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과 나 - 왕을 만든 사람들 그들을 읽는 열한 가지 코드
이덕일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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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덕일의 책을 많이 보아왔다 10여권이 넘는 이덕일의 책들을 읽으면서, 강한 흡입력을 가진 그만의 문체를 배워보고 싶었다. 역사를 자신만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이덕일의 역사관이 이책에도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물론 이책을 읽기 전에 나는 '조선의 왕을 논하다'라는 이덕일의 책을 읽었다. 이덕일의 사각으로 조선의 왕을 논한 점이 무척신선했다. 그와 대비되는 책이 바로 이 책 '왕과 나'였다. 왕을 만든 사람들의 시선으로 역사를 바라보는 신선한 구성이었다.

 

  이 책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참모의 모습을 관통하는 코드였다. 11개의 코드로 각 참모들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어젠다, 헌신, 시야, 사상, 시운, 정책, 기상, 악역, 실력, 맹목, 역린' 이들 참모의 모습은 사회를 변화시키고 자신의 주군을 만인지상의 자리에 올려 놓았다. 그러나, 족함을 알면 위태롭지 않다라는 격언을 지키지 않고 역린을 건드린 결과 울분속에서 삶을 마치는 비극을 맞기도 했다. 과거의 지금의 시대는 바뀌었다. 조기 대선이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지금! 과연 '킹'을 만들기 위한 '킹메이커'들은 어떠한 모습을 보여야할까? 이덕일이 제시한 11개의 코드는 지금도 유효한 코드들이지만, 반드시 유효하지는 않다. 만인지상에 자신의 주군을 올려 놓고, 그 다음에 다시 자신이 만인지상에 오를 수 있는 시기가 도래했다. 5년 마다 푸른색 기와집의 주인이 바뀌는 지금! 참모였던 사람이 푸른 기와집의 주인에 도전하고 있다. 지방의 작은 기와집의 주인 둘이서 그 뒤를 쫓으며 서울의 큰 푸른색 기와집의 주인이 되려는 자도 있다. 세사람중에 한사람은 푸른색 기와집의 주인이 될 가능성이 높다. 경선이 끝나고 선거일이 되면, 이들 중에는 대표주자의 참모가 되어 경쟁자를 주군으로 모실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5년 후에 다시 푸른색 기와집의 주인이 되려할 것이다. 그들에게 이 책의 코드를 들려주고 싶다. 새시대의 어젠다를 제시했는가? 넓은 시야를 가지고 자신의 사상을 담은 정책을 실력있는 참모들을 모아 실현할 수 있는가? 때로는 이 나라의 개혁을 위해서, 국민을 위해서 맹목적이기까지한 악역을 할 수 있는가?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국민에게 헌신한다면 시운에 따라 푸른색 기와집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다. 높은 기상을 펼치는 그런 리더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기억하기 위해서이다. 잊지 않기 위해서이다. 왜? 기억하고 잊지 않아야할까? 그것은 앞으로 펼쳐질 높은 파고를 넘기 위한 교훈을 얻기 위해서 일 것이다. 지난 잃어버린 9년을 딛고 새로운 100년을 설계하기 위해서 지금의 주자들은 이 책을 읽어봐야한다.

 

ps. 이 책을 읽으며 대동법 실시가 얼마나 힘들었으며, 백성들이 얼마나 시행을 바랬는지를 알 수 있었다. 관련 사료를 보자.

 

각 고을에서 진상하는 공물이 각 관청의 방납인에게 막혀, 한 물건의 값이 서너 배에서 수십, 수백 배까지 되니 그 폐해가 이미 고질이 되었는데 경기도가 특히 심합니다. 지금 마땅히 따로 하나의 관처을 설치해서 매년 봄가을에 백성들에게서 쌀을 거두되, 농지 1결 당 두번에 8말을 거두어 본청에 보내면 본청에서는 그때의 물가를 보아 가격을 후하게 산정해서 거두어들인 쌀을 방납인에게 주어서 필요한 때에 물건을 사들이게 해서 간사한 꾀로 물가가 오르는 길을 끊으셔야 합니다. -광해군일기, 즉위년, 5월 7일

 

호서에 대동법을 실시하기로 처음 정했다. 우리나라의 공법은 심하게 무너져서 서울의 호활한 무리들이 경주인이라고 칭하면서 여러 도에서 바치는 공물을 못 바치게 막고는 그 값을 본읍에서 배로 징수했다. 그 물품 값이 단지 1필이나 1두에 불과하지만 교활한 방법을 써서 심지어 수십 필, 수십 석까지 이르렀다. 탐관오리들과 연줄을 타서 이익을 꾀하는데, 마치 바닷물을 빨아들이는 큰 구멍 같아서 그 폐단이 점점 불어났다.-효종실록, 2년 8월 24일

 

이러한 대동법은 조선왕조를 보존하는 큰 버팀목이 되었다. 관련 사료를 보면,

 

대소 사민이 서로 "우리가 비록 신해년(현종 12년)의 변을 겪었지만 지금까지 보존할 수 있었던 것은 대동법의 은혜입니다. 대동법 이전에는 농지 1결에 살을 60두씩 바쳐도 부족했지만 대동법 이후에는 1결에 10두씩 만 내어도 남습니다. 만약 대동법을 혁파한다면 백성이 굶주리고 흩어져도 구할 방도가 없을 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승정원일기, 현정 14년 11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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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의 얼을 찾아서
김갑동 지음 / 서경문화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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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에서 낳고 자랐지만 충청에 대해서 제로 알고있지 못했다 이런 갈증을 해결하고 싶었다 그러던중 이책을 교수님께 선물받았다 바쁘다는 핑게로 제때 읽지못하다가 책장을 넘겨갔다
초반은 지루했다 그러나 선사시대를 지나자 책의 재미가 무척 커지기 시작했다. 너무도 친근하고 너무도 가까이 있기에 충청의 역사를 잘알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서 알게된 충청의 역사는 새롭고 박진감이 넘치는 역사였다.

 

특히 나의고향인 연기 대첩이 원나라에 항복이후에 있었다는 사실은 너무 새로웠다. 원세조가 "당태종도 물리친 그대의 나라가, 그런 애송이 하나 제압하지 못해서 호들갑을 떠는 것은 무슨일인가?"라는 조롱어린 말을 할때, 이를 듣고 있어야했던 고려의 사신을 얼마나 비통한 마음이었을까? 원나라 왕위계승전에서 패배한 세력이 고려에 쳐들어왔을때, 이들을 연기에서 크게 물리친 것은 그 때의 상처난 자존심을 조금이나마 치료해주었을 것이다.

 

지금 살고 있는 대전의 인물 송시열과 김장생에 대해서도 제대로 알게되었다. 비상한 머리로 조선의 사상계를 이끈 송시열과 김장생의 흔적이 대전에는 잘 남아있다. 이를 저자는 자세히 설명해주며, 추청의 얼을 되새기게해주었다.  그러나 조선의 노론세력이 우리역사에 미친해독을 생각하면 지나친 미화인것같기도하다. 향토사의 문제점이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애향심을 드높이려다 보니, 문제점을 발견하지 못하고, 삐뚤어진 애향심만을 고취시키는 것은 아닌지 약간 걱정이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이책은 나름의 소중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자신이 낳고 자라온 땅에 서려있는 역사를 우리에게 일깨워주고 있다. 충청의 역사를 알고 싶어하는 자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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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경태의 열려라 한국사 - 맥락이 보이는 한국사 60장면
남경태 지음 / 산천재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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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경태식 역사 읽기의 이해

‘남경태의 열려라 한국사’를 읽고

 

남경태라는 이름을 처음 들은 것은 『종횡무진 세계사』와 『종횡무진 동양사』를 접하면서 부터이다. 세계사를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수업할 수 있을까? 라는 고민에서 세계사 대중 서적들을 뒤적이다 발견한 이책들은 나의 고민을 덜어주었다. 물론, 역사전공자가 아니기에 일정한 한계는 있었으나, 상당한 내공의 역사서적을 집필했다는 것은 나에게 강한 인상을 주기 충분했다. 그리고 남경태의 또 다른 책 『남경태의 열려라 한국사』를 읽게 되었다 . 남경태식의 역사읽기에 다시 한번 빠져보았다.

 

1. 냉철한 비판과 다른 시선

남경태식의 역사읽기의 한가지 특징은, 너무도 냉철한 비판적 시선으로 역사를 바라본다는 점이다. 한국의 역사를 전공한 사람들은 대부분 우리 역사에 대한 애정과 사랑에서 우리 역사를 연구하기 시작한다. (물론,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하며, 친일 독재의 시선으로 한국사를 왜곡하려는 세력은 예외이다.)

남경태의 이러한 냉혹한 시선은 ‘진경시대’에 대한 비판에서 더욱 혹독하다. 청나라에게 삼전도의 치욕을 당한 조선이 택할 길은 말뿐인 ‘북벌론’과 ‘소중화 의식’이었다. 한때, ‘북벌론’은 마치 자주적인 운동인양 배워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소중화 의식’이 있었기에 우리 산천에 대해서 재발견을 하게 되었고, 그래서 ‘진경시대’가 출현하였다. 이 시대에 대한 평가를 어떻게 해야 할까? 남경태는 이를 ‘우물안의 개구리’로 표현한다. 비록 진경산수화로 대표되는 위대한 문화 유산이 탄생하는 하나의 배경이 되었지만, 냉혹하게 본다면 ‘진경시대’는 우물안의 개구리가 자신을 기형적으로 자각하면서 탄생한 것이다.

남경태는 ‘권지국사’라는 표현도 냉혹하게 지적한다. 중국이라는 강국에 인접했기에 외교상에 중국의 책봉을 받아 평화를 유지하려 했던 고려와 조선의 초기 지배층들의 모습을 냉혹하게 ‘자주’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있다. 어찌보면, 자주적인 국가로서 너무도 치욕스러운 일일 수 있다. 이러한 남경태의 냉혹한 시선은 때로는 독자를 불편하게도 한다. 우리가 우리 역사를 사랑으로만 보아서 일까.....

 

2. 남경태식의 한국사 맥락

이책을 읽으면서 한가지 흥미로운 것은, 남경태 식의 한국사를 바라보는 맥락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사대’, ‘중화사상’이라는 단어로 이를 표현할 수 있다.

남경태는 우리 역사 교과서에서 아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삼국통일을 ‘굴욕적인 삼국통일’로 평가한다. 단순히 ‘불완전한 삼국 통일’을 넘어 ‘굴욕적인 삼국통일’이라.....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할 사실은 신라가 중국의 한 지방과 같은 입장이었고, 스스로도 그런 관계를 원했다는 점, 나아가 당시 동양의 국제 질서가 그랬다는 점이다. 한반도의 역사를 중국과 독립적이고 상당 부분 자주적인 것으로 보는 ‘현대적’관점은 과거 우리 역사의 본 모습을 오히려 감추고 있는 것이다. (중략) 중국이 서양 세력에게 무릎을 꿇는 19세기 후반에 이르기까지 1천 300년간 한반도는 중국과 대등한 관계에 있어본 적이 없다. 그런 점에서 보면, 신라의 ‘삼국통일’이란 신라가 한반도를 통일한게 아니라 중국이 동아시아를 통일하고 중국 중심의 고대적 국제질서를 확립한 사건이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한 이해일 것이다.

 

삼국통일에 대한 남경태식의 새로운 관점일 뿐만 아니라 이러한 관점은 한국사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 김부식의 『삼국사기』를 긍정적으로 보는 역사학계의 견해와는 달리, 사대주의 역사관으로 평가하며, ‘조선’과 ‘화령’이라는 국명중에서 ‘조선’이 근세 조선의 국명으로 낙점된 것을 지적하며, 조선왕조의 국호 조차도 사대적이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또한, 서양인이 조선에 오지 않은 이유가 당시 서양인들은 조선을 중국 영토의 일부로 여겼으므로 굳이 조선에 까지 올 필요가 없었고, 조선도 스스로 중국의 정치적 지배를 받고 있다고 여겼기에 굳이 별도로 서양인과 접촉할 통로를 열 필요가 없다고 설명하다. 일본을 ‘왜’로 낮춰부른 것도 중국을 본받았기 때문이라는 주장을 한다. 이러한 사대주의를 떨쳐 버리고 일어선 것은 동학 농민 운동이라고 평가한다. 동학 농민 운동에 대한 새로운 평가이다.

이러한 한국사를 보는 남경태식의 관점이 한편으로는 새로워 보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우리 역사에 대한 지나친 비약적 폄하로 읽혀지기도 한다. 내치에서는 간섭을 받지 않았지만, 군사와 외교는 중국에 맡겼다는 남경태의 비약적인 지적은 동의할 수 없다. 분명, 고려는 ‘내제외왕체체’라 하여, 안으로는 황제를 칭하고 밖으로 중국과 외교를 할 때만 왕을 칭하였다. 그래서 고려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사극에 ‘황상’, ‘황도’라는 표현이 나오는 것이다. 고려의 왕의 곤룡포 색깔이 황제의 색인 ‘황색’인 것도 이러한 이유이다. 또한, 조선도 대외 평화를 위한 목적으로 명에 사대를 했다. 너무 무리한 요구를 하면 실력으로 맞서려고 까지 했다. 단지 조선 후기에 와서 ‘재조지은’이라 하여 명을 부모의 나라로 받드는 모습들이 나왔을 뿐이다.

 

3. 옥의 티

남경태는 역사를 전공한 학자출신의 저술가가 아니다. 더욱이 이책은 저술된지 꽤 오래된 책이다. 그러기에 한국사 교과서와 다른 서술, 혹은 최근의 역사학계의 연구성과를 반영하지 못하고 오류를 범한 흔적이 있다.

첫째, ‘중국의 영향을 일직 받은 고조선은 곧 청동기 문화로 접어들었’다는 표현은 중국의 동북공정에 동조하는 표현으로 읽혀진다. 특히 최근의 중국 고고학계에서 요하강을 중심으로 황하문명과는 다른 별개의 문명이 존재했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한국사학계에서는 이를 고조선으로 비정하고 있다. 더욱이 중국식 동검과 한국의 세형동검이 제작방식이 다르고 별개의 청동기 문화라는 것은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에 분명이 적혀있다.

둘째, 대한제국을 일제의 강압에 의해 세워진 제국이라고 지적한 것은 어이가 없다. 대한제국은 분명 러시아와 일본의 세력균형위에 세워진 국가이다.

셋째, 선덕여왕이 처녀의 몸이었으니 아들은 커녕 딸도 있을리 없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삼국유사』, 왕력 - 선덕여왕 기사에 “이름은 덕만이다. …… 왕의 배필은 음갈문왕이다.”라고 분명히 적혀있다. 선덕여왕은 결혼을 하였다.

넷째, 발해가 당이나 일본과는 교류하였는데, 건국한 뒤 100년 동안이나 통일신라와는 거의 교류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이는 한국사 학계의 최근 연구 성과를 무시한 서술이다. 교류의 증거가 많은데, 그중에서 ‘신라도’라는 길이 있을 정도로 신라와 발해는 교류하였다. 이는 한국사 교과서에도 서술되어 있다. 발해와 신라, 고려는 동질감을 느끼지 못했다는 서술도 학계와 교과서 서술과 배치된다.

다섯째, 고구려와 백제를 제거하고 200여 년 동안 한반도의 단독 정권을 통일신라가 유지했다는 서술도 오류이다. 통일신라 북쪽 즉, 대동강 북쪽에는 엄연히 발해가 있었다.

여섯째, 이승만 정권에서 추진한, 농지개혁의 결과 ‘지주-소작 관계가 그대로 온존’ 되었다는 서술도 한국사 교과서 서술과 배치된다. 6.25가 일어나기 전에 농지개혁이 되었고, 그래서 농민들이 북한에 동조하는 것을 막을 수 있었으며, 농지대금으로 받은 지가증권을 지주가 6.25 전쟁 중에 헐값에 팔아버렸고, 이 때문에 지주가 산업자본화하지 못했다는 것은 한국사 전공자에게는 상식이다.

이책이 보다 더 좋은 책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라도 이러한 오류는 수정되었으면 좋겠다. 더욱이 한국의 독자가 읽어야 하니까....

 

역사에 다양한 관점이 제시되고, 이러한 관점들을 통해서 자신만의 역사관을 정립한다. 이것이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을 확대시키는 길이기도 하다. 교과서에서만 제시되던 한가지 역사관에서 벗어나, 역사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 주었다는 점에서 ‘남경태의 열려라 한국사’는 나름의 가치가 있다고 본다. 때로는 당혹스럽고, 때로는 불편하지만, 이것이 우리 역사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계기를 제공해준다면, 한번쯤은 곱씹어 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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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여는 한국의 역사 세트 - 전5권 - 우리 시대 건강한 시민을 위한 열린 한국사 미래를 여는 한국의 역사
역사문제연구소 기획 / 웅진지식하우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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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대!, 새로운 역사책을 만나다.

‘미래를 여는 한국의 역사 5권’을 읽고

 

역사문제연구소의 학자들이 모여 좋은 역사책을 만들었다.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의 역사』를 만든 사람들이 새롭게 만든 책이라 많은 기대를 하게한 책이다. 처음에는 5권이라는 무게감이 나를 부담스럽게도 하였지만, 책을 받아든 순간, 이러한 무게감은 기대감으로 승화되었다. 책을 펼치는 순간, 옛 사람들이 살아 움직이는 듯한 사진과 이야기가 쏟아져 나올 것 같은 그림들은 『살아있는 세계사 교과서』를 보는 듯한 착각이 들도록 하였다. 이 책에서 들려주는 우리 역사의 재미에 4월 한달이 무척이나 빠르게 지나갔다. 자, 그럼 이 책의 이야기를 해보자.



1. 역동적으로 살아 움직이는 한국의 역사

책을 펼치는 순간, 다양한 사진들이 나를 매료시켰다. 사실 역사책에 사진과 그림의 중요성이 한층 중요시되고 있다. 각종 영상물을 보면서 자라고 생활하는 학생들에게 사진 자료와 그림 자료는 역사를 보다 재미있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다. 주몽이 말달리던 집안현 일대의 사진과, 백제의 숨결이 살아있는 몽촌토성의 모습과 대조영이 나라를 세운 동모산의 모습은 당시의 역사와 인물들이 자유롭게 사진 속에서 뛰어노는 모습을 상상하게 만들었다.

시간과 공간이 멀리 떨어진 고대 사람들과 자유로운 만남을 가질 수 있는 상상의 날개를 선사한 사진 자료들이 전근대편(제1권~제3권)을 장식했다면, 근대편(제4권과 5권)에서는 쉽게 구해볼 수 없는 사진 자료를 제시함으로써 우리의 역사 이해를 도왔다. 뛰어난 사진 편집은 단연 돋보이는 이 책의 장점이다.



2. 역사를 보는 새로운 시각에 대한 고민

『미래를 여는 한국의 역사』(이하 『한국의 역사』로 명명함) 1권을 읽으면서 국사 교과서 속의 역사인식에 길들여진 나는 혼란에 빠졌다. 한과 고조선의 한판 승부(75페이지)를 서술하면서, 한국의 역사라면 당연히 한국의 입장에서 역사를 서술해야함에도 불구하고 중국 한나라의 입장에서 역사를 서술한 것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고조선은 위만 때부터 한의 외신으로 책봉되면서 주변 나라들과 정치 집단을 관리하는 임무를 맡았다. 하지만 위만은 중국에서 받아들인 병위재물로 오히려 주변 지역을 복속했다.(중략) 특히 중계무역의 이익을 독점하려고 한강 이남에 있는 진국을 비롯해 주변 나라들이 한과 직접 교역하는 것을 금지시켰다. (중략) 고조선의 이러한 활동은 한과 위만 사이에 맺은 ‘외신’규정에 어긋나는 것이었다. (중략) 이러한 고조선의 움직임은 주변지역에 대한 관리와 통제를 맡은 외신의 임무를 지키지 않은 것이기에 중국의 한을 더욱 자극했다.



라고 서술하고 있다. 즉, 한나라와 고조선과의 전쟁 책임이 고조선에게 있다는 서술을 하고 있다. 과연 이것이 전쟁이 일어난 결정적인 이유일까? 그리고 전쟁의 책임을 고조선에게만 전가시킬 수 있는 것일까? 승자의 기록만이 남아있는 현실 속에서 침략의 구실로 삼은 ‘외신으로서의 의무’를 너무도 충실히 서술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생겼다.

고조선과 한나라와의 전쟁보다 나를 큰 고민에 빠뜨린 것은 ‘한사군, 식민지인가 우리 역사인가?’라는 문제제기였다. 당연히 우리의 역사가 아니며, 민족주의 역사학자들은 한사군이 한반도에 없다고 주장하고 있고, 일제 식민사학자들은 대동강 유역에 존재한다고 주장하였기에 이에 대한 총체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나에게, ‘낙랑군을 비롯한 한군현은 앞으로 한국 고대사의 일부로서 그 역사적 성격을 밝히는 데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한 대상’이라는 주장은 ‘식민지 근대화론’의 고대판으로 인식되기에 손색이 없는 주장이었다. 한사군이 우리의 역사라고 주장한 근거가 ‘한은 고조선의 토착 지배층을 포섭하고 통제하는 데 그침으로써 토착 세력의 자치에 의존하는 간접적 지배’를 했으며, ‘중국의 발전된 문물을 받아들여 새로이 성장하기 시작한 삼국의 문화에 큰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는 나에게 설득력이 전혀 없었다.

역사를 해석하는 시각은 다양하다. 그리고 이러한 다양한 시각을 만나는 것도 역사교사로서는 의미 있는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새로운 시각이 오히려 올바른 역사관의 형성에 저해를 주기도 한다. ‘식민지 근대화론’이 ‘식민지 미화론’으로 까지 이어지는 현실을 바라보며 올바른 역사관이란 무엇인지 나는 한동안 사색에 잠겼다.



3. 신화와 역사 사이의 고민

세계의 지성 아브람 노암 촘스키(Avram Noam Chomsky)는 “세상사를 속속들이 알고 나면 우리는 늘 마음이 쓸쓸해진다.”라는 말을 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을 감싸고 있는 신화나 전설의 베일을 걷어내면 나는 종종 마음이 쓸쓸해진다. 민중은 영웅을 원한다. 그리고 그 영웅은 때로는 지배자들에 의해서 만들어 진다.

정몽주의 죽음도 이러한 신화를 벗겨내자, 조금은 씁쓸함이 밀려왔다. 이방원과 ‘하여가’와 ‘단심가’를 주고 받았던 정몽주가 자신의 죽을 것을 알고는 말을 거꾸로 타고 선죽교를 지나다가 이방원의 심복에 죽었고, 그 다리에서 대나무가 솟아 올랐다는 신화를 나는 사실로 알았다. 학생들에게 이를 가르치면서 추호의 의심도 없이 ‘역사적 사실’로 가르쳤다. 그러나 『한국의 역사』제2권 ‘정몽주는 어떻게 죽었을까?’에서 새로운 진실을 알게 되었다. 『고려사』나 『조선왕조실록』에는 정몽주가 죽은 장소에 대해 나오지 않는다. 당시 기록에는 조영규가 유원이 죽은 것을 조문하고 나오는 정몽주를 기다렷다가 무기로 쳤으나 정몽주는 맞지 않아 말을 채찍질해서 달아났고, 조영규가 이를 쫓아가 말을 쳤는데, 이때 떨어진 정몽주를 죽인 것은 고여 등이었다. 정몽주의 사망 이야기에 선죽교가 등장한 것은 18세기 영조때이다. 정몽주를 죽인 태종 이방원이 즉위한 이후, 자신에게 정몽주 처럼 충성하라는 의미에서 그를 ‘충신’의 본보기로 삼았으며, 시간이 지나면서 여러 가지 신화가 보태져서 오늘날의 정몽주의 신화가 만들어졌다.

신화를 걷어내고 역사적 진실을 밝히는 작업은 약간은 씁쓸하다. 그러나 신화를 걷어내고 역사적 진실을 볼 줄 알아야만이 참다운 역사교사로 거듭나는 것이 아닐까?



4. 영교육과정과 『한국의 역사』

교육과정 학자인 Elliot Eisner는 ‘영교육과정(Null Curriculum) ’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학생들이 배워야 할 것들을 교사들이 가르치지 않는 교육과정이 학생들이 문제 해결을 위한 다양한 대안을 강구하거나 어떤 상황을 예측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수 있기에 상당히 중요하다.

『한국의 역사』4권에는 ‘항일 의병’에 관한 독립된 서술이 없다. ‘애국계몽운동’에 대해서는 독립된 서술을 하고 있으면서도, 가장 적극적인 항일 투쟁인 ‘항일 의병’에 관한 서술이 독립적으로 서술되어 있지 않은 이유를 알 수가 없다. 가장 힘없는 민중들이 정부의 명령이 없이도 무장하여 조국을 지키기 위해서 분연히 일어선 자랑스런 역사를 왜? 독립된 장으로 서술하지 않았을까? 물론, 많은역사적 사실 중에서 중요한 사실들을 서술하다보니 모든 역사적 사실들을 기록할 수는 없다. 그러나 수많은 사실들 중에서 ‘항일 의병’은 빼 놓을 수 없는 중요한 사실이다. 충분히 독립된 장으로 구성해 놓았어야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한국의 역사』는 일제시대까지만 서술되어있다. 현대사가 빠져있는 개설서를 보면서 나는 많은 생각을 했다. 과연 왜? 무슨 이유로 현대사가 빠져있을까? 현대사 부분이 빠져 있는 것을 보고 옆에 앉아 계시던 국어선생님은 “요즘에는 조금만 시비가 걸릴 것 같으면 알아서 안써요.”라고 말하셨다. 그래? 그래서일까? 잠시 시대의 풍파를 피해가기 위해서? 아니면 무슨 다른 이유가 있을까? 잘 쓰여진『한국의 역사』에 너무도 큰 ‘옥의 티’ 있었다.



좋은 책과의 만남은 나를 행복하게 한다. 한달 동안 『한국의 역사』와 함께한 시간은 너무도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많은 사색에 잠기게 했다. 새로운 관점과 새로운 역사적 사실들, 그리고 나의 눈을 즐겁게 한 화려한 디자인과 사진배치……. 『한국의 역사』4․5권의 생활사 부분은 내가 읽은 다른 책들과 비료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생동감이 있었다. 이 책에서 이룩한 한국사 개설서로서의 성과가 밑바탕이 되어 더 좋은 역사책이 계속 나올 것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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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사신문 세트 - 전2권 사계절 근현대사신문
강양구 외 지음 / 사계절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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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역사는 죽은 과거가 아니라 살아있는 현재이다.

-『근현대사신문』을 읽고 -


1. 설레임으로 기다린 책.

나의 책장에는 사계절 출판사에서 출판한, 『역사신문』을 비롯해서 『세계사신문』이 꽂혀 있다. 학습지를 만들거나 교재연구를 할 때 틈틈이 들여다보는 소중한 책이다. 이번에 『근현대사신문』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읽어 보겠다는 생각을 하던 중 마침 기회가 되어 책을 읽게 되었다. 책을 신청하고 기다리는 내내 기다림과 설레임이 교차했고, 기존의 역사신문과 과연 무엇이 다를까? 라는 기대 섞인 의구심도 들었다. 그러나 막상 책을 받아 보니, 과연 『근현대사신문』만의 색다름이 많았다.



2. 『근현대사신문』만의 빛깔

근현대사를 배우고 가르치면서 학생들이 나에게 던져준 화두가 있다. ‘강자들에게 짓밟힌 슬픈 근현대사를 배워야 한다는 것이 슬프다’는 것이다. 우리 선조들은 일본과 같은 제국주의 국가로 왜, 나아가지 못하였는가? 그들에게 짓밟히기 이전에 왜? 그들을 짓밟지 못하였는가? ‘강대국들에 의해서 나라를 잃었지만 식민의 어둠을 뚫고 광복의 빛을 찾기 위해서 우리는 싸웠고, 독재의 어둠을 헤치고 민주를 쟁취했다.’라고 우리의 근현대사를 가르치면서 스스로 위로를 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은 개운치가 않았다.

그러던 중에 읽게 된, 이 책의 머리말이 나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이처럼 고단하고 힘들지만 정의의 편에 서 있기에 지칠 줄 몰랐던 조상의 기록이 시퍼렇게 살아 있는데, 힘세고 잘산다고 해서 남을 침략하고 수탈했던 ‘선진 열강’의 근대사를 부러워할 수 있을까?” 이 글귀는 내생각의 옹졸함을 반성하게 했다. 강도에게 도둑질 당한 아들이 아버지에게 아버지는 왜? 강도가 되지 못했느냐고 말할 수 없듯이, 약한 나라를 침략하고 약소국의 민중을 노예로 부린 역사가 자랑스러울 수 없으며 그것을 부러워해서도 안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근현대사 신문은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었다.

『근현대사신문』은 세계사의 시각에서 우리역사를 바라보면서도 우리의 입장에서 세계를 조망할 수 있도록 서술되어있다. 『근현대사신문』은 ‘조선의 개항과 서세 동점’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러면서 서구 자본주의 세계와 조선이 만나면서 조선은 반외세 반봉건의 이중의 과제를 떠안게 된다. 더 이상 우리의 역사는 세계사를 떠나서는 설명이 안되는 시대가 되었다. 중국혁명과 러시아 혁명 그리고 세계 대공황 등 세계의 굵직한 사건들은 우리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고 우리는 그러한 외부의 충격 속에서 희망을 찾으려 분투했다. 그리고 광복 이후에도 냉전을 비롯한 여러 사건들은 우리의 역사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움직였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생생한 현장감이 느껴지는 필체로 서술하고 있다.

현재 사건이 진행되는 현장감이 살아있는 서술은 역사가 과거의 죽은 사실이 아니라 지금 살아서 꿈틀대는 생명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느끼게 해준다. 그리고 당시를 살았던 민중들의 고뇌를 내가 느껴볼 수 있게 해준다. 그러면서도 세계사와 우리역사의 관련성을 잘 조화시켜 구성한 구성력이 돋보인다. 이러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이 남는 것을 어쩔 수 없다. “한국인이 세계사의 초라한 단역이 아니라 늘 당당한 주역”이라고 강조한 글쓴이들이 “우리가 정말 자랑스러워할 것은 한국인이 온갖 불행을 겪으면서도 역설적으로 제국주의, 분단, 빈곤, 독재 등 근현대 세계가 배설한 가장 고약한 범죄와 맞서 싸워왔다”는 것인데, 그러한 역사를 이 『근현대사신문』에서 놓쳐 버렸다. 바로 빈약하기 짝이 없는 항일무장투쟁사에 대한 서술이다. ‘청산리대첩’을 간단하게 다루었을 뿐, 1930년대 만주에서 활약한 조선혁명군과 한국독립군, 동북항일연군, 1938년 중국관내에서 결성된 조선의용대, 그리고 조선의용대의 주력부대가 연안으로 이동해서 결성된 조선의용군 등의 활약상에 대해서는 단한마디의 언급도 없다. 우리가 제국주의와 가장 적극적으로 치열하게 싸운 우리의 소중한 역사임에도 이를 『근현대사신문』이 놓친 것은 너무도 아쉬운 일이었다. 더욱이 이러한 역사가 근현대사 신문에서 기술되지 않기에 ‘과연 우리가 제국주의의 배설물과 적극적으로 싸운 것이 얼마나 되는가?’라는 생각 마져 든다. 앞으로 이 부분이 추가되었으면 하는 작은 기대를 가져본다.

『근현대사신문』은 기존의 역사책들과 구성면에서 확연한 차이를 가지고 있다. 각호의 1면 사진을 통해서 해당 시기의 가장 비중 있는 사건을 알 수 있고, 2~3면을 통해서 한국사와 세계사를 연관지어 생각해보고, 4면의 사설을 통해서 당시의 중요한 현안을 깊이 있게 성찰해 볼 수 있었다. 또한 일반 민중의 삶을 잘 유추할 수 있는 사회‧경제면(5면)을 통해서 당시의 생활모습을 유추하고, 6면의 과학면을 통해서 과학문명의 진보와 이것이 근현대사를 보다 숨가쁘게 앞으로 밀고 있는 현실을 직면할 수 있었으며, 7면의 문화면과 8면의 생활 단신면을 통해서 우리가 지나치기 쉬운 당시의 문학, 철학, 영화를 비롯하여 제3세계의 모습을 생생하게 살펴볼 수 있었다. 3년에서 5년 사이의 시기를 8면의 신문으로 정리하고 중요한 역사적 사건에 대해서는 호외를 통해서 사건을 보다 현장감있게 정리한 것은 다른 책에서는 느낄 수 없는 박진감을 느끼게 한다. 이렇게 한페이지 한페이지를 숨가쁘게 읽어가면서, 우리가 신문기사를 읽으며 느끼는 생생함과 고뇌를 곧바로 이 책에서 느낄 수 있었다. 역사를 살아서 꿈틀거리도록 만든 탁월한 구성력에 다시한번 감탄을 한다.

역사신문의 색다른 빛깔은 그 내용에서도 나타난다. 그동안 소홀히 되었던 여성들의 역사를 곳곳에서 생생하게 전하고 있으며, 과학의 진보만을 이야기하는 편향된 역사책과는 달리 세계 과학자의 3분의 1이 전쟁을 준비하는 분야에 종사하고 있으며, 이를 반성하고 ‘사람의 얼굴을 한 과학 기술’을 꿈꾸며 과학을 평화를 위해서 사용하기 위해서 분투하는 루카스 항공 노동자들의 모습을 전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유전자 변형작물, 인간 복제 등의 기사를 통해 과학기술이 인간을 재앙으로 내볼 수도 있음을 암시하기도 했다.

내가 생각하는 『근현대사신문』의 백미는 바로 ‘제3세계에 대한 재조명’이다. 『근현대사신문』의 근대편에서는 8면의 ‘제3세계 통신’을 통해서면 간간히 알 수 있었던 그들의 역사를 현대편에서는 당당히 각호의 제목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근대의 역사가 야만적이고 폭력적인 선진 제국주의 국가들에 의해서 시작되었다면, 현대는 그들의 배설물과의 투쟁을 통해서 자유를 쟁취해가는 제3세계 국가들의 약진과 오만한 선진 제국주의 국가들의 반성을 통해서 새로운 역사를 기대해보도록 서술하고 있다.

특히 ‘4호의 다시 일어서는 아시아’, ‘6호 4‧19혁명과 아시아‧아프리카 민주화’, ‘14호 필리핀 민중혁명과 아시아의 민주화’, ‘17호 아프리카의 승리’는 제국주의 국가들이 뿌려놓은 배설물을 세계 약소국의 민중들의 힘으로 청소하는 통쾌한 역사를 다루고 있다. 단순히 세계사의 주변부에 지나지 않으며 항상 수탈의 대상이 되어야만 했던 ‘저능한 민족’들이 세계사의 주인공으로 일어서는 장면을 현장감있게 전달해 주고 있으며, ‘8호 베트남 전쟁’은 민주국가이며 선진국였던 미국이 얼마나 추악한 전쟁을 하고있는지를 세계 민중에게, 그리고 미국의 민중에게 스스로 고발한 전쟁이며(통킹만 사건이 뉴욕타임스에 의해서 미국이 조작한 사건임이 밝혀졌음에도 『근현대사신문』은 베트남이 통킹만 사건을 일으킨 것으로 서술하고 있다. 이는 추후에 반드시 정정되어야 한다.), ‘9호 68혁명’은 기성권위에 도전하는 젊은이들의 반란을 통해서 이전세대들의 독선을 통쾌하게 부수어주는 기사였다.

이책의 마지막은 ‘19호 6‧15남북정상회담’과 ‘20호 2002한‧일월드컵과 촛불 집회’로 마무리하고 있다. 이는 우리 현대사의 과제인 평화통일이라는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서 나아가고 있는 우리의 모습과 한‧일월드컵에서 보인 길거리응원과 그 이후의 촛불집회의 열기를 통해서 우리역사의 희망을 노래하는 것으로 끝을 맺고 있다.



3. 진정한 역사를 꿈꾸며.

2009교육과정이 확정되었다. 고등학교 1학년에서 배우기로한 ‘역사’라는 과목은 ‘한국사’로 바뀌었고 내용도 세계사와 한국사를 각각 30%와 70%로 구성하려했던 당초의 안에서 벗어나 주된 내용이 한국사로 채워질 전망이다. 편협한 일국사에서 벗어나 세계사의 시각에서 한국사를 조망하고 한국사의 입장에서 세계사를 바라볼 수 있는 역사수업을 꿈꾸었던 나에게는 커다른 실망이다. 그러나 이번에 읽게된 『근현대사신문』을 통해서 위안을 얻고자한다. 편협한 일국사에서 벗어나 세계를 끌어 안으려는 노력이 『근현대사신문』을 통해서 일부는 달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ps. 책을 읽던 중에 발견된 내용의 오류들은 앞으로 수정되기를 바란다. ‘돌아오지 않는 황제의 밀사’라는 기사에서 마치 이준열사가 헤이그에서 자결하고 자신의 내장을 회의장에 뿌린 것처럼 서술하고 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이준열사는 화병으로 죽었고, 이것이 당시 신문들에 의해서 확대, 과장되어 잘못전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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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절출판사 2010-07-27 1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사계절출판사입니다.
올려주신 서평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마지막에 덧붙여주신 오류에 대해
"그 부분은 당시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하기 위해
대한매일신보의 기사를 그대로 인용한 것입니다.
추후 밝혀진 사실은 확인하여 책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라는 답변을 편찬위원에서 보내왔습니다.

앞으로도 더욱 노력하는 출판사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