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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권을 읽고 난후, 2권을 집어들었다. 정조가 없는 암흑의 시대! 정조라는 성군을 만났기에 화성을 건설하고, 목민관으로서 선정을 베플 수 있었다. 그러나 정조가 없는 세상은 해가 없는 하늘이고 달이 없는 밤이었다.

  이 암흑의 시대를 정약용은 학문에 대한 열정으로 채웠다. 실학을 집대성하고 500여권의 저서를 남긴 것은 바로 그의 18년 유배생활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는 실학의 최고봉이자, 조선 500년 역사 최고의 학자로 남겨질 수 있었다. 이러한 유배를 그에게는 다행이라고 생각해야할 까? 아니면 불행이라고 생각해야할까? 아마도 불행을 정약용이 행운으로 바꾸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이다. 정조가 없는 암흑의 시대를 학문이라는 등불로 밝혀나가고자했던 그의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그에 대한 노론 벽파의 공격은 천주교를 트집잡아 시작한다. 그는 천주교를 배격하였으나, 노론 벽파에게는 이 사실보다는 그를 죽이겠다는 표독한 집념밖에 없었다. 그리고 수 많은 인재가 죽어갔다. 이익의 종손인 이가환 부터 시작해서 수 많은 남인들이 죽어갔다. 그리고 그의 형, 정약종도 그 수많은 사람중에 한사람이었다. 단지 정약용 그와 그의 형 정약전이 유배되었음을 다행으로 여겨야할 정도였다. 피바람의 시대, 야만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 책은 유배시절의 그의 많은 저서와 민초들에 대한 안타까움, 그리고 형에 대한 그리움으로 채우고 있다. 때로는 너무도 어려운 '주역'이라는 책을 정약용의 저서를 길게 인용하면서 설명하고 있다. '주역'의 '주'자도 모르는 나에게 너무도 이해하기 난해했다. 정약용 그가 '왕필'을 능가하는 '주역'의 대가라는 것 밖에는 머릿속에 남지 않는다. 이덕일이 밉기가지 했다.

  유배지에서의 탁월한 학문적 업적과 그의 형 정약전의 '자산어보'의 완성, 탁월한 스님 혜장 선사를 유학자로 만든 일화 등이 정약용의 유학자로서의 탁월함과 그의 형재들의 재주가 사장된 사실에 대한 안타가움을 더했다. 국가의 안보보다는 정권의 안보만을 위하는 노론 벽파의 모습이 치가 덜리기도 했다. 18년 동안의 유배에서 돌아와 고향에 안착한 그에게 서용보가 측은히 안부를 묻는다. 그러나 그는 겉으로는 정약용을 위하면서 조정에서는 정약용을 배척했다. 노론벽파의 광란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익종이 죽기 직전에 그를 불러 치료하게 해서, 치료를 하지 않아도 죽고, 치료해도 죽게 만든다. 정약용의 기지가 아니었다면, 그는 또다시 유배를 가거나, 죽음을 맞이했어야 했다.

 광란의 시대! 암흑의 시대! 그 시대를 살아가며 시대를 달관했던 정약용! 18년동안 정조의 곁에 있었고, 18년 동안 유배를 갔고, 18년 동안 유배지에서 돌아와 초야에 묻혀 살아야했다. 너무나도탁월한 그의 재능이 현실에서 너무도 짧게 쓰여진 것이 안타깝다. 언제나 인재는 있지만, 그 인재를 쓸 수 있는 시대가 아니기에 그 인재는 땅에 묻힌 구슬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어찌보면, 노론 벽파! 그들의 광란이 우리의 역사발전을 가로 막았고, 그리고 근대화를 막았으며, 일제 강점의 토대를 만든 것이 아닐가? 그리고 오늘은 과연 그렇하지 안는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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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쟁으로 보는 조선역사
이덕일 / 석필 / 199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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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책을 소설책 처럼 쓸 수 있는자! 이덕일!! 그의 책을 읽고 있으면 한편의 소설책을 읽고 있는듯하다. 딱딱한 역사를 쉽고 재미있게 서술하는 그의 탁월한 글재주는 그 누구도 따라올 자가 없다. 그의 초기 작품을 읽어보고 싶던 차에, 올해 처음으로 도서관 업무를 맡게되었다. 폐기해야할 도서를 골라내던 중에 이덕일의 책을 발견했다. '당쟁으로 보는 조선역사'!! 표지 책날개에 있는 이덕일의 사진은 무척 애떼보였다. 이덕일 초기의 역사관을 알 수 있는 흥미로운 책이기에 책을 펼쳐들었다. 


1. 이덕일의 역사관의 변천을 살피다. 

  이덕일이 수많은 책을 썼다. 특히 조선시대를 소재로한 많은 역사책을 썼다. 그가 어떠한 책을 서술할지 그 맹아를 알 수 있는 책이 '당쟁으로 보는 조선역사'이다. 이 책에는 윤휴에 대한 언급부터, 송시열, 정조 등등. 이덕일이 이 책을 서술한 이후에 저술하게될 수 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들에 대한 평가가 이미 이책을 쓸때부터 확립되어 있었음을 확인할 수있다. 

  그러나, 세월의 풍파를 맞으며 사람의 역사관은 바뀌기 마련이다. 이덕일은 이 책에서는 비교적 흥분을 가라앉히고 냉정히 역사를 서술하려 노력했다. 이후 보이는 노론에 대한 맹렬한 비판보다는 소론과 남인에 대한 비판을 같이하면서 기계적 중립을 지키려 노력했다. 


  "실제로 남인들이 서인들과 다른점이 거의 없었다. 오히려 당쟁을 파국으로 이끌어간 세력은 이들 남인이었다."-261쪽


  이덕일이 남인을 이렇게 맹렬히 비판하니, 나로서는 당황스러웠다. 이덕일은 노론의 잔당들이 나를 망쳤다고 생각하는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남인의 시각에서 역사를 서술했다. 그리고 윤휴를 비롯한 인물들을 역사 서술의 소재로 사용한 것도 이러한 맥락이었다. 그런데, 그의 역사서술 초기에는 남인도 비판의 대상이었다. 


  이덕일의 역사관이 확연히 변한 흥미로운 주제가 있다. 바로 북벌이다. 


"승승장구하는 청나라에 맞서 북벌을 단행하여 망한 명나라를 다시 세워줄 힘이 조선에 있을 수가 없었다. 명나라를 다시 세워줄 힘이 있으면 조선이나 다시 세우는데 써야했다."-236쪽


 이덕일은 '윤휴'에 관한 책을 쓰면서 서인들이 북벌을 하면 나라가 망할 것 처럼 생각한다며 그들을 맹렬히 비판했다. 삼번의 난을 이용해서 조선이 같이 청을 공격한다면 북벌이 성공할 수 있었으리라고 이덕일은 기대를 갖았다. 그런데, '당쟁으로 보는 조선역사'에서는 '명나라를 다시 세워줄 힘이 있으면 조선이나 다시 세우는데 써야'한다며 북벌의 허구성을 맹렬히 지적한다. 사람이 나이를 들면, 보수적이면서 진취성을 잃어버린다. 그런데, 이덕일은 오히려 진취성이 더욱 강해졌다. 

  북벌에 대한 생각이 부정에서 긍정으로 변천했다면, 혜경궁에 대한 이해는 심화되었다. '사도세자의 고백'을 비롯해서 이덕일의 책에서 '한중록'의 가치를 평가절하한다. 혜경궁이 자신의 가문을 복권시키기 위해서 쓴것이 한중록이며, 그녀는 남편보다는 당파를 선택한 냉혹한 여인이라 이덕일은 평가했다. 그런데, '한중록'에 대한 심도있는 사료비판을 찾아볼 수 없어서 이덕일의 주장에 반신반의했다. 그런데, '당쟁으로 보는 조선역사'에는 한중록에 대한 명밀한 사료비판이 서술되어 있다. 특히, 정조가 혜경궁의 집안을 멸문지화 시킬수밖에 없는 이유와 홍봉한이 사도세자의 죽음에 관련되어 있음에도 혜경궁이 한중록에서 이를 부인한 점을 지적하는 이덕일의 날카로움이 빛났다. 탁월한 이덕일의 사료분석과 그의 혜안에 감탄하며, 한편으로는 남편보다 당파를 선택한 그녀의 냉혹함에 몸서리가 쳐온다. 

  이밖에도 율곡 이이의 10만 양병설을 이 책에서는 긍정하고 있으나, 이후의 저술에서는 서인이 자신의 입지를 강화시키기 위해서 지어낸 이야기로 규정한다. 크고 작은 역사관의 변천을 흥미롭게 살펴볼 수 있어 읽은 내내 즐거웠다. 


2. 날카로운 이덕일의 역사 논평

  이덕일의 책이 여타 작가와 다른 점은 그의 날카로운 역사 논평이 살아있다는 점이다. 이덕일의 시퍼렇게 날이 서있는 역사 논평을 살펴보자.

  일명 기레기 신문에서 자주 사용하는 양비론을 이덕일은 날카롭게 비판한다.


  "양비론에는 정치 자체를 둘다 나쁜 세력끼리의 싸움으로 격하함으로써 특정한 정치적 이득을 얻고자하는 불순한 의도가 숨어 있는 것이다."-45쪽


 "둘다 나쁘다"라는 정치 혐오를 불러 일으키는 세력은 이 사회를 퇴보시키려는 수구세력이다. 그들은 정치 혐오증을 불러일으켜, 대중이 정치에 관심 없기를 바란다. 그래야만, 자신들이 나라를 망쳐도 대중 잠자고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쟁 자체가 없으면 이익을 보는 세력"은 누구이겠는가? 바로 수구세력이다. 우리는 현실이 괴로울 수록 옥석을 가리며 정치에 관심을 갖아야한다. 정치에 관심이 없어지면, 고통을 당하는 것은 민중이다. 

  안빈낙도라는 단어를 들으면 무엇이 생각나는가? 이덕일은 송순의 '명앙정가'를 소개하며 조선시대 양반들의 위선을 매섭게 지적한다.


  "십년을 경영하여 초려삼간 지어내니,

  나 한간 달한 간에 청풍한 간 맡겨두고

  강산은 들일 데 없으니 둘러 두고 보리라."-447쪽


  어떠한가? 안빈낙도를 즐기는 조선 선비의 모습이 떠오르는가? 나도 그러했다. 그런데, 이덕일의 설명을 듣고는 조선 시대 양반 사대부의 위선이 떠오르게 되었다. 송순의 분재기를 보면 장녀에게만 노비 41명과 전답 1백 53두락을 주었다. 장녀에게 이정도 주었으니, 8명의 자손들에게 준것 까지 생각하면 송순은 대지주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 재산 규모가 "나 한 간달 한 간 청풍 한 간"에 "강산은 들일 데 없으니 둘러 두고 보리라"는 읊조림과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다는 데 있다."-448쪽


  공상적 안빈낙도와 세속적 현실이 송순의 머릿속에는 아무런 불편함 없이 동거하고 있었다. 겉으로는 청빈함을 노래하지만, 그들은 세속적 욕망에 충실한 삶을 살아갔다. 조선시대 공상적 안빈낙도를 노래하는 양반들에게서 현실에서도 안빈낙도를 즐기리라 생각했던 나의 어리석음을 반성해본다. 이덕일의 혜안에 다시금 감탄한다. 



  오랜만에 이덕일의 책을 읽어 내려갔다. 조선시대 당쟁을 서술한 역사책을 읽어내려가다보면, 오늘의 정치를 나도모르게 떠올린다. 율곡 이이가 수미법을 주장했다. 그런데, 율곡의 학맥을 이었다고 자칭하는 서인들은 대동법 실시를 주장하는 김육을 비난한다. 현실의 이익 앞에서 자신의 학맥에 배치되는 행동을 거리낌 없이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집값을 하향 안정화하겠다는 여당 후보의 말을 싫어하며, 집값이 뛰어 올라 부동산투기로 한몫 벌어보려는 우리 이웃의 탐욕이 떠오른다. 영조에게 노론 대신이 양반에게도 포를 걷으면 반란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협박성 말을 들으면서, 집값이 올라 부동산 세금이 늘었다며 보수당에 투표하는 동료를 떠올렸다. 가진자가 더 많이 갖기를 바라며, 대의 보다는 사익을 앞세우는 것이 요즘의 세태이다. 붕당정치가 자당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민생도 군주도 안하무인으로 대하는 파국으로 치달았듯이, 지금 당장 나의 집값을 올리는데 이익을 준다면 매국노에게도 투표할 수 있다는 용기를 가진 어리석은자들이 출현하지는 않을지 진지하게 걱정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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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gri 2022-04-17 20: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우리안의 식민사관 읽고있는중인데 이덕일 책이야기가 나와서.

음 조선왕독살사건으로 이덕일을 첨접했어서 잘팔리는 글 쓰는 작가인가 하며 긴가민가 그랬던적이 있었거든요. 잘 몰라서. (김진명 책 읽다 뒷통수 맞은기억도 있고해서)
근데 또 생각해보면 작가의 역사책으로 좀더 역사에 관심갖는 계기가 돼서 이후 좀 편하게 생각하고 읽게됐어요.

강나루 2022-04-17 21:01   좋아요 1 | URL
이덕일을 기존 강단사학자들은 유사사학자라면 비판하지요.
저의 입장에서는 이덕일의 주장이 모두 옳다고는 말하지 못하지만, 상당히 공감가는 주장이 많아요. 특히 독립운동사와 조선시대에 관한 주장은 이덕일의 주장에 상당히 공감하고 있어요.
singri님, 즐거운 독서하세요^^

2022-04-18 00: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강나루 2022-04-18 03:58   좋아요 1 | URL
네 이덕일의 모든 주정이 맘에 들 수는 없지요.
좋은 저작들을 골라 봐야죠.
즐거운 한주 보내세요.
 
심리학자, 정조의 마음을 분석하다 - 심리학자가 만난 조선의 문제적 인물들
김태형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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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공부하면서 인간에 대해서 알고 싶어졌다. 그래서 철학을 공부하고 심리학을 공부했다. 어찌보면, 역사와 철학, 심리학을 구분한 것은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편의에 의해서 인위적으로 구분한 것이 아닐까? 역사를 만드는 인간의 철학과 심리를 보다 잘 이해한다면 이해되지 않던 역사의 퍼즐들이 잘 맞춰지리라 생각한다. 이런 점에서 김태형의 '심리학자, 정조의 마음을 분석하다.'라는 책은 참으로 매력적이다. 정조의 심리만을 분석한 것에서 그치지 않고, 융의 심리유형이론을 계승 발전시킨 성격이론으로 조선시대의 문제적 인물인, 이이와 허균, 연산군의 심리를 분석했다. 흥미로운 책 속으로 들어가 보자.


1. 심리학, 나의 마음을 보다.

심리학 서적을 읽으면 새로운 지식을 얻는다는 희열보다는 나 자신을 이해했다는 기쁨이 크다. 이번 책도 마찬가지이다. 이 책에 소개된 정조와 이이는 전략가(INTJ) 유형이다. 전략가 유형은 강인한 의지와 전략 수립 능력이 탁월한 것이 특징이다. 이 유형에 내가 좋아하는 인물들이 속한다는 사실이 무척 기쁘다. 책을 읽으며 정조와 이이의 삶이 마치 나 자신의 일인 것과 같은 느낌을 받았다. 

사고형(T)의 특성 중에 하나가 놀라운 비판 정신이다. 타인에게 직설적으로 비판의 말을 스스럼 없이 하는 것이 사고형의 특성이라니... 이러한 특성은 정조와 이이에게서 여실히 드러난다. 특히, 정조는 호학형의 군주이지만, 타인의 감정과 처지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부족했다. 이 책에서 예로 든 사례를 살펴보자. 무더운 여름날 좁은 방에서 업무를 보는 정조에게 신하들이 시원하고 넓은 방으로 옮기자고 건의하자, 정조는 논리적인 말로 이를 물리쳤다. '나는 괜찮다.'라는 정조는 말에는 무덥고 좁은 방에서 고생하는 신하들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다. 

이러한 그의 모습은 나에게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객관적인 사실관계를 전달하는 것에 치중하여 감정형(F)과의 대화가 상당히 힘든 경우가 많았다. 교무회의 혹은 학년회의에서 나의 주장을 제시했다. 그에 반하여, 회의 시간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면서, 회의가 끝나고 꿍시렁 거리는 동료 교사를 보면서, 속으로 좀비라고 비난했다. 앞에서 말할 용기가 없으면서, 뒤에서 꿍시렁 거리는 것이 좀비와 무엇이 다른가!

한편, 정조는 실천형(J)으로 강한 신념과 추진력으로 자신의 개혁을 이끌어갔다. 율곡 이이도 자신에 제시한 바른삶을 스스로 실천하면서 학문적 위업을 달성했다. 이러한 특성은 나에게서도 나타난다. 물론, 정조와 이이의 실천력에 비한다면 초라하지만 말이다. 생활기록부 작성을 비롯해서 업무를 틈틈히 계획을 스스로 세워서 추진했다. 그러니, 타 교사들이 나의 속도에 혀를 내두른다. 반면, 나는 겨울방학에 미뤄두었던 생활기록부를 작성하는 동료교사가 이해되지 않는다. 미리미리 계획을 세워둔다면, 생활기록부 작성이 보다 수월한데도 이를 하지 않는 그들이 답답할 뿐이다. 

9도 장원공 이이, 그를 떠올리면 감탄밖에 나오지 않는다. 남들은 평생에 걸쳐 도전했지만, 합격의 영광을 누리지 못하고 저세상으로 가는 경우가 많은데, 그는 9번이나 장원을 했다. 이에 대해서 김태형은 "그에게 과거 시험은 사회 불안을 극복하는 하나의 방편"(163쪽)이었다고 진단한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4차례나 과거시험에 도전하여 장원을 했다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부모가 떠난 후에 사회에 진출하기 위한 자신감을 얻기 위해서 그는 과거시험을 보았다. 마치, 대학시절, 혹은 사회에 나와서 자격증 시험에 도전하고, 자격증을 받고 나서는 즐거워한 나의 경험과 정확히 일치했다. 용기가 필요할 때, 나 자신도 할 수 있다는 능력을 입증하기 위해서 자격증에 도전했다. 그리고 성취감을 느끼며 나자신에게 말했다. '너는 괜찬은 놈이야, 할 수 있어.'라고...

전략가(INTJ) 유형은 인구의 2%에 불과할 정도로 희귀한 성격이다. 정조와 율곡 이이의 심리분석은 곧 나를 이해하는 과정이기도했다. 그들의 삶을 통해서 나를 반성해본다. 그리고 나를 다독이며 한마디 한다. '강나루! 넌 괜찬은 놈이야, 그런데, 사고(T)만 할 것이 아니라, 감정(F)도 느껴봐.'


2. 심리학, 역사의 진실을 보다.

이덕일의 '사도세자의 고백'을 읽으며, '과연 사도세자가 미치지 않았다는 그의 주장을 믿을 수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이덕일의 '세상을 바꾼 여인들'이라는 책을 읽으며, 혜경궁이 남편보다는 당파를 선택했다는 설명을 읽고서는 이덕일의 주장이 믿어지지 않았다. 남편이 없으면 평생 혼자 살아야하는 조선시대에, 남편을 버리고 당파를 선택하는 것이 가능한가? 이를 이해할 수 있는 퍼즐 조각을 김태형이 제시했다. 

우선, 사도세자는 미쳤는가?라는 질문을 풀어보자, 김태형은 사도세자가 미치지 않았다는 근거로, 공적인 자리에서 사도세자의 정신병적 증세가 나타나지 않으며, 15세(조선왕조 실록), 혹은 18, 19세(한중록)에 갑자기 정신병이 발병했다는 기록 자체가 임상 심리학이나 정신병리학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이덕일의 주장과 정확히 일치한다. 이덕일은 한중록을 사료 비판하면서, 한중록은 사도세자를 죽인 자신의 가문을 변명하기 위해서 저술되었음을 강조한다. 가문을 위해서 영조와 사도세자를 정신병자로 몰아버림으로서, 자신의 아버지가 사도세자 죽음에 관여한 범죄를 합리화하려했다는 것이다. 이덕일이 동북항일연군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며, 조선시대 비전공자라며 무시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말을 떠올리며 이덕일의 놀라운 통찰력에 감탄한다. 그렇다면, 사도세자가 미쳤다는 기록은 어떻게 설명해야할까?


  "'영조실록'이 1757~1758년에 사도세자의 정신병증세가 부쩍 심해졌다고 기록한 것은 아마도 사도세자에게 너무나 불리하게 조성된 인적 환경 때문이었을 것이다."-29쪽


김태형과 이덕일의 주장은 정확하게 일치했다. 그렇다면, 자신의 가문과 당파를 위해서 남편을 버린 혜경궁 홍씨의 심리를 어떻게 설명해야할까? 김태형은 혜경궁을 파파걸이라고 말한다. 건강한 단독자로 세상을 살아가지 못하고 아버지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는 존재가 혜경궁 홍씨였다. 그러한 그녀가 결혼하고 남편과 아버지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당할 때, 그녀는 남편을 버리고 아버지를 선택했다. 남편을 살리기 위해서 여성에게 약한 영조 앞에서 어린 정조를 부둥켜 않고 눈물로 호소했다면, 남편은 살아날 수도 있었다. 그녀는 매정했다. 심지어 왕위에 즉위한 정조를 암살하려한 자들을 조사해서 처벌하려할 때, 혜경궁 홍씨는 단식투쟁까지 하며 이를 막아섰다. 역모에 연루된 자신의 가문을 지키기 위해서이다. '아들을 지지하고 이해하기 보다는 자기 가문에 타격이 올 것만을 걱정'한 사람이 바로 혜경궁 홍씨였다. 

건강한 단독자로 세상을 살아갈 수 없는 존재와 결혼한다면 그 비극은 이러한 결말을 맺게 된다. 사실, 극단적 마마걸과 사귀어 보았던 나로서는, 그 사귐이 결혼에 이르지 않은 것에 안도감이 든다. 요즘, 파파걸, 마마보이가 많아지고 있다. 그렇다면, 현대판 사도세자가 탄생할 수 있지는 않을까? 건강한 자녀 양육이 건강한 가정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3. 심리학, 인간의 마음을 보다.

어느 교육청에서 유대인 밥상머리 교육을 예로 제시하며 가정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내용의 학부모교육을 했다. 이를 본 어느 기자는 교육청을 비난하는 기사를 썼다. 학교 폭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교육청이 반성과 대책을 내놓기 보다는 가정탓을 한다는 요지의 기사였다. 그런데, 교육학과 심리학을 공부하다보면, 학교에서의 교육보다 생애 초기의 가정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는다. 이것은 영조와 연산군, 허난설헌, 폐비 윤씨 등의 역사적 인물의 사례에서도 증명된다. 

영조와 연산군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아는가? 병든 자아를 가졌다는 것이 공통점이다. 괴팍한 성격의 영조는 어머니의 출신이 낮다는 열등감에 휩싸였으며, 형을 독살했다는 협의를 받고 있다. 그의 이러한 병든 자아는 결국 자신의 아들을 뒤주 속에 넣어 죽였다. 이러한 사실은 비단 이덕일의 책에서만 서술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른 학자들의 책에서도 공통적으로 드러난다. 그러나, 사도세자의 죽음은 그의 폭주를 막는다. 


  "그의 죽음은 무시무시한 속도로 폭주하던 영조를 멈춰세웠다. (중략) 영조의 무의식은 극도로 증오하던 아들이 죽고 나자 문득 깨달았을 것이다. 자신이 중오한 대상은 아들이 아니라 죄의식과 열등감으로 일그러진 바로 자기 자신임을"-56쪽


가장 소중한 아들의 생명을 거두고 나서야 영조는 폭주를 멈추고 개혁의 길을 본격적으로 가게 된다. 영조의 경우는 너무도 큰 희생을 치루긴 했어도, 그 죽음이 헛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위안을 얻는다. 그러나, 연산군의 사례는 그러하지 않다. 연산군의 비극의 시작은 계유 정난에서 부터 시작된 죄과의 결과였다. 가장 직접적으로는, 과부트리오(정희왕후, 소혜왕후(인수대비), 안순왕후)와 마마보이 성종에게서 그 원인을 찾는다. 안순왕후는 아들 제안대군의 부인을 두번씩이나 내쫓았고, 소혜왕후는 아랫사람에게 살벌하게 대하는 것은 물론이고, 국법을 어긴 수하를 비호하고, 정당하게 법집행을 한 수령을 벌주었다. 저자 김태형은 이들 과부 트리오의 심리를 '병든자아'라고 규정한다. 결국, 병든 자아를 가진 과부 트리오는 집안이 한미한 폐비 윤씨를 내쫓으려 성종을 부채질한다. 마마보이 성종은 과부 트리오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폐비 윤씨를 내쫓고 그녀에게 사약까지 내린다. 

단독자로 홀로 서지 못하는 마마보이 성종은 자신의 아들을 조선 최고의 폭군으로 만들었다. 어린아이(ENFP) 성격유형을 가진 연산군은 마마보이로 자라난다. 죽음의 공포속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 과부 트리오에게 의존하고, 훈구파의 눈치를 본다. 그러나 인수대비가 죽자, 그는 폭주하기 시작한다. 2번의 사화를 거치면서 그는 무절제한 삶을 살아간다. 어린아이 유형의 성격을 가진 연산군은 연예인이 되었다면 탁월한 스타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제대로 된 부모를 만나지 못했고, 성격에 맞지 않는 왕이 되어서 불행한 삶을 살게 된다. "왕비가 칠거지악을 지었으면 버리면 그만이지 왜 꼭 죽여야했는가?"(357쪽)라는 연산군의 절규는 건강한 가정만이 행복한 인간을 만든다는 사실을 깨닫게해 준다. 

비단, 영조와 연산군의 사례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제대로 사랑을 받지 못한 허균과 허난설헌이 비극적 삶을 살아야했던 것도 행복한 가정 환경이 그들에게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머니에게 제대로 된 사랑을 받지 못한 허난설헌과 허균이 어머니의 품이 아니라 비현실적인 신선세계를 동경하거나, 율도국 건설을 꿈꾼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판타지와 SF 영화 속 히어로 물에 빠져들고 있는 우리를 보면서, 어쩌면 허난설헌과 허균의 가정에서 벌어졌던 비극이 우리사회에도 만연하지 않는지 우려해본다. 



  "어머니 관계가 나쁜이는 혁명의 낙오자가 되지만, 아버지 관계가 나쁜 이는 혁명의 배신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269쪽)라고 김태형은 말한다. 행복한 가정, 사랑스럽고 따뜻한 부모가 되지 않는다면, 이 사회를 행복하고 아름답게 만들 수 없다. 무기력한 아버지 이원수 밑에서 자라난, 율곡 이이는 집요하게 선조를 설득해서 개혁을 완수하지 못했다. 가정의 행복은 이뤘지만, 국가의 개혁을 이뤄내지 못하고 그는 죽었다. 그 댓가는 참혹했다. 누나 매창과 부인은 왜적에게 죽임을 당하고 국토는 황폐화되었다. "국가 차원에서 화목한 대가정을 건설하는데 실패한다면, 개인 차원의 화목한 대가정도 마을 차원의 이상촌도 실현이 불가능"(200쪽)하다는 진리를 율곡 이이의 사례는 보여준다. 밥상머리 교육의 중요성! 행복한 가정의 중요성을 절감한다. 한국 사회를 아름답고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 개개인이 행복한 가정을 만들 수 있도록 국가와 사회의 관심과 조력이 필요하다. 이번 대선 후보들은 이에 대한 관심과 정책을 마련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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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집 2022-01-20 23: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사료에서는 사도세자가 닥치는대로 주변 사람들을 죽였다고 기록되고 김복준 교수님의 해석은 사도 세자가 오늘날 보면 연쇄 살인범이다라고 하시더라구요. 이런 저런 해석 읽으면서 역사를 알아갑니다.

mini74 2022-02-10 17: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강나루님 글 재미있게 읽은 기억납니다. 축하드려요 *^^*

강나루 2022-02-11 14:46   좋아요 1 | URL
mini74님, 고맙습니다.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이하라 2022-02-10 18: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강나루님 축하드립니다^^

강나루 2022-02-11 14:46   좋아요 0 | URL
이하라님, 감사합니다.
풍성한 주말 보내세요.

서니데이 2022-02-10 22: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강나루 2022-02-11 14:46   좋아요 2 | URL
서니데이님, 감사합니다.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bookholic 2022-02-12 05: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강나루 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늘 좋은 책 소개 고맙습니다...

강나루 2022-02-12 07:3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편안한 주말 보내세요.

thkang1001 2022-02-12 06: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강나루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행복한 주말과 휴일 보내세요!

강나루 2022-02-12 07:3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thkang1001 2022-02-12 09: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강나루님! 감사합니다!
 
괴물, 조선의 또 다른 풍경 - 풍문부터 실록까지 괴물이 만난 조선
곽재식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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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에게 옛날 이야기를 들으며 겨울 밤을 보냈다. 이야기 속에는 산신령이 자주 등장하였다. 그 시절에는 산신령이 그리도 많았는데 요즘에는 왜? 산신령이 없는 것일까? 라는 질문을 많이 했다. 아버지는 '네가 보지 못할 뿐이지, 사실은 산신령은 지금도 존재한단다.'라는 말씀을 해주셨다. 그 시절에는 옛날 이야기속의 산신령, 도사, 도깨비들을 믿었다. 서양의 과학적 사고 방식이 지배하는 현대 사회에서 더 이상 산신령, 도께비를 믿지 않는다. 그런데, 조선시대 '조선왕조실록'에 괴물이 등장한다. 작가 곽재식은 '조선왕조실록'에서 부터 삼국사기, 삼국유사 등의 수 많은 기록들을 뒤지며 우리의 괴물들을 한데 모았다. 어린시절 옛날 이야기를 듣던 추억을 떠올리며 책을 펼쳤다. 


  책을 펼치자 '조선 괴물지도'가 펼쳐졌다. 이책에서 소개한 괴물과 귀신들을 각지역별로 표시하고 괴물의 모습도 곁들였다. 우리 산하에 이리도 많은 괴물들이 살았다니... 흥미로움에 빠져들었다. 저자 곽재식은 단순히 과거 기록을 나열하는데 그치지 않고 괴물들을 합리적으로 추론해서 과학적으로 설명하려 노력했다. 한예로 '지하거인'을 설명하는 '플터가이스트' 개념을 사용한다. 이상한 소리가 들리거나 기와와 돌이 날아다는 현상은 정신적으로 어떤 문제를 가진 사람이 충동적으로 물건을 던지거나 부순 다음, 자기가 한 일을 기억하지 못하거나 착각하는 현상이 플터가이트스 이다. 특히 계유정난 이후라는 시대적 배경 속에서 억울하게 죽고, 집안이 몰락하여 양반의 자손들이 노비생활을 하였으니 얼마나 심리적으로 고통이 심했겠는가!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지하거인이 등장하였다는 심도 있으면서도 합리적이 설명이 이책의 곳곳에 녹아있다. 단순히 흥미 위주의 책으로 추락할 수도 있었지만, 이러한 합리적인 설명은 조선 사회의 모습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열쇠를 우리에게 선사해준다. 

  인어라는 단어를 들으면 무엇이 생각나는가? 인어가 조선에도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어우야담'에는 강원도 통천의 한어부가 인어 세끼 6마리를 잡았다는 이야기가 실려있다. 서양 동화속 주인공으로만 알던 인어가 동양에도 있었다니 너무도 흥미롭다. 순간, 우리도 인어를 문화 콘텐츠로 만들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했다. 아니, 이 책에 실려 있는 전국의 괴물들을 각국의 지방자치단체가 지역을 소개하는 관광자원으로 소개하는 것은 어떨까? 역사가 우리 생활 속에서 살아 숨쉬고, 지역민이 풍족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자산이 되지않을까?

  

  역사는 기록하는자의 것이며, 기억하는 자의 것이다. 아무리 훌륭한 역사가 있다할지라도 우리가 기록하지 않고, 기억하지 않는다면 그 역사는 더 이상 우리의 것이 될 수 없다. 곽재식의 '괴물, 조선의 또 다른 풍경'이라는 책은 우리 역사속에 잠들어 있는 괴물들을 불러내어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다. 저자가 충북 오창에 요공원을 소개하며 두꺼비 생태공원을 조성한 오창이 지내와 두끼비를 이용한 관광자원을 개발할 것을 제안했다. 책속에만 존재하는 역사를 불러내어 우리 주변에서 살아 숨쉬고 지역민과 교감하도록하는 일은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할 뿐만 아니라, 역사를 우리 주변에서 살아 숨쉬게하는 강력한 효과가 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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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라면 정조처럼 - 정조대왕의 숨겨진 리더십 코드 5049
김준혁 지음 / 더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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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는 독살되었는가? 이 질문에 독살 되었다고 말하면 주류의 역사학자들에게 뭇매를 맞게 된다. 이덕일이 책을 많이 팔아 먹기위해서 주장한 것을 무비판적으로 믿는다는 비난을 받기에 딱좋다. 이덕일의 책을 많이 읽은 나로서는 이덕일을 변호하면서도 굳이 정조 독살설을 비호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던 차에 문재인 대통령이 감명 깊게 읽은 책 중에 '리더라면 정조처럼'이라는 책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자칭 정조변호라라고 말하는 김준혁 교수의 책이기에 그를 통해서 정조를 새롭게 만나고 싶었다. 시중의 자기 개발서의 냄새를 풍기는 책제목을 보며, 과연 인간 정조의 모습을 얼마나 새롭게 발견할지 궁금하다.

 

1. 정조의 개혁과 문재인의 개혁

"문재인 보유국"이라는 말이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 사이에서 유행하고 있다. 코로나 19 펜데믹 상황에서 초강대국 미국을 비롯한 소위 '선진국'들이 너무도 처참한 사태를 맞이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문재인 보유국"인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박근혜 정권 시기 메르스 사태와 같은 대처를 코로나 19 펜데믹 상황에서 했다면 너무도 비참한 일들이 우리 눈앞에서 벌어졌을 것이다. 그렇다면, 문재인 대통령이 가장 인상 깊게 본 정조의 리더십은 무엇이었을까? 문재인 대통령은 정조가 금난전권을 폐지하는 경제개혁을 가장 인상 깊게 읽었다고 한다.

  신혜통공을 실시하여 금난전권을 폐지하고 자유로운 상업발달을 도모하는 경제 개혁은 처음부터 쉽지 않았다. 채제공을 우의정에 임용한다는 전교를 청와대 비서실에 해당하는 승정원의 승지가 국왕의 전교를 대돌리며 반대했다. 마치, 조국을 비롯한 추미애, 박범계 법무장관을 임명하려하자, 야당이 무척이나 반대한 것과 유사하다. 특히, 조국 전 법무장관의 경우에는 검찰청이 상상을 초월한 고강도 압수수색을 했다. 검찰이 가지고 있었던 특권을 내려 놓는다는 것이 너무도 힘든 일이었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은 정조가 채제공을 우의정에 임명하는 것을 관철했듯이, 조국을 법무장관에 앉혔으며, 추다르크라 불리는 추미애와 판사출신의 박범계를 법무부 장관에 앉히며 개혁을 계속 추진하고 있다. 마치 한화의 김인식 감독이 국가대표팀을 이끌고 강팀들을 상대할 때, 계투 작전을 방불케하는 용인술이다. 조국과 마찬가지로 추미애와 박범계도 사소한 일들을 침소봉대하여 엄청난 부정부패를 저지른 추악한 사람으로 몰아붙인다는 인상을 받는다. 그들이 받은 고통이 얼마나 컸을까? 신혜통공을 추진했던 채제공도 마찬가지이다. 시정잡배들이 채제공의 집에 와서 야유를 하는 무례한 짖들을 서슴치 않았다. 이러한 모든 고난을 극복해야만 개혁은 완성된다. 문재인 정권도 정조가 금난전권을 폐지하는 신혜통공을 반포하여 조선의 상업을 발전시켰듯이, 검찰개혁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우리의 검탈이 국민의 검찰로 다시 태어나길 기대한다.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을 하는데, 기자라는자들이 대통령에게 소통이 부족하다고 하자, 대통령은 "저는 반드시 기자회견만이 국민들과의 소통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소통의 한 방법이죠."라고 일갈한다. 기자들의 얕은 생각으로는 자신들과의 소통이 국민들과의 소통의 전부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박근혜 정권을 거치면서 기자들에 대한 신뢰도가 많이 낮아졌다. 박근혜에게 질문한번 제대로 못하고,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기자에게 질문할 기회를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기자들은 질문한번 제대로 못했다. 그러면서 기레기라는 말들이 시민들의 입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지난 정권에서 질문도 제대로 못하는 기자들이 대통령에게 소통을 못한다고 말한다. 그들에게 그런말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다.

  그럼, 대통령은 국민과 소통하고 있는가? 나는 있다고 생각한다. 가장 큰 소통의 방법이 '국민청원'이다. 과거 정권에서는 상상도 못한 일들이 문재인 정권에서 벌어지고 있다. 국민이 자신의 목소리를 '국민청원'에 올리면 20만의 시민이 동의하면 청와대가 답변한다. 청와대가 해결할 수 없는 요청도 올라온다. 억울한 시민들은 자신의 억울함을 청와대가 해결은 못해도 들어주기를 소망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마치 정조가 화성행차를 하면서 수많은 격쟁을 받았던 사실을 떠올린다면 문재인 정권의 국민청원은 현대판 경쟁이요. 상언이다. 일본의 경우, 격쟁을 하려면 죽음을 각오해야한다. 다이묘에게 격쟁을 하면 다이묘는 농민의 억울함을 듣고서 그 농민을 죽여버렸다. 말그대로 목숨을 내놓아야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정조대왕은 수많은 격쟁을 받아들이고, 백성의 고통을 해결하려했다. 왕의 행차를 징이나 꽹과리를 치면서 가로막고는 자신의 억울함을 토로하는 행위는 관점에 따라서는 무례한 일일수도 있다. 그러나, 이를 소통의 한방법으로 정조는 활용한 것이다. 정조의 이런 소통의 방식은 맥이 끈기지 않았다. 정조의 '격쟁'은 문재인 정권에서 '국민청원'으로 부활하여 국민과 소통하고 있다. 이를 기레기들만 모르고 있다.

  김준혁 교수가 생각하는 우리나라의 최고의 보물은 무엇일까? 김준혁 교수는 '하마석'이라 말한다. 양반이 말을 탈때, 양반은 노비를 밟고 말을 탄다. 인간이 인간을 밟는다는 것은 참으로 치욕스러운 일이다. 정조는 하마석을 설치하여 양반이 노비를 밟고 말을 타는 비인간적인 행위를 없애려했다. 만백성을 아끼는 애민군주 정조의 모습이 빛나는 부분이다.

  오늘날의 애민정치는 어디에서 부터 시작해야할까? 코로나 19 펜데믹을 극복하고 있는 오늘을 생각해보자. 코로나 19 펜데믹 상황을 극복하는데 많은 의료인력들의 노고가 가장 크다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의료인력의 노고만으로는 지금의 K-방역이 성공할 수 없었다.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와 비대면 사회에서 택배 노동자의 활약이 없었다면 K-방역은 성공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택배 노동자의 과로사 소식이 연이어 뉴스를 장식하고 있는 요즘, 택배 노동자에 대한 노동 상황을 개선하는데 정부의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아울러, 코로나 19를 통해서 드러나고 있는 대한민국의 그늘진 노동현장을 들여다보고 개혁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것이 애민군주 정조의 리더십을 보면서 문재인 정부가 배워야할 가장 큰 덕목이지 않을까?

 

2. 정조는 독살되었을까? 

정조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주변에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 "정조는 왜? 죽었는가?"이다. 역사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은 정조 독살설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정조 독살설을 대중에게 퍼뜨리는데 가장 큰 기여를 한 사람은 바로 '이덕일'이다. 역사관련 서적 분야에서 이덕일은 엄청난 베스트 셀러를 연이어서 내놓고 있다. 억울하고 원통해하는 패자의 입장에서 역사를 바라보는 이덕일의 역사관은 한의 정서를 가지고 있는 우리에게 강한 흡입력을 불러 일으킨다. 비참하게 죽어가는 아버지를 보고 자란 정조가 왕이되어 개혁정치를 추진하지만, 정순왕후로 대표되는 노론세력의 반발로 독살 되었다는 이야기는 한편의 드라마이다.

  이덕일의 "조선왕 독살사건"의 공전의 히트는 많은 강단 사학자들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특히 노론 중심의 역사관을 가지고 있는 조선시대 전공자들은 이덕일을 열심히 비판했다. TV에 자주나오는 신00 교수는 독살설에 대해서 '조선이 그정도로 허술한 나라가 아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다. 역사관련 연수를 갔을 때, 충남대학교 모교수는 '어느 작가는 조선의 모든 왕들이 독살되었다는 듯이 서술한 사람도 있다.'라며 비꼬기도 했다. 정조 독살설은 이덕일을 비판하는데 빠지지 않는 단골 소재이다. 삼인성호라는 말이 있다. 한사람이 시장에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말하면 믿지 않지만, 세사람이 말하면 호랑이가 시장에 나타났다는 말을 믿는다. 나도 정조 독살설을 믿지 않았다. 정조는 화병과 과로가 겹쳐서 죽었다고 믿었다. 그런데, "리더라면 정조처럼"을 읽으며 생각이 달라졌다.

  "정조는 독살 되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정조는 화병과 과로사 겹쳐 죽었다는 기존입장이 왜? 정조는 독살 되었을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바뀌었을까? 정조를 둘러싼 주변 상황이 정조 독살을 의심하기 충분했다. 정조의 정통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영조는 정조를 효장세자에게 입적시킨다. 그런데, 효장세자가 죽은 이유를 아는가? 이 책에는 나오지 않지만, 효장세자는 '화흉(和兇)'으로 죽었다. 무신난 이후, 소론과 남인이 영조의 대를 끊어 놓기 위해서 죽은 사람의 뼈를 가루내어 효장세자의 밥에 넣고 궁궐주변에 묻어두었다. 이러한 죽음은 효장세자로 끝나지 않았다.

  정조가 3번이나 청혼한 끝에 결혼한 의빈 성씨와 문효세자의 죽음에도 석연치 않았다. 문효세자의 죽음은 홍역 때문인 것으로 추측하였으나, 문효세자가 죽은 후 2년 뒤 밝혀진 사실은 구선복에 의한 독살이었다. 문효세자의 어머니이 의빈  성씨도 구선복에 의한 독살이었다. 구선복은 누구인가? 사도세자가 뒤주에 갖혀 죽을 때, 사도세자의 얼굴에 침을 뱉었던 자이다. 이를 12살의 정조는 똑똑히 보았다. 그럼에도 왕이 되어 구선복을 죽이지 않았건만, 구선복은 정조가 사랑하는 문효세자와 의빈 성씨를 독살했다. 정조 주변에는 노론세력이 포진하고 있었다. 그들은 정조를 노리고 있었다. '명의록'에는 정조가 왕세손 시절에 갑옷을 입고 잠을 잤다는 사실이 적혀있다. 한나라의 왕세손이 자객의 침입을 두려워하여 갑옷을 입고 잠을 잤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정조가 즉위하고 나서 사흘만에 자객이 궁궐에 난입한 사실만 보더라도 정조 주변에는 그의 목숨을 노리는 사람이 많았고, 정조 주변의 소중한 인물들이 독살되었다.

  정조의 죽음에도 석연치 않은 점이 많다. 약을 잘못 사용하였다는 주장도 있으나, 나는 여기에 주목하지 않는다. 정순왕후가 기력이 좋아지고 있는 정조의 방에 들어와서 신하들로하여금 무러나게한다. 얼마후 곡소리가 난다. 정조는 "수정전"을 외쳤다. 수정전은 정순왕후를 뜻한다. 기력이 회복되고 있는 정조를 여성이 독대한다는 것은 조선시대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정조사후, 권력을 잡은 것은 정순왕후이다. 정조의 죽음을 통해서 가장 큰 이익을 본 것은 정순왕후이다. 그렇다면 정순왕후를 의심하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은가?

  결정적 증거가 없기에 노론 세력에 의해서 정조가 독살 되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정조와 정조를 둘러싼 사람들의 죽음은 '정조 독살설'을 허무 맹랑한 이야기로만 치부할 수 없도록 만든다.

 

 

  정조는 무명옷만 입었으며, 옷이 해지거나 버선이 구멍나면 이를 버리지 않고 꿰매 입었다. 침전 영춘전이 하도 낡아 비가 오면 빗물이 스며들어 곰팡이가 피기도 했다. 조선의 모든 것이 그의 것이었지만, 그는 그것을 모두 누리려하지 않았다. 자신이 누리면 백성의 삶이 힘들어진다는 것을 그는 알았다. 너무도 검소해서 방안에 곰팡이가 피기 시작한다면 자신의 건강에도 좋은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그도 알았을텐데 말이다.

  지존의 자리에 있지만 자신을 낮추며 몸으로 낮은 곳에 임하는 삶을 살았던 정조 대왕! 그의 삶을 통해서 나도 한가지를 배웠다.

 

  "일은 완벽하기를 요구하지 말고, 말은 다하려고 하지 말라!"

 

  탁월한 리더일 수록 아랫사람의 일처리가 미숙해보인다. 내가 리더에 있을지라도 절대 완벽을 요구하지 말자. 부족한 점이 있으면 리더인 내가 채워주자! 리더가 하고 싶은 말을 다하면 아랫사람은 입을 다문다. 아랫사람이 자신의 의견을 자유로이 말할 수 있도록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다하지 말자. 이것이 '리더라면 정조처럼'을 통해서 배운 정조의 리더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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