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든 - 완결판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지음, 강승영 옮김 / 은행나무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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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헨리 데이빗 소로우는 자연인일까? 어느날 28세의 청년은 도끼를 빌려 월든 호수가에 작은 집하나를 지었다. 그리고 그의 나이 30세가 되는 해까지 살았다. 약 2년 여를 살고 '월든'이라는 책을 저술했다. 이 한권으로 그는 유명 사상가의 반열에 올랐다. 텔레비젼을 켜면 재방송을하고 있는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그램을 떠올리며 그의 책장을 넘겼다. 자연인 소로우를 상상하며....


  보통 5년은 넘어야 자연인 초보를 벗어났다고 평가받는다. 20년 이상 깊은 산중에서 자연을 벗하며 살아가는 자연인이 많다. 그런데, 소로우는 고작 2년여 동안 월든 호수가에 살았다. 1845년부터 1847년이라는 짧은 시기에 월든 호수가에 통나무집을 짓고 살았으니, 자연인 치고는 초보에 해당한다. 

  그렇다고 그가 월든에 있는 2년 동안을 자연인들처럼 세상과 교류를 단절하며 살지는 않았다. 콩코드 문화회관에서 강연하고 '콩코드강과 메리맥강에서의 일주일'이라는 원고도 집필했다. 제6장 '방문객들' 편을 보면 소로우의 통나무 집에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그와 대화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속세를 떠난 존재가 아니며 월든에서 살아가는 2년 동안 그는 여전히 세속의 사람들과 인연을 맺으며 살아가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는 완벽한 자연인이 아니라 반만 자연인이었다. 세상과 교류하며 호수가에 살았는데 그를 대단한 인물로 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보통의 자연인들이 자신의 생각을 담은 책을 남기지 않았으나, 소로우는 글을 남겼기 때문이다. 

  '월든'은 총 18장으로 되어 있다. 이중에서 소로우의 사상을 알 수있는 부분은 제1장과 18장이다. 나머지 장들은 월든 호수가에 살면서 그가 겪거나 관찰한 자연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부분은 대단히 지루하다. 그렇기에 차라리 '나는 자연인이다.'를 보는 것이 보다 재미있고 더 가치있을 수도 있다. 

  그의 책 이곳 저곳에는 그리스 로마 신화와 동양의 고전을 인용한 글들이 많다. '논어', '맹자', '바그바드기타' 등등 그는 자신이 생각하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동양의 철학에 의지하여 서양의 언어로 표현했다. 책의 전체적인 내용으로 볼때 '노자'나 '장자'라는 고전을 인용했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들지만, 왠일인지 소로우는 '노자'와 '장자'를 인용하지 않았다. '나는 자연인이다'에 나오는 자연인들은 자연을 살피고 누릴뿐, 자연과의 삶을 기록하지 않는다. 그는 세상과의 인연을끊을 생각도 없고 끊지도 않았다. 월든이라는 대자연에 의탁해 살면서 경험한 내용을 소재로 책을 내어 유명인이 되었을 뿐이다. 

  그는 검소한 삶, 소박한 삶을 주문한다. 


  "우리가 털갈이하는 시기는 날짐승의 그것처럼 인생에 있어 위기의 국면일때 여야만 한다."(46쪽)


  나도 이렇게 생각했던적이 있다. 그런데, 이렇게 살면 왕따 당하기 딱좋다. 학창시절, 허름한 옷을 입고, 기워입은 바지와 양말을 신고 초등학교에 갔다. 나의 모습을 보며 손가락질하며 비웃던 선배와 친구들이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난다. 허름한 모습의 나는 여성들에게도 인끼가 없었다. 대학에서 아르바이트하며 내옷을 사입었다. 나름 괜찮은 옷이라 생각했으나, 친구들의 눈에는 역시 유행을 따라가지 못하는 옷차림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옷을 사기 위해서 옷을 차려입고 백화점에 가야한다. 허름한 옷을 입고하면 매장직원은 '당신이 비싼옷을 사겠어'라는 경멸의 눈초리로 우리를 대한다. 소로우의 옷에 대한 철학은 자연인이 되어야만 실천할 수 있는 주장이다. 

  소로우의 집에 대한 생각도 알아보자. 


  "나는 철로변에 놓여있는 큰 상자를 바라보곤했다. 저런 상자를 사서 비가 올때나 밤에는 그 속에 들어가 뚜껑을 내리면 영혼 깊숙이 자유를 누릴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했다."(52쪽)


  소로우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당신의 상상을 실천에 옮겼는가? 어린시절, 나의 집은 초라했다. 겨울에는 벽사이로 찬바람이 들어와서 수건으로 구멍을 막아 놓아야했다. 벽지도 찢겨져 흙벽이 노출되었다. 아버지는 집을 다시짓지 않았다. 그당시는 이에 대해서 불평하지 않았다. 가난 때문이다.

 소로우의 상상을 읽으며 가진자의 행복한 상상이라는 생각이든다. 소로우 당신은 그렇게 살았습니까? 월든 호수에서 2년밖에 살지 않은 초보 자연인이 할 수 있는 말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러자, 소로우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지금의 내 생활에 별 불편이 없다고 대답했다."(202쪽)


 이러한 그의 대답에 다시 질문하고 싶다. 아무런 불편이 없다면 당신은 왜? 월든에서 2년 밖에 살지 못했습니까? 나의 질문에 그는 아무런 대답도해주지 않았다. 그는 진정으로 월든에서의 2년을 행복하게 기억했을까? 혹시, 월든에서의 삶을 소재로 책을 출판해서 명성을 얻으려한 것은 아닌가?

소로우는 서구의 기계 문명에도 반감을 드러낸다. 


  "우리의 발명품은 흔히 진지한 일로부터 우리의 관심을 빼앗아가는 예쁘장한 장난감일 경우가 많다."(85쪽)


  우리의 발명품이 우리를 옥좨고 있다. 스마트폰이 인간의 사유를 말살하고 있다. 그런데도 미국인 소로우의 말이 달갑게 들리지는 않는다. 서구의 과학 기술문명에 아시아 아프리카인은 굴복했다. 지구상의 3분의 2의 국가가 식민지가 되었다. 먼저 서구의 과학 기술을 받아들인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은 우리로서는 과학기술을 배우는 것은 또 다른 독립투쟁이었다. 이러한 우리에게 서양인 소로우의 말은 배부른 투정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소로우의 글이 나에게 적대감만을 불러일으킨 것은 아니다. 


  "집을 마련하고 나서 농부는 그 집 때문에 더 부자가 된 것이 아니라 실은 더 가난하게 되었는지 모르며, 그가 집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집이 그를 소유하게 되었는지 모른다."(58쪽)


  영끌족, 하우스 푸어가 많은 우리 현실을 생각한다면 소로우의 지적은 날카롭다. 집이 거주의목적이 아니라 투기의 대상으로 여겨지지고 있다. 탐욕은 끝이 없어서, 자기 집값이 오르길 바라면서도 종부세가 나오면 길길이 날뛴다. 속물적 속성이 역역한 우리의 자화상이다. 


  동양사상에 심취하여 자연과 더불어 살고자했던 소로우의 삶이 나에게는 부잣집 도련님의 외출로밖에는 다가오지 못했다. 서구의 과학문명으로 동양을 식민지로 삼은, 가진자들의 여유 혹은 가진자들의 사치일 뿐이다. '월든'을 내려 놓으며 씁쓸한 마음을 지울 수 없다. '나는 자연인이다.'를 즐겨보면서 나도 자연이이 되는 것을 상상했다. 그러나, 내가 상상했던 자연인은 가진자의 투정도 아니요. 부자집 도련님의 외출도 아니었다. 


ps. 어느 정치인에게 소로우의 글귀를 헌정한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 아무런 존경심을 갖지 않는 사람이 애국심에 불타서 소를 위해 대를 희생시키는 일이 있다. (중략) 이런 사람들에게 애국심은 그들의 머리를 파먹고 있는 구더기라고 할 수 있으리라"(4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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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3-12-15 09: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잘봤습니다!

강나루 2023-12-17 11:44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