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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역사 2 - 주체사상과 유일체제 1960~1994 청소년과 시민을 위한 20세기 한국사 6
이종석 지음, 역사문제연구소 기획 / 역사비평사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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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0년대 북한은 김일성 권력을 공고히하고 주체노선을 고창한다. 그리고 김일성에서 김정일로 권력은 이동한다. 1980년대 김일성과 김정일 공동통치시기를 지나 김일성 사망 후, 김정일 시대가 개막된다. 김일성 없는 북한은 '고난의 행군'이 시작한다. 

  북한의 역사2를 읽으며 희망차기 보다는 착잡한 생각이 밀려온다. 한때 대동강의 기적을 운운하며 남한보다 잘 살았던 북한이, 먹을 것을 찾아서 시골과 중국땅을 헤매는 비참한 동포의 모습으로 변했을까? '주체'를 앞세우며 희망을 부르짖지만, 현실은 곤궁함의 극치로 내몰린 북한! 

  김일성 가문의 입장에서 북한 현대사는 성공의 역사로 포장할 수 있다. 강력한 남로당, 옌안파, 소련파, 갑산파를 물리치고, 항일 무장 투쟁을 했던 김일성이 권력을 독점했고, 3대 세습에 성공하여 김일성 왕조 성립에 성공했다. 그러나, 같은 시기 북한 주민의 입장에서는 패배의 역사이다. 소위 '민주개혁'으로 시작하여 자기 땅을 갖게 되었지만, 6.25 전쟁을 거치면서 집단농장화를 했다. 물질보다는 사상이 우선시되는 시대에서, 김씨 왕조를 위한 충성 맹세를 해야했다. 김일성 유일사상체계 속에서 자유로운 사고는 이뤄질 수 없었다. 급기야 배급이 끊기고 식량을 찾아서 지방과 중국땅을 헤매야했다. 

  이 책은 1960년대 이후 북한의 몰락 과정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김일성 유일 사상체계 속에서 생각이 마비된 북한 사회를 들여다보는 것은 무척이나 착잡한 일이다. 북한 주민이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낼 동력을 김일성 유일 사상체계가 억압하고 있다. 그렇다면, 언제쯤 북한 주민은 스스로의 힘으로 희망찬 새로운 시대를 만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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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와 쟁점으로 읽는 20세기 한일관계사 청소년과 시민을 위한 20세기 한국사 8
정재정 지음 / 역사비평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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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깝지만 먼 이웃 일본! 지구상에 있는 나라들 대부분이 이웃나라와는 사이가 좋지 않다고 한다. 중국과 베트남 사이, 영국과 프랑스 사이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이웃나라끼리는 사이가 좋지않다. 그 중에서 한국과 일본 만큼 상대국을 싫어하는 나라도 드물 것이다. 특히 광복 이후 일본과 한국의 관계는 더 없이 관계가 악화되고 있다. 갈등의 뿌리를 알아야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한일관계는 언제부터 이렇게 뿌리 깊게 불신의 늪을 헤메고 있었을까?

  20세기 한일관계의 실타래가 본격적으로 뒤엉퀴기 시작한 것은 식민지배였다. 일본인은 한국인을얕잡아 보게 되었으며, 한국인은 일본인에게 깊은 원한을 갖게 되었다. 일본이 만들어 놓은 식민사관과 식민지 노예교육은 한국인들에게 식민지 노예 근성을 만들어 놓았다.


 "한국이 일본과 공식적으로 교전한 적이 없고, 독립 운동세력이 국제 사회의 정식 승인을 받으납도 없기 때문에 ... 일본은 배상할 의무가 없다."(60쪽)


  이말은 보수당 국회의원 정00이 한 말이 아니다. 일본의 보수파들이 한말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보수당 국회의원이 한 말과 너무도 비슷하지 않은가? 공주의 친일파 집안에서 자라난 정00의원은 식민사관의 세례를 충실하게 받았다. 식민지에서 벗어난지가 80여년이 되어가는데 우리는 식민지 노예 근성을 버리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재미있는 것은 이념과 체제면에서 남한은 일제시기와 단절적인 혁명을 거쳤다면, 북한은 정치, 경제의 근본에 관련된 이념이나 가치등에서 일제와 연속된 측면이 많다는 지적이다. 북한은 친일 청산을 했는데, 남한은 하지 못했다는 것이 우리의 상식인데 '20세기 한일 관계사'의 저자 정재정은 인적 청산보다는 이념과 체제, 정치, 경제적 관점에서 신선한 지적을 한다. 남한과 일본은 일제 말기의 대척점에 있는 미군의 통치를 받은 반면, 북한은 일제 말기와 친연성이 강한 소련군의 통치를 받았다. 일제의 전체주의적 통치는 북한 공산정권에 의해서 전체주의 공산국가 시스템으로 이어졌다. 

  참으로 큰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북한은 6.25 전쟁 중에 일명 '모셔가기' 계획에 따라서 남한의 지식인들을 북으로 끌고갔다. 민족주의 역사학자를 끌고갔고, 그들의 학설이 북한의 정설이 된 경우가 많다. 악질 친일파를 청산하고 항일의 역사를 가진 그들이지만, 그들은 모든 역량을 전쟁에 쏟아 붓는 일제 말기의 통치 시스템을 지금도 구사하고 있다. 그들은 일본을 싫어하지만, 6.25전쟁을 일으켜 기아에 허덕이는 일본이 다시 재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가장 반일적인 정권인 가장 친일적인 행동을 했다. 조선민족을 강조하는 그들이, 민족의 가슴에 총뿌리를 겨누며 증오의 마음을 불타게했다. 

  6.25 전쟁은 일본에 있는 재일동포에게도 상처를 주었다. 조련계통은 일본전쟁 개입 반대, 군수물자 생산 및 수송 협력 반대 투쟁을 하며 화염병을 투척하기도 했다. 그에 반해서 민단은 700명의 의용병을 모집하였다. 그들은 한국군에 편입되어 전투에 참가했다. 이러한 역사가 있었는지 우리는 몰랐다. 외국 군대가 공산주의 침략에 대항해서 군대를 파병했다는 사실은 알았을지라도, 재일동포가 의용병을 모집했다는 사실은 까맣게 몰랐다. 6.25전쟁으로 재일동포 사회가 다시한번 분열되었고, 그들이 의용병으로 참전했다는 사실을 우리가 기억하지 않으므로서 재일동포에게 2번의 상처를 주었다. 

  식민지배로 시작한 20세기 한일관계는 광복후에 일본을 배워 일본을 따라잡으려는 피나는 노력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적대 추월할 수 없을 것 같던 일본은 추월하기 시작한다. 삼성전자는 디지털로 전환하면서 소니를 추월했다. 반도체 분야에서는 웨이퍼 밑으로 파고도는 트랜치 방식을 구사하는 일본과는 달리, 쌓는 스택방식을 개발함으로써 일본 반도체를 추월해다. 식민지배를 받으며 일본보다 열등하다는 자괴감을 가지고 있었던 우리가, 이제는 일본을 추월하며 그들을 애처럽게 바라보고 있다. 이제 20세기 초엽의 한일관계는 역전되고 있다. 이후의 역사는 과거의 역사와 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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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역사 1 - 건국과 인민주주의의 경험 1945~1960 청소년과 시민을 위한 20세기 한국사 5
김성보 지음, 역사문제연구소 기획 / 역사비평사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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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은 민족으로 같은 한반도에 살지만, 너무도 다른 삶을 살아가는 북한을 이해하기는 힘들다. 더욱이 북한에 대한 자료가 풍부하지 않다보니 북한에 대한 이미지를 그리기에 무리가 많다. 단편적인 북한에 대한 정보를 접하면서 북한을 체계적으로 이해하고 싶었다. 역사문제 연구소에서 기획한 북한의 역사를 선택한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북한의 역사1은 해방부터 1950년대 까지 북한의 역사를 정리한책이다. 책의 두께가 얇다보니, 내용도 풍부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기본의 책들에서 보지 못한 다양한 이야기들이 펼쳐졌다. 그중에서 몇가지를 살펴보자.

  첫째, 남한에 이승만이 있다면, 북한에는 김일성이 있었다. 즉, 이승만이 정읍발언을 하면서 남한만의 단독 정부수립을 외쳤다면, 북한에는 김일성을 중심으로한 세력들이 분단의 길을 걷고 있었다. 

  백범 김구 선생이 일신의 안일에 취하여 단독정부 수립에 참여하지는 않겠다며 38선을 넘어 북한으로 갔다. 조국 분단은 내전으로 이어질 것을 직감한 백범의 마지막 도전이었다. 그러나, 김일성은 백범의 도전을 받아줄 그릇이 되지 않았다. 


  "남북 제정당사회단체 대표연석회의가 종료된 뒤인 1948년 4월 29일 북조선 인민회의특별회의는 헌법 초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129쪽


  백범에게 통일 정부 수립을 논의하자며 손을 뻗은 김일성은 분단을 준비하며 북한 헌법 초안을 채택했다. 그리고 남북 제정당 사회 단체지도자협의회가 열리는 토론중도, 남북 협성이 열리는 그 순간에도 북한은 북한 정권 수립과 분단을 위한 길을 멈추지 않았다. 기만적인 북한의 행태 속에서 백범의 몸부림을 너무도 애처러웠다. 

  북한의 역사에 대해서 제대로 모르니, 남한에서 단독정부 수립을 외친 이승만의 모습만 부각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북한에서도 단독 정부 수립을 위한 준비를 소리없이 행동으로 옮기는 기만적인 인간들이 있었다. 

 둘째, 급속한 사회주의 경제로 이행으로 상당한 부작용이 있었다. 북한이 소련을 비롯한 공산주의 세력의 도움을 받아 6.25전쟁의 폐허를 빠른 시일내에 극복하고, 사회주의 경제를 구축했다고 알고 있다. 그러한 성과 때문에 1956년 8월 종파 사건이 일어났을때, 김일성을 끌어내리려는 소련파와 연안파의 계획은 실패했다고 알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6.25 전쟁으로 생산시설이 파괴된 상황에서 서로 도우며 농사지어야하는 상황이 펼쳐졌다하더라도 협동농장으로의 이행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개인 상공업을 비롯한 자본조의적 색채를 없애고 사회주의 경제로의 이행은 불만과 부작용을 낳았고 이것이 연안파와 소련파가 반김일성 운동을 계획한 배경중에 하나라는 사실을 알았다. 

  상대를 알지 못할 경우, 상대를 실체보다 과정되게 미화하거나, 반대로 과장되게 비하하는 경우가 있다. 북한은 그러한 존재이다. 너무도 아는 것이 없고, 알려진 것이 없다보니 북한은 때로는 과대평가되거나, 과소평가되었다. 이 책을 읽었다고 북한에 대해서 잘알게 된 것은 아니다. 단지 기존에 알고 있었던 오해 몇가지를 해소한 것 뿐이다. 남북의 평화적 통일을 염원한다면 우리는 서로를 알아가는 일부터 시작해야한다. 이책은 그 첫걸음에 확실한 도움을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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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선택의 심리학 - 싸우는 심리학자 김태형의
김태형 지음 / 원더박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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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참모습을 보고 싶다면 네 이웃의 눈동자에 비친 모습을 보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타인을 통해서 자신을 발견한다. '대통령 선택의 심리학'이라는 책을 통해서 대통령 후보들의 심리를 파악하고 싶었다. 그러나, 대통령 후보들의 심리를 살펴보면서 그들의 모습에 비친 나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그들의 모습에 비친 어린 나는 울고 있었다. 어린 자아를 보듬으며 책장을 넘겼다. 그러면서 이제는 부모가 되어버린 현실의 나를 돌아보았다. 나 자신과 대면한다는 것은 고통스럽고 불편한 일이다. 그러나, 불편을 견디지 못하고 외면한다면 나의 내면아이는 계속 울며 고통의 시간을 보낼 것이다. 그래, 대통령 후보들의 내면 심리를 통해서 어린 나의 자아와 대면해보자. 


1. 심리적 고아

  지금은 대통령이 된 문재인 후보의 심리분석을 읽으며 인간 문재인의 아픔을 보았다. 어린 문재인은 "병원에 가서 여러바늘 꿰매야할 상처였는데도 야단안 맞으려고 어른들에게 말하지 않고 혼자서 상처를 싸매고 버텼"단다. 대학생이 되어 학생운동을 하다가 구속되어서도 부모에게 알리지 않았다. 저자 김태형은 이를 통해서 어린 문재인이 부모의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했음을 알아낸다. 부모에게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했기에 때문에 자신이 위기에 처했다하더라도 부모가 자신을 지지해주리라 믿지 않는 것이다. 어린 문재인은 심리적 고아였다. 얼마나 아팠을까? 아픈 손을 감싸고 쓸쓸히 고통을 삼켜키며 얼마나 외로웠을까? 

  어린 문재인을 만나면서 나는 내면의 어린 나를 만났다. 어린 문재인이 아픈 손을 잡고 외로워했듯이, 어린 나의 내면아이도 쓸쓸하게 울고 있었다. 어릴적 나도 다치거나 몸이 아파도 '부모님이 걱정하실까봐'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그리고 혼자서 감내하려했다. 나는 이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는 김태형이 지적하였듯이, "부모는 다소 엄격한 분"이거나, "최소한 지지적인 부모가 아니었던 것"이 아파도 부모에게 말을 못하는 아이를 만들었다. 

  어린 문재인은 부모에게 중, 고등학교 6년 내내 공부하라는 잔소리를 듣거나 간섭하지 않았다고 한다.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고등학교 시절, 문이과를 선택해야할 때 아버지에게 물어보았다. 그때 아버지는 "내가 뭘 아니, 네가 알아서 선택해"라는 말을 하였다. 고등학교 시절 하숙을 했다. 하숙집은 절대 공부를 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그래서 하숙집을 바꿔달라고 아버지에게 말을 했다. 그때도 아버지는 "그럼, 네가 알아봐"라는 말을 했다. 집안에서는 엄한 아버지의 모습이었지만, 밖에서는 나를 보호해줄 수 있는 용감한 아버지는 아니었다. 나도 '심리적 고아'였다. 아들이라며 금지옥엽 아끼는 말을 하기도 했으나, 부모의 행동은 그러하지 않았다. 바쁜 농촌일을 하시느라 해가 지고 나서야 부모는 집에 왔다. 쓸쓸히 집을 지키고 있어야했던 나에게는 부모는 너무도 먼 곳에 있었던 존재였다. 

  부모의 사랑은 부담없이 그냥 받아도 된다는 사실을 어린 문재인은 알지 못했다. 부모의 사랑도 보답하지 않으면 사랑을 잃을 수 있다고 불안해했고, 부모에게 사랑받기 위해서 자신의 욕구를 포기하는 것이 습성화되었다. 일명 '착한 아이 콤플랙스'가 어린 문재인의 가슴에 내면화되었다. 

  어린 문재인과 대면하면서 나의 어린 내면아이와 너무도 흡사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린 문재인이 '착한 아이 콤플랙스'에 휩싸여 살았듯이, 나 또한 착한아이 콤플랙스에 휩싸여 살았다. 문재인이 역사학자가 되고 싶었지만,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 법대에 진학했듯이, 역사 학자가 되고 싶어 대학원에 진학하고 싶었으나, 나이든 어머니를 생각하며 이를 포기했다. 어머니가 나를 키웠으니, 당연히 부모에게 그 은혜를 갚아야한다고 생각한다.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가기가 힘들기에 이제는 실업계 고등학교로 전근 갈 방법을 모색하는 나를 보며 슬픈 모습의 어린 내면아이를 다시한번 발견한다. 

  부모에게 참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문재인은 "항상 선을 그어 놓고 운동에 참여"했다. 정치에 참여한 것도 본인의 뜻이라기 보다는 국민의 사랑에 의해서 강제로 내몰린 것이다. 인권변호사라는 자신의 길을 가고 싶었고 책을 읽으며 조용히 삶을 살고 싶어하는 지금의 문재인을 보며, 현재의 나와 대면한다. 교사가 된 나는 타교사들이 되려고 노력하는 관리자의 길을 외면한다. 교장 교감이 되려고 노력하는 주변 교사의 눈에는 내가 이해되지 않는 눈치이다. 그러나 교장 교감은 커녕 부장 교사가 되는 것도 나는 부담스러워한다. 조용히 책을 읽으며 수업시간에 열정을 불사르며 살고 싶다. 열정적 수업을 할 수 없는 시기가 다가오면 조용히 명예퇴직을 하여 산책을 할 수 있는 곳에 집을 마련하여 독서 삼매경에 빠지고 싶다. 

  문재인과 내가 같은 내면을 가지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이명박이 고 노무현 대통령 연결식에서 헌화하려하자, 백원우 의원이 "보복정치 사죄하라!"라고 외쳤다. 문재인은 상주를 맡은 국민장의 위원회 운영위원으로 이명박에게 사과했다. 나로서는 문재인의 행동에 공감할 수 없다. 문재인이 아직도 착한아이 콤플랙스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면, 나는 착한 아이이기보다는 때로는 나쁜 아이가 되려 노력한다.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 강한 교장 교감들을 보면서, 절대 저들에게 빌붙어 아부하는 존재가 되지는 않겠다고 다짐했다. 공자께서도 "마을 사람중에 선한 사람이 그를 좋은 사람이라 하고, 마을 사람중에 나쁜 사람이 나쁘다고 하는 것만 같지 못하다.(不如鄕人之善者好之其不善者惡之.)" 라고 하셨지 않는가! 이제는 더 이상 '착한 아이'이고 싶지 않다. 


2, 참된 부모되기

  심리학자 김태형은 문재인 이외에도 이재명과 안철수, 유승민의 심리를 분석하고 있다. 김태형의 입장에서 가장 안정되고 지도자로서의 리더십을 갖춘 심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이재명이다. 어떻게 해서 이재명이 안철수와 유승민 보다도 안정된 심리를 가지고 있을까? 이재명은 안철수와 유승민에 비교한다면 무수저 출신에다가 학벌도 그들보다 좋지 않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공장에 취직해야했다. 맞기 싫어서 공부를 했다. 검정고시로 중학교와 고등학교 졸업장을 받았고, 장학금을 받으며 법대에 진학했다. 장학금이 없었다면 지금의 이재명은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수저 이재명이 안철수와 유승민 보다 안정된 심리를 갖고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혹시 아버지의 사랑 때문일까?

  이재명과 안철수, 유승민의 아버지는 이들에게 충분한 사랑을 주지 않았다. 이중에서 이재명의 아버지가 특히 심했다. 이재명의 아버지는 경제적으로 무능했을 뿐만 아니라, 도박에 중독되어 그나마 있었던 가산을 탕진했다. 이재명의 아버지는 나의 아버지와 유사했다. 나의 아버지는 경제적으로 무능하지는 않았지만, 술을 너무도 좋아했다. 아버지가 술을 드시고 오면, 온 가족은 조용히해야했다. 아버지가 깨어나면 그때부터는 잠을 못잔다. 했던 말을 반복하며 가족을 고문했고, 빚을 갚겠다며 집을 나가겠다고 했다. 어머니는 울면서 나에게 아버지를 붙잡으라고 했다. 지금도 그날을 잊지 못한다. 잔치날이었다. 이웃주민과 친척들이 모인 자리에서 아버지는 술을 드시고 소리를 지르며 잔치를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이를 자랑스럽게 어머니에게 말했다. 어린 나의 눈에 아버지가 한심해보였다. 쓸개가 없는데도 어머니 몰래 술을 숨기고 다니며 술을 마시다가 간경화로 아버지는 저세상으로 가야했다. 나는 지금도 술을 끊지 못하는 사람을 보면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그때의 아버지 모습을 떠올리면 나의 어린 내면아이는 울고 있는 모습이 떠오른다. 그래서였을까? 둘째딸이 "아빠 술마시는 거 싫어"라고 말을하자, 그때부터 나는 술을 끊었다. 나는 나의 아버지를 용서할 수 없었기 때문에.....

  사명감 혹은 책임감 때문에 정치에 입문한 안철수도 김태형의 분석에 따르면 아버지에게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했다. 그도 착한 아이 콤플랙스가 있다. 성인이 되고나서 그가 의사의 길 보다는 백신을 만드는 일에 뛰어든 것도 아버지에 대한 반항에서 시작되었다. '권력 실세 밑의 저격수' 유승민 또한 아버지에게 충분한 사랑을 받고 자라지 못했다. 고등학교 시절 가출과 반항은 아버지에게 사랑과 인정을 받고 싶은 심리에 의해서 표출된 행동이었다. 심리학자 김태형은 "아버지의 인정과 상관 없이 반항아로서의 자기 인생을 자랑스러워하고 그런 인생을 살면서도 행복했으면 좋겠다."라고 말한다. 안철수와 유승민이 아버지에 대한 인정욕구에서 탈피해서 진정한 자신의 모습과 대면한다면 그들은 탁월한 정치인으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아니, 정치를 떠나서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길을 찾아 떠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안철수와 유승민 보다도 더 바람직하지 않은 아버지 밑에서 자랐던 이재명이 강력한 추진력을 가진 정치인이 된 비결은 무엇일까? 그 비결은 바로 어머니의 깊은 사랑 때문이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공장에 취직해야했던 이재명을 그의 어머니는 혼자 보내지 않았다. 이재명의 손을 잡고 공장에 갔다. 가난했지만, 이재명의 어머니는 어린 이재명에게 한없는 사랑을 주었다. 팔을 다쳐 장애를 얻은 아들을 눈물로 맞이하며 남다른 애정을 주었다. 그것이 지금의 이재명을 만들었다. 그리고 공장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며 서민들이 잘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가시밭길을 마다하지 않는 삶을 살았다. 그는 말한다. 

  "나는 권력이 필요한게 아니라 일을 할 수 있는 권한이 필요한 사람이다."

  "자리나 지위가 아니라 일할 수 있는 기회가 필요한 사람이다."-116쪽

 

  자리와 권력을 탐하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불나방처럼 권력을 향해서 뛰어드는 사람과 비교되는 지점이 바로 여기이다. 그에게 자리와 권력은 자신이 만들고 싶어하는 세상으로가는 도구일 뿐이다. 타 후보가 질 가능성이 높은 일, 정의로운 일이라도 수구세력으로부터 비난을 받을 일은 하지 않는 모습과는 너무도 대조적인 그의 모습이다. 이재명은 욕을 먹어도 크게 상관하지 않는다. 싸움닭이라는 별명도 그는 자랑스러워한다. 싸워도 지치지 않는 그의 모습을 보며, 내가 닮고 싶어하는 모습을 발견한다. 보수 세력과 보수 언론으로부터 가장 비난을 많이 받았다는 사실은 보수세력이 얼마나 이재명을 두려워하는가를 잘 보여주는 바로미터이다. 이재명이 만들고자 하는 대한민국이 만들어지기를 소망해본다. 

 

 

  심리학 책을 읽거나, 심리학 연수를 수강하는 목적은 타인에게 도움을 주겠다는 순수한 마음에서 출발하지만, 책을 덮고 연수를 마치고 나서는 나 자신을 알고 치유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심리학의 매력이 바로 여기에 있다. '대통령 선택의 심리학'을 읽기 전에는 대통령 후보의 마음을 알고 싶었지만, 읽고 나서는 나의 내면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김태형의 '대통령 선택의 심리학'은 나에게 천금같은 값어치가 있는 책이다. 이 책을 읽고 깨달은 진리는 부모의 중요성이다. 경제적인 것보다 중요한 것은 부모의 참된 사랑이다. '나는 나의 자녀에게 이재명의 어머니가 해주었던 사랑을 해주고 있는가?' 나는 여러차례 이 질문을 나 자신에게 했다. 낳기는 쉬워도 키우기는 힘든 법이다. 더욱이 나 자신 또한 참된 사랑을 받고 자란 것은 아니기에, 나 자신을 치유하며 참된 부모가 되기 위해서 노력해야다. 멀고 힘들지만 가야할 길이기에 오늘도 묵묵히 나의 길을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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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환의 시대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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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단해요?", "외국에서는 상상도 못해요"라는 말을 연발하는 동영상을 보았는가? 유튜브 채널 '어썸 코리아(Awesome KOREA)'에는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이 한국에 대한 존경과 놀라움을 연발하는 동영상이 너무도 많다. 그들의 진심이 일부 있겠지만, 동영상 조회수를 늘리기 위한 짜여진 각본에 의해서 연출된 장면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왼지모를 뿌듯함에 취하곤한다. 그런데, 러시아의 아들 박노자는 '어썸 코리아' 속의 외국인들이 해주는 국뽕발언을 해주지 않는다. 오히려 한국인들보다 더 날카롭게 한국사회를 들여다보며 차가운 메쓰를 들이댄다. 그의 날카로운 말을 들으며, 제발 한국에 대한 칭찬도 해달라는 말을 하고 싶어진다. 그럼에도 그의 책을 1년에 한권정도는 읽을 수 밖에 없는 이유는 한국사회를 제대로 바라보기 위함이다. '전환의 시대'라는 책에서 박노자는 어떠한 쓰디쓴말을 내 놓을까?


1. 진보가 집권한다고 사회는 변화할까?

  고 노무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난 이후, 노무현을 욕하던 많은 사람들이 노무현을 그리워했다. 이명박과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면서 노무현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숫자는 더 늘어만 갔다. 그를 소재로한 '변호인', '노무현입니다.'라는 영화들이 제작되고, 영화속 노무현을 보면서 인간 노무현을 오늘 우리 곁으로 소환했다. 우리에게 노무현은 사랑하는 대통령이자, 다시 돌아오기를 고대하는 존재가 되었다.

  그런데, 박노자는 노무현을 우상시하는 우리에게 일침을 가한다. 노무현과 박근혜의 구체적 정책을 비교하면 두사람의 기본적 노선은 그렇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 박노자의 주장이다. 친자본주의적이며, 친미정책을 펼쳤다는 점에서 노무현과 박근혜는 별반 차이가 없다는 지적이다. 노무현 정권시기 모 대기업의 엘리트들이 노무현 정권의 정책 결정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면, 박근혜 시기에는 모 대기업이 박근혜에게 뇌물을 주었다는 점이 다를 뿐이었다는 생각이 들정도로 냉혹하게 노무현과 박근혜 정권의 기본 정책에 차별성이 없다고 지적한다. 

  노무현과 박근혜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나를 불편하게 했다. 친기업정책을 펼쳤다는 사실은 그대로 인정한다 하더라도, 미국의 부시정권이 테러와의 전쟁을 하는 분위기 속에서 북한에 선제공격을 할 수도 있다는 공포감을 갖았던 그때의 상황을 박노자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었다. 

  박노자는 사회학자 로베르트 미헬스의 '과두정치의 철칙'을 소개한다. 독일 사민당의 내부 행태를 보면서 보수단체처럼 사민당도 실권을 소수 엘리트가 잡고, 조직을 과두지도부가 장악해 움직인다고 지적했다. 정권이 바뀐다하더라도 근본적 구조가 바뀌지 않는 이상, 변화를 기대할 수 없다는 박노자의 주장에 동의한다. 절대자, 권위자에 의존하는 삶과 절대자의 생각을 맹목적으로 추종한다면, 미헬스의 '과두정치의 철칙'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박노자가 지적한 탈권력, 탈권위를 실천하려한 대통령이 있었다. 탈권위적이었으며, 검찰이라는 칼자루를 내팽겨쳤던 노무현이, 정권이 바뀌자 힘없이 쓰러졌다. 지역감정을 해체하려 노력했고, 권위주의와 이별하려 노력했지만, 그러한 노무현의 노력은 소위 일베들과 극우 인사들에 의해서 희화화 되었다. 노무현이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입니다."라고 말하며, "깨어있는 시민"이 될 것을 강조했다. 그렇다. "깨시민이 되자!" 박노자와 노무현은 사회를 변혁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잘 알고 있었다. 박노자가 유대인이자, 러시아 출신의 귀화인으로, 노르웨이에 살고 있는 학자라면, 노무현은 대한민국에서 상고를 나와서 인권변호사가 되었고, 지역주의와 권위주의에 맞섰던 정치인이었다. 외부자의 시선으로 대한민국의 변혁을 주장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러나, 내부자로서 현실의 벽과 부딪치며 구정물에 손을 담그면서 대한민국을 개혁하려는 자는 좌절을 맞보고, 고뇌에 찬 결정을 내릴때가 많다. 현실의 벽을 고려하지 않고 매몰차게 노무현과 박근혜를 비교한 점은 박노자의 주장을 이해하면서도 못내 애석함을 지울 수 없다. 


2. 한국의 부끄러운 "갑질"문화

 "재벌", "아줌마", "김치" 말고도 "갑질"이라는 단어가 브리테리커 사전에 등재되었다. 사회에서 권력을 갖고 있는 존재들이 그 권력을 이용해서 약자들에게 상식 이상의 만행을 저지르는 현실을 종종 목격한다. 박노자가 소개한 "인분 교수 사건", "서울 명문대 악마 대학원생 사건"은 우리의 부끄러운 민낯을 여과없이 보여주고 있다. 학문의 전당이어야하는 대학에서 사회적 지식인들이라고 존경받는 교수들이 저지른 일이라고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들이 벌어졌다. 아니, 벌어지고 있었는데, 이것이 드러난 것이 지금일 뿐이다. 패거리문화, 마피아 문화가 우리 사회에 얼마나 만연해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이다. 

  그렇다. 우리 주변에서 "갑질"은 너무도 만연해 있다. 과거 성과급이 교사에게 주어질때, 너무도 많은 꼼수들이 이뤄졌다. 해당 학교에 근무한 년수를 집어 넣는 학교도 있었으며, 교직 경력을 평가 점수에 집어 넣고, 서류상으로 위조하기 위해서 동료 평가를 한 것으로 서류를 조작하는 일들도 암암리에 있었다고 한다. 교원평가제와 성과급제가 도입되는 것을 앞장서서 막자고 교원단체에서 부르짖을 때는 조용히 눈치나 살피던 존재들이, 성과급에서 자신의 불이익을 없애기 위해서 경력 낮은 교사를 희생냥으로 삼은 것이다. 악날하기 그지 없는 일부 경력교사의 만행에 조용히 당하고 만 있는 저경력 교사의 모습을 보며, 노예로 잘 길들여진 불쌍한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이러한 만행이 없어졌으리라 믿고 싶다. 

  박노자는 말한다. "한번 권력을 쥔 사람의 세계관은 대게 바로 바뀌게 된다." "인간은 약한 존재이다." 교직사회에 먼저 발을 딛인 것이 대단한 업적인냥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려하는 존재들을 보면, 인간은 진실로 약한 존재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박노자는 어떤 대안을 제시했을까? 박노자는 "우리에게 진실로 필요한 것은 그 어떤 권력가에게도 압력을 가할 수 있는 권력 견제 시스템이다."라고 단언한다. 교원평가제가 처음 도입되었을 때, 교원평가제가 교사 구조조정의 도구가 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앞섰다. 물론, 학령 인구가 줄어드는 현실에서 교원평가제를 교사 구조조정의 도구로 사용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그러나, 순기능도 있다. 20평 교실에서 제대로 수업준비 없이 수업을 하는 존재가 있었다. 술마시고 수업이 있는데도 학교에 출근하지 않아서, 선배 교사라는 이유로 그 작자의 수업에 대신 들어가야하는 일도 있었다. 그런데, 그 작자가 수업에 신경을 쓰기 시작한 것이 교원평가제 때문이었다. 교원평가에서 낮은 점수를 받게 되자 그도 수업준비를 할 수밖에 없었다. 특별연수까지 갔고, 그사실을 암암리에 교사들은 알고 있었다. 그래, 우리 사회를 변화시키는 견제장치는 반드시 있어야한다. 그래야 세상이 바뀐다. 


3. 입장바꿔 생각하지 못하는 한국

한국 언론에 비춰진 북한은 군사강국이며, 너무도 무서운 존재이다. 그러나 한해 국방비를 비교해보면 북한은 너무도 초라하다. 박노자는 입장바꿔서 남북관계를 바라보지 못하는 우리를 꼬집는다. 

  2016년 보수언론들이 "북한 지도부 참수 작전"을 보도하고, 2017년 "유사시 김정은 제거 합동 한미 특수부대 훈련"보도를 예로들며 우리 언론의 철없는 보도에 일침을 가한다. 침략행위를 금지한 유엔 헌장 제2조 4항을 위반한 행동임을 생각한다면, 이러한 보도는 한국의 위신을 추락시키는 가공할 보도이다. 한미 연합훈련이 얼마나 두려웠으면, 김정은이 트럼프를 만나서 한 합의에 한미 연합 훈련을 중지한다는 내용이 담겼겠는가! 그런데, 한국 언론에서 떡하니, 북한 지도부 참수 작전을 보도했으니, 얼마나 북한으로서는 두려웠겠는가! 그리고 세계 사람들에게 대한 민국이 유엔 헌장 제2조 4항을 위반할 준비가 되었다는 신호를 보냄으로서 대한민국의 위신을 추락시키는 보도였다. 

  "기레기"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상식이 있고, 생각이 있는 기자라면, 이 보도가 대한민국과 동아시아 정세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는 생각하고 기사를 작성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언론인들이 "기레기"라는 말을 들은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들이 과연 생각을 하고 기사를 썼는지, 지적 수준이 국민 평균에 미치기는 한 건지 의심이 들때가 많다. 

  박노자는 러시아계 유대인이다. 이제는 대한민국에 귀화했지만, 대한민국에 살지 않고 노르웨이 오슬로대학에서 교수로 살고 있다. 그는 철저히 외부인의 시선에서 한국을 바라볼 수 있다. 이로인해서 박노자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냉철하게 분석하는 눈을 갖았으며, 국가 보안법이 무서워서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지 않을 수 있는 특권을 누리게 했다. 2013년 9월 월북을 시도하는 사람을 한국군이 사살한 것을 비판할 수 있는 것도 박노자 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박노자의 시선에 동의할 수 없는 것도 있다. 


  "한반도의 평화정책을 지지해 달라고 호소하면, 미국의 양심적 유권자들은 얼마든지 한반도평화 프로세스를 응원할 것이다."-128쪽


  참으로 감상적인 주장이다. 하노이 회담이 결렬된 사실을 상기한다면, 군산복합체국가 미국은 절대, 한반도에서 미군이 철수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미국의 국민들도 자국의 이익을 절대시한다. 박노자가 지적한 "양심적 유권자"는 재미동포뿐이다. 그들만이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진정으로 발랄 것이기 때문이다. 트럼프이기에 비록 결실을 맺지는 못하고 있지만,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이정도까지 온 것이다. 한반도 국제정세를 너무도 감상적으로 이해하는 박노자의 글에는 공감이 가지 않는다. 이부분만은 박노자가 내가 제신한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기 바란다. 



박노자는 책을 마무리하며 자신이 원하는 대한민국을 그려본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다들 골고루 살기 편한 사회"로 개조하길 바라는 것이 박노자이다. 혈통을 중시하면서도 전라도를 차별하고, 북한을 적대시하며, 러시아를 비롯한 잘살지 못하는 지역에 사는 동포를 얕잡아 보고, 국회의원의 상당수가 서울대 출신인 점을 꼬집는 것도 대한민국을 사랑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우슈비츠의 한 팻말에 조지 산티야나의 글이 적혀있다고 한다. 


  "역사를 기억하지 못하는 자, 그 역사를 다시 살게 될 것이다."-117쪽


 박노자의 '전환의 시대'를 내려 놓으며, 조지 산티야나의 글을 다시 되뇌인다. 박노자가 지적한 한국사회의 부끄러운 민낯을 기억하고 이를 개혁하려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부끄러운 현실을 계속 살아가야할 것이다. 박노자는 우리의 현실을 깨닫고 보다 아름다운 대한민국을 만들길 바라며 우리에게 책속의 메시지로 울부짖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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