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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 역대 황제 평전 - 변화와 혁신을 두려워하는 지도자는 도태된다 역대 황제 평전 시리즈
강정만 지음 / 주류성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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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중국역사를 편식한다. 사마천의 '사기'를 즐겨 읽고, 춘추 전국시대의 고사를 인용한다. 그러나, 중국 명나라와 청나라의 역사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거의 없다. 중국 역사에 대한 편식은 나또한 예외라 할 수 없다. 대학에서 중국사 강의를 들으면서도 교수님의 전공인 당나라와 송나라에 대해서는 자세히 배웠지만, 명나라와 청나라의 역사에 대해서는 자세히 배우지 못했다. 중국사 불균형은 한국사를 공부할 때 빈틈이 생기는 결과를 가져왔다. 명나라에서 청나라로 왕조가 교체되는 시기에 조선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게 된다. 조선의 역사가 중국의 역사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움직이는 시기이다. 결국, 명,청시기에 대한 이해 부족은 한국사 이해에 한계를 가져왔다. 명나라와 청나라의 역사에 대해 알고 싶어도 마땅한 책을 못찾던 차에 '청나라 역대 황제 평전'을 만났다. 청나라 역사 속으로 빨려들어가 보자. 


1. 청나라의 전성기를 이끈 황제들

  중국사의 특징은 빠른 전성기를 맞이하고, 곧이어 빠른 노쇠기를 겪는다는 것이다. 청나라의 역사도 마찬가지이다. 누르하치는 여진 부족을 통일하고 후금을 건국하며 명나라를 위협한다. 이시기 조선은 임진왜란의 전란에 휩싸인다. 누르하치는 명나라와 조선에 군대를 보내겠다고 했다. 누르하치의 군대가 조선에 온다면, 일본군은 많은 타격을 입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조선으로서는 행운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서 누르하치의 지략과 인품을 알고 나서 나의 생각을 180도 달라졌다. 그는 탁월한 지략과 리더십을 겸비한 인물이다. 만약 그가 조선에 원병을 파견한다면, 조선의 문약함을 알았을 것이다. 누르하치는 중원으로 진출하기 보다는 조선을 먼저 정벌하여 이를 발판으로 명을 공격하는 전략을 선택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조선의 역사가 200년으로 단절되고, 여진족이 새로운 왕조를 개창했을 것이다. 변발과 문자의 옥을 비롯한 갖가지 사상탄압이 우리땅에서 일어났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이로운 것이었을까?

  청나라의 전성기는 현엽 성조 강희제에서 시작하여 윤진 세종 옹정제를 거쳐 홍력 고종 강희제시기에 절정에 달한다. 일명 강건성세라고 불리우는 기간 동안 중국 역사상 최대 영토를 여진족이 세운 청나라가 개척한다.(원나라는 중국사로 보기보다는 몽골의 역사로 보아야한다.) 

  세명의 황제 중에서도 강희제는 단연 돋보인다. 삼번의 난을 진압하고 정성공 세력을 굴복시켰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의 도량이 넓은 것은 조선에 배푼 그의 호의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숙종 23년(1679) 조선 팔도에 대기근이 돌았다. 조선왕조 실록에는 "시체가 도성에 산처럼 쌓였다."라고 적혀 있을 정도로 조선의 상황은 매우 안좋았다. 숙종은 청에 중강에서 무역시장을 열게해달라고 간청했다. 청나라의 쌀을 사서 조선 백성의 굶주린 배를 채워보겠다는 말이다. 강희제는 달랐다. 성경(심양) 창고에서 5만석을 선박으로 운반하여 조선 백성을 구제했다. 이 사건이 있기 이전 강희제에 대한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은 강희제를 패륜 황제로 그렸다. 사냥을 하면서 서민의 아녀자를 겁탈하는 천하의 패륜아로 묘사했다. 조선 선비의 옹졸함과 강희제의 도량이 너무도 대비되는 부분이다. 그러했기에 조선의 북벌은 실질적 북벌이 아니라, 정신 승리 차원의 북벌일 수밖에 없었다. 

  옹정제는 강희제 시기의 전성기를 이어간 황제이다. 악종기에게 반란을 사주한 증정을 직접 심문하며 논리적으로 증정을 굴복시켰다. 증정의 '지역적 중화'에 대항해서 옹정제는 '문화적 중화'로 맞섰다. 그리고 이를 '대의각미록'이라는 책으로 편찬했다. 그럼 증정은 죽였을까? 옹정제는 증정을 죽이지 않았다. 오히려 증정을 앞세워 반청지식인을 색출하고 청의 충실한 '개로' 만들어 그를 한껏 이용해서 여진족의 중국지배를 합리화했다. 그러나, 증정의 스승 여유량은 부관참시하고 그 일족 중에서 16세 이상의 남자는 모두 살해하였다. 냉면제왕 옹정제의 면모를 잘 드러내는 섬득한 사례이다. 

  냉면제왕 옹정제도 불노장생의 허황된 꿈을 꾸었다. 그는 급작스럽게 죽는다.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해서 다양한 설들이 분분하지만, 가장 설득력있는 설은 불노장생하기 위해서 복용했던 단약이 그의 명줄을 줄였다는 설이다. 수은, 납, 주석을 비롯한 다양한 중금속을 섞은 단약을 섭취하고 죽은 옹정제를 보면서, 씁쓸한 웃음이 나온다. 도올 김용옥 선생이 "풀한포기 이상의 신비는 없다."라는 말을 했다. 불노장생의 허황된 꿈을 쫓다가 죽은 중국의 역대 제황들의 사례를 통해서 영민한 옹정제는 아무 것도 배우지 못했다. 불로장생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한 그는 더 빨리 저세상으로 갔다. 

  청나라가 빠른 전성기를 맞이할 수 있었고, 연이어서 훌륭한 황제가 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유가의 적장자 계승법을 고집하지 않고, 태자밀건법(저위밀건법)으로 다음 황제를 지명했기 때문이다. 황제가 유조를 적어 건청궁 '정대광명'편액 뒤에 적어 두고 황제가 죽으면 이를 열어보아 차기 황제를 세우는 방식이다. 그렇다보니, 탁월한 황제가 연이어서 배출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 책에는 옹정제 이후에 태자밀건법이 실시된 것으로 서술되어 있다. 그러나, 인터넷 백과에는 강희제 옹정제 건륭제 도광제 함풍제가 이 방법으로 등극했다고 적혀있다. 하여튼, 이부분은 추후에 더 탐색해봐야할 주제이다.) 능력에 기반한 계승방법은 청나라를 강성한 나라로 만들었다. 그러나, 언제나 강성할 것으로 보이던 청나라도 건륭제 집권 중반기를 지나면서 쇠퇴의 모습들이 드러난다. 


2. 제국의 쇠퇴를 막지 못한 황제

  건륭제는 할아버지 강희제를 모범으로 삼아 통치했다. 그러나 건륭제는 강희제가 그러했던 것 처럼 자신의 통치 철학을 집권 내내 보이지는 못했다. 그의 집권 중반기에 등장한 화신을 너무도 총애하여 국가를 병들게 했다. 건륭제의 아들 가경제가 집권하고 화신은 가산을 몰수 당하고 목이 베어져 죽게 된다. 그의 집에서 나온 재물이 청나라가 15년 동안 거둬들이는 세금과 맞먹었다고 하니 화신이 저지른 부정부패가 얼마나 심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화신을 처벌하고 개혁을 시도한 가경제와 같은 황제가 등극했는데, 왜? 청나라의 쇠락을 막지 못했을까? 더욱이 가경제는 검소함을 추구하였으며, 본인이 모범을 보이려 노력했다. 이에 대해서 이 책의 저자 강정만은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가경제는 화신 한 사람만을 대역죄로 몰아 처벌하고 사건에 연루된 자들의 죄는 더 이상 추궁하지 않았다. 자칫하면 부패한 관료 조직의 반발을 초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420쪽


  그렇다. 건륭제 중반 이후부터 시작된 부정부패를 척결하기 위해서는 보다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했다. 건륭제의 보호 속에서 갖가지 폐단을 일으킨 화신만을 죽인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단순히 뿌리 깊은 적폐세력을 통치자의 덕만으로는 바로잡을 수 없다. 과거 군사정권에 빌붙어서 떡고물을 먹고 있던 적폐세력인 기레기들을 이용해서 국민의 눈과 귀를 멀게하는 현실을 보며, 개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근복적인 개혁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절감한다. 

  유학을 공부한 사람들이 흔히들, 윗사람이 덕을 베풀고, 예로써 교화시킨다면 천하가 잘 다스려진다고들 말한다. 그러나, 제왕에게는 사자의 힘과 여우의 꾀가 필요하다. 덕과 예로서 다스려지는 세상은 만민이 예의와 염치를 알때이다. 적폐세력들에게는 예의도 염치도 없다. 가경제가 옷을 기워입어도, 가경제 앞에서만 옷을 기워입을뿐, 사리사욕을 챙기는 적폐세력의 속성은 사라지지 않았다. 가경제의 우유부단함은 적폐세력에게 이용만 당할 뿐, 서서히 쓰러져가는 청제국을 바로세우지 못했다. 그렇다면, 가경제의 아들 도광제에게 희망을 걸어볼 수 있지 않을까? 더욱이 도광제는 관군으로 위장한 임청의 반란군 70여명이 황궁을 기습했을때, 친히 금위군을 이끌고 반란군을 진압했지 않은가? 그뿐아니라, 그는 반란군 두명을 조총으로 직접 사살하기도했다. 

  태자밀건법에 따라서 가경제가 붕어하자, '정대광명' 편액 뒤에 보관된 밀지를 열었다. 예상대로 면녕을 황태자로 책봉하라는 내용의 조서가 발견되었다. 면녕 그가 바로 도광제이다. 문무를 겸비한 도광제는 충분히 과단성 있는 개혁을 시행하지 않을까? 문무를 겸비한 그도 가경제를 닮아 인자하고 검소했으나 우유부단하기는 마찬가지 였다. 짠돌이라는 비난을 받을 정도로 근검절약했지만, 청제국은 날로 쓰러져갔다. 결국 제1차 아편전쟁에서 패배하면서 청제국은 종이호랑이로 전락했다. 

  도광제의 아들 함풍제는 어떠했을까? 청제국은 몰락의 길을 걷고 있었다. 함풍제는 난세를 이겨낼 그릇이 아니었다. 그도 개혁을 하려는 듯했으나, 보통의 군주에 불과했다. 통치의 스트레스를 호색과 아편으로 도피하는 길을 선택했다. '왕관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는 못난 군주에 불과했다. 지도자의 무능은 만백성의 불행으로 이어진다. 결국 2차아편전쟁이 일어나고 베이징은 영불 연합군에 의해서 유린당한다. 청제국의 영광스러운 나날들도 역사속에 사라져갔다. 



  청나라는 우리에게 병자호란의 치욕을 안겨준 나라이다. 오만한 조선 선비들에게 힘을 과시한 청나라이기에 우리는 청제국에 대해서 애써 무관심했다. 효종의 북벌이 실행되었다면 성공했으리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갖기도한다. 그러나, 효종이 북벌을 한들 전성기를 달리고 있는 강희제 시기에 과연 청제국이 호락호락 무너졌을까? 태자밀건법이라는 탁월한 제도로 연이어서 훌륭한 황제가 등극했다. 청제국은 광활한 영토를 넓혀서 지금의 중국인들에게 선물로 남겨주었다. 

  그러나, 태자밀건법으로 능력있는자가 황제가 되었지만, 황제가 될 수 있는 자질을 갖춘 인물이 줄어들면서 태자밀건법이 청제국의 쇠약을 막지는 못했다. 보다 과단성있고, 보다 주도면밀한 자가 황제가 되어 개혁을 했어야만했다. 검약을 솔선수범하는 보통의 군주가 거대한 청제국의 쇠약을 막을 수는 없었다. 청제국은 우리에게 보다 넓은 인력풀 속에서 탁월한 능력있는 자를 리더로 선택해야만 제국의 쇠약을 막을 수 있다고 말해주고 있다. 과연 우리는 청제국이 걸었던 쇠락의 길을 걷지는 않는지 반문해본다. 

  강정만 교수의 '청나라 역대 황제 평전'은 무협소설을 읽는 듯이 재미있다. 제목이 딱딱하여 어려운 논문집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한번 읽어보라. 얼마나 재미있는지 강정만 교수의 다른 책들도 읽어보고 싶을 것이다. 출판사가 제목을 매력적으로 다시 짓는다면 판매부수가 두배로 뛰어오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청제국에 대해서 알고 싶은자. 머리를 식힐겸 가볍게 읽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ps. 555쪽에 청일전쟁 이후 "조선은 이때 부터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고 말았다."라고 적고 있으나 이는 오류이다. 러일전쟁 이후로 수정해야한다. 청일전쟁의 결과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가 될 가능성은 있었으나, 고종의 아관파천으로 조선은 식민지로 전락하는 불행을 막았다. 


괜찬은 사료 몇개를 소개한다. 


224쪽 (강희제가 조정 대신에게) 오삼계는 오래 전부터 역모를 획책하고 있는 자이오. 서둘러 그를 제거하지 않으면 큰 우환이 될 것이오. 철번을 윤허해도 반란을 일으킬 것이며, 윤허하지 않아도 역시 반란을 일으킬 것이오. 차라리 지금 선수를 쳐서 제압하는 편이 낫소" 

461쪽 '엄색루치이배국본소'(도광제 시기) 국가의 많은 은자가 낭비되는 까닭은 아편 판매가 증가하기 때문이며, 아편 판매의 증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아편을 피우기 때문입니다. 아편을 피우지 않아 아편 판매가 감소하면 서양 오랑캐의 아편은 더 이상 들어오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조정에서 엄한 벌로 다스리려면 먼저 아편을 피우는 자들을 엄격하게 처벌해야하옵니다. 황상께서 조서를 내리시어 금년 모월모일부터 내년 모월모일까지 1년 동안 아편을 끊는 기간을 반포해주시기를 신은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렇게 하면 아편 중독이 아무리 심각하더라도 아편을 끊지 못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494쪽(함풍 2년) '봉천토호격포사방유' 백성들에게 간절히 호소하니 내말을 분명히 들어라! 천하는 하나님의 천하이지 오랑캐의 천하가 아니다. 의복과 음식은 하나님의 것이지 오랑캐의 것이 아니다. 자녀와 인민도 하나님의 것이지 오랑캐의 것이 아니다. 만주족 오랑캐들은 잔혹한 성질을 함부로 부려 중국을 혼란에 빠뜨렸는데도, 천하에서 가장 큰 영토를 가진 중국의 백성들은 모두 오랑캐의 풍습을 따르고 오랑캐처럼 행동하면서 조금도 괴이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참으로 비분강개를 금할 수 없다. 지금 중국에는 사람다운 사람이 있다고 할 수 있는가"

  "중구에는 중국의 형상이 있는데도 중국인은 만주족 오랑캐으 변발 명령에 복종하여 긴 꼬리를 몸 뒤에서 질질 끌고 다니고 있다. 이는 중국인을 개돼지로 변하게 했다. 중국에는 중국의 의관이 있느넫도 오랑캐는 정대(청조 때 관직을 구별하는 모자의 꾸밈새)를 만들어 중국인에게 오랑캐으 의복과 원숭이의 관을 쓰게 하여 우리 조산의 의복과 면류관을 파괴했다. 이는 중국인에게 우리의 근본을 잊게 하였다. 중국에는 중국의 윤리가 있는데도 예전에 거짓되고 요망한 가자 황제 강희가 만주족 관리 한 사람에게 한족 가정 열집을 관장하게 하여 중국 여자들을 마음껏 강간하게 했다. 이는 중국인을 모조리 오랑캐 종자로 만들고자 하는 속셈이다."

505쪽(장개석 왈) "예날에 홍수전, 양수청 등 앞선 시대의 사람들이 동남 지방에서 일어나 만주족 청나라와 싸웠다. 그들의 원대한 포부와 위업은 끝내 결실을 맺지 못했으며 태평천국은 갖자기 망했지만, 그 민족 사상의 발양은 역사에 기념비적인 업적으로 평가하기에 충분하다."

584쪽(선통제 퇴위 조서) "민군이 봉기를 일으켜 여러 성에서 호응하자, 중국 전체가 들끓고 백성은 도탄에 빠지고 말았다. 나는 특별히 원세개에게 명령을 앤려 민군 대표와 대국을 토론하고 국회를 열며 국가의 체제를 공고적으로 결정하게 했다. (중략) 지금 전국 인민들의 마음은 대부분 공화정으로 기울었다. 남방 각 성의 인민들은 앞에서 봉기를 일으키고, 북방의 여러 장수들은 뒤에서 공화정을 주장하고 있다. 인심의 향방이 천명임을 알아야한다. 나 또한 청조를 건국한 애신각라 성씨의 존귀함과 번영을 지키는 일 때문에 백성의 감정을 무시하는 행위를 할 수 있겠는가?"

595쪽 (청조 귀족 출신, 일본 육군사관학교 졸업자 희흡이 부의에게 보낸 전보) "황상께서는 조종의 발상지인 만주로 돌아오셔서 대청제국을 다시 건설하셔야합니다. 재난에 빠진 백성을 구하시고 우방국 일본의 지지를 받고 먼저 만주를 통치하신 후에 다시 중원을 도모하셔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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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책을 명화와 같이 살펴본다는 것은 무척 즐거운 일이다. `그림 쏙 세계사` 는 그림과 세계사라는 두마리 토끼를 잘잡은 책이다. 쉬운 문채라 청소년들도 쉽게이하할 수있다. 그렇다고 얕은 내용서술 만으로 가득찬 것도 아니다. 시중의 청소년 대상 세계사 책과는 달리 깊이 있는 설명도 이뤄졌다. 세계사를 가르쳐 본 교사 출신이라서 그런지 쉬우면서도 재미 있는 서술은 이 책을 단숨에읽게 만들었다. 청소년들과 교양을 쌓고 싶어하는 일반인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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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21-03-14 21:5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무척 흥미 갑니다!

얄라알라북사랑 2021-03-14 22:1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찜하고 갑니다
 
오랑캐-주변국 지식인이 쓴 反중국역사
양하이잉 지음, 우상규 옮김 / 살림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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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구려의 역사는 중국사이다.'라고 주장하는 동북공정이 우리사회의 커다란 이슈로 대두되었던 적이 있다. 중국의 동북공정은 현재진형형이다. 동북공정을 처음 접했을때, 중국이 새로운 논리를 개발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중국의 동북공정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중국 땅에서 있었던 모든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보는 관점은 이미 그 이전부터 있어왔다. 몽골이 세운 원나라도, 여진족이 세운 청나라도, 선비족이 세운 수와 당나라도 모두 중국의 역사로 둔갑시키는 것이 중국 한족의 역사 이해방식이다. 우리의 세계사 교육은 한족이 세우지 않은 왕조 조치도 중국사에 편입시켜 가르치고 있다. 중국의 놀리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우리가 이제는 중국 땅에서 있었던 모든 역사는 중국의 역사라는 논리에 공격대상이 되었다. 이제 중국중심의 역사관에서 탈피해야할 때가 되었다. 중국에 귀화한 내몽골 오르도스 출생의 양항이잉은 중화패권사관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의 주장에 귀 기울여보자.

 

  책의 저자 양하이잉은 1964년 내몽골 오르도스 지역에서 출생했다. 그는 중국의 주변부에서 한족중심의 중심부 문화의 폭력을 경험하면서 자라났다. 그는 인류학과 고고학의 관점에서 동아시아의 역사를 바라보며 연구 활동을 했다. 1989년에 일본 유학을 가서, 2000년에는 일본에 귀화한다. 일본이라!! 일본은 한국인인 나에게는 제국주의 침략성을 포기하지 않은 나라로 비춰진다. 일본을 추월해서 G2로 부상하고 있는 중국을 일본은 몹시 싫어한다. 반한 감정뿐만 아니라, 반중감정도 대단한다. 중국의 주변부에서 한족중심의 폭력을 경험한 양하이잉의 역사서술관점은 일본인의 반중감정과 쉽게 합일되었다. 문화대혁명 시기 마오쩌둥의 내몽골 제노사이드를 고발한 '묘지없는 초원'이 시바 료타로상을 수상한 것은 이를 증명해준다. 이책 곳곳에 일본인 학자의 주장이 인용되었으며, 자신을 도와준 일본인 학자들에 대한 고마움이 깊게 표현되어있다. 적의 적은 친구라고 했던가! 중국 한족 문화의 폭력성을 경험한 그에게 일본은 친구였다.

 

  중국에 대한 반감은 일본인들이 china를 '지나'라고 번역하여 부르는 용어를 그대로 사용했다는 점에서 그대로 나타난다. 물론, '지나'라는 용어는 '중국'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때보다 중국을 보다 객관적으로 바라보도록해준다.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라 부르며 중화중심적 사고가 묻어나는 '중국'보다는 '지나'라는 용어가 중국을 객관화시켜준다. 양하이잉은 곳곳에서 중국중심의 역사관에 반기를 들고 있다. 때로는 우리가 당연시하고 있는 역사에 당당하게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중원에는 태국계 하인(夏人)이 있었으며, BC13세기경에는 만주 동북쪽 수렵민인 은인(殷人)이 들어왔으며, 서족에서 유목민인 주인(周人)이 들어왔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을 펼치면서 이를 뒷받침할 근거를 제시하지 않아서 선듯 믿겨지지 않았다. 특히 은인(殷人)을 만주 동북쪽 수렵민이라고 표현한 것은 우리 재야사학자들의 주장과 일치하여 신기하기도했다. 양하이잉은  "황허문명보다. 1000년이나 일찍 청동기 문명이 시작된 초원의 훙산 문명이 있었고, 훙산문명을 만든 사람들이 황허로 이주해 들어 왔다."라며 중국 문명에 훙산문명이 많은 영향을 미쳤음을 주장하고 있다. 이는 훙산문명을 고조선 문명으로 보고, 고조선의 문명이 중국에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하는 재야사학자들의 주장과 일치하는 점이 있다. 물론, 양하이잉은 훙산문명의 주인공을 유목민족으로 보고있고, 한국의 재야사학자들은 고조선으로 보고 있다는 차이점이 있다.

  양하이잉은 이 책 곳곳에서 중국의 프로파간다를 공격한다. "위대한 한족에게는 수 당이 가장 번성환 왕조였다.", "원나라는 중국이 가장 광대한 영토를 보유했던 시대", "티베트와 몽골은 청나라의 일부였기에 지금도 우리의 영토"라는 중국 한족중심의 주장에 대해서, 수 당은 선비족의 국가였으며, 원나라는 몽골의 역사이며, 청나라는 여진족의 나라라고 주장한다. 중국 한족이 역사의 주인공이었던 적은 송과 명이었다. 그들은 제국의 모습을 갖추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중국인들이 양하이잉의 주장을 듣는다면 무척 뼈아픈 지적일 것이다.

  양하이이은 단순히 중국 한족중심의 역사관에 반기를 드는 것에서 그치지 않았다. 과거 역사를 통해서 오늘의 중국을 설명한다.

  "두루 천하는 모두 왕의 땅이다."라는 관념을 가진 중국이 강력한 권력과 군사력을 앞세워 국토를 바깥으로 확장하는 모습을 보였듯이, 현대 중국은 세계 곳곳에 차이나타운을 형성하고, 아프리카에 인프라 투자를 나서면서 중국의 저소득층을 대량으로 이주시키는 현실과 열결시킨다. 중국의 일대일로와 중국인들이 세계 곳곳에 차이나타운을 건설하는 현상의 역사적 근원을 잘 설명하고 있다.

  중국이 파룬궁을 비롯해서 종교에 대한 탄압을 하는 이유도 양하이잉은 중국사와 연관시켜 설명하고 있다. 중국의 역대 왕조 말기에 잦은 반란이 일어났다. 그들 반란은 종교와 관련을 맺는 경우가 많다. 백련교도의 난, 의화단 운동, 태평천국운동 등등.... 이러한 역사의 트라우마는 중국 정부에게 종교를 통제하도록 했다. 단순히 종교를 아편으로 생각하는 공산주의 사상만으로는 부족한 설명을 역사적으로 해내고 있다.

 

 

  외신을 통해서 이슬람 교도에 대한 중국정부의 탄압 소식이 심심치 않게 들린다. 종교에 대한 박해 뿐만 아니라, 중국인과 위구르인의 강제 결혼을 시키며 그들을 중국인화 시키려는 노력을 가혹하게 펼치는 모습도 보인다. 한족 중심의 역사 문화 패권주의는 중국이 G2로 성장하면서 더욱 가열차게 진행되고 있다. 양하이잉이 일본으로 귀화할 수 밖에 없는 이유도 중국의 중화 패권주의의 칼날을 피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중국의 역대왕조는 빠른 전성기를 맞이하지만, 전성기를 지나면 빠른 노쇄기를 겪는다. 지금 전성기를 맞이한 중국이, 언제 빠른 노쇄기에 접어들지 궁금해진다. 그때, 억압받았던 중국의 소수민족들은 과연 어떠한 선택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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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큼 가까운 중국 이만큼 가까운 시리즈
이욱연 지음 / 창비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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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인과 같이 살아야한다면, 당신은 어떠한 선택을 할 것인가? 중국이라는 거인을 옆에 두고 살아와야하는 우리로서는 거인과 살기 위해서 거인을 먼저 알아야한다. 거인에 짓눌려 나라가 사라진 민족도 많지만, 거인의 어깨에 올라탄다면 더 먼 세상을 바라볼 수도 있다. 팟캐스트를 통해서 알게된 이욱연 교수의 책을 선택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중국 전문가로 중국을 속속들이 설명하는 그의 탁월함을 이 책에서 다시 만나고 싶었다. 


1. 베이징인, 상하이인. 광저우인.

전공서적의 무게로 고민하며 책을 읽기 바라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너무 가볍게 느껴질 것이다. 사실 이 책은 중국 입문서 정도 되는 책이었다. 흥미로운 사진들과 이욱연의 가벼운 글솜씨는 이 책을 쉽게 읽을 수 있게 만들었다. 가벼운 책이기에 전공서적이라면 알지 못할 내용들이 눈에 띄였다. 

  외계인이 출현한다면 베이징인들은 정치에 대해 묻고, 상하이 사람들은 전시회를 열어 돈벌궁리를 하고, 광저우 사람은 목욕을 시킨 뒤요리방법을 생각한다. 지역별 경제관념을 표현한 다른 이야기도 있다. 베이징 사람은 "내것이 네것이고, 네 것이 내것"이라 말한다. 인정많고, 경제관념이 없다는 말이다. 반면 상하이 사람은 "내 것은 내것이고, 네 것은 네것"이라 말한다. 구분을 확실히하는 상하이 사람이다. 그리고 광저우 사람은 "내것은 내것이고, 네 것도 내것"이라고 말한다. 재이에 밝은 광저우 사람들의 모습을 잘 표현한 말이다. 중국을 설명할때 사용하면 참 유용할 것 같다.


2. 관시 중심의 중국, 학연과 지연 중심의 한국

중국은 광활한 대륙이다. 하나의 나라로 보기에는 너무도 땅덩어리가 크다. 중국인들은 거대한 바다에 살고 있는 물고기와 같다. 이 광황한 중국이라는 바다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내 주변에서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관시'를 만드는 이유일 것이다. 이 책에 소개되어 있듯이, 한국인 사장이 형광등을 사러가면 16위안, 산둥출신 직원을 보내면 14위안, 동네 출신 직원이 사러가면 12위안을 받는 것이 중국의 관시이다. 같은 중국인이 일본군에 의해서 공개 처형을 당하는데도 분노하기 보다는 재미있는 볼거리로 생각하는 중국인을 보며 루신은 분노했다. 그러나 거대한 중국이라는 바다에서 살다보니, 중국인이라는 관념보다는 나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사람을 중시하는 관시가 더 중시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모습으로도 볼 수 있다. 

  '관시'는 우리의 학연이나 지연과도 다르다. 작은 나라 대한민국은 중국의 한개 성과 면적이 비슷할 정도로 작다. 하나의 국가가 잘 운영되기에 딱 알맞은 크기가 한반도인 것 같다. 좁은 한반도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는 우리편을 찾아야한다. 우리편을 찾기 위해서 학연이나 지연을 만든다. 나와 일면식도 없는데, 같은 지역 혹은 같은 학교를 나왔다는 이유로 친근감을 표시하고 서로 밀어주고 끌어준다. 

  '관시' 중심의 중국과 '학연'과 '지연' 중심의 한국사회는 '글로벌스탠다드'라는 잣대로 볼 때 불합리한 것들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자신들만의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관시'와 '학연과 지연'은 세상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삶의 방법일 수있다. 단지 지역마다 다른 형태와 모습으로 작동할 뿐이다.


3. 거인과 잘사는 방법은?

중국말에 "이웃집은 바꿀 수 있어도 이웃나라는 바꿀 수 없다."라는 말이이 있다. 우리는 중국과 국경을 맞대모 살아야한다. 더욱이 남북의 평화통일을 위해서는 중국의 역할이 중요하다. 이렇게 중요한 중국이 세계 초강대국으로 부상하고 있다. 저가 물건만 만들더 중국이 이제는 고급 제품을 만들고,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고 있다. 중국의 부상을 두려워하는 미국이 중국과 무역전쟁을 일으키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한국은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광해군이 후금과 명나라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 받았던 것과 같이, 우리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우리의 선택은 미국을 선택할 것 인가? 중국을 선택할 것인가?

"이웃집은 바꿀 수 있어도 이웃나라는 바꿀 수 없다."라는 중국말을 우리는 기억해야한다. 중국이라는 거인을 적으로 돌린다면 우리는 거인과 대를 이어서 싸워야한다. 만약 거인과 친구가 될 수 있다면 거인의 어깨위에 올라서서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 광해군 처럼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등거리 외교를 하며, 두 거인을 친구로 삼는다면 우리는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중국위협론, 중국 붕괴론이 솔솔 나오고 있다. 이러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중국이라는 거인이 두렵고, 중국이 빨리 붕괴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저변에 깔려있다. 우리는 중국의 붕괴를 바라기 보다는 중국과 공생하며 그들의 장점을 배우려는 노력을 해야하지 않을까? 이욱연의 '이만큼 가가운 중국'을 덥고, 생각에 잠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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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한중일 삼국지 - 갈팡질팡 한국, 허겁지겁 중국, 아등바등 일본
우수근 지음 / 두리미디어 / 2006년 8월
평점 :
품절


가깝지만 먼나라! 라는 말이 어울리는 나라가 있다. 중국과 일본이다. 일본은 너무도 가깝지만, 과거사를 반성하지 않는 그들의 오만함에 치를 떤다. 중국은 공산주의 국가로, 개인의 인권보다는 국가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나라이다. 대국으로 굴기하려는 중국은 힘의 외교를 구사하는 저돌적인 모습을 보이기도한다. 미우나 고우나, 우리는 중국과 일본과 교류하며 살아야한다. 신숙주가 죽으며 왕에게 남긴 유언이있다.   "일본과 관계를 끊으면 아니되옵니다." 일본과 외교 관계를 끊는다면, 이는 전쟁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신숙주의 예견은 놀랍게도 적중했다. 임진왜란! 7년 전쟁은 조선 민중의 삶을 도탄에 빠뜨렸다. 조선의 평화를 위해서 일본과 관계를 끊으면 안된다는 신숙주의 유언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아니다. 신숙주의 마지막말은 "중국과 일본을 비롯한 주변국과의 관계를 예의 주시해야합니다."로 고쳐야한다. 중국의 사드 보복이 한국 경제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하며, 일본이 반도체 핵심 소재를 수출 못하게하여 우리의 반도체 산업을 붕괴시키려했던 만행도 기억해야한다. 적의 한손을 잡고 있어야, 다른 한손으로 무엇을 할지를 알 수 있다. 중국과 일본을 적으로 만든다면, 우리의 미래는 순탄치 않을 것이다. 반면, 중국과 일본을 친구로 만든다면, 동아시아의 번영을 이끌 수 있을 것이다. 중국과 일본을 적이 아닌, 친구로 만들기 위해서는 그들을 이해해야한다. 그래서, 우수근의 '21세기 한중일 삼국지'를 펼쳐들었다.

 

1. 내뱉는 문화를 가진 중국과 삼키는 문화를 가진 일본, 그 중간의 한국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 사회와 문화를 살펴보면, 중국과 일본이 양극단에 있고 한국은 두 나라의 가운데에 있는듯한 모습들을 많이 본다. 집안에서 여성의 권위가 강한 중국과 순종적인 이미지의 일본 여성, 두 나라의 중간 지대에 있는 한국의 모습이 대표적이다. 우수근의 '21세기 한중일 삼국지'에서는 중국의 문화를 '내뱉는 문화'라고 지칭하고, 일본의 문화를 '삼키는 문화'라고 이름 붙인다. 교통사고 현장에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소리부터 높이는 중국인들에 비해서, 자신이 잘못한 것이 없는데도 "죄송합니다."라는 말부터하는 일본인들의 모습은 너무도 대조적이다. 동아시아 3국의 사회 문화가 비슷한듯하면서도 이리도 차이가 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역사를 전공한 나로서는 동아시아 3국이 걸어온 역사의 차이에서 찾고 싶다.

  중국의 경우, 거대한 중국이라는 바다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친구가 필요했다. 그래서 중국인 들은 "꽌시"를 중시하게 되었다. 어떠한 "꽌시"를 맺느냐에 따라서 중국이라는 거대한 바다에서 성공의 길이 순탄할 수도 있고, 몰락의 길을 걸을 수도 있다. 이 말은 내가 잘못을 저지르면, 나와 꽌시를 맺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피해가 올 수 있다는 말이다. 조선이라는 나라는 반역을 저지르면 3족을 멸한다고 한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9족을 멸한다는 말이 있다. 명나라 연왕이 쿠데타를 일으켜 영락제로 등극할때의 일이다. 영락제는 유명한 학자인 방효유에게 즉위조서를 쓰도록 했다. 방효유는 이를 거절하며 붓을 집어던졌다. 반역을 하면 보통은 9족을 멸하는데, 영락제는 10족을 멸했다. 친족뿐만아니라, 870명에 달하는 방효유의 친구와 문생까지도 도륙했다. 잘못을 인정한다는 것은 자신뿐만 아니라, 자신의 가족과 친척, 잘못하면 자신과 꽌시를 맺고 있는 친구들까지도 죽을 수 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중국의 문화를 만들어내지 않았을까? 유튜브'우수근의 한중일 TV'에서 우수근은 중국인은 체면을 중요시여기는 잘못을 인정하지 않더라도 잘못을 인정시키려 몰아붙이지 말것을 당부한다.

  일본은 왜? 자신의 잘못이 아닌데도, "죄송합니다."라고 말할까? 이것도 역시 일본의 역사에서 찾아야할 것이다. 일본은 천년 이상 칼이 지배했던 사회이다. 도망갈 곳이 없는 섬나라 일본에서는 패배자는 할복을 하거나 승자에게 무릎꿇고 목숨을 구걸해야했다. 사무라이만이 칼을 휴대할 수 있는 에도막부 시기에는 사무라이가 자신의 명예를 더럽힌 사람을 죽일수도 있었다. 어느 사무라이의 아들이 자신의 떡을 훔쳐 먹었다며 떡값을 요구하자, 사무라이는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 자신의 아들의 창자를 꺼내 떡이 없음을 보여주고, 그 상인을 죽였다. 그리고 자신도 할복을 한다. 일본인들은 이 이야기 들으며, 사무라이 정신이 녹아 있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붓이 지배해온 우리의 감성으로는 절대 이해되지 않는 행동이다. 이러한 사무라이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평민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자신의 잘못이 없으면서도 무조건 사무라이에게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해야했다. 일본인의 과잉 친절도 그들만의 아픈 역사적 배경이 있었다.

  그러나, 자신의 잘못이 아닌데도 먼저 잘못했다고 용서를 구하는 일본인이지만, 일본이라는 국가를 보면 우리의 상식은 무너진다. 우리에게 했었던 수 많은 역사적 죄를 그들은 인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일본의 식민지배 때문에 한국이 발전했다고 말한다. 국가나 민족이라는 전체속에서 일본인이라는 개인은 목소리를 낮춘다. 강대국인 미국앞에서는 너무도 작아지는 일본이,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서만은 근거없는 자신감과 오만으로 다가온다. 호사카 유지 교수가 일본인이 많이 읽는 고전은 "손자병법"이라고 말했다. 전쟁이라는 관점에서 그들은 미국은 절대 이길 수 없는 절대강자이며, 한국은 손만까딱하면 제압할 수있는 약자로 보이나보다.

 

2. 한국과는 다르지만, 일본과 중국은 너무도 닮은 것들

  한국은 일본과 중국 사이의 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말은 모든 분야에 적용되지는 않는다. 타인의 일에 간섭하지 않으려는 습성은 중국인과 일본인이 놀랍도록 닮아 있다. 그에 비하면, 우리 한국인은 놀랍도록 타인에 대해서 관심이 많다.

  중국 TV에서 시민을 대상으로 실험을 했다. 공원에서 아이를 납치하는데,공원에 있었던 그 어떤 사람도 이를 신고하지 않았다. 이러한 충격적인 모습은 일본에서도 발견된다. 우수근의 '21세기 한중일 삼국지'에는 저자가 겪은 일화가 소개되어 있다. 추운 길거리에 사람이 쓰러져있는데 아무도 도우려하지 않는다. 저자가 그 사람을 건물안으로 옮기고 경비원이 구급차를 부르는 동안, 같이있었던 일본인 친구들은 자리를 피했다. 일본에서 고 이수연씨가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을 구하려다가 자신의 목숨을 잃어버린 이야기에 일본인이 충격을 받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중국이라는 거대한 바다 속에서 괜히 잘못 남의 일에 엮이게 된다면, 자신의 가족과 친구들이 다칠 수 있기에 중국인들은 타인의 일에 나서려 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일본의 경우에도 칼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타인에게 신세를 지는 것도 싫어하고, 신세를 받는 것도 싫어하는 극단적인 문화가 죽어가는 생명을 보고도 못본척하는 삭막한 일본인을 만들었을 것이다.

  이러한 중국과 일본에 비해서, 우리는 어떠한가? 기저질환이 있어 마스크가 필요한데, 마스크를 구할 수 없다며, 보리쌀과 마스크를 물물교환하자는 인터넷글이 올라온 적이 있었다. 이 글을 읽은 한 시민이 그 사람을 직접 찾아가서 마스크를 선물하고 왔다는 훈훈한 일이 벌어졌다. 사회적 약자를 위해서 4월이 올때까지 마스크를 사지 않겠다는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코로나19를 이겨내는데, 한국인의 문화는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타인의 일에 간섭하지 않으려는 습성은 시위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일본은 잘살게 되어 나서는 것을 싫어하게 되었고, 그래서 자신과 관계 없는 정치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우수근은 말한다. 물론, 나의 생각은 사무라이가 지배했던 일본의 역사에서 원인을 찾아야한다고 생각한다. 한편, 중국은 강력한 중앙정부가 무서워서 시위를 하지 못한다. 단, 자신의 생존권과 관련된 일에 대해서는 '상방'이라는 시위를 하기 시작했다. 반면 한국은 어떠할까? 박근혜 최순실 사태를 겪으며, 세계인들이 놀라는 촛불 혁명을 이뤄냈다.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외면하지 않고 가족과 함께 촛불 문화재를 열며 박근혜 최순실을 권좌에서 끌어냈다. 조선왕조를 당파싸움만하다가 멸망한 나라라고 폄하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붓이 지배하는 나라이기에, 자신의 주장은 목숨을 걸고서라도 꿋꿋하게 했다. 사약을 받아 마시면서도 자신의 말을 하는 선비정신이 있었기 때문에 조선왕조가 500년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의 선비정신은 21세기 한국에서 촛불혁명을 일으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나는 이를 '역사적 무의식'이라 말하고 싶다. 우리는 모르지만, 우리는 '역사적 무의식'이 잠재되어 있다. 그리고 위기의 순간, 우리의 선택이 필요한 시기에 '역사적 무의식'은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지금의 코로나 19 위기 속에서도 우리의 '역사적 무의식'은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시위를 이야기 했으니, 한중일의 정치에 대해서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은 투표 제도 자체가 후진적이다. 유권자가 지지하는 사람의 이름을 투표용지에 적접적어야한다. 한지역구에서 대를 이어서 국회의원을 하는 집안이 있을 정도이다. 마치 에도막부시기 지방의 다이묘들을 보는듯하다. 중국은 어떠한가? 중국 공산당 독재를 비판할 수 없다는 사실은 코로나 19를 강력한 통제의 방식으로 처리하는 중국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코로나 19에 대해서 친구들과 의견을 교환하며 대책을 논의하던 리원량이라는 의사는 중국 당국에 잡혀가 다시는 이와같은 일을 하지 않겠다는 반성문을 쓰고 풀려났다. 그리고 리원량은 환자를 치료하다가 코로나 19에 걸려 저세상으로 떠났다. 중국과 일본은 서로 다른점이 많지만, 정치적으로는 중국 공산당 일당독재와 자민당 일당 독재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서로를 미워하지만, 너무도 둘은 정치적으로 닮아 있다.

  반면, 한국은 이명박근혜 시기의 어둠을 뚫고, 촛불혁명의 민주주의를 완성해가고 있다. 중국식 통제 방식으로 코로나 19를 극복하는 세계의 여러 나라들과는 대조적으로 우리는 민주주의의 자율성을 살려가며 코로나 19와 싸워가고 있다. 한국의 극복사례와 중국의 극복사례는 단순히 두가지의 코로나 19 극복사례가 아니다. 민주주의의 자율성과 공산주의의 통제정책의 대결이다. 우리 한국은 그 막중한 역사적 사명을 띠고 오늘을 살고 있는 것이다.

 

3. 한중일의 공통점

한중일이 서로 다른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수근은 한중일의 결혼과 이혼, 그리고 성문화까지도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우수근이 소개하는 한중일의 결혼과 이혼, 그리고 성문화는 속도의 차이는 있지만, 비슷한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

  일본은 잦은 동거와 쉬운 이혼을 할 수 있는 나라이다. 성문화 역시 예전부터 개방적이었다. 한 마을에 사는 주부가 13세 혹은 15세 정도의 '동정' 청소년에게 성 관계를 위해 접근할 때 사용하던 의식을 소개한 부분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일본을 '성진국'이라고 말하는 이유가 이해되었다. 이밖에도 신주쿠의 성문화 소개는 우리의 상상 그이상의 것들이었다.

  중국 또한 자본주의 물결이 넘실되면서, 이혼이 쉽게 되었다. 부부사이의 문제가 없는데도 새로운 파트너를 찾기 위해서 이혼을 하는 경우도 있다. 성문화도 개방화의 길을 걷고 있다. 중국 호텔 주변에서 쉽게 하룻밤을 자자는 여성이 있다는 것은 놀랍지도 않았다. 놀라운 것은 중국인들은 축첩에 대해서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그를 부러워한다고 우수근은 말한다. 공산주의 중국도 성문화 만큼은 빠른 속도로 개방화의 길을 걷고 있다.

  쉬운 이혼과 결혼, 빠르게 퍼져나가는 동거문화, 성에 대한 개방화는 한중일 3국이 각자 속도의 차이는 있지만, 출발점은 다르지만, 개방화라는 목표를 향해서 질주하는 듯하다. 다시 전통시대 유교문화가 지배이데올로기인 시대로 돌아가지 않는 이상, 이러한 개방화는 바뀌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것을 개인 자유의 확대와 행복추구라는 점에서 긍정해야할까? 아니면 성의 문란과 안정적인 가정의 해체라는 점에서 부정적으로 보아야할까?

 한중일의 공통점 중에서는 씁쓸한 것이 많다. 그중에 하나가 교육 분야의 문제점과 영어를 숭배하는 문화이다. 고등학교에서 일본어 선생님이 일본에서 어설푼 일본어를 하기 보다는 영어를 하는 것이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다고 말하셨다. 그런데, 이러한 모습은 중국에서도 마찬가지란고 우수근은 말한다. 한국의 경우는 말하지 않아도 우리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영어를 배우기 위해서 막대한 돈을 쏟아 붓고 있으며, 외국인이 영어로 길을 물어보면, 영어를 하지 못해 부끄러워하는 우리의 모습을 보면서, 씁쓸해질때가 많다. 대국이라 자처하는 중국마쳐도 영어에 주눅들고 있다는 사실을 보면서, 언제쯤, 한중일 삼국이 영어 숭배에서 벗어날지 한숨이 나온다. 아마도, 중국이 G1으로 우뚝 솟는다면 가능할까?

  교육 분야도 한중일이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다. 학교붕괴, 엄벌주의의 문제를 보면서, 미국식 경쟁교육을 따라하며, 많은 교육 문제를 야기하고 있는 한중일 삼국이 머리를 맞대고 참다운 교육을 위해서 고민한다면 해결책을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우수근의 '21세기 한중일 삼국지'는 중국과 일본을 통해서 우리를 다시 비춰볼 수 있는 기회를 안겨주었다. 빠르게 자본주의 사회로 발전하고 있는 중국이 자본주의의 문제점도 빠른 속도로 키우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고, 기미가요와 히노마루를 이용한 국가주의 교육에 저항하는 젊은 교사들의 용기있는 행동도 이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1인자를 추종하는 '대세주의적 영합관'을 가지고 있는 일본의 모습과 침묵하고 있기는 하지만 일본의 잘못을 직시하고 있는 많은 젊은이들이 있다는 사실은 일본이 가야할 길이 멀지만, 좌절만할 일은 아니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세계 어느 나라든지 이웃한 나라와 사이가 좋은 경우는 드물다. 가까이 있기에 서로 살을 부대끼며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편견을 갖기도 했다. 이제 21세기에는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서 서로를 알아가야한다.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상대의 눈동자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한발자국 더 다가가야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수근의 '21세기 한중일 삼국지'는 읽어볼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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