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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탄생 - 한국사를 넘어선 한국인의 역사, 개정증보판
홍대선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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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대선 작가는 '한국인의 탄생'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유쾌하게 풀어냈다.인터넷 신문 '딴지일보'에서 글쓰기를 시작한 만큼, 유쾌하게 글쓰기를 하는 것이 몸에 밴듯하다. 역사를 전공하지 않고 철학을 공부하였기에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이 남다르다. 역사책을 주로 읽어온 나로서는 소위 역사학에서 말하는 '정설'이라는 것에 너무도 익숙해있다. 반면 홍대선 작가는 역사학의 '정설'에서 자유롭다. 그렇기에 그의 시선이 새롭다. 

  홍대선 작가의 새로움은 이 책 곳곳에서 묻어난다. 첫째는 산성에서 우리 한국인의 특질이 만들어 졌다고 본다. 중국보다 앞도적으로 적은 인구수라서 그들과 맞서 싸우기 위해서는 높이의 차이를 이용한 활쏘기로 그들의 수를 적게 만들어야했다. 성이라는 좁은 곳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는 성안의 공동 운명체로서 서로 배려하고 희생해야했다. 이것이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면서도 약한 이웃을 위해서 배려하는 한국인의 특질을 만들었다. 

  수도없이 전쟁사를 가르치고 배웠지만, 산성방어라는 한국 전쟁의 특징이 한국인의 심성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생각하지는 못했다. 사고의 확장! 그것은 내가 익숙한 곳에서 사방으로 생각을 확장하는 것에서 시작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두번째는 고려 현종 시기에 대한 재해석이다. 우리는 보통 삼국 유민의식을 탈피해서 하나의 고려인이라는 생각을 갖게된 것을 대몽항쟁 시기에서 찾는다. 삼국 유민의식을 탈피하고 단군을 중심으로한 하나의 자손이라는 관념은 이성계가 나라이름을 정할때 조선이라 정하는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홍대선 작가는 고려 현종 시기의 고려-거란 전쟁 시기를 주목한다. 현종은 불륜으로 태어나서 왕으로 즉위하고서도 거란과의 전쟁, 가뭄, 해충의 피해 등으로 고난의 길을 걷는다. 그럼에도 거란에 굴하지 않고 귀주대첩을 승리로 이끈다. 현종은 살아 있을때 부터 '하늘이 내린 성군'이라 불렸다. '조선왕조실록'에서도 '현종을 한반도 역사를 다시 세운 위인'으로 평가했다. 홍대선 작가의 평가를 받아들인다면, 고려 현종의 평전이 나와도 좋을 듯했다. 

  고려 현종시기 귀주대첩 이후, 고려는 거란에 조공을 바친다. 피터지는 황제국이 되기 보다는 윤택한 제후국이 되는 길을 선택했다. 


  "고려 사신은 송나라와 요나라에 조공을 바치러 갈 때마다 온갖 패악질을 부렸다. 일부러 난동을 피우고 폭행 사건을 일으키고 다른 나라의 조공품을 무단 갈취하는 등 마피아처럼 행동했다. 두나라가 아무조치도 취하지 못하는 꼴을 확인하고야 만족하고 돌아왔다."-197쪽


  고려 실리외교의 끝판왕이다. 아무도 무시하지 못하는 고려! 송나라와 거란 사이에서 캐스팅보트를 쥐고 갑과 같은 을질을 하는 고려였다. 이것이 진정한 실리외교이다. 고슴도치처럼 타국을 침략하지는 못하지만, 타국이 침략할때는 만만치 않은 피해를 감수해야하는 강소국의 모습이다. 바로 대한민국이 나아가야할 강소국의 진정한 모습이다.

  홍대선 작가는 박식하다. 우리 역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에 철학을 전공한 사람답게 자신만의 시각으로 우리 역사를 바라보고 있다. 군사전문가 뺨치는 설명과 분석은 감탄을 자아낸다. 유쾌한 그의 글솜씨는 책읽는 재미를 배가시킨다. 홍대선 작가의 '한국인의 탄생'을 읽으며 얻은 가장 큰 수확은 강소국 대한민국이 만들어야할 위상을 보았다는 것이다. 아무도 무시할 수 없는 나라! 캐스팅 보트를 쥐며 갑과 같은 을의 모습! 타국을 침략하지는 않는 문화강국 대한민국의 모습을 고려에서 볼 수 있다. 홍대선 작가의 책을 계속 추적하며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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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역사적인 도서관 - 우리 근현대사의 무대가 된 30개 도서관 이야기, 2025 한국출판평론상 수상작
백창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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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brarian을 일본은 도서관과 사서로 번역했다. 우리는 서적원과 검서관이라는 용어를 버리고 일본인이 번역한 도서관과 사서라는 말을 선택했다. 자신을 부르는 말을 스스로 만들지 못한 우리의 도서관역사는 현대 도서관의 역사가 식민잔재에서 벗어나지 못한 현실을 그대로 증명한다. 민주화 운동의 중심지이기도한 도서관이었지만, 그 도서관을 운영하는 사서의 민주화 운동에서의 역할은 너무도 미미하다. '이토록 역사적인 도서관'을 읽으며, 굴절된 우리의 아픈 역사가 온몸으로 느껴졌다.

우리가 역사와 전통이 빛나는 대학도서관을 갖지 못한 이유는 일제 강점기라는 뼈아픈 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 백창민은 한발자국 더 나아가서 시대의 도전에 정면으로 맞서지 못하고 비겁한 모습을 보인 우리를 책한다. 이땅의 유림들은 3.1 운동에 민족 대표로 참여하지 않았으며, 일제에게 작위를 받은 유림도 많다. 존경각의 책이 흩어져 사라진 것 처럼, 유림은 우리시대의 정신을 구현하지 못했다. 조선시대 대표적 교육기관인 성균관이 기존질서를 근본부터 부수고 변화를 선도하는 창조적 파괴를 단행하지 못했다. 스스로 알에서 깨어나는 자는 새생명을 얻지만, 외부의 힘에 의해서 알에서 깨어난자는 계란후라이가 된다. 스스로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한 대가는 참혹하다. 유학이 구시대의 유산으로 취급되며, 찬란한 과거의 문화는 단절되었다.

총독부 도서관에서 사서로 일했던 사람들이 광복이 되고 나서 대한민국의 사서가 되었다. 친일의혹이 있거나, 버젓이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이 올라가 있는 수많은 사서들을 보면서, 그들에게는 민족의 독립보다는 제국의 신민으로서 제국의 통치 이념을 담은 책을 식민지 조선인들에게 읽히는 것을 낙으로 삼았는지 묻고 싶어진다. 이 땅의 사서들은 과거 선배 사서들의 친일행위를 무어라 평가할까? 조국이 없는 상황에서 어쩔수 없는 소시민적 선택이었다고 평가할까?

물론, 친일과 소시민 사이에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사람도 있다. 이범승! 그는 '편지로 조선 총독부를 움직여 2년 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도서관인 경성 도서관을 설립했다. 이를 연구자들은 편지 한장으로 조선 총독부를 움직여 시민의 대학을 설립했다며 높게 평가한다. 반면, 백창민 작가는 그에게 친일의 의혹을 제기한다. 일제와 모종의 끈이 있지 않다면 어찌 그리도 쉽게 편지 한장으로 시민의 대학인 도서관을 세울 수 있는가?

그런데, 백창민 작가는 이범승이 친일파라는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지는 못했다. 만약 도서관 소장자료에서 친일적 서적들의 비중이 높고, 도서관 행사에서 친일행위를 했다면 이범승을 친일파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그를 친일파로 단언할 수 있을까? 물론, 일본제국이라는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우리의 서글픈 도서관과 사서의 역사에서 한명이라도 조국을 위하는 인물을 만나고 싶은 나의 소망이 이범승에 대한 평가를 주저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토머스 제퍼슨은 "시민을 계몽하라., 그러면 폭정과 억압은 사라질 것이다."(345)라고 말했다. 시민의 대학, 도서관은 시민의 대학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시민은 도서관을 시민의 학습장으로 활용하고 있는가? "모든 국민은 자신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갖는다."(345)는 조제프 드메스트르의 말처럼, 시민의 대학으로서의 도서관을 갖고 싶다면, 우리가 도서관을 시민의 학습장으로 삼아야한다. 앞으로의 역사는 우리의 행동 여하에 달렸다.

씁쓸한 도서관의 역사를 살펴보며, 씁쓸한 입맛을 다시기 위해서 진정한 도서관과 사서는 어떠해야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를 소개하고 싶다. 대한 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를 원래 설계대로 짓기 위해서 건축가 김원은 영국 버밍엄도서관에 갔다. 사서에게 60년전 아서 딕슨의 남긴 설계도면을 문의했다. 사서는 아서 딕슨의 설계도면을 찾아주었다. 건축가 김원은 설계도면의 복사를 부탁했다. 그러자, 꽁지머리 사서는 "왜 안되겠어요. 동양의 먼 나라에서 우리 도서관을 찾아 준 것이 더 고맙습니다. 당신 같은 사람을 위해서 도서관은 존재합니다."(251)라는 말을 했다. 결국, 아서 딕슨의 설계 도면 덕분에 성당을 완성할 수 있었다. 이 일화는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야하는지를 가르쳐준다. 우리의 도서관과 사서는 시대 정신에 호응하기 위해서 어떠한 비젼을 가지고 나아가야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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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25-12-05 23: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실 수도 모르실 수도 있습니다만 ‘역사적’도 일제강점기 말씨이고, ‘-의’도 일제강점기 군국주의 말씨입니다. ‘용어·번역·선택·현대·잔재·현실·증명·민주화·역할·미미·굴절·운영·저자·도전·정면·비겁·책하다·구현·대표적·질서·선도·창조적·단행……’ 같은 말씨도 우리말씨이지 않습니다. ‘불리는·만들다·-지는·-되는·것·가지다’도 마찬가지이고요. 잘 쓰고 못 쓰고라는 대목이 아닌, ‘도서관·사서’뿐 아니라 ‘서가·수서·납본·대출·반납’다 하나같이 ‘그들말씨’입니다. 우리한테 ‘펴다·펴내다’라는 낱말이 있으나, 이 책을 펴낸 곳조차 ‘한겨레출판’처럼 ‘출판’을 그냥 씁니다. 몇 가지 이름이 안타까운 대목은 이미 짚은 사람이 수두룩한데, 몇 가지 이름부터 어떻게 우리말씨로 풀고 살려서 새롭게 가꾸느냐 하는 이야기를 담아낼 때에라야, 하나씩 바꿀 테지요.

북프리쿠키 2025-12-06 23: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서재의 달인 축하드립니다.!

강나루 2025-12-07 16:20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이덕일의 고금통의 2 - 내일을 살아갈 통찰
이덕일 지음 / 김영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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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덕일의 책은 짧은 글 보다는 좀 호흡이 긴 글이 제격인듯하다. 이덕일이 쓴 짧은 글들을 모아 놓은 책이다보니, 이덕일 특유의 소설과 같은 몰입감 높은 글 읽는 듯한 쾌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물론, 한호흡에 읽을 수 있는 분량의 글이라서 화장실에서, 친구를 기다리는 약속장소에서 짬짬히 읽기에 좋은 책이다. 

 '이덕일의 고금통의1'에 이어서, '이덕일의 고금통의2'를 읽었다. '이덕일의 고금통의2'를 읽으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임진왜란 시기 일본에 끌려갔던 포로들의 귀환문제였다. 조선은 회답겸 쇄환사를 보내 조선인 포로의 귀환을 모색했다. 학교 현장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 고향에 돌아오지 못하는 포로들의 애틋함이 느껴지도록 이 문제를 설명했다. 그러나, 모든 조선인 포로들이 돌아오기를 바랫던 것은 아니었다. 


  "왜경에 도착한 이후에는 와서 뵙는 자가 연달아 있었으나 돌아가기를 원하는 자는 매우 적었다."

  "사대부출신은 귀국을 원했지만 일반 양인은 달랐다. 조선의 천인이던 도공들이 일본에서는 장인으로 인정받았으니 굳이 귀국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215쪽


  조선인 포로들은 일본에서 노예생활을 하며 고향을 그리워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그런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유교적 사농공상의 직업의식을 갖고 있는 조선사회에서 살기 보다는 도공을 우대하는 일본에서 사는 것이 더 좋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미처 하지는 못했다. 한나라 원제때 흉노 선우에게 시집가야했던 왕소군이 고향을 그리워하며 눈물로 세월을 보냈을 것이라 생각하는 중국인과 같은 격이었다. 몽골인 학자는 여성의 권리가 없다시피한 한나라의 궁녀생활보다는 흉노 선우의 부인인 연지로서 자신의 권리와 의견을 내세울 수 있는 삶을 왕소군은 더 좋아했을 것이라 주장한다. 그렇다. 인간은 자신이 보고 싶은데로 세상을 보고 해석한다. 그러한 확증편향이 우리에게도 있었다. 

 한가지 아쉬운 점도 있다. 442쪽에 소주의 기원을 '예기'와 '사기'에서 부터 소개하고 있다.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만, 학계의 연구 결과는 몽골군이 이라크 지역의 아락주를 고려에 전파한 것으로 결론내렸다. 이 부분은 저자 이덕일 수정하거나 보완해주길 바란다. 

 이책까지 더해서 이덕일의 책을 30권 읽었다. 이덕일의 책중에서 그의 탁월한 글재주를 마음껏 음미하며 읽을 수 있는 책을 찾아볼 계획이다. 음~~ 이덕일이 쓰고 있는 조선왕조 실록이 그러한 책이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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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고금통의 1 - 오늘을 위한 성찰
이덕일 지음 / 김영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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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덕일은 글쓰는 재주가 좋다. 글의 필력을 배우고 싶어서 그의 책들을 읽기 시작했다. 이제는 그의 왠만한 책들을 거의 읽은듯하다. 소설을 읽는 듯한 그의 흡입력 있는 글솜씨는 절로 감탄이 나온다. 

 고금통의1의 전반부가 그가 주장하던 역사적 주장들을 단신으로 써 놓은 것이 많았다. 뒤로 갈수록 이전 이덕일의 책에서는 보지 못했던 글들이 있어서 흥미로웠다. 깊은 역사적 고민을 하게하는 책은 아니다. 역사 단신으로 잠깐 잠깐 역사를 접하고 싶어하는 분들에게는 좋은 책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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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앗긴 문화재를 말하다
혜문 지음 / 금강초롱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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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실의궤'반환, 문정왕후 어보 반환, 응답하라 오바마 프로젝트 성공 ...... 하나의 문화재를 반환 받기가 얼마나 힘든데, 그는 수많은 국보급 문화재를 이땅에 다시 모셔왔다. 그리고, '빼앗긴 문화재를 말하다.'라는 책은 문화재 반환을 위한 그의 노력과 결실, 실패와 좌절, 산적한 과제를 그의 호소력있는 필체로 써내려갔다. 팟케스트를 통해서 그의 강의를 많이 들었지만, 그의 글을 읽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의 글을 읽어 내려가면서 문화재에 대한 애정이 흘러 넘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그가 문화재 제자리 찾기 운동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왜? 자신의 모든 것을 문화재 제자리 찾기 운동에 쏟아붓고 있는 것일까??


  혜문스님이 문화재 제자리 찾기 운동을 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혜문스님이 어느 비구니 스님의 개인차실에서 차를 마시고 있었다. 그때 흥국사 지장전에 있어야할 탱화 두점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혜문 스님은 그 탱화가 밀반출된 탱화임을 알았고, 그 탱화를 회수했다. 그런데, 여론은 옳은 일을 한 혜문 스님을 칭찬하지 않았다. '문중 어른의 약점을 캐내 까발린 하극상'이라며 여론은 그를 매몰차게 나무랐다. 정의를 실천하는 사람이 오히려 몰매를 맞는 억울한 일이 벌어졌다. 정의가 힘을 갖지 못해 비열한자들에게 조롱을 당하는 것보다 서글픈일이 없다. 혜문 스님은 그 서글품을 안고 도망치듯이 일본에 갔다. 그리고 그 곳에서 '조선왕조실록 오대산 사고본'을 만났다. 그리고 '조선왕조실록 오대산 사고본'을 되찾기 위한 긴 여정을 시작한다. 

  어떤이는 시련에 용기를 잃고 좌절한다. 어떤이는 시련을 딛고 일어선다. 혜문 스님은 시련을 딛고 일어섰다. 오히려 그 시련이 그를 '문화재 제자리 찾기 운동'이라는 숭고한 가시밭기를 가도록했다. 우리 삶도 그러하지 않을까? 시련에 좌절하기 보다는 그 시련이 나를 더 크게 만들수 있다. 그 시련에 좌절하지 않고 그 시련으로 부터 교훈을 얻어 삶의 밑거름으로 삼는다면 말이다. 

  문정왕후 어보를 환수한 혜문 스님은 대한제국 국새를 반환하는 작업을 추진한다. 그런데, 반환 받기로 한 국새를 오바마 대통령이 직접 가져오도록 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작전명 '응답하라 오바바'이다. 어짜피 반환받을 것이면 형식이 뭐가 중하겠는가! 굳이 오바마 대통령을 자극할 필요가있을까? 이러한 회의 적인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

  이에 대해서 혜문 스님은 강대국들에게 짓밟힌 민족적 자존심, 상처받은 민족혼을 치유하기 위해사고 말한다. 더 나아가서 문화제 반환운동사에서 세계사적 사례를 만듦으로해서 제3세계 국가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주고 싶다고 큰 뜻을 밝히다. 역시, 혜문 스님은 달랐다. 단순히 우리 것을 되찾겠다는 일차원적 생각에서 머무르지 않고, 상처받은 민족의 역사를 보듬고, 강대국의 군화발에 위축된 제3세계 국가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어하고 있다. 그가 문화재 제자리 찾기 운동을 하면서 가지고 있는 사명감에 다시금 감탄을 한다. 

  그의 문화재 반환 운동은 반드시 성공만 했던 것은 아니다. 오쿠라 컬렉션 반환 소송에서 그는 승리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법정에서 이겨야만 이기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라며 강단있는 자신의 생각을 말한다. 자신의 노력이 뒷날 누군가의 길이 될 것이라 믿으며 묵묵히 문화재 반환 소송을 진행했다. 이러한 노력은 지금 당장 결실을 맺지는 못할 수도 있지만, 혜문 스님의 뒤를 따르는 뜻있는 많은 젊은이들이 추진하는 문화재 제자리 찾기 운동의 밑거름이 될 것이다. 

  혜문 스님의 모든 주장에 동의할 수만은 없다. 혜문 스님은 명성황후를 살혜한 히젠도를 환수하려하고 잇다. 히젠도 환수 위원회 발대식 사진에는 "국치의 상징, 히젠도를 즉가 폐기하라."라고 적힌 플래카드가 걸려있었다. 히젠도가 본래 우리것이라면 '환수'라는 단어를 쓸 수 있다. 그러나 히젠도는 우리것이 아니기에 '환수'라는 단어를 쓰기에는 부적합하다. 

  또한, '즉각 폐기'하라는 글귀도 이해할 수 없다. , '국치의 상징'이기에 '즉각 폐기'해야할까? 오히려 히젠도는 일제가 저지른 만행의 증거이기에 폐기 보다는 보존하면서 아픈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한 학습교재로 사용해야하지 않을까? 



  혜문 스님은 이 시대의 안용복이 되어 우리의 문화재를 되찾기 위해서 고분분투하고 있다.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자청하여 문화재 제자리 찾기 운동을 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 불만 가득한 말을 하는 사람도 있다. 서울대 이모교수는 어느 인터뷰에서, 이토히로부미가 대출해간 규장각도서를 반환하기 위해서 서울대에서 한일이 없다고 따가운 질문을 기자가 했다. 이에 대해서 이모 교수는 '한일 협정'과 예산 타령을 하며 민간은 '감정적'이라고 질타했다. 나태한 소위 명문대 교수들의 인터뷰를 읽으며 무엇무엇 '때문에'할 수 없다는 말보다 무엇무엇 '임에도 불구하고' 그 길이 옳기에 우리는 간다는 시민 단체의 뜨거운 감정이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혜문 스님은 그 뜨거움을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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