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성이는 기억의 지층 - 일본군 '위안부' 서사와 역사 아래의 목소리 ㅣ 신진한국학연구총서 9
이지은 지음 / 역사비평사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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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일행 중에는 광복군 이천오백 명을 필두로 하야 독신부녀가 삼백 명이나 되고 그 외에는 대다수가 경남북慶南출신의 피난민들인데, 특히 부녀 중에는 대구 출신만 백삼십 명에 달하고 잇다. 이들은 과거에 가난한 살림사리에희생이 되여 멀니 대륙까지 껄여간 소위 위안부가 대다수이며 그리운 고국을 차저왓스나 반갑게 마지하야주는 연고자도 업는 가련한 처지에 잇는 사람이다. 원하건데 일반사회에서는 아모조록 따뜻한 동정으로 이들을 마지하주기를 특히 부탁하는 바이며, 흐로 대구 출신 중국 장군으로 활약하는 정유택. 이두산·김민걸 제씨는 최근 상해에 체류하며 조국을 위하야 노력 중이다. 느저도 사월까지는 모다 귀국하겟다고 말하였다. (밑줄- 인용자)
-대구시보, 1964.3.19. 상해한국교민수용소 소장 오룡비의 말,연구결과공돈은 위안소 운영업자 - P68

(가) 산업 정신대라고 모집된 미혼 여성들을 전선으로 보내어 병사들의 육체적 야욕을 충족시키는 위안부 생활을 시키고 있었다. 후퇴하는 도중 버마 북부 명승지 메이묘에서위안부 집단을 봤다. 그곳은 호수가 있고 기후도 순조로와별장 시설이 있어 버마의 피서 겸 관광지로 유명한 곳이다.
군인 상대의 상인(포주)이 전선 후방에까지 여인 군상을인솔하여 후조候鳥처럼 부대를 따라다닌다. 위안부 조직은조선 여성, 대만 여성, 만주 여성 등 인종 혼성으로 되어있다. 하사관의 강요로 조선 여성을 안내하러 가봤다. 타국전선에서 동포를 만난 그들의 동족애가 이만저만 아니다.
여인 1명에 많은 대기줄은 10명까지 이어졌다.
한 사람 상대하는 데 수분數分 소요하는데 계급 높은 병사는 뒷줄에서 소리를 지르며 속행하라고 최촉催促하는 모 - P126

습이다. 참으로 인육 시장을 연출하고 있었다.
전세가 불리하면 위안부의 후퇴가 어려워 죽이고 가는97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
-유병채. 버마전투와 포로신세
(나) 드디어 내 앞사람이 방에 들어가고 나는 방 입구 가까이 다가서게 되었다. 순간 나는 내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없었다. 안에서 조선말로 욕설하는 소리가 들려 나오지 않는가. 그것도 매우 상스러운 말투로.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여기가 어딘데 여기 조선 사람이 있다니. 어안이 벙벙해 있는데 앞에 놈이 나온다. 나는 잔뜩 호기심을 가지고마음을 단단히 먹고 방문을 열고 그 안에 쳐 있는 카-텐을열었다. 안에서 눈을 비스듬이 뜨고 째려보는 그녀의 상반신과 흐트러진 머리칼을 보는 순간 나는 진정 못 볼 것을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그저 장승처럼 서 있었는데,
(중략)... 당신 어디서 왔소, 고향은 어디오 하고 조선말로 물었다. 순간 그녀의 게슴프레하던 눈동자는 마치 황소 눈처럼 커지며 눈에 광채가 난다. 그럼 당신은 당신은 조선 사람, 조선 사람이 어떻게 예까지 왔소. 그래 나는 조선 사람이오. 학교에 다니다가 억지로 군대에 끌려와 이까지 왔소.
반갑소. 살기만 하면 고향으로 가는 날이 있겠지. 눈물이뺨을 적신다. 나는 잡낭雜囊과 도낭圖囊 속에 넣고 간 설탕,
소금, 비누, 양강 등 몽땅 털어 그녀의 침대 머리맡에 놓고 - P127

두 손 꼭 잡아주고 나올려는데 내 허리띠를 잡고 놓아주지를 않는다. ...(중략)…오- 그대들이여 부디 이 지상에 아벨의 자손으로 다시 살아남아 선민족民族으로 이 강역을 빛나게 하고, 죽어서도고국의 땅을 살찌게 하는 고귀한 핏줄이 되여주시옵소서.
-한시곤,내가 만난 여자 정신대 - P128

(다) "얘들아, 데리고 왔어, 약속대로 데리고 왔단 말이야.
조선인 병정을 말이야."
미야사끼가 수선을 떨기가 바쁘게 여자들이 오, 육 명어디선지 우르르 몰려나와 나를 둘러싸듯 하면서 마침 그곳에 있던 가죽 소파‘에 나를 앉혔다.
"오빠는 언제 떠났어요?"
"오빠 고향은 어디세요?"
만리 이역에서 만난 동포 여성에게서 ‘오빠‘라고 불리고나니 나는 어쩐지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보기에는 고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여자들이었다. 그들은 ‘버마‘의 일본군 - P133

위안부로 끌려와 있는 것이다. 나는 순간적으로 혐오와 측은함이 뒤섞인 기묘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그러나 내 자신은 뭐였던가? 나도 그들과 다를 것이 없었다. 일본군에게지원한 조선의 청년이 아니었던가. 나도 넋을 판 썩은 몸이 아니었던가. 다만 다른 점은 돈을 벌기 위한 고용병이아니었고 돈을 벌기 위한 매춘부가 아니라는 점이다. 가난하고 불쌍한 민족의 제물-바로 우리는 이 제물이었던 것이다.
-이가형,버마 전선 패잔기 - P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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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왜 전쟁을 멈추지 못하는가 - 트럼프와 1조 달러 전쟁 기계의 야망
윌리엄 D. 하텅.벤 프리먼 지음, 백우진 옮김 / 부키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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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을 군산복합체국가라한다. 너무도 오래전에 들었던 용어라서 이제는 낡은 이론으로 느껴질 정도이다. 그러나, '미국은 왜 전쟁을 멈추지 못하는가'라는 책은 미국이 군산복합체국가임을 너무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는 단순히 군수업체와 미국의 산업이 하나가 되었다는 말이 아니다. 군수업체가 미국정치를 좌우하고, 이를 위해서 정치인이 로비스트가되고 로비스트가 각료로 진출하기도한다. 신크탱크와 미디어를 포섭하고, 할리우드 영웅들이 미군을 선전하도록한다. 게임처럼 전쟁을 하고 게임어들이 드론으로 사람을 죽인다. 여기에 빅테크 군수산업이 전쟁을 로봇과 인공지능의 향연의 장으로 만든다. 

  미국 행정부가 세계대전 기간에 군수산업을 키웠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아이젠하워대통령이 우려했듯이, 군수산업이 의회와 행정부를 장악하기 시작했다. 천문학적인 돈이 군수산업을 위해서 사용되었다. 


  "군비확충에는 돈만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노동자의 땀과 과학자의 뛰어난 두뇌, 어린이의 희망도 소모됩니다."-60쪽


  세계 초강대국 미국을 유지하기 위해서, 미국은 천문학적인 군사비를 지출하고 있다. 그에 대한 댓가도 만만치않다. 초강대국의 화려한 모습뒤에 펜타닐에 취해서 좀비가 되어버린 미국인들과  진료비가 너무 비싸서 왠만한 병이 아니면 병원에 가지 않는 미국의 서민들의 고통이 서려있다. 슬럼가에는 총과 마약이 난무한다. 사회복지와 치안에 쓰여져야할 돈이 국방비에 쓰이고 있는 미국의 현실이다. 

  국가가 제공해야하는 사회복지서비스를 개인의 자립심으로 극복하기를 바라는 미국사회의 상식은 실은 군산복합체 국가 미국이 천문학적인 돈을 국방비에 쏟아붓기 위한 핑계였다. 미국 아린이의 꿈과 미국 서민들의 삶을 갈가먹는 전쟁기계는 이제는 자가포식의 단계에 도달하고 있다. 

  1966년, 1967년 미국 전역의 대학캠퍼스에서 다우케미컬과 그 채용 담당자들에게 맞선 학생시위가 100건 넘개 발생했다. 네이팜탄을 생산하는 이 회사에 대해서 양심있는 미국 대학생들은 당당히 맞서 싸웠고, 1969년 다우케미컬은 네이팜탄 생산 중단을 결정했다. 미국인의 양심과 이상이 작동하던 시기였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의 냉혹한 현실 속에서 이러한 양심과 이상도 사그라들었다. 고닳픈 현실 속에서 학자금을 갚기 위해서 젊은이들은 군수산업체와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 국회의원들은 더 많은 군수시설이 자기 지역구에 들어서길 바란다. 그것이 일자리를 늘릴 것이라는 어리석은 희망이 군수산업을 더욱 확장시킨다. 

  결함이 많은 F-35를 생산해야하고, 미군의 생명을 앗아가기에 더이상 전투현장에서 쓰이지 않는 연안 전투함을 미국은 퇴역시키지 못한다. 미국의 패권을 위해서 군수산업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군수산업을 위해서 미국이 존재하는 형국이다. 

  결국, 군산복합체 미국은 전쟁기계게 되어갔다. 미소 냉전이 미국의 승리로 끝나자, 새로운 악의 축들이 필요했고, 새로운 전쟁이 필요했다. 전쟁은 군수산업을 살찌웠고, 그 돈은 다시 정치인과 씽크탱크를 비롯해서 사회 각분야에 뿌려져 군수산업 육성의 지지 논리와 지지자들을 만들어낸다. 이제, 미국의 현재 국방비는 한해 1500조를 넘어섰다. 내년에는 2천조가 된다. 폴 케네디는 '강대국의 흥망'이라는 책에서 군사비의 과다는 패권의 상실로 이어진다고 했다. 전쟁기계 미국의 자가 포식적 팽창은 이제 미국의 쇄퇴를 더욱 확실하게 보여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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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자서전 그 꿈이 있어 여기까지 왔다
이재명.스토리텔링콘텐츠연구소 지음 / 도서출판 아시아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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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태일이 대통령이 된다면 우리사회는 어떻게 변했을까? 이런 상상을 해본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박정희에게 보내기 위해서 쓴 편지를 보내지 못하고 일기장에 묻어두어야했던 전태일은 어린 여공들이 죽어나가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어서, 가장 소중한 생명을 불살랐다. 전태일의 분신은 우리 노동운동사에서 한획을 긋는 사건이었다. 전태일의 분신 이후에도 노동자의 분신은 계속되었다. 전태일이 우리에게 경각심을 일깨워준것은 사실이지만, 노동자의 고통이 사라지게 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전태일과 같은 노동자가 대통령이 되었다. 이재명! 그의 삶이 궁금했다. 


  보수논객 정규재는 매불쑈에 출연하여 '저렇게 가난하고 어렵게 살아온 사람이 권력을 잡게되면 가진자에 대해서 얼마나 험하게 하겠냐'라는 마음을 갖고 있기에 보수세력이 이재명을 싫어한다고 밝힌바 있다. 참혹한 가난의 굴래에서 갖게될 수도 있는 가진자에 대한 적개심을 보수는 우려했다. 그러나 그 우려는 기우였다.
  자는 시간을 줄여가며 국정에 전념하는 이재명 대통령에게 시장의 한 여인이 '잠을 잘 주무세요.'라고 걱정스런 말을 건네니, '내가 조금더 일하면 세상이 좋아지는데...'라며 열심히 일하겠다는 속내를 밝힌다. 왜이리 이재명은 따뜻할까? 그 이유를 심리학자 김태형은 어머니로부터 받은 사랑때문으로 보았다. 중학교에 보내는 대신, 공장에 출근시켜야했던 어머니는 이재명의 손을 잡고 공장에 갔다. 현실은 고달펐지만, 어머니의 따스한 사랑은 이재명의 마음을 아름답게 만들고 있었다. 
  이재명에게 따스한 사랑을 배푼 사람은 어머니만은 아니었다.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이 모든 학생이 수학여행에 갈 수 있도록 학생 가정을 방문하며 설득하고, 학생들이 심부름이라도 해서 수학여행비를 마련할 수 있도록 도왔다. 그렇게 만든 수학여행의 아름다운 기억이 대통령이 되어서 다시 빛난다. 안전문제로 학교 현장에서 수학여행을 취소하는 사태가 발생하자, 교사들이 걱정하는 바를 경청하고 근본적인 문제해결을 위한 조치를 취하도록 한다. 

  "가난하다고 해서 소년공으로 살아야한다고 해서 망가질 권리는 없다."-68쪽

  같이 검정고시를 준비하던 정운이가 술과 담배를 하기 시작하자, 이재명은 정운이를 바른길로 인도하려 노력했다. '절교'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하면서 정운이를 바른길로 인도했다. 현실이 고되고 세상이 원망스러워서 술과 담배에 빠져들 수도 있는데, 그는 가난하다고 해서 망가질 권리는 없다며 친구를, 자신을 바로 잡았다. 어머니의 사랑이 이재명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그 단단함은 세상을 더 아름답게 만들고 있다. 
  이재명도 인간이다. 대학을 갈 수 없다는 좌절에 빠졌을때, 두번씩이나 연탄불을 피워놓고 수면재 20알을 먹었다. 그때 매형이 이재명에게 이재명의 아픈팔을 고쳐주겠다고 약속했다. 따뜻한 매형이었다. 자신의 삶도 녹녹치 않은데 자살을 기도한 처남을 혼내기 보다는 따스한 말로 위로했다. 이러한 사랑이 그를 더욱 강하게 만드는지도 모른다. 그가 기본소득을 부르짖은 것도, 무상 교복을 주장한 것도 소년공 시절 그토록 절실히 필요했던 삶에서 우러나온 정책들이다. 
  심리학자 김태형은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했던 이재명이 대외적인 정책이나, 곤경에 처했을때 이를 제대로 이겨낼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심리학자 김태형의 이 걱정도 기우였다. 이재명은 아버지의 죽음을 앞두고 화해했다. 검정고시 학원비도 주지 않았던 아버지는 이재명이 사법고시에 떨어지자, 비상금을 건네주었다. 이재명의 아버지는 결정적인 순간 아들에게 사랑을 배풀었다. 이재명은 아버지의 사랑을 못받은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일까? 그는 

"부당한 일을 당하면 나는 전투력이 강해진다."-75쪽 

라고 말한다. 일명 X파 카르텔들이 이재명을 배신자라며 비판하며 지지율을 떨어뜨리고 있을때, 이재명은 그들에게 화해의 손을 내밀었다. 그럼에도 X파 카르텔은 이재명의 손을 매정하게 뿌리쳤다. 이재명의 얼굴은 너무 피곤함이 찌들어 있었다. 이재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걱정하고 있을때, 이재명을 잘아는 사람들은 전투력을 다지는 결기를 보았다고 말했다. 이 책을 읽으며 그 말이 맞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능력도 없으면서 자리를 탐하고, 원하는 자리를 얻지 못하자 급진적 개혁을 명분으로 대통령을 비난하는 그들과 한판승부를 펼치기 시작했다. 
  

  이재명은 대통령이라는 자리보다는 일을 할 수 있는 자리를 더 원하는 정치인이다. 개인의 손해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대다수 국민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서 오늘도 밤잠을 줄여가면서 국정에 전념하고 있다. 그는 이상만 말하며 실력이 없는 백면서생이 아니다. 강자에게 맞아도 보고, 멸시도 당했던 사람이다. 그러면서도 세상에 대한 따스함을 잊지 않고 있으며, 세상을 따스하게 만들 용기와 능력을 갖춘자이다. 시장 사람들과 악수하면서 자신이 이룬 개혁이 서민의 삶을 보다 이롭게 하는 현장을 확인하며 행복해하는 사람이다. 전태일이 대통령이 되었다면 이재명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를 응원한다.


그해 전국적으로 약 500만 명이 시위에 참여했다고 한다. 6월 10일에는 서울에서만 30여 곳, 전국적으로 500곳 이상에서집회가 열렸다. 당일 오후 6시 정각, 전국 곳곳에서 교회가 종을 치고, 그것을 신호로 차량들이 일제히 경적을 울리고, 시위대들이 함성을 질렀다. 지나던 시민들이 걸음을 멈추고 박수로호응했다.
하나로 뭉쳐진 거대한 힘. - P134

첫째, 권력을 잡기 위해 뭔가를 하는 게 아니라, 뭔가를 하기위해 권력을 필요로 한다.
둘째, 개인적 손해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셋째, 대중은 물론이고 반대자들도 피하지 않는다.
넷째, 절대다수의 일반 국민에 대한 강한 연대감을 갖고 있다.
공감이 되는지 궁금한 대목이다. - P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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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전 - 한 여자가 한 세상이다
김서령 지음 / 푸른역사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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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전'이라는 책을 역사 수업을 하면서 학생들에게 추천해주었다. 그러나, 정작 나는 읽지 않았다. 읽어야할 좋은 책들이 너무도 많았기에 '여자전'은 독서 목록에서 뒤로 밀려나 있었다. 작년 가을! 학교 도서관에서 폐기 도서를 학교구성원들에게 나눠준다는 공지가 올라왔다. 그 책들 속에서 '헤로도토스 역사'와 '여자전'이 눈에 띄었다. 두책을 책장에 꽃아 놓았다. 1년이라는 시간이 또 흘렀다. 바쁜 일상속에서 여름방학 동안 읽을 책을 도서관에서 빌리지 못했다. 그때, 그동안 책장에 꽃혀 나를 기다리던 두책이 눈에 들어왔다. '헤로도토스 역사'를 읽으며, '여자전'을 읽는 병렬독서를 시작했다. 헤로도토스 역사'는 장기간에 걸쳐 읽어야할 책이었다. 반면 '여자전'은 손에서 떼어 놓기 힘들어 단숨에 읽어 내려간 책이다.

 

'여자전'을 손에서 놓기 힘든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책속에 등장하는 7명 여인의 삶이 너무도 가슴저리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한명 한명의 삶이 왜 이리도 기구한지...

지리산 빨치산 할머니 고계연부터 반세기 넘게 홀로 가문을 지켜온 종부 김후옹, 일본군'위안부' 김수해 할머니, 중국 팔로군 출신 기공 연구가 윤금선, 문화판의 걸출한 욕쟁이 할머니 박의순, 황진이보다 더 치열했던 춤꾼 이선옥, 한 달의 인연을 영원으로 간직한 최옥분 할머니의 삶이 너무나도 영화보다 더 영화 같았다. 이들 한분 한분의 삶을 소재로 영화를 제작해도 너무도 흥미 진진한 작품이 탄생할 것 같았다.

종부 김후옹과 한 달의 인연을 평생 간직한 최옥분 할머니의 삶은 너무도 지고지순했다. 6.25 전쟁으로 헤어져 남편은 북으로 갔고, 54년만에 금강산에서 남편을 만난 김후옹은 남편도 없이, 아이도 없이 시부모를 평생 모시며 남편 없는 종가를 지켰다. 반면, 최옥분 할머니는 6.25 전쟁으로 피난온 남편을 만났다. 승려의 길에 방해될까봐 그를 떠났다가 다시 미래를 약속하며 한달 동안 동거를 했다. 인생이 왜이리 기구할까? 그녀의 남편 김종후는 교통사고로 죽는다. 그리고 그녀의 배속에는 남편의 아이가 있었다. 남편과 살았던 1달의 만남을 뒤로하고 남을 생을 남편을 기억하며 딸을 키우며 보냈다.

한 여인은 살아있으나 만날 수 없는 남편을 기다리며 자녀도 없이 일생을 보냈다. 54년만에 금강산에서 만나고 나서 일본을 거쳐 받은 편지에 가슴 설래하는 모습은 20대 처녀의 순박한 모습이었다. 반면, 한달만에 남편을 떠나보내고 남편의 혈육을 키우며 일생을 보낸 최옥분은 남편을 가슴속에서 보내지 않았다. 남편의 무덤을 여러 차례 이장하며 남편과 함께 했다. 김후옹이 54년만에 남편을 만났으나, 최옥분은 죽은 남편을 가까이 두고 여생을 살았다. 두 여인의 삶을 아름다운 사랑이라 보아야할까? 아니면 집착으로 보아야할까? 두 여인의 삶에 가슴이 져려온다.

빨치산 고계연과 팔로군 출신 윤금선의 삶도 기구하다. 고계연은 유복한 가정에서 곱게곱게 자랐다. 그러나, 6.25전쟁과 이념이 그녀의 삶을 뒤바꿔 놓았다. 얼어 죽거나 총맞아 죽거나 굶어 죽는 빨치산의 삶을 살았던 고계연은 동상 걸린 자신의 발가락을 스스로 분질러 떼어 냈다. 전쟁과 이념이 그녀의 삶을 삼켜버렸다. 반면, 윤금선은 군대가면 늙은 남자와 결혼하지 않아도 되기에 팔로군에 지원했다. 고계연이 6.25라는 내전을 겪었다면, 윤금선은 국공내전이라는 중국 내전을 겪었다. 여기에 더해서 그녀는 6.25에도 참전했다. 전쟁이 끝나고 두 여성의 집에 살아 남은 남자는 없었다. 남자 없는 가정을 그녀들이 책임졌다. 쓰러진 가정을 끝까지 지킨 것은 여성이었다. 인간사 세옹지마라 했던가! 두여성은 마음좋은 남자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여성은 역사의 피해자만은 아니었다. 시대의 고통에 맞서서 자신의 삶을 개척하는 강인한 존재였다. 두 여성의 삶에서 밟아도 밟아도 다시 일어서는 강인한 민초의 힘을 느꼈다.

이 책에는 두명의 예술인 여성도 등장한다. 걸출한 행위예술로 안기부도 제압한 박의순과 불교를 예술로 승화시킨 선무를 통해서 세계적인 춤꾼이 된 이선옥의 아름다운 삶이 등장한다. 박의순은 박종철 추모제와 9일장 사건으로 유명한 박의순은 남편을 설득해서 자신의 소극장을 만들었다. 그리고 6월 항쟁의 들불이 타오르는 그 시기에 박종철 추모제와 9일장을 해냈다. 보통의 남자도 안기부라하면 벌벌 떨던 그때에 그녀는 안기부 요원에게 시원한 욕설을 퍼부었다. 그녀의 욕설은 폭력과 모욕의 용어가 아니었다. 힘없는 민초들의 울부짖음이었다. 그녀의 욕설에 수많은 사람이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반면, 이선옥은 6.25 전쟁중에서 탁월한 춤선생님을 찾아다니며 춤을 배웠다. 그리고 미국에서 한국의 미를 동양의 불교 사상에 접목시켜 선무를 완성했다. 그녀가 세계적인 무용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한국의 혼을 잊지 않았기 때문이다. 두여인의 남편은 달랐다. 한명은 그녀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다면, 한명은 그녀가 걷어차버렸다. 비슷하면서도 전혀 다른 두예술가의 발랄한 삶이 아름답다.

이 책에서 가장 가슴 아픈 삶을 살다간 여인은 일본군 '위안부' 김수혜 할머니이다. 취직시켜준다는 꾐에 속에서 일본군 '위안부'가 되었고, 탈출을 시도했으나 실패해서 모진 고문을 당해야했던 여인! 일본군에게 자신의 자궁까지 탈취당해야했던 그녀는 다행히, 광복 후에 착한 남자를 만나서 행복한 가정을 만들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아직도 사과하지 않는 일본을 용서할 수 없었다. 그녀의 삶을 읽어 내려가면서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역사의 과제가 한여인들의 삶의 무게를 짖누르고 있다는 현실에 갑갑함이 밀려왔다.

 

이 책속에 등장하는 일곱명의 여인들의 삶이 곧 우리 근현대사였다. ‘역사라는 거대한 수레바퀴 속에서 한 여인의 삶이 이렇게 기구할 수있구나!’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이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인생을 개척하려 시대와 사회에 도전하며 살아간 그녀들의 삶이 아름다웠다. 그녀들은 단순한 역사의 희생자가 아니었다. 역사의 개척자이면서 운명과 맞서 싸운 투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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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전 - 한 여자가 한 세상이다
김서령 지음 / 푸른역사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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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벌기 위해 정처없이 올라탄 기차
며칠 후 저녁 먹고 설거지까지 해놓은 후에 갑숙이네 점방으로갔다.
"일본 남자 둘이 이미 와 앉아 있데요. 낯선 처녀들도 두 명더 있고, 일본 남자 중 하나는 순사 옷을 입었데요. 점방 주인 남자가 차비는 자기가 대줄 테니 걱정 말라고 해요. 집에다는 말 - P100

하지 말고 그냥 가서 나중에 편지로 알리라고 갑숙이가 했던 말을 또 하데요. 입던 옷 입은 채로 신던 신발 채로 그날 밤에 배를탔네요. 내가 머저리니 어디가 어딘지 알 수가 있나요. 어디 기차역이 있는 곳에 내리니 우리 말고 처녀들 네 명이 더 있데요.
꺼먼 무명치마에 흰 저고리를 뻘쭘하니 차려입고…………외출한다고 벌건 댕기도 들였데요. 차림새만 봐도 숭악한 촌에서 데려온처녀들인 줄 알겠데요. 지금 생각하면 거게가 아마 포항쯤 된거같소." - P101

"일본 군인 놈이 불로 지진 거요. 화로 속에 꽂는 인두로, 3년만임무를 완수하라니. 3년을 무슨 재간으로 버티겠소? 앞이 캄캄합데다. 1년이 안가 뼈가 다 녹아불 것 같았소. 온몸의 진액이 다 빠져나가 허깨비가 될 거 같앴소. 그래서 도망을 쳤어요. 내가 간이 커요. 어려서부터 담대했어요. 포항에서 같이 갔던 여자 셋을 꼬였어요. 여기서 죽느니 나가서 죽자, 중국 시골로 달아나서 농사지으면서 살자. 그렇게 탈출을 주도했어요. 도망치다 붙잡혀서 맞아 죽는 것을 본 적 있소. 그래도 못 견디겠데요. 한밤중에 문지기가 조는 틈을 타서 대문을 빠져 나왔어요. 잡혀간 게 시월이고 도망칠때는 간지 서너 달 후니까 섣달쯤 됐을 거 같네요"
- P105

"위안소의 주인은 계급이 높은 일본 군인이었소. 그 마누라는 모르긴 해도 조선 여자인 것 같앴소. 조선말을 썩 잘했소. 한쉰은 됐으까. 옷은 대개 몸뻬바지를 입었소. 옷이야 아무래도 좋았지. 그런 걸 신경 쓸 겨를이 어디 있겠소. 머리는 다 단발이었고 화장품은..……분 한 통씩을 나눠준 것 같소. 그러나 그걸발라 단장하는 여자들은 못 봤어요. 다들 죽지 못해 사는 거지살려고 사는 여자는 하나도 없었으니까……군인들은 하루 열댓명씩 들어왔소. 방 앞에 죽 줄을 서 있지. 반시간씩 있다 가요.
시간 되면 바깥에서 종을 칩니다." - P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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