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딜레마 - 위대함과 위태로움 사이에서, 시진핑 시대 열전
박민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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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 10대부터 30대의 젊은 남성들이 혐중을 하는 그 근저에는 중국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한때 중국의 경제력은 우리보다 낮았다. 지금 중국의 경제력은 한국을 추월해서 당당한 G2로서의 위용을 보이고 있다. 중국 경제가 망할 것이라고 인디언 기우제 지내듯 말을하는 사람도 있지만, 자동차, 스마트폰, 우주 항공 분야는 세계적 수준이다. 중국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를 뒤로하고 중국에 대해서 바로 알고 싶었다. '중국 딜레마'를 읽기 시작한 것은 중국을 직시하기 위해서이다. 


  1부 안과 밖과 2부 설계자들은 중국을 이끄는 핵심 두뇌와 시진핑에 대한 소개를 하고 있다. 단순히 해당 인물의 일대기를 서술하기보다는 그 인물을 중심으로해서 중국 정치 전반을 설명하고 있다. 중국이라는 거대한 용을 움직이는 그들의 힘을 느낄 수 있다. 

  3부 중화의 꿈아래서, 4부 변혁의 불씨, 5부 영합과 저항은 1부, 2부와는 다른 인물을 중심으로 변혁을 꿈꾸는 인물들을 조명했다. 이부분을 읽으면서 중국에 대한 두려움을 느꼇고, 다른 반편으로는 중국은 과연 공산주의를 포기하자 않았는지 묻고 싶었다. 

  하나의 중국을 만들기 위해서 그들은 분열을 용서하지 않는다. 그것이 신장 지역의 투르크계 이슬람교도에 대한 재교육활동으로 진행되고 있다. 실크로드 수용소에서 무슬림 여성에 대한 강간과 폭력이 행해지고 있으며, 위그르 전통문화 수호자에 대한 투옥과 감시가 집요하게 진행되고 있다. 하나의 중화민족을 만들겠다는 중국의 집념은 중국내의 50여개 소수민족에게 한족문화를 강요하는 폭력적인 모습으로 전개되고 이다. 최첨단 안면인식 기술을 활용하여 빅브라더 사회를 완성한 중국은 하나의 중화민족을 만드는데 걸림돌이될 세력을 집요하면서도 정교하게 제거하고 있다. 그래서 중국이 두렵다. 

 이슬람교도에 대한 재교육이 이민족에게 행하는 폭력이라면, 중국내 민주화 운동은 같은 한족에 대하는 폭력이다. 강력한 중화민족국가를 만들려면 다원성은 용납할 수 없다. 결국, 톈안면 사건과 홍콩 민주화 운동을 폭력적인 방법으로 진압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된다. 한둥팡은 1989년 톈안먼 사건에 참가한 노동자이다. 미국으로 망명할 수도 있었으나, 그는 홍콩으로 가서 중국 노동자를 지원하는 활동을 이어갔다. 2019년 홍콩 시위에 그가 나타났다. "중국 노동자들의 5분의 1만이라도 스스로 대표를 뽑고 단체협상을 하도록 이끌어 낸다면 그때서야 '빈주적인 사회'를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러나, 중국은 고사하고 민주주의 모범국이었던 미국마져도 민주주의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한둥팡의 신념과 믿음은 깊은 먹구름이 드리워질 수밖에 없다. 

  위대한 하나의 중화민족을 만들기 위해서 중국은 대만의 독립을 용납하지 않는다. 대만이 독립을 주장할 수록 중국의 군사적 위협은 더욱 커진다. 독립이냐, 중국 본토 회복이냐를 두고 외성인과 내성인이 의견의 차이가 있는 상황에서 저자 박민희는 "해바라기 운동 이후 대만 사회의 도도한 변화를 중국은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는듯보인다."라고 지적한다. 글쎄, 대만의 독립을 나는 회의적으로 본다. 트럼프가 미국 언론에서 '대만문제는 중국이 알아서할 것이다.'라는 말을 했다. 트럼프가 베네수엘라의 마두르 대통령을 잡아왔듯이, 중국이 같은 일을 대만에게 할 수도 있다. 그래도 트럼프는 '그것은 중국이 알아서 할 일이다.'라고 할지도 모른다. 중국을 무력으로 점령하지 않는다하더라도, 중국은 대만내에 친중파 국회의원을 지원하고 스스로 붕괴는 방식으로 흡수통일할 수도 있다. 중국이 두려운 또하나의 이유이다. 

  하나의 중국을 만들기 위한 중국의 모습은 국가 존립을 위한 전략이기에 이해가간다. 물론, 동의한다는 말은 아니다. 그런데, 공산주의 국가인 중국이 스스로를 부정하는 모습은 이해할 수없다. 

  첫째, 중국은 노동자와 농민을 탄압하고 있다. 중국 공산당이 노동자와 농민의 지지 속에서 국민당을 몰아내고 중국 대륙의 주인이 되었다. 그런데, 수많은 농민공의 삶을 개선하는데 중국정부의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 더욱이, 중국 노동자에 대한 탄압은 너무도 폭력적이다. 

  2019년 광둥성 노동관련 엔지오 활동가들이 잇따라 체포되었다. 그들은 국가정권전복혐으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관련된 인물 중에서 선명위와 웨신등은 행방불명상태이다. 마르크스 사상과 마오쩌둥 사상으로 무장한 좌파 학생이 노동운동을 전개하자, 2018년 말부터 2019년 초까지 좌파학생조직과 노동운동조직을 뿌리뽑는데 폭력적인 모습을 보였다. 어디 그뿐인가! 2010년 폭스콘공장에서 10대와 20대 초반 노동자 18명이 잇따라 고층건물에서 몸을 던졌다. 이러한 비극을 중국 공산당 정권은 외면했다. 중국 노동자들이 '전태일 평전'과 '한국노동계급의 형성'을 읽으며 노동운동에서 희망을 찾으려하고 있으나, 그들에게 과연 희망이 될지는 의문이다. 그들의 노동운동이 결실을 맺기도 전에 로버트와 인공지능이 그들의 일자리를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대학을 졸업해도 제대로된 직장을 얻기 힘들며, 직장을 얻어도 노동착취를 당하는 현실에서 중국 젊은이들이 선택한 것은 탕핑이다. 구직과 노동을 포기하고 바닥에 누워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중국 젊은이들을 탕핑족이라한다. 또한, 선전의 싼허인력시장 주변에는 "싼허청년"들이 있다. 그들은 하루벌어 3일을 먹고, 때로는 노숙생활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들은 말한다. "착취당하고 떼먹히고 차별당하기 싫어서 일하지 않는다." 노동자와 농민을 위한 정권이라는 명분으로 탄생한 중국 공산당 정부가 노동자와 농민보다는 자본가를 위한 빅브라더로써의 역할을하자, 중국 젊은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저항의 방법은 탕핑과 싼허청년이다. 중국 공산당은 스스로를 부정한 것이다. , 


  중국공산당은 커다른 고민이 있다. 그 고민들은 땅과 인구가 너무 크고 많기 때문이다. 하나의 중국을 만들어 세계의 패권을 장악하고 싶은 중국의 야망은 안으로는 노동자와 농민, 그리고 소수민족의 희생을 강요하고 있고, 밖으로 대만의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늑대전사(전랑)'의 모습을 보면서 두려움과 측은함이 느껴진다. 중국민중에 대한 측은함과 폭주하는 중국에 대한 두려움을 함께 느끼며, 이웃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서 우리는 중국을 어떻게 이용해야할까? 더 깊은 고민에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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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준의 인문 건축 기행
유현준 지음 / 을유문화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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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느낀다.' 우리가 생각하는 문화재의 상당수는 건축물이다. 그리고 우리는 건축물 속에서 살아간다. 건축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은 우리와 너무도 밀접하게 관계를 맺고있는 우리의 창조물을 알아가는 과정이기도하다. '유현준의 인문건축기행'은 이런면에서 읽고 싶은 책이었다. 


  이책은 유럽과 북아메리카, 아시아에 있는 저자 유현준에게 충격과 감동을 준 30개의 건축물들을 인문학적으로 분석했다. '인문 건축 기행'이라는 제목을 보고, 파르테논 신전이나, 기자의 대피라미드, 중국의 만리장성을 소개했을 것으로 추측할 수도 있으나, 대부분 현대의 건축물들이다. 그래서, 책에 소개된 대부분의 건축물들은 나에게 낯설고 신비로웠다. 고전건축물들에게서 인문학적 탐구가 가능할뿐, 현대의 콘크리트 건축물들에게서 콘크리트 향기밖에 얻을 수 있는 인문학적 지식이있을까?라는 고정관념을 유현준은 멋있게 깨뜨려주었다. 

  유현준에게 인문학적 성찰을 준 건축물은 아시아보다는 유럽에 많다. 그러나, 유현준이 소개한 30개의 건축물 중에서 나에게 깊은 성찰의 기회를 준 건축물은 아시아에 있다. 홍콩에 있는 HSBC 빌딩이다. 사진으로 본 HSBC 빌딩은 별로 아름다운 건축물이 아니었다. 왜? 유현준이 HSBC 빌딩을 소개하는지 의아하기도했다. 그런데, 이 건축물은 첨단기술과 풍수지리라는 전통지리관념이 결합되어 탄생한 건축물이었다. 홍콩의 유명한 지관이 HSBC 빌딩이 '지어질 위치가 홍콩 경제의 맥이 흘러서 바다로 들어가는 길목이기 때문에 거기에 건물을 지으면 맥이 끊겨서 홍콩 경제가 안 좋아질 거라'고 경고했다. 포스터라는 건축가는 현수교 처럼 '인장력'을 활용해서 HSBC 빌딩을 건설한다. 풍수지리라는 전통 지리관념을 무시하고 HSBC 빌딩을 지을 수도 있지만, 건축가는 첨단 기술로 HSBC 빌딩을 지어 지관의 주장을 존중하면서도 현대적인 건축물을 완성했다. 

  그런데, 진정으로 내가 HSBC 빌딩을 최고의 건축물로 손꼽는 이유는 그 다음에 있다. HSBC 빌딩의 층은 홍콩 경제의 맥이 흘러서 바다로 들어갈 수 있도록 비워두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1층 광장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2층 로비에 도착하면 건축물의 내부가 시원스럽게 뚫려있다. 이것은 1층에 만들어진 광장에 태양빛을 내려보내는 통로였다. 그리고 1층 광장은 일요일에 갈데가 없는 홍콩의 가사도우미들이 쉴 수 있는 쉽터가 되었다. 필리핀을 비롯한 동남아시아의 가사도우미들은 평일에는 주인집 가정에서 노동을 하지만, 주말에는 주인집에서 나가있어야한다. 그녀들에게 쉴 수 있는 휴식의 공간이 많지 않은 홍코에서 HSBC 빌딩은 휴식처였다. 음침한 공간일 수도 있는 이곳이, 건축물의 내부가 시원스럽게 뚫려있기에 사회적 약자를 위한 밝은 휴식의 공간으로 탄생했다. 

  HSBC 빌딩의 내부는 다른 거물과 달리 엘리베이터보다는 에스컬레이터가 수직 이동의 주요수단이다. 좁은 엘리베이터에서 스트레스를 받기 보다는 여유로운 에스컬레이터에서 소통은 늘어난다. 게다가 HSBC 빌딩은 가운데가 비워있다보니 위층에서 건너편 아래층을 내려다보며 소통할 수있다. 건축가가 만든 공간이 건물안과 밖의 사람들에게 큰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개인의 이익과 사회의 이익을 합치될때, 자본주의는 인간의 얼굴을한다. 자본주의의 최고 경제 권력을 쥐고 있는 금융 회사 건물이 인간의 얼굴을 하고 있다. 이것이 건축의 힘이요. 건축가의 탁월함이다. 인간은 건축물에 둘러싸여 살아간다. 어떠한 건축물을 만들어 어떻게 활용하는가는 그 사회를 어떠한 사회로 만들 것인가를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아니다. HSBC 빌딩은 우리가 어떠한 건축물을 만들어야하는지를 깊이 성찰하도록 하는 인문학적 성찰을 안겨준다. 


  30개의 건축물은 나름의 감탄을 자아내는 작품들이다. 사실 이들 건축물이 시간이 지나면 문화재로 지정되어 이 시대를 대표하는 건축물로 후세에 기억될 것이다. 그리고 시대를 대표하는 건축물이 대한민국에도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유현준에게, 아니 세계의 건축가들에게 깊은 성찰과 감탄을 자아내는 현대 건축물이 이땅에 탄생하길 바라면서 펜을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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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만나는 대만사 수업 - 누구나 쉽고 재미있게 이해하는 400년 대만의 역사 드디어 시리즈 2
우이룽 지음, 박소정 옮김 / 현대지성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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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시아에 있지만, 잘 알지 못하는 나라! 대만이다. 동아시아사 수업을 준비하면서 대만의 역사를 제대로 알아보고 싶었다. 그렇지만, 그때는 제대로된 대만사 책이 없었다. 기껏해야, 중국의 역사를 서술하면서 언급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러던중, 서가를 거닐다가 '드디어 만나는 대만사 수업'을 보았다. 얇고 쉽게 풀어쓴 대만의 역사를 만난다는 생각에 책장을 펼쳤다. 


  책은 선사시대부터 반청항쟁기, 청나라 통치 시대, 일본 통치 시대, 중화민국시대라는 4시기로 구분하여 대만의 역사를 서술했다. 

  1부 '선사시대부터 반청항쟁기까지'에서 가장 인상 깊은 부분은 '국성야' 정성공에 대한 서술이다. 국민당 정부에 의해서 영웅화시킨 정성공의 모습부터 정성공의 어머니가 일본인이라는 점을 들어 일본과의 연결을 강조하는 일본의 시각, '폭군'으로 묘사하는 네덜란드 선교사 안토니우스 함브룩의 평가까지 소개한다. 역사교사답게 어느 한가지 시각을 결론지어 제시하기 보다는 다양한 시각을 제시하고 학생들 스스로 자신의 시각을 형성하도록 하고 있다. 그래서 자못 궁금하다. 저자 우이룽은 정성공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재미 있는 것은 정성공의 모습은 정말로 성공적이다. 본토회복을 노리는 중화민국의 입장에서, 대만을 지배했던 일본의 입장에서 정성공의 가치는 높으니 말이다. 

  2부 청나라 통치 시대를 서술하면서 청나라 시대 대만 원주민과 한족과의 관계에 대해서 서술한것이 인상 깊었다. 만약 우이룽이 국민당 지지자라면, 한족의 입장에서 이 시대를 서술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한족과 대만 원주민의 관계를 객관적으로 서술하려 노력했다. 한족에게는 기회의 땅으로 목숨걸고 와서 황무지를 옥토로 만든 자랑스런 개척의 역사이지만, 대만 원주민에게는 자신들의 땅을 침범하고, 한자를 모르는 원주민을 속여 땅을 빼앗는 도둑들이었다. 마치 유럽인들에 의해서 아메리커 원주민들이 학살당하고 결국에는 원주민 보호구역에서 살아야만하는 역사의 축소판으로 느껴졌다. 역시 역사교사로서 객관적인 시각을 갖추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3부와 4부를 읽으면서 역사교사 우이룽의 서술이 이해되지 않았다. 우선, 3부 일본 통치 시대에서 주류를 이뤄야하는 것은 대만인들의 항일투쟁이어야한다. 그러나, 우이룽은 이것을 비중있게 서술하지 않았다. 단지 12장 대만은 대만인의 대만이다. 라는 한장을 할애했을 뿐이다. 고산족을 중심으로 일본과 전투를 벌이면서 강하기 저항한 역사가 있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다. 그러나, 우이룽은 이를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기껏서술한 것이 민중계몽운동을 항일투쟁으로 서술한 것이 전부이다. 한국사 교과서를 서술한다면, 당연히 일제 강점기 항일투쟁의 역사를 비중있게 서술했을텐데... 왜? 대만인 교사 우이룽은 그러하지 않았을까? 대만인이라는 민족관념이 성숙하지 않았기 때문일까? 일제 식민지배를 오히려 추억하는 대만인, 일본신사에 참배하는 대만 정치인들을 떠올리며, 그들에게 일본 통치 시대는 그리운 시대인지 묻고 싶다. 그리고, 그들은 자랑할만한 항일투쟁의 역사가 없는 것인지, 아니면 그조차도 잊어버리고 싶은 것인지 묻고 싶다. 

  4부 중화민국 시대 서술도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바로 민주화의 역사를 비중있게 서술하지 않은 것이다. 한국사를 서술한다면 현대사의 큰 주제는 민주화의 역사이다. 우리는 이를 소재로 수많은 영화도 만들어지지 않았던가! 그런데, 우이룽은 13장에서 밤이 되었습니다. 마피아는 눈을 뜨세요. 라는 장에서 계엄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풀어냈을뿐이다. 나라면 2.28사건부터 시작해서 국민당 정부가 계엄을 유지한 1987년까지 수많은 민주화 운동을 자랑스럽게 서술했을 것이다. 그리고 경제 성장과 민주화를 이룬 자랑스러운 역사를 가르칠것이다. 민주화를 지키고 발전시키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하는지를 서술했을 것이다. 그러나, 우이룽은 그러하지 않았다. 그에게 대만의 민주화운동은 자랑스러운 역사가 아닌 것인가? 아니면, 기억할 필요도 가르칠 필요도 없는 것일까?


  책장을 덮자 의문이 밀려왔다. 대만인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대만인은 한족의 일부로 중화인민공화국과 통일을 해야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아니면, 중화인민공화국과는 별개로 대만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갖고 '대만은 대만인의 대만이다.'를 외치는 존재인가? 이 질문은 지금 양안문제를 바라보는 핵심 질문이기도하다. 일본에 식민지배를 받고서도 일본 통치 시대를 그리워하고 일본에 우호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는 이유도 이 질문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결국, 3부와 4부에서 항일투쟁의 역사와 민주화의 역사를 비중있게 서술하지 않은 것은 저자 자신도 대만인으로서의 민족관념을 아직은 갖추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이것은 나의 억측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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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의 대가 - 기후위기와 물가 그리고 명제국의 붕괴 너머의 글로벌 히스토리 8
티모시 브룩 지음, 박찬근 옮김 / 너머북스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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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몰락의 대가'라는 책제목이 나에게는 와닿지 않았다. 영어명 'The price of collapse'를 보고서야 제국의 황혼기에 물가에 대한 책이라는 사실을 눈치 챘다. 회색빛 표지는 너무도 어두웠기에 표지에 별다른 관심을 가질 수 없었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표지에 대한 관심이 솟아났다. 


  티모시 브룩의 '몰락의 대가'는 명말 청초의 물가의 변동을 소빙하기(Little Ice Age) 시기의 기후와 관련지어 설명하고 있다. 명의 쇠락이 단순히 만력제의 무능과 관료의 부패고 인해서 이루어졌다는 기존 해석을 탈피해서 기후가 명 몰락의 근본원인이라는 관점을 제시했다.티모시 브룩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사료로 천치더가 노년에 과거를 돌아보면서 서술한 '제황기사'라는 책을 소개했다. 그리고 '몰락의 대가'는 제황기사'라는 책의 주에 불과하다고 밝히기까지 했다. 

  티모시 브룩이 중국의 여러 기록에서 찾아낸 명말 청초의 자연재해와 기근은 너무도 참혹했다. 


 "이 시기에는 시장에도 구매할 수 있는 쌀이 없었다. 곡물을 가진 상인이 있어도, 사람들으 가격을 묻지 않고 지나쳤다. 부유한 자들은 콩이나 밀을 찾아 헤맸고, 가는한 사람들은 왕겨나 썩은 음식물을 찾아 헤맸다. 몇 두의 왕겨나 나무껍질을 얻을 수 있는 것만도 기쁜 일이었다." 33쪽

  " 1641년: 6월까지 여전히 비가 오지 않았다. 곡물 1두의 가격이 동전 1,200문이었다. 시장에서 곡물을 홉 단위로 판매했다. 사람들은 도망갈 곳이 없었다. 젊은 남녀가 만났을 때는 성교를 위해서가 아니라 서로를 잡아먹기 위해서였다. 어머니는 자식을, 자식은 어머니를 먹었다. 남편은 아내를, 아내는 남편을 먹었다. 매일 사람들이 굶주림, 전염병, 처형으로 죽지 않는 날이 없었다. 아, 인간성이 이정도로 파괴될 수 있다니, 6월 29일에 비가 오기 시작했다."240쪽(네이치우현지)


  기근은 인간성의 몰락을 가져왔다. 부모가 자녀를 잡아먹고, 남녀가 성교하기 위해서 만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잡아먹기 위해서 만났다. '삼국사기'에 기근이 닥치자 백성들이 기민상식(飢民相食) 했다는 기록이 먼 고대의 사실만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었다. 

  천치더는 "우리가 단지 기근에서 살아남았다고 스스로를 축하하고 그후에 모든 관심을 물질적 획득과 쾌락에만 집중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인간성을 회복할 수 있겠는가?"-49쪽 이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천재지변을 인간의 잘못에 대한 하늘의 훈계로 여기는 천인상응설의 관점에서 천치더는 당시를 이해했다. 기근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 서로를 잡아먹는 인간성이 바닥을 친 상황을 목도하고, 이제 다시 인간성을 되찾기를 바라는 그의 소박한 마음이 느껴진다. 


  그러나, 인간성을 잃지 않는다고 해서 자연재해가 오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물질적 풍요을 누리며 어머니 지구를 훼손시켰다. 지구의 온도를 높이며 새로운 기후 재난을 예약하고 있다. '몰락의 대가'라는 책은 단순히 명말 청초의 자연재난과 물가에 관한 책은 아니다. 예정된 기후 위기 속에서 우리가 지금 행동하지 않는다면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는 인간성을 잃어버리는 재난을 겪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명말 청초 수업을하면서 '기후 위기'에 관한 토론 수업을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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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 역대 황제 평전 - 외척과 환관의 국정 농단으로 400년 제국이 무너지다 역대 황제 평전 시리즈
강정만 지음 / 주류성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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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사!! 무엇이 떠오르는가? 아마도 삼국지를 먼저 떠올릴 것이다. 삼국지를 읽으며 수십만의 군대가 서로 어우러져 진을 펼치고 용맹무쌍한 장수들이 지략을 펼치는 광활함에 매료되었다. 그에 비해서 우리의 역사는 좁은 영토에 유약한 문신들이 왕권을 견제하며 알콩달콩 싸우는 인상을 받았다. 초등학교 시절, 이야기 삼국사기를 읽으며 매료된 이유도 고구려의 용맹함 때문이다. 우리 역사에도 이러한 역사가 있구나!! 성인이 되어 중국의 역사를 심도있게 알고 싶어졌다. 그래서 강정만 교수의 역대 황제 평전 시리즈를 읽기 시작했다. 당, 송, 명, 청 역대 황제 평전을 읽고 이제 한나라 역대 황제 평전을 펼쳤다. 중국을 대표하는 한나라는 내가 기대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을까?


  첫장을 장식한 것은 한고조 유방이다. 초한지를 통해서 잘 알고 있는 인물이다. 사마천의 사기를 읽을 때도 받은 유방에 대한 인상은 공부잘하는 모범생이 아니라 껄렁대는 형님 같다는 것이다. 공부에 관심이 없고 친구와 어울려 놀기 좋아하는 전형적인 노는 스타일의 인간이다. 게다가 허풍도 쎄다. 여공을 만나기 위해서 돈도 없는자가 "축의금 일만냥을 내겠소"라는 말을 서슴없이 내뱉는다. 그러한 그가, 귀족 출신의 탁월한 지략을 갖춘 항우와 싸워 승리했다. 중국 문화의 원형을 탄생시킨 한나라를 건국했다. 

  우리 학부모는 공부만 잘하는 학생을 원한다. 허풍도 쎄고, 친구와 어울리며 공부에 관심없는 유방이 우리나라에 태어났다면 불량 학생으로 낙인찍혀 퇴학을 당했을 것이다. 태평세에는 공부잘하고 부모의 말씀을 잘듣는 모범생이 성공할 확률이 높다. 그러나, 부모님 세대의 법칙이 무너진 난세에는 모범생 보다는 자신의 법칙을 만드는 유방과 같은 인물이 난세를 평정한다. 그렇다면, 지금 대한민국은 난세일까? 아님, 태평세일까? 인공지능의 급성장, 기후위기, 미국 중심의 국제 질서의 붕괴!! 이것은 유방과 같은 인물을 필요로하는 난세의 증거가 아닐까?

  중국의 3대 악녀라하면 무측천, 여태후와 그리고 서태우를 말한다. 이중에서 여태후는 한고조 유방이 죽자 실질적으로 한나라를 통치한 여황제라할 수 있다. 정사에는 그녀를 악녀로 묘사하고 있다. 유방의 사랑을 받은 척부인을 팔다리를 자르고 두눈을 파내고 귀를 멀게하여 항아리에 담았다. 그리고 그 항아리를 돼지 우리에 집어 넣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아들 혜제에게 척부인을 보여주며 사람돼지라 말했다. 충격을 받은 혜제는 정치에 뜻을 잃고 술독에 빠져 스스로를 붕괴시킨다. 이것이 여태후를 악녀로 기억하는 우리의 근거이다. 그런데, 여태후 집권시기에 백성의 삶은 좋았다. 대외관계도 비교적 평화로웠다. 남성중심의 역사관이 무측천과 여태후를 악녀로 만들지 않았을까? 백성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무능한 남성 황제보다는 평화로운 여태후의 시기가 더 좋았을 것이다.

  중국 역대 황제 평전 시리즈를 읽으며 '왜 이리도 중국에는 못난 황제가 많은가?'라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명나라 역대 황제 평전'을 읽을 때, 너무도 많은 영산군과 철종을 합쳐 놓은 황제들을 보면서 명나라가 200년을 존속했던 사실 자체가 놀라웠다. 중국 왕조들은 건국 후, 빠른 전성기를 맞이한다. 그리고는 그 전성기가 오래가지 않고 빠른 쇄퇴기에 접어든다. 한왕조의 수명이 보통 2백년 정도이다. 한나라가 400년 동안 존속했다고는 하나, 이는 중간에 신나라의 등장을 빼고 전한과 후한을 합쳐서 만들어진 존속기간이다. 우리 나라의 왕조가 보통 500년 동안은 존속했다는 점을 본다면 중국의 역대 왕조는 단명했다고 볼 수 있다. 

  중국 한나라의 못난 황제는 환관과 외척의 전횡을 막지 못했다. 외척을 끌어들여 환관을 제거하면 외척이 발호하고, 외척이 환관을 제거하려 선비들을 끌어들였다가 환관에게 제거당하는 '당고의화'가 벌어지기도 했다. 황제 곁에서 황제의가 주색잡기에 빠져들도록하거나, 방술사에 현혹되어 정사를 그릇치게 만들었다. 

  여기 황당한 사건 하나를 예로 들어보자. 한 영제 시기에 화재로 소실된 남궁을 중건하기 위해서 낙안태수 육강은 토지세를 징수하자고 상소를 올렸다. 그런데 환관들은 그가 망국의 군주를 예로 들어 영명한 황제를 비판했다고 비판했다. 결국, 육강은 사형 선고를 받았다. 간신히 육강은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지만, 글귀 몇자를 꼬투리삼아 반대파를 죽이려하는 모습은 너무도 씁쓸하다. 

  물론, 이러한 일이 대한민국의 오늘에도 벌어지고 있다. 언론들이 야당 대표를 살해하려한 사건을 대서특필하기 보다는 목에 칼이 찔린 야당 대표를 헬기로 이송한 것을 트집잡아 특혜시비로 비화시켰다. 언론의 자유가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에게 진실을 보여주지 못하고, 자본과 권력의 시녀로 전락한 우리의 언론을 보면 그들이 한나라의 환관들과 무엇이 다른지 의문이든다.

  그렇다고 한나라에 충신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한환제 시기 양기 일족을 멸족시킨 5후는 국정농단을 한다. 서선이 자신의 첩이 되길 거부하는 이승의 딸을 묶어 놓고 과녁으로 삼고 술을 마시며 화살을 쏘았다. 이에 황부가 서선을 주살했다. 결국 그는 문초를 받고 삭발을 당했으며 중노동을 해야했다. 제북국 승상 등연은 후람과 단규의 하인과 식객이 행인의 재물을 약탈하자 이들을 처단했다가 파직당했다. 황부와 등연과 같은 사람은 한나라를 떠받치는 3퍼센트의 소금과 같은 존재였다. 거대한 바다가 썩지 않는 이유는 3퍼센트의 소금이 있기 때문이다. 어리석은 황제가 연이어 등극했음에도 불구하고 한나라가 전한과 후한 각각 200년씩 존속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들 3퍼센트의 소금과 같은 존재가 있었기 때문이다. 

  

  책장을 덮었다. 우리나라와 중국을 1:1로 비교하기에 무리가 있다. 우리나라는 중국의 한개 성보다 작다. 중국은 23개의 성이 있다. 이렇게 거대한 중국을 한명의 황제가 다스렸다. 그는 절대권력을 쥐고 있었다. 현명한 황제가 등극했던 시기에 중국은 우리가 두려워해야할 나라였다. 그러나 용렬한 황제가 집권하면 그를 꼭두각시로 만들어 중원의 권력을 농단하려는 자들로 들끓었다. 중국 역사에는 현군보다는 암군이 많았다. 그 속에서 중국의 백성들은 고통을 받아야했다. 강력한 황제권을 가진 중국의 땅에 사는 백성의 삶보다는 군약신강의 우리 땅에 살았던 백성의 삶이 보다 낫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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