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 인 러시아 - 경제연구소의 인문학자가 들려주는 러시아의 역사.문화.경제 이야기 줌 인 러시아 1
이대식 지음 / 삼성경제연구소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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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익숙함의 함정에 쉽게 빠진다. 자주 접하는 단어이기에 그 단어를 잘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이웃국가에 대해서도 익숙함의 함정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러시아에 대해서 잘알고 있다고 착각하지만 막상 러시아를 설명하려하면 그제서야 러시아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줌 인 러시아'라는 책을 꺼내들었다. 익숙함의 함정에서 벗어나 러시아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 책장을 넘겼다. 첫장부터 유쾌했다. "끄라시바야"라는 말이 '아릅답다.'라는 뜻이라는 사실을 알고서는 웃음을 지었다. "스파시바"는 '감사합니다.'라는 뜻이란다. 이 이야기를 하자, 일본어 선생님이 일본어 "케세끼"가 '결석'이라는 뜻이라고 말한다. 러시아는 이렇게 유쾌하게만 볼 수 있는 나라일까?


  말데비치가 그린 '검은 사각형'이라는 그림을 미술책에서 많이들 보았을 것이다. 흰바탕에 검은 사각형이 크게 그려져있는 그림을 보며 예술이라는 것이 단순하면서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 그림을 그린 말데비치가 러시아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 그림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하얀 시베리아가 펼쳐진 러시아라는 극한의 땅에서 탄생한 극단의 예술작품을 통해서 극단의 러시아를 만날 수 있었다. 

  러시아의 '맥심멀리즘'은 러시아의 역사와 정치 곳곳에서 펼쳐진다. 바실리 페로프의 '트로이카'라는 작품은 자신보다 무거운 물동이를 끌고가는 세소년 소녀들의 힘겨워하는 모습에서 극단의 러시아 사회와 마주하게 한다. 혹독한 추위 속에서 노동을 강요받았던 러이아! 1860년대 까지 농노제가 유지되고 있었으며, 농노제에서 해방되었지만, 엄청난 액수의 댓가를 지불해야만 했던 러시아의 민줄들의 삶이 얼마나 고단했겠는가! 특히 '트로이카'라는 작품의 중앙에 있는 소년의 경우, 가난과 배고픔으로 죽게 되고, 소년의 어머니는 자신의 전재산인 달걀 꾸러미를 가지고 와서 죽은 아들의 그림을 달라고 부탁한다. 이미 팔려버린 그림을 소년의 어머니가 마주하고는 울부짖으며 무릎 꿇는다. 가난과 고통의 '맥심멀리즘'을 잘 보여주는 '트로이카'는 나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한해에도 수십명의 제자가 졸업을 한다. 그리고 그 제자들 중에는 소식이 끊긴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우연히 40~50대의 부인이 나에게 카카오톡스토리 친구신청을 해서 나를 당황케했다. 그리고 그녀에게서 내가 가르쳤던 제자가 20대의 꽃다운 나이로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가난하지만 착한 녀석이 꽃을 피우지도 못하고 죽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힘든 시기를 지나서 이제는 꽃길을 가길 바랬는데 녀석은 먼저 저세상으로 갔다. 그때의 먹먹함이 '트로이카'라는 그림을 보면서 다시 떠올랐다. 

  러시아의 '맥시멀리즘'은 정치에서도 나타난다. 러시아는 전제 정치의 나라라고 말해도 될 정도로 강력한 전제 정치를 한 인물들이 많다. 이반 뇌제에서 시작하여 러시아를 서구화 시키려했던 표트르 대제, 철의 장막 소련을 장악한 스탈린, 강력한 러시아를 외치며 맹수를 때려잡는 영상을 일반에 공개한 푸틴 등등.... 그런데, 이들의 인기는 높다. 이반 뇌제 치하에서 모스크바 인구의 3분의 1이 감소했다. 러시아 전체인구 4분의 1이 감소했다. 그런데 이반 뇌제는 위기의 러시아를 중앙집권화했으며, 러시아의 영토를 확장시켰다. 이러한 모습은 스탈린과 푸틴의 시기에도 비슷하게 펼쳐진다. 강한 러시아의 모습을 보였지만, 그들의 지배하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다. 역사는 반복되는가?라는 질문을 한다. 현실의 폭압보다는 강한 통치자가 강한 러시아를 만들어주길 바라는 마음이 러시아인들의 가슴속에 남아있다. 그 바램이 사그러들지 않는다면, 러시아의 '맥시멀리즘'은 정치에서도 계속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극단의 '맥시멀리즘'에서 살아남는 법은 무엇일까? 러시의 대문호 솔제니친의 소설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동물우리'에서 '인간으로 살아남기'위해서는 솔제니친의 소설속 주인공이 했던 것처럼 품위를 지키기 위해서 최소한의 규율을 만들어야한다. 다시 말하자면 최소한의 원칙을 지켜야한다. 아무리 추워도 식사할 때 반드시 모자를 벗고 식사를 한다. 약간의 이익을 위해서 뇌물을 주는 행위를 하지 않늗다. 등등의 원칙은 스탈린이 우리를 시베리아 강제 수용소에 몰아 넣고 동물로 만들려 한다할지라도, 우리는 절대 동물이 아닌, 인간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그렇다. 우리의 현실이 우리를 동물로 대하려해도 우리는 소박한 인간적 경계선을 그어놓고 인간으로 살아남기 위해서 노력해야한다. 그것이 인간으로 오늘을 살아가는 방법이다. 


  '줌 인 러시아'에는 러시아의 다양한 모습들이 소개되어있다. 미국에서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팔고, 이탈리아 황실 기마대에게 러시아 말을 팔겠다고 사기를 친 니콜라이 사빈이라는 희대의 사기꾼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사기를 치더라도 러시아의 '맥시멀리즘'이 작동한다. 이 책은 때로는 가슴 먹먹하게 만들기도하고 때로는 너무도 유쾌하게 만드는 러시아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제 강대국으로 기지개를 펼치고 있는 러시아와 가까워지고 싶은 독자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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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폴리스 - 인간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 도시의 역사로 보는 인류문명사
벤 윌슨 지음, 박수철 옮김, 박진빈 감수 / 매일경제신문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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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골에서 자라서 도시에서 생활하고 있다. 나는 시골이 싫었다. 답답했다. 무엇을 하려해도 할 수 없는 기회가 박탈된 곳이 시골이었다. 그래서 기어코 도시로 도시로 가려했다. 도시는 나에게 기회가 있는 곳이다. 그 기회는 대도시로 갈 수록 더 커진다. 수원에서 살았을 때, 나는 지하철을 타고 서울역사박물관의 특별전을 보러 갔고, 국립 중앙박물관 주변을 산책삼아 걸어보기도했다. 오페라와 콘서트를 즐길 수 있는 축복의 장소가 도시였다. 다락방 '교사와 수업 사이'의 두번째 책으로 메트로폴리스를 선택했다. 책을 받아들고 650페이지라는 두께감이 무겁게 밀려왔다. 그러나 재미 있는 책이라면 두께 정도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책속으로 들어가 보자. 


  한국인이라서 그런지 벤 윌슨이 한국의 도시에 대해서 서술한 부분이 등장하면 눈길이 갈 수밖에 없다. 벤 윌슨은 송도 신도시를 최첨단 도시로 소개했으며, 도시 녹지를 복원하는 훌륭한 사례로 서울의 청개천을 소개했다. 송도 신도시는 어느 가정의 수도꼭지가 잠겨있지 않은지도 파악할 수 있는 도시라며 긍정적이기 보다는 다소 어두운 미래도시를 보는 듯이 서술했다. 반면 청개천 복원에 대해서는 도시 열섬효과를 낮추는 긍정적인 성과를 거둔 사례로 소개하고 있다. 자원의 낭비를 막는 스마트한 도시를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전시행정의 대표적인 사례인 청채천 복원공사를 긍정적으로 소개한 것이 나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특히 청개천에 물을 흐르게 하기 위해서 모터를 돌려 한강물을 끌어들인다. 청개천 바닥은 흙이 아니라 돌이 깔려있다. 전형적인 인공하천이다. 이것을 어찌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단 말인가!

  도시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기회의 장소라는 이미지와 함께 범죄와 공해라는 이미지가 같이 떠오른다. 도시라는 공동체는 다양한 인간들이 모여 만든 집합체이기에 기회도 있지만, 사회의 어두운 그림자도 짙을 수밖에 없다. 벤 윌슨은 "도시에는 위생처리가 필요한 만큼 오물도 필요하다."라고 말하며 성인용품점, 도박장, 스트립쇼장 등등이 필요악임을 서술하고 있다. "도시는 유토피아인 동시에 디스토피아"이다. 그렇다면 디스토피아를 없앨 수는 없을까? 이를 없애려한다면 미국에서 제정한 금주법이 오히려 마피아 세력을 확대시킨 결과를 낳았듯이 도시의 디스토피아적 요소를 강화시킬까?

  도시의 디스토피아적 요소를 없애려한 도시계획이 있었다. 지금의 파리를 만든 오스만의 도시계획이 바로 그것이다. 오스만의 도시계획에 대한 평가는 서로 대립적이다. 구불구불하고 도시의 오염물을 제대로 배출하지 못하는 파리를 오스만은 방사선의 깔끔한 도시로 개혁했다. 파리의 디스토피아적 요소를 없애 지금의 아름다운 파리를 만든 오스만의 도시계획을 비판할 이유가있을까? 그런데, 시인 샤를 발레트는 오스만을 "잔인한 파괴자"라고 말했다. 파리의 조그만 산들을 없앴다. 그 산에 있었던 유적들도 같이 없어졌다. 고풍스러운 파리는 획일적인 파리로 바뀌었다. 오스만의 도시계획은 급속한 산업화 속에서 많은 유물과 공동체가 파괴된 우리의 도시들과 비슷하다. 오스만에 대한 평가는 우리의 도시팽창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와 연결되어있다. 오스만의 도시계획을 어떻게 평가해야할까? 

  도시는 강인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물론, 인류 역사 속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 도시도 많다. 그러나 사라질 수밖에 없다고 확신한 도시들이 전쟁의 포화속에서도 다시 살아난다. 1945년 포로 수용소의 독일 장교는 "쾰른에는 여러번 분산 명령이 내려졌지만, 여전히 국민들은 한때 '집'이었다는 이유만으로 그 잡석 무더기로 되돌아 간다."고 했다. 자신의 도시, 삶의 터전에 대한 회귀 본능은 불가사의한 힘을 부러일으킨다. 죽음을 목도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도 인간은 삶의 터전인 도시로 회귀한다. 그래서 도시는 빠르게 재건된다. 

  불가능한 부활을 이룬 대표적 도시가 있다. 바르샤바가 바로 그 대표적 도시이다. 히틀러는 바르샤바를 철저히 파괴하도록 명령을 내렸다. 도시 건물 하나하나를 파괴했고 사람들을 포로수용소로 이송했다. 그런데, 생명이 위태로운 그 순간에도 바르샤바인들은 도시가 파괴될 것을 예측하고 문서를 대조하고 역사적 건물도면을 남겨두었다. 이러한 도시 재건을 할 수있는 자료를 암호화하여 외부에 반출하거나, 수도원 혹은 포로 수용소에 숨겨두었다. 전쟁이 끝나자 도시를 재건하기기 위해서 바르샤바인들은 문서, 엽서, 사진, 도면, 그림등의 모든 자료를 수집해서 그들의 바르샤바를 재건했다. 생명이 위급한 상황속에서도 자신의 삶의 터전을 기억해두고, 전쟁이 끝나자 예전 모습대로 재건하려는 그들의 노력은 불가사의하면서도 경의감을 불러 일으킨다. 도시의 생명력은 강했다. 그 생명력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바로 그 도시에 살고 있는 인간이었다. 


  도시의 삶에 젖어 있으면서도 인생의 말년은 시골에서 보내고 싶다. 그러나 나이가들수록 병들어가는 몸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큰병원 가까이에 살아야하기에 그 소망은 소망에 그칠 수밖에 없다. 도시는 디스토피아이면서 유토피아이기에 도시를 떠나고 싶지만 도시를 떠날 수없다. 전원생활이 아름다워보이는 것은 도시를 떠날 수없다는 현실을 인정하기에 더욱 아름다워보일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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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큼 가까운 프랑스 이만큼 가까운 시리즈
박단 지음 / 창비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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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세화의 '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라는 책을 통해서 프랑스를 알았다. 그후로 프랑스의 교육을 소개한 책들을 읽으며, 자유, 평등, 우애라는 프랑스 대혁명의 이념이 사회 곳곳에 스며든 이상적인 나라로 프랑스를 인식했다. 우리의 현실이 고단할수록 프랑스는 이상적인 나라로 다가왔다. 군사정권시기 프랑스로 망명했던 홍세화가 보기에 프랑스는 자유로운 이상형의 나라였다. 주입식교육, 입시교육이 판을 치는 대한민국의 교사에게는 개인의 개성을 존중하는 프랑스의 교육이 이상적인 교육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코로나19 펜데믹을 거치면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우리가 이상적으로 생각했던 나라에 비해서 결코 뒤쳐지지 않는 나라라는 사실을 몸으로 체감했다. 그럼, 우리가 이상적으로 생각했던 프랑스도 달리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프랑스 역사의 시작은 언제부터일까? 어느 학자는 중세시기 위그 카페 왕조에서 찾기도하고, 어느 학자는 프랑크왕국에서 찾기도한다. 또 어떤 사람은 로마와 맞서사원 골족의 베르생 제토릭스에서 찾는다. 베르생 제토릭스를 모델로 만든 만화가 '아스테릭스'이다. 프랑스인들의 역사는 시작부터 논쟁꺼리다. 

  그러나, 우리에게 프랑스 역사의 진정한 시작은 프랑스 대혁명이다. 그 이전의 프랑스 역사는 보통의 주변 나라와 큰 차이가 없다. 그러나, 프랑스 대혁명은 프랑스만을 변화시킨 것이 아니다. 주변 여러 나라는 물론이고, 지금의 민주주의 국가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프랑스 혁명의 이념인 '자유', '평등', '우애'라는 이념은 아직도 지구촌 사회가 도달해야할 과제이다. 

  그렇다면, 프랑스는 프랑스 대혁명의 이념이 잘 구현된 나라 일까? 내가 읽은 책들에서 프랑스는 프랑스 대혁명의 이념이 녹아있는 나라였다. 똘레랑스의 나라이며, 모든 프랑스인들이 바캉스를 갈 수 있도록 국가가 신경써주는 나라이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서 들여다본 프랑스는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자유', '평등', '우애'라는 이념이 현실에 잘 반영된 나라이기 보다는, 프랑스 대혁명의 이념을 현실에 구현하기 위해서 보다 치열하게 전진하는 나라였다. 

  프랑스가 당면한 수많은 문제중에서 프랑스가 당면한 문제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건이 바로 '히잡 사건'이다. 학교에서 히잡을 썼다는 이유로 학생을 퇴학시킨 것이 사회문제로 대두되었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 프랑스 사회에 뿌리내린 "정교분리 원칙"을 예외없이 적용해야한다는 주장과 "똘레랑스" 정신을 발휘해야한다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저자 박단은 학교에서 십자가를 목에 걸고 다니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문제를 제기 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근거로 프랑스에서 "똘레랑스 정신"이 부족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사실 무슬림의 폭동과 자생적 IS 조직원들이 벌인 테러사건 이후, 프랑스는 피부색과 종교의 차이에 똘레랑스를 발휘하고 있지 못하다. 아니, 그 이전부터 무슬림에 대한 보이지 않는 차별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곪아 터진 것이다. 종교와 피부색의 장벽에 프랑스의 삼색기는 가로막혀있었다. 그들이 피부색의 장벽을 넘지 못한다면 비극은 계속될 것이다. 프랑스 혁명의 이념은 프랑스에서 완벽하게 실현되지 못하고 있었다. 

  프랑스에서 여성의 참정권이 인정된 것이 1944년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많은 사람들이 몰랐을 것이다. 정식 의회를 거쳐서 참정권이 여성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임시정부 법률 명령에 의해서 여성의 참정권이 인정되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공화주의자들에게 여성은 가톨릭 신부의 영향을 받아 왕당파를 지지할 염려가 있는 어리석은 존재들이었다. 진보적 인사라해서 모든 분야에서 진보적이지는 않다. 혁명중에서 가장 힘든 혁명은 자신을 혁명하는 일이다. 혁명하기 가장 힘든 분야는 생활속 혁명이다. 프랑스 대혁명이 정치적 혁명이라면, 지금의 프랑스는 생활속 혁명을 해야한다. 생활속 혁명은 일회성 혁명이 아니라, 지속적인 혁명이어야한다. 그래서 생활 속 혁명이 힘든 것이다 

  프랑스의 역사 속에도 흑역사가 있다. 나치에 협력한 비시 프랑스를 어떻게 보아야할까? 전쟁의 재앙에서 프랑스를 구했다며 패탱이 이끈 비시 프랑스를 농민과 부르주아는 지지했었다. 그렇게 된다면, 프랑스는 전범국가가 된다. 그에 비해서 드골이 이끈 자유 프랑스의 관점에서 역사를 바라본다면 프랑스는 승전국이된다. 역사는 기록하는자의 것이고, 기억하는 자의 것이다. 프랑스인들이 자신의 역사를 어떻게 기억하는 가는 프랑스의 오늘을 결정하고, 미래의 방향을 알려줄 것이다. 그리고 프랑스가 프랑스 대혁명의 이념을 구현할 자격이 있는 국가인지, 아닌지도 결정지을 것이다. 


  '이만큼 가까운 프랑스'라는 책은 쉽게 읽히는 책이다. 그러나, 나와 같이 프랑스에 대한 특정 분야에 대한 지식만 있는 사람에게는 프랑스에 대한 균형잡힌 지식을 알려주는 소중한 책이다.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것도 바로잡아주었다. 대표적인 예가 프랑스와 조선과의 만남이다. 보통 병인박해로 인해서 프랑스가 병인양요를 일으킨 것은 프랑스와의 첫만남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프랑스와의 만남은 헌종시기까지 올라간다. 기해박해 시기에 조선은 프랑스 신부 3면을 처형했다. 이에 대해서 프랑스는 군함 2척을 이끌고 조선에 왔으나, 한강입구를 발견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듬해 새만금 근처 고군산도에서 강풍과 암초로 난파당한다. 만약 1846년 프랑스군과 조선정부의 만남이 이뤄졌다면,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다. 일본에 의해서 강제 개항되지 않고, 프랑스에 의해서 개항을 이뤘을 가능성도 있다. 그렇다면 세도정치의 모순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었던 조선은 현명한 대응을 했을까? 일본보다 먼저 개항해서 근대화에 성공할 수 있었을까? 많은 상상의 나래를 펴본다. 


ps. 프랑스 역사에서 관직매매가 긍정적으로 평가된다는 사실이 무척 흥미롭다. 절대왕정 시기, 왕실은 관직매매를 통해서 왕실제정을 확충하고 대영주 귀족을 견제할 수 있었단다. 우리 역사에서 관직 매매는 사회를 병들게 만들었다고 서술하고 있다. 한국사의 상식을 가지고 프랑스의 역사를 해석하는 것은 위험한 일일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특정 국가의 사례가 타국에서는 예외적인 사례 일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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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7-07 16: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강나루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7월 건강하게 ^.^

강나루 2021-07-07 18:06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서니데이 2021-07-07 16: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강나루 2021-07-07 18:06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초딩 2021-07-08 00: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강나루님!
당선작 축하드려요~

강나루 2021-07-09 04:13   좋아요 0 | URL
감사해요^^

황후화 2021-07-08 00: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당선작 축하드려요~~~

강나루 2021-07-09 04:13   좋아요 0 | URL
감사해요^^

이하라 2021-07-08 01: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

강나루 2021-07-09 04:12   좋아요 1 | URL
감사해요^^

bookholic 2021-07-08 04: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강나루 2021-07-09 04:14   좋아요 1 | URL
감사해요^^
 
처음 만나는 스페인 이야기 37 - 천의 얼굴을 가진 이베리아 반도의 뜨거운 심장
이강혁 지음 / 지식프레임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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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가를 거닐다가 스페인에 관한 책을 골랐다. 프랑스와 영국에 관한 책에 비해서 스페인에 관한 책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스페인에 관해서 알고 있는 것이 적은 나로서는 산책하듯이 스페인을 거닐 수 있는 책이 필요했다. 그래서 '처음 만나는 스페인 이야기 37'을 선택했다. 스페인은 어떤 나라일까?


  스페인은 모순이 가득한 나라이다. 첫째, 하나의 나라이 면서 4개의 언어가 공식언어가 존재한다. 카탈루냐, 바슼, 갈리시아, 카스티야라는 4개의 언어를 사용하는 하나의 나라라니... 그럼 우리가 스페인어라고 부르는 언어는 도대체 어떤 언어라는 말인가! 보통 스페인어도 카스티아어를 지칭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1국가 1민족 1언얼르 당연시하는 우리로서는 참으로 생소하고 놀라운 일이다. 우리의 당연함이 타인에게는 생소함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더올린다. 

  둘째, 다양함 속에서 획일성을 추구하는 나라이다. 이베리아 반도에 로마인, 게르만족, 무슬림이 쳐들어왔다. 레콩키스타를 통해서 로마 카톨릭 세력이 재정복을 완성하고 나서는 다양한 민족과 종교가 공존하는 이벨리아 반도가 로마 카톨릭으로 획일화 되기 시작했다. 신항로를 개척하며 밖으로 나아가는 스페인이 내부에서는 획일성을 추구하는 모순된 일이 벌어졌다. 종교와 민족이 다른 스페인 사람들을 로마 가톨릭으로 묶으려했으나, 결국, 로마 가톨릭을 선택하고 부유함을 포기하는 꼴이 되었다. 하느님은 사랑을 이야기했으나, 스페인은 성인 '산티아고'의 이름을 외치며 신대륙에서 인디오를 학살하는 군대의 사기를 높였다. 

  셋째, 승리하는 시대와 패배하는 시대의 교차점 펠리페 2세! 스페인 절대왕정을 이끌었던 펠리페 2세는 스페인 쇠락의 주점이라는 사실이 모순적이지 않은가? 1588년 무적함대가 영국에게 패배하면서 그 이전을 칼롤로스 1세, 펠리페2세의 '승리하는 스페인'이라하고, 그 이후 합스브르크 왕가 시대를 패배하는 스페인이라고 한다. 무리한 영국 침공과 무리한 로마 가톨릭 정책으로 해가지지 않는 제국 스페인은 쇠락하고 있었다. 특히 유대인을 비롯한 이슬람인들을 추방하고 종교 재판으로 화형에 처하면서 금융과 상업 및 제국 통치에 필수 인력들이 해외로 빠져나갔다. 외화내빈의 스페인! 내실을 다지지 않고 화려함만을 추구하는 그들은 결국 패배하는 시대를 맞이한다. 그것도 너무도 빨리.....

  넷째, 유럽이라는 선진지역에 위치하지만, 1975년까지 프랑코라는 독재자에 의해서 통치된 나라이다. 독재자 프랑코는 마드리드가 위치한 카스티야지방에는 전폭적인 지원을 했지만, 바로셀로나가 위치한 카탈루냐 지방은 탄압을 했다. 이것은 카탈루냐 지방이 분리 독립을 외치는 씨앗이되었다. 국민을 갈라치기하는 모습은 박정희와 신군부가 지역감정을 부추기고, 영남을 발전시키면서도 호남을 소외시킨 것과 너무도 흡사하다. 독실한 로마 가톨릭 신자로서 가톨릭에 특혜를 주었던 독재자 프랑코! 그는 로마 가톨릭에서 말하는 천국에 갔을까?


  스페인에 대한 기초 지식이 부족한 나와 같은 사람에게 무척 유용한 책이다. 이 책을 통해서 스페인이 친밀해졌다. 코로나 19 펜데믹이 끝나면 가보고 싶은 나라이다. 그런데, 이 책에 이해되지 않는 부분도 있다. "현재 남부의 도시 카디스는 페니키아인이, 동부의 도시 카르타헤는 카르타고인이 건설했다."(89쪽)라고 적어 놓았는데, 페니키아인들이 건설한 도시국가가 카르타고이다. 그렇기에 페니키아와 카르타고를 분리해서 서술할 필요가 없다. 저자에게 직접 물어볼 수 없으니 답답할 뿐이다. 저자가 대전에 스페인어 교사로 있다니, 기회가 된다면 만나서 스페인에 대한 궁금증을 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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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품격 - 작은 섬나라 영국은 어떻게 세계를 지배했는가
박지향 지음 / 21세기북스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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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수라고 해서, S대를 나왔다고 해서 세상을 제대로 보는 것은 아니다. 수많은 역사학자들이 있지만, 그들 모두가 자신의 눈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것은 아니다. 노예의 눈으로 강대국을 위한 변명을 하는 학자들을 우리는 많이 본다. 나의 대학시절이 생각난다. 부족한 서양사에 대한 지식을 마음껏 충전하겠다는 기대를 가지고 '서양 근대사'를 수강했다. 영국에서 학위를 한 교수님이 '강대국의 흥망'이라는 책을 교재로 서양 근대사 수업을 했다. 그런데, 그 교수님은 자유무역과 서구중심의 역사관을 가지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영국을 무던히도 사랑했다. 동양에서는 자본주의의 싹이 보이지 않을 때 영국에서 시작된 자본주의와 자유주의는 세계를 선도했다는 내용의 강의가 무척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동양에서도 자본주의의 싹이 트고 있었다는 연구도 있다고 항변하자, 그 교수는 쌩뚱맞은 답변을 했다. "그렇다면 상투틀고 살아야지." 정말, 어이없는 답변이었다. 그런데, 대학에서 만난 서양사 교수와 너무도 닮은 견해를 가진 학자의 책을 만났다. '제국의 품격'이라는 책을 읽으며 대학시절 나를 무척 불편하게 했던 그 교수가 생각났다. '제국의 품격'이라는 책은 어떤 책이길레 나의 불편함이 그리도 켰을까?


1. 영국이 강대국이 되기 위해 벌인 비도덕적인 일에 눈감다.

  대학시절, 같이 '서양근대사' 수업을 같이 들었던 타과생이 교수에게 질문을 했다. "왜? 서양에서는 도덕이라는 관점에서 역사를 바라보지 않나요?"라는 타과생의 질문에, 그 교수는 그렇지 않다고 주장했다. 나는 아편전쟁을 비롯해서 영국이 저지른 비도덕적인 전쟁을 열거하면서 비도덕적인 서양 제국주의의 모습을 직면하도록 했다. 그 교수는 귀찮다는듯, 고개를 저으며 더 이상 답변을하지 않았다. 

  '제국의 품격'에는 영국이 강대국으로 성장하기 위해서 저지른 잘못을 직시하고 있지 않다. 유럽의 변방에 위치한 섬나라 영국은 자본이 많지 않았다. 엘리자베스 여왕시절, 영국의 가장 큰 산업을 꼽으라면, 단연 해적질을 들 수 있다. 1579년 스페인 보물선을 약탈해서 26톤의 은괴를 약탈했으며, 보물선의 선장이 은괴를 빼돌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입증해주기 위해서 영국의 해적 드레이크는 보물선 선장에게 약탈품 목록을 써주기까지 했다. 저자는 이를 '영국 신사다운 해적'이라고 표현했다. 영국은 신사의 나라라고 할 수 없다. 신사의 나라가 아니라, 해적의 나라가 어울릴 것이다. 타국의 보물을 훔쳐 부를 쌓고, 해적질을 잘한 드레이크에게 기사작위를 주었고, 심지어는 스페인의 무적함대가 쳐들어오자, 드레이크가 영국해군을 이끌고 무적함대에 맞서싸운다. 해적과 한몸이되거 도적질로 성장한 나라가 영국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도적질을 저자는 비판했어야하지 않을까? 그것이 우리의 상식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저자는 영국을 비난하지 않는다. 스페인도 아메리카 원주민을 착취해서 부를 쌓았기에 떳떳하지는 않다. 그렇다하더라도 도둑의 물건을 도둑질하는 것도 엄연한 도둑질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할 것이다. 

  영국의 산업혁명은 면직물 산업에서 시작되었다. 실을 뽑고, 이 실로 면직물을 만드는 과정에 기술혁신이 이뤄지면서 산업은 혁명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기술혁신을 이룬 영국인들의 놀라운 힘을 칭찬하는데 주저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영국의 기술혁신 뒤에 드리워진 그림자에 대해서 침묵한다면 우리는 약소국들에게 죄를 짓는 것이다. 영국산 면직물보다 더 좋은 면직물이 있었다. 바로 인도산 면직물이다. 무굴제국의 황제가 공주에게 살결이 다 비치는 옷을 입었다고 나무라자, 공주는 옷감을 세겹이나 둘렀다고 변명했다. 그정도로 영국산 면직물은 품질이 좋았다. 영국 동인도회사는 질좋은 면직물을 짜내는 영국 직공들의 엄지손가락을 잘라버렸다. 손가락이 잘려나간 직공이 얼마나 큰 고통을 당했을지는 짐작하고도 남는다. 인도의 면직물 산업은 붕괴했다. 간디가 붕괴해버린 인도의 면직물 산업을 다시 일으키려 스스로 물레를 돌려야만 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인도를 침략하는 영국에 타격을 주면서 인도의 경제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인도인이 필요한 옷감을 스스로 생산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서술해야만 한쪽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제국의 품격'에는 영국의 기술혁신을 찬양하는 내용은 있었도, 인도의 면직물 산업을 붕괴시켜 영국의 소비시장으로 만들려 잔인한 짓을한 영국 동인도회사의 만행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진실을 적지 않는 것도 진실을 왜곡하는 일임을 우리는 잘알고 있다. 

  영국이 신사의 나라이기 보다는 깡패의 나라였음을 알려주는 대표적인 사건이 바로 '아편전쟁'이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타국에 아편을 판매하고, 이를 단속하는 청나라에게 우수한 무기로 위협하며 자신의 이익을 관철시킨 영국 신사의 행위는 절대 신사적이지 않다. 물론, 도덕적이지도 않다. 만약, 약소민족으로 제국주의 국가의 식민지배를 받은 경험이 있는 우리역사를 몸으로 알고 있는 학자라면, 대영제국의 침략행위를 정당화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책에는 믿을 수 없는 내용이 서술되어 있다. 


  "영국과 중국이 맺은 통상조약은 영국에게만 독점적 특권을 부여한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전 세계로 향한 개방 경제 체제의 일환이었다."-132쪽


  아편을 단속하는 청나라의 정당한 행위를 트집잡아 일으킨 전쟁에 대한 비판은 없고, 오히려 영국이 중국을 개방 경제 체제로 이끌어냈다는 찬양은 나의 눈을 의심케했다. 철저히 제국주의 영국의 시각에서 역사를 바라본다면, 철저히 제국주의 일본의 시각에서도 역사를 바라보지는 않을지 걱정이 밀려왔다. 


2. 영국의 인도 식민지배는 정당한가?

  우리의 관점에서 인도를 이해하면 인도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인도는 그들을 200년간 식민지배한 영국과도 웃으며 헤어진 나라이다. 일찍이 완벽히 통일된 인도가 성립된 것은 영국의 식민지배를 받으며 민족적 각성이 일어나면서 하나의 인도인이라는 관념이 생성되었다. 한반도에서 하나의 국가를 건설하고 오랫 동안 중앙집권적 국가 속에서 살아온 우리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인도에서 일어나는 근본적 차이가 여기에 있다. 민간인들에게 총을 난사하여 397명이 죽고 1200명이 다친 암리차르 학살 사건 (Amritsar massacre) 을 저지른 영국에게서 독립하고서도 영연방에 남아있는 인도가 우리는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대영제국 하의 자치를 주장하는 인도의 민족주의자과 일제 강점기 일제의 식민지배를 인정하고 자치를 주장한 이광수와 같은 친일파를 비교하면 인도와 한국의 역사인식에 극명한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인도의 역사가 우리의 역사와 다르다하여도 제국주의 국가의 식민지배를 받은 것이 행복할리 없다. 이것은 세계 모든 약소민족의 공통된 역사일 것이다. 더욱이 우리는 일제 36년이라는 혹독한 식민지배를 받은 경험이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우리가 인도의 역사를 서술한다면 영국의 식민지배에 신음하는 인도 민중의 입장에서 역사를 서술해야하지않을까? 

  '제국의 품격'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우리의 상식을 철저히 부서버린다. 우리가 세계사교과서에서 배운 세포이 항쟁(1857년 ~ 1858년)을 누구의 입장에서 바라보는가에 따라서 "반란"으로도 불릴 수 있고, "항쟁" 혹은 '제1차 독립전쟁"으로도 불릴 수 있다. 한국인 교수가 쓴 '제국의 품격'이라는 책에서는 어떤 용어를 사용했을까? 놀랍게도 "반란"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영국이 인도를 식민지배하면서 저지른 잔혹한 일들에 대해서는 일체 서술하지 않고, 영국의 식민지배로 인도가 근대화되었다는 내용의 서술이 주류를 이룬다. 특히 인도인들의 말을 인용하며 인도인들이 영국의 식민지배를 고마워하고 있다는 서술을 강조해서한다. 그렇게 영국이 인도에 잔인한 식민지배를 하지 않았다면 왜? 세포이항쟁이 일어났는지 묻고 싶다. 피식민지인들에게는 그 어떤 제국주의 국가도 선한 존재일 수 없다. 

  저자 박지향은 인도인이 왜? 세포이 항쟁을 일으켰는지를 먼저 서술하기 보다는 영국 군인과 가족이 죽임을 당한 칸푸르 사건을 먼저 서술하며 여자와 아이를 학살한 세포이들의 잔인함을 서술한다. 이러한 서술은 암리차르 학살 사건을 서술하면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세포이들이 잔인하고 야만적이기에 그들을 잔인하게 진압하는 것은 정당하다는 인상을 심어주기에 알맞은 서술방식이다. 여기에서 더 나가서 박지향은 친절하게 영국인의 입장을 대변하는 서술을 한다. 


  "영국인들이 느꼈던 공포심의 상당 부분은 그들이 사적으로 잘 알고 지냈을 뿐아니라 절대적으로 신뢰하던 원주민들이 어느날 아침에 갑자기 돌변하여 몇 시간 전만해도 자신들이 부드러운 손길로 어루만지던 아이들의 부모들을 난도질했다는 사실에서 기인했다."-228쪽


  박지향의 서술을 따라간다면 인도인들은 영국인들 앞에서는 상냥하지만 가슴에 칼을 숨기고 있는 믿을 수 없는 존재라는 인상을 받는다. 그러나, 이 글을 뒤집어 읽어보면, 종교에 심취하고 온순한 성격의 인도인이 영국인들 앞에서 굴종하며 가슴속에 비수를 품을 수 밖에 없는 영국의 간악한 식민지배의 실상을 알 수 있는 서술이기도하다. 자신들의 땅을 침범하여 자신들의 부를 빼앗고, 그들의 힘에 굴종하며 살 수밖에 없는 인도인들의 분노가 세포이 항쟁으로 폭발한 것이다. 이를 박지향은 알지도, 서술하지도 못했다. 그러면서 세포이 항쟁에 대한 평가도 박하게 한다. 


  "이 사건을 인도민족운동의 효시로 보는 것은 잘못된 해석이다. 20세기에 몇몇 인도인이 그렇게 믿고자했지만 세포이 반란은 결코 독립을 위한 국민적 투쟁이 아니었다."-227쪽


  전국적으로 일어난 세포이 항쟁은 무굴제국의 황제를 구심점으로 본격적인 반영운동을 하려하였다. 그러나 무굴제국 황제는 인도인의 구심점이 될 수 없는 존재였으며, 영국의 최신식 무기에 세포이들은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박지향은 인도의 토호국이 영국편에서 세포이를 진압한 사실을 근거로 세포이 항쟁은 '인도 민족 운동의 효시'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아직 완벽한 '인도 민족'이 형성되지 않았기에 박지향의 주장이 일면 타당해 보기이기도하지만, 세포이 항쟁이 '효시'라는 표현을 사용할 수 없을 정도로 하찮은 운동은 아니다. 영국의 용병이 영국이 지급한 총을 들고 영국과 맞서 싸웠다는 사실 자체가 그들에게 민족적 자각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박지향은 철저히 영국인들의 시각에서 인도를 바라보느라, 인도인들의 처절한 몸부림을 보지 못하고 있다. 박노자가 '제국의 품격'이라는 책이 나온 것을 한탄한 이유를 이제는 이해할 수 있다. 식민지배의 경험이 있는 나라에서 제국주의 국가를 찬양하는 책이 출판되는 현실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보아야할까?

  박지향은 인도 독립운동의 상징인 간디도 비판한다. 간디가 근대적 산업과 근대 국민국가와 서양 문명을 거부하고, 근대적 기술을 비판했다는 것이 박지향의 간디 비판 근거이다. 특히 간디가 근대적 기술을 비판하면서도 '사진을 가장 많이 찍힌 당대정치가'라고 간디를 비판한 부분은 코미디로 느껴졌다. 마치 영국이 저지른 부도덕한 전쟁을 비판하자, "그럼, 상투틀고 다녀야지"라고 말한 K교수가 떠올랐다. 간디가 사진을 찍은 것도 아니고, 기자들에게 사진이 찍힌 것도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을까? 박지향의 간디비판은 실소를 금치 못하게 한다. 

  박지향은 한발자국 더 나가서 인도가 힌두-이슬람으로 분리 독립한 것도 간디의 책임인듯 서술했다. 특히 간디가 힌두-이슬람 무력 충돌을 막지 못했다면 그의 능력이 부족하다는 주장을 한다. 분리독립을 막기 위해서 단식하다가 힌두 극단주의자에 의해서 목숨을 잃은 그를 비판하는 장면은, 분단을 막기 위해서 38선을 넘으며 통일 조국을 만들려 노력하다가, 친일파 안두희에게 암살당한 백범 김구를 비판하는 뉴라이트 세력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박지향, 그녀에게 일제 식민지배는 어떻게 평가될까? 영국이 인도를 식민지배한 것과 일제가 조선을 식민지배한 것을 오버랩시키며 식민지배를 축복으로 여길까?


3. 영국의 식민지배를 찬양하다!!

  '덜나쁜 제국주의'는 있을까? 이 질문은 '덜 나쁜 강간범'은 있을까?라는 질문과 비슷한 질문이다. 국토를 유린하고 식민지인을 노예처럼 부리는 그들을 '더 나쁜 제국주의자'와 '덜 나쁜 제국주의자'로 나누는 것 자체가 영국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한 술책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저자 박지향은 "영국은 확실히 '가장 덜 나쁜 제국'이었다."라고 서술하고 있다. 

  박지향은 영국인들은 두개의 사명이 있다고 설명하다. 첫째는 인간이 사용하도록 자연을 정복하는 것이고, 둘째는 정복한 과실을 '영구적이고 평화로운 방법'으로 공유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라고 한다. 영국은 탁월한 과학 기술로 무장하고 산업혁명을 일으켰고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은 전세계로 퍼져나갔다. 또한 의회 민주주의, 자유 선거, 기독교 윤리, 법치, 자유주의 경제체제, 집회와 표현의 자유라는 탁월한 시스템과 가치는 영국이 지배하고 있는 원주민 사회에 뿌리 내렸다고 단언한다. 박지향이 '제국의 유산, 민주주의와 경제 성장'이라는 장에서 서술하고 있는 대영제국의 식민지배를 따라가다보면 우리가 영국의 식민지가 되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도록 한다. 박지향은 21세기 독립된 대한민국에서 제국주의 영국의 식민지배를 찬양하는 '영비어천가'를 쓰고 있다. 강자의 폭력을 미화시키며 약자의 신음소리에 철저히 귀를 닫는 박지향의 무책임한 역사 서술에 깊은 한숨이 나온다. 

  영국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팔레스타인 땅을 유대인 노스차일드와 아랍의 하심가문에게 팔았다. 1차 세계 대전에서 영국의 편을 들어준다면 유대인에게도 아랍인에게도 자신의 국가를 팔레스타인에서 건국할 수 있게 해주겠다는 달콤한 약속을 영국이 했다. 그리고 무책임하게도 팔레스타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팔레스타인에서 철수했다. 그결과 수많은 팔레스타인 난민이 생겨났으며, 오늘도 이스라엘 군이 팔레스타인의 집에 미사일을 쏘아 올리고 있다. 이것이 '덜 나쁜 제국'의 모습인가? 인도가 파키스탄과 인도로 분리독립한 것도 영국이 인도에서 저지른 종교 분리 정책 때문이다. 인도에서 힌두인과 이슬람인을 등록하게 만들었다. 인도인들이 하나로 뭉쳐 영국에 대항한 세포이 항쟁처럼, 영국은 제2의 세포이 항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분할하여 통치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그 결과 인도는 힌두의 인도와 이슬람의 파키스탄으로 분리 독립했다. 그과정에서 수 백만의 사람들이 희생당했고, 지금도 인도와 파키스탄은 무력 대결을 하고 있다. 이것이 '덜 나쁜 제국'의 모습인가? 이밖에도 영국의 식민지배 유산으로 인해서 고통 받는 약소국들이 많다. 그들이 박지향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나 보다. 영국이 흘린 떡고물을 보면서 영국이 빼앗아간 떡은 보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누군가의 식민지가 되어야만 한다면 영국의 식민지가 되는 것이 가장 났다."(323쪽)라는 글을 책에 쓰기보다는 "누군가의 식민지가 되기 보다는 스스로의 힘으로 나라를 부강하게 만드는 방법을 찾자"고 말하자. 일제의 식민지배를 받지 않고 영국의 식민지배를 받았다면, 우리는 힘들이지 않고 영어를 할 수 있었다며 아쉬워하는 노예근성을 가진자들을 바라보며 느꼈던 한심함을 이 책을 읽으며 다시금 느낀다. 이 땅의 역사학자는 다음 세대에게 식민지 노예 근성을 학습시기기 보다는 자립과 자주 정신, 독립정신을 일깨워주어야하지 않을까? 박지향에게 묻고 싶다. 



  대학시절, 서양근대사를 수강하며, K교수와 잦은 마찰을 겪었다. 나중에는 K교수가 나를 교수실로 불렀다. 서양사 교수가 중국의 문화대혁명을 성공한 혁명으로 설명하기에 '문화대혁명은 실패한 운동으로 결론이 났는데 무슨 근거로 성공했다고 하십니까?'라고 질문한 나를 교수실로 부른 것이다. K교수는 자신의 주장에 근거를 논리적으로 대기 보다는, 자신을 타교수와 같이 대해달라고 했다. 타교수님은 전공에 대한 열정과 심오한 학문적 깊이가 느껴지는 분들이다. 그러나 K교수는 그러하지 않았다. 제국주의 영국에서 공부하면서 영국의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보았다. 이에 반대하는 주장에 철저히 귀를 닫고 자신의 일방적인 주장만을 했다. 토론문화가 발달한 유럽에서 공부한 K교수가 학부생의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고 교수실로 학부생을 불러 자신을 타교수와 같은 급으로 대해달라는 어리석은 주장에 측은지심이 발동했다. 

  박지향은 대학에서 만난 K교수를 떠올리게 했다. 그리고 '제국의 품격'에서 영국의 긍정적인 면만을 서술한 이유를 서문에 "이 책은 굳이 영국의 단점을 들추려하지 않았다. '''' 이 태도는 요즘 생긴 새로운 습관이다. ..... 우선 긍정적인 면을 보고 싶다."(7쪽)라고 서술했다. 나이가 들어 심각한 보수화가 진행되었다는 고백으로 읽힌다. 강자의 장점만을 보고, 약자의 고통은 보지 못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K교수에게 느꼈던 측은함이 느껴진다. 스스로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지 못하는 외눈박이 물고기가 떠오른다. 그녀가 서문에 "정년 후 한동안은 쉬고 .... 다시 책을 쓰고 싶어지면, 그땐 영국에 대한 부정적인 책을 한번 써볼까?(7쪽)" 라고 쓴 것 처럼 대영제국의 어두운면을 서술해주길 바란다. 그래야만, 외눈박이 물고기는 두개의 눈으로 온전히 세상을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ps. 이 책을 통해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도 있다. 영국은 16세기 왕과 신민들 사이에 일종의 '정치 계약'에 의한 관계라는 의식이 생겨났으며, 이는 홉스의 사회계약설로 이어진다. 중세 봉건제도가 "쌍무적 계약관계'이며, 홉스와 로크는 "사회계약설"을 주장했다. "계약"이라는 관념은 서구 문화의 핵심이며, 동양의 관념과는 많이 다른 그들의 문화라는 생각이든다. 

   대헌장은 1215년 만들어진 후, 16세기 까지 30차례에 걸쳐 재확인되었고 보완 발전되었다. "대헌장의 인생에는 공백기가 없었다."라는 말이 실감난다. 처음은 초라했지만, 끝은 창대할 수밖에 없는 이유른 대헌장의 인생에 공백기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자유","재산권","계약"이라는 개념이 영국을 발달시켰다. 자유무역과 안정된 의회제도, 우수한 해군력이 더해져 대영제국이 성립했다. 이점이 영국이 돋보이는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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