번째는 판관 포청천의 일화이다. 카이펑을 대포하는 포증, 즉 포청천은 드라마 '판관 포청천'에서 비춰진 것과 같은 박진감 넘치는 일화가 있지는 않다. 그러나 황제가 총애하는 장귀비가 장요좌를 포증이 탄학할 때는 그 당당함에 놀랄 수밖에 없다. 포증은 황제에게 침을 튀어가며 "외람되이 높은 자리를 차지한 채 부끄러움을 모르니 진실로 깨끗한 조정의 오물이고 대낮의 도깨비입니다."라고 말했다. 황제는 마음이 좋을 리 없다. 황제는 침을 닦으며 자리를 떴다. 결국 장요좌는 자리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자신에게 직간을 하는 신하의 말을 달게 듣는 인종의 어진 마음과 목숨을 걸고 옳은 말을 하는 포증의 당당함이 카이펑의 풍요를 가져왔다. 한국이라는 사회는 과연 그러한가 물어본다.

  한국사회는 독재정권시기에 너무도 부정부패가 넘쳐났다.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사회는 깨끗해지고 있다. 하지만, 깨끗해야한다는 윤리가 진보세력에게 너무도 가혹하게 요구되고 있다. 우리는 노회찬을 잃었다. 그리고 조국을 법무장관에서 떠나보내야했다. 당시에는 사회적 관행이었을 수도 있고, 한국사회에서 높은 자리에 있으면 당연시 누리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시대가 변화하면서 예전의 관행과 특권이 더 이상 용납되지 않는다. 보수파들은 자신의 허물은 보지 못하고 진보세력의 티끌들을 맹렬히 공격한다. 성인 군자와 청렴한 성직자가 아닌 이상, 한국의 인사 청문회를 온전히 통과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정도로 우리 사회는 윤리적 요구를 강하게 하고 있다. 윤리가 상대파를 밀어내기 위한 작두가 아니라, 사회를 아름답게 요리하기 위한 요리칼일 수는 없을까?

 

중국의 역사를 바라보는 다양한 방법이 있다. 일반적인 방법은 중국의 역사를 태고적부터 현재까지 시간순으로 살펴보는 방법이다. 그러나 이방법은 역사를 시간순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잇점은 있지만, 역사책이 딱딱하고 재미없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이러한 역사책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주제별로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 주제별로 역사를 살필 경우, 역사의 재미를 느끼며 책을 읽을 수는 있으나, 역사의 큰 흐름을 파악하기 힘들다는 단점이 있다. 중국을 빛어낸 여섯 도읍지 이야기는 통사의장점인 시간 흐름 파악과 주제별 서술의 장점인 재미라는 두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책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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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혜윰 2020-01-07 21: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카이펑이 어딜까 하며 읽다보니 개봉부군요 ㅋㅋ 포청천하면 개봉부^^ 이 책 저도 읽어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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