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 역대 황제 평전 - 외척과 환관의 국정 농단으로 400년 제국이 무너지다 역대 황제 평전 시리즈
강정만 지음 / 주류성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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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사!! 무엇이 떠오르는가? 아마도 삼국지를 먼저 떠올릴 것이다. 삼국지를 읽으며 수십만의 군대가 서로 어우러져 진을 펼치고 용맹무쌍한 장수들이 지략을 펼치는 광활함에 매료되었다. 그에 비해서 우리의 역사는 좁은 영토에 유약한 문신들이 왕권을 견제하며 알콩달콩 싸우는 인상을 받았다. 초등학교 시절, 이야기 삼국사기를 읽으며 매료된 이유도 고구려의 용맹함 때문이다. 우리 역사에도 이러한 역사가 있구나!! 성인이 되어 중국의 역사를 심도있게 알고 싶어졌다. 그래서 강정만 교수의 역대 황제 평전 시리즈를 읽기 시작했다. 당, 송, 명, 청 역대 황제 평전을 읽고 이제 한나라 역대 황제 평전을 펼쳤다. 중국을 대표하는 한나라는 내가 기대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을까?


  첫장을 장식한 것은 한고조 유방이다. 초한지를 통해서 잘 알고 있는 인물이다. 사마천의 사기를 읽을 때도 받은 유방에 대한 인상은 공부잘하는 모범생이 아니라 껄렁대는 형님 같다는 것이다. 공부에 관심이 없고 친구와 어울려 놀기 좋아하는 전형적인 노는 스타일의 인간이다. 게다가 허풍도 쎄다. 여공을 만나기 위해서 돈도 없는자가 "축의금 일만냥을 내겠소"라는 말을 서슴없이 내뱉는다. 그러한 그가, 귀족 출신의 탁월한 지략을 갖춘 항우와 싸워 승리했다. 중국 문화의 원형을 탄생시킨 한나라를 건국했다. 

  우리 학부모는 공부만 잘하는 학생을 원한다. 허풍도 쎄고, 친구와 어울리며 공부에 관심없는 유방이 우리나라에 태어났다면 불량 학생으로 낙인찍혀 퇴학을 당했을 것이다. 태평세에는 공부잘하고 부모의 말씀을 잘듣는 모범생이 성공할 확률이 높다. 그러나, 부모님 세대의 법칙이 무너진 난세에는 모범생 보다는 자신의 법칙을 만드는 유방과 같은 인물이 난세를 평정한다. 그렇다면, 지금 대한민국은 난세일까? 아님, 태평세일까? 인공지능의 급성장, 기후위기, 미국 중심의 국제 질서의 붕괴!! 이것은 유방과 같은 인물을 필요로하는 난세의 증거가 아닐까?

  중국의 3대 악녀라하면 무측천, 여태후와 그리고 서태우를 말한다. 이중에서 여태후는 한고조 유방이 죽자 실질적으로 한나라를 통치한 여황제라할 수 있다. 정사에는 그녀를 악녀로 묘사하고 있다. 유방의 사랑을 받은 척부인을 팔다리를 자르고 두눈을 파내고 귀를 멀게하여 항아리에 담았다. 그리고 그 항아리를 돼지 우리에 집어 넣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아들 혜제에게 척부인을 보여주며 사람돼지라 말했다. 충격을 받은 혜제는 정치에 뜻을 잃고 술독에 빠져 스스로를 붕괴시킨다. 이것이 여태후를 악녀로 기억하는 우리의 근거이다. 그런데, 여태후 집권시기에 백성의 삶은 좋았다. 대외관계도 비교적 평화로웠다. 남성중심의 역사관이 무측천과 여태후를 악녀로 만들지 않았을까? 백성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무능한 남성 황제보다는 평화로운 여태후의 시기가 더 좋았을 것이다.

  중국 역대 황제 평전 시리즈를 읽으며 '왜 이리도 중국에는 못난 황제가 많은가?'라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명나라 역대 황제 평전'을 읽을 때, 너무도 많은 영산군과 철종을 합쳐 놓은 황제들을 보면서 명나라가 200년을 존속했던 사실 자체가 놀라웠다. 중국 왕조들은 건국 후, 빠른 전성기를 맞이한다. 그리고는 그 전성기가 오래가지 않고 빠른 쇄퇴기에 접어든다. 한왕조의 수명이 보통 2백년 정도이다. 한나라가 400년 동안 존속했다고는 하나, 이는 중간에 신나라의 등장을 빼고 전한과 후한을 합쳐서 만들어진 존속기간이다. 우리 나라의 왕조가 보통 500년 동안은 존속했다는 점을 본다면 중국의 역대 왕조는 단명했다고 볼 수 있다. 

  중국 한나라의 못난 황제는 환관과 외척의 전횡을 막지 못했다. 외척을 끌어들여 환관을 제거하면 외척이 발호하고, 외척이 환관을 제거하려 선비들을 끌어들였다가 환관에게 제거당하는 '당고의화'가 벌어지기도 했다. 황제 곁에서 황제의가 주색잡기에 빠져들도록하거나, 방술사에 현혹되어 정사를 그릇치게 만들었다. 

  여기 황당한 사건 하나를 예로 들어보자. 한 영제 시기에 화재로 소실된 남궁을 중건하기 위해서 낙안태수 육강은 토지세를 징수하자고 상소를 올렸다. 그런데 환관들은 그가 망국의 군주를 예로 들어 영명한 황제를 비판했다고 비판했다. 결국, 육강은 사형 선고를 받았다. 간신히 육강은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지만, 글귀 몇자를 꼬투리삼아 반대파를 죽이려하는 모습은 너무도 씁쓸하다. 

  물론, 이러한 일이 대한민국의 오늘에도 벌어지고 있다. 언론들이 야당 대표를 살해하려한 사건을 대서특필하기 보다는 목에 칼이 찔린 야당 대표를 헬기로 이송한 것을 트집잡아 특혜시비로 비화시켰다. 언론의 자유가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에게 진실을 보여주지 못하고, 자본과 권력의 시녀로 전락한 우리의 언론을 보면 그들이 한나라의 환관들과 무엇이 다른지 의문이든다.

  그렇다고 한나라에 충신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한환제 시기 양기 일족을 멸족시킨 5후는 국정농단을 한다. 서선이 자신의 첩이 되길 거부하는 이승의 딸을 묶어 놓고 과녁으로 삼고 술을 마시며 화살을 쏘았다. 이에 황부가 서선을 주살했다. 결국 그는 문초를 받고 삭발을 당했으며 중노동을 해야했다. 제북국 승상 등연은 후람과 단규의 하인과 식객이 행인의 재물을 약탈하자 이들을 처단했다가 파직당했다. 황부와 등연과 같은 사람은 한나라를 떠받치는 3퍼센트의 소금과 같은 존재였다. 거대한 바다가 썩지 않는 이유는 3퍼센트의 소금이 있기 때문이다. 어리석은 황제가 연이어 등극했음에도 불구하고 한나라가 전한과 후한 각각 200년씩 존속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들 3퍼센트의 소금과 같은 존재가 있었기 때문이다. 

  

  책장을 덮었다. 우리나라와 중국을 1:1로 비교하기에 무리가 있다. 우리나라는 중국의 한개 성보다 작다. 중국은 23개의 성이 있다. 이렇게 거대한 중국을 한명의 황제가 다스렸다. 그는 절대권력을 쥐고 있었다. 현명한 황제가 등극했던 시기에 중국은 우리가 두려워해야할 나라였다. 그러나 용렬한 황제가 집권하면 그를 꼭두각시로 만들어 중원의 권력을 농단하려는 자들로 들끓었다. 중국 역사에는 현군보다는 암군이 많았다. 그 속에서 중국의 백성들은 고통을 받아야했다. 강력한 황제권을 가진 중국의 땅에 사는 백성의 삶보다는 군약신강의 우리 땅에 살았던 백성의 삶이 보다 낫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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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대학 중국 특강 - 하버드 석학들의 36가지 질문, 중국의 현재와 미래를 묻다
하버드대학 중국연구소 지음, 이은주 옮김 / 미래의창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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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국제 정치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종종 국제정치를 평론한다. 그러나 그들은 미국에서 정치학을 배웠을 뿐이라 미국 중심의 국제정치라는 시각에서 국제정치를 바라본다. 아무리 유명한 대학을 나왔을 지라도 그의 시각이 특정국가의 시선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그는 외눈박이 평론가에 지나지 않는다. '하버드대학 중국 특강'이라는 책을 집어들면서 미국중심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바랬다. 그렇다면 이 책은 나의 기대를 충족 시켰을까?


1. 외눈박이 평론가

  미국인의 시선에서 중국을 바라보니, 그들의 생각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다. 

  첫째, 역사를 목적론적 시각에서 바라보며 아시아 여러나라들이 도달해야할 최종 목표를 서구의 사회라는 그들의 선입견이 짖게 묻어난다. 아서 클라인만이 쓴 '고령화와 정신건강 문제를 해결할 수있을까'라는 주제의 글에서 그는 중국이 "정치적 자유화가 실현될 가능성은 매우 높다."라고 단언했다. 그러나, 지금 그들에게 지금도 그러한 생각에 변화가 없느냐고 묻는다면 그들의 대답은 어떠할까? 

  중국인들은 서구의 민주주의를 비웃는다. 선거를 통해서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뽑고, 실력 이하의 후보를 대통령으로 뽑아 놓고는 탄핵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만드는 민주주보다 중국의 공산당 일당 독재를 더 좋은 제도라고 그들은 생각한다. 중국 공산당은 철저한 교육을 통해서 당원들의 실력을 키우고 있다. 중국 공산당 내부에서 치열한 경쟁을 통해서 능력있는 사람을 지도자로 배출한다고 자부하고 있다. 

  중국이 서구의 민주주의를 받아들일 것이라는 낭만적 생각을 지금도 고수하는 학자들은 드물다. 최첨단 안면인식 기술을 이용해서 축구경기장 안에 있는 지명수배범을 단시간 내에 찾아내는 것이 중국이다. 최첨단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여 중국 공산당 일당 독재를 더욱 견고하게 하고 있는 것이 지금 중국의 현실이다. 글쎄, 중국 경제가 붕괴하여 민중 혁명으로 새로운 민주주의 정권이 들어서지 않는 이상, 경제 발전이 민주화로 이어진다는 서구의 발전 단계론적 시각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둘째, 중국의 독자성을 보지 못하고 소련의 하수인으로 생각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엘리자베스 페리는 '중국 공산 정권은 정당성이 있는가'라는 글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의 이념과 정치제도의 뿌리가 전부 소련에 있는데 정작 소련은 혁명 전 중국의 모습과 닮은 점이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엘리자베스 페리는 중국 공산당이 대장정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소련과 연락이 두절되었고, 서구식 도시 폭동 전술을 버리고, 광대한 농촌으로 도시를 포위하는 전술로 노선을 바꾼 것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마오쩌둥은 무조건 마르크스-레닌 주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중국의 현실에 맞도록 이를 변형시켰다. 그랬기 때문에 광대한 중국 대륙을 차지할 수 있었다. "중화인민공화국의 이념과 정치제도의 뿌리가 전부 소련에 있"다는 주장은 중국의 독자성을 무시하고, 소련에 종속된 국가로 보는 전형적인 오리엔탈리즘적 시각이다. 

  이러한 시각은 북한을 소련의 괴뢰정권으로 보는 시각과 닮아 있다. 서구의 시각에서 혹은, 적에 대한 적대감으로 가득차 있는 우리의 입장에서 상대방을 바라보기에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한다. 그 어느 나라이든 외부의 새로운 제도를 받아들일 때에 자신에 맞도록 제도를 변형한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새로운 제도를 제대로 정착시킬 수 없다. 그러하기에 중국의 모든 이념과 정치 제도의 뿌리가 소련일 수는 없다. 또한 소련의 상황이 혁명 전 중국의 모습과 닮을 필요도 없다. 미국의 학자는 중국을 바라볼 때 있는 그대로의 중국을 바라보려 노력해야한다. 

  셋째, 동아시아인의 절박함을 이해하지 못한다. 에즈라 보겔은 '중일 관계는 개선될 수 있을 것인가'라는 글에서 일본이나 중국이 "영토 그자체로는 별 가치도 없는 섬이" 양국간의 가장 큰 갈등 요소라고 지적했다. '댜오위섬/센카쿠열도'의 가치와 그 섬에 얽힌 역사적 의미를 미국인으로서는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댜오위섬/센카쿠열도' 근해에 묻혀 있는 자원과 청일 전쟁 이후 굴욕적으로 '댜오위섬/센카쿠열도'를 청나라가 일본에 넘겨 주어야했는지를 기억한다면 절대 '별 가치도 없는 섬'일수가없다. 

  타인의 뼈를 애는 고통보다 나의 손톱 밑의 가시가 더 아픈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세계 최강 천조국에서 중국과 일본이 '댜오위섬/센카쿠열도'이라는 작은 섬을 두고 첨예하게 대립하는 것 우수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작지만 큰 섬이 '댜오위섬/센카쿠열도'이다. 이 섬에 대한 영유권을 일본이 포기하지 않는 이상, 일본은 중국인들에게 가했던 '난징 대학살'로 대표되는 만행을 반성하지도 않으며 이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약속도 했다고 볼 수 없다. 

  넷째, 중국인의 내면일 이해못한다. 엘리자베스 페리는 '중국 공산 정권은 정당성이 있는가'라는 글에서 시진핑 정부가 추진하는 반부패 운동의 핵심 설계자이자 집행자인 왕치산이 "중국 공산당의 합법성(정당성)은 역사에 근거하고 있으며, 이는 인심(민심)의 향배에 따라 결정된 것이자 인민의 선택이기도하다."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미국인인 그의 입장에서는 베버가 말한 전통, 카리스마, 합리성을 들먹이며 정권의 정당성을 논해야하는데 왕치산을 베버의 이론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서구의 이론에 입각한 설명이 아니면 논리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는 서구중심주의에 물들어 있는 서구인의 귀에 왕치산의 논리가 논리적인 설명으로 들릴리가 없다. 

  서구인들이 기독교의 세계관으로 세상을 바라보기에 죽어서 신의 심판을 두려원한다면,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인들은 역사를 두려워한다. 청사에 이름을 남기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는 선비들에게 역사에 오명을 남기는 것은 참으로 두려운 일이다. 역사에 어떻게 기록되는가를 중시여기기에 아이러니하게도 역사를 새로 쓰는 일들이 흔하다. 우리 나라도 보수 정권이 역사 교과서를 자기 입맛데로 다시 쓰려했기에 논란이 일었던 적이 있지 않은까!

  중국을 연구하는 전문가라는 사람이 중국인의 세계관을 이해하지 못해서 '역사적 정당성'이라는 개념으로 공산당 정권의 권위를 설명하려는 "발상 자체가 매우 흥미"롭고 "본질적으로 매우 모호한 개념"이라고 표현한 것은 실망감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미국 학자라는 한계는 이책 곳곳에 묻어있다. 하버대학 페어뱅크 중국연구소의 탁월한 학자들도 서구 학자들이 가지고 있는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는 현실이 못내 씁쓸하다. 


2. 중국 예외주의

  "중국인의 피속에는 남을 침략하는 유전자가 없다."는 시진핑의 말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중국의 역사를 살피지 않고, 한국의 역사만 살펴보아도 이 말의 허구를 잘 증명할 수 있다. 수나라와 당나라가 무수히 고구려를 침략한 기록을 시진핑과 중국인은 모르고 있는 것인가? 

  만약 '중국인의 피소게는 남을 침략하는 유전자가 없다.'는 말이 맞다면, 중국이 타이완을 무력 침공할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또한 중국이 티벳을 점령하고 티벳 문화를 파괴하는 일도 발생하지 않았어야했다.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라는 레파토리는 힘이 약한 우리 민족만 사용하는 수사라고 생각했다. 힘이 없어서 타국을 침략하기 보다는 타국의 침략을 방어하기에 급급했던 우리가, 우리의 역사를 미화하기 위해서 만든 구호가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중원을 호령하며 세상의 중심이라 자칭한 중국인들이 스스로를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라고 자부한다는 사실은 놀랍기만하다. 

  우리 민족은 타 민족과 다르다는 관념은 자신들을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라고 믿게했다. 재미 있는 것은 이러한 '중국 예외주의'는 중국인들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미국 예외주의' 신봉자도 있으니 말이다. '중국 예외주의'를 신봉하는 자와 '미국 예외주의'를 신봉하는사람일수록 외교적 강경 노선을 선호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또한 종교적 신념을 바탕으로 미국 예외주의를 신봉하는 자는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군국주의적 성향이 더 높다고 한다. 자신은, 자기 나라는 타인(타국)과 다르다는 관념이 타인에게 보다 폭력적일 수 있다는 사실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우리 혹은 우리 나라가 예외적인 존재라는 독선적 관념을 갖기 보다는 보편적 인간으로 우리 모두를 바라볼 수 있어야 너그러움이 생길 수 있다. 너그러움이 생겨야 폭력을 줄일 수 있다. 그러한 너그러움은 '전랑'외교를 포용외교로 바꿀 수있다. 지금 중국을 세계 여러 나라는 두려워하지만 존경하지 않는다. 진정한 패권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주변 여러 나라에게 두려움만 주어서는 안된다. 유학에 작은 나라가 큰나라를 섬기는 '사대'만 있는 것이 아니라, 큰나라가 작은 나라를 섬기고 보살피는 '사소'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해야한다. 

  어쩌면 중국 정부가 티벳을 비롯해서, 신장.위그루 자치지역에서 소수민족의 문화를 말살하려고 하는 모습도 '중국 예외주의'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일본 처럼 단일 민족을 만들고 싶어하는 중국이 '한족 예외주의'에서 벗어나 소수민족의 '위대한 문화 유산'을 잘 보존하고 그들과 조화를 이루는 길을 걷기 소망해본다. 


  이 책에는 사드가 "한국의 안보 상황에 별 보템이 되지 않는다."라고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보수파는 북한의 핵공격에 대비하기 위해서 사드를 설치해야한다고 괴변을 늘어 놓았다. 그런데, 정작 미국의 석학들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대와 남한 내 공격 표적의 거리가 너무 짧아 사드는 북한에서 발사한 미사일을 요격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국익보다는 미국의 국익에 매몰되어 국민을 속이고 국가의 안보를 위태롭게하는 협잡꾼들이 난무하고 있다. 이러한 협잡꾼들은 박근혜 정권 시기보다 더 활개를 치고 있다. 남중국해 문제로 국제 상설 중재 재판소에서 승리한 필리핀이 자국의 국익을 위해서 친미일변도의 외교술을 펼치기 보다는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며 현란한 외교술을 펼치는 것을 우리 정부도 배워야할 것이다. 중국관한 미국 석학의 글을 엮은 책을 읽으면서도 암울한 우리의 외교 상황을 떠올리며 걱정하는 것은 나도 한국인임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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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붉은 별 - 개정판
에드가 스노우 지음, 홍수원 외 옮김 / 두레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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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의 붉은 별'의 원제는 "Red Star of China"가 아니다. "Red Star Over China"이다. 즉, 'of China'이 아닌, 'Over China'이다. 직역하면 '중국 위에 떠있는 붉은 별'으로 해석할 수 있다. 에드거 스노는 중국 공산당의 중심지 바오안을 찾아갔다. 그곳에서 '홍비' 대장 마오쩌둥을 만났다. 에드거 스노가 직접 만난 마우쩌둥은 그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그리고 그가 이끄는 홍군은 '홍비'가 아니었다. 중국 인민의 지지를 받는 항일의식이 투철한 군대였다. 그가 책 제목에 'of'를 사용하지 않고 'over'을 사용한 이유를 그가 만난 중국 공산당원들을 통해서 이해할 수 있다. 에드거 스노가 만난 수많은 중국 공산당원과 그들을 이끄는 마오쩌둥을 바라보면서 나는 질문을 던진다. 마오의 실험은 성공했는가?

 기자 정신이 투철한 에드거 스노는 목숨을 걸고 '홍비' 지역으로 출발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마오쩌둥과 수 많은 공산당원을 만난다. 에드거 소노는 그들에게서 진정성을 발견한다. 지주와 자본가들로부터 노동자 농민을 해방시키고, 일본 제국주의를 물리치겠다는 그들의 열의는 책 곳곳에 묻어난다. 붉은 비적이라는 뜻의 '홍비'라는 단어는 '홍군'에 대한 멸칭이지만, 어쩌면 그들의 성격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단어일 수도 있다. 왜일까?
 마오쩌둥은 어려서부터 중국의 고전 소설들을 탐독했다. 그중에는 '수호전'도 있었다. 양산박을 중심으로 108 두령이 펼치는 이야기는 참으로 재미있다. 나도 그 재미에 푹빠졌던 시절이 있다. 억울함을 가슴에 품고 세상을 바로 잡기 위해서 송강을 중심으로 뭉친 그들의 의리와 전략은 마오쩌둥을 중심으로 세상을 바로 잡겠다는 중국 공산당과 닮아있다. 세상은 그들을 산적들이라고 부르지만 그들은 스스로 '하늘을 대신하여 의를 행한다'고 자부했다. 민중이 그들을 지지한 것도 소설과 당시 중국의 상황이 비슷하다. 
 그래서일까? 홍군이 구사하는 전략과 전술이 '수호지'와 비슷하다. 마오쩌둥이 창안했다는 16자 유격전술도 어쩌면 '수호지'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는지도 모른다. '수호지' 속의 108 두령은 탐욕스러운 관리와 부호를 혼내주고 그들의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준다. 홍군은 지주의 곳간을 털어 가난한 농민에게 나눠주고, 지주의 토지를 소작농들에게 나눠준다. 심지어는 '백비'라 불리는 국민당 군을 잡아서 죽이지 않고 그들을 재교육 시켜서 공산주의자로 만든다. 이 부분은 요괴들을 뉘우치게 만들어 바른 길로 인도하는 '서유기'와 비슷하다. 이러한 홍군의 전략을 에드거 스노는 '로빈후드 전략'이라고 부른다. '로빈후드 전략'은 탁월한 효과를 발휘한다. 대장정을 하면서 수많은 홍군이 죽어갔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홍군에 입대했다. 그리고 그들은 대장정을 완수했고, 국민당군을 괴롭혔다. 
  고단한 홍군의 생활 속에서 그들은 이에 불평을하지 않는다. 에드거 스노가 만난 홍군병사는 자신이 홍군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갖는다. 특히, 자신이 홍군에 들어오고 나서 글을 알게 되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병사의 삶과 활동 전체가 그들의 끊임없는 발전에 기여하도록 해야한다."(371쪽)는 홍군의 원칙은 중국농민에게 엄청난 매력이었다. 일자무식인 중국농민에게 홍군에 입대하는 것은 학교에 입학하는 것 이상의 효과를 가지도록 했다. 군사훈련뿐만 아니라, 한자공부 2시간, 노래와 그룹모임 등등의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개인의 발전을 이루도록 노력한 홍군의 모습은 참으로 놀라웠다.  
  홍군은 '수호지' 속의 108 두령과 다른 슬로건을 내건다. 바로 항일 투쟁이다. 에드거 스노는 이를 "이들의 투쟁은 제국주의라는 외부의 종양과 계급적 억압이라는 내부의 암을 동시에 도려내는 역할을 할 수 있었다."(547쪽)라고 칭찬한다. 마오쩌둥의 홍군은 정확히 현실을 인식하고 민중이 원하는 항일 전쟁을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그리고 에드거 스노가 홍군지역을 벗어난 직후에 시안사건이 발발한다. 드디어 제2차 국공합작이 이루어진다. 
  에드거 스노의 시선을 따라가다보면 질문이 밀려온다. 중학교 1학년 겨울 방학에 읽었던 유시민의 '거꾸로 읽는 세계사'에서 그려진 대장정의 모습은 참으로 경이로웠다. 설산을 임신한 마오쩌둥의 아내도 같이 걸어서 넘었고, 마오쩌둥이 일반병사보다 더 갖고 있었던 것은 모기장 하나 뿐이었다는 서술은 지금도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그런데, 유시민이 쓴 '거꾸로 읽는 세계사' 보다 더 감동적인 '중국의 붉은 별'을 읽으며 그때의 경이로움을 느낄 수 없다. 왜일까?
  책에 회족 청년에 관한 서술이 있다. 마홍쿠이와 일제타도를 위해서 홍군에 입대한 회족 청년은 목숨을 걸고 싸웠다. 에드거 스노는 그들의 뜨거운 열정을 책에 잘 담아 놓았다. 그런데, 지금의 현실은 어떠한가? 홍군이 되어 공산 중국이 건설되는데 일조한 회족 청년과 그 후손들은 지금 어떠한 삶을 살고 있을까? 뉴스 보도에 따르면, 신장 위그루 자치지역에서는 심각한 인권탄압이 이뤄지고 있다. 그들은 종교의 자유를 박탈 당하고 있다. 교화소에 끌려간 회족은 심각한 인권유린을 당한다. 과연 이것이 회족 청년이 바라던 이상적인 중국의 모습이었을까?
  마오쩌둥은 '수호지'를 읽으며 항일투쟁과 국공내전의 전략과 전술을 습득했다. 그리고 중국대륙의 주인이 되었다. 그러나, '수호지'에서 투쟁의 교훈을 얻을 수는 있으나, 바른 통치의 교훈은 얻을 수 없었던가 보다. 마오쩌둥은 독재자가 되었다. 대약진 운동으로 2천만에서 3천만명의 중국인이 아사했다. 문화대혁명으로 중국의 전통을 말살하고 수많은 영웅을 홍위병의 노리개감으로 만들었다.  
  "중국의 사회혁명 운동은 (중략) 앞으로 계속 성장할 뿐만아니라 변전을 거듭하는 가운데 결국엔 최후의 승리를 거두게 될 것이다."(550쪽)라고 에드거 스노는 마오쩌둥의 승리를 예견해다. 묻고 싶다. 그 승리는 중국 인민의 승리일까? 중화민국의 승리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마우쩌둥 개인의 승리였을까?
 마르크스는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라는 말을 했다. 그런데, 공산주의는 종교를 밀어내고 새로운 종교의 자리를 차지했다. 공산주의는 새로운 종교가 아니었을까? 이 책에서 볼 수 있듯이, 국공내전 상황에서 중국의 농민들은 소비예트에 자발적으로 참여했으며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모습도 보였다. 장제스를 중심으로하는 국민당의 탄압을 받았을 때 가장 순수한 모습을 공산주의는 보였다. 이는 박해받는 그 시기가 가장 순수하며 이상적인 모습을 보이는 종교와 닮아있다. 그리고 공산당이 권력을 장악하자 부패하고 독재의 모습을 드러낸다. 이는 권력을 얻는 순간 타락하는 종교의 모습과 너무도 흡사하다. 그래서 묻는다. 중국 공산당은 언제쯤 종교의 모습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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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붉은 별 - 개정판
에드가 스노우 지음, 홍수원 외 옮김 / 두레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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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통의 이곳 체류가 길어지는 것은 우리 탓이 아니다. 지난 월요일 도널드 씨15가 이곳에 도착한 직후부터 총통은 자신의 당연한 분노와 대화를 기피하는 감정을 다소간 억제하고, 우리 모두가 당면한 문제를 침착하게 충분히 협의했으며, 화요일에는 우리가 목표로 삼고 있으며, 또한 고(故) 쑨원 박사의 유지와 합치되는 몇 가지 논점에 원칙적으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나는 총통의 의견을 듣고 그와 함께 사태가 내전으로 진전되는 것을 막는 데 필요한 안전조치를 타협할 수 있는 사람을 난징에서 파견한다면 누구라도 환영할 것이라는 뜻을 타전했다. 총통이 자신을 석방하여난징으로 돌아가게 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한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나는총통이 자신의 약속을 이행할 것이라고 개인적으로 확신하고 있음에도 불 - P519

구하고 그가 난징에 도착한 후 내전을 계속하도록 설득당할 위험이 있다는점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도 이 점을 묵시적으로 인정해서 그후부터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이 문제 (즉 내전을 중지한다는 적절한 보장책을제시하는 문제를 처리할 수 있는 누군가가 난징에서 와서 총통이 수도로 돌아갈 수 있기를 기다렸으나 지금까지는 허사였다.
이것이 전부다. 왜 이처럼 지체되는지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누군가가 왔다면 그는 며칠 전에 돌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장쉐량 - P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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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 역대 황제 평전 - 역사를 통해 교훈을 얻지 못하는 자는 발전할 수 없다 역대 황제 평전 시리즈
강정만 지음 / 주류성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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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빠른 전성기, 전성기 이후 빠른 쇠퇴기'! 중국사의 특징이다. 이러한 중국사의 특징은 당제국에도 여실히 나타난다. 당고조 이연이 당제국을 건설하고, 당태종 이세민이 당제국을 강성대국으로 만든다. 그러나 측천무후가 유약한 당고종 이치를 대신하여 정권을 잡고 제국을 통치한다. 권력을 위해서라면 자식도 죽이는 것을 망설이지 않았던 측천무후 이후, 위황후가 측천무후처럼 황제가 되고 싶은 꿈을 실현하려했다. 이를 극복하고 황제가 된 사람이 당현종 이륭기이다. 그러나 안사의 난 이후의 당제국은 측천무후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급격히 쇠퇴한다. 


  측천무후는 어떠한 여인인가? 당태종의 여인이었다. 그러나 당태종이 죽고 감업사에서 비구니로 살아야했던 그녀는 당태종의 아들 당고종 이치에 의해서 다시 황궁에 들어온다. 그리고 이치의 마음을 빼앗아 황후가 된다. 황후가 되기 위해서 자신의 딸 안정사공주를 죽이고 이를 황후가 했다고 누명을 씌운다. 그리고 똑똑한 아들을 패위하거나 죽인다. 마침내 주나라를 세워 황제가 된다. 측천무후를 유교적 관념에 사로잡힌 사대부들은 악녀로 본다. 그러나, 측천무후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고 있다. 새로운 세력을 등용하고 백성들의 생활이 평온했다는 점을 들어 그녀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남총을 두어 자신의 성적 쾌락을 즐기고 권력을 위해서 자식을 가차없이 죽인 그녀를 어떻게 평가해야할까? 당태종 이세민은 현무문의 변을 일으켜 형을 죽이고 권력을 잡았다. 명영락제는 정난의 변을 일으켜 조카를 죽이고 집권했다. 조선 태종 이방원은 1,2차 왕자의 난을 일으켜 형제를 죽이고 권력을 잡았다. 조선 세조도 계유정난을 일으켜 조카 단종을 폐위하고 권력을 잡았다. 명분이 있는 사람이 권력을 잡아야하는가? 실력이 있는 자가 권력을 잡아야하는가? 측천무후를 악녀로 평가한다면, 형제를 죽인 당태종도 악인으로 평가해야한다. 당태종을 성군으로 평가한다면, 그녀도 성군으로 평가해야하지 않을까?

  측천무후는 단순히 힘만으로 권력을 유지시킨 것이 아니다. '건언십이사'를 당고종 이치의 명으로 반포했다. 여덟번째 조항에 '왕공이하의 관리들은 모두 '노자'를 공부해야한다.'는 조항이 있다. 남존여비 사상에 물든 유가를 대신해서 유연한 노장사상으로 사상적으로 자신의 집권을 정당화했다. 노련한 그녀의 통치술에 감탄을 한다. 측천무후! 그녀는 힘과 폭력만으로 사람을 겁박해서 통치하는 그런 수준 낮은 정치가가 아니었다. 

  반성하지 않는 역사는 반복된다. 당나라의 집권자들은 다시는 측천무후와 같은 여성이 등장하지 않아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은 반성하지 않았다. 통치시스템에 무슨 문제가 있기에 측천무후가 등장할 수 있었는지 반성하고 시스템을 보완했어야했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 어머니 측천무후 밑에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숨죽여 살아야했던 당중종은 고통스러운 시기를 같이 보낸 위황후가 국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위황후의 딸 안락공주가 조서 작성 및 반포에 참여하도록 했다. 제2의 측천무후가 만들어지도록 방조한 당중종은 결국 그녀들에게 독살당한다. 당중종은 불행한 역사를 극복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포기했다.

  현실을 직시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현실에 뛰어드는 용기가 없는 당중종과 같은 황제가 연이어서 등장했다. 태평공주에게 짖눌린 예종 이단, 장황후와 환관 이보국에 짖눌린 숙종 이형, 이보국, 정원진, 어조은 등의 환관에 국정을 농락 당한 태종 이예 등등..... 안사의 난 이후의 당나라 황제들은 측천무후의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하고 환관과 부인에게 황제의 위엄을 세우지 못하고 짖눌려살아간다. 쇠퇴해가는 당을 중흥으로 이끌 것 같았던 당무종 이염은 신선이 되고자 단약을 먹고 중독 증세를 보이며 33세의 젊은 나이에 죽고 만다. 

  안사의 난 이후 용렬한 황제가 연이어서 등극했음에도 불구하고 당나라는 289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중국대륙에서 건재했다. 용렬한 황제가 연이어 등극했음에도 나라가 망하지 않은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아마도 유교 사상에 깊이 심취한 관료 조직에 그 힘이 있지않을까? 효와 충을 핵심 가치로하는 유교 사상으로 무장한 관료 조직이 있기에 용렬한 황제가 연이어 등극해도 당제국은 망하지 않고 289년을 버티었다. 탄탄한 유교적 관료 조직이 있기에 탁월한 황제가 등극하면 대외팽창을 하며 전성기를 구가한다. 용렬한 황제가 등극한다할지라도 탁월한 유교적 관료 조직이 있기에 안사의 난이라는 커다란 충격 속에서도 나라가 무너지지 않았다. 


  '조선이라는 나라는 임진왜란 때 망하고 새로운 왕조가 들어서야했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조선 전기의 역동적인 모습이 조선후기에는 많이 사그라든 것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중국 당나라와 명나라의 역사를 살펴보면, 조선 후기 조선은 망해야할 정도의 나라는 아니다. 강력한 황제권을 누리는 청나라 황제가 '군약신강(君弱臣強)'의 나라라고 조선을 일컬었다. 군약 신강의 나라이기에 용렬한 왕이 등장하는 나라를 당치는 예가 적지 않은가? 중국 당나라와 명나라의 역사를 공부한 자라면 신권에 의해서 왕권이 견제되는 조선의 정치시스템을 함부로 평가절하할 수 없다. '당나라 역대 황제 평전'을 읽는 시간은 중국의 역사를 통해서 우리의 역사를 재평가해보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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