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를 죽인 부처 - 깨달음의 탄생과 혁명적 지성
박노자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1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박노자! 그의 책을 처음 읽었을때, 그로부터 받은 충격은 대단했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던 고정관념에 의문을 제기하고, 다양한 자료를 근거로 탄탄한 근거를 제시하는 박노자의 글에 기가 질렸다. 고정된 틀에 얽매이지 않는 박노자의 언변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도덕경'을 쓴, 노자가 살아돌아온 것관 같은 착각을 한다. 그러나 세월은 흘렀다. 그 흐름 속에서 박노자의 책을 어느덧 7권째 읽었다. 그러면서 박노자의 고정된 틀이 보이기 시작했다. 신선했던 그의 글이 이제는 신선함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박노자의 전략이 나의 눈에 파악되면서 이제 박노자의 주장에 나만의 반박을 할 수 있는 내공이 쌓였다. 자, 박노자의 글과 한벌 놀아보자!


1. 국가는 절대악인가?

  박노자의 사상적 기반은 마르크시즘을 기반으로한 공산주의이다. 마르크스는 공산사회가 도래한다면 국가는 소멸할 것이라 예상했다. 그러나, 지구상에 공산혁명을 일으킨 나라에서 국가는 사라지지 않고, 또다른 억압의 도구가 되었다. 현실에서 국가는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그 역할이 중요시되고 있다.그런데, 박노자는 '국가'라는 존재를 '악'으로 대하고 있다. 


  "모든 폭력성을 대변하는 국가라는 지배계급의 기구는 당분간 존재할 수 밖에 없는 필요악으로 볼 수 있어도 절대 사랑할 수 없는 것이다."-254쪽


  국가를 '필요악'으로 보는 박노자의 견해를 우리는 쉽게 동의할 수 없다. 박노자는 러시아계 유대인이다. 2천년 동안 국가를 읽고 유대인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온 민족에게 '국가'라는 존재에 대한 충성심을 바랄 수 없다. 유대인에게 이스라엘을 제외한 국가라는 존재는 그져 스쳐지나가는 바람과 같은 존재이다. 오히려 국가의 폭력에 의해서 배제되고 심하면 목숨을 잃는 것이 흔한 일이었다. 

  그에 비해서, 우리에게 국가라는 존재는 애증의 존재였다. 조선시대 피지배인에게 국가는 나를 착취하는 기구이기도 했지만, 나의 삶의 터전을 제공하는 존재였다. 임진왜란 시기, 의병이 일어났던 것도,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나서 수 많은 젊은이들이 항일 독립투쟁에 참여한 것도, 모두가 나의 삶의 터전을 제공하는 나라를 갖고 싶었기 때문이다. 

  박노자와 우리는 서로 다른 역사를 가진 존재이다. 그러하기에 박노자에게 국가란 폭력과 착취의 기구였으며, 스쳐지나갈 수 있는 가벼운 존재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국가는 나를 억압하는 존재이기도 했지만, 없어지면 생존권이 위협받는 애증의 존재였다. 바꾸고 싶어도 쉽게 바꿀 수 없는 존재였다. 

  박노자에게 한마디 더하고 싶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우리는 대한민국을 민주국가로 만들어가고 있다. 기득권층이 가지고 있는 권력에 도전하며 촛불을 들어 어둠을 몰아내는 깨시민(깨어 있는 시민)들이 대한민국을 지키고 있다. 어찌 대한민국을 폭력적 존재! 억압적 존재라 단정할 수 있겠는가? 국가가 억압적 존재라면 국가를 문명화시키는 것도 나라의 주인인 깨시민들의 의무일 것이다. 


2. 호국불교는 청산의 대상인가?

  폭력에 몸서리를 치는 박노자는 국가 폭력의 도구인 '군대'라는 존재 자체 또한 '절대악'으로 규정하고 있다. 부처님의 제자인 승려들이 국가가 위기에 처했다하여 목탁을 버리고 칼을 들고 일어서는 행위를 박노자는 반불교적 행위로 규정한다. 


  "'악이 선이 되고 선이 악이 되는' 도덕적인 상대성 논리다. 언뜻 보면 불교를 왜곡하는 논리로만 보인다. 중생에 대한 살해가 중생 교화로 둔갑될 수 있기 때문이다. 중생에 대한 살해가 중생 교화로 둔갑될 수 있기 때문이다."-264쪽


  한국의 호국불교는 박노자의 지적대로 한국불교가 청산해야만하는 대상일까? 폭력은 칼에 비유할 수 있다. 산적의 칼은 힘없는 자의 재산과 생명을 위협하는 도구이지만, 어머니의 칼은 가족에게 맛있는 음식을 제공하는 아름다운 도구이다. 국가 폭력의 도구인 군대도 마찬가지이다. 국가의 지배자들이 피지배층을 수탈하기 위한 폭력의 도구로 사용된다면, 군대는 악한 존재가 될 것이다. 반면에 외적의 침입에 대응해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킨다면 군대는 우리 생존의 파수꾼으로 존재하게 된다. 도구의 성격은 도구의 쓰임새에 따라 달라진다. 도구의 악한면만에 주목하여 도구를 버린다면, 그 결과는 참으로 금찍할 것이다. 

  박노자에게 질문해보자! 박노자 당신이 임진왜란 시기 조선의 승려였다면, 왜군이 수많은 조선의 백성들을 유린하고 코를 베어가고 노예로 끌고가는 현실을 보고 있을 것인가? 아니면 칼을 들고 불쌍한 중생을 위해 분연히 일어설 것인가? 

  아무리 고고한 인품을 가지고, 고고한 삶을 살고 싶어도 현실의 삶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을때가 많다. 내가 평화를 사랑하며 사랑과 자비의 말만을 하고 싶어도, 우리의 삶의 터전을 위협하는 침략세력이 우리를 위협한다면, 우리는 고고한 삶을 살아갈 수 없다. 현실을 떠난 이상론은 말그대로 이상일 뿐이다. 

  물론, 호국불교의 성격이 일제 강점기 친일불교로 변질되어 일제의 침략전쟁을 '대동아 성전'으로 미화하며 반민족적 행위를하는데 일조한 것이 사실이다. '호국불교'라는 칼의 칼자루를 일제가 쥐고 한민족을 위협하는 부작용이 발생한 것이다. 이것은 한국불교가 친일의 어두운 그림자를 반성하고 뉘우치면서 해결해야갈 문제이다. 


3. 모든 계율은 반드시 지켜야할까?

 불교의 계율을 모든 불자들은 반드시 지켜야할까? 아니, 지킬 수 있을까? 살생을 하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살아있는 존재로서는 불가능에 가깝다. 동물뿐만 아니라, 식물의 생명도 귀하게 여긴다면 인간은 아무것도 먹지 말아야한다. 동물과 식물을 희생시키지 않고 인공적으로 합성한 영양제만 먹고 사는 경우를 제외하고 인간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살생을 하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런데, 박노자는 모든 불자에게 계율을 지킬 것을 강조한다. 


  "자본주의적 현실에 대한 철저한 비판의식과 '나와 남에게 진정한 이익은 무엇인가'에 대한 투철한 문제의식으로 계율을 실천하고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아니겠는가. 아마도 계율과 함께 사회를 비판적으로 해부할 수 있는 시각을 내면화한다면, 우리 사회의 그토록 다양한 분야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계율을 어기는 현실들이 결코 당연하지도, 자연스럽지도 않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138쪽


  박노자는 계율은 반드시 지켜야한다는 원리주의적 시각을 가지고 있다. 3.1운동에 뛰어들었다가 평화적인 방법으로 독립이 달성될 수 없음을 깨닫고 의열투쟁에 참여한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있다. 상대가 야만적인 폭력을 휘두르며 우리 가족의 생명을 위협하는데 어찌 가만히 지켜만 볼 수 있겠는가? 계율은 해탈을 위한 도구일 뿐이다. 도올 김용옥의 "스무살 반야심경에 미치다."라는 책에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두스님이 개울을 건너는데 한 여성이 불어난 물을 건너지 못해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나이든 스님이 그 처자를 업어 개울을 건네주었다.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스님이 이를 탓하자, 나이든 스님이 "나는 그 처자를 게울에 건네주고 왔는데, 너는 아직도 그 처자를 떠나 보내지 아니하였구나!"라고 말했다한다. 여성을 가까이해서는 안되는 것이 불교의 계율이다. 그러나 이 계율은 승가 조직을 지키기 위한 수단이다. 개울을 건너지 못해서 어쩔줄 모르는 처자를 그냥 지나치는 것보다 그녀를 도와주는 것이 참다운 선을 행하는 일이다. 

  콜버그의 도덕성 발달 단계 이론을 통해서도 박노자의 주장에 반박할 수 있다. 콜버그는 도덕성 발달단계를 6단계로 나누었다. 그중 4단계는 법과 질서 중시, 5단계는 사회계약 중시, 6단계는 보편적 윤리를 중시하는 단계이다. 박노자는 4단계 법과 질서를 중시여기는 수준에 고착되어있다. 불교의 계율을 금과옥조처럼 여기며, 한글자 한토시도 고칠수 없다는 강경한 태도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법과 질서가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도구이며, 이러한 법과 질서가 우리 사회를 행복하게 하기 위한 방편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5단계로 이행될 수 있다. 한시가 급한 응급환자를 태운 구급차가 신호를 지켜야하기에 아무도 지나다니지 않는데도 붉은신호 앞에 멈춰선다면, 생명을 살리는 더욱 커다란 가치를 잃어버린다. 박노자여! 이제는 사고의 폭을 넓힐때가 되지 않았는가?


4. 괴력난신을 어찌하오리까?

  박노자의 눈에는 대입기도를 드리는 부모의 모습도 아힘사(비폭력)의 원칙에 어긋난 것으로 보인다. 내 자녀가 합격하면 누군가의 자녀는 떨어진다는 논리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불상과 불화를 신격화하고 예배의 대상으로 삼는 것 자체도 문제시한다. 철두철미하게 부처님이 말씀하신데로 살아가야한다는 것이 박노자의 주장이다. 그리고 그 근저에는 국가와 폭력에 대한 뿌리 깊은 혐오가 자리잡고 있다. 

  박노자의 말대로라면, 대학에 합격하는 행위자체가 불자로서는 해서는 안되는 일이 된다. 불자들은 모두 속세를 떠나서 살라는 말인가? 글쎄, 박노자의 말에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많지만, 불상과 불화를 신격화하고 예배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된다는 주장에는 동의할 수는 있다. 부처의 말씀에도 어긋날 뿐만 아니라, 불상과 불화가 예배의 대상이 되어야만할 합리적인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박노자의 말대로 모든 불상과 불화를 사찰에서 없애버려야할까? 이러한 태도는 기독교인들이 우상이라고하면서 불상을 회손한일과 무엇이다를까? 불상과 불화를 예배의 대상으로 보는 우리의 마음이 문제가 아닐까? 훌륭한 불교 예술 작품으로, 후세에 전해주어야할 아름다운 문화유산으로 바라볼 수는 없을까? 아름다운 예술작품을 예배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중생들의 마음이 잘못된 것이지, 불상과 불화, 그 자체가 무슨 죄가 있겠는가? 나의 마음에 쌓인 헛된 바람이 불상과 불화를 보고 미혹되는 것이지, 불상과 불화가 중생을 미혹시키는 것은 아니다. 

  신통력 있는 스님이 인정받는 현실도 곱씹을 필요가 있다. 박노자의 말대로 신통력 있는 스님을 찾는다면, 불교가 무속신앙과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불교는 고차원적인 철학적 종교이다. 

  불상과 불화에 대해서는 관대한 생각을 가진 내가, 신통력을 가진 스님에 대해서는 관대하지 않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박노자의 글에서 찾을 수 있다. 


  "다수가 가질 수 없는 능력의 보유 그리고 다수의 상식을 초월하는 '기적'의 존재를 주장하는 일은 결국 다수에 대한 권위주의적이며 고압적인 태도로 쉽게 연결된다는 사실이다."-106쪽


  부처님의 제자가 신통력을 앞세워 부처를 부정하는 행위를 할 수 있다는 박노자의 경고는 깊이 있게 되새겨 보아야할 것이다. 


 

  박노자는 외부자의 시선으로 한국불교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중에서 여성이 여성의 몸으로 성불할 수 없기에 남성으로 다시 태어나서 성불한다는 '변성성불론' 비판, 초기 불교의 정신이 깃든 '산중공의'의 현대적 부활을 외친 부분에 깊은 공감을 한다. 그러나, 그중에서 가장큰 문제점은 참여불교가 너무도 미약하다는 점이다. 참여불교로 나아가지 못한 대표적 예가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이 정부의 수배를 피해서 조계사로 들어갔지만, 한상균 위원장을 품어주기는 커녕, 조사계를 떠나라고 종용했다. 김수한 추기경이 명동성당으로 온, 민주 시민들을 품어주었던 사실과는 너무도 대조를 이루는 사건이었다. 현실과 유리되어 기득권 세력과 손을 놓지 못한다면, 한국불교는 민중속에 뿌리 내릴 수 없다. 기득권 세력과 손을 잡아 불교의 외형을 번성시키는 과거의 전통에서 벗어날 때이다. 그래서 박노자는 "이제는 짐이될 뿐인 전통들을 폐기해야 살아 숨쉬는 불교로 거듭날 수 있다."(287쪽)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박노자는 한국에 대한 애정이 있기에 우리의 문제점을 지적할 것이다. 나 또한 박노자에 대한 애정이 있기에 그의 글에 반론을 제기해본 것이다. 박노자의 새로운 책을 다시 읽는다면, 그때도 박노자와 깊은 대화를 할 것이다. 그의 책을 읽을 그날을 고대하며, 이만 글을 마친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cott 2020-12-31 22: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루님 서재방에 2021년 연하장 놓고 가여 ㅋㅋ

새해 행복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2021년 신축년
┏━━━┓
┃※☆※ ┃🐮★
┗━━━┛
새해복많이 받으세요*

강나루 2021-01-01 06:32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scott님도 새해복많이받으세요
 
일본인 심리 상자 - 우리가 몰랐던 일본인의 24가지 심리 코드
유영수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유튜브 "롯본기 김교수"를 보다보면, '일본이 과연 그럴까?'라는 의문이 들정도로 일본은 이해하기 힘든 일들이 벌어지는 나라이다. 일본의 역사를 공부하면 할 수록, 일본 문화를 알아가면 알수록 일본이 이해되지 않았다. 가깝지만 너무도 먼 나라 일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사와 문화만을 공부해서는 한계가 있음을 절감했다. 그래서 일본인의 심리 구조를 명확히 설명해 줄 수 있는 책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심리학이라는 도구를 사용해서 일본의 심리구조를 이해하고 싶었다. 그 때, "일본인 심리 상자"가 눈에 띄였다. 심리학을 전공한 기자가 일본에 특파원으로 파견되어 겪었던 생생한 경험들을 바탕으로 저술했기에 책에 신뢰감이 들었다. 책이 쉽고 재미있었기 때문에 빠른 시간내에 읽어 내려갈 수 있었다. 


1. 얼굴을 감추는 일본 문화.

  혼자 밥먹는 것이 두려워 변소에서 식사를 하는 일본 대학생이 있다는 사실은 무척 놀랍다. 매우 특이한 일일 것이라는 주장을 뒤엎기라도 하듯이, 후속 조사에서 일본 대학생의 적지 않은 수가 화장실에서 식사를 한 경험이 있다고 한다. 대인 관계 공포증, 교제 공포 증후군에 시달리는 일본 대학생들을 보면 딱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대인 관계의 어려움은 일본인의 생활 문화 곳곳을 파고들었다. 일본의 '노'나, '가부키'를 부면 진한 화장을 한 일본여성의 얼굴은 가면을 쓴 것과 같았다. 얼굴 표정을 알 수 없는 일본 배우의 모습에 아름다운 일본문화라는 생각보다는 이해할 수 없는 묘한 문화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이것은 자신의 얼굴을 감추는 일본 문화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자신의 감정 혹은 마음을 드러내는 것을 수치스러운 것으로 여기는 일본인은 화장을 할 때도, 한 듯 안한듯 하거나, 갸르 화장처럼 두껍게 화장을 해서 화장속에 자신의 얼굴을 숨긴다. 각종 재해로 인해서 가장 소중한 가족을 잃은 일본인들이 대중앞에서 울지 않는다. 심지어는 웃음을 보기기 까지 한다. 타인에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서는 안된다는 불문율이 일본사회에 작동하고 있다. 외국인들이 '한국인들은 화난 얼굴을 하고 있다.'라는 말을 하는데, 일본은 "표정이 없다."라는 말을 할 정도로 일본인들의 얼굴은 자신의 감정을 숨기는데 필사적이라 할만하다. 

  군중 속에 개인을 숨겨야만 안정된 군중속의 삶이 보장되는 것일까? 일본인들은 '보통을 선호'한다. 일본인이 말하는 보통사람은 보통사람이 아닌 '수퍼맨'을 뜻한다. 반면 보통 아닌 사람은 '지적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을 뜻한다. 무채색 패션이 난무하는 도쿄 거리, 가방까지 획일화하는 일본의 초등학생의 모습에서 개인의 개성은 찾아볼 수 없다.

  보통 한국 교육의 문제점을 개성을 무시하는 획일화된 교육에서 찾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일본의 교육은 한국 교육보다 심각했다. 오히려 일본교육에 비해서 한국교육이 양호하다는 생각이든다. 개인의 개정이 무시되고, 토론을 싫어하는 일본 사회에서 어떻게 노벨상 수상자가 나올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더 나아가서, 일본보다는 더 개방적인 한국사회에서 노벨평화상을 제외하고서는 아직도 노벨상 수상자가 없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유튜브 '롯본기 김교수'에서 김교수는 일본에 많은 정신병원을 소개한 적이 있다. 개인이 철저히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살아야하는 일본사회에서 정신병자가 되지 않는다면 그것이 비정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본심을 뜻하는 '혼네'와 겉으로 드러내는 모습을 뜻하는 '다테마이'를 처음 알게 되었을때, 일본인들이 교활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일본인 심리 상자"를 읽으며 일본인들이 '혼네'와 '다테마이'를 갖지 않고서는 생존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했다. 

  자신의 감정을 철저히 숨겨야하는 일본에서 살아남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서 일본의 부모는 자신의 자녀를 강하게 교육시킨다. 모성이 결여된 일본의 어머니와 엄하고 권위주의적인 일본의 아버지 사이에서 교제 공포 증후군과 대인관계 공포증으로 고통을 겪는 자녀가 자라난다. 일본의 수많은 정신 병원과 어느날 갑자기 스스로 실종되는 사람들, 변소 식사를 하는 일본인들을 세상밖으로 나오게 할 수 있는 첫걸음은, 일본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따뜻한 손길로 자녀를 끌어안고, 관용적이며 자율적으로 자녀를 키우는 것이다. 일본 사회는 병들어 있다. 심각하게 병들어 있다. 이를 일본만의 독특한 문화라고 보기에는 일본 사회는 너무도 심각하게 병들어 있다. 


2. 거대한 정신 병원, 일본

  64세 노인이 유모차를 탄 1세 아이를 폭행하고 도망치다가 붙잡혔다. 경찰에서 그가 한 말은 유모차가 자신의 보행에 방해가 되었기에 화가나서 범행을 저질렀다 말한다. 한적한 지하철에서 유모차가 보행을 방해했을리 없다. 심리학적으로 살펴보면, 일본인들은 자신의 사적 공간을 침해 받는 일에 강한 반감을 갖는다고 한다. 지극히 개인주의적인 일본인들의 사고방식을 절대 이해할 수 없다. 지하철에서 유모차를 용납하지 않는 일본에서 출산장려 정책이 성공할리 없다. 게다가 일본에서는 육아는 여성의 전유물이라는 생각이 뿌리 깊게 퍼져있다. 이러한 일본여성은 병들어간다. 가정폭력이 증가하고, 가정폭력으로 가정의 아이들이 살해되기도 한다. 인구대비로 비교해 보았을 때, 일본의 가정폭력은 한국의 3배에 달한다. 

  일본인들이 자신의 사적 공간과 사적 시간을 침해받길 싫어하는 병적인 집착은 고립주의로 변질된다. 실제로 일본에는 중년 동정남이 다수 존재한다. '성진국'이라는 비아냥을 듣고 있는 일본에서 '중년 동정남'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믿기지 않는다. 이 책의 저자는 일본 중년 동정남이 존재하는 이유는 실패에 대한 공포, 완벽한 사랑을 추가하는 것이 원인이라 진단한다. 어찌 한가지 사건에 원인이 한가지 일수 있는가? 완벽한 사랑을 추구하고, 실패에 대한 공포가 '중년 동정남'의 증가를 가져온 한가지 요인일 수 있다. 여기에 사적 공간을 침해받길 싫어하는 일본의 병적인 집착도 기여했을 것이다. 때로는 서로의 영역에 끼어들며 청춘 남녀간의 '작업'이 이뤄지지 않는가! 서로의 영역을 지나치게 존중하니, 남녀간의 '작업'도 쉽지 않을 것이다. 

  일본에는 '중년 동정남'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일명 '원피스 세대'가 존재한다. 원피스 세대는 나카마(강한 동료애)를 중시하며, 공기파악 능력(살벌한 분위기 파악)을 중시하는 세대이다. 대인관계에서 실패하기 싫어하기에 이들은 깊은 관계도 유지하지 못한다. 고통이 싫기에 깊은 관계를 맺지 못하는 일본인들은 현실의 고통을 '직면'할 용기가 없어 보인다. "고통없는 삶이란 카페인 없는 커피"라는 도이 다카요시의 말처럼, 인간이 살면서 사소한 다툼과 헤어짐의 고통은 필연적으로 감수해야한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고통을 직면할 용기가 없다. 그러니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 대세에 순응하며, 깊은 관계를 맺지 못하는 영혼없는 인간을 양산하게 된다. 일본인이여! 삶의 고통을 직면하자! 도망치지 말자! 무서워서 도망친 곳에 천국이란 없다.!!


3. 자폐아가 되어버린 일본!

  얼굴은 몰라도 아무로 나미에의 이름은 들어보았다. 아무로 나미에가 천황이 주최한 피로연에서 기미가요를 제창하지 않았다. 일본 우익들의 비판이 쏟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로 나미에가 일본천황을 위한 노래이자, 일본 국가인 '기미가요'를 제창할 수 없었던 이유는 그녀가 오키나와 출신이기 때문이다. 

  오키나와는 류큐라는 독립왕국이 1879년 메이지 정부에 의해서 오키나와 현으로 일본에 편입되면서 일본의 일부가 되었다. 그러나, 일본은 오키나와인을 일본인으로 대해주지 않았다. 오키나와인에게 황국신민화교육을 강요하면서도 그들이 미군에 항복하면 군사기밀을 미군에 알려줄까봐 옥쇄를 강요했다. 수많은 오키나와 사람들이 오키나와 전투에 죽어갔다. 그후, 오키나와는 미군에 양도되어 미군기지가 지금까지 존재한다. 일본으로 복귀하면 미군범죄도 사라질 것이라 생각했으나, 일본은 오키나와에 관심이 없었다. 일본천황이 오키나와를 방문했을 때, 화염병 세례를 받은 것도 이러한 오키나와의 역사에서 연유한 것이다. 

  그러나, 일본은 오키나와에 사죄하지 않는다. 마치 일본이 한국에서 저지른 전쟁범죄에 대해서 아직도 사죄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일본인들은 타인의 감정을 공감하기에 너무나도 매마른 감정을 가졌다. 한국어를 배우는 일본인들이 곤혹스러워하는 일은 일본어보다 한국어가 감정표현이 세밀하다는 것이다. 일본인의 감정 표현 단계는 5단계인데, 한국인의 감정 표현 단계는 10단계라 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일본 아이의 공감능력 발달이 평균 4~11개월 늦다는 것이다. 일부 연구에서는 무려 2년 가까이 늦다고 한다. 이렇게 공감능력이 부족한 일본인이 타민족에게 난징대학살, 일본군 '위안부' 등의 만행을 저지르고 반성하지 않는 것도 어쩌면 당연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과거를 직시하고, 자신의 잘못을 반성할줄 모르는 일본은 '사무라이 재팬'을 탄생시켰다. 일본 야구 대표팀의 다른 이름은 '사무라이 재팬'이다. '무사도 야구', '목숨걸고 하는 야구'를 만들어 낸 일본은 유독 정신력을 강조한다. 비효율적 연습과 체벌이 관행이된 일본 야구의 모습은 일제 강점기 일본군의 못습을 보는 듯하다. 정해진 매뉴얼 대로 야구를 목숨걸고 하는 비효율적인 일본야구는 자율성이 사라지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 일본 축구 감독을 했던 투루시에가 일본 축구 대표팀에게 하루 동안의 휴식을 주고, 호텔의 식당을 닫았다. 그러나 구체적인 지시가 없어 일본 축구 대표팀은 그냥 굶었다고 한다. 투쟁심과 협동성을 높지만, 예측력과 판단력, 자신감이 부족한 일본의 축구를 보면서, 천황의 명령을 받고, 상관의 명령에 따라 민간인을 학살하는 생각할 줄 모르는 전쟁기계 즉, 황군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은 나의 지나친 상상일까? 

  한나 아렌트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책에서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소개했다. 스스로 생각하지 못하고 총통의 명령에 따라 행동하는 아이히만은 다정한 남편이었고, 착한 이웃이었다. 스스로 생각하고 자신의 신념에 따라 행동하지 못하는자는 히틀러의 충실한 살인 기계가 되었다. 천황의 명령에 따라서, 상관의 명령에 따라서 전쟁범죄를 저지른 일본인들이 이제는 스스로 생각하며, 스스로 참된 가치관을 정립하며 살아가길 바란다. 그럴 때만이 동아시아의 평화가 깃들 수 있을 것이다. 


  자연재해가 많은 일본은 개성적인 사람보다는 중앙의 통제에 일사분란하게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을 선호가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기에 과대 협력자를 억제하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특출난 한명이 과대한 성과를 성취하면 조직원들 사이에 불화가 발생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란다. 일본의 무서운 왕따 문화와 신뢰도가 낮은 일본사회를 바라보며, 도저히 인간이 살아갈 수 없는 사회라는 답답함이 밀려온다. 

  이제는 자연 재해와 인재가 겹쳐서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가 일어났다. "이제 전후가 아니라 재후다."라는 말이 일본에서 유행한단다. 동일본 대지진 이후에 수많은 가족을 잃었으며,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로 일본땅이 방사능에 오염되었다. 이로인해서 일본사회는 급속도로 보수화되고 있다. 일본을 찬양하는 방송이 늘어나고, 카리스마형 지도자의 인기까 치솟는다. 애국심과 자원봉사, 기부가 활성화된다. 과연 과거의 아픔을 통해서 일본사회는 새로운 사회를 모색할 수 있을까? 아니면, 대한제국을 식민지로 삼고, 만주와 중국을 참략하며 미국과 전쟁을 벌였던 과거로 회귀할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류큐 왕국 한림신서 일본학총서 89
다카라 구라요시 지음, 원정식 옮김 / 소화 / 2008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키나와의 역사는 일본사인가?"라는 주제로 토론학습을 했다. 학생들은 제주도의 예를 들면서 중앙의 강력한 국가가 주변부를 복속시키며 국가와 민족이 형성되기에 오키나와의 역사는 일본사라 주장하기도 했고, 일부학생은 오키나와는 류큐왕국의 문화를 간직한 류큐의 역사로 보아야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1879년 류큐의 왕이 도쿄로 끌려가면서 류큐는 오키나와 현으로 강등되었다. 오키나와 인들은 황국신민으로서 일본의 침략전쟁에 순응했고, 오키나와 전투에서는 옥쇄를 강요당했다. 오키나와인들이 옥쇄로 천황에게 충성을 다한 댓가는 미군 주둔기지로 미국에게 통치권이 넘겨지는 것이었다. 조국 복귀운동을 통해서 일본으로 복귀한다면 미군 범죄도 사라질 것이라는 환상을 갖았지만, 1972년 일본으로 복귀한 이후에도 오키나와 미군기지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슬픈 오키나와의 역사를 살펴보면서, 찬란했던 류큐왕국의 모습을 살펴보고 싶었다. "류큐왕국"이라는 책을 펼쳐든 것도 이 때문이다. 


  명나라가 해금정책을 실시하면서 찬란한 류큐왕국의 시대가 열린다. 류큐는 조공무역을 통해서 얻은 명나라의 물품을 얻는다. 류큐의 나하에는 동남아시아와 일본의 상인들이 몰려와 자국의 특산물을 진귀한 주변국의 물건과 교역하려 몰려들었다. 당연히 일본상인은 중국과 교역할 수 없었기에 중국의 물품을 류큐를 통해서 얻고 싶어했다. 이러한 류큐왕국의 강성함이 만국진량의 종에 기록되어있다. 


류큐국은 남쪽 바다의 좋은 곳에 자리하고 있어, 삼한의 우수한 점을 모으고 대명국과 상조하며 일본땅과 순망치한의 관계를 맺고 있다."-만국진량의 종-


 명나라의 해금정책은 류큐왕국의 부강함을 가져왔다. 명나라의 해금정책이 사라지자, 류큐왕국의 강성함도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결국, 사스마번의 침입을 받아 일본에 예속되었다. 그럼에도 류큐왕국은 유지되었고, 중국에 조공무역도 계속되었다. 류큐왕국을 유지시키면서 류큐왕국의 조공무역의 이익을 가져가려는 얄팍한 일본의 저의는 너무도 교활했다. 심지어, 일본 민간인 업자가 류큐 사자를 자칭하며 조선에 무역을 요구하기도 했다. 조선은 왜구의 창궐을 염려해서 알면서도 속아주었다. 일본의 교활함은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던 류큐왕국이 1879년 류큐처분에 따라서 역사속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일본의 황국신민화 정책에 충실하게 순응하면서 류큐왕국의 후손이라는 정체성도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자신을 버린 일본으로 다시 복귀하고 싶어했고, 일본에 복귀하고 나서도 일본 본토인에 비해서 차별을 받으면서도 오키나와 인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일본에서 찾고 있다.1977년, 5년간 오키나와가 일본에 복귀한 것을 좋아한 사람은 50%에 불과했으나, 현재의 오키나와인 대대수는 일본으로 복귀를 좋아한다. 오키나오 전투에서 천황을 위해 옥쇄할 것을 강요받았고, 수많은 오키나와 인들이 죽음의 구렁텅이로 내몰렸음에도 불구하고, 오키나와 인들은 일본으로 부터의 독립을 외치지 못하고 있다. 

  "역사가는 현민의 여론을 배경으로 역사상을 재구성할 의무를 져야한다."(185쪽)라는 의무감을 가지고 일본의 역사가들은 오키나와의 역사가 일본사의 일부분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했다. 전설상의  '고류큐 초대왕' 슌텐이 일본 헤이안 말기의 무장 미나모토노 다메토모의 아들이라점을 일본 역사학자들은 강조한다. 류큐는 일본의 지방사이고, 류큐어는 일본어와 유사성이 많다는 주장도 이러한 '역사가의 의무'에서 비롯된 연구물이다. 


  일본인으로 인정받고 싶어하는 오키나와인들의 바램은 가와카미 필화사건을 촉발시켰다. 1911년 교토제국대학 조교수 가와카미 하지메 교수가 오키나와인들에게한 강연이 문제가 되었다. 


  "오키나오를 관찰하니, 오키나와는 언어, 풍속, 습관, 신앙, 그 밖의 모든 점에서 내지와 그 역사를 달리하는 듯하다. 그리하여 혹자는 이 현 사람들이 충군애국의 사상이 부족하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한탄할 것 없다.  나는 이렇기 때문에 오히려 오키나와인에게 기대하는 바가 큰 동시에 또 가장 많은 흥미를 느끼는 것이다. "-32쪽


  오키나와의 역사와 문화를 정확히 파악한 교토제국대학교 가와카미 하지메 교수의 지적은 일본인이 되고 싶어하는 오키나와인에게는 자신의 약점을 후벼파는 강연이었다, 결국 2주간 자료조사차 오키나와에 머무르려했던 가와카미 하지메 교수는 1주일만에 오키나오를 떠나야했다. 가와카미 하지메 교수의 정확한 지적을 포용하지 못할 정도로 오키나와 인들은 철저히 황국 신민화교육을 받았고, 일본은 오키나와 인들을 황국신민화 시키는데 성공하였다. 그들에게 류큐인으로서의 자존감은 사라졌다. 그 댓가로 오키나와인들은 오키나오 전투에서 옥쇄를 강요당했으며, 전쟁이 끝난 후에서 일본에게 버림받고 미군기지로 고통을 당해야했다. 1972년 일본에 복귀하고 나서도 일본인들에게 차별을 받고 있다. 


  2019년 10월 31일 파란만장한 슈리성이 다시 한번 불탔다. 류큐 왕국의 왕이 살던 이성은 일본에 병합된 후에 일본군의 주둔지로 사용되기도 했으며, 오키나와 전투때 전소되었다. 그후, 류큐대학 캠퍼스로 사용되던 슈리성터는 1992년 류큐의 역사를 복원하려는 열망에 따라 다시 복원되었다. 오키나와인들이 일본인들에게 당했던 외면과 차별 처럼, 슈리성도 핏박과 슬픔을 겪어야했다. 2019년에 완전 소실된 슈리성을 다시 복원할 계획이 현재 시점에서는 없다고 한다. 그러나, 슈리성을 다시 복원한다 할지라도, 오키나와 인들이 류큐인으로 다시 태어 나지 못한다면, 슈리성의 의미는 다시 부활할 수 없다. 완벽한 황국신민화 정책이 성공한 오키나와를 바라보며, 친아들이 아닌 업둥이가, 친아들로 인정받고 싶어하는 애닳픈 모습을 보는 듯하여 가슴이 아리다. 언제쯤, 오키나오 인들은 일본인으로 인정받기 보다는 류큐왕궁의 후손으로서의 자존심을 갖고 살 수 있을까?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cott 2020-12-24 00: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류큐라면 오키나와 !! 일본이 엄청 잔인하게 지배해버린 가야왕궁하고 교류도 할정도로 문화적으로 우월했었던것 같은데 황국 식민화 정책으로 지금에 오키나와는 류큐왕국에 모습을 볼수 없다는게 너무 안타깝네요 ㅜ.ㅜ강나루님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ᒄ₍⁽ˆ⁰ˆ⁾₎ᒃ♪♬메리메리 크리스마스 ^.~

강나루 2020-12-24 04:09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scott 님도 메리메리 크리스마스^^
 
문명으로 읽는 종교 이야기 -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 불교 힌두교 탄생의 역사
홍익희 지음 / 행성B(행성비) / 2019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흑사병이 유행하던 중세 시대, 흑사병의 공포에서 벗어나고자 교회에 모여 기도하던 이들이 흑사병에 집단 감염되어 사망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교회에서 하는 기도가 흑사병으로 부터 중세인들을 구원하지 못한다는 평범한 사실을 그들은 몰랐다. 그로부터 천여년이 지난 오늘날 대한민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기도원발, 교회발 집단 감염이 폭발하고 있다. k-방역 이라는 말을 내세우며 방역 선진국으로서의 위상을 다져가던 대한민국이 일부 종교시설에서 일어나는 집단 감염으로 코로나 19 위기에 빠져들고 있다. 한국의 코로나 19의 확산에는 특정 종교 활동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신천지발 1차 대유행에 이어서, 종교 시설에서 이뤄지는 지금의 집단 감염을 바라보며, 종교가 무엇이기에 코로나 19 감염의 위험 속에서도 그들은 종교에 집착하는지를 알고 싶었다. 서가에서 여러 책들을 살펴보았다. 세계 종교의 역사를 한권으로 집대성한 책을 찾았다. 특정 종교에 관한 서적은 쉽게 찾아볼 수 있었으나, 세계 종교를 아우르면서도 쉽게 풀어쓴 책은 찾기 힘들었다. 그러던차에 홍익희의 "문명으로 읽는 종교 이야기"라는 책이 나의 눈길을 끌었다. 쉬운 문장으로 쓰여진 홍익희 저자의 책을 펼쳐 들었다.

 

1. 하늘 아래 홀로 존재하는 것은 없다.

  '신이 천지를 창조하고 인간을 만들었다'라는 종교인들의 설명을 들을 때마다 '신이 천지를 창조하고 인간을 만들'때, 이를 지켜본 사람이 있는가? 라는 의문이든다. 마치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천지창조와 인간 창조라는 일련의 과정을 마치 지켜본듯이 말하는 종교인들을 바라보며 그들이 하는 말에 신뢰성을 느끼지 못했다. 마치 시간을 초월해서 특정 종교 홀로 존재하하는 듯한 설교를 할때는 불쾌함마져 들었다.

  홍익희 저자의 "문명으로 읽는 종교이야기"를 읽으며 '하늘 아래 홀로 존재하는 것은 없다.'라는 진리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크리스트교는 세계적으로 강한 영향력을 가진 종교이다. 자신이 유대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인류의 조상을 아담과 이브에게서 찾기도 한다. 심지어 출에굽기 이후 이스라엘 민족과 하느님이 맺은 시나이산 언약을 지구상의 모든 인류가 하느님고 맺은 계약인 것 처럼 말하는 유명인도 있다. 그런데,출애굽기 19장 이하에 기록된 하느님과 이스라엘 민족 사이에 맺은 시나이산 언약의 형식이 히타이트제국과 약소국 사이에 맺은 '종주권 계약'고 흡사하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은 모른다. 크리스트교는 홀로 존재한 종교가 아니었다. 수 많은 문명과 교류하면서 그들의 장점을 흡수하면서 오늘날 까지 발전할 수 있었다.

  조로아스터교가 유대교와 크리스트교, 이슬람교에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은 너무도 유명하다. 조로아스터교에 유일신사상, 구세주의 등장, 최우의 심판 등의 사상이 셈계통의 종교에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조로아스터교의 경전인 아베스타와 인도의 산스크리트 경전이 유사하다는 점이다. 문화적으로, 거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서아시아와 인도에서 발생한 두 종교가 유사하다니 믿기지 않는 사실이다. 사실 인도와 페르시아는 같은 아리안인을 조상으로 두고 있다. 서로 다른 것처럼 보이는 두 지역은 사실은 한뿌리에서 자라난 문명이었다.

  심지어, 인도에서 탄생한 불교가 아소카왕의 포교활동으로 크리스트교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불교의 수많은 설화가 크리스트교에 영향을 미쳐 비슷한 이야기 구조를 갖는 것도 이때문이다. 그래서 문명 사학자 토인비는 "20세기 가장 의미 있는 일은 불교와 기독교가 만난 사실"이라 했으며, 라이프치대학 루돌프 자이델 교수는 "불교와 기독교의 내용을 비교해보니, 최소한 50개의 스토리가 일치한다."고 말했다.

  서로 엄청난 거리를 두고 있는 종교 사이에 끊임 없는 교류와 융화 작용이 이뤄졌다는 사실을 우리는 인정해야한다. 하늘아래 홀로 존재하는 것은 없다. 이 사실을 인정한다면 우리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종교를 절대시하기 보다는 타종교에 대해서 열린 마음을 가져야한다.

  

2, 개방과 융화가 답이다.

  세계 종교가 성립할때부터 종교는 한 문명의 기초위에 토대를 다졌다. 종교가 성장하면서 타종교의 영향을 받아 이를 융화시키면서 종교는 더욱 성장하였다.

  셈계통 종교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 종교는 조로아스터교이다. 조로아스터교의 성립에 아리안의 문화와 서아시아 문명이 기대한 영향을 미쳤음은 분명하다. 조로아스터교가 성립하자, 조로아스터교는 서아시아 문명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아케메네스왕조 페르시아의 키루스왕(성경에는 고레스왕으로 나온다.)은 관용정책을 펼쳐 제국을 더욱 확장시켰다. 키루스왕의 관용정책의 사상적 기반에는 조로아스터교가 있었다. 조로아스터교의 유일신 사상은 서아시아 각지에 있는 모든 신을 유일신 '아후라 마즈다'가 관장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키루스왕은 아후라 마즈다의 뜻에 따라 선한 영의 전사로서 의로움과 자비로움으로 이 세상에 '정의와 평등'을 구현하기 위해 앞장섰다. 기원전 538년 유대인의 귀향을 허락한 것도 키루스왕이 아후라 마즈다의 뜻을 실천하기 위해서 선택한 것이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키루스왕을 메시아로 추앙했으며, 키루스왕이 믿는 조로아스터교의 영향을 받아 유대교를 재정립했다.

  개방적인 사고와 타문화를 자신의 문화에 융합시키는 탁월함은 문명을 발전시켰다. 그러나, 모든 종교가 개방적인 사고와 타문화를 자신의 문화에 융합시키는 탁월함을 가지지는 못했다. 일단 세계 정교로 발전하고 나서는 교조화되어 폐쇄성을 띄는 경우가 많다.

  중세시대, 발도파의 활약으로 크리스트교는 민중속으로 스며든다. 성경을 번역하고 쉬운 말로 민중에게 설교한다. 그자 평신도가 사제와 종교 논쟁을 하는 일이 벌어진다. 크리스트교를 더욱 발전시킬 수 있는 기회가 열린 것이다. 그러나 크리스트교 사제들은 이를 위기로 인식했다. 1229년 그레고리오 9세는 툴루즈공의회를 열어 평신도들이 성경을 읽거나 번역, 소지하는 행위를 금지했다. 복음을 전파해야하는 사재들이 복음이 담겨있는 성경을 읽지도, 번역하지도 심지어 소지하지도 못하게 하는 웃지 못할 일을 저질렀다. 지식을 독점하고, 민중을 우민화시켜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어리석은 모습은 조선시대 훈민정음을 반대했던 최만리를 비롯한 양반 사대부의 모습과 흡사하다. 결국, 개방성과 유연성을 상실한 크리스트교는 썩을 데로 썩어서 종교개혁을 맞이한다.

  무신론자와 종교를 가지지 않는 자가 늘어나고 있다. 저출산고 고령화의 영향으로 신자들이 늙어가고 있고, 이는 종교인들의 수입 감소로 이어진다. 뿐만 아니라, 현대 종교는 과학으로부터도 위협을 받고 있다. 대표적인 논쟁이 창조론과 진화론의 대립이다. 크리스찬들이 나에게 선교를 할때, 그들에게 하는 단골 반론도 진화론이었다. 그들이 아무리 종교적 믿음으로 선교한다할지라도 교육수준이 높은 젊은이들의 과학적 사고와 조화를 이룰 수 없다면, 선교의 결과는 미미할 것이다. 나는 그들에게 보다 개방적이고 타종교의 장점을 자신의 종교에 융합시키라 조언하고 싶다.

  유대교의 티쿤올람 사상에 진화론을 융합시킬 수 있는 힌트가 있다. 티쿤(고친다)과 올람(세상)이 합쳐진 말로 '세상을 개선하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하느님이 세상을 창조했으나, 그 창조는 완벽한 창조가 아니었다. 세상은 미완성의 상태로 창조했으며, 하느님의 창조 작업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떻게 삶을 살아가느냐에 따라서 하느님의 창조 작업에 큰 도움을 줄 수도 있다. 이러한 티쿤 올람 사상은 진화론을 받아들일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 준다. 보다 합리적 창조론을 만들 수 있는 힌트가 유대교의 '티쿤올람'사상에 있는 것이다.

  자신의 종교만을 지고지순한 절대적 가치로 여기는 종교인들에게 당신의 종교가 앞으로도 계속 발전하기 위해서는 '개방과 융화'의 과정을 받아들이라 조언하고 싶다.

 

 

저자 홍익희는 불교와 힌두교, 브라만 교는 심하게 반목을 하지 않고, 종교의 큰 흐름과 가치를 공유하고 있는 반면에, 셈족의 종교인 유대교와 크리스트교, 이슬람교는 한뿌리에서 나왔음에도 다름을 인정하기 보다는 반목과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고 지적한다. 나와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고, 나와 다름을 없애야할 절대악으로 여기는 지금의 교조주의에 빠져든 종교인들은 신의 이름으로 분쟁을 일으키고 있다. 같은 하느님을 믿지만, 유대교라는 외투, 크리스트교라는 외투, 이슬람교라는 외퇴를 입었다고 서로에게 총뿌리를 겨누기도했다. 그들이 입고 있는 외투는 다르지만, 그 안에 계신 신은 같은 하느님임을 그들은 모르고 있다. 하늘아래 홀로 존재하는 것이 없기에, 개방적이어야하며 타문명의 장점을 나의 것으로 융화시키는 현명함이 필요함을 "문명으로 읽는 종교 이야기"에서 말하고 있다. 이제, 종교인들이 응답할 때이다. 당신이 믿는 신은 나와 다른 존재를 존중하라고 말하고 있는가? 없애야할 절대 악이라 말하고 있는가?

 

 

ps. 이 책에 오류도 꾀 있다.이를 간단히 언급하겠다.

127쪽: "요즘 관광객들이 보는 이집트 신전건축물의 대부분은 이때 유대인 건설노예에 의해 지어졌다."

=> 영화 '엑소더스'에 이집트 건축물을 유대 노예가 건설한 것처럼 묘사하여 고고학자들에게 지탄을 받았던 적이 있다. 이집트의 건축물들은 대부분 급료를 받은 평민에 의해서 건설되었다.

 

148쪽 "한손에는 꾸란을 다른 손에는 칼을 들고 이슬람교를 포교했다."

=> 서구가 이슬람에 대한 편견에 가득차서 만든 말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이슬람이 강제 개종을 시키지 않았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도 '칼을 들고 이슬람교를 포교'했다는 표현을 사용한 점은 이해하기 힘들다.

 

383쪽 콘스탄티누스가 태양위에 빛나는 십자가를 보고 싸웠다는 설화를 사실인 것처럼 소개한점.

=> 역사를 배운 사람이라면 이것은 거짓임을 알 것이다. 후대에 만들어진 설화를 역사인 것처럼 서술하는 어이없는 일은 없을 것이다. 로마 여행시기 가이드조차도 콘스탄티누스가 태양위의 십자가를 보고 싸웠다는 묘사는 거짓임을 지적했는데, 홍익희는 이를 모르고 있다니, 못내 실망스럽다.

 

494쪽 투루 푸아티에 전투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카룰루스 대제때의 일이다."라고 서술한점.

=> 앞부분에서 마르텔이 승리를 이끌었다고 서술하고는 뒷문장에 칼롤루스 대제 때 일이라는 어이없는 서술을 했다. 시간개념이 파악안된 상태에서 서술한 것으로 보인다. 카롤루스 마르텔 이후의 인물이 칼롤루스 대제이다. 세계사 교과서를 가지고 확인해 보길 바란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라온 2020-12-19 05: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교회 오랫동안 몰입해서 다녔지만 종교는 이제 지쳤고 싫고 미워요
 
30개 도시로 읽는 세계사 - 세계 문명을 단숨에 독파하는 역사 이야기 30개 도시로 읽는 시리즈
조 지무쇼 엮음, 최미숙 옮김, 진노 마사후미 감수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0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세계사를 공부하다보면 수많은 도시의 이름을 접하게된다. 단순히 스쳐 지나가기에는 도시에 담긴 역사와 문화가 너무도 깊다. 각 도시에 대한 깊이 있는 지식을 얻고 싶었던 차에 조 지무쇼의 '30개 도시로 읽는 세계사'가 나의 눈에 들어왔다. 30개 씩이나 되는 도시를 한권에 담는것 자체가 무리일 텐데..... 과연 조 지무쇼는 나의 기대에 부응하고 나의 걱정을 기우로 만들수 있을까?


1. 일본중심의 세계사

  역사서는 저자의 역사관이 담겨있을 수밖에 없다. 이책 또한 일본인 저자의 일본중심의 세계사라는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 

  첫째, 30개 도시의 선정기준에 의문을 품고 싶다. 세계 도시 30개 중에서 한국의 도시는 단 하나도 없다. 그에 반해서 일본의 도시는 '천년의 수도'라는 수식어를 붙여 교토를 장황하게 서술했다. 그밖의 많은 도시들을 30개 도시에 선정하면서도 선정이유를 밝히지 않았다. 극히 주관적인 선정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둘째, 일본중심의 서술이 보인다. 상하이의 조계시대를 끝낸 것이 일본이라는 서술부터 시작해서, 오스트레일리아가 완전한 독립을 결심하게 하는 계기가 일본과의 싸움 때문이라는 서술은 떨떠름한 느낌을 주었다. 만약 조 지무쇼가 일본의 침략전쟁에 대한 반성의 글을 한줄이라도 남겨 놓았다면 떨떠름함은 적었을 것이다. 

   일본인이 썼기에 일본중심의 서술은 자연스러운 것이며, 이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떨떠름함이 한국인이기에 갖을 수 있는 기분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책에서 개운치 못함을 느끼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나는 한국인이기 때문에......


2. 두껍지만 얇은 책

  이책은 두껍지만 얇은 책이다. 왜? 두껍지만 얇은 책일까?

  첫째, 책은 3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이다. 그러나 300페이지 넘는 책에 30개의 도시를 담다보니, 한 주제에 10페이지 안밖의 서술이 이뤄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과 지도를 포함한다면 각도시에 대해서 얻을 수 있는 지식은 너무도 적다. 깊이 있는 정보를 얻기를 기대한 독자라면 못내 아쉬움을 감추지 못할 것이다.

  둘째, 쉽게 읽을 수 있다. 3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이지만, 사진과 지도를 빼면 책의 분량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책의 깊이도 깊지 않기에 마음잡고 읽으면 단숨에 읽을 수 있는 가벼운 책이다. 무거운 책을 읽고 머리식히기를 위해서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두껍지만 얇은 책이기에 책의 두께에 겁먹지 말고 가볍게 읽으라고 조언하고 싶다.


  하루에도 수많은 책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중에서 묵직한 깨달음을 주는 책을 얻기는 힘들다. 가볍게 세계여행하듯이 즐기길 워한다면 이책을 선택해도 괜찬을듯 싶다. 깨달음의 무개를 느끼고 싶다면 다른 책을 선택하길 조언한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잔다르크 2020-12-07 10: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저 또한 일본 작가들의 세계사 작품에 실망을 하고 있던 터라
구매를 망서리던 참이였지요.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제가 책을 읽으며 얻은 실망감이 무척 오래가더라고요. 감사합니다.

강나루 2020-12-07 18:58   좋아요 0 | URL
도움이 되어 기쁩니다